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


선지자선교회 1985년 9월 20일 금야 

 

본문 : 요한복음 6장 27절-30절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렇게 주님이 말씀을  하시니까 모든 딿는 무리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무엇을 보고 당신을 믿겠으며 또  무슨 일을 해서 우리를 믿도록 할 것입니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 말씀도  여기에 기록한 말씀만 가지고는 알기가 어려운데.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이러니까 보내신 자는 주님이시라 하는 것을 알고 이들이  말했습니다. 이것도 기록은 이렇게만 기록돼 있지만, 성신의 감동으로 문서로  기록해 주실 때는 이렇게만 기록되어 있지만 예수님이 친히 그 무리들에게  말씀하실 때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는 것을 그들에게 똑똑히 말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우리가 무엇을 보고 당신을 믿으며 또 당신이 우리를  믿도록 할 그 일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말을 한 것입니다.

 또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따라다니는 무리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또 이렇게 묻는 걸 보면. 예수님은 썩는  양식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썩는 양식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두 가지 양식을  말씀했는데 또 제자들이 묻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이렇게 질문한 것을 보면 여기 기록한 것 외에 '썩는 양식은 어떠한  것이며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  하는 그런 것을 가르치신 그 내용이 확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래서, 성경에는 있던 그 사실을 낱낱이 다 기록하지 아니하시고 간추려서  양심을 쓰는 자가 알 수 있는 정도로 기록을 하셨고, 또 중생된 사람 들이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깨달을 수 있는 그 정도로 기록하고, 기록 안 해도 알만한  그 나머지기는 다 뽑고 그렇게 기록한 것이 신구약 성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보면 썩는 양식은 그러면 무엇이 썩는 양식이며 또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그 밑에 질문하고 대답한 데 대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썩는 양식을 강도하실 때에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아닌 양식은 다  썩는 양식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외의  것은 다 썩는 양식이다, 그러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무엇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까' 이래 묻는 물음을 '우리가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그렇게 말한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영생토록 있을 양식이요, 하나님의 일 하는 거 외의 것은 다 썩는 양식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여기서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일 외의 일은 다 썩는 양식이라 그 말은 하나님의 일  하는 거 그 외에는 다 썩는 것을 힘 있게 만들고. 썩는 것을 힘있게 만들고.

썩는 것을 강하게 만들고. 썩는 것을 자라게 한다. 양식은 힘있게 하고 자라게  하는 것이 양식이요 죽지 않게 하는 것이 양식입니다. 양식을 먹으면 기운이  나고, 또 자꾸 먹으면 기운이 현상 유지하고 남는 기운은 성장하도록 합니다.

그러면 죽지 안하고 삽니다. 양식을 안 먹으면, 양식을 먹지 안하면 기운이  없어집니다. 또 기운이 없어질 뿐 아니라 자라지를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죽습니다. 썩는 양식을 안 먹으면 썩을 것이 자라지를 못합니다. 썩을 양식을  먹지 안하면 썩을 것이 자라지 못합니다. 또 계속 먹지 안하면 썩을 것이 힘이  없어집니다. 또 계속 안 먹으면 썩을 것이 죽어 버립니다. 양식을 먹으면 힘이  납니다. 힘이 나고, 더 먹으며 자랍니다. 먹으면 생명을 뺏기지 안하고 그  생명이 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썩을 양식이라 영생토록 있을  양식이라 이렇게 양식으로 비유해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썩는 양식은 어떤 것이며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어떤 양식인가  예수님이 설명을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자가 될라고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물었습니다.

예수님이 대답하시기를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일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일이 되겠고 믿는 일을 하지 않는 일은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일이 된다 하는 것을 여기에 판명해서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보내신 자는 밑에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그러면 믿겠습니까?'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이러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믿겠습니까? 우리를 믿도록 무엇을  해서 보일랍니까? 무엇을 행해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믿게 할랍니까?' 그렇게  그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한테 합해 가지고 거기에 가르치시는 교훈을 간추린다면  예수님을 믿는 일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니 영생이 힘을  얻고 영생이 자라고 영생의 그 생명이 보존된다 그렇게 우리가 여기에서 논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썩는 양식 위해서 일하는 일이  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썩을 것이, 예수님을 믿지 안하면 썩을  것이 힘을 얻고 자라고 또 썩을 것의, 썩음의 생명이 강성하게 된다 하는 것을  여기서 우리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우리 믿는 사람들이, 택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그 일은 뭐이 자라느냐? 썩는 것이 자라고, 썩는 것이 힘 얻고 썩는 것이  보존되고, 그러면, 예수님을 믿지 안하니까 썩는 것은 자라고 힘을 얻고  보존되고, 썩지 안할 것은 어찌 되느냐? 썩지 아니할 것은 안 먹으니까, 썩지  안할 것은 안 먹으니까, 안 먹어도 처음에 기운은 없지 안하지만 안 먹으면  자라는 것이 자라지 않습니다. 자람이 중단되고 나면 심히 안 먹으면 힘  없어집니다. 또 그라고도 계속 안 먹으면 그 생명이 죽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 이라  하나님의 일을 하면 영생하는 것이 힘을 얻고 자라고 그 생명이 튼튼해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안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안하고 다른 일을 하면,  하나님 일을 하지 안하고 하나님 일이 아닌 일을 하게 되면 어찌 되느냐? 그리  되면 썩는 것은 힘을 얻습니다. 썩는 것이 힘을 얻고 썩는 것이 자라고 또 썩는  것이 이제는 강성해집니다. 그런고로,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영생하는 것이 힘을 얻고 자라고 또 그 생명이 영원히 보존되어서 계속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안하면 믿는 사람에게 영생할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은 자라지를 못하고 힘이 없어지고 마지막에는 다 죽어 버리고 맙니다.

썩지 아니할 것은 약해지고 자라지 못 하고 죽어지고, 그 반면에, 썩을 것은  힘이 생기고 자라고 그 생명이 보존 되고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요거 자꾸 같은 말을 자꾸 반복하니까 좀 구별하기가 힘들겠는데 양식이라 하는  것은 안 먹으면 자라지를 안하고 첫째 자라지 안하고 그 다음에는 힘이 없고, 그  다음에는 죽습니다. 안 먹으면, 또 먹으면 어찌 되느냐? 먹으면 그라면 그  순서대로 말하면, 먹으면 자라고 힘 얻고 할 것인데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먹으면 힘 얻는 것부터 얻고, 일호가 힘 얻는 것이 그 이호가 자라는 것이고  삼호에 그 생명이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영생토록 있을 것이 자라는 양식도 있고  또 썩을 것들이 자라는 양식도 있다. 두 가지 양식이 있다. 영생할 것이 자라는  양식도 있고 썩을 것이 자라는 양식도 있다 그것을 여기서 우리가 구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썩을 것이 힘이 없도록 할라면 썩을 것을 안 먹이면 힘  없고 못 자라고 죽어 버립니다. 우리가 움직이면서 썩을 것을 먹이지 안할  때에는 영생토록 있을 것을 먹이는 것이 됩니다. 또 영생하도록 있을 것을  먹이지 안할 때에는 썩을 것을 먹이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  영생토록 있는 것은 힘 얻고 자라고 생명이 튼튼 하게 되고,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안하고 하나님의 일 아닌 다른 일을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안하는 것이 다른  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 하지 않는 것이 다른 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을 하지 안하면 영생할 것은 차차 약해 가지고 죽어 버리고 썩을 것은 차차  힘을 얻고 강성해 '가지고 튼튼해집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썩을 것도 있고 영생할 것도 있는데, 썩을 자기도 있고  영생하는 자기도 있습니다. 썩을 생명도 있고 영생하는 생명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영생하는 것을 힘이 있도록. 영생할 것을 힘있게 또 자라게 또  그 생명이 청청하게 할라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나님의 일 하면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이 이 믿음의 힘, 신령한 힘, 인격의 힘, 하나님의 속성의 힘 이것이  다 영생할 것들인데 영생할 것들이 힘있고 자라고 그 생명이 튼튼하게 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일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일만 하면 영생에 속한 것들은 자꾸  힘이 강해지고 무성하게 자라고 생명이 튼튼해집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은 하지 안하고 다른 일을 하면, 하나님의 일이 아닌  다른 일은 뭣이 하나님의 일이 아닌 다른 일인가? 그 밑에 해석하기를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하오리이까' 하니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는 누군가? 하나님의 보내신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을라면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예수님이라는 그 이름 두  자를 믿을 건가?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푸신 예수님을 믿을 건가? 그래  가지고는 예수님을 믿는 일이 원만히 되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가 믿을  수 있도록 세밀하게 당신이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세밀하게 아주 구비하게 우리에게 나타 나신  예수님이 계시니 그 예수님이 어디 계시는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님은  신인양성일위로 대속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신 자이신데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우리가 믿을 수 있고, 영접할 수 있고, 동행할 수 있고 친밀히 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이 어디 있는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신 이  도리는 곧 우리가 접할 수 있도록, 알 수 있도록 예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셨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구약 성경에 나타나셨다.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다.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님을 영접할라냐? 신구약 성경을  영접하라. 예수님과 동행할라냐? 신구약 성경과 동행하라. 예수님을 믿고  섬길라냐?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고 이 도리를 섬겨라. 예수님과 동행하고  싶으냐? 신구약 성경 말씀과 동행하라' 이렇게 말할수 있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이 우리들로 하여금 접할 수 있도록 진리로 나타나셨고 그 진리는  또 말씀으로 나타나셨고 그 말씀은 성경으로 우리에게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일은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는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인데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은.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께서 계시해 놓으신 이 계시대로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요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보내신 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인데 보내신 자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신구약 성경 하나님의 이  도리를, 이 복음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결론하면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하는 일이 된다, 믿는 사람이 신구약 성경 말씀대르 하지 안하고  신구약 성경 말씀을 부정하는, 내가 입으로는 믿는다 하지만 행동으로는 부정할  수 있고 또 행동까지 할 수 있지만 속 마음으로는 믿지 안할 수도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고 행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안하고 부정하는 것이요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는 것은 보내신 자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이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신구약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이라,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 이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행하는 거,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은 어떤 것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인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은 내가 믿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믿는다. 곧  이 성경은 보내신 자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 말씀을  예수님을 영접하는 거와같이 예수님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순종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이 말씀과 동행한다 이렇게 해서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일이요, 영생토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요,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은. 다시 말하면 성경 말씀대로 행하지 안하고  성경 말씀을 떠나서, 믿는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성경 말씀을 떠나서 성경  말씀에 위반되게 행동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떠나고 위반해서 행동하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배반하고 믿지 않는 것이라. 그러면, 예수님을 배반하고 믿지  않는 그것은 곧 영생토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안하고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성경 말씀을 떠나서 행동하는 것은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썩을 거 죽을 거, 죽여 버려야 될 거, 썩을 거  죽을 거 없어질 거 이런 것은 자꾸 무성하게 자라고, 영생할 것은 점점 쇠약해  가지고 마지막에는 병들고 약해서 죽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사람이  성경 말씀을 떠나서 사는 것은 자기에게 썩을 것은 이 썩을 것은 무성하게  자라고 영생토록 있을 것은 점점 약해 가지고 말라 죽어 버리고 맙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하는 것은 영생할 것은 자꾸 무성하게 자라고  튼튼해지고 썩을 것들은 자꾸 쇠해 지고 낡아져 가지고 마지막에 바짝 말라서  죽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썩을 것은 우리에게서 잡초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제거해야 되겠고 또 영생하도록 있을 것은 곡식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대로 행하는 것은 영생할  것들이 점점 강성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행동 하는 것은 그것은  우리에게 멸망받을 것들이 자꾸 강성해지고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이 말씀대로 행하지 안하는  것이요 믿는 것이 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인데, 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영생할  것은 무성하게 자라고 썩을 것들은 점점 죽어서 그만 말라 없어져 버리고 만다.

우리가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는 행위를 하면 영생할 것은 점점 자라게 되고  멸망할 것들은 점점 쇠퇴해서 망하게 되고, 이 말씀대로 하지 안하면 정반대로  썩을 것은 자꾸 무성하게 자라고 영생할 것은 다 쇠퇴해서 망하게 된다 그것을  우리가 여기서 확정을 지워야 하겠습니다.

 이래서,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동행하는 것이요,  신구약 성경 말씀을 버리고, 이 말씀을 떠나서 이 말씀을 어겨서 사는 것은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요 악령으로 더불어 합작해 가지고 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믿는 일하면 영생할 것이 점점 자라서 강성하게  되고, 믿는 일 하지 안하고 믿음을 떠나서 살면 썩을 것들 이 자꾸 무성해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기가 썩을 것을 하면서도 썩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  썩을 것을 내가 뽑아 버렸으면 좋겠다. 이 썩을 마음이 왜 내게 자꾸 떠오르며  썩을 이것이 자꾸 우리가 하고 싶으면 썩을 일을 자꾸 안 하고 안 되느냐?' 우리  하는 일에는 썩는 일 엉생하는 일 둘뿐입니다. 썩는 일 영생 하는 일, 썩는 것을  위해서 하는 일이 있고 영생하도록 있는 일을 위해서 일하는 거 있는데, 이 두  가지뿐입니다. 그러면. 썩는 것을 기르는 것은 어떤 것이 썩는 것을 기르는  것인가? 믿음을 떠나서 사는 것은 다 썩는 것을 기르는 것이고, 영생하도록 있는  것을 기르는 것은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영생 하도록 있는 것을 위해서 기르는  것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거 하나 기억할 것은 우리에게는 썩을 것과 영생할 거 둘 있다 내  자신도 썩을 내 자아가 있고 영생하는 내 자아가 있다. 우리 자아도 둘입니다.

썩을 자기도 있고 영생하는 자기도 있고, 또 우리가 일도 썩을 일도 있고  영원토록 있을 일도 있습니다. 우릎가 소유도 썩을 소유도 있고 영생토록 있을  소유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이나 평강도 썩을 기쁨도 있고 영생토록 있을  기쁨도 있습니다. 다 권세도 그러합니다. 권세도 썩을 권세 영원토록 있을 권세,  지위도 썩을 지위 영원토록 있을 지위, 또 사업도 썩을 사업 영원토록 있을 사업  직장도 다 그러합니다. 가정도 썩을 가정 영원토록 있을 가정 이제 썩을 것과  영원토록 있을 것이 있는데, 그러면, 그 둘이 자리를 떠나서 이거 있는 데는  저거 없고 저거 있는 데는 이거 없고 그렇게 되느냐? 둘이 꼭 붙어 있습니다.

썩을 것과 썩지 안할 것이 꼭 한테 붙어 가지고 있습니다. 붙어 가지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썩을 것을 기르는 일을 할 수도 있고 영생하는 것을 기르는 일을  할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는데 오늘 아침에도 그 말씀 했는데,  수많은 일들이 있는데, 어떤 일이든지 그 수많은 일이 다 일마다 거기에  영생하는 것도 있고 썩을 것도 있습니다. 목사노릇 하는 것이야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목사 일에도 썩는 일도 있고 영생하는 일도 있습니다. 장로도  그렇습니다. 만얼 어떤 사람이 아주 세상에서 말하기를, 아침에, 오늘 아침에는  그런 말 했습니다. 사창굴에는 다 거기에는 썩을 것 만 있느냐? 아닙니다.

사창굴에도 영생할 것도 있고 썩을 것도 거기에 있습니다. 아침에 그거는 많이  해석을 했는데 이제 그거는 알고만 계십시오. 어디서든지 그러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말하기를 주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한 자리에 둘이 누워 자며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한 밭에 둘이 일을 하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두 여인이 같이 매를 거머쥐고  돌리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썩는 양식을, '나는 이만한 든든한 자리요 내 일터의 종류가  좋으니까 여기에는 썩는 양식의 일은 되지 안하고 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의  일만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거기에서도 썩는 거 영생토록 있는 거  둘이 같이 있습니다. 또 나는 이 직업이. 저런 직업은 더러운 직업이니까 저  직업에는 썩는 것뿐이지 영생토록 있을 거는 없을 것이라 그래 생각하지만  아닙니다. 거기에도 썩는 것도 있고 영생할 것도 있고 둘이 같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디서라도 영생하도록 있을 일을 할라면 할 수 있고, 또  아무리 외모가 좋은 자리라도 썩는 일을 할 수 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 어떤 일에든지 일의 종류가 다른 것이 아니고. 거기에  썩는 일은 어떤 일이 썩는 일이냐? 어떤 일이 썩는 일이냐?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않는 것이 썩는 일입니다. 영생토록 있을 양식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영생토록 있을 양식인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인가? 신구약 성경 이 도리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님을 믿는 일이 됩니다.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분자라.

예수님을 분해해 놓은 것이 신구약 성경이라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그 중심이 예수님이십니다. 신구약 성경은 전부 예수님을, 미래적인  예수님을 가르친것 또 과거적인 예수님을 가르친 것, 다 예수님을 가르쳤고,  예수님의 그 구속과 예수님의 법칙과 예수님의 심판을 기록한 것이 다 신구약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입장에서라도 예수님을 믿는 일 할 수 있다 그 말은 영생  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 할 수 있다 하는 말이오. 어떤 종류의  직업에서라도 썩는 양식 위해서 일 할 수 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일 할 수  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일은 아무 데서라도 못 할 데가 없다 말이오. 뭐  고관대작에서도 예수 믿는 일 할 수가 있고 사창굴에서도 예수 믿는 일 할 수  있습니다. 사창굴에서도. 오늘 아침에는 그 얘기 했는데. 사창굴에서도 예수  믿는 일을 할 수가 있어.

 어떤 창기는 창기의 그 자리에서 나올라 하니까 '네가 나오면 안 된다. 그  자리서 예수 믿어야지. 그 자리에서 예수 믿어야지' 그 자리에서 예수 믿을라고  하니까, 하나님 말씀은 예수를 믿으면 그 자리에서 칠계를 범하면 안 될  터이니까 칠계를 지켜야 되는데, 칠계를 지킬라 하니까 거기서 지킬라고  결심해도 또 넘어지고 결심해도 또 넘어지고 강제로 달라드니까 또 이제 강제에  또 거기서 예수 믿는 일을 하지 못하고 못하고 이러니까 그분이 소산수를 가지고  그만 세수를 해 버렸어요. 소산수를 가지고 낯을 씻어 버리고 나니까 낯이  껍데기가 다 벗겨지고 낯이 굉장히 얼칭이가 돼 가지고 이래 놓으니까 아무라도  그 사람보면 놀래서 기겁하고 자빠지지 아무도 달라붙는 사람이 없다 말이오.

이라고 나니까 그 자리에서 이제 칠계명을 지킬 수가 있어. 칠계명 지킬 뿐만  아니라 칠계명 지키고 나니까 그 자리에서 못 있구로 쫓아낸다 말이오. 나가라고  쫓아내. 그러니까 제가 그 장소를 제 맘대로 옮기는 게 아니라 쫓아내니까  이거는 현실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밀어내는 것이라 그러면  거기서 나와 가지고 또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굿이 있을 터이니까. 인도하는 곳은  자기가 어디든지 갈라고 할 때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 하나님이  인도하는 길이라. 그래 가지고 창기가 성녀의 성공을 했다는 그런 말을 제가  어떤 책자에서 본 일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어떤 처지 형편 사정에서라도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할 수 있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어떤 현실에서라도 예수님 믿을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을 수 있다 하는 말입니다. 또  어떤 자리서라도 썩는 양식 위해서 일할 수 있다, 어떤 자리서라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배반하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다 하는 말인 것입니다.

 또 그 다음에 하나 알 것은.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 인데  예수님을 믿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

예수님을 믿지 딴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라.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을라면 어떻게 믿으면 잘 믿느냐?  신구약 성경 말씀을 잘 믿으면 잘 믿는 사람이라. 예수님을 이모 저모, 예수님을  전면적으로 믿을라면 어떻게 하면 믿는 것이냐? 신구약 성경 말씀을 다 믿으면  예수님을 전면적으로 믿는 것이라. 그러면 전면적으로 잘 믿으면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다 사는 것이 그것이 예수님을 잘 믿는 것이요 전면적으로 온전한  믿음을 가진 것이라 그렇게 우리가 해석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이것은 다  서론입니다.

 서론 쪼그매 더 하겠습니다. 이 양식은, 영생토록 있을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하는 인자라 말은 사람 중에 제일 거지요  못난 자라 그말입니다. 인자라 말은. 구약에는 사람으로 좀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을 인자라고 했지만 신약에 와 가지고는 예수님만 이 인자라고 했지 다른  이는 인자라고 하지를 안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인자라는 뜻은 어떤 뜻이냐 하면  아무것도 없는 자, 아는 것도 하나도 없고 지식도 하나도 없고 권세도 하나도  없고 재물도 하나도 없고 마치 송장 같은 자라 하는 말입니다. 송장 같은 자.

인자가 너희에게 이 양식은 줄 것이라 그 말은, 예수님이 왜 당신을 인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당신은 소유에 대해서는 송장 같고 지능에 대해서는 송장 같고  또 자기 주관에 대해서는 송장 같고 또 소욕에 대해서도 송장 같습니다.

송장에게, 송장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송장에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송장은 뭐 소유가 있습니까, 지능이 있습니까. 그의 뭐 욕심이  있습니까. 주관이 있습니까, 포부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송장입니다.

그러면, 인자라고 말씀하신 것은 송장 같은 자라 하는 그런 뜻을 나타낸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송장같이 됐습니까? 송장같이 된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대속하실라고 하니까 당신은 송장이 됐습니다. 왜? 우리는 전부 가지고, 우리는  가지고 잘났고, 가지고 잘났고 소원 많고, 우리는 하나님에게 피동 되는 거 또  하나님이 주시는 거. 하나님이, 하나님이 주시는 거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거,  하나님의 것 외에, 하나님에게 받은 지능 외에, 하나님에게 받은 모든 소유  외에, 하나님에게 받은 모든 희로 애락 외에 전부 조짜배기로 저거가 만들어  가지고 이와 같이 지금 사망을 했기 때문에 이것을 예수님께서 대속하는 데에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가 딴걸 만들어 가지고 부강해서 멸망을 받았기 때문에 이  자를 대속하는 데는 부요하시고 부강하신 분이 아무것도 없이 송장같이 돼야  우리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에 송장같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자가 너희들에게 줄 것이니라 하신 말씀은 너희들을 대속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주관이라는 것은 털끝도 없습니다. 당신 소원은 털끝도  없었습니다. 당신의 의견은 털끝도 없습니다. 털끝만치도 당신의 의견이나  당신의 소욕이나 당신의 소원이나 당신의 주권이나 당신의 말이나 당신의 아무  것도 없어. 전부 완전히 진공같이 비고 하나님의 것으로 당신의 것을 삼는 이  일을 성공해 가지고 하나님의 노를 풀고 부요하신 분이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서  가난해지셨기 때문에 우리가 잘못 부요한 것을 대속하게 됐던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인자가 너희들에게 주실 터인데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이 말은 하나님께서 도성 인신 하신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만이  타락한 모든 피조물의 구주가 되도록 작정하셨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인치신  자니라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인자가 줄 것이라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이 주신다는 말인데, 간단하게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이 주신다는 말이요. 넓게 말하면 신구약 성경에  계시해 놓은 신구약 성경에 계시해 놓은 것은 그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했고.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신인양성일위라고 이라는 것은, 해석을 하면 다 들어 가지만 신인양성일위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신구약 성경의 한 일부분에서 가르치고 있지 전면에서는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골고루 다 알라면, '인자가 줄  것인데' 인자가 줄 것인데 그 인자는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을 다 알라고 하면  신구약 성경을 다 알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의 요모도  나타내고 저모도 나타내고 안도 나타내고 밖도 나타내고 전부 다, 그의 포부와  욕망과 계획과 시작과 마지막에 결말까지를 다 나타내고 있는. 계시하고 있는  것이 신구약 성경인 것입니다.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그러면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영생토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는 것이라, 또 하나님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이  아닌 어떤 일이라도 하는 것은 다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은 다 썩을 일들이라.

 그러면 썩을 일들이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되는가? 어떤 일을 해야 되는가?  예수님을 믿는 일은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일이 된다. 이거 뭐 이중 삼중 몇  첩으로 돼 가지고 있는 이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꼭 하나만 들어 가지고  해석할라 하면 쉽지만 이 전체가 얼마나 껍데기가 많고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  말 하는 것을 전부를 단번에 이래 하려고 하니까 이거 뭐 복잡하기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기도 힘들고 알아 듣기도 힘든다 말이오. 그러나  깨달으면 다 하나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보내신 자는 예수님이신데 예수님 믿는 것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믿는 것이라.

 오늘 증거하려고 하는 것은 다른 거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일. 이제 다른 거는 다 해석 다 했으니까 그거 가지고 여러분들이 다 거기서  분해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는 일은  뭐이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은 뭐이냐? 이것을 지금 말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이 뭐이 그 우리가 생명을 바치는  것이냐? 아닙니다. 생명 바치는 것도 하나님 은 원치 안하십니다. 몸을 바치는  것인가? 몸 바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재물을 바치는 것을 원하시느냐? 재물  바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일생을 바치는 것을 원하시느냐? 일생 바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 무슨 말 하노 또 이상한 말 하네'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믿는 것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믿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믿는 것뿐이오. 우리는 믿는 일만 하면 됩니다. 아무리 자기가  생명을 바쳤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바쳤으면 믿음이 가치 있기 때문에 생명 바친  것도 가치 있지 믿음 없이 바쳤다면 억억만 명이 죽어도 그까짓 거는 하나님  앞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 그때는 인구가 뭐 몇십억이 됐는지 몇억이 됐는지 모르지만 그  몇억 되는 사을 다 흥수로 다 쓸어 죽여 버렸는데 그 뭐 생명이 뭐이 귀합니까  하나님 앞에 그랬는데, 노아의 여덟 식구를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난 다음에  뭐라고 말씀하셨느냐 하면 노아를 가리켜서 의인이라고 말했고 하나님의  후사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후사라 말은 하나님의 바로 직계자라  그말입니다. 하나님의 후사라 말은 하나님의 바로 직계자라 그 말이오. 노아를  의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님의 본체의 역사인 영감과 영감이  우리에게 부딪혀졌을 때에 우리에게 작용하는 진리 이 셋과 노아가 연결된 이  연결을 하나님이 귀하게 봐서 연결된 여덟 식구만 남겨 놓고 나머지가는 다 그  생명 다 없애 버렸습니다. 그때에 뭐 영웅들이 얼마나 많았겠으며 또 재벌가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권력가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거기에 보면 '네피림'  말 합니다. 네피림은 잘난 사람을 가리켜서 네피림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많았지만 하나님께는 소용 없습니다.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명을 바치고 난 다음에는, 생명을 바치고 난  다음에는 '내가 이렇게 생명을 바쳤으니까 주님이 내게 대해서는 만족하실  것이고 또 내가 이만하면 되지 안했느냐? 나는 생명을 바쳤다.' 생명 바치는 걸  주님이 원하지 않습니다. 소용 없습니다. '아. 나는 하루 종일 이렇게 수고를  하고 일을 했다. 주를 위해서 수고를 했으니까 주님이 내게 대해서는 후대해  주실 것이다. 기뻐하지 않겠느냐?' 그것도 필요 없습니다. 믿음 없는 희생도,  믿음 없는 순교도, 믿음 없는 순생도, 믿음 없는 봉사도, 믿음 없는 기도도,  믿음 없는 희생도, 믿음 없는 전도도, 믿음 없는 충성도 다 필요 없습니다.

믿음만이 필요합니다. 믿음만이. 이래서, 당신은 믿음을 원하시지 그 외의 거는  필요가 없어.

 믿음이라는 건 뭐이 믿음이냐?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내가 믿는 것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당신의 본체를 내가 믿는 것, 당신은, 그분은 본체가  어떤 분이신데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은 다 참되고 온전하기 때문에 그분의  하시는 역사를 믿는 거, 그분의 계획을 믿는 거. 그분의 사랑을 믿는 거, 그분의  심판을 믿는 거, 그분의 계획을 믿는 거, 그분의 자체와 그분의 그 실력과  그분의 모든 행사와 그분의 심판과 그분이 우리에게 접하는 그 사랑 이것을 믿는  것을 당신이 원하십니다. 이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만이 당신이  요구하십니다. 왜? 그 나머지기 그까짓거야 주님께서 엿새 동안에 다 지으신  것이고, 또 인간의 생명도 노아 때에 그렇게 수억이 되는지 모르나, 수십억이  되는지 모르나 수십억 되는 그 생명도 믿음 없기 때문에 싹 몰살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애지중지 해 가지고 이렇게 사랑하셨지만 마지막에 믿지 안하므로 전부 광야에서  다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요구는 믿음이라. 이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신구약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도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주셨고, 성신의 감화를 보낸 것도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보냈고,  독생자를 보낸 것도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보냈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것도 당신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하셨고, 이렇게 당신이 섭리하시면서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섭리하시는 것도 당신을 믿게 하려는 거기에 목적이 있고, 모든 것을  정의와 공의로 심판해서 이 모든 역사가 모든 진가를 다 보응시키는 이 인과  보응을 베푸시는 것도 당신을 믿게 하려는 이 목적에 있습니다. 딴거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데. 당신이 순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의 목숨 바치는  그걸 원하는 게 아니오. 네가 네 목숨보다 나를 믿느냐. 목숨이 끊어질 때라도  나를 믿느냐. 우리의 목숨이 끊어진다면 우리에게 가진 것으로는 제일 귀한  것이요 최고 절정의 것인데 목숨이 끊어져도 당신 믿는 믿음이 요동치 안할 때에  그 믿음 그것을 보배로 여기는 것입니다. 목숨 끊어진 것을 보배로 여기는 게  아니라 '아, 네게는 제일 최종적으로 귀한 것이 목숨인데 목숨이 끊어질  지경이라도 나를 믿는 믿음이 요동치 않는구나. 네게 있는 모든 게 절단나도  나를 믿는 믿음이 요동치 않는구나. 온 천하 영광을 다 줄라고 해도, 천하  영광을 다 주면서 나를 믿는 믿음을 버리라 해도, 천하 영광을 다 줘도 네가 나  믿는 것을. 나 믿는 것을 버리고 그것을 취하러 가지 않는구나. 오, 너는 네  몸보다도, 네 소유보다도. 네 가정보다도 네 생명보다도, 온 천하보다도. 천하  영광 전부보다도 네가 나를 더 믿고 의지하고 나만을 바라보고 있구나' 요거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요거 외에 딴게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시험 저런 시험하는 것은 당신을 믿도록 하는 노력. 믿나  안 믿나 시험하는 일, 또 당신을 믿으면 그 결과가 이렇게 좋다 당신을 안 믿은  결과는 봐라 이렇다, 당신을 믿지 안한 것의 그것의 결과가 어떠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서 믿게 하려는 것, 당신을 믿으므로 뭐 된 그것은 당신을 믿게  하려는 것.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런 행위 저런 행위 다 하는  거, 믿음의 행위는 당신에게는 보배입니다. 당신은 믿음만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거지라서 당신에게 병신이 낫아 달라고 간구해도 병신  그까짓 거 낫우기가 문제 아니라. 불 가운데에서 불 가운데 불에 안 타도록 하는  거는 문제가 아니라. 사자 구덩이 들어가도 안 죽구로 하는 거는 문제가 아니라  천천만 명이 다 둘러싸 있어도 그까짓 거 다 물리치고 구출하기는 문제 아니라.

믿으라 그 말이오! 믿으라! 거기서, 그런 거, 그주위 환경 이런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 믿는 이 믿음이 요동치 안하면 당신의 전지전능은 그의 것이 돼 가지고  모든 것을 역사해 주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역사의 모든 것은 당신을 믿는 그 믿음이 요동치 안했을 때에  그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었어. 모든 세상을 다 이겼습니다. 천부당  만부당한 일도 믿는 자에게는 그 모든 것이 그 사람을 위해서 유익 되게 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그분을 믿는 거, 그분을 믿는 것인데, 그분을 믿는 것은 어떻게 우리가  그래 믿을 수 있느냐? 그분을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는 잘못하면 하나님은  다각형의 하나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하나님은 모배기가 많다. 요모로 보면 이런 하나님 저모로 보면 이런 하나님 그  모로 보면 이런 하나님, 요리 보면 이런 하나님 조리 보면 조런 하나님 하나님은  각도가 립다. 다각의 하나님이라' 대단히 깨달은 말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은 이 모만 믿을 게 아니라 요모도 믿어야 되고 조모만 믿을 게 아니라  고모도 믿어야 되고 다 믿어야 되겠다 말이오.

 이러면 다 믿을라면 하나님이 몇 각도나 되는지 어찌 알겠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몇 각도로, 될 모배기로, 어떤 하나님으로 우리가 믿겠느냐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으로 어떻게 알고 믿겠습니까? 예. 신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모배기가 다 나와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모떼기가 다 나왔어요.

요모로 보는 하나님 조모로 보는 하나님 전부 다 나왔어. 그러니까.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가 믿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성경에  나타냈고, 당신의 모든 세부를 성경에 나타냈고, 당신의 각도를 나타냈고,  당신의 모든 분자를 다 우리에게 나타내서 이 분자도 보고 알 수 있고 조 분자도  알 수 있고 다 알 수 있다 그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제 이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 믿도록 하기 위해서, 무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신구약 성경 말씀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또 가르쳐  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다 나타내는 거는 아닌데, 신구약의 문서 계시를 보고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의 뜻은 이렇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은  이렇습니까? 하나님의 성품은 이렇습니까 하나님의 주장은 이렇습니까? 하나님의  지금 목적은 이렇습니까? 하나님의 평가는 이렇습니까? 하나님의 비판은  이렇습니까? 하나님의 미워하는 것은 이렇습니까? 하나님 기쁨은 이렇습니까?'  막 거기에 다 있다 말이오. 이래도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기 때문에 거기에 다  기록돼 있는 건 아닙니다. 다 기록돼 있지는 안하나 문서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을 알고 더 알라고 하는 자에게는 문서 계시 안에 은밀 영감 계시가  내재해 가지고. 은밀 영감 계시가 내재해 가지고 문서에 나타나지 않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다 나타내서 다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이라, 당신은 믿음  외에는 요구할 게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뭐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입니까?  마음 그까짓 거 주님이 다 만들었어. 주님이 다 만들었는데, 지옥갈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사람들 마음도 다 만들었는데, 마음 그것도 당신이  만들었어. 귀하지 안하요. 마음도 귀하지 안하요. 뜻도 귀하지 안하요. 힘도  귀하지 안하요. 생명도 귀하지 안하요. 생애도 귀하지 안하요. 지능도 귀하지  안하요. 일생 생애도 귀하지 안하요. 아무것도 귀하지 안해. 당신을 믿어 달라는  것뿐이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우리는 하나님 일 하는 거는 믿는 것만  하나님의 일입니다. 믿는 것만이 하나님의 일인 것을 우리가 분명히 잡고, 믿는  거 외에는 하나님의 일 없습니다. 아무리 생명을 바쳐도 믿지 안하면 하나님은  상관 없습니다. 보지 안해.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없는 가운 데서 창조하신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능치 못하실 게 없어. 없는 데에서 이런 우주  같은 거 억억만 개라도 당장에 뭐 뭐 하루 동안에 만들래도 만들 수 있어.

그분에게 뭐이 필요 있겠소? 다만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믿어 달라는 것  믿어라,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튼튼히 믿고 그분을 믿으므로 말미암아  행동하는 것은 어떤 행동이라도 당신이 다 기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믿음이 이깁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의 어떤 행동이라도 믿음의 행동이  아니면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간 중에 제일 더러운 인간이라도 '나는  이렇게 더럽습니다. 당신이 나를 깨끗하다 하실 때에 나는 깨끗해집니다. 당신이  나를 깨끗하다 할 때에 나는 깨끗해집니다. 당신이 나를 깨끗하다 할 때에 천하  만물이 나를 정죄할 자가 없습니다.' 이렇게 당신을 믿는 것은 당신이  원하십니다.

 아무것도 없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천인 만인이 달라들어서 해도 못 학 일을  떡 하려고 달라듭니다. '네가 어떻게 이 일을 하려고 달라드느냐? '아 성경  말씀에 이 일을 하라고 안 했습니까? 내가 믿는 당신이 말씀했기 때문에 나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당신이 하라 했기 때문에 내가 하면 안 됩니까? 하라 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라 한 것 아닙니까? 내가 이렇게 믿기만 하면  다 해 주시마고 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나는 당신이 하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하려고 달라듭니다.' '야, 네가 억만 명이 달라들어도 못 할 일을  네가 성경에 하라 했다고 네가 하려고 달라들어?' '당신이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라고 하셨으니 내가 하면 될 걸 내가 믿습니다.' '힘이 없는데  이게 어찌 되노? '나는 힘없지만 나에게 말씀하신 당신이 능력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믿을 때에 주님은 칭찬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신약 성경에 가만히 보면  주님의 놀라고 기뻐한 것은 다 믿는 그것을 보고 기뻐하셨고, 모든 권면하신  말씀도 믿으라고 권면하셨고, 또 당신이 일하신 것도, '믿으니까 보라 믿으니  보라. 이렇지 않느냐?' 믿음의 하나님의 역사를 보이기 위해서 하신 것이지 믿음  빼 놓으면 하나님은 아무것도 가치로 여기지 안하고 필요로 하지를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우리는 믿는 것만이 우리 할  일이라 그 말이오. 우리 할 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뭐 할 건가? 우리 할 일은  믿는 것만 우리 할 일이라. 믿는 것만이 우리 할 일이라, 믿는 것만이. 믿을  때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면 나를 천인 만인이 죽일라고  달라들어도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믿으니까. 하나님이 주권하고 계신 것을  믿으니까 천인 만인이, 너거 와 봤자 나를 주권하시는 주님이시라. 천인 만인  네까짓 것들이 다 모여 가지고 와도 내게 대해서 머리털 하나도 너희들이  건드리지 못해.' 우 달라들어 가지고 마구 반쯤 죽여도 '너거는 못 해. 하나님이  나를 매 맞게 하시니까 매 맞고 죽게 하시면 죽고 살게 하시면 살지, 그분이  주권 개별 섭리하시기 때문에 너거가 하는것 아니야. 하나님이 하시는 거라  이렇게 믿는 사람을 원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하나님 믿는 것이 요동치 않고 어떤 가난에서도 어떤 입장 처지  형편에서도, 어떻게 변동되는 데서도, 어떻게 큰 걸 만나도 하나님 믿는 것이  요동 안 되고, 어떻게 어려운 걸 만나도 하나님 믿는 게 요동 안하고.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경을 주시는 것은 이런 거 줄 때 하여금 믿는 자 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넣어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것도 있고. 참으로 내게 믿음이 있나 없나. 하나님은 아시지만 내 자신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니까 내 자신으로 믿음 있고 없는 것을 스스로 확신을  가지도록,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확실히 판명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시는 현실 또  현실은 '보라. 얼토당토 안했지만 보라. 믿으니까 이렇게 되지 안했느냐' 해서  믿음의 효력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우리에게 믿음을 넣어 주기 위해서. 내가  믿지 안하면서 믿는 체 하는, 정말 실상의 믿음이 없는 것을 내 자신으로 알도록  하기 위해서, 전부 믿음 위해 역사합니다. 주님의 하시는 일은 전부 믿음 위해서  역사하요. 믿음 위해서. 우리의 믿음 위해서 역사합니다. 믿음을 넣어 줘서  믿음이 생겨지도록 하기 위해서.

또 믿음의 효력은 이렇츰 크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줘서 더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믿지도 안하면서 공연히 믿는 체 하니까 믿음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해서, 또 작은 믿음을 큰 믿음으로 만들기  위해서 전부 믿음 위해서라. 주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믿음 위해서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셨는데 그 목적은 무슨 목적이냐? 그 목적은  이것입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전지,  전능, 완전 무한 하나님의 무한의 전부를 믿음으로 자기 것을 삼아 가지고.

하나님도 아닌 것이 믿음으로 자기 것 삼아 가지고 모든 피조물들에게  하나님노릇 하는 이 자 만들라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런고로, 성경은 하나님을 참되다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믿음으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는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하나님을 믿으니까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수밖에 없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수밖에 없어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따를 수밖에 없고 하나님 인도를 따르니까 인도 따른 그 일은  전능자가 하는 일이라. 전지자가 하는 일이라. 완전자가 하는 일이라.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 하나님을 따라서. 하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이는  것은 그 움직임은 전능의 움직임입니다. 전지의 움직임입니다. 완전자의  움직임입니다. 그거는 뭐이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믿기는 사람이 믿고  일은 하나님이 하셔.

 그러기에 이번 공과가 하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은 완전자이시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시요, 주권자시요, 대주재시요, 창조주시요. 주권 개별 섭리자시요  이렇게 하나님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신실을 믿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이니까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이 하라 하는 대로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내가 믿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이니 내가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분의 말씀이니 그 말씀을 믿습니다. 그 말씀을 믿으므로 내가  행합니다. 순종해서 행합니다. 행할 때에 행하면 내 행함이 무엇을 할 건가?  행함이 무엇을 할 건가? 요거 똑똑히 들으십시오. 행함이 무엇을 할 건가?  행함이 하면 행하는 자는 내이기 때문에 나는 유한자이기 때문에, 유한자는  무한을 만들 수가 없어. 나는 불완전한 자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자는 완전을  만들 수가 없어. 나는 사망 아래 있는 자이기 때문에 영생을 만들 수가 없어.

이거는 하나님만이 만들 수 있어.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어. 천하의 제일  실력가도 못 만들어. 하나님이 만들 수 있어. 이거 다 사망선을 초월한  완전선에, 영원선에, 불변선에 모든 완전, 영원, 불변, 영생 이 선에 속한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거요.

 하실 수 있는데. 하나님을 내가 믿으므로 그분의 말씀을 믿어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믿으므로 내가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어. 그분을 믿으니까  순종하지. 순종해. 순종하면 순종하는 행위인데 순종하는 순종이 무엇을 하느냐?  아니오. 순종은 아무것도 못 하요. 순종 그거는 썩을 것밖에 못 하고 죽을  것밖에 못 하고 아무것도 못 합니다. 순종은 아무 것도 못 합니다. 순종하면  나에게 말씀하신 그분, 내가 믿는 그분이 와 가지고 그 일을 당신이 와서 다  하셔. 당신이 와서 다 하셔.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다 하겠다,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다 하겠다. 그러면, 그분이 다 해. 내가 하는 게 아니고 그분이 다  해.

 그러면, 우리의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의 효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냐? 우리의 순종이라는 것은 효력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증표를  나타내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증표를 나타내는 것뿐이오 하나님을 믿는  것도 믿는 것도 나에게 십분지 일이 믿는 것도 있고. 십분 지 이가 믿는 것도  있고, 십분지 구가 믿는 것도 있고 이 믿음에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일할  수 있는 것은 십분의 십을 다 내가 믿어 버리면 안 믿는 게 하나도 없이 다  믿으면 당신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백 프로 와서 일할 수가 있어. 백 프로 와서  역사해 수가 있어.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 할 것은 믿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우리는 믿는 것만  하나님 일이오. 믿는 거 외에는 하나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십시오. 믿는 것  안이 하나님 일이라. 믿는 것만 하면 우리는 다 했어. 믿는 것만 하면 그  나머지기 실상의 일은 당신이 하셔, 나를 하나님같이 만드는 것도,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내것을 만드는 것도 당신이 해 주시요. 우리 행동이 하는 거  아니라. 우리 행동은 당신을 믿는 믿음의 표시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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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하나님의 음성/ 요한복음 6장 67절-68절/ 1981. 8. 9. 주일오전 김반석 201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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