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위치와 직책

2008.07.14 08:36

김반석 조회 수: 추천:

◎본 설교안은 두 종류로 정리하였습니다. 하나는 간결하게 전하는 설교안과 또 하나는 세밀하게 전하는 설교안입니다. 설교안 제목 옆에 '간결 정리'와 '세밀 정리'로 그 표시를 하였습니다.  
선지자선교회


■ 교회의 위치와 직책 <간결 정리>

(엡1:22-23)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1. 예수님의 발 아래 만물이 복종

엡1:22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하는 말씀에서 '그'는 도성인신 하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없는 가운데서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모든 만물들을 지으셨습니다. 신성으로 말하면 근본부터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은 그에게 지음을 받았고, 또 알든지 모르든지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그분에게 복종하는 그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특별히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하는 그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만이 아니고 신인양성일위로 된 예수님의 인성도 그 발 아래 만물이 복종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2. 교회는 예수님의 몸,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

엡1:22-23에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하는 말씀에서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입니다. 또 영계나 물질계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예수님의 발등상입니다.

영계나 이 물질계 곧 우주 안에 있는 것은 창조주의 발등상이요, 교회는 만물 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입니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으나 근본 하나님이시요, 또 피조물인 인성도 하나님과 일위가 돼서 완전 승리를 이루셨기 때문에 신성도 인성도 만물 위에 있고 만물을 발등상으로 삼았고 교회는 그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제일 아래 위치를 가진 것이 이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과 영계의 모든 피조물이요, 그 위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3. 교회는 어떤 것이 교회인가?

교회는 어떤 것이 교회인고 하니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행동적으로 하나가 된 그것을 가리켜서 교회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진리와 한 행동을 하심이 아니고 한 인격의 한 격위를 이루어서 그 본체는 두고 역사적으로는 일위를 이뤘습니다. 신성과 인성과 진리와 한 격위를 이룬 것이 예수님이시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의 영과 육이 한 지식을 가지고 한 소망을 가지고 그의 능력을 힘입어서 함께 움직이는 것이 그것이 교회입니다.

4.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교회는 보이는 교회(가견적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불가견적 교회), 이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우리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 단체를 가리켜서 보이는 교회라 말하며 이 보이는 교회는 앞으로 때가 되면 없어집니다.

보이기 않는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받은 우리의 영과 심신의 기능이 하나가 된 것을 가리켜서 신령한 교회라 보이지 않는 교회라 구분하는데, 보이지 않는 교회는 영생으로서 영존하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변동이 되나, 보이지 않는 교회는 변동 없이 영원하고, 또 보이는 교회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재림하시면 일단 다 폐해져서 죽었다가, 다시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교회로 또 보일 수 있는 교회로 자유 자재로 변화한 몸을 입을 때에 보이는 교회도 영계를 자유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빌3:21에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때에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일치가 됩니다.

5.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 교회는 예수님의 몸, 만물은 교회의 아래의 위치

이러므로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만물은 교회의 아래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만물 위 하나님 밑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 기능작용은 어떻게 하는가? 하는 기능작용에는 마치 우리의 머리와 몸 이것이 한 생명 한 기능을 가지고 한 희로애락으로 사는 것처럼, 예수님과 피조물 된 교회가 기능적으로, 희로애락적으로, 영광적으로, 행복적으로 하나가 되어서 영생하게 되는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능으로 이 일을 이루어진 이후부터는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직접 섭리하심과 같은 그런 섭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몸으로 되어 있는 이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의사도 만물에게 나타나고, 당신의 사랑도 만물에게 나타나고, 당신의 은혜도 만물에게 나타나고, 당신의 진노도 만물에게 나타나고. 당신의 심판도 만물에게 나타나고, 당신의 긍휼도 만물에게 나타나서 역사 합니다.

6. 교회의 직책

그러므로 교회의 직책은 하나님의 각양 각종의 그 충만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전하여 주는 중보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만물에게 충만케, 하나님의 부요로 만물에게 충만케, 하나님의 지능으로 만물에게 충만케, 하나님의 평강으로 만물에게 충만케 하는 이 역사를 하는 것이 교회의 영원 직책입니다. 영원직입니다.

그 직을 직분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모든 좋은 것, 나뿐 것, 큰 것, 작은 것, 삐뚤어진 것, 바른 것, 그런 것을 이 중보된 위치, 제사장 직에서 그 모든 것을 바로 잡아서 조화를 일으켜 화평케 하는 직책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속 하신 것도 만물의 대표자인 인간이 범죄 했기 때문에 만물도 다 저주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형벌 받으시고 대신 행하여 대속함으로 만물을 다시 회복시켜서 살게 구원한 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인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근본적으로 그 모든 일을 하시고 그 일을 우리들에게 분담 시켜서 우리들도 양은 다르지만 성질적으로 그와 같은 일, 종류적으로 그와 같은 일을 영원히 해서 주님이 우리의 대속주가 되심같이, 우리는 만물의 대속주가 되어서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7. 교회는 그의 몸

엡1:23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하시는 말씀은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입니다.

8.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하는 말씀에서 '충만케 하시는 자'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셔서 만물을 영원히 살게 하고 행복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 모든 만물을 지으심같이, 또 지은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케 해서 그 모든 행복과 평강과 쾌락이 충만케 하시는 그 하나님의 충만을 교회를 통해서 충만케 한다 그렇게 표시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시요, 우리는 하나님의 몸이요, 만물은 우리 아래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영원한 세계에서는 천군 천사도 만물도 우리로 인하여 살고, 우리는 우리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삽니다.


---------------------------------------------------------------------------------


■ 교회의 위치와 직책  <세밀 정리>

(엡1:22-23)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서론>

1. 교회는 어떤 것이 교회인가?

교회는 어떤 것이 교회인고 하니 하나님과 진리와 사람이 행동적으로 하나가 된 그것을 가리켜서 교회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진리와 한 행동을 하심이 아니고 한 인격의 한 격위를 이루어서 그 본체는 두고 역사적으로는 일위를 이뤘습니다. 신성과 인성과 진리와 한 격위를 이룬 것이 예수님이시요,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어서 하나님과 진리와 자기의 영과 육이 한 지식을 가지고 한 소망을 가지고 그의 능력을 힘입어서 함께 움직이는 것이 그것이 교회입니다.

2.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교회는 보이는 교회(가견적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불가견적 교회), 이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우리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이 단체를 가리켜서 보이는 교회라 말하며 이 보이는 교회는 앞으로 때가 되면 없어집니다.

보이기 않는 교회는 하나님과 진리와 구속받은 우리의 영과 심신의 기능이 하나가 된 것을 가리켜서 신령한 교회라 보이지 않는 교회라 구분하는데, 보이지 않는 교회는 영생으로서 영존하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보이는 교회는 변동이 되나, 보이지 않는 교회는 변동 없이 영원하고, 또 보이는 교회는 예수님이 구름 타고 재림하시면 일단 다 폐해져서 죽었다가, 다시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교회로 또 보일 수 있는 교회로 자유 자재로 변화한 몸을 입을 때에 보이는 교회도 영계를 자유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빌3:21에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때에는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가 일치가 됩니다.


<본론>

1. 예수님의 발 아래 만물이 복종

엡1:22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하는 말씀에서 '그'는 도성인신 하신 예수님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없는 가운데서 영계와 물질계에 있는 모든 만물들을 지으셨습니다. 신성으로 말하면 근본부터 만물 위에 계시고 만물은 그에게 지음을 받았고, 또 알든지 모르든지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그분에게 복종하는 그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특별히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하는 그 말씀은 예수님의 신성만이 아니고 신인양성일위로 된 예수님의 인성도 그 발 아래 만물이 복종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2. 교회는 예수님의 몸,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

엡1:22-23에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하는 말씀에서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입니다. 또 영계나 물질계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예수님의 발등상입니다.

영계나 이 물질계 곧 우주 안에 있는 것은 창조주의 발등상이요, 교회는 만물 위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입니다.

영원 자존하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오셨으나 근본 하나님이시요, 또 피조물인 인성도 하나님과 일위가 돼서 완전 승리를 이루셨기 때문에 신성도 인성도 만물 위에 있고 만물을 발등상으로 삼았고 교회는 그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제일 아래 위치를 가진 것이 이 물질계의 모든 피조물과 영계의 모든 피조물이요, 그 위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3.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 교회는 예수님의 몸, 만물은 교회의 아래의 위치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요,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요, 만물은 교회의 아래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만물 위 하나님 밑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 기능작용은 어떻게 하는가? 하는 기능작용에는 마치 우리의 머리와 몸 이것이 한 생명 한 기능을 가지고 한 희로애락으로 사는 것처럼, 예수님과 피조물 된 교회가 기능적으로, 희로애락적으로, 영광적으로, 행복적으로 하나가 되어서 영생하게 되는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능으로 이 일을 이루어진 이후부터는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직접 섭리하심과 같은 그런 섭리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몸으로 되어 있는 이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의사도 만물에게 나타나고, 당신의 사랑도 만물에게 나타나고, 당신의 은혜도 만물에게 나타나고, 당신의 진노도 만물에게 나타나고. 당신의 심판도 만물에게 나타나고, 당신의 긍휼도 만물에게 나타나서 역사 합니다.

4. 교회의 직책

그러므로 교회의 직책은 하나님의 각양 각종의 그 충만을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전하여 주는 중보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만물에게 충만케, 하나님의 부요로 만물에게 충만케, 하나님의 지능으로 만물에게 충만케, 하나님의 평강으로 만물에게 충만케 하는 이 역사를 하는 것이 교회의 영원 직책입니다. 영원직입니다.

그 직을 직분적으로 말을 하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모든 좋은 것, 나뿐 것, 큰 것, 작은 것, 삐뚤어진 것, 바른 것, 그런 것을 이 중보된 위치, 제사장 직에서 그 모든 것을 바로 잡아서 조화를 일으켜 화평케 하는 직책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속 하신 것도 만물의 대표자인 인간이 범죄 했기 때문에 만물도 다 저주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형벌 받으시고 대신 행하여 대속함으로 만물을 다시 회복시켜서 살게 구원한 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인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근본적으로 그 모든 일을 하시고 그 일을 우리들에게 분담 시켜서 우리들도 양은 다르지만 성질적으로 그와 같은 일, 종류적으로 그와 같은 일을 영원히 해서 주님이 우리의 대속주가 되심같이, 우리는 만물의 대속주가 되어서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5. 교회는 그의 몸

엡1:23에 '교회는 그의 몸이니' 하시는 말씀은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란 말입니다.

6.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하는 말씀에서 '충만케 하시는 자'는 하나님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들에게 충만케 하셔서 만물을 영원히 살게 하고 행복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없는 가운데 모든 만물을 지으심같이, 또 지은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케 해서 그 모든 행복과 평강과 쾌락이 충만케 하시는 그 하나님의 충만을 교회를 통해서 충만케 한다 그렇게 표시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시요, 우리는 하나님의 몸이요, 만물은 우리 아래 위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영원한 세계에서는 천군 천사도 만물도 우리로 인하여 살고, 우리는 우리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삽니다.

7. 삼위일체 하나님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과는 별다른 존재인가?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로서 다른 존재이지만 신성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러기에 위에 있다 아래에 있다 하시는 말씀은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 본체적으로는 하나님이시지만 사역을 맡아서 일하시는 그 사역적으로는 층하가 있고 그 사역의 이름적으로는 층하가 있는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위는 셋이나 본체는 하나이십니다. 위(位)가 셋이라 말은 위(位)에는 책임과 직책이 있기 때문에 삼위의 하나님이 본체는 하나이시지만 그 직책은 각각 달리 있다는 것을 표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성과 하나님과의 차이 있는 것은 본체적 차이가 아니고 역사적 차이입니다. 우리는 몸이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되심은 우리가 본체적으로 머리와 몸이 된 것이 아니고, 언제나 그분은 창조주시요 자존자시요 완전자시요, 우리는 그분에게 지음 받은 피조물이요 유한한 자요 불완전한 자인데 다만 하나님의 은혜와 그 역사로 연결되어 머리와 몸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요 우리는 그의 몸 된 것은 은혜의 역사적으로 머리되고 몸 된 것이지 본체적으로 머리되고 몸 된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긴 세월이 가도 언제나 교회는 피조물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시요 예수님의 인성은 피조물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잘 구별해서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8. 교회의 시작은?

그러면 이 교회는 언제부터 시작됐는가? 자존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그 다음 자존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의지 안에서 이 교회를 목적으로 정하셨습니다. 목적으로 정하시고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영계와 물질계의 모든 것을 예정하셨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예정하신 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또 이 목적을 위해서 창조하신 것을 예정하신 대로 보존하시고 하나님이 사람되어 예정하신 대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고 다시 죽은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이 부활까지의 공로로 우리를 완전히 대속 하시고, 또 그 예정대로 우리를 중생 시키시고, 예정대로 우리를 불러서 예수님 믿게 만드시고, 예정하신 대로 우리에게 천태만상의 모든 현실들을 봉착하게 하십니다.  

이 모든 현실에 대해 우리는 좁고 어린 지혜라 이해 못할 때도 많이 있지만 성경을 보고서 성경 지식을 충분히 가진 사람들은 잘 이해할 수 있으니, 이해 못할 현실, 좋다 나쁘다고 하는 현실, 그 현실은 꼭 같은 하나님의 목적 곧 우리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하신 존재이기 때문에 가치적으로,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그 필요성적으로는 꼭 같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도, 예정도, 창조도, 또 하나님의 주권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합했다가 나눴다가, 있게 했다가 없게 했다가 하시는 그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그 모든 섭리는 첫째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게 하는 그 구원의 내부를 말하면 자존하신 하나님에게 대한 올바른 지식과, 피조물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자타에 대한 모든 움직임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가져, 하나님과 피조물의 그 모든 존재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가지게 하려는 것이 구원의 일부를 이루는 것이요.

구원의 또 다시 한 일부는 모든 존재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모든 존재에게 대해서 올바른 관계의 존재로, 올바른 관계의 행위로 자체가 점점 성화 되어감으로, 자체는 하나님에게도 필요하고, 모든 피조물에게도 필요하고, 자기에게도 필요한, 이 완성을 이루기 위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것을 이루는 것이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하는 것입니다

9.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깨끗하고 거룩하고 사랑과 지능이 충만하여 평가적인 영원한 쾌락과 생명으로 충만케 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10. 예정의 순서대로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순서든지 순서가 나타날 때에 이 순서는 영원 전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신 그 예정의 순서가 하나씩 둘씩 지금 통과되고 있는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11. 모든 존재의 존재 목적은 우리 구원을 위한 것

또 이런 존재가 저런 존재로 변해지고, 저런 존재가 이런 존재와 합해지고 나눠지고 변해지고, 있어지고 없어지고, 하는 이 모든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근본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의 존재 목적은 우리 구원을 위한 것 그 존재들의 목적이요. 이 모든 존재들이 이렇게 저렇게 자꾸 변화되어 가는 모든 과정들도 우리 구원을 위한 순서요 역사들인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12. 믿는 것이 되는 것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의 창조를 믿어야 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우리 구원 곧 교회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예정하신 대로 섭리하시고 보존하시고 재창조로 둘로 합해서 하나로, 하나를 둘로, 이렇게 하나님이 개별 섭리하시는 이 사실을 우리가 알고 또 인정하고 믿고 하는 그것이 우리 지식에 있어서 우리 지식이 그대로 지식 돼야 되고, 그 사실대로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돼야 되고, 우리 사상이 그렇게 되어야 하고, 우리의 행동이 그렇게 되어야 하고. 우리의 모든 희로애락이 그와 같이 되어져야 그것이 믿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13. 신구약 성경말씀 진리

믿는다는 말은 무엇을 기준한 것인고 하니, 하나님께서 천하에 두어도 둘 수 없을 만한 수량이 많고 복잡한 것을 간추려서 육십육권 성경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육십육권에 기록되어 있는 이 계시 지식은 땅에서 올라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보낸 지식인데, 하나님이 인간을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정확 무오하게 사람들이 깨닫게 해서 우리에게 기록해 주신 것이 이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이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지식이요 또 하나님이 인생으로 더불어 계약한 계약입니다. 이 간단한 말씀 안에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이 성경 말씀 안에서 계속 영원히 역사 하십니다. 그래서 이 문서계시 안에는 무한한 영감계시가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문서로 계시되어 있는 문서계시를 믿을 때에 그 믿음을 통해서 믿는 것만큼 영감계시가 그 사람에게 이제 계시해 주기 시작합니다. 깨달아서 알려 주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목적하신 곧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모형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신데 우리를 부르신 것은 예수님의 형상과 같은 형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볼 수 없는 그 하나님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요14:9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하셨습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고 영원히 하나님을 볼 사람은 없습니다. 왜? 그분은 무한하신 분이시오, 영원하신 분이시요 완전하신 분이시므로 그분을 볼 수 없는데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라고 요1:18에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이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땅에 있는 수많은 인간들의 말과 인간들의 모든 지식, 그 지식은 땅에서 뿌리박아 올라온 지식인데, 이 신구약 성경지식은 하늘에서 내려온 지식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원수 된 장벽이 헐어짐을 인해서 이 휘장 가운데로 하늘에 있는 그 하나님의 지식이 우리에게 오셨고 이 지식 안에 하나님이신 그 영감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내주 하셔서 역사 하십니다.

이래서 이 대속의 공로를 입은 사람은 성령과 진리가 그 안에 와서 죽은 영을 살리고, 살린 그 영을 통해서 그 사람의 마음의 모든 기능을 살리고 몸의 기능을 살리려는 것이 그것이 중생 된 영의 역사입니다.

마음의 기능은 지식성도 있고, 지혜성도 있고, 선성도 있고, 사랑성도 있고, 거룩성도 있고, 구별성도 있고, 의성도 있고, 진실성도 있고, 주권성도 있는데 그런 모든 마음의 속성을 살리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이 왔습니다.

14. 교회의 목표

우리의 목표 곧 교회의 목표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몸이 되는 그것이 위를 향한 목표요, 아래를 향한 목표는 만물에게 하나님의 온갖 축복과 은혜로 그들에게 충만케 해 주는 이것이 우리의 목표요 사명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몸이 이루어져 가는, 본체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모형이 이루어져 가는 것이 위로 우리의 목표요, 만물에게 하나님의 충만으로 충만케 해 주는 이것이 아래로 우리의 목표입니다.

15. 성공이 달성되는 방편은 믿음 하나 뿐

이 두 가지 목표가 달성되는 이것이 우리의 성공인데 달성되는 그 방편은 믿음 하나뿐입니다. 그러므로 히11:1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하셨으니 믿음은 하나님이 계약으로 선포 해 놓으신 이 계약 중에 있는 모든 소망을 실상으로 만드는 것이 그것이 한 말로 말해서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는 기관이 믿음이요, 하나님의 목적을 우리에게 달성시키는 그 방편이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믿음의 방편을 써서 내가 하나님의 몸도 되고, 만물의 중보자도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도 되고, 만물들이 환영하면서 영원히 고대하고 찬양하는 그 대상이 되어지는 것이 믿음 하나로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라는 그 믿음을 해석을 하면, 하나님이 계약하신 그 계약을 자기가 지식으로나, 마음으로나, 감정으로나, 자기의 본능으로나, 자기의 양심으로나, 자기의 영으로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인정하는 것 그 다음에 믿음은 그대로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구원은 모든 순서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정된 이 사실, 모든 존재가 우리 구원 위해서 창조된 이 사실, 모든 존재들이 예정대로 이렇게 저렇게 변화, 재화, 화합, 분리. 소멸되는 이 전부가 우리 구원을 위해서 있는 이 사실을 자기 양심이 인정하고, 자기 본능이 인정하고, 자기 사상이 인정하고, 자기 주관이 인정하고, 자기 성품이 인정하고, 자기 지식이 인정하고, 자기 말이 인정하고, 자기 행동이 인정하고, 자기의 몸과 피부까지 인정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전능자의 그 역사를 따라서 지극히 높은 구원을 이루어가고, 만물의 모든 존재가 이 구원을 위해서 있다고 자기가 입으로 말해도, 지식이 인정 안 될 수 있고, 지식으로 그러하다 인정을 해도 자기의 감정적으로 인정 안 될 수 있고, 감정까지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의 주관과 본능으로 인정이 안 될 때에는, 그분의 지극히 크심이 자기 현실에 어떤 크고 두려운 어떤 것이 자기에게 부딪칠 때에 그가 지극히 크신 분과의 자기 구원과의 이 사실을 입으로 말하고, 지식으로 말하고, 말한 대로 사실 사상이 되어 있고 주관이 되어 있고 본능이 되어 있으면 큰 데 속하여서 큰 것으로 말미암은 자가 그를 위해서 지음을 받은 피조물에게 피동 되거나 거기 대해서 염려나 두려움이나 그런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된 기독자는 놀램과 근심이 있지만, 놀램과 근심이 있는 것은 혹 그분에게 거슬릴까 하는 두려움이요, 혹 그분에게 어긋남이 있는가 하는 놀램이요, 모든 인류와 피조물이 그분에게 바로 정상적인 그 결함이 되지 못해서 사망될까 그것이 절단 날까, 그것이 어리석게 스스로 자멸하는 그런 일이 있을까 하는 이 구원에 대한 염려나 두려움이지, 어떤 피조물에게 피해를 받을까, 그 피조물의 어떤 세력이나 모략에게 자기가 해를 입을까 하는 그런 두려움은 절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두려움 있는 것은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안 믿기 때문에.

16. 두 가지 목표, 두 가지 소망

그러므로 이렇게 믿는 믿음으로 비로소 우리의 두 가지 목표는 달성됩니다. 두 가지 소망은 달성됩니다. 위로는 내가 하나님의 몸 되는 것, 아래로는 모든 피조물에게 복의 기관이 되는 것, 생명의 기관이 되는 은혜의 기관이 되어지는 것, 이것이 우리의 두 가지 목표요 두 가지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하나가 이 두 가지를 이루려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지극히 큰 이 일을 우리에게 이루실려고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17. 그의 부르심의 소망

엡1:18 읽어봅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뭡니까? 뭐 이 나라 저 나라 영토를 차지하는 것 아닙니다. 이 지구 땅덩어리를 차지하는 것 아닙니다.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이 조롱하여 '예수 믿는 자들은 아주 허영과 허욕이 가득 찼고, 기독교 보다 더 기만의 종교는 없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했기 때문에 이제 믿고 안 믿는 여기에서 그것은 결정됩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 없다고 하고 하나님을 아주 멸시합니다. 그런데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인정 할 수 없는데, 다만 주님의 피 공로의 구속을 받고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람만 인정이 됩니다. 인정이라 하는 것이 자기 주관으로 인정되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인정을 하실 때에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18. 성도 안에서 그 기업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하는 말씀에서 '기업'이 뭐입니까? '우리 기업은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 시켜 주어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이 필요한 것 같이 우리가 필요한 존재가 됩니다. 우리의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서 모든 피조물들이 만족합니다.

저들이 몰라서 대항도 하고 하지만 마지막에 알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 다음으로 자기들에게 봉사자요' 사랑자요' 시은자요' 위하는 자이기 때문에 만물이 마지막에는 우리를 찬양합니다. 우리는 그 찬양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께 돌리는 찬양을 돌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업입니다.

19.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 어떠하며'하는 말씀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이와 같이 지위를 얻고 권세를 얻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죄인으로 정죄 받아 죽었지만 성경 빌2:10-11에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하신 대로, 모든 존재가 주님 앞에 감사의 무릎을 꿇고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면서 주라 시인한다고 했습니다.

20. 영광의 덕의 구원

이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영광의 덕의 구원입니다. 영광의 덕의 구원에서 그 영광이라는 것은 뉘든지 해를 봤으면 영광을 안 돌립니다.

그 마을에 가서 보니까 부자가 둘이 있습니다. 한 부자는 가서 물으면서 '여기 아무 부자가 있지요?' 이라니까 온 동민들이 입을 삐쭉 삐쭉거리면서 '그 댁이 어디 있습니까?' 가르쳐 주지도 안하고 삐쭉 삐쭉 거리면서 갑니다. 또 묻기를 '그 댁이 참 인심이 좋다고 했지요? 참 선하다 하지요?' 이러니까 겁이 나니 말은 못 하고 삐쭉거리면서 '체, 미친놈 찾아 왔네 미친놈이 왔네 그걸 인심이 좋단다. 또 미친놈 또 한 놈 왔네.' 아, 속으로 돌아서서 욕을 한다 그 말이오. 그게 영광이 없는 겁니다. 분명히 그 부자가 그 동민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고 해독을 끼친 자가 분명합니다.

또 한 부자를 말합니다. '아 그 부자가 여기 있다 하지요.' '아이구, 어찌 오셨습니까? 아십니까? 예, 여기 계십니다. 그분 어찌 아십니까? 참 그분은 참 장한 어른입니다. 우리 동리가 그분 덕으로 삽니다. 그분이 우리 동리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을 했는지 우리 동리에서 그분의 비를 세우려 해도 못 세우게 해서 못 세우고 있습니다.' 뭐 이러니까, 어떻게 사람마다 만나면 칭찬이 자자하고 감격해서 못 견딥니다. 그게 영광입니다. 그게 영광이오. 우리 구원은 영광과 덕으로 된 구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말단의 모든 것까지도 다 감격하고 감사하고 진정 속으로 존대하고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이런 영광의 덕의 구원이니까, 이 기업의 이 중보자가 되어서 만물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충만케 하는 그 충만한 자의 그자, 이 교회의 기업, 이 기업의 영광의 그 풍성한 것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말씀하셔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어떠한 것을 너희들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21. 지극히 큰 능력

엡1:19에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셨으니, 그러면 우리가 믿기만 믿으면 그 믿음을 통해서 나타나서 역사 하시는 그 능력은 지극히 큰 능력으로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인데 그 능력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역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지 않으면 그 능력이 우리에게 와서 역사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힘의 강력의 역사 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하셨으니, 우리가 믿으면 역사 합니다. '베푸신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2. 그 능력이

엡1:20에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하셨으니,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 능력이 예수님 안에서 역사 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는 말씀은, 이 능력이 들어서 우리를 위해 대속 하신 그 십자가의 죽음을 성공하셨고, 또 우리에게 부활의 영생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을 입고 부활하신 이 부활도 이 능력이 들어서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면 이 능력은 무슨 능력입니까? 이 능력이 사랑의 능력이요. 완전의 능력이요, 모든 전체를 생명으로 구출하려는 그 생명 역사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이 주님 안에 역사해 가지고서 하늘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히사' 피조물 중에 창조주 다음 위치를 가진 것이 이 능력을 가지고서 다음 위치를 가지게 됐습니다.

23. 하늘나라 권세

(엡1: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하늘나라에는 이 세상 권세 모양으로 무력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하늘나라는 평가적인 가치입니다. 모든 풀 한 포기도 자유의사가 있습니다. 풀 한 포기도 자유의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가리켜서 만물심판이라 말합니다. 풀 한 포기도 자유의사를 가지고서 '나는 이분을 제일 좋아한다.' 그분을 올려야 됩니다. 그분을 높여야 됩니다. 그분은 찬성합니다.

풀 한 포기도 '나는 거기에 대해서 모릅니다.' 했으면 그의 혜택이 그에 미치지 안한 증거입니다. 그러면, 그분의 영광에는 한 개의 흠점이 있게 됩니다.

이러니까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 뿐 아니라 오는 세상간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 나게 하시고'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으니까, 세상 권세자가 강제로 억압을 해서 복종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만물이 평가적으로 다 경배하고 그 앞에 머리를 숙인다 그 말입니다.


<결론>

보배로운 믿음

이런 영광스러운 이 구원을 우리가 이루는 데에는 믿음으로 됩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충만이 우리에게 와서 연결됩니다. 어떻게 연결되느냐? 머리와 몸과 같은 이런 밀접한 연결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본체의 연결이 아닙니다.

또 믿으면 자기의 믿는 그 행위가 자기가 알았던지 몰랐던지 믿는 행위 하나 하나가 모든 피조물들에게 알고 보면 다 감탄해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런 결과를 맺는 그 행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믿음을 가리켜서 벧후1:1에 보배로운 믿음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됩니다.

(벧후1:1)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이런데 이 믿음을 왜 못 가지느냐?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하면 되는데.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계약을 믿고 그대로만 실행해 가면, 한 시간 이 계약 이행해서 이루어지는 결과는 이 우주를 얻는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눅9:25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셨습니다.

'잃는 것'이 뭐입니까? 중생 된 새사람을 잃어 버렸다 그 말입니다. '빼앗기는 것'이 뭐입니까? 그 현실에서 자기의 기능이 되어지는데, 현실 한 현실에서 자기의 기능 만든 그것은 우주를 자기 것 만든 것보다 더 크다 그 말씀입니다.

3. 획 하나 가감 없는 이루어지는 말씀

우주를 자기 것 만든다 할지라도 자기가 세상을 떠나면 다 두고 가야 되고 소용이 없는 것을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거짓말하시는 주님입니까? 우리를 속이는 주님입니까? 주님은 천지는 없어져도 당신의 한 말씀 한 마디는 획 하나도 가감이 없다 하셨습니다. 믿어야 됩니다.

(마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믿는 자가 권능 있고 복 있고 평안하고, 믿는 자는 세상을 발 아래 밟습니다. 믿는 자는 이 세상을 잘 이용해서 세상도 구원에 복되고 자신도 영광스러워집니다.

그러나 믿지 안 하는 자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안 믿는 데는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조롱하는 자도 있을 것이고, 비웃는 자도 있을 것이고, 감탄하는 자도 있을 것이고, 아멘 하고서 작정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4-03-18 주일 오전)/ 김반석목사 정리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5.08-489 선지자 2022.06.03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은 성경을 소개하는 중매쟁이 선지자 2022.06.03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모음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의 성경교리와 목회설교 김반석 2019.08.05
공지 백영희 목사님의 목회적 성경해석 김반석 2019.07.25
공지 현재 지권찰회 설교 정리 선지자 2015.07.05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정리 김반석 2007.11.21
» 교회의 위치와 직책 김반석 2008.07.14
453 전투교회 김반석 2008.08.03
452 십계명은 생명의 법칙 김반석 2008.11.16
451 신앙 노선과 경건 연습 김반석 2008.11.24
450 구주 하나님과 천국, 세상과 우리 생애 김반석 2008.12.07
449 믿음의 연단 김반석 2008.12.21
448 청지기 비유 김반석 2008.12.28
447 멸망의 원인과 행복의 원인 김반석 2009.01.04
446 헛된 길과 헛되지 않는 길 김반석 2009.02.02
445 주님을 전부로 삼고, 주님이 인도하는 대로 복종 김반석 2009.02.08
444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신앙 김반석 2009.02.15
443 하나님과 동행 김반석 2009.02.22
442 온전한 십일조 김반석 2009.03.02
441 가정 교회의 그 목적과 성공 김반석 2009.03.09
440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1) 선지자 2009.03.15
439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 김반석 2009.03.22
438 예수님의 사활 김반석 2009.04.10
437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김반석 2009.05.06
436 사랑은 여기 있으니 김반석 2009.05.18
435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김반석 2009.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