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노를 풀자

 

1981. 6. 13. 토새

 

본문:신명기 6: 4 - 1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로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세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 말라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서울에 있는 목사님인데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한 주간 동안을 어데 여관에  투숙하든지 하면서 꼭 계속해서 여게 참석하고 올라가곤 합니다. 그분이 처음에  왔을 때에는 그때는 모두 경제가 어려워서 간청을 해서 우리 교회에서 있으면서  일주간 동안을 그렇게 지내고 한 적이 혹 몇 해 있었는가 그랬고 한 해인가  이태인가 몇 해인가 모르겠습니다. 있었고 또 그 후에는 이제 자기가 자기  힘으로 계속해서 참석을 했습니다.

이번에도 왔었는데 그분의 기대에 아마 어긋나지 했는데 과연 기대에 어긋났는지  자기의 사정이 있었는지 중간에 가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이 가뭄에 대한  것을 지금 하는 것이 여러 날 계속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들을 때에 어떻게  들려지는지 몰라도 저로서는 깊이 그 마음에 감동되는 일이 있어서 자꾸만  계속을 합니다.

제가 또 하나님 앞에서 이것을 증거할려고 그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약속을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계속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비를 주셨습니다. 비를 주시나  또 비를 많이 주시지 안해서 또 약속의 기도를 했습니다. 좀 더 주시고 또  준비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이것으로 인해서 저에게는 여러 면으로  깨달아지고 또 느끼지는 바가 있습니다. 서울 지역은 그런지 안 그런지 그것은  어떤 그 신문을 보고 신문을 그렇게 전적 제가 믿지 않고 여 짐작만 하는데 더욱  더 이 영남 지방을 그렇다는 그런데 대해서 많이 생각이 되졌고 또 이것이  세계적으로 이렇게 가뭄이라는 이것도 제가 또 약간 들어서 알았고 이랬는데  그 비가 안 와서 흉년든다는 그 면에서 제가 그렇게 강하게 느끼진 것 아니고  하나님께서 어쩐지 과거에도 뭐 가물 때가 많고 비 올 때가 또 많지마는  이번에는 이것이 하나님이 어떠한 그 섭섭해하는 분노하시는 그런 심정으로  계시는 그 표시라 하는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그래서 자꾸 이것을 같은 말을 또  하고 같은 말을 또 하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계시록에 보면 칼에 상하였다가 상처가 나은 자를 모두 경배하고 두려워  하면서 거게다가 경배하지 안한 자는 마지막에 죽이게 하고 또 그 세력이 심히  커질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칼에 상하였다가 낫은 자가 어떤 자인가 하는 요것을 우리가 단단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칼에 상하였다가 낫은 자라. 칼에 상하였다 가 낫은 그  칼은 무엇을 상증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징계를 말합니다. 진노의  채찍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멸하시는  것을 거게 상증해서 칼이라. 그 하나님의 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멸하시는 것을 거게 상증해서 칼이라. 그 하나님의  칼을 말합니다. 전쟁의 칼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쨋든지 하나님께서 뭘로  쳤든지 하나님이 치시는 것을 상증해서 칼이라 그렇게 말씀했고,  칼에 상한 상한 자 칼에 상함을 받은 자는 어떤 자인가? 이 세상 인류를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교회도 가르치고 이방도 가르치고 전 당시 인류를  가리켜서 칼에 상한 자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했다가 나은 자  낫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하나님 앞에 전 멸망을 받아야 할 그런 하나님의 노를  격발시켰는데 하나님께서 노아 때와 같이 전멸을 시켜야 될 그런 전멸의 진노를  가지시고 전멸을 할려고 시작했다가 전멸을 할 그 전멸을 시작했다가 그 시작을  그만 중단해 버리고 전멸이 중단되고 없어집니다.

그러면 그 전멸시키는 그 일이 얼마만 계속하면 전멸이 되어지는데 계속하지  아니하시고 그 전멸시키시는 그 역사가 시작될 때에 어떤 사람은 그것을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거게 대해서 이거 좀 이거 이렇게 되니  낭파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어느 시대는 그런 일이  없었느냐 그런 일이 있는 것은 그것은 정한 이치지 만당 있으면 골짜기 있고 또  누수가 있으면 살수가 있는 것이고 그기야 다 순환의 이치인데 그것은 뭐 별 수  있게 생각하느냐 그렇게 하는 하는 사람들도 있고,  거게서 거룩해질 자, 깨끗해질 자, 의로울 자 하나님의 말씀하시기를 신약교회에  대해서 갈대같은 지팡이를 주면서 내가 측량하되 성전밖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성전과 제단과 그 가운데 경배하는 자들만 측량을 해라 그것만 네가 측량해서  좁으니 넓으니 이러니 저러니 네가 그것만 조사하고 그것만 간섭하지 그 성전  밖마당은 간섭하지 말아라. 왜? 그것은 내가 이방에게 내어줬다 이랬습니다.

이방에게 내었다. 그는 불신자에게 내 준 교회라 말입니다. 불신자에게 내준  교회라 말이요.

‘마흔 두 달 동안 이방이 짓밟으리라’그것은 마흔 두 달은 삼 년 반인데 삼 년  반 그 칠 년을 말하는 것은 구약 시대를 삼 년 반으로 잡고 신약시대를 삼 년  반으로 잡아서 반반을 잡은 것인데 신약 시대 예수님이 재림할 때까지 그들은  세상에게 짓밟혀서 세상의 종이 되고 세상의 이용물이 되고 세상 앞잡이가  되어져 가지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이 마지막에는 이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 두 증인 두 감람나무  이러니까 감람나무가 세력을 좀 가지고 권세를 받았다 이러니까 박태선씨는 제가  감람나무라고 그가 욕심을 가지고 성경은 향하는 사람은 그렇게 빠져 가지고  자기를 망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거게 두 증인이요 감람나무는 참된 교회 위에는  말하 성전과 제단과 그 가운데 경배하는 이 종류의 신앙의 사람, 하나님께서  간섭을 해서 가꾸는 교회 이것을 가르침인데 이것은 순전히 무슨 생활하고  있는고 하니 증거 생활 하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교회들이라.

다니엘 하나님이 어떠한 하나님이신 것을 그 나라에서 증거했고 또 아랍 나라의  그 여종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했고 시대마다 하나님이 증거하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또 그는 하나님에게 속한 자인 것을 증거하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은 그를 증거하고 피차에 증거하는 빌라델비야 교회는 그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그 하나님이 증거해주셨고 또 하나님은 그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증거했고 또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라는 걸 증거해서 하나님은  그를 증거해 줬고 그는 하나님을 증거해 주는 그것이 빌라델비아 교회인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그저 징조만 보이는데 그 징조를 보고 어떤  사람은 참 아무 것도 아니게 그렇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아 그런 이 있기는  있지마는 언제나 역사에는 그런 일이 있는 것 아닌가’그렇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야 이거 큰일났다 이렇게 만일 계속되면 우리는 망한다’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그것이 끝나버리면 중단되 버리면‘아 그만 이렇게 하면 이기 멸망된다  참 세상에 허무한 것이다. 인간은 허무한 것이다.’이렇게 잠깐 허무감을  느꼈다가 다시 그것이 중단되 버리고 옛날과 같이 복구가 되어지니까 그만  거게다가 더 소망을 가집니다.

잠깐 동안 거게 대한 애착이나 미련이나 소망을 끝쳤다가 그것이 그 어려움이  퍼듯 그만 보이고 중단되 버리니까 다시 거게 소망을 두고서 애착을 하고 이제  거게다가 전력을 기울려서 이렇게 나가게 되는 그것을 말하고 그럴 때에 그것을  보고‘아, 야 이리 되면 망하겠구나 이는 하나님이 이것을 이 일을 계속되면은  이거는 안 망할래야 안 망할 수가 없겠구나!’하는 그 망하겠다는 그  싹수를‘이리 되면 망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니 이거는 하나님 앞에  이만한 진노가 된 것이다.’ 요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이렇게 전멸을 할라 하는 이런 죄악이 있구나!  하나님의 노가 있구나! 이것이 계속되면 망하겠구나!’하는 그 싹수를 보고  그때에 거게 대한 하나님의 노를 발견해 가지고 회개를 하려고 애를 써서 그  싹수를 보고 그만 그 일은 중단됐지마는 그 사람이 느낀 그것은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 땅에는 하나님이 멸할 수 있는 이런 지금 죄악이 있는 세상이요. 또  하나님은 멸하실 것인데 무슨 이유로 잠깐 동안 이 멸망시킬 것을 머물고  계신다.

실루암 탑이 무너질 때에 열여덟 사람이 치이 죽었는데 그걸 보고 그때 말을  하니까 그들 열여덟 사람이 치이 죽었으나 너거 예루살렘 있는 사람 전체가 다  요와 같이 죽임을 받을 자들인데 하나님께서 이것으로 한 표시 만하고 말았는데  이 표시한 이것을 보고 이 그 사람들과 같이 치이 죽은 열여덟 사람같이 그렇게  너희들이 멸망할 자이라는 것을 그것을 느끼고 회개해야 될터인데‘아 그  사람들은 치이 죽었는데 그 무슨 죄로 치이 죽었습니까’하니 너희들이 그  멸망을 피하지 못하고 멸망 속에 있는 자라고 말씀한 거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전부가 멸망할 것인데 멸망할 표만 보이고 다시 그  표 보이는 것 그것 보고 그것 보고 깨달을 자는 깨달아 가지고 회개할 자는  회개하고 하니까 하나님의 수입은 그것뿐이라 말이오. 그것뿐이기 때문에 그것만  하나님이 고쳐서 구원할 자 그들만 깨달았으면 됐지 나머지 그걸 또 멸할 필요가  없다 그기요. 왜? 그게 있어야 또 되기 때문에,  이래서 칼에 상하였다가 나은 자를 다시 소망하고 숭배하고 위주로 삼아 가지고  그렇게 사는 자들 있고, 칼에 상하는 그 칼을 들고 하나님이 치시는 그 사건을  보고 그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회개하면서 사는 그런 사람 있고 이래서 자꾸 그런  기 있어야 그걸 보고 또 이 전부가 멸망할 일이 또 있고 그것도 이제 멸망이  쌓이 가지고 있지요. 멸망이 끝난 기 아니라.

쌓이 가지고 있고 또 멸망할 일이 또 있는데 이것이 쌓이 가지고 있고 이러니까  멸망이 이중 삼중 몇 중이든지 되어졌으니까 이것은 참 참혹하게 멸망할  것이라는 것이 자꾸 보여 저촉이 되어지고 자기는 하나님은 멸망시기를  중단해시마는 자기는 하나님이 그 중단하고 계시지 멸망하실 그 하나님의 진노를  가지고 계시는 것을 자기가 보면서 그것을 회개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그 사람이 성전과 제단과 그 가운데 경배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으로 지난밤에도 말한 그말이오. 그러면 이번에 이 하나님이  진노의 징조를 나타낸 것. 우리나라에는 여러 해를 지금 뭐 가을 농사, 여름  농사, 이렇게 보리 농사, 벼 농사 이것이 벌써 한 두 차례 흉년이 들었습니다.

들고 올 봄에는 지금 어떻게 할런지 몰라도 저는 그 다를때는 뭐 흉년이 들고  이렇게 한다 해도 늘 그랬지마는 이번에 이 비가 오지 안한 여게 대해서는 어째  제기에 좀 심하게 느껴집니다. 심하게 느껴져서 과거에 느끼지 안한 느낌도  가졌고 또 과거에 두려워하지 안한 그런 두려움도 가졌고 염려도 가졌고 또  과거에 없는 그걸 기도도 하나님께 제가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칼로 치시는 것인데 이 치시는 것이 그만 이것으로  중단할지라도 계속할런지 모르지마는 어쨋건 하나님이 치시는 일이니 하나님이  치시는 이 일을 찾아야 되겠다 하는 그것이 제 마음에 깨달음이 간절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칼로 치시니 이 하나님이 치시는 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  칼을 맞아야 될 칼을 맞아야 될 이 사건이 뭐이냐 하는 그것을 찾아야 된다는  것이 저에게 느낌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방적으로도 이렇게 생각해 본  그것이 하나 그 느낌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것을 생각해 본 것이고

또 그러면 지방적으로 이 영남에 교회들 형편이 어떠며 호남 교회들 형편이  어떠며 또 지금 위에 서울 지역에 교회들 형편이 어떤가 이것도 제가 하나님이  치시는 이 칼이라는 것을 자꾸 제가 확실히 제게는 자꾸 느끼지고 확신이  되어지니까 이 칼이라는 걸 확실히 되어지니 칼 맞을만한 그런 원인이 무엇이냐  하는 그것을 제가 찾지 안할 수가 없어서 그걸 찾는 가운데에 하나의  방편으로서, 그러면 내 눈으로 보고 귀로 들리는 이 교회들의 사정이 어떤가  보자 또 교회뿐만 아니라 이방인 이 안 믿는 사람들 기독교회에 모든  이종교라든지 정치라든지 문화라든지 모든 그 업체들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어떤가 하는 그것을 또 한번 살펴봐서 하나님의 진노의 그 실상 진노할 수 있는  그것들이 어떤 것인가 그것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까 그것을 더듬어 본 것이  그것이고  또 그러면 이 성경으로서 하나님의 이 진노하시는 그런 것이 어떨 때 그런가  그것을 한번 찾아보자 하는 거기에서 성경에 여러군데 많이 찾았는데 확실히  것이 보면 엘리야 때에 그때에 삼 년 육 개월 가뭄이 있었고 예레미야 때에 그때  또 가물어서 성경에 크게 뚜렷이 나타났는데 그 두 가뭄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는 것을 표시해 보이는 것 그 가뭄이 그것이 가뭄 그것이 물론 그것이  계속되면 인간을 죽는 것입니다. 뭐 지하수 판다고 지하수 얼마든지 나오는 것  아니요. 그것이 계속되면 망하는 거는 망하는 것이지마는 그 가뭄이라는 것이  뭐인냐?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그 표시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고 계신다 표시로  그것이 나타난 것인데  그러면 그 표시한 그 하나님의 진노는 이 전멸을 하나님이 시키야 되는 노아  때와 같은 그런 진노의 것이지마는 하나님께서 그 택한 자를 위해서 깨닫는  자들을 위해서 깨닫고 나면 그 다음에 그것은 다시 중단되버리고 또 깨닫지  못하는 자는 예사롭게 보고 지나가고 강팍해질 자는 강팍해지고 두려워 할 자는  두려워 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인데 그 두군데 보니까 그 죄악이 무슨  죄악이냐? 그 죄악은 전부이 하나님 버린 죄악이요. 거게 보니까 엘리야 때도  하나님이 하나님을 버린 죄악 또 예레미야 때도 하나님을 버린 죄악 하나님을  버리고 사신 우상 이방신 그것 섬기는 것이 사건이 꼭 같습니다. 다른 사건이  안니고 전부 그거 다 그 사건이요.

이러니까 그러면 다른 사람에는 느끼지 않는지 몰라도 제게 대해서 느끼진  하나의 간증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거는 자꾸 전파할라고 하나님  앞에 약속을 했습니다. 이래서 자꾸 지금 오늘 아침에도 여게 서울에서 보니까  오신 목사님들이 많은데 여러분들이 왔다가서 마음에 시원하고 오묘한 그 진리를  말할 것이 얼마든지 있지마는 그것보다도 이기 급해서 지금 이걸 내가 자꾸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거게 보니까 모두 다 그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던 그것을 비유컨데 자기 사랑하는  본 남편에게 대해서 이렇게 하던 할 해야 될 요 일을 그것을 버려 버리고  간부에게 대해서 이렇게 한다고 성경에 말한 것처럼 하나님에게 순전히 향해서  해야 될 일을 이것으로 세상을 향해서 이와 같이 하고 있는 그것이 그때에  죄악이요. 또 그 후에 또 죄악이요.

이 하나님이 가뭄으로 표시한 것은 그 원인되는 죄악이 그것이라. 그럴 때에  그때에는 그런데 그러면 현재는 어떠냐? 현재는 어떠냐? 현재를 또 제가  살펴봤습니다. 이것 살펴본 그것을 여 말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여게 대해서  느끼지 안하는 나와 동감이 아닌 사람들은 그 아마 백목사가 나이가 많으니까  지금 노망을 했는가 무슨 그만 쇠약증이 들어서 공연히 공포와 비겁에 싸였는가  하는 그런 생각을 가질 만침 좀 이상하게 볼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마음에 두려워지는 것은 이 두려움은 내게 대한 두려움은  한내끼도 없습니다. 이 두려움은 네게 대한 두려움은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에  대한 두려움 또 모든 이방 그 형제들에게 대한 두려움이지 그들을 인해서  두려움이지 내게 대한 두려움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 나는 벌써 나이가 뭐  팔십이 다 되어가니까 이제 암만 있어도 인간 칠십이 고래희인데 옛날부터 인간  칠십이 드문 것인데 이렇게 됐으니까 참 오늘 갈지 내일 갈지 모르는데  이번에 전성수 목사님이 별세한데 대해서 그이의 생애는 잘 살고 갔지마는  아까운 거 하나 있는 것은 그의 죽음을 복되게 이용하지 못하고 사람은 삶이  반이요 죽음이 반이요. 이 반반인데 그 삶은 짧든지 길든지 자기가 하나님을  깨달은 이것으로서는 있는 걸 다 기울려서 살고 갔기 때문에 그 삶은 참  후회없이 잘 살고 갔다 이렇게 보여지나 그 반츰 잘했지마는 반츰 그거 참  잘못됐다.

반은 뭐 죽음이라는 그 죽음 6.25같은 그런 일이 있어 예수 믿으면 어찌되고  주를 증거하고 형제를 구원하기 위해서 진리를 파수하기 위해서 이러다가 이매  죽는 죽음을 주를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그 이용된 폐물 이용으로  폐물되는 그 죽음을 귀중히 이용해서 주를 위해서 죽은 그 순교가 됐다면 좋을  건데 반츰 잘했지마는 반츰 그거 참 원통하다 하는 그것을 제가 많이 또  느꼈습니다.

느꼈기 때문에 나는 지금 살날이 얼마 남지 안했는데 이거 내가 지금 주를  위해서 어떻게 순교를 하겠느냐? 내가 병으로 죽고 늙어 죽는 그 두 가지를  피할라 하면 자살밖에는 없는데 자살은 죄가 되니까 병으로 늙어서 죽는  것보다도 더 불행스러운 것이고 이러니까 그러면 주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그러런 환경과 시대와 형편을 주시지 안한다면 내가 자살밖에는 병으로 안 죽고  늙어 안 죽을라면 자살밖에는 없는 것이니까 그거는 할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이  내가 죽기 전에 이 일이 오겠느냐 일반을 볼 때에는 안 오는 거를 원하지마는  내게 대해서는 그게 소원되기 때문에 뭐가물고 비가 오고 전쟁나고 무슨 하는  그런 것은 실은 나 하나만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 고대하고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자이기 때문에 내가 대한 두려움은 한내끼도 없는 것입니다. 그 두려움은  여러분들 위해서 두려움이요. 모든 교회들 위해 두려움이요. 이방인들 위해서  두려움을 제가 가지고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이방을 이렇게 보이는 것 가지고 보다가 성경에 가지고 이렇게 보고 성경 보니까  그 하나님이 그것으로 표시한 그 원인은 원인의 하나님의 진노는 전부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 바라볼 것을 세상 바라보고, 하나님 의지할 것을 세상  의지하고, 하나님 가까이 할 것을 세상 가까이 하고, 하나님 사귈 것을 세상  사귀고, 하나님 좋아할 것을 세상 좋아하고, 하나님 대접할 것을 세상 대접하고,  하나님에게 이렇게 기쁘게 하랄고 어린아이가 그것도 보면 뭐 얻을라면 와  가지고 어리광을 치고 그 부모의 마음을 실컨 감동시켜 녹아 놓고 뭐 달라하는  것처럼 이렇게 하나님께 이렇게 할 것은 세상에게 이렇게 하고 순전히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는 것을 그 보이는 모든 우상들을 만들어 놓고 그런  이방신들을 끌어 들이 가지고 이와 같이 한 것이 하나님이 진노로 표시한  가뭄으로 표시한 그 표시의 원인이더라 그말이오.

그럴 때에 성경은 이런데 그러면 우리나라 사정은 어떠며 이 온 세계의 사정은  어떠냐 그것을 제가 또 살펴지 안할 수가 없어서 성경은 그렇지마는 우리에게는  실상 그렇지 안한데 그렇다면 그게 해당치 안하다 말이오. 다른 면을 또 찾아야  되기 때문에 그 면으로서 찾아봤습니다. 찾아보니까 틀림이 없습니다. 틀림이  없소. 지금 하나님의 교회가 이방이 세상을 향하는 거와 꼭같이 하나님이 교회가  세상을 향하고 있지 하나님을 향한다는 것이 입술뿐이고 오히려 하나님을  하나님의 능력의 도와주는 그것을 바라는 기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이 와서  도와주고 하나님 은혜를 바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팔아 가지고 어리석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팔아 가지고 이용해 먹는 그런 작용을 하고 있지 하나님의  능력이라도 자기가 끌어다가 쓸라고 하면 좋겠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팔리지지  않습니다.

이런데 하나님의 교회가 순전히 이제는 하나님을 따라 가고 세상의 빛이라 하는  것은 세상은 교회 따라 가고 교회는 하나님을 따라 가고 세상은 교회 따라오고  이것이 교회의 위치고 하나님의 것을 교회가 받고 교회가 받은 하나님의 것을  세상에 주는 것이 이것이 교회의 위치인데 이것은 완전히 뒤 바꿔졌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따라가던 것이 돌아서서 세상을 따라가고 또 하나님에게 받은  것을 세상에게 줘야 될터인데 세상에서 받은 것을 교회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이리 됐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 이렇게 됐기 때문에 이것은 틀림없는 이것은 내가  느껴지고 깨닫은 것이 이것이 바로 느끼지고 바로 깨달은 것이고 하나님께 바로  주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증거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한  것입니다.

며칠 전에도 그 충헌교회 장로님들이 여덟분이 오셨는데 또 그전에도 뭐 온  교회가 많습니다. 이 서부교회에 주일학교 때문에 시찰하러 와 가지고 저한테  묻는 교회들이 많은데 그 교회들이 오는 목적이 무엇이냐? 꼭같았습니다. 오는  목적이 꼭 같았습니다. 약간 온 사람들 가운데에 다른 사람이 있었지 온 목적은  거게 주체적으로서는 같았습니다. 그 온 목적이 모두 무엇이냐? 그걸 보면 어떤  조직을 해 가지고 교회를 해 나갑니까? 어떤 방편을 씁니까? 또 주일학교  학생들을 다루는 데에는 어떻게 다룹니까? 반사들에게 대해서 반사 육성을  어떻게 하며 대우를 어떻게 합니까? 기관이 무엇 무엇입니까? 또 그 앞으로  계획은 어떤 계획입니까? 과거에 어떻게 했다 하는 그걸 무엇을 그 나열해 놓은  그런 그것이 있습니까? 그런 것을 묻는 것이 같았습니다.

와 가지고 그러면 우리의 소망은 우리의 소망은 힘은 셋뿐인데 하나는 성령,  하나는 물, 하나는 진리 물은 진리를 말하는데 진리 하나는 피 주님의 피공로로  인한 원수됐던 하나님이 우리와 화친됐기 때문에 하나님 진리 예수님의 공로 이  세 가지가 우리의 전부요 또 우리에게 있는 소유의 뿌스러기요 뿌스러기도  이것이요.

전체도 이것인데 여게 대해서 자 그러면 여게는 하나님을 어떻게 지금 보고  있습니까? 하나님관 이 신관이 어떻습니까? 여기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어떻게  지금 이 교인들에게 인식을 시키며 가르치며 그 교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알려 주고 있습니까? 또 하나님이 그 은혜를 받는  데에 어떻게 해 가지고 받으며 그 은혜 역사가 어떻습니까? 또 성경 진리는  어떻게 공부를 시키며 성경 진리에 대해서 그 강령을 어떻게 지금 잡고  있습니까? 또 주님의 지금 대속의 공로를 어떻게 증거하며 그 공로에 대해서  교인들이 어떻게 인식을 하고 있으며 인식을 시키며 거게 대해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여게 대해서는 묻는 사람은 하나도 내가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다 성경이 있기 때문에 그거는 다 알고 있는 것이니까 그 딴 것이다  하겠지마는 그것은 교회라는 것은 이 셋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진리와 이 예수님의 이 삼대 대속 사죄 칭의 새생명 이 세 가지로 되는 것이  교회요. 이 세 가지 위에 서는 것이 교회요. 교회에 능력도 이 세 가지요.

소망도 이 세 가지요. 피난처도 이 세 가지요. 힘도 이 세 가지요. 지혜도 이 세  가지요.

이것 털어 놓으면 내나 교회라 하는 것은 세상과 꼭 같은 것이요. 이종교와 같은  것인데 그것이 마음에 세삼스럽게 이번에 느껴집니다. 과연 이러니 내가 교회에  돌아다니지 안할지라도 교회를 짐작해 볼 수가 있겠다. 이러니까 이 옛날 엘리야  시대에 옛날 예레미야 시대에 교회가 멸망받고 이스라엘이 멸망받은 거와 같은  꼭 같은 죄악에 있다 하는 것을 확실히 이제 느끼진다 그말이오.

그래서 그들 중에 하나가 한 분 한 장로님이 보니까 말하는 것을 말할 때에  통해서 그 저는 그렇게 말할 때에 그들이 묻는 것에 정 반대에 말은 늘  했습니다. 나는 아동 심리나 그의 심리를 생각해서 그들에게 재미 있는 무슨 그  오락이나 예술이나 그런 것 전혀 없습니다. 그들의 정도를 맞춘 동화가 하나도  없습니다.

동화라 하는 것은 아동의 지식 수준을 따라가는 것이고 또 무슨 공작이니 하는  이런 것은 아동들의 그 취미를 끌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이 정도에 따른 것인데  여게서는 장년반에게 주일날에 장년반에 설교한 그 설교를 그 중에 제일 뭉텅  뭉텅한 그 어릴 때에는 젖과 죽을 먹이고 연한 식물을 먹이고 장성할 때는 그  아주 여문 식물에게 영양이 많거든 여문 식물 먹인데 이렇게 말해. 여문 식물은  뭐이냐 하면 어려운 진리, 어려운 진리 아주 그 세상과 비슷한 그런 진리는 무른  것 젖과 무른 음식을 먹인다 성경에 말하지 안했소.

 이런데 이 주일 학교에 제일 강한 것 먹입니다. 이래서 그 전주일 오전 예배  때에 설교한 중에 제일 강령을 들어서 그 강령을 증거합니다. 강력 그걸 들어  가지고 그걸 증거합니다. 그러면 아이이들이 알아 듣습니까 그래 물었습니다.

듣든지 안 듣든지 그 부장도 반사도 나도 그 주일학교에 공과를 불러 줄 때에  제일 줄기가 되고 영향 많은 것 제일 강령되는 제일 높은 진리 그것을 증거해서  불러 줍니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도 어짜든지 이거 하고 죽을런지 모르니 제일 네가 네게  은혜 되고 네게 제일 최고의 설교를 해라. 최고의 설교라고 최고의 어려운 걸  말해라. 그것을 말해서 이렇게 가르치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알아  듣습니까. 네 그것은 알아 들을 수 있는 것은 옛날 그 성령님이 임하실 때에  방언 역사가 일이난 것은 이 나라 말 가지고 말을 하는데 저 나라 사람이 저거  나라 말로 알아 들었고 또 그 이 사람은 이나라 말로 했는데 다른 말로 되어졌고  해서 그 무슨 어학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이 어학이라는 그 수준을 초월해 가지고  그때 무슨 말로 하든지 자기가 말할 때에는 상대방에게 다 알아 들을 수가  있었고 말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또 하고자 하시는 것을 다 들었어 그대로  전파하는 그것이 방언역사인데 그 하나님의 성신이 역사하면 알아 들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그 한국 사람에게 영어로 말하는 것 알아 듣는  그것보다는 쉽지 않겠습니까.

제가 방언 역사를 말을 했고 또 장년반들도 볼 때에 국민학교도 안 나온  사람하고 저 가서 그 박사하고 한자리 놓고서 설교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 알아  듣는 것은 그 영감과 자기 성의를 기울이는 데에 알아 듣지 지식이 높고 낮은  데에 하나님의 그 도가 제재 받지 않고 아무리 무식해도 다 기울렸을 때에  인격을 기울렸을 때에는 깨달아서 회개도 하고 생명도 내놓을 수가 있고 아무리  학박사라도 자기 전부를 기울이지 안한 자에게 알고는 있지마는 자기의 구원이  되도록 느끼지는 하나도 없어서 다 헛일이 된다는 것을 지혜있고 통달한 자에게  숨긴다고 말하지 안했습니까. 그것을 말을 하고  동화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 설교만 하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  증거하는 그거 밖에 없습니다. 그 아동들도 하나도 대우하지 않습니다. 또  반사들도 대우하지 않습니다. 대우하니까 난중에 사람이 삐꿔 돌아갈 때에는  내가 그까짓거 대우받고 하느냐? 이라니까 마귀라는 놈이 요거 들고 말하니까  오해가 곡해가 더 심해져 가지고 떨어져 나가고 그게 없으니까 난중에 그게  시험에 들었을 때에 건지기 쉽습디다. 건지기가 쉽습디다.

왜? 가 가지고‘네가 돈받고 이짓 했나, 명예 보고 이짓 했나, 네가 칭찬해서  이짓 했나? 네가 피 흘려 구속하신 주님 보고 하나님 보고 하늘나라 소망 보고  그 네가 큰 사랑 받았으니까 형제를 사랑할 그걸로 했지. 뭘로 했노? 그게 후회  되느냐? 그러면 네가 다 했느냐? 네가 너무 많이 해 후회가 되느냐? 뭣 보고  했더냐?’하면 그가 마귀의 시험에서 벗어 나 가지고 돌아서는 것을 더 쉽게  일어납디다. 그 제가 묻지 안한 말을 그런 말을 자꾸 말해 줬습니다.

그러고 우리 이 교계에 대해서는 무슨 좀 생각하신 것이 없습니까? 할 말이  없습니까? 네 거게 대해서 제가 좀 그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걸  말했습니다. 그거는 뭐이냐? 지난번에 교단 그 조성이라는 그것은 내나 교회  안에서 그 소리를 했던 것입니다. 해 가지고 교단 조성한다고 문공부에서 그  지금 이만 명 이하 되는 그 교단은 그거는 다 이거는 전부 다 철폐를 시켜  버리고 그 이상되는 교단만 이제 등록하게 된다.

이러니까 마구 서로 쫓아 다니면서 이만 명 안 되는 교단들이 서로 다니면서  합해 가지고 이렇게 하자 하는 그런 운동들이 바싹 일어났습니다. 그 하나님이  보실 때에 기뻐했을까, 하나님 보실 때에 기가 막혔을까? 한 사람이라도 한  사람이라도 온 전국이 다 죽일라고 해도 다니엘 그런 굽히지 않고 제대로  신앙으로 나가는데 신앙으로 나가는 것을 이만 명이 안 되면 다 이것을 다  제거히 버리고 이만 명 이상이 되면 인정 하겠다. 이기 뭐이냐 말이오. 그것이  여러분들 그냥 지나가는 기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판정되는 것이요. 이걸 두려울 줄 모르고 두려워 할 줄 모릅니다.

여게도 많은 사람이 왔었어. 나는 지금 아직까지 거 대해서 생각이 없다. 교단에  대해서 나는 생각이 없다. 그러고서 다 이 삭제될 터이니까 이 문제가 아니냐?  이래서 우리가 교단 문제 그것 때문에도 여기서 회의가 있었습니다. 이 교역자  회의가 있어 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보니까 이제 지금 이 시기에 가담을 해야  된다. 이 시기에 가담 안하면 안 된다. 좀 좀 보류해 두자. 좀 있어 보자. 이기  둘로 거석해서 있어 보자 그 가담할 것이 아니고 여게 있어 보자 하는 그 수가  많아서 그때에 그것으로서 결의 됐습니다.

그러면 다 가담하자 하면 나는 나 혼자 그때 가담하지 안할 것입니다. 왜? 그리  하면서 말하기를 이 종교법을 이제 만들면 종교법을 만들면 나중에 이렇게  교단에 등록되지 안한 거는 이것은 교회가 철폐가 되고 다 이것은 폐합하게  되어진다. 그러면 종교법을 만드는 데에 종교법을 이래 만들어야 된다 저래  만들어야 한다 하는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다 세상을 검어쥐고 춤추는  사람들이요.

그 사람들이 하나님 보다도 인간 보고 천국보다도 세상 보고 자기를 제물로  받힐라 하는 것 보다도 자기가 예수로 인해서 어떻게 하면 커지고 부자가 되려나  하는 그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 세상행 세상 지식이 높고 이런 사람들 세상  권세가 있는 사람들 말잘하고 활동 많이 하는 사람들 배짱 좋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거게 다 거게서 거물이라고 문공부에서 들고 이와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니 종교법 재정은 세상법에서 제정해 가지고 교회 이라라 하면 세상이  정한 그 법은 우리 법과 다르기 때문에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어지기가  쉬운데 이거는 믿는 목사들이 정한 너거 목사가 정한 이 종교법이 아니냐  복종해야 되느냐 이것은 배나 뜨겁고 이기 사람을 미혹시키는 강한 역사가 된다  하는 그것인 것을 내가 말을 했고,  또 하나는 신학의 질이 이거 저질이 되어서 안되겠으니까 신학 질을 높이야  되겠다. 신학 질을 높인다는 것은 그말은 좋습니다. 높이야 되는데 이거 자꾸  목사 사태가 나서 도무지 목사 가치가 떨어지니 목사 가치가 떨어지니까  어짜든지 목사 질을 올리야 된다. 그말은 좋은데 실은 굉장한 말입니다.

그러면 질을 올리라는 말 그말만 듣고는 모든 사람이 그거는 그래야 돼. 그거는  그래야 돼. 다 하는데 질을 올리자는 그 동기가 어디 났으며 목적이 어디 났느냐  이는 너무 목사들 질이 났기 때문에 세상에서 천대를 받고 짓밟힘을 당하는  것이니까 질을 올리야 되겠다. 그말은 천대 안받아야 되겠고 존대를 받아야 될  것이고 이거 뭐 중이라는 것은 땡땡이 중도 말이요 땡땡이 중도 스님 스님 하면  의례히 다방에도 그 중이 떡 들어 오면‘아 스님 오십니까.’스님, 님자를  붙이고 모두 그 사람들이 다 신중을 가합니다. 이래도 목사하면 아야 속부터  일부터 하고 이 그 추접한 것 밉상스러운 것 더러운 가증스러운 것 이래 버린다  말이오. 그 이 천대가 된다 말이요.

그러면 목사 이렇게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이건 좋은 말인데 우리나라에서도  목사가 이렇게 천해지게 된 그 천해지게 된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또 미국도  미국은 목사라 하면 아야 다른 사람들은 다 수속하면 쓱쓱 들이 보내도 목사라  하면 들어보내지 안해. 왜? 이것은 미국에는 얼마나 목사가 추접한 행위를 하고  덕없는 행위를 했든지 목사라 하면 신임을 안해요.

미국 나라에서는 목사라 하면 신임을 전혀 안 한답니다. 안 하는데 그렇게  신임받지 안하도록 한 목사들이 누구냐? 전부 다 고등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요.

세상에 활동하는 사람들이요. 다 세상적으로 지혜가 능란한 사람들입니다. 모두  다 그 사람들이 다 대학한 사람들이요. 학벌도 다 있는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이 여게 적화 되니까 우선 피난 가자 이민 가자 해 가지고 저리 저리  둘이서 어떻게 꾀가 있는지 어떻게 둘러서 그래 가지고 들어가기만 하면 숨어  돌아다니고 나오지를 않는 대요 이러니까 목사라고 하면 아야 직업이 뭐이냐? 목사라고 써놓으면 안 들어 보내.

그러면 이렇게 목사의 가치를 천하게 하고 하나님에게 욕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뭣 때문에냐? 목사의 질이 낫기 때문에 그런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질이  낫고 무능해서 그런 것은 사실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 질을 뭘로 봐야 되느냐? 목사의 질은 그 사람이 첫째는 성경을  아는 그 성경 지식이 어느 정도냐? 성경 지식이 있어야 되겠고, 그 암만 세상  학을 전부 박사로서 백 박사를 다 유학증을 받았다 할지라도 성경에 무식하면  목사의 질로서는 저질이라 그말이오.

성경에 유식해야 되겠고,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유식해야 되겠고,  성경에 가르친 그리스도에 대속에 대해서 유식해야 되겠고, 성경에 가르친  천국에 대해서 유식해야 되겠고, 성경에 대해서 성경이 가르친 인생에 대해서  유식해야 되겠고, 성경에 대해서 세상이 어떻다는 데 대해서 유식해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을 취할라 하는 자가 욕심내는 자가 없을 것이라 말이오.

이러고 그 다음에는 성경 지식 외에는 성신의 감화 감동의 권능이 그 영능이  그에게 얼마나 있는지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얼마나 있는지 없는지 이것이  목사의 질이 되겠고 그 다음에는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감화 주는 감화에 그  신앙의 정조를 지켜서 세상에 이리 기울어져 저는 기울이지 않고 신사참배가  와도 신사 참배 기울이지 않고 저는 정조를 지키고 6.25가 와도 모두 정조를 다  팔고 뭐 모두 다 인민군이 오니까 십자가 거머쥐고 앞에 가서 환영했습니다.

환영했지만 그거는 다 말하면 난중에 남 상처 말할 것 뭐 있느냐 그 사람을  말해야 그걸 살리고 다른 사람 그래 안 될 터인데 그런 신학교들이 인민군  오니까 이때는 아니다 이때는 우리가 수단 있게 해야 된다. 이 수단 있게 해야  된다 이래 가지고 뭐 나치라든가 그 공산주의자들 깃대 그 깃대를 만들어 가지고  앞잡이 나서 가지고 환영하지 안했습니까. 서울서 그 신학교에서 신학생들 막  총동원해 가지고 내가 그 신학교 뭐 이름은 내가 잊어버렸습니다. 기억할 필요가  없고 그렇다는 것만 가지고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노를 끼친다 하는 것만 말하는  것뿐이지요.

자 이렇게 그 지금 교회들이 내가 무슨 말 하다가 그리 갔지. 예? 예? 예? 그래  신학의 질을 말했지요. 영능이라든지 또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가 교인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것이라든지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헌신을 해서 지금  정말로 그 사람이 바쳐 놓고 있는지 하나님을 이용해 먹으려고 있는지 교회를  구멍가게처럼 자기가 그것을 이용할려고 요새 말하기를 돈벌이는 목사되는 기  돈벌이 제일 잘된다.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목사 노릇 하는 것이 돈벌이는 제일  잘 된다. 목사들 돈 많이 모아 놓았습니다. 많이 모아 놨소. 이렇게 저렇게 막  착취해 가지고 그 지혜가 어떻게 있는지 그 장부를 하면 요 구멍으로 빼고 조  구멍으로 빼고 요런 종류로다 조런 종류로 빼고 마지막에 가는 거는 목사에게로  가고 나가는 곳은 교회쪽으로 가 가지고 그 재물 굉장히 많이 모아왔을  것입니다. 부자 목사 많습니다.

그래 이것이 어떻게 하는지 하나님 앞에 재물로 바쳐서 자기를 하나님께  바치는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를 이용해 먹는 것인지 이것이 목사의 질이  되야 될터인데 이것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이것은 없고, 세상 그래도 지식이  있어야 되니까 아무래도 얼마나 대학이 부러웠든지 이제 신학대학을 다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대학이 부러웠든지 외국에 가는 데도 그 사람 그 사람들  가는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이요.

그러니까 선진국이 그들의 하나님이지 선진국이 그들의 하나님이지 그들의  구주지 하나님은 그들의 구주가 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들 이거 어느 때인 줄  알고 그렇게 뭐 성경 이리 저리 묘한 말 그 필요가 없소. 하나님 찾아야 됩니다.

안 찾으면 망합니다.

자 이거 뭐 세상 지식이 높아야 된다. 또 그 사람이 그래도 어디라도 가면 하 말  한마디하는 것도 그 너무 수사를 하지 안해서 말도 그 순 무식한 말하고 유명한  문자 한마디 쓰지를 못하고 말에 대해서 너무 무식하다. 무식하면 어짤긴고  무식한 말해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만 증거하면 됐지. 뭐 꼭 표준말을 써야  되요. 그 사람이 말 한마디도 그렇지 어데 갖다 놓으면 또 간판도 없지. 세상에  대한 아무 그런 기 없지.

이 순전히 목사의 질이라 하는 것이 세상 질입니다. 네 목사의 질이라는 하는  것은 세상 질로 삼아 가지고 이 질을 목사의 질이라 삼아 왔으니 어떤 하나님이  하나님이 여게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기냐? 세상 교회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여게 대해서 더러운 자는 점점 더러워지고 깨끗한 자는 점점 깨끗해지고 깨닫지  못한 자는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깨닫는 자는 깨닫도록 이렇게 나가는 이 기로에  있습니다. 여게서 죽고 사는 기 여게 있소. 여러분들 여 목회자 많은데 여게  있습니다. 이것을 제가 말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뭐 말은 통지는 팔십 명이라 하는데 또 자기 일행의 말들으니까 우리  온 사람이 백 명입니다. 이러는데 목사 백 명인지 팔십 명인지 여 왔습니다. 와  가지고 갔을 때 그때는 그만 그 사람들이 하도 바빠 그 싸아서 우리 교회에 내가  하는 이거 이거만 몇 가지 말하고 그 나머지 거게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안했는데 그 약간 제가 그 넣었던가 안 넣었든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때가 어느 때라는 것을 자기는 귀로 더불어 깨달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에게 머리가 띵 하니까 왜 머리가 띵 하니까 왜 머리 띵한  그걸 가지고 깨달았든지 그리 안하면 자기의 종기 난 걸로 깨달았든지 그리  안하면 자기가 길가 하나 병신을 보고 깨달았든지 어쨋든지 무엇으로 깨달았든지  그것도 자연 계시니까 그걸로 가지고 이 세대를 바로 알아야 되겠고 이 세대를  바로 알아야 되겠고 이 시대의 교회를 바로 알아야 되겠고 이 시대에 한국과  세계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지금 생각하고 어떤 하나님인가 진노의  하나님인지 만족하시는 하나님인지 어떤 하나님인지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되고  지금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급선무입니다. 급선무입니다.

그래서 제가 증거할라 하는 것은 어쨌든지 이제는 내가 하나님으로 노래를  삼도록 작은 일이지만 내가 증거하겠습니다. 가정에서도 또 길에서도 어데서든지  나를 구속하신 주님 나는 주님을 바라봅니다. 나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나는  주님만 사랑할라 합니다. 주님을 나는 두려워합니다. 주님을 섭깁니다. 주님을  위하려 합니다. 주와 함께 가려합니다.

주님은 나를 피로 값주고 산 것이니 주님인 줄을 압니다. 나는 이 구원에  참여했습니다. 나는 피로 값주고 산 주의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해서  살아야 할 자인 줄 압니다. 내 눈에 굉장한 것들이 보이지만 모든 존재는 내  구원 위해서 주의 구속을 위해서 주님이 창조하신 것인 것을 내가 믿습니다.

어떤 현실이든지 이 현실은 다 주님이 예정하신 그대로 이 구원을 위해서 착착  순서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인 것을 아옵나이다.

내 환경에 무엇이든지 이것은 주의 피로 값 주고 산 주의 것 된 것이 주의 것  노릇을 하는 것이니 주의 것 된 것이 법적으로 된 것이 주의 것이 완성되는  것이요 나는 주의 것이 완전히 되고 주님은 내 주님이 완전히 되어지는 이  귀중한 역사인 것을 내가 아옵나이다. 세상에 내가 물들지 않겠습니다. 슬기  있는 다섯 처녀가 되려 하옵나이다. 내가 신앙의 정조를 굽히지 않겠습니다. 이  우상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주님으로 나는 만족합니다. 주님은 내 소원의 전부입니다.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 주권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여게도 계십니다. 나와 같이 계십니다. 주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주님은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생명을 버리고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대주재십니다. 만왕의 왕이십니다. 나는 주로 만족합니다. 자꾸 주님으로  노래 부르면 이 일을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을 제가 증거하겠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 약속을 했습니다.

오늘 여기 교역자 된 분들도 가 가지고 그러면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지. 이 좀 전에 기독교 교단 모든 이종교들이 교단 다  꾸몄습니다. 거게 꾸미니 기독교도 교단 꾸미야 되겠다. 이 하는 그 동기와  견학이 세상을 견학에서 나왔지 성경에서 하나님을 보고 배워 가지고 나온 것은  아닙니다. 이 나라는 지금 이카지마는 선진국은 벌써 다 그래 됐습니다. 다 그래  됐소.

이러기 때문에 제가 매일 기도하기를 이 영국이 우리가 은혜를 입었는데 그  나라의 은혜를 입었는데 올바른 교리와 신조가 얼추 거서 나왔는데 이래서 영국  교회를 새롭게 해달라고 매일 한 번도 안 빠지고 기도합니다. 또 미국 교회를  새롭게 해달라고 하니까 교회를 새롭게 해달라고 호주 교회를 새롭게 해달라고  우리가 그 빚졌기 때문에 이 미국을 그래도 그 제일 사람들이 선행이 됐으니까  미국을 이 세상에서 우위를 달라고 이 모든 그 이 무기적으로서 과학적으로도  우위를 달라고 그 제일 그밖에 맡길 수가 우리는 너무 따라가기가 힘드니까  우위를 주옵소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가지고 어서 구원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이것을 빠지지 않고 이 공산치하를 죽 말하면서 거게도 신앙의 자유를  주시옵소서. 거게 생명의 밀알들이 있게 해주옵소서. 왜? 이렇게 전능의 능력이  나타나지를 못합니까. 나타날 수 있는 산 밀알들이 있게 해 주옵소서. 이것을  기도합니다.

아무리 눈을 뜨고 봐도 세상은 666화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쫓겨났습니다. 이분이 쫓겨나실 분이 아닙니다. 이런데도 그러니까 참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는 이남에 많으냐 이북에 많으냐 어데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북에 하나님을 기뻐하는 숫자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소련과 중공에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이런고로 우리가 지금 하나님을 찾을 때요. 또 하나님을 부를 때요. 하나님으로  친근히 할 때요.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가리워진  것이 없이 이렇게 우리 속에는 진리로 채우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채우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채우고 하나님 약속으로 채우고 사죄 칭의 새생명으로 채우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책임과  하나님의 신실한 계약의 약속과 내가 하나님을 사모하는 이것으로서 우리 속에  채우는 기름을 바르는 그릇처럼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와 그 진리로  우리 속에 가득 채워져서 이것이 공산주의 앞에서도 이 채워진 이것이  나타남으로 그 시대에 빛이 되고 그 시대의 바른 것이 되어지는 이것을 우리가  마련치 안하면 안 되겠습니다.

이번에 제가 얼마 동안 그 과로 되어 가지고 누워 있는 동안에 제가 제대로는  신앙은 과거의 신앙이 잘못됐다는 것을 내가 깨닫고 그 너무 형식이고 너무  형식이고 너무 그 외식이고 너무 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했는데 말에 머문 것이 많은 그것을 회개를 했습니다.

여게 있는 교역자들 돌아가시면 어짜든지 그 교회서 그만 이 세상 사람들이  어린아이도 안 나오거든 돈 해라. 돈 하면 아이가 쑥 나온다. 순산한다 하는  것처럼 돈 노래 부르는 것처럼 온 교인들에게 하나님을 노래 부르도록  하나님으로 노래를 부르도록 하나님을 부르도록 하나님을 그들이 노래를 삼고  기쁨을 삼고 소망을 삼고 해서 하나님으로 저들의 전부를 삼아 세상에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으로 전부를 삼아 만족을 하고 세상에 어떤 것으로 투쟁할  때에는 하나님이 와 싸워줄 수 있도록 이 교회를 만드는 것이 지금  급선무입니다. 이것이 제일입니다. 묘한 설교도 필요 없습니다.

어쩌든지 이기 제일 중요합니다. 이러면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버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금 한 십 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이겠습니다. 한 시간 이십 분을 제가 설교를  했습니다. 어쩌든지 이걸 가서 전파하고 이제는 오묘한 설교로 그들에게 가서  무슨 귀를 즐겁게 하는 그것보다도 이것을 실행해 주시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 엊저녁에 설교를 듣고 조그만한 아이들 가운데에 주일학교 학생들 가운데에  나도 이제 이 손목에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손목에 써 붙이 가지고 붙여  가지고 다닐란다. 나도 내일 그걸 써 가지고 내 여 미간에 한번 붙이 볼란다. 그  아이들이 듣는 것을 진실히 듣고 자기에게 그 책임지고 이래 듣는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게 기도할 때에 남한에 있는 주일학생을 보고 이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것들이 만일 김일성의 나라가 되는 날이면 그 이  운동들이 없어질 것 아닙니까. 거기는 김일성이 사람이 되지 안했습니까. 그래  여서는 하나님의 이 아이들을 만들라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들이 자라서  순생 순교자들이 되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거는 들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할라고 제목이 되어지지마는 벌써 나이가 삼십  이상된 사람들은 다는 아니지마는 그 사람들을 두고 보면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기 하나도 없소. 내놓으면 용서해 주십시요. 불쌍히 여겨 주십시요. 이 회개  시켜 주십시요. 이것 밖에는 기도할 것이 없어. 전체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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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하나님의 축복/ 신명기 28장 1절-2절/ 1985. 1. 2. 수새벽 선지자 2016.01.05
274 하나님의 축복/ 신명기 28장 1절-2절/ 1984. 12. 31. 월새벽 선지자 2016.01.05
273 하나님의 축복/ 신명기 28장 1절/ 1985. 1. 3. 목새벽 선지자 2016.01.05
272 하나님의 축복/ 사도행전 8장 6절-8절/ 1986. 3. 20. 목새벽 선지자 2016.01.05
271 하나님의 축복/ 신명기 28장 14절-19절 / 1985. 1. 4. 금저녁 선지자 2016.01.05
270 하나님의 축복/ 신명기 28장 1절-6절/ 1986. 4. 24. 목새벽 선지자 2016.01.05
269 하나님의 축복/ 신명기 28장 1절/ 1985. 1. 6. 주일새벽 선지자 2016.01.05
268 신명기 28장 1절∼19절/ 신명기 28장 1절-19절/ 1986. 3. 19. 수저녁 선지자 2016.01.05
267 하나님의 축복/ 신명기 28장 1절-14절/ 1985 1. 7. 교역자회 선지자 2016.01.05
266 하나님의 총애받는 방편/ 요한복음 15장 1절-14절/ 1983. 5. 18. 수저녁 김반석 2016.01.03
265 하나님의 참사랑과 우리의 현실/ 마태복음 25장 46절/ 1982. 3. 20. 토새벽 김반석 2016.01.03
264 하나님의 진노하시는 것/ 요한계시록 18장 1절-3절/ 1981. 1. 9. 금새벽 김반석 2016.01.03
263 하나님의 진노를 풀자/ 신명기 6장 4절-15절/ 1981. 6. 12. 금저녁 김반석 2016.01.03
» 하나님의 진노를 풀자/ 신명기 6장 4절-15절/ 1981. 6. 13. 토새벽 김반석 2016.01.03
261 하나님의 지식의 이치로 따지자/ 요한계시록 3장 1절-6절/ 1988. 5. 2. 월밤집회 김반석 2016.01.03
260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 베드로후서 2장 12절-14절/ 1984. 7. 18. 수저녁 김반석 2016.01.03
259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 지식/ 베드로후서 2장 22절/ 1984. 7. 19. 목새벽 김반석 2016.01.03
258 하나님의 주권개별섭리/ 딤전 6장 17절-21절/ 1983. 11. 21. 월새벽 김반석 2016.01.03
257 하나님의 주권개별섭리/ 잠언 21장 1절-4절/ 1983. 12. 30. 금새벽 김반석 2016.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