경건


선지자선교회 1981년 12월 11일 금야 

 

 본문 : 벧후 3:8-13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택한 자들은 신앙생활을 잘 하든지 못 했든지 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 사는 구속받은 사람과 사람의 그  권위와 영광과 부강이 다릅니다.

 왜 이 말씀을 하는고 하니, '새 하늘과 새 땅을 믿는 사람은 다 바라보니까  거기만 갔으면 꼭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미혹이 많이 되어지기 때문에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은 다 같다.' 이러는데 인간과 인간의 차이있는  이것으로 비교도 못할 심한 큰 차이가 있는 것이 무궁세계입니다.

 또 여기에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은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언제든지 현재라는 말씀이요, 이 말씀을 이렇게 인용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려는 그 하나님의 사랑과 패역으로  멸망을 걸어가고 있는 그 양면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재림 재림하지마는 아직까지 재림이  안됐는데 뭐 재림이 되겠느냐?' 재림을 부인하는 이런 운동이 예수님의 재림  때가 가까울수록 심해질 것을 말씀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말씀하시고 근 2천년이 다 되도록까지 그냥 유지되는 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백성을 다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에  사랑인데 그 하나님의 마음의, 사랑의 간절성과 마음에 애타는 것을 그 전에  '천년 하루, 하루 천년'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 위에 보면 제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기는  창조하셨지마는 창조한 그대로 있고 창조된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말씀하시는 그 말씀대로의 변동되는 일은 없다' 그렇게 인간들을  유혹시킵니다.

 노아 때도 '창세 이후로 이제까지 그대로 고정되어 있는데 무슨 땅 위에 홍수로  전멸하는 그런 큰 변동이 있겠느냐?' 하는 그 유혹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시켜서 노아 홍수에 전멸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또 하나님의 말씀에 '이 세상은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불사르기  위해서 간수해 두신다. 간수해 두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 구원얻고 또 멸망을  받을 자는 멸망을 마련하고, 구원과 멸망이 결정되도록 하기 위해서 만물을  보존하고 있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인정하면서 창조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저렇게 변동되어  나간다 하는 것은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영감을 받아 복있는  사람들은 창조된 것이 하루도 변동없지 않습니다. 날마다 말씀 그대로 자꾸  변동되어서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주 중요하고 제일 중요한 것으로 받아서 가져야 할 것 중에 몇 가지를  말하려 합니다.

 첫째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날이 도적같이 온다 말은 주님이 우리 것을 뺏으려고 오신다는 말이  아니고, 주님이 재림하시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 가운데에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것들이 있고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들이 있고 빼앗기고 없어질 것들이  있는 이 두 종류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진 거 어떤 것이든지 예수님의 구속 안에  있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다 빼앗겨 버립니다. 그때부터 소유권도  이용권도 또 누리는 권세도 다 빼앗기게 됩니다.

 마치 노아 홍수 때에 사람들 가진 것 중에 노아의 여덟 식구가 준비한 것만  그대로 이 홍수에서 빼앗기지 않고 유지가 됐지 그 외의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빼앗겼습니다. 귀한 것이나 천한 것이나, 그때 사람도 지금 사람과 같아서  모두 지식을 좋아했고, 권세와 재물을 좋아했고, 예술을 좋아했고, 취미 흥미  쾌락들을 다 좋아했고, 애정들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홍수가 올 때에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사람들은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는,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한 그것은 그때에 구원이 됐고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되어졌지마는 그 외의  것은 그것 때문에 멸망했고, 그것 때문에 시간 다 보냈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노를 쌓아서 멸망한 거와같이 이제도 하나님의 말씀하신 그대로 준비된  그것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고 자기의 것이 됐지만 그 외에, 인간들이 천 언(言)  만 언(言)으로 수많은 책에서 수많은 말을 말합니다. '이게 좋다. 저렇게 저게  좋다.' 인간들의 온갖 흥미를 끌고 취미를 끌고 호기심을 끌고 욕심을 일으켜서  수많은 사람들이 해 놓은 것을 모조리 한 시간에 그 모든 것이 다 자기는 완전히  빼앗기고 마는 것이 노아 홍수 때와 꼭 같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이것은 항상 가졌으면 좋겠다.' 싶은 것은 아예 땅에 속한  것으로서는 가지지 마십시오. 땅에 속한 것도 있고 하늘에 속한 것도 있습니다.

그게 비유가 될런지 몰라도 물속에도 이 육지에 있는 종류와 같은 종류가 있으나  그것은 온전치를 못한 것들입니다. 물속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육지에  있는 사람만 못합니다. 물속에도 개가 있습니다. 육지에 있는 개만 못합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은 하늘에 속한 것들과 종류는 거의 같이 있지마는  그것은 다 그림자와 같고 허무한 것들입니다.

 이러기에 아예 무엇이든지 '아, 이것은 잠깐 필요하다.' 싶으면, 잠깐 필요하고  길게는 필요없다 싶거든 땅의 것을 취하십시오. 왜? 그러면 잠깐 있다가  없어져도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이라면,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이 잠깐 있다가  없어지지 않고 장구히 있으면 그것도 탈입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이거든  땅의 것을 택하고, 왜? 그래야 없어지니까 좋다 그거요.

 그러나 '이거는 없어지지 않고 항상 있었으면 좋겠다.' 싶거든 하늘에 속한  것을 택하십시오. 왜? 그것은 항상 있기 때문에 항상 좋고 항상 필요합니다.

그러나 항상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땅의 것을 택했다가는 그것이  잠시 잠깐 후면 없어지니까 가슴을 칩니다. 사람들이 마귀한테 이렇게 속습니다.

 첫째로 여기서 생각할 것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노아 홍수 때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이거는 영원히 보존된다. 영존된다. 이것은 온전하다. 하나님의  불심판이 멸하지 못한다. 사망이라는 그 사망이 결단코 없애지 못한다.'  말씀하신 이거 외의 것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다 빼앗깁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아니라도 개인으로써 세상 종말 시간이 있습니다. 개인으로써  세상 종말 시간이 있는데. 그 종말 시간이 또 언제인지 모릅니다. 종말 시간을  닥치면 하나님이 '이거는 영존의 것들이라' 하는 것 외의 것은 전부 다 그  시간으로 빼앗기고 자기와는 상관이 없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좋아하고 가지고 있는 것이 죽음이 올 때에는 없어진다. 또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없어진다.' 하는 거기에 소망을 둔 사람은 반드시 가슴을  치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치게 됩니다. '아, 죽으면 없어질지라도 사는 동안  인제 몇십년 살 터인데' 그것도 어리석은 소리. 인생의 자기의 마지막 시간은  사람이 모릅니다. 사람들이 모두 제가 아는 대로는 죽음의 방편을 '사람은 꼭  늙어 죽는다.' 꼭 그렇게만 무식하게 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젊으면 '나는  지금 안 죽겠다.' 이럴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 죽는 그 죽음의 방식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느 죽음 어느 방식이 내게 해당될런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일을 자기 날이라고 생각지 말라고 성경에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오시든지 자기 생명이 끝나든지 빼앗기지 아니할 것을  마련하는 사람이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것이 가난하고, 이것이  부요한 것이 부요하고, 이것이 욕심을 품을만 하고, 또 노력을 할 만하지  오늘이라도 끝장날 수 있는 위험한 그것을 영원한 것을 팔아 가면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원한 것을 마련하면서, 영원한 것을 마련하니까 그것까지도 따라  들어오니까 그것을 취하지 그것 때문에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어부들이 좋은 고기를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고기 잡는 데에 해초가  끌려 들어오니까 그것도 먹기는 먹는 것이고 가치가 없지마는 끌려들어 왔으니까  어떤 사람은 내버리고, '끌려들어 왔으니까 이것도 넣어라. 다만 조금이라도  돈이 안되겠나?' 하는 거와 같이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것을 마련하는데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이 거기에 같이 끌려 들어왔으면 '뭐 그것도 이용 가치가  있는 것이니 내비둬라' 하지마는 그것을 자기의 주목적으로 삼아서 노력을 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기의 가진 것이 다 빼앗겨지는 그 시간이 이 시간이라도 세상 떠나면 다  빼앗겨야 됩니다. 아무리 좋아도 빼앗겨야 됩니다. 또 아무리 강해도  빼앗깁니다. 노아 시대에 왕권이 무슨 소용있었습니까? 노아 시대에 떠 둘러멘  만능으로 부르짖는 황금이 무슨 필요 있었으며 과학이 무슨 필요가 있었습니까?  모든 사람을 미혹시키는 미용이 무슨 필요가 있었습니까? 예술이  필요있었습니까? 억세고 이를 가는 악독한 그 악독이 무슨 필요있었습니까? 뭐  모조리 홍수 오니까 홍수 밑에 다 매장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는 이 홍수와 같은 두 가지 큰 게 있는데, 개인의  죽음 또 주님의 재림 이 두 가지로서 인간의 가진 것은 영존할 것과 빼앗겨질 것  이 두 가지는 그때에 끝나 버립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오늘 내 모든 노력한  것이, 내가 기뻐하는 것이, 내가 갖추어 놓은 마련한 것이 끝날지 모르는 그거  알고나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죽는 날까지 마귀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이  계산은 한 번도 못 대 보고 갑니다. '아, 내가 가진 이 참 재미있는 재미, 이  흥미재미, 쾌락, 이 권세, 이 돈, 이 재미있는 가정, 모든 영광 내가 이 시간 딱  죽는다면 남아 있을 것이 뭐이냐?' 이 계산을 대지 못하게 하는 것 이  악령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런지 모르는데 예수님이 오시면 어찌 되느냐? 이 계산  하나도 대지 못하고 전부 일방적 지식으로 비정상으로 살도록 마귀가 만들어  왔습니다. 그저 있는 것만 보고 있게만 할려는 것이지 없어질 것은 생각지  않습니다.

 은행을 경영하는 사람이 은행에 돈을 빌리러 왔는데 돈 빌리는 사람이 돈벌이  할 것만 연구해 가지고 자꾸 이러니까 성공한다고만 하면 온 사람에게 돈을 안  줍니다. '이러면 실패, 이러면 실패' 모든 실패를 다 말하고 모든 실패를 능가한  그 성공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는 돈을 주면 돈을 떼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제는 '이 보존 기간이 언제인지 모른다. 이거는  빼앗길 것이다. 이것도 없어질 것이다. 아예 이 기쁨은 없어질 것이니 이 기쁨이  없어질 때에는 가슴이 녹아진다.' 없어질 것 이것부터 계산 대고 그것을  능가해서 '없어지지 않을 게 뭐이냐?' 이것을 발견해 가지고 거기에 주력하는  것이 성령의 사람입니다. 눈이 밝은 사람들이오.

 그러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우주가 어떻게 되는가? 이거는 내 말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되기를 원해서 하는 말 아니오. 하나님의 말씀에 이렇게  된다고 말씀했기 때문에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되기는 되는 것이니까 '이렇게  되니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되겠느냐?' 하는 이 피난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는 것이지 이 우주가 이렇게 참혹하게 되기를 원해서 하는 말 아니오. 내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이대로 되기는 되는데 우리가 아무리  잊어버리고 안 그렇다고 낙관하고 배짱을 부려 봤든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대로 되면 저만 속지 않습니까?  성경에 말하기를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진다' 하는 것이 이 공간 우주 전체를  말합니다. 우주가 불덩어리가 됩니다. 이 지구 땅덩어리가 불덩이가 돼서 다  전부 그것이 체질이 녹아진다 했습니다.

 땅 위에는 우주와 지구 땅덩어리가 전체가 다 불덩어리로 화하는 이 무서운 큰  변동이 있을 터인데 마귀라는 놈이 이 큰 변동을 인간에게 까마득하게 딱  가리워서 생각지도 못하게 합니다.

 '아, 내가 죽음이 언제인지, 예수님의 재림이 언제인지.' '얘, 돈 여기 있어.

돈 돈 돈 있어. 돈돈돈.' '아, 돈' '이 돈 봐, 돈. 이 돈 이러니까 돈 이거  취해.' 언제, 죽음과 재림을 생각하다가 돈 주니까 돈에 홀켜 가지고 그만 돈만  생각하다 잊어버립니다. 지위 권세 그걸 생각하니까, '야, 너는 학생이라. 공부!  시험쳐 가지고 올라가서 대대학을 하고 이런 학자가 돼. 공부, 공부' 공부  주니까 거기 미혹됩니다. 여러분들, 인간의 죽음을, 예수님의 재림을 땅 위에  어떤 것을 준다 할지라도,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인해서 잊어버렸으면 그  길은 배암이 해와에게 선악과 준 거와 꼭 같은 멸망을 준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각자들이 생각해서 '내 죽음이라는 마지막 시간은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예수님의 재림도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이 시간만 오면 내 있는 것이 전부 다  없어지고' 암만 내가 머리 싸매서 공부를 해도 다 끝나 버렸고, 아무리 삣고  깎고 다듬어도 끝나버렸고, 천하 인간을 혹하게 할 별 묘기나 별 예술을, 뭘 별  예술을 가졌어도 끝나버렸고, 분투 노력해서 어떤 권세를 잡았어도 끝나버렸고,  농사를 하든지 공업을 하든지 장사를 하든지 '이것만 이것만' 곡간을 헐고 새로  짓는 것처럼 이렇게 하고 있는 자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야, 너 언제 죽을지  몰라. 주님의 재림이 언제 있을지 몰라. 좀 생각해 봐.' '그래, 이 시간에  죽으면 이 모든 것이 헛되지 않는가? 주님 재림하시면 헛되지 않는가?' 하면  마귀라는 놈이 당장에 돈을 주든지 뭘 보이든지 보여 가지고 '이거 이거' 요새는  마귀라는 놈이 테레비를 보여 가지고, 그만 생각하면 테레비를 보입니다. 보이면  저거끼리 야단지기면, 거기 아무 무가치한 것인데 혹해 가지고, 테레비를  보이든지 인간의 말단으로, 보통 있는 일이 그게 다 좋은 일인데, 일반이  걸어가는 길이 좋은 걸음인데 그것은 말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극단에 극단으로  '인간이 타락도 그렇츰 타락할 수 있겠나? 그런 죄악이 있을 수가 있나? 그런  인간이 있을 수가 있나?' 만에 하나 있는 그런 것을 냈으니까 깜짝 깜짝  놀라면서 취미가 붙습니다. 호기심에서. 이래 가지고 만들어 놓은 그 소설 잡지  그게 인간 살립니까? 죽여요. 죽여. 이런 데에 미혹하고 이래 가지고 어쨌든지  자기의 죽음을 생각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니까 자기의 모든 마련한 것이 도둑맞는 이것 생각지 못하게 하고 '이게  필요하고 이게 필요하다.' 오늘이라도 예수님의 재림이든지 죽으면 다 헛일되고  마는 건데 그것을 자꾸 '이게 필요하다.

 이게 필요하다 이거는 여기에 필요하고 저거는 저기 필요하니까' 이것을 보여  주니까 여기에 사람들이 마음이 끌려져서 죽는 날까지, 죽으면 끝장나는 것,  예수님의 재림이면 끝장나는 것, 무궁세계에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것에게  미혹받아 가지고 인간의 일생을 지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악령의 유혹입니다.

 믿음의 사람들, 성령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를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없어질 것 있어질 것,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을 반반으로 봅니다. 이대로  유지되어 있는 것 예수님의 재림을 반반으로 봅니다. '이런데 재림하면 다  불덩어리 되고 만다. 살았는데 이 시간 죽을런지 모른다' 이 양면을 두고  비판하고 평가해 가지고 '이것은 가치가 얼마면 이것은 가치가 얼마다.' 가치를  따져서 올바른 정가를 해 가지고 '이거는 얼마만한 가치이기 때문에 여기는 내가  정력을 얼마를 기울이는 것은 좋지마는 그 이상 기울이는 것은 안 됐다. 이거는  얼마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 정력을 얼마를 기울여도 이거는 좋다' 이렇게  비판으로 살고 평가로 사는 것이 성령의 사람들이요, 일방적인 지식을 가지고  살지 않고 쌍방, 다시 말하면 이 전체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신앙의  사람들이요, 넓게 보고 멀리 보는 사람들입니다.

 어리석게 '시야가 넓어야 된다, 넓어야 된다.' 넓어야 된다는 자가 콩만 볼 게  아니라 팥도 봐라. 그게 시야 넓은 것이다. 콩 팥 암만 봐봐야 소용없어. 죽느냐  사느냐, 없어지느냐 있어지느냐? 이 양면을 봐야 되지 멸망 가운데 있는 것 한  가지 두 가지 많이 보면 무슨 소용있소, 있기를? 그날이 도적같이 임하는 것,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주는 다 불 덩어리가 되고 지구 땅 덩어리가 불덩어리가  되는 이 큰 변동이 있을 것이오. 오늘인지 내일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오늘 다  가기 전이니까 이 시간에도 될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 말이오. 성경이 그래 놨소.

그날과 그 시를 아무도 모른다 했소. 이렇게 큰 변동이 있을 터인데 악령은  '변동없다.' 하는 그것을 가지고 유혹을 할 것을 3장 1절로부터 보면 쭉  계속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 개인 죽음이나 예수님의 재림이나 꼭 같은 성질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꼭 같은 성질의 것, 꼭 같은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그날에는 모든 것이 다 불에 타서 녹아지고 전부가 다 불덩어리가  되어질 터이고, 노아 때에 홍수에 매장된 것처럼, 홍수 때에 홍수 속에 매장되는  것처럼 이 불덩어리가 될 때에 불 속에 다 소멸되고 말 터인데 소멸되지 아니할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소멸되지 아니할 것은 두 가지뿐입니다. 무엇? 거룩한 행실 경건 이 두  가지뿐입니다. 이렇게 녹아질 터이니까 너희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 되느냐?  거룩과 경건 준비해라 그거 말했어. 거룩은 사이비한 모든 잡것들이 다 한데  섞여 있는데, 거기에 참 온전하고 바르고 참된 것 하나만 있는데 그것을 잡아야  피난을 한다. 그걸 잡아야 구원을 얻는다 그말입니다. 거룩한 행실. 네가 마음의  활동이나 몸의 활동이나 네 전 움직임이 거룩을, 거룩을 마련 하는 네  움직임이어야 된다.

 잡것 가운데에 온전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곧 하나님 한 분의 당신의  뜻입니다. 당신의 뜻 당신이 인간에게 원하시는 뜻, 인간에게 명하시는 뜻,  인간에게 대해서 명령하시는 뜻, 요구하시는 뜻, 소원하시는 뜻, 기뻐하시는 뜻,  주의 온전하고,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 그것을 찾는 행위, 그것을  찾았으면 그것을 이루는 행위 이것이 거룩한 행실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불에 타서 멸망받을 터인데 준비는 둘밖에 없으니, 하나는  네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는 행위 외에는 하지 말아라, 찾는 행위, 하나님의  뜻을 찾았으면 그대로 행하는 행위, 네 모든 노력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노력이요 찾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노력 이것만 가지고 주의 재림을 준비해라,  주의 뜻이 각자에게 무엇입니까? 지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한 뜻은 자타의  구원 이루는 이것만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함 같이 너희가 사랑하는 이것이 전 계명이라'  이랬습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주님이 우리에게 한 일은 전부  구원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일은 구원하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일뿐이오. 자타의 구원에, 구원의 그 역사만이 당신의 뜻입니다.

 자기 구원 남의 구원 이것이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인데,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고 행하는 이것이 거룩한 행실이니 이것 하나 해야 되고,  농장에서든지, 공장에서든지, 직장에서든지, 학교에 공부를 해도 공부 그것 하는  게 아니라 자기는 공부하는 데에서 하나님이 자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에게  명령하시고 요구하시고 소원하시고 교훈하신 당신의 뜻이 있으니 공부하는  거기에서 당신의 뜻, 곧 자타의 구원이 되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것을  공부하는 데에서 찾고 행하는 것이,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짓는데에서 찾고  행하는 것처럼, 목회를 하는 사람이 목회하는 데에서 자타의 구원에 하나님의  뜻을 찾고 행하는 것처럼 다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장소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장소지 그 공부가 제 소망이 아니다 그 말이오! 세상에 모든 것 점령하는  것이 자기 할 일이 아니라 그 말이오! 사는 것이 자기 할 일이 아니라 그  말이오! 자타의 구원 이루는 하나님의 뜻을 이것을 이루는 여기에만 전력을  기울여 자기 할 일로 알아서 이것만 하면 하나님께서 부르면 준비 못해도 가야  되고 두면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 할 것이거늘  너희들이 허탄한 자랑을 한다.' 네가 무슨 생명의 권리가 있다고 '얼마동안은  내가 살겠다. 뭣 해 놓고 무엇을 하겠다.' 네 욕심대로 이것 저것 말하느냐?  '하나님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이것 저것 하리라 할 것이거늘' 네게  대한 하나님의 뜻, 자타의 구원인 하나님의 뜻 이것만 찾는 것이 네 전 생애가  되고 이것을 이루는 것만이 네 생애가 되는 이것이 거룩한 행실이라 이거 하나  하고,

 그 다음에는 경건. 유다서 7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하는 행위,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경건치 아니한  그 말로 하나님을 거슬려 한 그 모든 것을 정죄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다  그렇게 말씀해 왔습니다.

 경건은 우리를 구속하신 창조주이신, 주재이신 이분을 위해서 그 분을 위하는  유일의 정한 방법대로 한 그것이 경건입니다. 그분을 위한 방법이 이 계시  법칙대로 했다 할지라도 동기와 목적이 달라. 저를 위해서, 뭘 위해서 한 것은  다 불살라집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다고 해도 그분이 정한 그 방식에 틀려도  안 됩니다. 그분을 위한 그분의 방식대로 한 이것만 남겨 둡니다. 그 외에는 다  없어져 버립니다.

 이 두 가지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든지 자기의 생명이  끝나든지 하면 이 두 가지, 이 두 가지 종류 외에는 전부 다 불타 버릴 것이고  다 빼앗긴다는 것, 그러기에 이 두 가지 만 주력할 것. 거룩한 행실, 경건.

 그러기 때문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이 나타나기를 바라보고'  주님의 날에 소망을 두고 주님의 날에 사모를 두되 간절히 두라 그 말은 네 심신  신경이 다 거기에 기울어져라 그 말이오. 간절하라는 것은 남은 게 없이 자기의  심경과 모든 심정이 한꺼번에 집중되어 가지고 거기에서 집중될 때에 그것을  간절이라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모든 것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없어지고  영원히 있어질 것, 자기 개인의 죽음이 올 때에 모든 것이 없어지고 영원히 있을  것, 그날의 소망, 네가 돈에 소망도 두지 마라 공부만 제일이냐? 학교만 시키면  제일인 줄 알고, 신앙을 팔고 다노모시를 해 가지고 죄를 지어서라도 자식을  공부만 시키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이래 가지고 뭐 전부가 탄로가 나서 하지  말라 해도, 너는 돈에도 소망두지 말고, 지식에도 소망두지 말고, 권세에도  소망두지 말고, 가정에도 소망두지 말고, 네 목숨에도 소망두지 말고, 네  건강에도 소망두지 말고, 애정에도 소망두지 말고, 예술에도 소망두지 말고,  아무데도 소망두지 말고 그날에 소망두라, 그날에! 그날을 바라봐라 그날에  소망두라!  아! 그날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예수님의 재림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내 죽음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이런데 이날이 오면 모든 것이 다 불살라질 것은 다  불살라지고, 노아 홍수 때와 같이. 영존할 것은 영존하니 네가 그날에 소망을  두고 살아라! 그날에 없어지지 않을 것을 소망두고 살아라! 그날에 없어질 것은  없어질 것으로 알고 그만한 가치인 줄 알고 그것을 평가해서 네가 거기에 대해서  상대해 살아라!  네가 사모하는 것은 인간이나 물질이나 명예나 영광이나 권세나 그런 것 사모해  봤자 너 멸망뿐이다. 그날만 사모해라! 아! 그날 모든 것이 불에 타서 다  없어진다. 그날에 거룩과 경건만 남아 있다! 그날을 사모하고 그날을 소망해라!  여기에 네 심경을 다 기울여서 간절히 소망하고 간절히 사모하라!  우리는 이 모든 것이 불덩어리가 되나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터인데,  바라보지만 가진 것 다 빼앗겼으니까 거지로 살아야지. 하늘나라 거지로  살아야지! 세상은 다 점령해도 아무것도 안 가지고 갔으니까 하늘나라 거지로  살아야지. 하늘나라에는 거지가 없는 줄 압니까? 불 가운데에 구원얻은 것과  같이 수치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천국에 작은 자가 있고 큰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영광이 있고 수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어리석게, 어리석게 도매금으로  이렇게 도박신앙을 가르치면 안 됩니다. 노름하는 도박신앙.

 '하늘과 땅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모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인간들의  한 생애가 전부 다 행동과 드러나게 될 터인데 이날이 언제인지 모르는  너희들로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행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행실 그 외에는 장사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 찾기  위해서 장사하고, 목회하는 데도 양떼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대로 하나 하나 한 것이 자기 성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 하기 위해서,  거룩한 생애, 진리대로 영감대로 되어도 도적이 제가 될 수 있어. 저 위해서 할  수 있어. 소용없어. 무슨 상관있습니까? 당신 위한 당신 법칙대로의 생애된  그것만이 남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타지고, 그날에 모든 것이 불타지고 이 두 가지만 영원히 남는  그날이 오늘인지 내일인지 모르니 너희들은 이날에 소망을 두라. 이날에 소망을  둬라 이날에 불탈 것 알고 이날에 염려 될 것 알아 이날에 소망 둬라. 이날의  것만 사모해서 이것을 이루는 장소로 이것 저것 할 것이지 이것을 뒤로 두고,  오늘이라도 네 죽으면 그만인데 미혹을 받아 가지고 거기에 끌리고 이 중대한  이것을 등한히 하는 이런 미혹에서 벗어나라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암만 젊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깨소금이 흐르는 가정이라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미인 미남이라도 소용없습니다. 천하를 울리는 예술가도  소용없습니다. 천하를 호령치는 권세도 소용없어. 그 사람이 죽으면 그걸로  끝장나. 하나님께로 다 달아나요.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다 끝장납니다. 그날을  바라보면서 그날에 어찌될 것, 그날을 바라보면서 없어질 것을 없어지지 않도록  준비하고 없어지지 않을 것을 준비해야지 지금 소망은 소용없습니다.

 그날의 것을 소망하십시오. 불을 꺼주십시오, 신관 구관에. 그리고 가방은, 저  먼저 새 신랑, 결혼식하는 새 신랑 가방을 다 도둑맞았어. 뭐 도둑이 꽉  찼습니다. 교회 다니면서 잘 믿는다 하는 자가 도적이오.

 이러니까 단단히 단속해 가지고 기도하도록, 충분히 기도하고 가요. 이 시간에  간절히 기도하고,

 어리석지 맙시다. 오늘이라도 죽음이 오면 가슴을 치고 후회하지 말고, '아,  죽음이 오니 좋다. 참 죽음이 오고 보니까 내가 산 것이 잘 살았다.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시고 보니 우리의 생애가 잘 살아졌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이라도 죽음이 오면, 예수님의 재림이 오면 불탈 것 없어질 것 그런 걸  가지고 부러워하지도 말고 자랑하지도 말고 그것 때문에 욕망하고 노력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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