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31 03:28
■ 육군중앙교회 주일학교 총무 서영석 병장님
이 말은 중대본부에 근무하던 3개월 정도 후임 병사가 말해주었습니다.
넷째로,
한 번은 CPX 훈련이 몇 날이 가서 주일날도 계속해서 비상 훈련이 진행되었습니다. 그때는 서영석 병장이 주일학교 총무 때였고, 김반석 일병은 주일학교 교사 때였습니다. 대대 연병장에는 완전 군장에 온 부대원이 총동원 된 칼 같은 상황입니다.
오전 예배 시간이 되어서 서영석 병장이 교회 다니는 군인들을 일일이 찾아서 인도하여 정문 초소에 이르렀습니다. 사열을 시켜서 교회 가는 병력이라며 정문 초소장에게 신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황도끼' 라는 별명을 가진 황영태 중대장이 일직 사령으로서 마침 정문 초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갈하였습니다.
“서병장! 김일병! 교회 가고 나머지 나이롱 교인은 도로 들어간다! 알았나!”
다섯째,
1978년인가 해서 컴프리차가 한창 나오기 시작할 때입니다. 군인이면 보초도 서야하고 동초도 서야 하니까 잠이 모자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한데도 서영석 병장은 밤 1시 정도 되면 일어나서 육군본부 외곽 경비 초소를 돌면서 주전자에 따끈한 컴프리차를 끓여서 나누어주었습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근 1년 동안 제대할 때까지 그렇게 하였습니다.
여섯째‘
한번은 서영석 병장이 직접 들려준 말입니다. 자기 고향은 여수시 여천 공업단지 근처에서 농사를 짓는다고 하였습니다. 입대하기 전에 고향 친구가 있었는데 두 사람 다 목회자가 되기를 소원하고 작정하여 신학교를 입학하기로 하였답니다.
그런데 농촌에 소작농이 식구들 입에 풀칠을 해야 되고 하니 신학교에 입학할 처지가 못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와 의논하기를 한 사람이 먼저 신학교를 가고 한 사람은 그 신학교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을 대고 또 한 사람이 졸업을 마치면 그 마친 사람이 그동안 학자금을 대준 친구를 책임지기로 했다 합니다. 이런 가운데 친구를 먼저 입학을 시켜 공부를 하고 있는 중에 자신은 입대했다고 하였습니다. 친구는 그 당시 신학교 3학년이라 하였습니다.
지금 경제가 좋은 시절과 그 당시 급빈 한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 목회를 하도록 이렇게 하였습니다. 불과 나이 20살 정도 무렵에 말입니다.
그렇게도 하는데 지금 우리는 어떠한지 앞과 옆의 주위를 둘러 봅니다. 교인 수가 수 천 명이면 목회자를 많이 배출시킬 수 있습니다. 교인 수 몇 백 명이면 목회자를 많이 배출 시킬 수 있습니다. 교인 수 몇 십 명이라도 목회자를 많이 배출 시킬 수 있습니다. 뭐 한 명이 한 명을 배출시키는데 말입니다.
지금 그 선임되는 서영석 병장님은 어디서 목회를 하고 계시는지 제대 후 서로 소식이 끊겨서 안부를 전혀 모릅니다. 참 특별한 분 중에 한 분으로 손꼽는 분입니다.
서영석 병장은 육군본부교회 주일학교 총무였고, 그 후임 총무는 신규태 병장이셨고, 그 후임 총무는 김반석 병장이었습니다.
서영석 병장님! 지금은 서영석 목사님!
혹시나 아시는 분은 메일 e0691@hanmail.net로 연락 주시면 많은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육군본부교회 주일학교 교사로서 최무열 병장이 계셨는데 부산신학교 재학 중에 입대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교사들의 여러 얼굴이 삼삼하게 떠올려집니다.
육군본부교회 주일학교 교사의 구성은 주로 현역 군인이었습니다. 남군이 절반 여군이 절반 정도 비율이 되었고 그리고 문관이 한 명 그리고 육군본부교회에 출석하는 청년과 학생이 합해서 두 명 정도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 수는 남녀 교사 합해서 20여명 정도 되었고, 학생 수는 약 180명 정도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학생은 거의 다 육군본부에 근무하는 장교들의 자녀들로서 동빙고 군인 아파트와 서빙고 군인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이었습니다.
2014.09.16 14:41
2014.09.16 14:42
* 다음의 글은 육군본부 육군중앙교회 주일학교 서영석 총무님이 1978년 7월경에 제대를 하시고 1979년 2월에 결혼식이 있음을 알리는 편지입니다. 후임 총무였던 김반석에게 편지를 대표적으로 보내주셔서 주일학교 교사회 시간에 읽어드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햇수로 35년 전의 일입니다.
교사 선생님들께
존경하는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염려와 기도해 주시었던 정성에 무사히 성혼식을 올리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가능성 1%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의 축복이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뜨거운 성원을 아껴주지 않던 여러분들의 정성을 필설로써 표현할 수 있으리요.
섬김을 받으려고 주께서 오신 것이 아니오라 종의 직분에 몸소 실천하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저들로서 황금률을 실천하기 위해 기대 했던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려 노력하겠어요.
배후자라기 보다는 동역자로서 출법한 자매 선자양은 성경학교를 졸업한 분으로 얼굴과 미모는 나타낼만 못하지만 마음의 꽃을 피우리라는 기대를 안고 첫 발을 딛게 됩니다.
우리의 가는 길은 평탄치는 못하겠지만 넘어지면 일으켜 주는 약자들의 행렬이었습니다.
우리 형제 자매들이여 결혼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노력할 땐 수고가 헛되지 않습니다. 악조건 속에서 선한 일에 전념하시는 여러분들은 가장 위대한 일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움만 받고 있는 영석은 대신 현 위치에서 주님의 충성된 일군이 되도록 노력하렵니다.
형제 자매들이여 만나는 날까지 충성을 다해 일하다가 기쁨과 자랑으로서 만납시다.
축복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하옵니다.
1979. 2. 28. 11:00
영석, 신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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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석 목사님과 신규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2010년 1월 28일 주님의 은혜 가운데 서영석 목사님과 신규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최무열 목사님과는 통화를 하였습니다. 제대 후 33년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서영석 목사님께서는 성남에서 목회를 하고 계시고, 신규태 목사님께서는 일산에서 목회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최무열 목사님께서는 부산에서 신학교 교수로 계셨습니다.
청년 시절 우리들로 하여금 주의 종이 되기를 소원하게 하시고 그 주신 소원을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모인 우리들은 신실하신 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감사!
찬송!
영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