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


선지자선교회 1985년 9월 19일 목새 

 

본문 : 요한복음 6장 27절 29절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할 때에 신구약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으로서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는 것을 먼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신구약 성경 말씀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이라 예수님께서  천지는 변해도 획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우리에게 더 보증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랬는데,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하나님 말씀을 믿으면서 이해가 되는  말씀은 믿고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은 안 믿는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내가 따라갈라 하는 게 아니고 언제든지 자기를 표준 해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주관 행위입니다. 그런 사람은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주관에 이해가 되면 믿고 이해가 안 되면 안 믿고, 이러니까 자기가 믿고 안  믿는 결정은 자기 주관이 결정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결정해 가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자기가 성경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할 때에 이해가 안 되면 자기를  기준해서 믿는 주관 신앙은 이해가 안 되면 안 믿습니다. 이해가 되면 믿습니다.

이해 안 되는 것은 그것을 이해가 안 따니까 자기가 이해를 하려고 이렇게 자꾸  성경을 상고합니다. 성경을 상고 하면 이해가 될 줄 알아도 이해가 안 됩니다.

자꾸 성경 상고하면 자기 속에 주관이라는 그놈이 속에 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놈이 자꾸 이해를 못 하게 만듭니다. 그게 내나, 주관 그것이 악령 악성, 그게  그냥 제 마음인줄 알지만 제 마음이 아니고 악령이 속에 주관하고, 자기 속에도  자기중심이라는 원죄 그놈이 강하기 때문에 그놈이 들어서 그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구약 성경 말씀을 정확무오한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은, 자기가  이해가 안 됩니다. 이해가 안 될 때에는,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다른 것은  이해가 안 될 때에는 내가 아직까지도 미개해서 이해가 안 되지 내가 유치해서  이해가 안 되지 이 말씀이 틀려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지금  미달돼서, 아직까지 어려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이다. 이러니까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 그대로 믿으면서, 이해가 자기가 모자라서, 자기가 부족해서 이해가 안  되니까 이해가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자기가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믿기는 믿으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이 있고,  이해가 돼야 믿는, 이해가 먼저 있고 믿음이 뒤에 있는 사람이 있고 믿음을  가지고 이해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믿는 사람이요  하나는 주관 행위를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무한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쉽게 이해가 되는 것 아닙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우리가 틀리고 우리가 미숙해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이지  하나님 말씀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틀려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또 해석해서, 이렇게 해석을 해서 들을 때에  자기가 처음에 이해가 안 되는 거 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거 있을 때 그것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같이 그렇게 정확 무오한 절대성 있는 거는 아니지만  '아, 내가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안 되나 이제 가르치는 분은 모든 것을 내가  생각해 볼 때에, 다방면으로 생각해 볼 때에 그분이 나보다 더 아는 것이 더  정확했고, 나보다 정확성이 많고 또 그분이 나보다도 모든 신앙 행위에 낫고  이러니까 나보다 훨씬 나은 분이다' 아는 것도 낫고, 깨닫는 것도 낫고, 행하는  것도 낫고, 믿는 것도 낫고 그 바라보는 것도 나으니까, 그분이 말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나. 이해가 안 되나 그분의 말한 것이 틀리지는, 안하고 맞기는  맞을 터인데 이해가 안 되니까, 맞은데 이해가 안 되니 내가 지금 어두워  그러니까 어찌 됐든가 이해해서 믿는 이것을 이해하려고, 믿기는 믿으면서 믿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믿는 사람이오.

자기가 암만 그렇게 이제까지 들어도, '뭣이 틀렸는가 보자' 틀린 것을  찾습니다. 틀린 것을 찾은 그 사람은, 자기가 무엇이든지 자기 주관으로 이해가  되 그 난 다음이라야 믿지 이해가 되기 전에는 안 믿는 사람 그 사람은  위험합니다. 그 사람은 신앙 걸음을 걸어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절대성이고, 또 중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 주는 분에 대해서는 자기와 그와 모든 생활도 비교하고 다른 면을 아는  면도 비교하고 다 이래 비교해서 '이는 나보다 낫다. 나보다 낫기 때문에, 지금  그분이 뭐 성경에 대해서 깨달음을 말할 때에 이해가 이거는 안 된다. 안 되는  것은, 대충 그분이 말한 것은 바를 터인데 이해 안 되는 것은 내가 모자라서  이해가 안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이해를 하려고 애를 쓰면 돼지지만, 이해를  할라 하지 않고 제가, '이게 바를 터인데, 바른 건데 내가 이렇게 이해가 안  되니, 바른 건데 내가 이해 가 안 되니 내가 이해를 해야 되겠다. 이해하도록,  어쨌든간에 이해하도록, 이해가 되도록 노력을 해야 되겠다' 이렇지 안하고,  대뜸 '이게 뭐이 틀렸는가?' 말하는데 뭣이 틀렸는가 틀린 것을 찾는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자기가 듣는, 성경 해석이라도 들을 때에, 들을 때에. '나는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과 같이는 믿지 안하지만 그 사람을 믿기 때문에 주석을  보더란대도 '이분은 나보다 나은 분이기 때문에 이분의 말 한 것을 내가  배울라고 지금 하는 것인데 이거는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안 되다 이거는,  이해가 안 되니, 이해가 안 되니 이게 틀렸다.' 이제 이해 가 안 되니 틀렸다  하고 그것을 틀린 것을 밝히려고 하는 사람과 또 나 는 믿기는 믿는데, 이분이  나보다 바로 가르친다. 믿기는 믿는데 이해가 안 되니까 이해 안 되는 내 면에  잘못이 있으니까 내 면의 잘못을 고쳐서 이해되도록 하려고 하는 그거와 그 두  종류가 있기 때문에. 이제 먼저 말하는 그 종류는 위험한 종류입니다.

 그래 내가 어떤 사람에게 그전에 그런 말 많이 한 사람 있습니다. 그 사람은,  하나 비유컨대 쌀가마니와 또 여기 모든 쓰레기 가마니가 있습니다. 쓰레기  가마니, 쓰레기 가마니 있는데, 말하기를 '이거는 쌀가마니다. 이거는 쓰레기  가마니다.' 이러니까 '쌀가마니라?' 하면서 쌀가마니에서 자꾸 찾으니까 돌이  나옵니다. 쌀가마니에도 돌이 나온다 말이오. 돌이 없는 게 아니라. 그런데,  '쌀가마니라 하더니만 여기 돌이 있네요.' 돌이 있는 그걸 들고 말합니다. 돌이  있으면, '이거 돌이 여기에 하나 있네.' 그러면 쌀은 한 가마니라면 뭐 수만  개가 되든지 그거 내 계산은 모르지만, 수만 개가 되는지 수십만 개가 되는지,  쌀은 수십만 개 있고 돌 한 개 있으면 많은 대수가, 이거 쌀은, 수십만 개는  쌀이고 한 개 돌이니까 이거. 돌은 쌀가마니에 이거 잡된 것이 끼어 있는가 보다  이래 가지고 그거는 쌀가마니로 인정해야 될 건데, 수만 개 있는 쌀은 인정 안  하고 한 개 돌을 가지고 '돌이 있네, 어찌 쌀가마니가? 돌이 있네?' 그렇게 하는  그 사람은 신앙이 자라지 안해. 그것이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이 쓰레기 가마니. '이거는 쌀가마니. 이거는. 이거는 쓰레기  가마니다.' 쓰레기 가마니를 자꾸 추리니까 쌀이 한 개 나와. '아, 여기도 쌀이  있는데. 여기 쌀이 한 개 있는데' '쌀이 있는데' 해 가지고 그것을 거석해  가지고, 쓰레기 가마니라' 해도 '여기 쌀이 있고' '이거는 쌀가마니다.' '돌이  있고' 자꾸 이래 되면 마귀란 놈이 그 사람을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봐라,  여기 쌀가마니에 돌이 있지 않느냐? 이거 돌 가마니 아니겠느냐? 이거는  쓰레기인데 쓰레기 가마니라 하지만 쌀이 있지 않았느냐? 이거 쌀가마니가  아니겠느냐?' 그래 가지고 나중에 쓰레기 가마니는 쌀가마니로 인정하고  쌀가마니는 돌 가마니로 인정하는 그런 사람으로 마귀란 놈이 유도해 가기  때문에 그게 위험합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이, 아주 요거 중요합니다. 이래서, 자기가 신구약 성경 말씀을  참되다 인정을 하고 그 다음에 틀릴 때에는 '아. 내가 이거 뭘 깨닫지 못해서,  내게 뭐 잘못이 있으니까 어쩌든지 깨닫게 해 달라고' 옳기는 옳은데 내가  모르니 깨닫게 해 달라는 것과 이 성경에도 이거 뭐 틀린 게 없느냐 하는 것과  다릅니다. 저는 예수 믿은 후에, 신구약 성경에 못 깨닫는 거 많이 있어. 못  깨닫지만 어릴 때부터 믿을 때에 '이 하나님 말씀은 정확 무오하다. 한데. 내가  깨닫지 못한다.' 이렇지, '이 성경 말씀에 이런데 좀 이상하다. 이거 뭐가  틀리지 안했는가?' 이렇게 생각해 본 예는 내가 기억한 대로는 한 번도 그런 게  없어. 그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믿어도 항상 그 면에 서  가지고 '성경에 뭐 이것도 틀렸네.' 항상 그 사람은 틀린 것 말합니다. 이  성경의 이 면도 이거 모순되지 않는가, 틀리지 않는가? 자꾸 틀린 것만  찾아냅니다. 틀리 것 찾아내는 그거는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틀린 것이  보이지 안하고 맞은 것이 보일라고 애를 써야 될 터인데 틀린 거 볼라고 애를  쓰니까 마귀란 놈의 유혹을 받아 가지고 자꾸, 틀린 걸 말하지만, 그러니까 그  사람에게는 그걸 암만 가르쳐 놔 봤자 뒤에 또 딴걸 가지고, 이거 틀리지  안했느냐' 이라기 때문에, 뒤에 변동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신앙을 길러 갈  도리가 없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그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됩니다. 내가  여기에 어떤 그런 사람이 내가 있는 걸 지금 알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벌써 은혜가 되지를 안하고, 자꾸 그러면 반동적으로  반발적으로 나가기 때문에 나중에 그것을 돌아서지 안하면 그게 뒤에 가서  마귀가 되고 맙니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이걸 예사말로 들을 게 아니고 자기 속에 그런 것을,  하나님의 육십육 권 도리는 그저 무조건 믿어야 됩니다. 정확 무오 합니다.

털끝만치도 틀림이 없기 때문에 믿고. 이해가 안 될 때에는 이해가 안 되는 거는  내가 모자라 이해가 안 되는 것이지 하나님 말씀이 틀려서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고, 내가 볼 때에 이 말씀은 틀렸다 싶은 것은 내가 틀려서 틀리게 보여지지  그 말씀이 틀려서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여기에, 이거 지난밤에도,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에 묻는 것과 답하는 것이  모순된 그런 답을 하고 있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 이라면,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  했으면 물을라면 '영생의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이 일하는  것입니까' 이래 물어야 될 터인데 뚱딴지 같이 묻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언제 예수님께서 여기에 하나님을 말이나 했습니까.

어디? 하나님의 일은 말도 안 했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일은 말도 안 하고,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  이랬으니까 거기에 대한 물음을 가져야 될 터인데 거기에 대한 물음을 가지지  안하고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이러니까 뚱딴지같은  물음 아닙니까? 이 물음이 어찌 뭐 문답이 순조롭습니까? 엉뚱한 소리를 묻고  있습니까? 어떻게 해요? 어때요?, 여러분들 생각에? 엉뚱한 물음입니까, 그  물음이 예수님 말씀하신 그 말에 합당한 물음입니까? 상관도 없는 엉뚱한 물음을  묻고 있는 것입니까? 아주 그거는,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썩는 양식  위해서 일하지 말고 영생토록 있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 예수님이 이랬는데,  제자들이 그 말 듣고 난 다음에, 일을 말하니까, 그러면, 일을 말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말한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들어  보십시오.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지금 영생할 양식 위해서 일하고 썩을 양식 위해서 일 하지  마라 이 두 가지 말했는데. 썩는 양식 위해서는 일하지 말고 영생할 이 양식을  위해서 일을 하라 이렇게 말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정확한 물음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하면 썩는 양식 위해서 일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면 영생하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됩니까?' 이래 물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이게 정당한 물음 아니겠습니까? 그랬는데, 엉뚱하게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이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정당한  물음입니까? 아주 엉뚱한 물음입니까? 엉뚱한 물음이라고 생각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저 뒤에는 무슨 말인지 손도 안 들고 뭐인지도 모르고 예  놓읍시다.

 왜 손을 들라 하느냐 하면, 이걸 모르고 있다 그 말이오. 이해가 안 된다  그거요. 지난밤에도 이것을 많이 말했는데 영 이해를 못 하는 사람에게 말하니까  말이 답답하고 통하지 않는다. 말이오. 말이 통하지 안하니까 말이 안 돼요.

여러분들도 어디 가서 말을 할 때 그 말을 이해를 하고 납득을 하면 말을 할  때에 힘이 나오는 것이고 또 말을 할 수 있지만 말을 하면 정반대 엉뚱한 소리만  자꾸 하고 있으면 말이 어찌 돼집니까 어디. 반사들도 가서 말할 때에, 학생들  권면할 때에 엉뚱한 소리만 하면 그 아이에게 말을 해도 말이 통하지 안하니까  말이 나가 않는다 그거요. 지난밤에도 말이 나가지 안해요.

 그것을, 성경은 틀리지 안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오. 다 신구약  성경은 전부 다 예수님의 영, 성령님이 이렇게,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정확 무오하게 기록하도록 이렇게 말씀하셔 가지고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털끝만치도 들림이 없다 그거요. 그래서 이 성경 기록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렇게 믿습니다. 이단자들은 하나님 이 그 사람을 한번  감동시켰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감동을 받아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기록을 했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한 획 획, 그 한 획 한 획을  이렇게. '건너 그어라, 삐치라, 내리 그어라' 이렇게 획 하나 하나를 주관해  가지고 기록을 했다 하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들은 한 자 한 자를 말해 가지고  기록했다 하는 이들도 있고, 어떤 이는 한 문구를 말을 해서 그렇게 기록했다  하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제목만 내놨는데, 제목만 내놓고 그 다음에 제목에  따라서 이렇게 논술하기는 제 마음대로 논술했다 이렇게 믿는 사람도 있는데  그거 다 전부, 신앙을 가지고 세상을 이긴 사람들은, 다 서로 네가 옳다 내가  옳다 하니까 누가 옳은지 모르나 세상을 이긴 사람들은 어떻게 깨달았더냐?  세상을 이긴 사람들은, 그거 축자적 영감이라는데, 글자 한 글자를 다 하나님이  인도 해 가지고 기록했다는 것을 축자 영감이라 이렇게 말하고 또 유기적  영감이라 그렇게 말해. 유기적 영감이라 말은 사람의 지정의의 그 의사를 다  하나님이 자유하도록 인정은 하고, 자유하도록 해 놓고 자유하는 그 지정의의 그  모든 인간의 주관을 성령님이 감동시켜 가지고, 인간의 주관이 성령의 감동으로  정확 무오하게 돼 가지고 그렇게 그 사람을 통해서 기록한 것이라. 그러기  때문에, 기록한 것은 하나님과 기록한 사람이 서로 성신의 감화로 통해서 하나가  돼 가지고. 하나님의 의사와 그 사람의 의사가 기록할 때는 같이 돼 가지고  그것을 기록하도록 했다 하는 이렇게 인정하는. 이렇게 믿는 교리는 유기적  영감이라 그렇게 말하고 유기적이라 하는 거는 그 사람하고 나하고는 딴  사람인데 나와 그 사람과 의사가 통하고 그 일에 대해서는 생각이 같고 다 또  욕망이 같고 모든 견해나 평가가 같이 그 사람과 나와 그 일에 대해서는, 딴  사람 이지만 서로 의사상통이 다 된다 요라는 걸 가리켜서 유기적이라고 그렇게  술어를 그렇게 붙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기적 영감이라, 축자적 영감이라, 또 어떤 사람은 그저  하나의 제목적 영감이라. 또 윤곽적 영감이라,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획  하나까지 다 영감되어 있다' 이렇게 전부 축자적 영감 영감을 예수님께서, '획  하나도 했으니까 그거는 획 하나도 틀림이 없다 하는 축자적 영감으로 그렇게  예수님이 증거했다 이렇게들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유기적 영감과 축자적 영감 이 둘을 다 믿습니다. 이거  둘이 다 정통입니다. 그 외에 거는 전부 거짓이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마구  이래 저래 해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데는 조금 문제가 되는 것이, 뭐이냐 하면, 엉뚱한 대답을 했다  말이오. 엉뚱한 대답을 했기 때문에, 엉뚱한 대답을 했는데 엉뚱한 대답을  했으면 예수님께서 엉뚱스러운 대답을 하는 데에 또 예수님께서 엉뚱스러운  대답을 하지 안할 것이라 그 말이오. (저기 저분, 딱 깨 지금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있어요. 믿음 가지지 못하고 지금 믿음을 지금 떠나서 지금 악령에게  붙들려 가지고 있어 지금. 그걸 지금 바로 가져야 돼 자꾸 얼굴이 처음보다 자꾸  지금 못해져 간다 말이오. 그러면 모든 일이 낭파가 돼져. 믿음이 자꾸. 믿지  못해, 마귀 그게, 마귀가 떠나가지 않고 주관으로 자꾸 이래 나가고 있기 때문에  완전히 돌아서야 돼. 안 돌아서면 헛일이라.)  이 사람들이 엉뚱스러운 그런 질문을 예수님에게 했는데 엉뚱스러운 질문이  아니라는 건을, 예수님이 대답한 것을 보면 뭐라고 대답했느냐?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그 말이 엉뚱한 대답 같으면 '왜 엉뚱스러운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느냐' 이랬을 것인데,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그래 또 대답을 했다 그거요. 대답을 했는데. 그것을 속에,  껍데기 속세 들어가서 알맹이를 보면 그 제자들이 그렇게 묻는 것이 바로 물었다  그 말이오.

 바로 물었으면, 성경에 기록한 대로 보면 엉뚱한 물음을 가졌는데 어째 바로  물었는가? 성경에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다 기록할라 하면 기록한 책을 온  세상에 둘라고 해도 모자란다 이랬어. 온 세상에 둘라고 해도 모자란다.

이러니까, 그렇게 많은 양을 육십육 권이라는 이 신구약 성경 한 권에다가 다  이렇게 간추려 가지고 이와같이 기록을 했기 때문에 간추리는 중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설명한 것은 기록되지 안했고 요만큼 만 기록해도 양심을 썼고, 그  사람이 참 알라고 양심을 쓰고 또 예수님의 대속과 성령의 은혜를 입으면  넉넉히, 그 속에는 기록하지 안해도 다 알 수 있다 그 속에는 연결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 것을 기록하지 안하고 그렇게 축소해서  기록한 것이라 그렇게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는 추론을 할 수가 있는 데가 많이 있습니다. 또 추측을  할 수가 있는 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꼭 명문되어 있지 않는 것은  다 부인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문서 계시로 명문되어 있는 것은 윤곽으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고 또  비유컨대 울타리와 같습니다. 울타리와 같아서, 신구약 성경 말씀에 금하는 거  하라는 거 이거는 그저 하나의 윤곽적이요 또 울타리라 '이 밖에 나가면 안  된다. 이 말씀 떠나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해 놓고 울타리만 해 놓으면 그 속에  가운데야 만일 만 평을 울타리를 떡 해 놨다고 하면 만 평 속에는 이쪽에 동도  있고 서도 있고 남도 있고 북도 있고 모두 다 있을 것 아닙니까? 중앙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 울타리만 해 놓고 그 울타리 속에 있는 그 내부가 요거는  뭐 동인지, 서인지. 남인지. 북인지. 가운데인지, 중앙에서 몇 킬로 떨어져 있는  데인지, 중앙에서 백 킬로 떨어진 데인지 그거는 어찌 알겠느냐? 그 속에 그거는  성경 안에 있는 내재적 영감이 다 그 세밀한 걸 가르치고 있다, 그것을 가리켜서  내재적 영감이라, 성경 안에 있는 영감, 또 그것을 가리켜 다른 말로 말하면  은밀 계시, 하나님이 열어 보이시기는 보이시는데 성신의 감화를 받지 안한  사람은 볼 수 없는 은밀한 계시라. 은밀 계시.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도 문서 계시가 있고, 문서 계시가 있고 또  은밀 계시가 있고 은밀 계시가 있는데 이 은밀 계시는 그 속에 뭐이 들어  있느냐? 둘이 들어 있습니다. 은밀 계시 속에 둘이 들은 것은 뭐이냐 하면,  하나는 하나님의 영감 계시이고, 성신의 감화가 와 가지고 '이렇다 이렇다'  세밀하게 성경에 나타나지 안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고, 또  하나는 뭐이냐 하면 섭리 계시라 하나님이 역사해 나가시는 그 역사를 보니까,  그때는 몰랐지만 역사하시는 그 역사가 지나가고 보니까 '아 과연 그랬구나'  나는 앞으로 두고는 몰랐고 현재도 몰랐는데 그 일이 지나가고 나니까. 하나님이  역사해서 지나가고 나니까 벌써 과거가 됐으니까 알 것 아닙니까? 지나가고  나니까 '아. 하나님이 그렇게 그렇게 섭리하셨다' 그렇게 알 수 있는 것을  가리켜서 섭리 계시라 이렇게 말합니다. 문서 계시가 있고, 문서 계시는  울타리요. 문서 계시는 그거는 참 그저 윤곽적으로 돼 가지고 있고, 윤곽적으로,  '그 범위를 넘어 가서는 안 된다' 하는 이 범위만 잡아 놓은 것이고. 그 속에  세밀한 것을 말씀해 놓은 것은 영감 계시라, 영감 계시인데. 성신의 감화를  받으면 그 속에 세밀한 것이 들어 있다 하는 것입니다.

 은밀 계시는 영감 계시와 하나님의 섭리하는 계시, 그러기 때문에 우리 가  신구약 성경 말씀을 보고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깨닫지 못하는 것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게 있을 때에는 그때에 자기가 양심을 써서 기도를 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그 일이 있고 옳고 바르게 가르쳐 주는 게 있다 그  말이오. 그래서 '너희들이 사람에게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은 너희에게 기름  부음이 너희에게 옳고 바르게 가르쳐 주시나니 그대로 행하라 이렇게 말했다  말이오. 옳게 바르게 가르쳐 주는 게 누구냐 하면 성령님이라 그 말이오.

 그런데 그렇게 기도하고 또 모르면, '내가 이래야 될까 저래야 될까 모르겠네.'  이러니까. 자기가 영감 계시를 받을라고 애를 쓰고, 또 일면으로는 '하나님이  어떻게 섭리하시는가 보자. 하나님이 어떻게 섭리하시는가 보자' 이래서 자꾸  현실이 자기에게 닥쳐올 때에 그 현실에서 하나님 말씀을 어기지만 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현실에 자기 아는 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이와같이 행하고  보면 하나님께서 자꾸 현실을, 이 현실을 줘서 너는 그 현실에서 이렇게 행하고  또 하나님이 이 현실 줘서 또 그 현실에서 행하고 나는 현실에서 문서 계시대로  행하기만 이래 행해 나가면 나중에 보면 하나님이 현실 준 그대로 맞춰 나가다  보니까 나는 여기 있었는데 저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현실을 만들어 주시는 걸 가지고 나를 이리도 끌고 가고 저리도  끌고 가더라 그 말이오. 그거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돼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배우지 안하고, 듣지 안하고, 알라고 애를 쓰지 안하고,  행하지 안하기 때문에 암만 말해야 이 말이 들리지 안해 행하면 다 돼. 행하면  그만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해서 알 수 있는데 행하지 안한 사람 말만 가지고  배우는 사람은 그는 암만 몇십 년을 가르쳐 봐야 모릅니다. 그 사람은 항상  가르칠라면 항상 일학년이라.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은  그만 뭐 말하나 안 하나 음은 진리, 옳은 진리 는 가르친 대로 그 사람이  실행하면 은밀한 계시도 다 알고 영감 계시도 알고 그 속에 알맹이를 다 알 수  있습니다. 행하지 않는 자는 항상 말뿐인 자는 모르는 거라.

 여기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그러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인자가 줄 것이라 인자가 준다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거 한 마디 속에도 많이 들었는데, 이래 놓으니까 껍데기만  들으니 도무지 참 가르치기도 힘들고 배우기도 힘든다 그 말이오.

 인자가 너희에게 준다, 인자라 말은 사람의 아들이라 그 말이오. 인자라 말은  예수님이 당신을 가리켜서 인자라 이렇게 말했는데 왜 당신을 인자라 그 했느냐?  인자라 말이 구약에는 기록되기를 인자라고 기록된 것은 인간 중에 제일 무지  무능한 아주 못난 사람. 인간 중에 제일 무지 무능한 사람을 표시해서 인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인자라. 이랬는데 여기 신약 성경에 와 가지고는 인자는  예수님만을 인자라고 했지 인자라 말을 다른 데는 쓰지를 안했습니다. 그러면,  구약과 신약을 다 합해 가지고 인자라는 뜻을 생각하면 예수님 당신을 인자라고  말한 것은 예수님이 인간으로서는 제일 천해지고 제일 무지 무능자가 되고 제일  약해 졌다 그 말이오. 약해진 자가 됐다. 예수님을 전능자인데, 신성은  전능자인데 왜 하나도 모르는 하나도 모르는 자가 됐느냐? 하나도 모르는 자  아주 인간 중에 무식자로 서는 예수님이 제일 무식자 됐고 또 무능자로서는 제일  무능자 됐고 이랬습니다. 무능자 됐고 무식자 됐습니다. 아 신성이면  하나님이신데, 신인 양성 일위인데 무식자가 되고 무능자가 됐습니다.

 왜 무식자가 됐느냐?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은 삼위 일 중에 제 이위 성자가  예수님의 신성이신데 예수님의 신성은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이 세 위로  나눠져서, 세 위로 나눠진 것은 세 직책으로 역사하는 위(位)에는 책임이 있지  않습니까? (아는 것이 천리 만리 먼데 천리 만리 멀리 있는데 이거 귀넘어  들으니까 모른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알 수가 없어 이거 그래 들으니까.)  왜, 예수님이 왜 무식하요 무식하기를? 예수님이 인간 중에 제일 무식 한  사람이 됐다, 와 무식하요? 아는 사람 손 들어 봐. 왜 무식해? 자 대답해. 왜  제일 무식해? 대답해. 저 손 든 사람 대답해. 뭐라 하노? 전달해 봐. 전달해 봐,  전달. 거기서 들으면 그 옆에는 들리지 안해? 자꾸 전달해, 이까지는. 내가 알아  듣도록 좀 전달해 보라고. 왜 예수님이 왜 무식하냐 하는 것을 물을 때에 바른  대답했으면 여러분들 다 선생님이기 때문에 그 발 아래 가 절을 하라 그 말이오.

내가 그걸 내가 지금 알라고, 바른 말, 바른 대답인가 싶어서 지금 자꾸  전달하라 하는 거라. 전달 해. 뭐라고 대답해? 그 옆에서 들어 봐 틀렸는가  맞았는가. 그 옆의 사람도 못 들었어? 정신 차려! 왜 못 들어 못 듣기를, 옆에  사람한테도! 그런 귀머거리가 뭐 하려고 새벽 잠 안 자고 여기 왔소, 오기를!  와야 소용없어! 뭐 제가 무슨 대학이나 졸업하면, 대학원이나 박사나 하면 뭐  이거 다 그래 해. 박사면 뭐이야! 몰라! 모르면 지옥 가! 지옥은 뭐이 가는데.

택자는 지옥 안 가는가? 택한 자도 지옥 가! 뭐이 가? 심신의 기능은 다 지옥  가. 영만 하늘나라 가지.

 뭐라고 말해 거기에? 왜 예수님이 인간 중에 제일 무식하고 무능자가 왜 됐어?  왜 무능자라? 뭐라고 대답했지? 예? 뭐라 해? 모르기 때문에? 예수님이 모르기  때문에? 모르기 때문에 알라고 그래서 예수님이 제일 무지 무능자가 됐구먼?  틀렸어. 답이 틀렸어. 또? 오십 점. '우리를 위해 다 내 놨기 때문에 무지  무능자가 됐다' 오십 점. 또? 아직까지 백점 안 나왔어. 이렇츰 배운 걸 이렇게  모르니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도에서 거리가 멀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지금 믿는 거 같지만 앞으로 예수 믿으면 모두 죽인다 하면 '아 죽어도 예수  믿겠다' 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겠는가? 몰라, 여기 지금. 장년반에는 없다고 봐.

다 죽었어! 다 죽었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이! 산 게 아니라 죽었다 그거요!  주일학교 학생들 가운데는 산 사람이 많아. 그 학생들 가르쳐 놓고 물으면 지금  다 알거라 그 말이오.

 예수님께서 무지 무능자가 되신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에게 피동돼, 하나님이  '가' 하면 가인 줄 알고 '나' 하면 나인 줄 알고,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으로만 자기의 지혜와 지식을 삼고 다른 잡것이 없어야  되는데 에덴 동산에서 뱀이 갖다 주는 그 지식을 아담 해와가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이 아닌 걸 받았다 그 말이오. 하나님의 지식 아닌 그것을 받아  가지고 그 지식으로 죽었어. 하나님의 지식 아닌 지식을 받으니까, 선악과는  천상 천하에 인간에게 해독이 제일 독한 것이 선악과인데 그 선악과를 마귀  지식을 받아 가지고 보니까 얼마나 좋았는지 하나님도 배반하고 남편도 잊어  버리고, 얼마나 좋았던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럽고 지혜로울 만하고  이렇게, 그렇게 좋게 보였다 말이오. 마귀의 지식은 인간을 획 뒤비트려서  정반대로 보이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에 있는 지식은 전부 인간 지식이기  때문에 뱀의 지식인고로 이 지식은 전부 음은 데서 다, 삐뚤어진 것을 다.

삐뚤어지게 알도록 한 것이 뱀의 지식이기 때문에 뱀의 지식은 전부 인간을 표준  해 가지고 해 놓은 지식인데 인간을 표준 한 지식은 다 전멸이 되기 때문에  땅위의 지식이 다 모조리 다, 그 지식을 인정하는 거 행동한 거 모조리 유황불  구렁텅이에 다 타 버릴 거라 그 말이오. 하나님의 지식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지식대로 한 것만 영생이 된다 그거요,   이런데 우리 사람이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고 하나님의 지식만 받고 하나님의  능력만 받아 가지고 이렇게 살았으면 영생을 했을 터인데 인간이 뱀의 지식과  뱀의 힘, 또 제 힘 가지고 뭐 할라 하는, 뱀의 힘 제 힘 이거 가지고 이래 할라  했기 때문에, 인간이 왜 죽었느냐? 하나님의 지능으로, 지혜와 능력으로 하지  안하고 피조물의 지능, 피조물 지능. 첫째는 뱀이 피조물, 뱀의 지능. 그  다음에는 자기 지능. 이렇게 자기 지능으로 함으로써 인간이 멸망을 받은 이  멸망에서 구출을 하실라고 하니까 이 멸망에 피조물의 지능으로 멸망, 하나님의  지능으로 살아야 될 것이 피조물의 지능으로 삶으로 멸망을 받았으니까 피조물의  지능으로 멸망받은 이 사람을 대속할라 하면 무슨 지능으로 살아야 돼? 예? 무슨  지능으로 살아야 돼요? 알아 들려집니까? 이러니 참 답답하니,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배우는 것을,   나는 그거 모르겠어. 그래서 '이거 뭐 한다고 내가 장년반에는 가르치고 있나?  이거 나도 이거 무슨 돈 모으는 사람 아닌가? 왜 이런 망령된 짓을 할까' 그런  생각이 있어요. 왜? 장년반은 가르쳐야 몰라요. 주일학교 학생들은 잘 아는데.

이래도 장년반이 없으면 교회 유지도 안 되지 또 예배당도 짓지도 못하지 이라면  주일학생 그것만 모여 가지고는 이거, 이거 뭐 할 수 없으니까 내가  주일학생들을 기르기 위해서 장년반들을 이거 출물군으로, 비용이나 내는  출물군으로 출물군 모집하느라고 이거 장년반 위해서 설교를 하나. 그렇지  않으면 이 장년반을 구원하기 위해서 설교를 하나 이렇게 생각할 때에  알송알송하다 그 말이오. 알송달송해. 왜? 장년반에는 믿는 사람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 말이오! 이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지고 가나안에 간 사람은 애굽에서 나온 사람  중에는 두 사람밖에 없습니다. 여호수와 갈렙 두 사람밖에 없어 나머지기는  광야에서 다 죽어 버렸어. 안 믿기 때문에 다 죽어 버렸어 이제 그랬는데  애굽에서 나온 그 사람들, 그 사람들이 없으면 광야에 자손이 못 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애굽에서 나온 그 장년반들은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는  그 후손들의 이용물이고, 후손들의 이용물이고, 후손들에게 비용이나 당한 그  인간들이지 제 구원은 이루지를 못했다 그 말이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장년반은 이거는 유치반들을 구원 얻게 하는 이거 이용물들이지 여기에 무슨  구원이 있겠느냐?' 가르쳐 보면 기가 막힌다 그 말이오. 왜 그렇게 어린  아이들은 깨닫는데 왜 못 깨달을까? 못 깨닫는 이유는 자기 주관이라는 그놈이  있어서 지금 못 깨닫는다 그 말이오. 자기 주관은 만물보다 거짓된 건데 그것을  부인해야 깨달아지지 부인하지 안하고 깨달아집니까? 그런데도 예수 믿으면서  자기 주관에 이해가 되면 믿고 이해 안 되면 안 믿는다 하니까 그 사람이 언제  예수를 믿겠느냐 그 말이오.

 그런 거는 대번에 이해가, 그거는 쉬운 건데, 왜 예수님이 인간 중에 제일 무지  무능자가 됐느냐 하면 인간들이 하나님의 지능 외의 것을 취함으로 죽은 인간을  대신해신 하나님의 노를 풀고 살릴라고 하니까 이제는 인간이 하나님의 지능으로  살지 못한 것을 당신이 하나님의 지능으로 살아서 대속을 해야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자이지만 일단 우리를 대신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지능으로 살지 못한 것을 예수님이 대속하실라고 하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지능으로 살지 안한 거 살지 못한 거 이것을 예수님이  대신 하셔서 예수님이 털끝만한 것도 당신의 지능으로 살지 안하고 순전히  하나님의 지능을 가지고 사는 이 일을 해서 우리를 대속하셨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인간 중에 제일 무지 무능, 자기의 지능이라고는 털끝만한  것도 없는 무지 무능자가 된 것은 왜 무지 무능자가 됐습니까? 대답해 보십시오.

대답해 봐. ○○○씨 대답해 봐. ○○○집사님 대답해 봐. 예? 뭐? 우리가  하나님의 지능에 피동으로 살아야 될 터인데, 왜 죽었느냐? 하나님의 지능에  피동으로 살지 안하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 다른 지능에게 피동됨으로써 우리가  범죄 해 가지고 죽었다 말이오.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할 때에 하나님의 지능에  피동되면 안 먹으면 되는 거고, 먹어서 안 될 줄 알고 안 먹으면 되는 것인데  이제 마귀의 그 지능에 피동돼 가지고 먹으면 더 좋아진다. 이래 가지고 먹어  가지고 멸망당했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지능에만 피동되지 안하고 다른 피조물의 지능에  피동됨으로 멸망을 받았기 때문에 피조물의 지능으로 멸망 받은 그자를 대신해서  구원하려고 하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지능으로만 살지 못한 것까지 예수님이 다,  다 대신해 가지고 똘똘 뭉쳐 가지고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지능으로만 사는 자가  되어져야만 우리를 대속한 것이 되어지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대속이 안 될 거  아니겠느냐 그 말이오. 이해되는 사람 손들어 봐. 이해가 정말 됩니까? 이해가  되면 됐어,   이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내나 하나님의 지능이나 예수님의 신의 지능이나 같은  지능이지만 우리를, 하나님의 지능을 버리고 피조물의 지능으로 산 우리를  대속하려고 했기 때문에 전지전능의 신성이지마는 전지전능을 우리 대신해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도 쓰지 안하고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돼 가지고 우리를 대속하셨다 그 말이오

 그래서 여기에 있는 말씀, '썩는 양식을 위하여서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그러면, 영생하는 양식 썩는 양식은 무엇이며 영생하는  양식은 무엇입니까? 요다음에 말을 연결시키면 연결시키면 예수님께서 이 썩는  양식을 어떻게 해석을 했으며 또 영생하는 양식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의  해석은 어떻게 했는지, 썩는 양식과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 이 양식에 대해서  해석을 해 놨습니까? 여기 성경에 안 해놨습니까? 성경에 해 놨습니까? 안 해  놨습니까? 해 놨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장로님, 어디 해 놨어?  성경 어디 해 놨어요? 되 나 안 되나 '성경에는 다 기록해 놨겠지' 이거 가지고  도매금으로 해 가지고 또 틀렸다 그 말이오. 안 해 놨어. 성경에 해석 안 해  놨어. 해석 안 해 놨다 말이오. 성경에 해석 안 해 놨어.

 안 해 놨는데, 안 해 놨는데, 성경에는 기록을 안 해 놨는데, 성경에는 그  해석이 기록되어 안 있는데, 그러면, 영생하는 양식과 또 썩는 양식 이 두  가지에 대해서 예수님이 해석을 하셨다, 분명히 해석을 똑똑히 하셨다 하는 것을  우리가 추측은 뭐로 합니까? 추측은 뭐로 합니까? 제자들이 묻는, 그 묻는 묻는  물음을 보니까 예수님이 해석한 것이 분명하다 말이 그. 맞습니까? 이해가  됩니까?  이렇게 말해도 모르면 성경은 절대 여러분들이 암만 봐도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보고 그대로, 자기가 아는 대로 실행하는 사람만 성경을 깨닫게  되지 실행 안 하는 사람은 깨닫지 못합니다. 저도. 성경 남한테 배우지 안했어.

나 성경 배우지 안했습니다. ○○신학교 다녔지만 나 주석도 보지 안한  사람이오. ○○신학교 다녔지만 신학교 오기 전에 벌써 나하고 ○○신학교  교장하고는 벌써 거창 있을 때에 신앙적으로 교리적으로 대립이 돼 가지고 그  ○○신학교에 문제 많은 것이, '거창에 있는 백 집사라 하는 그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은 지금 이렇게 성경을 해석한다.' 이래 가지고 뭐 이단이란 말  그때 많이 올라왔습니다. 이단이란 말 많이 올라오고 그때 ○○○목사님이.

교장이 그때 거창에 한번 왔을 때에 이단이란 말 그런 말이 올라와서 내가  그분을 붙들고 한 서너 시간 이야기를 단 둘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할  때에 나중에 그분이다 이해를 했었습니다. 이랬었는데, 그러나 지금은 제가 그때  말한 대로 그대로 다 모두 믿고 있다 말이오. 다 그대로 믿고 있어.

 이런데 그러면, 나는 성경을 어디 깨달았는가? 내가 성경 사람에게 안  배웠어요. 안 배우고 나는 처음에 예수 믿을 때부터 성경 말씀 아는 대로  실천하기를 실행했어. 실천하기를 실행했어. 지금은 여기와 놓으니까 뭐 언제  내가 내 마음대로 실행할 수가 없어. 이 사람 만나니까 여기서 기도도 '나는  오늘 지금 산에 가서 기도할란다.' 이런데 어제 아침에도 기도 못 했어.

나가니까 우 나를 여럿 딱 바라고, 이래 나가면 그만 기도하러 갈라는데 딱  붙들어 가지고 이 말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말이 이 말 하고 저 말하고 이러다  보니까 나중에 시간 다 지나가 버리고 기도 못 했다 말이오.

 그러나 처음에 내가 나 혼자 예수를 믿을 때에는 예수 믿는 사흘 만에 '아  이거는 틀렸다' 하는 것을 내가 성경보고 깨닫고 술도가 치워 버리고 누룩  도가도 치워 버리고, '아, 이거는 또 불의한 재물이기 때문에 다 없애야 된다.'  그 재물 많이 모아 놓은 거, 술도가 해서 벌어 놓은 재물 한 푼도 없이 다 없애  버렸습니다. 없애고, 담배는 당일 팔아 버렸고, 담배는 그때 비종이 제일 비싼  담배인데 비종을 하루 한 갑씩 피웠는데 그만 당일 끊어 버렸고. 술은 사흘 만에  끊어 버렸고. 그라고 난 다음에 믿기로 시작한 그날부터, 그날 새벽부터 새벽  기도 시작했습니다. 뭐 새벽 기도 갈 데가 있습니까? 그 조그마한 동산이 있는데  그 동산에 가족들 전부 아이들까지 다 깨워서 다 데리고 가 가지고 그 산에서,  산에서 기도하고 그렇게 하루아침도 빠지지 안하고 그렇게 했었습니다. 병들기  전에는 빠지지 안했고 병도 별로이 든 일 없었고 빠진 일이 없었는데. 부산 와  가지고는 빠진 거. 암만해도 내가 새벽 기도 이거. 혹 어떨 때는 후배들을 좀  시켜 보기 위해서 빠지는 것도 있고 어떨 때는 '내가 새벽 기도 오늘 나갔다가는  앞으로 고장 나 가지고 일을 못하게 되겠다.' 그래서 그렇게 역부러 계획적으로  빠지지 게을해서 빠진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말이오, 내가 알기에.

 그래 말씀을 보고 아는 대로 실행하는 사람. 그 실행하는 사람은 아무리 둔해도  잘 깨닫습니다. 실행하지 안하고 책상에 앉아서 말씀만 들어 가지고 또 듣고 또  듣고 들어 가지고 알라 하는 그자는 허영 허욕자이기 때문에 가르쳐 주지를  않는다 그 말이오. 여러분들은 지금 성경을 가르쳐야 지금 못 알아들어요.

보니까 심령이 어두워서 암만 가르쳐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

 예수님이 무지 무능 인간 중에 무지 무능 인자라 하는 해석이 인자라 하는 것은  인간 중에 제일 무지 무능한 자가 당신이라고 이렇게 해석을 했으니 왜 무지  무능자가 됐는가? 이는 우리가 다른 모든 지능에 피동된 그 값으로 죽었기  때문에. 그로써 하나님을 노엽게 했기 때문에 그 노를 풀고 거기서 우리를  대신해서 구원하는 데에는 우리 대신해서 하나님의 지능에만 피동되는 자가 돼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능에 피동되는 자가 돼야 되는데 당신 혼자 모가치로  피동되는 자 될라 하면 쉽지만 두 사람의 모가치로 피동되는 자 될라 하니까  피동되기가 더 힘들고 천 명을 대신해서 피동되는 자 할라 하니까 피동되기가 더  어렵고, 이렇게 예수님 은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기 위해서  당신은 하나님의 전지의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당신의 지능을 쓰지 안한 것은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지능에 피동되는 자가 되어서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피동자가 되기 위해서 당신의 지능이 틀려 그런 게 아니라, 틀린 게 아니라  맞지마는서도 우리를 대신 피동되는 자 되기 위해 가지고 예수님은 인간 중에  아무것도 못 한 없는 무지 무능자가 돼서 인자가 됐다 하는 그것을 이렇게  말해도 그걸 이해 못 하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 이 말한 예수님께서 인자라 하는 것은 인간 중에 제일 천한 인간. 그  이상이 없는 천한 인간도 조그매 돼, 천한 인간도 좀 있어요. 천한 인간도 좀  있는데 제일 천한 인간보다 더 천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무지 무능자 제일 천한  자. 죄인 중에, 옳은 것이 털끝만치도 없는 자. 그렇게, 죄인 중에 죄인 완전히.

순전히 죄인이요 무지 무능자가 된 것은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된 이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뭐 완전자이신데 무슨 죄가 있었습니까? 죄가  없었지만 우리를 대신 했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는 옳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당신이 주관으로 아시고, 우리를 대신해서는 옳은 것이 하나도 없고 완전히  죄뿐이고 옳은 거는 털끝만치도 없다고 이렇게 당신이 인정하시고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서 이래 나타나야 대신이 되지 털끝만치라도 의로운 게 있다고 하면  그것이 들어서 우리를 대속하지 못하고 그만치는 대속이 안 된다 그 말이오.

알아듣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완전히 당신을 비웠다 그거요. 이거  이해가 안 되면 탈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 서부교인들은 행하지 않기 때문에 이거 말씀을 못  알아들어요. 이래서 나는 주일학교가 아니면 소망이 없어요. 내가 이래서 그만  주일학교를 내가 할까도 싶어 이제 주일학교, 다른 사람을 장년반을 맡겨 놓고  내가 주일학교 할라 하면 주일학교 이거는 돈도 없지, 이거 이거는 힘이 없고  장년반들이 뒷받침을 해줘야 이거 되는 것인데 내가 장년반을 다른 사람 맡겨  놓고 주일학교 이래하는 날이면 장년반 맡은 그게 마귀 놀음해 가지고 이것을  딴데로 뒤비트려서 주일학교에 배경이 안 돼 줄 거라. 주일학교에 배경으로,  주일학교 후원자가 되어 주지를 안 할 거라. 이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도  못한다 그거요.

 이래서 어쩌든지 참 나와같이 깨닫고 이 좀 그렇게 될 사람이 있으면 정말로 내  소원은 장년반 이거는 좀 맡겨 놓고 나는 주일학교에 대해서 좀 지금 이거 좀  가르쳐 줘 보면 그래 싶어요. 왜? 거기에 소망이 있어. 소망이 있는 것이  중간반에 소망이 좀 있고 주일학교에 소망이 있고 이렇지 장년반에게는 참말로  소망이 눈꼽째기만치나 있는가 몰라도, 없어요. 전부 말뿐이지 실행이 하나도  없으니까, 이러니까. '공산주의 오면 여기서 뭐 생명 내놓고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장년반에는 별로이 없을 것이라. 중간반에 장년반보다 많을  것이고. 주일학교는 많을 것이라' 하는 것을 나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세상 그것은 다 헛된 것이오. 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에서와 같은 망령된 자가 많다 그 말은. 죽 한 그릇 그 거 먹어 봤자  한 끼 밖에 더 먹겠습니까? 한 끼에 지내지 못한. 이 세상은 영원에 대해서는 한  끼에 지내지 못하는 거. 세상 거 이거 탐해 가지고 영생을 파는 자들이 많다,  그자를 가리켜서 성경에서는 망령된 자라 그렇게 말씀했어. 망령된 자라.

이러니까, 세상 그까짓 거 보고 암만 탐해 봤자 소용이 없소 암만 탐해 봤자.

 내가 어제 아침에도. 지금 법학 박사를 따려고 뭐 요새 지금 논문을 내 놓고  자꾸 서울 가야 된다고 이러기 때문에 가라고 이래서. 참 중간반 이 부 부장이  지금 학위 논문을 내놓고. '타려면 옆에 그 위원들이 자꾸 물을 때에 답을 해  주고 해야 되니 자주 가야 되니까 중간반 이부의 부장을 아마 얼마 동안 못  하겠습니다.' 그라고. 이제 여기에 학위가 되면 또 미국 가서 교환 교수로 가  가지고 얼마 있다가 오려고 이러는데, 그저 그동안 뉘를 맡겨 달라 하는데 뉘를  좀 맡기십시오. ○○○조사님 내가 말했어. '암만 말해야 그거는 팥죽 한  그릇이다. 그까짓 거는 다 없어질 것이요 다 가치 없는 것이요 하룻밤 나그네의  다 헛일 생활하는 것이고. 잘 이용하면 좋지만 이용하지 않으면 음행의  포도주되고 하는 것이니까 어쩌든지 빨리 갔다 오고, 갔다 오거들랑 다시 부장  노릇을 일등으로 하도록 그 일에 전력을 기울이라' 내가 이렇게 말했어. 그래  하겠다고.

 여러분들이 귀하다, 귀하다 이게 필요하다 필요하다고 하는 탐하는 거, 날마다  귀하다, 귀하다 귀중하게 평가해 가지고 탐하고 사는 생활은 다 마귀에게 꼬여  가지고 어리석은 생활이오.

 여기에, 썩을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아라 하는 것을 그 문답한 것을 보면  짐작할 수가 있고 또 다른 성경을 보면 해석을 할 수가 있다 말이오.

 썩는 양식이 뭐입니까? 썩는 양식은 뭐이 썩는 양식인가? 썩는 양식은 그것은  신구약 성경 외에 다른 것을 따라서 사는 것이 다 썩는 양식입니다. 신구약  성경이 시키는 대로 하지 안하고 다른 것이 시키는 것, 뭐 왕이 시켰든지 누가  시켰든지 신구약 성경이 시키시는 거 외에 딴것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그게  다 썩는 양식 위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뭐인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은 뭐입니까?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이 사실을 믿고 그대로 믿는 것이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해석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했는데,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일 하는 것은 믿는 것이, 우리가 믿기만 하면 돼. 믿기만 하면 돼.

공산주의 앞에서 네가 구출되는 데에는 네가 공산주의를 이길라고 애를 쓰지  마라. 애쓰지도 말고 믿기만 하면 된다 이랬어. 믿기만 하면 된다.

 믿기만 하면 된다는 이거,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이걸 또 바로 깨닫지  못하고 뭐 '믿사옵나이다' 하면 다 된다 하는 이것으로 또 초절적으로 그만 전부  이렇게 지나갔기 때문에 다 헛일이라 그 말이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타지  안한 것은 그는 제가 타지 안한 무슨, 무슨 술법을 가지고 있었던가? 타지  안하는 그런 육체를 가지고 있던가? 아무것도 없었어. 그들에게는 믿는 것  뿐이라 하나님은 불을 만드신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불을 뜨겁게 만드니까  뜨거워졌는데 하나님이 불을 차게도 만들 수가 있고. 불에 대해서 아무 열이  없도록 만들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은 불을 없앨 수도 있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  속에 넣어서 뭐 몇백 도 되는 그런 뜨거운 열도에 넣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또  타지 안하게도 할 수 있고 그분은 전능자라, 그분의 전능을 믿는 것 뿐이라.

 믿는 것이기 때문에, '아, 불에 넣어도 너희들이 그러면 거기서 구출하겠느냐?'  '아, 구출하고 안 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고, 주님의 뜻이고, 구출하든지 안  하든지 우리는 그 계명을 지켜야 되고, 또 당신이 여기 불 속에 넣어도 얼마든지  구출도 할 수가 있고 이렇지, 우리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주님에게 주권되어  있지 불에 주권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분이 불에 타지 안하게 할라면 안 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분은 불에 대해서 자유 자재하는 것을 우리가,  전능자인 것을 믿습니다.' 그거 믿기 만 했어. '불에 넣어도 불에 넣어도 너거가  믿겠느냐?' 불에 넣는다고 위협해 도 그분을 믿는 그 믿음이라는 그 믿음이 불이  와 가지고 어떻게 해도 그 위협에 하나도 요동되지 안하고, '불이 뜨거우니까  여기 타겠다' 하는 그런 의심이나 요동되지 안하고 그분은 이 불을 자유  자재하고 우리 생명을 자유 자재할 수 있고 우리 몸이 타고 안 타는 걸 자유  자재할 수 있는 전지전능 자라는 걸 믿는 그것이 불에 들어가도 그대로 믿으니까  그 불이 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믿는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전능이 역사 할 수가 있어 가지고 불에 타지를 안했다 그 말이오. 그러면, 불에  탔으면 어찌 되느냐? 불에 탔으면 하나님이 불에 타게 해서 그렇지. 불이 타게  해서 탄 게 아니고 하나님이 불에 타도록 당신의 뜻이 그래서 그런 것이지 불이  태운 것은 아니라 그 말이오. 이렇게 믿는 사람이 우리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너희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그것이 다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안다, 의식주를 다 하나님이 다 알고, 담당하고 계신다 하는 걸  믿는, 의식주는 주님이 담당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 그 믿음이 뭘 봐서 알 수  있느냐? 자기 앞에 이제 의식주는, 굶어 죽는다. 굶어 죽는다 하는 것이  자기에게 딱 닥쳐도. 굶어 죽는다 하는 게 닥쳐도, 굶어 죽는다는 그 형편과  현실이 닥친 그것으로 굶어 죽느냐? 굶어 죽고 밥 먹고 사는 거는 주님에게  달렸지 거기에 달리지 안했다는 걸 믿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어떻게 뭐 이거는  백 프로 이거는 절대 굶어 죽는다 하는 그 현실이라도 굶어 죽는다는 그것을  느끼지 안하고 하나님은. '내게 먹이고 굶겨 죽이는 거는 당신에게 달렸지 이  현실 형편에 이것이 굶어 죽게 된다 해 가지고 굶어 죽고 먹게 된다고 먹게 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이거는 얼마든지 밥 먹고 잘 먹을 수 있다 해도 당신이 안  먹여 주시면 나는 먹을 수가 없다는 이것을 믿는 그것이, 의식주는 당신이  주권으로 가지고 계신 다는 이것을 믿는 그 믿음이. 이 피조물이 어떻게 환경  주위를 만든다 해도 피조물로 인해서 그 믿음이 요동되지 안하는 그 믿음이라야  믿는 믿음이라 그 말이오. 어떤 현실에도 요동되지 안하는 그 믿음을 가지라 그  말이오. 그러면 모두 하는 일은 당신이 하십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쩌든지 여러분들이 실행해야 심령이 열리지, 실행을 해야 심령이 열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깨닫게 되지 실행을 안 하니까 깨달아지지를 안 해요.

이러니까, 한 번 들어도 모르지, 이런데 재독은 어째 듣는지 재독을 듣기를  싫어해. 여러분들은 한 말씀을 들어서 바로 깨달을라고 하면 실행을 자꾸해서  여러 수십 번 실행해야 비로소 깨달아질 것이고 재독 듣는 것은 뭐 수십 번  들어야 알까 말까 이런 것인데 재독도 듣지 안 해. 세상 일만 분주해 가지고  밤낮으로. 아침으로부터 저녁까지 항상 잠만 딱 깨면 세상 일, 잠자면 아무것도  모르고 자 버리는 거. 이러니까 세상만 채여 있지 하나님 말씀은 여러분들 속에  어떻게 담길 수가 있겠습니까? 전부 돌짝 밭이지. 또 길가지. 다 덤불 밑이지  이래 놓으니까 뭐 하나님 말씀이 어떻게 여러분들 속에 담기겠소. 담기기를?  실행해요. 실행 안 하면 못 듣습니다. 실행 안 하면 듣지를 못해. 이러니까,  실은 한 설교를 자꾸 해서 실행하도록 까지, 하나 실행하면 그 다음에 가르칠  것도 없어. 하나 실행하면 그 다음에 좔좔좔 그만 깨닫게 되는 것인데 실행 안  하는 자는 가르칠 수가 없어. 이래도 주일학생들은 실행을 해요. 보면, 참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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