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능력

2010.07.06 21:45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믿음의 능력
선지자선교회
본문: (마14:29-32)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서론)

1. 물위로 걸어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시니 제자들이 보고 놀랐습니다. 놀랐는데 예수님께서 “내로라” 하는 음성을 듣고 그들이 다 안심을 했습니다.

2. 베드로의 물 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베드로가 “주님만 물 위로 걸어오실 것이 아니라 나도 좀 물 위로 걸어오라고 좀 하십시오”. 이러니까 주님께서 “걸어오라” 이러니까 이제까지 두려워 놀라고 있다가 모든 의심하는 것이나 염려나 그런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이 걸어오라고 하시니까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주님이 걸어오라고 하시니까 걸어가면 된다 하는 것을 믿고 물 위에 푹 내려서서 걸어갔습니다.

3. 구원하시는 주님

이러다가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이니까 걸어가다가 바람과 풍랑을 보고 ‘주님이 오라고 하셔서 주님의 능력으로 물 위에 걸어가기는 걸어가지만 이렇게 풍랑이 일고 바람이 세게 부는데 이 바람과 이 물결이야 어떻게 이겨낼 수가 있겠는가?’ 그만 그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그 생각이 들어오니까 그만 물에 빠져 들어갑니다.

빠져 들어가니까 죽겠다고 고함을 지르니 주님이 손을 즉시 내밀어서 건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책망하시고 건져 올려 동행해서 물 위로 걸어서 배에 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이 간단하나마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믿는 도리를 정확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본론)

1. 다섯 가지 신앙 상대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가는 데는 첫째로 주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계시고, 둘째로는 하나님이 걸어오라고 명령하셨고, 셋째로는 하나님이 명령하시니 걸어오라고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돕는 은혜로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베드로 자신까지 셋이 됐습니다.

자기를 능히 물 위로도 걸어가게 하실 수 있는 그분이 걸어오라 하신 그분이 계시고. 또 걸어오라고 명령하신 주의 말씀이 계시고 또 그 말씀을 받은 베드로 자신이 있고, 또 거기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뭐이냐? 옆에서 베드로로 하여금 물 위로 걸어가지 못 하게 하는 방해 역사들이 하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지금 물 위로 주님 앞에 걸어가야 되는 그 사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러면 모두 몇입니까? 다섯입니다.

하나는 자기를 지극히 큰 능력이 도와주실 능력자이신 주님이 계시고, 또 하나는 그 분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명령의 말씀이 있고, 이 말씀은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다 이분이 우리에게 이대로 실행하라 하는 명령입니다. 거기 있는 말씀이 다 명령이요 또 요구요 약속입니다.

또 하나는 그 주님을 상대하고 그 명령을 받은 자기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이 믿음으로 명령받아서 자기가 행할라고 하는 데에 행하지 못하게 하는 방해물이 있습니다. 또 자기가 지금 앞으로 걸어서 주님 앞에까지 가야 되는 그 사건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다섯입니다. 우리의 신앙 행위는 언제든지 이 다섯 가지가 그 상대가 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2. 주님이 오시기 전의 제자들

주님이 오시기 전에는 우리가 물속에 빠져 죽는다 하고 마구 그 배 안에 탄 제자들이 그저 기절을 할 만큼 무서워서 야단이 났습니다. 주님이 무서워하는 것을 보시고 물 위로 급해서 뛰어 오셨습니다. 그것을 보면 그들이 주님께서 늦게 오셨으면 오만 죄도 짓고 망령도 부리고 무슨 죄를 저지를는지 모를 만큼 대단히 위급했습니다.

3. 주님의 음성을 들은 후의 제자들

그러다가 주님이 오셔서 “내로라” 하는 그 주님의 음성 한번 듣고 난 다음에는 당장에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이 싹 사라졌습니다. 사라지니까 이제는 정상의 사람이 됐습니다.

이제 정상의 사람이 되어서 “날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주님께 간청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라” 말씀했습니다.

4. 세 가지 상대

물 위로 걸어오라 했으니까 지금 몇 가지 상대하고 있습니까? 세 가지입니다.

주님과 물 위로 걸어오라 하는 명령과 명령받은 베드로 이 셋입니다. 이제 베드로가 주님의 명령 듣고 자기는 물 위에 걸어갈 만한 그런 힘이 없는 줄 알지만 주님이 걸어오라고 하셨기 때문에 주님께서 넉넉히 물 위로 걸어서 주님 앞에 갈 수 있게 도와주실 능력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주의 명령대로 순종을 해서 물 위로 지금 걸어갑니다. 지금 걸어 갈 때에 몇이 합해서 물 위로 걸어가고 있습니까? 이 셋입니다.

5. 베드로에게 이르런 풍랑

주님과 주의 명령과 순종하는 베드로와 셋이 걸어가다가 물 위로 걸어가면 빠져 죽는다 하는 그 풍랑이 이르렀습니다. 풍랑이 와서 베드로에게 “네가 걸어가다가는 물속에 빠져서 이제 빠져서 죽는다” 이렇게 위협을 하는 풍랑이 닥쳤습니다. 그러면 이제 몇입니까? 이제는 넷입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지금 물 위로 걸어가야 되겠는데, 지금 물위로 걸어서 주님 앞에 도달하기는 해야 되겠는데, 물 위로 걸어갈 남은 거리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남은 거리가 있는데 이제 이 넷을 만났습니다.

넷을 만나서 걸어가지 못하게 하는 그 풍랑을 인해서 이 셋이 걸어오다가 그 풍랑이라는 그 하나를 만나니까 이 셋이 그대로 물 위로 걸어올 때와 같이 셋이 그대로 있습니까? 하나가 절단이 났습니까? 하나가 절단이 났습니다.

6. 베드로의 변질

이제 물 위로 걸어오던 베드로는 주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주님이 명령 하셨으니 명령대로 내가 행할 때에 주님이 도와주신다 하는 것을 자기는 믿음으로 믿고 물 위로 걸어갔었는데 풍랑보고 그만 물에 빠져 들어 갑니다. 풍랑을 보고 뭣이 변해서 물로 빠져갑니까? 하나님 말씀이 변했습니까? 주님이 변했습니까? 뭣이 변했습니까? 없던 풍랑이 하나 새로 나타났고, 없던 풍랑이 나타남으로 그만 베드로가 변해 버렸습니다. 베드로가 변질이 돼 버렸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함께 하시리라 하는 것을 믿었는데 그만 그 풍랑을 보고 난 다음에는 베드로가 변해 버렸습니다. ‘아이구! 풍랑 보니까 빠져 죽겠다’ 변했습니다.

7. 주님과 주의 명령과 풍랑 비교

그때 베드로가 저를 물 위로 걸어가게 하신 주님과 주의 명령과 닥친 풍랑과 그 둘을 비교해 봤습니까? 안 해 봤습니까? 비교 해보지도 못했습니다. 비교도 해보지 않고 그만 어찌 되는 줄도 모르고 쾅 넘어가 버렸습니다.

베드로가 그때 풍랑이 일 때에 풍랑을 보고 그만 아무 뜻 없이 ‘아이구 이 풍랑이 이처럼 폭풍이 불고 아주 험한 풍파가 일고 있으니 내가 여기 빠져 죽겠다.’ 그만 이렇게 생각을 해버렸습니다. 그라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를 도울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까? 의심을 했습니까? 그만 믿음을 팔아 버렸습니다.

8. 믿음이 적은 자여

그래서 ‘믿음이 적은 자여’ 그때까지는 믿었지만 그때 그만 믿음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믿음이 끝까지 계속하지 못하고 믿음이 적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물 위가 아니라 어떤 데라도 당신이 하라 하셨으니까 물 위로 걸어오라 하셨으니 넉넉히 걸어가게 해 주실 것을 믿고 출발해서 갈 때는 잘 갔는데, 풍랑을 보고 ‘아이구, 이제는 물에 빠져 죽겠다.’ 하니까 그때 그만 주님을 믿는 믿음을 버렸습니다. 그 믿음을 없애 버렸습니다. 의심을 해버렸습니다.

그럴 때 만일 베드로가 자기가 ‘아이구! 이 풍랑이 물에 빠져 들게 한다’ 이렇게 물에 빠져 들어갈 때에 ‘아,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의 독생자시요 전지 전능자시요 나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 하셨으니까 풍랑이 무슨 소용 있느냐? 그분이 이 풍랑을 모두 없는 가운데 만드시고 주권하시는 분이 아니냐?’ 이렇게 만일 베드로가 그때 주님의 돕는 은혜와 그 풍랑과 둘을 비교해서 주님의 돕는 은혜는 풍랑을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 하는 것을 믿었으면 그 베드로가 물속에 빠져 들어가다가 올라 왔을까요? 그 속에 빠졌을까요? 그러면 푹 솟을 것이라 말입니다.

‘아, 주님이 나를 도우시는데 풍랑아 잔잔 하라 주님의 돕는 도우심이 풍랑을 능히 이기고도 남음이 있다. 마무리 풍랑이 일어도 주님의 능력이 나를 돕는 그 능력은 풍랑을 능가할 줄 믿습니다’ 했으면 그때 푹 솟아올랐을 것입니다.

9. 물에 빠진 베드로

그랬는데 그만 베드로가 풍랑 보고 이제까지 주님을 믿던 그 믿음을 의심해서 버려 버렸습니다. 그라니까 주님의 능력이 그를 돕다가 그만 주님의 능력이 끊어졌다 말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나를 도와서 이 물 위로 능히 걸어 주님 앞에 가게 하실 것을 믿으니까, 이 능력이 믿으니까 역사를 해서 물위를 걸어가게 하셨는데, 이제 믿음을 버려 버리고 의심을 하니까 주님의 능력이 가서 일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그만 베드로가 물에 푹 빠져 들어갔습니다.

물에 빠져 들어간 것은 베드로가 헤엄을 안 쳐서 빠져 들어갔습니까, 그리고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가려고 애를 안 써서 빠졌습니까, 어째서 빠졌습니까?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가려고 애는 썼습니다. 팔도 허적거리고 야단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거 왜 빠져 들어갔을까요? 물 위로 걸어간 것은 누구의 힘으로 걸어갔습니까? 제 힘으로 걸어갔소? 주님의 돕는 힘으로 걸어갔습니다.

주님의 돕는 힘으로 걸어갔는데 왜 지금은 빠져 버립니까? 주님의 돕는 힘이 끊어졌습니다. 주님의 돕는 힘이 왜 끊어졌습니까? 안 믿기 때문에 끊어졌습니다.

(결론)

1. 다섯 가지를 언제든지 기억

우리는 이 다섯 가지를 언제든지 기억합시다. 주님은 변치 않는 전지 전능의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변치를 많습니다. 또 주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그 명령은 우리가 행할 때에 주님이 도우셔서 명령대로 그대로 되도록 하시는 그 약속도 변치 않습니다.

베드로가 그 명령 받아서 순종하니까 역사에 없는 물 위로 걸어가는 그 일이 됐습니다. 걸어갔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예수님이 이 바다에 네가 달음박질해서 한 바퀴 돌아라 했으면 못 돌겠습니까? 한 바퀴 돌아라면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돌아라면 두 바퀴 돌 수 있습니다.

2. 베드로가 물결에 피동

그렇게 순종해서 물 위로 걸어갈 때에 그때에 걸어가는 것을 방해하는 그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풍랑이 일어났을 때에 베드로는 주님의 능력이 자기를 도와서 물 위로 걸어가게 하신 그 능력이 풍랑이 암만 일어도 그 능력은 그보다 더 크시기 때문에 물 위로 능히 걸어가게 하실 수 있다 하는 이 사실을 믿었으면 되겠는데, 그만 주님의 돕는 이 능력을 풍랑을 보고 난 다음에는 주님의 돕는 이 은혜를 그 풍랑보다 그만 약하게 봤습니다. 그만 물결에 피동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때 베드로가 물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주님에게 순종입니까? 물결에 순종입니까? 풍랑에 순종했고. 풍랑에 피동됐습니다. 풍랑에 피동 되니까 빠져 들어가서 놔두었으면 죽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걸음입니다.

3. 순종이 없어서 물이 빠짐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갈 때에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했고, 그러면 셋이 순종해서 물 위로 걸어가지 안했습니까? 순종했는데 베드로가 물속에 빠질 때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까? 명령이 없었습니까? 베드로 순종이 없었습니까? 뭣이 없었습니까? 순종이 없어서 물속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4. 실효의 능력

능력의 주님의 능력이 그대로 있고 또 명령하는 말씀도 그대로 있고, 있기는 있지만 아무 실효의 능력이 없습니다. 실효의 능력이 없어서 그만 물 위로 걸어오다가 물속에 빠집니다. 그 실효의 능력이 어디로 가 버렸습니까? 주님께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능력이 주님에게로 돌아갔어. 왜 돌아갔을까? 의심했기 때문에 돌아갔습니다. 우리가 믿으면 못 돌아갑니다. 믿으면 돌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계약을 믿으면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능력은 떠나지 못합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면 그 능력은 못 가는 것입니다. 계약을 했기 때문에 내가 계약대로 믿는데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그라면 하나님이 계약 위반이 되므로 의심하기 전에는 못 갑니다. 의심하니까 그만 돕는 능력이 주님에게로 돌아가서 물에 빠져갑니다.

5.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것들

이와 같이 우리가 무슨 일을 닥치든지 이 다섯 가지를 생각해야 되는데, 우리가 신앙 생활해 나오다가 옆에 어떤 것이 닥쳐서 방해를 하면, 사람이 방해할 때도 있고, 마귀가 방해하는 것도 있고, 권세가 방해하는 것도 있고, 사회가 방해하는 것도 있고, 가족이 방해하는 것도 있고, 권세가 방해하는 것도 있고, 방해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방해하는 것들이 많을 때에 그때에 우리는 그만 믿음을 뺏기기 쉽습니다. 이렇게 방해하고 저렇게 방해합니다. 내가 물 위로 걸어가는 데에 걸어가지 못하게 하는 풍랑의 큰 방해 풍랑이 있으니 이것이 방해를 합니다.

내가 앞으로 할 일은 물 위로 걸어가는 이 어려운 일인데. 자기 앞에 지금 당면한 사건, 당면 한 사건이 풍랑하고 둘이 합작이 됩니다. 합작이 돼서 이처럼 방해를 하는데 내게 닥친 이런 사건이 이렇게 방해가 있는데 이런 중대한 문제니 내가 어떻게 하겠나?' 해서 그만 거기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떨어지기 쉽습니다.

6. 내게 능력 주시는 자의 돕는 능력

그럴 때에 우리는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풍랑이 아무리 큰 태풍랑이 닥쳤다 할지라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의 그의 돕는 도움은 그까짓 것의 억억억억억만 배도 더 됩니다. 억억억억억만 배도 얼마든지 더 됩니다.

7. 다니엘의 신앙걸음

다니엘이 물위를 걸어가는데 다리오 왕이 하루 종일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방해하지만 다니엘은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다리오 왕보다 큰 줄 알기 때문에 기도를 하루 세 번씩 계속해서 합니다.

8.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을 여러분들이 연구를 해보십시오. 우리는 그럴 때에 내게 능력 주시는 그분의 능력은 그런 것들을 능가하고 남음이 있는 이 사실을 언제든지 평소에 우리 두뇌 우리 지식에 꽉 박아서 그저 자다 깨도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는 피조물 어떤 것보다도  능하시고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신다 하는 이것을 언제든지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이것 하나 알고,

9. 히브리서 11장

또 하나는 아무리 지금 내 앞에 바닷물이 있지만 이제까지 내가 저기서 이제까지 걸어왔는데 이제까지 주님의 능력 받아 걸어왔는데 남은  것도 못 걸어갈 것이냐? 이것을 또 생각해야 됩니다. 생각하는 것은 이제까지 역사에 주님의 능력을 믿고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길 저런 길 다 걸어갔는데 내 앞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까짓 것은 우리 선배들이 벌써  믿음을 가지고 돌파한 그런 종류의 것들이기 때문에 내 앞에 닥친 것이 새 길이 아니라 다 돌파한 종류의 길들이기 때문에 별 것 없다 하는 이것을 또 첨부를 해 버린다 말입니다.

이래서 빠질 때는 앞에 있는 걸어갈 바닷물 위라는 그 문제하고, 풍랑하고 둘이 합작이 되어서 베드로를 그만 낙심케 했는데, 우리는 그럴 때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그분하고 나하고 둘이 합작을 하고, 그 다음에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어떤 역사를 했느냐? 그만 안 되거든 히브리 11장을 읽으십시오.

히브리 11장에 보니까 과거에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했는데 내가 닥친 일도 그와 같은 일인데 문제가 뭐 있겠느냐? 그 모든 교회의 과거사 이것을 자기가 합작을 해서 하면 자기에게 믿음이 더 더해지고 강해지게 됩니다.

10. 주님이 책임지시는 것과 방해물

그래서 우리 앞에 이 어려움이 있는 그것은 베드로가 제 힘 가지고 간 것이 아니고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할 때에는 주님이 책임지시고 걸어가게 했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단단히 알아야 됩니다. 주님의 명령대로 내가 순종할 때에는 주님이 책임지시고 걸어가게 하신다 이것을 단단히 믿고, 주님의 명령대로 주님의 도와주시는 돕는 그 능력을 받아 가지고 걸어갈 때에는 반드시 방해물들이 있다.

방해물들이 있는데 그 방해물들이 국가가 방해될 때도 있고, 사회가 방해될 때도 있고, 사장이 방해될 때도 있고, 상관이 방해될 때도 있고,  가족이 방해될 때도 있고, 호랑이가 방해될 때도 있고, 공산주의가 방해될 때도 있고, 온갖 전염병이 방해될 때도 있고, 별별 방해들이 다 있습니다.

11. 주님의 돕는 능력으로 걸어왔습니다.

그런데 방해들이 있는데 그 방해들이 닥칠 때에 우리가 종전과 같이 그렇게 순종 걸음을 뿍뿍 걸어온 것은 주님의 돕는 능력으로 걸어왔습니다. 앞으로도 걸어갈 것은 주님의 돕는 능력으로 걸어가지 내 힘으로 걸어갈 것이 아닙니다.

능력으로 걸어가는데 그 능력이 나를 도우면 잘 걸어갈 수 있고 그 능력이 나와 끊어져 버리면 걸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그 능력이 나를  도와서 계속 걸어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뭐입니까? 자! 그 능력이 나를 도와서 계속 내 앞에 어떤 태산이라도 뿍뿍 용감스럽게, 어떤 반석이 막아도 뿍 뚫고 걸어갈 수 있는 그것은 내가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가 아니라 나에게 명령하신 그 전능자의 능력으로써 내가 걸어가게 됩니다. 이제까지 걸어온 것은 누구의 힘으로 걸어왔습니까? 주님의 돕는 힘으로 걸어왔습니다. 또 앞으로는 누구의 힘으로 걸어갈 것입니까? 내 힘으로 걸어갈 것입니까? 그분의 힘으로 걸어갈 것입니까? 그분의 힘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12. 의심하므로 능력이 중단

그분의 힘으로 걸어갈 것인데, 왜 베드로는 그분의 힘으로 이제까지는  걸어왔다가 이제는 걸어가지 못했습니까? 왜 못 갔습니까? 왜 그 능력 이 도와주지 안했습니까? 자, 왜 도와 주지 안했는지 아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이소.

묻지는 안할 테니까 왜 도와 주는 그 능력이 이제까지 도와주다가 이제는 도와주지 안 해서 물에 푹 빠져 버렸는가? 왜 그 능력이 도와주지를 안했는가? 하나님이 약속을 변했는가? 하나님이 변하는 하나님인가? 하나님의 능력이 그만 없어져버렸는가? 그렇지 안하면 베드로가 변했는가? 누가 변했습니까? 베드로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보십시오. 네 베드로가 변했습니다. 이렇게 옳게 알면 마귀란 놈이 그만 딱 오그라 붙어 버립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네, 의심으로 변했습니다. 믿음이 의심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믿음이 의심으로 변할 때에 그 능력은 즉각 중단됐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고입니다.

여러분들! 우리 앞에 어떤 태산 같은 일이 있어도 과거에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태산을 웃으면서 즐거워하면서 뿍뿍  다 통과했던 다 과거에 있던 현실들입니다. 과거에 있던 그런 종류의  것들이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의 능력은 능히 통과하고도 남음이 있는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이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걸어갈 때에 이 방해물이 와서 그 능력을 힘입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그 방해물이 반드시  나타납니다. 방해물이 나타나는데 그 방해물이 뭐이냐면 이 말씀에서는 풍랑인데, 풍랑같이 이런 환난 저런 환난 이런 분쟁 저런 분쟁, 이런 유혹, 유혹하고 위협하고 두 가지요. 유혹과 위협 두 가지, ‘유혹’은 꾀우는 것이고 ‘위협’은  강제로 눌러서 기압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가 믿음을 내 놓지 안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그때는 뭐 미친 사람이 돼도 됩니다. ‘주여, 믿습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안 되거든 ‘주님은 전능자이십니다 믿습니다. 주님은 대주권자이십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주님은 창조주십니다. 주님은 만주의 주십니다. 주님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주의 약속은 획 하나도 변치 않습니다.’ 믿음이 생겨지면 뿍뿍 뿍뿍 뿍뿍 자꾸 나갑니다. 믿음이 생겨지면 하나님 능력이 와서 뿍뿍 나가서 됩니다. 그러나 그만 믿음을 버리면 일이 안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알고, 반드시 주님이 나에게 명하신 것은 당신이  책임지시고 내가 그대로 할라고 할 때에는 이루어 주실 책임을 지고 우리에게 명령한 것입니다. 명령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대로 순종해서 나갑니다.

13. 교리와 믿음

다 죽어서 말라빠진 교리만 가지고 날뛰고 있으면 안됩니다. 믿음이 없는데 말라빠진 교리만 거머쥐고 날뛰고 있고, 생명 되는 신앙이 없는데 뭐 됩니까, 그  능력을 끌어오는 것은 뭐입니까 믿음입니다.

그 지극히 큰 능력을 끌어서 물 위로 걸어 갔는데그 능력을 끌어온 것은 뭐입니까? (믿음!) 그 능력이 끊어진 것은 뭐입니까! (의심!)  

그러므로 여러분들 하나님 계시고 말씀 있고 순종한다해도 해도 믿음이 없으면 생명이 없기 때문에 아무 소용없습니다. 자기가 주님 알고 주님 찾고 주님 명령 받았고 그 명령대로 행한다고 열심을 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 드려서 순종한다 할지라도 주님 보실 때에 믿음이 없으면 지극히 큰 능력 끌어올 수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은 패전되고 맙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본적으로 묘하게 맞춰서 예수 믿는 사람들, 주님이 그것 떨어트리기 위해서 큰 환난 오면 그만 예수 믿는 것 다 팔아 버리고 아무것도 없다 그 말입니다. 속에 생기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신앙 행위의 생기는 믿음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과 내가 결합이 되기 때문에 그 능력이 와서 하니까 못할 것 뭐 있습니까?

그래서 베드로가 이 다섯 가지가 있을 때, 믿을 때에 물 위로 걸어왔고, 겉으로 보기에 행동은 꼭 같이 행동했지만 믿음을 버리고 의심하니까 행동은 했지만 결과가 물에 빠져 가는 결과이지 물 위로 떠 올라가는 그런 결과는 못 봐졌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형식은 있지만 생명의 결과는 맺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 백영희목회설교록(1985년 9월 1일 주오후) 재정리 김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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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 기독교는 전투생활 김반석 2010.11.07
400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선지자 2010.11.14
399 산 제사로 드리라 김반석 2010.11.21
398 처세에 유일한 방편 김반석 2010.11.28
397 영감의 갑절을 구한 엘리사 김반석 2010.12.05
396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김반석 2010.12.12
395 구주 탄생 김반석 2010.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