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4:4의 ‘머리에 면류관’ 硏究
선지자선교회
계4:4에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하셨으니, 면류관을 머리에 쓰는 까닭이 무엇인가?
세상에 보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머리에 면류관을 씁니다. 그리고 올림픽 경기에서 이기는 자들이 월계관의 면류관을 씁니다. 이래서 왕과 이기는 자들이 쓰는 면류관으로 상징한 것인가? 세상은 그런 성격으로 머리에 면류관을 씁니다.
그러나 교회가 머리에 면류관을 쓰는 도리는, 아3:11에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 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하셨으니, 솔로몬 왕 곧 구주 되시는 주님의 머리에 쓰시는 면류관입니다.
아4:1에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하셨으니, 머리에는 머리털이 있는데 그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다 하셨습니다.
마10:29-31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하셨으니, 머리털 까지 다 세신바 되었다 하셨습니다.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셨기 때문에 그 머리에 면류관을 쓰신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대속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사 우리를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와 같이 양육하셨으므로, 그 머리에 그 머리털을 상징하여 주님께서 그 구원의 영광의 면류관을 쓰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대속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사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와 같이 우리를 양육하신 그 양육이 어떠한지를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하는 말씀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서론)
마10:29-31에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하셨으니, 머리털 까지 다 세신바 되었다는 말씀은 어떤 말씀인가?
마10:30에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하는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세밀히 살피시고 세밀히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얼마나 세밀히 살피시고 얼마나 세밀히 보호하시는가?
(본론)
마10:30에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하는 말씀은, 아4:1에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구나’ 하셨으니, 그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 같이 세밀히 다 살피시고 세밀히 다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무리 염소’는 무엇을 말씀하는가? 창31:38-40에 ‘내가 이 이십 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하셨으니, 야곱이 밤낮으로 기른 무리 염소같이 주님께서 목자 되셔서 우리를 양육하신다는 말씀입니다.
1. 첫째로,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하는 말씀은 창22:15-18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믿음의 신앙으로 양육한 것을 가리킵니다.
2. 둘째로,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하는 말씀은, 마7:15에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하셨으니, 노략질 하는 거짓 선지자가 아닌 모세와 엘리야와 같이 선한 선지자의 신앙으로 양육한 것을 가리킵니다.
3. 셋째로,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하는 말씀은, 벧전5:8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하셨으므로, 대적 마귀와 싸워 이기는 신앙으로 양육한 것을 가리킵니다.
4. 넷째로,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내었으며’ 하는 말씀은, 마6:19-20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하셨으니,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는 신앙으로 양육한 것을 가리킵니다.
5. 다섯째로,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하는 말씀은, ‘더위’는 벧전1:7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불로 연단한 금 보다 더 귀한 신앙으로 양육한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추위’는 고후4:17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하셨으니, 환난 가운데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는 신앙으로 양육한 것을 가리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