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기능 부활

 

1988. 6. 1. 수야.

 

본문: 고전 15:32-44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이 부활이라는 것은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 부활인데 모든 이 식물 이  초목 이런 식물에서도 부활을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 자연계시로 가르쳐 주시고  또 동물에게서도 가르쳐 주시고 곤충에서도 가르쳐 주십니다. 이런데 가르쳐  주실 때에 다 그것이 다시 살아날 때에는 다 죽어 가지고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면 살아나면 죽기 전에 보다 더 존영할 수도 있고 천할 수도 있고 그렇게  여러 종류대로 모양으로 살아납니다.

 그러기에, 여게는 씨 뿌리는 것을 가지고 우리의 부활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는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마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우리가 참 아주 불쌍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활하는 이것을 굳게 잡고 놓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부활에 대해서 첫째로 가르치는 것이 이것입니다. 씨를 뿌리면은 그 뿌린  씨가 죽지 아니하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죽어야 살아납니다. 그런데, 여게 씨로  비유한 이 비유, 씨는 무엇을 씨로 비유했는가? 무엇을 씨로 비유했는가? 그  사람의 행위를 씨로 비유했습니다. 그 사람의 행위 그 사람의 생활 행동하는  것을 씨로 비유했습니다.’ 또, 그 씨를 심는 것은 어떤 것을 비유했는가? 그  사람이 행동한 것을 가리켜서 심는 것으로 심은 것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면 그  행동은 어데다가 심는가? 그 행동은 어데다가 심는가? 그 행동은, 씨는 땅에  심지마는 우리 사람들의 행동은 자기가 이 현실에다가 대고 심습니다. 현실에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하는 요것을  첫째로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기 비유에는 그 어떤 사람이든지 행동하는 그 행동을 씨종자로  비유했고 그 씨종자를 땅에 심는 그 땅은 그 사람의 당하는 그 현실을 가리켜  비유했고 씨종자를 또 땅에 심는다는 것은 그 현실에서 자기의 그 행동한 것을  가리켜서 심었다 그렇게 비유합니다. 그러면, 죽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요것을 단단히 기억합시다.

 그러면, 뿌려서 심은 씨가 죽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한다. 우리가 행동을  현실에서 행할 때에, 행동을 현실에서 행할 때에 죽으면 영생하는 것으로  살아납니다. 이 씨를 심어서 심는 것은 씨는 우리의 행동을 말하고 그 씨가 뒤에  나서 자라는 그것은 부활을 비유해서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죽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한다 그말은 우리 행동에서 죽으면  영생으로 다시 부활한다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현실이라는 현실에서 죽으면 살아나고 안 죽으면 죽어  버립니다. 그러면 죽으면 살아난다는 이 말씀은 무엇이 죽으면 살아난다는  말씀인가? 자기가 죽으면 예수님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자기주장 자기 소원, 자기 욕심, 자기 성질, 자기 뜻, 자기 지식대로  이렇게 살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살면 그 사람은 그거 산 게 아니라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현실 생활에서 -이치를 말하면 많이 복잡하니까  기억해서 -현실 생활에서 죽으면 살아나고 안 죽으면 죽습니다.

 죽으면 살아나다니? 자기가 죽으면 예수님으로 다시 삽니다. 자기가 죽으면  예수님으로 다시 삽니다. 이래서 ‘나는 죽고 주님 살아 최고 영광이라’ 노래에  그거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현실 생활에서 자기가 죽어야 예수님으로 살아나지  자기가 죽지 안하면 예수님으로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죽는다 말은 그 죽는 자기는 어떤 자기를 말하는가? 그것은  내나 죽을 자기입니다. 그것은 곧 죄와 사망과 마귀 아래에 속해 가지고서  사형받고 있는 그 옛사람인데 옛사람 그것이 죽어야 새사람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옛사람이 죽어야 새사람으로 살아납니다. 그러면, 현실에서 자기  소원대로 하는 것이 죽어야 하나님 소원대로 하는 그것으로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자기 욕심대로의 것이 죽어야 ‘하나님의 욕심대로의 것으로 살아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 성질이 현실에서 죽어야 하나님의 성질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자기 현실에서 이 세상 지식을 부인해야 하나님의 지식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되면 안 됩니다.

 그런고로, 우리 현실은 자기를 죽이는 현실이요 자기를 영생으로 살리는 현실이  돼야 됩니다. 자기를 죽이는 것은 곧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자기중심으로  살고 싶은 자, 자기 위주로 살고 싶은 자, 자기 욕심대로 살고 싶은 자,  자기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자, 자기 성미에 맞추어서 살고 싶은 자 그것이  곧 멸망할 옛사람입니다. 그것이 원죄와 본죄로 된 악령에게 속한 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현실에서 자기를 죽일 줄 모르고, 자기를 꺾을 줄 모르고, 자기를  버릴 줄 모르고 자기로 사는 사람은 대단히 지혜 있는 사람 같지마는 그 사람은  영원히 멸망 받습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악령은 하늘에서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 하다가 쫓겨난 것이  타락한 천사로 세상에 와 가지고서 마귀가 됐습니다. 사탄이 됐습니다. 이러니까  그놈이 에덴동산에 인류 시조에게 와 가지고서 ‘너도 네 중심으로 살아라’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고 해 놓은 그 아담 해와에게 와 가지고 꼬와서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말고 네 중심 네 위주로 살아라. 그라면 네가 하나님같이 된다.

이라니까 요 어리석은 해와가 고 꼬임에 빠져 가지고서 ‘그래 나도 지금 내  맘대로 내 중심대로 내 뜻대로 살면 내가 하나님처럼 존귀하게 되니까 나도 내  중심 내 뜻대로 살아야 되겠다’ 배암 하는 소리를 달게 듣고 제 중심대로 살기  위해서 선악과를 보니까 보기 좋으니까 하나님이 먹지 말라 했지마는 자기중심  자기 위주자기 소원대로 먹어 버렸습니다. 먹고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현실에서 죽고 사는 이 작업을 우리가 하는 현실입니다. 한  시간도 죽고 사는 작업을 하는 현실이요 또 하루 종일도 죽고 사는 작업을 하는  현실이요 또 일 년도 십 년도 몇 십 년도 다 죽고 사는 작업을 하는 현실입니다.

 그러기에, ‘죽지 안하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그러면 현실에서, 현실에서  자기가 죽지 안하면 자기가 죽지 안하면 자기가 살아나지 못합니다. 멸망할  자기가 죽어야 영생하는 자기로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면, 멸망할 자기는 어떤 것이 멸망할 자기인가? 우리의 영은 다 중생해서  완전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영은 죽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 마음이니  고깃덩어리니 하는 이 심신 이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써 법적으로는 살림을  받았지마는 실상은 죽어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살림받았지마는 실상은 죽어  있는데 법적으로 살림받은 이 자기가 법적으로 살림받은 그대로 새사람으로  살라고 하면 옛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안 죽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다 옛사람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전부 멸망입니다. 이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살고자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나와 내 도를 위해서 생명을 버린 자는 살리라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자기를 죽이면 자기가 삽니다. 자기를 죽이면 자기가 영생하는  사람으로 살아납니다. 자기를 죽이지 안하고 자기가 자기대로 살면은 사는 거  같으나 그거는 영원히 멸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죽이다니?  어떤 자지를 죽이는가? 자기는 둘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뿐입니다. 지옥 갈 자기 하나뿐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불택자는 지옥 갈  자기 하나뿐입니다. 그 사람은 아무리 자기가 멸망을 안 할라 해도 지옥을 안  갈라 해도 안 갈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택함을 받지 안한 사람은 멸망을 안받을래야 안 받을 수 없고 지옥을  안 갈래야 안 갈 수 없는 것이오. 또 택함 입고 중생된 사람은 지옥을 갈라 해도  가지 못하고 하늘나라 안 갈라 해야 안 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러니까, 영도 가고 우리 마음과 형태도 갑니다. 마음과 몸의 형체는 갑니다.

마음과 몸의 형체는 지옥 갈래야 가지 못합니다. 불택자들은 천국 갈래야 가지  못합니다. 택함받고 중생받은 사람들은 마음의 그 형체는 지옥 갈래야 가지  못하고 그거는 다 천국 가고, 또 중생된 사람들의 마음과 이 몸이라는 이것은 안  죽고 영생으로 하늘나라에 갈 수도 있고 또 영원히 죽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과 몸 이 둘을 합해서 육이라 하는 것인데 우리가 예수 믿는  노력을 하는 것은 영이 천국 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아닙니다. 영은 이미  천국은 얻어 가지고 있어서 천국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영은 죽을래야 죽지  못합니다. 그러면 영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지금 노력하는 것 아니고 영이  가지고 있는 이 육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노력하는 겁니다. 육 구원을 위해서.

 그러면, 우리의 육은 이 현실을 통과해 가지고 이 현실 통과에서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도 있고 현실 통과에서 영원 멸망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육입니다.

 육이라고 말하면 심신을 합해서 육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이것도 뭐 여기서는 다른 사람들이 ‘심신을 합해서 육이라 한다’ 이래도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우리 서부교회 총공회 진영 밖에  나가면은 이 교리와 같은 교리를 가지고 있느냐 하면은 아주 다른 교리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단단히 굳게 서지 안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 마음과 몸을 합해서 육이라, 또 어떤 교파에서는 영은 마음이 영이요  몸은 내나 피 흐르고 하는 이 고깃덩어리 이것이 육이라, 그분들은 육은  고깃덩어리요 마음과 영은 하나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라니까 그분들은 영을  빼버렸습니다. 성경에 말하니까 영을 말하지마는 영을 모릅니다. 영이 뭐이  영인가 해서 영이 어떤 것인가를 모릅니다.

 영과 마음은 하나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교파는 거의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거의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그렇게 다 생각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영은 마음이 아니고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것이 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 말은 하나님의 그 신성의 속성대로 지음받은 것이  사람들의 영입니다.

 그러기에, 이 영은 단일체로 되어 가지고 있고 단일성으로 되어 있고 이 영은  종합체가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도 수많은 마음의 분자가 모여 가지고서 뭉쳐져  가지고 마음이 됐고 이 고깃덩어리도 수많은 분자 세포 지체들이 한테 뭉쳐  가지고서 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은 하나입니다.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도 단일체요 단일성입니다.

 이래서, 성경에 보면 영과 혼과 몸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영과 혼과  몸이라. 그러면 혼은 무얼 가리켜 말하는가? 혼은 우리의 마음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이런데 마음, 이성, 또 기억성, 또 감정성, 정서성 그런 것이 다  마음입니다. 그것이 다 혼입니다. 그러면 짐승은 혼과 몸은 있지마는 영은 없고  사람은 몸과 혼과 영이 있습니다.

 영은 영계에 속한 영물인데, 영은 영계에 속한 영물입니다. 물질이 아닙니다.

영은 영물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영물입니다. 그 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죽어도 영원히 존재합니다. 또 살아도 영원히  존재합니다.

 이래서, 짐승은 죽으면 그 몸은 이 흙으로 돌아가고 혼은 아래로 내려간다  이랬습니다. 혼은 아래로 내려간다.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간다. 사람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래서, 짐승도 사람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 있는데 다만 그것이 고등이고, 고등  그 물체고 또 조금 저급의 물체라 그렇게 구별할 수가 있지 마음은 사람들의  마음과 꼭 같은 요소가 짐승에게 다 있습니다. 짐승도 정서로서 울 줄도 압니다.

짐승이 슬플 때에 울 때에 눈물이 나옵니다. 짐승이 슬퍼 울기도 합니다. 또  짐승이 과거를 추억도 합니다. 또 기억도 합니다. 짐승이 회로애락을 감상도  합니다.

 이래서, 말씀하시기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또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이라  이랬는데 거게 영은 하나님의 영과 사람의 영이 중생돼서 하나된 그것을  가리켜서 말을 합니다.

 또, 육체의 소욕은 사망이요 영의 소욕은 생명과 평강이라 이랬는데 육체의  소욕이라는 육체의 소욕을 빼 놓고 그 밑에 모두 다 설명하기를 육체의 소욕은  감정, 또 시기, 욕심, 또 훼방, 당을 짓는 거, 이단 그런 것이 다 육체의  소행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시기하고 당짓고 훼방하고 또 미워하고 계획하고 모든 것을 경영하고  하는 그것은 고깃덩어리가 하는 게 아니고 마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육체에 마음이 한테 붙어 있는 것을 성경에서 얼마든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깃덩어리와 마음은 하나로서 육체요 사람의 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된 이 속성인 것을 이제까지 판별하지 못하고 나왔기 때문에 여게서  여러분들이 육은 심신이 합해서 육이요 영은 하나님의 속성대로의 것이 영이라  이렇게 가르치는 것을 여러분들이 단단히 깨닫지 못하면 이 바깥에 나가면 미혹  받아서 배운 거 다 뺏겨 버리고 맙니다.

 이래서, 사람이 이 현실에서 살면서 자기 중생된 영은 그거는 아예 구원 얻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생되면 죄도 짓지 안하고 죽지도 안합니다.

 그러기에, 중생된 영이 지금 천국 갈라고 우리가 예수 믿는 게 아니고 중생된  영은 천국을 가는데 중생된 영이 영원히 입고 타고 다닐 이 심신 이것을  구원해야 되기 때문에 심신 이것을 구원할라고 지금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오늘  믿는 사람들의 노력입니다.

 그러면, 이 심신 이것이 현실을 통해서 영생하는 이 심신이 될 수도 있고  영원히 멸망되는 심신도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시간은 영생하는  심신으로 살아나기도 하고 또 한 시간은 영원히 멸망받는 심신으로 죽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심신이라는 이것은 현실을 통해서 죽기도 하고  영생으로 살기도 하고 하는 이것이 현실에서 판별이 납니다. 판정이 납니다.

 그런데, 그 현실에서 판정나는데 여기 말씀하시기를 ‘죽지 아니하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죽지 안하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했습니다.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한다. 그러니까 현실에 우리의 심신이 죽고 또 우리의 심신이  살아납니다.

 우리의 심신이 마귀의 것이 된 이것이 죽고 예수의 것으로 살아납니다. 악의  심신이 이 악의 심신에서 죽고 의의 심신으로 피와 성령과 진리의 심신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여러분들 이 간단한 시간에 말을 할라 하면 그 말로  암만 해 봐야 알아듣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기가 양심을 써서 가만히 생각을  하면은 깨달아집니다. 이뭐 말로 할라 하면은 수많은 말을 그걸 짧은 시간에  암만 빨리 할라고 해도 그거 다 되지도 안하고 그거 또 넣어서 다 못 합니다.

이러니까 말만 빠르게 하니까 여러분들이 알아듣기만 어렵지 잘 모르는 것이라  말이오.

 이러니까, 여기서 말로 할 때에, 말로 할 때에 말로 여러 시간 걸쳐서 많이  장시간 말을 하면은 알 수 있는 그런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년 내내 말을  해도 말로 해 가지고는 모흠 것 있습니다. 말로 해서는 모를 것 있는 그런 건  자꾸 이렇게 말로 이래 하면 그 말하는 가운데서 인간의 말로 표시 못 하는 그런  것이 속에 있는 것을 그것을 자꾸 추측하고 감동받아 가지고서 깨달아지도록  그라기 위해서 말을 하는 것이지 그 신령하고 무한하고 보배로운 것을 인간의  말로서 다 표시 못 합니다. 인간의 방언으로는 표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데, 요 현실에서 어짜든지 죽어야 살아납니다. 현실에서 죽어야 살아나는데  죽기는 뭐이 죽는가 ! 옛사람 자기가 죽으면 새사람으로 살아납니다.

 다시 말하면 욕심은 자기 욕심이 있고 하나님 욕심이 있고 욕심이 둘이  있습니다. 욕심은 뭐 천도 만도 넘지마는 욕심을 분류한다면 두 가지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욕심은 인간의 욕심이 있고 하나님 욕심이 있다. 그러면 자기  욕심이 있고 하나님 욕심 있다. 인간의 욕심자기 욕심은 다 하나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욕심 자기 욕심, 욕심이라는 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하고 싶은 그게 욕심인데, 자기 욕심, 자기 취미, 자기 성질, 자기 뜻, 또  자기 평가, 자기 비판, 자기 지식 이것과 또 하나는 하나님 지식, 하나님 비판,  하나님 소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평가 또 이거이래서 크게 나누면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크게 나누면 둘로 나눌 수가 있어.

 나눌 수 있는데, 이 하나는 예수 믿기 전에 우리가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우리의 가졌던 생각, 가졌던 소원, 가졌던 지식, 가졌던 뜻, 가졌던 욕심,  가졌던 취미 이 모든 취미와 욕심과 지식과 지혜와 소원 이것은 다 어데서 나온  것입니까? 이것이 누구의 것입니까? 이것이 배암에게서 나온 것이요 마귀의  것입니다. 마귀의 소원입니다. 그것이 우리 사람의 소원이 되어졌고 소원의 뜻이  됐고 소원의 욕심이 됐고 인간의 성질이 다 됐던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으로 된  사람을 가리켜서 옛사람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현실에서 옛사람 죽이는 일을 하느냐 옛사람으로 사는 일을  하느냐? 옛사람으로 살면 옛사람 그것은 옛사람 그것은 원죄의 사람이요 본죄의  사람이요 악령의 사람이기 때문에 악령. 악성 악습, 악령은 자기중심의 영이  악령이요 악성은 자기중심의 인간성이 악성이요 악습은 자기중심의 연습한  버릇이 악습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현실을 당할 때에는 안 믿는 사람은, 불택자 안 믿는 사람들은  그것은 현실을 만날 때에 하나로 만납니다. 악령으로 만나고 악성으로 만나고  악습으로 만나고 이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이 범죄 아래에 속한 사람, 마귀의  유혹받아 가지고 있는 사람 원죄의 사람, 본죄의 사랑 이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이 사람으로 현실을 삽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 욕심대로 자기 뜻대로 자기 주장대로 자기 취미대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지식대로 자기 판단대로 자기 지혜대로 자기 좋아하는 대로  이렇게 삽니다. 자기 좋아하는 대로 이렇게 삽니다. 그렇게 살아서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 가지고 하루를 살았으면 하루 산 그것은 살았으니까 산  것이 모아서 산 것이 더, 하루 살았으면 삯 것이 더 커집니까 산 것이  작아집니까? 하루 살았으면 산 것이 커집니까 산 것이 작아집니까? 하루  살았으면 산 것이 커진다고, 하루 살았으니까 더 많아질 것 아닙니까? 하루  살았으니까 산 것이 더 커진다고 아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하나도 안  들고. 하루 살았으면 산 것이 이제 그만치 죽어서 산 것은 작아졌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네, 작아졌습니다.

 여러분들은 뭐 이거 지금 딴 데 가서 뭐 박사들 주 모아 놓고 이래 가르쳐도  모른다 그말이오. 이 세상 참 너무 허무합니다.

 이런데, 그 현실에서 이 자기 것 자기, 현실에서 자기로 되어 있는 자기로 살면  하루 살면 하루 죽었습니다. 현실에서 자기로 살면, 자기 뜻대로 살고 자기  성질대로 살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자기 소원대로 살고 자기주장대로 살고 자기  좋아하는 대로 살고 자기 비판대로 살고 자기 평가대로 살고 자기 지식대로 살고  이렇게 사는 것이 이것이 삶이 자라가는 것입니까? 삶이 지금 감퇴해 가는  것입니까? 감퇴해 가는 것입니다. 감퇴해 가는 것이오. 요걸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이 현실에서 살라고 하면 자기로 살면 그만치 삶이 감해져서  작아지고 산 것은 적어지고 죽은 것은 짧아지고 이렇게 되어지는 데로 현실에서  죽으면 살아난다 이랬습니다. 죽으면 살아난다 이렇게 말했어.

 죽으면 살아난다는 것은 자기로 사는 그것이 죽으면, 자기 성질로 살던 그놈을  죽여서, 자기 성질로 살던 자기 성질을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질로 삽니다.

자기 욕심으로 사는 자기 욕심은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욕심을 가리켜서  성령의 욕심이라 새. 성령의 욕심으로 삽니다. 자기의 성질은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질로 삽니다. 자기의 뜻은 죽이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뜻으로  삽니다.

 요렇게 살면 요 죽을 심신이, 현실을 통해서 영원히 죽을 심신이 현실을 통해서  영생하는 심신으로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자기 욕심대로 산다고 하면은 그 자기 욕심대로 현실을  살았습니다. 자기 욕심대로 살았으면 그거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죽이겠습니까?  살려 두겠습니까? 자기 욕심대로 살았으면 그게 죄입니까? 의입니까? 악입니까?  선입니까? 고것은 악령과 원죄 또 악한 습성 버르징이,  그러면 고 지금 자기 뜻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기 성질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비관해로, 자기 소원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취미대로, 자기로  살았으면 거기에는 산 것이 얼마나 들어 있고 죽은 것이 얼마나 들어 있습니까?  산 것이 얼마나 들어 있고 죽은 것이 얼마나 들어 있습니까? 자, 손가락으로 산  것은 얼마나 들어 있습니까? 죽은 것은 몇 개나 들어 있습니까? 전부 다 하나도  없이 전부다 죽었다는 거, 죽은 것이라는 거, 전부 다 죽은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 손 한번 들어 봅시다. 네, 다 죽은 것입니다. 그걸 꼭 우리가  잡아야 됩니다.

 우리가 현실을 당할 때에 거게는 현실에는 안 믿는 사람들에게는 욕심이 그  현실을 당했을 때 욕심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 욕심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자, 현실을 당했을 때 안 믿는 사람들의 욕심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뜻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생각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또 성질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세상을 살 때에 욕심이나 성질이나 뜻이나 또 비판이나 평가나 모든 그  경영이나 그런 것이 하나만 가지고 있습니까? 둘을 가지고 있습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만 가졌습니까? 둘만 가졌습니까? 하나만 가졌습니다. 하나만  가졌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제는 하나님이 오셔 가지고서 당신의 것을 우리에게 넣어  줘서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됐기 때문에 피와 성령과 진리의 것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걸 가리켜 속사람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안 믿을 때와 같이 현실을 당할 때에는 소원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현실을 당하면 소원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욕심이 하나입니까? 술입니까? 뜻이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비판과 평가가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그러면 그 둘이 이거할까 저거 할까 하는 신강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그러기에, 안 믿는 사람들은 하나뿐이오.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은  거 하나 있는데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것이 생겨져 왔습니다.

 새것이 생겨 왔습니다. 새것이 우리에게 들어올 수 없는데 어떻게 들어왔느냐  하면은 이 새것은 거룩하고 완전한 것인데 우리는 더럽기 때문에 새것이 부정타  하고서 우리에게 안 들어옵니다. 안 들어오는데 이 새것이 들어올 수 있도록  우리 부정한 것을 이 깨끗하고 완전한 것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놓은  것이 뭐입니까? 뭣이 길을 닦았습니까? OOO집사. 뭐이 길을 닦았어?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가 닦았어. ‘주님’ 할 게 아니라.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안하고는 아버지께 올 사람이  없다고 말씀한 대로 예수님의 대속이 대형으로 사죄해서 죄없이 해 버렸지  대행으로 전부 완전히 순종해서 의를 건설해 놨지 대화친으로서 자존자 주재자로  더불어 화친이 돼 버렸지 이러니까 이로 인해서 우리에게 지금 사람이 둘이 됐다  말이오. 안 믿을 때는 한 사람뿐인데 우리에게는 이 두 사람이 됐습니다.

 옛날 있는 사람을 가리켜서 뭐라고 말합니까? 그 사람 뭐라고 말합니까, 그  사람을? 처음에 있던 사람 이름을 뭐라 합니까? 옛사람.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생겨진 사람은 또 무슨 사람입니까? 새사람. 이제는 우리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우리에게 생겨졌습니다. 이라니까 현실을 만날 때에 그때에  내가 하나입니까? 둘입니까?, 손가락으로? 둘입니다.

 이 둘이니까 이 뭐이 들어서 시비를 해서 너거 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둘이 들어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 둘이 들어서 우리  마음에 싸우고 있습니다. 과거에 안 믿을 때는 뭐 이대로 해 버렸는데 이제 믿고  나니까 ‘그래 하면 안 된다. 이래야 된다.’ 이러니까 옛사람과 새사람이 둘이  자꾸 시비를 합니다.

 옛사람은 누구와 같이 할라 합니까? 악령과 안 믿는 사람들과 같이 할라  합니다. 그러면 옛사람으로 살면 안 믿는 사람하고 대립이 돼요 한덩어리가  돼요? 한덩어리가 돼요. 마귀와는 대립이 돼요 하나가 돼요? 하나가 돼요.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는 새사람으로 살라고 하면은 이 안 믿는 사람들하고는  대립이 됩니까 안 됩니까? 마귀하고는 대립이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다.

하나님하고는 하나 됩니까 안 됩니까? 하나 됩니다. 참된 성도하고는 하나  됩니까 대립이 됩니까? 하나 됩니다.

 이러니까, 이 두 사이 가운데에 끼어서 이래 볼까 저래 볼까 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이래서 로마서 7장에 말씀하시기를  속사람으로서는 하나님 법을 순종하고 겉사람으로서는 죄의 법을 순종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속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고 껍데기 사랑은  이 세상 법대로 살라고 애를 쓴다 그말이오.

 그러니까, 우리가 눈을 감고 하나님에게 기도해서 양심을 쓰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면은 속사람이 강건해집니까 겉사람이 강건해집니까? 속사람이  강건해집니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 성경 많이 보는 사람, 집회 가서 은혜받은  사람 그 사람은 속사람대로 현실을 살게 됩니까 겉사람대로 옛사람대로 살게  됩니까? 속사람대로 살게 됩니다.

 이라니까 속사람대로 살게 되면은 누가 죽습니까? 옛사람이 죽습니다. 또  옛사람대로 살게 되면은 속사람은 죽습니까? 곯아 쳐박힙니까? 죽지는 안하고  파묻혀 버립니다. 쳐박아 놓고 지끈지끈 밟아 버립니다. 옛사람이 밟아  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죽지 안하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 네가 현실에서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아나야 영생이 된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성령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성질대로 살고 하나님의 소원대로 살고 하나님과  한덩어리 돼 사는 이 사람이 새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죽습니까? 영생합니까 이 사람은 안 죽습니다. 영생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만일 현실을 당했을 때에 새사람 이 사람으로 살면 영생하는 사람이  자랍니까 이제 죽는 사람이 죽습니까? 영생하는 사람이 자랍니다. 영생항는  사람이 자라요.

 그러면 어떤 사람이 하루 살았는데, 하루 살았는데 산 것이 죽을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하루 종일 죽을 사람으로 살았어. 죽을 사람으로 살았으면, 그 사람  하루 살았는데 이 심신은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영원히 죽었습니다. 만일  하루 사는데 그 사람이 죽을 사람으로 살지 안하고 영생하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그 사람은 하루 산 심신의 기능이 죽었습니까? 영생으로 화해졌습니까? 영생으로  화해졌습니다.

 이러니까, 우리 현실에서는 무슨 일을 해야 되느냐 하면은 죽이고 살리는 일 두  가지를 해야 됩니다. 우리 현실에서 이거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 썩은 사람이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 현실에서 누구를 죽입니까? 우리 현실에서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립니까?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살립니다. 옛사람 나를 죽이고 새사람 나를  길러서 키웁니다.

 옛사람 나는 뭐인데? 마귀 고놈이 와 가지고 우리를 타락시켜서 원죄 내  중심으로 내 뜻대로 내 소원대로 내 욕심대로 내 성미대로 내 기분대로 나  좋아하는 대로 사는 고 나 좋아하는 대로 내 욕심대로 내 뜻대로 내 소원대로 내  주장대로 내 기쁨대로 하는 고게 뭐입니까? 고게 뭐입니까? 저 좋은 대로 제  욕심대로 제 뜻대로 제 기쁨 대로 제 소원대로 제 뜻대로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고것을 한 말로 말하면 고게 뭐입니까? 따라합시다. 악! 악! 악! 악!  악입니다.

 이러니까 악이 영생할 수 있소 없소? 악은 죽여야 되지 않습니까? 악이 그것이  자기중심 위주라는 악 그게 자기인데, 악 그게 자기인데 악 그것이 자기  몸입니까? 자기 마음입니까? 몸입니까? 마음입니까? 몸도 마음도 다 악이 됐지.

 그런데 그 몸과 마음에서 만일 악령과 악성과 악습을 싹 탈색을 시켜서 뽑아내  버리면 마음과 몸은 악입니까? 깨끗한 것입니까? 악입니까? 깨끗한 것입니까?  깨끗한 것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현실에, 악으로 물들어 있는 악의 것이 되어 있는 이 악을 싹  탈색시킵니다. 현실에서 악을 탈색을 사키고 우리 심신이 악의 것이 돼 있는 걸  악을 빼서 악을 탈색시켜서 악을 없애 버리고 뭘로 새로 물들여서 감염합니까?  뭘로 물들입니까? 뭘로 물들입니까? 몇 가지로 물을 들여야 됩니까? 세 가지로  물을 들여.

 진리로 물을 들여. 이러니까 과거에 죄의 몸이 진리의 몸이 됐어. 죄의 생각이  진리의 생각이 됐어. 삐뚤어진 욕심이 바른 욕심이 됐어. 악령의 감화의 모든  생각이나 뜻이나 마음이 이제는 무슨 감화입니까? 무슨 감화? 성령의 감화로.

이래서 현실은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현실에 죽이는 작업을 잘하고 하면  살아나는 작업은 절로 되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현실에서 안 죽을라고, 손해 안보고, 안  죽고, 자기 유익되고, 안 죽을라고, 손해 안 볼라고, 자기 욕 안 얻어 먹을라고,  이와 같이 희생 안 할라고, 낮아지지 안할라고, 천해지지 안할라고 자꾸 이렇게  하는 그 소원과 성질 그것이 죽을 성질입니까? 영생할 성질입니까? 죽을  성질이라 죽을 성질.

 이러니까, 죽지 아니하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현실에서 우리는  죽이는 이 일을 노력해야 됩니다.

 만일 현실에서, 현실에서 죽이는 일을 하고 죽이는 일을 하고 나면, 현실에  죽이고 새로 이 새것으로 살아나는 일, 현실에서 죽이는 일을 하고 나면은 그  뒤에 기쁩니까 현실에서 안 죽는 일을 하고 나면은 그 뒤에 기쁩니까? 죽이는 일  하고 나면 그 뒤에 기쁩니다. 그런 경험이 있어요? 다 그런 경험이 있습니까?  자, 우리의 모든 이성이나 마음이나 생각이나 감정이나 욕심이나 그것이 다 두  종류인데 피와 성령과 하나, 하나님의 것과 하나된 것은 그것이 산 이성입니까?  산 감정입니까? 죽은 감정입니까? 하나님과 하나된 거는 산 겁니까 죽은 겁니까?  산 겁니다.

 우리에게는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 산 것은 많고 죽은 것은 작은  사람, 산 것을 많고 죽은 것은 적은 사람 있습니다. 그라면 그 사람이 현실을  당할 때에 죽은 것이 많은 사람과 죽은 것이 작은 사람과 그 두 사람이 현실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하면 죽은 것 많은 사람이 쉽겠습니까?  죽은 것이 적은 것이 쉽겠습니까? 네, 현실에서 우리에게 죽은 것이 많으면 의로  살기가 힘이 듭니다. 알겠습니까? 죽은 것이 많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생명  생활하기가 힘이 듭니다.

 죽은 것은 다 없애 버리고 전부 그 사람에게는 백의 구십 구가 살아있고 죽은  거는 하나뿐입니다. 그 사람이 현실 만났을 때에 산 생활할라 하면은 힘이  듭니까 뭐 힘이 안 들고 수월합니까? 수월합니다. 이러니까, 평소에 자꾸 이  죽은 자 이놈의 죽은 자의 세력을 자꾸 이것을 줄여야 됩니다. 죽은 자의 세력을  자꾸 현실에서 죽여야 돼. 현실에서 죽은 자 그놈을 죽여 버리고 또 새사람으로  살아서 장성해지고 자꾸 이러면 그 사람은 얼마 동안 몇 해 동안 예수 믿고 난  다음에는 그 사람은 이제 죽일 자는 조그매만 남아 있고 살린 자는 크고 그라면  그 사람의 생활이 의롭게 되겠습니까? 범죄 생활 되겠습니까? 의롭게 됩니다.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요 현실에서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하는 요것을 굳게 잡읍시다.

 그러면, 우리 현실에서 우리 할 일이 무슨 일입니까? 우리 현실에서 할 일이  사는 일 하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까? 죽일 자를 죽이고 산 자를 기르는 것이  우리 할 일입니까? 현실에서 우리 할 일이 한 가지입니까? 두 가지입니까?,  손가락으로? 할 일이 두 가지라. 죽일 자는 죽이고 산자를 자꾸 길러야 돼, 자꾸  키워야 돼. 이것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노력인 것입니다.

 이래서, 현실에 요것이 자기 할 일인 줄 알고, 그러면 처음 사랑을 가지라.

그라면 하나님과 연결되고, 빛을 나타내고, 또 낙원에 가서 낙원생활 하고, 또  생명 과실 먹고, 뭣 하면? 처음 사랑의 행위를 하라. 처음 사랑의 행위는 자기  이 심신이, 자기 심신이 대행 사죄, 대행, 칭의, 대화친의 화목 제물 이리  되니까 자기 심신이 손해가는 것입니까? 심신이 유익을 보는 것입니까? 이거야  얼떨떨하다. 자기 심신이 소금처럼 녹아지는 것입니까? 심신이 자꾸 커단하게  붓는 것입니까? 녹아지는 것이라, 녹아지는 것. 녹아지는 것.

 심신이 녹아지는 것, 다시 말하면 자기 옛사람을 죽이는 것, 기독자들이  세상에서 낙원 생활 할라 하면은 뭐입니까? 자기를 죽이고 새사람 자기로 사는  것입니다. 기독자가 땅위에서 낙원 생활 할라면 기쁜 생활 할라면은 죽일 자를  죽여야 기쁘고 산 자를 살려서 길러야 기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현실은 죽이기만 하는 일입니까? 살리기만 하는 자입니까? 살기만  하는 일입니까? 자, 우리 현실은 살기만 하는 것이 우리 일인지 죽이기만 하는  것이 우리 일인지 또 살리기만 하는 것이 우리 일인지 이 현실은 우리 하는 일이  뭐인지?  살기만 하는 일 하나, 사는 일만 자꾸 살기만 사는 일만 하는 일 하나있고 또  하나는 자기 죽이고 또 새사람 자기를 살려서 키우고 하는 일 하나 있고, 이  둘이 있는데 우리는 뭣해야 됩니까? 현실에서 사는 일 살리는 일 이거 하는 것이  이거 하나만 살리는 일 사는 일 하는 것이 이것이 안 믿는 사람들의 일은 전부  요것만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전부 이것만 해요. 사는 일 살리는 일 요것만  합니다.

 요것만 하면은 그 사람 하루 종일 그것만 했습니다. 한 오십 년을 그짓만  했습니다. 자기 살리는 일만 했습니다. 그랬으면 오십 년 했으면 그 사람은 오십  년 한 것은 뭐 했습니까? 자기를 완전히 오십 년 동안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오십 년 동안을 자기를 죽이고, 자가를 죽이고 또 자기를  길렀습니다. 죽이는 자기는 옛사람 자기요 기르는 자기는 새사람 자기요. 이렇게  현실 현실마다 죽이고 살리고 죽이고 살리고 죽이고 기르고 하는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인 것이니까 요것을 우리가 명심하고 계속해야 됩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단언코 말한다 날마다 죽노라’ 이랬습니다.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인다 말이오. 날마다 죽여. 바울이 날마다 죽은 것은 옛사람  죽이는 것입니까? 새사람 죽이는 것입니까? 사람 죽이고 뭘로 산다 말입니까?  예수로 산다 말이오. 새사람으로 산다 말이오. ‘단언꼬! 뭐 주저주저할 게  아니라 확정을 지우고 내가 말한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는다 말은  또 무슨 말입니까? 날마다 산다는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이러니까, 우리 현실에서 자기를, 옛사람 자기를 찾아 가지고서 자기를 죽일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사람은 헛일입니다.

 땅의 것을 욕심내고 하늘의 것을 모르는 땅의 것만 욕심 내 사는, 땅의 것만  욕심 내 사는 것, 다른 사람 다 모르고 저만 알고 사는 것 고것은 죽여야 될  사람입니까? 살려야 될 사람입니까?.

 죽여야 될 사람인데 그 사람을 죽이지 안하고 그 사람을 살리는 것으로 애를  씁니다. 하루 종일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을 살리고 해 놨으면 기쁘고 오늘은  성공했다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 마귀의 유혹을 받아서 꺼꾸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현실에서 꼭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이 일을  잊어버리지 안해야 되지 요거 잊어버리면 헛일입니다.

 가정에서 뭐 부부간이든지 형제간이든지 회사서든지 어데서든지 자기가  옛사람만 죽이면, 옛사람만 죽이고 새사람으로 살면 안 믿는 사람들도 욕을 하고  조롱을 하고 대적을 하지마는 속으로는 두려워하고 존경을 합니다. 그만  하나님이 제 편이 되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거게서 그만 대장이 되고 왕이 돼  버리고 맙니다.

 이래서, 이거 참 어려운 건데 오늘밤에는 이제 ‘죽지 안하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겠고’ 하는 거, 현실에 죽음의 수입이 없으면 삶의 수입이 없습니다.

현실에서 죽이는 성공을 못하면 살리는 성공은 못 합니다.

 어데서든지, 요거 꼭 각오하고 내가 요 시간에도 ‘내가 요 시간에 죽일 것이  뭐이며 요 시간에 살 거 뭐이냐?’ 고 시간에 죽여야 되 그 놈을 발견해 가지고  고놈을 죽이도록 전력을 기울이고 고 시간에 살려서 기를 자가 뭐인고 고걸 알아  가지고서 고 자를 기르면은 우리는 잠시 후면은 영광스러워지고 존귀해지고 뭐  온 세상도 다 차지하고 영육이 다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사람 뭐 십 년 만이면 완전히 변해져 버려. 요 일을 만일 십 년 동안 하다고  하면은 뭐 사람이 상상도 못 하게 변해져 버립니다. 요일을 하루 동안만 해  보십시오. 자기에게 낙원이 되는가 안 되는가?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어짜든지 꼭 죽이는 일, 가정에서 둘이 내외분이 딱 있을 때도 ‘요시간에 내가  죽어야 된다’ 요 시간에 자기 ‘죽이면 살아나요. 죽이면 기쁘고 즐겁고  성공되고 하나님이 내편 돼. 하나님이 내편 되면 대적 그까짓 거 무슨 힘 있어?  아무 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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