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기쁘시게 하자

 

1989. 5. 12. 금야

 

본문 : 고후 5 : 8 - 10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번 집회는 아마 대구 집회가 시작한 지 후 모인 수로서는 제일 많이 모인 것  같습니다. 그러고 때가 됐는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도 평소보다 좀  특별했습니다. 육체의 병 나은 것도 아직까지 보고는 다 받지는 안했지마는 많은  사람들이 치료함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사람병 고친 그 결과로 그저 나타낸  것이지 그보다 사람병은 이번에 많이 고쳐졌으리라 믿습니다. 이번 집회에  사람병을 고치지 못한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뭐 보고에 보니까 별별 병들이 있지마는 반신불수 두 사람이 일어나서 좋아서  뛰고 다녔습니다. 또 배가 아주 뭐 이렇게 불러 가지고 아무 병원에 다녀도 안  되고 이제는 희망이 없다는 사람인데 와 가지고 그 배가 딱 들어붙고 아주  깨끗이 나은 그 증거는 안 아프고 배 들어붙고 하는 그것이 표시였습니다.

 제가 그래서, 저는 뭐 나가지도 안했고 기도하지도 안했고 하나님 말씀 듣고 그  사람들이 말씀을 새김질 하면서 말씀대로 그대로 믿고 살고자 하는 거기에서 다  나은 것이지 뭐 누가 기도했거나 또 안수 했거나 그런 거 안 했습니다. 거기서 몇  사람이 저한테 와서 안수해 달라 하는 것을 그것은 나보다도 본인이 하는 것이  나으니까 하라고 미루고 하지 안했었습니다.

 그래 우리 OOO집사님의 부인 O권찰님을 바로 내 강사실 뒤에 천막이 있기  때문에 '아, O권찰도 한번 좀 일어서 보지.' 이라니까 그 때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애. 그래서 우리 집에 일하는 사람을 보냈더니마는 가니까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안될 모양이라고. 믿음도 약하고 소망도 약해. 그분은 못 일어났습니다. 그 좌석에  가지도 안했고. 천막 안에서 평안하게 앉았었지 그뭐 예배당에 가지도 안했어요.

옆에서 보면 저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은혜를 받겠다 하는 것을 보면 압니다.

사도행전에도 보면은 '그를 바울이 보고 그때 나올 줄도 알고 선포했고 또  하나님이 같이 하실 줄도 알고 말했다' 그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오늘 밤에 이 말씀을 봉독한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할 일이 뭐인가?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할 일이 뭐인가? 우리가 물론 주일도 잘 지켜야 되겠고, 또 성경도  부지런히 봐야 되겠고, 또 기도도 해야 되겠고, 전도도 해야 되겠고, 연보도  하여야 합니다. 이런 것 다 우리들이 할 일입니다.

 그것 다, 그런 것은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느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기쁘시게 하는 그런 도리를 깨달을려고 성경 보는 것이고, 기쁘시게 하는  자기와 생활이 될려고 기도도 하는 것이고, 주일을 지키는 것도 주일 은혜 받아  가지고 그런 사람 될려고 하는 것이고 또 전도하는 것이나 연보하는 것도 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지극히 크신 분으로서 우리가 주님의 일을  도와드리는, 주님의 일을 내가 수고해서 하는 거 그것도 귀하지마는 주님은 그 일  돕는 그것을 주님이 그렇게 가치로 삼지를 아니하십니다. 왜? 그분은  전능자입니다. 엿새 동안에 우주를 만드신 그분이시니까 뭐 인간의 조력을  요구하실 것이 뭐 있겠습니까? 다만 그것도, 주님을 위해서 수고하는 것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수고하니까 그것을 당신이, 그런 방편을 가지고 기쁘시게  하는 것을 당신이 받는 것이지 인간의 무슨 노력, 하나님께서 노동력이 모자라서  인간의 도움을 구하거나 그럴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또 사람이 물질을 바쳐서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해도 물질 바치는 것도 물질을  그렇게 주님이 귀하게 보시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이라 했습니다.

'너희들이 바쳐봤자 내것 가지고 내나 그리 하지 내거 아닌 것이 어데 있느냐'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연보궤 옆에서 주님이 연보드리는  사람들의 광경을 보시고 아주 불쌍한 여인이 아주 지극히 작은 돈, 엽전 한푼  드리는 그것을 보시고 '여게 부자들이 많은 돈을 드린 것보다 이 여인이 더 많은  연보를 했다' 그렇게 칭찬을 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과부의 돈이나 부자의 돈이나  백 원이면 백 원으로 같이 쓰여지지 뭐 별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는고 하니 그 다음에 해석을 하시기를 '너희들은 다 쓰고  나머지기 드렸지마는 이는 이것이 자기 연명할 것인데 연명할 것을 바쳤다'  그렇게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연보의 액수보다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자기의  성의를 그것을 평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물질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 데에도 물질 거게다가 가치를 두지 말고 주님의 대속을  생각하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이분이 내게 대해서 참 형언할 수 없는  큰 사랑과 희생을 하셨으니 이분에게 내가 어떻게 해서 은혜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행동을 할까 하는 그 간절한 마음에서 물질을 바칠 때에 그 물질이  많으나 적으나 주님은 기뻐하시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물질의 액수야 많으나 적으나 그거는 상관 없다. 예, 상관  없습니다. 상관 없으나 우리라는 사람은 마음에 간절함이 있으면 제 힘 있는  데까지는 그 힘을 기울여서 물질로도 하나님께 바칠려고 하는 것이 필연성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간절을 바치는 데에 좋은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님의 은혜를 감사한다 할지라도 자기에게는 물질이 있는데 그 자기  가진 물질 중에 하나 찌끄러기 그런 거 하나를 바치면서 '주님이여, 내가 주님을  참 감사함으로 이제 은혜에 감격해서 내가 바칩니다.' 아무리 이렇게 마음을  그렇게 먹고 그렇게 할라고 해도 그렇게 되어지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할라 하면 자기 정성도 그럴 뿐 아니라 또 물질이라는, 그 노력이라는  그런 것들도 그 양이 가장 자기 힘 쥐이게 힘껏 하는 그런 일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물질에 대해서 또 많이 바치고 적게 바치는 그런 것이 되는  것이지 깊이 분석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것만이 당신에게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자, 뭘 가지고 하나님을 대접할라고 해도 그것이 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이요 하나님이 주인이니까 하나님의 것이니 그것을, 제게 있는 것도 다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이 그게 뭐 모자라서 그렇게 그것이 필요해서 '나를  이렇게 물질로 도와주니 참 기쁘다, 고맙다.' 그리 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노동력으로 해도 또 그걸로 가지고 당신이 모자라서 우리의 바치는 것을  기뻐하고 만족히 여기는 그럴 분도 아닙니다. 왜 그분은 창조주시요, 대주재시요,  모든 것의 주인이시요, 또 전능자시요, 창조주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러니까 우리 모든 생활의 골자가 주님의 사랑의 대속을 깨닫고 그 사랑의  대속에 대해서 감격해서 감사해서 감사해서 마음에 참 감사해서 우러나는 그  마음 가지고 이런 일도 저런 일도 할 때 다 하나님에게는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지마는 그것 없이 뭐 노동력이나, 또 물질이나, 자기의 뭐 충성이나, 자기의  무슨 어떤 깨끗한 도덕 생활이나 거게다가 가치를 두면 다 외식이요 헛일입니다.

 우리가 우리 언행심사에 모든 그 생활에 주님의 대속을 생각해서 감사하고  감사해서 어떻게 하면 이분을 기쁘시게 할까 하는 그 간절한 감사의 성의로 이것  저것을 하는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은의 정성과  사은으로 이제 '나를 위해서 큰 희생으로 구원하신 주님을 이제는 기쁘시게 해야  되겠다' 하는 그 참 깨달음의 성의로 하는 그것을 주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전생활이 세상에서 뭐 할 일도 많고 중요한 일도 많다고 하지마는  우리의 모든 생활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것이 우리의 전생활이 돼야 됩니다.

시작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시작되어야 하겠고, 마지막에 결말 짓는 것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결말이 돼야 되겠고, 모든 진행 과정도 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진행 모든 과정이 되어야만 하겠습니다.

 왜 그런고 하니,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그분이 대신 멸망의  그 모든 해를 받으시고 우리를 구출하셨고, 또 우리가 하지 못한 모든 준비를  그분이 대신 죽기까지 힘써서 준비해 가지고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이 의인으로 돼 가지고 있고, 그 수없는 연약해서 몰라서 또 욕심으로 인해서  범죄한 것이 많은 우리 죄에서 다 그분이 대신 형벌받아 가지고 구출하셨기  때문에 주님이 우리 위해서 나를 위해서 참 말로 할 수 없는 큰 사랑의 고난을  받으시고 나를 구원하기 위해서 큰 고난의 수고를 하셔 가지고 나를 구원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내게 더해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그 일이 많고 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되겠습니다.

 세상에는 뭐 부모도 있고, 가족도 있고, 이런 저편 은인들도 있고 오만 사람들이  있지마는 주님이 내게 대해서 행하신 것과는 비교를 못 합니다. 이렇게 나 위해서  큰 사랑 베풀었고, 큰 희생을 했고, 큰 멸망을 거게서 구출해 주셨고, 또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큰 구원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생도 주시고, 부활도 주시고, 지극히 크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이  권위를 우리에게 주시고, 뭐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고난과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큰 구원을 주셨고 큰 복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이미 받은 것이 크니까  우리는 그분에게, 참 아무 데 빚진 것도 있겠다 할지라도 그런 걸로서는 비교도  못 되는 큰 사랑의 빚이 졌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우리의 남은 여생의 생활이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이것이 우리의 생애가 되어야 하겠고, 이미 주신 이 사랑과  큰 구원과 나를 위해서 사랑의 큰 희생을 큰 고난을 당하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큰 수고를 하신 이미 나를 위해서 행하신 것과 내가 받은 것이 크기 때문에 그저  땅위에 사는 생활은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전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앞으로 지금 세상 그치고, 끝나고 나서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지옥의 형벌받을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생명 가지고  무궁세계에 가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면 무궁세계에 가서 영원히 살 때에 또  우리는 다른 이 앞에 살 것이 아니라 그분 앞에 가 살아야 되겠고 그분 슬하에서  그분 모시고 살아야 되는데 크고 작은 모든 것을 다 그분에게 또 공짜배기로  얻어 가지고 살 우리들입니다. 뭐 그때에 내 생명도 건강도 나에게 있는 모든  행복도 평강도 내게 필요한 오만 것을 다 그분에게 받아 가지고 살 우리들입니다.

다른 데서는 하나도 줄 이도 없고 받을 이도 없습니다. 우리가 무궁세계에 가 살  때에는 우리에게는 무엇이라도 필요한 것을 줄 만한 것은 천사도 줄 자격이 없고  천군도 줄 자격이 없고 아무도 줄 자격이 없는데 그 분만이 우리에게 줄 자격을  가졌습니다. 이러니까 이미 받은 바의 이 지극한 사랑의 이 수고의 은혜와 앞으로  영원 무궁토록 그분에게 우리가 받아 가지고 살 것이고 그분의 인도와 보호와  모든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그 은혜를 받아 가지고 살 것이기 때문에 과거를  인해서 그 분만을 기쁘시게 해야 되겠고 또 미래 영원을 위해서 그분만을  기쁘시게 해야 될 것이 우리들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어떤 그 사랑의 빚을 졌으며 어떤 고난으로 우리를  어떤 고난에서 구출했는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있는 모든 받은 바의 은혜와  형편을 우리는 날마다 생각하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돼야 되겠고, 또  앞으로 잠시 후면 그분에게 가 가지고 영원토록 그분의 신세를 져야 할 분이요,  또 그분의 은혜로만 살 분이요 전부 그분의 것이 아닌 것이 없는 그분 앞에 가서  그분의 것으로 긍휼과 은혜로 살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전 할 일입니다. 그러면 과거 미래 이 두 가지,  그분이 우리에게 베푸신 이 일을 생각하므로 우리는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이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이래서 사람이 심령이 밝아 양심이 깨끗해서 그분이 나에게 대해서 한 것을  자꾸 이렇게 생각해서 알아가는 사람은 자기가 소유와 몸과 생명을 다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도 항상 마음에 부족해서 마음에 갈급한 그 마음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모든 지나간 깨달은 성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전생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애가 돼야 되겠는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이런 거 저런 거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합니다. 뭐 전도도 하고, 심방도 하고,  또 연보도 하고, 또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구제도 하고, 또 죄도 안 지을라고  이렇게 모두 다 생활하는 것이 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할라고 이렇게  합니다. 하는데 모든 우리 신앙 생활에서 껍데기와 알맹이를 똑똑히 구별해야 될  것은 우리가 껍데기는 이런 일 저런 일, 저런 방편 이런 방편 이렇게 하는데, 이런  방편 저런 방편, 이런 일 저런 일을 하는데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거게다가 가치를 두면 안 됩니다. '나는 연보를 얼마  했으니까 주님 앞에 할 일 했다. 나는 또 전도를 지금 얼마나 일생 동안 분투  노력했기 때문에 할 일 했다. 나는 또 무슨 교회의 복음 운동을 위해서 이런 일  저런 일을 했으니까 나는 주를 위해서 가치 있는 일을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그 참 뜻을 알지 못하고 외식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그런 것은  그것뿐이라면, 주님에게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이래서 이사야 l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다. 너희들이  나한테 와 가지고 이런 예물 저런 예물을 드리고 이런 또 규례를 지키고 저런  규례를 지키는 것이 내게는 무거운 짐이다 무거운 짐이다. 다시 가져오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이 껍데기 그것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주님에게는 아무런 당신에게는 합당치 아니한 그런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은의 마음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이런 것도 저런 것도  하면은, 물건이나 일이나 노력이나 그런 데에 가치 있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대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것과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는 그 성심 성의,  주님을 경외하는 거기에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기쁘시게 할 수가  있는가? 간단합니다. 이번에도 공부한 거와 같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그저  간단하게 네 가지라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생명생활 하면 됩니다. 영생하는 생활 하면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됩니다.

생명 생활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은 몇 가지로 된 것이 우리의 생명이라고  했습니까? 손가락으로. 몇 가지로 된 것이 우리의 생명이라고 했습니까? 한번  뻐뜩 들어 봐요. 뭐. 푹 한번 들어봐요. 뭐 교만하게 이래 가지고 장난삼아 그라고  있어? 이렇게 높이 이래 들어야지. 그래. 그런데 이 산 생활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그러면 산 생활은 뭐인가? 어짜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우리가 희망이 있지 주님이 그만 내몰라라 해버리면 그만입니다.

주님이 내몰라라 하고 주님과 우리와의 그 사이가 잘못돼서 주님이 안면을  돌이키면 그만 헛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들이 하나님이 안면을 외면을 했을 때에 그  외면한 안면을 돌이켜 달라고 하는 거게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없이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 삑 돌아가면 그만이오. 그분이 또 돌아갈 수 있는  원인이 있으면 안 돌아갈래야 안 돌아갈 수가 없는 거라. 이러니까 그분이 우리를  기뻐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돕는다면은 우리에게 문제가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저 간단하게 생명 생활 네 가지, 우리가 어짜든지 죄 안  짓는 생활해야 됩니다. 죄 지으면 그분하고 나하고는 그만 서로 외면이요 대적이  됩니다. 죄 지으면 그와 나와 대적이고 내가 죄를 지을 수 있을 그때에 그분을  생각하면서 죄를 안 지을려고 하는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오. 우리가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은 얼마나 힘이 듭니까? 힘이 드는데 돈  보고 살 것 같으면 그만 중단하고 명예나 지위나 권세나 출세 위해서 하는 것  같으면은 옳은 일 의로운 일을 하다가 중단하지마는 나를 대속하신 주님을 위한  의로운 일이기 때문에 내가 죽어도 하다가 죽어야 되지 그걸 중단할 수 없으니까  주님의 대속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크고 작은 옳은 의로운 일을 하는 것이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크고 작은 그 의로운 일 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오. 또 내가 잘못하면 우리는 그안 나하고 사람하고 둘이  합작해 가지고 살기 쉽고, 나하고 사건하고 합작해 가지고 살기 쉽고, 나하고  물질하고 합작해 가지고 살기 쉽고, 그리 다니면 나 혼자 살기 쉬운데 언제든지  대속하신 이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모시고 히나님과  그 에녹처럼 동행하는, 에녹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삼백 년을 동행하다가 산 채로  승천했습니다. 이거는 계시 기관으로 우리에게 도리를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영생이다 하는 그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안 잊어버리고 살려고, 하나님 안 잊어버리고 살고  이 시간도 내가 하나님으로 인하여, 주님으로 인한 게 하나님으로 인함이요  성령으로 인함이 하나님으로 인함이요 아버지로 인함이 하나님으로 인함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살려고, 하나님  잊어버리지 안하고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때문에 시작하고, 하나님  때문에 중단하고, 하나님 때문에 버리고, 하나님 때문에 취하고, 하나님 때문에  참고, 하나님 때문에 열심을 내는 것, 요것이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하는  것입니다. 요 세 가지.

 요 세 가지 그 외에는 뭐이냐? 그 외에는 하나님의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  진리대로 사는 것, 성신의 감화대로 사는 것,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땅에  소망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사는 것. 자기가 뭐 장사를 해도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또 무슨 공부를 해도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뭣 때문에 공부하느냐?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주님에게 두는 소망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망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소망으로 이렇게 하나님에게 소망 두는  하나님을 소망하는 요 마음을 가지고 하는 요 알맹이가 있어야 됩니다.

 이래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오늘 밤에 또 여섯 가지로 배웠습니다. 여섯  가지. 진리, 영감, 사죄, 칭의, 화친, 하나님을 향한 소망 요 여섯 가지 요 생활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 요것만 하려고 하면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됩니다.

 이래서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내게 있는 산 것과  행복이 있는 것은 전부 그분의 것이오. 이러기 매문에 뭐 그저 눈뜨고 썩 지나가  버리면, 자기에게 직장하나 말해 준 사람이 감사하고, 자기에게 자본 대 주는  사람이 감사하고, 자기의 사업의 길을 열어 준 그런 것은 감사하지마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대형으로 나에게 사죄 주시고 대행으로 칭의 주신 그런  거야 뭐 크게 여겨집니까? 그거는 우리 심령이 어두워져서 그런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것이 내세 멸망할 것만 추리고, 내게  멸망할 것 추리고 생명과 평강의 요소로 있다 하면은 그분에게 받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전부 그분에게 받은 것입니다. 그분에게 받지 않은 것은 전부, 멸망할  것뿐이오. 이제 과거, 현재 내게 있는 것이 전부 그분에게 받아 가지고 있는  첫이고 또 앞으로 영원 무궁토록 그분 모시고 그분의 것을 받아 가지고 살  우리들입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그런 거 생각하면 넉넉히 알 수가 있습니다. 내나 저거 집에서  자라던 그 처녀가 이제는 시집을 가면 내가 시가집에 가 살아야 될 터이니까  그때부러 자기가 살 걸 생각하니 뭐 친정에는 떠나는데 마음에는 속으로는  그렇지마는 껍데기라도 시가에다가 마음을 기울이지 안할 수가 없어. 뭐 사람들  이거 간단합니다. 자기가 앞으로 지금 앞으로 자기에게 도움이 되고 자기를  보호하고 자기의 죽고 살고 모든 것이 그분에게 달렸다 하면은 자연히 그분에게  자기의 모든 성심 성의가 기울어질 수밖에 없고 또 이미 자기가 받은 것이 다  어떤 분에게 다 받아 구비했다 하면은 자기는 사은이라 하는 그 생활은  필연적으로 잊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받은 것도 크지마는 미래에 앞으로 받을 것이 우리에게 충격을  더 주고 우리 마음에 자극을 더 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요게 하나라.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요것이 나의 할 일이라 하는 걸  생각하고 주님을 기쁘시게만 하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일도 가치가 있습니다. 가치가 있으나 그보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은 당신이 이미 주신 그 은혜를 가치를 깨닫고 그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그것이 주님께는 더 기쁨이 된다 말이오. 기쁘시게 하는 그  일보다도 나에게 베풀어 주신 지극히 큰 대속의 가치를 깨닫고 이 대속에 대해서  감사하는 요걸 깨달은 것이 주님에게 더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런 일 저런 일 하는 것보다도 앞으로 내 영원 무궁이 그분에게  달렸기 때문에 그분을 소망하는 것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것이  주님에게 더 기쁨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로부터 현재, 현재로부터 영원무궁이 주님과 나와의  관계점을 이래 생각을 하면서 우리 전생활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  되어져야 되겠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이 되어지면 하나님께서는 이제  과거로부터 현재, 현재로부터 미래라는 이것을 은혜를 모르고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은헤 잊어버리면 그 은혜 쏟아 버리고 마는 것이니까, 은혜에의  가치를 깨닫고 미래의 은혜의 가치를 깨닫고 이것 때문에 현재 생활에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생활을 하니까 주님은, 이 세 가지 생활에서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현재 이러니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사은의 생활을 합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가 있는데, 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 뭐입니까? 과거로부터  나에게 주신 이거 큰 것, 또 앞으로 영원히 나에게 지금 베풀어 주실 큰 것, 이것  때문에 내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면 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 하나님께서는 어느 것을 더 가치로 여기겠습니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것도 가치 있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 일도 가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것보다도 과거에 그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를 귀중히 알아서 보존하고 사은하는 그게 되니까 주님이 더 기뻐하시고,  앞으로 또 그분에게만이 얻는 것이니까 그분에게 소망을 가지고 현재 기쁘시게  하는 이걸 하니까 당신에게 소망 가지는 이것을 당신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두 가지, 과거 미래 영원을 위해서 기쁘시게 하는 이 노력을 할 때에  주님은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제 떠나든지 거하든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하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어떤 생활이라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이것을 생각을 가지면 벌써 거기서  성령이 오시고, 우리에게는 성결이 오고,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아주 능력이  옵니다. 깨끗한 그 정력이 오고 정성이 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그저 자꾸,  저 먼저도 그걸 말했지마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뭐할라고 기쁘시게 하노?'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그 은혜 때문에 그렇다. 또 미래 영원의 은혜 때문에  그러하다.' 이래서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때문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 하는데 그분이 완전자이기 때문에 그분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면는 벌써 우리에게는 성결이 오는 것입니다. 무슨 일 할 때  '아, 이라면 그분이 노여워하시겠느냐? 그분이 기뻐하시겠느냐?' 이걸 생각하면  거게서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정상화되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진영에서 여신도로서는 저 OO교회에 최기주 집사님이라고 세상을  떴는데 그분의 신앙이 제일 으뜸가라 하는 그런 것은 여러 가지 경험을 해 보고  제가 그렇게 말하는데 그분은 참으로 '주님이 노여워하시면 어짤까?' 벌벌 떱니다.

'주님이 노여워하시면 어짤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뭐 생사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해를 가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왜 그러냐? 그거 내가 한번, 무엇 때문에 이분이 이라는가  한번 둘이 앉아서 물어봤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그라느냐?' 이래 물으니까 바로  gie.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받은 바 은혜가 이러니까' 말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이러니 내가 그분을 기쁘게 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또 내가 누구를  보고 살겠습니까? 앞으로 영원 무궁토록 그분의 통치하에서, 그분의 권세하에서,  그 분의 주권하에서, 그분의 모든 대주재이신 그분의 것 가지고 영원히 살아야 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땅위에서 섬길 것이 그분 외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그걸  깨닫고 믿어.

 그래서 오늘밤에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우리도 기쁘시게 하는 요게 대해서 세  토막, 기쁘시게 하는 데에는 가운데 토막이고 먼저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받은  바의 은혜에 사은, 또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그 바라는 소망의 은혜,  이거 위해서 기쁘시게 하는 일 하는 거. 기쁘시게 하는 일 이것을 하나님이  가운데 토막을 기뻐합니까? 가운데 토막을 기뻐하는 것과 양쪽 두 토막 때문에  가운데 토막을 기뻐합니까 가운데 토막이 기뻐서 기뻐합니까? 뭐이요? 어느  것입니까? 어느 거요? 자, 양쪽 이거 때문입니까 이것(가운데를 표시) 때문에  입니까? 자, 이것 (가운데를 표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분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것보다도 이것(양쪽을 표시) 때문에라고 생각 하는 분 손 들어  보십시오. 이것 때문에야. 우리는 요렇게 구별해서 믿어야 되겠습니다.

 반사 선생님들은 공과를 외우고 실천해서 실천의 경험과 체험을 가지고 해야 될  것입니다. 하루 삼십 분 기도 얻지 맙시다. 자기 미래를 위해서 삼십 분 기도  잃으면 앞으로 감당 못 합니다. 또 그라고 새벽 기도에 빠지지 말고 계속해  나오도록 하고 또 부장 선생님께서는 자기에게 맡겨 주신 그 모든 신앙의 후배,  자녀는 마음 속에 넣어 놓고 길러야 합니다.

 녜,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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