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1980. 10. 12. 주후

 

본문 : 히브리서 3:15-4:16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제 칠 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 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는 구약 안식일 지킨 사람들의 대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들이 강퍅하게 했는데  우리도 그들과 같이 강퍅한 마음을 가지면 안됩니다.

자기 마음을 자꾸 새롭게 하고 깨끗게 하고 정직하고 진실되게 자꾸 가꾸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을 옳게 바르게 깨끗하게 밝게 이렇게 가꾸면 자꾸 가꾸어지고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악하고 독하고 미련하고 마구잡이로 거짓되게 이렇게 자기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면 점점 강퍅해집니다.

16절 그 때에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아주 노엽게한 자가 누구뇨 모세를 쫒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있을 때에 굉장히 사랑했습니다. 사랑해서  아무것도 아닌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면 그 때에 세계의 제일 인데 그 강대국의  위치를 가진 것이 애굽이었는데 그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면  무조건 부모같이 대접했습니다. 뭐 이스라엘사람이라고 하면 부모와 같이 대접을  했습니다. 그 때가 요셉이 총리로 있을 때입니다.

왜 그 나라 백성들이 요셉이 아니면 참 비참하게 망할 것인데 요셉이로 인해서  그 나라가 큰 환란을 도리어 크게 강대국이 되어지는 그런 것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에 요셉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애굽사람들이 꼭 부모와 같이  대우했습니다. 이래서 애굽 사람들이라면 무엇이든지 거역하지를 아니했고 또  좋은 것은 다 대우했고 제일 좋은 자리 좋은 것을 이렇게 대우해서 아주 후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것이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신 것인 것을 입으로는  말하면서 실상은 속에는 자기가 잘나고 위대해서 그렇다고 잘못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섬기는 것은 등한히 하고 애굽 사람들 보다 아주  월등해서 그런 것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점점  이스라엘에게 대해서 노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몇 번이나 권고를 해도  이렇게 되어짐으로 하나님께서 그러면 네 힘으로 한 번 해봐라 하고서 버려 둔  것이 사 백년입니다.

사 백년을 버려둬서 사 백년 동안 애굽사람들과 일 대일로 싸웠습니다. 일대일로  싸워가지고 이렇게 해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애굽사람들에게 박해를 당해서 그  때는 남자라 하는 것을 종자를 하나도 남겨 두지 아니하고 전멸을 시키기로  애굽에서 결정을 하고 이제는 전멸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남자들은 그렇게 어른들은 남아 있지만 남자는 놓는 것마다 죽여서 머슴아이는  없었습니다. 남아는 나면 즉시 죽이고 안 죽인 것은 라일강에 던져 죽이도록  그렇게 국령을 내려서 아주 남자는 손이 끊어지도록 하고 여자는 애굽 사람들이  다 취하도록 그렇게 도모를 했습니다.

그럴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못해서 다시 모세라는  사람을 일으켜 가지고 애굽에서 자랄 때에 이적으로 자라게 했습니다. 애굽  궁중에서 애굽의 왕의 후계자가 될 수 있는 그런 위치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 때 이스라엘 가운데에서도 패역한 사람들은 패역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권능을, 사랑을, 약속을, 생각하고 참 목숨을 내놓고 또 하나님을 독실히  섬기는 그 사람들로서 모세를 낳았으니까 숨겨서 죽이지 아니했지만 차차 사람이  커지니까 알게되니 알면 그 아이도 죽이고 부모들도 죽이고 가까운 친척들도 다  죽여 버리기 때문에 할 수 없어서 그 모세를 달리 살리는 방편으로 모세의  누이가 애굽왕의 그 딸의 집으로 심부름을 하면서 거기에서 서로 알뜰히  심부름을 해줘 가지고 신임을 얻고 친근히 된 후에 모세를 나일강에다 가져다  상자에다 넣어서 던지면 그 누이가 바로왕의 그 딸에게 말해 가지고 우리 저  나일강에 소풍 안 가렵니까 해서 소풍을 가서 상자있는 것을 보고 저 상자의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의 남아를 넣어서 던진 것인지 모르니까 저것을 주워다가  당신 위해서 기르면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할 계획을 가지고 모세를 상자에다  넣어서 나일강에 다 띄었습니다. 띄워서 술술 다 떠내려가면 안 되기 때문에  갈대밭 그 속에 다가가서 띄어놓고 모세의 누이가 바로왕의 그 딸에게 말해  가지고 강변의 소풍으로 나가서 저 상자가 하나 있습니다. 저 이스라엘의 아마  남아 버린 상자 같습니다. 저것을 주워다 키우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이  감동시켜 주워다 키운 모세입니다. 바로 궁중에서 자라면서도 그 누나가 틈틈이  모세에게 어릴 때부터 기도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가르치고 그 아이의 유모는  젖없이 어찌 기르느냐. 이스라엘에 아이 갖다 버리고 젖나오는 그런 사람있으면  유모하나 정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모세를 낳은 어머니를 유모로 정해  가지고 길렀습니다. 기르면서 늘 젖을 먹이고 젖 가슴 앞에 두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도리와 이스라엘 백성의 그 선민이라는 것을 가르쳐서 길렀습니다.

모세가 저기서 자랐고 그렇게 세상적으로는 그 나라를 차지할 수 있는 그런  세상영광이었고 부요가 있었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저렇게 되는데 내가  여기서 해 가지고는 뭐 하겠느냐 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할려고 나가서 이런  고통중에 있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끼리 또 강퍅해서 자기끼리 싸우고 이래가지고  하는 것을 보고 모세가 답답해서 만류도 하고 이스라엘 남자를 애굽사람이  학대하는 것 보고 못 견더서 애굽 남자를 그만 쳐서 죽여서 모래밭에 묻어  버리고 한 이것이 처음에는 소문이 안 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끼리 또 싸우는  것을 보고 그리하지 말라고 가서 만류하니까 이 놈이 어제 애굽사람을 죽여서  땅에 파묻은 놈이 우리를 간섭한다고 하면서 고함을 쳐서 알려 소문 나가지고  모세가 애굽사람을 죽였다는 소문이 나면 모세가 죽을것이니까 그 때에 도망을  미디안으로 가 가지고 그 때 40세 될 때인데 가 가지고 사십년 동안을 목축을  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자기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또 그 많은  사람들이 깨끗한 사람들이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내려고 열 가지 기적을 나타내가지고 이 강퍅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을  지경이니까 이제 하나님에게 부르짖어서 하나님이 구출했습니다.

구출해가지고 인도하실 때에 하나님이 몇 번이나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내 말을 들으면 다시 너희들에게 애굽있는 그런 고통이나 멸시나  천대나 심지어 영도 좋을 뿐 아니라 몸도 다 건강하고 병까지도 없이 너희들이  복되게 살 것이고 세계에 가나안을 제일 복된 자리로 내가 만들어 가지고 너희들  거기서 살게 하겠다. 그러니까 내 말을 믿고 순종해라 하고서 인도해 냈습니다.

인도해 낼 때에 전체가 기적으로 나왔습니다. 홍해 바다 있을 때에도 앞에는 큰  홍해 바다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 애굽백성들이 치러와서 죽겠다고 할 때에  모세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이렇게 이적과 기사로 너희들을 그 원수에게서 구출해  냈는데 이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니까 홍해가 가로막아도 애굽병정들이  추격을 해도 상관이 없다. 너희들만 하나님을 배반치 말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라 했습니다.

그래도 그 때에 지저분하게 원망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은  참으시고 홍해 바다를 갈라지게 해 가지고 육지와 같이 건넜습니다.

이러니까 그들이 아 참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크신 하나님이로구나  하면서 의심없이 믿기로 또 작정해놓고 또 물이 없으니까 그만 목이 마르다고  하나님은 그 연단시키기 위해서 하는데 또 원망 불평을 해서 하나님께서 물이  없어 너희들을 못 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참사람으로 살려면 참고 견디기도  하고 또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해도 참고 인도를 받아야 큰 성과를 보지 않느냐  하시면서 물없는 반석에서 이 반석에서 물이 나와 가지고 너희들을 만족케  먹이리라 말씀하시고 모세로 하여금 그 반석을 작대기로 가르치라 할 때에  반석에서 물이 나와 가지고 만족히 먹었습니다. 또 얼마 지나니까 만나 가를  가지고 농사 짓지아니하고 먹었는데 그들이 애굽에 죄짓고 잘 먹던 그것이  생각이 나 가지고 고기 때문에 또 원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면 너희들이 지금 의식주 거기에 너희의 행복이 달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행복 달렸고 너희들은 행복 그것을 찾는 것이 너희 행복이  아니라 하의 인도에 복종하는 이것이 행복이 되어지는 이것인데 너희들이 그것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 땅의 것을 없애 하늘의 것을 찾음으로 이제 만족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데 그것을 견디기 못하고 그러니까 너희 육덩이로 먹여 주는  것이 쉽지만 참 진리로 먹이고 하나님으로 부강해지고 참 사람으로 강건하게  자라고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할 평강과 기쁨과 행복으로 되어지기는 힘드는  것인데 이것을 주기 위해서 이것 좀 제재가 되어져야 되지 이것만 주면은 자꾸  여기만 붙어 가지고 있으니까 참 것을 주기 위해서 했지만 그들이 이것을 받지  아니하고 강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면 고기 먹여주는 것은 이 일이 어렵지 않다 하시면서  메추라기를 몰아가지고 저희들이 배부르게 먹이도록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먹일 능력이 없어 못 먹이는 것이 아니고 못 사는 것이  아니고 입힐 능력이 없어 안 입히시는 것이 아니고 평강을 주실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를 땅에 것을 차차 차차 이것을 감소시키고 하나님과  진리와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는 이것으로 점점 바꾸어 충만하게 하려 하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는 죽든지 살든지 하나님 인도대로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몇 번이나 수 십 번이나 하고도 배반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심하고 또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그러면 우리에게 의심하도록 하려 하거든 이것  하나 해 줘 보십시오. 해 주니까 이제는 알았습니다. 하고서 그 다음에 또  그럽니다. 이래서 하나님이 광야에서 그들을 시련 시키다가 안 되어서 그 만  들어갈 것인데 그만 가나안에 들어 갈 수 있는데 암만 되도록 시련을 시켜도  안되어서 사십 년이나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이제 사십 년이나 지나가니까 나이가  많으니까 죽어 버렸습니다. 가나안에 못 들어가고 죽었소 성공을 못하고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난 자손들은 그때에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의심없이 순종하기 때문에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지고 가나안에 그 때는 참 젖과  꿀이 흘렀습니다. 포도 한송이를 둘이 메고 다니지 그냥은 못 다녔습니다. 그  세계에 그런 나라가 없는 그런 가나안을 만들어 가지고 살게 했는데 그 뒤에 또  강퍅해서 또 타락해 가지고 하나님 애를 많이 먹이고 마지막에 근 400년 동안을  이 세계에 모든 민족위에 가장 유린당하는 그 비참한 그 민족에 생활을  사백년동안이나 계속 하던 끝에 세례요한이 왔고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역사가들은 이스라엘처럼 그렇게 박해당한 민족이 없고 그렇게 박해를 당하지만  없어지지 아니한 멸종이 되지 않고 그대로 계속하는 민족도 이스라엘뿐입니다.

그것을 여기에 말합니다.

3장 17절에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니 믿지 아니하는 이스라엘들에게 이와같이  했습니다.

18절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라 하셨느뇨  첫째 안식일 줄 때에 그 들어오지 못한다고 누구에게 대해서 너희는 이 안식일에  못들어 온다 그렇게 하나님이 맹세 하시면서 단언을 내리셨느냐 순종치  아니하던자에게가 아니냐 이렇게 큰 사랑과 큰 도움과 보호와 하나님의 간절한  그 기대와 소망이 된 백성들이지만 그들이 하나님에게 순종치 아니하고 저희  생각 저희 욕심 저의 꾀 이것을 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의지하지 아니하고 순종치 아니하기 때문에 이렇게 됐습니다.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19절에 이로 보건데 이것을 보면 이로 보건데 저희가 믿지 아니함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두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인정하는 것이 믿는 것이요  하나님이 영생이 있다하면 영생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든든히 믿고  의지하라 하면 하나님을 든든히 믿고 의지해야 되게 다하고 인정하고 또 하나는  인정한대로 실행하는 것. 마음으로 인정하고 몸으로 실행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없어서 이렇게 절단났습니다.

4장 1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 할찌니 그 때에 이스라엘에게 대한 하나님과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이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때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이  공이 든 것이 만일 태산 만큼 공이 들었다고 하면 우리 신약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공든 것을 지구 땅덩어리로 비할 것이 아니라 우주보다 크게 공이  들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에게 비할 수 없는 몇 억억 만배라고 할 수 없는 큰  공을 드린 것이 우리에게 새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새 안식일 주신 것 새 안식 주일, 이 주일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공을  드려서 이 주일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하는 것을 오늘 증거할려고 했는데 지금 그  ? 밑에 밑질미를 모르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어 지금 서론을 지금 자꾸  말하고 있습니다.

4장 1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 할찌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찌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합니다.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은 번역을 잘못해 그렇습니다. 남아있지만 이 뜻인데  있을찌라도 남아있지만 너희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이스라엘이  첫째 안식에 합격이 안되어 가지고 다 멸망받은 것과 같이 두 번째 우리에게  주일을 주신 이 이 주일은 참 첫째 안식일과 비교못할 큰 희생을 해가지고 주신  주일인데 이 주일은 어떻게 해서 주셨느냐고 주일 주신데 대해서 베드로전서  1장에 보면은 약간 기록해 놨습니다.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님 그리스도 의 죽은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면 썩지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그러면 주일을  우리에게 주시는 데에는 하나님이 사람 모양으로 나타나셔 가지고 하나님이 사람  모양으로 나타나신 것은 창조주가 피조물 같이 됐다 그 말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같이 된 것은 왕이 거지병신같이 된 것과 그 거리와 하나님이  피조물 같이 된 것과 그 거리가 어찌 됩니까. 누가 나를 사랑해서 일국의 대왕의  권세를 가진 그 분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거지 의 위치를 취하지 아니하면  나를 구원할 수 없어서 왕의 자리를 내놓고 그런 천하게 되기까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했다고 하면은 그 사랑이 크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피조물 됐습니다.

이것이 제일 큰 희생입니다. 하나님이 부요를 다 내놨습니다. 이래가지고 우리의  죄의 형벌을 다했는데 우리 죄가 얼마나 큰 지 모르기 때문에 그 형도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그 죄의 형벌에서 우리를 해결한 것이 어떤지 아무 성자라도  모릅니다. 아는 것이 다릅니다. 이것에 대해서 알아가는 데로 자기는 주의 것이  안될 수 없고 주의 사랑에 감격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욕구에 응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범위가 넓고 무겁고 큰  요구인데 그것도 우리가 모릅니다. 그것을 주님이 대신 다 응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와 원수된 그 원수에 독함이 그 복수의 그 무서움이 영원무한한데 이것을  대신 복수 받고 화친을 해서 우리에게 화친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해결 지워 주신 것이요. 사죄를 주셨고 칭의를 주셨고  하나님과 화평을 줬지만 사죄를 가지고 죄없는 자로 사는 칭의를 가지고 의로운  자로 살고 하나님과 화친한 자가 되어서 화친한 자로 사는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는 안됩니다. 죽으심으로 우리 문제를 다 해결 지워서 자본은 밑천은  다 마련했습니다. 근거는 다 마련했습니다. 그렇지만 미련한 이것을 가지고  누리고 살도록 이렇게 하는 데에는 다시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대속하지  아니하면 안되기 때문에 예수님이 사흘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은 우리 위하여  죽으실 뿐만 아니라 죽으심으로 베푸는 그 공로를 우리가 붙들고 그 행복을 그  구원을 누리고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당신이 영원히 사람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그 사람이라는 이 꺼플을 벗지 못하고 입었습니다. 우리 때문에 하나님은  영원히 천하고 영원히 모욕당하고 창조주가 피조물같이 된 이 큰 사랑으로  희생을 제공해 가지고 주일을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주신 것은 당신의 능력을  가지고 엿새동안에 만든 것이요. 엿새 동안에 만든 그것을 주시면서 엿새 동안에  만든 이것을 너희 마음대로 취급하지 말고 이것을 다 선물로 줄 터이니 내  법도대로 내가 시키는 대로 이것을 취급하면서 살라 이렇게 주신 것이  안식일입니다.

이것을 범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노하셨거든 이는 하나님이 엿새동안ㅇ  수고 드려서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 지극히 존귀한 영광을 내어 놓으시고  피조물과 같이 됐어. 우리가 만들기는 뭐 만듭니까 예를 들면 내가 작대기를 한  개 만든다고 합시다. 작대기를 만들었으면 내가 작대기 같이 되는 것이요.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 것과 같이 되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천해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창조주가 피조물로 나타나시기 까지 이렇게 낮아지셨고 그  부요를 다 내어줘서 내놓으셨고 그 영광 다 내어놓으셨고 우리의 무한한 범죄,  무한한 불의, 무한한 원수 이것을 다 당신이 하나님으로 이것 담당해서는  이간이기 때문에 안되니까 하나님이 또 인간되셔 가지고 하나님으로 인간으로 이  신인양성일위가 되어 가지고 이것을 대신해서 사죄, 칭의, 새생명의 속량을  주시고 이것은 했지만 우리가 이 세가지 구속을 줬지만 이 구속을 받은 자로  누리고 사는 데에는 우리 단독이 안됩니다. 안되어서 다시 당신이 사람되어  우리와 함께 하셔 당신이 사람됨으로 당신이 사람된 천해진 이 댓가로 우리가  구속받은 사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천해지심으로 우리가 영광스럽게 살게 되었고 하나님이 피조물로  이렇게 영원히 이 피조물 되심으로 이 분이 우리 중보자 되어서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해서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에게  멸망받을 것을 다 해결지웠고 영원한 영광에 생명을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  했지만 살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중생은 못합니다. 그것을 누리고 살지는  못합니다.

이러기에 하나님이 다시 사람되어서 이제는 삼십 삼년 사개월동안 고생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서가 아니고 이는 영원히 우리 위해서 고생하시고 하나님이  사람으로 우리 중보자 되어서 역사하시기 위해서 이 짐을 짊어지고 나선 것이  주일 날입니다. 이것이 주일입니다. 그러기에 주일은 하나님이 우리의 김을  지시고 우리를 책임지시고 영원히 우리와 동행해서 우리를 영원히 사죄자로  칭의자로 하나님과 화친된 자로 하나님 다음 영계와 물질계 모든 피조물을 다  정복하고 통치하고 그 위에 위치해서 하나님이 처음 목적하신대로 하나님의  충만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의 대행자로 하나님의 대은자로  하나님의 대은 대신 은혜자 대신 말하는 자, 대신 행하는 자, 대신 다스리는  자의 위치를 우리가 살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의 중보자로 되기위해서  다시 하나님이 사람된 것이 부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에게 문제를 해결지워놓은  것이요. 부활하신 것은 해결 지워놓은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영원토록  영광스럽게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죽으심 뿐만 아니라 살아나서 그 사랑이 더욱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찌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찌라도 이것  번역이 잘못됬습니다. 있지만 해야되요. 약속이 남아 있지만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이 여기에도 달하지  못해서 믿음에 도달하지 못해서 하나님은 인정하고 그 법대로 사는 여기  도달하지 못하고 항상 안식과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한 이 주일 새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이 약속과 이 길을 우리에게 휘장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이 생명길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그 때와 같이 오늘도 하나님의 도를  듣고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도 대로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 생명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가 있을까 두렵다 그것이요.

함이라 2절에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들이 하나님의 도를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하나님의 도를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그들이 듣고 유익되지 못한 것은 그들이 듣고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들은대로 실행을 안 하니까 무슨 소용이 없다 그것이요.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그들이 듣기만하고  믿음을 화합하지 못했다. 화합이라 말은 믿음을 ?것다가 섞어가지고 합했다 그  말입니다. 섞어가지고 합했다 그 말이요. 거기다가 믿음을 합해야 되는 데  하나님의 도를 받아서 이 구원얻는 길을 우리가 배웠고 예수님이 공로를  설정해서 다 모든 난제를 예수님이 친히 대신 형벌 받을 것 형벌받고 행하실 것  행하시고 참 복수받을 것으 복수 받고 이래서 해결을 지워 놓으시고 우리가 이  구원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가르쳐 주셔서 이 도를 받았지만 그들이  순종하는 것을 합하지 아니하니까 헛 일처럼 오늘 우리도 순종을 합하지  아니하면 헛 일이 됩니다. 믿음을 합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솥도 불도 물도  있지만 거기에 쌀을 화합을 시켜야 되는데 쌀 빼놓으면 안 되는 것처럼 쌀이  있지만 온도를 화합해야 되는데 온도 빼놓으면 안 되는 것처럼 순종 이것이  거기에 화합이 되어야 되지 순종 이것이 거기 배합이 안 되면 안 되는데 순종  이것을 빼가지고 그들이 다 멸망을 받았다. 그들은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치 아니함이다. 듣는 자가 순종을 합하지  아니함 연고라. 듣는 자가 순종을 합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헛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를 아무리 듣고 여기서 배우기를 이제보다 더 잘 배운다  할찌라도 그것 가지고 자랑 못합니다. 배워서 알았으면 그대로 실행을 해야  구원이 되는 것이지 실행을 안 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앞에 그렇게 원수가 됐습니다.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들이요. 듣고 하나님께서 증거를 보이고 몇 번이나 그렇게 하나님이 애 터지게  해도 순종 안 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원수가 됐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이  창조해서 주신 것 뿐이고 말씀 뿐이고 이적과 기사한 것 뿐이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하나님의 독생자라 말은 하나님이라 말이요.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낳았다는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오셨다 그 말이요. 하나님이  사람되시기 까지 하셔서 이렇게 하나님의 부요를 다 내 놨다 하지 아니  했습니까. 하나님의 지위 다 내놓고 제일 천한 자리까지 내려갔고 저주도  우리대신 다 받았고 형벌도 다 받았고 고생 다 했고 모든 것 희생 다 해가지고  우리를 구출할려고 이 대속의 공로를 베푸셨고 또 우리를 이 공로 가지고  사는데에 도와 주시기 위해가지고 다시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연결시키는 이  중보자로 신성 인성 양성 일위로 또 나왔습니다.

일위로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끝나 버렸으면 그 공로만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을  상대해야 될 터인데 공로만 가지고 하나님을 상대하면 우리는 실수가 많은  자이라 그 때 그 때 하나님과 실수 될 때에 해결 지울자가 없기 때문에 당신이  또 사람되어 중보자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이 부활입니다. 이런 큰 공로를  베푸시고 우리에게 사는 길을 열어 주시는데 사는 길 알려 주신 이 도를 가지고  이대로 실행을 해서 구원을 얻으면 우리 구원 얻지만 주님에게는 이 이상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권면해도 실행하지 아니하고 멸망을 받으면  우리 행하지 아니함으로 멸망을 받는 것이지만 멸망받는 우리보다 하나님은  아프시기가 짝이 없고 너무 사랑하시고 원했기 때문에 안 될 때에는 괴씸해서  분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것을 상대하느냐.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지극히 큰 사랑과 희생을 아낌없이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가 그 사랑과 그 희생을 받아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면  하나님께서는 이보다 더 기쁨이 없고 우리에게서 얼마든지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허락해 주시지만 참으시고 참으셔도 우리가 끝끝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서  행치 아니할 때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한 진노보다 크게  임하십니다. 그러면 앞으로 하나님이 제일 분개할 자가 누구냐 구속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인정치 아니하고 하나님이 사는 길을 주시는 것을 빡빡 세우고  제 주관대로 하고 듣지 아니하고 반역하는 순종치 아니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이  노여워하십니다. 진노하십니다.

첫째 안식에 들어 가지 아니하는 순종치 아니하는 자를 하나님이 이렇게  노하셨거든 하물며 둘째 안식 이 큰 안식에 순종치 아니한 하나님의 이 크심의  희생을 큰 사랑을 큰 희생을 큰 공로를 우리에게 큰 구원ㅇ르 주신 이것을  등한히 여기고 가르쳐 준 도를 알고도 등한히 여기고 저버리고 이 아는 것  가지고 다른 사람의 죄나 정죄하고 이 아는 것 가지고 이용해서 세상 것 얻는데  다 팔아 먹기나 하고 이것을 가지고 사람을 위협을 주면서 돈내라 하고  위협주면서 또 복빌어 준다고 하고 이것을 행하지 안 하는 자는 참 비참할  것이요. 이 도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저를 위협할 줄 모르는 자도 참  불쌍한 자요. 이도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가르쳐서 말을 해주면서 그것을 이  세상 생계의 수단 방법처럼 써먹는 저는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욱 비참함이  큽니다. 이래서 받을 심판이 크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 바 말씀이 그 사람들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우리도 그와 같이 될까 두렵다 그 말이요.

화합지 아니함이라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 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위는 안식에 들어간다고 말씀했으니까 우리는 이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영원한 영생하는 참 생명세계 완전세계 모든 피조물을 자기 발아래 두고  중보자 되는 이 하나님 다음 위치 그 위치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생애입니다.

네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그렇게 말씀하신 그 말씀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웠느니라. 신약교회가 되기전에 그 일이 이루워 졌습니다.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그 진노하신 언명이 이루워 지나갔다 그 말이요.

우리에게 대한 말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지키지 아니하면 우리에게 오는  것이지 그때 거석한 것은 우리에게 해당된 말이 아니하는 것을 또 우리에게  해석을 해서 우리를 오해하지 않도록 성령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 7일에  관하여는 어디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7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셨으며 또 다시 거기에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저희가 들어오지 못한다 했으니까 남은  자가 있는 것 아닙니까? 들어오지 못한다 했으니까 남아 있는 자가 있지  않습니까이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먼저 받은 그 자들은 첫째 안식에  속한 자들은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해서  그들이 그들에게 주신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오랜 후에 7절에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어느 날을  정하여 이제 이 주일입니다.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셔 가지고  십자가의 대속을 베푸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새 주일 새 안식에  들어가는 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다시 하루룰 정하여 안식일은 패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안식일을 폐했고 새  안식일, 새 주일을 줬다 그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 하는  그들은 몰라합니다. 새로 또 한 날을 주신 그것이 이제 주일이라 그 말이요.

지금 주일로 바꾸어 졌습니다.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의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이 주일을 지키는 신약시대에 다시 구원의  길이 열린 것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하였나니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이 안식 가지고 인간이 구원얻었음녀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오실 필요도 없고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베풀  필요도 없습니다.

또 이 주일을 다시 우리에게 새 구원의 날로 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첫째  안식에 실패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셨고 또 새로 이 주일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9절에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이미 그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이제 안식에  구약시대에서 구원 얻어 들어간 사람들은 다시는 세상 이런 죄로 더불어 싸우는  이런 일이 없습니다. 시련이 있습니다. 이제 진리와 영감으로 영생하는  것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오실 때에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심판할  자로 같이 옵니다.

1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우리에게 지금 이제  새날을 줘 가지고 영원한 그 생명세계에 들어가는 길을 열어 줬으니까 여기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우리에게 첫째 안식에 범한 자를 멸망시키고 다시 새 주일을  우리에게 주셔 가지고 예수님의 공로로 근거를 삼아 가지고 구원을 얻게 해주신  것은 왜 그들을 멸했으며 왜 새 구원을 주었느냐 그들이 순종치 아니한 그것을  본받아 가지고 멸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순종치 아니한 그 자를  멸망시킨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우리에게 알려주고 들려준다 그 말입니다.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그것을 본 뜬다 말이요. 그것을 본 떠서 그와 같은 데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하는  여기는 뭘 가르치냐 하나님의 말씀은 독자적인 전능 전지의 권위를 가진 것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천지를 다 창조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할 때에 이  말씀이 다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하신 분이시오. 이 신구약성경말씀.

이 말씀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하는 그 말씀 아닙니다. 그 말씀은 제2위  하나님을 말하고 하나님께서 이 말씀 이 진리로 만물을 지었습니다. 만물을 지을  때에 지으신 그 주인공이 누구냐 하나님이신데 곧 제 2위 성자 말씀이라고  하시는 이 하나님께서 이 말씀이 말씀으로 지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복음 1장에 있는 그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고 여기  말씀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 진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이  진리는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양날 가진 금보다 예리하여 아주 민활해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인간의 속에 있는 이것을 다  해부하고 그 속에 꽉 빼들어 간다 그 말입니다. 이 진리가 못 들어가는 데가  없어 제가 아무리 은밀히 해도 이 진리는 그 속에 파고 들어가서 다 먼저 알고  있어.

이러기 때문에 이 진리의 낯을 피할 수 없고 이 진리를 가리울 수가 없고 이  진리를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가 없고 이 진리를 빠져서 어디로 갈 수가 없어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에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 인간의 마음 하나하나를  다 감찰해요 이러니까 뜻을 고치지 아니하고 행동만 고치는 것은 제가 저한테  속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습게 생각해요. 그러기에 아주 지능이 뛰어난 사람과 무식한 사람이  만났을 때에 무식한 사람이 무식하면 무식한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안팎이  없이 솔직하게 진실하게 행하는 것은 지능자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솔직하니 저것은 고쳐주면 고치면 되겠고 가르쳐 주면 되겠다 하지만 그 뛰어난  탁월한 지능자 앞에서 무식한 것이 솔직하게 하지 않고 꾀를 써 가지고 이렇게  가리고 저렇게 가리고 덮어 가리워서 이중 삼중으로 할 때에는 이것을 못  쓰겠다. 이것은 못 쓰겠다 속지 아니하고 그것이 자기를 천하게 만들고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능한 자 앞에서 밉상스럽게 보이고 아주 허무하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못난 자를 상관하지 아니하고 그것이 잘났다고 제 꾀를  가지고 이리저리 쓰는 자를 하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감찰하시나니 지으신 것이  지으신 것이 하나님앞에 지음받은 것이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이나 사람이나  만물이나 지으신 것이 하나도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이 하나님앞에 상관하시는 자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이렇게 지금도 당신만 보지만 우리는 가리워서 못 보지요. 우리가  만일 보면은 당장 지금 이 자리에서 지금 막 살인이 날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리워서 피차 못 보게 해서 그렇지 아마 여기서 가리워진 것이 환하게 보인다면  여기서 지금 살인나고 굉장히 피바다가 될 것이요. 하나님이 가리워 놓아서 못  봅니다. 가리워 놨기 때문에 다 속아서 이렇게 있으나 어느 정도 전압되기  까지를 기다리는 것이지 이 다음에는 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과 같이 피차 보이게  됩니다.

이러니까 교만할 자도 없고 억울한 자도 없고 다 그대로 행한 대로 다 보응되고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이라는 이 기회를 우리가 놓치지 말고  그 때에 후회될 것을 오늘 우리가 후회하고 그 때에 없었으면 싶은 것 오늘에  없애고 그 때에 부러워 저런 것 나도 있었으면 싶은 것 오늘에 마련할 수 있고  오늘 우리는 억만의 수치를 주의 피로 다 깨끗이 씻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못났지만 하늘의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피를 흘려  사죄를 사죄의 공로를 주었고 칭의의 공로를 주었고 하나님과 화친의 공로를  주었기 때문에 여기 14절에 보면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대제사장이 있으니 하나님의 제사장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를 조화붙이는 것이  제사장인데 큰 제사장이 있으니 하나님과 나와 사이에 내 죄의 문제도 조화  붙이고 불의의 문제도 조화 붙이고 하나님과 원수된 문제도 조화 붙여서 이  조화를 붙일 큰 제사장이 있으니 예수님을 말합니다.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시는 자가 아니요. 우리  연약한 것을 동정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 세상 마귀속에서 예수님이 지나면서 온갖  곤욕을 다 당했기 때문에 이 마귀와 죄악속에 사는 우리를 넉넉히 이해하시고  동정하시고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끝까지 구원하실려고 애를 쓰지만 그것도  하나하나가 때가 있는데 그 때가 넘어가기까지 강퍅해지면 하나님이 한 번  버려두면 다시 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동시에 잔인합니다.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얼마나 길이 길이 참으시고 참인간이 곤욕스러운 그런  견딜수 없는 것도 참으시고 얼마든지 길이 참으시고 동정하셨지만 하나님이  노하시고 버리시니까 사백 년 동안을 눈도 깜짝하지 아니하시고 그 대대손손  마구 세계에 유리 포박하고 잔인 박해를 당했지만 하나님은 꼼짝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잔인하시면 무한히 잔인합니다. 무섭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도 그렇습니다. 사람도 잘난 사람은 위대한 사람들은 오래 참아서  동정하고 동정하고 이해하고 이해하지만 안됐다 하고 노를 해서 척 돌아서면 잘  풀리지 않습니다. 안 풀립니다. 풀리지 않고 오래갑니다. 못난 사람은 금방  좋았다가 금방 싫었다가 사소한 것으로 하지만 사람이 차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무한하십니다. 이 연약함을 체율하지 아니하시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이 긍휼하심을 받자.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없이 긍휼히 여겨 주시는데 우리가 예수없이 사는  것은 다 멸망 길인데 하나님이 괴로워도 뜻대로 믿음으로 살라하는 것은 이것이  죽은 것을 살리는 것이요. 산 것이 죽지않게 하는 것이요.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아니하는 이것을 얻게 하심인데 베드로전서 1장3절 이 아래 보니  예수님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 것은 우리를 새생명으로 거듭나게 하려고  중생시킬려고 이렇게 해가지고 산소망 죽은 소망 이 세상 사람은 전체 죽은  소망입니다. 산 소망 온전한 소망 썩지 않고 쇄하지 않고 더럽지 않고 낡아지지  않는 이것을 우리에게 얻어 가지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금 긍휼을  베푸시니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현실 현실 주시는 것은 돈  때문에 주는 것 아니요. 권세 때문에 주는 것 아니고 육 때문에 주는 것 아니고  세상살이 때문에 주는 것 아니라 한날 한날 현실을 주시는 것은 영원을  마련하도록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니가 의식주는 당신에게 맡겨놓고 우리의  생사도 당신에게 맡겨 놓고 당신이 먹을 것 준비하러 할 때에는 우리가 준비하고  또 우리가 호신할 때에는 호신하고 당신이 시키면 죽으라면 죽고 살라하면 살고  당신이 시켜서 밥 만드라고 하면 밥 만들지 당신이 시키지 않는 데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우리 독단으로 하지 말자 그 말이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큰 구원을 베풀어 놓으시고 이 구원을  없어지지 않을 영원히 있는 완전에 속한 것, 죽음이 없는 생명에 속한 것, 썩지  아니하는 것, 쇠하지 아니하는 것, 낡아지지 아니하는 것, 더러워지지 아니하는  것, 억천만년가도 변하지 않는 것, 이것을 우리에게 얻도록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공로를 힘입어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앞에 은혜의 보좌 앞에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썩을 것을 썩지 아니할  것으로, 멸망하는 것을 영생하는 것으로 이렇게 자꾸 현실을 통해서 바꾸어  주시는 이 구원 역사를 하시니 이 때를 따라 은혜를 받도록 은혜를 받도록  은혜를 받도록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담대히 나아가자 네가 가난해질까  천해질까 병들까 죽을까 약할까 망할까 가정이 어찌될까 네 소유나 네 몸이나 네  생명이나 네게 속한 가족이나 무엇이나 거게 대해서 어찌될까 그런 염려를  하지말고 하나님은 미쁘시오, 미쁘신 분이시오, 모든 것을 우리에게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니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다 맡겨놓고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이  보좌 앞에서 영원하고 생명에 속한 신령에 속한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영원한 것 이것을 현실 현실에서 바꾸어 가지고 입어가지고  충만하게 가지도록 하는 이 은혜에 담대히 나아가지 아무 염려없이 나아가자  모든 것 염려 다 주께 맡겨놓고 나아가자 이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크신 분인지 그 분이 희생한 것이 얼마나 큰 희생인지 그  분이 이 큰 희생을 하지 않으면 해결안 될 우리의 죄와 불의 하나님과 원수된  이것이 얼마나 컷던가 얼마나 컸기 때문에 그 분이 큰 것을 투자하지 않으면  해결안 됐던가 이것을 해결지워 가지고 우리에게 주신 이 사죄, 칭의, 새생명이  얼마나 큰지 이것을 불여 써먹고 이것을 이용하고 이것을 자본 삼아가지고  오늘의 나그네 세상에서 이렇게 믿음으로 살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을 마련할  것인지 이러기 때문에 이 세상 모든 염려 다 주께 맡겨놓고 담대히 하나님  보좌앞에 나아가라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라 이것이 성신의 권면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는 참 한없는 구원이 우리 앞에 놓여 있고 우리손에 잡혀 있지만 우리가  죄의 미혹으로 죄의 미혹 하나님앞에 삐뚤어진 그것은 우리를 죽이는 것인데  어떻게 아름다운지 여러분들 우리의 주관에 좋거든 자세히 살펴 보십시오.

거기에는 사망이 반드시 속에 알맹이 되어 있습니다. 죄의 미혹 삐뚤어진 것 제  망할 것은 어떻게 좋은지 철이 없는 어린 것이 저 망할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지요. 그 부모 젊은 부로 청년이 제 좋아하는 것, 나이 많은 부모가 볼  때에는 그 망할 것을 좋아하는 그것 안타깝지요, 머리가 허해도 저 망할 것  모르고 좋아서 분주 복잡해 죽는 그 시간까지 땅의 것을 인해서 곡간을 헐고  새로 날뛰는 것 도인이 보면은 참 불쌍하고 가련해서 권면하지만 도리어  무지하다고 미련하고 어리석다고 제 잘난 체하고서 지혜롭다 하지만 그 미련함이  심히 큽니다. 우리가 이제는 우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자연계시로 인간을 통해서 내 양심을 통해서 문득 문득 닥치는  사건으로 알게 해주는 이것을 알게 해주는 이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알게해  주시는 이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이것을 작정하고 내가 하나님앞에 약속해놓고  어긴 것은 어겼으면 다시 고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앞에서 단정짓고 삽시다.

다같이 단정 지웁시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211 주의 노를 풀어드리는 것과 기쁘시게 함/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1985. 12. 1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
210 주의 음성/ 신명기 28장 14절-15절/ 1979. 10. 20. 토새벽 선지자 2015.12.27
209 주의 일/ 고린도전서 15장 50절-58절/ 1981. 1. 18.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208 주의 재림/ 마태복음 24장 37절-39절/ 1982. 3. 7.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207 주의 재림/ 마태복음 24장 32절-51절/ 1982. 3. 7.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
206 주인은 하나님-자기는 원수/ 누가복음 16장 12절/ 1984. 5. 2. 수새벽 선지자 2015.12.27
205 주인을 바꾸라/ 마태복음 10장 16절-20절/ 1988. 11. 12. 토새벽 선지자 2015.12.27
204 주인을 바꿔라/ 요한일서 5장 5절-12절/ 1987. 12. 4. 금새벽 선지자 2015.12.27
203 주인의 보충/ 마태복음 5장14-16절/ 1980. 2. 15. 금새벽 선지자 2015.12.27
202 주일/ 요한복음 2장 13절-22절/ 1987. 6. 7.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201 주일/ 요한복음 20장 19절-23절/ 1984. 10. 21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7
200 주일/ 요한계시록 1장 9절-16절/ 1983. 12. 11.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
199 주일/ 야고보서 1장 1절-4절/ 1979. 8. 28. 화새벽 선지자 2015.12.27
198 주일/ 히브리서 4장 7절-8절/ 1980. 10. 21. 화새벽 선지자 2015.12.27
197 주일/ 요한복음 2장 13절-22절/ 1987. 6. 7.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
196 주일/ 고린도후서 4장 4절/ 1979. 8. 12.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195 주일/ 히브리서 3장 12절-4장 13절/ 1980. 10. 12.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
» 주일/ 히브리서 3장 15절-4장16절/ 1980. 10. 12.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193 주일/ 이사야 58장 13절-14절/ 1979. 12. 16.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192 주일/ 이사야 58장 14절/ 1979. 12. 17. 월새벽 선지자 201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