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큰 능력있는 신앙생활

 

1985. 2. 3. 주일새벽

 

본문 : 마태복음 14장 22절-3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 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오늘 유치반 중간반 공과로 가르칠 본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여러가지 하늘나라에 대한 말씀도 배웠고 또  여러가지 이적들도 보았습니다. 지금 이때는 어느 때인고 하니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그 다음입니다. 제자들은 그때에  로마 식민지로 있으니까 모두 다 착취를 다 했고 또 하나님의 축복이 없었고  아주 경제적으로 심한 타격을 받았고 또 행정적으로도 많은 탄압을 받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자유 독립이 마음에 가득 찬 때요, 또 어떻게  하든지 경제의 어려움이 해결되기를 원하는 때였습니다.

 이랬는데,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은, 배불리  먹은 사람이 사나이 수만 해도 한 오천이나 됐고 또 남은 부스러기를 주운 것이  오히려 오병이어 보다 많게 열 두 바구니나 됐습니다. 이런고로 제자들  마음에는 이제 참 '예수님 한 분이면 우리 소원은 다 이루어질 수 있다. 또  세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그들이 믿는 그  마음이 가득 찬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도 그들에게 한없는 그런 참 평강을 누렸을 뿐만  아니라 또 말씀하신 그대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 남았으니까, 처음에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축사하시고 떼어 주라 할 때에  제자들은 다 우습게 생각했지마는 떼어 주니까 자꾸만 얼마든지 줄 것이 되어서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은 것이 열 두 바구니가 됐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능치  못 하심이 없으시고 참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요 임마누엘이라는 것을  그들이 확실히 믿으면서 예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이든지 말씀하시면  그대로라,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것을 그들이 확신을 가지게 됐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따라다니는 모든 대중들은 빨리 예수님을 우리 유대 나라에  임금으로 세우자 그렇게 모두 수 군거리고 지금 모든 여론들이 떠드는  그때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재촉해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시고  예수님은 대중 속에 있지 아니하시고 따로 산으로 피해서 가셨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보면 모든 사람들이 억지로 임금을 삼으려 함으로 예수님께서  피해서 산으로 가셨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분위기가 이런 분위기가 된  때이고 또 제자들에게는 이러한 감동과 또 욕망을 가진 때 였습니다.

 첫째로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은, 이 제자들이 그 마음에 예수님을 바라 보고  또 생각하고 '예수님 한 분이면 뭐 더 원할 게 없다. 예수님 한 분이면 우리는  문제 없다.' 예수님 한 분으로서 아무 난제가 없고 해결 안 될 것이 없고  예수님 한 분이면 저희들의 전부가 된다는 것을 그 제자들이 확신을  가졌습니다. 또 이제까지 따라다니며 겪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무엇이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해서도  그들이 뭐 깨달아서 그렇다는 거보다는 그들이 보고 듣고 느끼고 참관한 일로서  이 둘로서 그 제자들 마음에는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 한 분이면 우리 전부의 전부다. 모자랄 것이 없다. 또 주님의 말씀은  무엇이든지 다 그대로 이루어진다' 하는 이 둘로서 제자들의 심신에는 가득  찼습니다.

 그럴 때에 그들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갈려고 하니까 그 배가 아주 순조롭게  잘 항해해서 수리나 가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이제자들이 그만 배를 타고 노를  젓고 옛날 고기 잡던 그 바다를 그 배 타고 그 노 저어 가지고 건너편으로 가는  그동안에 차차 차차 제자들의 마음은 자기들도 모르게 배로 옮겨졌고 노 젓는  데로 옮겨졌고 바다로 옮겨졌고 이렇게 저희들이 활동하고 노력하는 그  노력으로 그만 옮겨져서 마음에 가득 찬 예수님만을 소망하고 예수님의  말씀만을 권위로 듣는 그 믿음이 사라졌습니다. 사라짐에 따라 식어짐에 따라,  바람은 일고 거슬려서 가지는 못했고 그들은 심히 놀라서 두려워 고난을 당한  것을 여게 기록했습니다.

 그러면 이런 일이 제자들이 우연히 배 타고 가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이렇게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이것이 온 세상에 두어도 둘 곳이 없을 만한 많은  기록할 만한 그 요긴한 일 중에 뽑아서 기록한 곧 천지는 없어져도 없어지지  않는 이 권위를 가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다 영생의 도입니다. 영생의 도로  이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일이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영원 전 주님이 우리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셨고 예정하신 대로 또 당신이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셔 가지고 우리에게 구원 도리를 가르쳐 주는 이런 순서가 된  것인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하나의 우연한 일로,  다 그런 일들이 많이 있으니까, 배 타고 가다가 풍랑 만나서 고난당하기도, 또  배가 전진 못 하는 것도 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 일 중에  하나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우리에게 구원에 대한 정확한 도리를 가르치고 있는 이 사실이라 하는 것을  우리가 믿지 안하면 가치 없습니다. 믿지 안하면 가치 없고 아무런 우리에게  중대성이 없는 것입니다. 뭐 역사에 그런 일이 얼마든지 있지 일습니까? 배  타는 사람들이 풍랑 만나기 예사고 풍랑 만나면 놀라기 예사지, 그게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의 이치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하신 것이라는 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여게서 제자들이 이 갈릴리 바다를 거쳐서 주님이 명하시는 그 목적지에 가는  데에는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에게만 소망을 가지고 주의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다 정확하다 하는 것이 그 마음 속에 가득 차서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요 가득 찬 그 마음과 그 몸, 심신에 가득 찼습니다. 그럴 것  아닙니까? 평생 못 봤는데 사람이 수천 명이 와서 있는데 다 지금 배가 고파서  시장해 있는데 보리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 갖다 주니까 축사하시고  그것을 떼어 가지고서 오천 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 두 바구니나  됐으니까, 야, 이분 한 분이면 우리는 이 경제의 어려움이 다 해결되겠고 또  이분 한 분이면 로마 나라고 뭐이고 그까짓 거 다 문제 없고 모든 것을 다  정복하고 격퇴하고 독립할 수가 있겠다. 또 이분이 말씀하시는 말씀대로 다  되니까 이분이 뭐 말씀 하시면 온 세상이 대항할 수 없다' 하는 것을 그들이  보고 접하고 구경하고 하는 가운데서 어쨌든지 제자들 마음 가운데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그 말씀과 이 둘에 대한 소망이 가득 차고 딴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럴 때에 갈릴리 바다는 평탄하게 주님이 말씀하신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그런  순조로운 항진을 했던 것입니다. 요것을 우리에게 보입니다.

 그러기에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을 거겨서 주님이 우리에게 가라고  명하신 하늘나라 주님을, 주님의 재림을 맞이하는 이 세상 끝날, 우리의 생명  끝날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심판을 맞이하는 이 구원의 언덕에 닿는 이 구원  목적이 완전히 도달하는 이 일은 우리가 주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깨닫고  주님은 창조주요 하나님이시며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이시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시요 전지 전능의 주권자이신 이분 한 분이면 우리는 다라는  이 사실과 주님의 말씀은 한마디도 가감 없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이 사실을  믿는,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할라고 하는 요 세 가지,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할 라는 요 세 가지만 있으면 갈릴리 바다와 같이 이  세상은 무난히 걸어 갑니다. 무난히 갈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없어. 문제 없이  걸어가.

 뭐 공산주의라도 상관 없고 민주주의도 상관 없고 왜정 말년도 상관 없고  우리를 대항하고 해하는 사람이 억천만 명이 있어도 그까짓 거 상관이 없어 온  세상이 감당 못 할 어떠한 어려움이 앞에 닥쳐도 그까짓 거 문제가 없어.

그렇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지글거리는 그런 것을 귀에 담지  않습니다. 그저 상대방이 불쌍해서, 상대방들이 불쌍해서, 다른 사람들이  불쌍해서 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말을 하지, 그 사람들이 살고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을 하지 자기 걸어가는 길이 염려나 두려워서 말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믿는 성자 성녀라도 자기에게 하나님에게서 볼때에  거리낌이 있다 할 때는 놀래고 떨면서 견디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주님과 자기 사이에 거리낄 것이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요것을 가르쳐서 믿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이것이 과학도 아니오. 과학의  이치에 맞는 것도 아니요, 이제까지의 살아 나온 모든 이런 저런 통계에 맞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만 사모하고 바라보는 것이그 마음에 가득  찼고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 요 세 가지면 풍랑 많고 인정이 없고 파란  곡절이 심한 거짓이 가득 찬, 악령이 가득 찬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이라도 훌훌  날아서 자유롭게 얼마든지 흔들면서 걸어갈 수 있다 하는 이것은 믿는 자만이  알 수가 있고 믿어 보면 누구든지 알 수 있습니다. 믿어서 그러면 돼지.

 이렇게 내가 잘못해 가지고 피투성이가 되고 죄를 지어서 이제는 요동 못 하는  사형을 받는다는 그런 지경이라도, 어느 지경까지 이르렀든지 상관 없습니다.

어데라도 그만 자기 심신에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가득 찼으면 그만  해결이오. 가득 찬 것은, 예수님도 창조하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이시요 또  주님의 말씀인 이 진리도 없는 가운데서 만물을 창조한 이 진리인데 이렇게  모든 피조물을 지은 피조물과 비교 못 할 지극히 크신 분이 자기 마음 속에  자기 안에 가득 찼으니까 문제가 뭐 할 것이오? 그런 것들이 뭐 어떻게 할  것이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가득 찬 사람을 가리켜서 성경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 사람을 뭐이라고? 예? 뭐이라고요? 성전, 성전, 주님이 계시고  주의 말씀이, 그러기 때문에, 지성소 안에 법궤가 있고 법궤 위에 그룹 사이에  지극히 크신 대주재가 거게 계신다는 것을 성전에 그렇게 모형해서  만드셨습니다.

 이러니까 어리석은 거 같지마는 공부하는 학생이 공부는 머리에 두지 안하고  주님과 주님의 말씀만 그 마음에 가득 차고, 이거는 뭐 마치 쌀 자루에 푹  구멍이 뚫어지니까 쌀만 좔좔 나오고 물 푸대에 구멍이 둘리니까 물만 좔좔  나오는 것 처럼 주님과 주님의 말씀만 그속에 가득 차 있어. 있으면 공부는  언제 하고? 사장 노릇은 언제 하고? 대통령 노릇은 언제 하고? 그러면 문제  없어. 주님과 주님의 말씀이 가득 차 있으면 갈릴리 바다를 걸어갈 때에  제자들에게 어려움이 없이 순풍에 돛 단 듯이 걸어갔다 어데서든지 주님과  주님의 말씀만 그 심령속에 가득 차고 주님만 있으면 다 된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하는 요 일이 있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주님이, 주님의 말씀만 생각했는데 그때 주님이 '아, 내가 이  말을 가서 해야 되겠다. 이 말을 전화로 해야 되겠다.' 말할 것 전화로 할 말은  전화로 하고 또 만나 말할 거는 만나 말하고, '아, 여게 대해서 생각해 봐야  되겠다.' 또 생각해 볼 거는 생각해 보고 '아, 또 공부, 숙제를 해야 되겠다.'  이 속에 주님과 주님의 진리로만 가득 찬 그 심령 속에서 공부해야 된다고  생각이 나올 때 공부하는 자는 지극히 큰 능력이 거게 같이 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따라올 수가 있습니까? 그럴 때에 무슨 일을 할라고 생각이 나서 할  때에는 그는 주님의 명령이요, '내가 오늘날 네게' 하는 오눌날 네게 명하는 고  명령이라. 이러니까 그 명령은 지극히 큰 능력 이 그 안에 들었어.

 그러기 때문에. 그래 가지고 '아, 주님이 공부하라니 공부해야 되겠다.' 또  공부를 그렇게, 내일은 시험치는데, 월요일날은 시험치는데 이거 공부 하다  보니까 열 두시가 딱 됐습니다. 됐는데, '이제 주일이니까 공부하지 말아라.'  뭐 공부할 거는 많이 미뤄 놓고서 공부 못 했는데 어짤 것이오? 공부를, '아,  주일이니까 공부 말아라.' 그 사람이 죄 짓고 돌아다니다.가, 그 학생이 죄  짓고 돌아다니다.가 그렇게 됐으면 안 되지마는 주님 사모, 주의 진리의 말씀만  사모하는 그거 지키다가서 사람이 하라 하는 공부를 다 준비 못 했다 말이오.

못 했지마는 또 주일날 열 두시가 지나고 나니까 자기가 보든지, 또 열 두시  지나고 나니까 또 주님이 다른 거, 공부하지 말고 딴거 하라 하면 딴거 하고  했는데. 시험 칠 때에 전능하신, 전지하신 지혜가 그를 붙들고 있으니까 그까짓  인간들이 시험 문제 내놓은 게 뭐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다 달통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믿는 사람이 이 거친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을  통과해서 구원을 완성하는 데에는 요 세 가지만 가지면 세상은 아무 어려움  없는 평안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이 사실을 그들이 확신해야 됩니다. 뭐  어른도 확신하고 아이들도 확신해야 돼요. 제가 아무리 잘나 도, 인간의 과학,  인간의 사상, 수많은 인간의 지식이 그 마음과 그 몸에 가득 차서 그것으로만  움직이는, 자는 백 가지 중에 하나도 산 게 없습니다. 전멸입니다. 다 멸망할  것뿐이지 사는 게 하나도 없어. 요거 하나 가르치고.

 우리 속에는 주님과 주의 말씀으로만 가득 채우고 우리의 움직이는 것은  주님이 명하는 데 따라서 움직이면 그만 전지자라 전능자라. 인간에게 대해서  하나님이라. 하늘과 땅에 있는 거 다 통치할 수 있는 만왕의 왕으로 더불어 왕  노릇 할 자라. 이거는 우리가 현실인 이 사소한 일에서 이렇게 해 봄으로써  하나씩 둘씩 체험된 그 사람은 주님이 하라는 명령에 대해서 주저할 것이 없어,  이거 연습해 나온 사람들은 사자 구덩이에 집어 넣는다 해도 집어 넣돈가  말았든가 그까짓 게 상관이 있어? 주님이 시키는 대로 기도하라 했으면 '아,  나는 기도합니다.' '너 여기 절해라' '왕은 내가 절하지 안할 줄 아십시오.

암만 그래도 절 안 합니다.' 왜?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니까 그것이 다  좋았고 성공이요 또 완전이기 때문에 여러 번 경험하고 체험하고 평시에 했기  때문에 요동치 않는다 말이오. 뭐 절 안 하고 불 가운데 집어 넣어 가지고 손해  갔습니까? 사자 구덩이에 들어가서 손해 갔오?

 이것을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믿도록 해 가지고서, 어릴 때는 깨끗한  심령이라. 마귀의 지식이 안 들어 있어. 마귀의 지식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요렇게 가르쳐서 학생들이 '요렇다. 아멘' 하고서 그대로의 사람만 됐으면  됩니다.

 그러기에, 지금 저는 주일 학교에다가 힘을 쓰고 았는 것은, 왜? 어른  천명보다 주일학교 학생 한 명이 낫다고 할 수 있어. 왜? 그거는 출물군  들이라. 연보나 해 가지고서 뭐 주일학교 유지하는 데 도움이나 됐지 저거  구원은 될란가 안 될란가 몰라. 왜? 마귀의 지식이 속에 가득 차 가지고서  하나님 말씀 들어도 만날 제가 생각하기를 제 지식에 비판하고 평가해 봐서 '아  요거는 믿을 만하다' 싶으면 믿으니까 항상 제 기존 지식과 자기 주관이  원형이고 하나님 말씀은 모형이라. 그거 바탕이라. 그 바탕에 따라서 하니까 된  거 같으나 안 돼. 성공 같으나 실패자라.

 그러기 때문에. 학생들은 빈 마음이라. 가난한 마음이라. 마음이 비었어.

이러기 때문에 하나 하나 주입적으로 이렇게 가르치면 그 속에 들어 가.

들어가면 믿어. 학생들이 믿는데 배암은 요 믿는 걸 잡아 뽑기 위해서 학교에  가면 지식을 가지고 자꾸 고걸 집어 넣어서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게 해,  이러니까. 그라면 이거는 빠져 나가고 그거는 나가면은 그 주일학교는 실패요.

하나님 말씀은 지극히 전지 전능의 능력 있는 말씀이 요 그까짓 인간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은 예를 들면은 무겁기가 금같이 무거우면 인간의, 지식은  불티같이 가벼운거라. 하나님 말씀은 그 자 안에 집어 넣어 놨으면 못 빠져  나간다 그 말이오. 이 세상 지식이 밀고 나가지 못해.

 이러기 때문에 위천 교회에 있을 때에 주일 학교 학생들에게 요렇게 가르쳐  놨으니까 교장이 암만 시켜도 안 되니까 교회서는 일주일에 한 번 밖에는 안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엿새 동안 계속 가르쳐도 가르치는 말씀은 소용없고 한  시간 가르친 것만 그것만 속에 들어 가지고서 '아. 암만 해도 우리는 국기에 절  안 합니다.' 이라니까 그만 분해서, 학교 교육은 그 속에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식의 말씀은 그 속에 들어 가지고 박혀 가지고 있으니까 분해서  나중에 이라다가 뚜드려도 안 되니까 뭐 얼마나 뚜드려 그만 피를 흘리고 소동  했다 말이오. 하나님은 같이 계셔.

 그러니까 시험할라고 하나님께서 '네까짓 것들이 암만 해 봐라.' 거창  경찰서에서 모두 무장한 경관들이 와 와 가지고서 항복 시킬고 아래 왔 다  말이오. '예수 믿는 학생 이리 나오너라.' 쭉 다 나와. '여게서 국기 배례 할  학생들은 용서할 거고 안 할 학생들은 다 처벌할 터이니까 국기 배례 할  학생들은 도로 들어가고 안 할 학생은 섰거라.' 하나도 안 들어 가. 이래  가지고 한국에 국기 배례가 주목으로, 이래 가슴에 손 대고 주목으로 변경된  것이 그 시험오고 뚜드려 맞아서 피 흘리고 한지 사흘 만에 그게 그렇게  변동됐습니다. 고 승리를 보고 변동해 주셨는지 안 해 주셨는지 모르지마는  어쨌든지 한국의 국기 배례 문제는 그때에 그런 지, 그 시험 환난 있은지 삼 일  후에 변동됐었습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그 학생들에게 지금 그 학생들은 깨끗한  마음이기 때문에 주입을 시켜 줘요, 자꾸, 뭐 학생들에게 감동시킬라고 하는  그런 거 하지 말고, 감동보다도 그들에게 '성경 말씀은 이렇다 이렇다' 속에  집어 넣어 진. 집어 넣어 주면, 여러분들 말에다가 금 덩어리를 집어 넣는데 막  폭포수를 들이 쏟는다고서 금 덩어리가 떠나갑니까 안 떠나갑니까? 대답해  봐요. 떠나갑니까? 떠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손 들어 봐. 안 떠나가. 수도물  가지고 막 이래 칙 세게 하든지 막 이라면 떠나갈까 안 떠나가. 무거워서 못  떠나가. 물은 띄우지를 못해. 물 힘은 이래도 못 띄워 놔. 그거 모양으로 그  속에 주님이 어떠한 주님 이라. 진리의 주님의 말씀은 어떠한 말씀이라 하는  것이 저들에게 들어서 '아. 아멘' 하고서 그 속에 딱 믿어지고 속에 박혀 있는  것은 뽑아내지 못한다 말이오. 그러면 그 말씀이 그 사람들을 승리케 만들어.

 또 그 다음에 보니까, 제자들이 지금 예수님이 오니까 물귀신 온다 하면서  그만 못견뎌서 막 나 죽는다고서 고함을 지르는데 예수께서 '내로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주님의 말씀을 척 들으니까 그만 그들에게 두려움이 없어지고 평안이  왔다 그거요.

 이와 마찬가지로, 인생아 내가 어떤 난제를 당했든지 당하거들랑 그 난제를  네가 해결해 볼라고, 아, 이것은 법관에게 가서 교제를 해야 되겠다 경찰서  경관에게 교제해야 되겠다, 검찰에게 가 가지고 검사에게 가서 교제해야  되겠다, 판사에게 교제해야 되겠다, 뭐 시장에게, 지사에게 중앙청에, 뭐  대통령에게 어떻게 해야 되겠다. 이 사건은 요렇게 조렇게 돈을 들여야 되겠다,  뭐 꾀를 부려야 되겠다 하는 자는 자꾸 구렁텅이에 빠져 들어가서 죽고 마는  것입니다. 거게서, 그 멸망에서 건져 내는 이는 예수님 뿐이라. 하나님이 사람  되어 오신 것은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왔어. 완전히 건졌지  못 건진 게 없어.

 이러니까, 그런 어려움이 있거들랑 일이야 그까짓 거 뭐 거꾸로 가든지 어찌  가든지 집어 던져 버리고, '아. 제자들이 그렇게 풍랑 만내 가지고서 곤란 당할  때에 주님의 음성 들으니까 그만 그들에게 평안 왔다. 나도 하나님의 맣씀을 좀  들어야 되겠다.' 그만 저 보따리 싸 짊어지고 그만 그래 안하면 뭐 좀 먹을 거  가지고 가든지 성경 가지고 가서, 성경 가지고 '가서 그만 어짜든지 뒤에 가서  뭐 뭐 일이 되든지 말든지 먹을 거, 뭐 보름이든지 열흘이든지 한 달이든지 가  가지고 자꾸 성경 읽어. 성경 읽으면은, 성경을 읽고 나면 차차 차차 마음에  근심 걱정이 없어질 거라. 근심 걱정이 있어서 죽을 지경인데, 여기 성경에  있다 말이오.

 성경에 있는데 성경을 탁 펴면은, 펴고 한참만 읽으면 근심 걱정이 없어질 줄  알아도 성경을 들고 펴질 못합니다. 거게 있는 성경이라도 이 말씀을 읽으면  해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가 말씀을 읽는다는 것이하면 될 줄 알아도  어렵소. 그게 어려워.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옆에 사람이 '성경 봐라.

성경 보면 된다' 해도 성경 보기가 힘든다 말이오. 그때 성경 만 턱 들고  읽으면 우리 마음 속에 근심 걱정의 고통이라는 거는 물러간다 하는 것을  여게서 가르치고 있다 말이오. 해 봐야 물러가는 줄 알지 그리 안 하면 몰라요.

 '저놈이 내 원수니까 저거 죽여야 되겠다.' 원수가 그속에 불붙듯이 붙어서  마음에 평강이 없는 그런 고통스러운 사람도 성경을 자꾸 읽으니까 원수가 다  달아나 버리고 없어. 그렇게 밉던 원수가, 오히려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를  사랑해야 되겠고, 원수인데 그 사람은 옳고 내가 틀렸으니까 내가 가서 사과를  해야 되겠다 이렇지, 모두가 다 해결이라.

 그런고로, 여게서 제자들이 주의 음성 들으니까 놀랬던 그 주관적 평강이  이루어겼습니다. 주관적 평강이 왔어. 주관적 평강은 이루어졌지마는서도  아직까지 바다 물결은 막 흉용하게 지금 야단입니다. 야단이거나 말거나 주의  음성 들으니까 그 심령 속에는 평안이 왔다 그거요. 평안이 왔는 데 나중에 그  물결은 언제 없어졌습니까? 주님이 배 위에 척 오시니까 그만 바다가 잔잔하고  물결이 없어졌다 말이오.

 우리는 이 갈릴리 바다와 같은 이 세상을 거쳐 갈 때에 주님의 말씀으로 그  마음에 채우는 사람은 그 심령에 평강뿐이지 근심이 없고,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그자에게는 세상 환난이 없어. 환난 그런 것이 문제가 없어. 뭐  환난이 없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는 환난이 안 되지. 기도 하는 사람들은 다  사자 구덩이에 잡아 넣는다 하니까 그거 환난이오 환 난 아니오? 환난이오,  환난 아니오? 환난인데, 주의 말씀과 주님이 그 심령 속에 가득 차고 주님과  동행하는 다니엘에게는 그게 환난이오, 기쁨이오? 기뻐했소 두려워했소?  감사했어. 하 또 이거 주님의 영광 드러낼 것이니까 감사했어.

 그런고로, '주님의 말씀은 우리 속에 지저분한 세상으로 말미암아 번민 고통을  다 제거하는 능력의 말씀이다. 주님만 모시고 주님과 자기와 동행 만 하면은 온  세상 환난은 그환난이 도리어 기쁨이다.' 대목장 되면은. 대목장이 되면은  장사꾼이 좋아해요 안 좋아해요? 좋아해요 안 좋아 해오? 예? 좋아해. 왜?  대목장이 되면 돈 많이 벌 것이거든. 이러니까, 환난이 오는데 주님과 동행하는  자에게는 대목장 그와 같은 그런 기쁨을 가져요. 왜? 환난이 왔는데 그 환난  통해서 큰 수입이 오거든. 사드락, 메 삭 아벳느고도 큰 수입 했거든. 다니엘도  큰 수입을 했거든. 요셉이도 그 환난 환난 수입 수입에서 애굽 나라 총리 대신  됐지.

 그런고로, 내 몸 밖에 있는 세상의 모든 환난을 네게 유익된 환난으로 잔잔케  하려느냐? 주님과 동행해라 네 심령 속에 평강을 가지고 싶으냐? 주의 말씀으로  네 심령에 채워라 요거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또 물위로 걸어 갑니다. 베드로가 주님 만나고 나니까 그만, 주님  만나고 보니 어떻게 좋은지 그 마음이 주님에게 다 쏠렸어. 이제 풍랑 만나서  주님 잠깐 잊어 버렸다가서 주님이 내로라 하는 주님을 떡 보니까, 좀전에 오병  이어로 오천 명이 먹고도 남은 그 주님이 오셨으니까 이분 한 분이면 됐다는 그  주님이 왔으니까 얼마나 좋겠소? 이러니까, 베드로가 그만 주님이 앞에 나서  가지고서 내로라 하니까 얼마나 좋았던지 '나를 구원하신 참 내 주님이시면  나를 주님 앞으로 오라 하소서. 내 소원은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고 싶은  것밖에는 없습니다. 주님 앞에 가까이 가고 싶은 것뿐입니다.' 이래서. '내  주시어든, 만일 주시어든 나를 주께로 오라 하소서.' 주님 앞에 가까이 주님  앞에 가까이 가서 주님 앞에 가고 싶은, 주님 앞에 가까이 가고 싶은. 주님하고  들어붙고 싶은, 주님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주님과 같이 있고 싶은, 주님에게  소망 두고 주님과 가까이 하고 싶은, 주님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이 소원을  가지고 주님에게 '오라고 하십시오.' 주님의 명령을 따라가야 되지 주님의 명령  없이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말이오. 그러니까, 오라고 하면, 오라 하니까, 뭐  물위로 오라 하니까 물이고 뭐이고 그까짓 거 보지도 안하고서 그만 주님  앞으로 달음질쳤다 말이오.

 여기에는 물위에 걸어 간다. 인간이 성도들이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가 고 싶은.

주님에게 욕망하고 주님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서 주님이 명하시는 대로  복종하는 것으로만 주님에게 가까이 가지 다른 걸로는 갈수 없기 때문에,  기독자들이 주님 한 분에게 욕망 해서 주 앞으로 더 가까이 내 주를 더 가까이.

주님에게로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 주님 앞에 더 가 까이 가고 싶은 그  욕망으로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복종하는 데에는 세상을 발 아래 밟고 갈  수 있다, 초인간적인 걸음을 걸을 수 있다.

 신앙가들은 다 초인간적인 걸음을 걸었습니다. 초자연적인 걸음을 걸었어. 뭐  경제면에도 초자연 걸음을 걸어 봤고 환난에서도 초자연 걸음을 걸어 봤고,  조그만한 사람 혼자가 일본 나라도 대항을 해 봤고 공산주의도 대항을 해 봤고  온 전국의 교파가 달라들어도 꼼짝도 안 하고 대항도 해 봤고, 이러니까, 이제  주님 앞으로 가까이 하고 싶어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하고 가까이 하고 싶은 요  주님 한분에만 욕망 가진 그 사람의 걸음은 세상을 발 아래 밟게 됐다  그말이오. 이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라다가도. 그렇게 뭐 물위로 떠벅떠벅 걸어가다가도 주님 보던 눈이 주님 안  보고 물결 보고, 주님 보고 안심하고 평안했던 마음이 물결 보고 두려워 하니까  별수 없어. 빠져 들어가. 믿는 사람이 아무리 신앙의 걸음을 걷다가도 피조물  보고, 주님 바라보지 안하고 피조물 바라보고 주님으로 말미암아 안심하고  담대하고 평안 가지지 못하고 피조물로 말미암아 근심 걱정 가지면 별수 없어.

세상에 빠져 들어가. 안 빠져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요것을 똑똑히 가르쳐서 요런 학생들이 되면 한 사람이 억만 명도 더  당합니다. 우리 이 한국 공회 있는 교역자들 가운데에도 한 교역자가 전 교역자  전부보다 일하는 것도 더 권위 있게 일할 수도 있고, 또 한 사람이 한국 교회에  있는 목사 전부를다, 전부보다도 더 일 많이 할 수도 있 고 한 사람이 온  세계를 다 점령할 수도 있어. 이거는 뭐 돈이나 학문이 나 암만 봐도 '이  사람은 공부를 많이 했다 철학 공부를 많이 했다, 과학 공부를 많이 했다, 돈이  많다. 잘났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말씀이면 성령이니까,  하나님과, 우리를 대속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만 가득 차니까 그거  가지고서 다 됐어. 뭐 딴거 가지고 됐습니까? 에이 비이 씨이 몰라도 돼.

문제가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학생들을 요런 학생들을 만듭시다. 그 속에 집어 넣어. 자꾸. 자꾸 집어  넣으면 돼. 그런 아이들은 지금 전대와 같아요. 주입시기라, 주입시기에 넣으면  솎에 들어 가. 들어가 놓으면 인 나와. 지금 이래 생각해서 구하는 그런 때가  아니오.

 이러기 때문에. '주일 학생은 그저 하나님 말씀을 주입식으로 집어 넣으라'  우리 서부 교회 주장은 그런데, 일반이 모든 주일학고 한국 교회 세계 교회의  주일학교들은 그게 아니라. 아동들의 심리를 요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해석해서  요리 심리들에게 이해를 시키고 무엇을 심리에다가, 심리에다가 이해를  시킬라고, 연구할라고 시키는데 우리는 연구시기가 아니기 때문에 주입시기라.

주입시기로 주입을 하니까 속속 들어가서 박혔지마는서도 연구하라하는 그거는  연구 하라 할라고 별 이용을 다 해서 동화 뭐 거짓말 다 하지마는서도 도리어  믿음 하나도 안 생겨져, 이러니까, 그 아이들 커 놓으면 '아, 성경은 거짓말  잘하는 게 성경이라.'  언제 하기 아동 성경 학교 강사들 준비한다고 준비 강습회라고했는데 가  보니까, 한 시간 가니까 '이제 창세기 1 장으로부터 계시록 끝장까지 이 이렇게  동화를 만들면 잘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교수라. 어느 학교 교수라는  말 내가 안 해. 교수인데, '그렇게 동화를 다 만들 수 있습니다. 한번 만드는  거 볼랍니까' 이라더마는서도 에덴동산을 말했어. 에덴 동산에는 걸어가니까.

이래 걸어가니까 발 밑에서 장그랑 장그랑, 장그랑 장그랑 장그랑 장그랑. 또  이 의자에 앉으면 이 의자가 바바바바바바바바바 바 바 바 이란다고 이래  놓으니까 아이들이 뭐, 그래 가르쳐 놓으니까 성경 말씀은 순 거짓말  원뿌럭지라,' 성경 말씀 한 성구 가지고 거짓말 이리도 하고 저리도 하니까  거짓말의 원뿌럭지가 거짓말의 종자가 성경 말씀 해 났으니, 자. 성령이 그리  하겠소 마귀가 그리 하겠소? 뭐이 그리 하겠소? 이래도 몰라 이래도 몰라.

 아러니까, 하나님의 말씀만 가르친다 하니까 온 사람들마다 '어린 아동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면 그거 될까요?' 이래. 성령 어데 갔는데? 성령이 알려 주면  알지 모를 게 뭐 있습니까? 어쨌든지 주입식으로 집어넣어 주십시오. 진리의  말씀을 그. 속에 집어 넣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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