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라

 

1984. 2. 12. 주일오후

 

본문: 야고보서 1장 12절∼18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선지자선교회  오전에 증거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이 법적으로 우리의 구주가 된 것은 이미 되어  있고, 실상으로 우리 행동에 우리 생활에 우리 구주가 되는 것은 이미 얻은  기본구원을 우리가 버리지 안하고 그 기본구원을 힘입어서 행위 구원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가 행동 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능자로 같이 해 주시고  전지자로 같이 해 주시고 대주재 주권자로 같이 해 주실수 있는 이런 관계는  우리가 현실 현실에서 그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현실에서 하나님으로 자기의 지능과 전부를 삼는 그 한 편이 있고 또 이를  배반하고 악령과 세상을 자기와 관련된 것으로 삼는 그런 양면을 가지고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로 자기의 전부를  삼는 그 일도 현실에서 삼고 안 삼는 것이 결정되고 또 악령과 세상의 것을  자기의 전부로 삼는 것도 결정되고 안 되는 것이 다 현실에서 판단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하나님 편에 속할라고 하면 악령과 세상 편에 속하지 안해야 되고 또  세상에 속할라하면 하나님 편에 속하지 안해야 되고 양면을 다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비유컨대 열차가 서울로 가는 것, 부산으로 가는 것 둘이 있다고 하면  한 몸이 양편을 다 갈 수는 없고 갈라고 하면은 그 몸을 쪼개야 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편에 속하든지 악령과 세상 편에 속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해야 되지 둘 다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현실에 우리가  당했을 때에 우리가 이리 해야 저리 해야 되느냐 하는 그 지식으로 이 지식을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 지식을 내가 수락해서 내 지식으로 삼아 현실을  사느냐 하나님의 지식에 반대가 되는 악령과 이 세상의 지식을 자기가 자기  지식으로 수락해서 현실을 통과하느냐 하는 것 둘 중에 누구든지 하나가  이루어지지 둘 다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행동도 그러합니다. 현실에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대로 그렇게 행하는 행동도 있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면서 하라고 하는 그 행동 반대인 악령과 세상이 가르쳐 주는 그대로의  행동하는 행동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실에서 지식도 둘이요 행동도 둘입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지식과 행동이 있고 또 하나님의 지식에 반대되는 악령과 세상에 속한 행동도  있고 둘이 있습니다.

 그러면, 세상에는 하나님에게 속한 지식과 행동과 또 세상에 지식과 행동이  둘이 같은 때도 있습니다. 같은 때 그것은 비유컨대 낮과 같은 때입니다. 밤이  아니고 낮과 같은 때입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 말씀도 순종되고 세상에게도  순종되고 둘 다 같이 순종이 되니까 아무런 시비 있을 것이 없고 신강될 것이  없습니다. 그럴 때에는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사람이나 이 세상 모든 지식대로  하는 사람이나 아무런 그거 시비가 없고 둘다 같은 것이 됩니다. 그라다가 이제  차차 차차 하나님의 지식과 세상 지식이 달라 지는 그것이 우리에게 오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행동하는 그 행동과 세상이 요구하는 행동과 달라지는  그 행동이 오는데 조금 달라지는 행동은 초저녁이라고 초저녁이라고 할 수 있고,  점점 많이 달라지는 것은 밤이 짙어간다고 할 수가 있고, 밤중은 아주 정반대로  달라지는 그런 일이 올 때에 그것을 밤중이라 그렇게 비유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오전에 공부한 대로 기름 준비를 해야 밤중에 등불을 켤 수 있는, 곧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에게 배워서 하나님의 지식을 하나씩 둘씩 받아 가지고 자라가는  그 실력, 또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함으로 하나님에게 능력을 받아 가지고  하나씩 둘씩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자라가는 그 두 가지를 가리켜서 지능으로  자라간다. 지능의 실력이라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하나님에게  배우고 또 하나님의 하라 하시는 대로 행동함으로 하나님이 우리 하는 일에 같이  해 주셔서 그 능력을 힘입어서 썩지 안하고 쇠하지 안하고 없어지지 아니할 그  영생이 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다 있습니다. 그런 행동을 하고 싶은  마음도 다 있습니다. 있는데 왜 우리가 못하는고 하는 그 이유를 우리가 찾아  가지고서 밝히 알기만 알면 못할 이유가 없고 안 할 이유가 없고 다 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알 지 못하는 데에서 마귀의 꼬임에 빠져 가지고 우리가  실패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기를 생각도 둘이요 행동도 둘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생각은 성령의 생각도 있고. 육체의 생각도 있고, 성령의 행동도  있고 육체의 행동도 있다 이랬습니다. 성령의 행동은 성령님이 가르치시고  시커시는 대로 하는 것이 성령이 주시는 지능이요, 또 육체의 생각이나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반대 자기 욕심, 자기 생각, 자기 뜻, 자기 지식.

자기 비판 평가 자기 경영 하나님에게 반대되는 자기나 어떤 사람이나 세상이나  개인이나 단체나 나라나 시대나 뭐 크고 작다고 할 것 없이 그 어떤 것 대로  하든지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으로 하지 않는 그런 것은 다 그것이 하나 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현실은 어쨌든지 행동으로 통과합니다. 현실은 이렇게 행동해서  그 현실을 지내 보내든지 저렇게 행동해서 그 현실을 지내 보내든지 현실은 뭐  그 사건이 당했을 때에 자기는 사건을 행하지 안하고 누워서 잠을 자서 현실을  통과하든지 삐뚤어지게 행동을 해서 통과를 하든지 바로 행동해서 통과하든지  어쨌든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말 하기를 현실을 만내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 지식대로 자기가 행동을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성령의  생각대로 하는 행동이라 그렇게 말했는데 성령의 생각대로 하는 행동은 다  생명과 평강이 된다 이랬습니다. 다 사는것과 평강이 된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고, 또 그와 정반대로 피조물의 하나님의 반대인 피조물 뭐  개인이나 나라나 사회나 국가나 전 인류라 할지라도 하나님에게 반대되는 그  생각과 행동은 다 사망이라, 전체가 망하는 것과 죽는 것뿐이라 그렇게 성경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는 사는 것과 평강이 됐고 하나는 죽는 것과 망하는 것이  되어지니까 누가 죽는 일을 좋아하며 누가 망하는 일을 좋아할 리가 있습니까?  몰라서 마귀가 꾀우니까 죽는 것은 사는 것이라 하고 또 사는 것은 죽는 것이라  하고 평안한 것은 고통된다 하고 고통되는 것은 평안하다 하고 이 악령이 저희  사람들을 붙들고 말하고, 우리 속에도 악령의 미혹을 받은 이 부패성, 아주  옛사람의 그 쓰지 못할 자기중심의 생각 이런 것들이 다 한덩어리가 되어  가지고서 하나님의 도에 순종치 못하게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현실에서 기름을 준비할라 할 때에 기름 준비를 하지 말라고 꾀우다가 안 되면  강제로 또 박해를 가합니다. 이러니까 임시 강제와 박해를 견디지 못해 가지고  기름 준비를 집어 던져 버리고 이 세상 이 말하는 대로 하면은 거가는 박해도  없고 욕도 없고 핍박도 없고 어려움도 없으니까 그만 그대로 사람들이 하기 쉬운  대로 해 가지고서 망합니다. 하기 쉬운 대로.

 이 말씀을 못 알아 들으면 소용 없습니다. 말씀 안 듣고 이 서부 교회 암만  와야 소용없어. 말씀을 알아 들어 깨달으면 저가 아무리 뭐 굶어 죽어도 안  갑니다. 이 진리를 깨달으면 안 가요. 진리 깨닫지 못해서 가는 것이지. 어데  돈벌이 좋다고 이사를 가고 뭐 또 어디로 가고 하는 그런 것이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해 그렇지. 또 거기에도 진리를 증거하는 사람들이 있고 증거하는 교회가  있으니까 참 그런 교회가 있으면 뭐 어디든지 가도 좋지요. 그러나 잘못  가르치는 데도 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거기에 대해서 아마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단편적으로 듣고 기름  준비 해라 하는 이 말씀을 듣고 기름 준비를 할라고 오늘부텀이라도 시작해서 이  시간 붙여 놔도 하나님께서 이 현실은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할 때에  하나님의 지식대로 할까 세상이 가르치는 대로 할까 그것을 좌우로 판정을  지워서 걸어 갈라고 하면 당장에 애로가 있습나다. 애로가 있으면 그만, 오늘  설교 들어 봤자, 기름 준비 할려고 시작하다가 다 그만 버리고 내나 세상에  멸망받는 그 길 걸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오후에 이 말씀을 다시 첨부해서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날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와 같이 행하는  기름 준비하는 이 일을 할라고 하면 다 어려움을 닥칩니다. 어려움을 닥치나 그  어려움을 닥쳐도 그 어려움에게 막혀지지 아니하고 어려움에게 밀려지지를  안하고 그 어려움에게 굴복을 하지 안하고 참는 자는 복이 있다 이랬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시험 당할 때에 계속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이것에 옳다 인정 하심을 받은 후에' 그 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제 너는  됐다. '옳다 인정 하심을 받은 후에' 네가 이 현실은 네가 바로 알았고 바로  행했다. '옳다 인정 하심을 받은 후에'  그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그와 같이 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 현실에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그대로 받아 들어  가지고서 그대로 행하는 요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마는 현실을 만났을 때에 주님이 하라고 가르쳐 요렇다 하면서  가르쳐 주시는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을 듣지 아니하고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님을 미워하는 자요 주님을 배반하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을 만날 때에 어려움이 있어도 그어려움을 인해서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  지식을 배반치 말고 주님이 하라는 그 행동을 버리지 말고 그대로 계속해 하면  그말입니다. 계속해 하면, 하나님이 인제 됐다.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인제 됐다 너는 됐다. 너는 지금 사업을 하는데 이제 됐다. 사업을  할라 하다가 다 망해 버리고 망해 버리고 하는 것이 뭣 때문에냐? 그 모든 것이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는데 하다가 삐뚤어져서 망하고 삐뚤어져 망하고 그래 다  망하는 것입니다.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제 그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어디서 결정되는고  하니 그것도 현실에서 결정됩니다. 현실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결정되고  주님을 미워하는 것도 결정되고 현실에서 주님을 영접 하는 것도 결정되고  주님을 배반하는 것도 결정이 됩니다. 그 결정은 뭐이냐? 주님이 가르치는 그  지식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그 지식으로 하라 하는 대로 순종해서 행하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영접하는 것이요 주님의 것을 받아 들이는 것이요. 그 지식을  부인하고 행동을 버리면 자기는 주님을 배반하는 사람이요 주님을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님을 미워하고 사랑하고 영접하고 버리는 것이 그  현실 자기가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대로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이 행동하라는 대로  행동을 하고. 요 두 가지, 주님이 주시는 지식을 만고 행동하라고 능력 주시는  그 능력을 받아서 행동하고. 요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영접하는 것이요  주님의 모든 것을 자기가 받을 수 있는 것이오. 그 현실에, 현실에는 주님  시키는 대로 하지 안하고 가르치는 대로 자기가 수락하지 안하고 또 가르친  그대로 행동하지 안하고, 그라면서 다를 때는 뭐 주님을 위하는 듯이 하고 또  주님을 위해서 제가 무슨 큰 일을 한다고 떠들어 쌓고 뭐 연보도 하고 뭐 아무리  한다고 해도 그거 가지고 주님을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인데 다만 당신을 인정 하느냐 안  하느냐? 믿느냐 안 믿느냐? 당신을 영접하느냐 안 하느냐? 사랑을 하느냐 안  하느냐? 그것을 이제 표현해서 확실히 결정 지우기 위해서 우리에게 현실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참 오묘한 현실입니다. 현실보다 우리에게는  귀한 것이 없습니다. 이 온 우주가 넓지마는 내게는 내 현실 그것이 제일 내게는  귀중 합니다. 내 현실 밖에 억억만 금이 있어도 내게는 상관없어. 내 현실  그것이 제일 보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을 이 우주에서는 내게 제일 보배가  현실이라.

 그러면 이 보배로운 현실을 어디다가 사용할 건가? 세상에 어떤 사람은 돈이나  권세나 지위나 자기 행락이나 자기 취미나 자기 욕심이나 그런데에 다 사용을  하지마는서도 그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처녀입니다. 요 현실은 다만 하나님에게  배워서 하나님의 지식으로 실력을 만들고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을 받아 실력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지능으로 실력을 만들어서 길러서 어떤 밤중이라도  어떤 박해, 어떤 환난, 어떻게 진리를 억압하고 삐뚤어지게 한다 해도  삐뚤어지지 안하고 그대로 꽉 통과해서 세상을 발아래 발끈 밟고 온 세상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서 하늘나라 것과 땅의 것이 다 자기에게 영원토록 통치를  받을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통과할 수 있는 그 능력이 현실 준비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다' 그말은 면류관이라 말은 승리를 가리켜서 면류관이라  이랍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를 얻을  것임이라. 생명이 승리하는 승리라 말은 뭘 말씀했는고? 생명은 하나님과 자기와  연결된 그 연결이 승리하는 승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13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사람이 그 어려움을 당할 때에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이 나를 어려움 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안해야 됩니다. 제가 망해 놓고 하나님이 나를 망친다, 제가  실패케 해 놓고서 하나님이 나를 실패케 했다, 제가 복은 차 던지고 화는 제가  취해 놓고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한다 이렇게 원망 불평 망령을 하기 쉬운데  그렇게 하지 말라 했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제가 고통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고통을 주신다  그렇게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괴롭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요런 거는 단단히 잡으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괴롭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평안하게만 해 주시는 하나님이지  괴롭게 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요거도 믿기가 참 어려운 말씀인데 요 말씀을  우리가 단단히 확신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은 (이거 눈에 눈물이 자꾸 나는데 여러분들 젊은 사람들 늙기 전에 일  많이 해요. 늙기 전에 많이 해야 되지. 늙으면 눈물도 쭐쭐 나오고 뭐  꼬꾸라지고 뭐 뒤뚱뒤뚱 것고 일할라 해야 일 못해요. 어찌든 젊을 때 일 많이  해야 되지)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 하시느니라.' 요 말씀 믿기가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괴롭히지도 안  하는 하나님이시요 어떤 것에게 괴로움을 당하지도 안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괴로움을 당하지도 안하는 하나님이시요 또 괴로움을 사람들에게  주지도 아니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러 가지 어려움 당하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려움 주신다 이렇게 생각한다 그거요.

 다니엘이 그렇게 사자 구덩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어려움을 닥쳤는데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을 당하게 했습니다. 그 어려움은 하나님이 사자 구덩이를,  그렇게 사자 구덩이 넣기로 결의한 것이나 다른데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모든 전국이 결의한 그것이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었는데, 그러면 하나님이 만들었으면 하나님께서 사자구덩이에 다니엘을  들어가도록 했으니까 어떻게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그 어려움을 주지 안했다고  말하는가? 괴로움을 주지 안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녜 어려움을 주지  안했습니다. 괴로움을 주지 안했습니다. 요것을 단단히 잘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어려움을 주신 것이 아니고 어려움을 벗어 나도록 하셨고  또 괴롭게 한 것이 아니고 다니엘을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을 다 없애기 위해서  그 방편을 하나님께서 쓰신 것입니다. 이러니까, 언뜩 보면 사자 구덩이에  묶어다가 집어 던지니까 다니엘은 참 어려움을 당했다 하지마는 그 사자 구덩이  들어가도 죽지 안하니까 뭐 어려움이 될게 뭐 있습니까? 또 나중에는 그 원수가  다 결박 당해서 없어졌으니까 다니엘에게는 평안이 됐고. 아주 평생 싸워야 될  원수들이 다 없어져 버렸고. 앞으로 원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되니까 평안을 줬지  괴로움 준게 아니라 그 말이오.

 고 다음에 그게 해석이 나옵니다. 14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사람이 왜 어려움을 당하느냐? 어려움 당하는  것은 각 사람이 자기 욕심 때문에 어려움 당한다 그말입니다. 욕심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다. 다니엘도 살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면 다니엘도 어려움을  당하지 안 당할 리가 없습니다. 다니엘이 이 욕심이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지 안했습니다. 그러면 다니엘은 죽고 싶은 사람이냐? 그거 아니오.

다니엘은 '주여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고 사는 것이 좋으면 주님이 살게 해 주실  것이고 죽는 것이 좋으면 죽게 해 주실 것이고. 이러니까, 안 죽는 사람이 누가  있나? 이러니까 주님께서 살고 죽는 것은 주님이 내게 가장 유익하도록 적절한  시기를 그렇게 전지한 지혜로 선택해 가지고서 적절한 시기를 정했기 때문에  지금 죽는 것이 하나님이 내게 좋으면 지금 죽게 할 것이고 또 사자 구덩이 암만  열 번 들어가도 지금 안 죽는 것이 내게 유익하면 안 죽게 해 주시고 당신이 내  생사를 제일 복되게 주관하신다.'는 그 하나님의 사람을 절대 믿고 자기  사적으로 '요래야 되겠다 조래야 되겠다. 요거 원한 다 조거 원한다' 그 육체의  소욕인 사욕이라는 것이 없어졌기 때문에 다니엘에게는 아무 염려가 없었습니다.

아무 고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고통 당하는 것은 다 제 욕심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제 주관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은 무엇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고  하니 두 가지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자기가 요것은 없어지지 안해야 되겠는데  하는데 그게 없어질 때에, 없어지지 안해야 되겠다 없어 지지 안해야 되겠는데  하는 자기 그 욕심과 없어지는 거와 같지 안하고, 자기 욕심은 없어지지 안해야  되겠다 하는데 그게 없어지니까 고통이오. 또 요것은 꼭 요것은 성공하고 요것은  달성해야 되겠다 달성해야 되겠다 하는데 달성이 안 되니까 고통이고 달성되도록  할라 해 가지고 고통이고 염려고 그렇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다 맡겨 놨어.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이 전지하신 사랑의 주님이 보실 때에 없어지는 것이  좋으면 없어지게 하실 것이고, 또 없는 그것이 새로 생겨져야 좋으면 생겨지게  하실 것이고 전지전능의 주권자. 주재자, 개별 섭리자 그분을 든든히 믿고  그분의 능력을 믿고 그분의 사랑을 믿고 그분에게 다 맡겨 놓고 나는 그저 모든  것 다 맡겨놨으니까 당신이 뭐 죽는 것이나 사는 것이나 내게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나 없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이나 많은 것이 적게 되는 것이나 적은  것이 많게 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을 당신이 주관하셔서 제일 좋게 해 주실 것을  내가 믿습니다. 이러니까 나는 다만 할 것은 당신이 시키시는 대로 할 것  하나뿐입니다. 요것만 딱 단정을 짓고 그래 있는 사람에게는 시험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께 다 맡겨 놓으면 너무 허무하지 않는가? 녜  사람의 생각이 하나님이 없어져야 된다 하는데 있어지면 그것은 다 사망되는  것입니다. 그게 나를 사망케 하는 것입니다. 또 이거는 없어야 하나님이  없어져야 되는데 하시는 것을 나는 꼭 없어지지 안해야 됩니다. 하면 그  없어지지 안하는 그것은 자기를 사망케 하는 것 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럴 때에는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면 없어질 때 없어지고,  있어질 때에 있어지고, 또 적어질 때에 적어지고 많아질 때에 많아 지고. 또  그것이 이겨야 될 때 이기고, 질 때 지고 그렇게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없어지고 있어지고 커지고 작아지고. 또 위에 올라가고 밑에 내려오고 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조절해서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조절해  가지고 모든 것을 해 주시는데, 하나님을 어겨서 제 생각대로 하면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면  없어질 터인데 하나님이 시키시는 것을 어 겨서 인간 생각대로 하니까 없어지지  안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했으면 없어질 터인데 보라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안하고 우리 사람 생각대로 하니까 없어지지 안하지  안했느냐 이거는 다행이다 이거는 성공이다 좋다' 그렇게 생각하지마는서도 그  자기 생각대로 해서 없어 지지 안하는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기를 죽이고 망치는  거 그 외에는 아무 것도 결과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가르치시는 그 지식을 받아 들여 예,  요게 옳습니다. 녜 이제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지식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행동하면 없어져 좋을 때는 없어지고 있어져 좋을 때는 있어지고 작아져 좋아질  때에는 작아지고 커져 좋을 때는 커지고 올라가 좋을 때는 올라가고 내려가 좋을  때는 내려가고 살아 좋을 때는 살고 죽어 좋을 때는 죽고. 이러니까 이것을  당신이 책임 지시고 모든 걸 내게 맡기라 하셨으니까 맡기는 이 사람이  의인이요, 이 사람이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그 사랑을 가지고 우리에게 후대해  주시는 그 후대를 다 받을 수 있는 사람이오, 하나님이 지극히 큰 욕망을  가지시고 우리를 이렇게 저렇게 참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통치할 만한 이런  보배로운 사람으로 성장 시킬라고 하시는 그 성장을 다 받을 수 있지마는,  우리가 당신 시키시는 대로 하지 안하는 데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사랑할 수도 없고 나는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하나님이 근심하고  걱정하고 저 안 된다 하는 것 사망한 자꾸 끌어 넣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이 인도를 버리고 이 세상 자기 인간대로 인간들의  생각대로 이대로 산 사람 쳐놓고 지옥을 면한 사람은 역사에 온 사람이 한없이  있지마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전부이 다 지옥 가 있습니다. 또  택한 자라고 하면은 그 사람들이 기본구원으로 영은 하늘나라 가 있지마는서도  기능은 전부이 지옥 불에 다 태워 버렸고 자기 소유도 다 태워 버리고 하나도  하늘나라에 가지고 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요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래서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자기 욕심에  끌려 가지고서 미혹에 들었다. 자기 욕심에 끌려 가지고서 미혹을 받아 그렇다,  잘못 생각해 그렇다 그 말이오. 자기 욕심에 끌려서 미혹 받았다. 그 어떤  사람은 자기의 사업이 이 사람은 이 사업이 무너져야 그 사람이 살고 평안하고  복 되겠는데 사람은 일방적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사업을 기어코라도  살려 볼라고 애를 씁니다. 이러니까, 자 하나님은 무너지는게 좋다 하는데 그  사람은 자꾸 그것이 건설되는 것이 좋다고 이러니까 하나님이 하지 안하는 일을  하나님 말씀을 어겨 가면서 해서 그걸 건설할라 하니까 하나님께 거슬림이  고통이오. 또 하나님 말씀대로 하면 그 사업이 무너질 터이니까 또 그래  고통이오. 이러니까 이게 다 고통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꾀임을 받아 가지고  자기 욕심에 미혹을 받아 가지고 그와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사업이 무너져야 좋을 때에는 무너져야 좋을 터인데 무너져야  좋을 때에 그 무너지게 하는 법칙이 뭐인가? 내가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그  사업에 대해서 모든 처사를 하니까 그 사업이 그만 무너졌습니다. 무너졌으면  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무너졌으니 이 무너지는 것이 좋기 때문에  하나님이 당신에게 순종하는 이 순종을 귀하게 여겨 서 이거 무너뜨리셨다. 만일  그때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서 이것이 무너질 걸 무너지지 안하고  있었으면 이것이 나를 어떻게 사망 시킬 것인가? 이래서 감사해야 될 터인데 이  참 아주 맥맥한 어두운 사람들이 되어 놓으니까 자꾸 원망오고 불평오고 이래서  그것 때문에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무너지는게 좋다 하는데 저는 일어서야 된다  하고 하나님은 일어서 야 된다 하는데 저는. 무너지는 걸 좋아 하는 건 없지요.

 사람은 일방적 지식이라. 어째든지 살아야 좋고 돈은 많아져야 좋고 권세는  올라가야 좋고 으례 사람은 평안해야 좋고 하는데 그거 일방적 지식입니다.

지식이라 하는 것도 다 양면을 가지고 있는데 양면을 가져야 그것이 겸손하고  바로 되는 것이지 일방적이라 하는 것은 그것이 다 실패가 됩니다. 왜? 일이라  하는 거는 있어야 될 때도 있고 없야야 될 때도 있고 이런데 꼭 있기만 좋아  하면은 일방적 지식이기 때문에 그게 사망이 되고마는 것입니다. 또 없어지면  좋아도 그것도 또 사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저 그 다소와  다소, 유무, 존비 귀천, 생사 여기에 대해서 꼭 일방적 지식만 가지고 있지,  쌍방이 원만한 지식을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지식대로, 판단하면 일방적 지식이기 때문에, 그러면 그것이 서야 될 때는 서야  되지마는서도 넘어져야 될 때 그거 넘어지지 안하기 때문에 선 그것도 다  헛일이고 망하고 만다 그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에게 대한 미래와 영원을 누가 알 자가 있습니까? 이러니까  전지전능의 나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셔서 날 구원할라 하시는 그 사랑의  주님이 전지전능자시니까 그분에게 모든 걸 맡겨 놓고 '그저 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는 그 사람이 지혜지.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것이 자기 영원을 영원을  좌우할 수 있는 영원의 종자와 터와 같은 이 현실의 귀중한 것을 아무 것도  모르는 무지 무능 초지장 넘어도 모르는 무지 무능한 것이 그것을 책임을 지고  제가 자기를 주관해서 자기의 행복을 도모한다는, 너무 어리석은 일이요 천부당  만부당 하는 일입니다. 이거는 뭐 천에 만에 하나도 맞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데 어리석은 걸음을 우리가 걷고 있는 것입니다.

 15절에 말씀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사람의 욕심 그것이 속에  들어 가지고서 역사를 하면 죄를 낳는다. 욕심 그놈이 들어서. 죄는 뭐이 죄인고  하니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칙에 어긋난 것이 죄입니다. 욕심 그놈이 들어서  하나님과 하나님 법칙에 어긋난 일을 하게 만듭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를 낳는다 말은 삐뚤어진 걸 낳는다 그 말이오. 삐뚤어진 걸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삐뚤어진게 많으면 그거는 죽고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자기 욕심대로 할라고. 이 세상에는 자기 욕심을 죽일라고  애쓰는 사람도 있고 자기 욕심을 성공할라고 애쓰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자기 욕심을 죽일라고 애쓰는 사람은 자기 욕심대로 하지 안 하고 나를  사랑하시는 전지전능하신 그분의 욕심대로 내게 대해서 내게 대해서 그분의  욕심대로 하면 그분이 하나님처럼 온전한코 거룩하고 깨끗한 자를 만드신 그분의  욕심대로 나를 하도록 이렇게 맡기지 안하고, 자기 욕심대로 자기가 이래 할라  하는 그 욕심 그것은 결국은 뭐 하는고 많이 삐뚤어진 것 만들어 냅니다. 죄  만들어 냅니다. 삐뚤어진 것 만들어 내고 삐뚤어진 것이 차차 많아지면 나중에  가서 죽고 망하는 것 만듭니다. 딴게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의 욕심이 그런 것이기 때문에 자기 욕심을, 죽일라고  잠간동안 얘기 하다 보니까 그만자기 욕심대로의 말이 쑥 나와 버렸습니다. 자기  욕심대로의 말이 쑥 나왔으면 그것 때문에 그 욕심대로의 나온 그것을 회개하기  위해서 무엇을 원망 한 마디를 퍽 하고 보니까, 원망 그것이 어데서 나왔노냐  하면 자기 표준의 욕심에서 원망이 나왔지, 하나님 표준이 아니라 그말이오.

하나님이 전지전능으로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사랑의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하시는 그 분이 내 배후에 계셔 나를 조종하고 계시는데 내 조부라운  생각대로 안 됐다고 불만 불평하는 그 모든 것이 다 자기 욕심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것은 자기를 망치는 것 밖에 없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늘 욕심대로 자기 주관대로 된 것을 회개하고 그것대로 안 할 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애쓰고 왜?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욕심을 가진 대로 이 어린 아이, 우리 어린 아이들도  부모의 욕심은 그 아이에게 어짜든지 좋은 사람 되라 하는데 이 아이는  동무하고서 나쁘게 빠져 가지고서 그날 제 재미대로 살고자 하는 놀고자 하는  그게 아이 욕심일 수도 있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더욱 더 그러합니다. 이러니까, 내게 대해서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그 소원대로  이루어지도록 맡겨 놔야 될텐데 알지도 못하는게 내 욕심대로 할라고 자꾸 애를  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그대로 할라고 하니 돼도 고생이요 안돼도 고생이요, 안  되니까 되도록 하기 위해서 고통, 그래 만들어 놓으니까 그 놈이 들어서 결국은  사망이 되어지니까 또 고통, 이래 고통 저래 고통 고통 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 욕심이 달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고통, 달성한 것이 그 놈이 또  넘어지니까 또 고통, 달성된 그 놈을 보수할라 하니까 또 고통, 달성된 그놈  때문에 원수가 많으니 또 고통.

 이제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라면 다른 사람이 와서 건드리지 못하고,  건드리면 더 좋아집니다. 건드리면 건드린 그거는 망해 버리고 건드리지는  그거는 더 좋아지오. 이 분의 든든하게 뭐 이래도 저래도 꼼짝 못하는 이런  든든한 길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어짜든지 염려 없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 평강의 길을  걸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이런데 이 길을 못 가는 것은 뭐이냐 하면 우리 속에 옛사람, 자기 아닌 자기  그놈이 들어 가지고 자꾸 우리를 괴롭게 하고 망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가 둘이라. 예수 믿는 사람은 둘이라. 진리와 성령으로 중생된 참  자기가 속에 있고 참 자기를 옛날 죽였던 배암과 이 원죄, 자기중심인 원죄 요  자기 아닌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된 그 자기 아닌 자기 것이 자기인 척.

가장을 해 가지고 나타나는 요놈에게 속아서 고놈이 난 줄 알고 하면은 결국은  다 죽고 망치는 일만 하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러면 일생동안 중생된 사람이라도 중생된 사람으로는 살지 못하고 옛사람  자기를 죽인 원수, 자기 아닌 자기. 원수 자기 이놈이 자기인 줄 착각을 해  가지고서 그것대로 살고 이래 가지고 그놈 시키는 대로 하니까 그 놈을 죽이는  소리를 누가 말씀하면 그만 원수를 삼고, 그 놈을 책망하는 말을 하면은 원수를  삼고, 그 놈을 슬슬 북돋아주고 슬슬 추키면 그 놈을 북을 돋아주고 슬슬 추키며  '아 네가 참 높으다 하나님처럼 너는 의롭고 높으다' 슬슬 추켜 올리면 좋다고  입이 벙긋하는 그게 참 얼마나 어리석고 불쌍하고 가련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또 보고 '그놈 나쁘다 괘씸하다 분하다' 하는 사람도 정신 없는  사람입니다. 저 죽을 줄도 모르고 그렇게 하는 사람이 저 죽을 줄도 몰라서  그러는 사람을 불쌍히 여길 것이지 거기에 대해서 뭐 괘씸하니 뭐이니. 우리가  사람을 구원할라 하다가 구원이 안 되면 마음에 괘씸도 하고 원망하고 무슨 말  하는 그것도 따라서 그 사람을 따라서 미친 사람이 된 사람입니다.

 그 자기 죽고 망할 줄도 모르고 아, 일생 동안 사는 생활을 이렇게 무궁한 걸  위해서 준비해 가지고 영광스러울 수 있는데 일생 동안을 속아 가지고서 전부이  폭 속아 가지고서 다 망쳐지는 그 걸음을 자꾸 망할 줄 모르고 걸어가는 그  사람이. 지금 마치 모가지 끊긴 그 짐승이 아무 것도 모르고 벌로 막 뛰고  굴리는 그것 보고서 아, 뛰고 굴리니까 네가 이리 안 가고 자꾸 그렇게 풀풀  뛰어 가나? 때리봐야 모르요. 머리도 없지 눈도 없지 코도 없지 귀도 없지 아무  것도 모르는데. 인간이 하나님과 끊어져 놓으면 모가지 끊긴 그 짐승과  같습니다. 그냥 이미 있는 잠재한 힘을 가지고 벌로 뛰고 굴리지마는서도 이라면  사망이냐 생명이냐 망하느냐 흥하느냐? 그것도 아무 것도 짐작 못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욕심으로 나아가고 자기 부패성으로 나아가고 옛사람으로  사는 그 사람을 우리는 참 불쌍히 여기고, 또 나도 그와 같은 사람인데 거기에  서 하나님이 구출해 주신 주님을 사랑하면서 생각하면서 감사하고. 그 사람에게  대해서 동정이나 하고, 아무리 하나님께서 '그놈 암만 구원할라 해도 안 되니  집어 던져 버리라' 이렇게 해도 우리 할 말은 '주님이여 나도 그와 같은 자인데  주님의 긍휼로 나를 구원해서 내가, 날 이렇게 구출하지 안했습니까? 나도  과거에는 도적질하던 자요 음행하던 자요 살인하던 자요 거짓말 한 자가 그런  자가 아닙니까? 그래 주님께서 날 이렇게 만드셨기 때문에 주님이 이들도 그렇게  만드시면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긍휼이나 구할 일이지 누구를 보고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이 우리들인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속지 말라' 요게 속지 말라 했는데  구역에는 '스스로 속지 말라' 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속는 것보다 자기가  자기에게 자기 속에 있는 옛사람에게 자기가 속고. 자기 욕심에게 자기가 속고  자기 주관에게 자기가 속고, 자기의 오든 소원 그 나쁜 소원 그런 것들에게  속습니다.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우리 인생들에게 유익된 영과  육에 금생과 내세에 유익된 것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유익한 것은. '다 위로부터' '다 위로부터' 위로라  말은 이 공간적 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공간적 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가치적 위를 말하는 것이요, 도덕적 위를 말하는 것이요, 그 정확적 위를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모든 것이 옳고 바르고 참되고 완전한 거기에 서부터  내려옵니다. 완전한 거기에 서부터 내려 오는데.

 '위로 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빛들의 아버지' 이 어두움의  아버지가 아니고 광명한, 옳고 바르고 참되고 거룩하고 깨끗한그분은 완전하신  분이신데 완전하신 분, 그분에게서 완전한 것이 우리에게 내려오는 이것만이  우리가 받아 가지고 살 것이지. 그 흉측한 도적같은 강도같은 순전히 마귀적인  그런데에서는 우리에게 오는 것이 사망뿐인데 올 게 하나도 없다 그말이오.

 '아버지에게로서 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그는 뭐, 시대를 따라도  변하지 안하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는 참이시오. 그리고 '참에서 우리의 행복은  온다' 그런 말도 있습니다. '깨끗에서 우리 행복은 온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옳고 바른 데서 우리 행동은 온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그 사랑에서 우리 행복은 온다' 그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빛이라 하는  것은 그런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입니다.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 아버지 되신 그분에게로서만 오지 딴 데에서는  오는 자리가 없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에게서만 오는데 딴데 여기에 서 저게서 오는 줄 알고  이렇게 저렇게 아부하고 또 그에게 뭐 저자세하고 그에게 종이 되고 그렇게  구차하게 구구하게 그렇게 추접하게 그럴 필요가 없다 그말입니다. 추접하게  그럴 필요가 없다 그 말이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게 주셔서  이런 거나 저런 거나 당신 내게 주는 것이 족하지 뭐 누구의 것을 부러워 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며칠 전에 내가 조금 무엇을 부러워 했다가 내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회개를 했습니다. 회개를 했어. 지금은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습니다. '아, 나는 이렇게 어데 좋은 기도 장소, 안 주는가' 이래 생각했는데  그걸 생각하고 나서 생각하니까 어떻게 그 죄를 지었는지 그래 회개를 했습니다.

 '빛들의 아버지께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이렇게 저렇게 변동하고 요동하는 그런 요동하는 흔적도 없다  그말입니다. 요동하는 흔적도 없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이 언제든지  그대로 그런 분이시니 그 옛날 모든 선지 성현들이 성공한 그 걸음 걸으면 나도  성공하고 옛날에 모든 사람들이 망한 그 걸음 걸으면 망하고. 그러니까 '허다한  증인들이 구름같은 증인들이 둘러 있다.' 그 허다한 간증자라 했는데 과거에는  '구름같은 인간이라' 구름도 저 구름이라 하는 그것이 조그만한 물방울 그  세포로 말하면 헤아릴 수 없다 합니다. 어떻게 많은지. 그렇게 수많은 사람,  간증자들이 있다 그 말이오. 수많은 사람들이 다 제 욕심대로 살아 가지고 뭐  어떤 사람은 이거는 내 땅이라 어떤 천 평을 차지하고 백 평을 차지하고 동양을  차지하고 서양을 차지하고 세계를 차지하고 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모든  사람들이 했지마는서도 그 사람들이 죽음으로 다 내놓고 갔고 그의 생애가 뭐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찍 그 형에게 맞아 죽은 아벨의 피는 지금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고 순종하여 그 법대로 산  그분들은 없어지지 안하고 가면 갈수록이 청청하고 하지마는서도 그 외에 딴  거는 다 절단 나고 아무 가치가 없다 그말이오.

 그런고로 '변동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절에 '그가' '그가' 하나님 말입니다. '그가 그 조물중에' 영계도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했고, 물질계도 창조 안했습니까? '그 조물 중에' 창조물 중에,  '우리로' 우리라 말은 우리 택한자라 말입니다.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 목적의  결과가 되게 하시려고. 당신이 모르는 모든 노력하는 목적을 두고 당신이  향하시는데 목적이 달성하는 첫 결실, 첫 결실, 첫 결과. 그러기 때문에 택한 자  우리들이 첫 결실이요. 그 외에 모든 피조물은 첫 결실을 위해서 영원토록 첫  결실에 유업으로 첫 결실의 산업으로 그 모든 것은 있는 것입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첫 결과가 되게 하시려고, 첫 결실이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하나님 당신의 기뻐하시는 당신의  전지전능의 기뻐하시는 그 계획대로 말입니다.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우리가 깨닫고. 깨닫고 우리들이 사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이 진리를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야고보서 4장 13절 지금 봅니다.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얻겠다 하는 자들아' 돈벌이 해 놓고  세상에 이것 저것 해 놓고 뒤에 잘 믿겠다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내일 일은 너는 모른다. '이거 해 놓고' 하지만 그거 할라고  시작하다가 네가 죽을는지 반츰하다가 죽을는지 모른다 그 말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언제 어찌될지 모른 다. 그러기 때문에,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주님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니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서 사는게 오면 사는게 좋은 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서 죽는게 오면은 죽는게 좋은 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내가 거지가 되면 거지가 된 것이 좋기 때문에 모든 것의 주재되신  그분이 당신 뜻대로 하는 사람이, 당신의 뜻대로 그 세상이 미혹을 주고, 그거  다 마다 하고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그 행동의 결과로 가난이 오는 것은  당신이 없어 그런게 아니라 좋기 때문에 가난 주시고. 또 없기 때문에, 내게  어떨 때에는 그 사장으로 있는 사람이 말씀대로 뜻대로 하다가 사장이 그만  떨어져 버렸습니다. 사장이 떨어진 것은 말씀대로 해서 당신에게 순종함으로  당신 시키시는 대로 해서 내가 사장이 떨어졌으니 이 사장을 떨어지는 것이 좋기  때문에 이렇게 하셨다. 만일 네가 당신을 어기고 네가 사장이 붙어 있으면 내가  무슨 화가 될는지 모르겠다. 그래 가지고 사망을 면하고 또 성공을 하고 하는  것이 다 거기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이 도리를 밝히 깨닫고  있으면 마귀라는 놈이 이렇게 꼬아도 저렇게 꼬아도 우리가 꼬임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요것을 기억합시다. '주의 뜻이면' 주님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주님의 뜻대로 해서 살아지면 살아지고  가난해지면 가난해지고 부자되면 부자되고 이런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라도 기어코 내 욕심대로 한번 성공이 되고 달성이 되어야 되겠다 하는  그것은 다 네 욕심이기 때문에, 그것이 장성하면 삐뚤어진 것만 자꾸 만들어  가지고 결과는 죽고 망하는 것만 맺는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랑하는  형제들아 스스로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에게로 말미암아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너희는 모든 피조물 중에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이거를 낳아 놨는데 너희들이 왜 염려하느냐 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말씀은 오전 설교와 연관이 됩니다. 왜 연관이 되는고 하니  우리가 현실에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그 지식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행하라 하는 대로 행하면 능력을 받고, 지식과 능력을 우리가 받는 것이  현실인데 그 지식과 그 능력을 받을라 할 때에 애로가 있다 말입니다. 이 악령과  세상의 죄악이 들어서 그 지식 말고 다른 지식을 자꾸 넣어 줄라고 할 때에 그  지식을 받아 들이면 좋아하지요. 그러나 그 지식을 받아들이지 안할라 하니까  자꾸 달개고 꾀우다가 안 되면 나중에는 강제로 그 지식을 받아들이면 죽인다 할  때까지 온다 말이오. 그 지식 받아 드릴라 하면은 이혼한다 할 때도 오고, 그  지식 받아들이면 너는 면직으로서 당장 목을 날려 버릴 거다 또 그것도 온다  그말이오. 가둘 거다 하는 것도 온다 말이오. 또 행하는 것도 그와 같다 말이오.

 그럴 때에 염려 하지 말아라.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래도 아버지께서 너거 아버지가  허락지 안하면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 너희들은 많은 참새보다 귀하다.

생명에 누가 어떻게 할까 염려하지 말아라. 또 그뿐만, 아니라 너희들에게는  택한자에게 있어서는 머리털까지 다 헤시고 주관하고 계신다. 염려하지 말아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그러기에, 주님은 우리에게 염려 없기를 원하시고 평강으로 살라고 이래 했는데  우리 어리석은 욕심과 마귀가 주는 배암이 준 그 지식 이 지식대로의 해석하는  거기에서 모든 고통이오고 그 고통 안 받을라고 사람들은 면한 것이 영원한 고통  받아 버리고 아주 망해 버리고. 그 고통을 온다 해도 하나님이 안 주시는 고통을  제가 어떻게 줄 것이며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 왜  하나님께서 전능한 능력이 있는데 그에게 복을 주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못난 사람이라도 못난 성질 가지고 못난 사람일지라도 자기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그 사람을 자기가 책임지지 안하고 자기 시키는 대로 하는 그 사람,  시키는 대로 하니까 그 사람의 것을 착취해 가지고 싹 뺏들어 먹자하는 그런  독사같은 못난 인간은 별로이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이라도 겨우 사람 축에  간다고 해도 자기가 시키는 대로 뭐이든지 그대로 죽자껏 '옳게 지도하지'  싶어서 믿고 순종하면 자기 힘 있는 대로는 그에게 대해 책임을 지고, 만일  자기가 인간이기 때문에 잘못시켜 가지고 그 일이 잘못 됐으면 자기 힘있는 대로  그것을 보충해 가지고 보상해서 기어코 돌려 세우고 말지. 그 책임을 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 인간의 인격성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따라갑시다.

 그러기에, 우리 현실은 기름인 하나님에게 배워서 하나님 현재 요래 하라 할  때에 그대로 하는게 하나님께 배우는 것이라. 성경을 암만 알아도 그거 배우는게  아니라. 성경을 사람한테 배워 가지고 또 새로 배워야 됩니다. 하나님께 배워야  돼. 하나님께 배우는 것 어찌 배우느냐? 현실에 요렇게 하라 할 때에 고때에  예고 지식을 받아 들여 가지고 내 지식을 삼아야 하나님께 배우는게 된다 그  말이오. 또 그대로 행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을 내가 받는게 된다 말이오.

하나님의 지식과 능력을 받는 것은 현실에서만 받지 다른 데에서는 받지  못합니다.

 그 현실에서 받을라고 하면은 꾀우다가 안 되면 위협이 온다 말이오. 꾀우는  데에도 꼬이지 말고 위협도 염려하지 말아라. 모든 것을 주께서 주권하시고 우리  믿는 자에게는 머리털까지 헤고 계시기 때문에 주님의 뜻이면 사는 것도 좋고  죽는 것도 좋고 이것도 저것도 하는게 좋지, 주님의 뜻을 어기는 건 사망뿐인데  그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요것을 양보하면 생명과 승리를 양보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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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라/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 1984. 3. 11.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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