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복있는 사람과 자유하는 순서

 

1988. 09. 07. 수야.

 

본문: 요 8:31-36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천하라 하면 이 물질계 우주를 가리켜서 천하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 천하에서  제일 귀한 것은 예수님 믿는 것입니다. 지구에서만 아니고 물질계로 되어 있는 이  우주 중에 예수님 믿는 것이 제일 귀하고 권위 있고 복있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떻게 귀한 것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 구비한 행복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성경이 멸망되어 있는  사람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아직은 사람들이 누구나 뚜렷이 알도록 그렇게  지식할 수 없는 말이지마는 잠시 후 예수님이 재림하시든지 또 사람이 다 죽어  하나님 앞의 심판 앞에 설 때에 그때는 다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세상에서 온갖  면에 제일 불쌍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자기 구주로 믿는다고 하면 안  믿는 모든 사람 위에 무한히 뛰어난 복된 사람이요 위대한 사람으로 성경은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 예수님 믿는 사람이 되었으니 참 얼마나 가치 있고  존귀하고 행복스러운 사람이 되었는지 자신들도 모르고 살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예수 없는 천하의 모든 사람보다 자기는 세상적으로 어떤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그들보다 지극히 복된 사람이요 권세있는 사람이요 영광스러운 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고 인간의 말이 아닙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믿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의 그 모든 전부보다 예수 믿는 하나가 비교 못 할  무한히 존귀한 행복과 권위를 가진 자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 믿는 사람됐으니 아주 행복된 사람입니다. 이 구원을  여러분들이 좀 생각해 보십시오. 모두 다 이 세상에 존귀한 것과 비교를 한번 해  보십시오. 암만 못 믿어도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무리 못 믿어도 예수님의  대속의 사죄와 칭의와 화친을 받았고 그 영이 영생하는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있습니까?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으로서 있는가 찾아  보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보다 더 귀한 자녀된 자가 어디 있습니까? 이거 뭐  예수님 믿는 이것만 가지고도 굉장한 행복이라 이 행복을 제가 새기고 새기고  느끼면 사도 바울만 그런 것이 아니고 과거에 귀하게 여기던 땅의 모든 것을 다  똥오줌같이 여기고 거게다가 귀중한 시간이나 정력을 투자 할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구원을 생각해 보지 않고 평가해 보지 않고 다른 것과 비교해 보지도  아니하고 또 비판도 해 보지 안하고 그저 생각지 안하고 예수 믿어 구원 얻었다  이래 하기 때문에 그 속에 무한함이 있지마는서도 마귀로 말미암아 가리워져서  우리가 보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믿는 사람이 되었으니 천하에 예수 안 믿는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 생명과 행복과 권세를 가진 자기라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 지극히 큰 이  행복을 자기가 좀 맛도 보고 누리기도 해 보고 이 행복에 좀 세력도 좀 부려  보고 그렇게 해야 됩니다.

 우리는 이 구원을 세상에 있는 동안에 깨달으면 온 세상에 아무것도 부럽지  안한 행복을 가졌건마는서도 이 행복을 생각해 보지 안하고 비판해 보지 안하고  평가해 보지 안하기 때문에 공연히 허풍선이 같은, 이 모두 다 썩었다 죽었다  했는데, 성경에는 예수 없는 사람이나 그 모든 생애는 다 죽은 것이라 썩은  것이라 그렇게 성경이 말하지 안 했습니까? 썩을 것, 썩은 것, 약한 것, 욕된 것,  혈육의 것 그런 것이라고 다 평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내가 예수 믿는 사람 된 이것이 얼마나 행복이라는 이 행복을  성경을 보고서 좀 따져봐야 되고 좀 비판도 해 봐야 되고 비교도 해 봐야 되고,  그거 비교해 보면은 예수 믿는 이 구원보다 더 큰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영생이  어데 있습니까? 어떤 사오 년 정권 잡은 자의 아들이라도 영광되다 세력되다  하는데 동서양의 어떤 그 정권자의 아들이 되면 하나님 아들만 하겠습니까?  이거는 비교도 못 합니다. 참 연구하면 미칠 만치 좋습니다. 미칠 만치  좋지마는서도 사람들이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고로, 내가 예수님 믿는 이 사람 된 것이 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뭐 원해서 된 것 아니고 어짠 이 은혜요 하나님의 사랑인가 참 생각하면 밤낮  찬송하고 기뻐해도 모자랍니다. 그래서 온 천상 천하에서는 예수 믿게 되는 것이  제일 가치있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어제 예수님 믿는 사람 중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 중에서는 어떤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고 가치있는 사람인가?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믿은'  하니까 이거는 믿는 사람들이오. '믿은 유대인' 믿고 있는,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네가 믿는 여게서 만족하고 주저 앉아 있지 말고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믿는 사람 중에 제일 귀한 것은 뭐이 제일 귀한가? 믿는 사람  중에 제일 귀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

 예수님의 제자된다 말은 예수님은 참 사람이요 참 하나님이신데 사람하고  하나님하고 한 격위를 이룬 예수님이기 때문에 창조주와 피조물이 꼭 하나같이  된 것이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된다 말은 우리가 창조주나  자존자나 완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마는서도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께서 원형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모형, 예수님을 배워서 예수님과 꼭  같은 신격과 같은 그 인격을 가지고 모든 지능적으로나 자위적으로나  권위적으로나 예수님과 꼭 같은 생명과 권위와 영광을 가진 것을 가리켜서  제자라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고 닮아서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달라 하느냐 하심같이 예수님은 볼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를 그대로 형상으로 나타내서 우리에게 보이신 분입니다. 그와같이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은 예수님과 꼭 같은 자가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존귀합니다.

 예수님 믿는 것이 천하에 제일 복된 일이요, 천하에 제일 복된 사람 중에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이 제일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제일 복된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오.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는 뭐 말할 수 없는 그런 존영한 자체나 지위나 소유를  가진 자인데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또 어떤 사람이 제일 귀한 사람인가? 자꾸  이렇게 가치에 가치로 자꾸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천하에 인간 중에는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복있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의 제자된 사람이  제일 복있는 사람.

 또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에는 제일 복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 복있는  사람인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자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제일 복있는  사람은 자유하는 사람입니다.

 이라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대해서 질문하기를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한번도 종된 그런 일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를 자유하겠다 이렇게 말을  하느냐? 이러니까 예수님의 교훈에 대해서는 순 육덩이기 때문에 육적으로만  듣고 해석하니까 전혀 이해를 못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희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안다. 그러나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니라 하는 것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니까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어떤 자가 제일 복있는 자냐?  자유하는 자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보면은 하나님이 너희를 부르신 것은 너희들로 하여금  자유하도록 하기 위해서 불렀다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십자가의  대형, 대행, 대화친으로 대속을 설정하시고 또 조물주 주재자가 이 피조물인  인간의 형상을 입고 다시 사람되시는 이 말할 수 없는 영원한 희생의 부활을  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자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 이렇게 사활의 대속의  공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자유하도록 하기  위해서 불러서 구원하시기 때문에 너희들이 다시는 죄의 종이 되지 말아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39절 이하에 보면은 오른뺨을 치거든 왼 뺨을 돌려  향해라, 억지로 송사해서 속옷을 가지고자 하거든 겉옷까지 주라, 억지로 오리를  가자 하거든 십리를 동행해 줘라, 구하는 자에게는 주라, 꾸고자 하는 자에게는  물리치지 말라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말씀은 기독교는 무엇이든지  대항하지 않는 무저항 사상이 기독교 사상이라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대항하지 안하고 뭐이든지 피해서 이렇게 대항하지 않는 것이 예수님의  교훈이라 이렇게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절대 대항자요 절대  전투자입니다.

 뭣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당신이 유혹받고 죽기를 두려워함으로  어리석어서 일생 동안 멸망에게 종노릇하고 있는 이 사람을 영원 자유자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그분의 목적이기 때문에 그분은 우리를 구원해서  자유자 만드는 것이 목적이요 그분의 적은 종을 삼는 그 세력을 꺾어서 거게서  해방시켜서 자유케 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오른뺨 때릴 때 왼뺨 돌려 대라 그말은 그 삐뚤어진 그 죄악과 그 악의 모든  행위에게 네가 종되지 말아라, 거게 피동되지 말아라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네 소유가 절단나고 네 몸이 절단나고 생명이 절단나도 땅에 있는 것이 아까와서  불의한 것들에게 종되어서 죄의 종이 되지 말아라 하는 죄의 종이 되지 안하고  자유하는 것, 영원 무궁토록 자유하는 것, 자유는 완전이라야 자유하지 완전자  아니면 자유를 못 하는 것입니다. 진리만 자유하고 성령만 자유하고 예수님의  대속은 모든 종되는 데에서 예수님이 도전하셔 가지고서 악령은 예수님을 종으로  삼을라고 이제 다시 둘째 아담으로 더불어 전투를 시작했고 둘째 아담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서 종되지 많고 자유하는 것, 진리와 하나, 영감과 하나, 하나님과  하나 하는 의로 자유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역사하고 그들은 종삼기 위해서  했는데 예수님은 끝까지 불의에 종되지 안하고 진리로 자유하고 영감으로  자유하고 완전으로 자유하고 사랑으로 자유하고, 자유해서 승리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 진리를 세상 어떤 것에게 꺾어져서 진리를 빼앗긴 그런  일을 하지 안했습니다. 어떤 세력에게라도 예수님은 진리로 자유했습니다.

종되지를 안했습니다. 진리로 자유하신 것이 예수님의 투쟁이었고, 영감을  어데서든지 털끝만치라도 영감이 굽혀지지 안하고 영감 자유하는 것이 예수님의  투쟁이었고. 완전 사랑으로 자유한 것이 예수님의 투쟁이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천하 오만 것이 다 달라들어도 예수님의 그 진리에 속한  인격이나 행위나 사상이나 언행심사에 예수님의 그 진리 생활을 꺾지를 못했고  영감 생활을 꺾지 못했고 사랑의 생애를 꺾지 못했고 모든 완전의 생애를 꺾지를  못해서 사탄은 패전했고 예수님은 승리를 했던 것입니다.

 이래서, 천하에 제일 귀한 것이 믿는 것이요, 믿는 중에 제일 귀한 것이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이요, 예수님과 같은 자 되는 것이요, 예수님과 같은 자 될지라도  자유하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죽음에 꺾여서 죄의 종이 되든지 어떤 유혹을  받아서 죄의 종이 되든지, 이 자유는 그는 완전인데 이 자유가 꺾어지지 안하고  끝끝내 자유하지 못한다고 하면은 예수님의 형상을 입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돼도 아무 소용없어. 예수님이 그 자체가 완전하셨습니다. 우리  대속 하기 전에 털끝만치도 죄가 있거나 그렇지 안하고 모든 면이 완전했습니다.

완전했으나 그분이 사탄으로 더불어 대결할 때에 끝까지 자유하고 자유를 뺏겨서  종되지 안했기 때문에 우리를 대속했지 종됐으면 헛일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미 예수 믿는 사람되었으니 여기에서 주저앉아 있을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되는 일을 힘써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힘을 써서  제자의 위치에 올라가야 되겠고, 제자의 위치에서 올라갔다고 다른 사람이 성자라  성녀라 뭐 신앙가라 개혁가라 그런 소리는 깜깜한 지금 저 아래층에 있는  것입니다. 무슨 부흥사라 대목 회자라 신학자라 그런 것은 벌써 저 밑에 상바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데다가 욕망을 두지 말고 이미 믿는 사람되었고 믿는  사람으로서 예수님의 형상을 닮는, 예수님의 속성을 닮는, 예수님의 신성과 같은  그 인격성, 예수님의 도덕과 같은 그 도덕, 예수님의 그 모든 사랑과 희생의  봉사와 같은 그 언행심사로 예수님 닮은 예수님의 제자가 됐다 할지라도 우리는  거게서 만족하고 오만한 자리에 앉아 있으면 안 됩니다.

 왜? 아직까지 내가 달려갈 길은 다 달리지 안했고 남은 길이 있기 때문에. 남은  것은 뭐이냐? 주님이 부르시는 마지막 세상을 끝내는 그 사건까지 우리는 자유를  뺏기지 안하고 자유하는 사람으로 가야 아무데도 제재받지 않는 자유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좀 전에 우리 교회에서 집사님 한 분 세상을 떴는데 그분은 몇 가지에 자유하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자기가 이 수원지 산에 아침마다 기도 가는 그 일을 삼 년을  계속했고 또 그 뒤 양산동 그 기도산에 가 가지고는 그 산이 깊고 높습니다. 높은  한 만당 두 만당 세 만당 올라가 가지고서 네 만당째에 바로 상봉 밑에  봉우리인데 거게다가 천막쳐 놓고 하룻밤도 빼지 안하고 예배보고 여게서 버스  타면 팔송가서 지하철 내려 가지고 거게서는 공동묘지를 통과해서 그 동리를  통과해서 그 산에까지 갈라 하면은 내가 똑똑히는 몰라도 한 아마 한 오륙 키로  되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번도 빠짐없이  계속해서 그저 가 가지고서 가면 성경 녹음 틀어 놓고 성경을 들으면서, 혹은  설교 녹음 틀어 놓고 설교를 들으면서 엎드려서 자기와 그 말씀과 대조해서  차이점을 찾아서 고쳐서 꼭 같은 자 될려고 하는 그것을 노력하는 일을 나는  그때는 몰랐는데 다니는 것만 보고 너무 심하다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이번에  세상을 뜰 때에 그 흔적을 봤습니다.

 그분은 암병으로 떠났는데 그 암병이라면은 병 중에 제일 아픈 것이 암병입니다.

처음에는 원청 식사를 아무것도 못하니까 링겔을 놓다가 링겔을 못 놔. 나중에  주사 바늘이 안 들어가서 못 놔. 또 피가 돌지 안하니까 못 놔. 그럴 때에 굉장한  진통이 있었습니다. 진통제를 또 어떻게 할라 해도 그만 안 하기로 하고서. 그  한번도 그렇게 아파도 찡그리는 꼴 못 봤고 기쁨이 없는 꼴 못 봤고. 아마 그거  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오. 그 속에 감사와 기쁨과 만족이 어떻게 충만한지  역부러 웃기야 뭐 기쁨이라고 입술로 웃기야 쉽지요. 그분은 입술로 웃지 안 했어  그 속에 기쁨이 마구 못 견뎌서 이 피부까지 나타나 가지고서 하는 것이 본  사람들은 다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그래서 내가 거게서 '그분이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노력한 것이 자기로서  참 선한 싸움을 싸웠구나' 그분은 아픈 거 하고 싸웠습니다. 아픈 거 하고 싸워서  아픔으로 인해서 아픔에게 피동돼 가지고서 언행심사 한 일이 제가 보기에  없습니다. 또 그렇게 할라 하면 피곤도 있을 거고 게을도 났을 터인데 게을로  더불어 싸워서 그 게을에게 종된 일이 없었고, 피곤에 종된 일이 없었고, 배고픔에  종된 일이 없었고. 그 여러 가지 자기로 더불어 싸운 것, 대외에서는 이해 못  하니까 별별 사람들 다 있지마는서도 그는 그 하나하나에 좀 이상하게는  봤지마는서도 내가 이 지금 와서 생각하니까 그분은 '내가 어데서든 지  자유하겠다. 주님과 나와 동행하는 이 동행을 아무데도 뺏기지 않겠다.'  그래 그분이 말하기를, 옆에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기뻐하는 게 부럽습니까?  이거는 내 기쁨이요 곧 주님의 기쁨이요 여러분들의 기쁨이니까 다 이렇게 기쁠  수 있습니다. 부러우면 됐습니다. 기쁨을 가지도록 노력을 하십시오. 노력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부탁하기를 어떤 사람에게는 '감사를 뺏기지 마십시오.

기쁨을 뺏기지 마십시오. 평강을 뺏기지 마십시오. 만족을 뺏기지 마십시오.' 온갖  애로와 굴곡이 있지마는서도 그는 순간도 뺏기지 안했습니다. 뺏기지 안하고  그대로 가지고 참 자유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른뺨 치거든 왼뺨 돌려 향하라 하는 그 말씀만 아니고  예수님의 온갖 생애를 더듬어서 살펴보면 그분의 목적과 그분이 지금 주시하고  있는 중추점이 뭐였는가? 중추점이 뭐였는가? 자유입니다. 아버지 한 분에게만  순종하고 아버지 한 분에게 순종하는 것이 자기 소원이요 그게 자유요 자기  의무와 책임인데 아버지 한 분에게만 순종하는 그 순종을 세상이 어떻게 해서  온다 할지라도,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이 진리 생활이요 영감 생활이요 아버지의  뜻에 순종 생활인데 그대로 하는 그 자유를 어떤 것에게도 뺏기지 않기 위해서  그 자유를 뺏기지 안할라고, 그 뒤에 차차 차차 성경을 연구해 보면 그분이  아버지로 더불어 하나돼 가지고서 하는 그 자유, 그 생활 그것을 뺏기지 안할라고  그면으로 지금 전력을 기울였다 하는 것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또, 그뿐만이 아니곡 모든 선지 사도들도 보면 선지자들 중에는 실수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마는서도 사도들 중에는 실수한 일이 별로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 하고 먹다가 유대인들이 오니까 그만 이방인하고 안 먹은 척 할라고서  일어났다가서 사도 바울에게 대책망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실족이지 그렇게  실족한 일을 못 봤습니다.

 그분들이 그 생활하는 것을 보면 어떨 때는 이해가 못 돼서 '이 사람들이  겁쟁이가 천치가 바보가? 그럴 때는 좀 담대하고 큰소리도 한번 하고 호통도  한번 쳤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뒤에 깊이 살펴보면 그분들이 자유를 뺏기지 않기  위해서, 어떤 피조물에게도 피동되지 안하고 꼭 주님게만 피동되고, 주님에게  피동되는 그 복종을 세상 어떤 환경 주위에 몰아쳐 와도 그것들에게 피동돼서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그 생애를 놓지 안할라고 했다 하는 그것을 깨달을 때에  그들의 모든 생애가 다 이해가 됩니다.

 그분들이 뭐 생명을 다 아끼지 안하고 한 분들인데 어떨 때에는 겁쟁이같이  그렇습니다. 제가 신사참배 때에 입감되었던 종들 가운데에 어떤 종들 말 들어  보니까 그 말한 것이 벌벌 떨면서, 그들 앞에서 벌벌 떨면서 어짜든지 겸손하게  이렇게 한 것을 나는 처음에 생각하기를 '아따, 이미 생명 내놓고 들어갔는데 뭐  그렇게 떨 게 뭐인가? 담대히 말하지.' 이랬는데 참 철이 없는 소리입니다.

 그분들은 어쨌든지 자기들이 그들의 범죄 행위에 털끝만치라도 자기네들이  원인이 되지 안할라 하는 거, 자기네들의 그 모든 범행자들의 범행에  조그만치라도 원인이 되어서 자기들에게 피동됨으로 말미암아 죄의 결과가  맺어지는 그런 일을 하지 안할라고 하는 거기에 싸웠고, 그러니까 그것이 곧  자기들은 성령에 따라서 피동되는 그 성령의 자유, 그 자유, 또 그는 '뭐 저거가  죄 짓거나 말거나 저거 죄 짓는 게 내게 무슨 상관 있으냐?' 그들의 그 범죄함에  털끝만치라도 거리껴서 범죄 행위에 조그만치라도 조장이 될까, 다문 얼마라도  범죄 행위를 좀 삭감하지 못할까 하는 그 면에 주력을 한 사랑의 자유를  빼앗기지 안할라 하는 그런 높은 차원에서 살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그들은 참  신앙의 용사들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믿는 것이 중요하고 예수님의 제자되는 게 중요하고 예수님의  제자된 중에서 중요한 것은 최후까지 우리가 죄의 종이 되지 안해야 됩니다. 죄의  종이 되지 안해야 됩니다. 죄의 종이 되지 안해야 된다 말은 죄에게 피동되지  안해야 됩니다. 죄의 종이 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않는 것은 죄에  피동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거 잘 압시다.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안한 것은  피조물에게 피동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피동되지 안하는 것은 피조물에게  피동된 것이오. 이러기 때문에 우리가 죄의 종이 되지 않는 이 자유를 위해서  우리가 부름을 입었기 때문에 어떤 피조물에게 각각 피동되지 안하고 하나님 한  분에게만 피동되는 요 생활이 최고의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에 요것을 항상  기억하고,  이러니까, 죄의 종이 되지 않는 요 자유할라 하니까 뺨을 때려도 거게서 내가 뺨  때린다고 내가 자유 뺏기고 물질 때문에 자유 뺏기고 생명 때문에 자유 뺏기고  요 진리의 자유, 영감의 자유,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자유,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요 자유를 아무것으로도 뺏기지 아니하고 요것이 우리의 최고의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천태만상으로 변해지고 상상도 못할 만치 첩첩이, 간접 간접 간간접으로  이것은 죄라고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인데 그것이 거게서, 거게서 연장되고  연장되고 연장돼 가지고서 마지막에 결말에 가 가지고는 죄가 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당장에 누가 죄를 짓겠습니까? 하나님의 종들이 죄로 알고서  죄짓는 일 하지 안하고 고범죄는 짓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들로서는 고범죄를  짓지 않는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죄인 줄 알고 누가 죄를 짓습니까? 그러나  죄인 줄도 여기지도 못하고 그것이, 의라고는 하지 못해도 그거 평범한 일인데  그것으로 그것으로 차차 차차 성장돼 나가 가지고서 마지막에 결말은 죄가 되는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최고의 승리와 목적과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은 주님  그분에게 팔린 종이 되었으니 그분 한 분에게 종되고 어떤 피조물에게도 종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충절이요 우리의 신앙의 그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소망하기를 어데서든지 나는 자유하겠다. 다른 사람이 하루 종일  나를 범죄케 할라고 촉분을 질러서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나는 거게 피동되어서  죄짓지 않겠다. 다른 사람이 내 소유를 다 뺏아가고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로  인해서 거게 피동되어서 내가 하나님 법도에 어겨지는 죄짓지 않겠다. 그러면 온  세상이 달라들어서 어떻게 한다 할지라도 그 죄에게 종이 되지 않는 것, 죄라는  것은 삐뚤어진 것을 죄라 하는데 이 삐뚤어진 것에 종이 되지 안하는 자라면  많이 좋도 삐뚤어진 데 거게 팔려가지 안하고 다 뺏겨도 팔려가지 안하고  죽음에서 살려 줘도 거게 살리지 안하고 살아 있는 걸 죽인다 해도 팔리지  안하고 온 피조물 어떤 것에라도 이 자유를 뺏기지 안하는 자라면 하나님은  그에게 우주와 영계를 능히 맡길 수 있습니다. 전담시킬 수가 있습니다.

 그게 잘하다가 좋은 것 많이 주면 변동되고 있는 것 다 뺏기면 변동되고 자기  몸뚱이 고문 고형 있으면 변동되고 생명이 끊어지게 되면 변동되고 그러면  그거야 그거는 마귀 다 할 수 있는, 마귀들이 세상이 저거 것이요 임금이니까 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사람이라면 그것을 뭘 믿고 맡기겠습니까? 나중에 뭘  어짤지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상속을 받을 사람들은  영원한 자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갈라디아 5장 1절에 너희들에 자유를  위해서 부름을 입었으니 다시는 너희들이 자유를 뺏기지 말라, 자유를 뺏겨  종되지 말라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러면 이것이 최고의 승리인데 이 자유 생활, 죽음 앞에서도 자유  생활, 세상 영광을 다 줘도 자유 생활, 온 천하 영광을 다 주면서 나한테 머리만  한번 꼬빡거리면 다 주겠다 할 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홀로 그에게만  경배하라 했다.' 마귀란 놈이 예수님을 좋은 것 주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고  꾀우기도 하고 위협도 하고 협박도 하고 또 고문과 고형도 하고 했으나  예수님께서 그 자유를 뺏기지 안하고 종되지 안했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이 됐지  종됐으면 헛일이라.

 그런고로, 우리의 최고의 목표가 이 자유인데 그러면 자유를 할라고 하면은  인간의 각오나 결심 가지고 될 것인가? 아니오. 제가 마산에 그때 집회 가니까  모두 다 신사참배 때에 고생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분들이 얘기를 하는데  말하기를 야, 이놈들아. 우리를 지져 먹든지 볶아 먹든지 구워 먹든지 마음대로  해라, 절대 신사참배 안 하겠다고 그렇게 말하더니마는 내가 그때 말할 때에  '신사참배는 안 했지마는서도 다른 면으로 벌써 다 감겨 넘어가서 패전했습니다.'  그들의 미움에게 피동이 됐고, 미움에게 피동되고 그 원수에게 피동됐으니까 이  피동이나 저 피동이나 다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데서든지 자유라는 것을 기억하고 진리, 영감, 예수님의 대속의  자유를 뭐 꾀워도 달래도 억울해도 애매해도 고문과 고형이 와도 독약을 먹여도  독침을 맞아도 이 자유를 뺏기지 안하는 그자의 자유로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유를. 최고의 우리의 승리요 목표인데 이 자유를 인간의 수양으로  되는 것 아닙니다. 인간의 의지나 각오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큰소리 치는 것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돈 가지고 되는 것 아닙니다. 이 되는 유일한 순서가  있습니다. 이 법칙대로 돼야 이 자유에 도달하지 법칙대로 안 되면 자유에  도달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자유하지 못합니다.

 왜정말년 때에 조선 교회가 얼마나 많았지마는서도 신사참배 오는 그것이야 뭐  큰 것도 아닌데 그 신사참배 때문에 전부 다 자유 다 뺏겨 버리고 신앙 자유,  진리 자유도 다 뺏기고 양심 자유도 다 뺏겨버리고 영감 자유도 다 뺏겨 버리고  예수님의 사죄, 칭의, 화친의 자유도 다 뺏겨 버리고 전부 그 죄악의 종이 되지  안했습니까?  이러니까, 오늘도 지금 그때와 같은데 자기가 예수님 믿는 사람된 것으로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데까지 나아가야 되겠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자유하는 데 나아가서 이제 하늘의 것과 땅의  것이 어떤 것이 와도 하나님 한 분에게만 피동되지 딴 데는 피동되지 않는 요  사람으로 자기를 견고히 세울 수 있는 이것이 우리는 가능합니다. 가능하니까  요것을 소원을 가지고 우리가 기도하고 노력해서 해야 되지 그냥 이것도 알지도  못하고 뭐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자기는 사람이 수천 수만 수백만 되면 됐다,  그거 아무 소용없어. 아무 소용없어. 구원은 하나님과 자기와의 단 둘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자유하는 그 순서를 여게 말씀을 했습니다. 믿는 사람되는  것이 제일 귀한 것이요 제자되는 것이 귀한 것이요 그 다음에는 자유하는 자  되는 것이 귀한 것인데 여게 되는 그 순서는 단계적으로 올라가야 되지 태산을  올라가는 사람이 앉은뱅이라도 몇천 미터도 올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거는 살살  기어서라도 올라가면 되지마는서도 한목 뛰어 올라갈라 해서는 안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앙 생활은 꾸준한 쉬지 않는 노력으로서만 성공돼 나가는 것이지  어떤 능력 있는 자 되는 것 아니오. 그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힘센 자가 빼앗는  게 아니라 힘쓰는 자가 뺏는다 이랬어. 힘쓰는 자가. 힘센 자가 아니고 힘쓰는 자.

 그러기 때문에, 이미 우리 예수 믿는 사람 됐으니까 우리가 지금 밟아 갈 길은  뭐이냐? 예수님의 제자되는 것이 우리 밟아 갈 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어찌  되는가? '내 말에 거하면 너희가 참 내 제자가 되고' 이랬습니다. 내 말에  거한다는 거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이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자기가 천하 신학을 다 알고 학문을 통달하고 어떤  명예스럽고 어떤 뭐 종교 개혁을 했다 해도 아무 소용없어.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제자가 됩니다. 내 말에 거한다 말은 내 말에 산다  말이오.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야 됩니다. 신구약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되지 사는  것 그 외에는 그 꾀나 수단이나 그런 것 가지고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저  말씀대로 사는 것이오. 마음도 말씀대로, 생각도 말씀대로, 말도 말씀대로 행동도  말씀대로, 수족도 말씀대로, 모든 눈초리나 모든 전부를 말씀대로 사는 이것으로만  예수님의 제자되는 유일한 법칙입니다. 다른 법칙 없습니다. 암만 수단 부려도  소용없어. 연보 암만 해도 소용없어. 말씀대로 사는 요것만 예수님의 제자되지  다른 방편이 없어.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다  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돼 가지고는 진리를 알아야 됩니다. '네가 나를  안즉 내가 너를 높이리라' 시편 91편 14절에 있는 말씀과 같이 진리를 아는 것.

아는 게 뭐입니까? 진리의 그 권위와 진리의 주권과 진리의 과거 이력과 진리의  미래 건설의 그분의 권위와 지리의 그 불변성 절대성 이 진리의 모든 면을  자기가 알아 가지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진리로  대우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진리로 대우하는 이것이 귀한 것입니다. 진리를  진리로 대우하면 자유하게 됩니다.

 진리를 진리로 대우하는 것은 진리는 어떻다는 것을 자기가 깨닫고 진리를  진리로 대우하면 진리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 때에 성령은 명령했고 실제  시공은 진리가 했습니다. 진리는 인격자가 아닙니다. 진리는 하나의 이치요, 이  진리가 우주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성경은 하나님의 뜻인 진리인데  이 성경 진리는 그 중에 한 성구와 이 우주와 우주 가운데 있는 전부와 그  권위나 비중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 성구와 이 우주와의 비중을 달면 어느  것이 무겁습니까? 어늣 것이 무겁소? 우주가 무겁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보십시오. 진리가 무겁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들어 보십시오, 진리가  무겁습니다. 믿습니까? 이렇게 대우하면 자유합니다. 이렇게 대우하면 진리가  자유케 해 주십니다. 어떤 데서라도 죄악을 이겨서 자유하게 해 주십니다.

 이 진리를 이렇게, 하도 물어 쌓으니까 손은 들었지마는서도 이렇게 믿어집니까?  이렇게 대우가 돼집니까? 이 진리를 이렇게 대우가 돼집니까? 아니오. 예수님의  제자가 돼야 됩니다. 자기가 사람된 것 만치 이렇게 믿어지는 것이지 사람이 되기  전에는 안 됩니다. 꾀로, 조작배기 꾀로 이제 그렇게 뭐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진리이기 때문에 피조물보다 크다. 암만 알아 봐야 소용없어.

 왜? 크면 뭣 때문에 천상 천하에 있는 피조물보다 큰 진리인데 그 진리와 나와  동행하는데 왜 피조물을 왜 두려워합니까? 그 진리와 동행하는데 왜 피조물을  두려워합니까? 가다가 피조물의 세력이 강하게 압박하든지 강하게 탄압하면 이  진리 때문에 공연히 자기가 지금 어려움 당한다고 진리를 헌신짝같이 버릴 뿐만  아니라 진리가 염병 모양으로 진리가 똥덩이같이 '이 진리 때문에 나 죽는다'  하고서 이렇게 진리를 원망하고 집어 던져 버릴 사람이 아닙니까?  정말로 한 진리가 우주의 모든 존재의 세력보다 크다는 것을 믿어집니까?  정말로 믿어집니까? 속으면 안 돼, 속으면 안 돼. 그 믿어진다고 믿어지는 게  아니라 순서가 있어.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로 참사람으로 사람이 변화홰야 되는 것이지 사람이  변화되지 안하고 그렇게 꾀로 가지고서 그와같이 하는 사람들은 승리 못 합니다.

왜정말년에도 다 그렇게 하는 사람들 많이 있었어. 다 그런 사람들 다 승리 못  했어. 참으로 진리를 이렇게 능력 있고 크다는 것, 진리는 피조물보다 크니  피조물이, 피조물의 전부보다 큰 무한히 큰 진리하고 동행하고 진리에 복종하는데.

진리하고 복종하고 진리 안에 들어 있는데 피조물 제까짓 게 나를 뭐 어찌  하리요? 하나님은 나를 돕는 자시니, 진리는 나를 돕는 자시니 사람이 어떻게  하리요? 이렇게 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이 오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들  속에 있지마는서도 그 신사참배 하라고 강요를 암만 해도 눈도 꼼짝하지 안하고  그 정도 가지고 눈도 꼼하하지 안한 사람들은 그들이 해하지 못했어. 그런 사람이  있는 데는 그 교회 어린 아이들까지도 신사참배 하나도 하지 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순서가 있으니,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목표는 자유요. 우리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은 어데입니까?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앞으로  나아갈 길은 뭐입니까? '내 말에 거하면 네가 참 내 제자가 되고' 자신이 온전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데서 변화되지 달리는 변화되는 길이  없어. 꾀로 가지고 수단으로 가지고는 변화 안 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변화됩니다.! 말씀대로 살라 할 때에 재산이 절단 나, 명예가 절단 난다, 직장이  절단 난다, 생명이 끊어진다, 감옥에 들어간다 이래도 말씀대로 사는 것을  양보하지 안할 때에 그때에 그것이 말씀대로 사는 것이요 그럴 때에 그거보다 큰  말씀과 저와 하나됐기 때문에 '나와 내 도를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해 나  처자나 뺏긴 자는 여러 배 백 배를 받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다'  이랬어. 큰 자를 사귀었기 때문에 그거야 으례히 승리지요.

 이러니까 우리가 지금 해야 될 단계는 어데인가? '내 말에 거하면' 주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우리의 지금 현 단계에 할 일입니다. 말씀대로 살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차차 차차 진리화 된 사람이 되면은 진리가 어떻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격으로서 이제 진리는 우주보다  무한히 큰데, 한없이 큰데 이 큰 진리를 우주 이까짓 것에게 협박받아 가지고서  이 진리를 버리는 자가 진리를 아는 자입니까?  진리의 크심을 아는 자는 되조물들에게 탐을 내거나, 피조물들에게 유혹을  받거나, 피조물들에게 탄압을 당하거나, 피조물들에게 강제를 당하거나 끌리거나  피조물로 인해서 두려워하거나 그런 염려나 없습니다. 이게 진리를 아는  사람입니다. 그 아는 게 대번에 알아지는 게 아니라.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그라면 진리를 압니다. 고 진리 알면 진리가 그 사람을 자유케 할  때에 어데서든지 자유할 수 있습니다.

 '세상 임금이 오겠으나 내게는 상관이 없다. 다만 내가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는  것과 어떻게 순종하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줄 것뿐이다' 그게 예수님의  자유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서 어떻게 했지마는서도 아버지 사랑하는 것만  그들에게 보였고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만 보였지 조금도 피동되지 안해. 그게  자유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또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면 자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를 알아서 자유하는 위에 봉우리에 있습니다. 진리가  지켜서 자유함을 얻은 그 위에 높은 차원에서 예수님이 책임지고 자유케 합니다.

예수님이 책임지고. 이거는 예수님과 하나요. 예수님의 몸이 되고 지체가 되는  것이오.

 그런고로,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믿는 자리요, 우리의 목표는 자유요, 자유는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하는 자유, 그 위에 하나님의 아들이 자유케 하는 자유  그것이 우리의 목표. 그 목표를 향하여서 우리가 달음질치는 것은 말씀 안에  거해서 말씀대로 사는 것, 말씀대로 살아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사람으로  변화되는 것. 변화되는 것만치 진리를 진리로 대우하게 됩니다. 진리를 진리로  대우하게 될 때에 대우하는 것만치 진리는 그에게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의 말씀은 우로와 같아서 선포되면 반드시 결실하고야 마는 것을 저희들이  주님에게 배웠고 또 경험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음으로 주님의 제자와 영원한  자유를 목표하고 날마다 전심 전력을 기울여 소유도 몸도 생명도 다 여게  투자하여 담대히 순생과 순교의 걸음을 걷는 저희들이 되도록 축복해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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