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양식

 

1987. 12. 21. 새벽 (월)

 

본문:요한복음 14장 1절∼12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본문을 읽어 내려갈 터이니까 같이 따라오면서 거게 대한 어제 배운 뜻을  여러분들이 한번 새겨 보십시오.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지.

그걸 알면 또 좀 더 또 깊이 또 배울 수 있고 또 알고 기억하면 또 좀 더 깊이  배울 수 있고 이래서 참 믿는 사람이 돼야 됩니다. 도인이 돼야 돼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이게 무슨 말이지요? 껍데기로만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바라보는 그것으로 인하여 근심하는 그런 근심을 하지 말라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많다 말이 무슨 말인지?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이 말씀 무슨 말씀인지? “일렀으리라” 그러면 세상에서 세상  것을 너희들에게 주었으리라 그말이오. 세상 것보다 무한이 좋은 게 있기 때문에  세상을 투자해서 무한히 좋은 것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지 그게 없으면 너거를  내가 사랑하는데 내가 지은 거 내것을 내가 네게 주지 뭐할라고 내가 안 주고  그렇게 했겠느냐 그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지금은 영접하여 인도하여 가고 있는 중에 있는  우리들입니다.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의 생애를 말합니다.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떻게  알겠삽나이까” 도마는 들어도 모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에게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마련이 예수님이 가시는 길입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이는 지식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약의  약속의 계시의 눈으로 봅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이렇게 빌립같이 신인양성일위로  나타나서 같이 있는 주님만 알지 그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주님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은 어떤 분이신가를 그들은 모릅니다. 항상 외식이요 껍데기만 압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항상  육체를 위주합니다. 육체로 봐야 되고, 육체로 들어야 되고, 육체로 느끼는 데  거게서 고기덩어리 속에 마음의 작용에 건너가지 못하고, 마음의 작용에서 양심의  작용의 위치에 건너가지 못하고, 거게서 중생된 영의 작용에 건너가지 못하니  항상 문 밖에 있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니라” 일하는 것이 주님의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이러면  하나님에게 대한 지식이 차차 온전해져 갑니다.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그러면 예수님의 인성이 그런 모든 능한 일을 하지  안했습니다. 못 합니다. 또 예수님의 인성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그대로  온전히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 행위를 본 자는 아버지의 행위 봤고 내 성질 본  자는 아버지의 성질 봤고 내 뜻을 본 자는 아버지의 뜻을 본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터이요” “저도 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터이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나를 통하여 일하심같이 내가 너희들 안에 있어서 너희들을 통하여 일하는 이  사실을 믿으면, 너희들은 뭐 주먹덩이 같든지 고기덩어리 같든지 무엇이 형체가  있어야 인정을 하는 그 형체라는 그 범위 안에 너는 갇혀 가지고서 형체를  초월하지 못하고 항상, 완전은 무형인데 무형이신 완전의 하나님을 향햐여  나아가지 못하고 항상 너희는 밖으로 기어나와서 유형에서만 머물고 있기 때문에  유형 그거는 다 없어질 것들이다. 유형으로 인해서 무형에 나아가라. 유형을  투자해 가지고서 무형을 마련하라.

무형을 마련해 가지고서 무형 중에도 완전하신 그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서  하나님으로 네 안에 계셔서 너를 주관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모든 것보다 네  안에 계셔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을 네가 영접하라.

너는 거게서 떠나지 못해서, 아무 형체 없이 무형의 하나님이 전지 전능의 완전의  하나님이건마는 이분이 너에게 와도 네 속에 쌀내끼만한 형체라도 있는  그것만치도 네가 인정치 못한다, 너는 유형의 그 테두리 속에서 유형을 초월하지  못하고 유형을 꿰뚫고 들어가지를 못한다, 그걸 말합니다.

네가 이 유형의 감옥 속에 갇히지 아니하고 무형의 존재로 너 안에 와 가지고서  역사하는 이 사실을 믿으면 내가 하는 일을 너도 할 수 있다. 이해가 됩니까? {이  치영}○○○? ct4“““? 어데 있노? 이해가 돼? 이해가 돼? 지금은 주님이 도성인신하셔 신인양성일위로 우리를 대속하셨는데 인제 유형으로  대속해야 될 일은 다 했습니다. 유형을 가지고 하셔야 할 일은 다 했소. 끝났소.

그러면 지금은 주님이 어데 계십니까? 어데 계십니까? 어데 계십니까? 어데  계신지 몰라요? 주님이 아버지 우편에도 계시지마는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 영  안에는 항상 상주해 계시고 우리 마음 안에 자기가 주님을 생각하고 믿으면 우리  마음 안에 들어와 계십니다. 우리가 잊어버리고 믿지 안하면은 우리 마음 안에  들어와 계실 수가 없습니다.

“문을 두드리노니 열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유형의 것들 가지고서 하나의  표시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의 그 비유와 같이 한 상징으로 말한  것이오. “문을 두드리{라}노니 문 열면 내가 들어가겠다” 하는 것은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오려고 할 때에 우리가 알고 원하고 믿을 때에 우리  마음에 들어와 계십니다. 들어오십니다.

그러면 그분은 들어오시면 어떤 일 하시느냐?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하는  말은 주님은 어떻게 한다 말이요? 이걸 모르면 안 돼. 주님이 어떻게 한다는  말입니까? 여게 요 안경 쓴, 경찰? 주님이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하는 것은  무슨 말이야? 아니야.

주님은 당신의 영영하신 계획의 뜻을 너를 통하여 이룬다. 주님의 양식은 뭐인고  하니 아버지가 주님에게 명한 그 모든 아버지의 뜻, 주님이 받으신 사명, 아버지가  주님에게 명하신 그 사명 곧 주님이 맡은 업무 그것을 “너로 더불어 먹는다”  너를 통해서 내가 다 이루겠다 그말이오. 알아들려? 먹는다는 것은 주님이 잡수시는 것은 아버지의 뜻을 주님이 온전히 행하고 다  이루는 것이 그것이 잡수시는 것이요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먹는 건 뭐입니까? 우리가 먹는 거는 뭐이요? 뭐이지?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을,  내게 대한 주님의 뜻을 주님을 힘입어서 내가 다 이룰 수 있다 그말이오.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는 말, “나는 너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것을 똑똑히  기억해.

인격의 양식은, 인격의 양식은 알고 인정하고 행함으로 인격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입으로 먹는 것 아니오. 인격의 양식은 그이의 사상과 행위로 먹는  것이오. 이해가 돼? 이해가 돼? 껍데기만 배워 가면 헛일이라. 나중에, 껍데기만  배워 가면 솔갱이한테 채여가. 껍데기만 배워 가서 지금 뭐 인제 다, 제대해  나간다면서? 제대해 나가면 거기 고향 가면 전부 땅에 있는 말하면, 육백육십육의  말을 하면은, 땅에 속한 말, 이 과학적인 말 하면 딱딱 들어맞지마는 과학을  초월한 말은 잘 안 들린다 그거야.

하나라도 똑똑히 배워 놓으면 솔개한테 채여가지 안해. 마귀에게 끌려가지 안해.

껍데기만 배우기 때문에 다 저희들이 그래. 여기 총공회 교역자들이 다 껍데기만  배우고 알맹이를 못 배워요.

지난번에 {조}○목사 내가 말하는 것은 아직까지 심히 어리지마는 그래도 방편을  바로 잡았다 말이오. 방편을 바로 잡아서 내가 저거 방편 좀 바로 잡은 걸 보라고  이래 보였더니마는 그 방편을 바로 잡지 못하고 저거도 그래 잡질랑 안하고서  외식자들이, 외식자들이 외식을 회개하려고 하지를 안하고 오히려 조롱을 하고  있어. 어리석어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저도 할 것이요” 뭘 믿어? 주님 안에 아버지 계시고 아버지 안에  주님이 계셔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양면을 보고 인정하면 말이오. “나를  믿으면” 나를 믿는다는 것은 너희들은 항상 육덩이로 있는 나만 믿지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심을 너희들이 믿지 않는데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내 안에 계시는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내 안에서 역사했다.

이 사실을 믿으면, 내 안에서는 아버지가 역사했고 우리 안에는 누가 역사하요?  우리 안에는? 우리는 주님이 역사하시요. 너희들이 육안으로 보는 내가 너희들이  육안으로 보지 안하고 믿음과 심령으로 보는 나로 네 안에 계셔서 역사하심을  인정하면 내가 너거 안에 들어가 가지고서 일할 수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보이는 데서 일합니까 보이지 않는 데서 일합니까? 하나님은  나타나 일하십니까 은밀하게 일하십니까? 은밀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이걸  믿어야 돼.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리”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보다 큰 것을  하는 것은 더 위대하고 능하고 범위 넓은 광대한 일을 한다 말이지요.

어떻게 해서? “큰 것도 하리니 이는” 어떻게 큰 일 하느냐?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대속을 완성했기 때문에 주님께도 자유롭고 또 이것을  우리에게 대속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 속에 들어가  가지고서 애를 썼다 말이오.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 속에 갇혔다는데 유한 속에 갇혔다는 유한은 뭐이  유한입니까? 유한 속에 갇히다니, {박 영동}○○○목사님? 유한 속에 갇혔다 말은  유한한 인간 속에 갇혔다 그말이오. 인간 속에 갇혀야 우리를 대속하기 때문에  인간 속에 갇혔어. 이러다가 인간 속에 갇힌 그 일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완성했습니다. 이제는 유한 속에 갇힐 게 아니라 유한을 벗어나서,  유한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돼 버렸고.

이러니까 유한 속에 이제는 이것을 초월해서 벗어졌으니 마치 밧줄에 매여 있던  그 용사가 밧줄에 매여 가지고 일할 때보다 밧줄에서 다 끌러지니까 그 매였을  때 요량하면 몇 배나 많이 크게 할 수 있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에는 너거 안에서 일을 하지마는,  너거 안에서 일을 하지마는 이제 이 대속하시고 사활하신 후에는 너거 안에  일하되 더 크게 역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보다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낼 때에 모든 귀신들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낫우고 할  때에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육안으로 볼 수 있도록 동거 동행해 가지고  그들을 통해서 했습니까, 그들의 육안으로 볼 수 없게 그들과 같이 계시면서 볼  수 없는 주님으로 그들을 통해서 역사했습니까? 볼 수 없는 주님으로 그들을  통해서 역사했습니다. 주님 안에는 아버지가 내주해 가지고 역사하시고 우리  안에는 주님이 내주해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주님이 내주해 가지고 역사하시는데 내주하심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지식으로 인정으로, 지식으로 인정으로 우리가 주님을 영접할 수  있고, 지식으로 인정으로 영접해서 내가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해 주실 걸 믿고  행하니까 일이 됩니까 안 됩니까? 행하니까 일이 돼.

베드로가 건너편에 서서 있는 주님이 오라 하실 때에 주님이 오라 하시니 주님이  자기 속에서 자기를 붙들고 물 위로 걸어가도록 그렇게 하실 것을 주님이  말씀하시니 말씀을 의지해서 알았고 믿고 푹 걸어가니까 건너갔다 그거요.

그러면 베드로가 물 위에 걸어갈 때는 누구 힘으로 걸어갔어? 누구 힘으로  걸어갔어? 주님의 힘으로 걸어갔어. 주님의 힘으로. 주님이 물 위로 걸어오실  때는 누구 힘으로 걸어왔어? 누구의 힘으로 왔어? 아버지의 힘으로 걸어왔어.

이걸 알아야 돼요, 이거. 이걸 모르면 저희들이 껍데기만 가지고 자꾸, 실행하지  안하는 그런 자들은 몰라. 들어도 몰라. 들어도 부인돼.

이러니까 항상 가르쳐도 이 교역자들이 몰라. 모르는 이유는 왜 이걸 모르는가?  그 속에 제가 왕되고 싶은 놈, 제가 왕이 되고 싶고 제가 주장이 되고 싶은 그  마귀란 놈이 무서운 그 악의 사욕을 냈기 때문에 그놈 때문에 가리워져서 보지  못합니다.

우리 총공회 이 산하에도 왕되고 싶은 목사들이 많이 있어. 그게 저를 가리어서  어두워져서 망치건마는 그 악이 저를 망치는 줄을 몰라. 악은 뭐인데? 제 중심 제  위주가 악이라.

아레 {조}○목사님은 중심을 따로 별개로 두니까 사람들이 좀 이상히 듣는데 주님  중심 물질 중심, 우리 마음이라 하는 것은 중심이 따로, 중심이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내 마음이 이것을 중심으로 하든지 저것을 중심으로 위주로 하든지  어데 마음이 속했느냐 하는 그것이지 그 중심이 따로 뚜렷이 있는 것 아닙니다.

여게 기울이면 이것 중심되고 저게 기울이면 저것 중심되고, 어데 소속했느냐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 중심 물질 중심 피조물 중심 이것이 바로 된 것인데 또 새 말을  내놓으면 또 자기는 새로 깨달았다 하는, 조금 멀어진다 말이요, 그러면 자꾸.

가르치는 데서 자꾸 멀어져. 그러면 조금씩 삐뚤어지면 나중에 많이 삐뚤어지기  쉬워요.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아버지께로 감이라” 더 큰 일 하는 것은  “아버지께로 감이라” 더 큰 일 한다는 더 큰 일 하는 것은 누가 더 큰 일을  합니까? 누가 더 큰 일 하요? “나 하는 일도 너희들이 할 뿐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일 한다” 주님 하시는 일을 할 때에는 누가 하지요? “내가 하는 일을 너희들도 다 하리라” 이랬는데 그러면 우리들이 하는  “너희들도 하리라” 하는 그 일을 할 때에는 누가 하지요? 저 뒤에, 무슨 ○라  하더라? ○○? ○○ 뭐이야? 이름이 뭐라, 거기? 뭐 ○ 아니가, ○권사님 구역에?  이름 뭐이야 자기? ○○○. 그러면 ○는 ○네. 그래 ○ 말해 봐. 나는 사람 이름을  잘 기억을 못해요. 기억을 할라고 안 하기 때문에.

“나 하는 일을 너희들도 하리라” 하니 그 너희들은 우리인데 우리들이 하는  그거는 누구의 힘으로 하요? 누구의 힘으로? 누가 하요, 그 일을? ‘주님을  믿고’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 안에서 하는 거라. 맞아요? 주님이 우리 안에서  하는 거라.

“이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 큰 일은 누가 하는고? 큰 일은 누가 해요? 큰  일은 누가 해? 이거 전연히 모르네. 큰 일은 누가 하지? 큰 일도 주님이 하셔.

그런데 왜 “지금보다 더 큰 일을 한다” 큰 일 한다 했는데 주님이 더 큰 일  한다 했는데 주님이 지금보다 더 큰 일 하고 더 능력 많아서 많이 할 수 있고 더  큰 일 한다 했으니까 어떻게 돼서 더 큰 일 하게 됐습니까? 죽고 부활하셔  육안으로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에 더 큰 일 하게 됐다 그말이오. 알겠소? 이러면  이 보이는 것만을 위주로 하는 요것을 완전히 부인해 버려야 됩니다. 그렇지  안하면 안 돼요.

이런 것은 지금 말을 하면 이해를 잘 안 해. 안 해도 언젠간가 나중에 심판 앞에  가서도 알 때가 있어. 어짜든지 땅에 속한 것 껍데기, 이 껍데기 세상 얘기는  하면은 귀가 쫑긋하게 듣고 재미있고 또 예수를 믿어도 예수 믿는다는 예수 안에  세상, 예수 안에 세상 것을 말하면 잘 듣지마는 순전히 하늘의 도, 우리가 이  보이는 이 현상 세계를 꿰뚫고 들어가 가지고서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한 무한 세계, 영원 세계, 완전 세계, 불변 세계, 생명 세계,  충만 세계 이 세계는 말하면 안 듣는다 말이오.

왜 못 듣습니까? 아이들은 잘 듣는데 왜 못 들어? 어제 내가 국민학교 삼학년  필기한 걸 불러다 놓고 내가 읽어 보라 했는데 아주 정확하게 필기했어, 국민학교  삼학년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정확하게 말했어.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요 보이지 않는 것에서 보이는 것들이 나왔다.’ 이 어린아이들은 다 듣는데 이 박사들은 못 들어. 그 박사들은 마귀 지식이 속에  있어 가지고서 그놈이 자꾸 가루기 때문에 듣지 안해.

‘그거는 사람들이 시력이 모자라서 못 보는 것이지 없는 거야 있나? 이러니까  현미경으로 백 배 보는 현미경으로 보면 보이지, 천 배 보는 현미경으로 보면  보이지, 여러 수억만 배로 보이는 현미경으로 보면 보이지.’ 이거라야 과학자들은  믿는데 ‘바보 천치들아. 억억만 배로 봐도 물질로서는 볼 수 없는, 물질 속에  물질이 아닌 그 신령한 것들이 있다.’ 이것을 말하면 그들은 안 들어.

‘헤, 현미경으로도 안 보이면 그거는 없는 것이지. 현미경으로도 안 보이는 거  인정할 수 있느냐?’ 이렇게 말해. 너는 현미경 가지고 살다가 뒈지거라. 너는  육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계에서 살다가 죽어라. 너는 그 물질계밖에 모르기  때문에 물질계의 것만 가치로 삼고 물질계 것만 소원하고 욕망하고 물질계만  너에게 필요한 줄 알지 물질계는 다 없어질 것들이다.

이로 인해서 물질이 없어지기 전에 신령한 그 의의 고차원의 그것을 어서 잡아라.

썩을 것이 없어지기 전에 썩을 것을 가지고 썩지 안할 것을 마련해라. 죽을 것을  가지고 죽지 안할 것을 마련해라. 약한 것을 가지고서 강한 것을 마련해라.

유한한 것을 가지고서 무한한 것을 마련하라.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거 알아듣겠어요?  “이보다 큰 일도 할 수 있으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그러면 주님이  보이는 주님으로 자기를 돕는 일과 보이지 않는 주님으로 돕는 일이 달라.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도 보이는 주님으로 제자들을 돕는 그거는 가장 제재받고  유한하고 자유 없는 그것이지마는 살아계실 때도 볼 수 없는 주님으로 제자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것은 더 커.

이제는 볼 수 없는 주님이, 볼 수 있는 유형의 주님이 무형의 주님으로 완전히  부활하셔 가지고 사활하셔 가지고 무형의 주님으로 되어지고 난 다음에는 그 볼  수 없는 주님으로 역사하는 데도 살아 계실 때 역사하는 것보다도 십자가 못박혀  죽으셨다가 살고 난 다음에는 역사함이 크다. 인정돼요?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집사님, 뭐 알아듣겠어? 알아듣겠어? 인정돼? 재독을 자꾸 들어. 재독을  자꾸 들어 가지고서 생각하고 해야 되지 이 한번 듣고 가는 거 여러분들이  몰라요.

지난밤에 재독 들은 사람 보니까 백십육 명이야, 백십육 명. 나머지기는 테이프  가지고 가 가지고 저거 집에서 재독을 하는지 모르지마는 여러분들이 그렇게  한번 두번, 열번 스무번, 백번 듣고 아는 것 아닙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들이  깊이 깊이 명상하고 실지로 자기가 그대로 실험을 해 봐야 돼. 실험을 해 보고 난  다음에 알아져. 과학자가 책상 위에 앉아서 요렇다 조렇다 하고 난 다음에 그대로  발표하면 거짓말쟁이만 됩니다. 그게 되는 게 아니라.

아이가 그 속에서 잉태된 지 한 달 만에 내놓으면 그까짓 거 그 물이지 뭐이요?  그까짓 거 뭐 사람 노릇 하요? 그게 이제 뭐 한 오륙 개월만 돼도 안 돼요.

달수가 차야 되지.

그것 모양으로 이제 재독을 들어도 몇 번 들어 가지고는 안 돼. 재독 들은 그것을  또 듣고 또 듣고 자꾸 들으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비로소 이 지식이  차차 자기 속에 아이 생기듯이 이렇게 아주 미약한 이런 걸로 이래 그저 이래  생겨진다는 그게 듣고 듣고 하는 데서 차차 차차 커지고 여물라지고 이래  가지고서 이 지식이 견고해지는 것이지 이거 대번에 뭐 듣고 제가 된 것, 그래 놓으니까 자꾸 듣고 버리니까 마귀란 놈은, 저는 듣고 버리면 마귀란 놈은  그 뒤에 아주 뒷작업을 잘 합니다. 저는 살큼 듣고 말았는데 말았는데 마귀란 놈  요 마귀란 놈은 그걸 완전히 까뭉케 없애도록 하나님 말씀 듣고 난 다음에  작용을 단단히 하기 때문에 한번 듣고 나면 배나 마귀 자식 되고, 두 번 듣고  나면 삼 배나 마귀 자식 되고, 한번 더 듣고 나면 사 배나 마귀 자식 되고, 점점  마귀 자식이 점점 돼 가.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가 그걸 기억해야 됩니다.

오늘은 지금 새것 나갈라는데 못 나갔었어. 이러니까 “내가 하는 이걸 너희들도  다 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일도, 내가 지금 너희들에게 하고 내가  하는 이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너희들이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이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 “큰  일도 할 수 있다” 어떻게 더 큰 일 할 수 있어? 어떻게 더 큰 일 할 수 있어?  저 뭐꼬? ○ 뭐꼬? ○○○이 엄마? 부활? 보이는 주님이 보이지 않는 주님 되고  남으로 더 큰 일 할 수 있어. 알겠어? 우리 속에 와서 역사하기가 더 자유로와.

알겠어요? 이러니까 보이는 것만을 위주로 하는 것을 완전히 부인해 버리라  그말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교회 주변을 그대로 청소하고 또 반사들은 언제든지 공과를 꼭 외우도록  하십시오. 반사들이 공과를 외우지 안하고 요절도 외우지 안하니까 껍데기 돼  놓으니까 제가 망할 수밖에 더 있소? 어제도 보니까, 지금 이 탄일 때 되면은 천 얼마 삼백이라 하더나 이백이라  하더나? 얼마? 만이천? 만이천 얼마 모였는데 지금은 어제 팔천이라, 팔천. 죽어,  죽어. 반사들 죽어, 모두 다! 밥 먹지 마! 뭣 하고 있는 거라, 있기를? 게을만 부리고 고기덩어리 좋아하도록 어짜든지 게을만 부리면 살 줄 알아? 돈만  보면 살 줄 알아? “사람의 사는 것은 재산의 넉넉한 데 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에게 있어. 그런다고 네가 행복돼?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내야 젊은  사람 늙어서 죽지’ 젊은 사람도 늙은 사람보다 앞에 죽을 수 있어.

여러분들, ‘목사님 저러니까 내가 나는 그러고 난 다음에 믿지’ 내가  여러분들보다 뒤에 살고 늦게 죽고 여러분이 나보다 앞에 죽을지 몰라. 젊음  가지고결단코 죽음이 결정되는 건 아니야. 건강 가지고 결정되는 것도 아니라.

늙음 가지고 결정되는 것도 아니라. 구백 세 사는 사람도 있는데 뭐 지금 내가  팔십도 못 됐는데, 팔십도 못 됐는데 나 몇살 됐어? 공연히 그 젊은 것 가지고서  그것 가지고 배짱부리지 말고 건강 가지고 배짱 부리지 마라. 어찌 될지 몰라.

이러니까 어짜든지 뒤로 미루지 말고 준비해야 돼. ‘내야 장가도 안 갔는데  시집,’ 시집 안 가도 죽을 수 있어. 총각과 처녀도 죽어. 이러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준비해야 되지 뭐, 망령을 부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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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 주님의 사랑안에 거하는 방편/ 요한복음 15장 9절-15절/ 1981. 12. 11. 금새벽 선지자 201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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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라/ 야고보서 1장 12절-18절/ 1984. 2. 12. 주일오후 선지자 2015.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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