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에 대한 준비


선지자선교회 1984년 8월 9일 목전집회

 

본문 : 계 17장 14절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이번에는 성경을 몇 군데 봤지마는 본문은 요한계시 17장입니다. 이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언해 주시는 그 강령은, 온 세계가 한 덩어리가 되어서  참된 기독교로 더불어 싸우는 싸움이 일어난다 하는 그것이 총제목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하는 것은 예수교의 머리, 예수교는 삼합 된 것이 예수교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되어 나타나신 예수님,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과 진리와 사람이,  하나되어 사는 것을 가리켜서 교회라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그 신성이요 그 하나님이십니다.

참 하나님이십니다. 참 하나님의 삼분지 일인 하나님이 아니고 성자 안에 성부  성령 다 계시고, 성부 안에 성자 성령 다 계시고, 성령 안에 성부 성자 다  계시는 하나님은 한 분뿐이신데, 다만 그분의 그 지위가 셋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지위의 한 격위가 일을 해서 셋 격위라 이라는 말도 본체가 셋이라는 말은  아니고 그 활동의 역사를 셋이 한다 그런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삼위일체라,  아주 참 묘하게 된 말입니다.

 그러기에, 어린 양은 교회의 머리인 예수님의 신성을 주로 두고 신성이 인성을  입고 큰 역사를 하셨는데, 하나님이 사람되어 신인양성일위가 돼 가지고 큰  공로를 설정하신 그 하나님이 교회의 머리입니다.

 또, 진리는 그 교회의 모든 역사하는 지혜요 지식이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단일성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지식이 있을 때에 다른 속성들도 다 같이 있습니다.

지식이 하는 것이나 지혜가 하는 것이나 사랑이 하는 것이나 진실이 하는 것이나  다 하나님은 단일성의 하나님이시요 종합성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어린 양은 그분이 영원 자존하신 분이시요 그분이 이 모든 것을 세상에서 똘똘  뭉쳐서 참된 예수교 외에는 한 덩어리로 된 그것이 그분이 만들었고 그분이  경영을 했고, 그분이 이용하실라고 이렇게 하셨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똘똘 뭉친  이 세력이 사람 보기에는 큰 거 같지마는 이런 것들이 거기에는 가서 상관하지도  못합니다. 그로 인하여서 존재하고 그로 인하여서 움직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전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는 그런 말이 깊은 속에 들어 있습니다.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이기실 터이요' 하는 것은 그는  그 모든 것을 근본 주장하시고 경영하시고 이루시는 그분이 들어하기 때문에  그분과는 상관없다, 그분과는 뭐 승패는 있을 수가 없다, 전투도 없다, 상대가  없다.

 우리가 혹 생각하기를 이 세상에는 그 선에 속한 하나님과 악에 속한 마귀와  이래서 원인이 둘이다 해서 이원론을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은 지금 깨닫지  못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또 이름을 잊어버렸는데 적어놨는데 그 연세대,  학교에 있는 교수 한 분이 미국 가 가지고서 이원론을 주장하는 신학 논문을  내어 가지고 학위를 얻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도 하나 큰 계시입니다. 이원론을 주장하면은 그거는 작대기를 확 그어  버리고 아주 그는 큰 정죄를 해서 그래야 될 터인데 이것도 우리가 참 취할 만한  학설이고 가치 있는 학설이다 해서 인정한다는 표로 학위를 줬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또 우리들도 혹 생각할 때에 주님하고 마귀하고  둘이 싸움이 붙었다 이렇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또 믿음이 적은 사람은 어떨  때는 마귀의 세력이 크고 하나님의 세력은 뭐 골짜기에서나 어디 두서너 사람  모였을 때 그렇지 외나 이 세력은 하나님 외에 딴 큰 세력이 있고 하나님의  세력과 이렇게 다투어 싸우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 아닙니다.

 예수님이 도성 인신해서 전투하시기 전에는 그 악령이 하나님에게서  쫓겨났습니다. 본 지위에서 쫓겨나서 그 타락한 천사입니다. 그때는  하나님에게만 쫓겨났고 하나님에게만 지고 하나님과 뭐 비교나 대항이나 되는  거는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은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창조주십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우주밖에 있다가 이 우주 안에 들어와 가지고 사람을 유혹  시켜서 사람으로 더불어 실력 대결 해 가지고 그만 아담 해와를 정복했습니다.

아담 해와가 미혹을 받아 가지고 그 세력에게 졌습니다. 졌으므로 일시 하나님의  모든 지은 물질계 안에 있는 피조물을 사람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었는데  그만 이 사탄이 와 가지고 도전하는 바람에 그 유혹에 빠져 가지고 고만  주도권을 뺏겼습니다. 그래서 첫째 아담은 사탄에게 졌습니다.

 이러니까, 그가 세상의 임금이 되었었는데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은 참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신데 참 하나님은 배후에서 참 사람을 통해서 참 사람 아담 해와를  승리하고 정복한 사탄으로 더불어 전투해 가지고서 사탄을 이겼습니다. 사탄을  예수님께서 이기신 그 방법이 우리가 이기는 방법입니다. 한말로 말하면  죽음으로 죽음을 이겼습니다. 또 죽음으로 완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라고 난 다음에는 이 사탄은 패전해서 그 활동 무대가 아주 축소 됐습니다.

이래서, 어떻게 축소 됐는가? 하나님의 택함을 입지 안한 그 사람들에게  한해서만 저가 왕노릇하고 활동을 하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왕노릇을  못하고 그저 침노는 합니다. 와 가지고서 미혹도 하고 침노도 하지마는 구속받은  성도들이 호령을 칠 때에 그 사탄은 당장 도망을 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성은 예수님의 공로를 입은 성도들에게 있는데 유혹은 받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지금 이 인간계에 와 가지고서 역사를 하고 있는데 차차 차차  성도들이 이기니까 악령은 저희의 활무대가 활동할 무대가 자꾸 좁아집니다. 또  하나님께서 악령을 이 세상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연단시키는 그 심부름을 시켜서  연단시켜서 그 속에는 악이 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도들 괴롭힐려고 하는데  그러나 하나님이 한계를 지워 줘서 한계 내에서만 네가 하지 한계를 넘어서는 못  한다 이라다가, 가다가는 한계를 확 풀어놔 가지고서 네가 무제한적으로 한번 해  봐라 하는 때가 그 시대의 종말입니다.

 창세 이천 년 때에 한번 그렇게 내놔서 노아 홍수가 됐고, 또 그 후 이스라엘  백성 종교 말년 때에 한번 내놔 가지고 그렇게 했고, 또 예수님 재림이 가까운  때에 이것들을 한번 내놨습니다. 또 내놔 가지고 또 그렇게 합니다.

 이러니까, 지금보다 앞으로 갈수록 사탄의 역사는 더 강해집니다. 계시록에  말씀하시기를 사탄이 이제 저희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힘을 다  들여서 성도들을 미혹시키기 때문에 택한 자라도 미혹할 수만 있으면 미혹을  한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다 나오고 나니까 성도들이 마지막으로 참 곡식을 키로 가지고  까부르듯이 있는 대로 마구 흔들어서 까불라서 그때에 까불려 나가지 아니한  그것이 알곡이요 그것이 승리자들입니다. 승리자들로 이렇게 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때 모두 승리자들이 그때 많이 납니다.

 예수님의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죄와 칭의와 화친의 이 세 가지를 증거를  하는데, 그 증거를 함으로 그들에게 침해를 받아 가지고 죽습니다. 증거를 하고  죽고, 증거하고 죽고, 증거하고 죽으니까, 이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은 증거하고  죽는 것이 이제 그것이 완성 완성 자꾸 완제품이 돼서 자꾸 완성 완성 돼,  나가는 것인데, 사람이 볼 때에는 그들에게 침해를 당해서 죽고 이래 또 죽고  끝마쳐 죽고 끝마치니까 사람 보기에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 이  사탄의 세력이 강하다, 이 사탄의 세력이 세상 세력인데 세상 세력이 강하다  이렇게 하나 그것이 하나님의 참된 성도를 구별해 가지고 이제 선별해서 알곡을  구별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그때에 자기의 증거는 사죄를 증거하는 것이요 칭의를 증거하는  것이요 하나님과 화친된 이 화친 이 세 가지를 증거하는 일인데 이 증거를  취소하지 안하고 이 증거를 끝까지 증거함은 증거하다가 죽습니다. 증거를 해도  살아 있으면 아직까지 미결이요 전투는 미결입니다.

 증거하는 것으로 그들이 죽여서 증거하는 것으로 남은 때 그들이 거머쥐고 흔들  수 없을 만치 증거하다가 그들이 침해할 수 없도록 끝나 버린 것은 증거로 끝난  것입니다. 그 증거로 끝나 버리고 그들은 시험할 수 없는 것으로 끝났기 때문에  벌써 승리했다 말이오. 예수님이 십자가의 승리가 그와 같이 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흔들어서 예수님을 이렇게 어쩌든지 굴복을 시킬라고 했는데,  굴복을 시킬라고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기 전에 자꾸 이렇게 고문과 고행을  하면은 우리의 대속한 것을 좀 변동을 하든지 우리 대행한 것을 변경을 하든지  하나님과 화친하는 이것을 변개를 하든지 변개하도록 하려고 되기 고문을 하고  되기 짜다, 짜다 하니까 변개 안 하고 변개 못 한다. 변개 안 한다, 안 한다, 안  한다 하는데, 안 한다, 안 한다 하는데 그만 딱 숨이 져버렸다 말이오. 그러니까  저거는 다시는 침노하지 못하고 변개 안 하는 자로 끝을 마치셨기 때문에  승리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을 괴롭게 해서 이래서 요한계시 20장에 보면 그때는 다  그 죽음을 당하고 목베임을 당해 가지고 그래 죽은 사람들은 즉시 부활합니다.

그때 죽은 자는 즉시 부활해 가지고 주님을 공중에서 영접하고 그전에 죽은  성도들은 또 살아서 먼저 주를 영접하고 그렇게 하다가 이제 성도들을 다  구원해서 그 구원의 완성이 되고 나면 이제 땅에는 안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있고, 믿는 사람들은 다 떠났습니다.

 떠났는데, 그것을 가리켜서 요한계시록 14장에 거기에 보면 성도들을, 먼저  곡식을 먼저 추수하고 그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포도를 추수하는데 그 포도를  보니까 전부 포도 틀에 넣고서 짜니까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흐르더라 이렇게  말을 한 그것은 이방인의 심판을 말합니다.

 신자가 먼저 죽고 이방인이 죽는데 그러면 다 죽느냐? 그때 다 죽지 안하고  얼마 번식 인종이 남아 있습니다. 남아 가지고서 이루어지는 것이 그것이 천 년  왕국 시대입니다. 그래 천 년 왕국 시대를 어떤 사람들은 지금을 천 년 왕국  시대라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있고 예수님이 재림 후에 천 년 왕국 시대가  이루어진다 그렇게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 전천년설 후천년설로 그렇게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나면 성도들은 공중에 있다가 모든 이 번식 인종들이  그때에 땅위에 사는데 그때는 사탄을 무저갱에 가둬 버렸습니다. 가둬서  무저갱에 가둬서 사람을 유혹하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유혹하는 일이 전혀  없으니까 뭐 사람들이 모두 선합니다. 모두 선하고 그 독사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도 독사가 물지 안하고 사자가 풀을 먹고 이렇게 사탄 그놈이 들어서 자꾸  장난을 지겨서 피조물과 피조물끼리 이렇게 이간을 붙이고 이래 가지고 싸우지  그만 그때는 아무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래 가지고서 번식 인종 시대인데, 그 번식 인종이 천 년이라 하는 것은 그저  우리가 계산한 대로의 천 년이 아니고 천 년은 하나님이 정하신 그 정수의  만수를 가리켜서 천 년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그 천 년 이백 년도 될 수 있고 천  년이 만 년도 될 수 있고 그 하나님의 정한 수를 가리켜서 천으로 많은 수를  말해서 천으로 했기 때문에 그 숫자대로의 우리 계산대로의 천 년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쨌든 하나님께서 정한 기간이 있는데 그 기간은 뭣이고 하니  부활한 성도들이 그때에 번식 인종들을 다스립니다. 번식 인종들을 통치해서  부활한 자들이, 지금은 이 세상에서 부활하지 아니한 자들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이렇게 통치하는 일을 하지마는 그때는 이제 부활한 자들만 있습니다.

부활한 성도들만, 구원 얻은 자들은 다 부활했습니다. 그걸 가리켜서 첫째  부활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구원 얻지 못한 자는 아직까지 남아 있고, 그거는 마지막에 둘째  부활인데 그게 심판의 부활이요 지금 부활한 거는 첫째 부활입니다.

 첫째 부활해서 부활한 그 성도들이 그때에 천년 왕국 시대에 그때에 번식 인종  그 무리들을 통치하고 그렇게 관리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천년 왕국 시대에 번식되는 그 인종들은 다 부활한 성도에게 복종을  하고 아주해서 일시 천국입니다. 아무것도 죄악이 없고 마귀 그놈이 갇혀  버리니까 죄악 하나도 없습니다.

 이래 있다가 마지막에 이제 그 많은 번식이 되고 성도들이 훈련받을 대로  훈련받고 무궁세계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을 통치할 수 있는  통치의 그 자기 직책을 한번 재연습했습니다. 처음에는 연습해서 자격을 얻었고  그 다음에 두번째는 참으로 이제 천 년 왕국에서 한번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연습을 해서 연습을 다하고 나면 그 다음에 무저갱에서 이 사탄을 또  내놓습니다.

 사탄을 내놓으면 무저갱에서 나온 사탄이 이 사람들을 요래 꼬우고 조래 꼬우고  꼬와 가지고서 졸지에 그 많은 인류들이 그때 번식된 인류가 지금만치 될는지  지금 몇 십 배가 될는지 몇 백 배가 될는지 그거는 모릅니다. 어쨌든지 그  숫자는 모르는데 많은 숫자는 많은 숫자입니다. 그래 가지고서 이 부활한  성도들이 그걸 다스리는 연습을 할라 하면은 상당히 아마 숫자가 많아야 될  거라. 숫자가 많아진 이것을 이리 저리 자꾸 관리하니까 잘 듣고 이렇게 관리를  받고 있다가 사탄이 와 가지고서 나와 가지고 그만 속닥 속닥하면서 거짓말로  꼬웁니다.

 자꾸 꼬우니까 순간에 꼬여 가지고서 땅에 있는 번식 민족은 그때에는 백 세에  죽은 사람을 어린 아이 죽음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그때는 죽음이 될상 바르면  죄를 지으면 즉시 죽고 나머지기는 모두 죄짓지 안하고 사탄이 없으니까 다  깨끗한 백성입니다. 이래 수많은 자를 다 부활한 성도가 통치하고 있다가 사탄이  내려와 가지고 유혹하고 그러니까 그만 사탄하고 한 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부활한 성도들을 대항해 싸웁니다.

 부활한 성도들에게 이제까지 지도 받고 잘 이렇게 인도 받고 있던 그 번식  민족들이 그만 부활한 성도의 진을 둘러싸면서 대항합니다. 이 마귀란 놈이 시켜  가지고서 '이 성도를 대항하라' 대항하라 하니까 성도들의 진을 둘러 싸, 둘러  싸 가지고 이 부활한 성도들을 그들이 대항하려고 달라 듭니다.

 부활한 성도들은 시간과 공간의 다 이 범위를 초월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뭐  칼로 백번 찔러 봤자 찔리지도 안하는 것이고, 또 때려 봐야 때리는 것도 아니고  무쇠속에도 들어갈려면 들어갈 수 있는 것이고, 이런 걸로 부활했는데 그 마귀란  놈이 꼬와 가지고서 어리석게 해하면 된다 하니까 왁삭 달라 들어 가지고서 이  성도의 진, 성도의진 이것을 완전히 바싹 부숴서 없애 버리면 이제는 제가  하나님에게 등용이 되고 마치 그 가인이 아벨 죽여 버리면 제가 등용되지 안하나  하는 그때와 꼭 같은 머리요. 마귀 그놈 머리가 그렇다 말이오. 머리가  등신이라.

 이래 가지고서 성도들의 진을 둘러 싸 가지고 성도들을 멸하려고 하니까  마지막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가지고 바짝 태우는 그것으로서 비로소 번식  민족들은 완전히 전멸되고, 번식 민족 가운데에서 구원 얻었다는 것은 성구에  없습니다. 찾아보지를 못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 번식 민족들은 사탄을 물리치니까 다 의인으로 그렇게  거룩한 사람으로 되어졌지마는 사탄을 내놓으니까 내나 그 전부 마귀 다  됐습니다. 그거는 왜 그러느냐? 예수님의 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이 없기 때문에 속에 생명이 와서 있지를 안하고 다만 해하는 자가  없고 미혹하는 자가 없으니 그대로 있다가 미혹하는 자가 오니까 미혹을  받습니다.

 이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는 미혹받지 않는 것이 미혹하는 자가 없어  그런 것이 아니라 미혹하는 자가 와서 미혹을 하면 올수록 그 미혹 끝에는 더  강하게 삽니다. 이게 뭐이냐? 속에 하나님과 연결된 그 연결이 있는 연결보다  앞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대속의 이 결합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지상의 번식 인종은 끝이 납니다. 그러면 그때가 그게 멸해지고  나면은 어느 때인고 하니 하늘의 것과 땅의 것, 영계와 물질계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이 되고 통일된 그 나라는 그리스도의  왕국인데 알파와 오메가의 나라입니다. 그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그 다음에는  다시 미혹이나 그런게 없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그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사는데,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것만치 그 나라에 등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것만치, 그리스도의  형상이라는 것은 그러면 그리스도는 원형이요 우리는 모형적 제사장, 모형적  선지자, 모형적 왕. 그러면 제사장은 어떤 것이 제사장인고 하니 하나님과  자존하신 하나님과 피조과의 그 사이를 다 조화시켜서 이리 저리 모두 다  모순되고 마찰되고 하는 그 부조리 부조리 그걸 다 잘 조화 해 가지고서 서로  화목하고 한 덩어리가 되도록 공작하는 것이 그것이 제사장 공작인 것입니다.

 그러고, 또 선지 공작은 뭐냐하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것을 백성에게  갖다 줘서 백성에게 충만케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분은 무형의  존재인데 하나님이 무한한 것을 이제 무한한 것이 어디 있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뜻에 있는데, 하나님의 뜻을 갖다 줄 때에 그 뜻을 행하면 돈도 되고 권세도  되고 지위도 되고 모든 것 다 됩니다. 하나님이 돈을 돈으로 주지 안하고 전부이  말씀으로 주시오. 진리로 주십니다. 이 창조의 능력의 진리로 줍니다. 이게  선지자직이오.

 왕직은 이미 하나님하고 이렇게 조화를 맞추어 가지고서 잘 관계가 맺어져  가지고 있고 또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받아 가지고 충만케 된 이걸가지고 잘못  살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받은 충만한 것을 잘 관리하는 것이  왕직입니다. 잘 관리하는 것. 이래서 여기에서 하나님이 동(動) 하면 여기에서  동 하나님이 정(靜) 하면 여기에 정 하는 이렇게 하나님과 이같이 모든 동하고  정하는 것이 이 조시가 딱 맞아 가지고서 하나님 한 분에게 첨부되어 하나님이  이리이리 하니까 또 이것도 이리 이리하고 또 하나님이 이래 하니까 이래하고  하나님이 가만히 있으면 가만히 있고 이렇게 되도록 이 모든 조화를 바로 되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 왕직입니다. 그리스도의 직은 이 세 가지 직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그래서 이 사탄이가 여기에도 보면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는 짐승이라. 없다  하는 그 말은 전에 일시에 나와서 전권을 그들에게 줬다가 이제는 다시 제한적  권리를 줘 가지고, 제한적 권리 준 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연단 받고 연습하고  연약한 것이 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제한된 권리를 해서 해를 주되 제한된  해를 주지 무조건 무한의 해를 주지 못하도록 이래하다가 그 시기가 지나서  양성시킨 지가 다 지나고 그 연습시키는 때가 다 지나고 나면은 마지막 시험이  있다 말이오. 마지막 시험 있는 그것이 뭐냐 하면은 갇혀 있던 자가 놓이는  때입니다.

 그때가 노아 홍수 때와 같이, 또 이스라엘 종교 말년과 같이 예수님의 재림  때도 그것들이 놓여지면은 이제 와 가지고서 마지막으로 박해를 마지막으로  하는데 박해하는 그 전법이 뭐이냐? 또 그 전쟁의 형태가 어떠하냐? 전쟁의  형태는 짐승, 머리, 뿔 이 셋 종류가 똘똘 뭉쳐서 하나 되는 것이 그것이 그때에  전투의 그 형태이다.

 그러면 또 전투의 전법은 어찌 하느냐? 그것은 어린양에게 속한 자를 여러  가지로 미혹으로 꼬와 가지고 끌어오고 꼬여서 끌려오지 안하는 것은 협박으로  끌어오고 협박으로 끌어와도 안 되는 것은 몇이든지 죽이면서 끌어온다  이랬습니다. 죽이면서 끌어온다, 명이든지 죽인다 이랬습니다. 그들에게  머리에나 손에나 표를 받지 안한 자는 몇이든지 죽인다 이랬습니다.

 머리에 표 받지 않은 머리에 표 받는다 그 말은 그 사상을 가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손에 표 받는다는 그 행동을 하든지 그 사탄의 사상을 가지든지 사탄의  행동을 가지든지 그걸 가지지 안한 사람들은 몇 이든지 죽이니까 이거 다  무력적인 방편 또 부정한 방편입니다. 부정한 방편인데,  성도들을, 어린 양에 속한 사람들은 옳은 방편 하나님의 진리를 그들에게  증거하고 대속주를 증거하고 영감을 증거하고 봉사하고 이렇게 타이르고 달래고  이렇게 자꾸 깨우쳐 가지고서 그들을 인도하려고 애를 쓰는 우리들이 이 세상과  하나되는 그 무리를 지금 끌어낼라고 이렇게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단체를 말해서 인본 단체라 이랍니다. 인본 단체라 인본주의  단체인데 인본주의 단체에서 끌어온다. 인본주의 단체에서 많이 끌어오는  사람들은 상급이 있습니다. '영원토록 공중의 별과 같이 다 그 영광 이  빛나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열심히 해야 되지 조금 있으면 나중에는 하나님편으로 왔던  자들도 그리 안 끌려가면 됩니다. 왜? 때가 안 되면 그들이 지금 정권을 가지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막는 자가 있기 때문에 정권을 가지고 날뛰지를 못하고  이라는 고로 예수 믿기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이렇지 그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도  뚝뚝 떨어져서 다 그리 가 버립니다.

 이러니까, 지금이 구원할 때이지 예수님의 재림이 긴박하면은 그때는 모두 이  세상이 깜깜해져서 뭐 빛이 어두워져서 햇빛이 가리우니까 햇빛이 가리우니까  연기만 꽉 끼어요. 연기만 꽉 끼어서 계시 9장에 보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연기로 말미암아 그 모두 다 해가 가리워져서 깜깜해지는 그것은 인간들의 사욕,  인간들 자기중심 자기 위주의 인간 사욕이 꽉 끼여 가지고서 하나님의 도가  가리워진다.

 그러면, 하나님의 도가 가리워지는 것은 하나님의 도의 권세가 없어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때를 줘서 가리워지게 하면은 그런 가운데도 이기는  사람들은 알곡이요 정금같은 사람인데 그 사람들은 뭐이냐? 불로 연단해도  없어지지 아니할 금으로 부요한 사람들이라 그 말이오. 금으로 부자 된 사람들은  그때도 뭐 꼼짝없이 지킵니다.

 그러면, 그때에 해가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는 주님은 어디 가 계신다  했지요? 자, 여기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자, 그때에 어디로 가야 됩니까? 몰약산과 유황의 작은 산에 주님이 가서  있으니까 거기 가면 주님 만납니다. 몰약산이라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그때  부패하지 아니한 그곳에 주님이 찾아가 있습니다. 암만 세상이 그래도 부패하지  안하는 사람, 속화되지 안하는 사람,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 해도 거기에  끌려가지 안하는 사람, 그 미혹을 받지 안하는 사람,  유황의 작은 산이라 말은 이제는 지금은, 이번에 몇 명이나 오는지 몰라도 아마  좀 얼마나 되는 고 얼마나 되는가? 숫자 대략 압니까?  만 명합시다. 만 명하지요. 만 명이 뚤뚤 뭉쳐 가지고 기도단이 있지요. 만  명이 뭉쳐 기도하지마는 그때는 유황의, 유황은 기도를 말하는데 유황의 작은  산이라 그 말은 기도의 작은 산이라 그 말을 그때는 여기에 뭐 아무데 거창에서  그때 그 기도원에 모인다 이런 것이 없습니다. 없고 그저 개인이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그것밖에는 없어요. 둘도 단체가 돼야지 단체가 안돼요.

 6·25때는 6·25때는 믿는 사람 못 찾아봅니다. 6·25 인민군 때는 양복을 입은  사람도 없어요. 6·25때에 양복을 입은 사람은 인민군 밖에는 양복을 입은  사람이 없어요. 양복만 입으면 저놈 무엇인고 대번에 검문을 당하다 보니까 양복  안 입고 다녀요.

 6·25때는 양복 안 입고 뭣 입었는줄 압니까? 그때 그 삼베 옷 떨어진 것이  아주 돌쇠가 났습니다. 참 비쌌어요. 삼베 옷 떨어진 거 아주 이런 거 이걸 사  가지고서 이래 입습니다. 그거는 이 거지같이 거지 옷 입고 그라고 모두 다 이  선비 이런 사람들이 모두 살이 보들보들 해 거머쥐고 손만 보면 이놈  착취자로구나. 그만 무조건 두드려 맞는다 말이오. 착취자라고.

 이러니까, 막 그래 가지고 이 손을 이래 가지고 문대고 뭐 철봉에 매달리고  이래 가지고 뭐 손이 더덕더덕 이래 만들어 가지고서 그래 헌옷 입고 그래  다녔어요. 그때 양복 입고 다닌 사람은 참 썩 해야 없었습니다. 그것도 참  어려워요.

 제가 ○○○목사님이 ○○에 계실 때에 그 아들이 세상을 떴다고 이라면서  기별이 왔는데 거기에 가서 보기는 봐야 되는데 갈라하면은 인민군이 총총히  있는 사이를 뚫고 가야 될 모양인데 이거 산으로 그렇다고 갈 수도 없는 일이지  가야 되는데, 또 그때 갑자기 간다고 그래 간다고 또 그때 양복 안 입고 갈 수도  없는 일이지, 또 성경 안 들고 가지고는 못하겠지, 성경도 있지 이 양복도 있지  이거 대로로 가니까 그 뭐 갈 때마다 저 인민군만 있지 땡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고만 양복 입고 오면 그거 다 인민군입니다. 그 인민군 정치 부대라.

그때 점령해서 내려가는 때이니까, 가면은 저 만날 때는 아주 기도합니다.

가슴이 도곤도곤 거려. 저게 또 만나면 또 까다롭게 하면은 또 이리 저리 말하면  이거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모른 다 이러니까 기도를 하고 이리하면서 마음에  가슴이 도곤도곤 하면 아야 거기에 주저앉았어야 되지 가슴이 도곤도곤 하는데  갔다가는 큰일나요.

 자꾸 이래 생각하고 생각하면 주여 주님은 모든 것을 다 주권하고 계시는데  주님의 뜻이면 제가 나한테 말할 것이고 그라면 내가 거기에서 주님 증거하는  것이지 아 나 할 일을 내가 하는 건데 뭐 그럴 거냐? 그래 가지고 담대함이 떡  설 때에는 쩔퍽쩔퍽 걸어갑니다. 걸어가면 또 그 사람 아무 말도 안하고 지나가  버려요. 그래 그래 가 가지고서, 참 그럴 때는 재미가 있었어요. 안 믿으면  탈나고 믿으면 뭐 권능 나타나고.

 (그 내가 뭐 말하려 했지? 어? 뭐? 아하! 네,) 유황의 작은 산. 그럴 때는 기도  이런 단체가 없습니다. 그저 혼자 기도하고 혼자 기도하고 아무 신앙의 동지를  만날 수가 없어요.

 그때 이러니까 농산 교회서 모두 소고 뭐이고 있는 대로 전부 다 몰아가기  때문에 도야지 한 마리 이걸 숨기고, 숨기고 돌아다니다 숨기다가 마지막에는 못  숨겨서 기별이 오기를 '이제 고기 먹은 지도 오래 되었으니까 도야지 한 마리  시켜 놨으니까 어쩌든지 조사님 오셔서 도야지 한 마리 갖고 잔치 합시다.'  이래서 그 농산 교회 갔어요. 지금 농산 교회는 ○○교파에 속해 가지고  있습니다. 농산 교회 가니까 저 자꾸 저 깊은 산골짜기로 들어가요. 아주 첩첩  산중으로 들어가는데 거기에 가서 인제 도야지를 잡아 가지고 거기에서 모두  먹고 이래 했는데 거기에서 먼데서 보니까 인민군이 저리 내려가는데 거기가  어찌 그리 편한지.

 그때는 거기에서 몇 사람이 모여 그렇지 그것도 또 몇 사람이지 많이는 못해.

소문나면 아무데서 도야지 잡아먹고 있다 하면 당장 인민군들이 올라와 가지고서  잡아다가 전부 다 죽여 버립니다. 이러니까 참 속을 통할 수 있는 사람만 몇  사람 모이니까 거기에 가서 그때 모인 사람이 한 칠 팔인 밖에는 안 모였어. 칠  팔인 모였는데 그것도 큰 단체라. 그러니까 뭐 그럴 때는 신앙의 동지를  찾을라고 하지 말아요. 우리는 그런 환난 당했을 때에 아야 신앙의 동지를  찾을라고 하면은 다 헛일입니다.

 그때 6·25때에 제가 위천교회 있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아, 아무래도 이 환난  닥쳤으니까 이제 백조사님 한데 가야 피난하겠다.' 이래 가지고 뭐 신앙 있는  사람들은 전부 위천 교회로 다 모아들었어. 그 조그만한 교회에 한 사백명이  고게 모여 가지고서 얼마나 그 집회를 했는지? 뭐 두 달인가 얼마를 집회를  했어요. 계속해서 하루 세 번씩 종치고 이렇게 했는데, 그 사람들은 그러니까  저놈들 우리 망하라고 종치고 지금 세 번 기도한다 이래 쌓는데, 그래도  기도하고 이래했습니다.

 이라다가 마지막에는 그만 인제 마치고서 그 다음에는 다 흩어져 가지고  개인적으로 했는데 그때에 거기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대개는 6  25때에 그들에게  그 신앙을 뺏기지 안했습니다. 또 그들에게 불의의 심부름을 하지를 안했습니다.

그들에게 이용을 당하지 안했습니다. 모두 다 유황의 작은 산으로 갔다 그  말이오.

 그러니까 어쩌든지 그 골방에서도 기도하고 산으로 기도하고 가서 그저 단독이  신앙 동지를 찾지 안하고 단독이 찾아 가지고 이렇게 기도하고 이런 사람들은 다  승리를 했습니다.

 어제도 말했지마는 나는 그 참관을 못 했는데 마산 어데서 교역자회 하면서  아무래도 이제는 일본 나라가 이렇게 신사 참배를 해 가지고서 교회를 탄압하고  있으니까 앞으로 큰 박해가 있으니 우리는 생명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생명을 내놓는 것이 쉬우냐? 이러니 온 교회를 가지고서 다 이렇게 할  모양이니까 안 됐다. 이러니까 교역자 수양회를 마치고 난 다음에 헤어지면서  그러니까 어서 가서 교회를 봐야 되겠다. 하고 교회로 간 사람들이 있고 교회  가서 이 교인들 단속해야 되겠다. 하고서 교회로 간 교역자들도 있고. 아야  교회고 뭐이고 이제 내가 죽을 판인데 내가 살아야 되지 나 승리 못 하면 무슨  소용 있나 하고서 산으로 간 사람들이 있고 그때 산으로 간 사람들이 몇 사람  있었는데 산으로 간 사람들은 전부 신사 참배 다 이겼습니다. 이기고 옥중에서  다 나왔다고 그런 말 들었습니다.

 그때에 신사 참배 때에 제가 계명 있었는데 주남선 목사님이 올라왔어요.

감옥에 갇혔다가 그때 인제 잠깐 또 석방이 돼 가지고서 왔어요. 와 가지고  나한테 신사 참배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그때 나한테 압력, 가만히 나한테  전달하고 있어요. 꼬라고 나서 '네, 저도 그거는 뭐 알고 있습니다.' 그말  그분하고 얘기하고 그분은 가 가지고서 그때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그만 나오지  못했습니다. 나오지 못하고 팔월 십 칠 일날 비로소 감옥에서 나와 가지고  복음을 전하다 갔습니다.

 이러니까, 유황의 작은 산으로 갔다. 사람들은 대게 환난이 오면 자꾸 동지를  찾아요.

 동지를 찾아가지고 무슨, 동지를 찾으면 그게 뭐이 될 줄 알고 그때에 동지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을수록 어려움이 있을수록 사람을 찾으면 안 됩니다.

어려움이 있을수록 사람 찾는 사람은 꼭 실패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수록이 그만  다 사람은 내버려두고서 주님을 찾아야 되지 사람 찾으면 반드시 걸려가지고서  실패하게 됩니다.

 요번에 공부한 것의 중요한 것은 온 천하가 똘똘 뭉쳐서 하나 된다. 짐승은  악령이 주관하는 세상을 가리켜서 짐승이라 한다. 또 일곱 머리는 악령이  주관하고 있는 모든 땅위에 있는 굵닥굵닥한 사상이나 주의나 정치나 이런 모든  큰 세력들을 가리켜서 머리로 가리켰다. 열 뿔은 땅 위에서 이런 힘이든지 저런  힘이든지 모든 힘을 가리켜서 열 뿔이라 했다.

 그러면, 힘을 다 총칭해서 열 뿔이요, 또 주의 사상을 다 종칭해서 일곱  머리요. 또 온 세상을 총칭해서 짐승이라. 이 셋이 똘똘 뭉쳐 가지고서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 어린 양으로 더불어 대항해 싸우는데 어린 양은 근본  자존자시요 창조주시기 때문에 그런 것들과 싸울 상대도 안 되고 또 그분이 모든  것을 설계해 가지고서 마귀도 만들어 내 가지고 그 일을 하도록 했으니까 마귀가  무슨 싸움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그 이원론을 말하는 젓은 이원론 말하는 그것은 마귀가 하는  말이지 그거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다. 선에 일원이 있고 악에 일원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거 그거 다 인간 조작배기 마귀가 들어서 그렇게 유혹하는  것이지 그 한 분 자존하신 그분에게서부터 모든 것은 지음 받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존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의 원인이로되 모든 것을 창조하신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져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다만 문제는 뭐이냐? 예수님을 믿는 자 중에 택함을 입고 부르심을  입고 선택 입고 중생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여기에서도 내 생각에 만 오천 될  것 같애.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이래 있는 건 다 이거는 선택도 받았고  중생도 입었는데 이 가운데에 참 믿는지 안 믿는지 하는 것을 이제 알곡과  쭉댕이를 가려야 되겠다. 말이오. 이걸 가려놔야 이다음에 무궁 세계에서  실력대로 등용도 하고 실력대로 대우도 하지요.

 이러니까, 그것을 하기 위해서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시험할 때라  이랬습니다. 시험할 때라. 그런데 그때에 시험할 때인데 그 시험할 때에  빌라델비아 교회에 거기에는 이기는 비결이 뭐 이지요? 이기는 비결이 뭐이지요?  예? 예? 네. 진실하고 거룩은 거룩인데, 이기는 비결은 자기에게 있는 전심전력  다 기울이는 것입니다.

 전심전력 다 기울이는 것이 이기는 비결인데 전심전력 다 기울여 가지고  어찌하라고? 어찌하라고? 전심전력 다 기울여 가지고서 네가 깨닫고  신앙생활하는 그 신앙생활을 계속하라. 인내의 말씀을 네가 시켰은즉 내가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하리니 이는 천하에 있는 모든 사람을 시험할 때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시험의 때를 면케한다 그말은 시험의 때를 낙제 안하고  이기게 한다 그 말입니다. 이기게 하는 거.

 이기게 하는데 그거는 이기게 하는 중에도 그만 상관없이 이기는 것도 하고  싸워 가지고 이기는 것도 있고 이기는 것도 천태만상으로 종류는 다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준비한 대로 된다 그거요.

 그 시험이 어려움이 없이 어려움 없이 되는 것은 그 시험의 때가 그 사람이  시험이 되지 안해요. 시험이 쉬운 거는 시험이 되지 안해요.

 학교에서도 그렇습니다. 학교서도 공부할 때에 시험이 안 납니까? 시험에는  어떤 사람은 자, 아이구 이거 오늘 시험이니 잠도 못 자야 되겠고 뭐 걱정이  되고 근심이 되고 마음이 꽉 눌리는 학생이 있고, 또 어떤 학생은 그 시험을  치른다 하니까 우쭐거리고 기분이 나고 좋아서 못 견딥니다. 왜 제가 공부  잘하는 게 이게 다 표시가 안 나는데 시험이 한번 떡 돼지면 그 때 한번 재미가  있다 말이오.

 그러니까, 어떤 학생은 시험 친다 하니까 좋아서 우쭐거리지 어떤 학생은 시험  친다 하니까 걱정을 하지 어떤 학생은 시험 친다 하니까 탁 꺼꾸러지지.

이랬는데, 어떤 학생은 시험한다 하니까 고만 그때는 제 마음대로라. 이  시골에서는 그전에는 볼 같은 거 찰라 하면은 잘 못 만나요. 사람들은 많지 볼은  한 개이니까 서로 뺏들어 쌓아서러 한번 얻어걸리지를 못 해. 그저 옆에 쭉쭉 서  가지고만 있지. 이랬는데, 시험치는 그 시간에는 제 볼이라. 그만 떡 시험  나오면, 뻐뜩해서 다른 사람 한 시간 한 사십분이나 오십분이나 걸려 하는데  저는 한 십 분이나 오분 걸려서 쏵 다해서 다 써넣고 나니까 누가 있어야지 밖에  나가 보니까 사람은 없고 공만 혼자 있다 말이오. 공만 혼자 있으니 실실 차고  다니고 그 날은 제 세계라 그 사람은 그날 그 시험이 자기에게 시험이 됩니까,  기쁨의 날이 되겠습니까? 그 기쁨의 날이 된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제, 준비하는데 준비하는 방식이 몇이라고요? 손가락으로  가르켜 봐요. 준비하는 방법이 몇이라고? 손가락을 번뜩 들어 봐요. 손가락을  번뜻. 옳지, 이제 그거는 다 아네요. 네 이거 중요합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번  함으로서 이게 기억이 된다 말이오.

 준비하는 방법은 둘이 돼요. 하나는 하나는 당장에 준비하는 거, 당장에  준비하는 것, 그 사람 그 사람은 욕봐요. 또 하나는 티끌 모아 태산 되는 티끌  모아 태산되는 준비라. 이런데 진합태산으로 그만 그 예를 들면은 닷 냥쭝만  해도 넉넉히 통과할 수 있는데 열 냥쭝을 해 놨다. 열 냥쭝을 해 놨다 말이오.

그러면 열 냥쭝을 해 놨으면 그 사람에게는 시험이 시험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이 시험이 시험되지 안하고 평소에 상관이 시험이 아무 거칠 것도  없고 어려울 것도 그 뭐 다른 때도 아니라 그거요.

 이러니까, 그것이 뭐이냐? 오늘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의 모든 것을  다해서 믿음을 지키고 기도를 하고 이렇게 자꾸 연습해 보는 거라 훌쩍 뛰어  넘어 보고, 목을 끊을라 해도 훌쩍 뛰어 넘고 눈을 빼도 훌쩍 뛰어 넘고 가죽을  벗겨도 훌쩍 뛰어 넘고 전기 고문을 해도 훌쩍 뛰어 넘고 요 뒤로 또 팔을 묶고  요래 가지고 해도 훌쩍 뛰어 넘고 여러번 하도 그걸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럴  때마다 주님에게 주십시요 주십시요 자꾸 달라고 기도했지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했으니까 자, 예수님이 그랬으니까 그런 실력을 입도록 해줘야  돼요 안 해줘야 돼요? 안 해 주면 어찌 되지요? 안 해 주면 예수님이 안 해 주면  어찌 되지요? 예 차마 소리를 못해도 거짓말쟁이지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되면  마귀에게 꼼짝 못 해요. 주님은 거짓말쟁이 안돼요. 안 그렇습니까? 거짓말쟁이  돼요.

 그러니까,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시행하겠다.' 했어요 고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시행한다. 와  시행하느냐 하면은 나를 위해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서  시행하기 때문에 그 시행이 큰 것을 목적으로 두고 시행하기 때문에 변동을 할  수가 없다 그거요. 그러니까 그렇게 준비하면 됩니다.

 이러니까, 우리가 이번에 단단히 기억할 거, 온 천하가 다 합해서 하나 된다  하는 거 이거 기억해야 됩니다. 기억해야 됩니다.

 이거 착각을 해서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해 놓으면 그만 이 자꾸 하나 되는 걸  자꾸 은혜라고, 막 하나 되는 운동을 하면서 자기는 큰 지금 역사를 하고 아주  천사의 역사를 하고 성자의 역사를 하는 줄 알고 그저 하나 돼서, 이러기에  ○○○도 하나되자. 공산주의도 하나 되자, 뭐 ○○○이도 하나 되자, 사람들  하나될려면 하나되지 ○○○을 뭣 때문에 이단이라고 주어 몰아대요? ○○○이  보다 더 나쁜 것도 다 용납하면서.

 이러니까, 그거 다 폭이 좁아서 그렇다. 뭐 ○○○ 이도 이리 오라. 그거 다  폭이 좁아 그런 것이니 ○○○ 이도 다 한 덩어리라 이렇게 하면은 그 사람은 폭  넓은 사람이고 그 사람 대인이라 그거요. 이런데 아직까지는 그런 때는 안 되는  것 같은데 그것도 연극이오. 지금 ○○○ 씨가 그러다가 뭐 요새 지금  감옥살이한다든가 얼마 뭐 십팔 개 월 지금 감옥살이한다고 그라는데 그거 다  연극이라 말이오. 이리 연극이야. 그거는 감옥에서 이거는 참을 좋아하고 옳은  걸 좋아하는 줄 아는데 그게 아니라 또 내나 또 그거 내나 그거라. 이러니까  연극하는 것, 야바구 노릇하는 것, 연극하는 것 자기네들끼리 연극하는 것인 줄  알아야 돼요. 잘못하면 거기에 넘어갑니다.

 둘이 이래 서로 교리 신조 때문에 다투면 이 교리 신조가지고 내하고 다투고  있으면 옆에 있다 와 가지고서 '네가 옳다, 저게 틀렸다.' 콱콱 쥐어박고  틀렸다고 이래 쌓으니까 아. 이 사람은 정통인가 보다 해서 딱 거머쥐었는데  그래 가지고 살짝이 끌고 따라와 가지고 또 넘어트린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이제 이기는 방법은 뭐 이깁니까? 이기는 방법이 뭐이소? 진실  뿐이라 진실. 진실뿐인데 진실의 뼈다귀가 뭐입니까? 진실의 뼈다귀가 뭐이요?  유일의 법칙으로 우리에게 주신 신구약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안에 영감 들었고 영감의 계시 말씀, 이 말씀을 뭐 어데까지 해도 이 말씀을  자꾸 대조해 가지고서 이 말씀이 틀리면 그거 말아야 되지 조그매 넘어가 놓으면  그만 헛일입니다. 넘어 가 놓으면 안돼요

 사람들은 지금은 어떤 때인 줄 모르고 자기가 이 무대에 올라서 무대에  올라서서 이 모든 것을 합치고 자기 이름을 높이고 지금 어데서 모든 사람들에게  유명하게 활동할라 하는 사람들 참 위험천만입니다. 위험천만이요.

위험천만이라는 걸 꿈에도 생각지 안해요.

 위험천만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안해. 그게 큰 아주 화평의 사도 노릇을  하는 줄 알고 사랑의 사도 노릇을 하는 줄 알지. 그 위험천만인 줄을 모른다  말이오. 그만 이 천하가 똘똘 뭉쳐서 한 덩어리가 되는데 여기에 걸려 나오면 못  헤어나옵니다. 이러니까 하나가 되는데 거기에 걸릴까 아주 무섭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제 말했지요. 우리가 지금 제일 무서워 할 운동이 뭐이냐?  제일 무서워할 운동이 뭐이냐? 무서워할 운동이 무엇입니까? 자. 서로 싸우는  운동이요 벌어지는 운동이요 나누어지는 운동이요 무슨 운동입니까? 하나되는  운동이 제일 무서운 줄 알아야 됩니다.

 이거는 참 깊이 박혔기 때문에 아무도 말하지를 안해요 별로이. 이말 더러  들어봤소? 이말 더러 들어 봤느냐고? 저 목사님들 많이 있는데 들어 봤는가,  들어봤는가? 잘 안 들려 희귀해. 하나되는 운동이 제일 위험하다고 이래 놓으면  저거는 교회 통일 뭐 통일하고 있는데 저러니까 얼마 안 가서 날 몰라 그렇지  이제 저 하나 되는 운동을 반대한다 이라면은 조것 때문에 안 되니까 나라도  좋아하지 정부도 좋아하지 사회도 좋아하지 유년부도 다 좋아하는데 고것  반대하면 못 견뎌 고것 반대하기 때문에 나중에 죽는 것이 그것이 재미있는  죽음이야. 뭐인 줄 알고. 여러분들이.

 이러니까, 이렇게 되어지는 데는 이기는 것은 뭐이냐?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아무리 선택받고 중생돼도 진실이라 하는 거는 자기 행위로 만드는  것이 진실인데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진실은 무엇이 진실인가? 그러면 지식  진실, 또 행위 진실. 사람 진실.

 지식 진실은 지식 진실은 마음을 변화시킨 것이고 또 행위 진실은 자기 몸을  변화시킨 것이고, 마음 변화시키고 몸 변화시키고 또 뭐 하나 있습니까?  사람인데, 하나 있는 것은 영이라 영 영이니까 마음 변화시켰어 몸 변화시켰어,  영은 벌써 변화 돼가지고 있어 이 셋이 변화가 됐으면 그걸 뭐라 합니까? 그게  사람이라 말이오. 그게 사람. 그러니까 이제 그게 문제라.

 그러니까,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되고, 또 성경을 그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읽고 자꾸 깊이 깊이 자꾸 생각해서 성경을 알아야 됩니다. 성경 모르면  안됩니다.

 그러면, 그 성경을 자꾸 많이 읽고 듣고 이렇게 해도 껍데기로 자꾸 들어서  그것이 위험성이 있는 것이, 성경을 읽고 들을 때에 그 성경이 율법이 되기 쉽고  복음이 되기 쉽습니다.

 그 성경이 율법되기 쉽고 복음되기 쉬운데 율법이라 말은 뭐인고 하니 그  성경이 정죄하는 법이 되고, 복음이라는 것은 자기를 구원하는 법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말하는데, 그러면 율법이 된다는 말은 그 성경을 가지고서 자기를  정죄하는 율법이 되면 좋습니다. 그거는 우리는 성경으로 먼저 자기를 정죄하고,  또 성경으로 자기를 구출하고 이래야 그 순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죄가  먼저고 거기서 구속이 그 다음입니다.

 이렇지마는, 잘못하면 성경의 지식을 듣고 배우고 읽고 이라는 가운데서 이것을  복음으로 듣지 못하고서 교만케 하는 지식으로 가지기 쉬워요 교만케 하는 지식  지식으로 가지는 것은 이 말씀을 자기가 복음이라고 하면은 이 말씀대로의  자기가 해야 구원 얻지 이 말씀대로 된 구원이라. 그러니까 이 말씀을 바로  구원의 요소로 자기가 받아 들여야 될 터인데 이 구원을 구원의 요소로  받아들이지 안하고 자기가 지식으로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그 사람은 그 결과가  그 사람을 이 지식 가지고 다른 사람이나 논평하고 이렇지 제가 이 지식을  고칠라고 하는 사람은 안 되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 지식이 심판의 지식이 되기  때문에 자기를 교만케 하고서 저를 멸망케 하는 그런 결과를 맺게 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읽을 때에 내게 대한 명령이라. 내게 대한 명령이요, 이  말씀은 나에게 생명을 주는 영생의 말씀이라, 내가 지킬 내 법칙이라. 이렇게  깨닫고 이 말씀을 자꾸 읽고 듣고 새김질하고 읽고 듣고 새김질하고 자꾸 이렇게  하면 내 마음에 와 가지고서 많이 접해 있습니다. 내 마음에 와 가지고서 많이  와 있습니다.

 내 마음에 와 가지고 있으나 딱 물들지 안했습니다. 물들지는 안해요. 왔다가  내게 내 마음이 이래 있으면 이렇게 이 모든 것이 와 부딪쳐 가지고 또 있다가  훅 떠났다가 또 바람이 불어 가지고 이리 왔다 갔다 하는 것 모양으로 이래  돼져요.

 이라다가 고게 언제 내게 물이 따 물이 들어 버리느냐? 이래 이래 이래  이래하다가 이래 이래하다가 고것이 딱 물들 때가 언제가 물들 때인고 하니  자기가 현실에서 자, 하나님의 지식대로 하면은 요렇고 사람의 지식대로 하면  요런데 하나님의 지식대로 할라면 요래 비판 결과가 요렇고 사람 지식대로 할라  하면 비판 결과가 요렇고 요 하나님의 지식이냐 사람의 지식이냐? 어느 지식을  내가 채택하고 어느 지식을 따를까? 어느 지식을 따를까 요럴 때에.

 요 둘이요 자꾸 시비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지식을 딱 취하고 사람의 지식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지식을 딱 하면은 고것은 자기에게 꼭 고만 찍여서 못이 못  박는 거와같이 딱 박혀 가지고서 고것은 자기에게 고와 같이 물이 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입어 버렸다 말이오. 하나님의 지식을 입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식이 자기 것이 돼 버리고 만다.

 와 가지고 암만 요런 거 다 남의, 지식을 와 가지고 이래 자꾸 울렁거리기만  울렁거리지 나도 소원은 하고 욕심하기는 내지마는 그 지식이 내 지식은 안 되고  있다가고 현실에서 이 지식이냐 저 지식이냐 할 때에 이 지식을 물리칠 때에  마귀에게서 온 물을 쏵 탈색해서 빼 버리고 하나님의 지식으로 딱 물들여서  하나님의 형상이 딱 돼 버리고 만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에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을 많이 해야 됩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을 많이 하고 그저 일을 하면서도 우리가 언제 한적하게  있으면서 그랄 시간도 많이 없었기 때문에 무슨 자기가 밥을 하면서 밥을  하면서도 밥하는 거야 환하게 다 알고 있지요. 예수를 믿으면 머리가  명철해져요. 머리가 명철해져요. 우리 속에 컴퓨터가 뭐 천억인가 된다 하는데  상당히 명철해요. 명철하니까 이래 가지고서 밥하면서 다 할 수 있어요. 밥을  이래 하면서 그 성경 한 절을 자꾸 그 말씀을 자꾸 새김질하면서 밥을 해요.

새김질하면서 밥 안치고 새김질하면서 반찬 장만하고 새김질하면서 불 때우고  새김질하면서 밥보고 새김질하면서 설겆이하고 다 할 수 있다 말이오. 자꾸  새김질, 이 일을 놓치지 말아요.

 이 새김질을 하면은 어찌 되는고 하니 새김질을 하면 지혜와 총명이 밝아지고  마음이 밝아지고 이 몸이 자꾸 깨끗해지기 때문에, 깨끗해진다는 말은 잡탱이  병이 없어진다 말이오. 이러니까 일을 능률 있게 할 수 있어. 자꾸.

 이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것, 주님을 사모하는 것 이것이 끊겨지지  안하도록 요걸 표준하고, 내가 무슨 일을 하든지 뭐 어디 가든지 참 잘 때는  그거는 그 하나님께 맡겨 놓고 '주님이여 잘 때도 다른 그 헛된 꿈꾸지 않게 해  주옵소서. 더러운 꿈꾸지 않게 해 주옵소서. 추잡한 꿈꾸지 않게 해 주옵소서.

깨끗한, 혹 주님이 주시는 꿈이나 꾸이지 아무 다른 꿈 꾸이지 않게 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해 놓고 맡겨 놓고 우리가 자고, 할 때에는 그저 가든지  오든지 설교를 하든지 뭐 하든지 다 그래요. 잘못하면 고만 내놓기 쉽다 말이오.

 나도 설교하면서 이래 설교하면서 '아, 주님 나와 같이 해 주옵소서.' 이걸  말을 안 해도 주님이 나와 같이 이 마음을 가지고 이걸 가지고 주님과 나와  연결가지고 있으면서 그만 설교하다 보니까 그만 연결은 다 잊어버리고 설교만  거머쥐고 날뛸 때가 많다 그거요. 그게 없어야 됩니다.

 주님과 나와의 하나 되는 거, 주님 사모하는 거, 연결되는 거 또 일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연결, 그러니까 그래 보면 자기가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지 못한  그 성구가 있는데 깨닫지 못하던 성구가 있는데 그 성구를 길을 가다가 갑자기  가르쳐 줍니다. 길을 가다가 가르쳐 주고 가르쳐 주는데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요거는 내가 네가 길 갈 때 내가 가르쳐 주겠다. 요랬는데 길 갈 때에 사모 안  하면 가르쳐 줍니까? 그만 못 배운다 그 말이오. 못 배워.

 또, 요거는 네가 밥 먹을 때에 내가 가르쳐 주겠다. 밥 먹을 때에 아 맛있다  자꾸 밥 먹는 데만 골똘해 가지고 이렇지 고만 하나님의 말씀 고거 생각지  못하고 그 때 밥 먹을 때 가르쳐 줄라고 했더니만 못 가르쳐 준다 말이오, 밥  먹을 때에 자꾸 가르치면 밥 먹다 생각하니까 그게 퍼뜩 알아졌다 말이오. 밥  먹다 생각하니까 환해 그러니까 밥 먹다가 숟가락 놓고서 이제 퍼뜩 알았으니  잊어버리겠다. 얼른 노트에 이래 써놓고 말이지, 써놓고,  나중에 퍼뜩 왔다 가버리면 그래 퍼뜩 왔다 가는 것을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떨구는지 퍼뜩 빛이 와 가지고서 알려 놓기는 알려 놨는데 그만 그라고 난  다음에 가 버리고 나니까 도무지 모르겠다. 암만 생각해도 모르지 뭐 기록해  놓은 것도 없지,  이러기 때문에, 그것이 자기가 알려졌으면 뭐 한번 아니라 수십 번 자꾸 재독을  해요. 자꾸 이래 재독을 해도 재독을 해도 그게 나가 버립니다. 재독해도  나가는데 고대로 한번 딱 실행한 것은 다시 안 나가요 실행한 거는 다시 안 나가  그만 타 못 박히듯이 그만 박혀 버리고 만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대로 실행할 수 있는 그 기회는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모릅니다.

 이래서 자꾸 그 말씀을 읽고 사모하고 새김질하고 묵상하고 이렇게 하게 되면  이제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과 몸은 색깔이 없는 거 비유입니다. 아무 색깔이  없다, 무색이다. 다만 그것은 쓸모 있는 것이 생애 본능으로서 살고자 하는거,  배고파 먹고자 하는 거, 살고자 하는 거 고것만 있는데 거기에 아무 사상이나  그런 거 하나도 없습니다. 사상이나 주의나 욕심이나 그런 거 하나도 없고 단지  생애 애착, 생애 본능 그것뿐이라. 여기다 이 마귀란 놈이 자꾸 물을 들이  놓으니까 이게 마귀의 물이 들어 가지고 마귀의 것이 꽉 베어 가지고 있으니까,  자 붉은 물을 들이면 이제 이 베쪼가리는 하얗는데 붉은 물을 들이니까 빨간  베가 됐다 말이오. 빨간 베가 돼 버렸어. 이러니까 빨간 베가 되니까 이 베 저는  제가 빨간 베가 제인 줄 아는데 빨간 베가 제가 아니라 이거는 탈색을 해서 이  색을 없앨려면은 없애질 수가 있어, 없애면 없어지니까 그게 내 마음은 아니라  그 말이오. 내 마음은 아니라.

 또, 하나님의 것을 받아 들여 가지고 이제 우리가 하나님으로 감동돼서 성화가  돼지면은 성화 그것도 금방 성화되어 성자가 됐다가 성자가 됐다가 그만 성자  마음이 어짜면 그만 성자 마음 다 가 버리고 그만 독사와 시랭이 마음으로 확  변해진다 말이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마음이나 몸이라 하는 것은 무색의 존재라. 그저 생애  본능밖에 없는데 그러기 때문에 썩어져 가는, 미혹의 욕심을 따라서 썩어져 가는  모든 것을 다 벗고 구습을 버리고, 구습을 버린다 말은 이제 까지 한 번하고 두  번 한 것을 습관이라 하는데 자꾸 그 일을 한번 행하고 두 번 행하고 나니까  그게 자꾸 연습이 되니까 더 능숙해지지 않습니까? 연습이 되어 연습이 되니까  그 사람이 됐다 말이오. 연습이 되니까 그 마음이 됐고 그 몸이 됐고 그 사람이  됐는데 그 연습한 것을 벗어버리시오. 그 연습하는 걸 벗어 버리라 이 연습했던  것을 탈색하면 탈색이 된다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자꾸 생각하고 새김질하고 자꾸 묵상하고  이렇게 되면 이제 이 마귀의 것이 마귀의 것이 자꾸 이것이 슬슬 흐려지고 슬슬  흐려지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한데 와 가지고 자꾸 가까이 비추어지고 나와  가까워져 가까워지다가 고때 현실에서 고걸 결정 지우는데 거기서 완전히 결정이  나버립니다. 고걸로 완료가 돼버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사모도 생각도 이렇게 기억도 하지마는 고 결정되는  젓은 내가 현실에서 딱 행할 때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우리 마음에는 감각도 있고 또 기억도 있고 우리에게는 여러가지  의지도 있고 이래 있는데 그 우리에게 이런 거 저런 거 모든 것이 와 가지고  우리의 그 무색을 무색을 하나님의 진리로 진리로 하나님의 진리로 욕심도 물을  들여서 하나님의 진리로 성령의 욕심, 또 감정도 성령의 감정으로 진리의  감정으로 자꾸 이렇게 이렇게 이런 것이 하나 하나 점령을 해 가지고 우리  마음의 요소가 다섯 가지면 다섯 가지. 처음에 하나 점령해서 자꾸 물들이고  자꾸 이래 하면은 마지막에 이 모든 것이 다 그 마음의 요 소가 열이든지  백이든지 그것이 다 의논을 해 가지고서 일심 단결로 결정이 딱 됩니다.

 이 결정이 딱 됐을 때 요렇게 하자, 그 전체가 총 결의에 그 결성이 되면  결의에 결성이 되면 그것을 가리켜서 신앙 의지라 말합니다. 신앙의지라. 그만  자기가 뜻을 정했다. 뜻을 딱 정했다. 뜻을 딱 정하고 난 다음에 뜻을 정해  가지고서 탁 한번 행해 버리니까 고만 결제가 딱 돼버려 다시 취소 못 해.

해제를 못해. 그만 결제가 되고 요래 가지고 한토막 한토막 우리가 돼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든지 하나님의 그 말씀을 읽고 듣고 생각하고 자꾸 이것을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고 또 주님을 자꾸 사모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뭐라고 말했느냐 하면은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나를 본받으라' 했는데 사도 바울이 나를 본받아라 하는 것은 사도  바울 자신을 본받으라고 하면은 그거는 실수입니다. 사도 바울을 본받으면 또  이상이라. 사도 바울도 뭐 기형적인 사람이지 하나님처럼 온전한 사람은 아니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는 꼭 본받을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본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야 되지 사도 바울의 형상 입어 안 되고. 또 백목사 형상  입어도 안 되고, 또 어느 주남선 목사, 뭐 주기철 목사 형상 입어도 안돼요.

 언제 한번 책을 보니까 후란시스를 보고서 후란시스에게 감화를 받아 가지고서  후란시스의 감화 받아 후란시스 같은 사람이 돼지겠다고서 그서 장 입구에서  일생을 전도하면서 지낸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조금 불쌍한 사람입니다.

어쩌든지 주님 외에는 우리에게 표본이 없습니다. 주님 외에는 표본이 없고  법칙은 신구약 성경 말씀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래서고 현실에 이 지식을 내가 영접하느냐 저 지식을 영접 하느냐  내가 이 지식에게 복종하느냐 저 지식에게 복종하느냐 요것이 자기의 지식  결정이요 지식 결정. 고게서 결정되는 것이고 고 결정된 거 암 만 할라해도 그  근방에 없으면 안 되는데 그 근방에 많이 읽고 이래 놓으니까 옆에 와 가지고  이렇게 쌓여 가지고 자꾸 진리의 말씀과 영감이 이렇게 태산같이 쌓여 가지고  있는데 그만 허락을 안 해 고렇지 허락만 하면 왈칵 들어와 가지고 벌컥 취해  버린다 말이오.

 그러니까, 벌컥 채여서 아주 여기 들어와 가지고서 자리를 잡고 물이 딱 드는  데는 뭐이냐면 현실에서 내가 어느 지식을 내가 채택하느냐 어느 지식에 내가  복종하기로 작정하느냐고 현실에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결정이 되고 탈색도 아무리 평소에 안 한다 안 한다 해도, 마귀 것  안한 마귀 것 네 까짓 물리친다 안 한다 안 한다. 마귀의 지식을 나는 안 한다  너희 지식은 부인한다, 부인한다. 부인한다고 말을 해도 그게 약간의 힘은  있지마는 그 부인하는 것은 언제 되느냐? 고 현실에 가 가지고 요 지식이냐 조  지식이냐 할 때에 사탄의 지식, 내가 이 사탄의 지식을 취하지 안하면 내가 죽을  것이고 사탄의 지식을 취하지 않으면 인간 지식을 취하지 않으면 죽겠고,  하나님의 지식 취하면 내가 죽겠고, 이럴 때 죽어도 인간 지식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지식을 취할때 고때에 고 인간의 지식은 다 쫓겨남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얼마나 그 암투 속에 은밀하고 세밀하고 철두철미하고 이거는 뭐  물질의 과학이라는 것이 그것도 나는 그거 안 해봤지마는 아, 비행기를 만들면  그 부속품이 부속품이 한 푼은 넘으면 안돼, 한푼보다 더 얇은 것을 뭐라 하지?  제일 얇은 그 이름이 뭐 이라? 제일 얇은 거, 미리? 미리 미리? 미리보다 더  얇은 거 없나? 마이크롬 뭐라 했노? 그래 고걸 가지고 다투요 고걸 가지고.

고만치 고만치 두꺼우면 안 되고 고만치 얇아도 안 되고 꼭 고게 맞아야 돼.

 그 세밀한 기계 일수록이 고게 세밀해서 정확해야 되지 뭐 이런 구루마 같은  거야 좀 몇 푼 두꺼워도 되고 얇아도 되고 이렇지마는 자꾸 가치 있는데  갈수록이 그렇다 말이오. 그것도 그런데 하물며 우주와 모든 것을 통치 할 수  있는 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지는 것인데 이게 그렇게 아무나 따나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고 이래 믿어도 되고 저래 믿어도 되고 아무나 믿어도 된다는 그런  거는 천부당 만부당한 말입니다. 천부당 만부당한 말입니다. 그러기에 암만  해봐도 성령이 인정 안 하면 안 된다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이 언제든지 주관적인 신앙을 가지면 안 됩니다.

객관적인 신앙을 가져 가지고서 객관적인 신앙이 그것이 초월해서 마지막에  주관적인 신앙이 돼야 됩니다. 주관적인 신앙이라 말은 내가 내 신앙이 아니라  주님이 내가 돼 가지고 내안에 주님이 주관. 내안에 좌정하셔 가지고 주인이  되어서 주님이 이제 당신이 인정하는 그 신앙이라야 신앙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고 현실에서 고게서 성경 지식 하나님의 지식 말이오.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은 자가 이긴다.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을라 하니까 평소에 이 시련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굉장히 시련이  많습니다. 고 사이비해서 싸움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 싸움을 싸운 사람은 벌써  이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기 지식을 삼으려고 할 때에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  지식으로 삼지 못하도록 하는 대적이 수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수많이 있다는 걸 알고 이 지식에서 그 지식이 지식 가지고 서로 싸웠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기 지식 삼으려고 이 전투를 한 사람은 이밖에 이  교회들이 이렇게 움직인다, 이 단체가 움직인다, 세계 기독교가 움직인다 하는  그런 움직임의 그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지식에 위반되는, 하나님의 지식대로  되느냐? 그거는 뭐 눈으로 더듬어 눈감고도 환하게 보일 만치 너무 외부적이고  외형적이기 때문에 환하게 안다 말이오.

 이러니까, 우리는 안에 세밀한 거기에 대해서 철저히 싸운 그게 실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것도 보고도 몰라요. 눈이 어두워서 보고도 몰라. 이거 뭐  인본주의인가 신본주의인가 모른다 그거요. 인본주의인가 신본주의인가 모르는데  지금 내가 곧 신본주의,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기 지식을 삼을려고 하면 그 순간  순간 한 현실 한 현실에 다 싸움이 있고 그 대적은 뭐 헬 수 없이 많은 대적들이  자꾸 이래 가지고 요래 꾀우고 그 꾀움을 다 이래 경험을 하고서 그것을 하면은  그만 그것이 신령한 박사라. 요새 박사가 유명한데 박사라 말이오. 신령한  박사라 말이오. 이래 놓으니까 이제 그래 놓으니 그 눈밝은 사람에게는 그런  것이 와 가지고서 침노를 못 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어쩌든지 성경 지식으로 자기 지식을 삼는 이 일에 주력을 해야 되고  그만 그것은 현실에 어느 지식이냐 할 그때에 요 고정이 됩니다.

 그러면, 고 지식이 들어와서 내게 지식이 돼. 그러면 그 지식이 어떤  지식입니까? 자 세상에 대대학에서 공부하는 그 지식과 고 현실에서 하나님의  지식이냐, 이 지식이냐 하는고 두 가지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과 자기 지식,  사람의 지식과 하나님의 지식하고 시비해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 자기가  영접하고 사람의 지식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지식에는 고 지식은 이 세상에서  아주 최고의 학부에서 공부하는 그 지식과 이 지식이 어떻습니까? 같은  종류입니까, 어떻습니까? 같은 종류입니까? 같은 종류입니까?  그러면 그 좋은 그 대대학에서 공부하는 그 지식은 무슨 지식이요? 피조물의  지식이요. 피조물의 지식인데 그 타락한 이후에 인간들에게 타락한 그 타락한 그  사탄과 마귀 둘만 이래 공작했지 하나님은 거기에서 접선하지를 안했어.

접선하지 안하고 그대로만 움직여 가지고 이와 같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만 하고.

 그런데, 이 지식은 무슨 지식이냐? 이 지식은 창조의 능력을 가지신 그 무한의  능력을 가진 지식이라. 그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그 말은 이 지식은 네가 이 지식을  지키다고 애먹을 것이 아니라 이 지식이 너를 보호하고 이 지식 슬하 이 지식의  슬하를 떠나지 아니하면 이 지식의 나래 앞을 떠나지 안하고 이 지식 나래 아래  네가 있으면 이 지식 아래 네가 숨어 있으면 아무도 해하지 못한다 이런 능력  있는 지식이라 그 말이오.

 그러니까 그리 되면 우리의 지식이 힘이 있는 것이 그 지식이 뭐이냐 하면  피조물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단체 해 봤자 와서 싸울 대상이  안돼요.

 또 그 말씀대로의 행위라는 말은 그 행위는 이제 마음의 지식이 들어와서  점령을 해서 지식이 들어와서 마음에 내주하게 되고 내주하는데 그 내주하면  전능이 내주요 전지가 내주입니다. 전능의 전지의 그 주권이 내주요 완전이  내주요, 내나 내 속에 들어와서 내주하는 그분이 전능자요 그 분이 정권자요  그분이 주권자요 그분이 전지자요 그분이 전능자라 그분이 자존자의 내나 빛이  내게 와 있기 때문에 내 안에 계신 그것이 전능 전지자라. 그래서 너희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것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느냐 했다 그 말이오. 그러면 성령은  우리에게 접선하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니까, 내가 현실에서 자, 그러면 지식이 벌써 말씀대로의 지식이 됐으면  벌써 거의 점령을 다 해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제 그래도 행동에 가 가지고 이  몸이 말이요 이 몸이 구습이 꽉 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래 행동하나 저래  행동하나?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게 복종을 하나 이 인간말에게 복종을 하나  어떻게 하나 이 둘로 가지고서 현실에 시비할 때에 인간말에게 복종을 안 하면  안 하면 그 인간말과 한 덩어리된 인본주의의 그 큰 단체 짐승과 일곱 머리와 열  뿔. 이 현실에서 나는 어떻게 하느냐? 이 하나님의 지식대로 순종할라 하니까,  이 배암의 지식, 이 세상 지식, 단체 이것들이 그 지식대로 순종 안 할라 하니까  막 화를 낸다 말이오.

 화를 내가지고서 무슨 일 합니까? 처음에는 어찌 하지요? 자 처음에는 어찌  합니까? 어? 어? 어? 네. 유혹이라 하는 것도 좋지마는 꾀운다 해야 좋아.

꾀운다 그 말이오. 알아듣기 좋게 이 사투리라도 알아듣기 좋은 게 좋아 확실히  박히게 꾀워요. 우리를 꾀워요. 살살 달래고 꾀우면서 돈도 주고 뭐도 주고  직장도 주고 이라면서 이래라 저래라 자꾸 꾀워요 좋은 걸 주면서 뀌워요. 이래  꾀우고 저래 꾀우고 옛날 우리 합병 될 때 보면 좋은 아름다운 미인을 주면서  꾀웠어. 미인을 주면서 꾀워 가지고서 뭐 그래 꾀웠어. 뭐 별별 거 가지고  꾀운다 말이오.

 꾀우고 꾀우고. 또 그 다음에는 뭐라 합니까? 위협을 해요. 네, 그라면 인제  이란다 위협을 하고 협박도 하고 위협도 하고, 또 그러다가 어찌 됩니까?  몇이든지 죽이요. 고문과 고행으로 두드리다가 죽이다가 가두다가 이렇게 오만  일을 해요.

 이러니까, 그런 현실인데 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고 것으로  딱 현실을 결정을 지우면 고때에 못이 딱 박혀 버립니다. 고 현실에 말씀대로의  행위라 하는 것은 고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루어지는 고 결정은 밤중을 통과해야 돼. 그러면 밤중에 신 랑 오지  안했어요? 신랑 왔다 그 말은 고 최고 절정에 고럴 때 고 현실은 다 절정인데 고  현실에 요걸 물리치고 요걸 딱 거석 할 때 그때가 주님 만난다 그 말인데 이제  주님과 저거는 접선이 돼 버린다 말이오. 접선이 되니까 전능자와 접선이  됐으니까 뭐 딴게 와 가지고서 암만 단체라 해봤자 그 일곱 머리. 열 뿔, 짐승이  똘똘 뭉쳐봤자 여기에는 어림도 없소. 어림도 없다 그 말이오.

 이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아요? 조그만한 사소한 것도 그래요. 여기 내가 언제  누구한테 말을 들으니까 깡패가 말이요 깡패가 와 가지고 어떻게 불량을  지기니까 집짓는데 와 가지고 불량을 자꾸 지겨 쌓으니까 이 사람이 못 견뎌서  아 이거 자꾸 저녁마다 와 아래 쌓으니까 내가 애를 먹겠다고 이러니까 아무것이  한 테로 가라. 아무것이 한 테 갔다 말이오. 가서 그 말 하니까 그래 그라면  내가 한번 가지. 그럴 때 떡 가 가지고서 그 집에 떡 앉았으니까 와 오더니마는  그만 그분을 보더니마는 아이구 형님 어찌 왔습니까? 아이구 선생님 어찌  왔습니까? 그만 절을 딱 하고서 고만 도망치고서 다시 안 오더래요. 그 사람이  깡패 두목이라. 깡패 두목. 꼼짝 안 해요. 그런 것도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까 와서 보니까 자, 전능의 진리가 그 안에 계시지, 그 마음  안에 계시지, 전능의 능력이 그 고깃덩어리 안에 계시지 이래놓으니까 꼼짝 못  해 왔다가는 다 도망쳐져요.

 이러니까 고 행동하는 데에 전능의 그 하나님의 모든 능력과 하나님의 속성이  내 고깃덩어리 속에 와서 좌정하시지, 또 내가 고 지식을 채용할 때에 내 마음  안에 와서 좌정하시지, 또 내 영 안에는 벌써 좌정하셨지, 영 안에 영 안에  성령과 진리는 하나인데, 와 가지고 좌정하시지, 또 내 마음 안에 좌정하시지,  또 내 고깃덩어리 안에 좌정하시지 이러니까 세 군데 좌정하시니까 그 사람은  무슨 사람이라요? 그 사람은 무슨 사람입니까? 진실한 사람이오. 그거는 진실한  사람. 이걸로만 이기지 딴거 가지고 이기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뭐  각오니 결심 가지고 이기는 줄 압니까? 아니요.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통계는 간 작은 자들이 많이 승리했지 간 큰 자 쳐 놓고  승리한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아까 처음에도 말했지마는 다 배짱 좋고 간 크고  뭐 미련하고 참 담대한 그런 굵닥굵닥한 잘 생긴 사람들 전부 다  패전당했습니다.

 이거는 간이 작아서 겁이 나 가지고서 뭐 온순한 사람, 속담에 말하기를 루터는  얼마나 간이 작았든지 간이 작아서 길가 가다가 뇌성벽력을 하니까 그만 겁이  나가지고 개천물에 구부러져 쳐박혀서 개천물에 하수구에 떨어져 쳐박혔다  말이오. 그렇게 간이 작기 때문에 간이 작으니 앞으로 큰 일이 있으니 어찌  되겠느냐 하고서 주님에게 '나는 간이 작습니다. 자꾸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자꾸 기도하니까 그렇츰 간이 있어서 다른 사람은 개혁을 못  했는데 그 사람은 선봉에 나서 가지고 개혁을 했다 그거요.

 그러기 때문에, 간 작은 사람이 다 승리합니다. 그러니까 약자가 승리해요.

 그래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세상적으로 능하고 간 크고 훌륭하고 유식한  사람들 가운데서는 신앙에 승리한 사람들이 적고 많지 못하고 오히려 뭐 약한  사람 그 사람들이 다 이겼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 사람들은 다 뭐이냐 하면 티끌모아태산 하는 그 방법을 썼더라 그  말이오. 자, 따라 하십시오. 티끌 모아 태산 된다! 티끌 모아 태산 된다! 티끌  모아 태산 된다! 저 뭐 저런 걸 자꾸 가르치고 있는 고 하지만 요령은  요령입니다. 아주 우리가 경험을 해 봤어요. 경험을 해봤는데 보면 간 작은 자가  이겨요. 간 큰 자는 못 이겨요.

 그래 가지고 그러면 우리 지식이, 지식이 변화될 때에 우리 마음이 변화 돼요.

또 우리의 행위가 변화될 때에 우리 몸이 변화돼요. 변화되면 뭘로 변화되느냐?  진리와 영감으로 변화됐기 때문에 진리와 영감이 내 안에 내주 해 계시기 때문에  진리와 영감은 천하가 하나 된 그것들을 호령을 칠 수 있고, 그것을 만드신 자요  그것들을 먹이고 입히시는 자요 그것들의 큰 자 요 벌써 승리하셔 가지고서  사탄을 종으로 잡아 부리는 그분이시라 말이오. 그분이 곧 진리요 그분이 곧  영감이요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것들이 와서 꼼짝을 못한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다른 사람은 신사 참배 안 한다고 도망을 가야 되고 그래 안 하면  두드려 맞아야 되고 감옥에 갇혀야 되는데 그 사람한테는 그런 사람한테는 그저  도무지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금방에 가지도 못하고 나쁜 말 하지도 못하고 그래  이긴다 말이오.

 그러니까, 우리는 그것밖에 못 지켰소. 나는 그거 하려고 지금 애를 써요. 왜?  아마 두드려 맞으면 아픈 것 못 견뎌요. 아픈 걸 못 견디기 때문에 아야 안  두드려 맞고 고만 미리 이기는 그거라야 되겠어. 눈을 빼서 이래 놓으면 나는  신경이 눈을 빼면 못 견딜 것 같은데 눈 빼기 전에 눈도 빼지도 않고 왔다가  도망치도록 그만 주님과 그래 성령과 진리를 딱 모셔서 내 안에 모시니 내가  성전이 돼 가지고 있으니까 내 안에 주님과 진리 와 성령이 내 안에 좌정해  있으니. 그것들이 떡 왔다가 아이구 오셨습니까?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도망치지 제가 어떻게 할거냐 그 말이오. 이것을 우리가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자, 이 방법 쓰고 싶은 사람 손 한번 들어 봐요. 네, 참 우리가 지혜 있습니다.

자 그라면 거기에 손 안 들고 한번 대결해서 한번 싸워 봐 멋지게 한번 싸워  가지고 해보고 싶은 사람 한번 손들어 봐요. 그것도 좋아. 저 누가 한 분 드는데  얼마나 어떤 사람인가는 몰라도.

 우리가 준비합시다.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그  진실을 이걸 껍데기로 진실은 뭐 거짓말하는 사람이나 참 말하는 사람 이 마귀가  이 진실을 천 가지 만 가지 자꾸 꾸며 가지고 사람을 어지럽힌다 말이오.

 이 진실의 정의가 뭐이냐 하면은 요 진실은 하나님 말씀대로의 지식.

말씀대로의 행위, 말씀대로의 이제 사람이 되면. 두 가지만, 말씀대로의 지식  말씀대로의 행위만 하면은 영은 벌써 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셋이 합하면  그만 말씀대로의 사람이 돼 버려요, 그만. 이러니까 이거 외에는 우리가 이기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러니까 이렇게 이 준비를 하는 데에는 미래에 있습니까, 과거에 있습니까?  미래에 있습니까, 과거에 있습니까? 현재에 있습니다. 네, 현재에 있습니다.

현재 이거냐 저거냐 할 때에 그때에 당신이 인정하지 다를 때 인정하지 안해.

다를 때는 '내가 당신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순종합니다.' 이래 해도 주님이 안  들어요. '어 그래 두고 보자. 두고 보자.' '나는 당신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당신의 말씀에 순종하니 내가 다른 말 순종 안합니다.' 아무리 그리 쌓아도 인정  안 해. '두고 보자.' 두고 보자 하시고 난 다음에 딱 만들어요.

 이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다른 말에 순종하느냐.? 이 다른 말에 순종 안  하면 큰애로가 있도록 딱 만들어 가지고 현실을 당신이 만들어 딱 봉착시키면  고럴 때 가만히 보면 고만 이거 원첨 마귀에게 순종하지 안하면 안하면 큰  고통과 희생이 많이 되어지니까 막 발발발발 떨면서 그래도 하나님의 진리에  순종을 해야 되겠는데 말씀에 순종해야 되는데 이래 신강을 할 때에 고때에  주님은 옆에서 이래 보고 계시고 성령님은 와 가지고 야야, 야야 깨어라,  깨어라, 인내해라. 인내로 구원 얻느니라. 인내로 구원 얻느니라. 주의 재림이  가까웠으니까 인내로 구원 얻으라. 인내로 구원 얻어라 인내해라. 인내해라  이란다 그 말이오.

 그럴 때에 이래 떡 능소능대(能小能大)하면은 이 마귀 이놈을 한번 놀려 준다  말이오. 이놈에게 슬며시 넘어갈 듯이 슬근슬근. 속에 단단히 힘 안 주고 하면  큰 일 나요. 넘어갈 듯이 슬근덕 슬근덕 이러니까 이놈이 좋아서 제딴에는  넘어올까 봐서 야단을 지기는데 이렇게 슬근슬근 이러니까 주님을 약을 올린다  말이오. 주님을 약을 올려 그래 슬근슬근 이러니까 이러니까 주님은 저놈이 저리  갈라는가 저리 갈라는가 이라다가서 딱 마지막에 딱 물러가라! 탁 치고서  주님에게 딱 들어붙어 가지고 주님이 좋아서 '야, 너 와 그래 날 애를 태워.

그만 그만 처음부터 그랄 일이지. 내 가슴이 도곤도곤 했어.' 이라면서 주님이  그래. 그 주님과 연애하는 것이 이래 연애하는 것이오. 주님과 연애하는 것이.

그래 가지고 친근히 해요.

 이러니까, 지금이 참 영원무궁을 결정짓는 원인의 때요 준비의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은 태우는 학교요. 우리가 신령을 배우는 학교요. 우리가  연습하는 연습 장소요, 또 영원을 준비하는 준비 기간이요, 영원무궁의 원인을  만들려는 그 원인을 만드는 원인 제조기간이오.

 이러니까, 이런 줄 알아야 되지 이 세상이 이것을 영주처인 줄 아는 통에 안  된다 그 말이오. 우리는 영주처가 아닙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더 말해 봅시다. 잠깐 조그매만  요한복음 11장 40절이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이 마르다에게 나사로를 묻어놨는데  돌을 옮겨 놓으라 이러니까 마르다가 있다가 말하기를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있다가 말하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썩어서  내음새가 나는데 그 뭐 무덤 팔게 뭐 있습니까? 이러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돌을 옮겨 놓으니 그러니까 아, 믿으면 된다 하는구나  믿으면 된다 하는구나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와 가지고서 하나님께 영광  돌아가고 우리는 기쁘고 즐거운 승리를 한다 하는구나, 이렇게 하는 말씀을 듣고  그 내음새가 나지마는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니까 주님이 옮겨 놓으라고  하니까 옮겨 놓으면 된다 하는 거 믿으면 되는데 안 믿으면 주님이 하지 못해 요  안 믿으면 못 해요 주님도 안 믿으면, 우리가 믿을 때에 할 수 있다 말이오.

 그래 척척 옮겨 놓으니까 나사로야 나오라 하니까 나사로가 나왔소. 죽은  나사로가 살아 나왔어.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자, 따라해요.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으면 우리 믿음을 인해서 과연 참 하나님 크시다,  과연 하나님은 앉은뱅이를 일으키는구나, 과연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는구나,  과연 하나님은 내 눈을 띄었구나, 제가 믿으면 눈이 떠진다 말이오. 믿으면 그  앉은뱅이가 일어선다 말이오. 믿으면 벙어리가 말을 한다 그거요. 믿으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니 말씀하신 그 분이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되는 이 사실을 자기가 인정하고  고대로 확실히 믿을 때에 하나님은 그 믿음을 통해서 역사할 수가 있다 그  말이오, 안 믿으면 역사 못 해. 네가 믿으면 네가 역사할 수 있지만 안 믿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가 없어오.

 마태복음 14장 28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이 걸어올 때에는 걸어올 때는 믿음으로  걸어 왔는데 이제 걸어오다가 물에 빠지는 것은 믿음이 적어서 빠졌다 그  말입니다.

 그 믿음 적은 것이 뭐입니까? 뭘 보고 믿음이 적다 합니까? 빠져 들어 가니까  믿음이 적은 것이지. 그러면 어째서 믿음이 적어졌는고? 자, 믿음 적은 표가  뭐입니까? 예? 믿음 적은 표가 뭐이요? 빠져 들어가니까 믿음이 적은 표지. 또  물위로 걸어가니까 믿음이 그 좋은 표지. 이랬는데 믿음이 좋을 때는 걸어갔는데  믿음이 그만 적어서 걸어가다가 물에 빠졌으니까 물속에 빠져서 믿음이 적어지게  된 그 원인이 뭐인고 누가 압니까?  믿음이 좋은 때는 뭐이냐 하면은 막 놀래고 겁이 나고 죽겠다고서 유령이요  이래 쌓아었는데, 주님이 내로라 하니까 아, 주님만 딱 바라보고 그만 주님이  물위로 걸어서 '무엇이든지 주님이 명하면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이러고,  주님이면 다라. 주님이면 다라. 이렇게 주님이면 다이기 때문에 어떻게 좋든지  주님이 무엇이든지 날라라 했으면 그때 베드로가 날랐을 거야. 주님이 있다가서  주님이 뭐 만일 베드로야 날아라 하면은 그 층암절벽이라도 날라 훅 뛰어날았을  것이라. 날면 또 날은 다 그거요. 주님이 말씀한 대로 그대로 하면 된다 그거요.

 이런데, 그래서 주님만 바라보고 물위로 걸어오라 하니까 그 배에서 그 뭐  죽겠다고 금방 풍랑이 일때라, 풍랑이 그때 인게 아니라 내나 지금 풍랑이 일고  있는 때라 말이오. 일고 있는 때에 오라 하니까 배에서 툭 뛰어 내리는 그것이  뭐이냐 하면은 주님만 바라보고 딴거 바라보지 안해.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시고 주님이면 다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은 고대로 다  된다, 주님과 주님의 말씀의 권위를 믿었다 말이오.

 믿고 소망했어. 고것만 하니까 고것만 하니까 자연히 물위로 걸어오라 하니까  물위로 걸어갔다 말이요. 걸어가니까 걸어가졌다. 걸어가졌는데, 그만  그러다가서 믿음이 적어진 것은 주님 외에 풍랑 봤다 말이요. 풍랑 봤어. 주님  안 보고 풍랑 봤어.

 주님 안 보고 풍랑보고 풍랑보니까-주님보고 안심하고-풍랑보고 무서워 했어.

이러니까 믿음 다 없어지지 안했어? 믿음 없어졌는데 지금 풍랑을 보고 두려워서  겁이 나 가지고 겁이 나니까 풍랑보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풍랑보고 두려워  떨면서 무서워하는 것은 고것은 예수님에게 받은 지식의 사람입니까, 옛날 믿기  전에 베드로에게 있던 사람입니까? 예수 믿기 전에 베드로에게 있던 그 사람이라  말이오. 그 사람. 그거라. 옛 사람으로 돌아갔거든 옛 사람으로 돌아가니까 뭐  자연히 빠져 들어가지.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만 바라보고 모든 걸 주께 맡겨 놓고 주님만 바라 보고  주님만 의지하고 주님에게 복종하는 요것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거는  전능이요 전지요, 자체가 전지전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그 사람을  통해서 뭣이든지 그 사람 붙들고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금 조성하실라고 하는 완제품이 어떤 것이  완제품이냐 하면 하나님께 모든 자기에게 대한 것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그거  하나님에게 맡겨 놓고 하나님만 소망하고 바라보면서 그분의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거 요것만 완성하면 돼요. 요것만 완성되면 하나님께서 뭐 못 할 것  없소. 그 하나님이 목적 정하신 것이 이 목적입니다. 요것 되도록.

 이러니까 내나 공부시킨 것이 항상 그 공부라. 주님 공부시키는 것은. 모든  것은 다 주께 맡겨 놓고, 굶는 거 먹는 거 죽는 거 사는 거 이왕 누가 옆에 놈이  미혹하기를, 그라면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하는 것도 그것도 죽고 사는  것도 주님에게 맡기는 거라. 그라면 말하기를 '사탄아 물러가라. 죽고 사는 거는  내게 아니라 주님이 책임졌어. 주님이 책임지는 것을 주님이 잘 아실 터인데 뭐  내가 어디서 간섭할게 뭐이야? 그거는 주님 맡은 거 주님에게 그래라. 너 죽는다  죽는다 하는 거는 나한테 말하지 말고 주님에게 말해라. 주님에게 맡기기 때문에  그거는 주님이 이렇게 저렇게 말하지 나는 말할 권리 없어. 주님에게 딱 맡겨  버렸어. 한편 맡기고 난 다음에 다시는 말하지 안해. 맡겨 놨어.' 그라는  자에게는 마귀가 꾀울 수가 없다 말이오  너 야 그라면 감옥에 간다. 뭐 죽는다, 뭐 가정이 파괴된다, 뭐 된다 해도 '아,  그거는 내가 주님에게 맡겨 놨어. 맡겨 놔 내가 그걸 간섭할 일이 아니라 내가  참관 할 일이 아니라. 그거는 주님 혼자 독단이 할 일이지 나는 거기에 대해서  참관 안 하기로 딱 결정을 지어서 하나님에게 맡겨 놨기 때문에 다시 나는  거기에 대해서 권리가 없어. 권리가 없어.' 이러면 마귀 유혹이 우리에게 내게  대한 유혹이 전부입니다. 거의 전부라. 미혹 여기에 다 들었어. 너 이래야 된다.

너, 이란다 저란다 하는 고게 유혹이라 하는 거는 고게 쏵 다 집중했어요. '너  지금 이란다 저란다'  마귀의 유혹은 뭐로 가지고 다 단번 이길 수 있습니까? 어? 마귀의 유혹은 뭘로  가지고 이길 수 있소? 여기에 마귀의 유혹은 뭐로 이길 수 있소? 마귀의 유혹은  내게 대해서 이란다 저란다 좋게 해 준다, 나쁘게 해 준다, 내게 대해서 전부  말하는 것이 마귀의 유혹이요, 마귀 유혹은 딴 데는 말하지 안해요. 내게 대해서  내게 대해서는 주님께 다 맡겼기 때문에 내게 대해서는 암만 좋게 해 준다 해도  '아, 좋게 해 주든지 나쁘게 해 주든지 주님에게 다 맡기기 때문에 나는 거기에  대해서 지금 손을 댈 수도 없고 참 관할 수도 없다. 주님에게 다 맡겼다' 하면  마귀의 유혹은 일단으로 끝나 버립니다. 마귀의 유혹은 우리를 맡기실 때에  일단으로 끝난다.

 또, 바라보는 거, 바라보는 거는 거기에서 마귀가 '내가 이래 줄께 저래 해  줄께. 이래 줄께 저래 해줄께' 하는 그것은 아니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다 잘해  주시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주님이 주시는 것만 내가 받지 주님이 해 주는 것만  받지 네가 해 주는 거는 내가 받지 안해. 그 반거짓말이 섞여 있어.

 주님이 해 주시는 것만 받기로 거기에서 딱 전적 주님이 해 주는 것만 받기로  그렇게 결정을 했어, 하나님이 주님이 주시는 것만 받지 딴거 주면 안 받는  거라. 주님만 바라보는 걸로 결정해 놓으면 마귀가 우리를 꾀우는 걸 못 한다  말이오. 꾀우는 걸 못 해. 좋은 거 이거 좋은 거 해 주마 저거 좋은 거 해 주마.

좋은 거 해 주마 꾀워도 그 꾀움에 들어가지 않는다 말이오. 우리를 좋은 거 해  주마고 이렇게 꾀우는 것은 고것은 우리의 소망으로서 고거는 완전히 정리돼  버리고 맙니다. 네.

 우리에게 대해서 이런 위협 저런 위협 이런 협박 저런 협박 그 협박 나오는  것은 뭘로서 딱 막아 버리면 딱 막혀버립니까? 이런 위협 이런 협박 저런 탄압  이래 쌓는 거 그것은 그렇게 우리를 위협하고 협박하고 하는 그런 것은 뭘로  가지고 딱 막아 버리면은 막혀집니까? 맡기는 것으로 다 끝나요. 맡기는 것으로.

 또, 우리에게 이런 거 준다. 저런 거 준다, 뭐 줘 은거 줄께, 늘 어떻게 높은  벼슬 줄께, 부자 줄께 뭐 어떻게 좋은 미남에게 결혼 시켜 줄께, 좋은 미인에게  결혼 시켜 줄께 하는 그런 거 이런 거 저런 거 좋은 거 줄께 하는 그런 거 온갖  미혹 온갖 그런 미혹은 뭘로 딱 봉해 버리면 됩니까? 주님만 바라보는 것으로  완전히 결정이 납니다. 맡기고 바라보고.

 또, 네가 이래야 편하다 저래야 편하다.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뭐 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래야 네가 좋다 저래야 좋다 무엇을 편리한 걸 많이 가져도  '나는 주님만 의지하기로 작정했어.' 할 때 그거 볼일 다 봤다. 그 와야 뭐 손을  댈래야 댈 수가 있어야지. 야, 요래 봐라 조래 봐라 요래 봐라 조래 봐라 해도  아니 나는 그분 한 분에게만 피동하기로 작정됐소. 이것 내세우면 그만 그가  손을 못대요. 와 봤자 닿아야지 가야지.

 모든 것 다 맡겨 놓고 그분만 바라보고 그분만 의지하고 그분에 복종 하기로  요것만 딱 작정하면 마귀는 볼 일 다 봤오. 마귀는 와야 와서 상관도 못 해요  왔다가는 그만 부끄러워 돌아가 버리지. 이러니까 어쩌든지 우리 살길은  이것입니다.

 이런데, 우리가 요 믿는 것, 요 사실을 인정해서 맡기는 거, 바라보는 거,  차지하는 거, 복종하는 거, 요것도 고라면 된다는 요 사실을 믿어야 돼요 안  믿으면 능력이 안 와요. 능력은 믿음으로 옵니다. 자,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믿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러니까 믿을 때에 능력이 옵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으니까  물위로 걸어갔고 그만 믿음 흐려지니까 빠져 들어갔고 믿음 없으면 내나 세상에  파묻혀 버리고 그런 것입니다.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이제 배운 말씀을 새김질하면서 간절히 확실히 작정해요. 이제 우리가 하늘에  둥 떠서 날라갈 수 있는 사람이오.

 이렇게 귀하시고 이렇게 좋고 이렇게 높으시고 이렇게 신실하시고 이렇게  참되신 분이 우리의 구주가 됐으니까 이보다 더 뭐 소원할게 뭐 있습니까 있기를  천상천하에 모든 것이 거기에 속한 것이라. 이 보다 큰 이가 없소. 이러기에  이분과의 관계만 바로 되면 다 됐어.

 저 일어서는 사람들 좀 기도하고 가요. 뒤에 야단 만나지 말고 마귀에게 끌려  가지고 야단 만나지 말고. 기도하고 가요. 마귀에게 멱살이 들려 가지고 뒤에  고생하지 말고, 뭐 이런 병 저런 병 들어 가지고서 고생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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