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1)
선지자선교회
본문: (막9:21-27)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서론>

1. 믿음은 전능

병든 아이의 아비가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하고 예수님께 말하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셨으니 믿음은 전능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전능!

2.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전능자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는 이 말씀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는 어떤 자라는 말입니까? 전능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전능자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전능자가 둘이 있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확실히 없다는 것이 판정됩니까? 전능자가 둘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는 그 말은 유일하신 전능자 한분뿐이라 하는 그 말씀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제일 크신 그 한 분이신 그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하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유일하시고 자존하시고 대주재가 되시고 주권자가 되신 그분과  연합이 되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전능이다’ 하는 말입니다.

3. 믿음의 정의

믿음은 무엇이 믿음인고 하니, 유일하신 자, 전지전능하신 자, 주권자, 독존자, 그분이 일하도록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는 말씀은 유일하신 그분, 독존하신 그분, 대주재이신 그분, 주권자이신 그분, 제일 크시고 한 분뿐이신 그분, 그분이 일하시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 말입니다.

기독자들이 이 믿음에 대한 정의가 바로 되어 있지 않기 있기 때문에 그저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믿으면 다 된다’ 이렇게들 알고 있습니다. 믿음이 보배는 보배인데 이 믿음이 뭐인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전부 다 믿음으로 되는 것인데, 믿으면 영생하고,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고, 믿으면 죽은 것도 살고, 믿으면 모든 목적도 계획도 달성합니다. 이렇게 믿음이 지극히 보배로운 것과 가치 있는 것인 줄 알기는 아는데 믿음이 무엇이라 하는 것을 바로 가르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사옵나이다' 이렇게 믿음의 일부분이 되는 그 인정만 하면 된다고 다 그렇게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본론>


1. 전능자가 일하시게 하는 것이 믿음

믿음은 주권자 주재자 유일하신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홀로 머리가 되시고 모든 것에 타협이나 의논이나 협력이 없이 홀로 일하시는 그 주권으로 예정하시고 그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하시는 한 분이신 그분이 일하는 것을 가리켜서 믿음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그분이 일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분이 일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니 어떻게 하면 그분이 오셔서 내게 와서 일해 주실 수 있느냐? 그분이 내게 와서 일해 주신다면 그 일은 능치 못할 것이 없고 전능자가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면 그분이 나한테 오셔서 일을 해주시도록 하는 데에는 믿음이라!

이러니까 이 믿음을 한 말로 말하면 완전자 유일하신 전지 전능자 그분하고 나와 둘이 하나 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라 그 말입니다.

2. 믿음은 행함의 순종

믿음은 하나 되게 하는 것이 믿음이니까 하나 되게 하는 방법이 뭐인가? 하나 되게 하는 방법은 성경에 말씀하기를 순종이라 하셨습니다.

약2:18-26에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3. 온전한 믿음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과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행하심과 또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시며 또 그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책임지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기록해 놓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사람에게 대해서, 피조물에게 대해서 빠짐없이 다 말씀하셨습니다.

1)그러므로 말씀해 주신 말씀을 첫째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아는 것이 믿음이면 아는 것이 믿음 전부인가? 아닙니다.

2)알고 그 다음에는 이 말씀은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말씀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3)아는 것도 믿음이요 인정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또 그대로 자기가 소원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4)그러면 알고 인정하고 소원하면 그 믿음이 다 온전하게 됐습니까? 아직 온전하게 안 됐습니다. 행할 때에 믿음이 온전하여집니다.

그러면 우리 할 일은 무엇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에 당신이 가르쳐 놓으신 이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것에 대한 계약의 말씀이요, 우리에게 이렇게 된다고 교훈한 말씀이요, 선포한 말씀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말씀을 1)알고, 2)그 다음에 인정하고, 3)그 다음에 소원을 하고, 4)그 다음에 실행하는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렇게 해야 이것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사옵나이다’ 하면 된다 하는 그 믿음은 무슨 믿음입니까?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이래서 인정만 하면 된다 하는 그 믿음입니다. 그러나 인정만하면 된다 하는 그 믿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래서 인정보다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알고 인정하고 소원하고 행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께 대한 모든 것을 1)알고 2)인정하고 3)소원하고 4)행하는 것이 믿음! 그러면 이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 행하는 믿음

그러면 하나님을 1)알고 2)인정하고 3)소원하고 4)행하는 그 하나님에 대해서 신구약 성경에 말씀을 다 해놓았습니다. 그러면 신구약 66권 성경을 우리가 1)다 알고 2)다 인정하고 3)다 소원하는 이것은 다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구약 성경을 한몫에 다 알고 다 인정하고 다 소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하는 것은 한몫에 다 행할 수 있습니까? 다 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씩 둘씩 행해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다 알고 다 인정하고 다 소원한 그것을 행하는 그 행함은 언제 어디서부터 행해야 되겠습니까? 1)그 시간입니다. 시간이 많은 시간이 있다 할지라도 행할 수 있는 시간은 현재라는 시간뿐입니다. 2)또 행할 수 있는 장소도 현재 당면한 그 현장뿐입니다. 3)또 행할 수 있는 그 사건도 현재 당면된 그 사건뿐입니다.

또 우리가 1)알고 2)인정하고 3)소원하고 4)행하되 하나님 당신이 원하시는 그것, 당신이 원하시는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아는 것이 믿음에 필요한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확실히 하나님이 원하신다’ 하는 것을 1)알고 2)인정하고 3)소원하고 또 그 현실에서 4)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은 현실에만 소용이 있습니다. 현실에 없는 믿음은 소용이 없습니다.

5. 믿음의 능력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타지 안한 것은 믿음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능력이라 말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1)아는 능력이요 2)인정하는 능력이요 3)소원하는 능력이요 4)행하는 능력입니다.

이 믿음은 불 가운데 들어갔을 그때에 1)하나님의 뜻을 알았고 2)또 하나님의 말씀 그 뜻대로 할 것을 인정했고 3)또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소원했고 4)또 불 가운데서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전능으로 역사해서 불에 상하지 안했습니다.

6.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

‘믿으면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는 이 말씀은 무엇과 연결이 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연결된다면 그 연결은 언제 됩니까? 시간으로 말하면 언제입니까? 장소로 말하면 언제입니까? 사건으로 말하면 언제 사건입니까? 1)현재 그 시간 2)그 장소 3)그 당면한 사건에 하나님과 연결이 돼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뜻과 나와 연결이 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는 전능이라 그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대해서 원하시고 명령하시는 그 뜻, 하나님이 시키시는 그 뜻, 거기에 내가 명중만 하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명하는 당신의 그 뜻에 내가 맞춰서 그 뜻을 내가 순종할 때에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7. 믿음에서 제일 중요한 일호

그러면 이 믿음은 몇 가지가 믿음입니까? 네 가지가 믿음입니다. 그 네 가지 믿음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뭐입니까? 몇 호입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사호입니까? 삼호입니까? 이호입니까? 일호입니까? 넷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몇 호가 제일 중요합니까? 일호가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1)바로 알고 2)그것을 인정하고 3)그것을 원하고 4)그것을 행해야 되는데 엉뚱하게 잘못 알고 그것을 인정하고 원하고 행하면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입니까? 거역입니까?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대립되는 것입니까? 거역과 대립은 망합니다. 얼마나 망합니까? 현실에서 믿음 아니면 망하기는 얼마나 망합니까? 매를 맞습니까? 꾸중을 듣습니까? 완전 영원 멸망입니다.

현실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삐뚤어지게 알아서 그것을 주장하고 인정하고 원하고 행하면 하나님과 대적이 되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이 노여워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영멸 됩니다. 그 현실에 해당된 요소는 다 영멸입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영생과 영멸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을 늘 배우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서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8. 하나님의 주권적 독재

이렇게 한 분 하나님 뜻을 바로 찾아서 행하는 것이 기독교이며 또 그것이 기독자의 지도자 목사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목사에게 대해서 서로 협의해서 의논을 합니까? 당신의 혼자의 뜻을 그대로 주장합니까? 어떻습니까? 타협합니까? 의논해서 합니까?

요사이 교회는 협의와 회의로 꽉 찼는데 하나님이 그 목사로 더불어 협의를 합니까? 협의 없습니다! “이렇게 해라!” 주권입니다. 주권적 독재입니다. 의논 안 합니다. 협의 안합니다. 그 주권적 독재에 따라서 피동 되지 않으면 영원히 멸망 받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주권적 독재의 명령을 목사가 받았으면 그 목사는 그 명령을 교인들에게 말할 때에 협의를 해야 됩니까? 명령을 받은 대로 독재를 해야 됩니까? 독재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기독교 민주주의는 협의입니까? 독재입니까? 그러므로 기독교 민주주의는 멸망의 주의입니까? 생명의 주의입니까? 멸망의 주의라!

기독교는 타협을 하면 멸망합니다. 서로 의논해서 하면 멸망합니다. 의논 하면 멸망하는데 또 의논은 하면 삽니다. 그 사는 의논은 무슨 의논인가?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결정을 할 때에 혼자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보다는 둘이 찾는 것이 낫고, 둘이 찾는 것보다는 셋이 찾는 것이 낫기 때문에 여럿이 찾는 그것은 의논해서 찾을 수는 있습니다. 이렇게 여럿이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은 여럿이 찾지만, 결정은 여럿의 그 뜻을 결정하는 것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찾기 전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말아라! 하나님의 주권적 그 독재주의를 찾아서 제가 죽어도 독재할 수 있는 것이면 주장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주장하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9. 타협은 사망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확실히 깨달으면 그대로 하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반하고 내가 말한 것 반하고 또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 셋하고 내가 말하는 것 일곱하고 이렇게 서로서로 흥정 타협을 해서 하는 것은 사망입니다. 그것과 일생 동안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기독자는 타협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분의 주권적 독재의 뜻을 찾아서 독재하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그것이 뭐이냐?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한 분의 뜻을 바로 찾아서 그 뜻대로 죽어도 그대로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 뜻이 이렇지만은 조금씩 반반으로 서로 나눠서 너도 삐지지 말고 나도 삐지지 말고, 서로 타협해서 네 주장도 좀 세우고 내 주장도 좀 세우서 하자 하는 그 자가 뭐이냐 하면 그 자가 사람을 죽이는 자요 또 자살 행위입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이 믿음은 순종입니다. 순종할 주권자, 순종할 능동자에게 내가 피동 되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러면 내가 순종할 능동은 몇 개나 됩니까? 하나입니다!

10. 겨자씨 믿음

눅17:6에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하셨으니, 겨자씨 믿음이라는 것은 무엇이 겨자씨 믿음입니까? 뭐하고 연결된 것이 겨자씨 믿음입니까?

겨자씨 믿음은 생명 있는 믿음인데 생명 있는 믿음은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무한의 하나님이시라 그러면 어디 붙어야 그분과 연결이 됩니까? 하나님 어디에 붙어야 연결이 됩니까?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뜻하고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라! 당신의 뜻은 이래 있는데 당신의 뜻과 반대되는 것이 와서 붙으면 그것을 붙여 둡니까? 물리쳐 버립니까? 물리쳐 버립니다! 당신이 안 피하면 그 자가 죽기 때문에 물리쳐 버립니다.

다만 하나님이 나하고 연결되기를 원하시는 그 면을 나타낼 때 그 면에 가서 딱 들어붙으면 합작이 됩니다. 이것이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라!


하나님의 뜻 그것을 찾아서 들어붙으면 전능이요 만능이라!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내가 행할 때에 내가 들어붙을 수 있는 뜻은 몇 개나 됩니까? 하나뿐입니다. 1)현재에 있습니다. 2)현장에 있습니다. 3)당면한 사건에 있습니다.

<결론>

1. 기독교 민주주의와 기독교 독재주의

기독교는 민주주의로 해서 너와 나와 서로 의논해서 해야 되지 혼자 해서는 안 된다 하는 그것이 기독교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 하나를 찾으려고 애를 써야 그것이 바른 기독교가 되겠습니까? 여기서 죽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람의 뜻을 찾습니다. 이 사람한테 가서 이 사람 뜻 묻고 저 사람한테 가서 저 사람 뜻 묻고 이렇게 타협을 해서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의 주권적 독재주의라 하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은 사람에게 가서 의논하지 않습니다. 혹 사람에게 의논하려 하면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서 묻지 그 사람의 뜻을 묻는 것 아닙니다.

또 참된 기독자는 그것도 묻지 않습니다. 왜?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은 기름부음이 자기에게 가르쳐 주신다고 했기 때문에 자기가 주님하고 단독입니다. 요일2:27에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하셨습니다.

2. 고신의 초창기의 한상동 목사님

그전에 고신의 초창기에 한상동 목사님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사람하고 의논하지 말라! 이 사람 저 사람 자꾸 돌아다니면서 일만 내지 말고 은밀히 계시는 주님과 의논해라!. 당신이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시기를 모든 사람보다 더 원하고 계시고 또 나에게 중생시킨 영도 찾도록 애를 쓰니까 다른데 물을 필요가 없고 주님과 직접 단독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를 쓰면 다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하고 의논하지 말고 하나님하고만 단둘이 의논해서 행동해라! 하는 그것을 많이 말했습니다. 그때는 또 타협하지 말라는 말이 많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 교회가 썩어지려고 하니까 타협하지 말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때는 하나인 하나님의 뜻을 찾아라! 또 타협하지 마라! 그 말이 가득 찼었습니다.

3. 기독교 인본주의와 기독교 신본주의

또 요사이는 인본주의라 말이 없습니다. 기독교 민주주의는 인본주의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 인간들의 의견을 찾는 것은 인본주의!, 하나님 한분의 뜻만을 찾는 것은 신본주의!

이렇게 말해도 이것을 목사들이 몰라! 다른 진영 목사들은 아는지 몰라도 우리 진영 목사들은 몰라! 아무리 배워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바보라! 이것 뭐 자꾸 위신만 깨뜨린다고 합니다. ‘바보’라 하는 그 말을 제가 바보인 것을 깨닫고 바보인줄 알고 바보 안 되려고 애를 쓰면 바보 안 되지!

‘바보’라는 말을 듣기 싫어하면 그 자기 인간성 가운데에 바보가 그 듣기 싫어합니까? 바보 아닌 것이 듣기 싫어합니까? 듣기 싫어하는 그 속의 그 사람이 바보라 그 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라도 정확히 깨달아야 됩니다.

4. 겨자씨 믿음

기독교는 ‘독재주의’라 하는 것을 단단히 명심하고 있어야 됩니다! 기독교는 타협주의가 아닙니다! 기독교가 누구 말만 듣습니까? 여러 사람 말을 들어야 됩니까? 하나님 한분 말씀 들어야 됩니까? 한 분 뜻을 순종해야 됩니다.

기독자가 여럿하고 의논해야 됩니까? 하나님 한분하고 의논해야 됩니까? 한 분하고 의논해야 합니다! 한분하고 의논을 해서 둘이 딱 들어맞았을 때에 그것을 뭐라 합니까? 그것이 겨자씨 믿음입니다.

하나님 한분의 뜻을 내가 찾아서 그 뜻하고 딱 들어맞은 것을 가리켜서 그것을 겨자씨 믿음이라! 생명 있는 믿음이라! 하나님과 연결된 믿음이라! 연결된 행동이라! 이 연결된 행동은 뽕나무를 명하여 바다에 심기우라 할지라도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 백영희목회설교록(1988. 6. 30 목 새벽) 김반석 재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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