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1985. 2. 6. 수야

 

본문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 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다음 주일 가르칠 공과입니다. 한 번 읽어봅니다.

본문은, 마태복음 14장 22절.

제목은 지극히 큰 능력 있는 신앙 생활.

요절은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14장 32절.

 서론에,  기독교는 참 믿는 자는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을 힘입어 어디서나 죄악을  이기고 영광된 생활을 할 수 있고 의심하는 자는 항상 천대받는 생활을 하게  된다. 믿음으로 바로 살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고 머리되고 꼬리되지  일고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쌀고 꾸어 주고 꾸지 않는다고 하섰다. 전쟁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칠 배나 이기게 된다. 권위 있는 방편은 아래와 같다.

 삼, 본론.

 주님 한 분은 자기의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될 수 있는 이 사실이 믿어 지는  자기가 되고 또 주님 시키는 대로만 하면 내세와 천국문에 들어갈 때까지 모든  생활은 다 형통이요, 승리요, 평강과 영광이 되는 이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이  되어 이 두 가지로만 사는 사람은 전능 생활을 하게 된다. 이는 위 두 가지  믿어지는 자기를 만드는 것이 기독자의 지극히 큰 능력 이다. 성경, 영감, 이적  이 세 가지를 계속 접하는 데에서 된다. 참고 절수는 22절로 24절.

 둘째 대지. 위 두 가지 곧 주님 한 분으로 전부 삼고 순종으로만 생활 삼는 이  두 가지를 세상 각양 분주로 잃고 이외에 필요한 것과 할 일로 바꿀 때에  환난과 낭패와 고난은 생겨진다. 이렇게 생겨진 심신과 사건의 고통이 완전  해결과 평안과 형통으로 회복되는 그 방법이 두 가지니 하나는 성경 말씀을  듣든지 읽든지 계속하고 영감받아 행하면 주님이 자기와 함께 계심이 확실히  보여진다. 주님이 금하는 각종 죄를 짓지 못하고 또 주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거역지 못하고 세상 아무 두려운 것이라도 주님이 곁에 계시니 두렵지 일는  자기가 되기까지 주님이 자기 곁에 같이 계심이 보여질 때에 저절로 모든 것은  다 형통이 된다. 이것도 행하여 보지 못한 자는 거짓말이라 할 것이나 이  방편으로 힘쓰는 자는 다 아멘이 되는 것이다.

 세째. 일 대지에 보배 두 가지 주님 한 분으로 전부, 명령대로만 하면 다  성공, 이 두 가지를 잃었던 베드로는 다시 자기의 전부 삼던 주님과 만사  형통의 명령을 다시 찾고 기쁨에 넘쳐 주님께 가까이 가고 싶은 소원과 어떤  어려운 명령이라도 주님께 가까이 가는 명령만 주시면 순종으로 가고 싶었다.

소원이 되어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할 때에 오라 하시니 물위로 걸어 주님께  갔다. 지금도 이와 같이 잃었던 두 가지를 찾아 주님께 가까이 가고 싶어 명령  여하를 상관 없이 복종으로 주님께 더 가고자 하는 그 소원의 생활에는 세상을  발 아래 밟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가 실패한 것은 주님 보던 눈을  바람을 보고 물위로 가고 싶던 소원은 안 빠지고 안 죽을 소원으로 바꾸어지고  믿음의 담력은 의심의 두려움으로 바꾸어져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  부르짖으니 다시 구출 하셨다.

 문답에, 성도의 제일 큰 능력자 되는 데는 몇 가지만 가져야 하느뇨? 답에, 두  가지. 둘째. 두 가지는 무엇 무엇이뇨? 답에. 주님 한 분으로 전부 삼고  순종으로만 전생활 삼는 것,  세째 문답에, 우리의 심신과 생활의 환난을 평안과 형통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무엇이뇨? 답에, 성경 읽고 듣고 영감 받고 주님이 자기 곁에 계심을 믿을 때에  이루어진다 네째. 물 위로 걸어가는 능력은 무엇이뇨? 답에. 주님과 주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녜, 요번 공과입니다.

 좀 이번 공과가 간추려져서 아주 어렵습니다. 어려우니까 많이 읽고 새겨야  알지 그리 아니하면 잘 모를 것입니다. 그저 아주 간추려서 그래 놔서 본문을  많이 읽고 눈을 감고 생각하면 나올 것입니다. 여러번 들었으니까 여러분들에게  기억하기 좋게, 제자들이 두 가지를 가 졌을 때에 두 가지를 가졌을 때에  순조롭게 배타고 가게 됐습니다. 두 가지를 가졌을 때에 아주 힘 안 들고  순조롭게 바다를 향해서 수십 리를 잘 가게 됐습니다. 가다가 두 가지를 그만  잊어 버림으로 풍랑일고 큰 고난을 만나게 됐습니다. 두 가지를 잊어러림으로  큰 고난과 그 전진하지 못하는 그런 낭파를 당했습니다. 또 잊어 버렸던 두  가지를 도로 되찾았을 때에 다시 찾았을 때에 잊어 버렸던 두 가지를 찾으니까  기뻐 못 견뎌서 두 가지를 가까이 갈려고 소원하면서 그 잊어 버렸던 두 가지에  가까이 가고 싶어 가까이 가는 그 방편인 물위로 걸어갈 수 밖에는 없는데 ' 물  위로 걸어 오라 명하십시오, 할 때에 주님이 오라 하시니까 물 위로 걸어서  갔습니다. 물 위로 걸어 가다가 베드로가 물에 빠진 것은 이 두 가지를 그만  잊어 버리고 어만 것 두 가지를 바꾸어 가지다가 또 물속으로 빠겼습니다.

 그러면. 두 가지를 가졌을 때에 갈릴리 바다를 무난히 잘 가게 됐고 또 두  가지를 잃었을 때에 큰 낭파를 당했고 또 두 가지를 되찾았을 때에 아주  평안하게 또 갈릴리 바다를 가게 됐고, 또 두 가지를 잃었다가 찾을 때에  어떻게 베드로가 기뻤든지 그만 두 가지를 찾고 나니까 그 두 가지 하고 같이  들어 붙고 싶어서 두 가지에게로 나아가고 싶은 그 소원을 해서 '나를 물위로  걸어 오라 하소서' 물 위로 걸어서 을 주님에게 갈라고 하면 물 위로 걸어서  밖에는 갈 수 없는데 '물 위로 걸어서 오라고 하십시오' 할 때에 그 배에서  벌써 물이 심히 깊은 그 물 위에 푹 뛰어 내려 가지고 물 위로 걸어가게  됐습니다. 또 물 위로 걸어. 가다가 또 두 가지를 잊어 버려서 또 물속에  빠졌습니다. 그라다가 또 두 가지를 도로 받아 가지고 배에 무사히 가게  됐습니다.

 그러면, 요것을 이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고 아주 좀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을  많이 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런 재미있는 게 아니고 우리가 이  세상을 거쳐서 가는 데는 아주 중요한 방편입니다. 이러니까 실지로 행해야  되지 행하지 안하고 무슨 논리적으로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으로는  재미있는 거 아니고 실지로 행하는 데에서만 효력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요걸 똑똑히 기억하고, 자기가 이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에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놀램도 없고, 두려움도 없고, 낭패도 없고, 이  세상에 참 무난하고 평안하고 형통한 그 형통으로 일생 구원을 잘 이루어  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요 두 가지만 마련해 가지고 있습니다. 요거 뭐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혹 이해가 안 되는 사람도 신앙이 어린 사람들이  있지마는 깨달은 사람은 요거는 틀림없이 됩니다. 이거 되는 것이 이것이  이렇게 함으로 자기 행동이 들어서 그 일을 잘 되도록 그래 하는 것 아닙니다.

요 두 가지를 가졌을 때에 그 사람에게는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극히  큰 능력이 모든 것을 해 주지 않을 수 없는 그런 필연적으로 되어지는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 분야는 각 각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뭐 공업을, 상업을, 농업을, 또 문화업을, 또 교육업을 정치업을  뭐 모두 다 각각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각 분야를 주어서 모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종류의 생활이든지 상관 없이 요 보배로운 요 보배로운 두 가지만 가지면  두 가지만 가지고 요 두 가지를 빼앗기지만 안하고 요 두 가지만 가지면 그  사람의 세상 생활은 전부가 펑안하고 형통이 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잘하는 사람도 가다가 여러 가지로 형통치 못한 모든  환난이나 낭파나 여러 가지 어려운 아주 마찰이나 절망이나 이런 모든 여려운  일들이 가다가 있는데 사람마다 가다 보면은 이런 일이다 생겨집니다. 생겨지는  그때는 누구든지 요 두 가지 보배를 잊어 버린 때라고 분석을 하면 환하게 알게  됩니다. 고 사람이 요 두 가지를 잊어 버리기 때문에 자기에게 그런 일이  닥쳐겼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은 요 두 가지를 잊어 버려서 일생을 살기 때문에 일생 사는  것이 참 안 죽으니까 살고 어짤 수 없어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지 한번도 자기  마음에 개운하게 그렇게 참 형통 하다, 이는 자기 힘이 아니고 무엇인가  돌아보는 돕는 그 은혜로서 이는 참 축복이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생각되는  그런 생활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뭐 안 믿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가 없으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잘  사는 그 생활은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잘 사는 생활은 되는데 안 믿는  사림들이 잘 사는 생활은 그 생활은 이 면으로는 잘 살고 저면으로는 낭파되고  또 겉으로는 또 형통하면 속으로 낭파되고 속으로 그 형통하면 겉으로  낭파되고, 이러니까, 실상 딱 따져서 보면 아주 철 없는 그런 아무 무책임하게  사는 철 없는 그런 시대가 아니고는 평안이라 하는 것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이 좀 정신 착각이지 절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이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 생활에 아주 생각하고  생각하고 연구하고 깊이 분석하고 또 비판하고 평가해도 참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고 참 그런 후회 없는 형통한 그 생활이 되어지는 때는 어떤 땐고 하니  요 보배 두 가지를 가진 때입니다. 요 보배 두 가지를 가져서 요 제자들이 요  보배 두 가지를 가졌을 때에 갈릴리 바다를 평안하게 수십 리를 항해됐습니다.

 고걸 여게 보인 것은 우리에게 요 두 가지만 가지면 기독자들이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 생활이 형통해진다 하는 것을 여게 보인 것입니다. 보이고 또 그  제자들이 요 두 가지를 잊어 버렸습니다. 이 두 가지를 잊어 버리고 보니까  잊어 버린 대로 차차 차차 갈릴리 바다를 가는 그 걸음은 가지 못하고 바람은  일어서 여러 가지로 고난이 자꾸 되어지고, 다 잊어 버리자 요 두 가지를 다  잊어 버리자 고난과 부진의 그 가련한 상태에 딱 이르렀고, 반쯤 두 가지가  없어겼을 때에는 조금 바람이 일고 배가 조금씩 못 가게 되고, 다 잊어 버렸을  때에는 아주 암흑 절망으로 그렇게 됐던 것입니다.

 또 요 두 가지를 잊어 버려서 그렇게 낭파 되었을 때에 그 두 가지가 낭파가  되어졌으니까 그것을 모두 회복할라고 사람들은 낭파된 그 일을 붙들고 제가  회복할라고 애를 쓰고 또 거기에 판련된 유력한 사람들을 동원 해 가지고  회복을 할라고 애를 쓰고 이런 저런 방편을 쓰면서 해결도 못 하고 그러다가  그만 늙어 죽어 버리는 것이 인생인데, 이 두 가지를 잊어 버려서 낭파된 어떤  종류닢 어려움이든지 낭파든지 환난이든지 고것을 다시 해결 지우는 방편은  잊어 버렸던 두 가지를 도로 찾는 고 방편 외에는 없습니다.

 잊어 버렸던 그 두 가지를 찾았을 때에 그것이 다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잊어  버린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찾을 때에 마음에 주관적 평안이 왔고 그 다음에  잊어 버렸던 한 가지를 도로 찾아서 배 위에 같이 들어섰을 때에 풍랑은  잔잔했고 목적지는 잘 가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면, 두 가지를 잃으니까 환난이  왔고 또 잃어서 환난 왔던 것을 두 가지를 찾으니까 그 모든 환난은 다  제거되어지고 평탄해졌다 하는 것을 요게서 똑똑히 보여 줍니다.

 또, 그 다음에는 두 가지를 잊었다가 그만 두 가지를 잊고 나서 환난 가운데  있으니까 어째 환난이 오는 줄도 모릅니다. 어떻게 바랍이 불어서 어떻게 해서  배가 못 가게 됐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그 제자들은 모르고 있었는데, 척 주님이 나타나시니까 내로라. 하고 보니까  깜짝 놀래 보니까 과거에 자기가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로 가졌던 예수님께서  주님 한 분이면 다다, 다 될 수 있다 하는 그 주님이 앞에 나타났고 또 주님이  그 두 가지 중에 또 하나인 주님의 음성, 주님의 음성을 턱 듣고 보니까 음성  듣고 주님 보니까 잃어 버렸던 그 보배 이 둘만 하면 모든 거 다 할 수 있는데,  잃어 버렸던 두 가지를 다시 만내 찾고 보니까 마음에 그만 어떻게 기뻐서  가까이 가서 주님을 가까이 주님을 가까이 가서 주님과 같이, 같이 있고 싶고  주님과 가까이 가고 싶고 또 주님의 명령을 한번 순종해 보고 싶고 주님의 명령  둘이 소원이니까 잃어 버렸던 명령도 한번 그 명령 한번 순종해 보고 싶고,  이래서 '내가 주님 앞에 가고 싶으니 만일 주시어든 나에게 명해서 물 위로  걸어 그라고 하십시오'  이라니까, 만일 주시어든' 그 말은 그 주님이 아니라 그 말이 아니고, '주님이  나를 주 믿는 사람으로 주님이 구원 할 사람으로 주께 속한 사람으로 이렇게  나를 인정하신다면 나를 주님에게 속한 자로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나를 물  위로 걸어 오라고 하십시오' 이럴 때에 그 물 위에 풍랑 만나서 어려움  당했는데 물 위에 내렸으면은 그 뭐 수십 길 되는 아주 갈릴리 그 바다 깊은  바다 속이니까 수십 길 되는데 내려 서면 푹 빠져 죽을 거 아닙니까? 이제  주님의 명령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주님이 오라 하시면 물 위로 오라 할 게  아니라 공중으로 날라 가라 해도 날라 가고 뭐이 주님 말씀대로 다 된다. 요  것을 자기가 처음에 갈릴리 바다에 들어 섰을 때에 요 두 가지 보배를 가졌던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베드로가 주님 앞에 가고 싶습니다. 잃어 버렸던 보배 하나를  찾으니까 주님을 찾으니까 아, 주님이 한 분이면 다인데 주님을 깜박 잊어 버려  가지고 낭파당했다가서 주님이 내로라 하고서 보니까 주님이 계시니 주님 앞에  가고 싶다 말이오. 가고 싶고 주님을 잡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 앞에 주님을  잡고 싶다 말이오. 잊어 버렸다. 잊어 버려겼으니까, 그라면서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이 나를 물 위로 걸어오라고 말씀하시면 말씀하시면  그대로 걸어갈 수 있다 하는 고 말씀의 능력을 믿는고로 또 주님 앞에 가고  싶은 그것으로 가지고 나를 물위로 걸어 오라 명하십시오. 오라 하니까 뭐  서슴치 않고 푹 뛰어 내려서 걸어갔습니다.

 걸어갔는데 걸어가다가 왜 또 물에 빠져 들어가느냐? 걸어가다가 물에 빠져  들어가는 건 또 이 주님을 잊어 버렸습니다. 보배를 하나 잊어 버렸어. 주님  잊어 버리는 것은 그만 주님 보던 그 베드로가 주님은 보지 안하고 옮겨서 바람  봤습니다. 바람 보고 주님 앞에 가고 싶어서 갈급하던 그 사람이 주님 앞에  가고 싶은 그 지금 소원은 어째하고 바람을 보니까 물에 빠져 죽을까 싶어서 안  죽을라 하는 안 죽을라는 그 소원으로 갔으니까 그만 소원이 바꿔져  버렸습니다.

 바꿔지고, 인제 주님과 주의 말씀으로서 이 주님과 주님 말씀 믿으니까  믿으니까 뭐 능치 못할 것이 없고 강하고 담대했었는데 주님과 말씀 잊어  버리고 나니까 이제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찾았을 때에는 물이고 뭐이 고  아무것도 없이 강하고 담대하고 기뻤고 즐거웠었는데 잊어 버리고 나니까 또  두려움만 또 가득 차게 됐어 두려움이 가득히 찼습니다.

 이러니까, 주님 말씀하기를 '적게 믿는 자야' 하는 것은 믿음을 시작했다가 이  보배 두 가지로 전부를 삼은 그 일을 시작했다가 네가 시작해 가지고 걸어  왔는데, 또 '적게 믿는 자야' 그래 이 두 가지를 네 보배로 삼음으로 물 위로  걸어 왔었는데 조금 오다가 '의심하는 자야' 왜 이 두 가지를 버리고. 지금  엉뚱한 것을 보고 딴 걸 생각하느냐 하는 그것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요거만, 그저 먼저 기억하십시오.

 두 가지 보배를 가지니까 그 바다에 아무 힘 안 들고 무난히 가게 됐다. 두  가지를 잊어 버리고 나니까 낭파를 당했다. 두려워 죽을 곤욕 다 당했다. 또 두  가지를 도로 찾으니까 찾으니까 바람도 없어져 버리고 아무 것도 없어져 버리고  다 형통하다. 인제 또 베드로는 두 가지를 잃었다가 찾으니까 어떻게 마음에  좋은지 잃었다가 찾으니까 두 가지를 찾고 싶어서 하나는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서 주님을 찾고 싶어서 하나는 주님의 이 능치 못하심이 없는 말씀대로 한번  순종하고 싶어서 '주여 물 위로 걸어 오라 하십시오' 할 때 '명하면 내가  가겠습니다.' 이라니까 명하니까 뭐 떠벅떠벅 걸어갔습니다. 가다가 왜 또 물  속에 빠졌느냐? '적게 믿는 자야 의심 하느냐?' 이 두 가지 보배를 가졌다가 두  가지 보배를 또 잊어 버렸습니다. 베드로가 또 이 두 가지 보배 잊어 버리니까  물속에 빠져 들어갑니다. 잊어 버리니까 빠져 들어갔다가서 이제는 다시 이 두  가지를 찾았습니다. 찾아서 '주여 나를 구원합소서' 이라니까, 또 두 가지를  찾았어. 찾으니까 또 쑥 올라 와 가지고 그랬옵니다. 요것을 더해서 두 가지는  뭐이 두 가지냐? 두 가지 보배는 믿는 성도들에게 두 가지 보배는 이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것의 주재시요, 모든 것의 주인이시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주님이시요, 또 주님은 모든 걸 창조하신 주님이시요, 이러기 때문에 이미  창조해 놓은 거 이거 당신의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나 줄라고 하면은 창조해  놓은 거 다 주실 수 있습니다. 또 창조해 놓은 거 말고 창조한 아직 창조되지  안한 것도 당신은 전능자요, 전지자시요, 나를 사랑한 주님이기 때문에 내게  필요한 것은 지금, 만들어 놓은 우주와 영계 이거 몇 십배 라도 당신이 또 새로  만들어 가지고 또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은 주님 한 분으로서 내게는 전부라. 주님이 안 주는 거  가질 수 없고 주님이, 내게 주실라고 하고 하면은 주님 한 분이면 이것도  저것도 다 될 수 있다. 그러면 주님 한 분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에 그전에 주님  만나기 전에는 필요한 게 열 가지도 많고 백 가지도 넘고 천 가지도 넘고  이것도 필요 있고 저것도 많은데 고만 다 없애 버리고 주님 한 분이면 필요의  전부다. 다 된다. 왜 그분이 뭐인데? 아, 있는 거 다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줄라면 내게 다 줄 수 있고 없는 것도 그 분이 만들어 주시면 얼마든지  줄 수 있기 때문에 주님 한 분이면 다다. 또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은  뭐이든지 주님이 말씀하면 다 된다. 말씀하면 말씀하면 다 되니까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보다 더 권위 있는 일이 없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그 순종은  뭣이든지 다 되고 실패 하나도 없다. 요 두 가지 보배를 가졌던 것입니다.

 주님으로 저희의 필요하고 요긴하고 중요한 그 모든 것의 모든 것이 다 주님  한분이 다 되는 요 사실을 베드로가 믿었고, 제자들이 믿었고, 요게 믿어지고,  또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은 안 되는 게 없다. 명령대로 순종하면 다  된다 하는 요 믿음이 제자들에게 가득 차서 요 두 가지 보배가 그들에게 가득  채여졌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갈릴리 바다에 출발했던 겁니다. 이러니까.

그랬을 때에 그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 나서니까 수십리 되는 그 거리에는  아무 어려움 없이 쑥 가 버렸어. 가고 난 다음에 풍랑 인 것은 우리에게 그  예수 믿는 도리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계시 이용으로 하신 것이라 그  말이오.

 이러니까 자, 두 가지 보배를 보배로 전부다. 내 필요한 것은 주님 한 분이면  다 되고 나는 주님 따라 움직이는 그거뿐이다. 뭐 할 일도 많았는 데 할 일도  많은데 할 일 아무 것도 없고, 다는 주님 따라 움직이는 것뿐이다. 주님 따라  움직이면 내 움직이는 거는 주님 따라 움직이면 내게 필요한 움직임은 다하게  되고 주님 한 분이시면 내게 필요한 전부는 다 되고 요 두 가지 보배를  제자들이 담뿍 가져서 고때에는 이 제자들에게 딴 거 없었습니다. 뭐 가정이  어쩌 되고 가정도 보이지 안했고 뭐 고기잡이도 보이지 안했고 아무 것도 눈에  안 보였습니다. 그럴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왜 그러냐? 따라다니면서 주님의 말씀 자꾸 설교를 들었지 설교를, 주의  말씀을 자꾸 들으니까 자꾸 마음이 변해서 아무 것도 안 보이고 그저 주님의  말씀 진리만 들으니까 아, 진리를 배우고 보니까 진리가 이렇다 이렇다 하니까  고진리대로 모든 견해가 되어지지, 또, 그라고 성신의 감화가 자꾸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으니까 성신의 감화가 와서 이 속에 어둠을 물리쳐 버리고  옛사람 악령과 악성과 악습의 옛사람을 물리치고 성신의 감화의 새사람이 자꾸  새로워 지고 소생되어지지 또 영감과 진리가 나를 새롭게 하고 자꾸 이래  변화를 시켜 주시지,  또, 고게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영감과 진리, 고 한 가지는 무엇으로서  그렇게 그 두 가지 이 두 가지만 하면 된다 하는 이런 보배가 보배로 알게 되고  보배로 믿어지게 되고 요 두 가지만 하면 된다는 고렇게 믿음이 생겨겼습니까?  말씀을 들었고 영감을 받았고 또 하나는 뭐입니까? 또 하나는 뭐이지요? 이적,  이적.

 아, 보니까. 상여 메고 나가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상여 메고 나가는 데 아.

내려 놔라. 내려 놓으니까 뗘 살려서 살아나 가지고 그만 살았지, 또 야이로의  딸도 또 죽은 것을 그만 살렸지. 자. 죽은 것도 주님이 말씀 대로 살아나라  하니까 뭐 살아나 버렸지 일어나라 하니까 일어났지, 또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 덩어리로 오 천명이 먹고도 남음이 있으니까 뭐 문제가 뭐 있겠습니까?  주님 한 분이면 다 돼 버렸지. 주님 한 분 이면 다 된다는 것을 자꾸 보여주기  위해서 오만 이적과 기사를 다 보여줬다 말이오.

 이러니까, 그때 제자들의 마음이 그만 예수님 한 분이면 다다. 다 되겠다.

주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다 된다. 말씀대로 하는 거 안 되는 거 없다. 말씀대로  하면 다 된다. 아, 그물 던지라 하니 그물 던지니까 그물이 찢어지기까지 우겨  들어 왔지. 이러니까, 그 제자들은 이 두 가지 보배 그저 움직이기는 주님  명령한 대로 그대로 움직이는 요거 외에는 소용없다. 요거만이 보배다. 또 주님  한 분은 전부의 전부다. 이러니까, 요 둘만 하면 된다는 요 사람으로 제자들이  되었을 때에 그때에 갈릴리 바다로 가는 길은 형통했다 하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오늘 예수 믿는 사람으로 제일 행복스러운 사람이 누구며 제일  권능있는 사람이 누구며. 제일 위대한 성공자가 누구냐? 요두 가지 보배 외에  딴것 없고 요 두 가지만 하면 두 가지만 있으면 된다. 이러니까 누가 있다  말하기를 '가정 어짜고?' 아, 주님 계시고 주님 시키는 대로면 가정이 필요해서  요래 필요하면 당신이 요래 시킬 건데 고래 시킬 때 고래 하고 조래 시킬 때  조래 하면은 다 가정도 당신이 제일 이상적인 좋은 가정을 해 주실 것이고 모든  걸 다 해 주실 터이니까 그래 하니까 들에서도 복 받는다. 또 성읍에서도 또 복  받는다.

 이러니까, 고렇게만 하면 지극히 큰 능력이 자기 몸 밖에서 모든 거 당신이 다  하셔 가지고, 해 주시니까 다 해 주시지 또 자기 혼자 같으면 안 될 건데 그  능력이 와 가지고서 자기 속에서 역사해서 또 아주 복된 소생을 몸의 소생을 또  복된 소생을 또 만들어 또 내 놓지 또 손으로 하는 모든 일도 또 이렇게 해  주시지 뭐 창조주의 그 능력이 와 가지고서 내게 복 주실라 하면 뭐 얼마나 뭐  많이 주고 못 줄 게 뭐 있겠습니까?  이러니까, 주님의 말씀은 계약 하나도 획 하나도 틀리지 안하고 요대로  이루어지는데 이게 안 믿어진다 그 말이오. 안 믿어지는 것이 문제고 믿어지는  게 권능입니다. 안 믿어지는 게 문제고 믿어지는 게 권능인데, 오늘 저녁에 또  이 설교를 하는 것은 주일 학교 학생들에게는 아직까지 주입식이니까 요것을  여러분들이 알도록 하기 위해서 공과를 저래 썼지 공과를 저래 자꾸 읽으고  눈을 감으면 내가 이제 말한 대로 아, 두 가지 보배 가지니까 그만 순조롭게  전진됐고 목적지로 전진됐고 두 가지 잊어 버리니까 고통 왔고 잊어 버려 고통  왔다가 두 가지 도로 찾으니까 고통이 해결됐고 두 가지 찾고 나니까 못 견뎌서  좋아서 그만 한번 순종해 보겠다, 한 번 가까이 가겠다 싶어서 하는 데에는  그래 가지고 달리는 데에는 물 위로 걸어가 버렸다, 세상을 발 아래 밟고 그만  가게 된다. 요것이 우리의 생활에 참 아주 간단하고 명료하고 요긴한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요렇게 한번 실행을 해 봐요, 틀림 없으니까. 그래서. 이 두  가지가 보배라는 것은 보배로 믿어지는 것, 이 두 가지가 보배라 두 가지만  하면 된다. 두 가지만 하면 뭐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니까 가정도  뛰어나게 될 것이고 모든 경제도 그럴 것이고 사업도 그럴 것이고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다 그럴 거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참 예수를 진짜 못 믿었어요.

요렇게 믿으면 지금 믿는 사람이 굉장히 지금 큰 일이 날 터인데 이거 늙어도  괜찮아. 늙어도 지금부터라도 하면 됩니다. 저는 할라고 달라 들어 시작을  하는데, 이거 예수를 잘 못 믿었어, 참 정말로. 이거 몰랐어. 깨닫지를  못했어요. 예수 믿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했다 말이오. 이랬는데 뭐 깨닫는다  해도 보면 그 깨닫는 게 지금 깨닫는데 비하면은 너무 삥삥 둘러서 그 뭐 바로  첩경이 되는 방편을 알지를 못했다 말이오. 이러니까, 할라고 해도 참 몸이  이거 뭐 늙어서 힘이 없으니까 이거 몸도 가만히 이걸 내가 꼭 두 가지 보배를  안 잊어 버리면 되는데 그만 두 가지 보배를 자꾸 잊어 버린다 그거야.

 이 제자들이 뭣 때문에 잊어 버렸느냐? 처음에 출발할 때 잊어 버렸느냐?  이러니까, 이래 가다가 저희들이 자꾸 이거 뭐 노 젓고 어짜고 이라니까 이거  그라다 보니 주님 한 분만이 필요했는데, 요것도 필요하다, 필요한 게 하나 둘  더 생겼어. 필요한 게 하나씩 둘썩 더 생겼다 말이오. 또 할 일은 주님 명령  복종, 순종 그것만 할 일인데 이것도 할 일 할 일이 더 생겼어. 이라다 보니까,  그만 주님 보다도 안 죽어야 되겠다, 살아야 되겠다. 살고 싶은 거 죽기 싫은  거 요것이 주님 대신 돼 버리면 주님 다 잊어 버리고 살고 싶은 거로 가득 차  버렸어. 이러니까, 전부 낭파가 돼졌어요. 이러니까, 요 두 가지가 보배다.

 요 여러분들이 요렇게 믿어진다는 거는 좀 험이 듭니다. 저도 이래 기도하면  자꾸 기도할수록이 믿어지고 믿어지고 이는 참 틀림이 없다 하는 것이 제  속에는 믿어져서 이래 말하지마는서도 또 여러분들 가운데는 아직까지 더 믿을  사람 있을 거라 그 말이오. 그러면 요 믿어지는 요게 중요합니다.

 요 두 가지, 주님 한 분이면 전부다. 뭐 가정이고 지식이고 공부하는 것도 이  두 가지면 다 돼. 주님이, 주님이 내게 잘해 줄라 하면은 뭐 글자하나 안  배워도 대번에 세계에 제일 지혜자가 될 수 있고 권능자가 다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그분이 시키는 대로 인간들이 움직여서 될 거 같으면 당신이  시킨다 말이오, 빠짐 없이. 시킬 때 또 시키는 대로 하면 그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지극히 큰 능력이 속에 와 가지고서 나를 통해서 일하니까 얼마나 잘  되겠습니까?  이런데. 이 두 가지는,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와 함께 계시는 이 분만  나와 함께 계시면 문제 없다. 주님만 나와 같이 계시면 문제 없다. 주님하고  나하고 둘이 한덩어리 되면 문제 없다. 요게 믿어지는 거, 또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것은 이것은 뭐 어떤 일이든지 주님의 명령 순종이면 다 생명이요  영생이다 하는 요게 믿어지는 거, 이러니까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도  주의 명령 순종하는 그걸 겁내지 안하고 좋아 하고 기뻐했다 말이오.

 이게 평소에 다 연습을 해서 이런 것이니까 우리에게 요 믿음이 생겨지는  데에는 요게 믿음이 생겨야 되는데 요 믿음이 생겨지는데에는, 몇 가지를 하면  요 믿음이 생겨진다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한번 가리켜 보이소. 몇 가지 하면?  몇 가지 하면 믿음이 생겨진다 했오? 손가락으로 한번 가 리켜 봐요. 높이 썩  들어야 되지. 요래? 이 보배가 두 가지지, 보배가 두 가지지, 뭐 보배 두  가지를 만드는 데에는 둘이 이니라 보배 둘을 만드는 데는 몇 하면 됩니까? 이  셋, 이 셋이면 됩니다.

 셋 셋인데 하나는 성경 말씀을 읽든지 듣든지 자꾸 읽으면 달라져요. 읽으면  자꾸 주님이 자꾸 보여지고 주님이 자꾸 알아지고 자꾸 주님과 가까워지고  옛사람 나를 속이는 악령, 악성 이거는 자꾸 녹아지고 없어지고 자꾸 새사람은  장성해 올라오고 자꾸 이래 가까와져요. 성경을 자꾸 읽지 또 듣지, 그러니까  사경회 가면 부흥회 가서 한 며칠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다 없고 그만 요것만  이면 되는데 아, 와 가지고 그만 이제 다 바꿔 버린다 그거야.

 성경 말씀 듣고 영감 받고,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적, 이적을 봐야 돼.

이적 안 보면 안 믿어 진. 이적은 자기가 주님의 말씀대로 하고 보니까 주님  말씀대로 하니까 고대로 딱딱 이루어지는 걸 자기가 체험하게 되 거든.

말씀대로 하고 나니까 야, 이거 얼토 당토 안 한다 이랬는데 말씀 대로 하고  나니까 돼지거든. 또 자기가 이런 일 뭐 기도한다 되겠느냐? 기도한다 되느냐?  기도하면 되거든, 뭐 기도하면 안 되는 일 없어.기도하면 된다 그거야.

이러니까, 자꾸 이렇게 말씀에 순종해 본 사람은 한 번 해 보니까 또 한번  자기가 아,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고 주의 말씀 대로 순종하면 된다, 된다  하는 작꾸 믿음이 생겨진다 말이오.

 요 세 가지로서 세 가지 노력을 해 가지고 요 두 가지 보배만 하면 다된다  하는 요 두 가지가 믿어지는 사람돼야 됩니다. 이래 예수를 이래 안 믿기  때문에. 다 안 된다 말이오. 이래 믿은 사람은 다 됐다 그거요. 이래 믿은  사람.

 여게 저 ○○○ 목사님이 그분이 바디 장사요. 총각 바디 장사, 일찍 장도  못가서 총각 바디 장사라. 뭐 글은 무슨 글 읽어? 총각 바디 장사인데 그라면서  예수 믿었어요. 바디쟁이 압니까? 이와 같이 베짜는 거 옛날 베짜는 거  바디쟁이라 하면 쌍놈이요, 뭐 말할 것 없이. 여자들도 바디쟁이라 하면 '아,  그거 갋지 말아라. 저 바디쟁이 아주 독하고 못쓸 여자들' 그랍니다.

 이 바디 장사, 총각이 바디 장사를 해, 이래 가지고서 이만침 머리는 뒤에  땀고 이래 가지고서 바디 장사하고서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돌아다니면서  인제 이 사람에게 가 가지고 예배 한 번 보고 또 저 사람에게 예배 보고  바디쟁인데 그래도 그때 그걸 하면서도 마을마다 다니면서 바디 장사하면서  전도하고 또 가는 곳마다 예배 보고 또 성경 가르치고 이랬는데, 그 말이여  바디 장사 몽달이 총각이 부산에 그분이 세워 놓은, 그 큰 학교가 몇이지요?  ○○○ 목사님, 몇 개입니까, 학교, 몇이라? 열 다섯 개, 그 큰 학교가 열 다섯  개까지는 안 될 건데 열다섯 개? 아무도 모르나 아이구 영. 아마 열 몇 개 될  겁니다. 그 큰 학교가,  이러니까, 그재산이 부산서 제일입니다. 그만침 재산 가진 사람이 없어요.

부산서 제일이라요. ○○○ 집사님 몇 개인지 압니까? 네 개? 다섯 개? 아니야.

저 열 개는 넘었습니다. 이거 뭐 모르는구만. 모두 중학교. 고등학교, 뭐  국민학교, 대학교 그 얼마나 많이 세웠다고, 전부 자기 학교라. 이사장이요  전부 자기 재산이라. 사립학교입니다. 전부 자기 재산이라. 그래서 누구한테 말  들으니까 그분이 부산에 제일 재산으로는 제일 일위 간다. 그렇게 말합디다.

○○ 합판이 그 어림도 없어. 그 뭐 그런 걸 비교 못 해요. 개인으로 학교를  그렇츰 많은 큰 학교를 가진 사람 없어. 그 바디 장사 말이여, 몽달이 총각  장가도 못 가고 이리 돌아 다니는 몽달이 총각이 믿사옵니다로 믿으니까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해 줬어. 그래 인제 이 세상은 안 떠났습니까?

 하나님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내가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할 것이라' 어떻게 해 가지고? 뛰어나게 한다 하니까  등신이 어째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겠습니까? 잘나 야 되지. 요 조그만  나라에 대통령만 될라 해도 지금 뭐 좀 잘나야 되는 데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니까 그 등신이 되겠오?  이러니까, 주님 한 분으로 전부 삼고 그분의 명령이면 순종하면 다 된다  요거만 믿고 하는 사람에게는 전능자가 와 가지고 이래 만들어 버리니까 아,  엿새 동안에 이 우주를 다 만들고 모든 그뭐 천재라는 그것도 당신이 다 만든  것인데 당신이 만들라 하면 못 만들게 뭐 있겠오? 염려하지 말아요. 우리가  요걸 요 믿음이 있어야 될 건데 요 믿음을 못 가져. 요 믿음 가지는 데에는 요  세 가지로 만들어야 됩니다. 세 가지로 만드니까 성경 자꾸 읽고 성경 자꾸  읽고 성경 명상하고, 또 자기 양심 속에 양심보다도 요래야 되겠다. 요게 옳다  싶어서 감동시켜 줄 때는 꼭 그대로 실행을 하고, 고라고 고 말씀을 묵상하고  영감 시켜 쭐 때는 그대로 실행쯤 하고, 실행을 하면 실행한 고 결과가 '아멘,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 구나.' 실행해 보니까 실행의 결과가 하나님이 거게 같이  계셨다는 것이 확실이 증거가 되고 보여진다 그 말이오.

 또 자기가 주님이 같이 계시니까 이것은 내가 암만 해도 안 할 수가 없는데  하고 싶어 못 견디고 이거 보면 이거 내버리면 참 신세 가는데 싶어도 주님  앞에 당신이 금하는 것이 돼 놓으니까 이라면 참 내 신세 가는데 싶어도 그  욕심은 나지마는서도 주님이 함께 계시니 주님이 함께 계시니 그거 하면 안  된다. 이라니까, 주님 안면을 봐서 착 그걸 버리고, 그 뭐 아무리 많은 재물도  턱 던지고 보니까 그만 그 다음에 자기에게 심령에서부터 자꾸 새로워지고 모든  것이 돼 들어가는데 그거 몰라요. 어찌 되는지 몰라. 그만 저절로 자꾸  돼집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 뭐 성공한 사람들은 어째 성공했다는 거  그거 한 번 이야기 해라 하면 아무도 못합니다. 성경에 어찌 됐는지 몰라요.

 이러니까, 요 두 가지를, 주님 한 분으로서 전부라, 명령 순종하는 그대로만  인제 두 가지만 가지면, 뭐이냐면 '아, 나는 주님 외에 딴거 안 가졌다. 주님  한 분이면 다 됐다.' '야. 가정은 어짤라고?' '가정도 주님 한 분만 가지면  주님 그분이 가정 다 잘해 준다.' '또 그뭐 자녀는?' '아, 자녀도 주님 한 분이  잘해 줄라면 다 잘해 준다.' 그러면 주님 한 분 가지고 '못할 게 없다  그말이오. 그러고 하기는, 너는 어짜고? 나는 주님에게 피동되는 거. 움직이는  건 주님에게 따라서 움직이는 거 요거, 또 주님 한 분으로서 한 분만 하면 다  된다. 이러니까, 주님 한 분이면 다 되니까 주님 한 분이 다 잘해 줄 것을 나는  믿고 맡겨 놓고 있다. 너는 뭐하고? 주님이 시키는 대로 주님에게 피동되는 거  요것만 한다. 요것만 하니까 다 된다 그거요.

 이래서 처음에 요 둘 가져 있으니까 순조롭게 가다가 그만 거게서 뭐 배타고  노젓고 어짜고 이라다 보니까 차차 주님 잊어버리고 이거 자꾸 바꿔졌다  말이오. 주님 잊어버리고 이제 노 젓는 거 배 뭐 옛날 어부 생활 자꾸 그것만  생각하다가 그만 주님 잊어 버렸어. 주님 잊어버리니까 못 가게 됐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어데서든지 주님은 자기의 전부로 삼고 주님 모시고 주님,  사모하고 주님을 항상 위하고 주님을 섬기고 주님으로 더불어 동행 하면서  주님에게 물어서 하지 말라는 거 안하고 주님이 하라는 거 하고 또 주님에게  의논하고 주님 한 분으로 자기 전부를 삼는 요 생활과 주님의 명령에 바로  찾아서 주님 명령 순종하는 것 요 둘만 하면 요것은 참 좀 어려워요, 요거 둘만  하면 하루 요 생활만 하면은 그만 하루 고 생활 해도 거게서 큰 결과가  나타납니다. 아 그런 걸 모두 안 봤습니까? 모두 하루만 해도.

 그러다가 잊어버리니까 풍랑 일었지, 풍랑 일었는데 주의 음성과 주님 떡  모셔서 주님 배 안에 모셔 들어오고 또 주의 음성 듣고 하니까 평안하고,  바람도 없고 잔잔해졌지. 이러니까, 잊어 버렸던 주님이 내로라 하니까 얼마나  반갑든지 '주여 주시어든' '만일 주시어든' 그 말은 뭐이냐 하면은 '나를 내가  주님에게 이래 갈급하고 이래 하는데 나를 주님이 사랑 하시고 환영하시거든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오. 한번 명령해 보십시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싶은  그것이 말이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 보고 싶은 그 소원과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고 싶은 그 소원과 요 두 가지 소원이라. 요 두 가지 소원에서 가고 싶어서  어떤 명령이라도 물 위로 걸어오라 하면 죽으라는 말 아닙니까? 그것도  상관없어. 그 명령이니까 그만 푹 뛰어 걸어가니까 돼졌어.

 그러기 때문에,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고저 하는 성도의 소원과 주님 앞에  가까이 가고 싶어 주님으로 더불어 동행하고 싶어서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고  싶은 그 복종하고 싶은 그 마음에 복종 그 복종은 물 위로 걸어갈 수 있다.

세상을 갈릴리 바다를 발아래 밟고 갈 수 있다. 온 세상을 발아래 다 밟고  세상을 초월해서 살 수 있다 하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꾸 아무래도 이거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해야 돼요. 주님을 자기가  구주로 믿지마는서도 아, 어린 아이가 봐도 할 수 없는 일을 주님은 보시든지  뭐, 어린 아이가 봐도 어린 아이 눈이 무서워 못 할 일도 주님이야 뭐 하고서  이와 같이 하는데 무슨 주님이 그런 자에게 같이 오셔? 같이 하면 죽일 거라  말이오. 그 사람하고 같이 하면 그만 벌을 받아 대번 죽을 터이니까 주님이  피할 수밖에 없어요.

 또 거게 조그매만 점잖은 사람이 있어도 그렇게 뭐 무시하지 못할 터인데  주님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계신다 인정하면온 그래 안 할  일,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일 초 일을 할 수가 없고 하라는 일 안 할 수가 없고  이럴 건데, 말로만 주님이지 주님이 여게 살아서 내 곁에 있는데 아이만침 되어  있는지 아이만침 내게 인정할 수 있는 것만침만 돼 가지고 있는지, 무슨 장골  힘센 장골 하나만침 내 곁에 계시는 것이 인정이 되는지, 그라면 대통령만침  대통령만한 권세를 가진 주님으로 인정이 돼지는지? 우주를 만드신 그분으로  인정이 되는지? 자기 믿는 대로 된다 했습니다. 믿는 대로 되리라 했습니다.

믿는 대로.

 이러니까, 어짜든지 이것을 여러분들이 가서 새김질 해 가지고서 이 두 가지  보배를 가지는 사람 됩시다. 이외에 세상을 승리할 수 있고 이거 외에는 주님의  지극히 큰 능력의 은총을 끌어 올 수가 없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새벽 기도에 좀 빠지지 말고 많이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어짜든지 새벽 기도  나와서 배워야 됩니다. 자꾸 듣고 배우고 듣고 배우면 우리가 변화가 돼요.

자꾸 듣고 배우면. 이 두 가지 외에는 다른 거 필요가 없다. 이 두 가지만 하면  된다. 이 두 가지면 세계가 다 돼 버려요. 이런 믿음이 생겨지는 건 자꾸  말씀을 듣고 배우고 자기가 실행해 보고 자꾸 이래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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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 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1985. 2. 13. 수새벽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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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 누가복음 16장 13절/ 1982. 6. 13.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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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증거를 마친 때에(순교)/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2. 6. 30. 수새벽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