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가 견고한 자

 

1981. 9. 25. 금새

 

본문: 이사야 26장 2절 - 7절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찌어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높은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을 첩경을 평탄케 하시도다.


선지자선교회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되어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이  영이요, 육은 마음과 몸을 합해서 육이라 말합니다. 영은 단일성이요  단일체입니다. 하나로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은 수많은 요소들이 종합돼  가지고 되어있는 것이 육입니다. 마음도 수많은 종류가 합해 가지고 마음이고 몸도  수많은 요소가 합해 가지고 몸입니다. 크게 나누면 몸은 지체로 되어 있고 또 작게  나누면 몸은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은 크게 나누면 양심 또 이성 또 감정 또  기억 욕심 의지 이런 것들로 되어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 각자에게 대한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그 예정대로 인도하십니다. 예정대로 인도하시고 또 예정대로 인도하신다는 것은  예정대로 우리의 현실을 그 순서 예정 순서대로 우리의 현실을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같은 자리에 사는 것 같지마는 자기에게 닥치는 현실은 자꾸만  바꾸어집니다. 그러면 바꾸어지는 그 현실은 주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모든 자연이나 또 국가나 사회나 가정이나 자기의 입장 처지나 이런 것들을  바꾸어서 닥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의 수많은 요소가 있는 그  요소 요소를 거기에서 기르기 위함이요, 또 고치기 위함이요 또 우리의 몸의 여러  요소가 있고 심신의 여러 기능이 있는 그것을 고치기 위함이요 기르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구원을 이루는 것은 자기 현실에서 자기의 심신으로 된 육의  병을 고치고 육이라면 그게 덩어리의 병 뿐만 아니라 마음과 자기 몸에 병 행위의  병 그것을 말합니다. 병을 고치고 또 자기의 심신으로 된 그 육의 기능을 갖추어서  길러가야 합니다. 그중에 여기에 하나를 말씀했습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의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심지가 견고한 자를" "심지가  견고한 자를" 심지를 길러 가지고 심지가 아주 장성하고 강한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평강의 평강으로 점점 더해주신다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심지라는 것은 심지라는 그 요소는 자기가 각양 그 마음에 요소들에게  결의를 해 가지고 결정한 그 결정 그것을 계속 끌고 나가는 그 요소를 가리켜서  심지라 그렇게 말합니다. 자기 몸에는 감정도 있고 욕심도 있고 이성도 있고  양심도 있고 지식도 있고 지혜도 있고 수많은 그 마음의 요소들이 있는데 그  마음의 요소들이 이 세상에서 무슨 회의를 하고 뭐 무슨 총회가 있었다 또  유엔회가 있었다 국회가 있었다 무슨 회 무슨 회 말하는 것처럼 마음에서 회의가  있어서 이런 것 저런 것 다 모여 가지고 결의할 때에 그때에 어떤 사람은 욕심이  강해 가지고 욕심 그것이 주도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도덕심이 강해 가지고 그것이 주도권이 되어서 그대로 결정을 지우는 사람 있고,  어떤 사람은 그 감정 그것이 강해 가지고 한 감정대로 결의를 지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양심이 강해서 그 양심대로 모든 결의를 가지고 그 결의가 양심대로  결정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욕심 중에도 어떤 사람은 물욕 어떤 사람은 명예욕 어떤 사람은 권세욕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는 인기욕 별별 욕심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다 모여  가지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능가하고 억압하고 그 요소가 주장이 돼 가지고  결정을 지우는 그런 것이 사람의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록 얼마 안되는 것 같지마는 사람은 작은 우주라 우주보다 더  복잡하고 크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다 자기가 인생을 분해해 보고 난 다음에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런 요소가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이것이 개조되야 되겠고  성화되어야 되지 이대로는 택한 사람이 하늘나라 가도 마치 사람은 사람이지마는  전혀 기능이 없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기능 작용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죽은  사람과 같은 사람이 가장 천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못쓸 요소가 주장하는 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의인인 줄로 압니다. 속기 쉬운데 자기에게 현실을 하나님이 바꿔 주시는 그  현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요. 또 자기를 고쳐  기르게 하려는 그 현실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시간 중에 현실이  가장 자기에게는 귀하고 이 세계와 우주 중에 자기에게는 자기 현실이라는 그것이  종류로나 공간으로나 다 가치에 있어서 가장 존귀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자기는 참  깨달을 수도 있고 고칠 수도 있고 기를 수도 있고 구비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데 우리 믿는 사람들이 대개 이성이 발달되어서 옳고 그른 것을 잘  구별합니다. 또 자기가 소원도 옳은 소원 삐뚤어진 소원 있는데 옳은 소원은  가져야 될 줄 알고 삐뚤어진 소원은 제거해야 될 줄을 압니다. 이래서 비판에 있어  비판과 평가에 있어서는 다소 실력있게 길러놓고 또 회의 결정에 있어서는 옳은 그  결의를 대개 잘 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하고 의논하는 것인데  자기의 마음과 몸에 있는 온갖 요소와 하나님과 한자리에 회의를 열고 모든 자기의  과거 현재 미래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결정지우는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기도에서, 기도에서는 자기의 각종의 그 요소가 회의를 열 때에 불의한  것들이 세력을 부리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기 때문에 불의한 것이  세력을 부리지 못합니다. 참 생명보다 강한 그 물욕도 기도할 때는 그것이 거기에  세력을 부리지 못하고 또 정욕도 세력을 부리지 못하고 또 자기의 생명을 걸어놓은  그런 복수에 원수에 대해서도 그 복수심도 세력을 부리지를 못합니다. 기도는 자기  마음에 온갖 요소와 자기 몸의 요소 또 하나님 자기 영 이렇게 모여 가지고 서로  회의를 하는 서로 의논하는 것 서로 교제하고 담화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심신으로 된 육에 있어서 나쁜 그것에게 물들어 있는 나쁜 것에게  물들어 있는 모든 불의와 죄에 붙들어 있는 그 요소들은 불의, 그 불의와 죄에  물들어 있는 욕심 감정 이성 또 기억 이런 모든 요소들이 나쁜 것에 물들어 있는  것은 나쁜 것이 어데서 나왔느냐 하면은 마귀에게서 나온 것인데 이 잘못된 것에  물이 들어있는 그 우리 심신의 요소는 제일 싫어하는 것이 뭐이냐? 기도를 제일  싫어합니다. 왜 기도를 싫어하느냐? 기도할 때에는 기도 아니하고 생각할 때에  기도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생각을 하고 명상을 하고 이렇게 할 때에는 모든 불의한  것들에게 감염되어 있는 불의한 것들에게 물들어 있는 그런 것들도 당당히 자기  주장을 하고 세력을 부리고 이렇게 해서 싸워댑니다.

만일 어떤 자가 아주 못쓸 그런 취미를 가진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취미도 그 회의에서 내놓고 얼마든지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감정과  의지가 합한 것이요, 욕심과 결의가 된 것이기 때문에 강하게 주장을 해 가지고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자기는 잘못된 그 취미 그것으로 점점 더 달려가고 그 일을  더 견고케 하고 더 힘있게 해 가지고 점점 그 사람이 더 돼갑니다.

이러니까 좋아하지마는 기도는 그것이 싫어합니다. 왜? 기도하면은 제가 마음대로  날뛸 수 없는 그 세력있는 분이 한분이 척 들어 오니까 그분 때문에 그만 잘못된  것들을 다 거기에 억압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 이 심신의 요소 중에 삐뚤어진 것에게 붙들려서 칼은 좋은  것이지마는 이 칼을 참 잘 쓰면 이거는 좋은 도구가 되는 것이고 이것 잘못 쓰면은  아주 악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리 만들 그런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수술하는  데에 쓰는 좋은 그 위료기를 이것을 사람을 죽이는 데도 쓸 수가 있다 이거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신의 요소는 의로운 것에게 붙드리면 아주 의로운  도구가 됩니다. 불의한 것들에게 붙들리면 불의한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불의한  것들에게 붙들려 있는 이 우리의 심신의 요소는 제일 싫어하는 것이 뭐이냐 하면은  기도를 제일 싫어합니다.

왜 기도를 싫어하느냐?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몸에 있는 심신에 있는 모든  요소들이 다 모여 가지고 회의를 여는 것인데 회의를 열어 가지고 거기에서 최종  결정이 이렇게 하겠다 이제 결정을 지워 놓으면 그 결정 지운 이후로부터 이것을  책임맡아 가지고 일하는 자는 어떤 자냐 하면은 이것을 가리켜서 심지라 의지라  의지성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회의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요소가 좋은 것에게 관련을 가지고 좋은  것에 이렇게 감염되어 있고 거기에 붙들려 있으면 좋은 요소가 될 수가 있고 좋은  기구가 될 수 있는데 나쁜 것에게 붙들리면 아주 못쓸 그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하나님께 드리는 의의 병기가 되고 죄에게  드리면은 죄의 병기가 된다' 우리의 심신을 도구와 같은 것으로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기에 우리는 자기가 단순한 줄 알면 안됩니다. 영은 단일체요 단일성이지마는  우리의 심신으로 되어있는 이것은 수많은 요소들이 종합해 가지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한 기계가 비행기면 비행기 그것이 이렇게 움직이는 그것은 거기에  벌써 수많은 부속품들이 있어 가지고 그것을 다 조립을 해 가지고 그만한 것이  되어진 것처럼 우리 이 심신이라는 것도 수많은 요소입니다. 수많은 요소로 되어  있는 이것이 한테 뭉쳐 가지고 그 사람의 한마음 그 사람의 마음이라 그 사람의  몸이라 이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고쳐지는 데에는 단번에 고쳐지지 안해. 그러기 때문에 영이,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은 단번에 살아나지마는 우리의 마음과 몸의 이 요소들이  살아나는 것은 수십번 수백번 수천번 수만번을 거쳐서 그것이 치료도 되고 살아도  나고 또 실력도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언제 그것을 진찰을 바로 해 가지고 언제 병은 병으로 또 잘 되어  있는 의의 기구는 의의 기구로 판단할 수가 있는가? 그것은 지식 가지고 판단해도  모릅니다. 현실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 현실을 닥치기 전에  생각하는 것과 현실을 만났을 때에 생각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은 아주 판이하게  다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이 수많은 요소의 병을 고쳐서 또 이것을 바로  길러서 바로 구비하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수많은 현실을 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자기의 현실이 변함없는  현실로 일생 살기를 원합니다. 변함이 없다면은 자기에게는 깨달음이 없단 말이오.

자기는 고침이 없단 말이오. 새로움을 마련한 그런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수많은 현실을 우리에게 하나님이 닥치게 하는 것을 자기의 현실이  변해진다고 낙망하고 원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함으로 이렇게 고칠  수 있는 현실을 주시는 것이니까 이런 현실을 만났을 때에는 이 현실이 왜 나에게  무억이라고 주셨는가? 고 현실 만나 보니까 내가 모르던 죄가 속에 있습니다. 내가  모르던 거짓뿌리가 있습니다. 내가 모르던 또 아주 귀한 요소가 내 속에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서 깨닫고 고치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심신에 있는 각양  요소가 회의를 해 가지고 그 회의에서 결의된 그대로 이제 사람은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나따나 행동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행동하게 되는 게 어떤 사람은  그 요소가 다 꺽어져 버리고 꺽어지고 참 죽다 싶이 다 돼 버리고 하나가 점령을  해 가지고 독점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독점하고 있는 사람.

자기에게 요소에 이성이라는 그 이성도 꺽어져 죽어버렸고 양심도 죽어버렸고 또  추억도 죽어버렸고 도덕심도 죽어버렸고 감정도 죽어버렸고 하나의 욕심만 욕심  이것이 전체를 다 눌러 버리고 압도하고 욕심 하나 이것이 자기가 단독 왕이 돼  가지고 사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원만하고 구비한 사람이 되어지는 데에는 자기에게 있는  하나님이 지어주신 온갖 요소가 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그 사람이 이제 원만한  사람이요 복있는 사람입니다. 각양의 요소가 조금도 상하지 안하고 생생하게 모두  강건하게 되어 가지고 있어서 그 모든 요소가 이 사람은 자기 속에 회의가 있는데  다 꺽어버리고 다 매장을 시켜버리고 항상 하나가 들어서 그 사람의 회의는  혼자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대로 생각해 가지고 그대로 달리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사람은 무엇이든지 어떤 현실을 닥쳐도 그 닥친 현실에서 결정되어지는  것은 그 요소입니다. 욕심이라면 욕심이 그만 어떤 입장 처지를 당했든지 그  욕심이 왕이 돼 가지고 욕심대로 모든 것을 결정지워 가지고 추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로마서 3장에 말씀하신대로 이리 저리 치우쳐서 다 무익한 자가  되고 하는 그대로 치우친 그 사람이 되어서 아주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복있는  사람은 자기의 마음에 수많은 요소 자기 몸에 수많은 지체와 요소 이것이 하나도  죽지 안하고 다 생생하게 자기의 지위와 권세와 또 그 능력을 고대로 다 가지고  살아있는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이 자기가 무슨 사건을 닥쳐 가지고 생각할 때에 그 생각을 할라  하니까 이 일에 대해서 결정을 지워야 하겠으니 이 일에 대한 회의를 열어야  되겠다 하면 자기 심신의 수많은 그 분자가 수많은 요소들이 한테 합해 가지고 다  주장을 합니다.

이는 이걸 주장 이 의지는 의지가 주장하고 감정은 감정이 주장하고 양심은 양심이  주장하고 도덕심이 도덕심이 주장하고 또 욕심은 욕심이 주장하고 또 기억성은  기억성이 주장하고 이렇게 모든 요소들이 한테 합해 가지고 결의를 하기 때문에 그  회의는 원만한 회의가 되고 구비한 회의가 되겠습니다. 또 그 회의는 비판적인  회의가 되겠고 또 평가적인 참 회의가 되겠습니다. 치우치지 안한 그런 회의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믿는 사람의 모든 활동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나라든지  그 나라의 행정이라 하는 것은 최고의 기관인 거기에서 결의해서 그것이 모두 다  아래로 시달돼 나가는 것처럼 우리 마음도 똑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마음에 수많은 요소로 복잡하게 복잡해 있다는 이것도 알아야 되고  자기 마음은 수많은 요소로 복잡해 있다는 것도 알아야 되고 또 어떨때는 자기에게  있는 어떤 그 요소가 강한 세력을 가지고 다른 것을 막 억압아 눌러 가지고 그게  독단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이리저리 치우쳐서 바른 길을 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됩니다.

나는 보자, 내 마음에 수많은 요소가 있는데 이 요소가 공평된 회의를 열어 가지고  공평된 이 결의를 참 비판적으로 결의를 하고 평가적으로 결의를 해 가지고 내가  움직이는 사람과 내게는 지금 어떤 요소가 이거 독재를 하고 강제를 하고 무례하게  이것이 단독 그 독권을 가지고 날뛰어서 다른 요소들이 도무지 나타나지도 못하고  발언도 못하고 주장도 못하고 이것이 하나 주장을 해 가지고 그것이 하나 주장을  해 가지고 내 전 움직임을 움직여 가고 있더라 하는 이것도 자기가 깨달아야  됩니다.

그러면 자기에게는 지금 자기 행동은 두 가지가 합해 가지고 합작해 가지고 이  세력이 나를 끌고 나간다 세 가지가 합해 가지고 끌고 나간다 하나가 합작해  가지고 끌고 나간다 그것을 상대방을 대할때 우리가 그렇게 평가해 봐야 되고 또  자기 자신도 그렇게 평가를 해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그 회의가 있어 가지고 거기에서 결정해서 모든 움직임을 가지는  것이 인생이라 그런데 우리에게 그 심신의 요소는 이것은 다 악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 육은 악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육은 선한 것입니다. 마음의 요소도  선하고 몸의 요소도 선하기 때문에 이 심신으로 되어 있는 이것을 가리켜서 육이라  가르치고 하나님의 속성대로 되어 있는 그것을 가리켜서 영이라 하는데 영은  단일성의 것이요 단일체의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 되어 있는 이 심신은 수많은 요소가 다 종합해 가지고 마치  부속품을 조립해서 한 기계가 되는 것처럼 이래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심신으로  된 육인데 이러기 때문에 이것은 구원도 단번에 되지 못하고 수많은 중복을  통과해서 이것이 구원이 됩니다. 수많은 요소가 구원되기 때문에 그 요소가  구원되기에 필요한 수많은 현실을 주십니다. 수많은 현실을 주시니 그 요소를  요소의 병을 고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그 현실을 그만 자기의 욕심대로나  감정대로나 어떤 환경에 피동되거나 이래 가지고 허비해 버리면 다시 그 요소는  살아날 길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단번에 준도라 말은 예수님도 대속도 그럴 뿐 아니라 우리 구원이라 하는  것도 현실 현실에서 단번 단번에서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됩니다. 우리의  심신의 기능이 현실을 만나고 고 시간에 살아야 될 그 기능이 살지 못했으면  영원히 죽었습니다. 고 시간에 죽을 위험성을 가진 그 기능이 고 시간을 통해서  영원히 삽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현실은 영생과 영망이 이루어지는 고 현실입니다. 이래서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죽도록 지사충성하라 그러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 그말은 현실에서 구속받은 사람은 살았는데 구속받은 사람이  현실에서 다시 죽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게 된다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속하신 것은 원죄와 본죄로 죽은 그것을 살렸지 예수님의  대속을 해 놓은 그것을 그것이 죽는 것을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래서 저희들이  은혜를 받고 다시 범죄하니 이것은 주를 십자가에 두 번 못 박아라 하는 것이라  그말은 두 번 다시 십자가에 못박지 안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은 자는 살리는  길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현실이 중요하고 또 현실에서 각양 요소를 살려야 하는데 이것을  살리는 데에는 행동을 통해서 살리는 것이니까 행동은 그 마음에서 결정돼 가지고  행동으로 결실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의 결정이 될 때에 그것이 단순한 결정이  아니고 마음에 수많은 요소들이 있어 가지고 결의를 해서 그 회의 끝에 결의를 해  가지고 결정이 되어지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마음의 요소를 다른 것을 다 꺽어서  압박해 놓고 자기 한 요소가 주장이 돼 가지고 모든 그 결정을 지워 나가는 그  사람이 제일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보다는 요소가 많이 동등권을 가지고 이렇게 그 회의에 주장을 하면 그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요 그보다도 가장 복있는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수많은 요소를 다  생생하게 살려 가지고 그 수많은 요소들이 자기에게 관한 것을 주장하지 안하면  다른 요소는 그걸 모른다 그 말이오. 그 모든 요소들이 자기에게 관한 것을 주장을  해 가지고 의논이 될 때에 그것은 참 원만한 회의요, 또 그것은 참 평가적인  회의요, 비판적인 이렇게 회의로 되어 나가기 때문에 이런 사람이 안믿는  사람으로서도 세상에서 권세를 잡습니다. 세상에서는 권세를 잡지마는 하늘나라는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속도 없을뿐 아니라 그 평가에도 도달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게 수많은 요소가 회의를 할 때에 우리의 기관은 다 근본은  좋지마는 악에게 속해 가지고 악의 기관이 되어있는 것도 있고 죄의 기관이  되어있는 것도 있고 또 의의 기관이 되어있는 것도 있습니다. 좋은 것이지마는  악에게 붙들리면 악에게 이용되는 도구 같고 의에 붙들리면 의에 이용되는 도구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이 다 악하다 육이 악하다 이랬는데 그 깨달은 사람이 그  물질을 악하다고 하는 것은 죄라 하는 것은 육체가 악하다고 하는 것은 죄다  이렇게 했는데 육체 기관이 고기덩어리 이것만을 육체관으로 삼고 마음을 육체관을  삼지 안했기 때문에 잘못 이용해 가지고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드리는 의의 병기가 된다' 그말은 육과 마음이 다 하나님께 드리는  의의 도구가 된다 말입니다. 그러기에 마음도 몸도 그것이 근본은 악한 것이  아니고 선한 것이지마는 악에게 붙들리면 악이 되고 선에게 붙들리면 선이 된다  하는 이것을 그 성경에서 밝혀 놓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물질을 악하다 물질을 계악설은 그것은 이단으로 다 정죄를 지금  정통에서는 받고 있습니다. 이런고로 우리에게는 수많은 요소가 있는 이것을 다  살려야 되지 이것을 살리지 안하면 그 사람은 기형적인 사람이요 불구자요 원만한  사람이 안되는 것입니다. 마치 그 사람이 몸도 이 팔도 성해야 되지 다른데만  성하고 팔이 불구자 돼 있으면 그 사람 불구자입니다. 다른데는 다 거석하지마는  손가락 하나라도 병신이면 그 사람은 그만치 불구자요.

이렇게 우리의 몸도 그런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더 신령하고 더 신령한 물질,  마음은 물질입니다. 신령한 물질입니다. 마음은 신령한 물질이요.

이러기 때문에 이것을 더 복잡하고 세밀하고 더 중요하고 필요한 것들입니다.

마음이 물질이라 하면 그것은 간단하게 이해하게는 안될 것입니다. 그는 짐승에게  있는 혼과 같이 우리에게 있는 혼입니다. 삼분설에서는 영, 혼, 몸 이렇게  삼분설에서는 그렇게 삼분설 했지마는 이분설에는 영, 육으로 이렇게 이분설로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에는 수많은 요소로 되어 있는데 이 요소를 우리는 살리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그 요소가 죽어 있다는 것을 현실을 만날 때에 발견할 수 있고  현실을 만났을 때에 그 요소를 발견했으면 그 요소를 그 현실에서 살려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현실은 우리에게 있는 수많은 요소의 요소를 진찰하는 것이요, 또  이 수많은 요소를 살려내는 것이요, 수많은 요소를 길러가는 이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에 행동을 하는 그 행동을 통해서 이거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행동은  어데서 나오는가? 마음에서 나오는데 단순히 마음에서 나온다고 생각지를 말고  마음의 수많은 요소들이 회의를 해 가지고 나오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그 요소,  다른 것은 다 꺽어 죽여 버리고 몇 요소만 가지고 하는 그 사람은 언제든지 그이의  생각은 편벽됩니다. 그이의 경영이 소욕이 다 편벽됩니다.

그런 사람도 있고 자기에게 있는 인간 요소 그것을 다 구비하게 그것이 생생하게  살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는 그 사람의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고  소원하는 것이 원만하고 또 취하는 방편도 원만하고 그 사람의 성공도 원만하고  이렇게 원만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암만 원만해봤자 벌써 죄와 허물로 죽은자라 죄와 허물로 죽었다 말은  완전성에 있어서는 죽었고 영원성에 있어서는 죽었고 불변성에 있어서는 죽어 있는  것입니다. 죽어 있는 것인데 만물보다 거짓된 것인데 그것이 아무리 단합을 해  가지고 회의를 해봤자 그 회의가 바로 될리는 없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벌써  악령에게 점령을 당했어.

그러기 때문에 불신자 속에서 주장하고 있는 공중에 권세 잡은 영이라 이랬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사람이 저 단독이 생각하는 그 생각에서는 옳은 것이 나오지를  아니합니다.

그러기에 악에게 붙들려 있는 요소도 있고 의에 붙들려 있는 요소도 있고 이러기  때문에 악에게 붙들려 있는 요소는 제일 그 회의를 열 때에 겁을 내고 싫어하고  그것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그게 있습니다. 악에게 붙들린 요소는 이번  회의에도 그게 안왔으면 좋겠는데 그게 회의에 참석 안했으면 좋겠는데 제일  싫어하는 자가 있습니다. 제일 싫어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예 제일 싫은 자가  누구요? 우리 마음에 요소에 회의가 열었을 때에 그 회의에 악에게 붙들려 있는  요소가 그 회의에 제일 참가하는 것을 참가하는 싫어하는 자가 누구냐 그 말이오.

예 여기에는 누구요? 녜 하나님, 하나님을 제일 싫어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주님을 제일 싫어해요.

왜 그분이 오면은 그분이 그 모든 것을 옳고 바른 것을 주장을 해서 이렇게 환하게  빛을 보이기 때문에 악에게 속하여 있는 요소들이 발원을 하지 못하고 주장을 하지  못하고 세력을 부리지 못하고 삐뚤어지지 저거 욕심대로의 결의를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오. 결의를 할 수가 없어 제일 싫어합니다.

의에 속한 요소는 회의할 때마다 제일 필요로 하고 자기에게 그 회의에 참석하는  요소 중에 주 하나님이 참석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왜 그분만 참석하면 나쁜  결의는 안된다 그거요. 잘못된 결의는 허락을 안하시니까 잘못된 결의는 안된다고  그러기 때문에 그분을 응원해 주기를 원하고 악한데 속한 요소는 그분이 그  회의에서 없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분을 모시고 회의를 여는 그 회의가 무엇입니까  무엇이요? 그 회의의 이름이 뭐입니까? OOO집사님, 녜 기도 기도 이것이  기도입니다. 녜 기도가 이것이요.

그러기에 자기가 무엇이든지 기도 중에 생각합니다. 자기 현실 현실 만날 때마다  이 현실을 자기 요소 이것들에게만 맡겨서 단독이 하면은 그것은 악한 세력도 있고  의로운 세력도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잘못되기 쉬운고로 그만 들짱 제일 옳고 참되신  분 이 주님을 모십니다.

이래 가지고 무엇이든지 생각할 때에 눈 감고 '주여 이 일에 대해서 어떻게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며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며 내가 지금 소원하는 이 소원이  어떻습니까?' 모든 것을 회의할 때에 주님을 모시고 회의하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그이의 생각이 다 깨끗합니다. 소원이 깨끗합니다. 그이의 모든 판단과 결의가  깨끗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 속에 회의가 이러기 때문에 복잡한 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되기 쉽습니다. 기도에서 옳은 결의가 돼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 원하는 것 비판하는 것 평가하는 것 이것은 대개가  그래도 옳습니다. 대개가 옳은데 기독자들이 어데서 실패를 하느냐? 이것은 대개가  어려운데 실패하는 것은 여기에서 실패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이 심지 그렇게 옳은 비판 평가  소욕을 가지기는 하는데 가지고 난 다음에 이것을 맡아 가지고 성공을 시키는 자는  어떤 자냐 하면은 그것이 우리 속에 의지성이라 하는 그것이 이것을 붙들고 성공을  시킵니다.

이런데 이 의지가 약해 가지고 그만 이 성공을 하지 못하고 좋은 생각을 좋은 것을  경영했지마는 시작하다가 말고 어떤 사람은 중간에 가다가 말고 이렇게 맙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씨 뿌리는 비유에 돌작밭에 뿌린 씨라 판단에 바로 하고 시작은  바로 했는데 가다가 돌에 받쳐서 그만 말라 죽어버린다 하는 그것은 무엇을  가르키느냐? 자기를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자기가 주장이 되고 자기가 주장 되면  그만 신앙을 시작했다가도 마지막에는 그것을 다 포기하고 계속 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의지를 의지가 모든 것을 맡아 가지고 성공을 지키는데 평강과  평강을 더하시리라 말은 성공시킨다 말이요 승리한다 말이요 취득한다는 말이요.

예 평강에 평강을 더한다 평강을 주신다 평강을 주시는 것은 승리를 해야 평강이  오고 또 성공을 해야 평강이 오고 또 취득을 해야 평강이 오는 것입니다. 그  평강에 평강을 더하신다 그말은 모든 것을 잘해서 성공한다 그말입니다.

주께서 성공에 성공을 주신다 승리의 승리를 주신다 취득에 취득을 주신다 점령에  점령을 주신다. 그러기에 행복에 행복을 주신다 하는 것인데 인간이 아무리 좋은  것을 생각했다 하지마는 이것을 책임맡은 의지가 이 일을 감당을 못해 가지고 그만  절단을 내서 시작하고 시작하다 만다 그 말이오. 시작하다 말고 다 되어가다가  말고 이러기에 심지가 견고한 자라야 평강에 평강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러면 심지를  우리가 기르는 것이 중요한데 이 심지를 죽이는 자가 누군가 이 심지를 죽이는  자가 누구냐? 심지를 죽이는 자는 어떤 자가 자기를 죽이는가? 내나 돌밭에 뿌린  씨가 움이 나서 자라다가 돌이 받쳐서 죽는다 하는 돌 그것이 심지를 기르십니다.

움싹이 나서 자라는데 자라는 이거는 깨달은 것을 의지가 거머쥐고 이 일을  달성시킨다고 지금 해 나가고 있는데 그만 돌에 받쳐서 죽었습니다.

돌 그게 뭐이요? 돌 그것이 곧 자기 중심인 자기 중심인 그것을 비유해서 돌이라고  한 것입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라 하는 그말은 자기가 부숴진 자기가 부서지면  모래가 됩니다. 모래가 되는데 모래 위에 세운 집이라 그말은 자기 중심의 요소  위에 세웠다 그 말이오. 반석 위에 세웠다 그말은 모래 위에 세우지 안하고 반석  위에 세웠다 그말은 곧 하나님으로 인하여 주로 인하여 된 것을 가리켜 말합니다.

이러기에 자기 의지를 죽이는 자가 무엇입니까? 자기 의지를 죽이는 유일의 원수가  무엇인가? 유일의 원수는 자기 중심인 고것이 자기 의지를 죽입니다. 옳은 이 신앙  의지를 죽이는 것은 자기 중심인 요것이 신앙 의지를 죽이는 것이요, 자기 의지를  살리는 것은 무엇이 살립니까? 자기 의지를 살리는 것은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의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아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주를  의뢰함이니라" 주님을 의지하는 이것이 없으면 우리의 의지는 자라가지 못합니다.

우리 의지가 좋은 일을 맡아 가지고 모처럼 시작을 해서 이 일을 힘있게 해  나가다가도 그만 이 의지가 가다가 꺽어져 버립니다. 꺽어질 때에는 자기가 나오고  자기 이 중심 자기 위주 자기가 주가 될 때에는 이것은 그 의지는 당장 거기에  의로운 일을 책임맡아 가지고 하다가 자기보다 만물보다 거짓된 그 옛사람 그것이  주가 되니까 의지는 거기에 복종해야 되다 보니까 시작했던 의로운 일은 포기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믿는 사람들이 다 시작해 가지고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인데  그와 반대로 그 의지가 끝까지 일하는 데에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주님을  의뢰하는 것, 주님을 의뢰하는 것은 자기 의뢰에 반대요 자기 의뢰는 주님 의뢰에  반대인 것입니다. "의뢰함이니이다"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 높은데 거하는 자를 낮추시며 솟은  성을 헐어 땅에 엎으시되 진토에 미치기까지 하셨도다 발이 그것을 밟으리니 곧  빈궁한 자의 발과 곤핍한 자의 걸음이리로다" 아무리 못난 자라도 말이요 빈궁한  자 곤핍한 자 아무리 못난 자라도 옳은 것을 깨달아 고대로 실행하고 난 다음에 고  의지가 꺽어지지 안하고 고것을 하나님이 다 해 주실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계속만 해라 계속만 하면 너를 대항하는 것이 태산 같고 나라고 정복을  세계 다 할지라도 그것을 네가 하는 게 아니라 너는 약하지마는 하나님을 그것을  꺽어서 진토를 삼아 네 아주 못난 네 발아래 잘끈 잘끈 밟히도록 네가 하나님이  하시겠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를 의뢰함으로 신앙 의지를 기르는 힘을 가져야 됩니다.

그러기에 어거스틴은 자기 체험에서 말하기를 죄는 의지를 의지 꺽어지는 것이  죄라 의지가 꺽어지는 게 죄라 의지가 꺽어지는 것이 그것이 죄라 그렇게까지  그분은 말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심지가 견고한 자에게 평강의 평강을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회의에는 반드시 하나님을 참가시켜야 그 회의가 바른 결의가 되어진다는 것 바른  결의를 해 가지고 시작했지마는 그 일을 맡아서 책임맡아 하는 것은 의지인데 그  의지가 그걸 맡아 가지고 하는데에 그 의지에게 언제든지 견고해져 의지에게  의지야 담대하라 굳세게 할지어다. 담대하라 굳세게 일하라 왜 주 여호와를  의뢰하라 만군의 주 여호와를 의뢰하라 주를 의뢰하라 하는 그것을 우리 의지에게  자꾸 경고시켜 줘야 합니다. 의지에게 보라 주를 의뢰하라 이럴때에 그 의지는 해  나가도 그만 자기라는 자기가 주장이 돼 가지고 자기가 이러면 낭파된다 주가 자율  주가 그 자기 중심 이것이 나오면 그만 의지는 꼼짝을 못해. 저거 주인이 되기  때문에 꼼짝못해 그럴때에 옛사람이요 참 자기가 아니고 그때 우리는 쉬지 않고  여호와를 의뢰하라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높은 것을 꺽고  다 모든 큰 것을 다 내리 앉혀서 네가 아무리 빈곤하고 빈궁하고 곤핍한  자일지라도 네 발아래 그렇게 크고 높은 것이 발아래 밟히기까지 하나님이 하셨다  하는 것으로 우리의 의지에게 경고를 주고 협조를 해서 자기 의지를 기를 줄 아는  것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 의지를 기르고 자기 의지를 북돋우고 자기 의지에게 위로를 줍니다. 자기  의지에 눈을 띄워서 네가 굳세라 요동치 마라 꺽어지지 마라 그 일을 계속 해라  이렇게 하는 것이 돌작밭에 뿌린 씨가 돌을 뽑아내 던지면서 옥토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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