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축복

 

1984. 6. 27. 수야

 

본문 : 신명기 28장 1절∼6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다음 주일 유치반과 중간반 공과입니다.

 본문은 신명기 28장 1 절로 6절.

 제목은 하나님의 축복,  요절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명기 28장 2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서론,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는 둘로 나눌 수 있으니 하나는 창조주 하나님이요  하나는 모든 피조물들이다. 창조주는 창조하신 모든 것에게 축복과 저주 이 둘로  통치하고 계신다. 저주는 망하고 죽는 것이요 축복은 금생과 내세에 잘되고 잘  사는 것이다.

 본론.

 첫째, 축복은 위에서 내려오기만 하고 저주는 위에서 내려오기도 하고 또 아래  것이 잘못한 값을 위의 것이 받기도 한다. 위의 것은 선조 부모 모든 수상,  정권자. 상관, 지방 장관, 호주, 사장, 업주, 주인 같은 분들이 위의 것이요.

아래 것은 자손, 백성. 자녀. 아내. 직공, 사원, 제자들이다, 이 법칙은  신불신자가 다 이 법의 보응을 받고 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더욱 이러하니 각  시대의 지도자, 각 교파의 지도자. 교회 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권찰,  반사들이 축복 기관과 저주 기관이 되어 있다. 영원한 생사화복은 여기에서  결정된다.

 둘째 대지. 영원히 변치 않는 이 하나님의 법칙에 따르지 않고 마귀의 유혹을  받아 인간 자기 생각대로 함으로 수고는 하나 결과는 없다. 사람은 사람을  복되게 하여 줄 수 없고 만물도 복되게 하여 줄 수 없는데, 정권자는 자기  백성을, 부모는 자기 자녀를. 업주는 자기 직원. 직공을, 교역자는 교인을  자기가 직접 복되게 하여 주겠다고 공부도, 재물도, 부강도 만들어 주겠다고  다들 힘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절대 허락지 않는다. 자기에게 소속한 사람,  사물들을 자기가 좀 더 복되게 하고자 온갖 수단과 노력은 하나 자기가 하나님께  복 받을 수 있는 사람과 행위 되기를 힘쓸 줄은 모른다.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에게 하나님께서 복 주실 수 있고 또 복을 받아 감당할 수 있는 자 되기를  힘쓰지는 않는다.

 셋째. 하나님께 저주 받은 가족과 자손들, 그 모든 사업들, 짐승. 식물, 토지,  또 믿음의 식구, 교인들, 자기 학생들 비참함이 점점 심하여 올 것이다.

천상천하의 축복의 기관이 된 위를 가진 것들이 가장 복 있고 저주의 것들과  아래 것들을 가진 것이 불쌍하고 가련하다. 우리는 현재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고 무한히 크다. 보이는  것으로만 웃고 울지 말고 위의 것을 살펴보고 울고 웃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에게 속한 사람이나 일이나 동산이나 부동산에게만 원망, 불평, 저주,  진노하는 책임 전가로 저주를 초래하는 행위를 그치고 자기가 지금이라도 축복의  기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주님의 대속의 공로가 있고 또 영감과 진리의 보증이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오늘이라도 회개하면 된다. 뒤로 미루지  말고 즉시 회개하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계약서 성경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

 문답에, 첫째.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는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는가? 답에,  창조주와 피조물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무엇으로 통치하나뇨? 답에, 축복과 저주로  통치합니다.

 셋째. 축복은 어데서 오며 저주는 어데서 오는가? 답에. 축복은 위에서 오고  저주는 위에서와 아래에서 옵니다. 넷째. 천상천하에 제일 행복된 자가  누구인가? 축복의 부모와 선조와 신앙 지도자를 모신 자입니다.

 다섯째. 자기에게 속한 것이 망하고 잘못된 것의 책임은 누가져야 하는가? 위가  되는 자기가 져야 합니다.

 여섯째. 현재 잘못 되어 있는 것은 희망이 없는가? 회개만 즉시 하면 됩니다.

 네, 요 공과의 본문을 한번 읽었습니다.

 다음 주일날 유치반 중간반들을 우리가 가르칠 터인데 첫째 가르칠 것은, 이  천상천하에 가득 차 있는 그 모든 것은, 천상천하에 가득 차 있는 그 모든 것은  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주요 하나는 피조물입니다. 그러면,  피조물과 창조주 이 둘이 우주와 영계에 가득 차 있습니다. 창조주는 한  분이시요 피조물은 그 수가 심히 많습니다. 그러기에. 무엇이든지 피조물만으로  생각해도 안되고 또 창조주만으로만 생각해도 안 됩니다. 창조주파 피조물 이  둘이 있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창조주가 모든 것을 창조해 놓으시고 그것을 무엇으로  통치하시는가? 축복과 저주로 통치하십니다. 축복하실 것은 축복-하시고 저주  하실 것은 저주해서. 축복하시는 것은 점점 흥하고 더 존영해지고 저주 받은  것은 점점 망하고 쇠하고 죽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축복 받는 그 축복과 또 하나님이 저주하는 저주 이 두 가지로써 모든  피조물은 행복되고 불행하고 또 죽고 망하고 영원히 흥왕되고 이렇습니다.

그러면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에 모든 것이 달린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축복은 밑에서 올라오는가? 축복은 위에서 내려 습니다. 자기가 축복을  받으면 자기가 받은 축복이 아래로 내려갑니다. 축복은 위에서 내려오기만 하지  밑에서 올라오지 않습니다. 밑의 자녀들아 아무리 잘한다 해도. 뭐 밑의 부하가  잘한다고 해도 위의 사람에게 축복 가는 거 아닙니다. 축복은 위에서 흘러  내려오고 저주는 위에서. 위에가 잘못해 가지고 밑의 것이 저주 받는 것도 있고  또 밑의 것이 잘못하면 그 값을 위의 것이 받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주는  위에서와 아래에서 올 수 있고 축복은 위에서만 오게 됩니다.

 그러면, 위의 것은 어떤 것이 위의 것인가? 이제 위의 것을 여기 뭐 두서도  없이 자꾸 이래 말해 놨습니다. 그러면 알기 쉬우라고 너무 이거 질서 있게 딱  조직적으로 이래 놓으면 고만 좀 알기가, 기억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아주 뭐  순서도 없이 그렇게, 깨달으라고 기록해 놨습니다.

 위의 것은 선조가, 우리 선조가 우리 위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선조에게서  우리에게 복도 오고 저주도 올 수 있습니다. 또 우리가 우리 후배와 후손들에게  선조가 되기 때문에 우리의 그 여함을 따라서 후배와 후손 이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위의 것은 선조가 위의 것이요 또 부모도  위의 것입니다. 그러면, 자손은 부모의 축복과 저주를 이어서 받는 것이 그것이  자손입니다. 또 모든 수상, 자기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 손위의 사람들, 남의  손위에 된 사람은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위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복을 받으면  자기 수하에 있는 사람들이 복을 받고 자기가 저주를 받으면 그 저주가 수하에게  내려갑니다. 또 정권자. 이 지금, 지금은 ○정권 아닙니까? 그전에는  ○정원이지요. 이 정권을 잡은 정권자는 국가적으로 우리의 위가 됩니다.

그러면, 정권자 그 사람이 축복을 받으면 그 밑에 있는 백성들이 축복을 받고 그  정권자가 저주를 받으면 거기에 속한 백성들도 다 저주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상관. 그러면, 뭐 조그만한 기관 기관마다, 동회면 동회 상관은 동장일 것이  고 또 시의 상관은 시장일 것이고 그렇게 다 그런 북들이 상관이 되겠습니다.

상관은 위의 것입니다. 상관은 위의 것이기 때문에 상관이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하나님이 그 상관에게 복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면 그 상관에게 속한 모든 부하들에게도 다 복을 받도록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상관이 하나님 앞에 복 받을 수 있는 그런 상관이 되면 그  밑에 있는 부하는 참 복이 됩니다. 또 지방 장관. 지방 장관이라고 하는 이거는  또 좀 알도록 하기 위해서 그래 놨습니다. 군수니 면장이니 뭐 이런 분들이 다  지방 장관이요. 또 그 동네의 구장 이런 분들도 지방의 어른들입니다. 장관. 또  호주. 호주가 위의 사람입니다. 호주. 또 사장도 위의 사람이오 업주, 또 주인  같은 이런 분들이 다 위의 것인 데 이분들을 잘 만나야, 이분들이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며 거기에 속한 모든 것은 다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하나님 앞에 저주 받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되면 그 밑에 있는  사람들도 다 저주를 받게 됩니다.

 위의 것이요, 아래 것은 어떤 것이 아래 것인가? 아래 것은 자손이 아래  것이요, 또 정권자에 대해서는 백성이 아래 것이요 부모에 대해서는 자녀가 아래  것이요, 또 남편에게 대해서는 아내가 아래 것이요, 또 직공도 그 주님에게  대해서는 아래 것이요, 또 그 회사의 사원들도 회사의 그 사장의 아래 것이요 또  제자들도 또 선생에 대해서 아래 것들입니다.

 이런데, 이 법칙은, 하나님께서 위의 것이 복을 받으면 아래도 내리 복을  하나님이 주시고. 위의 것이 잘못해서 저주 받으면 그 저주가 아래까지 내려간다  하는 이 법칙은 신불신자가 다 이 법칙의 보응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대로 지금 보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요걸 단단히 기억합시다.

없는 가운데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을 축복과 저주로  이렇게 다루고 있습니다. 축복할 자는 축복하시고 저주할 자는 저주해서 모든  것들을 다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알든지 모르든지 하나님은 신불신자를 다 축복과 저주로  자기로부터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에 대해서 이렇게 처리를 하고 계시는데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 깜깜 무식입니다. 이 뭐 복을 받니 하는 그런 것은 똑  꿈꾸는 소리.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울 때 소리 하는 것 같은 그런 뭐 미신같이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는 실은 이 법칙의 보응을 모든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받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더우기 이러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교회 안에서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세상에서도 위의 것의 잘 되고 못 되는 그것이 밑의 것에게 큰  영향과 절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마는 교회 안에는 더군다나 더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각 시대의 지도자. 지금은 이십 세기 아닙니까? 또 십구  세기도 있고 십팔 세기도 있고 십칠 세기 뭐 십오 세기 이래 있는데, 각 시대의  기독교 지도자가 아주 필요합니다. 그러면. 각 시대의 지도자. 각 교파의  지도자. 지금도 총신도 있고 고신도 있고  칼 측도 있고 또 뭐 성결교, 감리교, 또 총공회 모두 이래 각 교파들이, 기독교  가운데도 수만은 교파들이 있습니다. 각 교파의 지도자, 각 교파의 그 지도자  여하에 따라서 그 교파는 망하고 흥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합니다.

또 교회 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 권찰, 반사 들이 다 위의 것이요  축복의 기관도 되고 저주의 기관도 됩니다.

 그러기에, 자기 위에 이 기관이 저주의 기관이 자기 위가 되면 참 저는  잘한다고 해도 다 그것이 그만 잘못하면 실패하게 될 것이고 왜? 위의 것이  잘못하면 위의 것을 따라간다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참 불행스럽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위의 것이 잘못 되면 자기만이 아니고 자기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이 다 절단나기 때문에 위의 것은 이런 책임을 져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일면으로는 남의 수하가 되고 또 소속이 되어 있지마는 일면으로는  우리는 위의 것이 되어 가지고서 그 기관이 되어 있는데. 내가 축복의 기관이냐  저주의 기관이냐 하는 그것을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 모든 행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우리에게 속한 것들이 다 있기 때문에 그저 나 하고  싶은 대로, 내 생각대로, 내 주장대로, 내 욕심대로, 내 취미대로 그라면 그  영향으로써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이 다 절단나고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위의, 자기 위의 기관이 복을 자기에게, 위의 기관 그것이 들어서  하나님의 복을 밑의 자에게 받게 하느냐 위에 있는 그 기관 그것이 저주의  기관이 돼서 위의 걸로 통해서 저주가 자기에게 오느냐 하는 이게 문제기 때문에  참 위의 것은 문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 부모는 그거는 뭐 달리 갈 수도 없고 부모는 장 그 부모지  어떻게 뭐 이 부모 나쁘다고 다른 부모로 바꿔치기를 이래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다른 것은 얼마든지 그것을 자기가 뭐 어데 속했는데  자기 소속한 그것이 복의 기관이 되지 못하고 저주의 기관이 됐다 싶으면 얼른  옮겨서야 돼 버립니다. 뭐 거기에 붙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기 단독이 하니라 그 위의 머리가 어데냐 하는 그런 것이  아주 우리에게는 중요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로,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법칙에 따르지 않고' 이렇게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복 받을 수 있는 자가 되면 자기만 아니라 자기를 통해서  자기에게 속한 자까지 전부 다 복을 주십니다. '천 대까지 복을 준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복을 주시고, 자기가 하나님 보시기에 저주를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밉상스러운 자가 되면 하나님이 자기만 저주할 게 아니라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에게 다 하나님이 저주를 하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법칙을 따르지  않고 마귀의 유혹을 받아 인간은 자기 생각대로 함으로 수고는 많이 하지마는  결과는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복되게 해 줄 수 없고 또 만물도 복되게 해 줄 수 없는데 이걸  모르고 사람은 사람을 복되게 못 해 줍니다. 또 자기의 모든 소유도 복되게 못  해 줍니다. 그런데 자기가 직접 그것을 복되게 해 줄라고서 뭐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건 다 헛일입니다. 요거 단단히 들으십시오.

 예를 들면 정권자는 자기 백성을 복되게, 하려고, 또 부모는 자가 자녀를  복되게 하려고, 업주는 직원 직공을 복되게 하려고, 교역자는 교인을 자기가  복되게 하려고 또 직접 그렇게 복되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래 가지고 부모는  자녀에게 공부를. 또 재물을 유업으로 넘겨 줘. 재물을 유업으로 또 아주  부강하고 그렇게 그런 사람을 만들어 보겠다고서 애를 씁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써지마는 하나님의 이 절대 변하지 않는 이 법칙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복되게 해 줄 수 없다 하는 요걸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사람이 그 사람이 자기 자녀를 복 되게 하려고 아무리 해도 못  합니다. 정권자가 백성에게 아무리 복되게 해도 못 합니다. 또 자기의 뭐  업주들이 자기의 모든 종업자들을 복되게 하려고 해도 못 합니다. 직접은 못  합니다.

 '자기에게 속한 사람, 또 사물들, 자기가 좀 더 복되게 하고자 온갖 수단과  노력을 하나 자기가 하나님께 복받을 수 있는 사람과 행위 되기를 힘쓸 줄은  모른다.'  그러면 이거 자기가 직접 복을 줄 수는 없고 내가 자손을 위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쓰고. 또 자기가 자기 밑에  있는 교인들을 복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봐서 복을 줄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자기를 보아서 자기에게 속한 교인을, 자기에게 속한 자녀를, 자기에게  속한 백성을.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업들을 자기에게 속한 모든 물건을,  자기에게 속한 가족들을 자기를 하나님이 보아서 좋아해서 복을 줄 수 있도록 요  방편을 써서 자기가 하나님이 기뻐하심이 되어서 '야, 너 보니까 내가 네게 속한  거는 다 복을 다 주겠다.' 이렇게 하나님이 복 주시기를 원하도록 그렇게 자신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좋아 하시는 고런 사람과 행위가 될라고는  사람들이 애를 쓰지 안하고 제가 무슨 돈을 자손에게 주면 자손이 복될 줄로,  공부나 많이 시키면 복 될 줄로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렇게만 노력을 하는데,  자기 자신이 자녀에게 공부지키는 것도 공부만 시키면 복되니까 뭐 다노모시니  뭐니 해 가지고서 남을, 남의 참 목의 피를 내가지고라도, 재물을 어떻게 하든지  해 가지고 자식 공부나 시키고, 이렇게 무슨 사기 협잡 뭐 어떻게 수단 방법  가리지 안하고라도 이렇게 재물 모아서 자식에게 내어주면 이 자손이 복되다  싶어서 그래 주나 그 자기 행동이 하나님의 저주 받을 행동이 됐기 때문에 돈은,  보이는 돈은 자손에게 주지마는서도 저주를 몽땅 짊어져다가 자손에게 줘  놓으니까 그 자손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법칙은  사람들이 쓰지 안하고 전부 저거 생각대로 하기 때문에 실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복 주실 수 있는, 또 복을 받아서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자기가 되도록 애를 쓰고, 애를 쓰고 또 자기 자손에게도 복 줄라고 하지 말고,  뭐 내가 뭐 재산이나 그런 거 줄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자기 자손에게도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 있는 그 사람 - 하나님이 복을 주실라 해도 당신은  공평을 가졌기 때문에 악한 자에게 복을 줄 수 없습니다. -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 있는 사람, 또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아 가지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이것만  되기를 노력해서, 우리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이 복 주실 수 있는 자기가 되는  것이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복되게 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그  복을 받아 가지고서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 되어지는 것이 그것이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다 복되게 하는 것이고, 또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행위가 되도록. 또 하나님의  복을 잘 감당하고, 복을 받음으로써 죄를 짓지 안하고 복을 받음으로써 더  하나님 앞에 기쁨이 되어질 수 있도록 이런 행동을 하는 그런 자손을 만들고  자기가 되고 하는 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여기에 대해서는 주력을 하지 안하고  자꾸 돈만 주면 복 될 줄 알고, 공부만 시켜 주면 복 될 줄 알고, 또 이렇게 뭐  모든 세상에서 실력 있는 사람만 만나면 복될 줄 알고, 전부 복은 자기에게 있고  자기 속한 자기 위의 사람에게 있다는 이것을 모르고 엉뚱한 방편을 쓰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꼭 고쳐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저주 받은 가족과 자손들.' 우리가 그걸 봐야 됩니다.

대번에는 잘 됩니다. 이러나. 하나님 앞에 저주 받을 그 가족, 자손. 모든 사업,  또 그에게 속한 모든 동물, 식물. 뭐 부동산. 동산 그것이 아무리 있다 해도 그  위에가 잘못되어 있으면 그까짓 게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상천하의 축복의 기관이 된, 축복의 기관이 된 위의 것을 가진  것들이 가장 복됩니다. 하나님의 축복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 선조 때문에 자손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선조를,  그런 선조를 그런 부모를 가진 사람, 그런 상관을 가진 사람 그런 주인을 가진  사람, 그런 사장을 가진 사원, 그런 정권자를 가진 그런 백성들 아주 복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다 돼 버립니다. 하나 그 위에 있는 그것 잘 되고 못 된  데서 그 밑에는 고만 도매금으로 그리 내려간 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위의  것을 잘 가지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 모릅니다. '가장 복 있고 저주의 것들과  저주의 아래 것들을 가진 것이 불쌍하고 가련한 것입니다.

 암만 현재는 좋아도 앞으로 저것이 저주를 받겠나? 축복을 받겠나? 해서 저주  받을 수 있는 그런 벌써 일이 자꾸 되어 가면은 암만 많아도 그거 소용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재 보이는 것이, 보이는 그것이다가 아니니까 '보이는 이   다음에 어떤 게 오겠느냐' 그것을 봐야 되겠습니다. '보이는 이다음에 어떤 것이  오겠느냐?'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고 무한히 큽니다.

그러기에, 보이는 것으로만. 보이는 그것 만 가지고 웃고 울지 말고 보이는  그것이 안 됐다고 울고 또 웃고 그렇게 하지 말고 위의 것을 살펴보고 울고  웃어야 할 것입니다. 내 위에 우리 부모가 어떻게 하고 있나? 위에 지금  정권자가 어떻게 하고 있나? 또 상관이 어떻게 하고 있나? 또 사장이 어떻게  하고 있나? 또 자기 위에 목사가 어떻게 하고 있나? 또 반사가 어떻게 하고  있나? 구역장이 어떻게 하고 있나? 위의 장로들이 어떻게 하고 있나? 그러면  휘의 것이 복 받는 기관만 되면 밑의 것은 행복됩니다. 아무리 현재가 좋아도  위의 것이 하나님이 기뻐서 복을 주실 수 있는 그것이 안 되면 그 밑의 것은 참  비참 하고 가련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살펴서 우리는 울고 웃어야  되겠고.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데 가든지 언제든지 위의 것이 복의 기관이  되도록 우리가 노력을 해서, 자기 위의 것이 복의 기관이 되도록 우리가 노력을  하고 또 위의 것이 저주의 기관이 되면 자기로서 그것이 복의 기관으로 되도록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할 수 있으면 하고. 안되면 그 자리를  피해야 되겠습니다.

 그러고. 우리는 위의 것이 복의 기관이 되어 있나 없나 그것 살피고, 그  다음에는 또 우리가 현재 돈을 취하고 뭐 성공을 하고 이렇게 하는 그것보다도  내가 복을 받을 수 있는 내가 되겠나 복을 못 받겠나 고것을 표준삼아 가지고서  우리들이 자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요. 위의 것을 평가할 때도  그렇게 평가해야 되겠습니다. 위의 것도 복을 하나님이 복을 하나님에게  받겠느냐 저주를 받겠느냐 고걸 가지고 위의 걸 평가해야 되겠습니다. 뭐  고관대작이라고, 벼슬이 높으다, 부자가 되다, 큰 기업체를 가지고 있다 그까짓  걸 보지 말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나 저주를 주시겠나 그걸 가지고서 평가를  하고, 또 자기도 그만 복을 자기가 돌아보지 안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복된  사람이 될까?' 해 가지고서 제가 돈을 마련하거나 좋은 직업을 마련하거나  그런데 애쓰지 말고 '나도 하나님이 복 줘야 되지 복 안 주면 안 되기 때문에  내가 복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겠다.' 그 면에 대해서 노력을 우리가  하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과 저주 이 둘을 가지고서 모든 피조물을  통치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위의 것도, 자기 위의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냐  저주냐 이걸 가지고 따져야 될 것이고, 또 자기도 하나님의 축복이냐 저주냐  이걸 가지고 따져야 될 것이고, 또 자기 밑의 수하의 것도, 부하든지 뭐  자녀든지, 밑의 직공이든지, 사원이든지 뭐이든지 자기 밑에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축복이냐 저주냐 이걸 가지고서 따져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밑에 있는  사람 이 자기에게 입의 혀와 같이 모든 것을 낫낫하게 해 주고 모든 것을 유익  되게 해 준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저주 받을 수 있는 행위를 하면은  그 사람을 쫓아내든지 갈아야 되지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일 잘 하고 민첩하고  또 모든 것을 다 현재에 유익이 되도록 해 주고, 아무리 그 밑의 사람이 일도  잘하고 민첩하고 또 아주 선선하게 하고 유익도 있고 모든 걸 잘한다 할지라도  그것 가지고 평가하지 말라 말이오. 복 가지고 평가를 해. 복 가지고. '보자, 저  사람이 모든 것을 구비하고 훌륭한데 과연 저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겠나  저주를 주시겠나?' 그걸 생각해 보면 '야, 그 사람이 민첩하고 참 날쌔고 기능은  훌륭하다마는서도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복은 주시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있다  말이오.'저거는, 둔하고 저거 애터지고 뭐 있어 봐야 별 유익은 없기는 없지마는  분명히 하나님이 저 사람에게는 복을 주신다.' 그렇게 아주 현저하게 다른  사람이 많이 있다 말이오.

 그렇기 때문에. 내 위의 사람도 하나님의 축복이냐 저주냐 그것 가지고서 이제  평가를 하고, 내 밑의 사람도 하나님의 축복이냐 저주냐 그것 가지고 평가를  하고, 나도 축복이냐 저주냐 이것으로 평가를 해서. 뭐 이것 저것 돌보지 안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해 주실 수 있도록 요걸 바라고서, 아무리 내가 엉망 진창  속에 들어갔고, 내가 진흙 구덩이 속에 들어갔고, 내가 똥 탱크 말이오. 똥  탱크, 저 대티에 가면 똥 탱크라고 뭐 아주 커단한데 거기 여러 수백 정 갖다  부어도 안 찹니다. 똥 탱크에 내가 빠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내가 여기에서라도 솟아날 수가 있다. 내가  아무리 훌륭하고 위대하고 구비하다 해도 하나님이 저주하시면 그 까짓 거 아무  것도 없다.' 위의 사람도 하나님의 축복이냐 저주냐 여기에다가만 가치를 두고서  따져서 축복 받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저주 받을 수 있는 일을 떠나도록 하고  자기도 그러하고, 자기 밑의 사람도 그렇게 평가하고, 소러니까,  위의 사람도 밑의 사람도 자기는 그 평가를 전부 하나님의 축복이냐 저주냐  이것으로만 평가해 가지고서 하나님의 축복 위주로 살면서 당신만을 바라보는  자를 절대 버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어데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이 '오, 나의 축복만 바라보고 나에게 축복받기 위해서, 내 법칙을 지켜서  나의 축복만 바라보는 너에게 내가 축복해서 하나님의 축복만 바라보는 자에게  이렇게 높이 들어서 모든 사람이 '아이구, 하나님의 축복만 바라보디마 그  사람은 그리 되었구나. 하나님 축복 아니면 아무 소용없다.'  또 하나님의 축복을 무시하고 '뭐 돈이 있다. 권세가 있다. 이 모든 것을 잘  만들면. 사업만 부지런히 하면 된다.' 아무리 이렇게 해도 하나님께서는 암만  그까짓거 해도 쓸 데 없고 소용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저주하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저주를 해 가지고 싹 망하게 돼서 '그거 소용없네. 그  사람이 그렇게 모두 다 모든 것이 구비했는데, 모든 게 구비했는데 그 사람 어디  갔노?' '벌써 그 가정은 다 망해서 쑥대밭이 됐습니다.' 그런 거 우리가  얼마든지 봅니다. '아, 그 사람은 어찌 됐어?' '아, 그 뭐뭐 거지. 병신, 등신  그 사람 말입니까? 아 그 사람이 지금 아무 동리에 가면은 거기에서는 그 사람이  제일 갑부고 그 사람이 또 모두 다 행복스럽다고 아주 뭐 그 참 미꾸라지 용  됐다는 말같이 미꾸라지 용 됐습니다. 그거 뭐 상상도 못할 만치 잘됐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위대하다가 종적도 없이 망하고 아주 허무한 것이 위대한 것이 돼  가고 이것은 안 믿는 사람들도 '안 된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안하지마는서도  절대적인 그 위대한 분이 계신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에게 복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지 그분이 안 돌봐  주면 안 된다.' 그분을 보이는 모든 것보다 두려워하면서. 그분이 저주하면 안  되니까 그분에게 저주 받지 안하려고 조심을 하고. 그분이 복 줄 수 있는 그런  것만 살펴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높이 들었기 때문에, 저 보이지 않는 저 밑에  처박힌 것이 높아지고, 저렇게 하늘높이 높아지던 것이 땅에 뚝 떨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위의 사람이나 자기나 밑의 사람이나 현재 것을 보지 말고  하나님이 축복하겠나 저주하겠나 이걸 보고서, 과거에. 과거에는 우리의 위의  것도 하나님이 저주밖에는 못 하겠고. 또 내 아래 것도 저주밖에는 하나님이 안  하시겠고. 나도 저주밖에 못 받겠고 이러나 오늘부터, 오늘부터 이제는 내 위의  것도 하나님이 축복을 하시도록 내 힘껏 하겠다. 내 밑의 것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내가 힘껏 하겠다. 나도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실 수 있도록 힘껏  하겠다. 하나님이 계시니. 하나님의 계약이 있으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축복  받도록, 당신이 축복해 주실 수 있도록 하면서 자기 전심전력을 기울였을 때에  하나님은 버리지 않습니다. 놓지 않소. 그 사람을 높이 들기 위해서, 사람들은  모두 깊은 저주 가운데에 빠지게 했는데 거기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다가  푹 솟고 또 하나님이 어디 있나 하고서 제가 안하무인으로 높으다고 아주  하늘같이 올라갔던 자가 뚝 떨어져서 종자도 없이 다 망해 버리고 하는 것이  오늘 이 역사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어떤 역사가가 그렇게 하는 말 들었습니다. '뭐 사천년이니  오천 년이니 이래 말하지마는서도 천 년 역사가 없다. 다 모두 그 뒤에 꾸며  대서 그렇지. 천년 유지한 것이 없고, 전부 있던 것이 다 망해 버리고 또  사람들이 멸시한 것이 또 오고. 이러니까. 성도 우리 한국사람 성을 유전 안  합니까? 이렇지마는서도 백가는 하나도, 백가가 다 백가 아니라. 백가가 벌써  망해서 그것이 변성을 해 가지고서 다른 성이 인제 가다 보니까 백가가 제일  유리할 때에는 백가 하고, 김가가 유리할 때에는 김가 하고 이래서, '성 같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위대한 역사가가 말하기를 그렇게 말합니다. 그 말이  거의 맞습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지금이라도 주의 피공로가 있고 피공로로 말미암은 성령과  진리의 보증이 있는데 이분은 다 없는 가운데 천지를 만드신 분이오. 이러니까,  아무리 저주 받을 것이라도 제가 행동만 척 고쳐 버리면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딱 고치면 '이놈, 네가 옛날 그런 놈이지? 젊을 때 그런  놈이지? 네가 어제 그런 인간이지?' 그렇게 하시는 무자비 하신 하나님  아닙니다. 당장에 고쳤으면 '그래, 네가 어제 그렇더니마는 오늘 이렇게까지  네가 고쳤느냐? 고맙다. 기이하다.' 지체하지 안하고 당 장 축복 주십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뭐 못할 것 없어요. 주님의 피공로가 있으니까 당장에 우리는  저주를 벗고 축복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눈에 보이는 그것을  축복보다 크게 여겨. 돈을 축복보다 더 크게 여기고 자녀에게 지식을 넣어 주는  것을 축복보다 더 크게 여기고, 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형편이 세상 것으로  부유해진 사람 그런 사람을 축복보다 더 크게 여기는 사람은 '너는 그것만 보고  살아라.' 하나님이 거기에 축복은 안해 주십니다. 아무것도 안 보고 축복만  바라보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 안 주시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거짓말하고  속이는 하나님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거짓말하지 안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금생은 이러뜩 저러뜩 섞여 있지마는 무궁세계에 가 보면  하나님의 축복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축복만을 바라보고 산 그 사람이  영원무궁한 세계에서 제일 승리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축복 '하나님이 날  도와 주셔야 되지 하나님이 축복해야 되지. 하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셔야  되지.

 축복이라는 것은 영과 육이 잘 되어서 하나님과 진리로 자기 것을 삼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은혜로써 자기 것을 삼은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 받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축복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대우하는 것이요 이  축복을 무시하고 '뭐 그 사람이 주일 안 지키고 뭐 축복 없어도, 축복이 없어도  돈이 많으니까. 축복 없어도 기술이 있으니까, 축복 없어도 인물이 잘났으니까,  축복 없어도 실력 있으니까.' 그 사람은 실력 보고 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축복  보지 안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이제는 모든 행복관을 바꿉시다. 행복관을 안 믿는 사람들은  '이것 있어야 행복하다 저것 있어야 행복하다.' 다 행복관이 달라서 땅의 것  그것이 저거들의 행복이 되지마는 우리 기독자는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행복의 전부라. 행복의 전부이기 때문에 그분이 나를 복을 주실 수 있는 내가  돼야 되겠고, 모든 수하들이 돼야 되겠고 위가 돼야 되기 때문에 이 축복 이를  위해서 전심전력 기울이는 그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문답에 대해서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는 몇 가지로 나눌 수 있나뇨?  두 가지. 창조주와 피조물로 나눌 수 있는 것.

 둘째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무엇으로 통치하시나뇨? 축복과 저주로  통치하시는 것.

 또 셋째는, 축복은 어디서 오며 저주는 어디서 오느냐? 축복은 위에서 만  내려오고 저주는 위에서와 아래에서 오는 것.

 또 넷째로, 천상천하에 제일 행복된 자가 누구인가? 축복의 부모와 선조와 신앙  지도자를 모신 자가 제일 복이 있습니다.

 또 다섯째로 자기에게 속한 것이 망하고 잘못된 것의 책임은 누가 져야 됩니까?  위의 것이 져야 돼. 위의 것이 책임이 있어.

 이러니까, 뭐 '아, 이거는 뭐 토지가 나빠서 여기 암만 농사지어야 안 된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그 아주 메마른 토지가 옥토가 대번 돼. 또 아무리  선천적으로 못난 자식이라도 상관없어.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그만 돼. 이러니까,  망하게 되거들랑,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되지 저거가 돈이나 몇 푼 있다고,  그까짓 것 돈 몇 푼 있다고 뭐이 될 건가? 돈 몇 푼 있다고 안 된다 그거요.

집구석에 어려운 일이 있거들랑 '아이구 하나님의 축복이 없고 저주가 와서  이러니까 우리 식구가 다 하나님의 축복 받도록 이제 일심 단결 해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 받도록 이제는 출발하자.' '출발 하면 그만 그날부터 당장 축복  와. 뭐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며 저주하는데서 해결되는 줄은 알지 못하고  누구를 찾아 돌아다니면서 사람 원망하고 또 누구한테 다니면서 또 그렇게 뭐  뇌물 주고 교제하러 돌아다니고 그거 다 헛일이오.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다  잘되고 하나님이 저주하시면 해놓은 것도 통통 깨져 버립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에서 우리 금생과 내세에 자기와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은  잘되고 못되는 것이 결정된다 요것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 믿습니다.

 현재 잘못되어 있는 것은 희망이 없는가? 회개만 즉시 하면 됩니다. 회개만  하면 돼요. 이거는 조금도 에누리가 없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다음 주일 가르칠 때에 하나님의 축복 하나, 하나님의 축복 하나. 또  축복 밖에 이 세상에 많은 좋은 거 가득찬 거, 가득 찬 그것을 네가 바라보고  그것으로 네가 행복될라고 하느냐 하나님의 축복 하나로 행복 되려고 하느냐? 둘  중에 어느 거 택하려느냐? 둘 중에 어느 거 택하려느냐? 요것을 학생들에게  결정을 지워 주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이면 다 돼. 뭐 걱정할 게 뭐 있는가? 없는  것을 있게도 하고 있는 것을 없게도 하고 그런데. 없는데서 모든 것을 창조도  했는데 창조한 그게 삐뚤어진 거 뭐 못 고치겠소?  이런고로. 참 좋은 거 인제 발견했어. 모두 다 여러분들. 하나님이 계시니까  우리의 모든 이 병도 할 수만 있으면 병원이 통통 비도록 서부 교회  교인들은-나는 의료 보험에 들자 하는데 의료 보험에 여지껏 안 들어. 안 드는데  의료 보험을 저 먼저는 누가 하자 하기 때문에 시골에 있는. 시골에 있는  교역자들 자꾸 뭐 병만 나 쌓으니, 병나면 자식 병원에는 갈라고 또 서둔다  그거요. 이런데, 저거는 돈 한 푼도 없으니까 못 가구로 하면 돈 대 주기 싫어서  그렇다 하니까 할 수 없어 병원에 가서,  젊은 사람들이 암병 들었을 때에 수술하면 당장 죽어요! 요거 똑 들어 놔요.

젊은 사람은 무슨 병인지 '암병 그거 수술하면 된다 말 듣지 마. 젊은 사람  암병에 수술하면 죽습니다. 지금은 벌써 암암리에 통계 내가지고 있는데 다  의사들이 안 그러기 때문에 말 못 하지마는. 다 모든 통계에 계산을 대 가지고  했었소. 왜? 정력이 끓고 피가 꿇고 이와 같이 하기 때문에 고만, 건드려 놓으면  가속도로 그만 번식이 돼 버린 대요. 하나님에게 기도해서 하나님이 나으시려면  낫을 수 있다 그거요.

 저○○교회 ○목사님 있는데는 여기에 혹이 있고 여기 혹이 있고 이랬는데 이거  보니까 아무래도 좀 좋지 못한 악성이라고 이거는 아무래도 이런 데서는  건드리면 안 되니까 서울에 종합 병원에 가 가지고서 이걸 검사해 보라고  이러니까, 그만 그거 암이라는, 암으로 딱 결정이 됐다 말이오. 이랬는데. 대구  집회 와 가지고서 고만 혹이 뚝 떨어져 버렸어요. 와 가지고 '언제 떨어질 때  어째 떨어졌던고?' 이래 물으니까 '떨어지는 줄 몰랐습니다. 어째 언제 뭐  기도할 때 뭐 이래. 목사님 기도하는데 이래 만져 보니까 아무것도 없어. 어디로  갔노? 이거 내가 굽이가? 이래 만져 보니까 아무 것도 없는데,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뒤에 그때 아무 것도 없어 가지고 아무것도 없어. 그랬는데.

요게는 이만한 게 없어졌는데 이쪽에 여기에 조그만한 거 불은 요놈은 없어지지  안했어. 요게, 요게는 참 그저 꿀밤 꿀밤 반개쯤 되는 게 거기 있는데 고거는  없어지지 안했어. 고거는 하나님이 딱 낚시로 거머쥐고 '이놈아, 고거는 나아도  네까짓 놈이 또 죄 지으며' 그 좀 맷정을 좀 썼더래요. '죄 지으면 딱 건다.'  이러니까, 인제 고것 때문에 회개하고. 회개하면 고것 다 없어져 버려요.

 이제 우리는, 회개는 만병통치. 자 따라합시다.

 회개는! 만병통치! 회개는 만병통치! 회개는! 만사 해결!  회개는 만사 해결! 회개는 소원 성취! 다 됐어. 다 됐어.

 우리 주님 신실하십니다. 옛날부터 모두 다 믿는 사람들 성경에는 다 그랬는데,  우리만 안 믿고 당하지를 못해 우리만 믿지 안해 가지고 손해 봤어.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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