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시련

2007.06.19 00:51

김반석 조회 수: 추천:

제목 : 믿음의 시련
선지자선교회
본문 : (벧전1:5-7)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서론>

7절에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하신 그 금은 연단성과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믿음의 시련과 또 시련으로 연단 된 믿음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성이 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구원도리입니다.

'연단'이라는 것은 불에 태워서 좋지 못한 것은 제하고 좋은 것만 남기려는 것이 연단입니다. 연단을 통하여 합당치 못한 것은 다 제하는 것이 연단입니다. 그래서 연단을 통하여 못 쓸 것은 천해지게 되고 그 반면에 좋은 것은 그 숨은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금'이라는 것은 귀한 것이지만 불로 연단하지 않으면 깨끗한 정금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래서 정금이 나오기까지는 잡된 것이 섞여 있는 금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뜨거운 불로 연단을 하여야만 잡된 것이 다 태워지고 정금만 남게 됩니다.  

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 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하신 그 연단은 정금을 얻기 위한 연단보다도 정금 같은 깨끗한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더 연단을 시키신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하신 말씀은 금을 연단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믿음의 연단은 그 가치가 지극히 높다는 뜻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연단 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신 대로 영원히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또 모든 피조물들에게는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영광과 존귀의 순위는 첫째가 하나님, 둘째가 구속받은 성도, 셋째가 연단 받은 믿음이 되겠습니다.

<본론>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성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시련'이라는 그 속에는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시험하는 연단이라는 것인데 그 우리가 시련을 맞이하여 계속 믿음을 가지는가 아니면 그 시련으로 믿음을 떠나는가 하는 시험하는 연단을 믿음의 시련이라 말씀하였습니다.

또한 '믿음의 시련'이라는 말속에는 참 믿음도 있지만 잡된 믿음도 있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잡된 믿음이 있기 때문에 시련을 통하여 잡된 믿음을 태워서 제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무엇이냐 하면 믿음은 2가지 요소로 되어 있는데 하나는 지식을 따라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따라간 지식대로 실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 지식 하는 것이 믿음의 반 조각이며, 또 그 하나님의 지식대로 실행하는 것이 믿음의 반 조각이 되어서 이 둘을 하나로 합치면 산 믿음이 됩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지식을 내 지식으로, 하나님의 지식대로 행하는 것 곧 하나님의 능력을 내 능력으로 삼으면 온전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지식의 종류가 심히 많고 또 능력의 종류도 심히 많습니다. 그렇기에 지식과 능력에 따라 믿음의 종류도 심히 많습니다. 그런고로 믿음의 연단이라면 별별 수많은 지식으로 또 별별 수많은 능력으로 믿음을 삼은 그 믿음의 연단이라는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식 또 하나님의 능력 외에 별별 수많은 지식과 수많은 능력으로 믿음을 삼은 잡탕이 믿음을 가진 자들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그 잡탕이 믿음을 믿음인줄 알고 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속는 것이며 또 결과는 허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잡탕이 믿음을 제하시려고 금을 불로 연단 하는 것 같은 여러 가지 시험의 연단 곧 시련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하시는 말씀은, 잡된 믿음은 태우고 정금 같이 깨끗한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주시는 여러 현실에서의 시험하는 연단 때문에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려움이 오면 믿음을 연단하기 위한 시험이라는 것을 꼭 붙들고 요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불로 연단하면 금이 타는 것이 아니라 잡된 것이 탑니다. 그렇기에 시험이 오면 금은 좋아하고 잡것은 싫어합니다. 그것은 시험이 올 때에 근심 걱정이 오는 것은 잡 믿음이 절단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험이 오면 근심이 되고 고통이 되거든 그것은 잡 믿음인 줄 알아야 합니다.

연단이 올 때에 금은 좋아합니다. 왜냐 하면 금은 더욱 더 정금이 될 뿐 손해 갈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연단에는 참 믿음이 손해 갈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단이 올 때에 참 믿음은 좋아하고 거짓 믿음은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연단 속에는 깨어질 것이 깨어지고 태워질 것이 태워지지 깨어지지 않을 것과 태워지지 않을 것은 깨어지지 않고 태워지지 않습니다.

믿음의 시련의 어려움을 주시는 이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믿음의 연단으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는 자 만들기 위하여서입니다. 그렇기에 이 믿음의 시련이 자주 있으면 좋습니다.

이 세상에는 없어질 믿음과 없어지지 않을 믿음이 있고, 참 믿음과 가짜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에는 능치 못함이 없는 믿음과, 사람을 속이고 망치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종교의 믿음은 사람을 속이고 망치는 믿음입니다. 신사참배 한 그 믿음은 다 불타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보배이나 이렇게 이 지극히 보배로운 믿음과 지극히 해독 서러운 믿음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는 믿음인데 이 믿음을 연단 시킬 때에 2단계로 연단을 시킵니다.

1단계는 하나님의 지식과 내 지식, 또 하나님의 능력과 내 능력이 분리되지 않고 합해서 하도록 하는 단계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믿음이 섞여있습니다. 잡탕이 믿음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1단계 믿음의 연단에서는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믿음의 연단도 없습니다.

2단계는 하나님의 지식과 내 지식, 또 하나님의 능력과 내 능력이 동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현실을 주십니다. 그럴 때에 내 지식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인정하고, 내 능력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면 보배로운 믿음이 됩니다. 이 2단계 믿음의 연단에서는 내 지식과 내 능력을 부인해야 하는 시련이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믿음이 연단 되어집니다.

믿음의 시련을 주시는 것은 내 지식 내 능력으로 하면 멸망이고,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면 생명이라는 것을 알려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인정이냐, 자기 인정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일찍 아는 사람, 또 늦게 아는 사람, 또 죽을 때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론>

우리에게 오는 어려움은 믿음을 연단 하는 어려움입니다. 또 쉬운 것도 믿음을 연단 시키기 위해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현실은 어떠한 현실이든지 간에 믿음의 연단을 위해서 주님이 주시는 현실입니다.

평소 지극히 작은 데에서 내 지식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지식을 믿고, 또 내 능력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지식이 깨어지는 연단의 현실이 오면 좋고, 사람 능력이 깨어지는 연단의 현실이 오면 좋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내 지식과 내 능력을 부인하는 현실로 통과해야 합니다. 내 지식과 내 능력을 부인하는 현실이 수입 있는 현실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하는 말씀대로의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인격성이 많으나 믿음성이 있어야 합니다.

<첨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지식을 주신 것은 그 지식으로 내 지식 삼아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지식을 아는데 쓰임 받는 지식으로 주셨습니다. 또 우리 사람에게 능력을 주신 것은 그 능력으로 내 능력 삼아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데 쓰임 받는 능력으로 주셨습니다.

백영희목회설교록(1982, 7, 4 주일 오후) 참조/ 김반석목사 재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