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210主后(马太福音5:13)
선지자선교회
1980年2月10日主日下午
本文:马太福音5章13节
你们是世上的盐。盐若失了味,怎能叫它再咸呢?以后无用,不过丢在外面,被人践踏了。
路加福音14章35节中说,“或用在田里,或堆在粪里,都不合式,只好丢在外面。”这节经文上说,失了味的盐,就是用在田里也不合适。也就是说,变质、变性的基督徒就是用在田里都不合适。如果一个基督徒本质变了、本性变了,那么,就只好被丢掉,因为用在哪里都不合适。而且,丢掉以后呢,用在田里不合适,堆在粪里也不合适。
如果基督徒离开其本质、本性,变质、变性了,那么,就是用在田里都不合适。这里‘田’喻指世界。‘用在田里不合适’,意思就是用在‘世界’不合适。所以,基督徒之所以成为基督徒并不是为了被世界所用。神不是为了被世界所用、为世界所需而造的基督徒。也就是说,世界是为基督教的救恩而存在的,而基督教的救恩却不是为世界而存在的。
为世界而存在的,是那些未被拣选的人,他们是为世界而存在的。如果一个基督徒离开了基督徒的本质、本性,那么,就既不能当作不信者使用,也不能当作基督徒使用,也就是说,他就成为了用在哪儿都不合适的人。而那些未蒙拣选的人,他们是神为了用在世界上而造的。
基督徒是为了用于永恒世界中而被创造和救赎的。而且神也继续造就这些能够用于永恒世界中的人。‘堆在粪里也无用’,这句也是比喻。‘堆在粪里也无用’,这里的‘粪’是以‘谷子’作为前提来说的。粪是用来栽培谷子的,它是用来使庄稼长得茂盛、结果子的。
‘谷子’也是比喻,神创造这些未蒙拣选的人,是为了在他主导的救赎中将他们作为帮助者去使用他们。
这里粪是指未蒙拣选者他们对什么是有价值的,而‘用在田里’,这是指其被使用的时期和场地。未蒙拣选者被使用的时期是世界,被使用的场地也是世界。基督徒用来预备永远使用之物的场地就是这世界。
所以,基督徒不是被世界所用而是使用世界的人。如果一个基督徒能活出作为基督徒的样式,他就能成为使用主,很好地使用这个世界;但如果他一旦变质了,那么就既不能被世界所用,也不能使用这个世界,成为在世界上也没有用的人。从根本上来讲,基督徒是为用作盐而存在的,所以,如果偏离了这个用途,那他就毫无用途。
如果一个信者不以信者的样式生活,你可能会说,那他也许还可以作为不信者中的一员去生活,但在本问中断定不是这样的。这样的人在世上也没有用。未蒙拣选者是作为世上不可或缺的一员而被世界所用,但变了质的基督徒却是在世界中也无用的一个存在。
另外,‘粪’是指它的效力而言的。未蒙拣选者是在成就‘神的救赎(即‘神的谷子’)’中,像肥料一样得到有效使用;而变了质的蒙拣选者,他们既不能用于神的救赎中,也不能用于这个世界,只能沦为毫无用途的人。将这些道理,用比喻表现为‘用在田里,堆在粪里,都不合适’。用这样的比喻,能让我们对‘粪’有一个很好的理解。
下面也是用比喻来表示的,未蒙拣选者是为蒙拣选者而存在的。好象食物是为帮助我们的身体而存在一样,未蒙拣选者是神为帮助蒙拣选者得救,为在蒙拣选者得救中使用,而在起初创造时就这样来创造的。我们可能会想,蒙拣选者若不按自己的本质、本性活在世上,应该至少还能发挥未蒙拣选者的效力。但是,本文分明地告诉我们,连这也是不可能的。
还有这世界,是神为蒙拣选者的得救而使用,而造的这个世界。我们会想如果一个基督徒不为自我得救而使用世界,那么他也许会被世界所用,但实际却不然。他既不能成为使用世界的人,也不能成为被世界所用的人。
从根本上来讲,神造基督徒不是为了用于世界而造的。神是将基督徒作为使用这世界的主人公来创造的,神造这世界呢,就是为基督徒所使用、为基督徒得救所使用而造的。未蒙拣选者是为了在蒙拣选者有效得救中使用而造的;而当蒙拣选者变了质时,连成为蒙拣选者得救的有效利用之物都成不了,也就是他甚至不能成为为救赎而有效利用的存在。
基督徒在世上是单单作为盐来被使用的。是的,只作为盐来被使用。而作为盐来使用的主人公是我们的神,他将我们作为世上的盐来使用。何谓基督徒?被当作盐来使用的才是基督徒,基督徒只专用于这个用途。
不但如此,所有自然启示的万物也教导我们。铁只是作为铁来使用,金子只是作为金子来使用,牲畜只是作为牲畜来使用,红色燃料只是作为红色燃料,蓝色燃料只是作为蓝色燃料来使用。不管是什么,只照着其本身的特质来使用,如果不能按照其特质使用,那么它就是变质,一无所用了。石头如果变了质,就不能用作石头,水若变了质,也不能当作水来用。这不是什么特别的道理。所有万物都按照其本身性质,按照其本质、本性原原本本地被使用。一旦它的本质、本性变了,就不能被使用了。
按照比喻,基督徒是世上的盐,比喻为盐是因它包含七种特性。盐除了调咸淡味之外,别的味道什么都没有。它只有咸味,是单纯咸味的凝聚体。基督徒也与此相同,基督徒只是单单由耶稣的救赎形成,是耶稣救赎的凝结体。耶稣的救赎可以简单归纳为以下六点:
(其一,是)罪得赦免。罪得赦免,因而现在不再有罪。犯罪是因变了质。(我们被神视为)无罪的人。犯罪,是因基督徒变了质。不管在哪儿,基督徒只单单作为这种特性来被使用,如果不能溶解就是变质了,其本性变了。我们(被神视为)是罪得赦免的无罪的人。
(其二,基督徒)是义人。基督徒如果不管把他放在何处,都是义人,那么他就是仍保持本质的人;而如果没有了义,那就是变质了。如果没有罪,就是保持了基督徒的本质;而如果有了罪,那是基督徒的本质变了。
(其三,基督徒)是属神、与神结合、以神为中心、以神为主的人。如果一个基督徒不管在何处,都能作为以神为主、以神为中心的人活着,那么,他就保持了基督徒的本质。如果一个基督徒不以自我为中心、以人类为中心、以文化为中心、以世界为中心、以国家为中心、以民族为中心、以家庭为中心、以钱财为中心、以权势为中心,而是以神为主、以神为中心的话,那他就保持了基督徒原有的本质;但如果他以以别的为中心、以别的为主,那他就是变质了。这是耶稣基督救赎的一部分。
(其四,)基督徒是父神的儿子。牛犊像牛,狗崽子像狗,第一个亚当的儿子像亚当,第二个亚当的儿子像第二个亚当——即像神的形象,成为照着神的形象造成的人。按照神的属性形成的人,就是保持了基督徒本性的人;而具有非神属性的其他属性的人,那他作为基督徒就是变了质的人。关于神的属性,共有性有8种,非共有性有4种,关于其他,我们也讲了几种。神的子女是照着神的形象形成的。
神的形象,因为神是无形的,圣经中显现的神的形象是指神的属性。共有的属性是知识性、智慧性、良善、爱、圣洁、公义、真实、主权,(及)永恒不变、自存、完全、单一,在圣经中共有这12种属性出现。具有神形象的人,他是没有变质的基督徒。
如果一个基督徒在某个时期、某个场所、某个事件中,丢掉了神的形象、神的属性,那么,哪怕是短暂的时间,他也是变质的基督徒。
(其五,)基督徒是神宣告的这一真理和灵感成为他一生法则的人。世上万物若按照造物主赋予他们的法则生活,就能活;违背这一法则,即刻就死。比如,盛开的一朵花,它的根扎在土里,茎叶在地面上吸收阳光、空气和水份而活,如果它离开这个法则,马上就干死了。
与此同理,如果一个人将灵感和真理当作一生的法则而生活,那么他就是保持本质的基督徒;而如果他离弃这一法则,用别的法则生活,那他就是变质的基督徒。
(其六,)基督徒是只生活在天国中的人。何谓天国,活在神这一真理的统治下,那就是天国。如果一个基督徒活在真理的篱笆里面,活在神的统治之下,那他就是保持本质的基督徒;而如果他离开了真理,在世上受神以外的其他统治,受有背于神的其他统治,那他就是变质的基督徒。神通过各种事物来进行统治,但不管通过什么来进行,只要是按照他的法则统治,那它就是神将它作为机关来进行的统治,那么,接受这样的统治,就是服从神的统治。这是基督徒的本质。
基督徒只能照着其本质所使用。我们是神为了按照本质使用而建立起来的得赎的百姓。在神使用时,要本性得以溶化才能使用。溶化多少,就使用多少。作为牺牲来使用。
① 在神为了将我们作为没有犯罪的人来使用时,有时会有被剜掉眼睛、断掉胳膊、经济上受损、夺掉地位、权势、健康等事情伴随。这是神在以赦罪的方式来使用我们。
② 神在世上如果要将一个人作为义的器皿来使用,可能就会通过各种方法牺牲他自身、他的财产、及他所有活动舞台。这就是按照本性在溶化——咸味浸入、扩散到别的东西中,原本凝成一块的东西以咸的调料的形式渗透到其他东西中起作用、生存。神是就是用这种方式来使用我们。
③ 在物质主义成为生命的世界中,当神要将一个人作为以神为中心的人来使用——在以自我为中心的人中间,作为以神为中心的人使用时,他就可以为此目的以各种形态被使用、被牺牲、被溶解消逝掉。这是神以神为中心来使用了这个人。
为了按照神儿子的形象、神的形象来使用一个人,按照神的形象在世上使用一个人,那么,就要像咸味溶化了才能浸入到别的东西中一样,为了保持神的形象,我们自身就要牺牲、受损,这样世界才知道,啊,这人果真是按照神的属性死了也能活,这是具有神属性的人啊!这样神的形象在第三者里面就得以播种。
当神要照着神的属灵法则使用一个人,照着他的属灵法则使用一个人时,这个人对世界这个不让人用属灵法则生活的世界,就只能牺牲、溶解,从而用这种牺牲,将神法则的生活展示给世界、传达给世界、在人们心里种下感化。
在真理被混淆和弃绝的世界中,机会主义者不择手段,受各样事物的统治——如果受金钱统治对自己有利,就受金钱统治;如果受人的统治对自己有利,就受人的统治,而受这些统治被肯定为有能的处世术。作为神的百姓,神想要让人只受他一位神的统治——只为他所动、只通过他而定、只通过他而活。当神想将他作为这样的人来使用时,他便有时会死,有时会贫穷,有时会失去地位、权势、工作。而这就是像盐溶解一样自身溶解、牺牲的过程。
这个人不是因犯罪而溶化,而是因统治者神在使用、统治,所以,他是被使用而消逝的。这就是盐的本质,溶解本身就是盐的本性。盐是比喻。就像盐只具有咸味一样,基督徒也是只单单具有‘基督徒救赎’的凝聚物。这样,神为了给世界咸淡味而使用基督徒。
在因罪恶而腐烂的世界里,神要我们作为义和无罪的人,在没有义的世界里,作为义;在不以神为中心的世界里,以神为中心;在没有神形象的世界里,作为神的形象;在撇弃了法则的世界里,作为神的法则;在无视神统治的世界里,作为神的统治者,用这六点给世界调节咸淡味。用这六点防止世界堕落,给绝望的地放以盼望,给没有人性价值和人性美的地方赋予人性的价值,使人性原本的美丽和本质苏醒。神为要这样使用而建立了我们。
我们是世上的盐。但在本文中说,一旦失了味道,就不能让它再咸了。这句话的意思是,如果本性变了、本质变了,那就是徒然而为。基督徒即便拥有了这六点,但如果作为这六点的拥有者没有被神使用而消失,那这咸淡味是没有用的。因为变质了。没有咸淡味而消失或牺牲是没有用的。即便是已拥有这救恩的人,但若没有自我的牺牲就不行。未得到这救赎的,也是失了味的盐;拥有这六点救恩但不牺牲的,也是失了味的盐。
不能使它再咸,这句话的意思是不能再得到恢复。不能再得到恢复的意思是,要在一个个自己经历的现实中,尽到这职责,否则,当错过某一现实、某一机会后,就再也不能恢复那一现实。就是说,单论那一段过程,是完全的变质。
看下一句,‘都不合式’,变质了就没有用了。基督徒若按其本质、本性,以这六点救赎被神所用、溶解,六种救赎渗透、浸入、散开到所有人里面,就变成对所有事物都有用的存在;而如果变质了,那么,他就对造物主、受造者,对自己的家人、朋友、事业、世界,哪儿都没有用。没有益处,只能带来害处。所以说,都不合式,没有用。
所以,基督徒既可能成为神以下第二个必要的存在;也可能成为比其他任何东石没用的东西。基督徒就是这种具有这两种极端属性的存在。‘丢在外面’的意思是被排斥的意思。如果一个基督徒按其本质、本性生活,就不会被排斥,而是相反,他就会受神和所有受造物的永远欢迎;但如果一个基督徒丢弃自己的本质、本性,丢掉自己的人生,那么,他就会遭到神和受造物的丢弃。他所遭受的就是在硫磺与火的深坑中永远燃烧。
人是万物之灵长,却可遭人践踏。然而,只要我们基督徒按本质和本性生活,就不但不会被万物及万物之上的人践踏,而且相反,我们还要被人用头和肩扛着,要被人顶在头上走。我们看以赛亚书49章(22-23节:主耶和华如此说:“我必向列国举手,向万民竖立大旗;他们必将你的众子怀中抱来,将你的众女肩上扛来。列王必作你的养父;王后必作你的乳母。他们必将脸伏地,向你下拜,并舔你脚上的尘土。你便知道我是耶和华;等候我的必不至羞愧。”)对凭着信心生活的人,地上所有君王、王后要将他扛在肩上,舔他的脚。这是圣经的话语。这样,不但不被践踏,相反,看彼得前书1章(彼前1章7节:叫你们的信心既被试验,就比那被火试验仍然能坏的金子更显宝贵,可以在耶稣基督显现的时候,得着称赞,荣耀,尊贵。)意思是,从神和万物那里得到永远的称赞和荣耀,彰显神的荣耀,从万物得到荣耀。称赞、荣耀、尊贵,不但被神视为尊贵,而且从受造物那里也得到尊贵的待遇,将这些作为冠冕给我们戴上。被授予冠冕的意思是得胜者所戴的冠冕。是指得胜者的冠冕。这是神应许将这胜利,这称赞、荣耀、尊贵的胜利披戴在我们身上。
没有比这更大的。所以,当家里只有夫妻二人的时候,我们也要记得,照着这个比喻,我是盐。盐是一个比喻,是为了记忆方便。哪怕我们一个人独处,我也是盐。当我溶化时,我就会扩散、变大、占据很多。在数万人聚集的地方,我也是盐。我是耶稣基督六点救赎的凝结物。我是耶稣的救赎。我是被神用六点救赎在此处使用的人。我是这些救赎的彰显者。以此用途被使用,“我”便消失,照着自身本性溶化,六点救恩也全部向邻舍扩散,扎根,这就是我在世的目的。我们不能忘记这一点。
此外别无其他用途。在世上我们需要权势,需要钱财,需要知识。但再怎么说,那些却不是我们的本质和本性。不是我们的,不是大家和我的。那么这些(有什么用途呢?),当盐溶解是溶解了,但为了使溶解的盐更好地渗透进去,人们就会用棍子搅动搅动。就像人们左右搅动,使咸淡味道更好地浸入一样,这些(权势、钱财、知识等)是为使基督徒的救恩更快、更广得到扩散、渗透,而用过之后就放弃的东西。同样是被神使用,无名之辈和有名望的人他们扩散的速度和范围就不一样;即便同样作为六点使用,穷人和富人其扩散、渗透的强度、速度及范围是不一样的。仅此不同而已。而这些却不是基督徒的本质、本性。
我们一起同声祷告。
有可能对所有的人有用,有可能对所有人、所有事物无用;有可能受所有事物的欢迎,有可能受所有事物的弃绝;有可能被所有事物称赞,得荣耀、尊贵,有可能受所有事物的践踏。我们是拥有这种归途的人。我们是基督救赎的凝聚物,是单单拥有救赎的基督徒。神将我们作为救赎在世上使用,将我们的生命作为救赎使用,通过我们的溶化,向未死的人们传递这救赎。这就是我们活在世上的目的,也是神赐予我们的目的。
800210주후(마태복음 5: 13)
1980. 2. 10. 주일 오후
본문: 마태복음 5: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누가복음 14장 35절에 보면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 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땅에도 쓸데 없다 맛 잃은소금은 땅에도 쓸데 없다. 변질 변성된 기독자는 땅에도 쓸데 없다 기독자의 본질이 변하고 본성이 변하는 그것은 아무데도 쓸데없어 버리는 것인데 그 버림받는 그것이 땅에도 쓸데 없고 거름에도 쓸데 없다 하는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독자가 본질과 본성을 떠나서 변질 변성적으로 살면 땅에도 쓸데 없다 하신 이 땅은 세상을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땅에도 쓸데 없다. 세상에도 쓸데가 없다. 그러면 기독자는 세상에 쓰기 위해서 기독자 된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기독자는 세상에 필요해서 세상에 이용할려고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이 기독교의 구원을 위해서 있는 것이요 기독교의 구원이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은 불택자들이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기독자가 기독자의 본질과 본성을 떠나면 불신자로도 쓰지 못하고 기독자로도 쓰지 못하고 이것은 아무 데도 쓸데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불택자는 세상에서 쓰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것입니다.
기독자는 무궁 세계에서 쓰기 위해서 지으시고 구속한 것으로 무궁 세계에서 쓸수 있는 자를 계속 만드시는 것입니다. 거름에도 쓸데 없다 이것도 비유입니다. 거름에도 쓸데 없다고 말씀하신 이 거름은 곡식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씀입니다. 거름은 곡식을 가꾸는 데에 이용을 당해서 곡식이 무성하게 결실하게 이용 당하는 것입니다.
곡식은 이것도 비유인데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이 구원을 이루시는데에 도움이 되고 이용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불택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여게는 불택자가 무엇에게 유용하게 되어지는 것을 가르쳐서 거름이라고 말했고 땅에도 하는 이것은 이용될 시기와 장소를 말한 것입니다. 불택자는 쓸 쓰여질 그 시기가 세상이요 또 쓰여질 장소가 세상입니다. 기독자는 영원히 쓰여질 것을 마련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세상에서 쓰여지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쓰는 자입니다. 기독자가 기독자로서 살면 세상을 잘 사용하는 사용주가 되어지는 것인데 변질이 되면 세상을 사용하는 자도 이용하는 자도 되지 못하고 또 세상에게도 쓸모가 없는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근본기독자는 소금으로 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이 용도가 이탈되면 아무데도 쓸모없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으로 살지 안하면 불신자의 한 사람으로 살아도 살아진다고 생각하지마는 그것이 아닌 것을 여기 판정해서 말합니다. 세상에도 쓸데 없다. 불택자는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한 사람으로 세상에게 쓰여지지마는 기독자가 변질된 것은 세상에도 필요없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또 거름은 그 효력을 가르쳐 말하는 것인데 불택자는 하나님의 곡식인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 거름 처럼 곡식의 거름 처럼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 데에 유효하게 쓰여지는 불택자지마는 택자가 변질된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에도 이용되지 못하고 세상에도 이용되지 못하고 아무작도 쓰지 못할 사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비유해서 땅에도 쓸데없고 거름에도 쓸데 없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거름을 잘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 다 비유인데 불택자는 택자를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택자의 구원을 돕기 위해서 마치 음식이 우리 몸을 돕는 것처럼 택자들의 그 구원을 위해서 이용하기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을 때부터 그렇게 지었습니다. 그러나 택자가 자기 본질 본성대로 살지 안하고 세상에 살면 불택자와 같은 그런 효력이라도 낼 수가 있지 않느냐 생각하지마는 그것이 안되는 것을 똑똑히 말했습니다.
또 세상은 택자들의 구원을 위해서 쓰시기 위해서 세상을 쓰기 위해서 세상을 하나님이 만드셔 놨습니다. 기독자가 세상을 자기 구원을 위하여 쓰지 아니하면 세상에게 쓰여지거나하지마는 쓰이지도 못합니다. 세상을 쓰는자도 되지 못하고 세상에게 쓰여지는 자도 되지 못합니다.
근본은 기독자는 세상에 쓰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으신 것 아닙니다. 세상을 쓰는 주인공으로 지으신 것이 기독자요 기독자가 쓰도록 하기 위해서 기독자의 구원이 쓰기 위해서 세상은 만드신 것입니다. 불택자는 택자에게 택자의 구원이 유효하게 이용되기 위해서 지으셨지마는 택자가 변질되었을 때에는 택자의 구원을 위해서 유효물도 못되고 택자의 구원을 위하여 이용되는 존재도 못된다 그말입니다.
다만 기독자는 세상에서 소금으로만 쓰여집니다. 소금으로만 쓰여집니다. 소금으로 쓰시는 이는 주인공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소금으로 쓰십니다. 기독자는 소금으로 쓰여지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여기에만 꼭 전용되게 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모든 자연 계시인 만물인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쇠는 쇠로만 쓰이고 금은 금으로만 쓰이고 짐승은 짐승으로만 쓰이고 붉은 물은 붉은 물로만 푸른 물은 푸른 물감으로만 쓰여지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무엇으로 되어 있든지 그것으로 쓰여지지 그것으로 쓰이지 안하면 변질된 것이요 그것은 아무작도 못쓰는 것입니다. 돌 하나도 돌이 변질됐으면 못습니다. 물도 변질 됐으면 못씁니다. 별스러운 이치가 아니라 모든 자연 만물이 그 자체가 무엇인가 그것은 그대로 그 본질 본성 대로 그대로의 쓰여지는 것이지 그것이 본질과 본성이 변해졌으면 못쓰는 것입니다.
기독자는 이 비유대로 세상 소금이라 이 소금은 일곱 가지를 포함해서 이렇게 비유한 것입니다. 소금은 순전히 간 뿐이지 단 것도 쓴 것도 다른 맛은 하나도 없습니다. 단, 짜운 것 짜운 것만 뭉쳐 가지고 있는 것이 소금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자는 예수님의 구원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뭉텅이입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간추려서 6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사죄받은 것이요 사죄받아서 이제는 죄가 없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는 것은 변질된 것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기독자가 변질된 것입니다. 기독자가 어데서나 이것으로써 쓰여져서 녹아지지 안하면 변성된 것입니다. 본성이 변해졌습니다. 사죄받은 죄없는 사람
의로운 사람 기독자가 어데 갖다 놓든지 의로운 사람이라면 그것은 본질을 그대로 가진 것입니다. 의가 없으면 변질된 것입니다. 죄가 없으면 기독자로서 본질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죄가 있으면 그것은 기독자의 본질이 변질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으로 속하여 하나님과 결합되어 하나님 중심의 사람 하나님 위주의 사람 어데서든지 하나님 위주의 사람으로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있으면 기독자가 본질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자가 자기 중심이나 인류 중심 문화 중심 세계 중심 국가 중심 민족 중심 가정 중심 뭐 돈 중심 권세 무슨 뭐이든지 하나님 중심과 위주로 있으면 그것은 기독자의 본질을 그대로 가진 것이요 다른 중심과 위주로 있으면 변질된 기독자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일부입니다.
또 기독자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소새끼는 소를 닮고 개새끼는 개를 닮고 첫째 아담의 새끼는 아담을 닮고 둘째 아담의 자녀는 둘째 아담 곧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속성대로 된 사람이라면 그는 기독자의 본질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아닌 다른 인간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는 기독자로서는 변질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공통성 있는 것 8가지를 말했고 공통성 없는 4가지를 말했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이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은 무형이기 때문에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그 신성의 속성들을 가르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공통성있는 속성은 지식성, 지혜성, 선,사랑, 거룩, 의, 진실, 주권, 영원 불변, 자존 완전, 단일, 이렇게 해서 12가지 속성으로 성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이라면 그는 변질되지 아니한 기독자입니다.
만일 어떤 시기나 장소나 사건에 접해서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속성을 버린 사람이라면 잠시간이라도 그는 변질된 기독자입니다.
또 기독자는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이 진리와 영감이 그의 생애 법칙입니다. 만물이 조물주가 각자에게 법칙을 주신 그 법칙대로 살면 살고 법칙을 어기면 즉시 죽습니다. 이 꽃이 핀 이것도 뿌리는 땅 속에 줄기는 공간에 햇빛과 공기와 수분을 먹고 살도록 했는데 그 법칙을 떠나면 즉시 말라 죽습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영감과 진리를 저의 전 생애 법칙으로 삼아 살고 있으면 기독자의 본질대로의 기독자입니다. 만일 이 생애 법칙을 떠나 다른 법칙으로 살고 있으면 그는 변질된 기독자인 것입니다.
기독자는 하늘 나라에서만 사는 백성입니다. 하늘 나라는 진리안 하나님의 통치하에서 사는 것이 하늘 나라입니다. 진리의 울타리 안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살면 그 사람은 본질 대로의 기독자입니다. 만일 그가 진리를 떠난 생애에서 하나님외에 다른 것에게 통치를 받으면 하나님에게 위배된 다른 것에게 통치를 받으면 변질된 기독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를 통해 가지고 통치하셔서 무엇을 통해서 통치하든지 그의 법칙 대로 통치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기관으로 쓰셔서 통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도 그 통치 받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는 것인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자의 본질입니다.
기독자는 이 본질로만 쓰여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본질로 쓰시기 위해서 세워 놓은 구속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때에는 그 본성이 녹혀져 가지고 쓰여집니다. 녹는대로 씁니다. 희생으로 쓰십니다.
①하나님이 이 6가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구원으로 쓰실라고 하실 때에 죄짓지 않는 자로 하나님이 쓰실라고 하실 때에 눈도 빼이고 팔도 끊기고 돈도 손해보고 지위도 권세도 건강도 뺏기는 일들 있습니다. 이는 사죄로 하나님이 쓰신 것입니다.
②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 세상에서 의롭게 쓰시기 위해서 이 의롭게 쓰시기 위한 이 의 때문에 그 사람이 여러 가지로 자체와 소유와 모든 무대가 희생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본성대로 녹아지는 것이요 소금이 녹아 그 간이 다른 것들에게 퍼져 스며들어 뭉치로 되어있는 소금이 많은 물건들 속에 짜운간으로 그 속에 스며들어 작용하고 존재하는 것 처럼 이렇게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③생명이 되는 물질주의 세상 속에 하나님 중심자로 하나님이 쓰실라고 할 때에 자기 위주의 인간들 속에 하나님 위주의 사람으로 쓰실라고 할 때에 그는 여러 가지로 이를 인해서 쓰여지고 희생돼서 녹아지고 없어질 수 있읍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중심으로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형상 대로의 사람으로 쓰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사람으로 세상에 하나님이 쓰실라고 하니까 그는 녹아져야 간이 다른 것에게 배어가는 것 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것을 보존키 위해서 그 자체가 희생되고 손해볼 때에 세상은 과연 하나님의 속성대로는 죽어도 사는구나 이는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사람이라는 것을 제 3자들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심기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감의 법칙으로 하나님이 쓰실라고 쓰실 때에 하나님이 영감의 법칙으로 쓰실 때에 거게는 세상이 영감의 법칙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영감의 법칙대로 하나님이 쓰시니까 세상에 그는 희생을 당할 수 밖에 없고 자체는 녹아질 수 밖에 없는 이 희생으로 하나님의 법칙으로 사는 것을 세상에게 보여줄 수 있고 그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고 그들의 양심 속에 감화로 심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가 진리를 흐려 진리를 버리는 세상 속에서 하필 진리 안에서만 기회주의자로 돈에 통치 받아 유리하면 돈에 통치받고 인간에게 통치받아 유리하면 인간에게 통치받고 기회주의자로 수단 방법 가리지 아니하고 오만 것들에게 통치받는 이것이 능한 처세술로 인정하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 한 분에게만 통치받아 그에게만 피동되고 그로만 통하고 정하는 사는 자로 하나님이 쓰실라고 하니까 그는 죽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지위와 권세와 직장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이것이 소금이 녹는 것 처럼 자체가 녹아지는 것이요 희생입니다.
그러나 그는 범죄로 녹아짐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통치자로 하나님이 쓰시므로 통치 때문에 그는 거기 쓰여져서 없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소금의 본질을 가진 것이요 이것이 녹아지는 이것이 소금의 본성을 가진 것입니다. 소금은 비유입니다. 소금이 간 하나만 가진 것 처럼 기독자는 기독자의 구원 요 하나만을 가진 요 뭉텅이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간 치기 위해서 하나님이 쓰십니다.
죄악으로 썩는 세상에 의로 무죄자로 의가 없는 세상에 의로 하나님 중심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법칙을 제거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법칙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무시하는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자로 이 6가지로 세상을 간 치듯이 이 6가지로 세상의 타탁을 방비하고 절망에 소망을 주고 인간의 가치와 인간미가 없는 데에 인간의 가치와 정말로 인간의 본미를 본질을 소생시키는 것으로 하나님이 쓰시기 위해서 세워놓으신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런데 맛을 잃으면 다시 짜게 하지 못한다 하는 말씀은 본성이 변해도 본질이 변해도 헛일입니다. 기독자가 이 6가지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6가지로 쓰여져 6가지로 하나님에게 쓰여져 6가지로 된 자로 하나님에게 쓰여져 없어지지 안하면 이 간은 소용이 없습니다. 변질됐습니다. 없어져도 간 없어 없어져도 소용 없습니다. 희생을 해도 소용 없고 이것을 이 구원을 가진 자라도 자체가 희생이 없으면 안됩니다. 이 구원을 가지지 못한 자도 맛 잃은 소금이요 이 6가지 구원을 가진 자라도 희생하지 아니하면 또 맛 잃은 자입니다.
이는 다시 짜게 못한다 그 말은 다시는 회복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다시는 회복하지 못한다는 말은 한 현실 한 현실 자기에게 통과하는 고 현실에서 요 직책을 했어야 되지고 고 현실이라는 고 기회를 지나 보냈으면 다시는 고 현실을 복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 만큼은 완전히 변질된 것으로서 된 것입니다.
그다음에 보면 아무데도 쓸데 없다 변하면 쓸데 없다 기독자가 본질 본성데로 6가지 구원으로 하나님에게 쓰여져 녹아져 6가지 구원이 모든 사람들에게 스며들도록 배어 가도록 퍼져 들어가도록 이렇게 되면 모든 것에게 쓸모있는 것이 되어졌고 이 변질이 되면 조물주에게도 피조물에게도 자기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사업에게도 세상에게도 아무데도 실은 쓸데 없는 자라 무익을 준 것이고 해를 기친 것 뿐이기 때문에 아무데도 쓸데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는 모든 것에게 하나님 다음으로 필요 있는 존재로 쓰여질 수도 있고 기독자는 어떤 곳보다도 쓸모 없는 못쓸 그런 것이 될 수 있는 양극을 가진 것이 기독자입니다. 버리운다 하는 말은 배척을 당한다 하는 말입니다. 기독자가 본질 본성대로 살면 모든 것에 배척 당하는 반대로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영원한 환영을 받습니다. 그러나 기독자가 본질 본성을 버려 이 생애를 버리면 하나님에게도 피조물에게도 전체는 버림 당해. 당한 그것은 유황불 구렁텅이에 영원히 탑니다. 사람에게 밟힘이 된다
사람은 피조물의 영장입니다. 사람에게 밟힘 된다. 기독자가 본질과 본성대로 살기만 하면 만물에게는 물론이요 만물위 인간에게 밟히는 반대로 머리위에 메고 어깨에 메고 머리에 이고 다닌다 하는 말입니다. 이사야 49장에 (2-23절나 주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열방을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호를 세울 것이라 그들이 네 아들들을 품에 안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 열왕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보면 믿음으로 산자는 땅 위에 있는 모든 군왕들이 왕비들이 그를 어깨에 메고 그 발을 핥는다 했습니다. 성경입니다. 이리하여 밟히는 것 반대로 베드로서1장에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보면 영원히 칭찬과 이는 하나님과 만물에게 칭찬 영광과 하나님의 그 영광을 드러냈고 만물에게 영광을 받는 걸 말합니다. 칭찬과 영광과 존귀함으로 하나님도 귀중히 여기시고 모든 피조물에게도 존귀히 대우받는 이것으로 관 씌워 주신다. 관 씌워 준다는 말은 승리자가 쓰는 관을 말합니다. 면류관을 말합니다. 이 이 승리로 칭찬과 영광과 존귀의 승리로 너에게 입혀 주겠다 하는 약속입니다.
이것보다 큰 것이 없읍니다. 내가 가정에 부부 단 둘이 있어도 나는 이 비유대로의 소금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소금은 비유입니다. 기억하기 좋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혼자 있어도 나는 소금이다. 나는 녹아질 때에 펴지고 크고 넓어지고 많은 것을 점령하게 된다. 여려 수만 명 모인 속에라고 나는 소금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6가지 구원의 뭉텅이이다. 나는 예수의 구원이다. 나는 여기서 하나님에게 6가지 구원으로 이 자리에서 쓰여질 자다. 이것을 나타낼 자다. 이것으로 쓰여져 내라는 존재는 없어지고 이것으로 녹아짐으로 6가지 구원이 모든 이웃에게 퍼져 번져 박히게 하는 것이 재세의 나의 목적이다.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외에는 쓸모가 없습니다. 세상에 권세가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고 지식이 필요합니다. 암만 말해도 그것은 우리의 본질과 본성은 아닙니다. 우리는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나는 아닙니다. 그것은 소금이 잘 녹기는 녹았는데 녹은 소금이 이것이 간이 잘 배어 들어가도록 막대기로 젓는 거 이것을 사람이 이리 저리 뒤적거리면서 간물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는 거 같이 기독자의 구원이 빨리 널리 번져 배어 들어가도록 스며 들어가도록 하는 데에 이용되고 끝나는 것입니다. 다 같은 한 쓰여짐에도 이름없는 사람과 이름있는 사람의 그 퍼져나가는 속도와 범위가 다르고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꼭 같은 요 6가지로 쓰여졌을지라도 퍼져 나가고 번져 나가는 강도와 속도와 범위가 다른 이것 뿐인 것입니다. 기독자의 본질과 본성은 아닙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 하십시다.
모든 자에게 쓸모있고 모든 자에게 모든 것에게 쓸모없고 모든 것에게 환영받고 모든 것에게 버림 당하고 모든 것에게 칭찬 영광 존귀받고 짓밟히고 이 귀로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뭉텅이입니다. 구원만을 가지고 있는 기독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구원으로 세상에 쓰셔서 우리의 생명을 이 구원으로 쓰시고 이 구원으로 쓰셔서 우리가 녹아짐으로 못 죽은 자들에게 이 구원이 번져가게 하려는 것이 우리의 재세의 존재 목적이요 하나님이 주신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