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원인이 되어야

 

1980. 3. 17. 월새

 

본문: 빌 1 :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곧 예수님, 예수님이 사람되어 오시기 전에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분이 역사세계인 이 세상을 지으셨고 또 이 지구  땅덩어리라 하는 이 땅 덩어리가 그분의 것이고 또 인류를 통치하시기를 홀로  그분이 통치하셨고 지금도 신성과 인성을 우리 때문에 취하셨고 신성으로서  인성을 가진 자로 영원히 계시게 된 것도 우리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오 참사람이십니다. 참 하나님이신 하나님은  영원 전 자존하신 하나님이시오 우리가 있기 전에 하나님이시오 사람되신 인성을  가지신 것은 우리를 사랑함으로 우리를 당신 같은 온전한 자로 깨끗한 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사람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말할 때는 예수님의 신성을 예수님의 신성을 말하는  것인 줄 알아야 압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이사야서에 말씀하시기를 "그는 영존  하신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이 하나님 아버지십니다. 또 예수님의 신성을 성령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영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그 영은 성령을 가르쳐서  말합니다. 그리스도라는 영은 성령을 가르쳐 말하는데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인성을 입기 전 이름을 가르쳐서 그리스도라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라 하면 이는 모두다 피조물 같이 어떤 성현 중에 한 위대한 분으로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잘못 깨달음입니다.

 이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으로서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가지는 것처럼 우리와  모든 관계를 갖기 위해서 인성을 가지고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대신 죽으신  것은 예수님의 인성이 죽으셨고 이 고난에 신성이 참예한 것이지 신성이 죽은 것  아닙니다. 신성이 또 우리의 죄를 혼자 대속하신 것 아닙니다. 인성 대속  하시는데 신성이 같이 함께 동참 했는 고로 한 사람의 대속이 무한한 대속이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신성과 우리와는 직접 접하지 못합니다. 접하면 우리는  소멸되고 맙니다. 예수님의 인성과 우리와의 직접 접할 수 있어 예수님의 인성을  통하여 통하여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밀접하게 가져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빼 놓고는 하나님을 접하여 소멸되지 아니할 자가 하나도  없는 소멸하시는 불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또 이분이 지으신  모든 사람들과 또 이분이 지으신 모든 물건들과 물건이라면 땅도 나무도 모든  금속도 흙도 짐승도 별도 햇빛도 공기도 물도 다 들어갔겠습니다. 이분이 지으신  모든 물질과 또 이분이 이 셋을 움직여서 이렇게 저렇게 움직여진 이것을  가르쳐서 운동이라 일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사람하고 물건하고 만나서 움직인 그것을 일, 사람하고 사람하고 만나서  움직이는 일, 또 많은 사람과 물질과 움직인 그런 것도 다 운동 일, 물질과  물질이 움직이는 것을 가르쳐서 바람, 모두다 이렇게 표시합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로 되어있는 밭고 같은 밭과 같은 이 네 가지고 되어 있는,  이 밭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 네 가지고 되어있는 네 가지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기독 자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자는 물질에 뿌리박아서 물질로 일생을 자랑하는 자 있고  과학자들은 다 이런 자들입니다. 또 일들에게 뿌리박아서 일로 자랑하는 이들은  다 운동가나 사업가나 정치가나 이런 자들입니다.

 또 사람에게 뿌리박아 사람으로만 자라 가는 이는 일생동안 사람만 보고 사는  자입니다. 좋은 사람이든지 나쁜 사람이든지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죽어도 살아도  만족하는 그 애인, 자기가 참 굶어도 먹어도 가난해도 죽어도 자기에게 만족한  남자하나로 그 남자 하나로 만족하고 남자로 사는 자도 있고 아무것도 없이 아내  하나로 만족해서 내가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은 일하는 것도 아내 때문에 그  사람은 희로애락도 아내 때문에 희로애락이 생깁니다.

 경영도 그 사람의 행복감도 아내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일생을 자기의 상관  하나에게 만족해서 그 상관 하나를 자기의 선배 하나를 자기의 배경 된 어떤  사람 하나를, 이번에 뭐 10·26사건인가 거기에서도 하나 사형 받았는데 그런  사람 다 사람하나를 보고서 사람에게 뿌리박아서 살았기 때문에 사형을 당해도  그렇게 죽으라면 죽고 살라하면 살고 하나만 보고 살았는데 사형을 다해도 도와  주지를 못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자연계시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에게  뿌리박아 자라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네 가지 밭과 같은 세상에 한 토막 살고 가는데 어디다가  뿌리박아서 무엇으로 자라 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뿌리박는다 말은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좋아하고 그것만 위하여 마음과 정신과 마음, 정신,  생각, 소원, 노력, 기울이는 것이 마치 뿌리박는 거와 같이 그리되니까,  그러니까 그걸로 밖에 더 자라겠소? 인간만 자꾸 생각하니까 그 인간으로만  자라지요 돈만 생각하니까 돈으로만 자라지요 인간만 생각하니까 인간과의  관계만 점점 커지고 높아지고 견고해집니다. 돈만 생각하고 사니까 돈만 커지고  자꾸 돈만 관계가 견고해집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만 좋아하고 하나님만 소원되고 하나님만  자꾸 사모하고 노력하게 되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만 밀접해지고 견고해집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데 뿌리박고 사느냐 하는 것을 이 네 가지로  판단해 보면 압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마는 제가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딱  진찰하면 요것은 지금 뿌리가 물질에 박혀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박혀 있다  요것은 이런 저런 모든 움직이는 운동이라는 이 일에 뿌리 박혀있다 요것은  아무리 실수가 많고 못났지마는 하나님에게 뿌리박고 있다 확실히 판정됩니다.

거기에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인간을 평가합니다. 평가하는 것이 아주 다릅니다.

인물이 번들번들하고 뭐 돈 많고 그런 게 아니고 요것이 어데 뿌리박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도를 하는 것도 어떤 복음운동이나 어떤 목회나 어떤 성직을 가지고  일하는 것도 전도하는 것은 사람 염려하고 사람 구출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루종일 진액을 다 기울여지니까 인간에게 뿌리박는 줄 알아도 두 가지입니다.

인간에게 뿌리박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에게 뿌리박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루종일 인간 상대의 전도를 하나 하나님을 좋아하고 하나님에게 소망 두고  하나님에게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 있어서 하나님을 상대하니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구출할라 하기 때문에 하나님하고 만나서 하나님하고 둘이 하나되어  결국은 활동은 인간구출 밖에는 하나님 위하는 길이 없기 때문에 인간 구출로  활동하는 사람 있고 하나님 떼 놓고 인간을 좋아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인간을 제  사람 만들고 인간을 많이 제것 만들기 위해서 인간 위해서 일하는 사람 있고  둘입니다. 한 자리에서 같이 일하고 있지마는 둘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에게 뿌리박아 하는 사람과 인간에게 뿌리박아  하는 사람이 다릅니다.

 왜정말년에 큰 교회를 목회 하는 사람 많이 있었는데 신사참배가 나서 신사참배  안 할라는 사람은 다 감옥에 가두고 또 앞으로 죽인다고 하고 이라는데 난점이  있습니다. 이제 신사참배를 안 할려고 하면 감옥에 가게 되니 그 교회를 손을 떼  버리는 그 교회를 이 악령의 역사인 일본나라가 어떻게 해칠는지 염려가 되고 또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을 위하는 생활을 할라 하면은 신사참배 안 해야 되고 이  두 길을 걸어야 되는데 거기서 당황하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있을 때에 이렇게  하나님에게 뿌리박아서 하나님 때문에 목회 했고 하나님 때문에 복음운동으로 산  사람들은 염려할 것도 주저할 것도 마음이 시달리는 것도 없었습니다.

 주님 때문에 주님 사모하고 주님 위해서 그 일 했기 때문에 아! 주님 사모하고  신사 참배하면 주님하고 떨어지는 것은 주님 배반하는 것인데 뭐 주저할 것이나  계산할 것이나 따질거나 뭐 있는 게 있는가 주님과 함께 하는 신사참배 아니하는  것으로서 감옥에도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고난도 당하고 배척도  당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 떨어질 수는 없는데 고난이 두려운 사람들은  망명해서 딴 나라도 도망치기도 하고 산중으로 피하기도 했고 감옥에도 들어갔고  어떤 사람은 감옥에 들어가거나 말거나 생각지도 아니했고 신사참배 반대만 하고  그래도 그대로 견뎌 배겨서 신사참배도 안하고 목회도 하고 다닌 그런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매일 그 소리만 외치고 돌아다니는  그런 것으로서 지낸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 은혜 주셔서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됐지마는 제일 위대한 자는  시가에 다니면서 신사참배를 반대운동을 하면서 지나간 자가 제일 위대하고 그  다음에 신사참배를 반대하면서 목회를 하고 지나간 사람이 둘째로 위대하고  셋째는 신사참배를 반대하면서 감옥에 갇혀서 고난받은 사람이 셋째로 위대하고  넷째는 그 은신 망명을 하든지 은신하든지 숨어서 그래 지낸 사람들이 그 다음에  그래도 괜찮고 신사참배를 하고 예수 믿은 사람들은 다 그 면으로서는  실패자들입니다.

 이랬는데 그때에 인간을 탐해서 인간을 욕심내서 마치 물질 사업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을 제 교인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서 많은 대우를 받아 많은  존경이 되는 사람을 탐하여 사람을 위하여 목회한 자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목회한 자가 완전히 갈라졌습니다.

 오늘도 권찰 일로 열심히 해도 주님에게 뿌리박고 주님으로 자라 가는 것으로서  주님 때문에 주님으로 인해서 하는 사람도 있고 주님은 놔두고 저 위해서 그  사람 위해서 하는 사람도 있으니 하나는 죽은 것이요 하나는 산 것입니다.

 목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시집을 가서 시집 살아도 그렇습니다. 시집을 살아도  남편 좋아서 아내가 좋아서 결혼 생활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합하여 한 교회를 이루게 하셨으니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이 사랑하라 했기 때문에 주님 때문에 남편을, 아내를 사랑하고 주님 때문에  남편과 아내에게 대해서 참고 주님 때문에 남편과 아내를 위하고, 주님 때문에  남편과 아내를 위해서 봉사하고 하는 사람도 주님 때문에 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 때문에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 때문에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만  가졌지 자기의 생애는 그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내나 사망에 속한 것이고 주님  때문에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보기는 가정생활을 알뜰히 하지마는 그는  순전히 주님 때문에 하기 때문에 생명에 속한 것입니다. 마지막에 마치 모래하고  나무하고 금하고 은하고 쇠하고 모든 한데 뭐 섞여있는데 지남철 가지고서  이렇게 잡아 돌리니까 흔드니까 은도 금도 돌도 나무도 모래도 안 달려오고 쇠만  따라 올라옵니다.

 이거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이렇게 살든지 저렇게 살든지 살았는데 마지막에  하나님의 심판에서 잘 흔들어 돌리면 주만 위한 것 그것만 따라 올라오고  나머지기는 쏵 처지니 사람들 보기에는 혁명가든지 부흥가든지 목회자든지 뭐  전도인이든지 어떤 권찰이든지 쏵 떨어지는 곳은 유황불구렁텅이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만 붙이면 다 되는 것 아닙니다.

 이러기에 왜 너 그렇게 재미없는 그런 생활을 일생동안을 하느냐? 나는  그렇지마는 주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내가 이 자리를 면하지를 못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이것으로서 죽을 각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부부 결합된  그것은 죽음도 못 끊습니다. 죽음도 떼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왜? 주님 때문이기  때문에 그 인간 때문에 그러면 인간 뭐 그까짓 거야 하루 열도 버려 버리고 새로  갈아 가지지마는 주님 때문에 안 된다 그거요.

 어리석은 남자들은 주님 때문에 아내가 저를 사랑하고 저의 아내가 된 그것은  마음에 만족치를 아니하고 나 때문에 그렇지 주님 때문에 그러는 것은 싫다  그것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주님 때문이라면 그는 아무것도 그것을 끊을 수도  없고 갈라 버릴 수도 없고 변형시킬 수 없지마는 주님 떼 놓고 인간 때문이라면  그것은 그저 그 부부관계를 끊어버리고 이혼할 만한 그런 일들과 만나보면 그런  단점들이 꽉 차는 것입니다.

 옛날은 이 전국에서 나타내 놓은 이 제도라는 양반이라 또 그것은 사회활동에  이제 이혼이나 재혼하는 이것은 못 쓸 인간이라 이래서 그 법에 어리석은 그  의법에 걸려 가지고서 매여 가지고서 인간이 살았지마는 그 법은 아무것도 아닌  거짓뿌리입니다. 그것을 탈피한 그런 사람들로 주를 인하여 되지 않은 그  가정관계는 뭐 몇 십 번이든지 몇 백 번이든지 몇 천, 일년에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가정 깨어지는 것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를 인하여서 된 것은 요동치 않습니다. 주를 인하여 된 것은 요동치  않습니다. 어리석은 남자들은 그걸 싫어하고 어리석은 여자들은 그걸  싫어하지마는 나 때문에가 아니고 하나님 때문에 된 것은 변동이 없어 그 원인이  원인은 하나님 때문이기 때문에 원인이 하나님 때문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니 원인이 변하지 않으니 그 결과가 변하지 안 합니다.

 인간살이가 어디 뿌리를 박았느냐? 네가 네 일생 생활 가운데에 네 마음이나  뜻이나 소원이나 생각이나 성질이나 시간이나 힘이나 네 정성이나 네 욕망이나  네 정이나 그것이 어디에 제일 중점이 되어졌느냐 어데로 기울여졌느냐? 몇  통으로 기울여졌느냐 그렇지 안 하면 두 군데로 갈라졌느냐? 그렇지 않으면 네  군데로 갈라졌느냐 그렇게 않으면 세 군데로 갈라졌느냐? 어데로 갈라졌느냐  그것으로서 그 사람의 일생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일생을 자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첫째로 알아야 될 것을 어제 오후에 말씀을 했습니다. 어느 것으로  자르고 있는지 스스로 자기를 살펴서 확정해야 된다 했습니다.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그 말은 하나님으로 인하고 하나님을 따르고 "내 피와 살을 먹는 자는  나로 인하여 살리라"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님으로 인함인지 내 목적이 주께  있는지 내가 어린 아이를 하나 길러도 애정으로만 기르는지 주님을 생각하면서  기르는지 '아, 이거 주님이 주시는 선물이기 때문에 잘 길러야 되겠다 주님의  형상대로의 온전한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사람되게 주님이  하시기를 원하시니 그렇게 길러야 되겠다 이것이 주만 높이는 자가 되도록  길러야 되겠다 이게 병들면 복음의 영광 가리어지겠다' 주를 생각하고 복음  위해서 기르면 그 이상 자식을 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상 자식을 기를  수가 없는 것이요.

 이래서 하나님을 위함인지 이것이 자라서 부자가 되어야 될 터인데 배고프지  안하고 살려면 학교 공부를 시켜야 될 터인데 저는 모르지마는 하나님 앞에서는  네가 하나님에게 뿌리를 박아 하나님으로 자라 가느냐 인간에게 뿌리박아  인간으로 자라 가느냐 네가 물질에게 뿌리박아 물질로 자라 가느냐 과학자가  하나님에게 멀고 믿는 사람되는 게 어렵다 하는 것이 이것 때문입니다.

 네가 정치운동 사회운동 민족운동 국가운동 무슨 이런 운동 저런 운동 이런 일  저런 일 모든 사건에서, 사건에서 꼬리를 물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사건에서  전부가 다 기울여지고 그 일 끝나기 전에 다른 일이 또 시작되고 시작돼서 네가  사건 사건에 뿌리박은 사건으로만 자라 가는 것이 아니냐? 뭐이냐 대체 네가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믿음이란 말은 하나님으로 동하고 정하는지 하나님으로  인함인지 하나님에게 속했는지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지 네가 시험해 봐라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자기를 시험해서 믿음에 있는지 없는지 자기를 시험해서 확증하라' 확증하라  고린도전서 13: 5에 확증하라. 네가 똑똑히 정하라. '아! 나는 십 분지 열로  가른다면 십 분지 몇은 물질에 십 분지 몇은 사건에 십 분지 몇은 인간에 십  분지 몇은 하나님에게, 하나님에게 대해서는 이름뿐이지 실은 하나도 없다 조금  들었다 나는 십 분지 십이 다 하나님이다' 이렇게 자기를 확실히 평가해서 확증  짓고 살라는 것입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세상은 자나가는 것이요 지나가는 것이요 뭣을, 뭣을  인하여서 하나님을 뒤로 돌리고 좋아할 것이 뭐이 있겠소? 이래서 말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 보면 결혼한 사람은 그 마음을 사람과 하나님에게 나누기 쉽다  하는걸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꼬?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되 혼자 사는 사람은 그것은 하나님만을 위하기가 좀 쉽다  이랬소.

 그것도 또 혼자 사는 사람도 보니까 아니오 차라리 이 인간 제도에 맞는 그것도  아닌 인간제도에 삐뚤어진 가족 혈육의 친척 그 사돈에 팔촌 되는 그거라도 또  남의 아내 남의 남자 공연히 사모해 가지고서 시간 빼앗기는 그까짓 것보다는  결혼해 가지고 사는 게 낫지요. 그 하나로 다 여러 가지를 말한 것입니다.

 '마음이 나누어지기 쉬우니라' 결혼하고 나누어지지 않는 그 사람이 신앙의  사람이오 그 사람의 부부가 튼튼합니다. 주님을 중심해서 하니까 그 부부는  이혼이 없어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도 항상 부부라 나눠지지를 안 해. 주를  위해서 한 것이 없어집니까? 변동됩니까? 변동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나는 이 네 가지 속에 사는데 사람 보기에는 네 가지 속에  살지마는 어느 한군데 뿌리박아 그것으로서만 자라가고 있는지? 두 군데만  뿌리박아 둘로만 자라가고 있는지? 자기가 똑똑히 판단을 해서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일생동안 제가 민첩한 사람은 아주 지혜 있고 민첩한 사람은 '아,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골고루 그래 하지마는 실은 제가 어리석습니다. 잘난 자 아니오  어리석은 자요 다하라 했는데 다해야 영생이 된다 했는데 말도 하나님에게 다,  힘도 다, 성품도 다, 뜻도 다, 소원도 다, 목숨도 다, 다하면 나는 어디 있소?  이것이 이렇게 하나님에게 다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도 고대로 인간에게 하나님의 소원대로 인간에게 행하는 거 그것을 가르쳐서  뭐라 했지요? 아는 사람? 아무나 대답해 봐요 그것이 뭡니까 그것이 뭐이요  그것이 뭐이지요? 아무나 대답해 봐 아무라도 대답을 해 봐요 그게 뭐인지 그게  뭐이지요? 허, 이러니까 여러분들이 살지 않기 때문에 꼭 짐승 한 가지고 목석  한 가지라 목석은 능동이 없어 작용이 없어 우리는 하나님 같은 능동을 가진  그런 인격 존잽니다.

 그러기에 자유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만 생각하고 주님만 사모하고 주님만  높이고 주님만 위해서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소원대로 주님의 법칙대로 그대로  인간에게 행하는 고것을 가르쳐서 뭐이라 했지요? 고것이 뭐이요 여반에 대답해  봐요 그게 뭐이지요? 예 뭐이요? 크게 말해봐 그것이 무엇이요? 예, 나인숙씨 왜  말하다가 말아. 그게 뭐이요? 그게 네 사랑입니다. 그게 참사랑이요 참사랑 그  사랑으로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이요 그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참사랑이요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해 부모를 사랑해 자녀를 사랑하는 그것이  참사랑입니다. 그것으로 원수를 사랑하는 게 참사랑입니다. 사랑에 대해서  며칠이나 계속해서 공부를 해도 또 아무도 몰라 그만 그거는 그것 대로라.

 나는 참 이상합니다. 무엇 때문에 지금 내가 여기서 설교하고 있는지 난 몰라요  암만 봐야 무엇 때문에 여기서 하고있는지 한가지 노력하는 반사들이  만들어지니까 반사들의 밥값을 대는 사람이 생겨지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에 나온 사람들은 다 죽어 버렸어 둘 외에는 다 죽어 버렸어  그래도 그것을 그전에 죽여버리면 자손이 안 나서 가나안 들어갈 자격이 없어  나와 가지고서 광야에서 자녀를 낳으니까 묵은 거는 다 필요 없어서 죽여 버리고  거기에서 난 자녀들이 그것이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이거 모양으로 이렇게 하는 가운데서 이제 젖닢과 같은 주일학교 반사들이  생겨지고 젖닢 속에 새움과 같은 주일학교 학생들로서 이제 참 믿는 사람들이  생겨지는 이 운동 이 줄기가 생겨진다 하는 그 소망 외에는 없습니다. 실은  그렇소 애굽에서 나온 그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렸으면 가나안에 들어갈 사람,  자손들이 나겠습니까? 그것들도 죽이면 그것들을 누가 기릅니까? 이러니까 그  모양으로 껍데기로 그것 위해서 있는 껍데기 있고 알맹이 있으니 왜 껍데기만 될  것입니까? 껍데기 알맹이 다 되어버리지.

 사랑 설교를 그렇츰 했어도 대구집회 가서도 그렇츰 했고 여기에서도 그렇츰  했는데도 도무지 거기에는 거리가 멀어. 그러니까 사랑설교를 하면 거리가  멀어서 전부가 악독뿐이기 때문에 거리가 멀어서 암만 해야 설교가 안 나가  받아야지 그러니까 사람이 땀을 뺀다 그거요 이 설교를 하면, 며칠 계속해서  하니까 조금 들려지는 것 같아서 조금 이제 전해져 가는 것 같았는데 이제 며칠  지나고 난 다음에 물으니까 깜깜해.

 하나님의 사랑을 목표가 뭐이며 방편이 뭐인가 그걸 똑똑히 말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이것을 기억합시다. 우리는 이 넷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좋든지 나쁘든지 다 이 네 가지 속에 살고 있어. 네 가지를 다 가졌어 껍데기는  네 가지를 다 가졌지마는 속으로는 어데 속해 사느냐 어데 안 속해 사느냐  무엇으로 어데 뿌리를 박느냐 네 마음과 뜻과 성품과 힘을 다 어디다 기울였느냐  무엇으로 자라가고 있느냐 이것을 스스로 자기가 자기를 조사해야 될 것입니다.

 점점 주님 사모가 더해지고, 점점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임이 더해지는 그것이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자라 그 말입니다. 예, 피와 살을 먹고 마시는 자 주님  나 위해서 생명 버려 구속한 것은 생각하고 생각하니까 이번에도 학습세례  문답할 때에 내 보기에 거석한 사람들은 주님이 뭘로 구속했지? 생명으로  구속했다는 걸 아는 자에게는 그라면 뭐까지 해서 주를 섬겨야 되지? 있는 것  다하고 생명까지 다해서 주님 섬겨야지 그게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소.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는 것도 중생 되지 않는 사람은 그게 어렵습니다.

안됩니다. 부르는데 어색해지요. 부르는데 보면 저는 하나님 아버지라 하지요  그래도 척 보면은 그 속에 어색해서, 어색해서 믿어지지 안하고 전부가 의심  없이 다해서 하나님 아버지지요 이렇게 안하고 하나님 아버지라고 대답을 해도  저 속에는 부인을 하고 무섭다 그러니까 그런다 하는 것이 속에 보여진다 그  말이요. 그것으로서 이 합격은 다 시키지마는 어떤 자라는 것 속으로 채점은  다릅니다.

 오늘 아침에는 제가 뭘로 살고 있는지 아무리 제가 잘난 척 제대로 잘난 척  해도 활동 뭐, 뭐 무슨 자존심 뭘 가지고 있다 해도 다 썩은 것들이오. 주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뼈도 없고 속도 없고 물렁물렁해서 똑 쇳물 녹이는 것  쇳물, 쇳물 녹이는 것 단쇠 같아서 쇳물 녹이는 것이,  어릴 때 솥 때문에 보면은 무쇠를 녹여 가지고서 그 덩어리 위에 요래 요래  하면은 빨간 것이 동글동글 하기 때문에 어떻게 그것 보기에는 어떻게 빨갛게  맛있어 보이는지 그놈 둘러 마셨으면 싶습디다. 예, 아주 몰캉몰캉하게  이렇지마는 먹으면 타. 그걸 먹으면 타 버려. 그게 모든 것이 대이면 타 버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물씬 물씬 아무것도 아니고 아주 소원 다 들어 줄 것  같고 속에 뼈도 없고 하자는 것 다 할 것 같지마는 불의나 죄가 되는 것은  어림도 없습니다. 근방에 오지 못하는 것이요 그것이 성도가 무른데 강한 것,  무른데 강한 것, 무르면서 강한 것 그러기 때문에 그것을 가르쳐서 단되 같다  이랬소. 단쇠 같다.

 우리는 뼈가 없는 사람 같지마는 뼈가 있는 사람입니다. 오리를 가자 거든 십  리를 가거라 오른뺨 때리면 왼뺨 돌려줘라 이것이 저항하지 말란 말 아니요  그것이 악의 세력으로 왔기 때문에 악의 세력에게 피동 되지 말아라 악령의  역사로 왔기 때문에 내가 그로 인해서 악령의 종이 되지 말아라 영감을 네가  버리지 말아라 영감에게 삐뚤어지지 않기 위해서 오 리 가자 하니까 십 리 가면  제가 원치 않는데 제가 갔다 그 말이오. 오 리 가자는 데 십 리를 같이 가니까  '아, 그만 두시이소 그만 두시이소' 그 다음에는 '아이구, 그만 그만 하이소'  '됐습니다. 됐습니다.' 이렇게 굴복을 시키고 말아라 그 말입니다.

 그게 절대 저항입니다. 그것을 무저항의 주의로서 해석한 주석들이 많이 있소  그 예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말이요 무저항주의가  아닙니다. 절대성 있는 저항주의요 죽어도 꺾어지지 않는 저항주의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생명은 줘도 생명은 빼앗겨도 주와의 관계는 주지 않는 이것이  기독자들입니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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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231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 마태복음 18장 5절-10절/ 1985. 11. 2. 토새벽 선지자 2015.12.27
230 주님이 기뻐하신 것/ 마태복음 18장 5절-10절/ 1985. 11. 5. 수저녁 선지자 2015.12.27
» 주님이 원인이 되어야/ 빌립보서 1장 20절/ 1980. 3. 17. 월새벽 선지자 2015.12.27
228 주님이 주신 소망과 방편/ 누가복음 5장 6절-11절/ 1986. 9. 6. 토새벽 선지자 2015.12.27
227 주님이 주신 소망과 방편/ 누가복음 5장 4절-11절/ 1986. 9. 2. 화새벽 선지자 2015.12.27
226 주력할 것/ 출애굽기 20장 1절-3절/ 1984. 6. 26. 화새벽 선지자 2015.12.27
225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믿음뿐이다 / 고린도후서 5장 8절-10절/ 1987. 1. 27. 화새벽 선지자 2015.12.27
224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고린도후서 5장 8절-9절/ 1983. 9. 9.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7
223 주를 기쁘시게 한 것이 성공/ 히브리서 11장 5절-6절/ 1987. 2. 1.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222 주를 따르는 길/ 누가복음 9장 57절-62절/ 1974. 3. 10. 제10과 선지자 2015.12.27
221 주를 위해서 법도대로 한 것은 책임짐/ 고린도후서 5장 14절-15절/ 1986. 3. 7.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7
220 주아위사 아주위사/ 사도행전 21장 12절-14절/ 1989. 7. 16.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7
219 주안에서 기쁨과 평강/ 빌립보서 4장 4절-7절/ 1987. 12. 13. 주일오전 선지자 2015.12.27
218 주야로 묵상/ 시편 1장 2절-3절/ 1984. 8. 13. 월새벽 선지자 2015.12.27
217 주와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함/ 사도행전 20장 29절-32절/ 1988. 7. 24.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7
216 주와 및 은혜의 말씀에 부탁함/ 사도행전 20장 28절/ 1988. 2. 28.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7
215 주와 및 은혜의 말씀의 안보/ 사도행전 20장28절-32절/ 1988. 3. 4. 지권찰회 선지자 2015.12.27
214 주의 교양과 훈계/ 에베소서 6장 1절-4절/ 1987. 3. 13. 금새벽 선지자 2015.12.27
213 주의 날 받는 2가지 구원 근원/ 요한계시록 1장 10절-16절/ 1987. 6. 28. 주일새벽 선지자 2015.12.27
212 주의 날 받는 권능/ 요한계시록 1장 9절-20절/ 1987. 6. 8. 월새벽 선지자 2015.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