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과 넓은 문

2007.11.05 13:44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좁은 문과 넓은 문
선지자선교회 본문: 마태복음7장13-14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서론>

본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 하시고 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본론>

◎ 멸망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말씀에서 '멸망'은 금생의 멸망과 내세의 영원의 멸망 두 차례의 멸망이 있습니다. 세상 멸망은 세상에서 죽음으로 끝나고 또 그 멸망이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해서 영원 멸망으로 다시 계속하게 됩니다. 이래서 멸망은 금생 멸망, 영원 멸망 두 차례의 멸망이 있습니다.

멸망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 멸망입니다. 이 땅에 사람들과 만물들이 살고 자라고 또 평강을 누리는 그 모든 것은 전부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인데 이 은혜가 없어지는 것이 멸망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지면 먼저 자기 자체의 영이 멸망을 받으니 그에게 참된 인격이 멸망을 받고, 그 다음에는 몸이 멸망 받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모든 활동이 멸망을 받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소유가 멸망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인하여 평강과 영광과 존귀에 속한 것들이 다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멸망의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 둘째는 자기의 자체 멸망, 자기의 활동멸망, 자기의 소유멸망, 자기의 모든 광채 곧 덕이나 영광이나 명예나 존귀나 이런 것은 광채인데 그 멸망이 금생과 또 내세의 영원한 멸망이 있는 것입니다.

◎ 생명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말씀에서 '생명'은 자존자, 주재자, 창조주, 주권자, 영원 통치자, 그분과 관계가 잘 맺어지는 것을 가리켜서 생명이라 말씀한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점점 좋아지고, 그분이 나를 인정함이 점점 커지고, 그 분이 나를 돌보심이 점점 커지고 넓어지고, 그분의 온갖 지능의 능력이 자기에게 임하여 효력을 갖게 되는 것이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는 절대자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이 옳고, 참되고, 바르고, 거룩하고, 진실하고, 깨끗하고, 또 올바른 지혜와 지식, 올바른 모든 욕망과 경영과 행위와 성과로 인해서 잘 되어지는 것이 생명입니다.  

'생명으로 인도' 한다는 이 '생명'은 절대자이신 하나님과 자기와의 관계가 가까워지도록 되는 길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온갖 은혜와 온갖 축복을 받는 그 길을 가리켜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존자 되시는 하나님 그분이 목적을 정하시고 그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영원 무궁까지의 것을 단번에 다 설계해서 예정하셨고, 또 예정하신 대로 창조하셨고, 또 창조하신 것을 주권 능력으로 하나씩 둘씩 순서 따라서 성취해 나가시고, 또 그것을 보존하시고, 한 토막 이 세상이라는 조그만 모판에서 우주와 영계를 통치할 인간을 육성해서 성화 시키는 일을 하시고, 또 심판 넘어 영원 무궁에서 영계와 물질계의 통일된 그 나라의 것을 통치하도록 하시는 그분의 신령의 나라, 영원 불변의 나라, 완전의 나라, 이 모든 영원한 것, 이 완전한 것이 피조물 된 우리와 모든 만물들에게 와서 충만해지는데, 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것은 그분과 그분이 주시는 구원의 은총을 찾아서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가리켜서 '생명으로 인도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망은 절대자와 원수 되는 것, 절대자의 은혜에 완전히 끊어지는 것을 사망이라 하셨고, 또 생명은 절대자와 친밀해지는 젓, 절대자의 모든 은혜에 자기가 점점 가까워지고 그 은혜에 점점 부합해지는 것을 생명이라 말씀 하셨습니다.

◎ 우리 앞길에 두 길

그런고로 우리는 우리 앞길에 무서운 멸망도 있고 또 심히 존영한 생명도 있습니다. 이 둘을 가리켜서 생명으로 인도한다 또 멸망으로 인도한다 하는 그 둘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수가 많아 천태만상의 생활을 하고 있다 할지라도 나누면 둘입니다.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느냐!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느냐! 이 두 길 외에는 없습니다.

이래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악령이 인도를 합니다. 인류시조 에덴동산에서부터 악령이 하와를 멸망으로 인도를 했고, 또 하와의 유혹에서 아담이 멸망으로 인도를 받았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부정모혈로 난 사람은 전부가 다 이 멸망의 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멸망의 인도를 받아서 멸망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여인의 후손이 오면 뱀으로 말미암아 멸망 받은 데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시므로 그때부터 인생에게는 두 길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대속공로로 인하여 성령이 인도하시는 생명의 문이 생겼고 또 악령으로 말미암아 있는 사망의 문이 있어서 이 두 문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성령께서 인도를 하시고,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악령이 인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한 걸음 두 걸음 인도 받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든지 아니면 악령의 인도를 받든지 두 인도를 받고야 말지 혼자 독행 하지는 못 합니다.

◎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 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 이렇게 '문'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말씀한 것이냐 하면 다시 중복이 없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걸음을 걸어버렸으면 그것으로 끝나버리고 영원히 변동 못 합니다. 후퇴도 못 하고 다시 재차도 없습니다.

문 열고 들어가면 그것으로서 문은 탁 닫혀 버리기 때문에 인생이 새털같이 많은 세월이라 하지마는 너에게 두 번 닥치는 세월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월은 너에게 한 번 밖에는 안 닥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네가 지금 오늘이라는 이 시간은 다시 두 번 못 만난다. 이 시간은 이 시간으로서 끝나버린다. 이 시간에 잘못됐으면 잘못됐지 이 시간에 잘못된 것을 고쳐서 '새로 한번 더 살아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튿날 그 일을 해도 그것은 그 이튿날 일이지 전날 그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문'으로 말씀한 것은 다시 재행 할 수 없고. 두 번 걸을 수 없고. 한 번 걸으면 그것은 영원히 끝나버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번 걸은 그것은 잘 걸었든지 잘못 걸었든지 영원의 원인으로 결정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이 시간 잘못한 것은 뒤에 후회하면서 아무리 잘해도 오늘 잘못한 것이 뒤에 잘할 수 있는 거름은 되고, 밑받침은 되고, 도움은 될지라도, 오늘 잘못된 것이 뒤에 고쳐져서 새롭게는 안 되고 오늘 잘못된 그것은 그대로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자기가 앞으로 옳은 길을 걸어가는 데에 도움은 될지언정 잘못된 것을 다시 재생으로 고쳐지지는 못한다는 것을 문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또 문은 들어가는 시발점이 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멸망의 문으로 들어가면 그 즉시 멸망 가운데 들고,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면 그 즉시 생명 가운데 들겠습니다.  

◎ 좁은 문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인데 문이 좁고 그 길이 협착하다 하셨습니다. '좁다'라는 말은 들어가기가 아주 힘든다는 말이고, '협착'이라 말은 밀어붙이므로 더 이상 틈낼 틈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좁은 문은 어떤 것이 좁은 문인가? 자기에게 닥쳐진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좁은 문은 어떤 것이 좁은 문이냐?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의 인도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령하시는 그 명령 그것이 자기가 들어가야 할 좁은 문입니다.

그러면 그 좁은 문은 어떤 문이냐? 그 문은 죄가 없어야 들어갈 수 있는 문이요 또 그 좁은 문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들어 갈 수 있는 문이요 또 하나님과 동행해야 들어 갈 수 있는 좁은 문입니다.

그러면 이 문을 찾으려고 하면 첫째는 자기의 모든 허영, 허욕, 잡된 마음, 자기에게 모든  거짓된 것, 이 자기를 부인해야 됩니다. 자기의 주관이나 욕심이나, 또 자기의 형편이나 사정이나, 또 자기의 모든 처지나 이런 것을 가지고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이 좁은 문으로 들어 갈려고 하면 예수님의 대속으로 사는 자만이 들어 갈 수 있는 문입니다.

◎ 협착한 길

또 현실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걸어가려면 그 길이 협착하다 하셨습니다. 내가 현실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즉 예수님의 사죄를 벗지 않고, 예수님의 칭의를 입고, 하나님 모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 좁은 문을 들어가려고 하면 내 개적의 이런 조건 저런 조건, 이런 욕심 저런 욕심, 이런 감정 저런 감정, 이런 욕망 저런 욕망 그런 것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여 그 걸어가는 길을 협착 하게 합니다.  

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이 미혹하고 핍박을 하여 좁은 문으로 걸어가는 길을 협착하게 합니다. 그 뿐 아니라 믿는다는 자들이 큰 문 넓은 길로 가자가고 핍박을 합니다.

○ 진실과 신앙양심

그런 가운데서 이 시간 이 현실에서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 만나는,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찾아야 되겠다 하는 이 진실로 무장합니다. 진실로 무장하지 안 하면 안 됩니다. 진실이 없는 사람은 예수를 못 믿고 죽는 날까지 믿어도 저는 참 허탕합니다. 행여나 그러다가 진실한 사람이 될까 해서 그런 것이지 진실이 아니면 이 길은 못 갑니다.

진실로 무장을 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는 자기에게 양심을 씁니다. '자, 내 양심으로 생각해 볼 때에 이러면 옳으냐 저러면 옳으냐?' 내가 성경 지식을 가지고 '이래야 옳겠나 저래야 옳겠나?' 하는 그것을 제가 생각해서,  '내가 지금 형편 사정이 이러니까' 그 사정을 가지고 자기 양심을 쓸라 하면 안됩니다. 사정이야 어쨌든지, 처지야 어찌됐든지, 형편이야 어찌됐든지, 현재야 어찌됐든지, 과거야 어찌됐든지, 내가 지금 현재 여기에서 어떻게 하면 제일 바른 길을 걸어가겠느냐 하는 그것이 양심입니다.

이렇게 양심을 써서 진실로 무장하고 이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성경 말씀을 길로 삼아서 이 성경 말씀이 인도하는 그대로 나가면 그것이 좁은 문을 만나지는 협착한 길이 됩니다.

이런 저런 어려움과 핍박의 협착한 길을 걸어가게 하시는 것은 죽기 전에 잡된 것을 다 태워서 불로 연단해도 없어질 금보다 더 보배로운 완전한 믿음, 정금 같은 믿음을 가지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이라 말은 이 세상 어떤 무엇이 와도 주님과의 연결을 끊을 수 없는 그 연결로 부요케 하도록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과 연결 외에 딴 것은 다 잡탱이기 때문에다 타지고 맙니다. 이러니까 이 좁은 문을 걸어가기 위해서 그 가는 길이 협착하다 할지라도 그 길을 걸은 다음에는 아무도 그 길을 버리지 안 합니다.

◎ 큰문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다 하셨습니다. 크다 그 말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하나뿐인데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큽니다. 그것은 악령이 인도하는 문인데 인간 자기 생각, 자기 주장, 자기 지식, 인간들이 비판하고 평가하고, 인간들이 경험하고 체험하고, 인간들이 통계 맞추고, 인간들의 여론, 인간들의 지식이 다 들어 갈 수 있는 문은 큰문입니다.

◎ 넓은 길

진리를 따라가서 영감을 만난 그 협착한 길이 있고, 그 길 외에는 전부가 인본의 길이요 인지의 길이요, 인간의 만물보다 거짓된 형형색색의 그 모든 소생으로 된 길인데 그 길은 넓습니다. 넓으니까 찾는 사람도 많고 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길이 평탄해서 가기가 좋다고 합니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결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는 것이 우리에게 대한 명령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기가 닥친 현실을 만났을 때에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뜻 그 하나, 자기가 걸어갈 자기 진리 하나, 자기에게 대한 하나님의 명령 그 하나, 그 한 길이 있고, 그 한 길 외에 자기 생각대로, 친구 생각대로, 가족 생각대로, 여론대로, 세상의 공론대로, 모든 세상대로 하는 그 길은 천길 만길 넘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현실에는 한 길 외에 수백 수천 길이 있다, 그러나 한 길 외에는 전부 사망의 길이다, 그 길은 마귀가 인도하는 길이다, 그 길은 멸망시키려는 길이다. 그러므로 너에게 네 현실에서 한 길인 그 한 길을 잡아라. 그 한 길 외에 다른 길은 다 마귀가 인도하는 길이다. 사망으로 향하여 가는 길이다.

이러니까 우리 앞에는 한 길과 수많은 길이 있는데 한길 외에는 다 마귀가인도하는 길이요 그 길은 가기가 쉽지마는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현실을 만났을 때에 처세술을 쓰지 맙시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자기 현실을 만났을 때에 처세술 쓰지 마십시오. 또 인간 통계를 쓰지 마십시오. 인간 통계도 인간 처세술도, 또 모든 여론들도 다 참작은 하지마는 그것은 다 넓은 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앞에 좁은 문,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감으로 생명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총을 만나고, 하나님의 보호를 만나고,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만나니까 하나님이 돕는데 누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기에 믿음으로 나아가고, 믿음으로 걸어본 사람은 자꾸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고, 믿음을 떠난 사람은 이 믿음의 길을 걷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인본으로 하는 사람은 점점 인본으로 하게 되고, 신본으로 하는 사람은 점점 신본으로 걸어가게 됩니다.

사람의 멸망과 생명이라는 것은 조물주 절대자 그분이 주권하고 계시고, 그분이 보시고 멸망과 생명을 주시고 또 멸망으로 가는 길과 생명으로 가는 길은 뚜렷이 하나님이 내놓고 이리 가면 멸망이라 이리 가면 생명이라 하는 것을 해놨는데 제가 이것을 모르고 멸망 길을 가면서 생명을 암만 노래 불러야 소용없고, 생명 길로 가면 멸망을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지 안 해도 오지 못합니다. 이렇게 절대적인 인생로가 정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살아야 됩니다.



◎ 백영희목회설교록 (1983, 5 29 주오전 설교) 참조/ 김반석목사 재정리




<참고>

◎ '문'에 대한 용어해석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선을 행치 않으면 죄가 문에 엎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이래서 선에 속한 문이 있고 또 죄에 속한 문이 있어 문의 종류는 두 종류의 문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문이라는 것은 그 어떤 곳에 들어가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 문입니다. 그래서 죄의 문에 들어가면 그 문에 들어가는 즉시 죄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고 또 그 문 안에는 죄만 있지 그 외 다른 것이 없겠습니다. 그와 반대로 의의 문에 들어가면 그 문에 들어가는 즉시 의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게 되고 또 그 문 안에는 의만 있겠습니다.

◎ '좁은'에 대한 용어해석

(민22:24-26) 여호와의 사자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에는 담이 있더라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비비어 상하게 하매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민22:24-26에 보면 본문에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는 그 '좁은'이라는 그 말의 뜻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좁은'이라는 말은 좌우로 피할 때가 없는 그 정도의 좁은 것을 나타내시는 말씀입니다. 여럿이 나란히 갈 수 없고 오직 하나만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것을 '좁은'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만 걸어 갈 수 있지 예수 그리스도 외의 것은 그 어떤 것이라도 함께 '좁은' 길을 통과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구원도리의 말이 '좁은' 입니다. 이래서 '좁은'은 자기의 신앙걸음에 대한 대내적인 면에 대한 말입니다.  

◎ '협착'에 대한 용어해석

(애1:3) 유다는 환난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 저가 열방에 거하여 평강을 얻지 못함이여 그 모든 핍박하는 자가 저를 쫓아 협착한 곳에 미쳤도다

애:13에 보면 본문에서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하는 그 '협착'이라는 그 말의 뜻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협착'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길을 걸어간다고 핍박하는 자가 쫓아서 아주 꿈쩍하지 못하도록 몰아붙이는 그런 면을 말합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핍박하여 쫓는 것같이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환란에서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여주시므로 다윗은 그곳을 '셀라 하마느곳'이라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는 자에게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신다는 말이 '셀라 하마느곳'입니다. 이래서 '협착'은 자기의 신앙걸음에 대한 대외적 핍박에 대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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