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23 12:14
결말
1981. 11. 1. 주전
본문 : 야고보서 5장 7절 - 1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박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우리는 믿는 사람들의 수고와 인내를 겸해야 합니다. 수고도 하고 또 오래 참아야 합니다. 인생 성공이라는 이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유에 농부가 아름다운 그 추수 열매를 바라고 그 곡식을 얻기까지는 거기에 들어야 될 노고가 다 들어야 되고 또 걸러야 할 시간이 다 걸려야 하고 그러기 때문에 수고하는 것과 참는 그 일이 있어야 농부가 좋은 추수를 할 수가 있지 그거 없으면 추수를 못한다 이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떤 종류의 구원이든지 하나님이 정해주신 그대로의 각자의 구원의 양도 문제도 종류도 다르지마는 각각 자기에게 하나님이 정해 주신 그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데에는 수고와 오래 참는 이 두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농부들도 비오는 것 바람부는 것 추운 것 더운 것 이런것을 모두다 무릅쓰고 노력해야 성공을 얻지 그것을 피하면 성공을 못 합니다. 농사 짓는 자기에게는 그것이 괴로운 일이지마는 자기가 농사짓는 그 작물에는 없어서는 안될 그 필요한 것들인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이 별별 생각못할 그런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때에 왜 내게 이런 일이 닥쳤는가? 또 누구 누구를 통해서 이런 일이 닥치게 됐다. 그렇게 조브라운 생각을 가지고 원망하고 불평하면 망합니다. 하나님 앞에 반드시 그 토막 생활을 정죄를 받아야 되는 그런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갖 상상못할 굴곡과 애로 파란 고락 이런 일들은 조브라운 우리가 볼때에는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많아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을 다 희생해주신 전지 전능하신 이 하나님으로서는 없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그것을 베푸신 것입니다.
농부가 시원하고 따뜻하고 일하기 좋을 때에 그런 기후만 오면 좋겠는데 시원하기를 원할 때에 찬바람이 불고 자기 몸에 거슬리지마는 그것이 자기가 짓는 그 농사에는 농작물에는 없어서는 안될 그런 일들이기 때문에 그런것이 닥쳐오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공으로 해 가지고서 그런 자연을 거슬려서 하는 일들이 있지마는 실은 그것은 속에 가치가 없습니다. 영양이 없습니다. 모든 식물은 이 자연적으로 자랄 그 자기 시기에 먹는 것이 그 사람에게 유익하지 시기를 거슬려서 이런 모든 조화로 만든것 그런것은 하우스 속에서 나온 그것은 다같은 식물이라도 영양이 아주 없습니다. 뭐 거의 없다고 할만침 그만큼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것이 농사짓는데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신앙 생활 해가는 데에 어떨 때는 원치 안하는 가난이 오기도 하고 불경기가 오기도 하고 또 갑자기 횡재가 닥쳐서 돈이 많아져서 그만 우쭐해 가지고 또 망하기도 하고 억울함도 오고 아무 내용이 없는데 다른 사람이 공연히 자기를 칭찬해서 추켜 올리는 일도 있고 뭐 별별 갖다가 순조롭지 않는 그런 환경들이 우리에게 몰아오는 그것입니다. 이것이 없을 수 없는 필연한 일입니다.
일인데 이것을 한말로 말해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될 것이기 때문에 구원 농사를 짓고 있는 구원을 이루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런 것을 주셨으니 필요해 주셨으니, 여기에서 어떤 그 유익을 얻겠느냐 하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도 좋지마는 무조건 어떤 것이 와도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며 섬기며 하나님이 주신 그 법칙대로 사는 이것만 요동치 안하고 나가면 그것이 무슨 유익을 위해서, 무엇을 연단하기 위해서, 무엇을 제거하기 위해서 왔든지 간에 그것이 목적 달성을 하고 내 구원에 유익이 되는 그런 결과를 맺고야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래 말씀하시기를 10절에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보라 그들이 어떤 고난을 격었으며 어떻게 참았는가 그들을 본 받아라." 그 당시에는 다 좋지 안한 것같았지마는 지나간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선배들을 우리가 뒤로 돌아보고서 생각할 때에 그일들로 인해서 모든 그들이 원망하지 않고 그저 참고 고생을 무릎쓰고 나간 거기에서 큰 성과들을 얻었고, 다 모르던 것을 깨닫았고, 없는 것을 가졌고, 잊어버린 것을 도로 찾고 그 모든 성공들이 그런 애로와 인내 거기에서 나왔다는 것을 우리가 확실히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지 않고 그걸 견디지 못하고 거기에서 좋은 결과를 바라면서 노고와 인내를 갖추지 못하고 그때 그때 제 기분대로 제 욕심대로 제 감정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한 그 사람들은 참 불신자라도 비참하고 신자라도 비참하고 그 비참한 결과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만나니까 그 불쌍한 사람이 지나갑니다. 지나가니까 저 사람은 왜 저렇지요? 이러니까 그거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한 그 값이 아니야 그렇게 말해. 그것이 그 사람이 날때부터 병신인데 자기가 아니면 자기 선조가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한 그 값이다. 인간이 자기하고 저한 그대로 한 그 값이다.
그 사람은 볼품이 없고 불쌍한데 경제면 하나는 그 사람이 그 형편이 괜찮습니다. 그거는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그 사람이 그 면에 대해서는 저하고 싶은대로 하지 아니하고, 지금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는 그것을 소망하고, 거기에 준해서 고생하고, 참고, 견뎠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말해주는 말을 들었습니다.
듣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전체가 그렇소. 안 그런 것이 하나도 없소.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아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그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이러니까 시작이 좋은것도 좋지마는 결말이 좋아야 되지, 결말이 끝까지 가는 것인데 결말 나쁘면 암만 시작 좋은들 뭐하며 중간이 좋은들 뭐 하느냐? 결말이 비참하면 비참한 것이지 범사의 살때에 결말을 보고 살아라. 이러면 결말이 좋겠나 하찮겠나? 그 결말을 생각하면서 하라.
그 결말을 목표로 두고 나아가는 데에는 반드시 애로가 있고 계속하기 어려운 그런 토막이 있지 없는 일이 없으니, 성공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성공이 그 결말을 향하여 가는 데에 없을 수 없는 필요한 두 가지는 노고와 인내다.
고생하는 그거와 참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있으면 제가 소망하는 그 좋은 결말을 볼 수 있고 아무리 결말을 원해도 이 두 가지를 가지지 못하면 좋은 결말을 보지를 못한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것이니라.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되시고 또 사람으로 부활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고 모든 부요를 우리 좋도록 하기 위해서 내 놓으신 이 하나님이신데, 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 이 하나님은 사기꾼 같은 그런자가 아닙니다. 이중 십중 거짓뿌리의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거짓이 없고 변동이 없습니다. 영원 일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데는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을 우리가 연구해서 그 사랑을 확신을 가져야 되고 또 그분이 앞으로도 우리에게 대해서는 영원히 긍휼히 여기실 자시며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언제든지 나는 여호와라. 나는 여호와라 말씀하신 것을 한 번 신구약이 계약에 선포해논 이대로 실행하는 하나님이라. 실행하는 하나님이라 하시는 것을 많이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선포해논 신구약이 계약에 호리도 획 하나도 가감이 없이 천지는 변해도 이 선포한 약속의 신구약 성경 말씀에는 호리도 변동이 없는 것을 몇번이든지 말을 했습니다. 이 계약에 변치 않는 절대적인 신실한 하나님이신 것과 또 우리를 자비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당신같이 온전하고 영광된 자로 만드시기로 책임을 지신 주가 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라! 말은 책임졌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모든 신앙 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주님을 그 신성의 완전성과, 불변성, 영원성을, 전능성을, 전지성을,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는 그 사랑성을 믿고 그분이 신구약 성경에 말씀해논 것은 우리와 계약한 계약서요. 또 우리에게 교훈한 교훈이요. 우리가 모르는 미래것을 미리 알려준 모든 예고요.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런 것들이니 이대로 우리가 믿고 순종을 한다고 하지만은 우리도 모르게 우리 속에는 잡탱이가 많이 있습니다. 나는 믿는 줄 알았는데 안 믿는 것이 있었고, 나는 주를 위함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돈을 위했고, 주의 능력을 절대 믿는 줄 알았는데 주의 능력이면 문제없는 해결될 일이라도 우리에게 봉착되니까 당황하고 두려워서 주의 능력 믿었다는 것이 아주 거짓뿌리 같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을 수 있도록 이렇게 이런 현실 저런 현실을 우리에게 당신이 큰 힘 드려서 만들어 가지고 우리는 이해 못 하지마는 그런 현실을 만들어 우리에게 이런 잘못을 수정하고, 저런 못된 그 폐단될 병을 제거하고, 모든 잡것을 제거하고 참 하나님의 그 신성과 그의 선포한 말씀과 그분이 약속한 이 계약을 의심 없이 거기에 조금도 가짜가 없이 참되게 믿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믿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어떤 일이 와도 그것이 다 주님이 날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시는 일이요 그것이 나를 사랑해서 하시는 일이요 또 그것이 일시 일시 우리에게 좋도록 하기 위해 가지고 그렇게 처리한 것 아닙니다. 벌써 전지자로서 영원전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정해논 그대로 차각 차각 이루어 나가는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인 그 순서입니다.
또 우리 보기에는 우리에게 뭐 하려고 이북에서 자꾸 탄합하는 이런 김일성이의 이 악독이 자꾸 조장되고 있는가? 그것도 우리 구원을 위해서 벌써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에 그때에 그것을 다 창조하셨는데 그 창조 것이 다시 재 창조, 창조된 것이 요것으로 변하고 조것으로 변하고 나와 가지고 그 창조 그것 때문에 우리 구원 때문에 창조된 것이 주님이 우리 구원에 대해서 예정하신 그 순서대로 자꾸 변해져 변해 나와 가지고 지금 돼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있는 모든 존재가 우리 구원을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이요.
움직이는 모든 우리 마음 안에 몸밖에 모든 데서 움직이는 그것이 다 우리 구원을 위하여 작정된 순서요. 없어서는 안될 그런 움직임이니 이 사실을 우리가 확실히 믿어야 됩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이 구원이 얼마나 그 넓이가 넓으며, 깊으며, 높으며, 길며 무한한걸 다 측량 못하지마는 우리는 이 광대하신 구원성을 살아가면서 하나씩 둘씩 경험하고 체험해서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 뭐인지 모르는데, 아 확실을 가지고 보니까 이것도 주님이 우리 구원 위해서 예정했구나! 우리 구원 위해서 이것도 존재케 했구나! 하는 것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감사하며 나가지 이 믿음이 없는 사람은 모두가 다 돌발이요 돌격이요 이상하고 기이해서 공포와, 비겁에, 불안에, 당황, 경거망동, 과오, 후회할 심판 받을 것 이런 것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그분을 우리가 믿고 그분의 약속과 그분의 그 신성의 절대성과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역사하시는 이것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평강이요 행복이요 생명인 것입니다. 또 능력인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구원에 유익되도록 조성하시고 섭리하시는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안하고 그 효력을 다했습니다.
이러니까 그가 옥토에 뿌린씨와 같이 얼마든지 무성하게 그의 인품도 인질도 지능도 그의 욕망도 그의 행위도 존영하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새겨서 알아야 되지마는 좀 둔한 우리들은 두 가지만 깨닫고 굳게 잡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니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 나아가는 데에는 우리가 어떻게 가야 되겠느냐? 가는데 있어서 두 가지 하나는 뭐이냐? 우리가 주님이 우리에게 좋은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이 인도를 따라 나가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법칙대로 살아나가면 어떨 때는 이 법칙을 지키는 것이 쉽습니다. 이 법칙대로 지키는 게 쉽소.
이 성경 말씀대로 자기가 마음도 이 말씀대로 생각도 이 말씀대로 소원도 이 성경대로의 소원만 하고 욕심도 이 성경대로의 소원만 가지고 모든 언행심사의 전 사업이나 행동을 이 말씀대로 하려고 하면 쉽게 잘 됩니다. 쉽게 잘 되지마는 언제는 쉽게 이 말씀대로 살게 됐는데 어떨때는 이 말씀대로 살기가 심히 어렵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거는 왜 그러냐? 말씀이 변했습니까 우리가 변했습니까? 환경을 주님이 변해버립니다. 환경을 변하니까 내나 내가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지마는 아주 살기에 어려움을 당하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웃으면서 놀면서 쉬면서 지킨 일인데 생명 안 내놓으면 안 되는 그런 어려움에 봉착되도록 고렇게 하나님이 만드십니다.
우리가 주일 지키는 것이야 뭐 어떤 사람에게 어렵지마는 우리가 주일 지킨다는 것은 그저 주일날 일 쉬고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 와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고 그날 일 안하고 쉬고 쉽지 않습니까? 그러나 가다가 하나님께서 주일 지키는 것이 자기의 생명을 내놓지 안하면 지킬 수 없는 그런 때가 옵니다.
6.25 때도 이놈들 아 예수 안 믿는다 하니까 예수 믿는 놈이 어떤 놈인지 설마 주일날 그놈들이 예수 믿으러 오겠지 하고 주일날 예배당에 딱 총들고 딱 요래 가지고 인민군들이 가 가지고 바라고 있으니까 그날 예배 보려면 생명 내놔야 된다 말이오. 주일 지키기가 그렇게 쉬웠지마는 아 그때는 지키기가 힘듭니다.
그래 주일 지키는 그 계명이 쉽지마는 하나님께서 환경을 고렇게 어렵게 환경을 쉽도록 만들면 계명지키기가 쉽고 환경을 계명지키기가 어렵게 만들면 어렵고 하나님께서 그 계명지키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주시다가 어려운 환경을 만들어서 (○○○ 이거 모르면 안돼 암만 믿어도 소용없어. 알아야 되지) 다같은 계명이라도 고 계명을 지키기가 쉽다가 아주 지키기 어려운 때가 옵니다. 어렵게 하는 때가 와 이것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치 아이벤 여인이 아이가 차차차차 크면 받드시 해산 고통의 날이 오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일을 지키면 주일 지킨 고 주일 공력이 성공이 되고, 주일 지킨 고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이제 받는 그 구원이 있고, 주일 지킨 고것으로 말미암아 그 승리되는 승리가 있고, 요것이 오려고 하면은 그 밴 아이가 해산 고통과 고통과 같은 그 고통이 오는데 주일 지키려고 하면 자기를 부인해야 되고, 목숨도 부인해야 되고, 모든 인간 말도 부인해야 되고 모든 것 다 버리야 주일을 지킬 수 있는 고 현실을 딱 만들어 주시는 고것이 뭐이냐? 이제까지 내가 주일을 지켜도 마음을 흩어서 찌끄러기 가지고 주일을 지켜서 나오기도 하고 반만 드려서 지켜 나오기도 했지마는, 요것이 마지막에 모돌띠기로서 네가 모든 것을 다해서 주일 지키지 안하면 안되는 고 대목에 딱 오게 된 것은 내가 주일 지키는 연습을 했고, 인식을 했고, 해야 되는 줄 알고 요만큼 아이밴 것처럼 내 속에 생명에 그 역사가 성장이 됐으니까 이제는 마지막으로 주일 지키는 것은 자기의 무엇 때문에 지키는 것이 아니고 주님 때문에 지킨다.
또 주의 내게 주신 날 구원하신 주님의 법도를 내 법칙으로 주셨기 때문에 주님을 생각하고, 이 법칙은 내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지킨다 하면 고 성공이 마지막에 고 어려울 때에 모든 것 다하지 안하면 주일 지킬 수 없는 고런 현실에 딱 주는 고 현실로 인해서 고때에 자기는 다해서 주일을 지켜 주일 지키는 이 법칙은 자기보다 이 하나님의 뜻은 자기보다 크고 또 하나님은 자기보다 크고 한 이것을 거기에서 확정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해주신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반드시 이 계명을 지켜 나가면 밤중같은 그 어려움이 옵니다.
해산 고통과 같은 그런 고통이 옵니다. 그럴 때에 우리가 당황하면 안되고 요동하면 안 됩니다. 그럴때에 주님이 나에게 계명지키라고 하신 것은 나를 좋게하기 위해서, 복되게 하기 위해서, 평안하게 하기 위해서, 쾌락하기 위해서, 욕망되도록 하기 위해서 이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 계명을 지켜 나가니 그것은 오지 안하고 도리어 환란 고통 불안 절단 이것이 옵니다.
이것이 올때에 거기에서 하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그것도 확실히 결정이 되어지고 또 네가 하나님 위주로 하나님의 법칙으로 사느냐 네 생각으로 사느냐? 하나님 법칙으로 사느냐 자율로 사느냐? 하나님의 법칙에 순종으로 사느냐 너 위주로 사느냐? 하나님을 위주로 사느냐? 그것이 보다 어느 것이냐? 어느 것이 위주냐? 어느 법칙이냐? 하는 것이 판정나는 때입니다.
판정나는 때이니 그때에 자기가 이제까지 주의 계명을 지켜 나오다가 그럴때 되니까 아이구 이제까지는 왔지마는 여기에서는 이제 하나님 생각 하려하면 내가 절단나고 나 생각하려하면 하나님 절단나니까 여기에서 야 안 되겠다. 나도 있고 하나님도 있는 데는 줄줄 따라나왔지마는 나를 절단 내고 하나님 딸지 못하겠다.
거기 있어야 자기 위해 좋를 때는 자기에게 와 버리고 하나님께 드릴 때는 하나님께 귀속되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법칙대로 따를 때는 하나님 법칙대로 따르고 여기에서 자기 생각 자기 판단 자율을 따라갈 때는 자율 따라가고, 고게서 판정이 나는 것입니다. 이럴때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신실을 하나님의 자비를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는 이것을 믿고 안 믿는 것이 여기에서 들어납니다.
자기가 믿는 믿음이 모자랐으면 그때는 실패할 것이고 몇 번 실패하면은 그 다음에는 실패하지 안하고 성공하게 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실패하지 안하고 단번에 척척 이겨 나가는 사람 있고, 일생동안 실패하고 후회하고 실패하고 후회하고 죽는날까지 실패 후회로만 이제 끝을 마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번 실패하고 다시 실패하지 않는 사람, 열 번 실패하고 다시 실패하지 않는 사람, 두 번 실패하고 다시 실패하지 않는 사람, 한번도 실패하지 안하고 척척 걸어가는 사람 이것이 하늘나라의 실력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어려움이 있을 때에 반드시 고 어려움이라는 고 어려움하고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영광의 구원하고 한테 붙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한테 붙었소. 이 어려움이 오니까 사람들은 어려움만 보고 주를 위한 어려움이 오니까 주를 위한 어려움이 오니까 어려움만 보고 그 어려움과 함께 어려움이 싫어서 어려움과 주님과 진리를 한몫 내 던지버렸드니마는 자기가 일생 동안 노력해서 기다리고 바라던 보배가 함께 던져저버렸습니다. 함께 버려져 버렸소.
요걸 단단히 여러분들 마음속에 단단히 간직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소망하면서 그 소망하면서 그걸 위해서 노력하는 이 모든 신앙 생활을 해 나가면 내가 이제까지의 소망하는 그 소망 그것과 그것만 하면 거짓뿌리도 욕심쟁이들이 더 날뛰지요. 주님 안 믿는 자들이 거짓뿌리자들이 더 날뛰지요. 하나님은 속지 안해.
속지 안하기 때문에 소원하는 그 보배로운 성공, 보배로운 승리, 보배로운 영감, 보배로운 의, 보배로운 빛, 아름다운 성자 성녀 선지자, 모든 영광, 존귀 덕 이런것이 다 우리가 원하는 것인데 이것을 위해서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의 법을 지켜 나가는데 지켜나가면 반드시 주님이 주실 때에는 그것만 썩 내밀어지지 안하고 거기다가 끼으셨습니다. 고난이라는 것이 끼어줍니다.
고난인 것을 끼어주니까 하나님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실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이 자기를 자비히 여기는 자기를 책임지신 이것을 믿지 못하면 이제까지 바라고 좋은 것 바라고 왔는데 좋은 것은 닥치지 안하고 환란과 고통과 절단이 턱 닥치니까 아이구 이분을 내가 공연히 믿었구나! 공연히 바랬구나! 그때에 믿었던 것이 바싹 깨져버립니다.
그거는 믿는 게 아니요. 왜 자기 주관에 따라서 아마 그럴듯 하니까 믿어진다.
자기 눈에 아이구 이분 믿을 수 없는 분이구나! 할 때에 버렸다 그말이요.
그것이 결국은 자기 주관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게는 얻지 못하도록 했소.
그럴때에 주님의 진실됨과 주님의 사랑과 주님의 불변성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하신 것, 모든 것을 주님이 우리 구원 위해서 창조하신 것, 우리 구원 위해서 모든 것 예정하신 것, 요것을 하나님의 신성과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지시고 구원하신 요 사실과 이 구원 위해서 모든 걸 창조하신 것과 모든 움직이는 그 모든 순서들이 이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것 요 사실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자체가 어떤 인격자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책임진 이것을 믿고, 모든 존재가 이를 위해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고, 모든 움직이는 순서가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이 사실을 믿고, 요 넷을 꽉 믿고 그 다음에는 내가 소망하는 것이 반드시 올터인데 올 때에는 나를 시험하는 네가 믿나 안 믿나? 나를 시험하는 시험 문제가 먼저 나오고 시험 문제 넘어 시험에 합격 된 자에게 오는 이것이 있는 것이니 왜 시험 문제 요것을 통과하는 게 문제다 이래서 제가 좋은 학교 들어가려면 시험쳐야 되니까 시험치려면 반드시 그 시험 치르면 들어갈 수 있는 벌써 시험 자격을 받았으니까 좋지 않습니까 합격되면 들어가지 낙제되면 못 들어가지 그러니까 아 그렇지 않소.
어떤 좋은 위치를 차지하려고 하는데 그 시험이 턱 있으니까 '나는 좋은 자리 바랬더니마는 좋은 자리는 안오고 머리 아픈, 골치 아픈 시험만 왔네.' (○○ 눈떠.) '좋은 위치를 소망했는데 좋은 위치는 안오고 골치 아픈 시험 문제만 내거네.' '야 천치야 시험 문제 그것을 통과해야 그 다음에 오지 시험 문제를 널 시험을 많은 사람이 너한테 시험 문제를 내 주는 것은 벌써 네가 받은 그 좋은 위치를 너에게 주려고 너를 시험하는 것이니 합격만하면 되지 않느냐?' '그 시험문제 나오는 것이 무슨 이상한 일이냐?' 그말이오.
이러기에 시험을 받고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험에 끊어지지 안하고 시험에서 자기 계명지키는 것이 계속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왜 이것에 대해서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불 시험을 당할 때에 이상한 일 당한 것으로 여기지 말아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제사장 선지자 왕의 성공을 하기 위해서 이 고난을 통해서 이 세 가지 삼직이 성공이 됐는데, 너희들도 지금 주와 진리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이것은 그리스도가 이 삼직을 성공하기 위한 애로와 같이 너희들도 이 세 가지 성공을 하기 위한 애로기 때문에 이 애로가 없으면 너희에게는 이 세 가지 성공이 없다.
이 성공을 위해서 오는 애로이니까 이 애로를 네가 통과하면 계명지키는 것을 중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 나와 함께 한다는 걸 믿고, 하나님이 이것을 나에게 좋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서 힘들여서 힘들여 만들어 가지고 환경을 주신 것을 네가 믿고 요대로 참고 견뎌서 계명지키는 것을 계속하면 네가 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승리하고서 아버지 우편에 앉은 거와 같이 앉게 된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내게 대해서 어떻게 하신 분이신 것을 평소에 많이 연구해서 아무리 환란 중에서라도 하나님께 대해서 행하는 의심이나, 하나님이 모든 걸 주권하고 계시는데 대해서 의심이나, 하나님이 내 구원 위해서 만들어논 모든 것 만들어논 독침을 가지고 찌른다는 고것도 하나님이 나 위해서 만들어논 것인데 고 순서도 나 위해서 만들어논 예정 순서라는 요걸 믿어야 됩니다.
믿고 여기에서 믿음으로 통과하면 요 뒤에는 반드시 좋은 것이 연결되어 있다 껍데기는 보니까 사망인데 잡고 보니까 생명입니다. 껍데기는 보니까 실패인데 잡고 보니까 성공입니다. 껍데기는 보니까 빼앗기는 것인데 잡고 보니까 다 취했습니다. 껍데기는 보니 지는 것인데 잡고 보니까 승리가 되버렸습니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자만 바라보는 자만 의지하는 자만 그의 약속을 신실하다고 인정하고 따른 자만 얻도록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믿음 없는 자는 하나도 얻지 못합니다. 믿는 자만 주시기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믿어 나갈 때에 길이 참아라. 어데까지 참을 것인가 어데까지 계명을 지킬 것인가? 성공에 "너희들이 내 계명지키면 내 사랑안에 있다" 했습니다.
이래서 주님이 시간과 공간과 종류의 제한을 받지 안하는 모든 것을 초월한이요 영원을 쾌락이 주님 안에 충만했습니다. 십자가상에서도 기뻐 못 견뎠습니다. 이 모든 피조물들에게 추호의 제한도 받지 않는 이 기쁨이 우리가 계명을 지키면 우리에게 생겨진다 했습니다.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있게 되고 내 사랑 안에 있게 되면 내가 가진 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서 충만케 된다"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목표입니다.
우리가 계명지켜 나가다가 어려움이 오면 어려움이 오면 내가 목표 지키는 것 내가 계명지키는 목표요 욕망이요. 어떤 게 와도 어려움이 오면 내가 어려움 이것 바라고 계명 지키는 것 아니라 죽음이 오면 죽음 이거 바라고 내가 계명 지키는 것 아니라, 오든지 말든지 내가 계명 지키는 것은 주의 기쁨이 내 속에서 충만케 하는 이것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반드시 있는 것이니까.
그것만 얻기 위해서 그걸 만들기 위해서 내 속에 주의 기쁨 같은 기쁨이 내속에 충만해지는 이것이 이루어지는 이것만 목표하고 무엇이 와도 죽음이 오든지, 가난이 오든지, 어떤 게 오든지 저는 저 할일 하도록 하고 나는 요것만을 목표하고서 달릴 때에 반드시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고난 당하는 것이 해산 임신된 여인에게 해산 고통과 같다 해산 고통 당했지마는 그 고통 넘어 새 사람이 나왔기 때문에 나중에 새 사람 나오고 난 다음에는 고통이 물러간다. 우리 고통이 꼭 요와 같다 했소. 주의 계명 지킴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어려운 고통이 올때에 그 고통에서 고통에서 기절해 버리면 헛일입니다.
그 고통에서 죽어버리면 헛일이라. 고통에서 죽지 안하고 계속하면 반드시 새사람 나옴을 인해서 고통보다도 기쁨이 더 충만하기 때문에 고통은 물러가고 기쁨이 충만하게 된다. 새사람 배속에서 꼬불거리지 그까짓게 바깥으로 우주까지 나갈 수 있습니까? 우리 마음으로 우리 속으로 '내가 이 사람 됐으면 좋겠다 저 사람 됐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 되면 좋겠다.' 우리 우리 속에 자기가 상상하는 자기, 소원하는 자기, '이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희망하는 자기, '내가 어디서든지 그 결백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모세같이 겸손한자 됐으면 좋겠다 요셉이 같은 그런 결백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바울같은 그런 신앙의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우리 속에 자기가 상상하는 그자, 동정하는 자, 희망하는 자 이것이 요 환란을 통해서 그 사람으로 뱃속에서 확 나오는 것처럼 고 사람이 이제는 자타가 볼 수 있게 이 세상에서 활동할 수 있는 그 사람으로 나오게 하는 그것이 해산 수고입니다.
여러분들 그리기에 이 해산의 고통인 이 고통이 따로 있는데 계명을 지킴으로 해산 고통되는 고통도 있고 주님의 사랑 속에 들어가는 해산 고통 이 고통을 탁 지나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이 자기 속에 상상적인 자기가 실상의 자기가 되 가지고 활동을 합니다.
'모든 사람 앞에 이렇게 권위있는 사람 됐으면 좋겠다.' 하는 그 상상이 이 아이가 나오는 해산 고통이라는 이 고통을 통해서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신임을 합니다. 신임할 수 있는 이 사람으로 판정을 하게 됩니다.
6.25해방이 되기 전에는 주남선 목사님도 거기에 있는 장로들이 나한테 말하기를 나는 또 그때 집사인데 백 집사님 '아 나는 주남선 목사님이 저렇게 지금 감옥에 들어서 가족도 돌보지 안하고 이러니까 자기 구원만 생각해서 가족의 그 모든 양떼도 돌보지 안 하니까 이기 중에 이기주의자라고 나는 저 주남선 목사님은 아주 나는 반대고 아주 몹쓸 흉악한 사람으로 봅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해.
내가 거기에서 너무 그 울분해서 마루장을 두드리며 고함을 지르면서 하나님의 심판도 두렵지 않느냐? 장로 입에서 무슨 말이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요.
이랬는데 신사참배에 고통을 치르고 해방되니까 하 주남선 목사님이 그렇게 천하고 약하던 사람이 한국에서 막 이래 됐습니다. 권위있는 사람으로 여기졌소.
제가 웅양교회가니까 거창서 그때 그 처음에 건국할 때에 국회의원을 선거하려고 모두 그럴때인데 처음 수입할 때인데 어데서 차를 몰고 모두 출마했던 사람들이 막 올라왔어. 출마했던 사람이 막 올라와 가지고 찾기를 주남선 목사님이 우리 거창에 출마를 해 주시면 우리는 다 응원하고서 우리는 다 이제 기각합니다.
어쩌든지 목사님이 해 주시면 나도 안 하겠어. 나도 출마 안 하겠어. 나도 출마 안 하겠어. 전부 취소하고 다 이렇게 해달라 해요.
이러니까 집사들이 이제는 세상에도 간판좀 내야 된다고서 이렇게 하고 이러니까 주남선 목사님이 '내 나라는 그 나라가 내 나라 아니라. 진리의 나라가 내 나라라. 내 나라 건설하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셨는데 나는 그 나라는 내가 세우는 나라가 아니고 우리 나라에 모두다 정객들이 그 수고해 세운 나라니까 거는 나는 거기에는 출세할 수 없다. 주님이 기름부어서 약속했기 때문에 나는 못 간다.' 딱 거절하니까.
그 사람들 속으로 좋다고 이분이 아니면 나도 한번 경쟁할만하다 그래 가지고 나갑디다. 그게 뭐이냐? 그 신사참배의 환란이 있기 전에는 주남선 목사님이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말을 인정해 달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코똥뀟소. 어 아무것도 아니면서 그싸노. 이랬지마는 신사참배 그 환란에 그 사람이 나와 버렸다 말이오. 생산했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 다음에 이 전국적으로 그를 인정했습니다. 우리 속에 원하는 그 상상적인 공경적인 욕망적인 '나는 어떤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그것이 그 사람이 되면 좋겠느냐? 그 사람으로 이제 하나님과 인간 앞에 나와 가지고 그 사람이 되어서 살고 싶으냐? 살고 싶습니다.
그러면 해산의 고통을 해야지 하고서 계명지키는 해산 고통이 오면은 그만 뒤로 물러가 버리면 헛일이요. 고럴때에 반드시 아이가 나올 그런 신실한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계명을 지켜서 고 환란만 통과하면 새사람이 나옵니다. 이 새사람이 나오면 환란당한 그 환란은 그것은 다 잊어버리고 새사람이 남을 인해서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안에 들어가는 입문에 있는 환란이 있고, 주님을 신랑으로 맞이하는 밤중에 환란이 있고, 자기 속에 상상의 새사람이 이제는 활발스럽게 자타가 인정할 수 있는 실상의 사람이 되어 탄생할 수 있는 탄생시키는 환란이 있고, 또 사자 입을 막는 그런 환란이 있고,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환란 넘어는 자기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기쁨의 사람 이제 어데서든지 기쁠 수 있는 십자가 앞에서도 기쁘고, 사형 앞에서도 기쁘고, 수중에 떼갈 수 없는 이 기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기쁨을 맞이하는 이 환란도 있고 있는 것이니까 환란을 피하면 그 환란을 통해서 이루어질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소망하는 이것이 우리에게 닥치기 까지 노력해야 됩니다. 농부가 추수해서 곡식이 자기 손에 들어오기까지 농부의 노력을 해야되지 중간에 하다가서 말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비와도 바람 불어도 농사지으면 반드시 추수가 있다. 요걸 확신하고서 하는 것처럼 우리가 나가는 신앙에는 반드시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는 요게 있다. 나는 요게 높으다. 세계 모든 민족위에 뛰어나는 요것이 반드시 있으니 내 추수를 하기 위해서 나는 하겠다. 배가 자물어지기까지 잡혔으니 나는 요게 되기까지 하겠다.
아 병에서 기름이 나오고 자루에서 가루가 나와서 삼 년 육 개월 농사짓지 안해도 고게서 툭 털어먹고 나면 나오고 나오고 하는 이런 하나님의 기적이 나왔으니, 병에서 자루에서 가루가 나오기까지 일용할 양식 나오기까지 나는 계명지켜 보겠다. 이 계명 지킴으로 모든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으로 약속하신 것이 다 내게 이루어지기까지 나는 요걸 목표로 하고서 계명을 지키겠다 해서 이 계명 지키는 것은 전능의 능력이요 전지의 지혜이기 때문에 이 계명지키는 것은 반드시 그 계명 지키는 그 어려움을 통해야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통하지 안하면 성공이 안 됩니다. 요거 좀 여러분들 아는 사람은 세상에 좀 자기가 실지로 안 믿는 사람대로 살아본 사람은 알 수 있는 것인데 학을 성공을 하든지, 물질의 성공 사업에 성공을 하든지, 성공을 하려고 하면 거기에는 애로가 있습니다. 애로가 와 있느냐? 애로가 있는 것은 자기라는 사람과 그 사업과 둘이 한덩어리가 되는 한덩어리가 되는 이것은 불독안과 같은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 어려움을 통해서 이제는 사업이 자기 몸에 뱃고 자기가 사업에 뱃습니다.
사업과 자기는 하나가 됐습니다. 정권을 잡으려는 사람도 자기가 아무리 정권을 욕심내지마는 안 됩니다. 정권을 인해서 자기에게 큰 애로 그 정권과 자기 생명과 자기와 그 정권과 이것이 둘이 합해져야 조화가 되고 하나가 되는 이 도가니 속에 여러가지 잡철를 넣어놓고서 녹우면 그 전체가 녹아 가지고 한덩어리 되는 것처럼, 이렇게 이 뜨거운 도가니 속에서 자기가, 정치가 자기가 모든 정치 그 나라의 정치 사정에 자기가 꽉 배들어 가지고 있고 그 정치속에 자기가 꽉 배 가지고 자기와 정치에 하나, 사업과 정치가 하나 학을 연구하는 학자도 그 학이 자기 몸에 다 배고 자기의 정력이 학 속에 다 베 버리고 이것이 하나가 돼야 성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거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게 없이는 될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렇지마는 우리 기독자들은 그 욕망하는 그것과 나와 둘이만 합해 가지고 안되고 하나님과 진리와 넷이 합해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와 나와 내가 욕망하는 그것과 다 합해 가지고 넷이 한덩어리가 되어야 되어지는 것이니 넷이 한덩어리가 되려면 넷이 한테 뭉쳐 가지고 녹아 가지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고난이라는 애로라는 고도가지 속에 안 들어가면 안 된다 그말이오.
이건 필연입니다. 안 되는거라. 이것은 알아야 듣기가 좀 어려워서 못 알아듣는지 몰라도 그저 믿으면 되요. 이러니까 이것은 너희들이 하늘나라 들어가려면 많은 고난을 겪어야 된다. 너희들이 어려움 당하는 것을 이상한 일 당하는 줄 여기지 말아라. 그리스도가 이것을 통해서 속량했으니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인줄 알아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 옆에는 애굽같은 애굽의 추격이 있고 홍해같은 바다가 있고 성경에 나온 것 우리에게 계약이요.
이러기 때문에 내 앞에 홍해같은 것이 가로막아도 반드시 홍해가 갈라지고 육지가 되는 이것이 넘어있다. 요걸 바라고 요동치 안하고 계명지키면 밀고 나가면 모든 의사가 척 갈라지고 그 다음에 홍해 속에 대로가 나옵니다. 반드시 나옵니다.
우리 앞에 아무리 갈급한 일이 있어도 이는 천부당 만부당의 일이라도 반드시 사막의 셈이 있고 반석에서 물이 난다고 했으니까 우리는 계명 지켜 밀고 나가면 반석에 물나는 고걸 보고 아 여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없지마는 반석에 물나는 요것을 하나 푯대로 한다. 자산에 푸른 초상이 있는 것을 나는 목표로 하고 간다. 내 모든 속한 것을 다 원수가 빼앗아 갔지마는 그것이 다 돌아오는 걸 목표로 하고 간다.
모든 세상에 그 군왕들과 왕비들이 어깨에 메고 내 발에 티끌을 햝고 땅에 엎드려 절한다. 이 모든 걸 이렇게 굴복하기까지 요걸 목표로 한다. 이 목표를 두고 이 목표가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를 거기에 매진하는 이게 있어야 합니다.
이게 있어야 성공을 합니다.
그래 성경에 기록된 이 약속의 소망을 잡고 요동치 안하고 계명 지키는 것으로 밀고 나가는 자는 그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진리의 능력이요 모든 피조물은 그를 위해서 응원하고 그를 위해서 존재한 창조의 존재 목적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것은 이종교에서 그 말하는 거와 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사자 입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사자 입을 반드시 막을 수 있고 불구디를 다 막을 수 있는 이것이 우리가 계명지키는 능력입니다. 성경에 기록한 그 사건 사건의 목표를 두고 요 성질의 것은 어떤 목표다 요 성질은 무슨 종류다 하는 이 목표와 종류를 굳게 잡고 계명 지키는 것으로 소유와 몸과 생명도 애끼지 안하고 다 받히실 때에 주님과 진리와 나와 그 사건과 하나가 되어서 영원히 내것되고 만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