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

2013.12.15 13:43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심령이 가난한 자
선지자선교회
본문 : (마5:1-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1. 심령이 가난한 자

마태복음 5장에 있는 이 복을 팔복이라 말을 합니다. 이 여덟 가지를 말한 것을 깊이 분석하면 그 중심이 어디 있는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는 말씀은 그 마음이 아무것도 없이 빈 자가 복이 있다 왜? 마음이 비었으니까 천국을 차지 할 수 있다 하는 그 말씀인데 이 말씀을 다른 말로 하면 ‘육신의 소욕을 다 버린 자’는 그 말입니다.

2. 육체의 소욕을 버린 자

육체의 소욕을 버린 자는 복이 있다 왜? 그는 천국이 제 것이기 때문에 이제 천국을 깨달았고, 천국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이 육체의 소욕을 그가 가질 가치가 없는 줄 알기 때문에, 과거에는 우리가 우리 마음이 땅의 소욕으로 가득 차서 빈틈없이 가득 차 있던 우리들인데 천국을 그 사람이 발견을 했으면 육체의 소욕은 다 털털 털어서 다 버려 버리고 하나도 없는 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심령에 육체의 소욕이 없는 자는 왜 없느냐?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에, 천국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육체의 그런 소욕은 다 털어 버려서 없어졌다 그 말입니다.

3. 사도 바울

바울이 빌립보 3장에 보면, 자기가 과거에 다 귀하게 여겼던 것, 과거에 보배로 여겼던 것, 그런 것을 이제는 배설물로 여겨서 다 버렸습니다. 과거에는 학문도 있어야 되겠다. 또 문벌도 있어야 하겠다. 또 여러 가지로 세상에서 강대국의 시민권도 가져야 하겠다. 또 자기의 재산도 있어야 하겠고 명예나 지위나 그런 모든 것들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모든 것을 구비하게 갖춘 사람입니다.

그 당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면 아무도 세계에서 그 사람을 벌을 하지 못합니다. 로마 나라에서나 가서 어떻게 했으면 했지 로마 정권 외에는 그 사람에 대해서 이러니 저러니 판단하지 못하는 그런 나라였는데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또 그 사람은 문벌로서 가장 존대를 받고 있는 베냐민 지파의 문벌을 가졌습니다. 학벌로 말하면 가말리엘의 수제자로서 존대를 받는 사람이요 또 율법을 지키는 그런 모든 일에 대해서도 율법 학사 가말리엘의 제자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배설물로 여긴다 말은 우리가 음식을 먹고 나면 영양 취하고 나머지기 그 찌끼는 대소변으로 나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배설물이라고 말합니다. 또 공장에서 무슨 제품을 하면 제품 하고 난 다음에 거기서 못 쓸 것. 이런 저런 것 씻어서 낸 것 그런 것은 배수라 하고 또 쓰레기라 말합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과거에 귀중히 여겼던 것을 이제는 쓰레기로 여깁니다. 아무짝도 못 쓰는 배설물로 여깁니다. 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야 그것이 참 가치 있고 영영하지 그리스도 밖에 있는 것은 사람들을 다 헛되이 위로받게 하고 헛되어 소망하게 해서 사람들을 망치는 것뿐이지 결과적으로는 유익된 것이 하나도 없다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심령에 아직도 명예욕도 있고, 직위욕도 있고, 물욕도 있고, 온갖 자기의 이런 욕심 저런 욕심 그런 욕심을 가진 자는 아직까지 천국을 제가 발견 못한 사람이요 천국을 가지지 못한 증거다 그 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했습니다.

4.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에 그 심령에 천국으로 가득 차서 다시 말하면 육체의 욕심은 없어지고 성령의 욕심으로 가득 찼다 그 말입니다. 성령의 소욕으로 가득 찼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려고 하면 우리 마음이 아무리 넓고 크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에 성령의 소욕을 채울려고 하면 우리 마음이 모자라지 성령의 소욕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이래서 육체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으로 그 마음에 가득 찬 그 사람이 복이 있나니 그 사람은 천국을 자기가 맛을 봤고 천국을 자기가 차지하기 때문에, 천국이 저희 소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천국 맛을 봤고 천국을 알았는고로 천국이 소원 되는고로 그 소욕만 가득 찼지 이 육체의 소욕 세상소욕이 그 속에는 하나도 없고 텅 비었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이것도 다 그 소망을 어디다 두느냐? 하늘나라에 둔 것입니다.

5. 육체의 소욕

육체의 소욕이라 말은 우리의 마음과 고기덩어리의 욕심이라는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마음과 고기덩어리의 욕심이 육체의 소욕이요. 또 성령의 소욕은 그 반대로 어떤 것인고 하니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소원하시고 욕심 하는 성령의 욕심을 가리켜서 성령의 소욕의 사람이라 이랬고, 인간의 욕심을 가진 사람을 가리켜서 육체의 소욕의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는 안 믿는 사람들 이종교인들이나 또 어떤 도덕가들이나 어떤 정치가들이나 철학가들이나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진실 되이 믿지 않은 사람은 다 육체의 소욕의 사람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사망이요 성령의 소욕은 생명과 평강이니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자기가 연구해서 하나씩 둘씩 뽑아 버려야 됩니다.

6. 세상지식 공부

그런데 이 세상에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또 이런 저런 모든 사상의 책들을 보고 또 물리의 과학 서적들을 보고, 이 모든 세상 학문들을 우리가 공부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부할 필요가 있는데 공부하면 그런 것을 책을 한 권 읽으니까 욕심이 그만큼 좀 더 많이 생기고, 책을 열권을 읽으니까 그만큼 욕심이 많이 생기고, 또 공부를 자꾸 많이 해서 책을 더 많이 읽으니까 욕심이 많이 여러 가지 욕심이 생겨지고, 또 거기서 제 딴에는 책을 많이 읽으니까 욕심 중에 선택을 합니다.  `아, 나는 이것을 욕심 부렸었는데 책을 한 권 더 읽으니까 그 욕심보다 이 욕심이 낫다' 이래서 이제는 욕심에 대해서 정선을 합니다.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 세상 학문이 점점 광문다학 할수록 ‘광문’이라 말은 넓게 듣는다 말이요 많은 말을 들었고, ‘다학’이라 말은 많이 읽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광문다학을 하니까 차차 차차 욕심이 많아지고 욕심 많아지는 가운데서도 그 욕심을 선별해서 제일 가치 있는 욕심을 자기가 가질려고 그렇게 해서 가지는 것이 그것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세상 사람들이 모든 지식을 자꾸 배워서 더 가질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뭐이냐 하면 이제까지의 온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이제까지 육천 년 동안 계속돼 나온 세상은 어떤 세상이냐 하는 그 세상을 알려고 세상 공부하는 것이 세상지식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 지식을 뭐 할라고 공부하는가? 세상지식을 공부하는 것은 자기의 육체의 욕심을 하나씩 둘씩 과거에는 그 욕심을 가질 줄 몰랐는데 이제 그 모든 학문을 읽는 데에서 육체의 한 욕심 두 욕심을 자꾸 얻어 가지게 되고, 또 욕심 중에 욕심을 선택해서 제일 가치 있는 욕심을 가지려 하는 것이 그것이 세상 학문을 하는 것입니다.

7. 음행의 포도주

그러나 기독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독자가 세상 공부를 할 때에 그것이 음행의 포도주가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음행의 포도주라 말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짝이 돼서 하나님과 결합해서 살아야 될 사람이 하나님과 결합됐던 그것을 버리고 세상과 결합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음행이라 표현했습니다.

‘음행의 포도주라’ 세상과 하나 되는 그 교훈이라 그 사상이라. 이래서 음행의 포도주에 취했다 그 말은 하나님 배반하고 세상하고 하나 되는 이 주의 이 사상 이 지식 이런 것에게 취했다는 말씀입니다. 취했으니까 그 사람이 정신없는 것처럼 그런 가운데서 사람이 정상의 사람이 되지 못하고 다 비정상인 타락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하는 말씀입니다.

1) 시청각

그래서 기독자가 이 세상 공부를 하는데 또 이 세상에 이런 저런 모든 학교 가서 공부를 안 해도 다 공부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자기의 생활에서 매일 매일 생활에서 모든 시청각이 있습니다. 보는 것도 있고 듣는 것도 있고, 자기가 거기에 대해서 체험하고 경험해서 느끼는 것도 있는 그런 것을 가리켜서 시청각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일 년 살았으면 그만큼 시청각이 많고 십 년 살았으면 그만큼 시청각이 많고 이래서 안 믿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사람이 나이가 많으면 귀신 된다 이렇게 말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 슬기 있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사람이 나이 많으면 귀신 된다 이렇게 말합니다.

왜? 나이 많으니까 시청각이 차차 많아지게 되기 때문에 이런 것 저런 것을 많이 경험을 했으니까 사람에게 대해서도 유식한 사람이 돼지고, 사건에 대해서도 물질에 대해서도 유식한 사람이 됐기 때문입니다. 철이 없는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야, 이것은 좋다' 하고 달라 들어서 삼키지만 나이 많은 사람은 그런 것 삼켰다가 뒤에 가서 배탈 나서 죽는 그런 일을 봤기 때문에 재물이 닥친다고 덜컥덜컥 다 삼키지 안하고 또 명예나 지위나 권세가 닥쳤다고 생각도 안 하고 막 꺼머 삼키는 그런 사람이 안 됩니다.

2) 지천명

그러기에 동양에서 제일 유력한 사람 공자도 말하기를 사람이 오십 살이 돼야 비로소 지천명이라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 유교에서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을 말하는가? 그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은 다 범신론인데 무엇인가 모르지만 이 우주에는 제일 머리되는 분이 있다. 제일 큰 분이 있다. 주장되는 주권을 가진 분이 있다. 있는데 주권 가진 그분의 명령은 오십 살이 돼야 알 수 있다 즉 지천명이라 그 말은 모든 이치를 다 모아 놓고, 모든 말들을 다 모아 놓고, 전부를 다 모아 놓으면 거기서 제일 이것이 이것보다 낫다. 보다 보다 이렇게 제일 나은 그것이 있다. 제일 옳은 것이 있다. 그러면 제일 옳은 것 그것을 제가 찾는 것은 오십이 돼야 찾는다 그것을 가리켜서 오십에 지천명이라 말을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교는 범신론의 종교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세상의 모든 것을 듣고 보고 경험하고 하는 데에서 차차 차차 지식이 늘어가는 것인데 지식이 늘어간다는 것은 무슨 지식이 늘어 가느냐 하면 육체의 소욕이 늘어갑니다.

8. 인간의 욕심은 육체의 소욕

이 사람은 이런 욕심 가지고 살았다. 저 사람은 저런 욕심 가지고 살았다. 이 사람은 이 욕심 가지고 살다가 뒤에 꽉 넘어져 버렸다. 저 사람은 저런 욕심 가지고 살다가 꽝 넘어졌다. 이것을 많이 공부 하니까 사람들이 다 지저분한 그런 것을 소욕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그 방편을 쓰다가 다 넘어졌기 때문에 글을 많이 읽는 사람은 제 딴에는 추리고 추리고 간추려서 제일 거기서 완벽한 욕망을 제 욕망으로 삼고 방편을 제 방편으로 삼아서 이렇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한 말로 말하면 육체의 소욕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하고 자기 몸하고 둘이 하나 돼서 저희들끼리 이 사람의 심신 저 사람의 심신, 천 명의 심신 만 명의 심심, 이 모든 심신 그것들이 주어 모아서 연구해서 `이거보다 이게 낫다 이거보다 저게 낫다' 이렇게 한 그것이 역사요 또 그것이 제일 승리했기 때문에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그것이 역사인데 암만 해 봤자 인간의 심신의 지능을 초월하지 못하고 인간의 심신들이 주어 모아서 했기 때문에 결국은 인간의 욕심만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욕심된 것을 가리켜서 육체의 소욕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육체의 소욕의 정반대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성령의 소욕이라 그 말입니다. 이제 인간 욕심을 제가 암만 가져 봤자 그까짓 것은 천하 욕심을 다 정복하고 제가 승리한 욕심을, 거기서 평가적으로 제일 나은 승리한 욕심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욕심은 인간 욕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욕심과 반대되어 있는고로 하나님의 욕심 앞에는 다 꺼꾸러지고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9. 하나님의 선물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공부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세상공부를 하는 것은 음행의 포도주가 되고, 또 어떤 사람이 세상공부를 하는 것은 무엇이 된다고 배웠습니까? 하나님의 선물이 됩니다. 세상공부를 할 때에 하나님의 선물이 되면 그것은 자기에게 보배롭게 활용이 되고 이용이 되어지고, 그것이 음행의 포도주가 되면 그것 가지고 하나님 배반하고 세상과 하나 돼서 멸망 받습니다. 그것이 있음으로서 자꾸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워져서 결국은 세상하고 짝이 된 세상 사람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것이 음행한 자라 이랬습니다.

10. 호세아서에서의 남편

호세아서에 보면 사람이 본남편을 버리고 간부로 더불어 음행을 하면서 `내 모든 먹고 마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이 간부가 줬다' 그렇게 말을 하다가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것을 다 뚜드려 깨어 없애 버리고 나니까 그다음에는 이제는 할 수 없어서 본남편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여기 남편이라 말은 인간의 말로 잘 표현하기 위해서 말했는데 인간들은 남편이라면 무엇이 남편이라 생각하느냐 하면 남녀 이성면만 가지고 남편이라 합니다. 그것은 타락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남녀 부부라 하면 남녀 이성 교합되는 그것이 부부간이라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런 것이 아니고 또 성경 말씀에서는 더욱이 아니라는 것을 판명해 놨습니다. 사람들이 남녀 이성 교합하는 그것만으로서 부부된 사람은 반드시 이혼이 되고야 맙니다. 이혼된 사람 다 그것 때문에 이혼이 됩니다. 이혼되는 사람들을 그것을 살펴보면 그것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통계를 내기를 결혼은 일주일 취미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일주일 지나가기 전에 뜻이 결합돼야 되고 또 소망이 결합돼야 되고 또 만물관이 결합이 돼야 되고, 인생관이 결합이 돼야 되고, 이런 것이 모두 다 결합이 되면 못 나뉩니다. 사상이 결합 됐습니다. 부부의 소망이 똑 같습니다. 뜻이 똑 같아, 비판이 같아, 평가가 같아, 취미가 같아 이래 놓으니까 나뉘어질 수가 있습니까? 못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여인의 머리는 남자라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남자가 보는 것이 넓고 보는 것이 길고 보는 것이 깊고 보는 것이 높습니다. 결국은 아내 말 안 듣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하지만 사람 못난 남자는 아내 말을 다 듣습니다. 듣지만 듣는 것 같으면서 결국은 남자 자기의 주장대로 끌고 어디든지 갑니다. 그런데 끌고 가도 그것이 남자 제 욕심을 제 주장을 제 사상을 가지고 아내를 끌고 갔으면 아내 끌고 간 것은 아내 끌어다가 망쳐 버렸고 끌고 간 저도 망하고 다 망했습니다. 이제 그래서 남자의 머리는 하나님이라 이래 놨다 말입니다.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하나님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제 머리로 삼아서 저는 하나님께 인도 받고 아내는 남편에게 인도 받고 그러면 그만 천국입니다. 가면 갈수록 행복 됩니다.

하늘나라 가면 부부가 없어지는 것 아닙니다. 부부가 없어지는 것 있습니다. 없어지는 것은 뭐이냐 하면 이 세상이 말하고 있는 남녀 성별 된 것 그것은 없습니다. 육체의 그런 모든 정욕적인 그까짓 것은 다 없어지고 천사와 같다 말씀했습니다. 천사에게 남자 여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가 이 다음에 부활될 때에는 그런 모든 인격자들입니다.

11. 욕심에 대한 공부

이래서 우리가 공부를 할 때에 그 공부 하는 것을 거기서 자기 욕심을 그 공부에서 하나씩 둘씩 발견해서 욕심을 자기가 하나 둘 가지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이 모든 사람들이 이 욕심으로 인해서 망하고 말았구나' 석가모니 그 사람은 하나의 명예욕으로 사람을 구원하자는 `이게 제일 옳다' 제일 가치를 제 딴에는 평가해서 `이것이 성공이다' 해서 그것도 하나의 공명욕을 가지고 했는데 `이 공명욕으로 그 사람은 죽었구나, 어떤 사람은 정권욕으로 죽었구나, 어떤 사람은 물욕으로 죽었구나, 이런 사람은 음탕한 음욕으로 죽었구나, 이제 그런 것을 자꾸 보면서 그 욕심을 이것을 취할 것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이 모든 사람이 이 욕심에 죽었기 때문에 나는 이 욕심을 버립니다'

그래서 모든 학문에서 욕심을 하나 보고는 ‘이 사람은 이래 망했구나' 욕심을 버리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고, 또 `이 욕심은 내가 이것을 내가 가져 이 욕심의 사람이 될 것이 아니라 이 욕심을 내가 어떻게 하면 죽이며, 이 욕심을 어떻게 하면 내가 꺾으며, 어떻게 하면 이 욕심을 종으로 잡아 부리고, 이 욕심에게 내가 끌리는 욕심의 종이 되지 안할까 하는 그런 것을 지금 배우고 있다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 아이들 말로 `동상이몽이라' 한 침대에 누워있지만 지금 마음은 딴 데 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데 가 있는 것처럼. 그걸 동상이몽이라 하는 것인데 그런 것처럼 공부를 가르쳐서 하기는 하지만 공부하는 데에 하나 딴 것을 가지고 있다 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내 마음에 채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그 모든 이력에 대한 사상에 대한 것을 공부를 합니다. 그 사람이 어떤 것을 욕망하고 살았느냐 그것을 공부를 합니다. 그것을 공부를 해 보니까 자기 속에도 그것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자기 속에 있다 그 말입니다. 있으니까 자기 속에 있는 육체의 소욕을 뽑아 버리기 위해서 공부를 하는 사람 있고, 육체의 소욕을 하나씩 자기에게 채워서 자기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하는 사람도 있는데 모든 철학이나 모든 세상 학문이나 이런 모든 소문을 들을 때에, 이런 소문 들을 때에 아무 것이는 이래서 일확천금으로 부자가 됐다' 그 소문을 들을 때에 한 사람은 나도 그 욕심 가지고 한번 그런 것이 있을는가 혹 돌아다녀 봐야 되겠다 이런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은 그것을 볼 때 아, 그 사람은 이래 가지고 여기에 빠져서 죽었구나. 여기에 빠져져 영원을 팔아먹고 죽었구나 그것을 보고 내게도 일확천금 할라 하는 이런 허욕과 이런 허영심이 내게도 있구나 그것을 거기서 발견해서 자기에게 있는 모든 육체의 소욕을 뽑아 버리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 있고, 세상을 듣는 사람 있고 그것을 자기가 채우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 있습니다.

12. 자기에게 있는 육체의 소욕

이래서 자기에게 있는 육체의 모든 소욕을 이것을 뽑아 버리면서 내가 이 소욕을 내가 내 주인공으로 삼아서 이 욕심이 하자 하는 대로 달성을 하기 위해서 욕심성공을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이 욕심을 뽑아 버려서 이 욕심에게 내가 종이 되지 않는다 이 욕심을 내가 이용을 했지 내가 종이 되지 않겠다 하는 그것으로 공부하는 사람 있습니다.

이래서 이제는 모든 육체의 소욕을 발견했을 때에 그 소욕을 자기의 상전으로 삼는 사람 있고, 또 자기의 싸우는 원수 자기의 대적으로, 자기로 더불어 싸워야 하는 그 싸움의 적으로 보는 사람 있고, 이래서 적으로 보는 사람은 그 육체의 소욕하고 싸워서 육체의 소욕 그놈을 정복하고 그것을 이제 잡아서 이깁니다.

그러면 육체의 소욕을 자기 상전으로 삼아서 육체의 소욕에게 자기가 끌려서 육체의 소욕이 하자 하는 대로 주일도 오늘 지키지 말라 하면 안 지키고. 오늘은 새벽 기도 가야 되지만 피곤하니까 가지 말자 하면 안 가고, 육체의 소욕 하자 하는 대로 하면 그 사람이 육체의 소욕의 종입니까? 상전입니까? 종입니다.

이제 육체의 소욕 이놈은 내가 싸워서 이 놈을 죽이지 안하면 내가 죽는 것이고, 이놈을 내가 이기지 못하면 내가 이 놈의 종이 되면 내 구원은 다 헛일이기 때문에 싸워야 된다 해서 자기의 싸움의 대상으로 삼고 육체의 소욕하고 싸워서 이 놈을 이제 이겼습니다. 이겼으면 육체의 소욕이 자기의 종이 됐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이겼으면 이긴 그것이 자기의 뭣 됩니까? 자기의 구원이 됩니다. 육체의 소욕을 이겼으니까 그것이 변해서 무슨 소욕이 됩니까? 성령의 소욕이 됩니다. 성령의 소욕이 되니까 육체의 소욕을 잘 이용을 했습니까? 잘 이용을 못 했습니까? 이용을 잘 했습니다. 이것이 육체의 소욕을 모두 이용하기 위해서 살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 세상 모든 지식이 하나님의 선물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음행의 포도주가 되고 그다음에는 자기가 이것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것으로 더불어 음행하는 음행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는 것은 마음 가운데에 육체의 소욕 그놈을 원수로 삼아서 그 놈을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안 믿을 때는 육체의 소욕으로 하나씩 둘씩 `저 사람은 소욕이 하나이지만 나는 소욕이 둘이다. 저 사람은 포부가 하나이지만 나는 명예 포부도 있고, 지위 포부도 있고, 권세 포부도 있고, 모든 물질 포부도 있고 그런 포부가 많다' 이렇게 생각을 가집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들은 이 육체의 소욕을 죽입니다.  

어떤 사람은 육체의 소욕을 많이 가지고 가진 육체의 소욕을 성공할려고 애를 씁니다. 그 가진 육체의 소욕대로 그놈을 달성할려고 밤낮 노력을 해서 어떤 것은 오 년 걸리고, 어떤 것은 십 년 걸리고, 어떤 것은 삼십 년 걸리고, 어떤 것은 오륙십 년 걸립니다. 그런 사람들이 그것이 뭐이냐 하면 육체의 소욕입니다. 성령의 소욕이 아니고 육체의 소욕입니다. 이래서 만일 사람이 육체의 소욕을 이뤘으면 기뻐하고 즐거워하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이러니까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육체의 소욕을 달성시킬려고 하다가 달성이 되면 좋아 기뻐하고 잔치도 하고 굉장합니다.

13. 성령의 사람들

그러나 성령의 사람들은 세상공부 하는 것이 육체의 소욕을 하나씩 둘 씩 취해 가질려고 합니까? 육체의 소욕을 발견해서 `이놈이 인간들을 다 먹었다. 이놈이 인간들을 다 삼켰다. 이놈이 인간들을 다 삼켰기 때문에 이놈을 어쩌든지 내가 원수로 삼아서 과거에는 내가 이것을 몰랐지만 이놈이 내 속에도 있었구나' 자기 원수라는 것을 발견하고, 육체의 소욕으로 더불어 자기가 전쟁해야 될 싸움의 대상인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죽일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봐서 자기를 깨닫는다고 모든 사람이 육체의 소욕 가진 것을 봐서 내 속에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서 이것을 뽑아 버릴려고 공부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말입니다. 그 사람이 모든 세상 지식을 하나님의 선물로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자녀에게 대해서 공부를 시키되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식이 세상 지식보다 앞서 위에 가서 항상 하나님의 지식은 주격이 되고 세상 지식은 그 밑에 수종드는 종이 돼야 되는 것이지 세상 지식은 자꾸 커 올라가서 올라갔고 하나님의 지식은 밑에 가라앉으면 그 사람은 망해 버리고 맙니다. 이것 다 여러분들이 자녀 망쳤다 그 말입니다.

이제 국민학교 때는 이거 뭐 별 것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지식 가르치니까 하나님의 지식이 위에 있는데 나중에 중학교 가면 하나님의 지식은 크지 안하고 세상 지식은 크니까, 곡식은 자라지 안하고 잡초가 자라니까 자꾸 잡초만 우북하게 올라간다 그 말입니다. 이 세상 지식이 올라가니까 이제는 하나님의 지식이 가라앉았다 말입니다. 이제는 그다음에는 나중에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지식은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하지 안하는 지식이지만 하나님의 지식은 시시하게 보여지고 저를 죽이는 뱀의 지식은 아주 절대성 있게 보이기 때문에 이것은 크게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녀를 공부를 시킬 때에 `보자. 이놈에게 지금 뱀의 지식이 으뜸이 되어 있나 하나님의 지식이 으뜸이 되어 있나' 하나님의 지식이 으뜸이 되어 있을 때에는 뱀의 지식을 가지도록 하십시오. 만일 하나님의 지식과 뱀의 지식이 같을 때에는 어째야 됩니까? 그전에도 말했는데 어째야 됩니까? 뱀의 지식을 굶겨야 됩니다. 정 그놈이 자꾸 공부만 할라 하면 좀 정학을 시켜야 됩니다. 일 년이든지 이태든지 그 아이에게 정학을 시켜 놓고, '하나님의 지식이 위에 가 있어야 되지 하나님의 지식은 종이 되고 세상 지식이 지금 왕이 되는 날이면 너는 망한다. 그러니까 세상 지식대로 따라서 움직일 터이니 너는 망할 수밖에 더 있겠느냐?' 이러기 때문에 내가 세상 지식을 좀 더 가질려고 하거든 하나님의 지식이 세상 지식보다 으뜸이 되도록 해라' 그것을 말해서 정학을 시켜 놓고 성경을 많이 읽히고 또 하나님 말씀을 다 공부하게 되면 알게 되면 ‘학교 가거라' `뭐 학교 그거 갈 필요가 없습니다. 없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을 알고 보니까 이만하면 하나님하고 나하고 한 덩어리 됐으면 우주가 다 내 것인데 그까짓 것 뭐 있습니까? 내가 가만히 성경 보고 요새는 신앙 지키면서 학교에서 그대로 계속하는 동무들을 내가 종종 만나 봅니다. 동무들을 만나 말을 해 보니까 이거는 통통 막혔습니다. 꽉 막혀서 등신입니다. 숨이 막혀서 말 못할 만큼 그렇게 무지하고 이런데 그까짓 것 배워야 뭐 합니까?' 그래 말합니다.

14. 세상 사람들

이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 것 저런 것 듣고 보고 하는 모든 시청각에서 세상 사람들이 가진 그 욕심을 우리가 가질려고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고, 그런 욕심을 뽑을려고 세상에서 사는 것이고, 그 욕심 뽑으면 어쩔려고? 그 욕심 뽑고 하나님의 욕심, 성령의 욕심, 진리의 욕심, 참사람의 욕심, 영원히 불타지 안할 의의 욕심, 경건의 욕심, 거룩의 욕심, 정직의 욕심, 진실의 욕심, 의의 욕심, 공평의 욕심, 정의의 욕심, 공의의 욕심, 사랑의 욕심, 이 욕심이 고기덩어리 돈 욕심만 못합니까?

세상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 아무것이 동무 만나고 보니까 `이 세상 이런 좋은 욕심이 하나 있다. 그것 내가 할란다' 이렇지만 우리는 세상을 접촉해서 시청각 그 말 좋습니다. 볼 ‘시(視)’ 들을 ‘청(聽)’ 깨달을 ‘각(覺)’ 보고 듣고 깨닫는 데에서 그 한 가지 두 가지 세상 사람들이 가지는 욕심을 내가 가지기 위해서 그것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들음으로 내 속에도 그와 같은 것이 있구나 사람들이 그것은 모든 육체의 소욕 가지고 살다가 멸망을 받고 말았는데 허송세월 하고 말았는데 예수 믿는 사람들도 그것 때문에 다 허송세월 하고 말았는데 나도 그것 가지고 허송세월 할 수 있는 것이 내게 있는가 없는가 보자 사람들을 보니까 남을 보아서 깨친다고 남을 보아 깨닫는다고 다른 사람이 그것 때문에 망치는데 그것을 조사해 보니까 내게도 있더라 그 말입니다. 이래서 모든 시청각에서 자기에게 있는 육체의 소욕을 뽑기 위해서 우리 믿는 사람은 사는 것이지 육체의 소욕을 하나씩 둘씩 자꾸 채우기 위해서 세상을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세상 사람은 하나씩 둘씩 육체의 소욕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을 성공할려고 그것을 기어코라도 달성을 시킬려고 야단을 지기지만 우리는 그것을 달성을 할라고 애를 씁니까? 그것을 뿌리 뽑아서 완전히 불에 태워서 죽여 버릴려고 애를 씁니까? 우리는 육체의 소욕을 성공할라고 애를 쓰는 사람들입니까? 육체의 소욕을 죽일라고 애를 쓰는 사람들입니까? 죽일려고 애를 쓰는 이것이 우리입니다. 죽일려고 애를 씁니다. 육체의 소욕을 죽이면 어쩔라고? 성령의 소욕으로 바꿔집니다.

그러면 육체의 소욕을 하면 자기 힘으로서 자기가 날뛰지만 성령의 소욕 되면 내 권능은, 내 지능은 어떤 지능이 됩니까? 육체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의 소욕으로 내가 살면 내 지능은 어떤 지능이 됩니까? 성령의 지능이 됩니다. 성령의 지능이 어떤데? 성령의 지능이 길어요? 짧아요? 성령의 지능이 어떻지? 전지전능의 지능이 됩니다. 백전백승의 성공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지 않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똑똑히 배워서 알고 살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뭘 했다' 그 뭘 어깨 쭐렁이는데 그것을 볼 때에 불쌍하게 `야, 어깨 쭐렁하는 너 망하는 것 지금 자랑하고 있다.' ‘저희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뭐 영광이라 이러는데 큰 수치스러운 것, 좀 있으면 수치스러워서 가슴 치면서 후회하고, 죽을 때는 가슴 치며 후 회할 수 있는 그것을 얻어 놓고 떠들고 야단을 지긴다 말입니다.

이러니까 그 사람은 그래도 그건데 그걸 `야, 너 송장 자랑하고 있다. 그거 썩은 것 자랑한다' 이러면 그 사람하고 나하고 결렬이 돼 버리고 그만 이래 돼 버리니까 복음이 안 전해질 것이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 만나서 `아, 예 허허 축하 합니다. 허허 축하합니다.' 그래 축하한다 해도 속에 빌 허(虛) 자를 붙입니다. `허(虛) 축하합니다. 아, 예예 허(虛) 축하 합니다.' 이렇게 이러니까 축하하는 줄 알지만 실은 속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축하한다 하면 그거 안 될 터이니까 `허허 축하합니다. 내가 헛된 축하다. 네가 어리석기 때문에 바로 말하면 네가 반감 먹을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없어서 예예 축하하지만 헛된 축하다. 너는 망하게 되었으니까 어서 거기서 돌아서라'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15. 마음이 빈 자

그러기 때문에 마음이 빈 자,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 빈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 속에 이 세상 소욕을 다 비워서 이것을 뽑아 버리고 없앨려고 애를 쓰는 사람은 하늘나라를 봤기 때문에 세상소욕을 채우지 안하고 하늘나라를 채우고 세상소욕을 뽑아 버리고 없앨라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설교: 백영희 목사(1985. 9. 2. 월 새벽)
-편집: 김반석 목사(201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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