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살아난다

 

1988. 6. 1. 수새.

 

본문: 고전 15:36-38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우리가 과거에는 예수님의 공로를 입기  전에는 완전히 죽었던 자입니다. 그러기에 안 믿을 때의 모든 생활은 그게 사는  생활이 아니고 죽는 생활입니다. 하루 산 것은 고만큼 하루 죽은 것이요 또 십  년 산 것은 십 년 죽은 것이라.

 그래서, 영은 단번에 죽으나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 육은 단일체나 단일성이  아니고 그것은 아주 종합체요 종합성입니다. 아주 종합해 가지고서 된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는 것도 단번에 죽지 아니하고 많은 회수를 걸쳐서 이거 죽고  저거 죽고 차차 차차 죽어서 다 죽어지는 것입니다.

 또, 그와같이 영은 단번에 살지마는 이 마음이나 몸이라는 이것은, 살아나는  것도 단번에 살아나지 안하고 이것이 살아나고 저것이 살아나고 또 이 기회에  살아나고 저 기회에 살아나서 그 살아나는 것도 수 없는 중복적이요 죽는 것도  수 없는 중복적입니다.

 그래서, 안 믿을 때의 우리의 생활은 저는 사는 것인 줄 알지마는 죽는  것입니다, 이래서, 아주 열 살 이내의 그런 아이와 열 살 그 이상의 한 이십 세  대의 사람과는 아주 다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말하기를 늙었다 그렇게  말합니다. 늙었다 말은 쇠해졌다는 말이요 낡아졌다는 말이요 그는 허물어졌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생활하는 그것은 시간 시간마다 죽을 것이  죽는 생활입니다. 그 사람은 혹은 영이 죽은 그 사람은, 우리가 다 영이 죽었던  것인데. 죽은 사람은 그 사람의 육이 어떤 사람은 오십 년 걸려서 다 죽고 또  팔십 년 걸려 다 죽고 또 어떤 사람은 한 백년 이상 걸려서, 지금도 백 한  이삼십 살까지는 사는 사람이 있으니까 백 이삼십 년 걸려서 다 죽고 그렇게  지금 죽는 그것이요 죽이는 그 순서입니다.

 그것을, 심신을 하나님이 정한 그 죽음의 기간이 있고 죽음의 기간이 있는  그것은 그 사람이 장기간을 걸쳐서 죽는 사람도 있고 단기간에 죽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을 조정하시는 이는 주님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장기간을 걸쳐서 죽는 자로 그렇게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것은 그  죽을 심신을 관리를 잘 합니다. 그것을 관리를 잘 하고 잘 보존하면 그것이 백  한 이삼십 년까지 그것이 다 죽지 안하고 보존이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다  죽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일찍 간단한 시간에 죽도록 만든 것은 하나님이 관리  섭리하시기를 그 몸을 잘 관리하도록 그렇게 섭리하지 아니하시고 또 그 몸이  어떤 그 돌변되는 그런 일들을 다 예정해 놔서 그런 돌변된 예정 그런 순서를  통해서 변사도 되고 물에 빠져서 익사도 되고 또 무슨 질병으로 말미암아 죽는  것도 있고 어쨌든지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지금 죽는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우리가 안 믿을 때 안 믿는 행위, 또 지금도 안 믿는 사람들이 안믿는 행위, 안  믿는 행위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을 따라 피동되지 않는 행위가 안  믿는 행위입니다. 믿는 행위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알고 인정하고 거게 따라서  복종하는 그 행위가 믿는 행위입니다.

 그러면, 안 믿는 행위하는 그 택자나 불택자나 안 믿는 그 행위로서는 심신의  이것이 죽습니다. 그 심신의 죽는 것이 그게 난 지 한 한달 된 그 아이와 벌써  한 다섯 달 된 아이와 그 두 아이를 놓으면은 어느 것이 많이 쇠해졌다,  낡아졌다, 더러워졌다, 죽어졌다 이거는 환하게 압니다. 그 아이보다는 한 달만  더 지내도 그만치 늙습니다. 그만치 쇠해집니다. 모든 뭐 그 과학적으로  세포적으로나 각 기관적으로 다 그렇게 늙어지고 쇠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택함을 입고 중생된 사람은 그 생활에서 아주 죽는 그런 생활도 있고,  아주 죽는 생활, 하루 살았으면 하루 산 것 만치 그만치 죽은 그 생활도 있고 또  하루 사는 생활에서 죽고 살아나는 그 생활도 있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죽지  아니하고 살아나는 그런 생활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그 사람의 심신이 믿음을 지키지 안하고 하루 살았으면 그  심산은 죽었습니다. 이해가 됩니까? 믿음을 지키지 안하고 하루 살았으면 하루  산 고 요소는 다 죽었습니다. 심신의 기능도 죽었고 피부도 죽었고 또 모든  근육이나 세포도 그만치 죽었습니다. 그 양만치 죽어졌습니다.

 또 그 하루를 살면서 믿음으로 살았으면, 믿음으로 산 것은 하나님에게  피동으로 순종으로 산 것이니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진리로  인도하는데 진리로 인도하는 그 진리 따라서 살고 또 성신의 감화로 우리를  인도하는데 성신의 감화 따라 살고,  하루나 한 시간이나 살면서 믿음으로 살면, 믿음으로 살면 죽고 삽니다.

믿음으로 살면 죽고 삽니다. 죽다니?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 순종으로 살면  옛사람 자기가 죽습니다. 한 시간 믿음으로 살면 악령은 거게서 나를 통치하는  통치권을 뺏기게 되고 나는 악령에게서 해방 자유하게 되고 또 내 심신의  기능이나 심신은 거게서 죽고 새로와집니다. 죽고 삽니다.

 그러면, 사람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사는 그것이 죽으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나게 됩니다. 또 자기의 이 심신의 기능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한 시간  살았으면 그 산 심신의 기능은 영원히 죽어 버렸습니다. 영원히 죽어서 이다음에  부활해 가지고서 영원한 죽음의 세계로 옮겨져 갑니다.

 또 한 시간이나 하루나 그 사람이 믿음으로 살았으면 이 죽을 것이, 죽을  우리외 심신의 기능은 범죄로 죽을 것인데 죽을 심신의 기능이나 심신이 죽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납니다. 죽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납니다. 죽지 아니할 것으로  성화됩니다. 죽지 아니할 것으로 변화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순생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순생은 죽음 순(殉)자 순이요 생은 살 생(生)자 생인데 죽어 사는  것입니다. 죽어 사는 것. 죽어 사는 것은 뭐이 죽는가? 한 시간 사는 고 시간  살이에서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은 살아나고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 아래에  있는 그 심신의 기능은 그것은, 죄와 사망과 마귀 아래에 있는 심신의 기능은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복종하지 아니하는 것으로서 없어집니다. 죽습니다. 죽고  피와 성령과 진리의 것으로 살아납니다.

 그라면, 죽은 데에서는 죽은 데서는 없어졌습니다. 영생하는 것으로  옮겨졌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내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죽은 자들이  내 음성을 듣는 자들은 살아나리라. 곧 지금이 그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 심신의 기능이라 하는 것이 없어지기는 없어집니다. 심신의  기능이 없어지는데 없어지기를 죽어 없어지는 자 있고 살아났음으로 없어지는 거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는 다 옮겨집니다.

 어떤 그릇에 이것이 열 개가 담겨 있는데 믿음을 지키지 안함으로써 열 개 중에  한 개가 죽음으로 그 그릇에서 없어졌습니다. 죽음으로 옮겨서 없어졌습니다. 또  그 한 시간 믿음으로 살면 또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서 또 죽음 그릇에  없어졌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 이랬습니다.

 그러면, 옮겨진 것, 옮겨진 그것이 우리 눈에 육안에 보여지는가? 옮길라고  하는 거는 보여지는데 완전히 옮긴 것은 안 보여집니다. 안 보여집니다. 옮긴  것은 없어졌습니다. 옮긴 것은 없어졌습니다. 이러니까 본래 있던 이 사망의  그릇 속에는 없어졌습니다. 없어졌습니다.

 사람이 하루를 살면 하루 산 것만치 그이의 사람의 정력이나 모든 진액이나  그런 아름다움의 미나 없어졌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늙어졌다 이랍니다.

늙었다. 없어졌습니다. 없어졌는데 죽어 없어진 것 있고 살아 없어진 것 있고  이렇게 두 종류로 없어집니다.

 내나 그 자리는 이 사람이라는 그 본체 이 본체에서는 한 시간 살면은 그  본체에서는 한 시간 산 그 시간에 이용된 모든 정력이나 또 뭐 모든  아름다움이나 젊음이나 그런 것은 다 한 시간 살았으면 산 것 만치  없어졌습니다.

 없어졌는데 없어지기를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 멸망 받을 것으로서 그 사람  몸에서 없어진 거 있습니다. 없어진다는 거 기억이 납니까?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모두?  없어졌습니다. 그 사람이 믿음으로 살았으면 그것이 그 사람의 그 몸에서  없어졌으나 영생할 것으로서 생명으로 옮겨서 없어졌습니다. 이러니까 겉사람은  부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 이랬습니다. 이러니까, 그 한 시간 사는  데에서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자기중심자기 위주의 인간과 또 악습 그런 모든  버릇과 악령 이 셋은 한 시간 믿음으로 산 것만치 없어졌고 또 믿음으로 살지  안하면은 한 시간 산 것만치 그것은 커졌습니다. 없어졌는데 커졌습니다.

없어졌는데 커졌습니다.

 믿음으로 살지 안함으로 없어지고 큰 것은 무엇이 없어졌습니까? 사망과 죄와  마귀 아래에 있는 이 젊음, 건강, 정력 이것이 없어지고 없어져서 커졌습니다.

없어지고 커졌습니다.

 없어진 것은 심신의 기능과 심신의 미와 젊음과 그런 것이 없어졌는데 없어지고  믿음을 지키지 안한 자도 없어지고 커졌는데 커진 것은 뭐이 커졌습니까? 커진  것은 뭣이 커졌지요? OOO, 뭣이 커졌어? O집사, 또 뭐이 커져? 죽을 것이? 오십  점밖에 안 돼. 죽은 것이 커졌어. 죽은 것이 점점 커졌어. 그렇지 안해요?  유황불 구렁텅이에 갈 것이 지금 커졌습니다. 눈에 보이지 안해요, 그거는. 아주  죽었기 때문에.

 또 믿음을 지키면, 믿음을 지키면 죽는데 믿음을 지켜서 죽어 없어졌습니다.

믿음을 지킴으로 없어졌습니다. 믿음을 지킴으로 그 사람이 젊음도 없어졌고  아름다움도 없어졌고 또 정력도 없어졌고 그것이 없어졌습니다. 없어져 가지고  커졌습니다.

 없어진 것은 자기의 본체에서, 심신의 육이라는 본체에서 없어졌고 크기는  어데서 컸습니까? 뭐이 컸습니까? 어데서 컸으며 뭐이 컸습니까? 저 우리  OOO장로님. 살아난 것이 컸습니다. 영생하는 것이 점점 커집니다. 이래서 ‘자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이러니까, 자꾸 한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영생하는 기능으로 영멸하는  기능으로, 또 영생하는 이 힘으로 영멸하는 영멸의 힘으로, 영생하는  아름다움으로 영멸의 아름다움으로 그렇게 커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실을 통해서 순생한다 하는 것은 죽고 산다 그말인데 죽을  것이 죽고 살 것이 산다. 죽을 것이 죽다니?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 있는  그것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그것이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는  거게서는 없어지고 피와 성령과 진리의 중생된데로 옮겨서 없어졌고, 또 악령.

악성 악습, 죄와 사망과 마귀로 서서있던 자는 그 자리에서 죽어서 옛사람이  죽어져 버리고 새사람으로 살아서 없어지고, 옛사람이 믿음 지키지 아니함으로서  옛사람이 아주 죽나 사나 미결에 됐던 것이 완전히 완전 사망으로서 옮겨져  없어지고, 이래서, 우리가 순생한다 하는 것은 죽고 산다는, 죽을 순(殉)자  살생(生)자 죽고 산다는 것은 내가 악령, 악성, 악습이 내게 살아 있었는데  그놈은 죽고, 죽이는 세력이 있었는데 그놈은 죽고, 악령, 악성, 악습 그놈은  죽어서 옛사람은 죽어지고 또 옛사람으로 살 수 있는 그 기능은 죽어지고  옛사람으로 살 수 있는 그 기능이 죽어져서 변화돼서 영생할 기능으로  성화됐습니다.

 우리가 현재라 하는 그 시간 시간마다 순생으로 사는 것은 죽을 자를 그자를  죽을 자는 죽여 버리고 영생하는 자로 살려 사는 것이 그것이 순생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죽지 안하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겠고’ 우리는 현실에서  옛사람이 죽어져야 새사람이 살아납니다. 옛사람이 죽어져야 새사람이 살아나고  또 죄와 사망과 마귀의 것으로 살 것이 그것이 죽어서 이제는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사는 자로 살아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에서 몇 가지가 살아나는고 하니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살아나고,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살아나고 또 멸망 아래에 있는 그 심신의  모든 정력이 그것이 심신의 모든 정력이 멸망 아래 있는 심신의 정력은 죽어지고  영생 아래에 있는 심신의 기능으로 옮겨져서 변화됐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성화라, 거룩하게 변화된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의와 진리대로 이렇게 사는 그 심신의 정력이  있습니다. 심신의 정력이 있으면 그 심신의 정력이 진리로 삽니다. 진리와  영감과 피로 삽니다. 진리와 영감으로 피로 삽니다. 심신이 진리로 삽니다.

 진리로 살면 그 심신의 모든 정력이 지금 다 살았습니까?, 다 살아있습니까?  또는 아직까지도 지금 살아난 것도 있고 또 살라고 노력하고 있는 아직까지  미결에 있는 것도 있고, 그러면 이는 확실히 살아났다 영생으로 살아났다 하는  완전 결정된 것 있고 아직까지 완전히 살아난 것으로서 판정이 되지 안하는  미결이 있다 그말이오. 미결에 있으니까 그게 아직 죽을 수도 있고 살수도 있는  그 심신의 정력입니다.

 말씀대로 오늘 하루를 살았으면 그 전신이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말씀대로  살았는데 산 그 사람의 그 전신의 정력, 마음의 힘이나 모이 육체 고깃덩어리의  힘이나 그것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말씀대로 살았는데 말씀대로 산 그  가운데에 그날 없어진 정력이 있고, 없어진 것이 있고, 말씀대로 살므로 없어진  것이 있고 말씀대로 살고 없어지지 안한 것 있습니다.

 그라면 말씀대로 살다가 없어진 거 그거는 어찌됐습니까? 그것은 어찌  됐습니까? OOO. 말씀대로 살다가 없어진 거는 그것은 완전히 결정이 나  버렸습니다. 완전히 다시는 시험받지 안하고, 다시는 죽이느니 살리느니  시험받지 안하고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완전히 살아났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그 정력 그것이 아직까지 죽지 아니하고 말씀대로 살면서 살아  있습니다. 그러면 살아 있는 그것은 완전히 살았습니까? 아직까지 살라고 애를  쓰는 도중에 있고 미결에 있습니까? 그거는 살아난 것으로 완전히 결정이  났습니까?, 완성이 됐습니까? 아직까지 미완성입니까? 살아남아 있는 것은  완전히 미완성입니까? 완성입니까? 그것은 아직까지 살아남아 있어.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그 심신의 정력이 하나님 말씀대로 삽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내 심신이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말씀대로 살았는데  말씀대로 살므로 하루 산 것 만치 아주 없어진 거 있습니다. 늙어진 거  있습니다. 늙어져 버렸어. 그러면 그 정력 못 찾소. 늙어졌소. 또 쇠해져  버렸어. 그만 그것은 하루 산 것만치 그 정력이 없어졌어. 없어진 거 있고  아직까지 없어지지 안하고 남아 있는 거 있습니다.

 남아 있는 거 그거는 뭐인가? 하나님의 진리대로 믿음 생활하는 것이 남아 있는  거 있습니다. 남아 있는 거 있으면은 남아 있는 그것은 죽은 것입니까? 살라고  애를 쓰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까? 완전히 살아났습니까? 그거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자, 누가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저 우리 OOO집사님 한번 대답해보십시오. 아주  죽은 거 아니고 산 것도 아니고? 노력하는 중에 있어? 그거 나는 못 알아 듣는  줄 알았더니만 원청 기도 천막에 돌아다니더니마는 인제 귀가 열렸구만. 고거는  미완성 미결에 있는 거야. 미결에 있기 때문에 그거는 앞으로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습니다. 미결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믿음을 지킴으로서 그만 그 하루 사는 가운데에 믿음을  지킴으로 완전히 없어진 거 있습니다. 하루 산 것만치 젊음도 없어졌고 미도  없어졌고 또 정력도 없어졌고 다 없어졌습니다. 믿음을 지킴으로 없어졌습니다.

없어진 거 그것은 아주 사망한 것입니까? 그것이 지금 이제 살라고 지금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완전히 살아난 것입니까? 저 여반에 한번 물어  볼까? O에서 온, 아따 이름이 뭐이더라? 내가 이름을 잊어 버렸다. 모르겠다. OO  뭣이? OOO권사님 구역에. 한번 대답해 봐요.

 믿음 지켜서, 믿음 하루 지키는 가운데에 아주 그만 늙어져 버렸고 죽어져  버렸고 없어진 그 젊음도 있고 또 정력도 있고 그 없어진 거 있습니다. 없어진  그것은 지금 안 죽고 살아날라고 노력하는 그 노력 중에 있는 것입니까? 완전히  죽은 것입니까? 완전히 산 것입니까? OOO씨, OOO씨지? 인재 이름이. OOO씨 말해  봐. 대답해 봐. 그것은 완전히 죽었는가 살라고 하당짜당 애를 쓰고 있는가  완전히 살아났는가? 한번 대답해 봐. 그 몰라? OOO씨, 완전히 살았어? OOO씨,  맞아요. 그래 맞았어. 완전히 살았어. 살라고 노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완전히  살았어. 이제 다시는 뭐 살라고 노력할 필요 없어. 그거는 완성했기 때문에  합격이라. 완성했기 때문에 다시는 노력이 필요 없고 미결이 아니라. 완전히,  완전히 해결 나버렸어.

 아직까지 그라면 없어지지 아니하고 그대로 남아 있는 남아 있는, 믿음을  지켰으나 남아 있는 그 모든 정력과 믿음과 미 모든 그런 것이 남아 있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완전히 산 것입니까? 완전히 죽은 것입니까? 지금 안 죽을라고  노력 중에 있는 것입니까? 그 어느 것입니까? OOO씨. 졸기는 만날 조는데 그래  알기는 아는구만. 노력 중에 있어, 노력 중에. 우리가 요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이러니까 죽지 아니하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순생이라 하는 것은 죽고 사는 것이오. 우리는 현실에서 죽일 자가  죽어야 살아날 자가 살아납니다. 믿음을 지키면 죽을 자는 죽고 살아날 자는  완전히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순교는 뭐이 순교인고 하니 순교라는 것은 완전히 다 살아났다.

살아나는 것이 끝났다, 이제는. 이제는 시험받을 것이 없어. 그 사람이 진리를  지키다가 진리와 영감으로 인해서 순교 당해서 끝을 마쳤습니다. 그 사람은  진리와 영감으로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대 속의 공로로 죽어 버렸습니다. 죽어  버렸으면 그것은 그 순교인데, 죽어버렸으면 순교인데 그 순교는 죽음  완성입니까? 영생 완성입니까? 영생 완성이오. 영생 완성.

 그러면,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방법이 이 방법으로서 완성을 했습니까? 다  행해서 완성했습니까?, 이제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우리의 대형, 대형,  대화친의 생애를, 했는데 그 일을 다 하고 죽으셨습니까? 다 하는 것으로서 끝을  냈습니까? 다 하는 것으로 끝을 냈습니까? 그걸 다 하는 것을 다 하고 나서  예수님이 끝냈습니까? 다 당신에게 있는 거 다 그거하는 데에 솔빡 다 바쳐서  끝났습니까? 다 행해서 끝났습니까? 다 바쳐서 끝난 요 비밀을 알아야 됩니다.

다 바쳐서 끝났어.

 그런고로, 우리는 현실이라는 요 현실에서 ‘죽지 않으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겠고’ 하는 요 말씀을 기억합시다.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하는 요거 비유라 말이오. 씨로 비유했는데 알아듣기 쉽기  위해서 이 씨로 가지고서 우리에게 비유한 것입니다. 그 씨를 심었는데 그 씨가  보이는 씨가 썩어서 죽어 버려야 됩니다. 죽어서 썩어야 거에서 생명이 나  가지고서 자라가게 됩니다. 생명이 나서.

 그 씨가 하나도 죽지 안하고 썩지 안하고 가만히 고대로 있으면은 그 속에 있는  생명이 자라납니까 지금 안 썩고 산 것으로서, 안 썩고 산 것으로 살아나  가지고서 자라갈 수가 있습니까? 그것이 죽어야 살아나고 또 그게 산 것으로  자라가서 청청하게 자라갈 수가 있습니까? 고것을 우리가 생각하면 알아요.

 모든 이 소나무 솔씨 같은 것은, 이거 또 씨도 여러 종류라. 밀씨는 속에  생명은 보이지 안하고 눈이라고 있습니다. 눈이라고 있는데 그 눈 속에 생명이  들었습니다. 생명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왜 생명이  안 보여?’ 이러나 밀을 생명을 죽인 밀과 생명 있는 밀을 저거가 뭣 억만 배  돋보기 요새 뭐라 하더라? 전자 현미경이라 하는 거? 그런 것으로 몇 백 배 몇  천 배 봐도 생명은 안 보입니다 그거나 저거나 다른 거 없어. 꼭 같습니다.

 거기 생명이 있고 없는 그거는 안 보이는데 생명이 있으면은 심으면 썩어  버리고 생명이 없는 것은 땅속에 심어져서, 생명 없는 것도 심으면 죽고 썩고,  생명 없는 것도, 삶아 놓은 씨 그거는 생명이 없는데 생명 없는 씨도 땅 속에  심으면 죽고 썩고, 또 생명 있는 씨도 땅 속에 심으면은 썩고 죽습니다.,  그런데, 뒤에 나는 것이 뭐입니까? 생명이 있는 것은 그것이 썩을 것을 다  생명이 삼켜서 이제, 밀이 이래 처음에는 죽으면, 죽으면은 그것이 차차차 죽는  데 따라서 썩습니다. 썩으면 그 밀에 있는, 썩으면 그 밀이 답니까 씁니까?  썩으면 다요 쓰요? 쓰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손 들어 봐. 달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 엿질금 기르는 거 알면 다 알겠지. 달아요. 달면 그 단 거 그거  그것을 생명이 있으면 달아지는대로 자꾸 먹어요. 자꾸 빨아먹어요. 빨아먹어  가지고서 나중에 그거 빨아먹어 가지고 속에 보이지 안하는 생명이 그걸  빨아먹고 자랍니다.

 자라면 나중에 자라고 난 다음에 어떨 때는 보면은 밀이 벌써 자라서 아주 한  길이나 커졌습니다. 한 길 커진데 그 밀을 쏙 뽑아 보면 밑에 밀에 그 씨가  달렸어요 안 달렸어요? 달렸습니까? 안 달렸습니까? 똑똑히 말해 봐. 껍데기  달렸지? 달렸지. 고게 달렸어. 쪼글쪼글하게 쪽 달렸어. 알맹이는 쪽 빨아먹고  고거 달려 있다 말이오. 고거 고것이 잡아먹고 살았어.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이 현실서 이 죽을 것이 말이지요. 속에 생명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로 중생된 생명이 있는 그 사람은 요  심기어지는 밭은 뭣을 밭이라고 말했습니까? 현실, 또 그 씨는 그 사람의 행위,  그 사람의 행위, 그 사람의 행위, 또 심기워지는 것은 현실에서 행한 것, 이해가  돼요? OO이. 이해가 되나? 너 학교에서는 일 등 했다 하더니 이거 똑똑히  알아듣겠어? 그래.

 씨는 그 사람의 행위, 그 사람의 행위는 땅에 심어져야 현실을 통과해야,  통과하면 속에 생명 없는 씨는, 그만 썩어져 버리고 흙이 돼버리고 말고,  썩어지고 흙이 되고 말고, 다 같이 멸망이 되고 말고 생명있는 씨는 그 흙을  지기를 다 빨아먹고 이게 자라 가지고서 커집니다. 처음에는 생명이 지기를  빨아먹을 수 있어요 없어요? 지기를 빨아먹을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고  생명이? 지기를 빨아먹을 수 있습니까? 곳 씨의 자기 자체 안에 있는 고걸  빨아먹을 수 있습니까? 자체에 있는 것을 빨아먹을 수 있습니다.

 그 씨는 만일 고럴 때에 말이지요. 고럴 때에 움이 날라 할 때에. 고때에 고  살며시 고 움트는 고것만 남겨 놓고, 움트는 고것만, 질금 쯤 나오지 안해요,  이런 ? 움터 나온 고것만 남겨 놓고 고거 당분 주머니 사탕주머니 당분 주머니  고 달콤한 거 고놈을 똑 잡아뗍니다. 떼고 나서 고대로 내비 두면 죽어 버리요.

안 자랍니다. 요놈을 다 먹고 난 다음에 흙을 먹을 수가 있다 그거요. 흙을 먹을  수가 있어.

 자기를 완전히 삼켜서 새사람이 옛사람을 삼키고 이 심신의 기능이거와. 모든  육체 이걸 완전히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생명이 완전히 삼켜서 자라고 난  다음에는 그거는 우주와 영계에 가 가지고서 자라서 활동을 할 수가 있는 그게  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는 질금 자체를 먹고 자라고 그러면 이 그 다음에는 이제  그거 자꾸 자라고 나면은 이 세상에서도 자랍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이 세상에  모든 이런 권세 저런 마찰 저런 환난 이런 거 모든 거 다 온 세상 그것을  가리켜서 세상은 뭐이라고 말했지요? 우리의? 밥이라. 우리의 밥. 우리의 밥.

 이제 그걸, 자기를 완전히 삼키고 자기를 완전히 새생명이 삼킨 사람은 세상도  삼킵니다. 알겠습니까? 자기를 완전히 삼킨 자는 세상도 삼켜. 밀이 자체 안에  있는 분을 완전히 삼킨 그거는 인제 그밖에 있는 많은 땅들의 지기도 다 삼킬  수가 있다 그거요.

 이래서, 요게 대해서 자꾸 이걸 하나씩 똑똑히 알아서 확정을 지워져야 죽음을  닥칠 때에 요동하지 않습니다. 이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뭐 그리 안 해도  사는데’ 제가 뭐인지도 모르는데 무슨 신앙생활 할 것입니까? 모르면 못  합니다. 모르면 못 하고 알면 힘이 있습니다. 그거 여게 지금 이 반지가, 반지가  두 개가 있는데 자기는 지금 아이들 보리대로 만든 반지 보리대로 만든 반지  그거 똑 금 모양으로 노르꾸름하지 안해요? 보리대로 만든 반지를 지금 끼고  있다 말이요. 끼고 있는데 여게 보니까 아주? 금반지가 있습니다. 금반지가  있는데 네가 뭐 이거 할라면 이거하고 금반지 할라면 금반지하고 둘 중에 네  마음대로 해라 할 때에 그 사람이 금반지가 좋은지 보릿대 반지가 좋은지 확실히  모르면은 그 사람이 더듬을 수 있겠지요?  잘못 알아서 보릿대 반지가 좋고 금반지보다 보릿대반지가 가치 있다고 확실시  아는 사람은, OOO이가? 뭐 하겠어? 저 OOO이는? 내가 그래 물었나? 보릿대  반지와 또 금반지 이 둘이 있는데 보릿대반지가 좋은 건지 금반지가 좋은 건지  모르고, 모르면 떨떨하지요. 어느 걸 취해볼까 이렇지. 만일 보릿대반지가  이것이 더 좋다고 그 사람이 그렇게 알았으면은 그 사람은 무슨 반지  취하겠습니까? 내가 그래 물었을 건데. 내가 그래 묻지 안했어? 그 답을 꺼꾸로  대답했다 말이오. 그리 쉬운 게 아니오. 인제 봐, 인제 바로 대답했어.

보릿대반지 하지. 그러나 그 사람이 잘못, 예수 믿는 것을 잘못 배워 놓으면은  그 사람은 오히려 보릿대반지 그게 좋다고 이 마귀란 놈이 유혹을 주니까 나중에  보릿대반지 취할 거라 말이오.

 지금 보릿대반지 취하는 것은 모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믿음의  행위하지 안하고서 이 세상만 보고 사는 것은 세상이 좋고 천국은 모르기 문에  그 사람이 세상 취하는 것이 보릿대반지 취하는 거와 꼭 같다 그거요.

 또 세상이 좋으나 천국이 좋으나 뭐이 좋은지 금반지가 좋은지 보릿대반지가  좋은지 둘 중에 어느 게 좋은지 모르겠다 이라면 얼떨떨해서 미결로 있고 항상  방해하겠지.

 확실히, 금반지가 좋고 보릿대반지는 가치가 없다 하는 걸 확실히 알면은 그  사람이 뭐 금반지 취하는 것이 주저하겠소 막 힘있게 빨리 취하겠어? 만일 그걸  못 취하구로 하면은 막 사정도 하고 막 강제로 뺏어서라도 금반지 취할라고 하지  않겠어? 아는 데 길이 있다 말이오. 모르면 안 돼.

 이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이치를 바로 배워야 되지 바로 안 배우면 그 사람  암만 목사노릇 해도 물으면 아무것도 모르는데? 예수 믿으면 구원 얻는다는  그거는 기본구원 얻는 것이고 아주 윤곽적으로 그래 있는 것이지 고 세밀한 것은  요 자꾸 배워요. 지금 요 배우면은 요 부활에 대해 지금 말이 나오는데 인제  오늘 아침까지는 뭐이냐 하면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하는 요것을  지금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에서 현실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죽고 살아야 돼.

죽일 자를 죽이고 살릴 자를 살려야 돼. 죽여야 살지 죽이지 안하면 살아나자  못해. 또 없어지지 안하면, 없어지지 아니하면 영원한 것이 되지 못해.

 없어지는 데는 종류가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없어지는 종류가 몇  가지요? 두 가지. 없어지는 데는 종류가 두 가지라. 없어지는 종류가 두  가지인데 믿음으로 없어지는 거 있고 자기 주장대로에 없어지는 거 있고 믿음을  안 지킴으로 없어지는 거 있고 믿음을 지킴으로 없어지는 거 있는데 믿음을  지키든지 안 지키든지 없어지기는 꼭 같이 없어집니까 믿음 지키면 없어지고  믿음 안 지키면 안 없어지고 없어지는 건 다릅니까 꼭 같습니까? 믿음을 지키나  안 지키나 없어지는 것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저 OO집사. 똑 같이 없어져?  맞아요? 똑 같이 없어지는 거 맞아요? 똑 같이 없어져. 똑 같이 없어져. 똑 같이  늙어.

 뭐 제가 암만 무슨 요새 뭐 노쇠 방지라고서 온갖 뭐 식품으로도 하고  운동으로도 하고 뭐 오만 방편으로도 해 쌓아도 늙습니다. 몰라 그렇지 자세히  볼 줄 아는 사람은 세 살 네 살 더 틀리지 안해요. 보는 데가 있거든. 이런 데  같으면 후 쭈그름살 있는 거 뭐 위로 잡아매고 댕겨매고 어짜고 해도 또 못  댕겨매는 데가 있다 말이요, 못 댕겨매는 데가 있어. 못 댕겨매는 데가 있어.

눈도 못 댕겨매고 입도 못 댕겨매요. 그 입도 댕겨 맬 수가 없어요. 댕겨매면 더  더러워져요, 이러니까. 모든 눈이 있어 다 보면은 나이가 환하게 이거는 얼마  남았다 얼마 죽었다 그거 다 알고 있어.

 이러니까, 죽기는 다 같이 죽는데 하나는 영원한 사망이 되고 하나는 영생이  됩니다. 어째 죽으면 영생됩니까? 네, 순교로 죽으면.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순교 교라 하는 것은 예수교 말입니다. 예수교로 죽으면, 믿음으로  죽으면 영생한다 그말이오. 그러면 지금 실은 우리가 시간 시간마다 뽀스래기  순교를 합니다. 시간 시간마다 뽀스래기 순교를 해. 뽀스래기 순교해서 죽어야  살아요.

 이런데, 죽어야 사는데 믿음으로 지켜 믿음을 지켜 죽었으면 영생하고 믿음 안  지키고 마귀노릇 해도 죽기는 죽습니다. 그거는 영멸합니다. 늙기는 다 같이  늙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도 늙고. 제 욕심대로 살아도 늙고 늙기는 늙는데  뭣 때문에 영원한 멸망을 마련할 이유가 뭐이겠습니까? 영생을 마련하지.

 그러면, 다 같이 늙기는 늙는데 어째 늙으면 안 늙고 그 죽지 안하고 영생하고  어게 늙으면 늙어 영원히 죽어 버리고 맙니까? 어째 늙으면 안 죽고 영생하고  어째 늙으면 죽어 영원히 멸망 받습니까? 어째 늙으면? 어떻게 늙으면?  쪼그마이. 믿음으로 늙으면 안 죽고 영생합니다. 알겠습니까? 믿음 안 지키고  죽으면 그거는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성공은 어데 있느냐? 이거야 자꾸 죽어 없어지는 건데  아무래도 뭐 살라 해 봤자 한 시간도 더 못 살고 정한대로 자꾸 없어져 가는  건데 우리 수입은 어데 있느냐? 믿음으로 지켜서 썩을 것이,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기 위함이라.

 그 말씀이 있어요? 그 말씀이 어데 있지? 고린도후서 5장 4절에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그 씨는 죽을 것이, 분은 죽을 것인데 그 속에  보이지 않는 생명에게 삼키면 이제 살아서 자라가게 된다 그거요.

 이러니까, 우리의 이 심신은 자연히 뭐 늙어지고 쇠해지고 하기는 죽어지는  건데 죽어지는 것이 생명에게 삼키면은 영생합니다.

 생명에게 삼켜지다니? 뭐에 삼켜지면? 죽을 이 심신이 뭣에게 삼켜지면은  영생합니까? 뭐에게 삼켜지면 영생하지? OOO장로님, 세 가지에게 삼켜지면  영생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기 위해서 지금 막  탄식하면서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노력한다 했습니다. 짐진거와 같이 마음이  눌린다 했어.

 무거운 짐진 거와같이 마음이 눌리니까 처음에 시작이 마음이 더 눌립니까 끝이  마음이 더 눌립니까? 끝이 더 눌립니다 처음이 더 눌립니까? 짐진 거는 어때요?  끝이 더 눌리요. 끝이 눌리요. 예수를 믿어 갈수록 마음이 자꾸 눌립니다.

 좀 예수 믿은 사람들, 좀 믿으면 ‘이제 나이가 이만치 됐으니까’ 하고서  나이가 많아 갈수록 믿음이 자꾸 약해지고 믿음도 늙어지고 쇠해지고 하는 그  믿음은 생명이 있는 믿음입니까? 죽은 믿음입니까? 죽은 믿음이야. 죽은 믿음.

 산 믿음 가진 사람은 자꾸 살아갈수록 자꾸 늙어져 갈수록 자꾸 근심이 더 되고  걱정이 더 되고 자꾸 지금 그 마음에 더 눌려진다 말이오. 후에 눌려져?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도록 하기 위해서 마음이 눌려진다 그말이오.

 그러면, 그 교회를 가 보면은 그 교회에 나이가 차차 많아지니까 그 교회는 그  교인은 나이가 많아지니까 ‘우리 뭐 나이 많은 사람들이 뭐하겠나 지금 이제는  팔도강산으로 돌아다니면서 구경이나 하고 좋지’ 이래 가지고서 거게는 나이  많은 사람들은 마음 턱 놓고 이제는 ‘인제 뭐 우리 준비 생활 다 했으니까  우리는 이거 좀 구경이나 하고 돌아다니자’  어떤 교회는 보니까 나이 많은 층들이 지금 팔도강산 유람하고 지금 이제는  마음 놓고 그래 사는 교회가 있고, 어떤 교회는 그 가보니까 그 교회는 또  나이가 많아 갈수록 자꾸 지금 죽겠다, 나이가 많아 갈수록 뭐 죽을뚱 살뚱도  모르고 나이가 많아갈수록 자꾸 지금 기도하고 나이가 많을수록 자꾸 회개하고  나이가 많을수록 자꾸 신앙에 대해서 마음이 눌려서 그라는 교회 있습니다.

 그거 보면 알아요. 여러분들이 이 지금 이 교회를 돌아다녀 보라 말이오. 보면  알아요. 교회를 봐도 그 교회 보니까 나이가 많아가니까 이제 마음놓고 평안하게  그라는 그 교회가 있고, 그 교훈이 그렇다 그말이오. 나이가 많아갈수록 자꾸  마음이 눌려지니까 이게 처음에 젊을 때는 그렇더니마는 나이가 많아지니까 자꾸  지금 회개할라고 자기가 참 새사람으로 살라고 온전한 사람이 되어 질라고 이  부활에 대해서 어찌 되나 걱정이 돼 가지고서, 신앙 걱정이 돼 가지고서 힘은  없는 것이 열심은 자꾸 내고 애를 더 쓰고, 어떤 교회는 이제는 애 안쓰고 다  썼으니까 뭐 나이 많은 사람들은 우리 일 다 했다. 애 안 쓰는 그런 교회가 있다  말이오. 교훈이 그래 그래요. 어떤 교회 말하기를 그라더래요. ‘지금 권찰님  기운 좋습니까?’ ‘예, 뭐 지금 뭐 나이가 많아 놔서.’ ‘그래 뭐 지금 뭐,’  그래 물었더래. 여기서는 식구 많은 게 크거든. 이래 놓으니까 ‘아마 뭐 구역  식구도 많지요?’ 이라니까 ‘예?’ 구역 식구가 많지요?’ 이라니까 ‘뭐 지금  어데 권찰 일 합니까? 안합니다. 벌써 사면했습니다. 그렇츰 나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 뭐 지금도 권찰 일을 해요?’ 큰 욕같이 생각돼. ‘권찰일 해요? 이제 다  내놓고 젊은 사람들이 하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무슨 권찰일을 하겠소? 지금은  그런 거 안 합니다.’  아주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건 일 안 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그런 일을 나이  많아서 늙어서 꼬부랑꼬부랑 기어가면서 지금 권찰하고 심방하고 이렇게 뭐  기도하고 이란다 하는 것은 이제 수치스럽게, 나이가 많으면 이제 평안하게  자식들 벌어 먹이라 평안하게 살고 팔도강산유람이나 하고 이래 살아야 팔자가  좋지 늙어서까지 제가 아당아당 벌어야 살고 이래 사는 거 모양으로, 육체는  그라면 불쌍한 사람이라. 영은 그라면 행복된 사람이라. 육체는 그 사람이  불쌍한 사람이지만 영은 그렇게 해야 행복된 사람이라.

 ‘지금도 그라면 거기는 서부교회는 지금도 그라면 권찰 일 합니까?’ 그 하도  거석해서 ‘뭐 이래 할라 해도 인제 전부 젊을 때 세월 다 보내버리고 이래  놓으니까 하고 싶기는 하고 싶지마는 힘이 없어서 뭐 한둥만둥 그렇지요’ 그  사람이 조금만 더 물었으면 ‘그러면 식구는 얼마나 됩니까?’ ‘한 오백 명  됩니다’ 이라면 깜짝 놀랄 거라.

 ‘헤, 팔도강산 유람하자 이제 다 됐으니깐 이제 젊은 사람한테 다 맡겨놓고  나이 많은 사람 쉬어야지’ 그 쉴 수 있는 게 복음을 그까짓 걸로 받아 그렇다  말이오.

 바울은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되기 위해서 무거운 집진 거와같이 마음이  눌린다 했는데 어떤 교회는 교훈에 따라 그래 되는데 어떤 교회는 교훈에 따라서  다르다 그말이오. 이게 산 복음이고 죽은 복음이고 표가. 나는 거라. 여러분들이  눈이 있어 가지고 이 면 저 면을 바로 보면 환하게 보여지고 있어.

 못 보는 거는 여기 막 껍데기를 잡아매서 뻔들뻔들하면 이거 안 늙은 줄  알지마는 못 얽어매는 데가 있어. 못 얽어매는 데가 있는데 요위에는 그렇지마는  아래 눈썹으로는 못 얽어 붙들어 매지를 못해요 위에 주름살 몇 개 요거는  얽어매지를 못해. 요 입에 주름살 있는 것도 요건 얽어매지 못해. 얽어매면 더  쪼글쪼글해져. 그러니까 얽어매지 못해. 얽어맬 데가 없어. 다 보면 다 늙은 게  표가 다 나요.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이 진리를 바로 배우고 보면은 벌써 살아 있는 동안에  ‘나는 참 이 옳은 교훈을 받아서 얼마나 행복된지 모른다’  지금 여기 저 내가 그래요. 여기 OOO권사님 저런 분들은 내가 큰소리를 탕탕  합니다. OOO권사님이니 그런 데 내가 큰소리를 탕탕해요. 왜? 나 안 만났으면  지금 손자들이나 엎어주고 지금은 조금 먹을 거나 있으면은 팔도강산 유람이나  하자 이렇지 언제 놀러 갈 여가도 없고 쉴 사이도 없고 이거 심방해야 되겠고 또  기도해야 되겠고 그 문제 때문에 또 하나님에게 또 부르짖어야 되겠고 걱정해야  되겠고 그건 사람 안 됐어.

 이러니까, 나 만나 가지고 그렇게 한 게 그 행복이요 불행이요? 안만나고 돼  봤자 찍해야 손자나 업고 그리 안 하면 뒷방 노인이 돼 가지고서 이래 가지고  돌아다니는 그 불쌍하고 가련한 할마이가 되지 복된 하나님의 귀한 종은 안 돼.

 큰소리 내가 해요. 이러니까 내가 자기들에게 좋게 시켰고. 바로 시켰고 뭐  유익되게 시키지 나쁘게 시키지 안했으니까 복종해! 이제 뭐 그만 벌벌 떱니다.

그거 지금 나이 많은 OOO권사님 이런 분들은, 뭐 OOO, OOO, OOO, 이 나이 많은  사람들은 내가 말하면 괭이 앞에 쥐요. 벌벌 떠요. 권찰 가운데서도 나한테서  큰소리 빵빵 하는 그런 거 아직까지 썩지 안하고 죽지 안해 그래. 지금 그거  인제 아직까지 안 돼 그래.

 이러니까,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기 위해서 점점 마음이 눌려지는 거,  이 현실에서 썩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면 영생되는데 이 현실에서 그만,  생명에게 삼켜지는 것은 생명은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피에게 삼켜지는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는 것이고 사망에 삼켜지는 것은 자기중심 자기 위주 자기  욕심대로에 사는 것이 사망에게 삼켜지는 것이라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걸 알아야 돼. 진리를 알아야 거석하지.

 그러니까, 이 부활에 대해서 요새 지금 공부하니까 36절 이하에서 죽 이것을  자꾸 여러 번 읽고 자꾸 연구해요. 그래야 되지 그것이, 이 세상에서 있는 것도  힘드는데 그렇게 쉬운 거 아니야.

 이 내가 보니까 우리 OOO집사님 지금 저 치료 중에 있는데 그거 지금 조금  육신의 병난 것도 고칠라 하니까 힘이 드는데, 아프고 고통스럽고 힘이 드는데  우리가 멸망할 이 심신을, 멸망할 심신을 영생하는 심신으로 이렇게 치료해서  변화시키는 데에 고통이 없어요? 고통이 없고 되겠어? 고통이 없이는 안 돼.

고통이 있어야지.

 조그만한 이도 하나 치료할라 하면은 갈고 아프고 고통이 있는데 하물며 이거  우리의 마음을 완전히 죽은 것을 산 마음으로, 이제 죽은 몸뚱이를 영생하는  몸으로 이와같이 지금 변화시키는 이 치료하는데 그 치료에 고통이 없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우리 우리 예수 믿는 거는 고통이 굉장합니다. 고통이 이 세상에 고깃덩어리  치료하는 것보다 고통이 심해요. 그거 고쳐봤자 잠깐 좀 있으면 죽는 것인데.

영생할, 영원한 멸망을 영생으로서 이렇게 치료해서 고치는데 이 일이 고통이,  치료하는 데에 이 고치는 데에 고통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겠습니까?  없겠습니까? 없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봐요. 육체를 고치는 것보다도  고통이 심하다는 것을 느끼는 자람 손 들어 봐요. 심해요.

 이러니까, 이거 할라 하니까 새벽에도 나와야 되고 또 가다가는 단식도 해야  되고 자꾸 기도도 해야 되고 이거 뭐 밤낮 그저 주야로 이 고통을 해야 되는  건데 편히 예수 믿는 그런 인간들 다 헛일이야. 알겠소? 어짜든지 우선 좋도록,  이제까지, 그래 평했어. ‘총공회 매이지 마라. 총공회 예수대로 예수  믿으면은-거기 말해 놓기를 그래 놨어, 쓰기를 말이오. 총공회 인도대로 백 목사  교훈대로 하면 생전 놀 여가 한번도 없다. 사람이 바빠 죽는다. 한 번도  유람가고 구경 갈 여가도 없다. 하나도 없다. 자유가. 없다. 그래 놓으면 볶이고  볶여 가지고서 그래 놓으니 세상살이에 못 견디겠다. 또 그렇게 살면 다  가족들도 싫어하고 세상 사람들 다 싫어한다.’ 이 나쁜 걸 말했어.‘보기는 잘  봤다’ 고게 좋은 거라. 알겠습니까?  자, 편하게 예수 믿고 싶은 사람들 손 들어 봐. 어찌 됐든 간에 죽음을  자취해서 죽을. 고통을 해 가지고서 그렇게 이제 살아나는 그거 하고 싶은 사람  손들어 봐요. 그거야, 그거.

 여러분들, 매미 그것도 굼벵이가 매미 될라 하면은 쉬운 줄 압니까? 이놈이  올라와 가지고 나무에 딱 붙고 난 다음에는 생생한 놈이 나왔는데 되게 햇볕이  쪼우니까 요래 한번, 고 만들기를 그래 돼. 꼭 찝어 놓으면 빼지를 못해요.

나중에 힘이 없어서. 꼭 찝어 가지고 있다 보니까 자꾸 더우니까 이러니까 더 꼭  찝는다 말이오. 찝고 난 다음에 보니까 나중에 가서 그만 그게 어데로 도망을  치면 싶은데 도망치지 못해. 나무에 이 꼭 발톱이 찍혀서. 여러분들이 봤는가  몰라도. 저 한강 다리 가면 많이 있어요.

 그러니까, 나중에 가서도 보니까 그만 등어리가 말라서 열 십자로 톡  갈라집니다. 톡 터져. 말라서 터지니까 그놈이 죽을 지경 아니라? 그런 죽을  고비를 넘겨 가지고서 툭 터져 가지고서 그 다음에 죽을 고비 속에서 마르고  마르고 쫄리고 쫄리고 이래 가지고 생겨진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딱 열 십자로  갈라지면은 툭 튀어나와요. 나오면 고게 매미새끼라. 고게 나오면 겨우 걷지도  못해. 살살 요래 가지고서 나무에 좀 거석하고. 그래 가지고 그게 나중에 가서는  날아다니게 돼요.

 무엇이든지 버러지 한 마리도 부화하는 데에는 부화하는 과정에는 굉장한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굉장한 고통. 이게 다 우리에게 자연계시라. 이런 것도  이렇게 이런 부활도 고통이 있는데 우리가 하물며 썩을 것이 생명에 삼키는,  죽을 자가 영생으로 바꿔진다는 이것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 그런 고통  없이 된다는 그런 생각 가지면 안됩니다.

 부활에 대해서 요새 공부할 건데 거기 단단히 많이 읽어봐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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