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전신갑주

 

1989. 3. 5. 주일새벽

 

본문: 마태복음 7장 4절∼5절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오늘 주일은 우리가 성찬을 베풀게 됩니다. 이번 성찬으로써 우리가 하나님과  아주 가까와져서 그 사이에 가리워진 게 하나도 없이 가까와질 수 있고, 또  사람과의 그 사이도 다 가까와질 수 있고, 또 일이나 물건에 대해서도 모든  잘못된 것을 다 깨끗이 정리 정돈하고 올바른 관계를 고쳐 가질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과거에 주의 몸과 피를 범하고 또 스스로 성찬 참여하면서  죄를 먹고 마시는 그런 일로 인해서 약해지고, 또 병들고, 또 죽은 자 죽어가는  그런 가련한 처지에 있는 그런 모든 것을 완전히 고침받을 수 있는 이런 좋은  은혜의 기회입니다 이래서 하나님과 잘못된 것도 다 완전히 고칩시다.

 우리가 너무 무지해서 무엇을 어리석은 제 욕심대로 해 보려고 어리석은 자기  인간 지식의 주관대로 모든 것을 생각해서 공연히 하나님과 멀어지는 하나님께  거리끼는 그런 일을 우리가 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이요 하나님의 주권이신데 공연히 저 혼자 참 아이들  말로 뭐 혼자 방아 찧고 혼자 까불고 해서 호부래기라 하는 것 모양으로 저 혼자  공연히 필요 없는 욕심을 냈다가 또 안 된다고 또 원망 불평하다가 욕심대로  됐다고 또 좋아하고 만족하다가 이거 전부 비정상의 마음들입니다. 우는 것도  비정상, 웃는 것도 비정상,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욕심을 내는 것도 비정상, 또  하나님의 뜻을 이겨서 이루어졌다고 기뻐하는 것도 비정상,  그저 하나님은 알지 못하심이 없고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모든 것을 주권하고  계시는 대주재 하나님이 계시고 모든 것을 다 잘 보고 정확히 판단하시고 영원한  보응으로 갚으시는 심판의 하나님이 계시고, 또 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하셨고 또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죽으시고  살아나시기까지, 살아나신 것은 영 원한 천대를 당신이 취한 것입니다.

 이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니 또 염려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계시니 벌로 날뛸 이유가 없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니  우리가 뭐 원망이나 낙망이나 불평이나 불만이나 조급이나 경거 망동 그런 것을  할 이유가 없고 또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예정하시고 주권하시고 계시니까  더욱이 그러합니다.

 이래서, 스스로 자기 혼자 공연히 저 혼자 밀고 당기고 놓았다가 잡았다가  던졌다가 하는 이게 전부, 우리가 종종 정신이 건전치 못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사람이 공연히 제 머리를 쥐뜯고 뭘 가지고 자기 몸을 상우고, 또 보면  금방 웃었다가 울었다가 뭐 성을 냈다가 불량을 지겼다가 벌벌 떨어서 또 겁이  나서 못 견뎠다가 하는 그런 것을 한 시간을 두고도 변해지고 또 하루를 두고도  자꾸 변해지는 사람을 봅니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깨달으라고 하는 하나님이 하나의 이 자연 계시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자기 혼자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그런 일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몰라  그렇지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연히 이거는 참 마귀 그놈에게 꼬여 가지고 정신  없이 날뛰는 것이지. 뭐 자기가 욕심을 내서 '저거는 참 가졌으면 좋겠다'  하지마는 배암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선악과 그게 그렇츰 먹고 싶고 못  견뎠는데 막상 그걸 먹고 난 다음에 그게 뭐이 유익했느냐?  모든 거 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떠나서 무엇이, 돈이 뭐 욕심이  나든지 권세나 지위가 욕심이 나든지 무슨 자기가 사람 욕심이 나든지 무슨  음욕이나 성욕이나 정욕이나 무슨 그런 색욕이나 그런 욕심이 나든지 무슨  욕심이 나든지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욕심나는 욕심은 그것은 전부 해와가  마귀가 들어오고 나니까 선악과가 그렇츰 욕심이 났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두가 다 마귀 들어와서 선악과 욕심입니다. 먹으면  큰일납니다.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뭐이든지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하나님 말씀에  위반되는 그것을 뭣을 취하고 싶고 하고 싶고 또 그 오기대로 하고 싶고 그  복술을 하고 싶고 하는 그 전부 다 귀신이 들어 그렇습니다. 그거 우리에게  귀신이 들어서 그거는 그놈의 작용으로써 우리를 꾀워서 삐뚤어지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이지 실상 그게 우리에게 좋은 것 아니오.

 하나님 말씀에 하라 하는 것만이 우리에게 좋고 하나님 말씀이 하지 말라는 건  다 안됐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금하는 것은 다 우리가 하면 다 죽은 것이오.

다 망하는 것이오. 하나님 말씀이 하라는 것은 아무리 싫고 나쁜 거라도 하고  보면 그게 다 생명과 평강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 혼자도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범죄하는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 몰라 그렇고 다 마귀 그놈에게 속아 그렇지 자기 스스로도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무엇을 할 그런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 자기는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무엇이든지 지나치게, '이거는 악은 그렇지마는 선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이런 거는 괜찮지 않겠느냐?' 그것도 "의로운 것도 지나치게 행하면 기한  전에 그 생명이 끝난다" 했습니다. 이러니까 또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거 할  일이지 자기가 번연히 이것은 지나친 일이라 하면서 옳은 일이라고 그렇게 해  나갈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없습니다.

 나도 어떤 사람 만나면 참 어떤 사람은 너무 게을해서, 게을해서 '저걸 어떻게  저걸 무슨 대패침으로 찔러야 되느냐? 저걸 뭣을 몽둥이로 뚜드려야 되느냐?'  이런 것도 있고, 또 어떤 거는 너무 과격하게 해서 곧 탈이 날 것이라서 '좀  주의해서 모든 것을 조절해라' 또 그렇게 하는 사람들도 있고, 뭐 사람들 보면  별별 그 무슨 다 단점이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제 이런 것도 유유하게 일을  해야 되지 모든 것을 조 급하게 또 치우치게 경거망동으로 행동하면 결과는  손해입니다.

 하나 비유한다면 산에서 내려오는 꼴꼴꼴 내려오는 물 그물이야 얼마나  깨끗하고 좋습니까? 깨끗하고 좋으니까 그 물은 빨래나 하고 또 목마를 때  마시기나 해서 식수나 하지 그것 가지고 뭐 지금 바다를 통해서 수만 톤 되는  배들이, 그 수만 톤을 싣고 동양에서 서양으로, 서양에서 동양으로 오는 그런 모든  일 그런 것은 다 짜워서 먹지도 못하는 바닷물, 강물도 더러워서 그거는 빨래도  못 합니다. 그런 물 그런 것이 오히려 큰 일을 하는 수 있습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너무 맑고 깨끗한 그것만 가지고 또 뭐 일 다 될 줄 알아도  그게 아니라. 또 넓게 생각하면 죄인이 있고, 악한 자가 있고, 더러운 자가 있고,  고약한 자가 있고 하는 그런 것들이 뚤뚤 뭉쳐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이래서 그것 보고 다른 사람이 반성하고 회개할 수도 있고, 또 그것 보고 자중할  수도 있고, 그것 보고 주의할 수도 있고, 깨달을 수도, 있고 뭐 이런 것이니까  우리를 사랑하시는 전지자 전능자가 모든 것을 계획하셨고 모든 것을 운영하고  계시니까 그분와 그 대범하심이 한없다 그말이오. 그분의 또 광대하심이 한없어.

 이런데 그분의 그 절대이신 그것을 우리가 믿지 못하고 내 조부라운 생각대로  자꾸 이거 안 된다고 해 가지고 조급하게 해서 그럴 필요가 없어. 좀 넓게  생각해서 우리가 할 것이고, 대개 사람이 좀 뭣한 지경에 되면 자기 위해서,  말하는 말은 평생 없습니다. 자기 위해서 하는 말은 없어. 못하든지 잘하든지  그래도 남을 위해서 하는 말이고 남에게 유익이기 때문에 남 때문에 이거는 안  할 수 없다 이런 말이지 꼭 자기를 위해서 하는 그런 못난 말은 별로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그게 많지마는 신앙에 입각해 가지고 신앙 세계에 들어 온데서는  사람들이 자기 위해서 말하는 사람이나 자기 위해서 참 먹는 사람이나 자는  사람이나 노는 사람이나 쉬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은 어느 단계 올라가면  없습니다. 다 아무래도 이거 주님을 위해서, 아무래도 형제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이거는 암만 이래도 내가 미움을 당해도 이 말은 안 하면 안 되겠다. 또  이거는 아무리 싫어하지마는 이거는 종아리를 깔려야 되겠다. 이 채찍을 들어야  되겠다. 이거는 책망해야 되겠고, 이거는 좀 붙들어 가둬놓아야 되겠다.'   이거 뭐 가두는 것은, 가두는 것은 무슨 이거 뭐 저런 공간에 골방에 가둬 놓는  것도 있지마는 사람들이 사회서 가둬 놓는 거 있습니다. '이 사회 활동을 이걸 좀  제재해서 가둬놓아야 되겠다. 이거 냅두니까 이 사람을 버려지겠다. 안 갈 데  보내니까 버려지고 보내야 버려진다.' 이래서 놓았다가 또 이걸 한번 또 안 되니까  이거는 '어라 제재를 해야 되겠다' 가둬 놓았다가, 또 한번 가끔 가다 또 놓아 놔  보면 또 어떤가? 내놓아 봐서 유익하면 내놓고 가둬 봐서 유익하면 가둬 놓고  이래 가지고 사람들을 뭐 관리하지 자기 위해서 하는 사람들은 신앙계에  들어가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도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과대평가해 가지고 백지 그걸 선이  아니면서 의가 아니면서 의인 척 해 가지고 자기를 지나치게 의롭게 좋게  평가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사람과의 관계라든지 하나님과의 관계라든지 사물과의 관계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어길 이유가 없습니다. 뭐 이거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거는 그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 건지는 것도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간섭해서  건질 필요가 없습니다. 또 복음 운동도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지나치게 그렇게 할  필요가 없소. 뭐 그래 가지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한다는 것이 도리어 사람을  미워하기 쉽습니다. 미워하면 성경에 분명히 미워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이니  살인자는 자에게는 영생이 그 속에 없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저 스스로 혼자 동동거리는 것도 할  이유가 없고, 또 자기가 다른 사람을 대해서도 뭐 밀고 당기고 뛰고 굴리고  마음에 근심하고 걱정하고 울고 불고 하는 그런 것도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는 할  필요가 없소. 또 물질에 대해서나 사람에 대해서나 하나님께 대해서나 복음  운동에 대해서나 무엇이라도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우리가 할 이유가 없고  필요가 없고 다 어리석은 일이오. 그게 도로 악으로 좇아나는 일이 되기  쉽습니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 봉독한 대로 사람이 잘못하면 제 눈 속에 들보가 있으니까,  이거 비유라 말이오. 제 눈 속에 들보가 있으니까 뭐 보일 턱이 있습니까?  조그만한 백내장만 있어도 그게 잘 안 보이는데. 나는 백내장 양쪽 눈에 다  백내장이 있어. 우리 선친이 백내장이 있었어. 아마 이것도 유전인 것 같아요.

백내장 둘이 있는 지가 한 이십여 년 됐는데 그래 요것도 있으니까 눈이 잘 안  보여요. '그래도 뭐 어쨌든지 하나님이 하시겠지.' 그래도 그것 때문에 약 넣어 본  일도 없었고 또 뭐 수술해 본 일도 없었고 그저 되는 대로 '하나님이 요량해  하시겠지' 하고 그래 둬 둡니다.

 자기 눈에 들보가 있으면 잘 안 보여. 그런데 자기 눈에 들보가 있어서 모든 걸  잘 못 보고, '들보 있는 자가 다른 사람 눈에 티를 빼라고 할 수가 있겠느냐? 먼저  네 눈에 들보를 빼고 밝히 본 다음에 다른 사람의 눈에 티를 빼줘야 되지  않겠느냐?' 이거 성경이 이래 말했다 말이오. 이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지금  티만한 것 나쁜 게 있다고 그걸 네가 보고 지적해 가지고 네게 티만한 것 나쁜  것 있으니 '이거 지금 안됐다' 이렇게 말하는데 주님이 보실 때에는 제 눈에는  들보만한 게 속에 있으면서 남에게 있는 조그만한 잘못된 거 실수 단점 요걸  보고 지금 이걸 큰 듯이 하지마는 제게는 그 몇십 배 몇백 배 더 큰 것이 많다  이렇게 말했어.

 이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뭣이든지 남에게 대해서 잘못된 그 단점이  발견되거들랑은 그 단점을 보고 네가 이 단점이 있다. 이거 고쳐라.' '이거 고쳐  줘야 되겠다.' 너는 의인인 척 하고 독선주의로 그렇게 네가 하지말고 다른  사람에게 조그만한 단점이 발견되거든 그 단점을 가지고 네게는 그 몇천 배도 더  되는 들보 같은 그런 단점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라.

'발견해라' 그 방편을 써.

그러면 자기 눈에 자기 보기에 다른 사람에게 잘못된 점이나 단점이 있는 절 볼  때는 직접으로 그걸 가지고 제가 간섭하고 그걸 치료할라고 하지말고 그것으로  인해서 네게 몇십 배 그와 같은 종류의 단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을 해서 그것을  돌이켜 고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형제의 것을 고쳐야 그게 바로 고쳐진다.

고치는 것은 다 자기가 먼저 고쳐야 다른 사람이 따라 고쳐지지 자기는 안  고치고 다른 사람에게 고쳐질 걸 아무리 말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랑한다고 해서 자기 자녀에게 대해서 단점을 고치려고 자기 식구에게,  믿음의 식구들에게 단점을 고치려고 이렇게 자꾸 애쓰지마는 그것으로 인해서  자기에게 그와 같은 종류의 단점이 있는 그것을 먼저 발견해 가지고 그놈만  정리하고 나면 그거 뭐 상대방에게 고치라고 하기 전에 됩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은 먼저 사랑하는 자 뒤에 사랑하는 자 있어. 일호 사랑 이호  사랑 있습니다. 일호 사랑을 받은 사람이 이호 삼호를 보고 이와같이 잘못된 것을  고치라고 자꾸 애터지게 하는 것은 주님이 그걸 봐서 너를 깨달으라고 지금 그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만 고쳐 놓으면 그거는 주님이 그만 고쳐 버립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해결을 자기 단독 자기에게서 해결을 자우려 하는 그것이  슬기로운 일이지 뭐 단점 잘못된 것을 남에게서 해결 지우려고, 자녀에게  대해서나 가족에게 대해서나 또 자기 직장에 대해서 모든 종업자들에게 대해서나  또 자기 믿음의 식구에 대해서나 모든 데 대해서 무엇이든지 그에게 잘못된 점이  하나 발견되거든 '아, 내게 저런 점이 있기 때문에 저거 보여 준다, 나 깨달으라고  보여 준다.' 요렇게 생각하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이래서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빼리라'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또 그러고 마태복음 5장에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5장 37절에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나느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나 자기 밑에 지도하는 사람에게 대해서나 대해서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만 하라 잘못하면 네 중심으로 나가기 쉽다.

 이래서, 어떤 사람이 목회하는 데 대해서 그렇게 그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목회는 어쩌든지 강단에서나 교인의, 다른 사람의 단점 있는 그런 것을 설교로나  이렇게 해저 성경이나 가르쳐서 공적으로 이렇게 말하지 개적으로 그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말해야 결국은 손해이기 때문에 옳은 거는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설교 말씀 들으면 제가 옳은 거는 다 옳다고 깨달을 거고 아닌 거는  아니라고 깨달을 거고 또 설교 말씀 듣고 깨달아 가지고 고쳐지는 거는 고쳐지고,  설교 말씀 듣고 고쳐지지 아니한 것을 개적으로 이렇게 말하면 유익한 일이  있기는 있습니다. 고쳐지는 일이 있기는 있습니다. 말하면. 고쳐지는 일이 있어도  그놈은 뒤에 후유증이 있습니다. 고쳐도 고거 사람들이 고치기는 고쳐도 뒤에  가면 어떤 그런 기회가 오면 '나에게 그때 이렇게 말하더라. 내 단점을 이렇게  말하더라.' 이래 가지고 도리어 복수하는 그것 때문에, 내가 복수를 당할까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또 그 사람이 죄를 짓기 쉽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강단에서 말하는 것도 오히려 지금 친다 이래 가지고 그렇기 쉽다 말이오.

그러니까 공적으로 이라지 개적으로서 직접적으로 그렇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라.'  '옳은 것은 옳다. 아닌 거는 아니라. 이에서 더 지나치면 악으로 좇아난다. 자기  중심으로 나가기 쉽다.

 이래서, 교역자는 '이 설교로서만 말을 해 줄 일이지 개인 지도에 나쁘다 좋다  하는 그런 것을 말하지 말아라.' 이렇게 하는 게 이 성경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데 보면 네가 권면하고 책망하고 또 경책 해라' 네가 책망하고 위로하고 권면하고  또 이렇게 해라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걸 안 하는 거는 아니지마는 우리가  무슨 사람에게 대해서도 그런 것도 너무 지나치게 이래 가지고 자기를 더럽히지  말아야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사람을 선도하는 데에는 먼저 자기부터 깨끗해지고 난  다음이라야 되어지는 것이지 자기 깨끗해지지 않고 남에게 대해서 깨끗해지게  하려 하는 그런 것은 도리어 실수하는 일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금번 이  성찬을 먹을 때에 첫째는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그것을 찾아서 깨끗이  회개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전부 생명과 평강과 복이 되는  말씀인데 그 말씀을 못 들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 이 말씀은  지키면 큰일나겠다.' 싶은 것은 지키면 더 큰 축복이 왔어. 다니엘이 하나님  말씀에 기도하라 하는 그 기도하는 것은 당장에 사자 입에 들어가서 박살나는  것인데 지키고 보니까 더 그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키기 어려운 것은  지키고 보면 복이 더 많고, 지키기 쉬운 말씀은 지키고 보면 복이 또 그런 적게  있고 전부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어길 이유가 아무것도 없어. 하나님 말씀을 어길  이유가 뭐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겨서 욕심낼 이유가 없고 욕심내면 그게  내나 선악과 욕심, 말씀을 어겨서 욕심내는 거는 다 선악과 욕심이기 때문에  자멸하는 욕심이지 유익이 하나도 없어. 말씀을 어겨서 사람을 지도할 필요가  없고 말씀 어겨서 사람을, 이거 옳은 것을 원해서 그 사람을 바로 되기를  원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잘못하면 미움까지 가지기 쉽습니다. 그러면 그거 있으면  그만 그거 있는 동안에는 우리에게는 영생은 이루어지지 않아요.

 이러니까 우리가 그 순서를 잘 알아서 물질보다는, 물질보다는 일이 중요합니다.

물질에 손해 봐도 그 일을 바로 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됩니다. 또 일 바로 하는  것도 좋기는 좋지만 일보다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중요한데 일을 잘한다고  하다가 사람 미워해, 버리면 저는 바싹 망해 버렸다 말이오. 그거 일 암만 잘해  봐도, 일 잘해 봐도 일 잘한 그게 사람 미워하는 그 댓가가 안돼요. 이러니까 그럴  이유가 없어요.

 그러고, 우리가 이번에 이 성찬 먹을 때에, 뭐 모두 별별 욕심들을 다 가졌고,  별별 시기를 다 가졌고, 별별 명예를 가졌고, 그 안된 욕심을 가지면, 안된 욕심  가지면 안된 욕심 그놈 때문에 옳은 것은 전부 적이 됩니다. 알겠습니까? 내게  나쁜 게 하나 있으면 나쁜 그거 때문에 옳은 것은 전부 대적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 자체가 옳으면 옳은 것은 전부 한편 돼요. 옳은 거는 자기와 한편 되고  내가 삐뚤어져 있으면 옳은 거는 자기 적이 되고 삐뚤어진 건 한편이 됩니다. 이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 우주나 하나님이나 모든 존재는 마치 계산을 한다면 피가수,  그러면 인제 하나에 더하기 뭐이라 하면 요 하나 하는 요거는 피가수요  원수(元數)입니다. 피가수. 또 그 다음에 둘이나 서이나 보탠 거는 가수입니다.

이런데 자기가 하나가 돼 가지고 있으면, 하나가 돼 가지고 있으면 전부 보태는  것이 다 하나에 하나 보태면 둘 되고 하나에 둘 보태면 셋 되고, 자기 된 대로,  자기가 만일 다섯이라면 거기다 하나 보태면 얼마요? 다 같은 하나라 하나  보태지마는 여섯 되고 또 둘 보태면 일곱 되고, 그러면 자기 그 자체는 피가수요  모든 것은 다 가수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따라서 모든 그 답안은 나오고 있다  하는 거라 말이오. 답안은 나오기 때문에 자기 하나 바로 되면 모든 것이 바로  접촉해서 나쁜 것은 나쁜 거로 다 지적이 되고 옳은 거는 옳은 걸로 지적되고,  나쁜 것은 나쁘니까 나쁜 것으로 관계를 맺고 좋은 것은 좋은 거로 관계맺기  때문에 자기만 바로 되면 모든 게 다 바로 돼 버립니다.

 그러면 자기 바로 안 되면 모든 게 다 틀려져요. 이러기 때문에 이번 기회는  우리가 낱낱이 살펴서 물질에 대해서 또 일에 대해서 또 사람에게 대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뭐 일이라면 복음의 일도 다 그거 일이겠습니다. 대해서, 또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 그저 어떤 것이든지 우리가 잘못된 것은 다 정리를 합시다.

 이래서 네 죄가 주홍같고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나로 더불어 의논하자. 그러면  변론하면 다 눈과 같이 양털같이 된다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를  하고 또 정리하는 데 사람과의 관계돼 있는 거 그것도 조부라운 생각을 가지지  말고 내가 옳은 의를 위해서, 복음 운동을 위해서, 또 상대방을 구원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구원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복음 운동하기 위해서 우리가  그런 것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활동을 하되 옳다 옳다, 아닌 것은 아니라. 거게서  지나치면 자기 망합니다. 또 그런 것을 인해서 사람에게 잘못하면 원망하기 쉽고  잘못하면 그 실수가 참 잘못되면 흑 행위를 미워하다가 사람까지 미워하는 그런  일이 되기 쉽습니다. 거게면 그만 대 금물이오. 만일 사람을 미워하는 거게  나가면 그만 영생은 없습니다. 영생이 그 속에 안 들어가. 영생은 뭐이 영생이냐?  성령이 들어와 가지고 자기로 더불어 동행하는 게 영생인데 그런 게 있으면 그  속에 성령이 들어와서 계시지 못해.

 어제 내가 들어오니까 들짱 '어데서 편지가 왔는데-나는 아직 편지 보지는  않아-편지가 왔는데 편지에 욕을 아주 많이 이 써서 그래 편지를 했더라' 하는데,  그것은 내가 살펴 볼 때는 관계되는 게 그래 뭐 이쪽에서는 잘못이 없다고 볼 수  있는 일인데 사람이 거게서 사람이 주관이라 하는 것은 끝이 없어. 욕심이라 하는  것도 끝이 없어. 자기에게 아무리 말이요, 아무리 그 사람이 천번 만번 잘못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대해 보면 제 할 말 있습니다. 할 말 있어서 그거는 꼭  상대방에서 원망 불평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인간이 그런 거라.

 그러니까 그런 것도 있으면 그런 것으로 인해서 네 자신에게 무슨 들보 있는가  그거 찾는 이것이나 하고 또 그런 나머지는 다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하나님이  '악을 갋는 것이 다, 원수를 갚는, 것이 다 내게 있으니까 너는 그가 배고프거든  먹여 주고 목마르거든 마셔 주고 또 그를 위해서 축복해라 이 이상 나가면 너  손해 본다' 했어. 이러고 또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주님 앞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서로 안 된 것은 뭐 가 가지고 꼭, '내가 이거 잘못 고쳤으니까 또 네가 요거  고쳐라' 이럴 필요 없고 거게 대해서 자기만 깨끗이 고치고 난 다음에는 상대방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에게 봐서 하나님이 보실 때에 나만 그 앞에서 깨끗하면  그 다음에는 내가 깨끗해지면 그 다음 사람 고칩니다. 이러니까 모든 것을  자기로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해결 못 지울 게 없으니까 이번 성찬을 먹을  때에 하나도 거리낌이 없이 준비해 가지고 먹도록 합시다. 이번 성찬은 고것만  생각하면 돼요.

 우리가 성찬을 먹는 것은 예수님의 피와 살과 내 피와 살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연합시키는 것이라. 예수님의 피와 살과 내 피와 살이 연합하는 것이라. 연합하는  것인데, 예수님의 피는 어떤 피인가? 죄를 완전히 멸한 피입니다. 죄를 완전히,  죄를 죽기까지 해서 멸한 피요 그 피를 먹는데 합당하게 먹는 것은 '나도 내가  죄를 멸하기 위해서 내게 있는 모든 피는 다 쏟겠다. 생명은 다 기울이겠다. 나는  다 기 울이겠다.' 죄를 멸하기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다 기울일 그 피로 연합하는  것이라. 내 피는 죄를 멸하는 그 일에 다 기울일 피로 예수님의 피와 연합하고, 내  피와 살은 의를 건설하는, 그 의를 건설한, 건설하기 위해서 다 기울인 예수님의  살과 나와 연합한 것인 것이니까 나는 이 의를 건설하는 여기에 내 피와 살은 다  기울여서 투자할 피와 살로서 연합하는 것입니다. 또 피와 살온 하나님과  화평하는 이것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죄를 가지고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연합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가지고는 연합할 수 없어. 죄를 가지고 연합할 수 없으니까, 죄는 예수님의 피  대속함이 있기 때문에 대속의 공로에 고하면 사함돼 버려. 고하면 없어져 버려.

어떤 죄라도. 뭐 어떻게 어떤 큰 죄라도 그 자기가 깨닫고 예수님의 피에 고하면  사함받아요. 사함을 받고, 자기가 또 만일 고범죄 같은 거는 사함 못 받는다면  이게 그것은 뭐 어째 어데서 해결되느냐 하면 이제 후로는 내 피와 살은 죄를  멸하는 데에 다 투자할 피와 살, 의를 건설하는 데에 다 투자할 피와 살, 하나님과  화친을 위하는 데에 투자할 피와 살, 이 피와 살로 딱 단정하고 출발하면 된다  그말이오. 고범죄는 거게서 해결되고. 자기가 몰라 죄 지었던 것은 고함으로  해결되고.

 이러니까 예수님의 피와 살을 대할 때는 죄 없는 사람, 죄 없는 사람, 또 죄를  범하지 아니할 사람, 죄를 멸할 사람, 죄 없는 사람으로, 죄를 범하지 않고 죄를  멸할 사람으로, 또 의를 범하지 않고 의를 건설할 사람으로, 또 하나님과 불목을  하지 않고 이제 하나님과 화목 화친을 할 사람으로, 요 잘못된 거는 피에 고해서  해결받고, 앞으로 현재로부터 미래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죄를 위해서 흘리신 피,  의를 위해서 흘리신 피, 또 하나님과 화친을 위해서 흘리신 피와 살, 그 피와 살에  연합해서 나도 예수님의 피와 살이 이 세 가지 위해서 다 쏟아지고 끝났으니까  내 피와 살도 이 세 가지 위해서 쏟아지고 끝나겠다 하는 요것을 작정함으로 이  면이 건설적으로 적극적으로 깨끗해지고, 하나는 이미 잘못된 것은 예수님의  대속에 고해서 다 깨끗해지고 완전히 깨끗해져 가지고 이렇게 하면 어찌 되느냐?  이 세 가지 해결을 짓고 예수님의 피와 살과 연합하면 예수님의 피와 살은  승리의 피와 살이기 때문에 바로 우리 보기에는 떡과 포도즙이지마는 이 떡과  포도즙은 능력입니다. 죄를 멸한 능력이요, 의를 건설한 능력이요, 하나님과  화친을 이룬 능력이기 때문에 이 떡과 포도즙을 먹을 때 이 세 가지를 해결 짓고  먹는 사람은 이 능력과 연합되는 거라. 능력과 연합되는 거 그게 무슨 논리로만  그런 게 아니고 이 말로만 그런 게 아니고 능력으로 연합되는 이것이 실상으로  이루어진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설교하는 것도 설교 말씀만 하는 사람 있고 말씀과 그 능력이 같이 나가는 사람  있습니다. 있는데 그보다도 이 성찬은 지금 말씀인 동시에 또 피와 살로써  우리에게 약속을 맺은 이 약속이기 때문에 더우기 권위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번이 피와 살을 자기가 바로 먹어서 이래 바로 먹으면 약한  자가 강하지 못할 자가 없고, 병든 자가 치료되지 못할 것 없고, 죽는 자가 지금  살아나지 못할 것이 없다 그말이오. 뭐 사업 죽는 것도, 재산 죽는 것도, 가정에  행복이 죽는 것도, 부부간에 서로 사이가 벌어져 죽는 것도, 모두 교인들이 화평이  죽는 것도 모두가 죽는 것이 다 살아납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번 이 성찬에서  우리가 아주 권능 얻는 일이 돼야 될 겁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뭐 내가 이거 좀 잘못 됐으니까 내가 그만 내일  주일은 산에 가 가지고 내가 단식 기도도 하고 뭐하고 이렇게 하든지 뭐  어쩌든지 해 가지고 기도하러 가면 되겠습니까?' 이러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가  '그래라' 이러다가 나중에는 내가 그걸 취소를 했습니다. '안 된다. 네가, 내가 볼  배에 무슨 죄가 있는지 모르겠다. 모르겠으나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고 완전히  몸을 범하고 피를 범하는 일이 되지 않는, 죄를 먹고 마시는 게 되지 않는 참  올바른 성찬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네가 권능을 받아서, 권능을 받아서 지금 네가  하나님 앞에서 옳고 참되고 원하는 그게 아닌 그런 모든 더럽고 거리낀 그런  것은 완전히 다 청산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라. 그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아라. 이러니 가지 말고 성찬을 바로 먹어서 네가 능력받는 자가 돼야  될 거다.' 내가 그렇게 말하고 가는 것을 금했습니다. 뭐 안에 있는 그거야 뭐인지  그거 모르지마는 내가 보기에는 자기가 조그만한 거 뭘 가지고 말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지 이번 성찬에 우리가 깨끗하게 먹어서 이번 성찬에서 완전히 깨끗해져야  됩니다. 그러면 살아나요. 이번 성찬을 바로 이렇게 먹으면 살아나고, 또 이번  성찬을 바로 먹지 못하면 멸망하는 거는 아니지마는 성찬 바로 먹지 못하면 그  사람이 언제 그런 기회를 만날런지도 모르고 또 회개 못하고 죽을런지 모릅니다.

사람이 회개라 하는 것은 제가 언제든지 뭐 밤이나 낮이나 금년이나 내년이나  하고 싶다고 하고 하는 거 아니오. 하나님이 하게 할 때 합니다. 하게 할 때만  하지 그리 안 하면 못 해요,  OOO 장로님 그 아들 이름이 뭐꼬? OOO이지. OOO. 가서 권면하십시오. 해서,  제가 새벽기도 나오지 않는데 무슨 돈을 번다고 하는지 몰라도 새벽기도 그래  나가면 되는 것 같아도 마지막은 망하고 맙니다. 그거 매를 그렇츰 맞고도 회개를  안 해. 고거는 그때 내가 여기 한 마디 잘못한 거 책망했더니마는 아마 그게 그  속에 깔꼬랭이가 된 것 같애. 책망을 받기 싫어하는 자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도 '성은 희문과라' 거룩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성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책망받는 것을 기뻐한다. 자기의 잘못됐다 허물받는 것을  기뻐한다. 너 이게 잘못됐다 하는 그 소리를 거뻐해야 그거 희망이 있지 그거  싫어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어요.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일을 시켜 보다가 이거 시켜볼 때에 이 일을 시켜 보니까  이게 교만해지나 또 한번 차 보다가 일을 시켜 봤다가 차 봤다가 이리 해도  이래도 저래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뭐 채여도 채이면 그거는 하나님이 차는 줄  알고 자기는 조심하고 또 자기가 일을 해도 하나님이 시켜서 하는 것이니까 나  아니라도 다른 이 하나님이 시킬 것이라 이래 가지고 자꾸 사람될것은 자꾸, 보면  알아. 조그만한 싹수만 봐도 사람될 거는 되는데 안 될 거 그거는 자꾸 삐끌러져  나가.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가 그것을 '판단하지 말라' 했어. 판단하지 말라 말은  '이거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희망 없다' 그러면 자기가 정죄받아. 이러니까  어쩌든지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몇번이든지 고쳐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성찬에서 뭐 회개 못 할 것 없고, 또 깨끗해지지 못할 것 없고, 우리가 예수님의  피와 살, 예수님의 피와 살은 무슨 피와 살인가? 예수님의 여기 성찬 먹는 피와  살은 쏟은 피입니다. 쏟은 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려 하는 그 피가 아니라.

살아 있는 피가 아니라. 죽은 피라. 죽은 피를 우리가 연합하는, 기념하는 것이오.

죽은 피는 죄에 대해서 죽었고, 의에 대해서 죽었고, 하나님과 화친에 대해서 죽은  피라 말이오. 이 죽은 피와 우리가 연합하는 것이라.

 이래서 우리가 성찬을 먹을 때에는 그것도 좋지마는 우리가 눈물 흘리는 것은  참 대속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주님에 큰 부담을 시킨 자이니 마음에 원통해서  눈물 나오는 것도 있겠고, 또 감사에도 눈물 나오는 것도 있겠고 이러나 정말로  그러면 눈물이 그거 나오는 그런 건 다 껍데기요. 눈물 나오는 것보다도 마음에  마음을 찢고 참 속에 있는 가슴을 찢어야 됩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이 젊을 때 과부가 됐는데 남편이 딱 그렇다 하니까 뭐 그래  딱, 뜨기 전에는 간호를 다 하다가 세상 딱 뜨고 나니까 그만 그때 가서는 뭐  자기가 모든 것을 의복도 단정하게 입고, 또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그 장례에  열심히 일을 하고 이라니까 다른 사람 사람이 생각할 때 '야 저거, 짐덩이 되는  남편이 죽으니까 아마 기쁜갑다' 그게 수절해. 외나 그 모든 것을 생각하니까 눈물  나오고 뭐 찔찔찔 할 여가 없고, 벌써 죽고 난 다음에 나는 어짜고 가느냐고  죽는다고 따라 죽을듯이 하는 그거는 3년 안 돼서 시집가요. 개가 갑니다.

 이러니까 어쨌든지 요번에는 우리가 있는 죄를 주님에게 고해서 싹 완전히  사함받고 이미 죄는 하나도 없는 자 되어지고 죄 하나도 없는 자 되어지고,  앞으로는 이제는 죄를 멸하는 남은 여생으로서, 의를 건설하는 여생으로, 하나님과  화친하는 여생으로 이제 주님이 이와 같이 피를 흘림같이 요 피와 같이 나도  요와 같이 다 쏟아서 바치는 요것이 되려는 요것을 작정하고 먹으면 됩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는 벌써 다 외우고 있기 때문에 많은 준비했기 때문에  공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어쨌든지 잘 준비해서, 여러분들, 예수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가 나와 같이 해야 되지 내가 날뛴다고 안 돼요. 그러니까 피와  성령과 진리를 내 속에 모시고 심방하고, 모시고 가르치고, 모시고 권면해야 돼요.

피와 살과 성령과 진리 이 상관 없이 자기 열심만 가지고 자기 지혜만 가지고  자기의 뭐 이 세상 지능 그런 권위나 가지고 해야 아무 소용 없어. 그거는 다  죽은 것들이기 때문에 죽은 것은 살리지 못해. 죽은 것은 죽은 것을 살리지  못해요. 산 것이 죽은 걸 살리지 않습니까? 산 것은 주님의 피와 성령과 진리만이  살았지 그 외에거는 산 게 하나도 없어.

 공과를 종전대로. 삼십 분 기도 잃지 말 것. 또 자기에게 속한 학생들 식구들을  마음 속에 품어 놓고 기도할 것. 지난 주간에는 칠백이십삼 명이 단체 기도를  했고 또 이월달 한 달에는 이천칠백육십칠 명이 단체 기도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쨌든지 반사 노릇 하는 사람들은 주님이 나 위해서 대속의 사랑의 베풀었고  은혜 베풀었기 때문에 주님을 생각하고 하십시오. 그래야 털끝만한 수고도 헛되지  않습니다. 뭐 부장 위해서도 하지말고 또 나 위해서 교장 위해서도 하지말고 주님  위해서 합시다.

 해결 못 지을 죄악이 없어. 인간으로 더불어 관계도 완전히 해결을 지워요. 자기  스스로 지으면 다 돼.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 그만 고쳐 버리고 원하는 일만 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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