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1985. 2. 3. 주일오전

 

본문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 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남음이 있는 그 표적을 본 그때입니다. 제자들은 그때에 마음은 크게 변화함을  받아 있었습니다. 물로 포도주 만드는 그런 이적도 보았고, 또 삼십 팔 년된  병자가 나은 것도 혈루증 앓은 병자가 나은 것도 많은 문둥이 소경들이 다 병이  나은 것을 보았고, 또 야이로의 딸의 죽은 가운데에서 살려 주심도 보았고, 또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상여에서 내려 놓고 살려 주신 것도 보았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제자들의 마음은 그때에 예수님의 행하신 온갖 기적과 또 권위있는 그  영감의 말씀과 모든 소망에서 아주 제자들의 마음과 몸은 변화를 받았던  것입니다.

 국가적으로는 로마 식민 정권 아래에서 심한 착취를 당하고 또 하나님이  저주하셔서 곤경을 당하고 있는 참 심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그런 때인데  예수님이 오셔서 온갖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것을 보고 이분이 우리 민족의  지도자가 되면 우리 나라는 다 문제가 해결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가졌고 또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상상도 못 할 만치 오천 명이 먹고  배부름을 보았고, 또 제자중 몇 사람은 심히 부인했으나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많은 고기가 잡혀진 것도 봤습니다.

 그러기에, 그 제자들은 지금은 그 마음에나 그 욕망에나 그들의 모든 전신의  신경에는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 예수님 한 분이면 내 개인에게나 우리  민족에게 만족하다. 이 한 분이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 한 분이면 모든 것  다 될수 있다 하는 이 마음으로 제자들에게는 가득 차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때에 모든 분위기가 그랬고, 또 예수님을 만나서 그들이 경험하고  참관한 일이 다 그들에게는 예수님 한 분 외에 다른 무엇을 구할 필요가 없고  예수님 한 분이면 전부가 될 수 있다 하는 것을 믿는 그 믿음으로 가득 차여  있는 제자들이였고, 그들이 할 일은 무슨 일을 해야 되는가? 할 일은 뭐 고기  잡는 것이고 무엇이고 다 잊어 버렸습니다. 그만 거게 있는 따라 다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뭐 사회적인 그런 모든 일도 있고 가정적인 일도 있고 또  경제적인 그런 관념도 있고 모든 문제들이 복잡하게 다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마는 그들은 예수님 한 분이면 다로 생각하는 사람들로 그만  화해졌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구하지를 안했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됐다, 그  일시적이나마 일시적이나마 그때는 예수님 외에 딴것을 구하는 것이 없는  사람들 됐고 또 그들이 할 일은 그저 이치에 맞고 안 맞는 그런 것은 다 문제가  없고 또 사는 일이나 죽는 일이나 그런 것도 문제가 없고 예수님이 하라는  말씀대로 하는 것은 다 생명이요 성공이라는 것을 그들은 확신했던 것입니다.

 이렇던 차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건너편으로 가라 내가 이  무리들이 지금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 나니까 그 무리들이 예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떠나지 않고 암만 헤어지라고 해도 헤어지지 안하는데 거게, 제자들  앞서 보내지 안하면 제자들과 그들과 떼어 놓을 수 없기 때문에 제자들은  재촉을 해서 바다 건너로 앞서 가라고 하시고 예수님은 거게 제자들을 보내는  동안에 있다가 예수님 혼자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때에 따라 다니는 모든  유대인들은 전부가 다 동감이였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다다 하는 생각  가지고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을 삼을려고 애를 쓰는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  무리들 가운데에서 지척거리지 아니하시고 따로 산으로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이렇게 여게서 다른 각도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는 온 천하에 두어도 둘 곳이 없을 만큼 기록할 것이  복잡하고 많은데도 간추려서 이렇게 신구약 이 육십 육 권에다가 기록 한  것이기 때문에 이 한 절수는 수천 권 속에서 기록할라면 수천 권이 될 수도  있는 거게서 뽑아서 한 절씩을 모아 놓은 것인 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게는 한 성구라도 한 획이라도 그렇게 허수럽게 지나 보낼  그런 성구는 아닙니다. 꼭 이 말씀은 한 말씀이 자기에게 참 너무 큰 소리  하니까 참소리는 참소리지마는서도 큰 소리를 하니까 원래 교회는 설교는  큰소리, 하는 설교라 이렇게 봐 가지고 스스로 속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또 알지도 못하고 들어서 순종이나 해야 될 터인데 반발 가지고서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그 반발 가지고 그렇게 하면 도리어 자기 구원에 손해가  됩니다. 그런 버릇은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게서 한 서너 가지만 말할려고 하는데, 첫째는 이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서 건너편으로 갈려고 할 때에 처음에는 아주 순조롭게 그 배가 잘  갔습니다. 그라다가 어째 그만 풍랑이 일기 시작해서 풍랑이 심하므로 조금도  배가 전진하지는 못하고 그 배에 있는 제자들은 심히 놀라기만 하고 고난만  당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계시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시는 것은 두 가지 방편으로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어떤 그 형식을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일이 있고 또  하나는 문서로 가르쳐 주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형식으로 가르쳐  주시는 것과 신구약 성경 문서에 기록해서 가르쳐 주시는 이것을 합해서 특별  계시라 그렇게 모든 학자들이 다 이렇게 공통으로 다 공동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특별 계시가 아니고 자연 계시를 가지고서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연 계시라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창조와 또  하나님의 온갖 이 섭리들과 또 인간의 수많은 심리 요소 그런 것으로서  우리에게 구원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자연 계시라 그렇게  말씀합니다. 지금 오늘 봉독한 이 말씀은 특별 계시인데 형식과 문서로 이렇게  복합적으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게서 첫째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제자들이 주님으로 저희들의  전부를 삼은 그 사람이 됐고 저희들이 할 일은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할  것 외에는 없다 하는 이 두가지를 가진 사람들이 됐습니다. 그저 뭐 돈도 필요  있다고 생각지 안했고 모든 과거에 주님 만나기 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필요한 것을 다 잊어 버렸습니다. 다 잊어 버리고 그저 주님 한 분이면  독립에도 해방에도 경제에도 문화에도 생활에도 질병에도 어디든지 주님 한  분이면 뭐 다 될수 있다. 그들이 가질 것은 주님 한 분만 모시면 다 된다 하는  이런 사람들이 그때에 되었던 것입니다.

 또, 그들은 분망한 모든 복잡한 그 생활 활동을 다 잊어 버리고 그저 주님이  하라는 데만 하면은 오병 이어도 가지고 오천 명도 먹고 남았고 하라는 대로  하면 상여 메고 나가던 딸도 살아났고, 또 죽은 자도 살아났고 병신도 온전케  되었고 주님 시키는 대로 하면 다 된다 밤새껏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마는서도  시키시는 대로 하니까 고기가 그물에 에울 것이 없을 만침 새여졌다. 그들은  얼마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완전히 일시적인 변화나마 변화가 완전히  됐습니다. 그래서. 가질 것은 주님 한 분만 모시면 된다 하는 것으로 전부가  되었고, 또 저들이 할 일은 그저 주님이 시키시는 대 로만 할 것뿐이다 이거  둘로서 그들은 완전히 변화를 받았었습니다.

 그럴 때에 그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갈라고 할 때에 그 배는 순조롭게 수  리 수십 리를 언덕에서 잘 갔습니다. 가다가 풍랑 만나 가지고 가지를  못했습니다. 고난만 당했습니다. 그랬는데, 왜 풍랑이 일어났으며 왜 배가  가지를 못했을까 하는 것을 그 본문에서 보면은 억지 해석을 할 것이 아니고  본문에 보면 다 나타나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시는 그 주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떠나서 배타고 건너갈라고 출발할 때는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이시다 모든 걸 창조 하셨다. 주님  한 분이면 뭐 세계도 대적도 어떤 사망도 질병도 상관없다 주님 한 분이면 다  될 수 있다 이렇게 믿었던 믿음을 완전히 저버렸다 하는 것이 보여집니다. 물  위로 걸어오시는 걸 보고 유령이라 하고 놀래서 그들이 참 그저 기절해서 그  본능의 비명 소리를 한 것을 보면 그들이 예수님은 완전히 잊어 버렸다는 것을  우리가 거게서 확정지울 수가 있습니다. 또, 그들이 그 풍랑 만났는데 주님이  배에 들어오시니까 그만 풍랑이 잔잔 해진 것을 또 그 본문에 보면 있습니다.

 그러면, 바람이 일어난 것이나 그들이 배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지 못하게  한 것이나 또 그들이 온갖 고통을 당한 것 뭐 별별 고통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지식 있는 대로 지식이 없는 사람은 물에 빠지면 죽는다 고 한 가지  고통을 당했을 것이고. 또 바다에 대한 지식이 많은 사람은 여게는 물이 수심이  얼마나 된다, 또 이런 풍랑에는 이는 헤어날 수가 없다. 자기네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전부 자기네들 다 불안케 고통스럽게만 만들었지 하나도 쓸모 있는  지식은 하나도 안 됐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을 거쳐서 주님이 명하신  구원의 완성에 도달하는 우리 구원의 완성에 도달하는 이 걸음은 다른 걸로서는  걸어가지 못한다, 세상 이런 저런 어떤 것 가지고도 '이 구원의 의의 길,  순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는 길 그 한 걸음 한 걸음 걸은 걸음이 다  완전한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불변의 것이요 영생의 것이기 때문에 그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영생이 되어지는 이 걸음은 다른 것으로서는 걸을 수가  없다. 다만 주님 한 분으로 제 전부가 될 수 있는 이 사실을 믿는 것과 주님이  명하시는 대로 따라서 움직이는 이거 하나만으로서 저희들의 할 일인 줄을 아는  이 두 가지로만 이 구원의 길은 걸어 갈 수 있고 또 이 걸음 걷는 자에게는  풍랑이 없다, 이 걸음 걷는 자에게는 방해할 자가 없다 하는 것을 보이는  것입니다. 요걸 우리가 꼭 잡읍시다.

 그랬는데, 왜 풍랑이 일었느냐? 그들이 배를 타니까 이제 주님 한 분에게 다  기울어졌고 저들의 지금 무장은 주님 시키시는 대로만 움직이겠다는 이것이  배를 보니까 배에게로 그 마음이 나누어져 갔고 또 노를 젓다 보니까 그리  나누어 갔고 또 배타고 바다를 건너가니까 옛날 고기 잡이하던 그 모든 세상에  어부살이한 그런 것들이 다 추억이 났고 별별 생각이 나서 이렇게 저렇게 해  가지고 고만 배타고 가는 그 배, 바다, 노젓는 것 과거에 어부, 과거 전부 그런  것들이 다 떠올라 추상돼 가지고 예수님으로 충만했던 그 심령에 세상 것이  차차 차차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또 그것을 생각 하나 재미가 있습니다. 맛이  있습니다.

 자기네들도 모르게 그만 생각하다 보니까 한 십 분도 지나갔고 한 시간도  지나갔고 지나갔고, 또 바람이 거슬리니까 그만 자꾸 옛날 노젓는 그런 기술만  내어 부리고 힘만 써서 어깼든지 그들이 여러분들이 돌아가서 생각해서 그거 다  말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주님 한 분으로 저들의 전부를 삼고 '주님 한 분이면  다 된다' 전부를 삼고 그저 할 일이라고 하면은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움직이는  거 그 외에는 할 일이 없다 요렇게 단정진 그 사람으로서 항해할 때에 갈릴리  바다는 순조롭게 가다가 그만 이렇게 현재에 보이는 것 과거 일 그런 걸로  가지고서 완전히 주님은 잊어 버려졌고 보이지 안했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그런 거는 까마득히 없어져 버렸고 저거 힘으로 저거 노력으로 저거  방편으로 또 땅에 것 그런 것만 자꾸 사모하고 연상하는 가운데에서 완전히  사람들은 바꾸어졌습니다. 바꾸어지니까 바꾸어지는데 따라서 풍랑은  일었습니다. 또 풍랑은 일고 배는 전 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주님이 다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많이 공부를 했습니다.

핑계 못 할 만치 공부를 했습니다. 우리 현실은 주님 만들어 주신 다는 이것도  여러분들이 듣고 나니까 써먹지는 안해도 쉽기는 쉽지마는 진정 알기는  어렵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주님이 단독 만드신다는 그것이 아직까지 세계 조직  신학의 교리에 똑똑히 나타나 있지를 않습니다.

 칼빈이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는 거기에서 하나 칼빈 학자들이 다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나 원 강령만 하나님이 주권했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칼빈주의  학자들 가운데에 대부분이고, 또 어떤 학자들은 구원에 대한 부분 만 하나님이  주권했지 일반은 주권하지 안했다. 오늘까지의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는  그 주권의 정의가 그렇게 돼 가지고 있지 우리 앞에 닥치는 크고 작은 이 모든  개별 개별의 일이 주님 주권의 독단의 개별 섭리로 된다는 이것을 주장하고  이렇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은 심히 귀합니다. 천에 하나 만의 하나만침  그만침 귀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현실을 주님이 만드셨다는 것을 우리가 믿습니다. 믿으니  우리 앞에 풍랑이 오든지 환난이 오든지 마찰이 오든지 어떤 그 현실에 내가  신앙 걸음을 걸어갈라 하는데 신앙 걸음을 걷지 못하고 믿지 못하겠고 믿은  행위를 하지를 못하겠고 양심 행위를 하지 못하겠고 주님의 대속의 공로를 입고  살라 해도 되어지지 안하고 여러 가지로 이 세상에서 방해하는 그 모든  어려움들이 있는 그 어려움은 다 주님이 만드신 어려움인데 그 어려움은 무엇  때문에 주님이 만드셨느냐? 다시 주님으로 충만하고 주님에게 피동되는  요것만으로만 움직이는 전부를 삼는 사람으로 다시 다시 영감으로 변화되라는  것을 재촉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 아침에도 기도할 때에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경험하고 또 모든 사람을 경험할 때에 '주님이여 인간은 연약하고 강퍅합니다.

이 모든 악령의 미혹을 받고 있는 이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의 이것을 제거해  주셔야 되겠는데 제거해 주시는 데에는 첫째로는 성신의 감화로 제거해 주시고  또 진리를 깨달음으로서의 제거해 주시고 또 급속히 불치의 징계로 하지 마시고  급속한 징계를 주셔서 그저 못 견뎌서 회개 안 하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징계를 주셔 가지고 회개를 하거들랑 즉시 고쳐 주시고, 이래서 주님이 영감만  가지고도 안 되고 진리만 가지고도 안 되고 주님의 징계가 또 거기에 하나 같이  부과되어야 되지 그리 안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실 때에 사랑하는  자는 몇 번이든지 징계한다 하시는 이 징계가 없는 자는 사사로운 자식이라고  말씀했는데 이 징계도 가담을 해서 해 주옵소서.' 하는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우리 서부 교회에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낙심한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 믿어 구원 얻을 유치반. 중간반. 장년반들을 이 세  가지 능력으로 역사해서 주님의 피공로의 사람들이 되도록 가속도로 이 일을  이루어서 주시옵소서, 이래야 되지 허송 세월 다하고 다 헛되이 보배를 다  소모하고 마니 주님이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그렇게 하는 중에 징계의 그  기도도 했습니다.

 제가 징계에 대한 그 기도는 내내 그것을 하지 안하고 빙빙 돌면서 그 징계를  말하다가는 너무 또 잔인한 것 같아서 성신의 감화로 이래 말하고 하다가 이제  이 징계의 기도를 한 것이 제가 얼마 됐습니다. 한 일 년 됐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라면서 생각해 볼 때에 누구도 누구도 보니까 그 사람에게 그 징계가 없으면  오늘까지 그 악령 사슬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을 터인데 그 징계로 그 사람이  거게서 벗어나게 됐다. 그 사람도 그 징계로 벗어나게 됐다 이렇게 보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징계로 이렇게 돌이켜 달라는 그런 기도도 이제는 안 할 수  없는 제목인 줄 알고 기도하게 됐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을 거쳐서 구원을 이루어 구원  완성에 도달할라고 할 때에 이 바람과 같은 모든 전쟁이나 환난 또 물결과 같은  모든 둘러쳐서 우리를 이런 저런 데에 침몰되게 이런 저런 데에 모든 빠지게  하는 이런 모든 어려움 이것은 주님이 이 일을 하시는데. 이것은 다만 이  제자들이 처음에 출발할 때와 같은 그런 사람이 되라고 하셨고 그로 인해서  제자들은 한 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그 사람으로 다 돌아가고 난 다음에 배는  갔습니다. 그때에 배는 아무리 해도 일보도 전진 못 했습니다. 전진 못 하고  이제는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과 주님과 이 둘로 가득 차고 난 다음에는  풍랑이 잔잔하고 나니까 뭐 노를 젓는지 말았는 지 고만 배는 언덕에 닿았던  것입니다. 그런고로, 요것을 우리가 기억합시다.

 그래서 어떤 성도는 그렇게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주님이여, 나를  이떻게 하시든지 어떻게 하시든지, 그만 주님 한 분에게 완전히 미치게 해  주옵소서. 주님 한 분에게 완전히 속해서 그만 세상 사람이 뭐라 하든지 주님  한 분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주님 한 분으로 내 전부 다 주님 한분으로  자기의 전부가 넉넉히 되고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주님 한 분만을 저희  것으로 삼고 움직인다는 것은 주님의 인도대로 움직이는 것 고거 외에는 자기  할 것이 없는 요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하는 그런 기도를 하는  사람들을 제가 봤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든지 금식 기도를 하든지 산에를 가든지 뭐 어떤, 그 집회는  벌로 가면 안 됩니다. 마귀 집회가 많습니다. 마귀 집회가 많아서 집회 가서  죽는 수가 많습니다. 성경에도 보면은 하나님이 지정한 장소에 가 가지고  십일조를 먹으면서 거게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마귀들이 하는 그런 집회가 많이 있으니까 벌로 가서는 안 되고  성경을 보고 자기가 기도하고 성경보고 이렇게 뭐 금식하고 또 사람 없는  한적한 저 산중에 가 가지고 사람 보지 안하고 그만 그렇게 한적 한데. 가  가지고서 자꾸 봐서 어짜든지 '나는 예수 한 분이면 나는 다다 예수 한 분  가지고서 모자랄 것 없다. 하는 요 사람과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외에는 아무것도 소용없다, 이것만이다.' 하는 요사람으로 우리가 완전히  변화'되는 요것을 우리가 평상 소원하고 어떤 방편을 쓰든지 이 사람이 돼야  되겠습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은 그렇게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주님이여 내게 어떤  채찍을 갈겨서라도 채찍을 갈겨서라도 주님 한 분으로 전부 삼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움직이는 요 사람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는 그것을 참 간곡한 기도하는  그런 청년을 내가 봤습니다. 지금 몇 해 됐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되면 다른  사람 볼 때에 그 예수 미치광이라고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어떤 일이라도 세상에 어떤 일이라도 고게 만 침착하고 고게만 빠지고 고게만  속하고 그래 가지고 되는 일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것도 예수님 한 분과 그분 명령 하나에 완전히  귀속되고서 그 사람이 되어져 버리면 완전히 그 사람이 되면 이것도 세상에서  미치광이들이 다 자기 하나의 주관에 치우치고 그거 하나만 다 가지고 거게만  귀속하고 몰두하기 때문에 미쳐서 그 사람은 사회성도 없고 이 모든 도덕성도  없고 가정성도 국가성도 없고 다 망한다. 이러니까 이와 같이 예수님에게  대해서와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서 이와 같이 되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  해서 우리가 그런 사람될까 염려하는 사람되기 쉽습니다. 그런 염려는 할 필요  없습니다.

 이 일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주님 한 분에게 우리가 기울여서 그분 한 분으로  전부를 삼는다는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니고 미련한 일이 아니고 어두운 일이  아니고 속는 일이 아닙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것이, 그분으로  전부를 삼는 것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 받은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또  지음 받은 것이 또 지음 받고 또 지음 받고 또 부강하고 또 완전해져서  완전하게 하나님 다음으로 완전한 자가 되어지는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 한 분으로서 전부를 삼고 그 분에게 복종하는  그것으로서 자기의 생애를 전부를 삼는 것이 어리석은 일 아닙니다. 이건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이거는 바로 그 창조주에게 연결 되아 가지고서  그분의 무한한 창조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의 무한한 창조 그분의 무한한  은혜를 받아서 무한한 은혜로, 무한한 창조로, 무한한 존재로, 무한한 구비로.

무한한 완전으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속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일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해보면  압니다. 가치가 있는 일인지 없는 일인지 이 일은 털끝만치라도 삐뚤어진 게  들었으면 이 일이 안 됩니다. 삐뚤어진 게 다 제거되고야 이것이 되어집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은 첫째 이 두 가지를 가지게 되면은 우리에게  역사하는 것을 가만히 보면 이 두 가지가 되면은 차차 차차 하나님의 말씀에도  정죄할 뿐 아니라 내 상식에도 정죄될 수 있는 모든 삐뚤어진 것 잘못된 것  더럽고 추접하고 또 모두 삐뚤어지고 사람들을 자타를 해치는 그런 것들은 다  이거는 자꾸 제거가 됩니다. 자꾸 제거되는 걸 봅니다. 그런게 자꾸 되어서  자기의 인격이 점점 온전하게 소생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정신이  바르게 되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의 심리가 바르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뭐 이렇게 되면은 과거에 시기. 질투. 미움. 원망. 불평하는 이 모든것이 다  사라지고 차차차 물러가지고 자체가 점점 온전해지고 깨끗해지는 것을 자기가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경영이나 소원이나 하는 것도 다 그는 참 자기가  보아도 찬송하고 칭찬할 만침 다 칭찬하고 기념하고 모든 사람 들이 본뜰 만한  그런 것으로서만 소욕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 자기가 모든 인간이나  사물을 대할 때도 자기의 비판이나 평가도 볼 때에 참 그 평가는 점점 완전한  게 아니로되 점점 완전해질라고 완전해질라고 하다 가서 또 새로 듣든지 보든지  깨달아서 불안한 게 있으면 완전한 것을 완전 하다고 찾아갔던 걸 이미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집어던지고 다시 새로 고쳐서 고쳐서 완전해질려는  그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이 사람이 되기 전에는 자기에게 옳은 것이 있다고 해도 옳은  것이 있으면 옳은 것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좋지마는서도 옳은 것이 있다  할지라도 자기에게 옳은 것이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그와 같이 옳은 것이  있으면 시기하고 질투하고 재미 없게 여겼습니다. 또. 자기에게 옳은 것이 있다  할지라도 그 옳은 것보다도 더 옳은 것이 있으면은 더 옳은 것이 있으면은  따라갈라고 하지 안하고 시기하고 질투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모든 과거의 서기관과 제사장들이 그들의 교훈이 세상 보다는  낫지마는서도 예수님의 교훈이 그보다 나으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교훈이 그  교훈 밑에 가고 그 교훈으로 말미암아 자기들의 교훈은 수정될 것이 있으니까  거게서 따라갈라고 하지 안했고 반발해서 예수님을 없애야 저희들이 최고의  지능자가 되겠다 하는 그 교훈자가 되겠고 선생이 되겠다는 거기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팔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자기의 전부를 삼을려고 하는 것, 또 예수님에게 복종하는  것으로 자기의 생애의 전부된다는 것이 외에 가치가 없고 이것만으로가 전부라  하는 요것을 벌써 자기가 깨닫고 보니 깨달아져 보니 점점 깨끗해지고 알고  보니 점점 깨끗해지고 소원하고 보니 점점 온전해지고 하는 것을 자기에게서  체험할 것입니다. 자기 안에 대내에서 체험하게 되고 또 자기가 접하는 모든  접선에서 자기가 체험하게 될 것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오늘 오전에 요것을 굳게 잡읍시다. 어떻게 뭐 산으로  가든지 들로 가든지 밥을 굶든지 뭐 직장도 문제고 모든 거 문제지마는서도  만일 비판해서 아, 직장보다 내가 이거 가지는 게 낫다 싶으면 직장 던져  버리고 어짜든지 그만 이 일을 시작하고, 왜? 시작하면 우주를 만든 그분을  내가 잡았는데 그까짓 게 뭐 한국이 뭐이며 세계가 뭐입니까? 이 지구 땅덩어리  그까짓 거 뭐입니까? 또 그리 안 되면 자기의 있는그 자리에서라도 예수님이  자기의 소유 중에 전부라, 자기의 필요 중에 전부라, 자기의 중요 중에 전부라.

그분이면 다라 하는 이 면을 궁구해 가지고 자꾸 이 면으로 힘을 써서 자기가  첫째로는 주님으로 자기의 그 필요의 중요의 전부라는 이 지식이 차차 차차  짙어지고 견고해지고 확고해져서 이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지고 움직임에도  그분따라 움직이는 거 외에는 천인 만 인이 움직여도 다 유황불 구렁텅이라.

 아무리 제가 복잡하게 세상에 어떤 인기를 끄는 그런 무엇을 했다 할지라도  주님으로 인해서 움직이는 그거 아닌 것은 다 불탈 것이라. 마지막에 결론은  내가 너 속였고 네가 나 속였다. 나는 너한테 속았다 하는 것뿐이지 없습니다.

주님의 인도 따라서 움직인 거 외에는 자타에게 유익 주는 일이 하나도 없고  달리 움직이는 것은 자타를 망치는 거 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 망치고 또  주님 외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만일 내가 밥이 필요 하다  해도 주님이 내게 없는 데 먹는 그 밥은 나를 죽이는 것 뿐이였지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이 있고 주님으로 인해야 모든 것이 필요하지 주님 없으면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신명기 28장을 가지고서 오래 동안 계속한 거와 같이  우리는 이 사람이 됩시다. 요걸 본문에서 깨달아야 됩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로 가는 것은 우리들이 세상 이라는 이 괴로운 바다를 풍랑 많은 이  세상을,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요한계시 16장에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다라  했습니다.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이 바다 같은 이 세상을 요한계시록에는  두번이나 말했습니다.  바다라고도 말하고 불이 섞인 유리바다라고도  말했습니다. 이 세상을 거쳐서 구원의 길을 걸 어가는 데에는 걸어가는 데에는  이 두 가지로만 무사히 걸어갈 수 있다. 그 외에는 걸어갈 수가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이 어디든지 평안을 누릴 수 있나? 사자 구덩이가 와도  평안했고 불미불이 와도 평안했고 천천 만만의 원수가 둘러싸도 다윗은  평안했습니다. 뭐 그들에게 그게 안 닥쳤습니까? 닥쳤지마는 닥쳤지마는  그들에게는 해하지 못했어. 사자 구덩이가 다니엘을 해했습니까? 홍해 바다가  그들을 해했습니까? 닥쳤지마는 그로 인해서 더 큰 수입 보고 존영 해지니까  그게 뭐 환난이라 할 것이 뭐 있습니까? 큰 축복이지.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단단히 가집시다. 어쨌든지 우리 자신이 변화 돼야  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 한 분만이 내게 필요하지 하나님 외에 딴것은  필요가 없다. 딴것은 필요가 없다. 세상에 모든 가족이나 모든 사회나 국가나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이 주님이 내 주님이 되셔야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되어야  가족도 필요하고 민족도 필요하고 사회도 필요하고 국가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하고 모든 것 필요하지 주님 내게 없어지면 그 모든 것은  나를 다 죽이고 망치는 것뿐이라.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주님 한 분으로서 내  전부를 삼아야 하는 요 것을 깨닫고 전부 삶는 이 노력을 합시다.

 이 제자들도 요렇게 변화되는 사람들이 변화된 사람들이 이 변화가 이게  변화인데 성신의 감화인데 성신의 감화된. 사람들이 성신의 감화 떠나 버리고  나니까 나중에 가서 내나 갈릴리 바다로 다시 고기 잡으러 가고 옛날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 체험 없습니까? 우리는 이런 것 저런 것 많은 모든 것 있지마는서도 성신의  감화가 왔을 때에 우리 마음은 평안합니다. 우리는 기쁩니다.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은 다 천국입니다. 그 화살을 가지고 창을 가지고 칼을 가지고 찌를라고  하는 그 원수의 그 모든 칼날도 모두가 다 평안이 요 즐거움입니다. 그렇게  맹수의 사자도 그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됐습니다. 그 불미에 뜨거운 맹렬한  그 불속에도 그들에게는 평안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하나 또 계시로 또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성신의 감화로 우리는 예수 한 분 외에 다른 것이 내게 필요 없다.

예수 한 분이 내게 오면 온 세상은 다 내게 필요하다. 온 세상은 내게 다  유익을 끼쳐 주는 게 된다. 예수 한 분 떠나면 그 모든 것은 나를 다 망치는  것이 된다. 성신의 감화 오니 주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 외에 할 일이 없고  주님 시키시는 대로 복종하는 이보다 더 큰 일도 없고 가치 있는 일도 없고  귀중한 일도 없고 자기 닥친 현실을 잘 처리 차는 일도 없고, 이래서  그리스도는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거룩이요 의요 너희의 지혜라 말했습니다.

너희들의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어떻게 하시든지 우리는 성신의 감화로 요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시작할 때의 그 제자들과 같은 고런 사람이 되도록 이 일을 우리는 노력해서  해야 되겠습니다. 제자들도 이거 단번에 된 것 아닙니다. 예수님 따라다니면서  이런 이적 봤고 저런 기사 봤고 다 봤어. 그때 벌써 야이로의 딸을 살린  후입니다. 야이로의 딸 살린 것을 보고 난 뒤요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고  난 뒤입니다. 삼십 팔 년된 병자도 살리고 난 뒤입니다. 오병 이어를 먹은  다음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주의 말씀 듣고 주님의 하시는 모든 이적을 봤고 지금도  주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을 우리가 궁구하고 명상해서 이 말씀을 통해서 성신의  감화가 오고 우리 서부 교회는 이번에 거창 집회 때에 이적이 나타난 것이 서부  교회 된 것이 백 육십 몇 건인가 되는데 백 육 십 몇 건인가 되는데. 이 오늘은  그 예수 믿어서 망할 교만은 자랑하고 교만은 자랑하고 나는 이런 게 있다고  자랑할 줄 알지 하나님의 능력이 제게 와 가지고 역사한 것은 그거 말하기를  부끄러워 한다 그 말이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보이고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다 증거하라  했습니다. 다 증거하라 했오. 이랬는데 그것만도 그럴 것이고 제가 당장 말씀  인도대로 순종해 보면 기적이 나타나는 것 이거야 하나님이 하셨다. 전부  하나님이 하셨다, 하셨다는 것을 암만 해도 옆에 듣는 사람은 거짓말이라 해.

그거 하나님이 하셨다. 이거 하나님이 하셨지. 내가 어찌 그 말 했을까? 아,  그때 그말 한 것이 참 하나님이 하셨네. 내가 언제 그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했는가? 그거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네. 내가 뭐 할라 고 그 일을 할라고 시작을  했을꼬? 참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어. 이렇게 사는 자는 자기의 행한 그 행동의  결과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의심할 수가 없이 하나님만이 자기를 인도해  하셨다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을 만치 됩니다.

 믿지 않는 자는 우연이라, 무엇이라 이래 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의 말씀 대로  할라고 애를 써서 따라서 한 자는 반드시 했으면 그 결과가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그 외에는 다른 방편이 없다. 해  놓고도 마귀는 그저 뭐 하나님 이런 일이 세상에 많이 있지 않느냐? 많이  있어도 내게는 그게 아니다. 하나님이 하셨다. 이러면 믿음으로 믿음에  나아가는 것이지마는서도 마귀라는 놈은 그렇지 않다고 마귀는 쉬지 일고,  마귀는 저짓말쟁이 아니요? 간교한 자 아니요? 거짓 말하고 간교한 것이 마귀  아닙니까? 이래 가지고 우리에게 그 마음을 가지지 못하도록 성신의 감화를  없애도록 이렇게 노력해서 그런 것 다 없애 버리기 때문에 받은 것 다 잊어  버렸고 들은 것 다 잊어 버렸고 이러니까 산 생활 하지 못하는 것이지.

 어짜든지 우리가 직장 생활을 하든지 뭐 자기가 가정부 노릇을 하든지 무얼  하든지 어쨌든지 예수님 한 분이 나의 전부다 이분 한 분이면 다다. 이분 한  분이면 다다. 돈은 이분 한 분이면 돈도 되고 돈도 그분이면 내가 곧 모든 금과  은도 당신의 것이라 했습니다. 돈도 그분이고 사람도 그 분이 만들었어. 그분이  만들었어. 독사같은 사람도 그분이 만들었어. 에서가 이십 년 동안이나  죽일라고 총칼을 갈다가 사백여 명 군인을 거느렸지마는서도 하나님이 일시에  휘떡 변해 버리니까 야곱을 목을 안고 운 것이 에서 아닙니까? 인간의 심리를  주권하시는 분이 주님이시니 당신이 하시면 다 돼.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하시든지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갈라고  그 출발할 때에 그때에 그 제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였던가? 제자들이 받고 있는  그 영감. 제자들이 주님에게 감화받고 있는 그 감화 주님의 감화. 성령 감화  영감, 고 감화의 사람이 되기 전에는 갈릴리 바다는 순조롭게 못 갑니다. 요  감화의 사람은 갈릴리 바다는 순조롭게 잘 갈 수가 있습니다.

 요렇기 위해서 우리는 단식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요 감화의 사람이 될라  할 때에 방해되는 것은 모조리 다 제거해서 정리해서 요 사람되도록 노력해서  빨리 빨리 요 사람이 되면 우리가 다 웃으며 살 것이요 기쁨으로 살것이요  평안으로 살 것이요 근심 걱정이 없어. 근심 걱정이 없어.

 요 두 가지 떠나고 저거 수단 방법으로 옛날 모든 과거의 기존 지식, 선입적  관념, 과거 추억 오만 방편 가지고 다해 봤자 그들에게 유익 준 게 뭐  있습니까? 자, 과거에 바다에 대한 지식이 그들에게 뭣 줬오? 과거에  뱃놀이하던 그 모든 기술이 그들에게 뭣 줬오? 그들의 노력이 뭣 줬오? 예수  없는 노력, 예수 잊어 버린 모든 사상, 예수 잊어 버린 모든 지식, 예수님과  상관없는 모든 궁구, 기술 다 그것은 고통뿐입니다. 고통.

 여러분들 세상에 부자면은 평안한 줄 압니까? 아니요 그 사람한 없이 고생  많이 합니다. '아, 저렇게 높은 지위 있으니까 평안하겠다' 아니요. 한없는  고생으로 자기를 찔렀습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오늘 오전에는 꼭 성신의 감화로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출발할 때의 그  제자들과 같은 고런 주의 감화의 사람 요 감화의 사람으로서 둘 외에는 할 게  없고, 둘 외에는 필요 없는 요 사람으로 변화가 되는 요 일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요 일 하기 전에는 이 구원의 길은 못 갑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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