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동행하더니

2011.04.10 20:41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선지자선교회
본문 : (창5:21-24)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드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서론)

1.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 말씀대로 살고 그리고 또 하나

우리의 신앙을 전체적으로 말하면 신구약 성경 말씀을 호리라도 틀림이 없는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이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 하나 더 있다고 하면 주님이 내게 이루시는 것을 내가 이해하려고, 내 주관에 맞도록 할려고 애를 쓰지 말고, 당신이 그 이루시는 것이 어떤 범위에서 이루시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주관을 기준해서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많고 또 오해할 만한 그런 것도 많고 또 섭섭한 것도 많고 낙방할 만한 것도 많습니다.

그것은 다 어디서 생긴 것인가 하면 주님을 믿는 믿음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자기 주관에서 생겨진 폐단들이요 그것이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옛사람의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우리가 확실히 믿어야 하고, 또 그 다음에는 이대로 살려고, 이 명령에 이 말씀에 복종해서 이대로 살려고 범사에 애를 써야 하고, 그러면 두 가지입니다. 그러고 나서 한 가지 더 있는 것은 내 주관에 맞추면 오해 될 만한 일도 있고 또 원망, 불평, 낙망할 만한 그런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주관대로의 해석이지 전지자의 해석이 아니고 전체면을 다 관계를 가져서 전체면을 두고 비판하고 평가해서 계획한 그것이 아닙니다.

2. 주님의 인도는 전 존재에 상대해서 흠 없는 길로 인도

그러나 주님은 시간적으로나 종류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모든 존재, 물질계와 영계만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까지 전 존재에 상대해서 흠 없는 길로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바라보라고 하고 당신에게 맡기라고 하고 맡기면 그런 것도 다 맡기는 것이 맡기는 것입니다.

(본론)

1. 모르드개

모르드개에게 하나님의 뜻을 행해서 뜻대로 하기 위해서 불의에 가담하지 안하고 의롭게 사는 그 결과가 박해뿐이지 아무 유익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하만이 나무 오십 척에 달아 죽이기로 딱 결안을 한 그 전날 밤에 하나님이 모르드개에 대해서 그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경에 있는 것을 우리가 다 보고 있습니다. 범사가 그렇습니다.

2. 폄론하지 말아라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소견은 매우 좁고 짧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자기의 것이나 다른 사람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게 속단 속평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제 보는 것은 그저 한두 가지에 지나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거기에 따라서 비판하고 평가하나, 원대하시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는 광대하심을 가지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네가 무슨 일이든지 폄론하지 말아라 다른 이에게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폄론하지 말아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3. 나사로와 부자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는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우리가 성경에서 나사로 같은 사람과 홍포 입은 부자와 그 둘을 주님이 이용해서 증거를 하셨는데, 그 두 사람의 생활은 같이 한 곳에서 살면서 아주 대조적인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깊고 영원함을 누가 알아서 나사로가 복 되다 홍포 입은 부자가 비참하다 말을 했겠습니까?  

4. 요셉

요셉을 본대도 요셉이 그와 같이 아주 험악하고 억울한 길을 걷게 되는데 그때 그 토막을 보고 누가 요셉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하나님을 바라고 복종하는 그 생활이 복되다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결말이 우리에게는 보였지마는 그때 사람들은 못 봤습니다.

5. 욥

그런고로 우리는 좁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욥에 대해서도 당신은 그런 광대하신 계획이 있어서 후배 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 있어서 그렇게 저렇게 이끌어서 그런 순서를 통과케 하시는 당신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계시 기관의 인물로 그 욥을 등장해 가지고 우리에게 거울이 되고 우리에게 구원 도리가 되도록 그렇게 하셨습니다.

6. 노아

그러면 욥만이 아니고, 요셉만이 아니고, 노아만이 아닙니다. 노아의 가는 길은 홍수 내렸을 그때만 쓰여 졌지 그 전에는 하나도 쓰여 지지를 안 했습니다.

7. 심판 너머 영원을 표준

그러면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 너머 것을 근본으로 삼고 그것을 위주로 해서 우리를 관리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고 처리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이 좁아서 그저 이 세상에 있는 자연 은총의 것은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면서도 우리 표준은 항상 이 자연 은총이 표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원에 유익한 것을 우리가 지식적으로 알아서 '영원에 유익한 것이다. 이 길이 영원에 유익하다.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영원에 유익하다' 확실히 판정되어지는 그것도 영원을 위해서 살지 못하고 영원을 해치는 현실을 현실대로 자기가 판정해서 걸어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또 영원을 표준해서 영원에 유익이 되도록, 영혼이 아니고 영원에 유익되도록 하면 이 세상의 자연 은총의 것도 자기에게 가장 유익되게 해 주시는 일이 됩니다.

8.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그러면 유익되게 해 주시는 것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마6:33)’ 말씀하는 것은 무엇을 먹을 것 입을 것을 더 풍성하게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너희들에게 더한다는 말씀은 이 자연 은총의 것은 영원한 은총의 것을 위하는 것들인데 영원한 은총의 것을 위하는 자연 은총으로서 가장 너에게 적절하게 해 주겠다, 더 좋고, 이 자연 은총이 영원한 은총을 위해서 가장 유익되게 더 좋게 해 주겠다, 그 면을 표준 평가해서 더하여 주시겠다 하는 것이지, 그 물질이 자기를 해하는 것도 있고 죽이는 것도 있고 망치는 것도 있고 하나님을 배반케 하는 것도 있는데, 그런 것으로, 우리의 주관 판단 대로 그런 것으로 더해 준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9. 소망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때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을 상대해서 소망했던 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때에 놀랍니다. 원망 불평하지 안하고 이루어지지 안할 때에 놀라는 것은, 분명히 주님이 하시는 일은 과오가 없는데, 실수가 없는데, 이루어지지 안하는 것을 보니 내가 소원해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내 비판과 평가와 모든 결정보다 당신의 결정은 너무도 얼토당토 안하게 거리 멀고 정반대되니 여기에서 자기는 굴복하고 자기를 더욱 더 부인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10. 주님 외에는 우리를 좋게 해 줄 실력가가 하나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믿으므로 그분만 바라야 됩니다. 그분 외에는 우리에게 좋게 해 줄 실력가가 하나도 없습니다. 또 좋게 해 줄만한 우리를 책임질 자도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를 사랑하는 자도  없습니다. 또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할는지 아는 자도 없습니다. 실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알지도 못하고 또 우리를 그만큼 끝까지 사랑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 외에 딴것을 바라볼 것이 없습니다.

11. 성경 말씀으로 자기 지식을 삼을 때

똑똑히 성경 말씀을 가지고 자기 지식을 삼을 때에 성경에는 빠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바라봤던 것, 이것을 의지하느냐? 이것의 실력은 이쯤 되고, 이것을 네가 바라보느냐? 이것의 끝장은 어디까지이고 하는 것을 낱낱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 알고 보면 주님 외에는 바라볼 이도 없고, 주님 외에 믿을 이도 없고, 주님 외에는 내 모든 것을 맡길 만한 이도 없고, 또 그분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따져 보십시오. 하나님을 보면 그분 외에 의지할 만한 것이 있는가? 없습니다.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그분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고 그분 외에는 복종할 것이 없습니다. 지도를 받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 지식으로 삼지 안하고 배암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아서 이 모순 속에서 혼돈돼 가지고 그런 것이지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으면 자기는 지식으로 삼은 것만치 당신 외에는 믿을 이가 없고. 당신 외에는 바라볼 이가 없고, 당신 외에는 내 모든 것을 당신에게 다 맡겨 놓을 이가 없고, 당신 외에는 의지할 이도 없고, 당신 외에는 복종할 이도  없습니다.

12. 아브라함의 신앙

이렇게 하고 난 다음에 당신이 내게 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저 아브라함과 같이 얼마든지 참고 기다리고, 만일 내가 죽을 때에 '그 일이 설마 죽을 때야 되겠지' 했는데 죽을 때에도 이루어지지 안했을 때에 아브라함은 그것도 '죽을  때에야, 설마 죽기 전에야 되겠지' 하는 그것도 자기가 버려야 할 자기의 주관 옛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닫고 믿음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뜨면서 '내가 바라는 이 가나안보다 더 좋은 영원히 요동치 아니할 그 가나안을 나에게 주실려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약속은 변하지 안하니까 그 약속을 믿고 보니 그렇게 밖에는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의롭다 하셔서 사람이 부활 후에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그 소망을 아브라함을 인해서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해서 우리는 그 소망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아브라함이 우리의 믿음의 조상 된 것은 이 세상에서 그를 향하여 그를 상대하여 영원을 준비한 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이 또 그분을 상대해서 영원을 바라본 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준비, 하나는 바라보는 것 그 두 가지가 아브라함의 신앙이었습니다.

13. 성경 말씀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지식인 것을 알고 인정

우리가 신구약 성경 말씀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지식인 것을 우리가 알고 인정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필연적으로 이제 말한 대로 당신만을 믿고, 당신만을 바라고,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당신만 의지하고 당신에게만 복종을 하는 이 생활만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 필연한 일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당신의 지식을 주셨는데, 그 지식과 이 세상 지식과 볼 때에 얼토당토 안 하게 정반대되는 그런 지식이 많은데, 그 지식을 차차 차차 하나님의 지식을 가지고서 거기에서 보강을 하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거기에 대해서 증거 하는, 성경 안에 있는 내적 증거로서 이런 증거 저런 증거를 종합 해 볼 때에 배암의 지식이라는 것도, 이 지식이 다 무책임하다는 것도, 거짓부리라는 것도 다 알게 됩니다.

14.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

그러기에 하나님의 지식은 이는 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지식을 영생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영생이라. 아버지의 말씀은 사람이 한 번 행하는 그것이 영원히 살게 되는 그것으로 완성이 되어진다는 그 사실을 주님은 믿었습니다.

15. 하나님과 우리와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것이냐?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사모하고 궁구하고 이 말씀에 따라서, 이 말씀 모시고, 이 말씀에게 복종하고. 그 외에는 지도자가 없습니다. 이 말씀 모시고 이 말씀에게 복종하고, 또 우리와 직접 교제를 가지는 하나님, 만유주 하나님이 우리와 교제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큽니까? 그 하나님을 성령이라 그리스도의 영이라 말씀했는데, 그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는 것이 어떤 것이 동행하는 것이냐?

주님이 가르쳐 주시기를 성령이 오면 주님에게 대한 것을 더 똑똑히 가르치고 내 것을 가지고 말한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성경을 더 믿어지게 하는 것. 더 깨닫게 하는 것. 더 갈망하게 하는 것 또 성경대로 행할 소원을 가지는 것. 더 강한 소원을 가지게 되는 것, 행해지는 것 이것이 전부 다 성신의 감화입니다. 성신의 감화.

성신의 감화를 이 외식자들은 다른 형체로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하지마는 성령의 역사는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지식을 우리에게 더 확고하게 또 구비하게 다 알도록, 믿어지도록, 바라보도록, 성경 말씀을 믿게 하는 것이 성령의 감화입니다.

16. 성경 말씀과 성령의 역사

또 성경 말씀과 성령의 역사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가 점점 깨닫고 믿고 의지하고 힘입어서 이 대속의 공로를 기념하는, '이런 대속을 나에게 입혀 주셨다' 그 대속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 대속을 집어던지지 안하고 대속을 보여 주는 것, 대속을 기념하는 것. '내가 올 때까지 기념하라'

17. 성만찬 기념

성만찬에 기념하라는 그 성만찬 기념이 예수님의 대속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을 기념하는 것이 사죄를 기념하는 것이요, 칭의를 기념하는 것이요, 화친을 기념하는 것이요, 이것이 다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사죄를 자랑해. 천하가 다 달라 들어도 '주님이 날 이렇게 사죄하셨다' 하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 그것이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죄를 기념하고 칭의를 기념하고 화친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18. 감사와 자복과 도고의 필연적 생활

그러다 보니까 주님 앞에 자꾸 감사가 연달아 나오고, 또 그러다 보니까 주님 앞에 너무 잘못한 것 있으니까 자복이 연달아 나오고. 또 그러다 보니까 모르는 것 너무 많고 알아야 될 것 너무 많기 때문에 어느 스승에게 가서 물을 수가 없어.

내 안에 계시고, 밤에도 나와 같이 계시고, 바다 가운데에서도 나와 같이 계시고, 사자 굴속에서도 나와 같이 계시고, 언제나 떠나지 안하고  나와 같이 계시는 선생은 한 분뿐이신, 참 선생은 한 분뿐이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까 그분에게 안 물을 수 없어.

이래서 이것저것을 묻다 보니까 그것을 가리켜서 도고하는 기도라 이랬습니다. 도고하는 기도라. 이러니까 자꾸 당신에게 간구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구하는 자마다 다 얻으리라(마7:8)’ 말씀했으니까 내가 알고 이뤄지지 못하니 그분에게 기도하면 그분이 주신다고 했으니까 안 할 수 없다 말입니다.

이거 다 필연 생활입니다. 필연 생활. 처음에 일호를 시작하면 이호는  필연적이요. 일호와 이호를 시작했으면 삼호는 필연적이요, 신앙생활은  필연적입니다. 이것 다른 사람의 말 듣고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서 내정으로써 필연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19. 생명은 자라는 것

그러기 때문에 무슨 조립된 기계적인 것이 아니고 뭣을 서로 합해서 회의적인 것이 아니고 전부 생명적입니다. 몸에 생명이 있으면 그것이 차차 차차 커지고 하나씩 둘 씩 자꾸 커집니다. 어린 아이가 생명이 속에 잉태될 때에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 생명이 들어서 하나씩 둘씩 필요한 것을 자꾸 구비한 것이 태중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다가 열 달 동안을 구비하니까 그만하면 세상에 나올 수가 있다 하는 때가 될 때에 세상에 나왔고, 세상에 나와서 또 그 생명이 세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살면서 자꾸 마련하는 것이 그것이 무궁세계에 가서 살 수 있는 것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광대한 무궁세계에 가서 살 수 있는 것을 마련하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20. 이 세상에서 무궁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이 세상이라는 이 방에서 문 열고 무궁세계로 문 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마음에 조급하기는 어서 거기에서 활동하고 싶지마는 하나님께서 때가 있기 때문에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계6:11)’ 하셨습니다. 그라면서 횐 두루마기를 주시면서 너는 이것 입고 기다리고 있거라, 예수님의 대속만 네가 거기에서도 자꾸 입고 자꾸 먹어라 그 말입니다. 이러다가 때가 되면 다시 그 모든 영과 혼들을 데리고 와서 자기의 가졌던 이 물체 이것도 신령한 것으로 변화시켜서,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영원 한 것으로 변화를 시켜서 다시 무궁세계를 향하여서 가게 되는 것입니다.

21. 자기를 부인

그러기 때문에 주님이 처음에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면 구원은 헛일입니다. 자기는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자기인데 그 자기를 우리가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우리가 없는데 어디서 제일 알기가 쉬우냐 하면,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과 대립이 될 때에, 하나님의 그 하시는 역사와 자기 주관이 대립이 될 때에, 거기에서 옛사람을 알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나에게 좋게 해 주시고, 전지전능자가 좋게 해 주시는데 내 좁은 주관에 비추어서, 주관을 기본해서 원인으로 삼아 가지고서 모든 것을 비판할 때에 이해 안 된다 하는 그것이 옛사람입니다. 낙망 된다는 그것이 옛사람입니다. 원망되는 그것이 옛사람입니다. 불만 불평되는 그것이 옛사람입니다.

또 자기는 주관으로 이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했는데 성경 말씀이 아니라고 할 때에, 그때에 성경 말씀은 전지자의 말씀이요 천지는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는 그런 책임 있는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과 자기 견해가 다를 때에 자기 견해를 으레히 부인해야 되는데 자기 견해와 하나님 말씀의 견해가 서로 대립이 될 때에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라도 자기 주장대로 해야 되겠고, 자기 소원대로 해야 되겠다는 그자가 자기를 죽이는 자기 아닌 자기, 옛사람 자기, 자기를 죽인 자기, 원수 자기 이 자기인 것으로 알아야 될 터입니다.

그것을 부인 하지 못하고 그자가 나서서 자기에게 낭패 지우는 그때에 이놈이 원수라 하는 것을 고것을 딱 이마빡에다가 못을 탁 쳐 놓고서 '이것이 원수다. 이때에 나타난 이 자가 원수라' 그렇게 해서 참 자기를 부인하는 것도 일생 공부입니다. 일생 공부요 일생 노력입니다. 그렇게 단 번에 부인되어지는 것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 부인하면 이미 자기 속에 들어와서 있는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의 능력으로 살려 놓은 산 영이 있습니다. 살려 놓은 산 영이 있으니까 그 영이 이것들에게 방해 받아서 일 못 하는데 이것 방해만 저버려서 이것만 제거해 버리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저버리고 방해하는 것을 저버려도 우리의 이 심신 구원이라는 것은 심신은 세포적으로 되어있고 종합적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이 세포 구원이 단번에 한몫 다 되지 않습니다. 이 세포 구원하고 저 세포 구원하고 자꾸 차차 구원해 나가야 되는데 벌써 구원 할 시기가 다 지나가 버렸고 남은 것이 얼마 안 됐으면 남은 그것이나 구원 하지 지난 것도 한몫 구원되는 것은 아니라 그 말입니다.

그러기에 단번에 주신 도(道)라, 모든 것이 단번 도입니다. 단번 도. 우리의 성화도 단번입니다. 우리의 사망도 단번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자기 부인하는 것이 얼마나 힘 드는지 모릅니다. 그러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은,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천국은 힘쓰는 자가 빼앗는다 그 말입니다.

22. 하나님과 동행에서 성공한 노아와 아브라함

그러면 무슨 힘을 써? 지난밤에 말씀하신대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해 서 제일 중요한 생명 성공을 했습니다. 또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해서 자기의 이 세상적 기업 성공을 했습니다. 제일 부자 됐습니다.

노아보다 더 큰 부자가 어데 있습니까? 또 자기의 자손 성공,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해서 자손 성공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은 혈육의 자손도 자손이지마는 혈육의 자손을 말하지 안했습니다. 혈육의 자손이 아니라 그 혈통이라도 믿음의 자손이 안 된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닙니다. 다만 믿음의 자손들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손 성공을 했습니다. 믿음의 자손의 성공 했습니다. 이러니까 천하에 있는 역사에 있는 모든 믿는 자를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했습니다.

그 위대하고 큰 것이 어데서 이루어졌습니까? 이는 하나님과 동행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노아도 없어질 세상 것들이지마는 그 큰 기업을 전체의 기업을 받게 된 것도 하나님과 동행에서 됐습니다. 사망을 이긴 영원한 생명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 동행에서 이루어졌습니다.

23.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는 방법 일곱 가지

이래서 어제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는 방법을 몇 가지 말했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열 가지를 말했습니다. 또 하나님을 붙들고 놓지 않는 것 일곱 가지 말했습니다.

1)첫째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2)둘째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3)셋째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4)넷째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5)다섯째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6)여섯째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7)하나님께 결과를 기다립니다.(1984, 11, 23 금 저녁 설교 참조)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원하십니다. 이러는데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분노한 것이 마치 일찍 과부된 여인이 그 아이를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키웠는데 키워서 나중에 장가 들이고 보니 그만 달라지니까 거기에서 섭섭하고 일찍 개가 못 한 것이 원통하고 자꾸 생각이 나진다 그것이요. 꼭 같소. 우리와 꼭 같습니다.

당신을 붙드는 방법이 뭐이냐? 당신만 바라고 있는데 당신이 어떻게 버리겠습니까? 우리는 힘으로도 안 됩니다. 강제로도 안 됩니다. 억지로도 안 됩니다. 당신만 바라고 있는 것을 어떻게 당신이 버리겠습니까? 이 일곱 가지는 당신이 나를 놓고 떠나지 못하게 붙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24. 하나님 동행하는 방법 열 가지

당신을 동행하려면 어떻게 하면 동행하는가? 동행하는 것을 우리가 또 말했습니다.

1)그분을 사모하는 것이 동행입니다. 그분을 사모할 때에 당신은 나를 떠나지 안했습니다. 2)내가 진리의 말씀을 내가 떠나지 안하고 그 말씀과 동행하는 것이 동행하는 것입니다. 3)영감과 동행하는 것이 내가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요 4)주님의 대속의 공로의 사죄와 동행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이요 5)칭의와 동행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이요 6)화친과 동행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요 7)주님에게 감사하는 것이 주님과 동행이요 8)주님 앞에 잘못된 것을 자복하는 것이 그분을 안 떨어지려고 하는 것이요, 주님과 우리와 떨어진 것은 우리가 자복할 것을 하지 안 하는 데서 떨어졌습니다. 9)모든 사정을 고하는 도고하는 것이 동행이요 10)당신에게 간구하는 것이 동행입니다.

25. 신인양성일위의 주님이 동행

하나님은 무형의 존재입니다. 신인양성일위로서 인성은 나타나서 볼 수 있겠지마는 부활하신 후에는 그 인성이 보일이면 보이고 안보이면 안 보입니다.

그러면 이 예수님의 지금 우리와 동행은 성령으로 동행하지 신인양성일위가 동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신인양성일위이신 나 위해서 십자가에 대속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나와 지금 동행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8장16절에서 17절인 그 이하에 보면 당신이 부활하신 후에 나타났습니다. 신인양성일위로 나타났습니다. 나타나서 그들이 봤습니다. 손으로 만졌습니다. 만지고도 이것이 꿈인 생시인가 하면서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다했습니다. 그때 신인양성일위 당신이 말했습니다. '

내가' 하는 것은 신인양성일위이신 당신입니다. 일위이신 당신이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같이 하겠다, 너희들이 인간 구원하는 일을 할 때 내가 동행 하겠다, 내가 가르친 말씀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는 데에 동행 하겠다, 사람에게 세례 줄 때에 동행 하겠다' 세례 준다는 말은 사람을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리는 그것이 세례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을 옛사람 죽이게 하는 그 역사 할 때 나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 새사람으로 살게 하는 그 역사에는 나는 떠나지  않는다.

주님과 동행이 어렵지 않습니다. 옛사람 이 놈만 죽이면 주님과 동행이라 하는 것은 그것은, 가시밭 내두고 대로로 가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렇게 사는 것은 대로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능자의 품에 안겨 가지고 가는 것인데 뭐 어려운 것이 있겠습니까? 마귀 이놈이 들어서 모든 혼란을 일으키고 착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옛사람에 대해서 적을 삼는 것은, 옛사람이 그 사람을 붙들고 명예를 위해서 살게 해서 명예 욕심으로 일생을 살도록 하는 그 악령과 악성과 악습이 작용하는 작용이 있습니다. 그것 하는 사람은 회개 못 합니다.

26. 죄인 줄 악인 줄 모른다

자기가 악령과 악성의, 악습의 인도, 옛사람 그놈이 내 마음과 내 몸을  주관해서 살아 가지고 지위와 권세와 명예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그것이 죄인 줄 모른다 그 말이오. 그게 악인 줄 몰라. 그러나 악령과 악성과 악습 그 옛사람이 자기를 붙들고 살았는데 자기를 붙들고 사는 그 생활 가운데에 제일 나쁘고 제일 못되고, 뉘든지 이것이야 말로 아니다 할 수 있는 그 생활을 하게 하는 그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왜? 그 사람은 그렇게 옛사람으로 산 생활이, 그렇게 아무리 천 군데  만 군데로 비추어 봐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거야 틀렸다' 할 수 있는 그 생활한 사람은 그 생활 한 그것이 옛사람이 했다는 그 옛사람을 원수인 것을 깨닫고 발견해 죽이지마는, 자기가 옛사람으로 산 생활이 세상에서 아주 번들번들한 지위나 권세나 재물이나, 그보다도 제일 옛사람이 자기를 붙들고 생활하는 가운데에 제일 해독의 생활이 뭐입니까? 제일 자기가 망쳐지고 제일 나쁜 생활이 뭐입니까?

악령 악성 악습이 내 마음을 붙들고 내 몸을 붙들어 가지고서 생활했는데 나를 붙들고 생활할 때에 제일 그놈에게 붙들려서 불행스러운 생활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사람입니까? 그 생활을 자타가 인정하고 자타가 이렇게 다 인정해서 노벨상을 타고 이러기 때문에 기독교 도덕주의자가 제일 불쌍한 자입니다. 알겠습니까! 도덕 이것이 전체인 줄 알고 이것을 표준으로 삼아서 산다 그 말입니다. 그 사람은 옛사람에게 붙들려서 이제까지 신앙생활 안 하고 도덕생활 이것 했기 때문에 자기 한 것이 나빴다 그 생활한 그것이 옛사람이라 그것을 똑똑히 모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옛사람에게 붙들려서 만일 살인 강도짓을 오 년이나 십 년이나 이십 년이나 삼십 년이나 사십 년이나 했다고 하면, 그러다가 자기가 반성해서 다시 돌아서게 된다고 하면 삼십 년 사십 년 산 생활 이것이야 말로 천인 만인을 놓고 물어도 이것은 다 죄악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 생활한 것이 옛사람이 생활했다는 것을 자기가 확신하고 삼십 년 사십 년 생활한 그것이 순전히 옛사람으로 살았다는 그것을 자기가 확정했기 때문에 옛사람을 원수로 절실히 느껴서 이 옛사람이 자기를 들어서 이렇게 망쳤다는 그것을 생각해서 옛사람과 원수가 되기 때문에, 옛사람에게 붙들려서 헛된 생활을 하되 헛된 생활로 사이비해서 인정하기 어려운 그 생활한 그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결론)

1. 금생 내세의 성공은 하나님과 동행

우리는 우리의 모든 금생 내세의 성공은 당신과 동행하는 것 그 외에 없습니다. 이것 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주님과 동행하는 일을 처음에는 동행한다는 것이 그것이 허무하지마는 동행했으면 반드시 동행한 것만치 자기가 밝아질 것이요, 빛이 왔을 것이요, 빛이 오면 깨달아질 것이요. 깨달아지면 모든 것이 차차 정평 정가가 될 것입니다. 이러니까 이 신앙생활이라 하는 것은 시작만 하면 됩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간다는 것은 그 믿음으로 시작만 하면 자꾸 믿음으로 돼 나가는데, 믿는다고 해도 말로 믿고 형식으로 믿고, 믿어도 자기 속에 주관 그 놈이 왕이 돼서 합니다.

2. 옛사람 그놈

자기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선배가 말하든지 영감이 말하든지 해서 옛사람을 죽일 수 있는 그런 기회에 그것을 똑똑히 알아서 딱 죽일 때에, '말은 분명히 옳은 말은 옳은 말인데 어쩐지 내가 듣기 싫다.' 그놈이 옛사람입니다. '말은 옳은 말은 옳은 말인데 내 형편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러는 그 놈이 옛사람이오. 그놈이 옛사람.

그래 그 기회가 자주 닥칩니까? 자주 안 닥칩니다. 남 듣기 싫은 소리를 사람이 잘 해 줍니까? 남 듣기 싫은 소리를 잘 해 주지 않습니다. 다 사람들이 약습니다. 말세가 되어 갈수록 약아서 남에게 거리끼는 그런 소리를 안 합니다. 자기 상할까싶어서 안 합니다.

지금은 선지자가 없습니다. 자기가 죽어도, 그 사람에게 원수가 되어서 욕을 얻어먹어도, 그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큰 폭탄이 던져져 와도,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 주는 그 사람이 선지자인데 그 사람이 없다 그 말입니다.

모처럼 선지자 만나서 겨우 깨닫게 됐는데, 그것이 분명히 하나님과 대립이니까 진리와 대립이니까, 옳은 것과 대립이니까 옛사람이요 그것은 죄악의 사람인줄 알면서도, 발견됐지마는 버리지 못할 때에 그때에 '나는 옛사람을 부인하지 못한다' 하는 것을 알고 거기에서 그것을 놓고서 못을 박아 놓고, '내가 이럴 때 이 옛사람을 배반치 못해서 자기를 부인하지 못해' 자기 부인이라 말은 옛사람 부인이라 말이오. 옛사람 부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그에게 복종하고 그만 좋아하고 그만 두려워하는 자를 왜 부인합니까? 그 자를 길러야 되는데. 옛사람을 부인하라 그 말입니다. 옛사람을 부인하라 말이오,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은, 이래서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에서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에서만 이루어지지 다른 데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3. 하나님과 동행하는 연습과 공부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연습을 자꾸 합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공부를 자꾸 합시다. 그리 되면 차차 차차 우리도 모르게 당신을 닮아져 갑니다. 당신을 본받아 갑니다. 당신을 본받아 가다가서 나중에는 차차 차차 당신을 닮아 가다가 마지막에는 당신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당신의 형상이 이루어져 갑니다. 형상으로 만족하리라.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 분깃으로 먹고 살다가 자기 자녀에게 상속시켜 주는 것으로서 끝마치지만 나는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깨고 보면, 한번 죽었다가 부활하고 나서 보면 주님의 형상 주님의 모형 된 것만 가치 있습니다. 주님의 모형 된 것만 하늘에 가 있습니다. 주님의 모형 된 것만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지능의 모형, 모형이 뭐이냐? 그에게 피동, 그의 새끼, 그로 말미암아 난 것 이것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그분이 움직이는 그 움직임이 내 움직임 된, 그분의 움직임에 피동 된 내 움직임이 그것이 영생이요 그것이 생명입니다. 그런고로, 동행하는 이 일을 우리가 힘씁니다.

4. 나의 전부가 되는 세 가지

그러기에 신구약 성경 말씀이 일호로 나의 지도자요 나의 전부요. 그 다음에는 영감이 나의 전부요. 그 다음에는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나의 전부입니다.

그러면 다 됐습니다. 그 외에 없습니다. 성령과 진리는 뭐 하러 왔습니까?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고 힘입어서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 우리의 기업을 다 받아서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대속의 공로를 입고 대속의 공로 입은 자로 살기 위해서, 주의 것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주의 종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주의 성전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주의 지체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의 몸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의 신부로 살고, 주님의 제사장. 주님의 선지, 주님의 왕, 주님의 형상, 주님의 영광의 찬미로서 마지막에 결성이 되어 지도록 하려는 것이 우리의 이 구원입니다.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소망이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것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방해하는 것이 옛사람 그것이 방해합니다.

5.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옛사람이 뭣 가지고 방해합니까? 죽음 너머 영원한 것을 바라보지 못하게 이 현상주의, 이 현실주의, 이것으로써 소망을 이것을 멸하게 하는 그것이 악령이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번 두 번 이렇게 악령에 끌려서 현상주의로 이렇게 살다가 한 번 코가 깨졌든지 뒤 꼭지가 깨졌으면 다시 그 짓 안 가져야 됩니다.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한 번 징계 받았으면 다시 두 번 안 받아야 되는 것이지 징계 받고 또 받고 또 받으면 징계를 받는 데에는 우리의 자원이 소모가 많이 됩니다. 몇 번 징계 큰 징계 받고 나면 자본 없습니다. 자본 다 들어가 버렸습니다. 헛일이라. '주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설교: 백영희목사(1984. 11. 24. 토 새벽)/ 정리: 김반석목사(2011.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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