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의 표적

 

1984. 2. 7. 오전 교역자회

 

본문: 마태복음 10장 5절∼8절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여기에 말씀하신 이 이적을 이것을 표적으로 볼 것인지, 그렇지 안하면  영적으로 해석을 해서 영면으로 되는 것을 육체의 것으로 이래 표시한 것으로만  그렇게 하나의 표시로만 볼 것인지 이것을 표적으로 볼 것인지 그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이 영적으로 이렇게 본다고 하면은 영적으로 되는  그것을 말로 하나의 이렇게 표시 방편이 되겠고 또 이것을 표적으로 본다면 이  표적이 나타내고 있는 속에 내용인 우리의 영적 구원까지도 연결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여기는 우리가 그만 문자 그대로 병 고치는 표적으로  이렇게 보는 것이 좋은 줄 압니다.

 또, '죽은 자를 살리며' '죽은 자를 살리며' 하는 이것은 그라면 표적으로  본다면 어떻게 볼 건가?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그  능력의 역사의 범위가 어디까지 나타나느냐 하는 그것을 아주 어려운 한계까지  다 포함해서 말씀하신 것인 줄 압니다. 우리가 무슨 병 같은 것은 거석하지마는  죽은 자를 살리야 되는 그런 때도 있으니까, 죽어서 뭐 썩고 냄새나는 그런 것은  아니지마는 죽은 자를 살리는, 살려야 되는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혹  기절했든지 무슨 가서 어떤 것이, 그 생명이 잠깐 기절되어 있는 그럴 때에도  우리는 '이건 성경에 없기 때문에 이런 기적은 할 수 없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만 끝을 맞기 쉽기 때문에 그럴 때에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살아날  자는 살아날 수 있다 하는 그것도 우리가 표적으로 그렇게, 그런 역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 해 주신 것입니다.

 또,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이거 뭐 문둥이라고 하면은 참 얼추 종기 나오는  것은 막져 보면 그 문둥병인데, 이런 문둥병 종자가 성경에 봐도 많이 있고  그러니까 이런 병 저런 병 그것을 '깨끗게 하며' 이것도 영적으로 해석해  가지고, 물론 그러나 이걸 표적으로 본다면 이거 문둥이나 이런 병자를 깨끗이  하는 그것이 예수님의 피공로와 또 성령과 진리의 이 역사로 인해서 모든 참  이런 저런 병든 그런 인격의 병든 것을 다 구출해 낼 수 있다는 그런 목적을  위해서 이 표적이 나타나는 것이고. 이 표적이 냐타남으로 말미암아 그런, 복음  운동을 위한 표적이요 복음 운동의 그 내용 실질적으로는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그 해석하는 것이 그만 너무 초절적으로 되어서,  현실과 떨어진 그런 초절적인 그런 교훈이 되어서 실질적으로 이루어 나가는 그  실상을 이루는 데에는 많은 손해가 가는 줄 압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거는  표적으로 보고 그 표적으로 인해서 영적의 그런 모든 치료도 가능한 것으로  그렇게 이 순위로 봐서, 표적으로 보면 이중으로 그 외부까지 강조하게 되고  영적 해석으로 보면 외부에 나타나는 그 현상계에는 아무런 상관없는 초절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도리어 그것이 애매하게 되는 그런 일이 많이 있겠습니다.

 그런고로, 이것은 실지로 우리가 병든 자를 고치고 또 죽은 자도 살릴수 있고,  다가 아니고 복음을 위해서 필요한 데는. 바울이 삼층에서 설교하다가 성경에서,  떨어져 가지고 그 사람이 기절하니까 위해서 기도해서 다시 나은 것. 또 우리도,  아마 여러분들도 그런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혹 가다가 꼭 그 사람이 생명이  끊어졌었는데 그때에 다급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그 생명이  회복되는 그런 것도 체험도 하고 다 구경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문둥이를 깨끗게 하며' 이런 것 다 피부병인데 피부병 않는 그거는  또 우리가 기도해서 다 낫는 것은 아니지마는 어떨 때는 보면 그 사람이 볼  때에는 '이 사람의 이 병은 이거는 꼭 낫아야 되겠다' 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낫아야 되겠다고 기도하는데 또 어떤 사람이 보면 그 사람을 볼 때에는  '나아서는 안 된다 좀 더 오래 고통을 가져야 된다.' 그 견해가 다르다 이거요.

그러면 나아야 된다고 간청하는 그 사람의 견해가 주님의 뜻에 맞았는지, 이  사람은 지금 나으면 안 된다 좀 더 고통을 좀 고생을 더 집어 먹어야 된다 하는  그 사람의 견해가 맞은지 그것은, 다 그렇게 맞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 환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데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  이루어지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안하면 이루어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표적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그 기도한 바가 응답 되는  그 양이 많은 사람 있고 적은 사람 있고 이라는데 그 믿는, 자기가 믿는 믿음이  약하고 믿음이 강한 그것도 있고, 또 비판한 그 비판이 정확하고 또 정확지 못한  그런 것도 있어서 기도하는 결과의 응답이 달라지는 그런 것입니다. 또  기도하는. 기도하는 힘도 다르고 기도하는 제목도 선택이 잘못된 것도 있고,  잘못된 문둥병을 고쳐달라고 이라면은 하나님께서 안 고쳐 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거석해도. 또 고칠 수 있지만 그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이나 기도 받는  사람이 믿음이 없어도 그 일이 또 안 될 것입니다.

 이러니까, '문둥이를 깨끗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그러면, 귀신 쫓아내는  이것을 신령적으로, 영적으로 해석한다 해 가지고서 하는 그것이 오히려  유익되지 못하고 도리어 사람을 초절시켜 가지고 하나님과 밀접한 그런 실질적인  그런 관계를 가지지 안하고 스스로 위로를 받아서 스스로 속는 일이 되기  쉽겠고, 영적으로만 말할 때에 속는 일이 되기 쉽겠고 이것이 실질적으로 이거  표적이다 아 표적이니까 표적이라 하면은 그 안에서 영적으로 그와 같은 그  치료된다는 그거는, 표적이라면 그 표적이라는 그 자체가 이런. 사람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표시를 하는 이거는 그속에 영적으로 하나님이 역사할 수 있다는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여기다가 나타내어서, 보이지 않는 그것을 여기에 흔적으로  나타냈다 하는 그것이기 때문에 표적으로 보고 신령한 영적면으로 보지 않는  것이 좋을 줄 압니다. 표적으로 보면 그 안에 신령한 영면은 표적 그것이  나타내는 그것이 내용이 내나 신령한 면이기 때문에 그러면 초절되지 안하고 그  순서가 바로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 교역자들은 무엇이든지 현재 표적으로 나타나야 될 그 일을  표적을 떼 내버려 버리고 영적 해석이라 하면은 거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이  와서 역사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뭐 또 역사하기를 꼭 바라지 안해도 되고 또  영적 하나님의 역사가 없어도 자기가 피할 수있고 또 하나님 역사가 와서 꼭  와서 해 줘야 되겠다는 그렇게 간곡한, 밀접한 관계 그런 것도 없게 되니까 자꾸  우리는 해이해지고 나태해지고 그만 자꾸 자기의 주관화되어서 이렇게 나가기  쉽겠습니다.

 제가 그때 ○○ 신학교 다닐 때에 진해에서, 진해 그때 교회가 그때는 많지  못했는데 진해에 ○장로님이 그 교회를 개척교회를 하고 ○○신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공부를 했는데, 그때는, 그때 배로 갔소. 육지로 가는데 진해 같으면  육지로 가는 데인데 그때 모두 차비 관계로 그랬는지 다 배로 가요. 어려운 때,  이러니까 배로 저리 가면 돈이 적게 들고 이랬는데 그 교회 집회를 청하면서  같이 인제 배로 가는데 그때 그 사람들은 모두 경제가 어려워서 인제 배로,  육지로 갈 건데 왜 배로 가나. 배로밖에는 갈 수 없는 그런 무슨 이유가  있었어요. 지금 내가 생각하니까 아마 여비 관계로 그리 된 것 같습니다.

그라면서 배를 타고 그 사람이 말하기를 나한테 미안하다고 미리 함부레 말하는  거라. '아 조사님 저는 이거 차를 타면 차멀미를 많이 해서 한번도 안게울 때가  없고 게우고 모두 이래 해서 이럽니다. 그러니까 그걸 좀 이해를 해 주십시오.'  나한테 함부레 그런 일을 당해서 내게 대해서 그저 마음에 부담될까 해 가지고  미리부터 통고해서 그런 말 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생각하기를 '이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되고 또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입으면 꼭 다니면서 뭐 할라고 신학 공부하는데  자꾸 배멀미를 않아 가지고 오고 가는데 장 게우고 그럴게 뭐 있는가?' 이런  생각이 나서 내가 그때 말하기를 으뜩 그런 말을 했어. '하나님께 기도하지요.

기도 하면 괜찮지요.' 이래 놨다 말이요. 이래 놨는데, 그러니까 그 사람은 들을  때에 뭐 예사로 듣고서 그저 하는가 보다 이랬는데 그 말 해 놓은 나는 아주  그만 졸린다 말이요. 등이 졸려요. 이래 말했는데 아 그 사람이 같이 가면서  그래 차멀미 않고 하면 안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하고 뭐 이야기 같이  보통으로 가면서도 내 마음은 조려서 그 배를 내릴 때까지 마음이 졸린다  말이요. 속으로 말은 안해도 '주님이여 이 같이 가는데 내가 이렇게 기도를 같이  하고 이랬는데 이 사람이 배멀미를 해 가지고 게우고 이라는 날이면 내나 그  기도에 대해서 권위 없는 것을 인정할 것이고 그리 되면 거기에서 설교를 해도  그저 하나의 이 무슨 약장사가 말하는 것처럼 그래 뭐 듣지 하나님 말씀을  권위있게 듣겠습니까?' 이러니까, 이것이 지금 문제라 말이요. 주님이 와 가지고  그걸 도와 주셔야 배멀미를 안 하고 안게울 터인데, 안 게워야 이거 무슨 권위가  나타나고 그래도 좀 그 사람에게 인정이 될 터인데 문제라.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졸려서 자꾸 속으로만 기도한다 말이요. 그렇지 않도록 해 달라고서  기도했는데, 배멀미를 하지 안하고서 다 건너왔어. 그래 오더니마는 가서 내리며  말하기를 아 오늘은 조사님하고 이래 같이 오니까 내가 배멀미를-배멀미라  합니까? 배멀미.-배멀미를 안했습니다.' 이 뭐 기쁘고 즐거워서 이라면서 그래  그날 밤부텀 시작해서, 금요일날 밤부터. 신학 공부 마치고 가서 시작하는데, 밤  부터 시작하는데 첫시간에 그 사람이 그걸 광고해요. 내가 갈 때마다 배멀미  앓아 가지고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이라는데 그라니까 이 조사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도하면 괜찮은데 그럴까 보냐고. 그래 같이 기도하고 이래 기도해  주디마는서도 올 때 배멀미 안 하고 잘 왔다고서 이걸 선전하니까 그 사소한  일이지마는서도 하나님이 같이 하신 일이 되어 놓으니까 온 교인들이 아 이거  인제 이 조사님은 이거 소문 듣기에 그렇더니마는서도 이거 참 다른가 보다.'  그러니까, 한 말씀이라도 증거할 때에 그 말씀을 듣기를 신중히 듣더라 이거요.

그래서 그때 참 한 여덟 시간, 여덟 시간 증거하는데 큰 은혜를 그때  끼쳤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자꾸 생각이 나져.

 또 생각이 나기를 '아, 우리가 이거…,' 기적, 표적,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병고치는 것, 귀신 쫓아내는 것, 문둥이를 깨끗게 하는 것,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런 권능을 우리에게 주시고 이것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라 그 이랬는데 그만  이것은, '그것은 아주 유치한 걸음이다.' 유치하기야 유치하지요. 그 위에  진리요 그 진리 위에 영감이요, 이래 유치하지마는서도 그걸 그만 무시하는  가운데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 간절한, 마을을 기울이는 것이 자꾸 이게 좀  성글어지고 또, 아무 표가 없으니까, 현재 나타난 표가 있어야 될 터인데 뭐  말씀을 증거하는 거야 영감인지 뭐인지 말뿐인지 말만 줄줄 잘하면 되는 것이지  아무 나타나는 표적이 없으니까 표적이 없으니 마음이 눌리지 않는다 말이요.

'자, 이 병이 이렇게 있는데 여기 환자가 있는데 네가 한번 기도해라. 네가  기도해라. 또 내가 기도 하자, 그러면, 너와 같이 계시는, 하나님이 이제 같이  계시는지 나와 같이 계시는지.' 이거 내나 엘리야 모양으로 하는 그와 같은  것이라 말이요. 만일 그렇다고 하면은, 그때 그런 일이 없으면 뭐 기도하면  이러나 저러나 중얼 중얼 기도만 해 버리면 그만인데 하나님이 직접 와 가지고  역사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그게 문제라.

 이래 돼 놓으니까, 그리 되면 우리가 고때에 하나님께 대하는 것이 달라지지  않느냐?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을 하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나 안 하나 하는  그것을 뭘로 보고서 알았느냐?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하는 것을 뭘로 보아 알겠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그 표적이 뭐이냐? 그 표적이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그걸 말했어.

우리가 이렇게 전할 때에 베드로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역사하심같이 성령이  와서 역사하신다. 성령의 역사가 성령의 감화가 우리 가운데 있으니 우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이 이들도 구원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이분들을 구원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그 표시가 성신의 감화로 표시가  됐으니까, 우리에게도 이렇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성령이 역사하시니까 하나님이  이들을 구원하시는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 그라면서 담대히 그때 이방인에게  세례를 줬다 이거요.

 또 그러면, 또 성신의 감화가, 성신의 감화가 왔는지 마귀 감화가 왔는지 뭐이  왔는지 또 자기네들이 이 뭐 성신의 감화 왔다가 행동과 태도를 잘한다고 뭐  어떻게 한다고 해 가지고 그걸 모르겠다 말이요. 성신의 감화 역사가 와서  역사하는지 안 하는지 그것을 표시해 놓은 표시가 뭐이냐?  사도행전, 사도행전 10장 46절에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임을  들음이러라' 그 사람을 이 성신의 감화가 왔는지 안 왔는지 그 표시가 아 보니까  그 사람들이 그만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그 사람들이 못 알아  들을 말을 다 알아 듣고 이 하는 말을-지금은 방언을 중얼 중얼하는 걸  하지마는서도 그 방언의 시발이 사도행전 2장에 예루살렘에서 그때 삼천여 명이  방언을 했는데 그 방언한 그 시발은 무슨 방언이냐? 한 나라 방언을 가지고서  설교를 할 때에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자기 나라 방언이 아닌데 생전 알지도  못하는 말로 할 때에 그 말을 다 알아 들었기 때문에 이걸 방언, 방언 역사가  됐다 말이지요.

 그러니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듣는 방언, 자기 나라 말이 아닌데,  생전 어학을 배우지도 안했는데 안 배운 언어로 가지고 말할 때에 그 언어를  듣는 그것이 방언의 권능이라 말이요. 방언을 듣는 것, 남의 나라의 방언을 듣는  것. 또 남의 나라의 말은 하는 것. 이러니까, 방언은 예루살렘에서 처음 방언은  듣는 방언이요 또 그 다음에는 하는 방언이라 말이지요. 이러니까, 성령이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하는 거기에 대해서 하나님의 도리를 전해 보니까 그  도리를 알아 듣는 그 역사가, 그들에게 진리를 알아 듣는 그 역사가 있더라  그거요. 그걸 보고. 또 그들이 하나님에게, 하나님 높인다고 간단하게 이래 쓰여  가지고 있지마는서도 참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인정하고 그분을,  하나님의 지극히 크심을 그들이 알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더라 이거요.

 이러니까, 볼 수 없는 하나님이, 하나님이 구원을 성령의 감동으로 표시를 하는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표적은 성령의 역사요 또 성령이 그들에게 무슨 영인지를  모르나 그 성령의 표적은, 성령의 표적은 그들이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드러냄이라. 성령의 역사의 표적은 진리로 나타났고, 또 진리의 표적은 뭐이냐?  진리의 표적은 이제 병낫는 것 또 병 고치는 것, 또 그 표적이 뭐이냐? 병낫는  것 병 고치는 것, 죽음 앞에서도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표적, 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표적, 독침 앞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외치고 행하는 표적, 사자  구덩이 앞에서도 도무지 지장 당하지 안 하고 거기에서 이 말씀대로 행하는 것  그게 다 표적이라 말이요. 표적인데, 이제 자기가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의 구원이 나타나 하나님의 구원이. 이제 하나님의 구원하신  구원이 성령으로 나타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령의 구원이 또 진리로  나타났고. 진리로 나타난 것, 그러면 그 구원이 진리의, 그 사람이 진리로  구천하는 진리가 그 속에 있느냐 없느냐?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 진리가 있느냐  없느냐 그 표적은 뭘 보고 아느냐? 그거는 그 병자를 고치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귀신을 쫓아내고 하는 그게 표적이라 말이오. 제가  아무리 입술을 중얼 중얼해도 이자 없으면 안된다 그 말이요. 이거 없으면 안돼.

껍데기야 이거 없고.

 그러면 그것보다 더 표적은 또 무슨 표적이냐? 독침 앞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그게 표적이라 말이요. 그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참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하나님 말씀의 표적은 그게 표적인데 인제 이거는 성경에 있으니까 우리가  무시하지는 못하고서 그 표적을 인정하는데-왜정 말년에 모든 사람이 신사 참배  때에 다 굴했는데 신사 참배에 굴하지 아니하고 육 년 동안 감옥에 있는 그  사람들의 그 행함을 인해서 그분들이 진리에 바로 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또 성령에 굳게 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또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이 표적이 아니면 안에 걸 도무지 모릅니다.

 이러니까, 진리의 표적은. 그 사람이 병 고치고 귀신 쫓아내고 문둥이 깨끗하게  하고 죽은 자 살리고 하는 이 표적 이것도 표적이요, 이제 그 표적보다 더 고급  표적은 뭐이냐 하면은 그 사람이 이 세상을 이기는 것이 그것이 그 사람의  표적이요, 이러니까, 다 같이 뭐 신사 참배 때 이렇게 하지마는서도 어떤 사람은  그걸 웃음으로 넘기고 지나가고, 어떤 사람은 그걸 반대하고 지나가고. 맞아도  반대하고, 또 어떤 사람은 뭐 반대도 할 것도 없이 그거는 웃으며 그래 말해도  그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는 꼼짝을 못 하고 이러니까 왜정 말년에 신사 참배도  이긴 그 승리가 참 몇 층어리입니다. 몇 층어리, 제일 훌륭하게 이긴 것은 그들  앞에서 얼마든지 이래 증거를 하고 반대하고,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증거를 해도  그들이 손대지 못한 그 사람이 제일 위대하게 이긴 사람이라 그말이요. 또,  맞아도 거기 굴하지 안한 사람도 또 위대하게 이긴 사람이라.

 그래서 그게 표적인데, 볼 수 없는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는 그 표적은 뭘로  보이느냐? 볼 수 없는 하나님 보기보다는 거기에 성령이 와서 역사하는 것은 잘  보이더라 말이요. 베드로가 보지 안했습니까? 성령이 역사하는 것은 잘 보이고  성령이 역사하는 그 역사보다도 그 입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말을 하고 귀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아서, 보니까 입으로 하나님 찬양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이  진리로 나타내는 걸 봐서 '아 이 사람들에게는 성령이 임했다.' 성령이 임한  표적을 뭣 보고 아느냐? 거기 증거 하기를 '그들이 하나님을 높이더라. 하나님을  높이더라. 이러니까 성령이 역사하신다.' 또.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뭘로  아느냐? 하나님이 이방인도 우리와같이 구원하신다는 그,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그것이 성령으로 표시됐다 말이오. 성령으로 표시하고 뭘로 표시를 했느다냐?  그들의 입 우로 증거하는 그걸 가지고 표시가 됐다. 그러면, 증거하는 진리인데  진리의 표적, 진리를 증거하는데. 진리를 증거하는 그 증거가 참말로 하나님의  말씀인지 마귀 말인지 뭐 제가 조작배기로 만든 말인지 녹음기 말 인지 모르겠다  그말이오.

 이런데, 이 증거는 뭐이냐? 같이 보니까, 귀신 든 자에게 말하니까 귀신이  쫓겨나가고 병든 자에게 말하면 병든 자가 고쳐지고 문둥이가 깨끗해지고  이러니까 그것이 또 표적이라 그말이요. 그게 표적이요, 또 그것이 하나님의  권능이 같이 한다는 표적이요. 또 그 표적과 같이. 그것도 있지마는 다 같은  공산주의가 와 가지고서 이렇게 할 때에 그 사람이 말로는 오만 것 다 했는데  공산주의라는 그 죽음 앞에 오니까 벌벌 떨고 그만 말씀이 어데, 하나님이 어데  갔는지 없는데, 그사람이 보니까 다 같은 사람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안하고  죽음의 종이 되지 안하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안하고 죽음 앞에서 죽음을 발  아래 밟고 하나님의 진리를 강하게 전하면서 담대하게 평안하게 지나니까 그게  또 표적이라 말이요. 이러니까, 우리가 이 표적을 무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요번에는 우리가 가되 입술로만 중얼 중얼 증거할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여기 귀신 들린 자를 놓고서 기도할 때에 그 귀신이 쫓겨 나갈  수 있는 그 사람이 되자 그말이요. 그게 표적이라. 그게 뭐 좋은 것이  아니지마는 그게 무엇 때문이냐? 그 안에, 그 안에 진리가 들었고 진리 안에  성령 들었고 성령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역사하기 때문에 그 구원을 우리가  바라는 것이라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번에, 제 소원에는 그래요. 우리가, 이런 것은 다 사소한  표적입니다. 뭐 귀신 쫓아내고 참 병이 낫고 또 필요할 때에는 죽은 자가  살아나고 하는 이거 우리가 다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이 권능을 다 받았어.

무기로 받았는데, 복음 전하는 이거-표적은 도가 아닙니다. 표적은 도가 아닌데  도를 표시하는 그 흔적이라 말이요. 표시하는 흔적. 이것을 우리가 다 받은  것인데 이것을 무시해서 버려 버리고 그만 말았습니다.

 이단자가, 이단자가 어떤 걸 가지고서 이단자가 세력을 부리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하시는 그 중요한 일 가운데에 정통자들이 빼 놓은 것이 있어요. 참  보배를 정통자들이 빼 놓은 것이 있어. 빼 놓은 그걸 이단자들이 딱 거머쥐고 그  일을 하면 모든 사람들이 볼 때에 '봐라.' 이래 가지고 다른 사람을 미혹을 하는  것인데 우리가 다 구비해서 바로 한 것이 아니고 우리는 하나님 말씀 하나님  말씀' 이렇게 자꾸 강조를 하고, 영감 영감 하는데 영감이, 영감이 어디 눈에  보이지 안하니 영감이 왔는지 안 왔는지 그게 하나님 말씀을 증거한다 하지마는  마귀의 언재를 가지고 그와 같이 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거요. 666의 언재를  가지고 그와 같이 하는 것인지 하나님의 성령이 같이 하는 것인지 우리가  몰라요. 모르니까, 사람들은 표적을 원하는데, 다 같이 설교를 둘이 하고 했는데  한 사람에게, 성경에 병 고치는것 다르고 은혜가 각각 다르다고 이랬지마는서도  그것은 어떤 사람은 그런 것만 가지고 어떤 사람은 전부 구비하게 다 가졌더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 사도들에게는 이것을 다 줬으니 우리들이 사도들의 제자요  사도들의 움싹이요 사도들과 같은 그런 형태와 종류로서 자라는 것이  우리들인데. 속사도 교부와 같이 우리도 자꾸 거기에 계대해 가지고 이런 것인데  왜 사도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그 능력을 우리에게는 안 줬겠느냐 말이요. 그런데  우리 마음대로 다 제감해 버렸어. 이래 가지고 '이적이라는 그거는 뭐 안 믿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요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그것을  아주 저급의 그런 은혜라, 우리가 이렇게 말을 하면서 과연 우리 속에 그렇게  하나님이 함께 해서 그런 이적이 나타날 수 있는 그런 연결이 돼 가지고 있느냐?  자신이 있느냐? 그러니까 공연히 남에게 역사하는 그걸 무시해 가지고서 아주  과소 평가를 해 가지고 우리가 우리를 세우는 그런 것이 아닌가?   이래서,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이 같이 계시는 것이 성령으로 표적되고 성령이  나타남으로 표적이 되고,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이 그 사람의 깨달은 진리와 그  사람이 증거하는 진리로 표시가 되고, 그 사람의 증거하는 그 표시가,  거기까지는 가짜인지 또 모르겠다 말이요. 모르겠는데 거기까지 표시해 놓은  거기에 이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말하자면 죽은자가 살아난 것이라든지  병이 낫는다든지 뭐 문둥이가 깨끗해진다든지 이런 누구든지 다 볼 수 있는  그것이, 뭐이 나타나 가지고라야 이게 될 거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거기 까지를 무시하지를 말고 그것도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기 때문에  그 능력 우리가 가진 자가 되고, 가진자가 되되 그것을 장소를 알 그 곳을  알아서 그 권능을 쓸 때도 있고 안 쓸 때도 있고, 그 권능은 가졌지마는서도  우리가 쓸 때 있고 안 쓸때 있고. 그 권능을, 언제든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신 그 권능을 가졌는데 쓸 때도 있고 안 쓸 때도 있어 병 낫기 위해서 기도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지, 병 낫기 위해서 기도하면 낫도록 이래야 다른  사람에게 권위가 있어지는데 그거를 우리가 가지지도 못하면서 그만 과소  평가해서 무시해 버리고 그걸 무시하니까 자기는 어떤 짓을 해도 상관이 없어.

어떤 짓을 해도 이 두뇌에 지식적으로 암기 해 가지고서 이러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살아 계시는 하나님과 직접 연결이라는 이 연결에 대해서 우리가  고조하지를 안하고 여기에 대해서 이 중점을 주지 안하기 때문에 공연히 이거는  얼마든지 마귀의 이용물이 돼 가지고서 하나님 말씀을 얼마든지 증거할 수 있는  이런 궤변자가 되기 가 쉽다 이거요. 이러니까, 우리가 이번에는 꼭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권능이 나와 같이 한다는 것.

 만일 우리가 그냥 이렇게 준비하고 설교만 준비하면서 이래 할 때에는 자꾸  지식으로만 가지고 외우기를 힘을 쓸 것이고 그 말을 자꾸 힘을 써 언재를 힘을  쓸 것이고 것다 이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표적인 어떤 환자를 갖다 놓고서  '자 여기 기도 하자. 귀신이 지금 들려 가지고 이래 야단 지기는데 네가 한번  기도해라 내가 한번 기도하자' 만일 기도해 가지고서 거도 하면은 '바울도 알고  예수도 내가 아는데 너는 도무지 어떤 놈이냐' 하면서 달라들어 가지고 자기를  때려서 말이지, 이러니까 옷을 벗고 달아나지 안했습니까? 이런 일이 우리 앞에  있으면 어떨 거냐 말이요. 그런 일이 있으면은 우리가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때에, 자 그거 있고 그거 없고 그저 말씀만 증거한다는 이거 준비하는 것과  하나님의 권능이 자기와 함께 하면 이제 그 함께 하는 표시가 나타나고 안 하면  안 하는 표시가 나타나는. 이것을 앞에 두고서 우리가 준비하면은 어느 것이  하나님앞에 가까이 나아가는데 도움이 되겠느냐 그거요. 그런 그 실상을 두고서  하면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아까 제가 말한 대로 그만 한번 그래 놨으니까, 가는데 자 기도는 '주여 이  종으로 하여금 가는 동안에 토하거나 무슨 그런 고장이 나지 않도록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했는데 가 가지고 턱 게워 버리고 자꾸  이래 버리면은 헛일이라 그말이오. 그라면 그게 작은 것이지마는서도 벌써 그  교회 가 가지고서 그만 가서 집회하는데 무슨 말 한다 해도 '아이구, 아 저  사람이나 우리나 기도해봤자 장 그럴 것이고.' 이러니까 새로움을 얻지 못할  것이니까 거기에서 자연히 하나님앞에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도록 할라 하니까  자기 보기에는 예사로 이래 가지마는 내 보기에는 참 등에 콩이 튀더라 말이요.

자꾸 하나님에게 기도하고 자꾸 기도 하니까 하나님하고 가까와지고 이래  기도하니까 그 사람이 토하지 안하고-○장로라고-쭉 가니까, 그 사람이 또 갔다  올 때도 또 또 괜찮았다 말이요. 이러니까, 또 자기가 신학교 가서도 말해 '아  야, 이상하더라.' 그 내나 믿는 사람이요 장로요 조사지마는 '이상하다.

이상하다. 기도를 하고 갔는데 갈 때도 배멀미 하나도 안 했고 올 때도 배멀미  하나도 안 했고.

 이러니까 그, 사람이 벌써 보기를 달리 보아지니까 이것이. 우리가 이런 권위가  있어야 된다 밑이요. 하나님께서 이렇기 때문에 병을 고쳐서 하나님을 나타낼  때에는. 또 귀신을 쫓아내서 나타낼 때에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 모든데 골고루  그 형편과 종류의 처지를 따라서 복음의 운동이 힘있게 전개되고 제재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오만 걸 구비하게 했는데 우리가 왜 백지 그것을 제한해  가지고 그거는 뭐 이거는 무가치한 것이다 뭣이다, 무가치하다 하는 그 사람이  실상 귀신 오면 벌벌 떨 사람이라. 이러니까, 요번에는 우리가-그게 최고의  권능은 아닙니다. 우리가 다니엘처럼 사자굴 앞에서 그렇게 죽음을 내놓고 그  신앙을 지킨 그것보다 큰 것은 그 안에서 자기를 깨닫게 한 진리가 물론 더 큰  줄 우리가 압니다. 그진리보다는 그사람에게 진리를 알게 하는 그 영감이 더  큽니다. 영감 보다도 하나님의 자체가 더 큽니다. 영감은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감동은 하나님의 역사요 하나님은 그 하나님 자체이기 때문에 더  크지마는서도 이것이 우리에게 어디까지나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안에 있는  것은 이 표시는 이걸로 표시되고 이 표시는 이걸로 표시되고 이 표시는 이걸로  표시되고 자꾸 그래 표시돼 가지고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표적이라 이렇게  말했다 말이요.

 이러니까 여기에 볼 때에 이것을 하나의 영적 해석으로 뭐 영적 병을 문둥병을  치료한다 이렇게 해석할게 아니라 요거 본문 그대로 이걸 표적으로 해석하자  그말이요. 표적으로 해석하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요게도 성경 있는대로  요대로만 우리가 하나씩 둘씩 갖추어 나가면 요것이 다 된다.

 처음에 제일 처음에 주님이 명령한 것이 무슨 명령입니까? '가지 말고' 그게  일호 명령, 또 이호 명령은? 또 '가지 말라' 이호 명령. 이 명령이라. 명령이라  하는 것은 이것은. 교훈은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지마는서도 명령은 안 하면  안 되는 벌이 있는 그것입니다. 이 명령과 교훈은 다르다 그말이요.

 또 그 다음에? 잃은 양…. 그러면 삼호. 또 사호는 '천국이 가까왔다. 천국이  가까왔다 하는. 신구약 성경이 가까왔다 영감이 가까왔다 그리스도의 대속이  가까왔다 그 말과 다른 말입니까? 그게 합해서 천국입니다. 그 합해서  예수님이시요. 또 신구약 성경의 중심이 예수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구약 성경의 중심이 뭐이냐? 예수님이시요. 신구약 성경이 뭘  가르치느냐? 예수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또  그러면, 그 다음에 사호는 뭐입니까? 예? 오호가 뭐입니까? 예? '병든 자를  고치며' 이 오호가 되겠습니다. 이러니까 일호 이호 삼호 사호 이것이 구비하면  오호의 이적이 안 나타날 리는 절대 없습니다. 환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기적이  거기 안 나타나겠습니까? 우리가 삼호도 버렸지, 일호만 우리가 하고 있어요.

일호만. 우리가 전도해도 아무데 무슨 선교 아무데 지역에 거가 가서 지금  복음을 교회 세워야 되겠다 이렇지, 고거와 그게 하나님이 영원 전에 택한  백성이 있으니 그 잃어버린 양 택한 백성 그 사람을 내가 구원하기 위해서  하다는 그것이 자기 속에 중심 있는 것 그것은 죽은 거와 산 것입니다. 이것도  내나 그래도 뭐 뭐 다 그게 거기 있다 하지마는 선후가 다르고 죽고 사는 걸로  다르다 이거요. 일호 이호 삼호 사호 오호, 이러면 오호가 될 거라 이거요. 오호  명령. 자 또 한번 생각해 봅시다. 또, 육호 명령 뭣입니까? 육호 명령, 죽은  자를 살린는 것. 이것도 우리에게 권능 줬다 이거요. 죽은 것을 살리야 복음에  필요할 때에는 죽은 자를 살리야 되지 그거 안 살리고는 암만 무슨 소리 해봤자  소용이 없다 그 말이요. 또. 하나님께서 살리지 않는데 제가 들어서 죽은 자를  전부 다살 릴라고 날뛰는 그것도 또 안된다 이거요. 그러니까, 여기에 되는  데에는 상당히 자기 전심 전력을 기울이지 안하면 안 될 것이 '자.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나 안 해야 되나?' 해서 안 이루어져도 안 될 것. 또 안 할 기도  해 가지고는 이루어질리가 없는 것, 하면 이루어져야 되니 여기에서 함부로 입을  벌리는, 벌입을 벌리는 것이 다 없어질 것이라 말이오. 자꾸 여기에서 자꾸  깨어서 조심 조심이 안 되겠습니까? 칠호는 뭐입니까? 문둥이를 깨끗게 하는  것이것도 내나 한가지라. 요 간단하지마는서도 우리가 이 세상에 표적을  나타나는 데에 요런 종류의 성질의 것이라 그거요. 자기가 그럴 때 있다 말이오.

아이들에게도 꼭 기도해 줘야 될 때가 있어. '아 이거는 아이가 지금 종기가  났는데 이거 위해서 기도해 줘야 되겠다.' 그러면, 기도해 주면 다른 목적은  아니고 위의 목적대로 천국이 가까운 그거 지금 증거하는 거라. 그거 증거하기  위해서 그 아이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서 구원을 주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우리가 그 기도할 때에도 이게 구비하지 안해요. 나는 이방에 온 것도 아니고  사마리아 온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잃어버린 양에게 왔는데 천국을 전파해서  천국을 알리기 위해서 왔다 그걸 목적으로 하고 이 아이에게 이거 지금 피부병이  들었는데 이 피부병에 대해서 내가 기도 해 줘야 되나 안 해 줘야 되나 이래  생각해 보면 정확한 판단을 주님이 들어 주겠느냐 안 들어 주겠느냐? 주님이  낫아주기를 원하느냐 그걸 알라 하면은 자기 있는 대로는 다 기울여야 될 것  아닙니까? 여기에서 우리가 자꾸 좋아지고 우리는 자꾸 새로와지고 이 모든.

허탕이라 하는 이런 것이 다 제거돼 버리고 그 순진한 것만 자꾸 이렇게 찾아서  모여지게 될 거라 이거요. 그래 가지고 기도해서 그 병이 나았다면은 그 아이뿐  아니라 '그로 인해서 많은 사람에게 뭐이 안 되겠습니까? 많은 사람에게.

 이런데, 우리가 아주 못 쓰게 돼 버렸어요. 이래 가지고 병 나아서, 뭐 병이  나았어도 그까짓 거 예사입니다. 그까짓 거 뭐, 고까짓게 아니라. 그 까짓게  아니라 그로서, 다른 사람들은 그런 것이 있으면 그걸 나타내어서 무슨 병이  나았다 나았다 아래 가지고서 참 티끌을 섬으로 풀어 먹는 자가 있고 한 섬 되는  지식도 한 되로도 풀어먹지 못하는 자가 있다는 모양으로 그래 가지고 그  사람들은 그래 말하니까 사람들이 '아 이적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이래 했으니까 네가 이래라.' 뒷바라지를 잘 하니까 그 사람이 나아  가지고는 참 아주 믿음의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데 우리는 그거  무시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해 버리고 만다 이거요.

 우리 교회에 대구에 집회할 때에-이 서부 교회 교인인데 ○○○ 권사님  구역입니다.-이거 병이 들어 가지고서 창자를 그것을 뭐 끊어내면, 끊어내고  수술을 하면은 살까 말까 그랬는데 이거 수술해도 혹은. 어짜면 살 것이고 그리  안하면 죽을 것이고 그거나따나 그냥 죽일 수는 없고 수술을 해 봐야 된다 해서,  수술하는 그날이 화요일이라. 화요일날인데 그 사람이 화요일날 수술하자니,  죽기는 이미 내가 해봐야 죽기는 죽는 것이니까 가 가지고서, 가 가지고 집회 가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으면 낮고 못 나면 못 낫는다고 이래 가지고  여기에서 메여 가지고, 업혀 가지고서, 이래 업지도 잘 못 해 메여 가지고 이래  가 가지고 천막에 있으면서 자기는 그저 멀리서 이래 스피커가 오니까 듣기나  하고 이래 가지고 이랬었는 데, 그만 처음에는 그렇던 것이 차차 차차 밥을 먹고  이라니까 집회 마치고 난 다음에 제가 걸어 왔다 말이요. 걸어와 가지고  이상하다 해서 아 병원에 보니까 '아이구 어짠 일이요?' 완전히 다  나아버렸습니다. 그만 그게 완전히 다 나아버렸어. 구멍뚫려 가지고 이랬는데  완전히 다 나아버렸어. 이랬지마는 그까짓거야 무시해 버리고, 어떻게, 그 창자  뚫런 구멍 뚫린 그게 나온 그게, 창자 구멍 뚫어진 거야 의사 가지고 뭐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마는 그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병  나은게 큰게 아니라 하나님이 와 가지고 착수한 이게 크다 말이요. 이 무시해  버렸어. 이러니까, '그거야 뭐.' 아주 과소 평가해 가지고서 '그까짓 거야 뭐 그  병 낫는 그거야, 영적 구원이 큰 것이지.' 이렇게 해 가지고서 사람 들에게  복음을 가로막는다 그말이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들이 서부 교회 안 나옵니다.

그래 가지고 그 사람 배타러 나갔는데 자기 부인은 여기 있다가 다른 교회로  가고, 거기 대해서 아주 크다는 것을 우리가 느끼고, '하나님이 와서  역사하셨으니 이 역사가 얼마나 큰 것이냐.' 이걸 그 사실대로 해서 그들에게  인식을 했으면은 '아 하나님은 버려서는 안 되겠다.' 그게 인식돼 가지고 참  그것을 백 프로 효력있게 복음을 써 먹을 건데 우리는 그걸 무시해 가지고서 다  무시해 버리고 말았다 말이요. 이러니까 우리가 고칠 점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 목사도 자기가 벌써 여러 달 동안이, 아마 여러 달일 거야. 옆구리에 여기  고름이 계속 나왔습니다. 계속 나와서, 병원에 가서 암만 해야 뭐 이 병원 저  병원 돌아다니면서 암만 수술 또 하고 해 봐도 안 되고 고름이 줄줄 나오고,  자꾸 이래 대롱 끼워 가지고 이래 있었는데 아 그 대롱 끼워 가지고 있는 그걸  대구 집회 때 그만 그게 그 자리 바짝 말라 가지고서 다시는 고름 안 나오고  완전히 나았다 말이요. 자 이게 옆구리 뚫어진 것 그 까짓 나은 거야 병원의  의사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마는서도 하나님이 하셨다 그말이요. 하나님이  하셨으니 하나님이 하신 그것을 자기가 깊이 여겨서 '아 내기에 하나님이 손을  대시고 하나님이 오셔 가지고서 이 병을 고쳤다, 하나님이 고친 것. 자기 집에  와 가지고서, 예를 들면은 뭐 벽에 못 한 개를 박아 준 것이라도 그냥 자기  인부가 와 가지고 박은 것과 만일 그 나라의 그 집에 군수가 와 가지고 이거 이  못을 박았다면 '아이구. 이거 우리 군수님이 이래 박아 줬다.' 자 대통령이  박았으면 다른 것 아니라 '아 대통령이 와서 이 못을 박아 줬다.' 그거 더  평가를 높이 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고쳤다는 그걸 우리가. 하나님이 역사했다는 이걸 알 대로 알아  가지고서 그대로 우리가 평가할 대로 평가했으면 그 사람이 지금 여기에 안 오고  저렇게 망령을 부리지 안할 것이라 말이요. 하나님이 역사하셨지마는 그  역사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그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은 우리가 인식시키는데  인식을 시키지 못하고 그걸 예사로 여기기 때문에 아 그걸 저 ○○○ 파 그런데  모양으로 얼마나 울켜 가지고서 뭐 그 생사를 두고 '네가 지금 남은 때는 다  여기 바쳐야 된다 돈도 다 바쳐라.' 이래 가지고 그런게 차라리 나을 것이라  그말이요. 그랬으면 지금 자기가 그렇게 하나님의 권능와 보고서 망령되이  여기도 오지도 안하고 그렇게 망령을 부리고 있지를 안할 거라 그말이요. 안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하시는 이 표절의 역사도, 제일 말단의 표적의  역사도 우리가 받지 못하고 이 권능도 받지 못하고 있으면서 아주 높은 영감의  권능 받은 체 하는 것이 받았으면 다행이지마는 받았으면 그 권능이 이 표적이  안 나타날 리가 없다 그말이요. 우리가 다 초절적으로 해 가지고서 어리석지  맙시다.

 그러기에, 요새 불파라 하는 그 사람들이 진리는 거석하지마는서도 진리는 좀  유치하다 하더란데도 그 사람들에게 뭐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 가지고서 사람들이  새로와지지 회계를 하지 신앙생활을 깨끗하게 하지 아 그라면 좋은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가 표준을 어니다가 둘 것이냐? 내가 배우든지 성경을  보든지 해 가지고서 중얼 중얼하는, 그 진리를 증거하는 하나님이 성경 말씀을  증거하는 거기에 표준을 두지 말고, 와? 거기에 표준두는 그거는 그것은, 마귀도  예수님에게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에 설교할때 성경 가지고 설교했소. 그렇지  안했습니까? 마태복음 4장에 그렇지 안했습니까? 이제 그것은 그 속에 영감이  역사해야 되고 그 속에는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역사해서 병자를 고치는 그  이적이나 그 표적이나 그렇지 안하면 독침 앞에서도 예수를 믿노라 할 수 있는  그런 표적이나 뭐 신사 참배나 그런 것 무슨 앞으로 단군 신사니 뭐 이런 것이  오더라도 '아 죽어도 거기에 절 할 수 없다.' 하는 이런 무슨 행동의 표적이나  권능이 나타나야 되지 그러니까 뭐라 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권능에 있다.' 우리가 이 권능에 있는 여기까지를 표준을 해 가지고서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시는 증거가 성령의 표적으로 나타나야 되겠고 성령이 우리에게  함께 하신다는 그 증거가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믿어지는 그 표적으로 나타나  야 되고 하나님 말씀을 믿는다는 다, 믿어지지마는 제 속에 믿어지는 걸 남한테  보여 줄 수가 있습니까? 다 믿는다 하지마는서도 말 문인지 속에는 텅 비었는지  그것도 모른다 그말이요. 이러니까, 믿어지는 그 표준은, 말씀을 믿는 그 표적은  이 외부에 불신자들이 봐도 볼 수 있도록 그것이 나타나는 거기까지 나타나도록  이것을 표준해 가지고 우리가 신앙 생할을 준비하도록 그렇게 합시다.

 어제도 말했는가? 어제도 말했는가 모르지마는서도 그때 멜리데 섬에 가 가지고  그 사람들이 뭐 청산 유수의 언변을 토해 보십시오, 소용있는가. 배암에게  독사에게 물렸는데 그라면 저놈들 죄지어 가지고 물에 빠져 죽을 걸 지금 어떻게  풍랑에 걸렸는데 우리가 저 저런 죄인들 구원했다가 우리까지 망하리라 하고 다  도망을 갔습니다. 다 갔는데 그때 무슨 무슨 언변이 필요 있겠으며 열변이 뭘  필요 있겠소? 아무 소용없어. 아 이랬는데 이것 문 걸 자신이 벌써 신앙이  있으니까 독사 네가 암만 물어봤자 뭐 죽은 것도 살리는데 문제 없다 싶어서  털털털털 털으니까, 털털 터니까 이제 죽었다 생각했는데 불에 턱 털어 넣어  버리고 자기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곧 죽을까 죽을까 하다보니까 안 죽으니까 온  섬의 사람둘이 놀래 가지고 '야, 그거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무슨 신이 있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다.' 제일 섬중에 제일 대장되는 사람이 와 가지고  우리 집에 환자가 있는데 좀 거석 할 수 있느냐고. '아 데리고 오라.' 데리고  오래 해 가지고 척 낮아 주니까 그만 석달 동안 이백 일흔 여섯 명 식비를 그  섬에서 다 당하고도 뭐 아주 상전 대접으로 신 대접으로 대접을 했습니다. 그만  사람들 다 예수 믿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오늘에 이거 이 표적이라는 이것이  필요한 줄 압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과거에는 너무 무시한 그거 잘못됐는데 이제 가 가지고 '주님  나를 통해서도.' 꼭 필요한 병은, 아무나따나 쓸게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병도  기도할라 해도 저 혼자는 기도하지마는 여럿 있는 데는 기도 못 한다 말이요.

기도 했다가 안 들으면 안 되니까 안 들으면 표가 날 터이니까, 우리가 그렇게  이중으로 거짓부리라 그말이요.

 이러니, 이것을 표준하고 주님 앞에 권능이 나타나서, 우리가 지금 오늘 이래  집회하고 모두 헤일 것 아닙니까? 헤이는데, 가니까 '아 아무 조사님은 그  사람이 무슨 그 교회 무슨 환자 있으면 그이가 그이가 병을 병자 환자를 위해서  기도하면은 병이 낫는다네. 또 무슨 귀신이 쫓겨 나갔다네.' 그라고 속에 그걸  표시하고 있는 알맹이 말씀은 있지마는 '아 그 사람이 그라고 난 다음에는 아주  설교도 권능있고 은혜 있는 설교를 한다네.' 또 '그 사람에게 영감이  충만하다네.' 그라면 다 된 것 아닙니까? '그 사람이 병만 고치는게 아니라 그  사람은 권능을 받았어.' '무슨 권능 받았어?' 병신 고치는 권능만 아니라 아  그사람이 말을 하면은 권능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를 한다, 또 독침  앞에서 공산주의 앞에서도 조금도 가리지 안하고 그걸 다 압도하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안하고 그래 한다, 또 그 사람이 하나님에게 생명도 몸도 전부  소유도 다 애낌없이 바친다 이게 다 표적 아닙니까? 인간이, 신불신자들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난 이것은 맨 껍데기 표적이니까 이게 중요하다 그거요. 이거 없는  거는 속에 알맹이를 볼 수 없는 걸 뭘로 보여 줄 거냐 이거요.

 그래서 요번 집회로서 아주 달라지겠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건 다 무시 했어요.

우리가. 그 무시할게 아니라.

 (설교도중 ○○○ 목사님이 자신의 귀신 쫓아낼 때에 경험했던 일을 좌중에서  말씀하심.)  그 봐. 인제 그런데, 그래 가지고 위해서 기도하고 했는데 침을 뱉고 난 다음에  뺨이나 때리고 했으면 박살돼 버리는 거라. 침을 뱉으니까 처음에는  그랬지마는서도 아무 이적 안나니까, 이적 안나니까 다른 사람 또 해석을 그래  해.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그라고 있다.' 이랬지마는 귀신이 쫓겨  나갔으니까 권능이 있다 말이요. 그렇지 안해요? (○○○ 목사님이 자신의  경험을 설교하던 목사님께 질문)  그거는 예수님께서 열 문둥이를 낮았는데 한 문둥이는 낫고 아홉 문둥이는 가  버렸으니까 그거 그럴 수 있어요.

 (○○○ 목사님의 질문)  그런데, 어쨌든지 말이요 우리가, 그것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주님의 십자가의 보배피 공로를 주셨고 성령을 주셨고 진리를 주었고  또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표적을 주었고 이러니까, 우리에게 언재를 주었고  표적을 주고 이랬으나 이걸 다 이걸 한목 다 가지고 가야 되지 하나라도 빼  놓으면 우리가 일하는데 지장이 있다 이거요.

 (○○○ 목사님이 자신의 경험에 대하여 질문)  그래 그게 믿음이 아니라. 자신이 있는 그걸 자꾸 영업 삼아 그러는게 아니고  주님에게, 우리에게 그런 권능이 있으니, 권능 주셨으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데에는 어떤 병이라도 낫소. 무슨 병이든지 다 낫는게 아니고 원하시면 낮게  하시니 그걸 바로 알라 하면 우리의 심령이 깨어 있어야 되고 또 주님이 낫우기  싫어하는 걸 우리가 암만 기도해봤자 낫아주지 안해. 그러니까, 그것을 주님의,  주님이 기적으로 낫아주고저 하시는 것인지 안 하시는 것인지 그걸 우리가  정확하게 알라고 하면은 우리가 허랑 방탕해 가지고 안 되겠다 말이요. 그러니까  또 마음과 정성을 다 바쳐 가지고서 당신의 뜻을 알아야 되고 당신과 서로  밀접해져야 되니까 이럼으로 인해서 이 표적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이라는 데에서  우리가 부패해져 버렸고 다 인간화돼 버렸고 나태해졌다, 이것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그 일을 실수없이 하면 낫고 안 하면 안 낫고,  이러니까, 그걸 정확하게 해서 할라 하면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되니까,  이것 저것 또 바로 알아야 되지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해야 되지 이러니까 이로  인해서 우리의 신앙이 새로와지겠으니까 우리가 일하자 이거요.

 이제, 그것도 요 다음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요것이 어렵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그러면, 주님이 위에 말하는 그 구원하신 구원, 한말로 말하면 주님의  대속의 구원이요 또 대속의 구원이 이 모 저 모로 펴져 가지고서 역사하는 거는  많이 있는데, 요 귀신 쫓아내는 요것만이 아니고 주님이 주신 이 구원 또 그  구원을 전파하는 방편에 있어서 표적을 나타내는 것 그런 것을 다 할 때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하는 요것을 우리가 좀 깊이 좀 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아마 ○○ 목사도 그 귀신 쫓아내고 난 다음에 상당히 그 값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값을 받았으면 우리가, 값을 받으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될 터인데 값을 받는다 이거요. 값을 받는 통에 다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 값을 받는 것은 돈으로 받는 것도 받는 것이요 자기가 대우로 받는 것도 받는  것이요. 이런데, 베드로에게는 모두 사람들이 찾아와 가지고 '아이구 이상하다  저들로 인해서 이런 기적이 나타났다 나면서 앉은뱅이가 이렇게 일어났다.

이러니까 그들이 거기에, 성경에 온 세상에 두어도 둘 군이 없을 만한 그런게  기록할 것이 많은데 그 성구를 기록한 것은 세상에 가득 찬 기록할 모든  제목보다 나은 제목이라. 더 중한 제목이기 때문에 기록한 것 아닙니까 거기에  기록한 것은? 기록한 것인데, 그때 말하기를 왜 우리의 뭐 개인의 무슨 가지고서  되는 것처럼 우리를 왜 주목해 보느냐? 우리를 왜 주목해 보느냐?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하나님의 종 예수를 인해서 한 것이 아니냐.' 요래 똑똑히  밝혔다 말이오.

 그러니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그 댓가를 받지 말아라. 그로 인해서  네가 댓가 받는, 돈으로 댓가 받는 것도 있고 명예로 댓가 받는 것도 있고  자기의 나중에 교만으로, 교만해지는 교만으로 받는 것도 있고 별 것이 있을  터이니까 그것을 받지 말아라 하는 요것을 요게 주의를 해 줬습니다.

 이러면, 왜 하나님께서 순전히 복음 운동을 위해서 역사하는 그 역사를 안 할  턱이 있습니까? 우리가 안 하는 것은 무엇엔가 사고가 났기 때문에, 사고난  것이니까 그걸 자꾸 고쳐서 우리 표준을 저 하나님으로부터 이 나타난 표적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원수 앞에서 아노라 증거하는 이 표적, 그것도 표적이라. 병신  낫는 것이나 또 생명을 바치는 것 그것 다 표적이라. 또 죽음 앞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도 표적이라. 그게 다 같은 표적입니다. 그게 우리구원  되는 것 아니요. 그것은 속에 구원이 있다는 그거 표시해 보이는. 저 사람도 볼  수 없는 믿음이 얼마나 있나 볼수 없는 하나님이 그와 얼마나 같이 하나 하는 그  표시라. 그러니까,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그 준 것은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 준것. 하나님에게 받아 가지고 준것인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실 때에  나한테 댓가를 요구하지 안했고 내가 댓가를 드리지 안했고 또 그분에게 받은 걸  내가 전달할 때에 하나님의 것을 내가 거저 받아 가지고 거저 전해 준 것인데,  거저 받은 것을 전해 주는 것이라. 받은 것 전해 주는 것인데 그 받은 것 전해  주는 데 대해서 나도 댓가 안 치렀고 네가 댓가를 받지 말아라, 요거 얼마나  요거 좀 세밀하고 엄격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만 그렇게 안 되거든.

그래서 먼저 그때 어디서 이적이, 거창 집회에서 이적이 믿이 나타났습니까? 녜,  나타날 때에 그때는 나도 그걸 생각을 하고 기도를 했어요. 기도를 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에 내가 그거 그렇다고 해 가지고서 거기에 대해서 조그만치라도  댓가를 받는, 그로 말미암아 댓가 받는 것은 내가 내게 뭐, 받았으니 내게  쌓였지. 그로 인해서 내게 쌓였는 것,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 외에 내게  뭐이 쌓여 있는 것은 그로 인해서 거석한 댓가 받은 것이라. 돈만 받은게 아니라  명예도 받았을 것이고 권능도 받았을 것이고 또 교만도 받을 것이고 별것 다  자존성도 받았을 것이고 별 것 받았을 것이라. 이런데, 그런 것 받는 그런 일이  없도록 위해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그때에 그런 것 뭐 우리  교회에서는 한 칠십 여 종류가 이렇게 나았는데 그-나은데 대해서 내가 거기  대해서 그로 인해서 내가 알기에는 댓가 받은 것이 없다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그로 인해서 뭐 조그만치라도 뭐 조매도 변동된 것이 그것이 전혀 없어. 제  보기에는 그래요. 이러니까, 그것도 우리가 주의를 해야 되겠고. '거저 주어라'  또, 9절에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우리가 주님이 보내시는 이 택자들만을 위해서  구원하는 이 일을 하는데 온갖 권능을 베풀어 귀신도 쫓아내지 병도 고치지  그러니까, 병 고치는데 그만 의사 가서 병 고칠라 하면 거석 할 것인데 그런 병  고치는 그 댓가를 뭐 무슨 자기가 명예 댓가든지 뭣 받을 것인데 그런 것 하나도  받지 말라, 안 받았고, 또 이 일을 하는 데에는 주님이 너에게 시킨 일이니까,  마치 남의 집에 일할 때에는 아 일을 하면은 그 의례히 품 받을 줄 알고 하는  것처럼 주님의 일로 일을 하니 일꾼 된 나에게 대해서 모든 생활이라 하는 것은  당신이 책임진다 하는 것을 요것을 속으로 구별을 딱해 가지고서 의식주에 대한  것은 주님이 책임진다 하는 요것을 딱 구별하고, 또 자기 할 일은 주님이 복음  맡긴 요것만 자기 할 일이라 요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정확하게 구별했다.

정확하게 구별해 참 자기 하는 일은 그것만 전무요 전공이요, 전무요 전공이요  하나님이 볼 때에 '네가 참 어 전무 전공한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  대해서 의식주에 대해서 책임을 안 질까요? 우리가 환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을 전공으로 전문으로 이렇게 전심 전력 기울여서 하면 그 하는 사람은  의식주에 대해서, 그거 하면, 그게 되면 의식주에 대해서는 아무 염려나 그런  것이 안 나옵니다. 의식주의 염려가 나오는 것은 벌써 전심 전력 안 했다는 그  증거요. 우리가 그거 경험 많이 하지 안했습니까? 거기에 기울여졌을 때에는 뭐  먹느냐 그런 것을 말하면 우습고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고 거기에  대해서는 굶을수록이 맛있고 재미있습니다. 이러니까, 이런 것도 자꾸 우리가  타협을 해 가지고서 에누리를 해서 이거 비슷 비슷한 666을 가지고 그 정확한  그걸, 그걸 하지 안하는. 통에 자꾸 이기 생겨져요.

 의식주를 다 주님에게 맡겨라. '일군이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것도 우리가 구별이겠습니다. 구별. 참 따지는 것. 이런가 저런가 내가 하는  일이 목회자이니까 내가 그 전공 한다, 아니요. 목회자도 그 전공 아니고 목회는  부업이 아니라 삼차 사차업 오차업 뭐 십차업도 됐고, 복음 전하는 십차업도  되고 그 다음에 일이 삼 사. 사호는 딴 것이 얼마든지 될 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의식주에 대해서 염려가 생기지, 그 사람은 염려가, 자기가 자기를  알기 때문에 염려가 생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사실이 그렇지.

 이러니까, '일꾼이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이 주님이 말했으니까  틀리겠습니까? 이 세상 사람도 하루 종일 일 시키고 그 사람 뭐 먹을 것 안 주고  쫓아내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 하들 못한다 이거요. 그러니까, 네가  전공으로 일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것은 의식주의 염려가 되는 것이다, 그게  표시라. 네가 또 전공으로 일하느냐 하는 것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할 수 있고 병든 자를 고칠 수 있는 그 표적이, 그게 표적이니까 속에  볼 수 없는 그런 표적으로 나타낸 그거는 속에 볼 수 없는 그 믿음을 나타내는  표적이 있느냐?  이러니까 예수님께서 '너희들이 표적을 봄으로 나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떡  먹음으로 나 따라왔다.' 이러니까, 그 창수가 뚫어져서 갔던 사람이 창수가  생생하게 나았는데 창수 나은 그것만 보지 창수나은 그게, 창수 나은 그게 뭣  보라고? '봐라 이와 같이 네가 죽을 병 든 것도 주님이 낫 울수 있다. 네게 있는  모든 이것 병든 것 너 절단나는 것 아니냐? 네게 모든 멸망이라 하는 것을 고쳐  줄 수 있는 예수님이다' 하는 그게 인제 표적인데, 그의 구원을 표시하기 위해서  그래 놨는데 그 창자 나은 그것만 생각하지 그 창자 낫게 하는 그것이 자기를  멸망에서 구출할 수 있는 주님 아시라 하는 그걸 모른다 말이요. 모르기 때문에  망령을 부리지. 그렇지 않습니까?  '너희가 나를 따르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  표적을 봐서 뭣 보는데? 그 '오병 이어' 하는 거 뭐인가? 그 표적은 뭐 무슨  표적인데? 아 주님에게 바치면은, 지극히 작은 것도 주님에게 자기 생각지  안하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주님의 요구대로 바쳐 버리면은 자기도 족하고 많은  사람에게 족하다 하는 그것을 보인 표적이라 말이지 그러면, 주님께 바쳐 놓고  사는 사람은 어떤 것이라 하는 것을 그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했는데 그거는  하나도 생각지 안하고 떡 먹은 그것만 보고 오니까 얼마나 외식자입니까? 오늘  우리들도 다 그렇습니다. 시간이 어찌 됐습니까? 녜. 그라면 그 다음에 합시다.

 요번에 어짜든지 요거 해서 우리 복음 삼읍시다. 복음 삼아서, 벌로 또 날뛰지  말고.

 내가 그때에, 온양 온천 있는 거기 어딥니까? 온양 온천. 예? 천안이지?  천안입니까? 녜, 천안 거기 집회 갔어. 가니까 ○목사님이 자기 교회 무슨  귀신들린 사람 하나 놓고서 이 사람 갖다 놓고서 '자 무슨 시간에는 이거 귀신  들린 사람 있으면 우리가 모아서 예배 보고 기도합시다' 이러니까, 하루 꼭 한  번씩 모아 가지고서 기도를 하고 이라는데 귀신은 나 가지 안하고 자꾸 대. 내가  그때 ○목사를 불러 가지고 말했어. '○목사님이 하는 것이 복음을 순전히  위해서 이래, 복음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그 표적으로 해야 되는데, 이  표적으로 해야 되는데 예수님 표적이 아니고 이 ○목사 표적이요. ○목사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절대 이용 당하지 않습니다. 내가 보니까 벌써  그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참 무슨 자 오늘은 귀신 들린 사람 몇시에는 모아서  위해서 기도하고 이럽시다.' 이래 가지고 그게 만일 나으면은 ○목사 그것으로  인해서, 그것으로 인해서 커지지-○○○ 그래 ○○○목사요.-그걸로 커지지  예수님의 이 복음과 생명으로 커지는게 안 되고 안 되겠어, 그래 내가 '하지  마시이소. 보니까 벌써 ○목사님이 시험에 들었습니다. 온 교인들 시험에  들었는데 지금 그것또 모르고 있는데 온 교인들은 보자 낫는가 보자 하고 비쭉  비쭉하고 있는데 그게 안 낫는다 해도 벌써 자기는 이걸로 인해서 인기를 올리라  했지마는서도 이걸로 인해서 ○ 목사 인기가 바짝 떨어졌습니다. 함부레 요  집회하고 난 다음에 딴데로 옮기십시오.' 내가 그렇게 말했어. '이거 안  낫습니다. 포기해 버리십시오.' 그라고 난 다음에 내가 선포를 해 버렸어.

설교할 때에 전부 인본주의라. 다 명예 욕심 사욕 가지고 하기 때문에 안 된다.

이렇게 선포하고 나서 그 집회 마치고 나서 바로 그만 저 ○○○ 교회로 내가  옮겨 버렸습니다. 그때 그 교회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  교회로 ○○○ 목사님을 그리로 옮겼는데, 나중에, 옮기기는 그리 옮겼는데 뒤에  가 가지고는 또 나하고 적이 돼 버리요. 그 이상하게 참. 자 그러니까, 우리가  이래 가지고도 그렇게 하기 쉬워.

 또 ○○○조사님이 그때 우리 개척 교회 남해에 세우지 안했습니까? 그  조사님이 내가 거기 가니까 무슨 귀신 들린 자 하나 데려다 놓고서 이제 거기에  보니까 이걸 고침으로써 ○○○ 조사님과 지금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하는 그런  무슨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게 가득찼고 하나님은 부스러기도 하나 없소.

그래 가지고, '이것으로 인해서 자기는 정 배(培)로 ○ 조사 아주 그 거짓부리라  하는 폭락돼 버리고 여기에서 목회 못합니다. 함부레 그 치워 버리이소.

이랬더니마는, 나중에 그라고 나더니마는 뭐 낫기는 뭐 나아. 그래 놓으니까  그만 온 교인들이 '암만 기도 해봤자 소용없다. 공연히 저 거짓부리다.' 이래  놓으니까 교인들이 다 거석해 예배당까지 팔았어. 예배당 팔아 가지고서  저○○교파 측에 들어가서 팔아 가지고 반은 자기가 차지하고 반은 그 ○○교파  측에 줘 가지고 ○○교파 측에 개척 교회 한다고 해 가지고 온전히 솔박 팔아  가지고 반은 자기가 닦아 넣고 반은 자기가 그만 ○○교파 측 교회에다 줘  가지고 ○○교파 측 교회에서 개척교회 한다고. 해 가지고. ○○ 교파 측, 그래  가지고 어데 뭐 어디라 하더라? 바로 그 옆에 어데 개척 교회 하데. 그래 가지고  나중에는 쫓겨 나가 서 그만 교회도 하도 못하고 달아나 버렸지. 대구로 갔지.

지금 어찌 됐는고.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놓지 안해요. 속지 안해요 또.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망령 부리는걸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개하는 줄 압니까? 어데  하나님에게 교만하게 할 자가 어디 있습니까?  여기 대아 호텔이가 뭐 거기에서 그날 밤에 불이 나 가지고 죽었는데 오만종류  다 죽었어. 신혼 부부도 죽었고. 목사님은 와 죽었던고? 그런 것도 우리 자연  계시라. 우리는 언제 죽을지 압니까? 나는 그걸 말해요. 언제 죽을지 몰라요 아  신혼 부부가 얼마나 희망이 창창하고 자기 앞길에 죽음이 오리라 그런 생각이나  했습니까? 희망이 창창 했지마는 언제 죽을지 모르니 우리가 참 진실되이 이적도  행할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하는, 같이 하는 증거를  우리가 좀 봐야 되요. 봐야 되겠는데, 같이 하는지 안 하는지 그것도 보도  못하고 백지 위안제를 마시고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이래 가지고서 자기가  생각해 봐도 자기가 하나님이 같이 할 수 없는데, 같이 할 수 없는 그 행위를  하면서도 자꾸 입으로는 증거하고 이러니까 '됐다' 이렇게 생각하는 우리가  얼마나 거짓부리입니까? 요번에 이거 버렸던 표적 우리가 도로 찾아서 가지도록  합시다.

 (○○○목사님의 질문)  갈라서 주는데, 눈은 눈일만 하지 딴 일 못 해요. 눈은 눈일만 하고 딴 일 못  해요. 눈은 발일을 하지 못하고 손일 하지 못해요. 그러나 그 전신은 눈일도  하고 발일도 하고 이래하는데, 꼭 이적만 행하는 그게만 국한된 사람이  있지마는서도 이 사도들은 오만 것 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것으로서  가지고 뭐 그거는 은혜가 각각 다 달라서 그런 은혜는 그런 사람만 하지 우리는  못 한다, 우리에게는 안된다, 그런 위로를 받지 말고, 여기에 보니까 사도들도  다 했고 또 권위있는 종들은 다 해요. 권위 있는 종들은 뭐 그런 표적이나 또  성령의 역사나 또 아주 은혜 있는 설교나 다 했지 안 한 사람 없어. 그러니까,  부분적으로 그래 말았지만 우리는 벌써 하나님의 종들로 사도 계대를 받아  가지고서 이렇게 하나님의 종이 됐으니까 우리는 영감도 받아야 되겠고 진리도  가르쳐야 되겠고 또 그런 이적도 행해야 되겠고 또 원수 앞에서도 생명을 내놓을  수 있어야 되고 또 죽음앞에서도 담대히 걸어갈 수가 있어야 되고 그거 다 뭐  겸해하 되지 하나의 부분으로 그렇게 생각지 말고 다 하는게 좋은 줄 압니다.

 (○○○조사님의 성경봉독) '마가복음 16장 17절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그 마가복음에 결론으로 딱 맺어 놓은 말씀입니다. 녜, 그러니까, 그만  됐습니다. 아주 그 성구가 그만, 그 마가복음에 됐습니다.

 (표적에 대한 말씀을 너무 강조하시지 않는가에 대하여 ○○○목사님이  설교도중 질문)  어허 그거 그거 자꾸 그래 되니 그렇지, 자 여기에서 하나님의 표적은 성령으로  나타나 그 성령의 표적은 진리로 나타나고 진리의 표적은 외부의 병 고치는 것  사지에 걸어가는 것이런게 다 표적이라고 순서를 똑똑히 말했고 또 아무나따나  자꾸 이래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제 기도해서 하나님이 하고저 하시는 일을  우리가 명중해 가지고 해야 되지 하나님이 하기 전에 저 혼자 하면 되는가?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벌로 함부로 입을 열 수도 없고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조심해서 하나님과 바로 관계를 가진다 하는 것인데 어쨌든지 이거 표적은  우리가 행해야 됩니다. 표적 행할 수 있는 권능 있어야 됩니다. 녜.

 영감이 충만한 것이 진리로 나타나고 진리의 충만한 것이 그것이 행함으로  나타나요. 행함은 뭐이냐? 표적 그것도 행함이고, 또 다니엘이 사자 구덩이 묶여  들어가도 기도 하는 그것도 행함이라. 그게 다 표적이라. 그러니까, 요걸 받아  가지고 다른데 달리 생각하지 말고 어짜든지 요 은총을 가지도록 그 사람은 뭐  우리는 벌써 영감과 진리를 다. 깨달았고 하나님을 깨달은 사람이니까 우리가 요  무시했던 요 권능을 요것을 우리가 받아 가져서 복음 운동에 사용할 무기인 줄  알고 하면 몰라서 탈선되는 그런 일 안 하고 또 이제 뭐 그 ○목사님에 대해서  말도 했으니까 되나 안 되나 그걸, 거저 주었으니 거저 받아라, 댓가받는,  댓가를 받는 그것만 안 받으면 고거 한 마디만 깨달으면 그만 다른 탈선 없어요.

하나님이 주는 거야 받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하나님에게서 받은 걸  줘야 되지 하나님 안 준 걸 제가 조작배기로 만들어 줘 가지고야 줘 줘야지?  안줘야 되지.

 자, 그러면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치우치지 아니하고 주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주의 것된 저희들의 주의 종으로 주의 지체로 주로 인하여 살아 주님이 우리를  통하여서 역사하시는 일은 무슨 일이든지 하나도 우리가 제재하지 말고 그대로  다 나타내는 주님의 온전한 의의 병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이름으로 기도 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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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 증거를 마친 때에(순교)/ 마태복음 10장 40절-42절/ 1982. 6. 30. 수새벽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