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중심-삭개오

 

1983. 4. 21. 목새

 

본문 : 약4:1-5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지난 밤에 O 목사님 설교하는 것을 제가 사층에서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따르는 사람들이, 유대인들과 또 예루살렘에 있는 각층에 있는 유대인들이  그렇게 많이 따르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을 알기 때문에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했다 하신 말씀이 있고, 또 그들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셨다 그렇게 말씀한 일 이 있습니다. '그들의 증거를 받지 안했다.'  예수님을 그렇게 많은 사람이 따라 다녔지마는 예수님께서 그 한 사람도 믿지를  아니했고 또 마음에 있는 모든 흉금을 열어 놓고 서로 통하지를 아니했습니다.

평소에도 예루살렘에서 하루 종일 증거하시다.가도 밤이 되면 저 베다니에 가  가지고 나사로의 집에 가서 늘 유숙하시고 그리 했습니다. 아무리 자기네들 집에  유숙하라고 해도 듣지 아니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을 알기 때문에 그들 집에 가 가지고 유숙할 수가 없는  위험성이 있어서 유숙 안 했습니다. 또 그들의 말을, 무슨 말 한다 해도 그런  말을 듣지를 아니한 것은 그들의 마음들이 모두 삐뚤어져 있기 때문에 그 말이  바른 말이 아니니 그 말을 신임할 수가 없었다 그래 했습니다.

 그랬는데 삭개오에 대해서는 예수님에서 자칭 내가 오늘 밤에 너희 집에 가서  유숙해야 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그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럴까  하는 것을 엊저녁에 해석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외모나 또 그 사람의 감언이설로 아주 입만 잘잘 놀 리는 그런  것을 듣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기 때문에 그렇다 하는 그런 해석을  지난밤에 했습니다. 또 예수님을 만나는 그 첫마디에 두마디 했는데 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하겠다. 또 토색한 것 있으면 사 배나 갚겠다. 이렇게 말하니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그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알기 어려운 일이며 찾기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따라 다니고, 오랫  동안 따라 다니고 한다 할지라도 삭개오와 같은 그런 마음 가짐을 가지지  아니하면 주님은 영접할수 없다 하는 말을 지난 밤에 증거하는 것 들었습니다.

 또 주님에게 대해서 온갖 말을 해도 주님은 우리 말에 설복도 안 당하고 또 뭘  드린다고 매수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 자체까지도 다 그분의 것인데 뭐 그분이  무엇이 모자라서 우리가 뭐 드린다고 그런 것에게 매수가 되겠습니까? 또 우리가  이런 말 저런 말 잘 꾸며댄다고 우리 말에 넘어가겠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참 예수님을 상대하는 사람은 진실해야 되지 진실이 없으면 어떤  수단 방법이나 자기의 지위나 기술 가지고 예수님 앞에 대하려 하다가는 다 큰  낭패를 당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그런 것에게 설복이나 그건 것을 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그저 말을 안 하고 당장에 무슨 그런 보응을 시키지 안해도 회개 안  하면 언젠가 그 보응이 있습니다.

 삭개오가 잠깐 좀 나타난 것을 보면 그 사람이 '남이 이렇게 말하겠다 저렇게  말하겠다. 이렇게 보겠다 저렇게 보겠다. 이리 저리 생각을 가지겠다. 인간들의  그 여론 그런 것에게 불들려 매이는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인간들이 뭐라고  말하든지 인간들의, 자기가 보고 비판하고 듣고 비판하고, 또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하는 전달 여론에 어떻게 할지라도 그것에게 붙들리지 아니하고  주님을 만나야 되겠다는 그런 그 중심이 있었습니다.

 또 자기에게 온갖 그런 뭐 자기 지위도 있었고 권세도 있었고 명예도 있었고  위신도 있고 이렇지마는, 그것도 그게 어떻게 좀 손해가 가고 깨지고 한다  할지라도, 그게 절단나도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는 그런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일반 사회요 또 그것이 자기입니다. 자기가 어떻게 되든지 주님 만나야  되겠다. 이 사회서 자기가 어떻게 인정이 되든지 간에 그것보다 주님 만나는  것이 더 크기 때문에 주님은 그에게 그날 밤에 유숙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유숙하면,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암살이나 하려고 돈을 뭉텅 갖다  줘도 돈에게 매수당해서 그런 실수 안 할 사람이고, 또 자기가 사회에서 자기  위신이 어찌 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주님에게 대한 것이 요동치 아니할 그런  사람입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이 누구신 줄 알았지마는 자기 사회 자기  지위 그것이 손상될 때가 되니까, 뭐 손도 씻고 날뛰었지마는 마지막에는 그거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주님을 정죄해서 내 주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간단한 일 같지마는 자기보다 주님을 더 낫게 크게 귀중히 여기는  고것이 삭개오에게 있었기 때문에 고걸 보시고 '오늘밤에 네게 유하겠다.'  그렇게 말을 했고, '사배나 갚겠다' 하는 거기에서 그 사람이 주님을,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보다 주님을 이렇게 중심하기 때문에 주님의 중심을 알아냈습니다.

자기에게 대한 주님의 중심을 알아냈소. 자기에게 대한 주님의 중심, 이 중심을  알아 내 가지고 고 두 마디를 하니까 주님이 생각하는 주님의 중심이나 둘이 딱  같이 맞아 떨어졌습니다. 이러니까 주님이 뭐 더할 것 없이 만족을 했던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자기보다, 고만 이 세상 재물보다  뭐 권세보다 지위보다 명예보다, 그런 걸 다 합해서 자기라 할수 있소. 그런 걸  다 합해서 자기라 할 수 있소. 명예도 자기 명예, 재물도 자기 재물, 그러니까  다 자기에게 관한 것이니까, 자기 보다 주님을 더 대우해서, 자기야 어찌 됐든지  둘이 손해볼 판이면 자기 손해 보고 주님 높이고, 해 받을 판이면 자기 해 받고  주님에게 기쁨이 되도록, 자기보다 주님을 크게 낫게 여기는 요 중심을 가진  고것 보시고, 그것 가지니까, 예루살렘에 거기에 있으면 별별 마귀라는 놈이  장난꾸며 가지고 온갖 짓 다 하고 온갖 수단 방법의 꾸며 놓은 것을 다 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그 말 안 들으면 되지마는, 안 들으려고 하면 반드시 마귀라는  놈이 뒤에 협박이 옵니다. 그 말 안 들으면 자기 혹은 위신 문제, 사업 문제,  금전 문제, 뭐 자기의 사회 문제, 그러면 네가 예수님을 안 내놓으면 네가 이런  손해 간다 하니까 자기가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 내 주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나타난 것을 볼 때뿐 아니라 주님은 그 중심을 보실 때에 자기와  주님과 둘이 마주 실리면 자기가 어떤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해를 당했으면  당했지 자기가 해 당하지 않기 위해서 주님 내어 줄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오늘 밤에 너에게 유숙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자기를 위해서 이용해 먹으려 하는 그런  자는 다 저주받습니다. 몰라서 무식해서 그래도, 오래 예수님이 참지마는  마지막에는 저주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당신이 근본적으로 우리보다 클 뿐 아니라 우리 위해서 하신  공로도 그렇기 때문에, 자기보다 주님을 낫게, 주님을 크게, 주님을 높여서,  주님을 위해서 다른이야 다 놔두고 자기와 주님과 둘이 이렇게 견제될 때에  자기보다 주님을 앞세우고 위에 두는 고거 있어야 됩니다. 고거 있기 전에는  주님은 자기에게 모시지 못합니다.

 또 고게 없으면 주님의 중심을 모릅니다. 고것이 자기 중심을 주님에게  기울이는 것인데, 자기를 비워 자기를 주님에게 바쳐, 자기가 자기의 왕이 되고  주가 되는 고 보좌에 자기 마음 그 높은 위치 중심 고 중심에 주님을 자기  중심에 모시고 자기는 주님을 모신 성전으로,   중심에 주님을 모시고 자기는 자기 중심에 모신 주님을 모신 자기로, 주님 앞에  자기 뒤에, 주님 위에 자기 다음에, 주를 위한 자기 요게 되어야 되지, 요거  구별해서 요것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평생 예수 믿어도 그는 주님에게 근심거리고  걱정거리이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 많습니다.

 또 고것이 주 중심인데, 주님을 중심하는, 주님을 위주로 하는 것인데, 주님을  위주로 하면 주의 중심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 중심을 주께 기울여  주님을 자기 중심에 모시게 되면 주님이 자기에게 대한 어면 중심을 가졌는가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무리 자기가 성경을 알고 명철하다 해도 주님을 자기 중심에 모시지  아니하면, 주님이 하시는 일은 압니다. 심부름은 해요. 그 사람을 시켜서, 예를  들면 목사라면은 그 많은 양떼를 살리기 위해서, 주님이 당신의 뜻을 그에게  알려주지 아니하면 어만 것 전하니까 어만 것 전하면 많은 양떼를 죽일 판이니까  어떻게 증거할 것 말할 것은 알려주지마는 자기에게 대한 주님의 중심은 안 알려  줍니다. 요거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자기에게 대한 주님의 중심은 안 알려  주요. 뭐 위대한 목회자로 부흥사로 개혁가로 아무리 떠들어도 요 주인을  바꾸어서 주님을 자기 주인으로 자기는 주님에게 속한 자로 요걸 바꿔 놓지  아니하면 주님이 자기에게 대한 그 중심이 무엇인가 하는 고것은 모릅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주님이 사람을 알고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의탁하지 아니하는데, 그 중심이  주님에게 기울이지 아니하고 주님을 위주로 하지 아니하는 자에게 그에게 대한  주님의 중심을 알려 주면, 생명 나무의 과실을 보고 따먹고 영생할까 해서 생명  나무의 과실을 찾지 못하도록 화염검으로 두루 막았습니다. 화염검으로 두루  막아서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이후에는 생명 과실을 따먹는, 생명 과실의  나무를, 생명의 나무를 찾지 못하도록 막아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화염검으로  막으니까 암만 돌아다녀 봤자 생명 나무를 찾지 못해서 그들이 영생을  못했습니다.

 생명 나무를 찾지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 고것 때문에, 하나님하고 딱 결합이  될 터인데, 하나님하고 결합이면 그게 생명 나무인데, 하나님하고 결합이면 그게  생명 나무인데, 하나님하고 결합될 고 결합이 어떤 문제 하나 때문에 안 되는데  고 문제만 제거하면 하나님과 딱 들어 붙을 건데, 하나님과 딱 들어 붙을 수  있는 고 문제를 하나님께서 보지 못하도록 가뤄 버렸습니다.

 왜? 왜 가뤘습니까? 그는 하와로 더불어 아담과 다 중심이 바꾸어 졌습니다.

주인이 전부 다 저거가 주인이오. 저거를 위해서 하나님을 상대하지 자기가  하나님의 것이 되거나 하나님 위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주인이  바꾸어졌어. 이제까지는 아담 하와의 주인이 하나님이요 아담 하와는 하나님의  것이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아담 하와는 제 것이오. 제가  주인이오. 하나님은 하나님이 주인인데, 하나님 대 자기 대 일 대 일로 그게 돼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결합을 안 해 줬습니다. 그게 생명 나무 과실 보고 생명  나무의 과실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그런고로, 생명 나무의 과실을 따먹지 못하게 하려고 화염검으로 번쩍번쩍  비추어 가지고 암만 찾으려고 해도 생명 나무의 과실을 못 찾았다 그 말이오. 고  중심이 삐뚤어지면 하나님과 결합은 안 된다 그것을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같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동등될 걸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자기를 비워 종의 형상을 가져, 아버지는 주인이 되고  당신은 종이 되는 요 지위를 바꾸어서 딱 요떻게 하고 거기 복종했을 때에  승리가 이루어졌습니다. 요 삭개오는 고 중심을 바꾸었기 때문에 딱 만나니까 두  마디 딱 했소. 내가 반을 갚겠나이다. 구원이 너희 집에 임했다. 네게 임했다.

막바로 그게 구원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믿음이라 그 말이오. 믿음의  자손이라 그 말이오. 그것이 삭개오에게 있는 성전과 지성소 사이에 있는  휘장입니다.

 고것이 어떻게 고런 말 했느냐? 그것은 중심을 바꾸었기 때문에 주님이  자기에게 대해서 전심 전력을 기울이고 애타하고 있는 고 점을 바로 발견했고,  또 자기가 주님에게 대해서 할 것을 바로 발견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봉독한 야고보서도 그런 것입니다. 여기에 말씀하시기를 네가  무엇이든지 너희 인간끼리 암만 그래도 일시는 성공 같은 게 보여진다 할지라도  그것도 결과는 패망이고, 너희들이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그 이유는 너희  인간끼리 '저 사람이 죽어야 내가 잘 되겠다. 저 사람이 꺾어져야 내가 뭐  잘되겠다.' 인간끼리 너희 시비 암만 해 봤자 그것은 다 죄만 짓는 것이지 소용  없다. 너희끼리 자꾸 시비하고 있지 주실 이는 내인데, 주실 권리는 나밖에  없는데, 인간 끼리 너희들이 시비하고 있지 나한테 구하지 아니했기 때문에  안줬다. 또 너희들이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너희들이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에 그렇다. 당신에게 구하지 않는다는 것 말씀했고 정욕으로 쓰려고  구한다는 것 말씀했고,  고 다음에 보면 '음행하는 여인들아,' 바로 음행으로 내 세웠소. "세상과  벗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인 줄 알지 못하느냐,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시기하기까지라는, 사모한다는 이 말씀을 헛된 줄로 네가  생각하느냐" 시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구하지 않는 것, 그 중심이, 자기 중심이, 물론 이것 저것 다  관련을 가지지마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무엇을 구해도,  예를 들어서 어떤 부자집에 그 주부가 일군에게 종에게 이런 것 저런 것을 말을  해도 떳떳이 담대히 강하게 말하는 것은 그 집 호주가 자기 남편이기 때문에 그  호주의 권세를 힘 입어서 거기다가 등을 대고 구하는 것이니까 안 들으면  호통치고 안 들으면 나중에 쫓아내 버립니다.

 이와 같이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 일이나 믿음의 일이나 뭘 하기 위해서  이런 방편 저런 방편 쓰지마는 쓰는 그 방편에 중심의 배경이 주님이 돼 가지고,  주님이 돼 가지고 주님에게 등을 대고 주님을 힘입어서 주님을 힘입어서, 그  모든 전부 상대하는 것은 주님과 자기와의 관계로 인해서 그 모든 것에게  상대하고 모든 것이 자기에게 응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요 비밀을 자기가 깨닫고  주님을 자기 중심의 배경으로 삼는 것 고것을 원합니다.

 일군에게 뭘 부탁을 하면서 주인의 그 권세를 힘입어서 거기다 등을 대고 그  배경을 가지고 거기에 구하는 그것과, 주인은 '이것은 주인의 그 배경이나  주인의 힘이 여기까지 올 게 아니라 그걸 버려두고 이것은 이 일군에게, 이  종에게 해야되지' 하고 하는 것,  그 주인에게 등을 대고 주인을 배경으로 하고 주인을 힘입는 고 연 결을 가지고  고것 때문에 할 때에는 아무리 거기에서 말한다 할지라도 주님이 알지 못하심이  없으시니까 딱 볼 때에 그 말하는 것이나 소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 지하고 주님을 그 중심으로 소망해서 하는  것이니까 주님 써먹는 것 어요, 주님 의지하는 것이요, 주님의 혜택을 입는  것이요, 주님을 바 라보는 것이요, 지금도 주님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이요,  주님을 바라 보고 있는 것이지마는 그게 없이 '이런 것은 이 사람에게 내가 해야  된다.' 그 사람이 직접 나에게 해줄 줄 알고 그 사람에게 말을 하고, 또 그렇게  말을 함으로 이 사람이 해 줄 수 있다 또 하는 것도 있겠고, 또 주인 사랑하는  그것보다도 그 사람이 서로 좋아서 서로 또 이래 하는 것 있고 고런 것 있을  수가 있습니다.

 고 다음에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는 것을 네가 헛된 줄로 아느뇨 하는 거기에서  고 인격 중심이라 하는 것을 말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저거끼리  좋아서 해도 그것이 몰라 그렇지 알면 분개 할 것이고, 또 그 능력을 힘입어서  하지 아니하고 이것은 주인은 상관 없고 이 사람이 해 주려 해야 되지 주인 암만  해 봤자 소용없다' 하고 주인의 능력을 부인해도 분개할 것이고, 또 신뢰나  소망이나 그것이 바꾸어져도 분개할 것입니다.

 또 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하는 그 말은 모든 자기가  갖추는 것이 주를 위해서 갖추지 아니하고 자기를 위해서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뭘 하나 해도 '저것 보자. 저것 뭐 하려고 하는고? 가만히 보니까 뭐 의복이나  무엇이나 모든 것 다 보니까 아, 저거는 내게는 소용도 없고 울긋불긋한 것을  무엇을 뜨네. 저거는 남편 날 위하는 게 아니고 울긋불긋한 것을 뜨네. 이랬는데  가만히 살펴보니까 '요것을 떠 가지고, 요 아이를 울긋불긋하게 예쁘게 해 입혀  가지고 저거 아빠 앞에 안기도록 해 놓으면 저거 아빠가 좋아할 것이다.

 이거 보니까 옷 뜨는 것도, 시장 보는 것도, 뭐 말하는 것도 그 중심이 자기  남편 위해서 한다면 그 남편이 어찌 되겠습니까? 마음의 중심을 자기에게 두고,  뭐 보니까 어디에 가서 아주 난 척 이러고 합니다. 난 척 하고 이러는데 '저거  난 척 하고 건방졌다' 이렇지마는 가만히 속에 중심을 훼닥 뒤벼 가지고, 사람이  못 보지마는 본다고 보니까 내가 우리 남편 아무것이 남편을 위신을 위해서 내가  좀 여기서 너무 우월감을 가지면 안된다. 내가 여기서 그래도 좀 자존심 있게  그래야 되겠다' 그게 무슨 서투럽게 민첩하지 못해서 덕되지 못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중심이 남편을 위해서 했다면 남편이 다 책임집니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아주 빗좋은 개살구같이 남편 위하는 것 같이 아무리 이래 해도 속에  중심은 딴 게 있다 말이오. 딴 걸 가지고 하는 것, 그 나 라에 대한 충신들도  그렇습니다. 충신도 그렇소. 그 밑에 신하들이 그 중심이 뭐인가 그것을 보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그걸 보지 않겠습니까?  "정욕으로 쓰려고" 하는 것은 모두 다 마련하는 것 보니까 무엇 때문에  마련하느냐? 저 때문에 마련한다 말이오. 꽁부 많이 해 가지고 위대해지는 것  주님 때문에 아니라 저 때문에라. 뭐 권위 있고 뭐 하 고 뭐 하고 하는 것도  나중에 주님이 딱 볼 때에는 저 때문이라.

 그게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한, 정욕이라 말은 자기 욕심이라 말 이오. 정욕  반대가 뭐입니까? 정욕 반대가 뭐이요? O선생? 정욕 반 대가 뭐이요? 모르면  모른다고 해야지 왜 대답 안해. 벙어리보다는 모르는 게 낫지. 대답해 봐.

모르면 모른다 해.(답: 성령님의 소욕입니다.) 그러면 진작 말하지 왜.

 정욕에 반대는 성령의 소욕, 하나님의 욕심이오. 하나님 욕심 반대는 자기  욕심입니다. 자기 욕심을 위해서, 자기 위한 욕심이라. 그런 것은 암만 해도  하나님이 도구와 같이, 쟁기 모양으로 도구로써 이용 이나 하지 절대로 당신은  주지 않소. 당신은 주지 않소. 아무리 해도 당신 안 줍니다.

 못나도 좋아. 이게 가서, 이게 뭐 가는 곳마다 수치스러운 일 합니다.

무지해서. 가는 곳마다 안 할 말을 해서 우사를 하지, 안할 일 해서 수치를  당하지, 또 손해를 보지 이래 해도 고 중심을 볼 때에 그것이 어리석어 그렇지  중심은 고 남편을 아끼고 위하고, 그러면 남편에게 참 위신이나 모든 면이나  좋으리라 해서 남편을 위하고 중심으로 해서 유익 되도록 그를 섬기는 고  중심에서 한다고 하면, 고것을 알고 그 여인을 배척한다면 그 인간은 짐승 같은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같이 사람이라도 인격자가 되어 있으면 그럴 때에는 그럴 것 이오.

'아니다. 너는 다른 데 나가지 말라. 나가면 자꾸 실수하게 된다. 나가지 말고  꼭 이 집안에 있거라. 뭐이든지 소원하는 대로 내가 다 해줄 거라.' 그래 가지고  제재를 시켰으면 시켰지, 그 중심을 자기를 위해서 기울여 하는 것인데 거기에  대해서 더 요구할 것, 인격자라면 더 요구할 것 없습니다. 뭐 비인격자는 인물  요구하고 무슨 행동 요구하고, 기술 요구하고, 실력 요구하고 재물 요구하지마는  인격자라면 중심 외에는 요구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인격자라면  중심 외에는 요구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실력 있고 인격자라면 중심이 딴 데 가 있는 것이 껍데기로 암만 할수록  가증스럽습니다. 수단을 부릴수록 가증스럽습니다. '네가 나를 바보로 아느냐?  나를 그리하면 매수하리라고 생각하느냐? 이 모든 것이 내 건데 네까짓 게 일을  하면 얼마나 할 것이고?' 중심을 당신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고 시기하기까지라 하는 것은 고것은 고 중심 문제요. 그 위에  "음행한 여인이여" 할 때 고거 보면 아내와 남편이 서로 시기하고, 아내가 다른  남자로 더불어 어떻게 할 때 시기하는 고와 같은 고 성격, 아내가 남편 자기만  보고 이래야 될 터인데 자기 안 보고 지금  딴 데 간부를 보든지 이래 보고 할 때에 얼마나 분개하겠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중심을 내가 당신에게 기울이고 당신을 내 중심에  모시고, 자나 깨나 '그분 외에는 내게는 없다. 나는 그분 바라본다.' 요게  있으면 주님이 그 사람을 상대해서 그 사람이 주님의 중심을 알아 피차에  말하니까 통한다 그거요. 주님이 제일 걱정하는 것은 자기가 들어 자기도  걱정하게 되고. 주님이 원하는 것은 자기도 깨달아 자기도 원하게 되고, 중심이  통하니까, 이것이 주님과 동행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우리들이 하나님을 속이려 하면 안 됩니다. 어쩌든지  중심을 바꾸어야 되지. 속에 주님이 가증스러워 여기는 그런 것을 하면서 아주  말로만 감쪽 같이, 인간도 아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모르겠습니까? 또 하나님의  진노의 그릇이 언제 다 찰런지 모 릅니다. 늙을 때 차는 것도 있고 젊을 때 차는  것도 있고 당장 차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차면 자기는 그만 헛일 아닙니까,  다? 베어 버리면 베어지고 깨버리면 깨져 버리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이러니까 회개는 뒤로 미루면 안 되고, 회개 중에 제일 큰 회개는 중심 회개  그걸 가져야 됩니다. 그거 안 가지면 안돼요.

 우리 서부교회에서는 박사들이 와 가지고 도무지 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왜? 늘  말하는 것이 '박사들 너희 지식, 너희 중심으로 너 위 해서 하는 것 아니냐?  지식 그까짓 게 뭐 구원 이룰 수 있고 생명 역 사할 줄로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거 다 회개해야 된다. 순전히 하늘에서 내려온 성령과 진리의 힘으로만  인간 구원이 되는 것이지 천하 인간 지식을 똘똘 다 뭉쳐야 구원은 눈꼽재기만한  것도 털끝만 한 것도 못 이룬다.' 이렇게 막 떠들어 대는데, 이러니까 여기에는  박사들이 견디지를 못해.

 이러니까 아마 있는 사람들도 뜰먹뜰먹하이 딴데 가고 싶을런지 몰 라. 하나도  안 알아 주니까. 왜? 안 알아 주는 것이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한닙부치를  한닙푼이로 대해야지 한닙푼이를 몇억대로 대하면 됩니까, 그게? 그게 바로 된  거라 그 말이오.

 그런고로, 중심을 바꾸기 전에 주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또 중심을 바꾸기  전에는 주님이 내게 대한 중심을 모릅니다. 주님이 내게 대한 중심을 알아야  내가 고걸 딱 들어서 '주여, 내가 요거 잘못했습니다. 그래.' '내가 요거  고치겠습니다.' '구원이 네게 이르렀다' 구원이 이르렀다 그 말은 성령과 진리와  피의 은혜와 그이에게 접근 됐다, 접선됐다, 연결됐다 그 말이오. 그거  연결됐으면 다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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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를 위해서 많이 기도합시다. 집을 맡겨 두고 가니까 그런 것도,위해서  기도하고, 또 가고 오는 일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그 곳에 가도 병이 나면 또  헛일입니다. 기도하고, 그곳에 가 있어도 중심을 마귀라는 놈이 뺏들어 놓으면  헛일이라 그 말이오. 고기덩어리만 가 있 으니 소용 없어,  모두 요번에 날짜 하루 더 늦추어서 '일기가 추우니까 좋지 않느냐? 하니까,  '휴일이 하루 끼어 있기 때문에 월요일날 그날 사무보고' 화요일날이던가 뭐  '사무보고 가 가지고 참석하고 그 이튿날은 공휴일이고, 하루만 결근하면  됩니다.' 아주 약쥐, 약쥐 같이 아주 약쥐 같이 귀신 같이 아주, 아주 꾀만,  북술 있습니다. 공회원들이 모여 가지고 그런 걸 결의했다 하는데 고 귀신  복술이지 성령의 역사가 아닙니다.

 고거 있으면 이 다음에는 '공휴일이 끼이지 않나?' 공휴일만, 그러면 이  세상에서 필요없는 일, 필요없는 시간 그 시간만 되기를 원할 것이오. 이 지극히  크신 분에게 바치는 것 뭐 있습니까? 자기가 희생 해야 바쳐지는 건데, 십자가의  도인데, 그날 벌써 토요일부터 뭐 가 기로 단정해 놓고 이래 가도 마음 준비가  안 되는데 그날 제 욕심 다 차리고, 제 욕심 다 차리고, 제 욕심 차릴 대로 다  차리고 나머지기 찌그러기 가지고 주님에게 '해해' 웃으면서 가룟유다 모양으로  와도 주님이 대해 주기는 대해 주지마는 주님은 속는 주님 아니십니다. 주님  섬기는 일 위해서 자기가 손해본 것 주님이 보상 다 해 주시오. 어리석게 그렇게  약게 예수 믿으면 안됩니다.

 생명도 기울이려 하는 자가 하루 뭐 휴가 공휴일 끼이고 안 끼이는 게 무슨  상관 있소? 그게 뭐이냐? '공휴일 끼이니까 다행이다. 집회 가지 말지. 안 가면  다행이지. 고런 인본주의. 그걸 말하기 때문에 속으로 '모두 666이다' 하고  말았습니다.

 '날이 그날 춥든지 덥든지 우리가 첫주일 지난 날로 작정했기 때문에 작정대로  해야 된다' 하면 '예, 옳소' 이럴 수 있지마는 '공휴일이 하루 끼었기 때문에'  하는 인간의 사욕을 살려 가지고 사욕에 유익이 되기 때문에 하는 고것이 마귀  역사라 그 말이오. 알겠소? 그거 안 됩니다.

 주님이 모든 것 다 희생해서 먼 데서 여기까지 오셔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우리가 주님의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무슨 수지 계산을 맞추고,  무슨 이해를 해서 제게 털끝만치라도 손해가는 일은 하지 아니하고 주님의  구원을 가서 받겠다 하는 그 가증스러운 고런 교만 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당신 죽어도 내 눈물 한방울만 못하요' 하는 그자 아닙니까? 못써.

 거기에 가서도 마귀라는 놈이 마음 사로잡아 놓으면 자꾸 딴것만, 설교  들으면서도 딴것 생각하고, 딴것 생각하다가, 그러니까 딴것 졸졸 생각하게 해  놓고, 설교 못 듣게 해 놓고 난 다음에 마귀라는 놈이 눈을 딱 감겨 버리니까  그만 졸아 버리고, 고만 졸아. 이러니까 거기 가 있어도 소용없어. 그러니까  시간이 지루하고 어서 '금요일 아침만 되면' 하다 금요일날 아침만 되면 고만  달려 와 가지고 며칠 동안 사모하지 못한 것 착수하지 못한 것 일하지 못한 것  막 들이 엎드려지니까 뭐이 됩니까?

 그리고 집회 때 커피니 뭐니 먹어 가지고 잠 깨우는 것 하지 말아 요. 졸면  졸아야지. 졸아야 제가 병든 줄 알고 거석해야 되지. 약을 먹어 가지고 눈은  또록또록 뜨니 그게 무슨 소용 있습니까? 약 안 먹 고 잠이 안 올 수 있는 그게  되어야 주님 영접할 수 있습니다. 엊저 녁에 재독할 때 보니까 주일날 설교에  그게 다 나오데요.

 그러니까 커피 먹어 가지고 잠 안 오도록 해 가지고 예배 드리 가 지 무슨 소용  있소? 커피 안 먹고 그리고, 또 커피 안 먹어서 잠이 오면 푹 자 버려야지. 자면  '아이구, 나는 요번 시간에, 오늘 저녁에는 잤다.' 다른 사람 볼 때에 '저거는  예배를 볼 때 자는 인간이다.' 저도 '잤다' 이럴건데, 약을 써 가지고 외식  가식으로 만들어 놓으면 뭣됩니까, 되기를? 그거 못습니다.

 그리고 십 분 후에 사층에서 권찰회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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