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짓지 말자-시험죄


선지자선교회 1983년 10월 21일 금새

 

본문 : 고전10:5-11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9절에 "저희 중에 어떤 사람들이 주님을 시험하다가 배암에게 멸망 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주님을 시험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을 시험하는 것인가?  첫째는 자기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살아갈 때에 자기에게 크고 작은 어렵고  쉬운 모든 현실이 닥칠 때에 그 현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신앙생활로 걷다가  닥친 현실이라면 그 현실은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하신 것인 것을 믿고 그 현실은  받드시 자기에게 유익되도 록 해 주신 현실이니 그 현실은 자기에게 복된 것인데  자기가 그 현실을 하나님의 뜻대로만 순종하면 그 현질이 자기에게 큰 은혜가 되  고 참 큰 영광의 승리가 되어지는 것인데,  그때에 하나님이 자기를 인도하시는 그 인도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피조물만을 상대해서 좋은 현실 닥치면 눈에 보이는 것들에게 감사하고 또  거기 비위에 맞지 않는 현실 닥치면 거기에 관련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  대해서 불평 원망하고 이리 하는 이것도 다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 가지고 자기의 당한 그 현실을 하나님이 잘 해 주시리라 이것도 반드시 잘  해 주시리라. 닥친 것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필요해서 닥쳐지게 한 이 사실과 또  닥쳐지게 한 이 사실을 자기에게 반드시 유익이 되도록 하나님이 도와 주신다  하는 것을 의심하는 것이 시험하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것이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닥친 그 현실, 또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약해서 어겨서 닥친 현실, 그러면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해서 닥친  현실 또 자기가 약해서 모르고 실수로 행동하다가 닥쳐진 현실. 그러면 그  현실은 여러 종류가 비슷 비슷한 것이 있는데 자기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을  함을 인해서 닥쳐온 그 현실도 있고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그 어김을  통해서 온 현실도 있고 자기는 무엇인지 모르고 뜻밖에 자기에게 자기가 이해 못  할 그런 현실이 닥치는 현실도 있고 어쨌든지 여러가지 종류의 현실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현실이 있을 때에 그 현실은 자기가 잘못해 가지고-자기  보기에-자기가 잘못해 가지고 닥친 현실이나,  김봉선씨, 새벽으로 졸고 이 말씀 못 들으면 앞으로 환난을 못 이깁니다.

세상을 못 이기요. 또 환난 안 닥쳐도 오늘도 환난입니다. 오늘도 죽느냐 사는  것이 결정되는 것은 뭐 평안한 때나 환난 때나 꼭 같습니다. 우리의 그 승패는,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은 꼭 같습니다.

 자기가 환하게 알게 '내가 이렇게 이렇게 잘못해 가지고 이런 일은 닥쳤다'  하는 그런 현실이나 또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삶을 인해서 닥쳐왔다' 하는 그런  현실이나 또 자기가 이해 못 할 뜻밖에 자기에게 부딪혀진 현실이나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은 그 현실이 자기에게 올 때에 거기에 그 순서 또 그 현실이  만들어진 모든 요소 그런 것은 이런 것 저런 것 여러가지가 들어 있는데 있어서  사람이 그 현실을 하나님이 만드시는 데에 이용됐으면 눈이 어둡기 때문에 제  현실이 좋으면 하나님이 이용하신 사람에게 대해서 감사를 하고 또 자기가 자기  마음에 마땅치 않는 그런 현실이 닥쳤을 때에는 거기에 이용된 사람이 사람이  있으면 사람을 원망하고 또 자기에게 뜻밖에 닥친 그런 현실이 좋은 현실 닥치면  재수 있다 운이 있다 참 자기에게 복이 있다, 안된 현실 닥치면 나는 화근이로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요 현실관을 바로 가지지 못하는 것 현실은 자기가 죄를  지어 가지고 만들어진 현실이라도 그 현실은 하나님이 그것을 자기에게 부딪히게  '한 현실입니다.

 또 이것을 좀 아마 이해하기가 어렵지마는 믿으십시오. 자기에게 자기가  범죄함으로 당한 현실이나 다른 이로 말미암아 당한 현실이나 어떤 현실이든지  그 현실은 하나님의 예정 순서대로 온 현실은 틀림 없습니다. 또 그 현실을  일으킨 이도 하나님이 주권적인 누구를 뭐 협동 협조가 아니고 하나님 단독  주권적인 능력으로 그렇게 만든 현실은 틀림이 없습니다. 요 현실을 요렇게 또  현실관을 바로 가져야 됩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배우고 나가면 벌로 다른 사람에게 말 하지  마십시오. 말을 하면 여러분들이 그 사람들의 말에. 변증에 변증. 변증에 능가할  만한 그런 지식의 범위가 없기 때문에 잘못하면 거기에서 배운 진리를 배반키  쉽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행하기는 행하십시오.

 또 자기가 능히 능가할 수 있는 그런 지식이 있는데도 자기에게 증거해야 될 그  사명을 하나님이 주어서 증거해야 되는 하나님의 뜻일 때에는 증거하고 뜻이  아닐 때에는 증거하되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지 말고 자기의 행위 가지고  증거하면 거기에는 탈이 안 납니다. 자기의 행위를 가지고 증거를 하고 논리나  이 진리 가지고 증거하면 잘못하면 역습을 당해 가지고 "개에게 진주 던지면  개가 진주를 밟고 도야 지가 진주를 밤고 도로 너를 물까 두려워해라"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되기 쉽습니다.

 이러니까 벌로 자꾸, 자기 실행으로 보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젖을 먹고,  실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그모든 행동에는 믿음의 젖을 먹고 심령의 젖을 먹고  또 꿀을 먹고 이렇게 살아나 도움을 받지마는 알지도 못하고 말로 벌로 이렇게  하다가는 도리어 저까지도 역습을 당해서 믿음 손해보고 진리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니까 그리하지 말고. 우리에게 닥쳐진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어떤  모양으로 어떤 순서로 어떤 요소들을 이용해 가지고 자기에게 온 현실이든지  어떤 종류의 현실이든지 '요 현실은 영원 전 하나님의 예정하신 대로 온  현실이다. 요 현실은 내 구원 곧 하나님이 목적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정하신 예정이니 요것이 내가 크는 밥이다 요 현실은 내가 먹고 내  구원이 자라서 이루어가는 내 신령한 양식이다' 요렇게 자기가 깨닫고,  또 요것을 하나님의 예정인데 예정된 것을 다른 무엇이 이 사람 이런 물건 저런  물건 이런 자연 저런 자연이 여기에 들어 가지고 이렇게 됐다고 해 가지고  그것이 조그만치라도 제 자유나 주권 가지고 이 일에 대해서 상관했다고  생각하지를 말아라. 하나님이 홀로 주권을 가 지시고 벌써 그런 것을 만드실  때에 그런 데에 이용하시려고 만드셔 가지고 당신이 홀로 창조하신 그것들을  이렇게 저렇게 이용해 가지고 너에게 닥쳐지게 한 그 현실이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은 내 구원을 위해서 주님이 주권적으로 예정하 신 것이며  주권적 능력으로 성취하신 것이니 이것은 내 구원에 반드 시 유익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현실은 내 힘으로나 어떤 자의 힘으로나 어떤 자의 지도로나 사람의  지도나 사람의 그 주권 위치에서 어떤 행위라도 있으면 나는 실패한다. 주권적  의지로 주권적 능력으로 이루어 놓은 이 현실 은 또 당신의 주권적 인도에  따라서 주권적인 그 능력의 도우심으로만 이 일이 이루어진다.

 그러면 주권적 의지로 예정한 것이 주권적 능력으로 이미 돼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또 주권적 의지의 예정대로 되어지는 것이니 여기에 대해서 내가  할 것은 '하나님이 여기에서 도와 주시면 일이 잘 된 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잘 된다, 또 이 일은 하나님이 반드시 도와 주신다.' 하는 것을  확실히 믿고 소망하고 그대로 하나님에게 따라서 움직이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것이 는 것이요 시험이 아닙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이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신 게 아니라 뭐 누구 때문에 했다  하는 것도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이요 '이 일은 하나님이 이것을 좋구로  결과적으로 좋게 이것이 없으면 안 되니 필요있고 좋게 하나님이 이루어  주시리라. 하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다 시험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수많은 경험을 보였고 체험을 시켰고 또  하나님의 역사를 자기들이 보았고 자기네들이 '여기에야 하나님이 되겠나? 안  되겠다. 수많은 의심을 가졌고 의심 가졌던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서 내가  의심했더니만 하나님이 과연 그렇게 해 주시는구나 해서 하나님에게 대해서  의심한 죄를 회개를 하고 '이제는 믿겠습니다' 하는 그런 회개도 자기네들이  많이 했습니다.

 했으나 또 앞으로 자기에게 무슨 어떤 어려움이 일이 현실에 닥치면 그만  여기에야 하나님이 도우실까? 하는 것을 신망하지 아니하고 의심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닥쳤지마는 과거에는 도와 주셨지마는 이 일이야 도와 주시겠나? 이  일도 도와 주실까? 이것도 하나님이 도우셔서 일이 잘될까? 의심하는 것.

'아무래도 요번에는 좀 모르겠는데' 이렇게 자기의 과거에 대해서 많은 경험  그걸 가지고 자기에게 닥쳐진 그 현실을 주님에게 부르짖고 주님의 인도대로  따르면은 그게 잘 될 것인 것을 소망하는 그 소망을 가지지 않고 의심하면서  '모르겠는데' '그러면 모르겠으면 하나님이 너희들을 유익되도록 인도하시는가  안 하시는가 네가 봐라' '네. 보지요.' '그러면 이번에만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네가 앞으로 믿겠느냐?' '네, 이번만 인도해 주시면 앞으로는 어떤 일 이 닥쳐도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와 주실 것을 내가 믿겠습니다. 믿겠습니다.' 그래  놓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도와 주면 '예 이제는 믿습니다. 이제는 앞으로  믿겠습니다.'  이렇게 작정도 하고 하나님 앞에 약속도 하고 자기를 자책하면서 내가 이런  자라고 하면서 회개도 하고 이래 놓고 그 다음에 또 그런 일 닥치면 그만 머리를  혼들면서 '모르겠는데? '과거에 네가 보지 안했느냐? 왜 하나님을 믿고 소망하고  따르지 안 하느냐?' 할 때에 '과거는 과거고 과거는 그랬지마는 이번만큼은  그럴지 안 그런지 내가 모르겠는데' 요게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해 주시겠나 안 해 주겠나 나는 의문 중에 있다' 의문 중에  있다는 그 의문을 가지는 그것이 하나님을 '해 주겠나 안 해 주겠나?' 의문 가진  그것이 시험입니다. 의문을 가지는 것이 그것이 시험이오.

 자기에게 닥쳐진 현실에 대해서 과거에 그런 일을 많이 경험했고, 안 해도  자기가 경험하고 체험보다도 더 확실한 예언이 있습니다. 확실한 이 계약이  있습니다. 확실한 계약이 있는데, 자기가 경험과 체험도 중요하지마는 '경험과  체험보다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예언이 이 신구약 성경  말씀이 있는데 이래도 닥쳐 놓으면 '몰라. 이번에는 내가 모르겠는데? 될런가 안  될런가 도와 주실런가 안 도와 주실런가?' 하는 그 의문을 가지는 그것을 여기에  가리켜서 "시험하다가 멸망받았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시험하는  것이오  무엇이든지 자기가 한번 이래 봤으면 '이거는 틀림없이 그렇다' 이러지 안하고  '모르겠는데 의문 중에 있는데 한번 시험해 보자. 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그런가  안 그런가 보자. 한번 시험해 보자. 한번 살펴보고 한번 새로 알아보자. 새로  알아보자. 새로 한번 조사해 보자. 새로 한번 겪어보자. 한번 실험해 보자.'  그것이 시험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시험이오. 그것을 우리가 깨닫고 그 죄를  회개를 해야 됩니다.

 자기에게 어떤 부딪힌 것이든지 하나님이 나를 도와서 반드시 유익 되게 해 줄  것인 것을 확신하는 그 신앙을 가지지 안하고 '해 주시겠 나 안 해 주시겠나?'  의문을 가지고. 도와 주실 것에 대해서 확신하는 통과를 하지 안하고 의문을  가지고, 도와 주실 것을 미결에 두고, 미결에 두고 의심에 두고 의문에 두고.

의문을 가지는 것. 의문을 두고 있는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서 망했습니다  또 어떤 것이 시험인고 하니 하나님의 돕는 도움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절대 믿는 사람들은. 인간에게 절대가 없지마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틀림없이 확신하는 사람, 도움을 확실히 믿는 사람들은 어떤 또 시험에 들기가  쉬우냐?  '하나님은 나를 도우시니. 하나님이 나를 붙드시니 하나님이 나에게 함께  하시고 붙들어 주시고 도와 주시니까 도와 주시는 것은 틀림 없으니' 해서  자기가 자기의 현실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 주시니'  하고서 자기 현실을 하나님께 순종으로 그 현실을 만나지 안하고 우연히  만나든지 아쨌든지 자기가 몰라서 만났든지 죄를 지어 만났든지 하나님에게  순종으로 만났든지 이미 이루어 지는 그 현실에 따라서 생각지 안하고 자기가,  하나님이 도와 주시니 하나님이 나를 도와 주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또 하나님은 이렇게 도와 주신다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서  하나님이 자기를 돕는다는 것을 증거해서 하나님을 알려 주시기 위하든지 또  자기를 '저 사람이 하는 일은 하나님이 같이 하신다' 하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하든지 그 현실을 자기의 자의적으로 고의적으로 자기가 그것을 하나님의  도우심을 나타내기 위해서.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또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  어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면 자기도 영광스러워지니까.

 하나님과 자기를 드러내어서 그 사람에게 워 구원을 주기 위함이든지 어떻게  하든지 무슨 일을 한다 할지라도 이런 좋은 동기 좋은 목적에서라도 자기의  현실을 하나님이 도우시니 그 도우심을 바라고 의지하므로서 자기가 고의적으로  만드는 그 현실은 그것이 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도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이다'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마태복음 4장에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뛰어내리면 하나님이 너를  도우셔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고 상하지 않게 하면 이는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이라 하나님이 과연 저와 함께하신다 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보고 인정하지 않겠느냐? 이렇게 네가 모든 사람이 보고 하나님이 너를  돕는다, 네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하나님이 동행하신다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지고 이제 성전에서 뛰어내리라.'  그것은 하나님이 성전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하나님과  자기를 모든 사람에게 인정시키기 위해서 인정시키는 것은 좋은 동기요 좋은  목적이지마는 그것이 인본적으로 자기가 만든 그 고의적으로 만든 현실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와 주시니 도와 주심을 나타내 보이자' 하고서 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시험치 말아라' '하나님을 시험치  말아라' 하니까 마귀가 거기에서 패전하고 달아났습니다.

 그런고로 시험은 자기에게 어떻게 닥쳐졌든지 닥쳐진 그 현실을 하나님이  자기를 반드시 도우셔서 구원에 유익되게 하고 하나님만이 유 익되게 할 수 있는  자가 있고 그 외에는 아무도 없다.

 요 현실을 현실이 내게 복되게 되는 내가 죄를 지어서 닥친 현실이라도 '요  현실은 반드시 나에게 복되기 위해서 영원 전 예정대로 주권의 능력으로 성취해  주신 것인데 요것에 해결을 지워서 복되게 하는 것을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데 하나님이 해 주심을 내가 받는 것은 내가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것으로만 요거 복되다.' 요 경계를 범위를 넘어가지  말고 요 안에서 있는 요것이 믿음이요 거기에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의문 중에  있으면 시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닥쳐진 현실에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과 하나님의 주권의 능력대로  된 것과 자기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것과 그것이 반드시 믿음으로 행하면 그것이  유익이 되고 믿음 아닌 걸로 행하면 자꾸 탈선되어서 소용없는 해가 되는 일이  된다는 것. 그것을 알고 믿는 것이 시험하지 안하고 순종하는 것이요 그 길 떠난  것이 의심하는 것이 요 의문 중에 가지는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험을 해서 하나님을 시험을 해서 그 다음에 현실이 닥쳤습니다. 또  현실이 닥첬으면 '내가 시험해서 현실이 닥쳤다. 불신으로 현실이 닥쳤다'  불신으로 현실이 닥쳤을지라도 그 현실에 대해서는 또 요대로 봐라-요게 참  어렵습니다.-불신으로 닥친 현실이라도 또 현실이 됐습니다.

 현실이 됐으면 '내가 과거에 하나님께 순종하면 그 현실에 복된 줄 알았는데 그  현실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요렇게 닥쳤다.' 닥쳤어도 그것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예정대로 자기가 불신자가 되어 가지고 현실을 만들어 또 닥친 현실입니다.

그것도 예정대로 된 것이요 그것이 주권의 능력대로 된 것입니다.

 어제 아침에 어떤 사람이 예정에 대해서 나한테 편지 쓴 사람이 여 기 왔는데  그 사람이 요 말을 들으면 좀 해결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하나님에게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이 현실이 복될 것인데' 하고 그렇게 믿어야 될 터인데  하나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이 일에는 아무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가는  낭패가 당하겠다' 이래 가지고 자기가 고의적으로 믿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하기 때문에 행동을 해 가지고 만들어 놓은 현실이라는 그 낭패를 또  왔습니다. 낭패가 왔으면 자기가 번연히 자기가 하나님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만든 현실이 됐습니다.

 그러면 그 현실이 됐을 때에 그 현실을 첫째 우리가 인식하기를 뭘 로 인식해야  됩니까? 첫째 뭘 생각해야 됩니까? ○○○조사님 첫째 뭐이지요? 첫째 하나님의?  하나님이 주신 것은 주신 것인데 첫째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예정을  믿으십시오. 요것도 하나님의 예정으로 된 것이다 요거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이다 예정은 내 구원을 위해서 예정하신 것이다. 요게 믿기 어렵습니다. 어제  아침에 묻는 사람이 그것이 날아가지 못하고 기어서 가기 때문에 날아가야 될  때는 날아가지 못합니다. 신앙은 날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날아가는 것이오.

자기를 부인하면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으로 믿어라는 그런  말이 그것이 날아가라 그말입니다. 자기 주관의 언덕을 떠나라 그말이오.

 그것도 하나님의 예정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누가  무엇을 무슨 내 현실을 만들 때에 네가 범죄한 그 요소도 들었고 무엇도 들었고  무엇이 들었든지간에 현실이 된 때는 그것은 그 일을 일으키신 이는 하나님이  혼자 일으키셨다 말이오.

 주권적으로 일으키셨다 말이오. 주권적으로 일으켰으면 거기 대해 가지고 '네가  이런 죄를 짓기 때 문에 네가 이런 벌을 받아 징계를 받아야 된다' 하는 것은  하나님이 무례한 일이 아닙니까? 그 범위에서 보면 무례한 일이고 그것이 불의  지마는 하나님이 그런 데에서 경험시켜 체험시켜 가지고 하나님이 우리의 지식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이며 이 모든 존재들의 그 활동의 생애의 범위라  하는 것은 어느 정도라 하는 그것을 제가 차차 차차 알아 가지고 이렇게,  단편으로 보면 무례한 것 같지 마는 그것이 전체면을 볼 때는 하나님의 목적인  하나님과 같은 온전 한 자를 조성하시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악이  하나도 없다 말이오. 전부 선이라 그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지옥에 있는 자들이 다 알고 보니까 하나님의 목적인 그  유일하신 그 선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런 모든 이런 것도 만들고 이래  모순되고 한 그것이 그 모순으로 또 우리를 가르치고 또 비합리적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이렇게 해 가지고 마지막에는 하나님 같은 온전한 자를 만드시는 그  순서의 과정이기 때문에 그 전체를 보 니까 목적이 다 좋은 목적이요, 동기가  좋은 동기요, 결과가 좋은 결과가 맺어지기 때문에 땅 아래 있는 물 속에 있는  자도 주를 보고서 주라 시인하면서 다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옥에 있는 자들도 하나님께 대해서 영원한 원망은 아닙니다.

거기에 대해서 거기에 있으면서도 마지막에는 하나님에게 감사하고 하나님을  주라 시인합니다. 그래서 빌럽보 2장에 보면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그거는 음부를 가리켜 말합니다.-거기에 있는 것들이 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에게 영 광을 돌리더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니까 자기의 당한 현실에 대해서 의문을, 하나님의 도우심과 자기의 구원을  위해서 있다는 이 사실을 확신하고 소망하고 하나님에게 복종으로 살아가려고  애쓰지 않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이스라엘은 그  시험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시험을 하나님을 그렇게 시험하다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받았고, 또 광야에서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는, 하나님이 너를도우시고  너와 함께 하시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네가 현실을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이 아니면 이거는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그런 현실을 네가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줘 가지고 인식을 하도록 해라 하는 그것이.

하나님이 도와 주실 터이니까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아니지마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한 번 보여 주기 위해서 하는 그것이 시험입니다. 그것을 주님께서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그러기에 하나님이, 자기가 우연히 갔든지 어떻게 했으면 하지만 자기의 주관이  들어 가지고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기 위해서 자기 주관이 주관을 해 가지고  이렇게 이렇게 만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보이기 위해서 만들어 가지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나타내려 하는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해 가지고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도우시리라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고 그렇게 만든 현실에서 도움이  있었든지 도움이 없었든지 어떤 결과가 왔던지 그 결과가 또 현실되는 것  아닙니까? 그 현실이 됐을 때에 그 현실에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라 하고서  자기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으로서 그 일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으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만들었으면 그 현실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그 현실을 봐야 됩니까? 어떻게  봐야 되지요? 하나님을 시험함으로 예수님을 성전에 뛰어내리라 할 때에  예수님이 그 마귀 말을 예를 들면은 마귀 말을 듣지 안하고 물리쳤지마는 만일  우리가 그런 입장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틀림없으니까 한번 시위 행세 한번  위엄 한번 보이자. 하나님을 우리를 돕는다는 것을 한번 보여주자' 하기 위해서  제가 고의적으로 그 일을 만들어 가지고 성전에 뛰어내려서 만일 다쳤든지  상했든지 또 그리 안 하면 안 상하고 어떻게 됐던지 그랬으면 그 현실은 제가  만든 것입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만일 다쳤다  합시다. 자기가 상했다 합시다. 상했든지 안 상했든지 그렇게 됐으면 그 현실에  대해서는 우리가 생각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예정. 또 그것 이룬 이는? 하나님의 주권. '내가 했는데? 내가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내가 하려고 했는데 그것이 예정이라 말이요 예정.

하나님의 예정을 요렇게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이렇게, 아직까지 예정 도리에 대해서는 지금 확실히 나타나지  안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있지만 예정에 대해서, 엊저녁에 내가 어떤 사람하고  만나 가지고 예정에 대해 말했는데 제가 칼빈주의의 예정론이라 하는 그 책을  박윤선 목사님이 기록했는데 내가 조금 봤습니다. 조금 거기에서 봤는데 거기에  분명히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이 대국적으로 윤곽적인 이것은 예정하셨고 우리  구원에 대해서는 예정을 하셨지마는 거기에 세밀한-우리가 말하는 대로-개미 한  마리가 수염을 요랬다 조랬다 흔든다는 그런 세부적인 그런 것은 예정된 것이  아니고 그저 우리 구원에 대해서 첫째는 예정이 됐고 이거 대국 적인 윤곽적인  그런 것은 예정이 됐지만 그 안에서 사사로 된 것은 예정이 안 됐다.' 하는  것으로 그렇게 기록을 해 놓은 것을 내가 읽었습니다.

 그래 내가 엊저녁에 그 책을 찾으니까 누가 가지고 갔는지. 칼빈주 의의  예정론이라 하는 그 책이 조그만한 책이 옛날 박윤선 목사님이 처음에 어디 아주  청년 때에 기록한, 기독교 강요를 보고 기록한 것 인데 그 책이 어디 갔는지  없어서 엊저녁에는 그거 찾아서 '보라' 그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책을 찾으니 그  책이 없어서 보여 주지를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됩니다. '내가 실컷 이랬고 이랬다.' 그것도 하나님의  예정인 것을 네가 믿어라. 그것도 네가 한 것 같지마는 하나님의 전능의  능력으로서 네가 이용당해 가지고 네 현실을 만든 것이지 네 독단으로 만든 것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권 의지의 예정과 주권 능력의 성취 그 외의 것은  하나도 없다. 그게 하나라도 있다고 하면 이원론이 된다. 하나님 외에 딴 사람  하나 원인이 하나 된다 하는 그것을 우리가 확신하는 데에서 마귀란 놈은  우리에게 패전을 당하고 우리는 앞으로 시온의 대로를 뿍뿍 안심하고 기뻐하고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만들어진 현실에 대해서 확신과 소망을 가지지 못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또 도우심의 능력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고의적으로 현실을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제가 주장으로,  하나님께 순종으로 하지 안하고서 제가 제 생각으로 만드는 그것이 또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라 그말이오.

 이러니까 그 두 가지 시험을 우리가 주의해야 되고 그래 그러기 때문에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불뱀에게 물려 가지고 마구 죽기  시작했습니다. 불뱀에게 물려서.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이 뱀이  발간 배암 불배암이라. 뱀에게 물려서 모든 사람이 죽습니다.

 이러니까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이 뱀에게 물려 가지고 이렇게 죽으니 여기에서  구원해 주어야 되겠습니다' 하니까 하나님이 구원해 주시는, 구원해 주시는 구원  길을 뭘로 냈느냐 하면 지금 붉은 배암만 보면 기절하고 붉은 배암만 보면 그만  물려 가지고 죽으니까 붉은 배암만 보면 마구 겁이 나 가지고 죽을 지경인데  하나님께서 구리쇠로 붉은 배암을 떡 만들어 가지고 장대에 떡 달아 놓고 붉은  배암을 만들어서 장대에 떡 달아 놓고 '이 붉은 배암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다  나음을 받으리라' 이렇게 말씀을 해 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러니까 붉은 배암에 대해서 물려서 징그러운 저거들에게 그저 꿈에라도  생각하고 말만 해도 붉은 배암이라 하면 막 죽을 지경인데 그 구리쇠로 벌거이  붉은 뱀을 만들어 가지고 장대 위에 달아 놓고 '이걸 쳐다보는 사람은 산다'  이래 놨다 말이오.

 이러니까 자기네들이 지금 붉은 뱀에게 화를 당했는데 그 붉은 배암 그게  보기도 징그러운데, 보기도 징그럽고 자기들이 그까짓 게 무슨 우리를 구원하며  징그럽기만 하고 자기의 주관과 자기의 현재의 감정과 정반대되는. 정반대가  되고 정 무서워하고 자기를 멸망시킨다는 그 붉은 배암 이것을 떡 달아놓고  '이것을 바라봐라. 그러면 낫는다.' 바라본 자들은 다 살았고 바라보지 안한  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이거는 이제 하나님께서 과거에는 믿지 안하고 의심할 때에 하나님께서 믿지  안하고 의심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가 이렇게 해라' 처음에는 믿지 안하고  의심할 때에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의심하는 것을 말하지 아니하시고  인도해 가지고 해결이 쭉 됐습니다. 됨으로써 '어라. 하나님이 과연 도와  주시니까 된다' 이래 알았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하나님 앞에서 낭파를 당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해결을  해 주시기를 저거 보기에 '이것 가지고 뭐이 되겠나?' 서글프고, '이것 가지고  되겠나?' 시뻐 보이고 '이거 가지고 뭐이 되겠나?' 이렇게 보여지는 그런 자기  보기, 자기 주관으로 볼 때에 아무것도 아니고 '될 리가 없다' 하는 그런 것을  줘 가지고, '나뭇가지를 던지라' '이거 던진다고 쿨쿨 내려가는 물이 단물이 될  턱이 있겠나? 이 많은 물이 단물이 되겠나?' 아 나뭇가지 하나 던져버리니까  물이 단물이 돼 가지고 먹고 살았다 그말이오.

 이랬는데 이번에는 저희들이 '이거 가지고 되겠느냐?'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서 시키시는 그 일을 업신여기고 '이것 가지고  되겠느냐? 이거는 이치에 맞지 않는데. 이거 가지고 되겠느냐?'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그것을 여러번 경험시켜서 '이치에 맞지 안해도 순종해야  된다 하나님이 하시면 된다.' 요걸 인식하다가,  이제는 안 들으니까 '이것 가지고 되겠느냐?' 하는 걸 가지고 시험 하지 안하고  이제는, 이것 가지고 되겠느냐가 아니고 자기들 주관에 '이거 가지고 되겠느냐?'  부인하는 그걸로 가지고 하지 안하고 부인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가지고 불뱀에  지금 물려 죽는 저들에게 불뱀을 만들어 가지고 이 뱀을 바라보라 하니까  저거에게 정반대의 원수가 되고 징그럽고 흉한 그런 것을 가지고서 이것을 네가  믿어라. 이것을 바라봐라 그러면 네가 나으리라. 이러니까 차차 차차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그 치료를 받는 방법이 어려워집니다. 처음에는 쉬웠는데 차차차  어려워졌소.

 이러니까 나중에 가서는 뭐입니까? 그게 뭐입니까? 저희들을 죽이는 그런  죽이는 불뱀을 바라보라 해 가지고 불뱀 저거들의 주관으로서는. 주관과  체험으로서는 저희들을 죽이는 불뱀이 들어서 너를 구원한다 하는 방편으로 줘  가지고 그것을 믿고 바라봄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오느냐?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그 구원이  우리에게 올 때에 '이제 이렇게 하면 틀림없이 죽는다' 다니엘이 사자구덩이  앞에서 당할 때에 '내가 기도한다 하면서 사자구덩이 들어가면 틀림없이 죽는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면 틀림없이 죽는다. 이거는 백의 하나라도 의심할 여지도  없이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이거는 틀럼없이 죽는다. 이거는 틀림없이 죽는다.

이거는 죽음뿐이지 거기 하나 섞인 것도 없다. 틀림없이 죽는다.'  틀림없이 죽는다 우리 주관 전체가 인류 전체가 봐도 이거는 틀림 없이 죽는다,  그게 틀림없이 죽는 것으로 보여지는 그 일을 통해 가지고 사는 길을 내  주십니다. 그 일을 통해서 사는 길을 내 주셔.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합격이 될 수가 없고 그 생명의 길을 갈 수가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었다 하는 요 진리를  자기가 묵상하고 생각하면서 우리가 오늘 아침에는 두 가지를하려 했는데 한  가지밖에는 못 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멸망받았다.' 그들이 시험하다가  광야에서 멸망받았다. 광야에서 가나 안 가야 될 터인데 광야에서 멸망받았다.

우리가 시험하면 이 세상 생활에서 멸망받고 만다. 이 세상 생활이야 잘 먹고 잘  입고 무슨 성공을 한다 해도 그것이 죽음 건너편 수입이 아니라 그말이오. 죽음  건너편 수입이 아니라. 하늘나라 수입이 아니라.

 이러기 때문에 광야 일만 하다가 멸망을 받는다. 우리가 요것을 깨 닫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을 두 가지로 말을 했습니다. 두  가지  자기 현실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는 것이 흐미해지는  그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또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뜻으로 닥쳐지는 현실이 아니고 제가 '하나님이 도우실 터이니까'  하고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이용하기 위해서 자기가 고의적으로 만드는 그것이 또  시험하는 것이라 그러면 요 두 가지 시험 그것을 우리가 범죄하지 안하도록 그리  합시다.

 아는 것은 힘입니다. 알면 다 승리하요. 알면 승리해. 알면 웃으며 승리합니다.

모세가 홍해 바다 가에서 여호수아 갈렙과 모세는 웃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뛰돌아 다니면서 '이번에 지금 하나님의 능력을 한번 보여 주겠다. 하나님의  능력 한번 보여 주겠다. 그 능력 한번 구경하라.' 하는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은  놀래서 그 하룻밤에 아마 눈이 뻐끔 들어갔을 것이고 죽을 지경이었을 것입니다.

 그게 뭐이냐? 하나님은 당신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는 자에게 생명이  되고 그것의 반대되는 것만치 자기에게 고통이 되도록 해서 인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두시고 하늘나라로 인 도해 가는 데에 노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지난밤에는 기도하러 여기 예배당에 와서 기도하고 간 사람이 육백 오십일 명이  하고 갔는데 아마 다른 데서도 다 기도하리라 생각합니다. 기도한 분들은 기도는  해도 '내가 기도는 하지마는 거기다가 뭐 기록을 해?' 그런 생각 가지지 마시고,  어짜든지 그 기록을 해 주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보자, 저분 보자,  어짜는가 보자.' 하고 자기를 바라보는 그 사람들이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인데  자기를 바라 보고 자기를 우러러 바라보고 그분을 산성으로 그분을 자기의  표본으로 이렇게 보고 있는 그 사람들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다 구원할 수 있고 이렇게 기도를 선을 격발케  할 수 있어 살릴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그렇게 하지 안 함으로써 그 사람들을  살리지 못하고 격발시키지 못하는 것이니까.

 하지 못하는 것이 뭐이냐. 자기를 부인치 못하기 때문에 자기를 하나님보다  높이고 애끼기 때문에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니까 해석을 해 보면은 하나님이 아주  진노하시고 기뻐하시지 안할 수 있는 그런 일입니다.

 이러니까 그것을 기록해 놓고, 자기가 못 오면 앞으로 카드를 줄 것입니다.

카드를 줄 터이니까 그 카드를 '가지고 가 가지고 일주일 내 못 와도 여기  기록을 안 해도 자기가 그 카드에다가 딱딱 자기 돌뱅이를 치든지 뭐이든지  오늘은 기도했다 안 했다. 그 돌뱅이를 그날 난에다가 딱 딱 짜 가지고서 그것을  일주일 동안 한 것을 딱 내놓으면 여기에서 서기가 그것을 해 가지고 그거  보고서 낱낱이 매겨서 '이 사람은 다 했다' 하는 것을 그것을 난에다가 기록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 다 하면 한 사오만 명 되는데, 다 재적을 다 말하면 사오만  명도 넘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 예수 믿는 이 소망을 가지고서 기도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이 공산주의가 오는데에 대해서 그것을 국방하는 것은 미국이  어짜고 한국이 어떻고 하는 그런 것을 눈꼽재기만치도 내가 의지하지 않습니다.

눈꼽재기만치도 그것을 의지하지 안하고 소련이나 이북이 와 가지고 큰소리 하는  것도 눈꼽재기만치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요는 우리가 하나님이  도우시느냐 안 도우시느냐? 하나님이 그들을 우리 손에 붙이느냐 우리를 그들의  손에 붙이느냐? 우리를 그들의 손에 붙이면 당할 자가 없고 그들을 우리 손에  붙이면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절단납니다. 가만 있어도.

 여리고 성을 함락할 때에 누가 손이나 하나 댔습니까? 저거가 공연히 스스로  두려워서 떨려서 죽은 사람은, 얼마나 떨렸든지 죽은 사람은 죽었고 도망치는  사람은 도망치고 했다 그말이오.

 '하루 밤 동안에 큰 부자가 되리라' 하는 것, '그럴 수가? 하룻밤 동안에 무슨  부자가 됩니까? 양식이 풍성합니까?' '하나님을 믿으라' 하룻밤 동안에 풍성한  건 아람 군대가 군량을 두고 다 도망가 버리니까 하룻밤 동안에 부자가 안  됐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지금 등록한 사람은 천 구백 칠십 팔 명, 스물 두 명이 모자라는 이천  명입니다. 스물 두명 만 있으면 이천 명이 되는데 아마 오늘 저녁에 가면은 이천  명이 안 되느냐 그렇게. 어짜든지 그래 가지고. 우리가 뭐 농사짓는 것 사업하는  것 직장에 다니는 것 이 모든 것보다도 이게 큰 운동이오. 이것이 우리의 사는  길이요,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지금 길입니다. 이것 하나님의  명령이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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