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할 것과 조심할 것

 

1986. 4. 10. 목새벽

 

본문:사무엘상 16장 6절∼7절 그들이 오매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지난밤에 ‘여호와 하나님’ 계약을 우리에게 선포해 놓으시고 꼭 고 계약대로 하나도 틀림없이 계약대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되 그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계약을 선포해 놨기 때문에 아무리, 뭐 하나님이 좋고 나쁜 자가 없지마는 예를 든다고 하면은 하나님이 아무리 좋아하는 자라 할지라도 선포해 놓은 계약에 벌을 받고 망해야 될 그 행위를 하면은 하나님은 그에게 벌을 주시고 멸망을 주십니다. 또, 이거는 예를 든다고 하면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그 사람을 미워하고 멸망시킬 자라도, 멸망시키기를 원하시는 자라도 그 사람이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대로 복받을 행위를 하면은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도 선포해 놓으신 그 계약을 위반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나 여호와 하나님이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선포해 놓은 계약을 어기지 못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선포해 놓은 계약대로 복받을 행위를 하는 사람은 복을 주시고 선포해 놓은 계약대로 망할 행동을 하는 사람은 망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사람은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악이 있어도 선하게 보고, 선이 있어도 악하게 보고 이라지마는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공평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러하고 우리 사람은 원죄가 속에 들어서 그렇습니다. 원죄가 뭐이 원죄입니까? 자기 중심 자기 위주가 원죄이기 때문에 자기 중심 자기 위주 그놈이 들어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뭐 어떻게 나쁜 것을 해도 좋게 보이고 또 제가 싫어하는 사람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좋은 일을 해도 밉게 보이는 그것이 원죄가 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볼 수는 있습니다. 그저, 바울이 말하기를 율법 아래 처한 자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는 자와 같이 하고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내가 한다 그 말씀은 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지마는 그 결말은 목표를 두기는 공평을 두고서 평가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도 그러합니다. 뭐 고런 정도는 안 믿는 사람들도 다 조금 위대하다 하면은 그런 정도는 합니다. 믿는 사람은 더군다나 더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이 사람이 하우 하박하는 거와같이 하나님도 하우 하박이 있다 그렇게 생각을 하면은 안 됩니다.

단지, 하우 하박이라 하는 것은 어데 있느냐? 하나님이 택하신 자가 있고 택함을 받지 안한 자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우 하박이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목적을 정해 놓으시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용물로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사람을 택한 자와 동등으로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물건을 만들 때에 어떤 것은 항상 불에 굽히기만 하도록 하는 것도 만듭니다. 고기 굽는 석쇠 같은 그런 거는 보니까, 모두 보니까 집집마다 그런 거는 다, 불에 타 가지고서 나중에 뼉따구만 남았다가 다 그만 녹아서 다 상해 버리고 마는 것을 봅니다.

주인이 물건을 만들 때에 자기 필요하기 위해서 불에 굽힐 것도 만들고 또 불집게 만든 거 이거는 항상 불에다, 연탄 불에다 구워 가지고서 타서 매진합니다.

그런 것도 만들고. 또 주인이 자기에게 필요한 대로 어떤 것은 뭐 패물이나 무슨 금반지나 무슨 시계나 그런 거 그런 것은 만들어 가질 때 이거는 항상 품 안에 품고 다닙니다.

이러니까, 당신이 만든 이용물에 대해서는 만든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불택자들은 이용물로 돼야 되고 택자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목적이시기 때문에 다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이 생각하기를 하나님도 왜 하우 하박이 없느냐? 하우 하박이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은 택했고 어떤 사람은 버리지 안했느냐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거는 하우 하박이 아니오. 하나님이 택한 자는, 택한 자를 위해서 모든 걸 예정도 하셨고 우주와 영계의 모든 것을 창조도 하셨고, 그러기 때문에 창조한 데는 소도 창조하고 말도 창조하고 사람도 창조하고 다 이용물로 창조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불택자나 택자나 같은 동등의 것으로 보기 때문에 ‘왜 같이 생긴 사람에게 이 사람은 선택해서 구원을 주고 저 사람은 선택이 없이 이용만 당하고 마는가?’ 그렇게 생각하지마는 그것은 지을 때에 선택자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물로 지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근본부터 다릅니다.

사람들이 거게서 생각하기를 ‘하나님도 하우 하박이 있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고 ‘이렇게 계약을 선포했지마는서도 내게는 하나님께서 이 계약에 대해서 사정이 있을 것이고 에누리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가지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집니다. 사람 같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사람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공의와 정의가 없이 그렇게 무조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고 자기를 대적하는 사람은 무조건 대적하고 미워합니다. 그것은 원죄가 들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니 하나님 앞에는 이런 뭐 어린양을 해도 괜찮고 이런 뭐 또, 이런 무례한 일을 해도 괜찮고 무례한 요구를 해도 괜찮고 그렇지 않겠느냐? 제가 제게 속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도 그렇게 취급하고 그렇게 관리하고 상대하고 보응하지 않겠느냐 이런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서 합니다. 거게서 사람들이 다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공평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우 하박이 없는 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목적하신 것이 있어서 하나님이 목적으로 예정하실 때에 이 사람은 목사로 쓰겠다, 이 사람은 장로로 쓰겠다, 이 사람은 집사로 쓰겠다, 이 사람은 권찰로 쓰겠다, 이 사람은 평신도로 쓰겠다, 또 이 사람은 말단 교인으로 쓰겠다, 그거는 당신이 예정하신 것이 있어서 예정대로 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사람에게 대한 것은 계약해 놓은 고대로 이행을 합니다. 그러면 계약한 데도 보면 하나님께서 나기 전부터 택해서 구별한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은 계약대로 이행하는 하나님이라 하는 이것을 언제든지 명심하고 하나님을 헛되이 바라보고 헛되이 섬기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이 모두 예수 믿는 이치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기 때문에 믿음에 대한 그 정의가, 믿음에 대한 옳은 바른 깨달음이라 그 말입니다. 믿음에 대한 정의가 이것이 바로 되지를 못하기 때문에 모두 믿음이 잡탱이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래서 어떤 사람들은 그저 믿사옵나이다 하면은 다 된다, 믿는다고 하면 다 된다, 믿기만 하면 다 된다 이라지마는서도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안 됩니다. 도리어 망할 짓을 하면서 자꾸 하나님이 복 주시리라 이래 믿는 것은 하나님을, 해석하면은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선포해 놓은 계약을 무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포해 놓으신 계약을 무시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하나님이 계약 선포대로 고대로 이행을 해서 보응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는 대로 되리라’ 하는 믿는 대로 된다 하는 그 믿음은 뭐인가? 하나님의 선포해 놓으신 계약대로 믿는 것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지 계약을 어겨서 제맘대로 믿는 그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하신다는 것 아닙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은 지극히 공평된 하나님이시라.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선포해 놓은 그 계약대로 이행하는 자면 어떤 자라도 고 이행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대로 복을 주시고 또 이 계약을 무시하고 어기는 자는 하나님께서 계약 어기는 자를 멸망시킨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멸망을 시키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계약에 대해서 어누리가 없다 하는 것을 그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어누리가 없다. 하나님은 계약에 대해서 누구에게나 어누리가 없다 고것을 기억하고.

지난밤에 말씀하신 대로, 다른 사람들은, 이새의 아들이 여덟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세상 것으로 오만 준비를 다 했기 때문에 자기 아버지 이새가 생각할 때도, 우리 아들을 이렇게 모든 공부도 시켰고 이렇게 또 모든 수양도 시켰고 모든 면을 구비하게 갖추어 놨으니까 하나님께서 아마 쓸 만한 아들이, 왕으로 쓸 만한 그 사람이 우리 아들 중에 있을 것이라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 장자로부터 그 앞을 통과케 했습니다. 그러나, 이새가 사람들을 준비시킨 것은 다 세상적으로 준비시켰지 하나님이 가치로 보는 그 준비는 시키지를 안했다 그거야.

안 했는데, 안 했으니까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는 아주 준비된 가치가 없는 다윗은 다른 형제들은 공부하는데 자기는 저 산골에 가 가지고서 양 먹이라 하니까 하나님의 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기 때문에 그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서 가 가지고 짐승만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랬는데 그 사람은 갈 때도 하나님이 명령하시기를 부모에게 효성하라 했기 때문에 부모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으로서 그렇게 알고 갔으니까 껍데기 볼 때는 아버지 명령 순종이지마는 속으로는 하나님 명령 순종입니다.

가 가지고도 그것입니다. 가 가지고도 하나님 한 분을 전부로 삼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분을 믿고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의지하고 그저 그분에게 순종하면서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리는 그 생활만 해 나왔습니다.

이러니까, 그 준비한 것을 사람은 모르지마는서도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이러니까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에 그때에 왕을 세워야 될 터인데, 뭐 다윗이 왕이 되리라는 것은 자기 형제들도 인정 안 했고 자기 부모들도 인정 안 했고 또 매일 상대하는 건 짐승밖에 상대 안 하는데 짐승들이 뭐 뭘 알겠습니까? 이러는 그 깊은 속에 있지마는 하나님은 기어코라도 그 사람을 찾아내 가지고서 등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준비한 그 중심을 봤습니다.

이와같이 오늘도 사람들이 내가 이리 하나 저리 해야 되나 하고서 정치를, 정치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정치학을 공부하고 모든 정치가들의, 정치가 그 인물들의 전을, 이런 위대한 정치가의 전기를 봅니다. 정치전을 봅니다. 그걸 보면서 준비하고 또 상업을 생각하는 사람은 모든 상업에 전공한 사람들의 그 모든 학설들을 보고 이런 것을 가지고서 이렇게 다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것을 전혀 무시해 버립니다. 전혀 무시하고, 그런 것으로서는 성공같이 보여지나 그 성공이 하나님 앞에는 성공되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울 왕을 그를 내가 버려서 왕되지 못하게 했다 했는데 그러면 사울 왕이 왕노릇을 못 했느냐? 죽을 때까지 왕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왕되지 못하게 했다고 하셨기 때문에 사울은 그 뒤에 왕노릇 하는 것은 왕노릇이 아니라 왕으로서 왕의 위치에서 저주받는 그 저주의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결말을 우리에게 보여 줬습니다. 그 결말이 우리에게 안 보이는 것도 있습니다. 안 보이고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이 참 눈은 솟아나고 소득은 더 늘어나가고 또 모든 범사는 더 생각에 지나치게 성공이 돼지고 죽을 때도 고통없이 죽지마는 그 사람이 가장 불쌍한 자 중에 불쌍한 자로 그 뒤가 졸지에 영원한 멸망 구덩이에 떨어진다 하는 그것을 시편 73편에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런고로,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거 가지고 준비를 했지마는서도 다윗은 그 중심이 하나님으로 전부를 삼아서 ‘하나님은 모르심이 없다’ 하나님이 다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에 걸리지 안할라고 애를 썼습니다. 또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공의를 가지시고 성결을 가지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성결에 걸리지 안할라고 애를 썼습니다. 또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그분의 능력이 도와 주시는 것을 그는 바라보기를 힘썼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윗이 곰이 왔을 때에 사자가 왔을 때에 뭐 조그만한 아이가 그까짓 거, 사자 입을 벌리면, 사자 입이 이만 안 합디까? 지금은 그렇지만, 지금은 뭐 우리나라에는 이 숲이 짙어도 그렇게 범이 그렇츰 많지는 안합니다. 지금으로부터 한 육 칠십 년 전만 해도 범이 많이 있었습니다.

범이 있었는데 그때는 숲이 꽉 지어서 이와같이 있으니까 굉장하지마는서도 이 호시해 가는 것은 범이 사람을 입으로 물면 그만 어른이라도 딱 엉치를 물어 버리면 똑 젓가락짝 물듯이 물고 이래 숲으로 그만 달아나면 그 숲이 전부 막 지뜩지뜩 뿔라지면서 전부 다 쫙 흩어집니다. 그런, 범이 힘이 센 것인데, 그러면 여기 지금 동물원에 조그만한 범이 있는 거 그것도 장골이라도 이래 물면 딱 물고 이래 들고 돌아다닙니다.

늑대도 보면은 조그만한 뭐, 개만 합니다. 그거 늑대 그거는 생기기도 약하게 생겼어. 그것도 옛날 보면은 도야지, 장골이 지면은 한 짐 되는 짐돗을 그것을 돼지 우리에 들어가 가지고서 물면 물어서 던져 버리면은 어북 그래도 요게서, 요만치 모두 높이 해 놓습니다. 도야지 못 나오구로. 그래 던지면 여기 휙 던져 버립니다. 저 아래 툭 떨어진다 말이오. 떨어지면 그걸 물고 짊어지고 산으로 어데까지 도망쳐 버립니다. 이러니까 맹수가 가진 힘이라 하는 거는 굉장합니다.

이런데, 다윗이 조그만한 아주 소년인데 이것이 가 가지고, 사자의 수염을 거머쥐었으면 사자가 얼큼 물어서 그만 둘러 마셔 버리면 그만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데 수염을 거머쥐고 찢으니까 그 사자가 찢어졌다 말이오. 사자가 찢어지고 곰이, 거머쥐고 찢으면 찢겨집니다. 그게 뭐이냐?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면 능치 못함이 없다 하는 그것을 자꾸 그분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도우심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은 안 돕지마는 하나님이 옳다 인정하시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는 데는 하나님 능력이 돕는다는 것을 그가 확실히 인정했다 말이오. 인정하고서 그라니까 곰과 사자를 찢지 안했습니까? 이라니까, 골리앗 대장하고 싸울 때에 온 전국이 다 그 사람에게 패전을 당한 사람이지마는서도 다윗이 가 가지고 하니까 사울이 있다가 말하기를 ‘네가 지금 소년인데 중심은 고맙기는 고맙다마는서도 내가 어떻게 저거, 훈련받고 능숙한 저 골리앗 대장을 대하겠느냐?’ 이라니까 ‘그는 사람의 훈련 가지고 오지마는서도 나는 하나님의, 여호와의 그 능력을 힘입어 가지고 오니까 내가 곰도 사자도 찢었는데 그까짓 게 문제가 뭐입니까? 뭐 힘쓸 것도 없습니다. 그저 내 물맷돌 한 개면 그까짓 거 그거 절단납니다.’ 이라니까 ‘그러면 한번 가 봐라.’ 그 물맷돌 한 개 던지니까 그만 골리앗 대장이 꺼꾸러졌습니다. 그래 가지고 승리하지 안했습니까? 이 다윗은 일생 동안 그 준비한 것이 외모로 세상이 가치로 삼는 그런 것으로 준비하지 안했고 하나님 한 분으로 준비했습니다. 그걸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나는 사람의 중심을 본다. 하나님 한 분으로 준비를 한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하나님이 되셔 가지고, 그가 하나님만 바라보니까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능력이 그를 통해서 나타나서 역사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생각할 때에 ‘그때에 다윗으로 말하면 그렇지마는서도 우리는 그렇게 준비하는 그 준비를 누가 알아 주겠느냐, 누가 하나님에게 소개를 하며 하나님에게 가 가지고서 선전을 하겠느냐, 누가 하나님에게 고해 가지고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니까 이렇다고서 누가 전달해 주며 누가 선전해 주겠느냐? 내가 지금 아무도 모르는 이런 속에서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산다고 해 봤던들 그까짓 거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러면 그거는 뭐입니까? 그와 같은 생각은 그것은 뭐입니까?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그거는 무슨 생각입니까? 예? 그것은 하나님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라 말이오. 하나님을 소경으로 아는 거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을 소경으로 아는 거라. 그자는 벌써 그거 준비했다는 것이 그거 뽀얀 거짓말이요 그거 준비한 것이 악이 준비했기 때문에 원죄가 준비했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주를 향하여 중심으로 이렇게 준비한 사람은 몰라도 부모 형제, 늘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시고 그 사람을 찾아서 사무엘을 보내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런 염려가 없습니다. 제가 죄를 짓지 안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뭐 이렇게 할란가 저렇게 할란가 엿듣는 고 엿보는 그 행세를 하지 않습니다. 그게 벌써 저는 악에게 속했고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에 그 언행 심사는 전부 저 망하는 언행 심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지난밤에 증거한 대로 모든 준비는 하나님 한 분으로 준비를 하고, 준비를 하고 조심할 것은 인간의 눈도 조심해야 되고 인간의 귀도 조심해야 되고 인간의 입도 조심해야 되고 인간의 모든 정신도 그 사람의 사상이 어떠냐, 그 사람이 내게 대해 관념은 어떠냐 그런 것도 주의해야 되지만 그까짓 거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오직, 하나님이 나를 보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실 때에 ‘너는 복받을 수 있다 너는 복 줄 수 있다’ 이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역대의 모든 유명한 사람들이 사람 앞에 인정을 받을라고 오만 짓 다 했지마는서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라고는 하지 안하고 사람에게 인정받을라고 하는 것이니까 그거는 하나님을 다 무시하는 것이라 말이오.

무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시를 당하지 않습니다. 무시하는 자를 무시하는 자로 처벌을 해야 하나님이, 바로 섬기는 사람들이 ‘무시하다가 저렇게 처벌당했다’ 이럴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준비하는 것은 하나님 한 분으로 전부를 삼아서 준비하고 우리가 조심할 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에 복 주실 수 있는 고 속 마음이 돼야 됩니다. 속에, 진정 속에 마음. 겉어머리, 마음도 여러 수백 껍데기입니다. 마음도 수백 껍데기요. 요 맘도 조 맘도 있지마는 속에, 제일 속에 알맹이 마음이 고 마음 고것이 참 하나님을 위해야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되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되고 하나님을 믿어야 되고 하나님에게 복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해야 됩니다.

오늘밤에 양성원 학생들이 산에 기도하러 간다고서 그라는데, 갑니까? 아마 비가 오늘은 그칠 거 같습니다. 그치면 가도 될 겁니다. 가면 기도할 때에 뭐를 기도할 건가? 각각 자기 소원이 있을 터인데 그 소원 그거는 자기 소원이지 하나님 소원 아닙니다. 소원을 가져가지 마십시오. 소원을 가지고 가지 마십시오. 소원을 가지고 가지말고 소원도 하나님이 주신 소원을 해야 내가 그 소원이 성공이 되지 내 조짜배기로 가짜배기로 내 소원 그걸 하면은 점점 하나님과 적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러 가 가지고서 기도함으로써 자기 속에 악이 단단히 굳어지는 사람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중심 자기 위주로 무슨 소욕을 하나 딱 정해 놓고 고 일을 들어다가 고 일을 또 생각하면서 요 일을 되게 해 주옵소서.

요 일을 해 주옵소서. 자꾸 고놈 악을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고게 점점 야물어지고 점점 그게 커지게 됩니다. 야물어지고 자꾸 커져. 그게 뭐이냐 하면 그것만 자꾸 생각하니까 그게 커진다 말이오.

진주라 하는 것이 뭐이 진주냐 하면은 조개 속에서 나오는데 그 진주 만드는 것은, 진주 만드는 것은 조개를 잡아 가지고 고 속에 조그만한 모래 알을 하나씩 넣어 놓습니다. 모래 알 하나 넣어 놓으면 고 모래 알이 자기 속에 빼낼 수 없도록 딱 박아 놨다 말이오. 박아 놓으니까 이놈이 아파서 그걸 또 아프니까 조개 전심 전력을 기울여 가지고서 아프지 안하도록 가 가지고서 또 치료한다고 거기다가 또 바른다 말이오. 또 진을 바릅니다. 내나 그것이 조개의 침이요 조개의 침이요. 갖다 바르니까, 아, 바르니까 처음에는 안 아프더니마는 또 아프니까 또 바릅니다. 자꾸 발라서 그 진을 발라 가지고서 그걸 키워 가지고 모은 것이 그것이 조개 안에 든 진주요. 그러니까 조개는 죽도록 곯아서 그놈 키우느라고서 골만 빠지고 제 낭탁은 하나도 취하지 못한 그것이 진주 만드는 법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그 사람이 기도하러 가 가지고 자기 욕심 그것을 자꾸, 또 생각하고 하나님께 달라 하고 또 생각하고 달라 하고 하니까 그게 악한 것인지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것인지 그거는 구별하지 안하고 자꾸 그것만 하니까 나중에 기도하고 내려 오면은 더 그것이 강해집니다.

그러니까, 원수를 갚아 달라 하는 사람은 원수에 대해서 더 악독이 더 강해지고 이제는 내가 이런 일이 있어도 내가 하겠다. 원수를 복수하는 그것만 강해졌지 그거 하나님의 축복은 없어졌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렇게 기도 할라고 하지 말고, 그래 기도하는 사람들 많이 봅니다.

우리 교회도 신앙 생활 하는 사람 가운데에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엉뚱한 걸 생각해. 자꾸 엉뚱한 걸 가지고 자꾸,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서 엉뚱한 걸 생각해. 그래 가지고서 실패되는 사람이 있다 말이오.

이러니까, 내가 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꾸 땅에 있는 뭐를 생각하면 자꾸 그것으로서 자기하고 이래 밀접하게 하나돼 가지고 그것이 돼 버리고 맙니다.

그것이 돼 버리고 말기 때문에 자기가 땅 위의 무엇으로서든지 그것으로 준비할라 하면은 좌우간 그 사람은 나중에 결말적으로는, 돈으로 준비한 사람은 돈하고 자기가 한덩어리가 되고 또 권력하고 자꾸 권력을 준비한 사람은 권력하고 하나가 되고 자기가 그거하고 하나가 돼 가지고서 결국은 그거 사람이 돼 버리기 때문에 결국은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혹 내게 대해서 은혜를 받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 목사님이 은혜를 베푸시니까 참,’ 물론 은혜를 받고는 은혜 베푼 목사를 귀중히 여겨야 됩니다. 귀중히 여기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성경에 보면은 바울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눈이라도 나에게 빼 주지 안했겠느냐? 내가 달라고 하면 눈이라도 빼 주지 안했겠느냐? 눈이라도 빼 주니까 뭐 뭐 얼마든지 목사 소원이라면 뭐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안 되겠습니까? 그런데 너희들에게 지금 이 복이 어데 있느냐 했어. 이 복이. 그게 복이라고 말했다 말이오.

물론, 은혜받은 그 은혜의 기관인 하나님의 종들을 이렇게 귀중히 사모하고 존대하고 이렇지마는서도 그것을, 하나님의 종들도 성경대로 사모하고 성경대로 존대해야 되지 성경을 떠나서 자기 주관대로 자기 사욕대로 만일 사모하게 되면은 그 사람이 뒤에 가서, 목사는 우상이 아닐지라도 그 사람에게 대해서는 목사가 우상이 돼 버리고 나중에 가서는 하나님 대신이 돼 버리고 그런 일이 된다 그거요. 그래서 그런 것을 나에게 지금 깨달아서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래서 지금 내가 말을 합니다.

또, 하나 말하는 것은 내가 설교를 했는데 천 년 동안 마귀를 무저갱에 가둬 놨는데 가둬 놓은 그걸 내가 그거 좀, 설교하면서 조금 착각이 된 것 같애. 착각이 된 거 같아서 그거 착각이 된, 그때 내가 착각이 된 줄 알고 설교를 했어요.

착각이 된 게 아니고. 이게 아니라 이렇다 하는 그걸 내가 깨달아 가지고 설교를 했어. 그랬는데 그 뒤에 그것을 열람하는 여게 뭐○○○ 선생이 그걸 가지고 ‘이게 지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래서 그 원고가 지금 나한테 있어. 내가 그걸 다시 조사해 볼 시간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 그래서 고걸 원고를 주지 안하고 고거 냅두고 있습니다. 고거 고걸 고대로 냅둬. 고거 내가 한번 읽어보지를 안했어. 읽어 보고.

내가 생각하기를, 기도 가운데 그것만 작정했어. 내가 읽어보고 요것이 만일 틀렸다면은 요거는 설교록에는 나가지 안했고 고게 틀렸다면은 고것은 대예배 때 한 것이면 대예배 때 고것을 다시 고쳐서 수정을 해 가지고서 고쳐서 고 심판받지 않도록 해야 되겠다 고것은 작정을 하고 그라니까 고거 내 맘은 편습니다.

편하나, 인제 그것도, 하나님께서 내가 하는 데에 실수할 수 있고 또 증거하는 것이 잘못 증거할 수가 있다. 이래서 나는 분명히 이 사람을,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의 이름이 무슨, 콩이라는 이름인데 내가 콩을 말할라고, 콩이라는 사람을 말할라고 하면서 팥이라는 말을 한 그런 것이 내게 종종 있을 것이라 말이오.

그거 여러분들이 다 이해해서 ‘그 사람은 그런 게 아닌데’ 어만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서 그 사람의 이력을 말한 일이 있을 것이라 말이오. 그런 일이 있을 때에는 여러분들이 그걸 이해를 해 듣고서 그것을 나한테 말해 줘서, 이것은 다윗인데 그러면, 다윗을 말할 걸 정반대인 사울을 말했다든지 이렇게 할 때는 그런 것을 나한테 말해 주는 게 좋겠습니다.

이래서, 그래 내가 그거 기도하는 가운데에 내가 이 설교록에다 초두에다가 기록하기를 내가 혹 잘못 깨닫고 이렇게 혹은 내가 잘못 깨달은 것도 있을 수 있고 잘못 증거하는 것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게 있거들랑은 그거 나한테 좀 말을 해서 달라. 무슨 편지라도 해 가지고서 그걸 해 달라. 그러면 나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심판에 정죄 받지 않도록 해 주신 것이니까 나의 선생님으로 은인으로 내가 모시고 내가 참 반가이 내가 받아서 고치겠다 이런 것을 내가 그 설교록 초두에다 기록을 할까? 나는, 증거한 데 대해서 내가 단어를 틀리게 한 것은 더러 있어요. 단어 틀린 거라면 사람 이름을 그걸 틀리게 말한 것은 있어요. 있는데 그런 것은 내가 부탁하기를 그렇게 한 것은, 이름을, 다윗 말할 때에 사울을 말했고 무슨, 사울을 말할 때에 사무엘을 말했고 이렇게 말했으면 고 이름은 그거 나한테 물어보고 고쳐라. 고쳐서 이래 나가요.

이러니까, 별 다른 일이 없는데 내가 말한 것이 혹 엉뚱하게 지금 잘못 말한 것이 있다 하는 그것을 내가 요번에 그것으로서 깨닫고 이제 이것을 그러면 초두에다 기록을 할까 이렇게도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 내가 지금 고걸 아직까지 그때 무엇인가 내게 감동이 오기는 와 가지고서 그걸 내가 증거를 하면서 이거는 나는 이제까지 설교할 때는 이렇게 설교했는데, 이렇게 설교했는데, 이번에 또 이렇게 해야 될 그 이유를 생각하고 하면서 과거에 내가 증거한 거와 다르다 그거, 그런데 그때 내게는 이렇다 이렇게 생각이 되어져 가지고 했기 때문에, ○○○ 선생이 와 가지고 그걸 말하기 때문에 그걸 내가 잘 모르겠다, 지금 가만히 둬 봐라. 내가 한번 읽어보고. 그거 아직까지 읽어보지는 못했어. 읽어보고 내가, 시종을 읽어 봐야 될 터인데 읽어보지를 못했다 말이오. 못했으니까.

그래서, 나도 설교하면서도 성신의 감동으로 할 때도 있고 성신의 감동으로 하는데 마귀 감동이 가끔 가다 들어와 가지고서 나를 주장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하는 그것을 이번에 발견을 하고서 이거 참 아주 조심을 얼마나 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런 걸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요 근경에 생긴 일이고. 그 여인 둘이 그런 것은 얼마 됐습니다.

한 사람은 뭐 전국에 다니며 서울도 다니고 다니면서 백 영희 목사는 사람이 아니고 그는 재림할 예수님이신데 그는 보기에는 사람 같지만 사람이 아니다 실은 하나님이시다. 이걸 교회마다 다 하니까 교회서 막 전화가 왔어요. ‘아, 이런 이거 지금 여인이 돌아다니며 하는데 이거 큰일났습니다. 이거 이거 뭐 어찌 됩니까?’ 그 사람들은 다 큰 교회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유명한 교회만 갔어. 큰 교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큰 교회 목사들이 다 그걸 듣고서 야단을 치고 어데 이런 귀신 소리를 하느냐고서 야단을 쳐서 보낸 사람 있고 보내기는 다 보내고 듣지는 안하고 다, 인정은 안 해요. 다 보내면서 전화하기를, ‘그런 여인이 와서 내가 야단을 쳐서 보내기는 보냈습니다마는 서도 그거 자꾸 이렇게 하고 돌아다니면 안 되겠습니다.’ 좀 유력한 목사들은 그렇게 말하고, 또 그거 ‘아, 봐라’ 하고서 할 그런 목사에게는 가서 전하지 안했어. 그런 목사에게는, 그런 목사들에게는 가서 전하지 안해서 그런 목사는 듣고 ‘아, 여인이 언제 이렇게 말하더라.’ 그런 말하는 건 없어요. 그러니까 아마 그런 찌끄러기 그런 또 목사는 하나님이 인정을 안하는 모양이라.

그래서, 그것을 신문을 내라 하는 걸 신문을 낼 필요가 없고 그 사람을 아무래도 병을 고쳐야 되겠다 해서 병원에 그래 우리 교회 돈을 가지고서 입원을 시켜서 정신 병원에 암만 해도, 암만 오래 있어도 고쳐지지는 안해요. 이거는 내가 뭐 죽어도 이거는 증거한다고서. 죽어도. ‘좀 있으면 나타날 건데.’ 자꾸 지금도 그렇게 한대요. 나는 지금 한번도 만나보지는 못했어요. 사실은 내가 만날 시간이 없어 만나보지는 못했어. 내가 짜 놓은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며칠 전에 수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을 내가 한번 만나야 되겠으니까 그 사람을 한번 나한테 데리고 와서 언제 한번 만나도록 해라. 그 사람을 한번 내가 만나 가지고 내가 그 사람에게 한번 기도도 해 주고 타이르기도 하고 이렇게 한번 할라고 그 두 여인을 그렇게 만나 가지고 그렇게 할라고 하는 게 그거 지금 만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원고 그거 말한 그것도 지금 그게 나가면 큰 일인데 고쳐야 될 터인데 그것도 고칠라 해도 실상은 그거 고칠 만한 그런 시간도 없습니다. 왜? 자꾸 이거 뭐 나 할 일이 들이 채여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 만나 가지고서, 안 만날라고 피해도 자꾸 만나니까 만나니 그 사람일이 있으니까 그 사람을 위해서 또 기도해야지 문제가 이래 되지 이래서 그런 것을 못 하고 있습니다. 게을하기도 하지마는 서도 게을 보다도 힘이 없어서 안 돼요. 힘이 없어.

오늘 아침에 지금 말하는 것은 기도하러 가는데 자기 무슨 목적이나 소원을 가지고 내가 이래 가지고 나를 지금 목사로 이렇게 내가 지금 출세를 해야 되겠는데 나를 목사로 등용해 주지 안하니, 이 중간반 반사들은 나를 지금 교역자로 등용해 주지 안하니 이거 섭섭해서 지금 아마 삐꿔서 삐쭉삐쭉 그라다가 요새는 조금 해결이 된 모양이라.

그거, 믿으라 그 말이오. 제가 다윗도 부모 형제도 몰랐고 아무도 몰랐는데도 깊은 속에 파묻혔지만 하나님은 일국의 대왕으로 삼을 사람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책임 맡길 만한 사람이 목동 초군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당신이 보시고 선택했다 말이오.

하나님이 당신의 이 복음 사업을 위해서 생명도 버리신 하나님이신데 이 복음의 사업을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당신이 보기에 이 복음 사업에 쓰일 수 있는 사람이면 천하가 반대해도 그 사람을 등용해 쓰지 왜 그런 보배로운 사람을 냅두겠소? 이러니까, 하나님이 가치로 삼는 ‘나는 중심을 본다’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안하고, 그 외모라 하는 것을 엊저녁에 간단히 해석을 했습니다. 지식도, 이 세상 지식도 외모요 학력도 외모요 간판도 외모요 지위와 권세도 외모요 명예도 외모요 재산도 외모요 용모도 외모요 언변도, 모두 외모요. 언변도 외모입니다.

말 잘하는 아론을 거머쥐고 하나님이 일하시지 안하셨고 모세를 잡고 일했습니다.

아론은 이용물만 당했지 아론을 잡고 일하시지 안하고 모세를 잡고 일을 하셨다 그 말이오. 이래 언변 좋은 그런 것도 아니야. 그런 게 다 외모라. 그것이 하나님께서는, 물론 그거 하나님이 만들었기 때문에 그것이 아주 가치 없는 거는 아니지마는 하나님을 좌우하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쓰나 안 쓰나 하나님의 마음이 그 사람에게 기울어지나 안 기울어지나 하나님을 좌우할 수 있는 그런 실력의 가치는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중심입니다.

그런고로, 중심인 이것을 생각하고, 오늘밤에 가는 양성원 학생들도 뭐 어떻게 하면 될까? 물론 성경 공부하고 기도하고 그것도 다, 쌓는 것이지마는서도 그것보다도 하나님이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중심을, ‘나는 이거 중심 준비해야 되겠다.’ 그거 봅니다.

사람도 봅니다. ‘네까짓 놈이 암만 수고를 해도 복은 못 받는다.’ 이런 사람 있다 그 말이오. 왜? 중심이 틀렸어. 네가 막 부지런히 날뛰고 수단 방법을 가루지 안하고 지혜를 쓰고 모든 실력을 갖추고 아주 조심해서 자꾸 밑에서 참 층층으로 층층대 올라가듯이 한 층대 두 층대 밟아서 올라가니까 알뜰하고 진실하지마는서도 너는 초인간적인 그 능력의 역사는 하지는 못한다. 왜? 중심을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주의 사업에 일할 수 있는 헌신하는 사람만 말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 보실 때에 ‘이는 참 물질을 줘야 되겠다’ 하면 물질을 주실 만한 중심을 만드십시오. 또 이 사람은 세상 권력을 줘야 되겠다 하면 권력을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그 중심을 만드십시오. 이 사람이 자기 앞길이 형통해서 모든 게 자꾸 형통해 나가야 되겠다 이렇게 그걸 원하거든 하나님이 형통을 주실 수 있는 중심을 만드십시오.

사람들 위해서 기도합니다. 모두 다 이 경제에 곤란하니까, 그 사람에게 돈을 주시옵소서, 뭘 주시옵소서 이래 돈 달라고 그래 말은 안 해도 모든 축복을 주시옵소서 이래도, 축복을 주시옵소서 하고 난 다음에는 회개가 됩니다.

‘주여, 그 사람을 어짜든지 주님이 축복 주실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이것부터 고쳐 주옵소서.’ 그 기도가 나오지 그 사람에게, 무조건 돈을 뭉텅 줘 놓으면 그게 돈 가지고 흔들어서 말이오. 돈이나 몇십억이 돼 놓으면 그게 흔들어 가지고 옆에 사람 살지도 못하게 될 터이니까 저 망하고 다른 사람 망하고 다 이래 볼 터이니까 ‘교회서도 돈이 제일이다.’ 이러면 교회서 또 돈 많은 사람을 이렇게 대가리로 모시고 권세 있는 사람을 대가리로 모신다면은 ‘교회도 뭐 세상과 같다.’ 돈 많은 사람이 머리요 또 권세 있는 사람이 머리요 학식 많은 사람이 머리요. 이라기 때문에 뭐 모든 사람이 다 그리 주력을 하고 다 신경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또 망하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이 백 목사가 설교하는 사람은 자꾸 부자 치는 거 같고 또 이거 박사 치는 거 같고 이러기 때문에 언제 설교하고 나니까 박사가 있다 가서 말하기를, 그 사람은 법학 박사인가 뭐인지 모르겠는데, 말하기를 이 모두 박사 이거 다 내던져 버려야 되겠다고서 이라더래요. 점심 먹으며. 박사 이거 다 내던져 버리라고. 자꾸 박사를 말하니까.

그 말하는 것은 그거 가진 사람도 ‘그래.’ 첫째는 그거 가진 사람을 위해서 말하고 둘째는 옆에 사람을 위해서 말합니다. 그거 가진 사람을 위해서 말하다니 무슨 말이라? 제가 박사 가진 사람은 박사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박사 이거는 방해하기가 쉽지 아무것도 유익이 없다. 이거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똥같이 집어 던져 버리고 이거는 아무것도, 하나님이 전적하시지 이거는 털끝만치도 복있는 일을 하는 데는 이거는 할 실력이 없다 하는 걸 똥같이 집어 던질 때에 하나님은 그것을 붙들고 쓰셔서 유익이 되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이 하실 일을, 하나님이 손가락만치 도와서 하실 일을, 내가 이 박사 학위 가지고 이거는 보충이 되지 않느냐, 하나님이 하실 일을, 하나님이 하실 일에 이 학력이 보충이 되지 않겠느냐 그 대용이 되지 않겠느냐, 대용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자기는 준비하는 데에 하나님께 대한 준비는 조금 덜해도 내가 학력이 있으니까 이거 가지고서 혹 대용 보충이 되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망하는 것이오.

그거는 본인을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고 또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그런 외모에 가치를 두고 외모 준비로 이 기독자의 행복 준비가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어리석음의 외모 준비를 하지말고 하나님을 중심해서 준비하라 하는 그것을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거 그런 말 할 때는 좀 미안해.

또 잘난 사람들 위해서 자꾸, 이러니까 서부교회는 잘난 사람은 박살이고 박사도 박살이고 부자도 박살이고 이러니까 여게서 ‘야, 이게 참 복음이다. 이게 참 사는 것이다. 돈 많은 나는 여기 와서 살 곳이다. 지식 많은 지식 부자는 나는 여기 와서 살 곳이다.’ 이렇게 깨달으면 제가 살았는데, 이라니까 나를 알아주지 안하니까 알아주는 데로 가야 되겠다. 알아주는 데로 가면은 저 망하고 말지요.

알겠습니까?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거보다 더 어렵다고 이거 말씀을 했다 그거야.

이러니까, 소용이 없는, 가치가 아닌, 우리의 영원히 불타지 안하고 영원 완전 불변의 영생의 이 완전, 불완전 선을 넘어서, 불완전 선을 뛰어나서 완전이란 이 선에서부터 하는 이 모든 것은 완전자이신 하나님이 하시지 우리 피조물은 하지 못합니다. 우리 피조물은 하나님의, 완전자이신 하나님이 내게 주실 수 있고 나는 받을 수 있는 그 중심과 그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고 받는 준비 노력하는 것이지 그까짓 게 뭐 하는 일은 아니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이 중심으로 준비를 하고 또 범사에 여러분들이 그래 하십시오 제직회를 해도, 제직회를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보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기 우리 제직회를 하는 데 보고 계신다. 엊저녁에는 건축 위원회 했는데 건축 위원회 하는데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니, 하나님이 노여워하는 말은 내가 안 해야 되겠다. 또 하나님이 보실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그 말을 내가 해야 되겠다. 하나님이 또 내 중심을 보신다.’ 이래서, 하나님이 내 중심을 보시니 내 중심을 바로 써서 진정코, 진정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원하시는 일을 해야 되겠고 원하는 말을 해야 되겠고 또 다른 사람이 삐뚤어진 말을 하면은 그것을 나만 의인이라고 독선주의로 또 이라면 안 될 터이니까 그 사람들도 마음을 상하지 안하도록 잘 붙들어서 그 사람도 깨닫도록 해 가지고 이러니 이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애끼고 사랑하고 사람을 또 그것을 그만 박살내지 안하고 또 사람을 애끼고 사랑하고 또 그 일을 애끼고 사랑하고 이라면, 하나님이 복 주시겠소 안 주시겠소? 복 주신다 말이오.

그러면, 지난밤에 건축 위원회를 모였을 때도 하나님이 보실 때는 요놈은 가치가 한 점 요놈은 몇 점 요놈은 십 점 요놈은 백 점 다 그거 매긴다 말이오. 매기고 그분이 다 하십니다.

이래서, 지난밤에 설교를 뭐라고 했소? 우리가 사람에게 하든지 개에게 하든지 물건에게 하든지 우리가 모든 내 아닌 타에게 대해서 행동하는 그 모든 행동은 그것이 누구에게 가 가지고 마친다 했어? 누구에게 가서 마칩니까? 하나님께 가서 부딪힙니다. 그게 하나님께 부딪히요. 하나님께 부딪히고 또 그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이렇게 저렇게 행한 대로 공변되게 보상과 복수를, 상벌을 베풀어 주시는 이는 그분이지 인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이러니까, 내가 뭐에게 하든지 중간에 끼여서 이용되고 있는 것이지 내가 개에게 하는 것도 나는 개 보고 하는 거 같지마는 개에게 하는 그것이 막바로 하나님에게 가서 닿습니다. 마지막에 닿기는 하나님께 닿습니다. 닿는데 내 행동에 대해서 상벌을 갚으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개에게 대해 했는데 개가 나와 상대가 아니고 하나님이 상대라 그 말이오. 사람에게도 그렇고 물건에게도, 다 그렇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행동하는 것은 그것은 다 내야 뭐를 상대해서 했든지 간에 그것은 중간에 이용물이고 내가 한 그것은 모든 마지막은 하나님께 가서 부딪힌다. 그렇기 때문에 내 언행 심사의 행동에 대해서 심사하실 이도 주님이시요 거게 대해서 상을 주고 벌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라 요것을 알아라 말했습니다. 그거 얼마나 큰 말이요 얼마나 지혜로운 말인지 모릅니다.

엊저녁에 처음 보이는 어떤 분이 두 분이 왔었는데 보니까 그분이 보니까 그거 말을 설교를 알아듣는 거 같애. 설교 알아듣는 거 같은데 급한가 몰라도 알아 들었으면 오늘 아침에 지금 뭐 백난이, 매사가 있어도 왔을 건데도 어찌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는, 뭐가 말하는지 원수가 말하든지 개가 나에게 물러 달라들어도, 물러 달라들어도 그것은 다 하나님이 나에게 시키시는 것이라고 알아야 됩니다. 내가 조심하지 안해 가지고, 전도하러 가 가지고 조심하지 안해 가지고 개가 내 다리를 물었습니다. 다리 물었으면 누가 한 거요? 하나님이 그 개를 통해서 나를 물게 했다고 알면 틀림없습니다. 왜? 네가 이놈아 돌아다니며 미치괭이도 있고 양사방 있는, 개는 맹수인데 맹수를 조심하지 안하고 부주의하면 네가 다리도 물리고 팔도 물리고 네가 절단난다 이걸 우리에게 알리는 거라.

그러면, 모든 일은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것이니 여게 대해서는 사랑하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으로 내게 대해서 이렇게 하셨으니, 이렇게 움직였으니, 이렇게 역사하셨으니 나는 여게 대해서 사랑하는 그분에게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요게는 ‘주여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개를 조심해야 되겠습니다.

이라면 이게 하나님 앞에 상대해서 바로 했을 것이라 말이오.

또, 이랬는데 이거 내가 잘못해 가지고 이렇구나. 주여, 무슨 일을 잘못해서 이렇습니까? 그거 거게 대해서 회개할 거, 감사할 거, 주의할 거, 또 고칠 거 또 거게 대해서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는구먼 이래 시험하시는구먼. 시험하시니까 멋지게 한번, 멋지게 한번 보여 줘야 되겠다 하고서 시험하시니까 아주 더 신앙을 지켜서 돈독히 지켜 가지고, 이는 참말로 신앙을 지키는구나, 인내를 하는구나, 이렇게 인내해야 될 거, 또 열심을 가할 거, 충성을 가할 거 ‘내가 시들시들하니까 이렇구나. 시들시들하니까 주님이 지금 시들시들하는 여게서 정신이 바짝 차리라고 지금 하시는 거로구나’ 바짝 차리는 거. 모든 것을 주님이 나에게 하신다는 이 사실을 깨닫고 내가, 주님을 상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하면은 실수 없는 생활이 되어질 것이고, 또, 내가 하는 것은 그 뭐에게 하는지 그것은 결국은 주님에게서 마치고 주님이 그 심사하실 이도 주님이시요 거게 대해서 상을 주든지 벌을 주든지 그거 다 보상하실 이도 주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뭐를 하든지 다 하나님께 하는 것이라 그거요.

이러니까, 오늘 양성원 학생들에게 기도하러 가거든 이것을 바로 가져. ‘보자.

내가 하나님이 나를 보실 때에 과연 나를 등용할만 하냐 나를 복 주실 수 있겠느냐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볼 때에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 내가 믿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어찌 믿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믿지 못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믿을, ‘요 면에는 믿을 수 있다.’ 주일 지키는 것도 자꾸 `주일 지키는 데는 생명이 끊어져도 나는 주일 지킬만 하다. 믿을 수 있다.’ 그라고도 또 ‘아이구, 그렇지만 뭐이 변동될지 모르겠다’ 이라기 때문에 자꾸 자기에게 대해서는 염려요. 염려요 걱정이요. 염려요 걱정이요.

이래서, 하나님이 내 중심을 본다는 그것을 기억하고 이제는 어데서든지 혼자 있든지 여럿 있든지, 나 혼자 있어도 하나님은 내 중심을 보신다, 나 혼자 있을 때도 나를 보고 계신다 그 말이오. 또 회중에도 나를 보고 계신다 말이오. 이거 일을 하는 데도 중심에 그걸 원하는가? 또 놀부 모양으로 이용할라고 그렇게 하는 거, 그거 다 그런 것이기 때문에 중심이 하나님 앞에서 복받을 수 있는 중심을 만들기 위해서 오늘밤에 가 가지고 철야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또 이제는 나는 벌로, 내게 와서 부딪히는 거는 사람이 부딪히면 임마 너 왜 욕을 하느냐? 다윗은 자기에게 욕하는 사람을 탓할 때에 ‘저놈을 죽이리이까 하니까’ ‘하나님이 허락지 안하시면 무엇이 움직이겠느냐?' 다윗은 하나님의 주권 개별 섭리를 믿었다 그 말이오.

이것을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을 하고 또, 지난밤에 말했는데, 뭐이든지, 여러분들 지금 돈 없는 사람 어째 가지고 부자될라요? 돈 없는 사람 어떻게 부자될라요? 돈 없는 사람 어째 가지고 부자되겠어? ○○○, 지금 지금 문제 있는 그거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지? 의논해서? 의논할 것도, 환하게 방편이 꽉 찼는데 뭐 의논할 게 뭐 있는가? 연결만 하면 돼, 연결. 피! 성령.!진리! 이 셋에만 내가 연결만 되면 우주가 내것인데 그까짓 거 무슨 문제야? 연결 되면.

이러기 때문에, 교역자가 교인 한 여나뭇 되는데 이거 뭐, 다 털어 봤자 그만한 재산이 없는데 이거 어짜랍니까? 너희들이 자꾸 빚내 가지고 할라고 하지말고 이제, 빚을 내 가지고 해야 되겠소, 돈 있는 사람을 보고해야 되겠소? 목회자가 돈 있는 사람을, 돈 있는 사람이 교회 들어오면 좋다 돈 있는 사람 들어왔으니까 연보하겠다. 돈 있는 사람 가지고 해야 되겠소, 거지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가지고 해야 되겠소? 저 저기 저 ○ 조사님 그라면 목회 가면은, 목회 가면 예배당을 뭘로 지을 거라? 교인 하나밖에 없어. 등신 귀먹어리 아무것도 아닌 거 하나 있어. 하나 있는데 하나 있으면 어째? 하나 그놈에게다 이 세 가지 능력을 연결시켜 놓으면 그게, 그게 변해서 당장에 거부가 돼. 그러면 하늘에서 돈이 내려오는가? 아니야. 그 연결이 되면 그것이 지혜 있고 명철하고 이러니까 자꾸 이 세상에 자꾸 뭐 당장에 부자될 수 있는 그런 일만 자꾸 경영해 가지고 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목회자는 거지를 부자로 만들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서 돈은 쓰고, 또 등신을 지혜 있는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모든 지혜 있는 일 하고 이러니까 뭐 다른 거, 있는 거, 마귀들이 만들어 놓은 거 그거 보고 그런 거 사용할라고 하지 않습니다. 마귀들이 만들어 놓은 거 그거 사용할라고 하지 안하고 이제 하나님의 이 세 가지 능력, 피와 성령과 진리의 이 세 가지 능력 가지고서 내가 사람 만들어 가지고 그 사람을 통해서 모든 거 다 해. 이렇게 주장하는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람을 하나님이 버리지 안해요. 목회자도 그렇게 장사도 그렇고 다 그래. 사업도 그렇고 다 그래.

이거 쓰지 못할 마누라 이거 더러운 마누라지마는서도 이 세 가지 능력과 연결시켜 가지고 연결이 되면 그게 일등 아내가 돼. 그러기 때문에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처자나 버린 자는 몇 배 얻는다 했어? 백 배. 백 배 얻는다 하면 마누라 백 얻는다 말이오? 한 마누라인데 백 배의, 가치적으로서 권위적으로 백 배 되는 그런 것을 하나님이, 세 가지 능력과 연결만 하면 돼. 그래 가지고 이 세 가지 능력 가지고 다 해. 이 세 가지 능력은 부자 방망이오. 사람 만드는 방망이요 완전 만드는 방망이라. 이 세 가지. 이 세 가지 가지고 다 할라 하는 사람을 주님이 원하시요.

이러면, 이 세 가지를 완전히 받아 가지고 있는 자가 누굽니까? 예? 말을 하는데 내가 들려야지. 말을 들리도록 말해 봐. 또 틀렸는가 싶어서 겁이 나는 모양이구먼. 말해 봐요. 중생된 영. 그러면 똑똑히 말하지 그걸 왜 말하다 실수할까 싶어. 중생된 영. 중생된 영은 내라 말이오. 내 속에 내 참사람 나는, 내인데 이 사람은 세 가지와 연결돼 있어.

이러기 때문에, 이 사람으로 사는 게 우주보다 가치가 커. 주님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를 얻고도 너를 잃든지’ 잃는다면 뭐 누구 잃는다 말이오? 누구를 잃는다 말이라? 저분 대답해 봐. ○○○에서 온 사람. 어? 새사람. 이 셋과 연결된 중생된 영. 새사람. 참 자기, 이 자기를 잊어 버리면 온 우주를 얻는 거보다 손해라.

그 마음 그놈이 잊어 버리지. 마음 그놈이 버리지. 이 마음이 등신이라. 우리 마음 이게 등신이라. 마음 이게 등신이고 고기덩어리가 등신이라. 이 둘이 들어서 전부 이거 화를 다 만듭니다. 이거 지금 우리 구원은 이 둘을 만들어 가지고 이 둘로서 이루는 것이 건설구원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마음 이놈을 자꾸 가르쳐야 돼. 이 고기덩어리 이것도 가르쳐야 돼. 이러니 기도하러 가면 뭐하요? 성경 볼 때는 자꾸 ‘이렇다’ 마음에게 자꾸 `마음 너 이렇다 봐라.’ 자꾸 마음에게 가르쳐서 마음 이놈에게 이래 성경 말씀을 가뜩 채워서, 성경 공부하라 하는 것이 뭐 때문에 하라 하느냐? 가뜩 채워서 이 마음에 성경 말씀이 꽉 들어 찼으니까, 마음에 이 성경 말씀이 꽉 찼으니까 이 마음이 성경화됐다 말이오. 마음이 성경화됐어. 고기덩어리가 성경화됐어. 그라면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이 와서 꼬울 때에 잘 듣겠소 안 듣겠소? ○조사 나는 그거 모르니까 ‘아따 이거 목사님 저렇게 관심이 없다’ 나 그래 그거 이름을 몰라요. 그래서 이제, 교인들 위해 기도하는 것도 ‘그 사람, 그 사람’ 이래요. 얼굴은 내가 본 사람이니까 ‘그 사람, 그 사람, 그 사람, 그 사람 이래 기도해요. 그러기 때문에 오 년을 우리 교회 집사로 있었는데 그 사람 기도시킬 때에 성을 딴 성을 떡 말해 놓으니까 그 사람이, ‘저 사람’ 이래 말하니까 ‘그거 나를 오 년이나 됐는데 내가 집사로 있었는데 내가 그래도 그 사람 기도는 늘 해요. 했는데 그거 ○○식당 주인이라. 이래서 그거 내가 ○○식당 그것도 말할 여가 없으니까 그저 쭈욱 가며 이거 생각으로 ○○식당에 그 집에 누구 누구 누구 내가 이래 기도해요. 이라니까 이름 모른다고 섭섭하게 여기지 말아요. ○ 조사 그래. 뭐 물었지, 내가? 천하보다 귀한 게 뭐야? 천하보다 귀한 게 뭐이라? 새사람. 이 셋과 연결된 중생된 영. 이 셋으로 살아난 영. 이 셋으로. 그러기 때문에 우리 이 셋은 전능입니다. 셋은 전능이오. 진리도 전능이요 영감도 전능이요 예수님의 피는 이거 이 전능이 서이 합작해 가지고 성공해 놓은 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전능이니까 여게 연결됐으니까 내가 새사람으로 전지 전능자인데 새사람을 버리고 악령 악성 제 중심 제 위주, 이 악령 악성, 저 아닌, 저를 죽인 원수 그놈을 들어 붙으니까 이 마음 이거는 참, 지옥 가야 되고 이거 고기덩어리는 지옥 가야 돼. 안 듣는 것은, 안 들은 것은 다 지옥 갑니다.

이러니까, 심신의 기능이 나중에 부활은 하기는 했지마는서도 형체만 있지 마음의 기능은 전부 유황불 구렁텅이에 타고 있습니다. 왜? 그놈이 안 듣다가 타지. 안 듣는 놈은 타야지 믿지 않는 놈은 타야지 복종 않는 놈은 타야지. 마음이 이래 한 거. 고기덩어리는 있지마는 아무 힘이 없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깨달아요. 모르면 못 믿습니다. 알아야 믿지. 알고 고대로 실행을 하도록 애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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