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좁은 길

 

1988. 10. 19. 새벽 (수)

 

본문: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통성으로 기도드립시다.

기도드릴 때에 꼭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싶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고 또 하나님을 찾아 만나서 구원을 얻고 싶은 그 사람이 돼 가지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안 되면 그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그 사람이 됐으면 지금, 그 사람이 안 됐으면 그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또 그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면 그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자기가 되게 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를 해야 돼.

그러면 다 기도하기는 해야 되지마는서도 자기 입술만 할 게 아니라 진정 소원을 가지고 기도해야 되지요.

그라고 또, 기도할 때도 저 심심산곡에 가 가지고는 고함을 질러서 힘대로 이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럿이 있는 데는 고함질러 기도하는 그 기도는 대개 살펴 보면은 자기 선전하는 광고요, 선전하는 기도, 자기 선전하는 기도. 이래 나는 이런 기도를 합니다, 나는 이런 거를 소원합니다, 내 신앙 사상은 이렇게 아주 높은 차원에 있습니다, 이런 거를 구합니다. 남한테 구해서 자랑될 걸 구하지 남에게 수치스러운 걸 구하지 아니하고 또 남에게 뭐 자기가 참 ‘아이구 저 사람이 저런 사람이로구나’ 자기에게 수치될 것, 자기 위신 깎일 그런 거는 안 구하고 전부 성자들의 기도만 합니다. 성자 성녀들의 기도만 하요. 그게 뭐이냐? 그게 자기 마음을 속이고 기도하는 거라.

그 소원을 바로 가져야 되지 소원 가지면 그만 그게 기도입니다. 소원 가지면 그게 기도요. 그게 제일 큰 기도라, 자기 소원을 가지는 것이. 하나님의 그 기뻐하시는 뜻을 우리 마음 속에 넣어 주시고 그래 가지고서 이루시요. 우리 속에 옳은 걸 소원하는 그게 뭐이냐 하면 곧 하나님이 당신이 내 속에 지금 당신의 뜻으로 와서 계시는 것이오. 그거 배척하는 것이 하나님 배척이라. 뭐 하나님이 무슨 형체입니까? 형체 없어. 무형의 존재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어제 아침에도 이 말씀 증거했는데.

중생되지 아니한 불택자들은 인도하는 영이 하나뿐입니다. 불택자로서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들을 인도하는 영은 하나뿐입니다. 그러나 중생한 뒤에는 인도하는 영이 전에 인도하던 그 영이 그대로 아직도 남아 있고 또 중생시키신 그 영이 인도하는 그 영이 있습니다. 이래서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인도하는 영이 하나뿐이고 중생된 사람에게는 인도하는 영이 둘입니다.

세상에는 인도하는 영이 몇이든지 있는 것 아닙니다. 둘뿐입니다. 요렇게 구별해서 정확히 믿으라는 자가 있고 어짜든지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 것 모양으로 이렇게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다 좋도록 타협적으로 해 가지고서 그렇게 가는 자도 있고 또,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은 전부 다 같은 종류의 사람이지마는 중생된 사람은 두 종류의 사람입니다. 두 종류의 사람인데 한 종류는 특별하고 한 종류는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들과 꼭 같습니다. 어데로 뭐, 어데로 가든지 자유로 가기는 갑니다.

이래서, 인간을 인도하는 영은 둘뿐인데 하나는 마귀요 하나는 하나님입니다.

중생되지 아니한 사람들은 뭐 많고 적고 개인이나 전체나 다 그것은 마귀가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말 맞아요 안 맞아요? 양성원 학생들, 양성원 학생들은 지금 앞으로 가 가지고서 목사 돼 가지고서 다른 사람을 가르칠 사람들인데 이게 하나 잘못 되면 교회를 뭐 몇십 교회를 지금 망칠란지 모르기 때문에 이거 중대한 문제라.

그러면, 중생되지 안한 사람들은 인도하는 영이 마귀라 하는 말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양성원 학생들 똑똑히 확정을 지워요. 맞는가 안 맞는가. 또 중생된 기독자는 인도하는 영이 둘이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도 있고 마귀가 인도하는 인도도 있고 둘이 있습니다. 이래서 하나님의 영이 인도하는 인도는 다 생명이요 마귀가 인도하는 인도는 다 사망입니다.

이 말이 맞으면 확정을 지우면 사람이 차차 차차 변화돼 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발라지고 옳을 터인데 이걸 혼합 혼돈해 버리면 눈은 소경돼 버립니다. 마음의 눈이 소경돼 버리기 때문에 아무것도 구별 못 합니다. 여게 양성원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지마는 아직까지 소경이 눈을 뜨지 못하고 항상, 성경에 말하기를 모세의 수건을 쓰고 지금 성경을 다 읽고 본다 이런 뜻으로 말해 놨어. 그 수건을 벗어야 돼요.

수건 안 벗으면 헛일입니다.

여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불신자에게 하는 말 아니오. 예수 믿는 자에게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된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 명령은 누가 했습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하는 이것은 누가 합니까? 마귀가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까? 요걸 똑똑히 구별해야 돼.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어. 이 말씀을 어기면 하나님과 대립이라. 대립하면 하나님이 대립된 자는, 대립돼도 좋다 네게 축복해 주겠다, 대립돼도 좋겠다 내가 너를 보호하겠다.

대립돼도 좋다 너와 나와 하나되자 그런 타협적인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지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멸망으로 인도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가는 자가 많고」 그러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은 제가 인도합니까 인도하는 무슨 객관의 역사가 있습니까? 인도하는 것이 자기입니까 인도를 지금 인간이 받고 있다 말입니까? 똑똑히 구별해. 인간이 인도를 받고 있는 것이지요. 인도를 받고 있어.

받고 있는데,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는 마귀입니다. 여기 또 뭐 여기 다른 해석이 있어요? 멸망으로 인도하는 영은 마귀입니다. 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영은 뭐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한 건 한 건을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마귀가 인도하고 둘이 인도하고 있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제가 아주 신사인 척 양반인 척 위대한 인물인 척 해서 ‘이거나 저거나 뭐 그럴 것이 뭐 있는가? 그저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 그걸 꼭 꼭딱스럽게 뭐 할 게 뭐 있는가?’ 그 사람은 하나님보다 크다 말이요 하나님 밑에 속한 사람이요? 자신이 하나님보다 크게 여기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두려워 그분을 찾을라고 애를 쓰는 사람이요? 자신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거라. 그게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이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느니라.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 하는 말인데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이 뭐 업신여긴 것이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하나님’ 이렇게 욕을 하고 하는 게 업신여기는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을 업신여기는 것이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오.

옳은 것을 업신여기는 것이, ‘옳은 것 뭐 옳으니 그르니 할 게 뭐 있는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지.’ 옳은 것을 멸시하는 것이 그것이 뭐입니까?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라. 말씀을 멸시하는 게 하나님 멸시요 옳은 것 멸시하는 게 하나님 멸시요.

또, 옳은 것, 하나님 말씀, 옳은 것에, 성경이 가르친 옳은 것에 생명 바치는 그것이 누구를 위해서 생명 바치는 것입니까? 그게 하나님 위해 생명 바치는 것이요 그게 하나님 대우하는 것입니다. 그게 대접하는 것이오. 저가 나를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하는 말은 하나님을 대우하는 자 하나님이 높여 준다 그말이오.

저가 나를 안다 말은 뭐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걸 아는 게 무슨 소용 있어? 안다 말은 ‘저놈 제 애비도 모르고 에미도 모르고 스승도 모르고 옳은 것도 모르고 그른 것도 모르고 돈도 모르고’ 모른다 말은 그걸 몰라 지식적으로 모르는 게 아니라 거게 대해서 가치로 생각지 안하고 상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켜 모른다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게 문제인데, 이거 지금 누가 이래 하고 있느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한 이거 누가 하고 있느냐? 이거부터 알아야, 누가 이 말 하고 있느냐? 이거 누가 말하고 있습니까? 뭐 지금 ○대통령이 말하고 있소 대신학자가 말하고 있소, 누가 말하고 있소? 정말로 하나님이 말씀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인정을 합니까? 입술로는 뭐 신구약 성경은 정확무오라고 해도 정확무오라 하는, 이 정확무오라 말은 신구약 성경은 똑 바르고 틀린 것이 없다는 그 말씀인데 정확무오를 믿는 목사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정확무오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 뭐 양성원 하나도 안 해도 하나님이 목사로 세우십니다. 목사는 인간을 잘 구원해서 잘 기르는 게 목사지 그까짓 거 인간들이 안수해 가지고 세운 그게 목사 다는 아니라. 암만 그래 해도 거게는 가짜가 많이 있어. 이래도 하나님이 세우신 것은 안수 목사 안 세워도 그 사람이 진짜 목사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도 있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자도 있다’ 그러면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는 누구입니까? 똑똑히 말해, 누구입니까? 그럴 때는 속에 생명이 있으면 이래요. 멸망으로 인도자는 누구입니까? 마귀! 이 말이 콱 나와야 됩니다. 콱 나와야 나중에 공산주의 앞에서도,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는 누구냐? 마귀입니다! 여게서 고함을 속에 불이 팍 나와서 하는 그 사람이라야 죽일라 한다 해도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는 마귀라’ 이렇게 대답이 나오지 여게서 인간 안면 보고 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뾰족하다 하고 내가 너무 사회성이 없다 하고서 내 동무가 적을 터이니까 내가 외롭게 되겠다, 내가 또 사람을 잃어 버리겠다. 이게 겁이 나 가지고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것은 마귀라는 것을 말 못 하는 그 풍채가, 그까짓 게, 생명을 가지고 ‘네가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는 뭐이라고?’ 마귀라는 말 하겠어? 못 해. ‘따라해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는 그게 하나님, 너거가 말하는 하나님이다.

그거 너거가 잘못 믿어 그렇지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가 하나님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자가 누구냐? 마귀다.’ 이래도 꼼짝 못 하고 죽기가 두려워서 거게 굴복을 해야 된다 그거야.

오늘에 산 신앙을 준비해야 되지 오늘에 산 신앙 준비 안 한 그자가 현실을 닥쳤을 때에 산 신앙을 걸어간다 그말이요? 자기 환경에 고문과 고형, 독약을 먹이고 독침을 찌르고 할 그 앞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을 걸어가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자는 하나님이요 멸망으로 인도하는 자는 마귀라 하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안 됩니다.

무엇이든지 절정이 있소. 무엇이든지 절정이 있어. 절정 거게서 결정되는 거라, 절정.

그것을 가리켜서 밤중이라 말했어. 다 초저녁에는 등불 켜고 있다가서 등불이 꺼져.

등불은 뭘로 보는고? 등불은 제가 촛불 켠 걸로 보는가? 기름불 켜는 걸로 보는가? 등불은 뭘로 보는가? 등불을 과연 이 진리나 성령으로 이래 보는가? 진리와 성령으로 보는 그거는 아마 다 공통으로 다 해석하고 있어.

이 등불은 세상 빛이라. 그러면 그 빛을 낼 수 있는 기름은 뭐인가? 기름은 성령의 은사라. 그 해석은 공통 다 돼 가지고 있어. 그거는 다 돼 가지고 있어. 다 그렇게 해석해요. 뭐 성경을 보고 설교하는 사람은 다 그렇게 다 하고 있어요.

그러면, 성령을 받았다가 성령을, 불이 꺼져가니까 기름 더 달라 하니까, 성령의 은사가 많지 못하니 이거 지금은 빛의 생활하더니마는서도 나중에 가서 신랑 올 때 되니까, 밤중이 되니까, 아주 차차 어려움이 돼 가니까 빛의 생활을 못하고 증거를 하지 못하니까 ‘나도 지금 이거 무슨 신사참배가 왔는데 이 생명 내놓고 신사참배 안 해야 되겠는데’ 안 해야 되는 줄 알지마는서도 그만 자꾸 겁이 나서 안 할 수가 없고 이래 되니까 나에게 안 할 수 있는 이런 능력 달라고서 옆에 사람한테 말하는 그와 같은 것이라.

그러면, 등불 가지고 기름 가지고 처녀로서 신랑 맞이하고 이렇게 전부 다 같은데 기름 준비 되고 안 된 것밖에, 기름을 준비 안 된 게 아니라 하나는 많이 되고 적게 된 거라. 기름 많이 된 자는 그 혼인 잔치에 들어갔고 적게 된 자는 그만 쫓겨나고 못 들어갔다 그말이오.

그런데, 적게 준비해서, 나중에 준비해서 기름 구할라 하니 기름을 갑자기 구할라 하니 못 구하니까 파는 자에게 가서 구하라 이라니까 쭉 파는 자에게 기름 구하러 갔다 오니까 벌써 문 닫혔다 말이지. 그자들은 다 지옥 갔다? 다 지옥 갔어.

지옥 갔다? 너는? 너는 지옥 가겠나 천국 들어가겠나? 네가 네 입으로 정죄하고, 네가 네 입으로 정죄했으니까 변동 못 할 것 아니가? 너는 지옥 갈 자가 너는 천국 갈 자가? 너는 어떤 자가? 이것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하나님 법을 어기기까지라도 혹독하게 하면서 제게 대해서 ‘너는?’ 하면 `내게 대해서야 그 법을 뭐 적용시키지 안해야지’ 너는 그러면 기름 준비해서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 때에 신사참배 다 하기로 했으니까 등불 든 자가 등불 못 든 자가, 너는 어데 속했노? 그러면 왜정 말년에 신사참배는 제이계명 우상 숭배인데 우상 숭배한 자들은 그자는 그 밤중에 등불을 들고 있었어요 등불이 꺼졌어요? 등불이 꺼진 자입니까 등불이 그대로 켜 가지고 있는 자입니까? 양성원 학생들, 나는 양성원 학생들 내가 상대해.

양성원 학생들 내가 귀중히 여기기 때문에. 왜 귀중히 여겨? 그것들이 가 가지고 앞으로 지금 뭐 몇십 교회를 돌아다니면서 몇천 명 몇만 명에게 증거할 터이니까 그게 하나 틀려 놓으면은 다 틀리기 때문에 나는 생명 내놓고 지금 그걸 바로 가르쳐 볼라고 애를 씁니다.

그러면, 우상 숭배를 그렇게, 처음에는 안 한다 했어, 다 안 한다 했어요. 다 안 한다 했지만 나중에 고문 고형이 생겨지고 환난이 더 심해서 안 하면 잡혀 가고 죽이고 자꾸 이렇게, 모든 영업하는 사람은 허가를 다 취소해 버리지 또 그뭐 자기가 면허증 있는 사람 면허 취소를 해 버리지 자꾸 뭐 이래 해 버리니까 그래 놓으니까 다 그 신사참배를 모두 하기로 돼서 안 한 사람은 조선 교회로 있을 때에는 안 한 사람이 몇 사람 없었어. 몇 사람 없었어.

안 한 사람 몇 사람 있었는데 그 종류를 서너 종류로 가를 수가 있어요. 한 종류는 그만 그라라 하니까 저리 피해서 숨어 다니면서, 피하고 숨어 버려서 그런 일을 당하지 안하고 피해서 숨어서 안 한 사람 있고, 그 사람은 안 하기는 안 했지. 안 하기야 안 했지. 그 사람은 할 사람이요 안 할 사람이요? 할 사람이요 안 할 사람이요? 그 사람 승리한 사람이요 기피자요? 기피자라. 안 한 사람 가운데 그거 있고, 하나는 안 할라 하다가 뚜드려 맞은 사람 있고, 뚜드려 맞아서 안 한 사람 있고, 맞아도 안 한 사람 있고, 하나는 또 뚜드려 맞지도 안하고 얼마든지 안한다 이라고 돌아다녀도 그 사람들이 손도 대지 못하고 그렇게 안 한 사람 있고 세 종류로 안 한 사람이 있어요. 그 두 종류는 승리자이고 한 종류는 승리자가 아니라.

이러니까 평소에, 평소에 진리를 사랑해야 되지 평소에 진리를 사랑하지 안하는데 환난 때에 그 진리를 제가 사랑하겠다고? ‘네가 연약한 힘을 가지고서 내 말과 내 이름을 지키고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이런고로 네게 열린 문을 내가 네 앞에 둔다.

네가 내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켜서,’ 그건 조건부라.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케 한다’ 그러면 거게는 인내의 말씀을 지킨 조건으로 주님이 지켜 주시고 지키지 안하면 안 지켜 주신다고 그렇게 인간들이 선행을 말하지 않습니까? 이걸 떡 이라면은 그게 무슨 성구를 거게다가 붙이냐 하면은, ‘구원은’ 다 완전주의라는 게 그게 완전주의가 그겁니다. 그 완전주의가 사람 죽이는 것이고 그게 아주 마귀의 작용이라고 그걸 판단을 해 봐야 됩니다.

완전주의는 무슨 완전주의를 말하느냐 하면은 기독자의 구원은 완전한 구원인데 이거는 전적 하나님의 은혜라. 하나님 은혜라, 완전한 은혜라,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완전히 구원했기 때문에 구원에 대해서 이거는 하나님이 완전 구원이 되도록 하나님이 정해 놓고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되는 것이지 뭐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 거는 아니라. 그 말은 맞소 안 맞소? 그 말은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그말은 맞습니다. 그말은 맞습니다.

맞는데 그 말을 어데다가 쓰면 안 되느냐 하면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이 큰 구원을 줬기 때문에 네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힘을 써야 이 구원을 네가 가지게 된다 하는 그말은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성경에 기록해 놨어. 맞아. 그러면 둘은 모순됩니다.

자,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다 완전히 해 놨기 때문에 뭐 인간이 하는 거는 아니고 순전히 하나님이 다 그렇게 은혜로서 작정해 놓고 그렇게 이루시기 때문에 이룬다는 그말은 맞고 그러면 네가 모든 것 다하지 안하면 안 되고 하는 그말은 또 성경에 기록해 놨고, 이거 이 모순을 해결을 지워야 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사랑을 네몸같이 하라 하는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이요? 하나님이 당신이 전적 은혜로, 인간의 힘이 아니고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그 구원을 우리가, 은혜로 주시는데, 은혜로 주시는데, 은혜로 주시는 그 은혜의 구원을 내가 받는 방법이, 공짜배기로 받는 방법이 마음 다하고 목숨 다하고 힘 다하고 뜻 다하는 그것이 받는 방법이라. 그러면 그 일은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이런데 ‘행함 말하는 것은 너무 말하는 것은 너무 말하면 율법주의된다. 구원은 완전구원이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된 사람은 다 성화되기 마련이라.’ 그 말을 네가 죽도록 충성해라 그래야 네가 구원을 이루어 간다 하는 그 말 할 때에 ‘구원은 중생된 자는 다 성화되기 마련이라. 너무 행함을 강조하다 보면은 율법주의가 되고 그거 안 돼.’ 거게다가 말을 쓰면은 그거는 마귀요 하나님의 종이요? 대답해! 마귀요 하나님의 종이요? 확실해!

그래, 이렇게 인도하는 자는 둘입니다. 어제 아침에 좁은 길로 인도하는 것을, ‘좁은 문으로’ `생명 문으로' 하는 그 좁은 문이라 하는 그거, 여러분들 그러면 천하에 다른 이름으로써는 구원 얻을 길이 없다. 예수님만 믿어서 예수님 한 분만이 구주다. 예수님 한 분만이 구주다 하는, 예수님 한 분만 믿어야 되지 한 분 외에 딴것 믿어 가지고는 구원얻는 길이 없다 하니까 여게도 구원 있고 저게도 구원 얻고 구원 얻는 종교가 여러 수백 수천도 넘은데 하필 예수교만 믿어야, 예수를 믿어야 구원 얻느냐? 그러면 예수만 믿으면 구원 얻는다 하는 요 말은 요 도리 요 주장은 좁은 길입니까 넓은 길입니까? 좁은 길이오.

좁은 길인데, 좁은 길인데 이 숫자로서는 좁은 길인데, 숫자는 좁은 길 아니요? 요거도 그래. 숫자는 좁은 길이라. 둘이 없어. 하나뿐이라. 그런데 예수님만 믿는 요거로써만 구원얻는다 하는 이 도리는 좁은, 숫자로는 좁은데 그 권위로는 넓습니까 좁습니까? 넓어요? 넓은 것 이해가 돼요? 그 넓이는 넓어.

얼마나 넓습니까? 그러면 넓은 길 넓은 도리가 많이 있는데 이 도도 되고 저 도도 되고 여러 수천 수백이 돼 가지고 있는데 그거는 넓고 큰데 이거는 하나뿐이라.

그러면 넓고 큰 그것이 어데 있습니까? 넓고 큰 것이 이거 좁은 것 속에 정복을 당합니까 좁은 것이 넓은 것 속에 들어갑니까? 좁은 게 넓은 거 속에 들어가요 넓은 게 좁은 것 속으로 들어가요? 요걸 알아야 돼. 넓은 게 좁은 거 속에 들어가. 다 그 속에 다 싸여 들어가.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누구 안에서? 그리스도 안해서 통일돼.

아직까지 지혜에 대해서 입문도 모르는 그게 무슨 이걸 뭘 가지고서 그만 다 되는 줄 알고. 안 돼. 그래 뭐 내가 여기서 증거할 때에 이게 설교록에 나가니까 그 사람들 설교록이 가기도 전에 벌써 주간 설교록이라고 단편으로, 그거 한 권에 얼마씩 받아요? 천 원짜리 그거는 설교록 나가기 전에 요만하게 그뭐 만들어 가지고 설교록 보고 이거 보내지 말라 하니까 보내 줘야 된다고 그렇게 뭐 교역자회에서 결의를 해 가지고서 꼭 그래 하기로 했어. 할 수 없어서. 했는데 그 사람들 당장 봐요. 당장 보니까 내가 뭐 말하기를 이거 설교록으로 나가니까 다 알 것이라 다 볼 것이라 다 말했어. 또 알고 보라고 말해. 알고 보면 살 자는 살고 죽을 자는 죽고 다 제 길 제가 찾아요.

이랬는데 여게서 말한 것을, 제가 여게서 그러니까 틀리면 틀렸다고 항의를 해 가지고서 바로 잡아야 될 것이고 옳으면 옳으니까 따라야 될 것이고 이것이 네가 마귀에 속하나 하나님에게 속하나 결정인데, 이게 마귀에게 속하나 하나님에게 속하나 결정인데, 이거 달라요? 자기 삐뚤어진 걸 주장하고 거기 속하면은 하나님께 속한 자요 마귀에게 속한 자요? 확실해요? 양성원 학생들 확실해? 확정을 안 지우면 사람 죽여.

요새 신학교에서 사람 죽이는 살인자들을 얼마나 많이 내놨든지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다 죽고 있어, 지금. 숫자만 많이 내놓으면 된다고. 나도 지금 양성원에 여게서 지금 뭐 몇 학생 공부하지마는서도 거게 정말로 사람을 살릴 자가 몇이나 되는가 지금 그게 문제지 사람을 죽일 자를 그런 자는 이게 살릴 자 될까 싶어서 소망을 가지고 지금 힘을 쓰고 있는 것이지 만일 죽일 자로 안다면 그런 것은 다 퇴학을 시켜서 없애 버리는 게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말이오. 그래도 그거 모르니까 지금 살릴 자가 될까 싶어 하는 것이지.

넓은 길로 가는 자는, 만일 이 자가 넓은 길로 끝까지 갈 자로 알면 그것은 제거해 버리는 게 하나님이 기뻐하셔. 그러니까 좁은 길로 가는 그 사람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것을 전화로, 요거 딱 설교하면 하, 또 됐다. 또 내가 사람 하나 얻을 수 있다. 또 그 사람하고 나하고 아주 친밀하게 또 거물장이 하나돼, 거물장이 뭐인지, 거물장인지 알아요? 거물장이라 하는 거는 나무 이놈하고 이놈하고 두 놈 딱 대 놓고 이 꺽장 이런 것 탁 쳐 버리면 두 나무가 한테 됩니다. 알겠습니까? 그 사람하고 나하고 또 하나 됐다.

과거에도 여게서 떡 옳은 것 틀린 것 말하고 또 틀린 사람 사람에 대해 그건 틀렸으니까 그건 고쳐야 된다 말하면은 거게서 아, 그게 틀렸나 옳으냐 이걸 찾아 가지고서 틀렸으니까 나도 이거 고쳐야 되겠다, 내가 거게 속했다, 옳은 걸 찾아 따라가야 되겠다 이렇게 하지 안하고서 그라면 딱 제딴에는 제 수입이 있습니다. 제 수입이 있어. 뭐 수입 있어? 저 사람을 그렇게 말하니까 저 사람이 지금 백 목사하고 사이가 좀 벌어질 터이니까 지금 아마 섭섭할 터이니까 요때에 얻어야 된다 그래 가지고서 딱 그말 끝나고 나면은, 나는 안 가 봐도 알아요. 그런 걸 알아. 아마 아무것이하고 아무것이하고는 다방에 갈 거다 그라면 나중에 가 조사해 보면 다방에 갔어. 그래 가 가지고서 가 딱 모여 가지고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렇고 이러니까 그렇다 이라니 ‘그래’ 내나 진리에 속했던 자가 그래 그만 빽 돌아서 가지고서 저거끼리 하나됩니다. 그게 뭐이냐? 고라 당파요. 인간당을 만드는 것이오.

암만 그래 봐도 자, 그래 되면 그게 인간당이요 틀린 걸 고치라 하면 고치지 안하고 틀린 것을 책망하니까 책망한 그 사람을 그 기회를 통해 가지고서 저하고 한덩어리 될라 하니까 그게 인간당이요 하나님당이요? 그러면 인간당이 되어지면 하나님과 적이 되겠소 하나님과 한덩어리 되겠소? 적이 돼. 이게 복받고 망하는 것을 제가 스스로 취하는 것이라.

제딴에는 이라니까 이래 가지고서 한 사람 두 사람, 그래 뚤뚤 뭉쳐 가지고서 지금 나가고 또 됐어. 인제 여기 나간 사람들은 딴 데 안 가요. 나간 사람들은 저거끼리 뭉쳐요, 저거끼리. 나간 사람은. 왜? 딴 데 가야 뭉쳐지지를 안해요. 이제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뭉쳐지지 안해. 가면 물 위에 기름 뜨듯이 떠서 안 돼요. 가 보면 저거 주장은 이래 거석하지, 옳은 주장을 하지 옳은 걸 배워 놨지 거게 가니까 안 맞지 이래 놓으니까 오리하고 닭하고 모양으로 속속들이 맞지 안해요, 여게 배운 게 있으니까. 그래 말하기를 뭐, 이제까지 배우기를 거기 배웠으니까 가르치기를 뭘 가르치겠는가, 그거 안 가르치겠는가 이렇게 말한다 하는데, 그래, 그래 놓으니까 나중에 가서 뭘 배우느냐? 이 서부교회 백 목사 밑에서 나간 자들은 전부 그 나간 자들끼리 한덩어리 됩니다. 알겠습니까? 딴 데 안 태여. 그래도 그 속에 복음이 그 속에 들어 있다고 안 태인다, 그거. 이랬든지 저랬든지 어쨌든지 하나님이 당신이 하시는데, 인제 이렇게 떡 전화하니까 하, 그렇습니까? 그래 가지고 실컷 죄짓고, 죄지으면 백 목사가 만일 옳은 것 말하는데 정죄했으면 그거 죄라요 의라요? 백 목사가 옳은 것 말했는데 거게서 수근거리고 그렇게 지금 논단하고 논평하고 그렇게 정죄하면 그게 죄라요 의라요? 그게 죄라. 옳은 건, 서부교회 백 목사가 옳은 것 말한 것을 삐뚤어졌다고 그렇게 정죄하고 저거끼리 당을 지워 가지고서 대립하면은 그게 죄뭉텅이요 그게 마귀 뭉텅이기 때문에 그 마귀하고 합작되면 저 망해요 흥해요? 망해.

이런데 내가 전화하는 걸 알아. 그래 전화가 와 가지고서 막 욕을 해대더래요.

해대면서 ‘교수 권위를 떨어뜨리고’ 삐뚤어진 걸 말하는 걸, 삐뚤어진 것 말하는 것을 삐뚤어졌다고 그거는, 삐뚤어진 거 말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교수 권위 떨어뜨린 것이요 삐뚤은 교수 권위 떨어뜨린 거요? 어떤 것 떨어뜨린 것이요? 이거 또 무슨 말인지 모르네.

그 교수가 삐뚤어진 걸 말했는데 삐뚤어진 걸 삐뚤어지게 말했다고 막 이래 말해 가지고 책망하고 이래 되면은 그러면 삐뚤어진 것을 삐뚤어졌다고 말을 해 가지고서 광고를 하고 이와같이 하면은 그거는 삐뚤어진 것 없애는 운동이요 삐뚤어진 것을 기르는 운동이요? 그러면 그거는 마귀를 없애는 운동이요 마귀를 기르는 운동이요? 마귀를 멸하는 운동이야. 그게 살리는 운동이라. 그게 사랑이라. 그게 사랑이라.

사랑을 이렇츰 가르쳐도 사랑을 몰라.

제일 독이 많은 게 사랑이요 생명 많은 것이 사랑입니다. 네게 있는 것으로 다 구제하고, 또? 뭐라 했소? 네 몸을 주어 불사를지라도, 또?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했어. 사랑이 뭐이 사랑인데? 사랑이 뭐이요? 사랑은 인간에게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있어. 그러면 사랑이 뭐인데?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 가지고서 우리를 죄에서 구출하고 죄가 하나도 없이 깨끗하게 완전케 이래 만드는 그게 하나님의 사랑이라.

그러면 이거는 교수가 삐뚤어진 걸 말할 때에 그걸 말하는 것은 옳은 교수의 권위를 올리는 것이요 옳은 교수를 절단내는 것이요? 그게 옳은 교수의 권위를 올리는 것이요 삐뚤어진 교수를 꺾어 내리는 것이라. 그 사람의 잘못 가르친 것을 책망을 하고 이래 대중 앞에서 선전하고 광고하고 이라는 것은 옳은 교수 숭상이요 옳은 교수 절단내는 것이요? 그러면 삐뚤어진 교수를 절단내는 것이요 삐뚤어진 교수를 숭상하는 것이요? 이거 좀 들어, 똑똑히.

그라면 잘못된 걸 그렇게 말하는 것이 옳은 교수를 기르는 것인가 잘못된 걸 그래도 그 사람 인격에 관계되기 때문에 그만 그걸 실 묻어두는 것이 옳은 교수를 기르는 건가? 그거 잘못된 걸 묻어두고 말하는 그것은 옳은 교수를 죽이는 것이요 살리는 것이요? 양성원 학생들 좀 대답 좀 해. 죽이는 것이요 살리는 것이요? 잘못된 것을, 잘못 가르치고 잘못된 걸 드러내 가지고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은 옳은 교수를 죽이는 것이요 삐뚤어진 교수를 죽이는 것이요? 그러면 그걸 그 사람 말하면 그 사람 위신에 그렇기 때문에 말 못 하면, 말 못 하면 그 삐뚤어진 걸 말하지 못하고 그 삐뚤어진 걸 옳다고 주장한 주장을 그걸 내비두면 그 교수를 망치는 것이요 살리는 것이요? 그게 망치는 것이라. 그러면 그 사람을 마귀에게 내 주는 것이요 마귀에게서 구출하는 것이요? 이걸 알아야 돼. 영 통하지 안하니까, 그거 누가 전화를 한대요. 여게서 그러면 전화 하는 걸 내가 알아요. 그라면 인제 됐다. 아, 요거 또 전화하자. 전화 턱 하고 하면 자기네들끼리 재미가 있어. 지금 언제 이렇게 이렇게 이렇게 지금 말했습니다. 이라며 욕 한 마디 하고, 그러니까 그거 뭐 영감이 노망을 했는지 지금 자꾸 그렇게 어데 사람을 인신 공격을 어데 그렇게 하는 수가 어데 있어? 노망을 했으면 그런 소리 하지 못해요. 죽을 때까지 요 말은 더 강하게 했으면 인간에게는 미움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앞에는 사랑을 받아.

이러니까, 내가 이 젊은 사람보다 더 오래 살란지 몰라요. 나는 자꾸 옳은 걸 주장하고 삐뚤어진 것을 생명 내놓고 자꾸, 바울이 말하기를 담대히 너희들에게 옳은 증거를 하도록 기도해라 바울이 권면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하는 그것이 나는 장수법인 줄 알아요, 장수법. 이게 피난인 줄 알아요, 피난. 이러니까 여게서 죽는 데에는 뒤에 순교라 재료가 돼지지 다른 달리 개죽음은 하지 안해요.

그러면, 그럴 때에 인간 안면 위해서 삐뚤어진 것을 말하지 안하고 그만 그것을 덮어두는 그것이 신본주의입니까 삐뚤어진 걸 자기가 매장을 당해도 그것을 말해서 삐뚤어진 거는 삐뚤어졌다고 그걸 안 되면 다문 한 주먹으로 쥐어박아도 쥐어박고 이래 깨뜨리고 그걸 멸할라 하는 그것이 신본주의요 어떤 게 신본주의요? 어떤 게 신본주의라?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는 모양이라.

그러면 여러분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교수를 마귀 새끼를 만들라요 하나님의 종을 만들라요? 자, 양성원 학생들, 여기 양성원에 그 교수들을 하나님의 종을 만들라요? 마귀 종 만들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봐. 하나님 종 만들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봐. 왜 구별하지 안해요? 성도가 뭐이 성도인데? 구별하는 게 성도라.

이래서. 이래 가지고 그 전화가 오니까 또 그게 마귀들은 저거 수입이 있거든.

전화가 오니까 이렇게 전화가 와서 이렇다. 전화가 와서 이렇다고 이거 또 들이 대.

그거 뭐 그거 자꾸 말할수록이 좋지. 그러면 옳은 그른 걸 대 보면 알 것 아니라? 이렇고 이렇고 그거는 이러니까, 이러니까 그러면 자기는 어째 되겠소 이라니까 그만 전화를 탁 끊어 버리더래. 전화를 통화도 하지도 안하고 그만 안 될상바르니까 전화를 탁 끊어. 옳은 것은 이깁니다.

노아가, 노아가 이렇게 이렇게 투쟁해서 자꾸 감염되지 안하고 속화되지 안하고 양보되지 안하고 타협하지 안하고 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천하에 여덟 식구만 남았지, 여덟 식구만 남았지. 그걸 안 하고 타협했으면 노아가 여덟 식구가 남을 리가 없어, 많이 남아 있지.

노아가 거게서, 보면 성경에 그래 놨어. 물에서 구원 받은 사람이 겨우 여덟 사람이라 했어.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한 자들은 멸하지를 못해. 이런데 영원 전 그리스도 안해서 택한 것이 멸했다 그렇게 하지 안했고 물에서 구원 얻은 사람이 겨우 여덟 사람이라 했어. 그거는 건설구원이라, 건설구원. 물에서 구원 얻은 것은.

천국 가는 것은 영원 전 하나님의 택함에서 돼요. 영원 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구원인데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 이랬어. 창세 전, 이 우주와 영계를 창조하기 전에, 우리는 배우기를 우주 창조가 택한 자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할라고 창조하셨다 이렇게 배워 놨어. 이제까지 없는 신학이야.

정죄할라면 정죄해 보지. 정죄하면 결국은 정죄하는 그것이, 옳으냐? 옳은 걸 정죄하면 그거는 옳은 것을 정죄하면 어데 속해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데 대해서 뭐라고 말했어? 옳은 자를 정죄하고 삐뚤어진 살인 강도 바나바를 놓아 주라고 하지 안했느냐? 그거 성경에 몇 번이나 씹어 놨어요? 몇 번이나 말해 놨어? 좁은 길로 가십시오. 좁은 길에 어서 속하십시오. 어서 옮기십시오. 좁은 길이 뭐이 좁은 길이라? 둘이 아닌 거 하나라. 하나가 뭐인데? 참이라. 어데서든지 하나, 옳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바로 되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참은 하나뿐입니다.

이러니까, 하나 그것을 자기의 소원을 가지고서 어짜든지 누가 해석이 학자가 이리도 말하고 저리도 말하면 그걸 들을 때에, 그 책을 주석을 보고 ‘이 사람은 이래 말하고 저 사람은 저래 말하고 모든 사람이 이래 말했다’ 하는 걸 볼 때에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말했구나. 이렇게 말했으니까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되는 것이로구나.’ 하는 자 있고, 이렇게 말해 놨으니까 ‘그러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말했으면 그러면 이 저자는 뭘 말하는고? 어떤 게 맞다 하는고?’ 그러면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여나문 사람이 다 이래 말하고 저래 말하는데 그 말을 듣고서 마음에 안심이 되고 됐다 하고서 기쁜 자가 있겠고, ‘이거 어느 것인지 알아야지 뭐, 옳은 거는 하나뿐일 텐데 이 사람 이라니까 어느 게 옳노? 어느 걸 잡아야 되겠노?’ 이래 가지고 번민으로 하고서 ‘이 책은 죽은 책이다. 이거는 사는 생명길이 없다.’ 이거 보고서, 그걸 보고서 안타깝게 생각하고서 밉게 생각하고 사람에게 고통만 주고 만다, 밉게 생각하는 사람. ‘이거 됐다, 이만하면 됐다.’ 그런 저서를 보고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 있고 그 저서 보고 근심 걱정하는 자 있고, 이라니까, 근심 걱정하는 자가 그 자가 발라요 그 여럿이 이리 저리 말하니까 그 여러 모로 더 말해 가지고서 이것도 옳다 저것도 옳다 옳은 것이 여러 길이 되니까 안심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옳은 사람이요? 어떤 사람이 옳은 사람이요? 여러분들은 뭐이 옳아요? 자, 양성원 학생들 쳐 놓고 여러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데 하나만 된 옳은 것을 찾지 안하고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말한 이것도 정통이라 저것도 정통이라 정통이니까 이래 살아도 되고 저래 살아도 된다 하는 것과 꼭 요래 살아야 되지 저래 사는 것도 안 되고 저래 사는 그런 것도 안 되고 그래 사는 것도 안 되고 꼭 요래 살아야 된다 하는 그것을 옳다고, 그것이 바르다고, 그게 바른 생각이고 바른 것을 찾는다 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봐요. 양성원 학생들 쳐 놓고 그런 사람들. 어때요? 이거 또 필기하다 보니까 못 들은 모양인데.

이렇게 주장이 말이지, 열 주장이 있는데 열 주장 다 옳다 이라는 학자가 있고 거게서 열 주장 가운데에 이리 저리 말하는데 그거 다 틀리고 한 주장이 옳다 하는 그것도 있는데 한 주장이 옳다 하는 그것이 옳을런지 안 옳을런지 그거는 한 주장하는 그것도 틀릴 수가 있지마는서도 열 주장이 옳다 하는 그거는 다 아예 틀려 버렸고 한 주장 말하는 그것도 한 주장 그게 하나만 되는 그거, 하나만 되는 옳은 그게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만 되는 그걸 바로 잡았나 안 잡았나 모르기 때문에 그걸 찾을라고 애를 쓰는 그 사람이 생명길을 갈라고 좁은 길을 지금 찾고 있는 사람이오. 좁은 길을 찾고 있는 사람.

그러기 때문에, 일곱 교회 중에는 제일 큰 교회 제일 깨끗한 교회가 빌라델비아 교회인데 빌라델비아 교회는 거게 떡 나타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나도 거룩하고 진실한데 너거도 거룩하고 진실하다 이래.

거룩하고 진실하다 이래.

거룩은 뭐이야? 거룩은 뭐이 거룩입니까? 거룩은 지저분한 것 하고 거게서 옳은 거는 하나뿐인데 뭐 사이비한 것들이 꽉 찼으니까 구별하고 구별해 가지고서 자꾸 구별해서 하나만 되는 옳은 것을 찾는 그것이 거룩 행위입니다. 알겠습니까? 거룩을 안 가지는 자는 여기 양성원에 공부할 필요가 없어. 여기는 오면은 자꾸 거룩을 찾으니까 어찌 됐든간에 옳고 바른 걸 자꾸 그것만 찾아 갈라고 하는 사람, 그러면 여러분들은 여러 가지 말하면 거게 대해서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해야 돼요.

이거 저거 막 많이만 받아 들여서 많이만 배우기만 해야 돼요? 어째요? 여러분들 많이만 들으면 돼요 옳고 바른 것을 잡고 싶어요 많은 것을 듣고 싶고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요? 뭐이요? 옳은 거는 하나뿐인데 옳은 것 하나뿐인 요걸 찾을라고 애를 써도 찾기가 어려워서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 믿음은 뭐이 믿음이요? 믿음은 우리의 현실 행위에서 이래야 되나 저래야 되나 하나님의 뜻은 여럿이겠소 하나겠소? 믿음은 어떤 게 믿음입니까? 믿음은 어떤 게 믿음이요? 성경 말씀대로 이 성구대로 저 성구대로 하는 게 옳소 현실에서 하나님의 뜻은 하나인 그 뜻을 찾아 가지고서 거게 딱 명중해서 그대로 하는 것이 믿음입니까? 어떤 게 믿음이요? 양심 생활이 깨끗해요 믿음 생활이 깨끗해요? 이것도 몰라. 양심 생활이 깨끗해 믿음 생활이 깨끗해? 이 밑에 여기 세계에서 이거는 산에 십 미터도 못 올라간 것은 십 미터 올라가서 거게 하는 이십 미터 올라간 사람은 이십 미터 올라가서 보이는 걸 말하니까 전부 저거는 이단이라고 다 거짓부리라 이래.

여러분들이 바로 가져야 됩니다, 바로. 여게서 배우는 것을 이걸 여러분들이 어짜든지 옳은 것은 하나뿐이라 하는 그것을 여러분들이 명심하십시오.

자, 양심 생활이 깨끗하요 믿음 생활이 깨끗하요? 뭐 양심 생활은 자기 마음에 옳고 바른 걸 찾는 건데 뭐 양심 생활보다 믿음 생활이 뭘 깨끗해? 양심 생활은 뭐인데? 양심 생활은 뭐이야? 양심 생활은 자기가 성경 지식을 가지고서 요게 옳은가 저게 옳은가 해 가지고서 가려 가지고 요게 옳다 인간이 택한 그것이 양심 생활입니다.

믿음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 거게 딱 명중된 게 믿음입니다.

그러면 믿음 생활은 뭐이 찾아가요? 믿음 생활은 뭐이 찾아 가요? 양심 생활이 찾아가요. 양심 안 쓰는 자는 믿음 근방에 가지를 못합니다. 안 돼. 그러면 양심대로 했으면 그거 다 믿음 됐소 안 됐소? 양심대로 했으면 믿음 됐소 안 됐소? 양심대로 했으면 믿음 됐다고 생각하는 양성원 학생들 손 한번 들어 봐. 양심대로 한 그것이 믿음이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고, 믿음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양심대로 하는 그것은 믿음을 찾아가는 것이지 양심 생활이라고 그게 믿음이 됐다고는 할 수 없다, 믿음이 된 것도 있을 것이고 전연히 안 된 것도 있을 것이고 이러니까 양심 생활보다 믿음 생활은 더 고귀한 것이다 이렇게 믿는 학생들 손 한번 들어 봐.

요것만 믿어도 확정이 돼. 타협하지 말아요! 속화되지 말아요! 범벅하지 말아요! 까랑까랑 구별해요! 이러기 때문에 이거 못 하니까 이런 사람들은 애매하게 이래 가지고서 사람은 좋다 하지마는서도 하나님은 싫어합니다.

여게서 옳고 바른 하나만 되는 요걸 찾을라고 애를 써야 그래야 거게서 마귀도 나오고 사이비한 것도 나오고 육백육십육도, 육백육십육이 뭐인데? 육백육십육 그거 다 제거해 버려야 돼. 칠백칠십칠이 돼야 돼.

이러니까, 여게 와서 이것만 깨달으면 뭐, 이것만 깨달으면 양성원 할 것도 없고 신학 할 것도 없고 이것만 깨달았으면 젊은 사람이면 마구 하나님이 그 사람 붙들고 마구 진리가 쏟아져요. 지금 한 사십 오십만 된 사람이면 요 진리를 바로 깨달으면 마구 깨뜨려대요. 어데든지 가면 불을 던져요. 혼자라도 이겨. 혼자라도 세계를 이겨.

예수님은 혼자 시작했는데 세계를 이겼어. 우주를 이겼어. 다 이겼어.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고 가니까 외로운 줄 알지마는서도 나 혼자 안 있고 아버지와 나와 함께 있다 했어.

자, 인간 배경이 커요 하나님 배경이 커요? 신학자 배경이 커요 하나님 배경이 커요? 여러분들이 신학자에게, 천하 신학자에게 환영받고 거기 속할랍니까 하나님께 속할랍니까? 하나님께 속하지.

박사는, 똑똑히 알라면 박사는 박사 위원들이 있어. 모든 박사가 다 찬성을 해야 돼.

거게는 신신학자도 별 신학자가 다 있어. 이러니까 신신학자에게는 신신학자에게 잘 보여야 돼. 유명한 박사들은 신신학자 이단자 안 든 데가 없어. 인본주의 안 든 데가 없어. 그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돼. 인정받는 거 속으로 안 그러면 인정받도록 거짓말이라도 해서 논문에 써야 돼. 그 사람 하는 일을 찬성을 해야 돼.

거짓말이라도 해야 돼. 옳은 말만 하면 절대 박사 못 받아요. 알겠습니까? 야, 이래 놨으니 야단이지마는서도 확 뒤비쳐서 다 밑구멍을 확 뒤비쳐서 놨는데 어짤 거라? 정신 차려, 정신 차려.

여러분들은 어짜든지 뭐이든지 나오는 것, 내가 어제 성구 난해절이라 하는 거 그걸 하도 뭐 그래 쌓기 때문에 가져와 보라 해서 어제 누가 나에게 가져와. 산에 갔다 오니까 엊저녁에 보내. 내가 엊저녁에 가서 한 줄 딱 보니까 그게 다 인본이야, 인본. 깨닫지 못하니까 어데 성경에 대해서 다 하나님이 알게 하라 했는데 왜 난해절이 어데 있어, 있기를? 엉뚱한 소리. 전부 귀신 말들만 자꾸 해 놨다 말이오.

여러분들은 그게 생명이오. 나 옳은 것만 찾겠다, 바른 것만 찾겠다, 옳은 게 몇 개라요? 옳은 것만 찾겠다, 바른 것만 찾겠다. 그러면 옳은 것이 사람보다 귀해요 사람이 귀해요? 그러면 사람 얻기 위해서 옳은 것을 양보해야 돼요 옳은 것을 얻기 위해서 사람에게 배척을 당해도 옳은 걸 잡아야 돼요? 이러니까 이대로만 되면, 이렇게만 되면 전부 이거 내편 될 거라. 이거만 바로 되면 내편 돼요. 주먹으로 쥐박아도 안 놔요, 내편 돼요. 그래 하나님편이 되십시오.

여러분들이 하나님편이 돼야지 그까짓 거 유명한 박사 이 세계에 유명한 박사들 다 이렇게 해도 하나돼도 소용없어. 박사하고 하나돼도 소용없어.

박사가 뭘 아는데? 하나돼도 소용없어. 정객 가지고 하나되면 돼요? 소용있어? 그것도 소용없고, 세계에 노벨상 받은 사람과 하나되면 어째? 그것도 소용없고, ‘사람의 숫자를 많이 가져’ 많이 가져도 소용없고, 뭐하고 하나 되면 돼요? (하나님) 이게 하나 이게 좁은 길이라. 이게 좁은 길. 이거 도무지 성경을 몰라 놓으니까, 그래 그 ○○○장로님이 서울에 특사로 파송돼 가지고 갔다 오더니마는 하는 말이 그말이라. ‘그 사람들은 만나니까 전연히 말이 통하지 않습디다’ ‘왜 안 통해?' `성경을 들고 말해도 성경을 가지고 말해도 우리가 성경 깨달은 거와 영 다르니까 영 딴 세계니까 성경 말해도 소용없고 아무 통하지 않습디다.’ 안 통하지. 성경을 바로 깨달아 놓으면 죽어도 그 진리를 버리고 못 가.

진리보다 자기 명예가 낫고 진리보다 자기 왕노릇하는 게 낫고, 정말로 진리와 하나님이 하나라는 것을 알고 진리와 하나님은 전인류를 창조했기 때문에 인류보다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사람 얻기 위해서 진리 양보하지 안하고 사람편 되기 위해서 하나님 배반하지 안해요. 그게 제 일계명 지키는 사람이라.

이래 가지고 앞으로는 하나 이상으로 널펑하게 인화주의로 사람하고 하나되어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 해 가지고서 하나주의로, 하나주의로, 유일주의로, 단일주의로 이래 나가지 안하는 사람은 오늘 예수 믿어도 그거 뭐 다 건설구원은 멸망입니다.

멸망이고 그저 기본구원은, 기본구원은 교회 안 다녀도 택한 자면 다 구원 얻어요.

이것도 지금 이 신발명이라.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안해. 택한 자는 죽는 날까지 예수 안 믿어도 마지막에 죽을 때 십 분 예수 믿고 구원얻는다. 택한 자는 나중에 구원얻기 마련이다. 믿는 걸 오래 믿어야 구원 얻고 작게 믿어 구원 안 얻는 게 아니라 그거는 행위구원에 관한 것이고 택한 자는 구원 얻어.

그러면 아이가 만일 금방 낳아 가지고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지금 이거 구원 얻었습니까 안 얻었습니까?’ 뭐라고 말해? 뭐라고 말할라요? 구원 얻었소 안 얻었소? 이제 갓난 아이가 예수 믿지 못하고 죽었는데 구원 얻었소 안 얻었소? 멸망이요 구원이요? 그 성구를 들여대야 돼. ‘이 아이는 구원 얻었는지 안 얻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모르는데 구원 얻고 안 얻는 거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에서 결정됐기 때문에 이 아이가 택한 자면 구원 다 얻어 가지고 있습니다. 택하지 안했으면 구원은 못 얻습니다. 그런데 대략에는 부모네들이 믿으니까 믿은 자 속에 거게서 나왔으니까 택한 자가 안 됐겠나 싶습니다.’ 하는 것으로 다 끝나 버려.

이래서, 그 유아세례를 우리는 안 줘요. 유아세례. 세례 주는 거는 제가 신앙 고백을 해야 세례를 주는 것인데 부모가 믿으니까 이거는 아예 택한 자다, 세례 줘야 된다.

그 아이가 문답을 못 하니까 부모가 문답해 가지고 세례 준다 말이오. 그게 내나 뭐이냐? 죽은 자를 위해서 세례받는 것 한가지라. 죽은 자를 위해서 세례 받는다는 거, 죽은 자 위해 세례 받는다 그거는 거게 딱 막히거든. 위에가 틀리니까 거게 막혀. 막히니까 떡 그다음에 뭐라고 변명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해 세례 받는다 하는 건 저한테 전도 한 사람 그 사람은 죽었지마는서도 그때 회개 못 했으니까 그 뒤에 후회를 하면서 그래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다.’ 그러면 전도 받으니까 그 사람만 받았는가? 살아 있는 사람은 안 받았는가? 회개는 저를 위해서 세례받지 남 위해서 세례 받는 게 없어. 천주교 영세받는 그게 다 내나 유아세례 받는 거나 꼭 같은 종류요. 육백육십육, 마귀 역사요, 그거 다 인본주의야. 이걸 알아야지.

그라면 살아 있는 사람도 전도받았을 터인데 하필 죽은 사람, 노아 홍수 때 죽은, 노아 홍수 때 죽은 사람을 누가 세례를 받아, 세례를? 노아 홍수 때 죽은 사람을 그라면 그때 전도를 받았다 말이야? 얼토당토 안 한 소리. 그 성경을 모르면 배워야 되지 배우지 안하고서 그래 하면 헛일이라.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여러분들 바로 믿어야 돼요.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 되지 교리가 삐뚤어지면 행위가 삐뚤어지고 사상이 삐뚤어지고 전부 구원은 다 삐뚤어져. 건설구원은, 기본구원은 꼭 같아. 기본구원은 뭐 믿는 행위 하나도 안 해도 그만 택한 데 거게서 결정이 돼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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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251 종말에 대한 지혜/ 베드로후서 3장 6절-13절/ 820103주후 선지자 2015.12.18
250 종말에 대한 준비/ 요한계시록 17장 14절/ 840809목전집회 선지자 2015.12.18
249 종교음행/ 호세아 2장4절-7절/ 840520주후 선지자 2015.12.18
248 종교와 철학/ 에베소서 5장 15절-21절/ 791023화새 선지자 2015.12.18
247 종교와 정치/ 빌립보서 3장 9절-12절 / 800325화새 선지자 2015.12.18
246 종교와 정치/ 로마서 3장 10절-18절/ 860423수야 선지자 2015.12.18
245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30529주후 선지자 2015.12.18
24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자/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0313주전 선지자 2015.12.18
243 좁은 문과 넓은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61017금야 선지자 2015.12.18
242 좁은 문과 넓은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1018화새 선지자 2015.12.18
» 좁은 문 좁은 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1019수새 선지자 2015.12.18
240 좁은 문 좁은 길/ 마태복음 4장 11절/ 860921주새 선지자 2015.12.18
239 좁은 문 좁은 길/ 마태복음 7장 13절-27절/ 861013월새 선지자 2015.12.18
238 좁아짐으로 넓어지는 것.절대저항주의/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881105토새 선지자 2015.12.18
237 존재의 시종과 우리의 할일/ 로마서 11장 36절/ 890528주전 선지자 2015.12.18
236 존재의 목적/ 이사야 31장 1절-9절/ 850215금야 선지자 2015.12.18
235 존재관-역항신앙/ 마가복음 10장 52절/ 870308주후 선지자 2015.12.18
234 존재관/ 로마서 11장 36절/ 890529월새 선지자 2015.12.18
233 조심할 것/ 디도서 2장 1절-15절/ 811125수야 선지자 2015.12.18
232 조심할 것/ 디도서 2장 1절-15절 / 811127금새 선지자 2015.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