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대한 지혜


선지자선교회 1982년 1월 3일 주후

 

본문 : 벧후 3:6-13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이 모든 우주와 우주 안에 있는 '만물들의 그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이 우주와  만물은 무엇 때문에 지금 이대로 존재하고 있는가? 그 목적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멸망을 다 채우기까지 이것을 이용하고 이 안에서 멸망을 마련하도록  하기 위해서 간수해 두었다가 경건치 아니한 자의 멸망과 경건한 자의 구원이  이것이 끝나면 이 모든 것은 다 불사르기 위해서 간수해 두고 있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굳게 잡읍시다.

 그 위에 보면 사람들을 악령이 욕심과 정에 끌리게 해 가지고 욕심을 일으켜서  욕심에 끌리게 했다가 욕심에 끌리고 나면 그 다음에는 정이라는 것이 뒤를 이어  가지고 욕심에 끌린 것에 정이 차차 붙고 생겨져 가지고 이 욕심과 정이  사람들을 어둡게 만들어서 모든 우주와 만물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깜깜하게 모르게 만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와 만물은 이대로 계속할 것이 아니고 경건한 자와  경건치 아니한 자의 구원과 멸망이 이루어지기까지 만물을 보존해 두었다가 이  일이 끝나면 이런 것을 다 불로 소멸해서 경건에 속한 것은 영원한 것으로  변화를 시키시고 경건치 아니한 것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멸망시키는 이 일을  하기 위해서 간수해 뒀다 말씀한 이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세상 만물과 만 가지 수많은 사건 속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만물과 수많은 사건 속에 살고 있는데 이 만물과 사건 속에 있는 이  사건들과 만물은 무엇 때문에 나와 같이 있는가? 이것들과 같이 있으면서 경건을  마련하는 자는 경건을 마련하고 - 불경건 곧 음행입니다. - 음행을 마련하는  자는 음행을 마련하고 이 두 가지를 마련하는 일이 끝이 나면 그 다음에는 이  모든 것은 불심판으로 다 새로 개조를 합니다. 어떤 것은 영생으로 어떤 것은  영멸로 이렇게 개조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똑똑히 알고 잡아야 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에 수많은 만물이 있으니까 만물 이것을 제가 차지하고  또 못 차지하고, 또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 싫은 것은 멀리하고 제게 좋다  싶은 것은 가까이 하고, 또 수많은 사건들이 지나가고 있는데 이 일들 가운데에  자기에게 좋은 일은 마련하고 싫어하는 나쁜 일은 이것을 벗어나 멀리하고 하는,  만물과 만 사건들과 자기와의 관계를 이것을 맺어 가지려고 하는 것이  인간들입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 만물과 수많은 사건 속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그 사건이 좋은 사건 나쁜  사건, 그 만물이 좋은 것 나쁜 것 이런 것을 선택해서 취하기 위해서 우리가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정과 욕으로 그 심령이 어두워져서  다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제 앞에 이런 좋은 물건이 있으면 죽자 살자 이놈 취하려고 야단치고 제게  해로운 물건이 있으면 이것을 제거해서 없이하려고 애를 쓰고, 제게 좋은 사건은  만들려고 애를 쓰고 해로운 사건들은 다 없애 제거해 버리려고 애를 쓰고 이것  때문에 사는 것이 여러분들 아닙니까? 이것 때문에 하루종일 일생을 살아온 것이  우리 아닙니까? 다 썩을 일 했소. 다 비참하고 가련한 일 했소. 그것 때문에  우리를 세상에 두고 그것들을 둔 것 아닙니다.

 거기서 좋은 일 나쁜 일, 귀한 것 천한 것, 내 중심으로 내게 좋은 것 나쁜 것,  좋은 일 나쁜 일, 좋은 물건 나쁜 물건 이것 선택해서 취하고 물리치고 마련하고  없애고 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것 아닙니다. 다 이대로  살았으면 다 헛일입니다. 이걸 똑똑히 잡아야 합니다. 백에 백 사람이 다 이대로  살고 망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거의가 다 이대로 살다가 망합니다. 그것이  막 바로 음행입니다. 그것이 바로 음행이오. 멸망의 원인이오.

 그러면 만물과 이 복잡한 만 가지의 사건 속에 '우리를 살게 하시고 이런  것들을 우리 주변에 가득 채워놓은 이유가 뭐인가? 이렇게 하신 하나님이 이것이  무슨 목적인가? 이 모든 만 가지 사건들과 물건들이 이렇게 내 주변에 즐비해  가지고 있는 그것들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가? 이 가운데에 나 할 일은 무엇인가?  어리석으면 안 됩니다. 욕심에 끌린 자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욕심에 끌려서  벌써 정에게 붙들리기까지 하면 벗어나기 참 어렵습니다. 만물과 일들은 내가  마련하려고 애를 안 써도 그것들은 저절로 마련이 됩니다. 저절로 가득 찬 그  속에 우리는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들이 존재한 목적이 무엇인가? 존재케 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 불경건과 경건, 거룩한 행실과 불의한 행실 이 두 가지를 마련하기  위해서 존재케 했고 또 존재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것이 '이것은 참 좋다. 이것은 놓기가 싫다.' 아주 저는 그것을  좋아하고 귀중히 여기고 그것은 저를 위하는 줄로 알지마는 경건이냐 불경건이냐  이것이 끝장나면 저는 그것을 손도 못 댑니다. 만져보지도 못하요. 상관없이 푹  떨어져 버립니다.

 이 속에 우리의 할 일은 경건과 불경건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창조하신 이 하나님을 위하는 그의 법도대로 하는 것, 그분이 내 주신 그  법칙대로 하나님을 위하는 이것을 하느냐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나 어떤  피조물이나 어떤 것이든지 피조물을 위하여 피조물의 법칙대로 하느냐 이것만이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천하 것을 다 차지해도 그것은 저 할 일 아니오. 제게 해롭다 생각되는 것을  전부 다 제거해도 그것 제 할 일 아닙니다. 다만 거기에서 경건이냐 불경건이냐  이것만이 우리 성도의 할 일입니다. 이것 위해서 만물은 기다리고 있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구비해 왔고 우리를 그 가운데 살게 하십니다. 천하에  제일 불행스러운 일을 자기가 만났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 경건을 마련했으면  그는 값집니다. 천하에 제일 좋을 사건을 만났다 할지라도 거기에서 불경건을  마련했으면 저는 멸망입니다.

 모든 존재는 이 두 가지를 위해서 있는 것인데 이 두 가지가 끝나면 모조리  불로 다 사뤄서 원소로 돌려 가지고 영원한 멸망과 영원한 새로움으로 다시  개조된다, 변화함을 받는다, 새로움을 받는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똑똑히 산  지식으로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어떤 현실이든지 이 시간에도 그것이라. 다음 시간도 그것이라. 밤에도  그것이라. 낮에도 그것이라. 복잡한 데도 그것이라. 한가한 데도 그것입니다.

제가 어떤 존영한 자리에 앉았어도 그것이오. 아무리 제가 답답하고 참  기막히다고 생각되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그것이오. 경건과 불경건을 만드는  데에는 험하든지 순하든지 이런 현실이 나 저런 현실이나 상관없습니다. 대개는  보면 이는 인간들이 불행 타 하는 현실에서 더 아름답고 존귀한 경건이 만들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기뻐하는 구비한 행복이라고 하는,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지마는 대개는 거기에 사람들이 미혹 받아 가지고 불경건을  만드는 불쌍한 일들이 많이 생겨져 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꾸 연습해서 이 지식이 우리에게 가득 차게 합시다. 자꾸  익혀서 '아, 돈이 왔다. 아니다. 여기서 나는 경건이냐 불경건이냐 이것이 나 할  일이다.' '아, 여기는 큰 불행이 왔다. 아, 불행이 상관없다. 여기서 나는  경건이냐 불경건이냐 하는 이것만이 나 할 일이다.'  이렇게 해서, 자기가 어떠한 현실이든지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목적, 모든  존재들이 존재하는 목적, 자기를 이 속에서 살게 하신 조물주의 목적 곧 자기의  목적 이것을 단단히 깨닫고 살면 모든 세상은 다 동등의 이용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제가 이런 환경을 만들겠다고 저런 환경을 만들겠다고 이것 때문에  분투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제가 이용을 당했습니다. 환경 마련에 이용을  당했소. 나를 통해서 그런 것이 되든지 말든지 그거는 나 할 일 아닙니다. 나를  통해서 무슨 현실이 되든지 그것은 나 할 일 아니오. 나 할 일은 그 현실에서  경건이냐 불경건이냐 이것만이 나 할 일입니다.

 속지 맙시다. 자기를 경건과 불경건에 모든 심신을 집중하게 하는 그것은  자기를 살게 하는 축복의 역사요, 자기를 이것은 생각지 않고 떠나서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로 좋게 하고, 기쁘게 하고, 많게 하고, 번창하게 하고, 위하고  높이고 하는 것은 자기를 멸망시키는 자가 자기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벌써 미혹의 욕심이라는 이놈을 마귀가 보내 가지고 벌써 이 낚시에  낚여버렸어. 인간을 어둡게 하는 이 정에게 붙들려서 벌써 멸망하도록 그물 속에  들었습니다. 이 세상과 자기를 좋게 하는 그 자리를 찾아가지 말고 이 세상을  이용하도록 하고 자기를 고쳐 변화시키는 그 자리를 찾아가고, 그 지식을 받고,  그 행위로 사는 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경건의 반대 불경 건은 음행이오.

경건은 하나님을 위하는 진리의 생애,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진리의  법칙대로 사는 그것이 경건입니다. 불경건은 곧 음행인데 음행이라는 것은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생겨진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보존되고, 자라고, 살고, 이렇게 해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  하나님에게 귀속되는 것, 이것이 경건이요, 이것이 자유의 법칙이요, 영생의  법칙인데,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스스로 있는 것처럼, 하나님 배반하고  스스로 있는 것처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움직여야 될 것이 제 맘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움직이고, 하나님에 가서 딱 들어붙어야 사는 건데 하나님  떠난 저거끼리 뚤뚤 뭉쳐서 한 뭉텅이가 됩니다.

 인류가 뭉치면 그까짓 것 무슨 가치 있소? 족속이 뭉치면 무슨 가치 있소?  없지마는, 피조물 전체가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면 무슨 가치 있소? 엿새 동안에  만든 것이오. 만드는 것보다 깨뜨리기는 더 쉽습니다. 그분이 깨뜨리면 당장  깨지요.

 이것을 가리켜서 음행이라 말했습니다. 하나님하고 딱 들어붙어 가지고 살아야  될 것이 하나님 배반하고 피조물 저거끼리 딱 들어붙어 사니까 하나님이 이것을  표시하기를 음행이라 표시했어. 자기 아내가 자기하고 딱 들어 붙여서 살아야 될  것이 자기 배반하고 다른 것하고 이렇게 다른 간부하고 합작될 때에 그 분한  마음 있지 않겠소?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실 때는 당신이 짓고 당신이 보존하고 길러서 당신하고  영원히 딱 들어붙어 하나돼 가지고 영생하게 하려는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인데  하나님 배반하고 저거끼리 뭉쳐서 살려고 하는 이것이 마치 음행과 같이 하나님  앞에는 심한 분노와 진노가 되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러기에 교회를 나오든지, 무슨 자리를 가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떻게  하면 나 좋게 할까?' 하는 그것이 바로 멸망입니다. 바로 그게 멸망이오! 설교도  제 좋은, 저 듣기 좋은 설교, 제 구미에 성미에 맞은 설교, 제 기분에 맞은  설교, 제 감정에 시원한 설교, 기분 좋은 설교, 그러다가 망합니다! 그러다가  망해요! 이것은 떠날 사이 없이 인간을 멸망시키는 그 멸망이 사로잡고 있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어디 가든지, 무슨 일을 닥치든지, 어떤 때든지 '여기서 내가 할 경건은  무엇이냐? 여기서 내가 싸울 자는 누구냐? 음행으로 더불어 싸워야 된다.

하나님과 하나님 일은, 뜻은 생각지 아니하고 나와 내 일과 내 뜻을 생각하는  이놈으로 더불어 싸워야 된다.' 바울이 '내가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과 같이  이래 싸우지 않는다. 내 싸움의 내 적의 대상도 찾지 못하고 벌로 싸우는 이런  싸움을 싸우지 않는다. 그러면 내 적이 누구냐? 내가 평생 싸워야 할 적이  누구냐? 내가 다른 사람에게는 전파해서 가르치고 구원시키고 나는 버림당할까  해서 내가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일을 내가 계속 한다.' 그는 자기로 더불어  싸우는 이 싸움을 자기의 일대 적인 줄을 알고 자기로 더불어 싸우는 이 일을  일생 동안 계속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느냐 나 위하느냐? 하나님을 좋게 하느냐 나나 어떤 인간이나  무엇을 사업이나 그것을 좋게 하느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나나 어떤  피조물 그걸 기쁘게 하느냐? 하나님을 좋게 하느냐 그것들을 좋게 하느냐?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느냐 나나 그런 것들이 유명해지고 영광스럽게 하느냐?  뭐이냐? 하나는 음행이요 하나는 경건입니다.

 장년반도 이로 더불어 싸워야 하고 중간반 학생들도 이로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싸움에도 제일 전쟁이 뜨거운 그 발단전은 예배 시간입니다. 예배 때에 제일 이  싸움을 힘써 싸워야 합니다. 힘써 싸워야 합니다. 이 기분에 즐거운게 아니라!  내 기분에 맞은게 아니라! 내 성미에 맞은게 아니라! '이 시간 하나님이  원하시는게 뭐이냐? 하나님 기뻐하시는게 뭐이냐? 하나님이 나에게 명하고  요구하시고 교훈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찾지 아니하고, 세상에서 저  좋게 하다가 멸망한 이것도 기가 차는데 예배 시간 거기에서도 저 좋게 합니다.

저 좋은 설교라야 돼요. 저 좋은 방편이라야, 행정이라야 돼요. 저 좋은  주장이라야 됩니다. 이러다가 망합니다.

 경건과 음행을 예배 시간에 여기서 제일 힘써서 이 전쟁을 1차적으로 이겨 놔야  그 다음에 이기지 이 전쟁 진자는 이길 희망은 없어. 절대 못 이겨.

 승패의 발단은 송곳 끄트머리 모양으로 승패의 시발은 예배 시간입니다. 그  다음에는 기도 시간이오. 그 다음에는 성경 볼 때요. 그 다음에는 자기의 마음과  몸의 활동하는 자기 몸 밖에 있는 현실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아무나 따나 그렇게 흐리멍덩 믿기도 되는 것 아닙니다. 값없이  은혜로 받는다 하니까 아주 아무나 따나 해도 된다는 것 아니오. 그 대가는  인간이 생명을 기울여도 그 대가의 근방에도 가지 못할 높은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대가를 낼 수가 없기 때문에 은혜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기본구원인 하늘나라 구원은 택한 자들이면 다 얻지마는 자기의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의 생애에서 망하지 아니하고 영생이 되는 이 구원을 이루는 데에는  어느 정도 힘써야 되느냐? '네가 죽도록 충성해야 그래야 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 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야 네 현실에서 영생을  이룬다'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공연히 이 음행자들에게, 음행자들에게 음행만 좋아하고 음행하는 소리만 하면  취미 있고 있지마는 음행하는 말만 안 하면 삐꿔 돌아갑니다. 음행하는 말  음행하는 데만 찾아 돌아다닙니다.

 음행하는 자가 뭐이요? 자기중심 자기 위주, 자기와 관련된 피조물 이것  좋아하는 대로, 여기 맞추어서, 이것 기뻐하는 대로, 이것 중심 이것 위주로  하는 말이면 듣기를 좋아하고, 일이면 취미있게 여기고, 그런 모임, 그런 운동,  그런 길이면 기분 좋게 앞서 나서고, 자기를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려 하나님을  위해서 이 경건한 행위 산 제사로 드리는 이것은 그만 듣기도 싫어하고 보기도  싫어하고 반대를 합니다. 교회서도 운동을 하며 이것 반대하는 자들이 많소.

제일 반대하는 자들이 세상에 똑똑하고 세상에 부요한 자들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항거해서 이길 것입니까! 어리석소. 송곳에다가 뒷발질하면 제 발만  절단나지 무슨 소용이 있소? 이와 같다 했어. 겸손합시다.

 회개해야 됩니다. 암만 비웃어도 소용없고 아무리 반대해도 소용없어! 이로  인해 내가 죽으면 순교자야! 가장 세상과 하나님을 사랑했어.

 음행의 역사로 인해서 장사꾼들은 크게 돈을 벌었다고 말을 했습니다. 음행의  역사에서 가정 행락, 사업 행락, 교통 행락, 문화 행락, 예술 행락 오만  행락들이 다 있지마는 이것이 맷돌을 깊은 바다에 던지면서 '빠지고 난 다음에는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이 세상은 완전히 죄악 섞인 것은 멸망받고  다시는 나타나지 못한다' 하는 것을 요한계시 18장에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존재에 대해서 똑똑한 지식을 가지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경건는 어떤 것이 경건인가? 경건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 우리를  구속하시고 창조하시고 지금도 주재가 돼 가지고 모든 것을 계속 우리를 보존케  하시는 이 구속주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경건이요, 그를 기쁘시게 영화롭게 하는  것이 경건이오.

 그러면 그를 영화롭게 기쁘시게 위하는 것 그것이 뭐인가? 마치 미신자들이  자기 신을 위해서 자기 욕심대로 비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을  '나는 주를 위합니다. 나는 주를 기쁘시게 하겠습니다. 영화롭게 하겠습니다.'  암만 해 봐야 소용이 없어, '보는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 하는 자라' 이렇게 말했어. '내가 너희들에게 준 모든 계명은 똘똘  뭉쳐서 한 말로 말하면 내가 너희들을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이 서로 사랑하는  이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영화롭게, 위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나와 모든 피조물  이것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와 모든 피조물이 잘되고  영생하고 평강과 기쁨으로 하나님과 함께 행복되게 영원히 잘살게 하는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오. 이것이 하나님에게 기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위함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어.

하나님을 위하는 그 위함을 하는 데는 하나님을 위하여 이 피조물을 복되게 하는  그것이 하나님 위하는 것이라. 이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 온갖 은혜를 충만히  받도록 연결과 가리워진 것을 틔워놓는 이것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요, 만족케 하는 것이요,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7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랬어. 이 말이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것은 이 피조물을 구원하는 일에 모든 걸 다  들여서 구원할 뿐 아니라 생명까지 다 들여서 구원을 하여 이 피조물이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가지고 하나님의 충만을 이 피조물들에게 충만케 하여 이  피조물을 다 영원하고 온전하고 행복되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투자하는데  모든 것을 다 투자하면 하나님이 투자한 그것을, 이 투자한 이것은 유한한  것이요 변동할 수 있는 생명인데, 투자하면 이것을 완전치 못한 것을 완전한  것으로,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일시의 것을 영원한 것으로,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이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이렇게 하나님이 바꾸어 주실  이것을 믿고 이와 같이 하는 이것 때문에 아버지가 사랑하신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이 경건한 행동과 사람이 무엇인가? 이것은  자기에게 가진 것과 자기의 모든 자기와 이것을 하나님이 원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사람되어 오시기까지 이렇게 원하시는 일, 기뻐하시는 일,  힘쓰시는 이 일, 곧 자기와 모든 인류와 피조물을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과  가리워진 죄를 이것을 제거하고, 하나님과 대립이 된 모든 불의를 제거하고,  하나님과 원수된 것을 제거하고, 하나님과 가리워진 것이 없이 하나님에게만  피동되는 자로, 하나님과 밀접한 이 친교를 가지는 이 운동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자하면서, 이렇게 투자하면 유한한 것이 무한한 것으로 하나님이  바꾸어 주시고, 모든 이 혈육의 것을 신령한 것으로,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욕된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이렇게 하나님께서, 여기에 투자하면 하나님이  투자한 이것을 그것으로 끝나버리고 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투자하면  투자함으로 만들어진 그 일도 하나님께서 영원히 기뻐 즐거워 보존할 뿐 아니라  여기에 투자한 것은 하나님이 더 좋은 영원하고 완전한 것으로 바꾸어 나에게  주셔서, 주시니까 나는 이 일 또 합니다. 또 하니까 더 좋은 걸로 바꿔  주십니다.

 바꿔 주시니까 또 합니다. 또 하니까 더 좋은 걸로 바꿔 주십니다. 이것이  영원무궁세계에서 영원히 되풀이하는 영생의 생애입니다. 이걸 위해서 있습니다.

 뭐 이 나라가 강하고 저 나라가 강하고, 인류들이 문화가 어떻게 되고,  20세기의 과학이 어떻고 하는 이것 때문에 있는 줄 압니까? 아니오.

 이런 것들을 구비해 놓고 '네가 보자. 여기 미혹을 받나 저기 미혹을 받나?  네가 이걸 간음을 하나 저걸로 음행을 하나, 뭘로 음행하나?' 20세기의 과학이  와도, 황금 만능이 와도, 영광이 와도, 존귀가 와도, 비참한 죽음의 고난이 와도  경건만 자기 할 일로 알고 경건 마련하고 경건을 떠나서 음행하지 않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 배반하고 그것하고 짝되어서 그것과 저와 조화 맞춰서  타협해서 합리적인 그런 음행의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경건만 합니다.

 이런 사람을 선별해서 영원히 무궁한 세계에 등장시키고 이 음행하는 것들을  영원한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태워, 다 같은 피조물에서 하나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에게 속해서 영생, 하나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저와 피조물을 위해서 하는 것들, 이는 유황불 구렁텅이에서 영원히  태우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뜻으로서, 하나는 하나님에게 속하여 영생으로  증거를 하고 '나는 이렇게 살아서 영생한다' '나는 이렇게 역류해서 영멸  당한다' 모두가 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 역사를 증거하는 것으로 영원 한  증거로 두는 것이 하늘나라와 유황불 구렁텅이의 지옥인 것입니다.

 어리석지 맙시다. 커도 작아도 그분 앞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  문화가 없었습니까? 과학이 없었습니까? 잘난 내피림들이 없었습니까? 지혜롭고  슬기롭고 날쌔고 아주 그런 새암있는 사람들이 없었습니까? 다 소용없어. 그분의  꼭꼭 시키는 대로 해 놓은 이것만이 방주가 됐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어리석지 맙시다! 주님의 구름타고 오실 때가 가까왔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왔습니다. 그날은 모르지마는 모든 징조를 보아서 하나님이 예언하신 징조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이 퍼지면 끝이 난다 했는데 세계에 이 복음이 퍼져지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미개의 혹독한 이종교 속에도 수많은 성도들이 가  순교했습니다. 불교 속에도 순교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힌두교 속에도 순교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독자들의 수많은 피가 흘렀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이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주님이 구름타고 오실 때가 가까왔습니다. 공연히 헛된  영화를 구하지 말고 여기에 준해서 슬기있는 사람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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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에 대한 지혜/ 베드로후서 3장 6절-13절/ 820103주후 선지자 2015.12.18
250 종말에 대한 준비/ 요한계시록 17장 14절/ 840809목전집회 선지자 2015.12.18
249 종교음행/ 호세아 2장4절-7절/ 840520주후 선지자 2015.12.18
248 종교와 철학/ 에베소서 5장 15절-21절/ 791023화새 선지자 2015.12.18
247 종교와 정치/ 빌립보서 3장 9절-12절 / 800325화새 선지자 2015.12.18
246 종교와 정치/ 로마서 3장 10절-18절/ 860423수야 선지자 2015.12.18
245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30529주후 선지자 2015.12.18
24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자/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0313주전 선지자 2015.12.18
243 좁은 문과 넓은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61017금야 선지자 2015.12.18
242 좁은 문과 넓은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1018화새 선지자 2015.12.18
241 좁은 문 좁은 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1019수새 선지자 2015.12.18
240 좁은 문 좁은 길/ 마태복음 4장 11절/ 860921주새 선지자 2015.12.18
239 좁은 문 좁은 길/ 마태복음 7장 13절-27절/ 861013월새 선지자 2015.12.18
238 좁아짐으로 넓어지는 것.절대저항주의/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1105토새 선지자 2015.12.18
237 존재의 시종과 우리의 할일/ 로마서 11장 36절/ 890528주전 선지자 2015.12.18
236 존재의 목적/ 이사야 31장 1절-9절/ 850215금야 선지자 2015.12.18
235 존재관-역항신앙/ 마가복음 10장 52절/ 870308주후 선지자 2015.12.18
234 존재관/ 로마서 11장 36절/ 890529월새 선지자 2015.12.18
233 조심할 것/ 디도서 2장 1절-15절/ 811125수야 선지자 2015.12.18
232 조심할 것/ 디도서 2장 1절-15절 / 811127금새 선지자 2015.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