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사모 동행

 

1984. 12. 11. 화새벽

 

본문 : 시편 73편 12절∼28절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저희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세상에는 악인이 평안도 하고 재물도 또 풍부해지는 그런 것을 우리가 얼마든지  봅니다. 하나님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모든 것을 경영하고 또  판단하고 그와 같이 행사하는 사람은 우리가 신앙으로 볼 때에 그 사람은  망하겠다 이렇게 생각이 되어지나 세상은 그렇지만 아니하고 정반대 되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악인이 도리어 평안하고 재물은 넉넉해지는 그런 것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이 생각하기를 13절에 '내가 내 마음을 깨끗게 하며 또  손을 씻어' 내 행동을 말입니다. 손을 씻는다 말은 행동을 씻는다 말입니다. '내  행동을 씻어서 죄를 없이 할라고 애를 써서 죄를 범 하지 안할라고 또 죄를  범했으면 그 죄를 회개를 할라고 이를 애를 쓰는 그것이 실로 헛되도다. 실상은  그게 다 소용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이 되는 그런 때가 있고 또 어렸을  때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14절에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그렇게 마구잡이로 해도 평안하고 재물 주고  사업이 형통해지고 이라는데 나는 뭐 마음만 좀 잘 못 먹었어도 거게 대해서  가책을 받고 또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그 행동도 하나님의 법칙에 조그매만  어긴 그런 법칙의 행동을 했으면 그만 내 양심에 가책도 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현저히 나를 징계하시는 그런 것을 내가 보니 이 어쩐 일인지 참  모르겠다 그거요.

 그러니까, '뭐 사람은 마구잡이로 사는 사람이 제일 쉽고 편하고 또 성공되는  것이지, 사람이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까다롭게 이래 쌓는 그것은 그라다 보니까  사람만 까다로운 사람이 되고 사람만 날카로운 사람 되고 고만 화목이 다 깨지고  이렇게 사람만 뾰족한 사람이 돼지니 이게 공연이다. 이게 무슨 소용 있느냐?  그저 수수하게 되는 대로 그렇게 좀 부드럽게 그렇게 살아야 되지 뭐 이렇게  희고 검고 뭐 이것은 말씀대로 됐다 안 됐다 이거는 양심의 가책이 된다 안 된다  하는 그게 전부 다 소용 없는 일인데 공연히 이 짓 했다' 이런 생각이  사람들에게 들기 쉽습니다. 이 시편 기록한 사람은, 물론 성령이 그 사람을  통해서 기록했지만 그 사람이 자기 마음을 신앙 고백한 것입니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뭐 조금만 잘못해도 헛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  거게 거짓말 하나만 섞여도, 마구 거짓말로 전부 자본을 삼아 가지고 해도  되는데 거짓말 한 마디만 섞여도 그만 그니까, 이거 성경을 내가 몰랐더라면  좋고 예수를 몰랐더라면 좋은데 이 성경은 나에게 고생을 주는 책이요 또 주님은  나에게 고민을 주는 것이지 아무 혜택은 없고 자꾸 손해만 보고 고통만 보니까  이게 무슨 필요 있노? 이거 다 소용없다.

 15절에 이렇게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하나님이 나에게 성경으로 이렇게  네가 살아라 하는,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이면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고 영감대로 하는 것이면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는 것인데 '이거 뭐 믿어  봤자 무슨 소용 있노? 나에게는 제일 고통 주는게 성경이다. 나에게는 제일  괴롭히는, 것이 예수다' 이렇게 생각하는 그 생각은 그것이 스스로 생각이라  그말이오. 자기 생각이오. 자기 생각.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러면, 우리는 성경대로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요 영감대로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데 그대로 안 하고, 성경에 위반된 생각 영감에 위반된 생각 그 생각은 내  생각이지, 스스로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아니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이렇게  생각나는 그것을 내가 죽이지 안하고 꺾지 안하고 그렇게 생각나는 그 생각을  내가 입술에 내고, 생각이 나중에 짙어지면, 생각이 짙어지면 말이 됩니다. 또  생각과 말이 더 짙어지면 행동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성도는 마음에  그렇게 생각한 나오는 생각 나오는 그것을 그저 말로는 말에 나오기까지. 말이  되기까지, 자기가 말하기까지 그렇게까지는 나오지를 안했지마는 자꾸 마음  가운데는 이런 것이 왔다 갔다 이라니까 사람이 죽을 지경이라 그거요.

 그러면, 그것이 어째 그러냐? 자기 스스로의 자기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과  자기가 보고 해석하는 자기 견해와 하나님의 견해가 달라서 이렇게 이 모순되는  고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만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나님의 생각대로. 하나님의  견해대로,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이렇게 돼 버리면 딱 그만 그렇게 돼 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자꾸 두 마음을 가지게 된다 말이오. 성경 지식은 이렇다  하지 또 인간 지식은 또 이렇다 하지 인간 지식과 성경 지식이 둘이 대립이  되지.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대립이 되지. 또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대립이 되지. 하나님이 보고 해석하는 것과 내 해석이 대립이 되지, 이러니까,  이 대립 속에서 이리 생각하니까 또 이렇게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 되겠고 후회가  되고 고민이 되고. 또 인간 생각 인간 지식대로 이와 같이 하고 보니까 생각하고  보니까 '공연히 내가 지금 참 내가 쪼아서 내가 내 불행을 만든다. 암만 그래  봤자 무슨 효력이 있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와 같이 해서 효력이 당장에  난다고 하면은 '맞다' 그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래 딱 들어붙겠는데. '이  말씀대로 하면 복되다고 이렇게 말씀은 해 놨는데 말씀대로 행하니까 복이  돼지지 안하고 말씀대로 행하다가 조금만 틀리면 자꾸 화만 받지, 하나님  말씀대로 하다가 조금만 틀려도 그만, 거게 대해서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이나  받지 뭐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효력은 하나도 받지를 못한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이거 하나님의 말씀은 옳기는 옳고 이럴 건데'해서 그대로 해 볼라고  해 보니 자기 한 일이 잘못됐으니까 자꾸 고통 책망 뭐, 또 그렇게 할수록이  그렇게 하면 좀 형통해셔야 될 터인데 그렇세 할수록이 어떻게 까다로워지는지  다른 사람은 죄를 백 개를 둘러 마셔도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이거는 갈수록이  처음에는 한 열 다섯 개 둘러마셨다가서 다섯 개만 없애 버리고 열 개만  둘러마셔도 속이 평안하고 좀 좋았는데 이라거든 좀 거석해질 터인데 나중에  가서는 다섯 개만 둘러마셔도 못 견디겠고 마지막에는 한 개만 둘러마셔도 못  견딥니까 이거 어데, 사람이 완전해서 아무 문제가 없지마는서도 이 죄 이놈  때문에 고통만 당하는 것뿐이지 아무 소용이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사람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요런 마음이 나올 때는 그  마음이 성신의 마음이 아니고. 중생된 새사람의 마음이 아니고 옛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것을 말해서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그런 생각이 나오는 것을 고 생각에서 죽여 버리고 고 생각을 '요거는 마귀  생각이다. 요거는 나를 죽인 나 아닌 나, 나 아닌 나 나를 죽인 원수인 나  이놈이지 참 나는 아니다. 이놈이 벌써 내마음을 사로잡아 가지고 이와 같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거는 내 생각이고. 옛사람 내 생각이지 새사람 생각도  아니요 주님 생각도 아니다.' 새사람 생각과 주님 생각은 꼭 하나입니다.

같습니다. '주님 생각도 아니요 새사람 생각도 아니요 진리대로 되는 생각도  아니요 순전히 배암의 지식 세상 인간 지식대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요 것은  물리쳐야 되겠다고 마음이 들어오면 요것을 물리쳐야 될 터인데 고것을 들어  오자말자 물리치지 안하고 그것 조금만 가지고 있으면 고것이 제 입술로 나오게  됩니다. 고 생각을 조그매만 가지고 있으면 고다음에는 자기 입술로 그만  '이렇다. 봐라. 안 그러냐?' 저 혼자 앉아서라도 제 말을 하게 됐다 말이오.

말을 하게 됐으면. 벌써 마음에, 들어온 것이 말로 나갔으면 그게 성공이 된  것입니다. 말로 나갔으면 자기가 말을 혼자 말해도 말을 했으면 마음이 말이  됐으니까 벌써 그 마음에 들어온 그것이. 성공이 됐고, 말한 것이 행동이 됐으면  성공 성공이기 때문에 이거는 그만 그것은 완전히 돼 버리고 발았습니다. 완전히  마귀 생각 마귀 지식대로의 된 것이 돼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팔에는 안 나왔습니다. 이 사람 말에는 안  나왔고, 말까지는 되지 안하고 마음에는 그런 생각을 가졌더라 그말이오. 그런데  그게 말까지 하게 됐더라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주의 아들들의 시대. 주의 아들들의 시대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준비할 시대, 주의 아들들의 시대는, 주의  아들들이 하늘나라 가서는 영생한 생명과 의와 진리와 사랑으로 사는 영생의  엉광을 누리지마는 이 세상은 그 나라에 갈 준비를 하는 것이 세상이요. 또 그  나라에 가서 살 새사람의 인격을 장성시키는 것이 그것이 세상이요.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그 권위를 자꾸 숭상하고 기르는 것이 이  세상이요 또 듣고 보는 그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모든 것을 해석하도록  그렇게 하는 그 사람이 성장되는 것이 그것이 이 세상인데, 이것이 주의  아들들의 시대 하나님의 아들은 새사람 아닙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할 이 시대 말이오.

 주의 아들들의, '주의 아들들의 시대' 하는 말은 주님의 아들이 주님의 아들로  이 한토막 하룻밤 나그네와 같은 세상 살이를 해서 연습을 하고, 그 다음에는  세상을 떠나 무궁 세계에서 연습하고 숙달된 것만치 성장된 것만치 그 생활을  하게 될 터인데.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될 이 시대를 그만 헛일 할 뻔 했다  그말이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될 이 시대를 마귀 자식으로 사는 그  일 할 뻔 했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의,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이러면. 궤휼이라 말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일을 가리켜서  궤휼이라 그랍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고 꾀우는 일, 나도 만일 이렇게 이 모순된  것을. 마음에 모순되다 이렇게 생각한 성경 말씀이 모순되다. 세상과 모순되다.

또 하나님이 '처세하시는, 처리하시는 일이 모순되다,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도  이해가 안 되고 하나님이 처리하시는 그 역사도 이해가 안 돼. 자꾸 오해만 된다  말이오.

 성경대로 하면은 그대로 쏵 쏵 돼 나가야 될 터인데 성경대로 하니까 더 자꾸  가책만 받게 되고 자꾸 하나님께서 '요것도 네가 잘못했지' 하며 자꾸 매를  때리는 것 같이 징계만 보고 이라니까 이거 참 괴롭기만 하지 이거 아무 효력이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 속에 이해가 안 되고 이 모순 투성이 속에서 지금  고민만 하고 있는데. 이 고민한 이것을 말에 고민할 때 그래도 '이거 내가  옛사람의 생각이지, 마귀 이놈이 주는 것이지. 물리치자.' 이렇게  물리치지마는서도, 생각이 들어왔다 나갔지마는서도 그 생각이 자기 속에는  나갔지마는서도 그래도 그게 자꾸 빙빙빙 돌고 있다 말이오. 이랬는데, 만일  마음에 이렇게 생각했던 것을 말로 해 가지고, '봐라 소용 없다.' 이 말을,  마음에 들어왔던 것을 말로 했으면 벌써 그게 짙어지고 강해졌습니다.

 또 말로 한 것을 행동했으면 더 짙어지고 강해졌습니다. 만일 그렇게 했으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지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중생된게 하나님의 아들인데, 하나님의 아들이 중생됐으니까 중생은 되기는  됐지마는서도 이제 갓 낳아 놓은 것 같습니다. 바로 낳아 놓은 거 한가지라.

이것이 뭐 힘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힘이 없습니다. 없는데. 이것이 세상에서  삼십 년을 살든지 오십 년을 살든지 칠십 년을 살든지. 예수 믿은 후에 뭐 칠십  년 살라하면은 뱃속에 있는 사람은 믿은 사람은 그렇지마는서도 우리 같은  사람은 스물 다섯 살 먹어서 믿었으니까 지금 일흔 다섯 살이니까 중생된지 오십  년입니다.

 중생된지 오십 년인데 오십 년 동안을 중생된 요 사람만 잡고 요 사람으로 살아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될 이 세상인데,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될 이  세상이면 오십 년을 내가 벌써 하나님의 아들로 살았다고 하면은 그래도 내가  장성해져서 굉장히 튼튼해지고 모든 것이 다 견고해졌고 지식이나 행동이나 모든  것이 튼튼해졌을 터인데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는 일을 하다가 말다가  살다가 말다가 이렇게 해서, 거창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아들로의 사는 생활을  뭐 제법 잘하고 그때는 뭐 양심의 가책 없이 이래 했는데, 이 부산 와 가지고는  많은 사람들을 자꾸 접촉을 하고 이거 또 교회를 잘되도록 하려는 이것이 우상이  돼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아들로 사는 생활을 못 하고 인간으로 사는  그 생활이 많이 끼어졌다 말이오.

 이러니까, 제가 얼마 동안 전에는 내가 자꾸 참 마음에 불만 불평 원망 뭐  이렇게 낙망 이렇게 자꾸 그것이, 물리치기야 물리치지. 물리치면 또 들어오고  들어오고 물리치면 들어오고 이래 가지고 그 고민이라 하는 것이 그섯이 늘 내게  물리쳐도 속에 흔적이 있고 남아 있었다 말이오. 그게 뭣 때문이냐? 내가 와  부산에 안 올라고 그렇게. '난 도시도 싫고 나는 산골에서 복음 전하다가 주님  앞에 갈랍니다.' 이랬는데 ○○교파에 그때 대가리가 여덟이 다 합동해 가지고  연명 날인 해 가지고 ○○○목사님이 그분이 두 번이나 그 노인이 나한테  찾아왔고 또 ○○○집사가 두 번인가 세 번인가 찾아왔고 나중에는 안 되니까  연명 날인을 해 가지고 ○○○, ○○○, O○O, ○○○, O○O, ○○○ 그  ○○○. 또 누군가 모르겠어. 여덟 사람이라. 여덟 제일 머리되는 목사님이 연명  날인 해 꼭 와야 되지 안 오면 안 된다고서 이래 가지고서 연명 날인 해 왔으니  이거 하나님의 종들로 내가 알고 있는데 이분들이 말하는 것을 내가 거역하면  이거 안 되겠다 그래서 내가 오기 싫은 이 부산에 왔다 말이오.

 왔는데, 이사 올라고 이사 올 때 점심을 먹어야 되겠다 하고서, 거기 가다가 밥  가지고도 안 될 것이고 촌에서는 송편인가, '송편 떡을 해 가지고서 가자' 그래  송편 떡을 저녁에 저물게 쪄 냈다 말이오. 저물게 쪄서 한 그때 깜깜할 때 송편  떡을 쪄 내서 밖에다가 이래, 시원한 데다가 이래, 바람 잘 통하는 데다가 덮어  놨는데 아침에 보니까 송편 떡이 빨개. 영 송편 떡이 빨개져 버렸어. 그래 내가  그리 안 해도 께끄름한데 '내가 이 도시에 이거 뭐. 나는 도시가 어떻다는 걸  내가 알고 좋지 못한 곳인데 이거 안 갈라 했는데 이 송편 떡이 빨간 걸 보니까  내가 여기 가면은 죽는 곳이지 안 되겠다' 이래서, 그래 보자, 그놈이 색깔이  변했나 맛도 변했나 그놈을 보자.' 이래 보니까 껍데기 색깔만 변했지 속의 맛은  하나도 변하지 안했습니다. 속의 맛은 변하지 하나도 안 했는데 껍데기만 빨개.

영 뭐 붉은 물 들인 것같이 온 송편이 전부 빨개져 버렸어요. 했는데, 속에는  보니까 붉지 안해. '그 이상하다. 붉으면 속속들이 붉어 썩어 나오면 속에서  썩어 나올 터인데 이거 어떻게 이래 됐는가?' 속은 색깔도 괜찮고 맛도  생생해요. 껍데기만 변했어. 그래서 내가 자꾸 또 기도하고 번민하다가 '아,  내가 이렇게 아마 부산 가면 내가 껍데기만 변질이 되지, 속에는 변질이 안 되고  껍데기는 아마 남에게 누명이나 듣든지 욕을 얻어 먹든지 이런 무엇이 되고.

내가 그러면 껍데기는 죄를 짓고 속에는 이럼으로써, 범죄함으로 속이  깨끗해지든지 뭐인가 지금 이거 뭐 이상한 일이다.' 이러니까 가족끼리 의논을  하고. 그 떡을 보고 온 가족이 다 이상하다 그걸 그때 다 느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은 뭐 느끼는 걸 잊어 버렸는지 모르지만 지금 말하면 다 알 거라 말이오,  나는 그때 원첨 깊이 느껴져서 그게 지금 나옵니다. 그래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부산에 왔습니다.

 왔는데, 와 가지고서 내게 닥치는 것이 만날 이 일이라. 73편 이 일이 내게  닥치는 일이라. 조그매만, 뭐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그만 그것으로 큰 탈이 나  가지고서 왕산같이 떠들어 가지고서 그만 이래 돼 버리지, 뭐 조그만한 행동만  그래도 오만 이래 돼 버리지. 이래 가지고서, 몇십 배나 자꾸 이래 가지고서  이래 되지 이러니까 하나도 뭐 하나님 믿어야 복 받는 거는 하나도 없고 전부  재앙받는 것뿐이고 이거 이런 것뿐이고 하나도 평안은 없고. 교회를 잘될라고  이라니까 이거 뭐 성경 볼 시간도 없고 기도할 시간도 없고 이거 뭐 엉망진창  절단나 버린다 그말이오. 이래서, 그것 때문에 내가 고민을 했었었는데 그래  얼마전에 그것을 해결을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고민하는 가운데에 당신이 깨달음을 주시고. 내가 말이야,  설교야 많이 했지요. 말했지마는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만 증거했지 내 속에 이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고것이 깨달아지들 안하더라 그말이오. 그래 나중에 그걸  깨닫고 난 다음에는, 성구를 당신이 주시는데 '한 몸에 여러 지체가 있는데  지체마다 같은 일 하는 것이 아니고 눈은 눈 일만 하지 눈이 손바닥 일을, 못  한다. 손바닥은 손바닥 일이나 하지 눈 일은 못 한다. 손바닥 열 개가 돼도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는 이런 은혜를 주시고  저 사람에게는 저런 은혜를 주시니까 너는 네게 대해서 내가 네 은혜 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너는 그것 받았으면 됐지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이와 같이 다 될라고  네가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이 성구를 주기 때문에, 다른 면은 내게 절단나고  또 좋은 면은 좋고. 그러니까, 내가 모든 면이 다 좋으면 내가 교만해서, 교만해  가지고서 모든 사람들은 멸시하고서. '왜 이렇게 되느냐?' 멸시할 것인데 내게  나쁜 면이 있기 때문에 그놈 때문에 남한테 큰소리도 못 하겠고 꼼짝 못해서  이와 같이 지금 하고 있으니까 이게 지금 하나님이 날 만드는 길이었다.

 또 성구를 하나 주시기를 요한복음 21상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순교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다' 하는 이 말씀을 하니까 베드로가  있다가서 옆에 사도 요한이가 있으니까 '이 요한은 어찌 되겠습니까?' 이라니까  주님이 그 말을 탁 박차서 아주 공격을 하셨다 말이오. '요한이야 어찌됐든지.

내가 재림 때까지 요한이를 살아 있게 한다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너는 내게 순종만 하면 되는 것이지 뭣 때문에 남이 이렇든지  저렇든지 그것을 생각하느냐?' 요 성구를 주는 데에서. 고 두 성구에서 내가  만족을 하고 해결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이제는 내게 대해서 어떤 무엇이 온다 할지라도 그것으로써 내가  고통이라 하는 그런 고통을 이제는 이별을 해 버리고 내게 오지를 못합니다.

이러니까, 내가 하는 일이 영 달라져 버렸어.

 어제도 여게 기도원을 하나 할까 이래 가지고서 뭣이 계약이 되기로 해서 빨리  돈 가지고 오너라 그 주인이 말해서 그랬는데 그만 시간이 늦어서 그 사람  볼일이. 시간이 급해서 그만 가 버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의례히 아래는  주일이고 어제 가면 되리라 이렇게, 뭐 그거는 다 토지도면 떠 봤고 모든 거 다  가서 얘기했고 다 이렇게 했으니까 되리라 이라는데, 옛날과 다른 기도가 내게  나온다 그말이오. 지금 어제 보낼 때에 보내기 전에 벌써 내가 어제 아침에 내가  기도하기를 여기서 기도하고 집에 가서 기도하기를, 기도하니까 내 심령이 좀  밝음이 오는데 '이게 또 하나님이 나를 시험하시는지 모른다' 고게 내 생각에  들어온다 말이오.

 그래 내가 그때 딱 단정하기를 '주여, 오늘 가 가지고 그것이 내 생각한 대로  고대로 딱 틀림없이 되면' 조금 엉뚱한 것을 요구를 했다 말이오. '내가 요렇게  요렇게 요구하는데 내 요구대로 되면 요게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요대로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고 안 되는 것이 좋고. 또 요대로 요구대로  되면 하나님 뜻인 줄 알고 그만 밀고 나가겠습니다. 이러니까, 요것으로써  하나님께서 날 지도하십시오. 만일 내가 말하는 대로 요대로 그 사람이 응해  주면 당신의 뜻인 줄 알고 내가 거기다가 전력을 기울여서 막 밀고 나가서 그만  기도원까지 짓겠습니다. 이러니까, 지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지으면 그거  망하는 길인데 그래 가지고 망하는 건 당신에게 책임이 있지 내게 책임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당신에게 있으니까 당신이 요렇게 그 사람이 응해 주나 안  주나 요것 가지고 나는 믿을 터이니까. 내가 무지하니까, 아무것도 모르니까  요것 가지고 당신의 뜻인갑다 아닌갑다 요래 판정을 지우겠으니까 거게 따라서  당신이 그것으로써 나에게 알려 주셔야 내가 순종하지, 순종 안 할라 하는 건  아니고 그것을 알려 주지 않으면 내가 무지한 건데. 무지해서 내가 모르니까  그래 해 가지고서 절단나는 것은 당신의 책임입니다.' 요 책임을 딱 분리를 딱  시켰다 말이오. 시키고, '가거라. 내가 지금 요렇게 했으니까' 거기서 가는  사람에게 '요렇게 말했으니 요래 요래 하고서 되면 하나님의 뜻이고 안 되면  하나님이 막는 것이다.' 그래 가지고서 갔다 말이오.

 갔는데, 그래 갔으니까 '뭐 어짜는고 보자' 이라면서도 내게 퍼뜩 시험에  들어오는게 뭐이 들어오느냐 하면은 '그래도 하나님께서 고렇게 내가 말하는  대로 돼서 됐으면 좋겠다 요게 들어온다 말이오. 그게 내나 사욕이라. 고게  사욕이라. 그놈을 물리치고 '나는 요렇게 간교합니다. 내가 이걸 회개를 합니다.

당신이 보여 주시는 대로 고대로 하고, 나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내가  걸어갔으면 망하는 건데, 뜻 아닌 것을 내가 주님이 알려 주셔서 안 걸어가게  됐으면 그런 감사한 일이 없고 멸망에서 건졌기 때문에 그런 감사한 일이 없는  것이지, 거게 대해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하는, 내 욕심대로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대로 됐으면 좋겠다는 고 말은 하기는 했지마는서도고 속에  내 뜻대로 됐으면 좋겠다, 내 소원대로 됐으면 좋겠다 고것이 거게 끼어  있어지니까 고놈이 내이요 고놈이 원수입니다.' 요렇게 이제 구별 하고서 딱  있었다 말이오.

 그래 전화 오기를 뭐라고 전화가 오는게 아니라 '그것은 네 사람이 연명한  것이라서 그 사람들이 반대해서 안 되고 고 위에 더 좋은 것이 있는데, 더  숲속이고 더 좋은 것이 있으니까 요것을 하라고 합니다. 요것은 그 사람의 개인  것이기 때문에 요것을 하라고 합니다.' 그래 그 말을 들을 때에 내게 두 마음이  들어온다 말이오. 뭐이냐 하면은 처음에는 '아, 그것은, 그만 오너라. 내가  아침에 갈 때 안 그라더냐? 하나님이 고것으로 표시해 달라 했기 때문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니까 오라. 오라. 뭐 다른 말 하지 말고  그만 오너라.' '예. 가겠습니다.' 이라고 나서 또 무슨 시험이 들었느냐? 그라고  하면서도, 말은 그래 하면서도 그 속에서는 뭐인가 말은 안 해도 그런 마음도  가지지는 안했지마는서도 어짠지 뭣이 좀 기분이 좀 섭섭한 것같이 그렇게  통쾌하지 안하고. 그때 그렇게 해 줬으면 내가 기분이 요랬을 터인데 그게 안  된다고서 거부를 당하고 나니까, 거부당한 것이나, 하나님께서 내가 말한 대로  그대로 딱 해 줘서 하나님 뜻으로 이제 요것은 사라 하는 것이나 사지 말라는  것이나 복 같은 기분이어야 될 터인데 사지 말라 하는 고 일이 되니까 좀 기분이  섭섭하다, 그게 뭐 많이 표가 나지는 안하지마는서도 하나님께서 고렇게해서  되는 기쁨과, 되는 됐을 때 내 마음과 안 됐을 때 내 마음이 차이가 있더라 그  말이요. 차이가 있어. 고놈이 내나 옛사람 고놈이요 고놈이 나를 죽이고 삼키는  고놈이라. 그래 고놈을 회개를 하고, 고놈을, 만일 고놈이 좀 들어 와서 내버려  뒀더라면 고놈이 나중에 가서 '그거 참 그래 됐으면 좋을 건데 섭섭하다' 이  마음을 뚜렷이 가졌을 거라. 말은 안 해도 마음을 뚜렷이 가졌을 것이고 마음을  뚜렷이 가졌으면 그 다음에는 혹 나중에 가서는 말까지도 돼서 나올지도 모른다  그말이오. 그러면 완전히 그만 거게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어겨서 죽는 일이라  그말이오.

 그런데, 고놈을 눈을 뜨고 보니까 '아, 됐다고 하는 것과 안 됐다고 하는 것과  요 두 소식이 왔는데 둘 다 같아서 됐다 해도 좋고 안 됐다 해도 좋고, 됐다는  것이 안 됐다는 것이나 내 마음이 꼭 같이 기분이 같아야 됐을 터인데 왜 요  기분이 안됐다 하는 그것이 올 때는 좀 기분이 달라졌느냐? 요놈이라.' 고놈을  잡아내트리고 죽여 버리고 나니까 그만 그 다음에 평강이 오고서 마귀란 놈은  범접을 못 했다 그말이오. 우리는 그런 것입니다.

 여게서 이 시편에 기록한 것도 '주의 아들들의 시대에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이러니까, 궤휼이라 하는 것은 속이고 꾀우는 것인데, '내가  만일 이렇게 그 두 사이에 끼여 가지고서, 모순되다 모순되다 하는 그 마음이  들어오는 그놈을 물리치면 또 들어오고 물리치면 들어오는데 그것을 만일 마음에  들어오는 데에서 때려 잡아서 이놈은 죽여 버리고 없애 버리지 안하고 그놈이  말이 돼 나오기까지를 했더라면' 말이오 '말이 돼 나오기까지 했더라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에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될 이  시대,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 가지고 이거 뭐 갓 낳은 거 모양으로 빨가이  이라니까 자꾸 살아서 젖도 먹고 뭣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이 젖이요 또 영감이  젖이라 말이지요. 이렇게 자꾸 먹고 지금 막 발동을 치면서 부지런히 자라야 이  세상을 떠날 때에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마음대로 날아다니고 우주를 통치하고  이럴 수 있는 이 하나님의 아들로 장성할 터인데. 이 장성할. 하나님의 아들로서  장성해야 될 요 시대를 장성하지는 안하고 하나님의 아들로 난 자를 밟아  처넣어서 꼼짝도 못 하게 하고, 나를 죽인 나 아닌 원수, 악령과 악성과  악습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나를 죽인 원수 고놈이 와 가지고서 내 마음을  주장해서 고놈이 나인 줄 알고 고놈에게 끌려 가지고서 이 하나님의 아들된 내가  아들로서 알아서 장성할 요 시기를 다 전부 이 세상 사람들같이 남 꾀우고  속이고 죄 짓다가 망칠 뻔했다 그 말입니다. '궤휼을 행했으리이다'?

 16절에 '내가 어꺼면 이를 알까 하여' 이러니까, 분명히 지금 이거 깨닫기는  깨달았고, 이놈이 원수다 하는 것을 깨달아서 물리치기는 물리칠라고 했는데 이  사실을 더 확고하게 내게 알아져 가지고, 확신이 돼 가지고서 뭐 더듬을 것 없이  다시는 그런 생각이 내게 들어오지를 안해야 될 터인데, 이 생각이 내게  들어오지 안해야 될 걸 안해야 될 줄만 알았지 지식적으로 비판하고 이성적으로  판단만 했지 이게 문득문득 들어오니 이게 어찌 되느냐? 이 문제를 내게 확고  부동하게 내가 참 손으로 거머쥔 것같이 이렇게, 요게 내가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 것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요게 멸망케 하는 것이요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간섭하는 것이니까. 요것이 간섭했다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이사는  것을 확고히 내가 깨달아야 될 터인데 깨닫지 못해서 고민을 했습니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고난하더니' 심히. 이걸  확실히 알아야. 우리가 확실히 알고 걸어가야 평안한데, 우리 마음이 뭐이든지  확실히 알고 걸어갈 때에 그때에 힘이 있고 능력이 있는 것인데 말로만 알고  지식으로만 알고 실은 내 성질이나 내 본능이나 이 모든 내게 있는 욕심이나  이런 전체가 따라가들 않는다 그말이오. 내 이성 판단은 이래야 된다 하는데 내  욕심은 또 이래 하자 하고, 또 하나님의 영감은 이렇게 하라 했는데 내 본능은  이라는게 좋고 이러니까 이 모순 가운데서 이거 죽을 지경이라 말이오.

 이랬는데, '고난하더니' 17절에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참, 이러니까 이걸 알기  위해서 아무리 기도한다 해도 쩝데기 기도고, 이거 기도가 장 껍데기 기도고 뭐  영감을 받는다고 해도 껍데기 기도고 이런데 성소에 들어갈 때가 있다 말이오.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이제 성소에 들어갈 때라 말은 주님 계시는 곳에 들어 가  가지고서 주님을 만났다 말이오. 주님을 만날 때에 해결이 됐습니다.

 주님 만나는 것도 내가 여게 부산 와 가지고서는 주님 만난 일이 꽃마을  기도원에 가 가지고는, 평소에 뭐 거기 가면은 마음이 새로워지고 이렇게 좀  깨끗해지고 믿음이 생겨지고 이라는 일이야 했지요. 이래는 했지만 꽃마을에  가서는 꼭 한 번 내가 주님 만난 일, 꽃마을 기도원에서 한 번 만난 일 있고, 또  저 양산동에 가 가지고 그라는 건 거게서 대밭 뒤에 가 가지고 내가 기도할 때에  그때, 물론 보편적 은혜야 있지마는 하나님 만난 거는 양산동 거기 가 가지고는  똑 한 번 꼭 만난 일이 있습니다. 한 번 꼭 만난 일이 있고, 수원지 가  가지고서는 내가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었고, 오층에서 내가 만난 것이 한 서너  번 주님을 내가 만난 일이 있었고, 그전에 거창 있을 때에는 내가 자주  만났었는데 못 만났다 그말이오. 이번에 오층에서 저 먼저 말하는 그때에 주님을  만났고, 그 뒤는 자주 종종 주님을 만나는데,  만나는데 만날라 하면 뭐이 와서 방해를 한다 말이오. '주님 만날듯 하면은  뭣이 와 가지고서 방해를 합니다. 방해를 하고서 그만 이거 만날 뻔 했다가 그만  헛일이라 말이오. 그라고 나면 사람이 죽을 지경이라, 그만 고민스럽고. 그만  그날은 전부 헛일이고, 그만 이래서 그만 치워 버리고 '에이 이까짓 거 뭐' 그만  그때는 옛사람이 들어오니까, '뭐 네가 암만 그래 봤자 안 되니. 죄 하나 지으나  둘 지으나. 에이. 그러니까 그만 이래 해 버려라.' 그래 가지고 그만 뭐 바깥에  나와 가지고 오히려 노동일 합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뭐 이래 가지고  그만 이래 생각하고 뭐 정 안 될 때는 테레비도 틀어놔 버리고 이래 이거 발광을  한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이거 만날라 하다가 못 만나면,  이러니까 참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이래 생각하는데. 주님 생각하는 이것을  끊게 하는 고것이 뭐이냐? 주님 생각이 그만 딱 끊어지고 딴 거 생각해. 주님을  내가 생각하고 주님하고 이렇게 사모하고 이렇게 하다가 무슨 사건이 들어와  가지고서 그만 그 사건 생각하다 보니까 주님 잊어버리고, 주님 생각하던 것이  사건 생각으로 바꿔지고, 주님 생각하는 것이 그만 사람 만나 가지고 사람하고  서로 대화하다 보면은 사람만 있지 그만 주님하고, 사람하고 나하고 둘이만  말했지 주님은 잊어 버렸다 말이오. 또 주님하고 이래 하다가서 그만 전화가  따르릉 오는데 뭐 무슨 전화라 무슨 전화라, 국제 전화라 뭐 서울 전화라 뭐  지방 전화라 이랄 때에 그 전화 받다 보면 그만 헛일이라 말이오. 인제 그거  받아도 헛일 안 해야 될 터인데, 주님하고 동행하면서 전화도 받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사건도 생각하고, 주님 동행하면서 사람하고 접촉하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이 숙달이 돼야 될 터인데 그게 안 되고 주님 생각하다 뭐이 들어오면 그만  주님은 잊어 버려 버리고 그거하고 그만 이래 서로 대면한다 말이오.

 그래서 제가 글을 써 놓기를 '주님을 사모하는 그 사모를, 주님 상대을 요것을  끊어지게, 주님 상대를 끊어지게 한 고것이 내게 대해서 간부다. 고것이 내게  대해서 간부다. 전화든지 사람이든지 사건이든지 일이든지 뭐이든지 고게  간부다. 또 성경 말씀을 내가 궁구할라고 성경을 읽을라고 하는데, 또  기도할라고 하는데. 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해서 설교할라고 준비할라고  하는데 고때에 요거 방해하는 '고것은 배암이다. 고거는 원수다.' 할 수 없어  내가 기록을 하고 내가 이제 오늘 아침에도 나오면서 서너 번 읽고 나왔습니다.

 자꾸 이러니까, 아무리 우리 지식과 이성 판단이 다르고. 이성 판단과 내  마음이 다르고, 내 마음과 내 본능이 달라요. 이러니까, 본능이 돼야 이게  되어지는 것인데 이거 만날, 지식으로야 알지. 내 이성 판단으로야 그런 줄  알지요. 내 마음으로야 그랄라고 애를 쓰지요. 그러나 내 속에 본능은 다르다,  본능은 다르다 그말이오. 그래, '하나님이 그래 지도해 주십시오. 이러니까,  안해서, 해서는 안 될 것이면 그래 해 주시면 내가 그거 안 하겠습니다. 그러면,  그거 안 가르쳐 주시면 내가 그래 해 가지고 망할 터인헤 그렇게 해 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랬는데, 왜 그렇게 안 됐다 됐다 꼭 같이 기쁠 건데 뭣  때문에 됐다 하는 것만치 안 됐다 하는 것이 같이 기쁘지 안하고 그 마음의  본능이 꼭 같지 안했느냐? 고것도 그냥 살펴보면 모르지마는서도. 내 마음에  그런 마음 먹은 건 아니오. 마음 먹은 거는 아닌데 어짠지 그렇게 마음에 좀  기뻐지고, 또 그렇게 기쁘지 안하고 보통이고, 보통이고 이런데, 그 말이 만일  그게 됐더라면 기뻐질 거 아닌가, 기뻐질 거 아닌가 고걸 생각해 보니까 내  마음이 다르다 말이오, 확실히. 이러니까 그게 뭐이냐 본능이 아직까지 달라서  그런 거라.

 이래서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의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그 사람의. 참 논리야 우리가 잘 알지요? 그 사람이 이  세상과 그 사람의 죽은 뒤 지옥과, 홍포 입은 부자, 홍포 입은 부자와 또 예수  믿어 택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이 세상 살이와 무능세계 살이, 이 세상  살이에서 죄를 지어도 모두 다 형통한 그런 예수 믿는 사람 택한 사람도 있고,  털끝만치도 죄를 지으면 꼼짝 못 하게 막 징계가 와 가지고, 그만 털끝만한 죄도  못 짓고 생각도 나쁜 생각 한번도 못 하고, 간섭해서 이거는 꼭 주님만 봐야  되지 뭐 조그마치라도 뭐 털끝만치라도 섞인게 있으면 견디지 못하게 이렇게  세밀히 해서 꼭 하나님이 보시기에 흠과 점과 주름 잡힘과 티가 하나도 없도록  요렇게 만드니까 고통은 고통이지마는서도 하늘나라에 가서 보면은 영 그거는  차이가 굉장하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신자와 불신자의 그 결국을 비교해  보고, 신자와 신자로서도 그래 가지고서 이거는 꼼짝도 못해서 털끝만한 죄도  없이 깨끗하게 만들어 주심을 받았고, 이거는 예수 믿지마는서도 안 믿는 사람과  비슷하이 그래 가지고서 산 그런 자도 있고, 이러니까, 죄 짓고 잘 사는 그  사람과 죄를 지을 수 없는 사람의 그 결국의 하늘나라를 따지고 그것을 연결해  가지고 계산해 보니까 이것은 참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이었는데 이걸 깨닫지  못하고 이렇게 한 것이, '결국을 깨달았나이다'

 18절에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쫙 미끄러져서 한번  반성하고, 한번, 그렇게 그게 형통치 안하면은 '이거 무엇 때문에 이런가?' 한번  그렇게라도 한번 생각할 수 있었는데 그만 제게도 전부 형통돼 버리니까 그런  생각도 한번 못 하고 일생을 지옥까지 쫙 미끄러졌다 말이오.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 이러니까, 일생 동안 한번 죄 지어도 '이 죄 지으면  안 되겠다 이러면 안 되겠다' 하는 그런 거 반성 한 번도 못 해 보고 그만 그와  같이 쭉 미끄러져 죽었다 말이지요.

 이러니까, 20절에 '주여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깨고 나면은 꿈  그거 헛일 아닙니까?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 주께서 깨신 후에라 말은 주님의  재림 때라 말이오. 주님의 재림,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를 말합니다. '깨신 후에  저희의 형상을 멸시하리이다' 이제 무궁세계. 하나님의 심판에 떡 다다르고  보니까 참 부자의 생활이 비참합니다. 형통한 사람이 비참합니다. 심판을 당하고  보니까 요렇게 까다롭게 하나님의 간섭을 받은 그 생활이 얼마나 영광인데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일면 지식 일방 지식만 가지고서 살았더라 그거요.

예수님의 재림이 되고 나서 보니까 그때는 '저희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그  사람의 인격성이나 모든 것이 참 비참하고 가련한 인격성이 됐다 그말이오.

 이렇게 간섭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턱 닥쳤을 때에 보니까 자기가  주님의 형상과 같애. 이러니까, 주님의 속성과 꼭 같이. 보니까 그렇게 간섭은  받았지마는서도 그렇게 간섭을 받아 가지고서 세밀히 살고 나서 보니까 예수님의  재림 때, 하나님의 심판대에 가 보니까 예수님과 자기는 주님은 창조주시요  자기는 피조물인 것뿐이지 주님 모양과 자기 모양이 꼭 같다 그거요. 주님  모양과 자기 모양이 꼭 같애. 주님의 속성과 자기 속성이 같고, 주님의 인격과  자기 인격이 같고, 주님의 견해와 자기 견해가 같고. 주님의 그 모든 희로애락이  자기 희로 애락과 꼭 같애.

 이런데 이걸 모르고 했으니까 21절에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 마음이 산란하며' 이걸 참 이렇게 내가 생각했기 때문에 과거에  그렇게 생각하는 둥안은 다 헛일했소. 그런 생각이 있는 동안에는 그거 다  헛일이라 그말이오. 그거 되는 것 같았지마는 전부 껍데기고 외식이지 하나도  속에는 안 됐다 그말이오. 이걸 깨닫고 보니까 내 마음이 산란하다 말이오. 내  마음이 참 겉잡을 수 없어 뭐 기가 막힌다 말이오.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 내  심장이 뭐 후회가 돼서 죽겠어. '찔렸나이다'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하니' 이와 같이 어리석기가 벌거지 같다 말이오. '우매  무지하니' '우매 무지하니 주의 앞에 짐승이오나' 주님 앞에 짐승시라. 짐승  같은 자라. 주님 앞에 짐승같은 자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되게 해  주시는데 그거는 불행이라 마다 하고서 이거 멸망 가운데 던져 버려서 멸망케  하는 그거는 좋다고 이랬으니까 내가 짐승이나 다름이 없다 그말이오.

 '짐승이오나' 23절에 '내가 항상 주와 함께'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이래도, 이래도 내가, 참 이렇게 우매 무지한 짐승  같은 행동을 했지마는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인 줄 모르고 원망 불평하고  이와같이 했지마는 그래도 내가 아침마다 징책을 보고 또 성경 보고 가책을 받고  '이래서는 안 된다' 하는 요 줄기 요거 하나 가지고서 주님이 나를 붙드셨다  말이오. 주님이 나를 붙드셨기 때문에 고게 내게 하나 있었다 그말이오. 고거  하나 있는 거, 참 내게 고민하고 '이거 이치가 참 모순되다. 이게 어찌 이런가'  그래도 불평스러운 고 마음이 내게 계속 있을 수 있는 고것이 주님이 나를  붙드신 거라 말이오. 고것이 주님이 날 축복하신 거라.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절에 '주의 교훈으로 나르 인도하시고' 그래도  자꾸 내가 암만 그랬지마는서도 자꾸 성경을 내가 보게 됐고 성경 말씀을 듣게  됐고 해서 암만. '이거 뭐 성경은 내게 고민 주는 것뿐이다.' 예배당에 가면은,  안 갈 수도 없지, 새벽기도 가면은, 또 이래 새벽기도 가서 말씀 듣고 나면 또  고민이지, 또 고통이지, 괴롭지. 성경보면 그렇지 이렇기는 이래서 안 갈라 해도  안 갈 수도 없고 가니 그 꼬라지마 보고 하니까 영 죽을 지경이라 그말이오.

그러나 그것이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그게 주님이 교훈으로 나를  인도해서 그게 인도하신 거라 말이오.

 '주의 교훈으로 날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그것이  주님의 교훈으로, 내가 원망 불평해도 그분이 '네까짓 놈, 그놈 내버려 둬라. 네  마음대로 해라' 이래 집어던질 터인데 깨닫고 보니까 내가 이렇게 원망 불평하고  불만스럽게 하나님 앞에 뭐 이렇게 못 되게 굴어도 주님이 내게 악하고 더럽고  못된고 행위에 충격을 받지 안하신 그것이 감사 하다 그말이오. 내 행동한 그  행동에 대해서 당신이 그만 사람 같으면 한 백 번이나 권면하다가 안 되면 '아,  냅둬라 네 마음대로 해 버려라' 이랬더라면 나는 멸망할 터인데 그래도 당신이  그렇지 안하고 끝까지 끝까지 나를 권면하셔서 여게까지 도달하게 한 걸  생각하니까 이거 참 기가 막히게 감사하다 말이오. 그렇게 하신 분이 그렇게  그렇게 해 가지고서 날 여게까지 인도하셨으니 후에는 나에게 영광의 나라를  줄라고 이와 같이 한 걸 생각하니까 감사하고 기뻐 못 견디겠다 말이오.

 그러니까 25절에, 이겁니다. 25절 내 요 말씀할라고 지금 오늘 아침에 했어.

25절에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25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하늘에서도 주님외에는 아무것도 내게 필요없어. 주님 외에  내게 아무것도. 하늘에서도. 하늘나라 가도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없다, 이  사람 바로 깨달았어. 하늘나라 가면 주님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보십시오.

나사로가 가 보니까 주님과 믿음의 선배 아브라함과 그들만 있지 뭐 땅위에  필요한 것이 하나나 있습니까? 하나도 없어도 그 나라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  땅의 걸 그래 많이 가지고 간 부자이지마는서도 물 한 방울이나 가지고  갔습니까? 못 가지고 갔다 말이오. 우리는 그러기 때문에 일방적 지식을 보지  말고 모든 것을 비교해 봐야 됩니다. 비교. 비교를 해 봐야 됩니다.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땅에서는 주님 외에는  사모할 자가 없어. 하늘에서도 주님 외에 아무것도 없고 땅에서도 주님 외에는  사모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니' 이라고  나니까 내 마음이 언제든지 튼튼하니까 겉사람은 약해서 노쇠 쇠하지마는 속에는  불이 올라온다 말이오. 속에는 강한 힘이 있어. 속에는 강한 힘이 있어.

그러니까, 이제 껍데기 힘은 없지마는서도 의에 대해서는 강하고 속에는 강한  뜨거운 힘이 있다 말이오. '반석이요 영원한 분깃이라' 주님은 영원한 나의  분깃이라.

 '대저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이제 깨닫고 보니까 주님 멀리한 고  시간이 망한 거라. 돈 주면서 멀리하게 하든지, 권세 주면서 멀리하게 하든지,  명예 주면서 멀리하게 하든지, 또 무슨 행락 주면서 멀리하게 하든지. 또  자기가정에 사랑하는 아내 주어서 멀리하게 하든지, 남편 주어 멀리하게 하든지.

친구 주어서 멀리하게 하든지, 사업 주어 멀리하게 하든지 뭐 자녀 주어  멀리하게 하든지 어쨌든지 주님을 멀리 하는 그것은 내 원수라.'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나는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이제 주님을 떠난 그것이. 주님을 잠깐이라도 잊어 버린 그게  음녀로 더불어 음행하는 것이요 간부로 더불어 음행하는 것이라. 주님을 잠깐  떠난 것을, 주님 사모하고 주님을 모시고 주님 생각하면서 사람하고 얘기할 때도  주님하고 같이 얘기하면. 껍데기는 모르지만, 껍데기는 사람들 보기에 나  혼자이지마는서도 주님하고 나하고 둘이 같이 그 사람과 얘기하고 주님하고 같이  생각하고 주님과 같이, 구경하고 주님과 같이 모든 거 하면 되는데, 주님 떼  버릴 것이 없고 주님을 모시면은 그분이 자본주라 말이오.

 주님을 모시면 그분이 전지자이니까 내게 지혜 모자람이 없이 지혜주시지, 능력  모자람이 없이 능력 주시지, 모든 것의 대주재이니까 내게 필요한 건 다 주시지  내게 또 필요없는 거 내가 거머닥치면 '이거 안 된다' 집어던져 버리지  이러니까, 그분이 나를 보호하시지. 내게 부족한 거 다 채워주시지, 내 무자  무능한 거 다 보충해 주시지 이렇게 좋은 분을, 이분 한 분 모시는데 이분을  모시지 안하고 이분을 멀리 떠나는 그것이 뭐이냐? 창기성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그만 주님을 떠나고 주님을 잊어버리고 자기가 미워서. 미운데, 고놈이  미운데 뭐이냐? 고놈이 옛사람 고놈입니다. 고놈이 악령 악성 악습이오. 뭘로?  자기 딴에는 뭐 이거 사람 하나 만나 가지고서 그 사람에게 권면해서 그 사람을  아주 문제를 해결지워 주고 일을 잘 지도해 줘서 그 사람의 그만 죽을라 하던  사람이 살고 이라니까 그것이 할 일이요 그것이 어북 가치있는 일 하는 줄 알고  그런 일 하고 난 다음에는 쾌감을 느낀 것이 '아, 오늘은 그래도 아무것이 그  가정이 망할 가정인데 이렇게 이렇게' 한 몇 시간 가지고서 이렇게 해서 해결해  줬으니까 '오늘은 한 일 했다.' 어북 한 일 한 거 같이 기쁘고 즐거웠고  이랬었는데.

 그것은, 그 권유하는 일을 맡은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제 할 일이지마는서도  나는 내 할 일이 아니라 그거요. 이랬었는데, 그거 인제 그것도 나 할 일이  아니라. 이러니까, 만일 그 일 함으로 말미암아 하루 종일 주님 만날 것도  만나지 못했지 성경 읽을 것도 성경 읽지 못했지 고만 이래 버리니까 실패만 해  버려. 그래 가지고 그걸 내가 이름을 짓기를 간부라 지었습니다. '요 내가  주님의 아내로 정절 부인인데 고거 간부가 와 가지고서 그만 미혹을 받고 내가  간부하고 내가 동침했기 때문에 내가 고게 음행이다' 요 사람도 요거 음행이라  하는 것을 깨달았어. 또 내가 뭣이 좋아서, 그게 권세가 좋다. 지위가 좋다,  명예가 좋다, 돈이 좋다, 행락이 좋다. 사람이 좋다, 뭐 가족이 좋다 좋아서  주님 잊어 버리는 고거는 뭐입니까? 고게 음녀요 음녀.

 이래서, 뭣이 위협을 주고 눌러서 막 어려운 난제가, '아 이라면 죽는데,  이라면 큰일 나는데' 뭣인가 어려워서 나를 억압시켜 가지고서 그만 그것 때문에  주님 잊어 버리게 하는 고거 뭐입니까? 고거는 뭐이요? 요게 간부입니다. 요게  간부요. 나에게, 나를 능력을 가지고서 나를 잊어 버리게 하는 거, 나를 눌러  썩어 가지고 두렵게 해 가지고 주님을 잊어 버리게 하는 거. 어째됐든 간에 좀  권위를 가지고서 주님을 잊어 버리게 하는 고것은 간부요, 내가 좋아서 달콤해서  살살 꼬여 가지고서 내가 주님 잊어 버리게 하는 것은 고거는 뭐입니까? 음녀.

음녀. 간부. 음녀 간부 이놈은 뭐이냐 하면은 그거는 나 같지마는서도 내가  아니고 내 마음은 그게 아닙니다. 악령 악성 악습 요놈이 들어서 내 마음을 꼬아  가지고서 간부의 미혹을 받게 하든지 음녀의 미혹을 받게 하든지 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래서,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주를 멀리 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깨서 다 멸하셨나이다'  한번 따라 합시다. 주를 멀리 하는 자는 망하리니! 주를 멀리 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  녜, 또 하나 합시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요 말씀은 시편 73편 25절이고, 또 하나는 27절이고, 이러니까, 우리가  어짜든지 주님 잊어 버리지 맙시다. 주님 잊어 버리면 안 됩니다. 주님하고 꼭  동행해야 됩니다. 주님을 잊어 버리면. 주님을 사모하고 또 그 다음에는, 열  가지 말해 봐요. 주님을 사모하고, 또 주의 말씀과 동행하고. 주의 말씀을 자꾸  생각하면 못 떠나요. 주의 말씀과 동행하고 또 영감과 동행하고, 또 사죄와  동행하고. 또 칭의와 동행하고. 또 화친과 동행하고, 또 감사와 동행하고,  자복으로 동행하고. 또 모든 것을 구하는 도고로 동행하고, 또 간구로 동행하고  이건 기도라 말이오

 이래서, 또 주님을 못 가게 봐 붙드는 거, 붙드는 것이 일곱 개 있었는데.

붙드는게 뭐이지요? 주님을 못 가게 뽈끈 붙잡는 거. 붙잡으면 못 갑니다. 못  잡는데, 암만 제가 뭐 다른 거 붙잡으면 안 돼요. 붙잡는데 일호가 뭐이요?  사모로 뽈끈 붙잡는 것, 또, 예? 당신을 믿음으로 뽈끈 붙잡고, 또, 당신을  소망하는 것으로 뽈끈 붙잡고, 또, 예? 내 모든 걸 맡기는 걸로 뽈끈 붙잡고.

또, 의지하는 걸로 뽈끈 붙잡고 또 순종으로 뽈끈 붙잡고, 또 그 다음에는, 예?  예? 기다리는 거. 눈을 깜짝 깜짝 이라고 자꾸 기다리고 있으니까 못 간다  그말이오. 그렇지 않소? 전적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데,  고걸 다른 데다 생각해 볼 게 아니라, 어떤 이제 과부가 남편이 이렇게  죽었는데 마음에 정욕이 불같이 타오르니까 이거 참 뭐 아무래도 가기는 가야  되겠는데 이거 데리고는 못 가고 이러니까, 갈라 하지마는서도 그거 보니까 저만  보면. 자기만 보면 좋다고 다 맡겨 놓고 하는데 고건 떼 놓고 갈라 하니까 '내가  참 환장은 하기는 했다.' 그래도 못 견디니까 '어라, 뮈 그까짓 마음 크게 먹고  돌아서자' 하고서 그만 발을, 신을 딱 돌려 놓고 신고 그만 이래 갔다 말이오.

가다가서 그게 생각이 나니까 그만 엎어지고 못 가겠다 그말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사람도 그렇지 안해요?  남편이 또 애먹이는 남편이 있으니까 '이까짓 거 뮈 이거 안 된다' 이렇지마는  그래도 이제 그걸, 떡 가 가지고 이래 가만히 가 가지고서 남편 그놈 그러니까  '에이, 그까짓 거 내버려두고 살러 가든지 이래야지' 이랬지마는서도 가 보니까  내가 가면 저게 지금 나 올까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또 그게 지금 젖 먹을 때가  됐으니까 이거 뮈 이래 쌓고 이런데, 내가 가면 얼마나 반가워 할 것이고 뭐  이런 거 저런 거 생각 하니까 이거 못 가겠다 말이오. '에이, 그러면 내가  죽어도 내가 가들 못하겠다. 남편은 그렇지마는서도 내가 뭐 혼자 살지'  이라면서도 이제 못 가고 그놈의 집구석을 또 들어간다 그거요. 그렇지 않소?  우리가 악할지라도 그런데,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할지라도 자기 태에서 낳은 자식을 잊어  버리겠느냐 너희는 혹 잊어 버릴 수 있을지라도 나는 잊어 버리지 않는다' 자기  태에서 난 자기 자식에 대한 어머니보다 더한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다 그말이오.

 이러니까, 어짜든지 주님 사모를 놓지 맙시다. 주님을 불들고 놓지 맙시다.

그러면, 그분만 사모하면 뭐 밥은 어째 먹고? 그분 사모하면 그 분이 전능자요  모든 것의 대주재이기 때문에 그분을 붙들면은 전지를 붙들었기 때문에 그  전지가 내게 대한 것을 다 필요한 것은 다 전지의 지혜가 아는게 낫지 내 지혜가  아는게 낫습니까? 전능이 해 주는 것이 낫지 내 능력으로 하는게 낫습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지 내가 뭘 하겠습니까? 모든게 당신이 주인이신데. 그분만  사모하면 당신이 있어야 될 거 있게 하시고 없어야 될 거 없게 하고 당신이 내게  모든 필요한 것을 다 나로 하여금 다 하도록 이와 같이 해서 형통하게 해  주시니까 우리가 꼭 주님 사모하는 이것으로서 이제 금년에는 우리가 돌변이  돼야 되겠어요. 그래 주님 사모를, 그래 가지고 어데 까지 하겠느냐? 이제  주님하고 동행해서 에녹같이 되어서 주님하고 동행하면서 가정 생활도 하고,  자녀도 기르고, 사업도 하고, 모든 거 다 주님하고 동행하며 할 수 있는 이  사람이 되어진 그때부터 이제 생명 세계로서 사망을 이기고 생명 역사가 이루어  간다 그거요. 그거 에녹으로 보여 준 것이니까,  어짜든지 주님 잊어 버리지 않는 이 연습을 합시다. 그래서 주님과 동행하는 이  일을 아무래도, 금년 이제 연말이 다 돼 가는데, 주님과 동행하는 이걸 자꾸  연습해서 그저 우리가 뭐 뻐뜻 하다 보면 어만 거 생각해. 어떤 사람은.

사람마다 더라요. 그저 이라면은 돈 생각 나는 사람, 이라면 자기 뭐 직장 생각  나는 사람, 또 자기 사업 생각 나는 사람. 이거 생각 저거 생각 다 나는데, 그런  거는 생각 안 할라 해도 쑥 생각이 들어오는데 왜 주님은 자꾸 생각할라 해도  생각이 안 들어오느냐 그거요. 이게 우리가 지금 이 옛사람 악령 악성 악습  이놈이 들어서 나를 괴롭게 해 그런 것입니다.

 이래서 이제 세상의 그런 거는 생각할라 하면은 역부로 생각할라고 애를 써야  생각이 돼지고 주님은 생각할라 하나 안 하나 저절로 생각이 돼지는 요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가 돼져야 되겠다 그거요. 그러면, 주님만 생각하고 이 세상 것은  생각을, 생각할라 해도 생각이 안 될 그때에 이제 그러니까, 주님 앞에 '이걸,  이거 좀 이거 뭐 이거 생각해 봐야 되겠는데' 이라면 주님이 주시는 생각을 받을  수 있는 그때라 그말이오. 내가 생각 안 해도 자꾸 생각이 나지는 그때는 뭐이냐  하면은 악령 악성 악습이 들어서 나를 그라기 때문에 망할 것뿐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그라고 하나 주의줄 것은 오늘 결혼 상담인데, 여러분들이 속에 있는 속사람을  보지 안하고, 믿음을 보지 안하고 껍데기 낯짜구만 보는 그거는 망할  조목입니다. 낯짜구만 보는 그거는 망할 조목이라. 낯짜구 그거는 그거는  이상합니다. 사람이. 사람이 예쁘게 보이기 시작하면 삐뚤어진게 더 이쁘대요.

얄궂은 그게 더 권태 안 나는 예쁜 것입니다.

 어떤 학교에서 '제일 이 세상에 예쁜 사람이 누군고 다 한번 그걸 써 내라'  이라니까 어떤 학생이 저거 어머니가 제일 이쁘다고서 그래 써 냈더래요. 그래  말하기를 '너거 어머니가 뭐 어데가 제일 잘 생겨서 예쁘노 하니까 우리  어머니는 한쪽 눈이 쪼그라져서, 한쪽 눈이 새 까먹었다고. 한쪽 눈이  쪼그라졌는데 그래 그 선생이 하도, 그런 줄 알고 '너거 어머니가 어데가 제일  이쁘노?' 우리 어머니는 한쪽 눈이 쪼그라졌는데 거게가 그렇게 이쁘고, 다른  사람 안 그런데 그렇게 예쁘대요. 예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예쁩니다.

 그러니까, 얼굴은 그 사람의 행위에 따라서 '저 사람을 어찌 데리고 살꼬' 이래  싶어도 그 사람은 좋아서 못 견뎌. 사람 결혼 낯짜구 결혼이라 하는 그것은  얼마, 결혼, 결혼은 일주일 결혼이라 하는 그 말은 일주일이면 결혼 다 했다  그말이오. 일주일이면 낯짜구 결혼도 다 됐고 동침 결혼도 다 됐고 뭐 다 됐고  그 다음부터는 이제 뭐이냐 하면 사람의 인격 교제입니다. 말 결혼, 말이 서로  통한다. 말 결혼, 사상이 통한다, 정신이 통한다. 성질이 통한다, 소망이  통한다, 목적이 통한다. 그만 이제 결혼을 중첩적으로 몇십 번 결혼을 이래 해야  그게 옳은 결혼이지 낯짜구 결혼만 해 가지고 안 되니까 그거는 아무 결혼해  가지고, 짐승 결혼이지 맛이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내가 어제 어떤 사람들었는데 '결혼을 해라' 그 사람은 말 하기를 그  설교를 듣고 난 다음에 한번 설교하는 걸 듣고서 '아 나는 어짜든지 나는 저  사람하고 결혼을 해 좋으면은 저 사람한테 일생을 바쳐서' 그 사람이 월급도 한  이십만 원 받는대요. 이러니까, '저 사람 내가 돈 벌어 가지고서 얼마든지 길러  가지고 출세를 시켜서 일생 동안 나는, 신앙이 있으니 신앙 저것만 보고서 일생  동안 나는 벌어 먹이고 기르겠다 배후에서 배경이 돼 가지고 내가 도와주겠다.'  왜? 그 용모 보고 하는게 아니고 고 신앙 보고서 그렇게 마음 먹었는데 이  남자라 하는 것은, 그 치녀가 입이 두뚝하이 이렇다고, 입이 뚜뚝하이 뚜뚝하이  이래 이렇다고 그것 보고서 안 했어. 그러니까 그거 망할 조목이라, 그걸  회개해야 되지 회개 안 하면 복이 안 온다 그말이오, 뭘 보고 하는 거라? 신앙  보고 안 하고 입 삐뚤거나 말거나 그 사람 속에 그렇게 진리를 사모하고 하나님  사모하면 그만하면 미인이고 의인이고 다 됐지 뭐 고기 덩어리 빤질빤질하면 뭐  하요?  그런고로, 용모 보고 결혼하는 자는 다 그거 벌써 망하지 안해도 속으로는 다  망했소. 그러기 때문에, 믿음 보고 그 속에 있는 하나님 보고 결혼해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용모 그까짓 거 암만 더러워도 조금 있으면 얼마든지 미인이  될 수 있어. 암만 처음에 결혼할 때는 다 미인이고 다 좋아서 막 죽자 살자  이랬지마는서도 얼마 지나고 난 다음에 권태나니까 보기 싫어서 '에이, 그 웃는  것도 보기 싫다. 말하는 것도 보기 싫다. 그 행동이 보기 싫다' 이래 가지고  모두 눈 쥐어 박힌게 뭐이냐? 처음에 결혼할 때는 그 눈이 어떻게 눈매가  곱지마는서도 나중에 보기에 눈을 자꾸 쳐다 보는게 밉상이니까 눈을 쥐 박아서  눈에 멍이 들었고, 또 입술에. 입술을 쥐 박아 놓으니까 입술이 두툼하이 나오고  그렇다 말이오.

 이러니까, 속지 맙시다. 오늘 결혼 상담인데 결혼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서 결혼을 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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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 주권을 믿고 회개하라/ 마태복음 10장 27절-33절/ 811015목새 선지자 2015.12.19
292 주권 섭리의 목적/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 800720주전 선지자 2015.1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