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주의 말씀


선지자선교회 1983년 3월 20일 주후

 

본문 : 마14:22-33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우리가 만나고 있는 큰 환난, 이 환난이 이리 되든지 저리 되든지 지나가기까지는  누가복음 l3장에 있는 이 말씀을 우리들이 잊어 버려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지  기억하고 회개에서 회개로 전진하여야만 좋은 날을 볼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그 어려운 그때에 우리가 회개하면서 힘이 드는 그 힘의 몇십 배를 우리가 힘을  들여야 되고 또 고통도 당하고 멸망도 받습니다. 요엘서의 한 말씀도 놓지 말고  단단히 기억합시다.

 오늘 봉독한 이 말씀은 우리가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는데 그 형편과 노정을 이  실물 계시로 상징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는 우리가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는 모든 고난과 빠지면 죽는 위험성을 가진 세상을 상징한  것입니다. 거기에 배를 타고 간 그 배는 우리의 믿음의 생활을 상징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한자욱 한자욱의 걸음으로, 빠지면 죽는 이 세상을 물 위로 걸어서,  배를 타고 믿음 속에서 하나님의 안보의 은총을 입어 세상에 빠지지 아니하고  구원의 언덕에 서는 것을 가르쳐 주신 하나의 계시입니다.

 여게서 우리가 간략하게 생각하기 쉽도록 여러분들이 자세히 들으면서 이 형식  계시가 문서로 되어서, 문서 계시가 돼 가지고 우리에게 전달돼 주셨으니 우리 구원  도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자세히 듣고 깨달으려고 애를 쓰면  양심을 쓰는 것만치 깨달아집니다.

 여기에 셋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계셨고,  하나는 주님의 명령을 받아 배 타고 갈릴리 바다에 출발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었고, 하나는 풍랑 만나 심히 두려워 떨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언제나 변하지 아니하시고 그대로이지마는 제자들은 겉은 그  사람이지마는 속은 같은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으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말씀을 하실 때에 그들은 말씀해 주신 주님과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에 가득차, 주님과 주의 말씀으로만 충만한 제자들은 배를  타고 육지를 떠났습니다. 그때 그들은 무슨 세상의 사업이나 분주한 영광이나  복잡한 그런 일들은 하나도 그들 마음 속에 없었습니다. 또 그때는 어떤 위대한  학자나 정치가나 재벌가나 그런 인물도 하나도 그들에게는 상대가 되지를  아니했습니다. 그저 사람으로서는 저희들이 의지하고 따르는 랍비 예수님 한 분만  그들은 상대되었고, 또 주님이 '이제 배타고 건너가라' 하는 이 말씀만 그들 마음에  가득 찼었습니다. 참 깨끗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배를 타고 주님이  가라고 하는 목적을 행하여 출발할 때에 아무 거치는 것이 없이 순조롭게 육지에서  수리를 무사히 떠났습니다.

 그랬는데 가다가 뜻밖에 풍랑이 알어나서 그들은 가지를 못하고 온갖 어려움을  당했고, 어려움을 만날수록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은 자기네들이 옛날 배 타고  어부 노릇할 때에 경험하고 체험하고한 그 모든 인간 지식, 그 지식으로 점점  바꾸어졌습니다.이러니까 제자들은 서로 자기네들 경험을 가지고 '지금 무슨 바람이  부니까 이럴 때에는 뭐 닻을 어떻게 해라, 노를 어떻게 저어라.' 점점 주님이 하신  말씀은 그들 마음에서 떠났고 저들의 믿지 아니할 때의, 그 갈릴리 바다에서 살던  그 지식만 점점 저희들에게 충만해졌습니다.

 또 그들이 바다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신 주님이 하나님인 줄도 알았고,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인 것도 알았고, 저들의 구주인 것도 알았습니다. 왜? 나중에  보니까 '참으로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말한 것을 보면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또 그 뒤에 그들이 놀라서 못 견딜 때에 주님의 음성이 '내로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는 주의 말씀이 임할 때에 그들에게 있던 모든 염려와 두려움은  다 그 빛에 물리침을 받은 걸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듣고 '유령이라' 고함을 지르고 죽겠다고 두려워했지마는 주님이 '내로라.

두려워 말라.'는 그 말씀을 들을때에, 베드로는 '주시어든 나를 물위로 걸어서  주님에게 오게 하옵소서' 이제까지 배 안에 타고도 무서워 견디지 못하던 베드로가  물위에 육지같이 뛰어 내릴 수 있는 담력과 평강을 가졌던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또 주님이 배에 오르시니까, 풍랑에 대해서 말씀하시지도 아니했지마는, '주님이  함께 배에 오르시매 풍랑이 잔잔하더라' 했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전체를 볼 때에 그들이 처음에는 순조롭게 목적지를 향하여서  항해하게 되었는데 왜 갑자기 가다가 풍랑 만나고 바람에 거슬려서 가지를 못하고  그렇게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받게 되었던가?  이것을 인연하여 (조 학생들 조금 바꿔 앉으면, OOO 선생, 고 한 가운데에 한 번  끼워 앉아 보십시오. 옳지, 그러면 고 학생들도 좋고 다 좋지요. 조리 내시고, 고  학생 좀 바꾸어 보십시오. 이제 학생들도 선생님 모시면 좋고) 그걸 봐서 우리가  다른 해석을 붙일 수가 없고 고 본문이 해석 해 주는 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들이 순조롭게 갔던 것은 그들 속에 주님이 내주해 계셔서 주님으로 충만하니까,  주님의 능력이 역사하고 또 주님의 말씀이 그들 안에 있으니까 말씀의 능력이  역사하고, 그들은 이 사실을 믿고, 인정하는 믿음을 가지고 아무 것도 힘들이지  아니하고 배를 항해하여 순풍으로 갔던 것입니다.

 다른 데도 보면 '네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네 안에 있으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다 이루리라' 우리 믿는 사람 안에 주님이 내주 하셔서 나를 주장하시고, 나는  그분을 사모하고, 나는 그분으로 인하여 움직이고, 그분이 말씀하신 모든 약속의 이  교훈의 말씀이 우리의 움직임을 주관할 때에 우리는 능치 못함이 없는 이 위치와  소속을 가진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믿고, 이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주님이 무슨  대접을 해 달라고 합니까? 무슨 요구를 하십니까? 당신을 내 안에 구주로 모셔 내  인격을 주관하게 하시고, 그는 하나님이시요 피로 값주고 샀기 때문에 나는 당신의  것이니까, 당신의 종이니까 당신이 나를 주관하는 것이 당연한 예법입니다. 나는  주관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이 내 온갖 속성을 주장하게 하고, 그분이 나에게 신구약성경에 생의 법칙을  주셨고, 하나님에게 대해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금생과 내세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간단하나마 빠진 것 없이 우리에게 구비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알려주신 이 말씀을 내 법도로, 잣대로, 내 저울추로, 내 지남침으로  이렇게 삼아 가지고 주님 모셔 주님이 나를 주관하게 하시고, 주님이 주신 이  법도를 내가 지켜서 나가는 이 걸음은, 이것은 이 세상을 십자가의 도니까, 고난의  도인 줄만 알아도 믿음 없는 제 삼자가 볼 때에 고난이요, 믿음을 떠날 때에  고난이지 믿음 가진 자에게는 고난이 되지 않습니다.

 요셉같은 그런 고난당한 것이 정말로 요셉에게 고난이었습니까? 가는 곳마다  천국이요, 가는 곳마다 왕국입니다. 보디발 집에 갔을 때에도 그렇츰 종으로 잡혀온  사람이 존귀하게 됐으면 됐지. 감옥의 죄수로서 구금된 자가 옥사장의 대리  행사했으니까 그만하면 능하지 않습니까? 사자 구덩이 집어 넣은 것이 그렇츰  고생이고 멸망이지마는 다니엘에게는 영광이요 한 없이 기뻤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모셔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셔 자기는 하나님의 전이 되고 하나님의  계략은, 전지의 지혜를, 전능의 능력을-독자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는 이 진리, 우주  만물을 지으실 때 하나님은 말씀을 가지고 말할 때에 말씀은 시공자입니다. 말씀은  천지 만물을 지으신 시공자요. 시공의 능력이오. 이 시공의 능력을 명령하신 이는  하나님이시오.

 이러니까 믿음이 없을 때에 고통이지 믿음 있는 다니엘에게 왕이 말 해도 당신이  모시고 있는 허락받은, 하나님이 진리로 명령해서 지은, 자기가 자기에게 받은  하나님의 법칙, 자기 법칙, 하나님이 주신 자기 법칙, 이 자기 법칙이 지어 놓은  사자가 나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놀랐지마는 그는 기뻐하기를, 마치 홍해 바닷가에서 믿음 없는  백성들은 기절할 만치 놀랐지마는 모세니 여호수아니 갈렙이니 하는 사람들은  기뻐하면서 '또 하나님의 신기한 솜씨를 이 어두운 백성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너희들이 참아 구경해라.' 했습니다. '참아 구경해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 좀  구경해라.' 구경은 보기 좋은 것을 구경하지 흉한 걸 구경합니까?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이 말씀은 주님을 그 안에 모시고, 주님은 산에 기도하러  가셨지마는 주님의 영인 그리스도 영은 그들 마음 속에 계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은 그들 마음 속에 있었습니다.

 그 말씀의 법대로 순종하여 주님이 명하신 대로 이렇게 걸어갈려고 할 때에 갈릴리  바다는 이 제자들에게 다 순응했고 협조만 했지 방해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여게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억지 해석이 아니라 달리는  해석을 못 합니다. 그 전체를 다 종합을 한다면 그들이 주님을 자기 안에 주로  모시고 주의 명령하신 말씀을 저들의 행해 법칙으로 알아서 이렇게 바다에 달려든  그 제자들이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제자들에게는 형통입니다. 방해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이런 예수 믿는 사람도 있습니나. 주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주의 말씀을 자기 안에 법칙으로 삼아, '나는 주님으로 인하여서만  움직이겠다. 움직이되 당신이 주신 법칙대로 움직이겠다' 하는 이 사람이 풍랑  만나기 전, 바로 예수님과 서로 나뉘어서 출발한 그 제자들입니다. 이 제자가 여게  있을 것입니다. 이 제자는 능력있는 제자입니다. 우리는 이 제자도 될 수 있습니다.

 잠시 후에 서로 보고 말하는 가운데 그만 주님은 잊어 버리고 저희끼리 말하고  주고 받고 하다 보니까, 이 사람 저 사람 인간만 서로 상대하게 되고 주님은 잊어  버렸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은 차차 멀어졌지 이 사람 말 저 사람 말 자꾸 주고 받고  하다 보니까, 인간 말만 가득 차서 '저 사람이 이 말 하니까 나는 또 이렇게 말해야  되겠다. 아무 것이는 그래 말하니까 섭섭하다. 뭐 감정을 품어야 되나 뭐 어떻게  했다. 고거는 요렇게 한 마디로 받아 건야 되겠다.' 저희끼리의 인간 말만 차차 그들  속에 차게 됐고 하나님은 안 보이고 사람들만 저들이 상대하는자 된 그 제자들  있었습니다.

 그 제자가 되어짐에 따라서 풍랑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배는 거슬려 가지를  아니합니다. 안 가니까 안 갈수록 저들의 말은 많아졌고 저희의 인간은 '이래 봐라.

저래 봐라' 인간만 가득 차서 완전히 주님과 주의 말씀은 다 배격해 버렸고,  저희들과 저희들의 말만 가득히 찼을 때에 그들은 전진하지를 못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기독자들입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은 그가 세상에 갈  지(之)자 걸음으로 이것 저것 뭐 한다 할지라도 절대로 하나님 앞으로 일보도  전진하지는 못합니다. 추호도 성화로 변화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다가 무서워 죽겠다고 야단지길 때에 그들이, 그때는 주님 찾지도 안했어.

찾지도 안했었는데 주님이 기도하시다가 그들의 형편을 아시고 부르짖기 전에 찾아  왔습니다. 우리가 뭐 부르짖어야 온다고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부르짖기 전에  주님은 찾아오셨소, 형편을 알고.

 구원으로 찾아오셨는데, 구원으로 찾아오신 그 주님이 물귀신으로 보여지는,  물귀신으로 보여지고, 물귀신이라고 말한 그 제자도 있었습니다. 그 제자들이 무슨  지식을 가지고 예수님을 물귀신이라고 유령이라고 했겠습니까? 무슨 지식입니까? 그  지식이 풍랑을 일으킨 그 지식입니다. 인간의 지식이오, 인간의 지식. 세상에  학박사의 몇 십을 딴다 할지라도 그 지식이 절대 우리를 구원하는 것 아닙니다.

호리도 구원은 주지 못합니다.

 그들이 부모에게 대대로 받은 지식, 저들의 경험 지식, 체험, 지식,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 모든 것은, 처음에는 순조롭게 가는 배를 풍랑을 일으켜 가지고 가지  못하게 만들었지, 바람이 이니까 우리는 죽는다고 죽겠다고 야단을 지겼지, 풍랑  이는 것 보고 죽겠다고 놀라게 한 그는 누가 놀라게 했습니까? 놀라게 한 건 누가  놀라게 했습니까? 놀라게 한 그게 내나 풍랑 일게 한 그놈이 내나 놀라게 했소.

그것이, '여기 갈릴리 바다에 벌써 수리가 왔으니까 여기에 수심이 어떻게 된다.

물에 빠지면 죽는다. 여기서는 헤어날 길이 없다. 이런 풍랑에서 살아나지 못한다.'  그 지식이 예수님에게 받은 지식입니까, 그들이 어부에게 받은 인간 지식입니까?  인간 지식이오. 자, 인간 지식이 전진 향상하지 못하게 했지, 못하게 해 놓고 그  형편에서 두려워 견디지 못하게 졸리게 했지. 기독자들이 이 세상에서 이런 저런  고통을 당해 가지고 죽겠다고 야단지기고 근심하고 고통하고 하는 이 모든 근심  고통을 주는 그 지식이 무슨 지식입니까? 그게 내나 인간 머리에서 나온 인간  지식이요 하나님의 지식은 아닙니다. 성경 지식은 '네가 주홍같고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된다. 회개하면 땅에서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된다.' '하루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정말로 회개하면 사함을 준다.'  그게 풍랑을 일게한 것이지, 그들에게 옛 지식이지, 그래놓고 풍랑 속에서 죽도록  기진맥진하고 기절할 만치 놀라게 만든 그것이 그 지식이지, 구주가 찾아왔는데  찾아온 구주를 유령이라고 해 가지고 저들이 두려워하고 배척했으니 그것이 내나 그  지식 그것이 그래 했지. 또 베드로가 물 위로 정금정금 걸어가다가, '아이구 내가  이렇게 풍랑이 심한데 내가 물 위로 걸어가다니 이럴 수가 있겠느냐?' 그것은 무슨  지식입니까, 그거 무슨 지식이오? 예수님이 주신 지식입니까, 인간들이 준  지식입니까? 인간들이 준 지식이오. 그래 가지고 빠져서 죽게 만들지 아니했습니까?  여러분들, 이 말씀에서 완전히 인간의 지식을 배격하는 이 회개를 해야 됩니다.

'주여! 천지는 변해도 주의 말씀은 획 하나도 변하지 아니하오니 주의 말씀, 그  지식으로 내가 살겠습니다.' 주의 지식이 된다 하면 되고 안 된다 하면 안 되고,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암만 죽음이라도 이게 복되다 하면 내가 복인 줄  알고, 암만 이 죽음에서 살아나와도 이것이 멸망이라 하면 멸망인 줄 알고,   주님의 지식만이 우리를 전진 향상 성장케 하고 주님의 지식만이 우리에게 평강을  줍니다. '내로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는 그 지식은 누구의 지식입니까, 누구의  말입니까? O 집사님, 누구 말이오? 주님의 말씀이지. 주님의 말씀은 처음에 배를 잘  가게 하더니마는 두려워 떨려서 죽을 지경에 주님의 말씀이 '내로라' 그 말씀 한 번  들으니까 베드로에게 두려움이 다 없어지고 물 위로 척 뛰어 내려 가려고 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이차적으로 그들에게 준 것이 무엇입니까? 담대를 줬고 평강을  줬습니다. 그 다음에 '물 위로 걸어오라 하십시요.' '걸어오라.' 인생이 물 위로 걸을  수 없는데 인간이 아닌 초자연의 능력의 그 걸음을 그 말씀이 걷게 했습니다. 물  위로 베드로를 누가 걷게 했습니까? 초자연의 능력의 걸음을 걷게 한 것이 그  말씀이지.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느냐 하시면서 손을 들어 일으키니까  안심하고 주님하고 같이 걸어갔습니다. 주의 말씀 따라서 배까지 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예수 믿기 전에는 멸망할 사람 한 사람뿐이지마는  예수님의 구속을 받은 후에는 사망과 죄와 마귀가 우리에게 왕노릇은 못 합니다.

왕권은 그놈이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의 공심판이 우리를 정죄하지 못합니다.

공심판에서 해방받았고, 마귀의 왕국에서 해방받았고, 죄의 왕국에서 해방받았고,  사망의 왕국에서 해방을 받아 자유했습니다. 우리는 자유하여 사요. 자유하며  살지마는 이것이 패전병 같이 돼 가지고 우리를 유혹하기는 죽는 날까지 유혹을  합니다.

 옛날은 우리가, 이 사대 왕국에 사로 잡혀 있던 종인 우리가 여게 서 해방받아  자유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사대 마귀의 왕국에 사로 잡힌 종과 같은 옛사람으로  망령을 부리고 그렇게 살 수도 있는 우리들이고, 새사람으로 살 수도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으로도 이 사람으로도 나는 살 수 있다.

 그러면 예수님을 모시고 진리의 법칙에 따라서 사는 나도 될 수 가 있고,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버리고 마귀의 유혹받아 가지고 내 다른, 유혹받은 나로서 살 수도  있으니 이 사람을 비교해 보십시오. 이 두 사람 중에 어떤 사람으로 사는 게 옳은  것인지, 어떤 사람으로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지 요걸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 안하고 믿지 않는 자에게 무슨 능력이 옵니까? 우리가 벌써 회개를 오래 동안  말했는데 그 동안에 회개를 했으면 회개 한자에게는 반드시 그이에게 빛이 비추었을  것입니다. 학개서에 보면 '성전 기초를 쌓는 그날부터 이전과 이후를 네가 비교해  봐라. 분명히 너희의 사업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것이 보여질 것이고, 네게  대해서 하나님이 간섭하시는 것이 보여질 것이고, 마귀가 네 속에 들어오지 못하고  너를 밖에서 유혹할 때에 그놈으로 더불어 싸우는 대적이 네 눈에 보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회개 안 하는 자는 옛날이나 지금 회개의 운동을 하나 하기 전이나 후나  꼭 같을 것이오. 이번 기회에 회계에 참예 안 하면 망합니다. 회개는, 가난도 회개  앞에는, 죽음도 회개 앞에는, 천대도 회개 앞에는, 멸시도 회개 앞에는, 실패도 회개  앞에는, 무지무능도 회개 앞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돕는 이가 없고,  내가 제일 비참하고, 다른 사람이 나를 방해하고 그런 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런고로 우리는 여게서 이 풍랑에서 보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과 주의  말씀으로 가득찬 제자로 될 때도 있고, 주님 잊어 버리고 인간 저희끼리만 서로  속에 가득 차고 저희들의 말로만 가득찬 제자될 때도 있으니 그 두 제자의 권위가  어떠하며 그들의 결과가 어떠한가 따져보십시오.

 그들이 예수님을 주로 모셨을 때에 잘 항해해 갔습니다. '물이 이렇츰 수심이  깊은데 우리는 죽는다, 우리는 죽는다.' 하는 그 지식은 누구의 지식이오? OOO씨.

그것이 인간 대가리에서 나온 지식입니다. 인간의 지식이오. 인간의 지식은 우리가  이용해 먹을 이용 물이지, 내 소유의 이용물이지, 인간 지식에게 내가 머리를 숙여서  그 지식대로 따라갈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지식만이 나를 지배하고 하나님의 지식은 나의 상전으로, 주로 모셔서,  하나님의 지식을 내 위에 모셔서 하나님의 지식에게 복종할, 그에게 복종할  지식으로 모시고, 인간의 지식은 어떤 지식이든지 내 형편에 따라서 이 지식 사용할  때에는 이 지식 사용하고, 저 지식 사용할 때에는 저 지식 사용하고, 사용하기 싫을  때에는 집어 던져 버리고, 이렇게 지식과 지식의 가치를, 권위를, 그 위치를 알아야  될 터인데 오늘은 인간 지식이 대가리가 되고 하나님의 지식은 발 아래 밟혔습니다.

그것이 음행의 포도주입니다. 자식 들이 하나님의 지식이야 모르든지 알든지 '인간  지식만 배워서 학교에서 일류 학교만 가면 된다. 공부만 우등되면 된다.' 네가 네  행동으로 너를 망칠 것이다.

 보십시오. 거기에 인간 지식과 예수님의 지식, 예수님의 말씀은 성경 지식이,  하나님의 지식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인 하나님의 지식인  신구약 성경 지식과 그들이 인간에게 배워 나온 모든 인간 지식 그 두 가지는  대조적으로 잘 이 세상을 걸어갈 때에 어떤 역할을 하며 어떤 결과를 맺는다 하는  것을 여기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도적이요 강도라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도리 이전에  인간에게 와 가지고 있는 그것은 인간을 멸망시키는 것만 하지, 인간을 멸망시키고  인간을 도적질하려 하는 마귀 그놈의 것이지 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과 주님의 지식은 바다를 잘 가게 했지. 놀래서 죽겠다고 야단을 칠  때에 주의 지식이 한 번 와서 턱 받아 들이니까 모든 두려움과 염려가 물러가고 다  평안했습니다.

 제자들이 다 평안했소. 그 평안함 얻은 것은 저희들의 주관, 선입적 관념, 기존  지식, 경험, 체험 그 지식 가지고 평안했습니까? 아니오. 주의 음성으로 평안했어.

주의 말씀으로 평안했어. 주님의 지식이 우리에게 오면 우리는 담대해집니다. 우리는  평안해집니다. 또 주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이 어떤 일, 역할  했습니까? 초자연의 걸음을 걷게 하지 아니했습니까? 주님이 또 같이 배 안에 왔을  때에 풍랑은 잔잔하고 평안하지 아니했습니까?  내나 그렇게 경험하고 체험해 놓고 신앙 경험, 체험해 놓고 난 다음에 또  옛사람으로 돌아갑니다. 풍랑 보고 또 놀랍니다. 그 풍랑 보고 놀란 것은 무슨  지식이오? 주님 대신 세상 위협하는 세력, 공산주의가 이렇게 강한데, 소련이  어떤데, 소련이 어떠면 제까짓 게 어떻게 할 것이오? 이북이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오? 주와 나와 함께하고 주님 내 안에 계시고, 주님 말씀이 나의 가치요 주의  말씀대로 내가 걸어가는 나에게 인간들이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셔 들이니까  평안하게 갔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 믿는 내가 멸망할 나로 살 때도 있고, 참 영광의 구원의  나로 살 때도 있으니 이 두 나 중에 어느 나로 살 것이냐? 언제까지나 이 멸망할  사람으로 살 것이냐? 언제나 인간에게 배운 내 지식 가지고 날뛰어서 살 것이냐?  이거 비교해서 확정을 짓고 우리가 회개해야 됩니다. 이걸 회개를 해야 돼요. 이것을  회개 안 하면 그는예수 믿는 재미를 못 볼 것입니다. 물 위로 걸어 가는 초자연의  하나님의 능력의, 초자연의 능력의 도우심의 혜택을 맛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 늙었습니다. 하나님은 늙지 아니했소. 하나님은 죽지 아니했소.

하나님은 피곤해서 조울지 않소. 하나님은 그렇게 복잡한 일 어찌, 혹 잊어버리지  아니할까? 그런 분 아니오.

 여러분들, 우리를 만든 이 하나의 머리 속에-우리 보기에는 부모가 자식을 만든  것같이 알지마는 -이 속에 컴퓨터가 뭐 십억이 있다던가, 뭐 일억이, 뭐 백억이  있다던가 이 가운데 다 들었답니다. 지금 학자들이 연구하는 결과에. 이렇게  세밀하신 분이요.

 염려하지 맙시다. 말고 여기에서 예수 믿는 나와 나를 구별해서, 한 나는 현실에서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나냐, 한 나는 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나냐? 요 둘을 판정  짓고,

 그러면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이는 뭐이냐?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돈이 필요합니까? 갈릴리 바다에 가던 그 제자들에게 돈이  필요했습니까, 정치가 필요했습니까, 명예와 지위가 필요했습니까,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자 말해보십시오. 뭐이 필요했습니까, 무엇이 필요했습니까, 그들에게  뭐이 필요했소? 여기 OOO씨? 무엇이? 필요한 걸 말하라니까, 무엇이 필요했소?  필요한 것 둘 있지 않소? 이 둘이면 다 돼. 요걸 잡아야 돼요. 우리에게는 황금  없어도 좋습니다. 권세 없어도 좋습니다. 인간의 옹호나 협조가 없어도 좋습니다.

주님과 주의 말씀만 둘만 우리에게 있으면 다입니다. 다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부족한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영과 육의 우리에게 온갖 필요한 것의 충만하고, 충만하고 남음이  무한하고 무한한 것이 주님이요, 주의 말씀입니다. 이거 버려두고 뭘 찾습니까?  오늘의 주님이 노여워하시는 것은, 주님과 주의 말씀을 버리고 마귀가 내 놓은  마귀의 지식, 인간들의 재잘거리는 이십 세기에 찬란하게 최고적으로, 저희 때가  얼마 남지 아니했기 때문에 택한 자를 유혹할 수 있으면 유혹하려 하는 마귀의  유혹인 이 음행의 포도주에 인간 지식이 들어서 사람을 다 망칩니다.

 제가 오늘 서울에서 온 우리 동역자들, 장로님들, 목사님들 보고 참 내가 기쁘고  즐거운 것은, 내가 인사하기 전에 혼자 침대에 누워서 생각할 때에 어떻게 기쁜지.

이 세계에 아동들을, 어린 것들을 악령이 국민학교에서부터 마구 음행의 포도주를  마셔 가지고 하나님은 하나도 가르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가르쳐도 근본 부패성이  있고 타락한 인간이기 때문에 안 되는데, 일 학년 때부터 하나님 냅두고 '이 세상  인간 말이라야 산다. 인간의 이 방편이라야 산다. 인간 연구라야 산다.' 이렇게 해서  사람을 완전히, 하나님이 지은 인간을, 하나님의 것 가지고 하나님이 먹여 살리는  인간을 요렇게 마귀라는 놈이 망치는 이것을 주님이 이를 갈고 분개해서 언젠가  체질이 불에 타서 녹아집니다. 분개합니다.

 이런데 이 아동들 구원하는 이 일이 시작돼서 우리는 조그만한 교회라 운동해 봤자  조그매 밖에 못 하지마는 순복음교회는 오늘 말 들으니까 교인 수가 이십칠만  명이라고, 이십칠만 명인데 그분들이 이 하나님의 어린이들을 마귀에게 빼앗겨서는  안 된다. 마귀의 유혹, 이 음행의 포도주에 도취 돼 가지고 완전히 병신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 이것을 어릴 때 부터 이것을 살려야 되겠다. 이래 가지고 이 운동이  세계에 퍼져 나간다면 주님의 그 소원하시는 기막하는 일이 해결이 되고 만족할  터이니까 얼마나 좋으냐? 기뻐서 내가 그 목사님과 장로님들 보고 내가 그 소원을  말했습니다. 그들도 다 동감이겠지요.

 이러니까 우리가 요것을 단단히 잡읍시다. 예수 믿는 어린 아이든지 어른이든지  예수 믿는 사람은 두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도 될 수 있소. 인간, 인간 지식의  사람, 주님 떠나 버리고 인간만 보고 아무 잘난 사람, 아무 학자, 아무 선생, 아무  과학자, 아무 선배 아무 배경, 아무 친구, 아무 동지, 인간과 인간 지식으로 자기  머리와 극을 가득히 채운 예수 믿는 사람도 될 수가 있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지식으로 속에 가득 채운 예수 믿는 사람도 될 수 있으니 나는 어떤 사람이냐?  요것을 찾아서 회개를 해야 됩니다.

 이 회개가 도적질이니 음행죄니 부모에게 불효니 이런 계명을, 이 걸 회개를 해야  마음이 깨끗해지고 모든 일에 자유를 해서 회개할 수가 있다 해서 그런 것이지  그런것 암만 해도 이런 회개 안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일계명 회개요.

그래 이 둘을 판정 짓고 냉정스럽게 생각합시다. 자 여기서만 본다 해도 주님은  어느 정도 필요하냐? 주의 말씀은 어느 정도 필요 하냐? 주님의 말씀과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걸 줬나? 갈릴리 바다를 갈 때에 어떤 게 필요했나? 그러면 주님과  주의 말씀 외에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는 제자들에게 다른 것이 뭐 필요가 있었느냐?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회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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