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날 11가지 받음

 

1987. 6. 14. 주일오전

 

본문:요한계시록 1장 10절∼13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우리가 심히 복잡한 이 세상을 거쳐서 하늘나라를 갈 우리들이며 또 악령이 인류 시조 때부터 사람을 타락시켜 다 저의 것을 만들어 가지고 저희의 나라와 역사를 위해서 밤낮 쉬지 않고 수많은 미혹과 위협과 또 강제로 우리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있는 이 속에서 우리 구원 이루는 것이 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는 참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구원을 이루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뭐 우리가 예수 믿어서 구원 얻는 것보다 더 쉬운 것이 없는 것으로 그렇게 마귀들은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 가지고 유혹을 해서 교회들은 큰 유혹에 지금 빠져 가지고 있습니다.

근본 하늘나라 가는 구원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에 인간들의 행함이 털끝만치만 섞여 있어도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쫓겨나고 하늘나라의 입문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기본구원이라 그렇게 구별해서 말합니다.

또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얻은 이 기본구원을 벗어버리지 않고 이 기본구원을 힘입어서 기본구원 받은 이 구원으로 살려고 할 때에 건설구원은 이루어집니다. 마치 사람이 살아서 생명을 가져야 가진 생명 가지고 이런 저런 활동하는 거와 같이 기독자는 기본구원인 영 중생 이 능력을 가지고, 영이 중생한 이 능력을 가지고라야 이 건설구원 행위구원 곧 성화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영이 중생하기를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와 피공로를 인해서 우리에게 온 영감 은혜와 진리 은혜 이 셋으로 우리가 중생됐습니다. 우리의 중생된 생명도 지능도 어떤 것이냐? 피의 지능, 영감의 지능, 진리의 지능 이 세 가지 지능이 중생된 우리들의 지능이요 생명이요 힘입니다.

그런고로, 중생된 사람이 자기를 중생시켜 준 진리의 힘과 영감의 힘과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의 이 힘 이 세 가지 힘을 가지고 살 때에 건설구원이 이루어지지 그렇지 안하면 건설구원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건설구원에 대한 진리를 말할 때에 악령들은 대발악을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대발악을 합니다. 세상은 대발악을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알고 어려운 줄도 알고 힘드는 줄도 알고 복잡한 줄도 알고 너무 사이비해서 찾기도 어렵고 가지기도 어렵고 또 이대로 살기도 어렵다는 이 사실을 알고 단속해야 되지 쉽게 이렇게 생각해서 낙관하는 사람들은 다 실패합니다.

오늘은 지난번에 증거한 주일에 대해서 또 증거할 필요가 있고 주일에 대해서 아직까지 모르기 때문에 주일에 대해서 다시 증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번 주일 증거하는 데에서 제가 증거하는 그 말이 그 말에서 모순되게 제가 발표한 게 있어서 그것을 고쳐서 여러분들 앞에 발표를 하고 사과를 합니다.

주일날은 예수님의 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이 구원에 완성된 이 구원과 또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완성시켜 주신 구원과 이 두 가지 구원은 주일날 완성을 이루었다 하는 것을 제가 증거를 했습니다.

이러니까 죽으심으로써의 이 구속도 또 부활하심으로써의 구속도 둘 다 주일날 완성을 했는데 제가 그 시간을 너무 죽으심으로써의 구원과 부활하심으로써의 구원을 이것을 그만 구별하는 데에 거게 너무 열중해 가지고서 선이 넘어갔습니다. 넘어간 그것을 지금 고쳐서 여러분들에게 말을 합니다.

어떤 것인고 하니 예수님의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구속한 것은 금요일부터 시작해서 토요일 열두시까지라고 그렇게 말을 했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주일날 영시부터라 이렇게 열두시 영시 하는 그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그 대속과 부활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대속의 이 경계를 토요일 열두시 주일 새로 영시 거게다가 경계를 둔 그것을 제가 잘못 발표한 것을 여러분들에게 다시 고쳐서 말하면서 사과를 합니다.

한편은 제가 증거하기를 죽으심으로써의 대속하신 구원도 주일날, 또 부활하심으로써의 구원도 주일날, 주일날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우리에게 주시는 날이 주일날이라 말씀한 그 말은 옳게 했는데, 그러니까 죽으심으로 대속한 그 대속도 주일 안에 들었고 또 부활하심으로 대속하신 구원도 주일 안에 들었다 하는 말로 한 그 말은 옳은데 그것을 날짜를 구별하면서, 죽으심으로의 대속은 토요일날 열두시 마지막까지고 부활하심으로써의 대속은 주일날 새벽 영시부터라 이렇게 그 경계를 그래 둔 그것을 잘못됐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경계를 두면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이 구원이 주일날 완성된 것이 아니고 죽으심은 토요일날로 완성되고 또 부활하심의 구원은 주일 완성이 됐기 때문에 한 날 속에 다 드는 게 아니고 두 날로 갈라지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 발표됐다는 것입니다.

제가 주일을 말할 때는 사활의 공로가 요 주일날 한 날에 포함됐다는 그말은 맞은데 그래 놓고 나중에 또 나눠서 말할 때에는 토요일과 주일날을 두 날로 나누니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주일날 다 된 게 아니라 부활하심으로써의 대속은 주일날 됐고 죽으심으로의 대속은 토요일날 됐다 하기 때문에 죽고 사신 사활의 대속은 다 주일날 됐다 하는 그 말과 서로 모순된 말을 했는데 주일날 사활의 대속은 다 이루어졌고 우리에게 주셨다는 그 말이 맞고 열두시까지 영시까지 한 고거는 잘못 구별해서 착각한 것입니다. 제가 그때 계산을 잘못해 가지고 착각한 것이니까 그렇게 생각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일날은 예수님께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거게서부터 시작해 가지고,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창조하시고, 또 그리스도가 사람되어 오시고, 또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해방시키는 대형의 사죄의 공로를 베푸시고, 또 하나님의 공심판에 완전타 인정하는 하나님의 전지의 입법을 완전 이행한 하나님의 의에 대하신 일과,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원수된 것을 완전히 화친시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이런 이 지극히 큰 화친의 구원을 주님이 이루셨습니다.

그 이루신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이루셨는데 그 죽으심은 언제까지 죽으셨느냐 하면 늘 당신이 희생하신 것은 계속 희생을 하셨고 이제 마지막으로 희생하는 그 죽으심은 금요일날부터 죽으시기 시작해 가지고서 주일날 새벽까지 죽으심 속에 음부 아래에 계셔서 우리를 대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것은 어데서부터 시작됐느냐? 창세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그때부터 시작돼 가지고 대신 형벌받아 대형으로 사죄하시고, 대신 행함으로 칭의를 베푸시고, 대신 화목 제물이 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게 하는 요 일에 완료는 죽으심을 받아 가지고 삼 일 동안 무덤 속에 들어 계시는, 그러면 삼 일 동안 무덤 속에 들어 계신 것은 곧 주일날 새벽까지 무덤 속에 계셨습니다. 그러면 금요일날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토요일날, 주일 새벽까지 사흘을 걸쳐서 무덤 아래에 사망 아래에 계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우리를 완전히 사죄 칭의 화친의 이 대속을 이루셨습니다.

이 세 가지 죽으심으로 세 가지 대속을 완료하셨습니다. 이 완료가 금요일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주일날 새벽 미명까지 무덤 속에 들어서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가운데서 삼 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은 주일 새벽이면 삼 일 만이 됩니다.

또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일으키시리라는, “성전을 헐면 삼 일 동안에 다시 일으키리라”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당신의 몸이 그들에게 해를 당해서 죽으시고 죽은 지 삼 일 만에 다시 부활하셔 가지고서 참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겨 구원을 이루는 그 실상을 이루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 시대에 성전에서 짐승 잡아 제사드려 가지고 구원 얻은 것은 실상이 아니고 예표 예약의 구원이 되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을 때에 그때 성전 휘장이 갈라지고 또 바위가 터지고 모든 그런 역사들이, 땅이 진동하고 하는 그런 역사들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구원을 주셨는데 한 가지 구원은 기초적인 구원, 근거가 되는 구원을 주셨습니다. 근거가 되는 구원의 터를 우리에게 줬습니다. 구원의 기초를 우리에게 줬습니다. 구원의 근거 밑절미를 줬습니다.

구원의 밑절미, 자본, 밑천, 기초가 되는 것은 어떤 것이 기초냐? 예수님이 우리가 죄 지어서 마귀와 죄와 사망에 종되어 있는 데에서 당신이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죄에서 해방, 마귀에게서 해방, 사망에서 해방하는 자유를 주신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속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공심판을 우리가 행하지 못한 것을 대신 행하시기 위해서 역사하셔서 우리 대신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그 대속하신 것이 우리에게 칭의를 주신 대속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와 원수된 것을 화친시키기 위해서 죽기까지 하여 화목의 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화친이 되게 하셔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된 것이 이것이 세 가지 문제로 죽으신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의 대속이니 이 일은 언제까지 완료했느냐? 금요일날부터 시작해 가지고서 주일날 새벽까지 그 일을 완료하셨는데 그 완료하시기까지 무덤 아래에 있었고 사망 아래 있었고 사망 권세 아래에 대속을 하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는 구원, 죄에서 해방받은 것, 마귀에게서 해방받은 것, 사망에서 해방받은 것, 하나님의 공심판에서 해방받은 것, 하나님과 원수의 자리에서 해방받아 화친하게 된 것 이 다섯 가지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속해 주신 구원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한번 물어 봅시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하신 구원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다 들어 보십시요, 가만히 있지 말고. 손가락으로. 다섯 들었습니까? 다섯 들었으면 맞았습니다. 이렇게 다섯을 들었으면 맞았습니다. 다섯입니다, 다섯 가지.

또 예수님께서 주일날 새벽에 우리 대신 부활하셔서 우리를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대속하신 이 구원이 여섯 가지입니다, 이 구원이 여섯 가지.

그러면 그 여섯 가지는 뭣뭣인가? 우리를 중생시켜 가지고, 우리를 중생시켜서 하나님을 향해서 살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를 중생시켜 하나님을 향하여 이제 영생하도록 만들었는데 진리 순종으로 영생하는 것을 만드셨고 영감 순종으로 영생하는 것을 만드셨습니다.

그래 가지고 또 우리들을 영원 무궁토록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제사장 성직을 우리에게 입혔습니다. 예수님의 이 부활하심으로 우리가 제사장직을 받았습니다, 제사장직을. 또 그다음에는 선지직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또 왕직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우리의 천직이요 영원한 직책이요 영원한 기업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기업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첫째 우리가 중생됐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 공로로 우리가 중생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둘째로는 하나님을 향한 진리 영생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을 향한 영감 영생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우리가 영원히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중보가 되는 제사장 구원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또 그다음에는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모든 축복을 끌어다 주는 선지 직책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선지 직책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여섯째로는 창조주와 피조물들의 움직임이 일치가 되는 이 통치권 왕직의 구원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몇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녜, 여섯 가지입니다. 요걸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신구약 성경에 있는 모든 교리를 망라해 가지고서 다 간추리고 간추려서 거게서 제일 요령되는 이 강령되는 이 구원을 간단 명료하게 말씀해 주신 것인데 이렇게 이것을 생각지 안하고 잘못하면 미혹을 받아서 모든 신학자들이 이런 것 저런 것 지저분한 그것을 말할 때에 ‘이렇게 복잡한 것을 이것을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니까 아마 이거 무식해서 이래 하는가보다’ 그렇게 생각해 가지고서 마귀의 미혹을 받기 쉽습니다.

그런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만일 인자라 하면은 뭐 인자라는 말이 세계 각국에서 인자라 말을 쓰는 그 용어는 이 민족은 이래 쓰고 저 민족은 저래 쓰고, 또 성경에서 이때는 이렇게 말하고 저때는 저렇게 말하고 말한 걸 하면은 한이 없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족보라 이랬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역사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끝이 없습니다. 그거 필요가 없습니다.

인자라 말은 구약에 기록한 인자도 사람은 천한 사람, 연약한 사람, 무지 무능한 사람이라. 인간이라. 그 짐승보다는 인간이 귀하지마는 하나님을 두고 상대하고 말하기 때문에 인간이라, 코에 호흡이 있는 인간이라 그렇게 아주 인간의 무지 무능의 아주 연약성, 무가치성, 무능성, 천한 것 그 면을 가리켜서 인자라 이렇게 말했고, 또 신약에 와 가지고는 “네가 인자를 믿느냐” 그말은, 구약에 사람 중에 천한 사람을 믿느냐 그말이 아니고 “인자를 믿느냐” 하나님이 사람 되신 것을 네가 믿느냐 그말입니다. 하나님이 그 부요하시던 분이 가난해진,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을 네가 믿느냐? 구약에도 인자라는 말이 많은데 거게는 나타낼 때마다 여러가지로 나타났으나 그저 인자라 말은 사람의 자식이라 그만 요라면 틀림없습니다.

그만 그라면 되는데 공연히 학자들은 어떤 나라에서는 그 인자라는 말을 이런 뜻으로 썼고 어떤 나라에서는 저런 뜻으로 썼고 이라니까 이 무식한 사람들은 그런 말 들으면 ‘야 이거 보니 인자라는 뜻이 그렇츰 많은 데 이거 뭐 인자라는 걸 단순하게 말을 해서 가르치고 있구나.’ 그 억만 종류라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인자라 말은 사람이라 그말이오. 사람의 자식이라 그말이오.

이제, “인자를 믿느냐” 하는 말은 하나님을 전제로 두고서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을 믿느냐? 하나님이 사람의 자식으로 난 것을 믿느냐 그말이오. 하나님이 사람의 자식으로 난 것을 믿느냐? 마리아의 아들 아닙니까? “믿느냐” 그것은 성령이 와야 압니다. 하나님이 사람되신 것은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분이 이 피조물 된 이것으로써 우리를 구원했는데 그 인자의 구원을 아느냐 그말이오.

여러분들이 이거 듣고는, 다 그걸 몰라 하는 게 아니고 모든 학자들의 그 모든 사이비한 그런 것들을 다 밟고 그 위에 올라서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걸 믿고, 어리석게 유혹받으면 안 됩니다.

이 주일에 대해서도 중대한 논단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요걸 잡고는 놓지 말아요. 주일날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과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의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 이 두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는 날이 주일날이다 그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면 죽으심으로는 우리에게 주신 것이 강령적으로 말하면 몇 가지냐? 다섯 가지다, 또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강령적으로 벼릿줄로 말하면 몇 가지냐? 여섯 가지다 그렇게만 기억하면 됩니다.

그런데 주일날은, 처음에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일차 창조를 하시고 그것들에게 필요 있는 복을 주신 것이 안식일이요, 주일은 두번째, 진동되지 안할 신령한 창조를 완성하시고 신령한 창조된 그것을 영원히 복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 은혜를 주시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이것도 많은 논단이 있는데 여러분들이 나가면 다른 데도 다 그래 하는가 이래 여기지마는 다른 데 가면 그렇게 말 안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가면 미혹받기 쉽습니다. 왜? 여러분들의 지능은 어리기 때문에 제일 진짜만 가르쳐 놨지만 이것을 받고 의심하지 안하고 거머쥐고 있으면 천만의 이단이 와도 그런 것을 정복하고 이길 수 있는데 이것을 굳게 잡지 못한 자에게는 이런 미혹 저런 미혹을 줘 가지고서 자꾸 미혹시켜서 넘어뜨린다 말이오. 그러니까 그런 데 넘어지지 안하는 자라야 아는 자고 넘어지지 안하는 자라야 믿는 자입니다.

그래서 주일날은 어떤 날이냐?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이 다섯 가지를 우리에게 내것 삼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주일날은 주님이 죽으심으로 나에게 다섯 가지 구원을 주신 이 능력을 주시는 날이 주일날이요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여섯 가지 구원을 받는 능력을 주시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그러면 주일날은 우리가 몇 가지 능력을 받는 날이 주일날입니까? 몇 가지? 녜, 열한 가지 능력을 받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또 주일날은 세 가지 일을 해야 된다 했는데 주일날은 몇 가지 은혜를 깨달아서 감사하고 또 더 깨닫고 더 감사하고 더 깨닫고 더 감사하고, 깨달음이 자라가고 감사가 자라가는 것, 깨달음이 자라가면 감사가 자라가게 됩니다.

그러면 주일날은 몇 가지 은혜를 깨달아 감사함이 자라가야 됩니까, 손가락으로? 크게 어려운 거라. 간추려 놨기 때문에 요대로 하면 그저 지름길로 누구든지 갈 수 있고 쉽지마는 이것을 모르는 자는 평생 삼 대고 사 대고 성경 가지고서 신학을 거머쥐고 파도 요걸 모릅니다. 이러기 때문에 오늘 이게 나가 가지고서 앞으로 지금 신학은 크게 개혁이 될 것입니다.

주일날은 감사하는 날, 감사가 자라가는 날이고 감사를 찾아서 자꾸 감사의 지식이 더해지고 감사의 깨달음이 더해지고 감사된 감격이 더해짐으로써 감사가 자라가는 날이 주일날이라, 주일날은 이거 하는 날이라.

일하지 안한다는 것은 일을 안 하고 노는 날이라 그런 게 아니고 이 더 귀중한 것을 하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주일날은 세 가지 일을 해야 되는데 감사해야 되는 일을 해야 될 날이 주일날이라.

그러면 몇 가지에 대해서, 감사한 것도 아버지의 은혜도 감사하고, 형님 은혜도 감사하고, 사장 은혜도 감사하고, 담배불 하나 준 것도 감사하고, 목 마를 때 물 한 그릇 떠 준 것도 감사하고 뭐 감사가 꽉 억억억억억만도 넘을 수가 있는데 주일날은 몇 가지 그 은혜를 자기가 깨달아서 점점 깨닫고 점점 감사함으로 자라가야 될 날인가? 몇 가지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이 자라가야 될 날인가? 몇 가지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이 자라가야 될 날입니까, 손가락으로? 이 어린아이들 가르치는 것 같지마는 이는 과연 딴데 가서 물으면 모릅니다, 전연히.

또 이 날은 예수님의 사활의 이 대속의 은혜를 받는 날인데, 대속의 은혜를 받고 이 대속의 은혜에 그 실력의 능력을 받고 이 대속의 은혜를 버리지 안하고 뺏기지 안하고 이 대속의 은혜 생활을 할 수 있는, 이 대속으로 살 수 있는 이 능력을 받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그러면 몇 가지 능력을 받는 날이 주일날입니까, 손가락으로? 저 뒤에도 손가락으로. 뭐 한 손만 들었는데. 한 손 들면 틀려. 두 손으로 이래 해요. 이래 해야 그래야 아라비아 숫자로 열하나가 되지. 그렇지 안해요? 이랄라 해도 열밖에 안 되고 이라면 그만 열하나가 돼. 그래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다 그말이오.

열하나면 요래 두 쪽으로 들면 열하나 아닙니까? 그래, 주일날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 열한 가지의 근본이 되는 이 실력을 받는 날이라. 이 능력 받아 가지고 엿새 동안에는 열한 가지의 실력 받는 것 가지고서, 엿새 동안에 열한 가지 실력 받은 이 실력 가지고 열한 가지 대속 구원을 이루는 생활 하나 못 하나 월요일부터 연습하는 날입니다. 월요일부터 연습해 가지고서 토요일까지 이 연습을 완전히 완성을 해야 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알겠습니까? 엿새 동안 자기의 모든 일 한다는 것이 이 모든 일은 그날은 주일만 지키고 엿새 동안에는 뭐 이런 것 저런 것 농사도 짓고 이것도 저것도 뭣도 하는 날이 자기 일이다 이렇게 오늘까지 해석해 놓은 것이 그것이 오늘까지 해석입니다.

아닙니다. 그거는 우리의 할 일 아닙니다.

구속 받은 자의 할 일은 엿새 동안에, 이 열한 가지 실력 받아 가지고 열한 가지 실생활을 연습해 가지고 열한 가지 생활을 실지로 해서 이 열한 가지의 구원이 자기 구원이 되게 하는 그 일 하는 것이 엿새 동안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이 일은 어데서 해야 됩니까? 굴 안에서 해야 됩니까 예배당에서 해야 됩니까 저 농장에서 해야 됩니까 어데서 해야 됩니까? 저 ○○○집사님? 그러면 자기 현실이면 농장이면 농장에서, 공장이면 공장에서, 식모면 식모에서, 또 급사면 급사에서, 운전기사면 운전기사에서 거기에서 해야 된다 말이요? 맞았어.

거기서 해야 된다 말이라.

그러니까 다른 사람 보기는 이런 저런 분야에 생활을 하고 있지마는 자기 하는 일은 요게서 ‘내가 요 시간에 죄에서 해방받았기 때문에 운전하면서 옆에 사람이 뭐 무슨 소리 한다 해도 내가 죄에 종 안 된다.’ 죄에 종 안 되는 일을 하고, 또 마귀의 종 안 되는 일을 하고, 사망의 종 안 되도록, 사망이 와서 죽인다고 해도 죽인다고 그놈 종이 돼 가지고 내가 죄짓지 안하고 종이 안 돼야 되고, 운전하면서 ‘하나님의 공심판을 내가 통과했기 때문에’ 공심판 범하는 일을 안 해야 되고, 하나님의 아버지 아들이 됐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위치를 떠나지 안해야 되고, 그러면 몇 가지입니까? 몇 가지 말했소, 손가락으로? 또 얼떨떨하다. 머리가 둔해. 몇 가지? 손가락 뻐뜩 들어 봐요. 다섯 가지, 다섯 가지.

또 이라면서 ‘나는 중생했기 때문에 운전을 해도 나는 과거 예수 믿기 전 사람과 다르다. 나는 중생된 새생명이다.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으로 중생된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진리와 영감과 예수님의 대속으로만 살아야 된다.’ 하는 것을 그날 삽니다.

‘나는 또 진리로 하나님 향해서 영생해야 된다. 영감으로 하나님 향해 영생한다.

나는 이거 지금 운전기사 하면서 제사장 연습하고 제사장노릇 해야 된다. 나는 운전하면서 선지자노릇 해야 된다.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는 이거 해야 된다.’ 전도 안 해도 하는 행동과 전체가 그 중심에서 움직이고 또 ‘하나님의 단일 통치로 모든 것을 통일되도록 이렇게 해야 된다.’ 이래서, 운전기사는 운전기사에서 ‘너 오늘 뭣 했노? 너 뭣 했노?’ ‘주일날 받은 것 연습했지요' `주일날 뭣 받았는데?' `열한 가지 받았지.’ ‘열한 가지라니?' `열한 가지 깨달아서 감사하는 것 배웠고, 또 열한 가지의 그 실력을 받아서 그대로 사는 것 배웠고,’ 또 뭐입니까? 하나는 뭐이지? 하나는 뭐이야? 내나 그거 연습이라.

이러니까, 자기가 살다가서 ‘오늘 돈을 많이 벌었다. 돈을 벌었다.’ 돈은 평일의 삼 배나 벌었는데 끙끙 앓고 있습니다. ‘왜 앓노?’ `오늘 실패했습니다' `오늘 실패했어? 오늘은 손님이 없던가?’ ‘아니오. 돈은 삼 배나 벌었습니다.' `그러면 왜 실패야?’ ‘나 하는 일은 그게 나 하는 일 아니거든요' `뭐인데?' `오늘 나는 감사를 삼분지 일밖에 못 했습니다. 열한 가지 받은 능력 생활을 나는 삼분지 일밖에 못 했습니다. 나는 오늘 이 두 가지 감사와 능력 받은 이것을 연습하는 것을 오늘 삼분지 일밖에 못했기 때문에 삼분지 이는 실패입니다.’ 이거 세상이 말하면 아요 모르요? ‘미쳤나? 오늘 돈을 삼 배나 벌었으면 성공이라 할 터인데 실패라고 끙끙 알고 있으니까.’ 세상이 모르는 구원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알겠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생활이오.

이래서, 주일날은 예수님이 사활로 우리에게 대속을 베풀어 주신 요것이 주일날 완료되고 주일날 우리에게 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주일날 뭘 줬는고? 간단하게 제가 한번 소개를 할 터이니까 여러분들 뭐 적어 놓고 가 상고할라면 해 보십시오.

요한복음 20장 13절로 18절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나의 아버지 너희 아버지 나의 하나님 너희 하나님에게로 올라가지 못했으니까 나를 만지지 말아라, 네 형제들에게 가 가지고서 내가 지금 나의 아버지 너희 아버지 나의 하나님 너희 하나님에게로 올라간다는 이 소식을 전해라” 하는 것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위치에 어데까지의 위치해서 점령하고 어데까지 위치에 있는 이것을 깨닫는 은혜를 주일날 받았습니다. 그리 안 하면 몰라. 예수님이 이 주일날 막달라 마리아가 만질라 하니까 못 만지게 했어. “만지지 말아라. 내가 아직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이거는 다 하나의 구설로 알고 아무 보지 안해, 여기 큰 뜻이 있는데. 여게 대한 은혜를 주일날 받습니다.

또 그다음에 19절로 24절에는 “너희들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는 평강의 은혜를 주일날 받었어, 첫주일날. 주님 부활한 그날 평강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평강의 은혜를 줬습니다. 또 그날 “너희들은 기뻐하라”는 기쁨을 줬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크게 기뻐했습니다. 또 “성령을 받아라” 또 했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또 “네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해지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다” 하는 죄 사유하고 그대로 정죄하는 사죄와 정죄하는 권세를 받은 것이 주일날입니다. 첫주일날입니다.

또 마가복음 16장 9절에 보면 그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신 것을 제일 먼저 봤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본 날도 주일날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보는 날도 주일날입니다.

또 마태복음 28장 8절로 9절에 보면 제자들에게 다시 큰 기쁨을 주시고 큰 평강을 주시고 예수님의 발을 붙잡으신 일을 주일날 했습니다. 주님 잡는 것도 주일날 처음으로 잡았고,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근심 걱정에 있던 사람들이 기쁨도 주일날 처음으로 받았고, 평강도 처음으로 받았고, 죽일라고 하는 사람들이 가득 싸였으니까 다 떨었지만 이날 후로는 다 기뻐서 죽음이 가득 찬 예루살렘에서 마구 외쳤습니다. 알겠습니까? 담력도 평강도 기쁨도 주님의 몸을 잡는 것도 주일날 됐습니다.

또 누가복음 24장 30절로 32절에 보면 예수님이 축사하신 떡을 주일날 받아 먹었습니다. 이거 안 믿고 예사로 한 사람은 뭐 그만이고 이 얼마나 중요함인가? 또 떡을 받아 먹고 난 다음에 그들의 눈이 밝아졌습니다. 알겠습니까? 눈이 밝아진 것은 영감이 아니면 밝아지지 못합니다. 영감의 지혜와 총명을 받는 것이 주일날이라 하는 것을 여게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 그들이 떡 먹고 난 다음에 눈이 열렸습니다. 눈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눈이 환하게 밝아져서 예수님인 줄 몰랐는데 이 축사하신 떡 먹고 난 다음에는 눈이 밝아서 ‘아, 주님이시로구나’ 주님을 똑똑히 알았습니다. 주님을 바로 아는 은혜를 주일날 받습니다.

또 그들이 주일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이상하다. 그분 만나고 난 다음에 우리 마음이 뜨거워졌다.’ 마음이 주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 죄를 대항하는 마음이 뜨거운 마음, 의를 대하는 뜨거운 마음, 세상을 버리는 뜨거운 마음, 세상을 하늘나라를 위해서 자본으로 비용으로 투자하는 이 투자에 뜨거운 열심을 주일날 받습니다. 다른 날 받지를 못합니다.

또 요한복음 20장 26절에, 그거는 둘째 주일입니다. 첫째 주일 부활하신 주일 그다음 주일, 둘째 주일 날 그 주일날 도마는 의심이 가득 찬 사람인데 도마에게 있는 의심이 확 사라지는, 의심이 확 녹아지고 사라져 버리는, 의심이 하나도 없어지고 이제는 ‘당신이 참 하나님이로소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우리의 구주로소이다’ 하는, 그 옆구리를 만져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의심쟁이가 완전히 의심이 벗어져서 확신을 가지고 인도에 가 가지고서 철봉에 달려서 곤봉으로 뚜드려서 그 전체가 산산히 다 가루가 돼서 부숴져서 다 하나도 쥐지 못할 만치 다 분산돼 가지고서 순교당한 것이 도마입니다. 이는 의심을 깨뜨리고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이거 주일날 가졌습니다.

또 그후 많은 뒤 주일날, 주일날 신약 교회를 건설한 오순절 성령 강림이 주일날입니다. 오순절 그날이 주일날입니다. 주일날 신약 교회를 건설하는 성령 강림이 임했습니다.

또 요한계시 1장 10절 이하에 신약 계시의 마지막 이 계시 신약 교회의 종결을 맺는, 이 신약 계시를 완전히 완성을 이루는, 결실을 이루는, 종말을 이루는, 완성 종결을 이루는 이 성령을 밧모섬에서 주일날 받았습니다.

이래서, 거게는 주일이라고 말하지 안하고 주의 날이라 이랬습니다. 주의 날이라 말은 그리스도가 사활로 열한 가지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 구원 주의 날이요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는 날이라는 것을 표시해서 ‘주의 날이라’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런고로 여러분들이 이것을 깨닫고 놓지 말아야 됩니다. 이 가운데 가면 현실에 교회들하고는 천부당 만부당의 해설이 됩니다. 그러나 맞습니다! 이것이 십 년 후면 반드시 다 인정을 할 것이오. 주님 앞에 가면은 다 인정하고 머리 숙이게 됩니다. 놓지 말아요. 놓으면 안 돼요.

다 그분들도 모르는 것도 성경 보고 자꾸 연구해 들어가면 알게 돼. 지금도 아는 사람 많지마는 아는 사람들은 박사의 이름 유명을 가지지 안했기 때문에 묻히고 있어. 아는 사람은 묻히고 있고 이 껍데기 사람 말을 가지고 자꾸 전달해서 ‘이 사람이 이렇게 저렇게 했다’ 사람 말만 자꾸 전달해서 인간의 유전들만 전하는 사람들이 다 승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거에도 유전 전달에서는 승리한 일이 없고 인간 승리지 다 실패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그 삭개오를 성경에 기록한 것은 그는 키가 작은 사람인데 그 뒤에 모두 사흘이고 나흘이고 따라다니며 ‘예수님이 여기 계신다’ 하니까 줄줄 따라다니기만 따라다니지 예수님의 은혜도 받지도 못하고 예수님에게 아무런 그 인정도 받지도 못하고 따라다니며 자꾸 ‘여기 예수님 계신다’ 뒤에 줄줄 따라다니니까 자기 앞에 보이는 거는 앞에 가는 사람 뒷꼭지밖에 안 보여, 뒷꼭지밖에는. 이것만 보고 따라간 사람들은 다 헛일 했어.

삭개오는 뒷꼭지 암만 봐야 인간 뒷꼭지인데 그까짓 것 예수 본 사람의 뒷꼭지 봐야 무슨 소용 있어?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고서 앞질러 가 가지고 저 뽕나무에 올라가 가지고서 내려다 보고 ‘예수님을 내가 만나야 되지’ 하고서 가 기다리니까 예수님이 오다가서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밤에 너거 집에 유하겠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도 안 했는데, 주님이. “네가 하늘나라 구원이 네집에 임했다” 그 소리 다른 사람 아무도 못 들었어. 알겠습니까? 이렇게 사람 뒷꼭지 보고 따라가는 것은 이 학자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학자 뒷꼭지. 전부 그것만 따라가기 때문에 전부 인간 말만 배우고 있습니다.

알겠습니까? 그런고로 오늘 이 주일에 대해서 죽으심의 이 대속도 주일날 결말지워서 완성했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의 대속도 주일날 완성했습니다. 주일날 완성을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여게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일날 사도들에게 주신 것은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서 필요한 거는 다 주셨습니다.

그러고 전면적으로 신약 교회를 건설한 것은 성령이 건설했는데 신약 교회를 건설한 성령은 주일날, 오순절이라는 그 주일날, 오순절하고 주일하고 딱 들어맞았어. 오순절도 과거에 출애굽기에서 십계명 준 것이 오순절날이요 오늘도 그날은 틀리지 안하고서 그날이 또 주일날로, 주일날이요 오순절날인 그날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은 이리 저리 해도 전지 전능자가 했기 때문에 하나도 삐뚤어짐이 없습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게 삐뚤어졌지.

그런고로 오늘 제가 말하는 것은 이제는 주일날을 우리가 지키되 과거에는 주일을 지킬 만한 실력이 없는 사람들은 이 사람들은 주일날 일하면 안 된다는 그것만 알고 있기 때문에 토요일 열두시까지 일할라고 전심 전력 기울였으니까 열두시까지 일을 하고 나서 주일날 또 새벽기도 나올라 하니까 누웠다가 바로 일어나야 되니 고거 와 가지고 전부 송장이라. 다 누워 자. 은혜가 없어 누워 자는 게 아니라 그때도 테레비나 보이면 좋다고 막 깨지마는 전부 영의 사람은 다 죽어져 버렸고 육덩이 사람이 피곤해 떨어졌기 때문에 몰라.

이래서 주일 아침에 누워 자고라도 와 가지고서 오전 오후 예배를 잘 드리도록 해라. 그것은 반주일 지키는 거라. 반주일 지키는 것이지마는 그렇게 해라 이렇게 해서 이제까지는 주일날 믿음이 어린 사람들은 새벽기도 나오지 안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좀 장성한 사람들은, 좀 자란 사람들은 주일날 한번도 안 빼고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그랬는데 이제는 우리 교회도 이만큼 장성했기 때문에 다시 지금 새로 주일 지키는 제도를 허락했던 것을 개혁을 해야 되기 때문에 개혁해서 말합니다.

이러니까 이제부터는 주일날은 새벽예배서부터 하나님 섬기는 일을 시작하도록 해서 다른 날은 새벽기도를 못 나와도 주일날은 꼭 그날이 중요한 날이기 때문에, 은혜받는 날이기 때문에 새벽기도에 다 나오도록 해 가지고서 새벽부터 은혜받기 시작해서, 몇 가지 은혜? 열한 가지 은혜인데 우리 할 일은 몇 가지? (세 가지) 녜, 뭐 그만하면 다 됐어요.

이래서, 다른 날은 새벽기도를 빠져도 주일날은 새벽기도 꼭 안 빠지고 계속해서 나오도록 그렇게 작정을 합시다. 오늘 아침에는 조금 더 나왔는데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는 모양이라. 이제 다음 주일부터는 다 나와야 됩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일주일 내내 새벽기도 못 나와도 주일날 아침만큼은 나와야 됩니다.

제가 과거 거창 있을 때에는 그렇게 주장해서 다른 날은 새벽기도 못 나와도 주일날 새벽만은 다 새벽기도 나와야 된다 이래 가지고 다 나왔었는데 여기 와서는 보니까 예배보러 오면 다 졸아요. 다 졸아버리고 헛일이라. 이러니까, 이제는 주일날 아침을 자고라도 졸지 말아라 이렇게 말했고, 또 주일날은, ‘내일은 직장에 안 가고 대인 관계 안 하기 때문에 내일은 뭐 예배당에 가니까 헌옷 입어도 괜찮고 낯이 쭈그러져도 괜찮고 얼굴이 쪽 빠져 눈이 빠꼼해도 괜찮고 이러니까 토요일날은 오만 짓 다 하자’ 이래 가지고서 진액을 이리 빼고 저리 빼고 쪽 다 빼 가지고서 껍데기 찌끄러기만 가지고 와 가지고서 주일날 예배드리니까 다 죽어 가는 것이 골케골케 해 가지고 똑, 뭐 뭐라 했어? 아이들, 그거 이름이 뭐야? 쪽쪽 빨아먹는 거 뭐이지? 네가 잘 안다.

쭈쭈바! 옳지, 쭈쭈바! 쪽 빨아먹고 나면 껍데기만 딱 있는 거 모양으로 쭈쭈바 빨아먹고 나서 그런 껍데기 다, 껍데기만 남아 가지고 주일날 와 놓으니까 뭐 정신을 못 차려. 골케골케 해 가지고 그것도 하나님의 백성의 주일을 뺏드는 원수입니다. 하나님 앞에 상당한 벌이 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어짜든지 어떻게 네가 준비하든지, 뭐 어떤 사람이 궤변 꾸미기를 토요일날 오후부터 또 주일날 오전까지 요래 하루를 잡든지 어쨌든지 스물네 시간 하루를 잡는데 우리에게는 그만 그후에 늘 이래 나온 것이 주일날 새벽부터 주일날 오후 열두시까지를 하루 해 가지고 주일로 지킵니다. 지키니까 요것을 잘 지키도록 그렇게 해야 될 것입니다.

해야 되니까 이 준비를 그 사람이 아무리 못 해도 열두시 이후까지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열두시까지 일을 하고 마쳐야 되고, 또 열두시까지 일을 하고 안 하면은 일하는 죄는 안 범하는 것이 되고, 또 은혜는 졸면 못 받는 것이 되니까 아침에 자고라도 은혜를 받아라.

이러니까 그날 졸면서 대예배 보는 사람은 졸지 안하고 대예배 보도록 해야 되겠고, 또 새벽에 안 자면 안 되는 사람은 새벽에 자고 주일을 지켜야 되겠고, 또 그 사람은 열두시까지 일하고 안 되면 열두시까지 일을 하고 주일을 지켜야 되겠고, 그 사람은 일을 잘 준비를 잘해서 열시까지 일하고 그다음부터는 쉬고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그래 해야 되겠고, 또 어떤 사람은 토요일날 오전까지만 일하고 그때부터는 주일 지키는 준비할 사람은 그렇게 해야 하고, 그보다 더 잘한 사람은 아예 토요일날은 그만 하나님 섬기는 그 일만 하고 그 준비나 하고서 토요일날 일 안 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보다 잘 준비한 사람은 금요일날부터 또 그만, 목요일날까지만 일하고 금요일날부터는 주일날까지는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도록 그래 하고, 또 준비를 더 잘해서 하나님 축복을 더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은 수요일까지만 일하고 삼 일 동안 일하고 나머지기는 하나님 섬기는 준비를 해 가지고 하고, 더 잘한 사람은, 더 준비 잘한 사람은 이틀만 일하고서 나머지기는 하나님 섬기는 일 하고, 또 더 잘한 사람은 하루만 일하고 나머지기는 하나님 섬기는 일 하고, 저는 집사로 있을 때에 일주일 동안에 하루만 일하고 엿새 동안은 주님 섬기는 일 했습니다. 하루, 월요일날 하루는 그날 막 죽자 살자 일 합니다. 하루는 오만 것 다 준비하고 돈벌이 다 하고 했기 때문에 그날만 딱 하면 다른 사람 밥 먹을 때에 고기 먹고 다른 사람 고기 먹을 때에 나는 별미 먹고 어짜든지 하루만 일하면 잘 삽니다. 그래서 거창 지방에서는 ‘하루만 일하면 얼마든지 잘살 수 있다’ 그러니까 하루 딱 일하고 난 다음에는 엿새 동안은 이 셋 교회를 돌아봅니다. 이 교회 가서 저 교회 가서 양사방 돌아다니며 여기 가서 이틀, 저기 가서 이틀 이렇게 합니다.

이라다가 그래 인제 지금은 뭐 하느냐? 엿새 동안이 아니고 일주일 내내 하나님 섬기는 일만 합니다. 일주일 내내 하나님 섬기는 일만 해요. 그래도, 자 일주일 내 하나님 섬기는 일만 하면은, 그 사람이 일주일 내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는데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고 하면 일주일 내 섬기는 일 하고, 일주일 내 하나님 섬기는 일 하니까 이 지장이 있어서 아무래도 한 시간은 일을 해야 되겠다 싶으면 한 시간 일하고 남은 시간 주님 섬기는 일 하고, 아이고 나는 아무래도 하루는 일을 해야 이제 엿새 동안 주님 섬기는 일 해야 되겠다 이러면 하루 일하고 해야 되고, 안 하면 제가 굶어 죽어야 되고 제 하는 일이 다 헛일이기 때문에 일이 안 돼.

하나님이 기뻐하셔 기쁜 일을 해서 축복을 받아야 된다 그말이오. 알겠어? 일주간 내내 하나님의 일만 해도 잘 먹고 잘 입고 일은 잘 되고 하는 것 하나님의 축복이면 그 사람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사람들은 다 그런 사람들이라.

아이구 안 됐다, 나는 닷새 일을 해야 되겠다, 나는 엿새 일을 해야 되겠다, 아이구 나는 엿새 일 하고도 하나님 섬기지 못하겠다, 엿새 반 일하고 나는 반날 하나님 섬겨야 되겠다, 아이고 엿새 반만 일해도 안 되겠다, 이레 동안은 일을 하고 한 시간만 쫓아가서 예배에 중간에 참석하고 와야 되겠다 하는 그 사람은 그래 하고, 그러면 자기 형편을 거스려서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면 할 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게 되어집니까 안 됩니까? 돼집니까 안 돼집니까? 안 돼져.

이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면 헛일이오.

이제, 그러니까 우리는 목적이 뭐입니까, 목적이? 이제는 하나님 섬기는 일 구원 이루는 일 그 일만 하지 땅에 속한 일은 일 분 일 초도 안 하는 사람이 되어져야 됩니다. 이 말 맞습니까 이단입니까? 맞습니까 이단입니까?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 손 들어 봐요. 저 뒤에도 맞습니까? 맞아, 맞아, 맞아, 맞아.

이런데 백 목사도 하나님 섬기는 일만 할라고 애를 써도 하다 보면 엉뚱한 일 했다 말이오. 이러면 나는 하나님 섬기는 일만 다 할 수 있도록 이렇게 모든 환경을 다 정리해서 돼 가지고 있는데 내가 이 게을하고 꾀를 파 가지고 마귀 유혹을 받아서 엉뚱한 일을 한 시간도 하고, 두 시간도 하고, 어떨 때는 한 나절도 하고, 어떨 때는 뭐 반날도 하고 이렇게 한다 말이오. 이래서, 늘 ‘내게 있는 힘은 성경 연구, 기도, 말씀 증거하는데 요 세 가지만 하게 해 주옵소서’ 요렇게 했는데, 요새 또 지금 내가 또 좀 그렇게 해 볼라고 애를 씁니다.

이래서 나 안할 일, 나 안할 일 내가 하는 것은, 나 안할 일, 뭐 안 하느냐? 나 안할 일 성내는 일, 나 안할 일 혈기내는 일, 나 안할 일 근심 걱정하는 일, 나 안할 일 땅의 것으로 기뻐하는 일, 하늘의 것만 기뻐해야 되는데.

그 사람이 억만금을 벌어서 부자가 됐다 할지라도 그거 가지고는 기뻐하지 안하고 그 사람이 하늘의 것을 눈꼽재기만치 털끝만치만 해도 그것 보고 기쁘고 즐거워하는 이래야 될 터인데 이러니까 뭐 날마다 날마다 삣고 깎고 씻어 점점 이래, 우리의 목적은 그저 하루 종일 지금부터 죽는 그 시간까지 구원 이루는 일만 하다가 가야 된다 요것이 우리인데 그 분수를 넘어서 할라고 하면 됩니까? 자, 아이구 그라니까 그만 주일 나도 좀 그래 봐야 되겠다. 하루만 일하고 나머지기 주님 섬기는 일을 할라 하니까 이거 그만 양식이 그만 사흘 먹으니 떨어져 버렸습니다. 그 사람 굶어야 안 되겠습니까? 굶어야 되니까 배가 고프니 나중에 가서 하나님 섬기는 거고 뭐이고 그만 없다 그말이오. 아이고 그러니까 어라 또 빌려 먹지. 빌려 먹으니 나중에 가 이 도둑놈 돈 떼먹는다고 이라니까 뭐 예배보려고 오니 멱살 거머쥐고 가 가지고 ‘이 도둑놈 돈도 안 주고 예배당에만 오면 되나?’ 이러니까 못 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모든 일이 순리적으로 되도록 돼야 된다 말이오. 알겠습니까? 이래서, 지난 주일에 간단하게 말했는데 오늘 오후에 또 계속해서 지금 여게 대해서 증거하겠습니다.

그런데 주일에 대해서, 이러니까 이 주일에 대해서 또 이거 주인되는 사장들은 ‘목사님이 저래 설교해 놓으니까 토요일날 오후부터 일을 안 할라 하니 우리 회사 이거 낭파됐네’ 또 하고, 또 인부들은 ‘햐, 목사님이 이제 설교해 줬으니까 토요일날 오후부터는 이제 노는 날이다, 그만 그날부터는 놀아야 된다.’ 이러니까 그것이 다 바로 깨닫지 못한 것이라. 걱정하는 사장도 바로 깨닫지 못한 것, 또 좋아하고 뛰노는 직공도 바로 깨닫지 못한 것. 그래 하면 해 보지. 회사가 무너지면 월급을 못 받습니다. 그러면 회사 안 무너지구로 해야지.

이러니까 회사 사장도 얼마나 잘했던지 ‘우리 회사는 꼭 닷새만 일하고 이틀 섬기도록 하자.’ 자, 그 회사가 닷새만 일해도 잘 돼 나갑니다. 아주 잘 돼 나갑니다. 그런데 어떤 회사는 ‘우리 회사는 뭐 하루만 일해도 된다. 하루만 일하고, 하루만 일하고 엿새 동안은 하나님 섬기는 일 하자. 전도도 하고 심방도 하고 막 부지런히 하자.’ 이라는데 하루만 일해도 회사가 잘돼서 월급은 자꾸 올라가고 자꾸 능률은 올라가고 회사는 자꾸 커지고 자꾸 부강하게 됩니다.

그라면 자, 하루 일하는 그 사장이 능력 있는 사장이요 엿새 일하는 사장이 능력 있는 사장이요, 어느 사장이 능력 있는 사장이요? 자, ○○○장로님 한번 대답해 보이소. 하루 일하는 사장이 능력 있는 사장이야? 그렇지. 그거야, 그거! 그거 알아야 돼요! 나는 그때 집사로 살 때에 하루밖에 일 안 합니다. 하루밖에 일 안 해. 하루만 일해도 모든 사람에게 다 큰소리 해. 나는, 내가 뭐 장 여기 와 있지 뭐 가족들이 일해? 가족들이 일 안 하요. 하루만 일해도 돈은 누구보다 많이 벌고, 먹고 살기는 더 먹고 살고, 연보는 더 많이 하고, 부자는 더 돼 가고, 큰소리 뻥뻥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니까 그래, 축복하시니까.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뭐 논 열 마지기 붙여도 흉년들면 양식 떨어지고 쪼끄매만 붙여도 하나님이 축복하시니까 어짤 도리가 없어, 이거 뭐 어디다가 어떻게 해야 될지? 제가 위천 가 가지고 아무것도 없는데 사택 쪼그만한 거 참 아이들 말로 코구멍만 합니다. 거기다가서 이 교인들이 도무지 교역자 섬길 줄을 몰라. 이래서, 이거 아무것도 안 하는데 호박 한 개를 갖다 주나, 무우 한 개를 갖다 주나? 사례는 선내끼 주는데 이거 가지고는 되지도 안하지, 또 사례 그것도 또 제대로 주면 하지마는 그전에 있던 교역자는 양식을 꾸어 먹고 돌아다니고 바느질 품들고 이랬었어, 위천교회인데.

그래서, ‘안 됐습니다. 이거 내가 보여 줘야지, 하나님 축복을 보여 줘야 되지 안 되겠습니다. 내가 여기 담장 안에다가 이거 뭐, 조그만한 담장 안에, 딴거는 없으니까. 여게다 호박을 심구고 또 다른 채소를 좀 심구고 옥수수를 심구고 이랄 터이니까 여기 하나님이 축복하시옵소서.’ 이래 기도하고 했다 말이오.

심어 놨는데 호박이 어떻게 많이 여는지? 그저 자꾸 따다가 집사부터 줍니다.

집사부터 줘 각단지게 집사들 다 주지, ‘아이구 어짠 호박이 이렇츰 좋은 호박이 있어?’ 또 주고, 각단지기 집사 주고 또 평신도 주고 학생도 주고 자꾸 다 줘요.

암만 다 줘도 남아, 어떻게 호박이 여는지? 또 옥수수를 심었는데 옥수수 뭐 딴데 심을 데가 있소? 담부랑 구멍에도 하나 꾹 끼워 놓고 요래 여기도 딱 끼워 놨는데 그만 온 집안이 옥수수 숲이 됐어. 이런데 어떻게 길게 여는지 그거 참 재미 있어. 그러니까 떡 대문에 들어오면 기어 들어가야 돼요. 옥수수 사이 밑으로 돌돌돌 기어 들어가서 사택 문에 들어가고 이라는데, 뭐 어떻게 많은지? 또 ‘이거 모두 다 왜 이거 못 하노?’ 또 채소를 심었는데 시금치를 심었어.

시금치를 심으니까 시금치 대궁이, 이거는 아니야. 이보다는 좀 굵어요. 아마 요만치 됐을까? 시금치가 이래. 이런 게 올라오니까 막 대번에 쑥 올라와.

올라오니까 썩 이래 또 각단지게 베어 떡 주고 나니까 베고 나서 또 올라오지 또 베고 나니 또 올라오지 자꾸 이래 가지고 이라니까 자꾸 나눠 줘. ‘이거 시금치가 어데 이거 뭐입니까?’ ‘시금치 아니요?' `시금치가 이런 시금치가 어데 있습니까?’ 와 보지 없는가? 자꾸 갖다 주니까, ‘봐, 이게 축복이다. 하나님이 축복하면 이렇다.’ 우리 아내 저 어디 있을 거라. 저 어데 앉았을 거라. 위천에 있는 사람 다 물어봐요, 거짓말인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뭐 조금도 불군 말 거짓말 안 해.

이래서, 너거가 이만하면 알지. 이제 명년에는 내가 이거 안 심군다. 너거가 심어 가지고 갖다 주면은 나는 감사로 받아서 하나님께 너거 하나님께 바치는 것 갖다 주면 복받고 하나님 섬기는 길이 들고, 또 갖다 줌으로 자꾸 교역자에게 ‘내가 뭘 갖다 드려 호박 한 개를 갖다 드렸으니까 목사님이 사모님이 우리를 좋아하시겠지.’ 갖다 주나 안 갖다 주나 꼭 같이 좋아하지마는 갖다 줌으로 너거가 백지 너거 주관으로 자꾸 좋아하겠다 하니까 교역자하고 자꾸 단합이 돼지니까 은혜 잘 받지. 이래서 그라는 것인데 이제는 안 심군다. 명년부터는 그래 해라.

그다음부터는 그래 해 가지고서 그래 해도 축복을 안 하니까 빼빼 말라서 뭐 가져오기는 쪼매 가져오는데 가져오는 게 저거 못 먹고 가져오는 것 같애. 저거 못 먹고 가져오는 것 같애. 뭘 축복을 해야 뭐 남는 것 가져오지.

그래 내가 있다가 ‘농사도 그래 지으면 안 된다’ 예배당 뒤에 조그만한 논도랑이 하나 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 축복받는 농사를 봐라. 내가 여기 감자를 심을 터이니까, 너거는 감자가 뺄가이 요막씩 요래 가지고서 그 꼬라지고? 감자를 심을 터이니까 봐라.’ 감자를 한 쪽에 심었다 말이오. 심었는데, 길가라요.

길가인데 감자를 캤는데 감자를 캐도 집에 못 가져가겠어. 거기다가 가마니다가 자꾸 인제 담아, 감자를 놓을 수가 없으니까. 가마니다 담아 자꾸 이래 놔요.

나중에 보니까 그 논도랑 위에 감자 가마니가 소복해. 감자 가마니가 소복해.

하나 거석하면 막 이렇게 나와.

이래 놓으니까 ‘봐라, 이게 하나님의 축복이다. 너희들이 깍쟁이같이 도둑질이나 하고 거짓말이나 하고 자꾸 죄나 짓고 그래야 될 줄 알고 장사하라 하라거든 거짓말 하고 죄지어 가지고서 욕만 얻어먹고, 너거에게 축복이 있나? 너거가 이와같이 되어지면 너거 감자가 이래서 파묻혀 못 살 건데. 이 봐라. 이거 어데 딴데서 감자 캐 가지고 와서 이래 뭐 감자 가마니를 져다 놨나? 여게 건데 이 봐라. 바닥에 감자 가마가 소복 안 한가? 너거 농사 짓는 데는 감자 이런 것 한 개도 없다. 이런 것 한 개 너거가 가져오라. 한 개 있으면 가져오라. 내가 한 가마니 줄께. 한 개 있으면 가져오라.’ 한 개를 못 가져와. 그런 굵은 감자가 어데 있어야지? 하나님의 축복이면 얼마든지 됩니다.

이러니까, 지난 주일에 그 설교 했으니까 놀자 해 가지고 회사는 빼빼 말라 가지고 적자가 나오니까 그까짓 거 회사 부숴지지 어찌 되겠소? 이러니까,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못 받아 그러니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하자.’ 이래 가지고서 먼저 자기 하던 일을 줄여서 축복을 받는 일도 있고 축복받는 하나님 섬기는 일을 하므로 하고 이 세상 일을 줄여뜨림으로써 축복받는 일 있고, 어느 거라도 괜찮아요. 세상 일 하는 걸 줄여뜨리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늘여뜨리든지 하나님 섬기는 일을 늘여뜨리고 세상 위해서 하는 일을 줄여뜨리지 이래도 저래도 어느 거라도 좋아요.

좋은데 어쨌든지 해서, 세상 일 줄여뜨리는 일 하고 하나님 일 늘여뜨리는 일 해도 하나님이 참 아이들 말로 오케이 하고서 됐다 하고서 축복을 해서 돼져야 되고, 또 하나님 섬기는 그 일을 늘여뜨리고 세상 일을 줄여뜨려도 하나님이 축복을 해야 되고, 또 세상 일을 줄여뜨리지 안하고 하나님 일만 이래 하니까 자꾸 하나님 일을 많이 하니까 하나님이 축복을 하셔서 자꾸 하나님 섬기는 일을 늘여뜨릴 수 있도록, 하나님이 그다음에, 무슨 시작이라도 좋습니다. 세상 일 하는 시간을 늘여뜨리는 걸로 먼저 시작해도 좋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늘여뜨리는 걸로 먼저 시작해도 좋아요.

그러면, 주일날 새벽까지는 일을 합니다. 새벽까지는 일을 하니까 그 사람 하나님 섬기는 일을 줄여뜨렸소 늘여뜨렸소? 줄여뜨렸지. 줄여뜨리고 하나님을 섬겼는데 하나님께서 ‘네가 새벽에 일을 하고 와서 섬겨도 네 형편이 꼭 그러니 그렇지.

참 그 대예배 이후로부터 섬기는 일이라도 내가 새벽부터 나와서 섬기는 사람의 몇십 명보다도 네가 나 섬기는 정성이 더 고맙다. 또 네가 대예배 때에 받은 그 은혜를 가지고 엿새 동안 활동해 사는 데 대해서 내가 만족하다.’ 이라니까, 새벽까지 일하고 섬기는데 하나님이 축복을 주셔서 농사도 잘되지 장사도 잘되지 부자가 되니까 이제 새벽까지 일할 필요가 없어. 열두시까지만 일해도 되겠어.

그것은 세상 일 하는 것을 늘여뜨렸습니까 하나님 섬기는 일을 늘여뜨렸습니까, 처음에 뭘로 시작했어? 뭘로 시작했어? 뭘로 시작했지? 새벽까지 했으니까 세상 일 하는 일을 늘여뜨리지 안했어? 열두시 이후에는 못 하구로 했는데 그래 했으니까 세상 일을 늘여뜨려 하지 안했어? 늘여뜨렸지마는, 늘여뜨렸는데 저는 새벽에 일 안 하고는 못 견뎌요. 새벽에 일 안 하고는 못 먹고 살아 안 돼요. 이러나 나머지기 주일 지키는 그 시간을 잘 지켜서, 그 세 가지 은혜를 받아 가지고서 엿새 동안에 그대로 사니까 하나님이 축복을 해 주시니까 새벽에 일 안 해도 뭐 끼역끼역 남아 나가는데 어짤 거라? 새벽에 안 해도 먹을 상 하거든. 그라면 새벽에 안 하지. 자꾸 하니까 토요일날 오후부터도 일 안 하고 해도 되지. ‘야, 그런 게 아니다. 토요일날 하나님께 바쳐서 전도나 하고 심방이나 하자.’ 그래도 남지. ‘아니다. 하루만 하자.’ 하루만 해도 자꾸 남습니다.

자, 그 사람은 뭘로 시작했소? 세상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까 하나님 일 많이 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까? 세상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시작했어.

그러나 나머지기 진실하게 하니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니까 축복에 따라 된다 말이오.

또 이 사람은, ‘이래도 굶고 저래도 굶고 뭐 그까짓 거 가난하게 사니까 어라 어짜든지 한번 계명이나 지켜 보자.’ 어찌 됐든간에 내가 그만 토요일날 오후부터 일하지 말고, 목사님 그래 설교했으니까. 오후부터 주일 준비나 하고 어짜든지 그날부터 뭐 거리끼는 것 없도록 이렇게 하고 또 목욕하고 의복도 단장하고 또 내가 전도한 것 하나 둘 전도도 하고 심방도 하고 이래 가지고서 내일 주일 지키겠다고 간절히 기도를 하고 이래 가지고서 아예 이래 가지고서 주일날 벌써 그날 새벽부터 나와서 예배드려서 하나님 말씀 듣고 또 오전 듣고 오후 듣고 이래 가지고 세 가지 감사할 것, 또 능력 받을 것, 또 연습하는 것 이것을 주일날 실컷 했습니다. 주일날 실컷 하고 그다음에 월 화 수 목 금 토 오전까지 바짝 이 말씀대로 이래 했습니다. 이래 하고서 이랬습니다.

이랬는데, 그다음에 보니까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토요일날 오후부터 해도 공장에 그 성과는 더 올라가지, 장사하는 데 돈은 더 벌렸지, 농사짓는 데 추수는 더 많지, 돈벌이는 더 많이 되지. 그러니까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니까 이제 그 사람은 세상 일을 줄이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넓히는 그거로 시작했어. 안 그렇습니까? 세상 일을 줄이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넓히는 걸로 시작했어.

이래 시작했든지 저래 시작했든지 상관없어. 그래 시작해 가지고 제가 어느 정도 진실히 했느냐, 진실히 함에 따라서 하나님이 거게서 보응해 주요.

보응해 주는데 토요일날 오후부터 그라고 이랬는데 오후 일 안 한 것만치 공장에서는 월급을 적게 감해 줍니다. 감해 줍니다. 감해 주니까 배가 고파지지.

또 ‘너는 토요일날 안 나오니까 안 됐다. 이제 너 우리 회사 못 쓰겠다.

나가거라.’. 또 감원이 돼 가지고서 나와 버리지. 이래 배가 쫄쫄 곯아 안 된다 말이오. 이제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제가 잘 지켰고, 그러니까, 이 세상 일을 계명을 어겨서 많이 함으로 나머지기 시간을 하나님 섬길지라도 잘 섬기면 하나님이 보시고 그것으로써 자꾸 주일을 다 지킬 수 있도록 해 주시고 나중에는 마지막에는 일주일 내 하루만 하고 일주일 내 한 시간만 일해도 막 차고 넘치도록 해 주실 수가 있고 하니까 이것으로 시작했든지 저것으로 시작했든지 상관없다. 자기가 주일을 지키는 데에 바로 지키고 엿새 동안 자기 일 하는 데 바로 해야 된다. 이해가 됩니까? 이해가 됩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거든 자꾸 가 지키고 생각해요. 이거 이해가 안 되면 안 돼.

저는 그래 집사로 있을 때 처음에는 말이요, 처음에는 죽자껏 일했어. 내가 일 안 하던 사람이 일을 하니까 여기 등어리 등창이 났어. 여기 생전 지게 못 지던 게 자꾸 지게를 지니까 이거 등어리가 벗겨지고, 자꾸 지게 지니 뭐 나아야지? 이래 가지고 처음에는, 촌에는 시골에는 가스 이런 게 없어요.

그때는 솔갱이 해 가지고서 때야 돼. 솔갱이를 또 지금 봄에 해다 놔야지 안 해 놓으면 안 되거든. 솔갱이 그걸 해다 잴라고서. 솔갱이를 해 가지고 묶어서 지는데 이놈을 져 놓으니까 잘 못 묶으니까 뒤로 넘어가서 앞으로 탁 코가 땅에 닿이구로 이래 가지고서 이래 해도 뒤로 넘어가니까 이래 가지고도 해도 쪼매밖에 못 가져온다 말이오. 그래 가지고서 삼 년 동안 일했습니다.

일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니까 차차 차차, 첫해는 감자를 심었는데 감자씨를, 외지름궤라. 사과궤보다 조금 커요. 한 궤를 갖다 심었는데 나중에 감자 캐러 가서 감자를 캐니까 추수한 게 꼭 한 궤라. 똑 새알만도 못한 게 요런 것들이 자잔한 것 한 궤, 그것도 내버릴 수는 없고 뭐 배가 고프니까. 이랬는데 나중에는 삼 년 만에는 얼마나 감자가 굵었는지 감자가 이래요. 도무지 자, ‘이런 감자 봤나?’ 지금은 내가 몰라도 그때까지는 역사에 그 골짝에서는 그런 감자가 없어요. 이래 자꾸 축복해. 그래 가지고서 나중에, 역사에 그 골짝에서는 그런 감자 없어요. 이렇게 자꾸 축복해.

그래 가지고서 나중에 이래 거석하니까 감자가 그 소문이 나 가지고 이라니까 밭에다 감자 농사를 지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또 길가라. ‘야 이 사람아 그 가마니가 모두 빈 가마니가 무슨 가마니가?’ ‘왜 빈 가마니라? 와 봐라. 전부 감자가 가뜩가뜩 한 가마니씩 있다.’ ‘그라면 거게서 캔 것이 그 밭에 감자 가마니가 꽉 찼네.’ ‘와 봐, 하나님의 축복이면 되지.' 이렇게 해 가지고 하나님에게 자꾸 영광을 돌리도록 이렇게 했었습니다.

이러니까, 뭐 부자되기는 그거는 쉬워. 모두 다 부자되는 게 어렵다지만 부자 그까짓 거 되는 것이야 삼 년 안에 됩니다. 말씀대로 살면 삼 년 안에 돼. 참말로 무한하신 그 영감을 바로 깨달아 가지고서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 받는 성자되는 것, 성녀되는 것, 순교자 될 수 있는 것 이것이 어렵지 그까짓 거야 삼 년이면 다 됩니다. 왜 못 합니까? 안 믿기 때문에 안 돼.

자, 그라면 하나 물읍시다. 세상 일을 줄여뜨리고 하나님 섬기는 시간을 늘여뜨리는 걸로 시작할랍니까 하나님 섬기는 일은 줄여뜨리고 세상 일 하는 일을 늘여뜨리는 걸로 할랍니까 어떻게 할랍니까? 하나님 섬기는 시간을 줄여뜨리고 세상 하는 일을 늘여뜨리는 것은 안 할래야 없으니까 부득이 하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여러분들 형편이 어떻소, 자? 그러면 하나님 섬기는 일을 많이 하고 세상 일을 적게 해도 되는 사람, 적게 해도 되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적게 해도 되는 사람. 자기 형편에 적게 해도 되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적게 해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가배. 전부 망했구만.

적게 하고 싶어도 안 하면 안 되니까, ‘뭐 이거 뭐 이 주일이지마는 안 하고 안 되겠다. 또 열두시까지 일을 이거 정리를 하고 해야 되겠다.’ 그런 사람은 세상 일 줄여뜨려 가지고는 제가 못 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세상 일 줄여뜨리면 안 되니까 늘여뜨릴 수밖에 없고, 못 사니까 자꾸 늘여뜨리지. 자꾸 못 사는 사람 축복 못 받는 사람은 세상 일을 늘여뜨려야 안 굶어 죽습니까 줄여뜨려야 안 굶어 죽습니까? 어째요? 늘여뜨려야 안 굶어 죽어요 줄여뜨려야 안 굶어 죽어요? 이거 내가 하는 말 무슨 말인지 모르는 모양이라.

자, ○○○씨? 세상에 대한 일을 하는 그 시간을 자꾸 줄여뜨려서, 줄여뜨려서 ‘닷새만 해도 산다. 나흘만 해도 산다.’ 그렇게 줄여뜨려서 자, 그러면 한번, 이거 지금 실지기 때문에 한번 해 보자 말이오.

세상 일 하루만 하고 나머지기 하나님 섬기는 일 해도 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하나도 없네. 세상 일을 엿새를 해야, 꼬빡 엿새를 하고 하루만 하나님 섬기지 세상 일을 엿새를 안 하면 먹고 살 수 없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여기는 정직하게 드는데.

자, 내가 다 그래 안 물었으니까 닷새만 하면은 아무 곤란 없이 살 수 있다 그렇게 생각되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없고, 그러면 그 위에인가? 나흘만 해도 되겠다 싶은 그런 형편에 있는 사람 또 손 들어 봅시다. 그것도 없고, 이틀만 해도 된다는 사람 손 들어 봅시다. 없고, 그러면 엿새 반, 주일날 반 지키는 것.

엿새 반을 해야 안 굶어 죽고 근근히 살겠다 싶은 사람들 손 들어 봅시다. 아예 부끄러워 못 드는 모양이라. 그래도 뭐 주일 바로 못 지키면 그거지 어짤 거라? 그거지.

어짜든지 이제 주일날, 토요일날 열두시까지만 일하고 열두시 이후에는 억지로라도 안 해도 근근히 살 수 있어. 토요일날 열두시까지만 일하고 그 나머지기는 일 안 해도 근근히 살 수 있다고 그런 형편에 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그런 형편에 돼 가지고 있는 사람들? 지금 뭐인지 모를세.

○○○장로님은 어느 겁니까? 여기 해당이 안 돼요? 하루? 하루? 하루? 하루만 하면 먹고 살아요? 안 굶어 죽어? 박수. ○○○장로님은 하루 해도 산대요. 왜 박수 안 해? 박수해, 자꾸 박수. 내가 말하는 걸 이해하는 동지가 하나 생겼구만.

그래. 하루만 해도 돼요, 돼요.

이러니까, 어데서 됩니까? 주일날 이 세 가지에 다 돼, 주일날 세 가지. 자꾸 깨달아서 감사함이 더 돼지지, 열한 가지 이 능력을 더 받아서 열한 가지로 더 살지, 열한 가지로 더 살지, 또 주일날 연습한 걸 엿새 동안에 어짜든지 이 일을 실천해서 열한 가지로 꼬박꼬박 살지. 하나님이 없는 가운데 엿새 동안에 만들어 놨는데 엿새 동안에 만든 것을 이렇게 사는 사람에게 퍼부어 주겠소 안 주겠소! 어째요? “하늘 문을 열고 네 곳간에 쌓을 수 없도록 부어 주나 안 주나 보라” 하나님이 거짓말 했어요? 사는 길이 있는데 인본주의 쓰지 말아요. 인본주의. 성경 해석에 인본주의 설교 듣지 말아요. 인본주의 설교 들으면 죽어요! 망해요! 신본주의 설교를 들어야 되지! 이게 생명이라! 그래.

그라면 자, 우리는 하루만 세상 일 하고 엿새 동안은 하나님 일 하는 그 일로 할라면은 머리도 써야 되고 기도도 해야 되고, 하나님이 꼭 나 말하는 대로 들어 줘야 되지. 한 번만, 기도하다 착착 들어 주다가 한 번만 기도할 때 헛일이라.

그라면 주님이 안 들어 주시면, 기도 안 들어 주시면 헛일 아니요, 우리가? 기도 안 들으면 헛일 아니야? 기도를 해 그거 되는 건데.

안 들어 주시면 이거 뭐 기도하는 데 죽을 지경이라. 막 회개하고 회개하고 회개해서 하나님의 노를 다 풀고 나면 등어리를 툭툭 두드리며 ‘인제 됐다.

걱정하지 마라. 모든 염려를 내게 맡겨라. 내가 다 해 주마.’ 하루만 해도 돼.

나중에는 한 시간만 해도 돼.

우리 목적은 어데요? 전부, 자는 것이나 깨는 것이나 먹는 것이나 사는 것이나 모든 그 모든 전부를 다 주를 위해서 하는 그 사람이 되는 것이 완전입니다.

알겠습니까? ○○○집사가 엿새 동안 해야 된다 했지? 엿새 동안? 축복 더 받아. 닷새 동안! 나흘 동안! 믿어져? 하루만 해도 살 수 있어? 해 봐! 삼 년 안에 하루만 해도 살고 남아요. 해 봐, 해 봐. 이는 성경이 말하고 우리의 경험 체험에 꽉 쌓인 것입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오후에 이 끝을 계속하겠습니다.

<기도> 감사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창세 전 예택하신 이 지극히 큰 주의 목적을 주님이 도성인신하사 죽기까지 하셔서 이 구원을 완성하시고 완성된 이 구원을 우리들로 받아 가져 영원히 누리게 하도록 이렇게 사활의 구속 공로를 설정해 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사활의 이 구속 공로의 구원을 주일날 이 날에 우리에게 담뿍 주셔서 이 날에 받은 세 가지 성질의 은혜를 엿새 동안 내것 삼아 강직하고 완전으로 연달하고 연성하고, 또 주일날 만나서 은혜 받아 점점 은혜에 은혜로 참으로 하늘과 땅의 것을 유업 받아서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실력가로, 영광의 찬미로, 모든 것에 하나님의 대리자 하나님의 아들로 이 영광스러운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 주시는 이 거룩한 주일날을 저희들에게 어짜든지 깨닫게 하사, 이 주일날은 죽어도 지켜야 되고, 감옥에 가도 지켜야 되고, 공산주의 앞에서도 지켜야 되고, 어떻게 폭력 앞에서도 지켜야 되고, 고문과 고형 속에도 지켜야 되고, 군에 가서도 지켜야 되고, 온 천하를 다 주는 영광스러운 가운데서도 지켜야 되고, 어떤 권세자에게 눌릴 때도 지켜야 되고, 낮은 자리에서도 높은 자리에서도, 바빠도 틈나도 언제든지 주일은 온전히 지키는 여기에서 우리의 영원한 흥망 성쇠가 달려 있는 이 사실을 확신하는 저희들이 되도록 주님이여 성령으로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이리해서 주일을 온전히 지켜 주님의 주시는 은혜를 받아 세상을 발 아래 밟고 영광의 찬미의 구원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형제들을 어두움에서 구출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아직까지 찾지도 못하고 흐미한 가운데 있었는데 이렇게 빛으로 돌아오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주님의 것이오니 장중에 잡으시고 하나하나 가르쳐서 깨닫게 하시는 은혜와, 믿는 은혜와, 요대로 실행하는 은혜와, 참고 견뎌서 주님을 든든히 믿고 의지하고 바라는 은혜로 충만하여서 나그네 세상을 한 걸음도 실수 없이 성공에서 성공으로 승리로 쌓아 갈 수 있는 저희들이 되도록 은총을 주시옵소서. 모든 미혹을 방어해 주시옵소서. 어떤 일이든지 주님으로 더불어 의논해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염려없는 평강의 생활을 이루어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구원할라고 수고한 사랑하는 종들에게 주의 심정으로써 가득히 채워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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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주일날의 은혜/ 요한계시록 1장 10절-16절/ 1985. 5. 12.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7
173 주일성수/ 요한일서 5장 8절-9절/ 1985. 5. 5.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8
172 주일성수 7가지, 4계명/ 출애굽기 34장 27절-34절/ 1983. 4. 17.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