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사람이 모든 면에 성공하는 비결

2013.09.22 15:52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믿는 사람이 모든 면에 성공하는 비결
선지자선교회   
본문:(시1:1-4)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서론)

1. 악인의 길은 겨와 같다

우리 믿는 사람은 악인의 길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악인의 길을 걸을 수도 있고 또 의인의 길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악인의 길을 걷는 그 걸음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그 겨는 쌀겨도 있고 어째든 껍데기, 열매를 알맹이를 내고 난 다음에 그 껍데기 있는 그것을 겨라고 말합니다. 쌀도 그 벗겨놓은 껍지는 겨요, 또 서숙 그런 것도 벗겨놓은 그것은 겨요, 겨는 무게가 없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다 날아가 버립니다.

그것 모양으로 믿는 사람이 악인으로 살면 그 생활이나 행사가 되는 것 같은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없어져버립니다. 평생 가야 남에게 그저 멸시 천대받고 그래 살지 존귀함을 받지 못하고 권위 있게 못 삽니다. 아무리 지혜가 있어도 그러하고 또 열심이 있어도 그러합니다. 지능이 있어 실력이 있고, 또 열심 있고, 참 수단 좋고 해서 되는 것같이 지위를 차지했다, 권세를 차지했다, 돈을 차지했다, 성공이 있다, 형통하다 또 일이 잘된다, 장사가 잘된다, 아무리 해도 결과가 없습니다. 날아가 버립니다.

1) 무엇이 악인인가?

악인이 뭣이 악인인가? 예수님 믿는 사람이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 중심으로, 진리보다도 자기를 앞세우고, 하나님보다 자기를 앞세우고, 말은 하나님 하나님 하지마는 주님과 자기와 둘이 이렇게 하면 주님에게 유익하고 좋고 내게는 손해가고, 또 저렇게 하면 주님에게는 손해가고 내게는 유익하고, 주님에게는 손해가고 내게 유익하고, 이렇게 둘이 견제될 때는 그만 자기 유익한 대로 자기 좋을 대로 요렇게 가는 그것이 악인입니다.

주님과 진리는 하나입니다. 이러려면 요 진리를 지켜서 진리를 귀중히 여겨서 진리를 지키려고 하면 내게 내 일에 손해가 가고, 손해를 안 보려고 하면 이 진리를 어겨야 되겠고, 요렇게 딱 될 때 그때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자기가 자기 일이나 생각해서 진리를 어기는 그것이 악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그런 그 절정 그런 고비에 가서 자기 중심으로 가는 사람은 그 사람은 자기 일이 성공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자기가 자꾸 망할 길을 택하니까 하나님께서 망할 길을 가는 사람을 자꾸 되도록 하면 하나님이 죄짓는 일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런 일을 못 합니다. 요것을 꼭 결정지어야 됩니다.

2)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이 있는 것 같아도 나중에 결과적으로 보면 그만 허무해집니다. 하나님이 참 애를 써서 경제면이 이 면도 성공을 주고 싶고, 지위면도 성공을 주고 싶고, 또 사람면도 성공을 주고 싶고, 여러 가지 면으로 성공을 다 주고 싶지마는 그 면에 성공을 줄 수 없는 것은 그 면은 자꾸 망할 길을 걸어가니까 그 면에 성공을 줄 도리가 없다 말입니다.

하나님이 참 안타깝고 심히 애타 하시고 ‘이것은 안됐다. 이것은 제 평생에는 돈이나 그런 것 줘서는 안 되겠고 암만 기다려야 안 되니까 그저 자손이나 좋은 자손이 나도록 그렇게 해 보자.’ 하는 그런 축복을 주는 사람도 있고, ‘이것은 요것을 고치지 않기 때문에 재물이나 그런 것은 주지마는 자손은 축복은 줄 수가 없다.’ 이래서 이 면이 악인이 되면 그 면이 실패가 되고, 저 면이 악인이 되면 저 면이 실패되고, 우리 믿는 사람들이 실패되는 것은 전부 그 면이 악인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악인이라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것은 다 악인입니다. 그 면이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그 말입니다. 그 면이 하나님 중심이 아닐 때에 그런 것입니다.

2. 결말의 결과를 보아야

그러기에 우리는 일시 무엇이 된 것같이 보여진다고 ‘내가 이래도 되는 것 보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처리하시는 것은 아니로구나’ 이렇게 생각지 말아야 됩니다. 성공 같으나 실패가 있습니다. 성공 같이 보여지는데 그것이 마지막에 보면 아주 그만 절단하고 허무해져 버린다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시작을 보고서 성공이라 실패라 그래 하지 말고 그 결말을 결과를 봐야 합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은 의인으로 살면 그 결과가 좋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자기 양심에 가책 없는 의인으로 걸어가면서 무슨 낭패가 돼도 반드시 그 낭패 끝에 성공이 있습니다. 그 낭패는 낭패가 아니라 성공을 되게 하는 역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셉이가 의인으로 살 때에 아무라도 보면 ‘야, 하나님 하나님 하더니만 하나님 어디 계시노? 네 가는 길이 전부 다 사건마다 네게 큰 낭패만 안 당하나?’ 이렇게 제 삼자들이 보겠지마는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성공을 찾아가는 걸음이었고 또 제 삼자 보기만 토막토막도 참 절단 났다 망했다 낭패다 싶었지 남이 모르는 그 속은 따시고 형통했습니다. 의인들이 걸어가는 걸음은 다 이런 걸음입니다.

그런고로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이것을 자꾸 외워요.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이것을 자꾸 생각하고 눈감고 명상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악인을 벗어나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3. 의인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의인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이랬습니다. 형통한다 말은 그 의인이 걸어가는 그 걸음은 어떤 피조물도 막지를 못합니다. 막는 피조물이면 그것이 깨져버립니다.

1) 왜정 말년 신사참배

왜정 말년에 그 전쟁 난 것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마는 하나님의 목적은 구속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왜정 말년에 일본 나라에 있는 교회는 신사참배를 안 한 교회가 없었습니다. 다 죽었다는 증거입니다. 문화적으로야 얼마나 앞서 있습니까? 이렇지만 신앙적으로는 다 죽었습니다.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안 하고 거절한 그런 신자가 일본 나라에서는 없었습니다. 혹 한국에서 신사참배 안 하려고 일본 나라로 망명한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신사참배는 안 했을지라도 거기 가서 그만 믿는 둥 마는 둥 그냥 숨어서 이래 있은 사람은 신사참배는 안 했지만 그런 것도 다 신사참배를 한 셈입니다. 그래서 신사참배를 이긴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신앙 행사가 형통치 못 한 것입니다. 뚫고 나가지를 못하고 다 막혔다 말입니다. 형통이라면 콱 통해버리고 그만 그대로 나갔는데 다 막혔으니까 형통이 안 됐고 막혔다 그 말입니다.

2) 하천풍언

일본 나라에 아주 유력한 ‘하천풍언’ 씨가 예수 믿는 성자라고 소문이 났는데 그 사람이 제 2차 대전 때에 왜정 말년 신사참배 날 때인데 인도의 간디를 찾아가서 국교를 하려고, 그 사람은 종교성이 있는 사람이니까 성자 하천풍언 씨를 보내면 아마 서로 국교가 잘될 것이다 해서 일본 나라에서 보냈습니다. 보내니까 그 사람이 감옥 가운데 있으면서 면접을 안 해 줬습니다. 면접하러 왔다 하니까 ‘내가 아는 하천풍언 씨는 옥에 갇혔든지 사형을 받았든지 그렇지 살아서 여기 나 만나러 올 리가 없다.’ 딱 거절해서 만나지 못하고 왔습니다. 우리 나라에 와서도 참 신자들은 서로 상담을 못 했습니다. 왜? 갇혔든지 죽었을 것이라 그 말은 그 사람이 신앙생활이 형통했다면, 신앙생활에 성공을 했다면, 신앙생활이 제재 받지 안하고 그대로 일관해서 나갔다고 하면, 신사참배 안 하려 하면 갇혔든지 그리 안 하면 죽었든지 그렇지 그래 자유로 행동할 리가 없다 그 말입니다.

3) 의인은 형통하고

의인은 형통하고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어떤 시대나 어떤 환경에서나 신앙생활이 요동치 아니하고 그대로 신앙 성공을 하는 이런 사람이 되면 신앙 성공한 사람이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그까짓 것은 그 사람에 대해서는 자유입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지마는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돈 한 푼 없지마는 자기로서 돈 없어 할 일 못해본 일이 없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한 번도 자기가 해야 될 일 무엇이 없어서 못한 일이 없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나는 가난해도 좋고 부해도 좋은 것을 내가 알았다. 가난하고 부하고 그까짓 것이 상관이 없이 내가 나가는 길에는 다 형통한 것을 내가 안다. 왜? 그런 것으로 인해서 형통하면 그것 가지고 못 할 일도 되지만, 돈 가지고 형통하다는 것은 돈 가지고 못 할 일이 있습니다. 신사참배 그런 것은 돈을 들여서 그것을 거절 못 합니다. 그러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할 수 있다 했습니다.

(본론)

그러면 이렇게 믿는 사람이 모든 면에 성공을 하려고 하면 성공하는 그 비결을 저 지난 시간에 말했습니다.

1. 사람을 삼갈 것

하나는 사람을 삼가야 됩니다. 사람을 조사를 해야 됩니다. 내가 어떤 사람 만나니까 신앙이 손해 간다 그것을 자기가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알아서 그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도록 애를 써야 되고, 만난다면 아예 속으로 기도를 하고 ‘요 사람은 내 믿음을 손해보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겉어머리는 웃어도 이 사람은 나를 삼키려고 하는 마귀가 이 사람을 통해서 나를 삼키려고 하기 때문에 이 사람이 마귀가 아니라 이 사람은 마귀의 일꾼으로 내게 온 사람이다.’ 하는 것을 자기가 깨달아서 아주 삼가 해야 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이것 삼가지 못하는가? 공연히 신앙에 그 사람 만나면 믿음이 떨어지고, 그 사람 만나면 세상에 들어오고, 그 사람 만나면 근심 들어오고, 하나님과 멀어지고, 이런 것을 알면서도 그 사람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재미가 있습니다. 그 사람 사귀면 재미가 있습니다. 악에 재미가 있다 말입니다. 죄를 짓는데 재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멀리 하는데 재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요런 말 조런 말 해 주는 것, 또 와서 자기를 ‘아무것이가 요렇다 아무것이가 조렇다’ 그렇게 말해 주는 것, 그것 가지고 자기 믿음 손해가기는 싫지마는 ‘야, 네게 대해서 누가 이렇게 생각하더라. 아무것이 이렇다.’ 자기에게 해치는 말이 아닌 것 같지마는 그 말 한 마디를 들음으로써 자기에게 그만 믿음을 절단을 내 버립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은 보면 ‘그 사람이 자기를 이렇게 해치는 말을 하더라’ 그러니까 요 사람이 그 말 한 마디 딱 듣고 난 다음에 ‘그 사람이 왜 나 해치는 말 할꼬?’ 하니까 그 사람에게 대한 좋은 마음이 가지지 않고 싫어하는 미운 마음이 가져진다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 속에 무엇이 없다 했습니까? 성경에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에게 뭣이 없다 했습니까? 여러분들이 이렇게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헛일입니다. 살인하는 자는 그 속에 뭣이 없다 했습니까? 그 속에 영생이 없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영생 없다 말은 벌써 성령 떠났다 말입니다. 자기 영 속에는 성령이 계시지마는 그 마음과 행동 속에는 벌써 성령이 떠났다 말입니다. 이러니 무슨 구원이 있겠습니까?

내가 그 사람 나는 일만 기억하지 사람은 기억지 않습니다.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에게 가서 뭐라고 말할까요?’ 이러기 때문에 `내가 분명히 그 말을 안 했는데 그 사람에게 내가 그 말을 했다고 그 사람이 그것을 발표를 하니 내가 안 한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 내가 입으로 내가 그런 말 전연히 안 했는데 네 입으로 그 사람에게 대해서 그런 말 했다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사람이 지금 흥분해서 하니 내가 안 했는데 그 사람에게 내가 말한다고 그 사람에게 가서 말을 했으니 그 사람을 네가 만나거든 그 말을 누가 하더나? 나는 하지 안했는데 그런 일도 없고 그런 말도 안했는데 그 말을 내가 한다고 너한테 가서 하는 그 사람이 막 바로 너를 죽이는 사람이다. 그것을 네가 찾아서 그 사람이 너 죽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찾아서 내가 정말로 하더냐? 나한테 대면을 해서 그런 말이 없는데 말했으면 그 사람이 너 평생 죽일 너 원수라는 것을 네가 알아야 된다.’ 그것이 원수입니다. 그래서 죽는 일 많습니다. 공산주의가 해나가는 일은 전부 다 그런 일들입니다. 알겠습니까? 그것이 저 죽이는 줄 알아야 되지 아무나따나 제 귀에 제 눈앞에 와서 자기를 위하는 듯이 말하면 ‘아이구, 그 사람이 나를 위해?’ 자기를 해하는 듯이 말하면 ‘그 사람이 나를 해해?’ 어리석습니다. 그래 가지고는 못 삽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딱 말해 놨습니다. 이런 방편을 쓰든지 저런 방편을 쓰든지 만일 그 사람이 너를 해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말을 너에게 갖다 넣어줘서 네가 그 말을 들음으로 ‘아이고 그 사람이 나를 해치니까 내가 그 사람에게 잘못한 일 있는가 보다. 내가 그 사람에 잘못된 것 있는지 그것을 내가 찾아야 되겠다. 하나님이여 내가 잘못된 것이 뭐 있습니까? 그 사람의 마음을 섭섭하게 했는가 보다.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겠다. 내가 그 사람한테 더 친근히 해야 되겠다.’ 이러면 그 말을 들음으로 도리어 그 사람이 믿음이 좋아지겠습니까? 나빠지겠습니까?

예를 들면 갑이 있는데 을이라는 사람이 자기에게 와서 말하기를 ‘야, 저 병이라는 사람이 네게 대해서 너를 이렇게 해하고 너를 삣고 깎고 너를 이렇게 아주 해하더라.’ 그런 말을 갑에게 와서 해 줍니다. 갑이 그 말을 듣고 믿음에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유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손해 보는 것은 어떻게 하면 손해 보겠습니까? 남반에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손해 봅니까? 갑이 그 말을 듣고 ‘그래, 그 사람이 나를 그래? 그것이 왜 그럴꼬? 그자가 왜 그럴꼬? 그놈이 왜 그럴꼬? 그 사람이 왜 그럴꼬?’ 그로 인해서 자기에게 악이 들어갑니다. 악이 들어가면 벌써 독침을 맞았습니다. 작은 것으로 어디든지 퍼뜩 찔러버리면 그만 그 사람 죽는다 그 말입니다.

그래 놓으니까 자기 속에 성령을 쫓아내는 미움이 생겨집니다. 대적이 생겨집니다. 그런데 을이 갑에게 와서 그러는데 갑은 그러면 손해만 볼 수 있습니까? 유익 볼 수는 없습니까? 여반에 말해 보십시오. 유익 볼 수는 없습니까? 유익 보는 길은 없습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유익 보는 길은 없습니까? 똑똑히 크게 한번 말해 보십시오. 있습니까? 있는데 어떻게 하면 됩니까? 어떻게 하면 유익을 봅니까? 자기 잘못을 찾고 또 자기 잘못을 찾아 잘못이 없으면 하나님에게 내가 뭣을 잘못했는지 자꾸 찾으니까 그 사람이 조심을 하게 되고 그 사람이 자꾸 겸손하게 되어지고 또 그 사람을 위해서 ‘내가 아마 그 사람에게 무엇인가 잘못이 있는데 찾지 못하니 내가 그 사람에게 더 친근히 해야 되겠고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겠다.’ 갑이라는 사람이 을이 와서 그 말함으로 인해서 병에게 대한 조심도 하고 더 친근히도 하고 위해서 기도도 하고 그러면 그 을이 그래 하므로 인해서 믿음에 손해를 봤습니까? 믿음에 유익을 봤습니까? 믿음에 유익을 봤습니다. 우리는 요래 살아야 됩니다. 요래 살면 무엇이 와서 뭐라고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왜? 억울한 말 듣고 참으면 하늘에 복 많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저 사람이 아주 저렇게 억울한 소리를 듣고도 견딘다.’ 하는 그런 것은 그 사람이 참 복 있는 사람으로 사는 방편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삽니다.

그런고로 자기가 그 일을 감당치 못 할 사람이면 자기 믿음에 손해 가는 손해를 보이는 그런 사람을 조심해서 접하지 안해야 됩니다. 이 사람이 돼서 장성하면 어떤 사람이 장성하냐? 어떻게 할지라도 이제 말한 대로, 두 번째 말한 대로 그 사람으로 살면 무엇이 일어나도 모든 것이 합력해서 자꾸 믿음에 유익만 됩니다. 자꾸 복 받는 사람만 됩니다.

그러기에 아주 사람 접촉을 조심을 해야 됩니다. 사람 접촉 조심은 안 하고 우선 재미있다고, 얘기에 재미있고, 남 험담하니 재미있습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이웃끼리 재미가 있고 친근하게 지내니 저 무슨 재미일까?’ 서로 남 허는 속삭거리는 그 재미입니다. 또 믿음에 손해 갈 세상 얘기 재미입니다. 암만 재미 봐 봤자 망칠 것밖에 없는 그런 재미입니다. ‘왜 저 사람이 저 사람을 왜 저래 싫어할꼬?’ 어떤 사람은 믿음에 유익된 말 해 주니까 자꾸 싫습니다. 믿음에 유익된 말 해 주니까 자꾸 멀리 하고 싶고 그렇습니다. 이번에 총공회 때도 보니까 모두 자기 믿음에 유익된 말 한다고, 모두 책망해 준다고. 자기를 자꾸 책망 한다고 전부 원수가 다 됐습니다. 책망한다고 자꾸 책망한다고 전부 원수가 다 됐습니다. 책망하면 참으면 복 있을 것이고 참 잘못된 것이 있는데 책망하면 고치면 복 있을 것이고 그거야 전체가 복덩어리인데 왜 그것을 화로 자기가 만드는지? 그것을 벗어나고 일어서야 믿는 사람이 힘도 얻고 담대도 가지고, 이리 가도 유익 저리 가도 유익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이 형편에서도 수입의 결과를 보고 저 형편에서도 수입의 결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해결하지 안하고 제가 선한다고 사람들 보기에 ‘그 사람은 좋다.’ 남한테 할 말 안하고 그저 이 사람은 남 듣기 싫은 소리 안하고 남 좋도록 하는 그것은 그것이 몸에 기생충 같은 그런 인간입니다. 기생충 같은 인간. 그것은 사람에게 살살살살살 요래서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것으로 하고 그 사람 망할 길을 가도 그 사람 듣기 싫은 소리 안하고 요러니까 사람들은 그 사람을 도덕가라 하고 얌전하다 좋다 하지마는 그 속에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죄를 미워하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그것이 속에 하나도 없는 악인입니다.

몸에 기생충은 있어야 있는 줄도 모릅니다. 요새 신문 보니까 디스토마라 하는 벌레는 사람 속에 들어가면 빠르면 오 년 그리 안 하면 칠 년 돼야 죽는다는 것인데 그 동안은 양 사방 돌아다니면서 돌아다녀도 그게 어디 보입니까, 수술도 못 합니다.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 혈관으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양 사방 돌아다니니까. 그래서 그것으로 인해서 단번 죽든지 안 죽으면 바짝 말라 가지고, 칠 년만 안 죽고 있으면 칠 년이 되면 그 벌레가 수명이 칠 년이기 때문에 죽어버립니다. 죽어버리면 그만 그다음에 괜찮습니다. 그것은 사람 인체 내에서는 번식이 안 되기 때문에 이렇지마는 눈이 보이지도 안 하고 돌아다니면서 갉아먹어서 사람을 절단을 내 버렸다 말입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인간이 사람들에게 그저 모지지 안하고 이렇게 둥글둥글하게 좋은 것같이 이렇게 하는 것은 자기에게 손해 볼까 싶어서, 자기 해칠까 싶어서, 자기에게 깎일까 싶어서. 자기에게 마찰 있을까 싶어서. 얼마나 약은 인간입니까? 얼마나 그 악한 이기주의입니까? 얼마나 자기중심의 인간입니까? 이것을 악인인 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은 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그렇게 이적과 기사를 하는 분이 왜 못 박혔습니까? 왜 미움을 당했습니까? 모든 사람이 다 죽어야 된다고 왜 그렇게 미움을 당했습니까? 언행심사가 그들을 참 살리고자 하는 중심에서 자꾸 아닌 것을 이와 같이 말을 하니까 미움을 당하고 그게 쌓이고 쌓여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래 우리는 자기 비위 맞춰서 자기에게 알랑알랑한다고 좋아하는 그런 인간은 그 사람도 죽이고 저도 죽습니다. 우리는 사람 접촉을 삼가 하는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할 말은 원수를 품어도 말을 안 할 수 없어서 그 말을 하고 또 그 사람을 친근하게 하려고 오만 것을 희생을 하고, 그 사람에게서 해가 오는 것은 하나도 상관하지 안하고 말만 하니까 ‘저 사람은 등신이라서 저 해하는 것은 하나도 모르고 남을 해하는 것만 안다.’ 해하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지마는 제가 해하는 것은 상관치 안한다. 모르는 척하고 하나님이 갚아줄 줄 알고 지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자기를 해한다고 하는 그 옳은 말 바른 말 옳고 바른 일로써 마찰되는 것 그것은 안 할 수가 없는 것이라. 그것이 선지자들입니다. 그게 의인들입니다.

2. 하나님을 조심해서 접촉할 것

그러기에 사람 접촉을 우리가 얼마나 조심하고 그보다 접촉을 조심할 것은 하나님 접촉입니다. 하나님에게 대해서 아무나따나 이것은 천치 바보에게 말하듯이 무슨 말이든지 함부로 하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함부로 생각하고, 감각 없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하나님에게 조심할 줄 모르고, 사람도 잘난 사람에게 대해서 말할 때에 아무나따나 벌로 거짓된 말을 하면 그 사람이 듣습니까? 그런 말을 하면은 이 세상 사람들은 안 들어줍니다. ‘고약한 사람, 네가 나를 바보로 아느냐? 천치로 아느냐? 네가 이런 말 하는 것은 내게 대해 모욕을 주는 것 아니냐? 내가 그것을 모르는 줄 아느냐? 네가 나를 속일 줄 알고 하느냐?’ 당장 그 말로 가지고 서로 적이 돼 버립니다.

믿는 사람도 좀 지혜 있고 신앙의 사람들은 그 말할 때에 ‘허 허’ 좋아해도 속으로는 ‘요 사람에게는 요게 들어 있기 때문에 요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구나. 요게 들어 있으니 요것을 지금 당장 말하면 복수로 알 터이니까 말하지 안하고 속에 감추어 있어도 어떤 기회가 있으면 요것을 뽑아줘야 되겠고 요것을 죽여줘야 되겠구나. 이 요소가 들어서 이 사람을 망치는구나.’ 그것을 낱낱이 기억을 합니다. 딱 딱 그것을 기억합니다. 그것이 뭣이냐? 설교로 나옵니다. 설교자는 그것이 설교로 나옵니다. 권찰은 그것이 그 사람을 권면하는 데에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도 이러한데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하나님에게 대해서 조심하는 것은 자기가 무슨 엉큼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하면 하나님을 바보로 아는 사람이입니다. ‘내가 이것을 하나님이 보고 계실 터인데 이것을 자백하지 안할 수 없다. 주여, 내가 이것을 잘 못했습니다’ 자백을 합니다. 자백하는 것은 뭘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야, 너 그것을 고쳐야 복이 오지 그것 고쳐야 안 되겠느냐?’ 하나님 상대하다가 ‘아이고, 내가 잘못됐습니다. 내가 이것 고치겠습니다. 이것을 고치게 해 주옵소서.’ 복 달라 소리는 못하고 ‘이것 고치게 해 주옵소서.' 그 기도만 하고 마칩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을 바로 상대하는 사람은 자기가 자꾸 깨끗해집니다. 자꾸 고쳐집니다. 하나님을 목석같이 하나님을 아무나따나 상상 인물로 중들이 부처 생각하듯이 그렇게 생각하는 하나님을 접하는 것을 그렇게 조심 없이 하는 사람은 참 복 받기가 힘듭니다. 하나님 접촉을 제일 조심하고 그다음에는 사람 접촉을 조심해야 됩니다. 이 두 가지를 조심해야 되는 것을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그 말은 악인의 꾀를 좇는 것은 악인을 악인으로 모르고 친근히 하는 것이요, 악인의 꾀를 좇는 것은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배반하는 일입니다. 그 한 마디에 하나님께 대한 것과 사람에게 대한 것 그 둘이 한 마디에 다 들어서 있습니다.

3. 성경에 대한 것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 접촉을 조심하고 그다음에는 성경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에 대한 것을 저 먼저 말해 줬는데 몇 가지입니까?

1) 성경을 읽는 것

성경을 읽는 것은 뭣 하는 것이라 했습니까? 소개해 주는 것.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시라, 진리는 이런 진리라, 이렇게 하나님과 진리를 나에게 소개를 해 줍니다.

2) 성경을 연구하는 것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여기저기에 있는 성경을 종합을 해서 한 곳에 연결시켜서 연구하는 것입니다. 연구하는 것은 연구하면 연구가 뭣 한다 했습니까? 하나님을 찾게 해준다 했습니다.

3) 성경을 명상하고 묵상하는 것

성경을 묵상하고 명상하는 것은 한 성구를 고요히, 또 그 성구와 나와, 또 그 성구와 세상과 하나님과 이 셋 생각하면서 자꾸 성구를 생각하고 생각하고 거기 대해서 명상하는 것. 그것은 뭣 하는 것이라 했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4) 성경으로 기도하는 것

성경으로 기도하는 것은 뭣이라 했습니까? 하나님을 사귀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 교제하는 것, 하나님 사귀게 하는 것입니다.

5) 성경을 지키는 것

성경을 지키는 것은 뭣 하는 것이라 했습니까?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깨달은 대로 지키는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섬기다가 인내하지 아니하고 그만 계속하지 못하고 중단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 했습니까? 하나님 섬기던 일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섬기다 그만 하나님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게 막 바로 하나님 섬기다가 하나님 배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배반해 놓고 또 하나님 부르고, 배반해 놓고 하나님 부르고 우리가 배반인 줄 알고 ‘내가 주를 배반 했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 섬기는 것인데 그러다가 말씀대로 행하던 그것을 저버려 버리고 그 일을 그 신앙생활을 중단했으면 그것이 하나님 저버린 줄을 알고 인내하는 것이 계속 하나님 섬기는 것인 줄 알아야 됩니다. 저버린 것인 줄 알고 저버린 것을 자복을 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되겠습니다.

① 하나님 때문에 진리 때문에 손해 보는 것

그러다가 하나님 때문에 진리 때문에 자기 소유나 자기 몸이나 자기 목숨에 대해서 손해를 보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또 하나님과 진리대로 하나님을 섬기고 진리대로 하려고 함으로 자기가 쓰여져서 없어지는 것, 이래 없어지나 저래 없어지나 없어지는 그게 뭣입니까? 그게 뭣이지요? 없어진 것입니까? 그것이 누구의 것 된다 했습니까? 그것이 주님의 것 됩니다.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주님이 주님의 뜻대로 썼으니까 주님의 것 됐습니다. 주님 때문에 손해 봤으니까 그것 주님이 책임질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주님의 것 됐으면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지요. 하나님의 것 됐지요. 참의 것 됐지요. 온전의 것 됐지요. 진리의 것 됐지요. 그러면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하나님의 것 됐으면 없어졌습니까? 내 것이 하나님의 것이 돼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보관시켜서 당신이 딱 잡았고 당신이 지금 책임졌는데, 진리의 것이 됐는데 진리의 것을 죽이는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가 진리대로 쓰면 죽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썩을 것으로 심는 것입니다.

② 다니엘의 사자 구덩이

그러다가 마지막에 주님과 진리를 인해서 생명을 뺏기든지, 주님과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해서 다니엘이 기도를 양보하지 않기 위해서 만일 사자구덩이 들어가서 죽었습니다. 사자구덩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소유와 몸과 생명이 완전히 주님의 것 다 된 것입니다. 주님의 것 다 된 것이오 완성입니다. 또 살아나왔으니까 아직까지 미결이 또 있습니다 다니엘에게는. 그러면 그것이 다리오 왕이 그래도 안 듣고 그래 한 것이 다리오 왕을 사랑한 것입니까? 거절한 것입니까? 다리오 왕을 다니엘이 해했습니까? 유익을 줬습니까? 다리오 왕을 살렸습니까? 죽였습니까? 살렸습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결론)

1. 지성적인 신앙과 구비한 신앙

그러면 지금 말한 것이 몇 가지입니까? 세상에 과학자들도 나는 모르지마는 비행기 같은 것은 여러 수백 가지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 구비해서 다 조립이 돼야 그것이 날아가지 그리 안 하면 못 날아갑니다. 그런 것도 그런데 예수 믿는 것은 우주와 영계를 상속받을 이 사람을 완전케 하는 것인데 자꾸 하나 알면 그다음 것 잊어버리고 그래 가지고 뭣이 됩니까, 이제 말한 것이 일곱 가지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꾸 생각하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대해서 이렇게 하면 그 사람이 시절을 좇아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청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신앙생활에 막힐 것 뭐 있겠습니까? 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지성적인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이래서 구비한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성공이 있지 그리 안 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씩 지켜 나가면 하나님이 지키게 해 주십니다. 하나씩 지켜 나가면 지키게 해 주십니다.

2. 우리는 사람을 주의할 것

제일 첫째 우리 할 것이 뭣인가? 사람 주의할 것. 사람을 주의해서 딱 만날 때 그 사람이 말할 때 ‘아이쿠, 이 말은 나를 죽이는 말이로구나.’ 그만 그 사람 말할 때에 달콤하게 좋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고, 그 사람 말하는 것을 당장 원수 같이만 생각할 것 이 아니라 말하는 속에 작용이 있어야 됩니다. ‘아, 이 사람은 내게 손해를 보이는 말을 하는구나. 이 사람은 나에게 유익을 보이는 말을 하는구나. 요 사람이 요 말 하는 데는 내가 요렇게 하면 내가 유익이 되겠구나. 요 사람이 요 말 하는 데는 내가 요렇게 하면 내가 손해가 지겠구나.’    

자기를 칭찬하는 그 말을 하는 데에 거기서는 자기가 유익을 보려 하면 어떻게 하면 유익을 보지요? 저 김선생? 겸손하면? 네, 그것도 한 오십 점은 됩니다. 자기를 칭찬할 때 겸손한 사람 되면 유익된다 그것도 오십 점은 됩니다. 자기를 칭찬할 때에 정말로 자기가 칭찬받을 것이 있는가 한번 좀 해부를 해 봐야 됩니다. 그 일에 대해서 그 일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혜는 열 점을 줬으면 자기가 잘못해서 오십 점 떨어뜨려 버리고 오십 점밖에 못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가룬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은혜 주시는 그것을 그대로 바로 완성한 자가 없습니다. 완성하지 못하고 하나님 은혜를 가로 막았습니다.

그 사람한테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주여, 나는 주님이 나는 이렇게 이랬는데 그것을 뒤에 돌아보니까 이렇게 내가 하나님 일을 방해한 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를 선으로 보는데 나는 참으로 껍데기를 발라맞춰서 사람에게 지나친 평가를 받는 이런 자이니 속은 그 죽음이 가득 찼고 겉어머리는 번들번들하니 내가 참으로 회칠한 무덤 같은 인간입니다.’ 요것을 자기가 논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 그 자인 것을 자기가 발견을 하면 그 사람은 그로 인해서 유익이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그러니까 제가 참말로 그런 자인 줄 알고 우쭐거려서 그것을 제가 받을 자인 줄 알고 우쭐하고 ‘이 사람은 나를 이렇게 좋게 하니 좋은 사람이라’ 하는 그 자는 죽고 또 죽고 죽고 또 죽었습니다. '죽고 또 죽고 뿌리까지 마른 열매 없는 가을 나무라' 희망이 전혀 없습니다 하는 것처럼 그렇게 인간이 자꾸 자기를 죽이고 죽이고 자꾸 죽입니다.

3. 왜 우리 믿음이 흔들려지느냐?

오늘 아침에 이 말씀을 하는 것은 우리가 여기에 입각하지 안했기 때문에 우리 믿음이 자꾸 시들어집니다. 우리 믿음이 자꾸 흔들려집니다. 왜 우리 믿음이 흔들려지느냐? 하나님을 생각지 않기 때문에, 인간에게 대해서 조심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에 대해서 내가 바른 접촉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거기서 나오는데 나올 것이 뭐 있습니까? 이것보다 더 진미가 나오는 것은 뭣입니까? 이것보다 아주 고도의 영양이 나오는 것이 뭣입니까? 주의 피와 살을 먹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설교: 백영희목사(1981. 3. 12. 목 새벽)
-편집: 김반석목사(2013.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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