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외식주의

 

1988. 4. 2. 새벽

 

본문 : 사도행전 12장 1절-17절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애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기독교는 진실한 신앙의 사람들과 외식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신실한 신자가  외식자 되는 것이 멀지 아니하고 또 외식자들이 진실한자 되는 것도 멀지  않습니다. 바로 한테 붙었습니다. 그러기에, 진실한자가 당장 외식자 되고  외식자가 또 힘쓰면 당장 진실한 자로 옮겨 설 수 있는 것이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외식자는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화 있다고 그렇게 몇 가지를 간추려서 일곱  가지를 간추려서 말하면서 화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외식 신자는 어떤 것이 외식 신자인고 하니 신앙 위주의 신자가 아닌 것은 다  외식 신자입니다.

 그 신앙이라 말은 믿음이라는 말로 그렇게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기독교에서  신앙이라 하는 것은 유일하신 자존하신 이 하나님 한 분만에게 순종한다 하는  것을 가리켜서 신앙이라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면, 외식 신자는 어떤 것이 외식 신자인고 하니 창조주시오 자존자시요  주권자이신 주님에게 피동되지 아니하고 피조물들에게 피동되는 것을 가리켜서  외식 신자라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보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중히 여겨서 사람에게  끌리는 힘이 하나님에게 끌리는 힘보다 강한 사람을 가리켜서 기독교 인본주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주님이 우리를 동으로 가라 하고 만일 모든 인류 전체나  혹은 자기와 가장 친한 사람이나 자기가 제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나 자기가  제일 높이 두렵게 실력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나 어떤 사람이든지 주님과 그  사람과 둘이 비교가 될 때 있습니다. 또 비중을 내가 판단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이를 사랑하고 저를  미워하든지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둘은 섬길 수가 없다.

요것을 에누리를 하면 안 됩니다. 둘은 섬기지 못합니다. 절대로 못 섬깁니다.

 그러면, 거기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한 데에 하나님은 곧  우리를 구원하신 구주를 말하고, 또 거기에 재물은 뭘 말했는가? 재물은 곧  물질을 말했습니다. 물질을 말했으면 그 물질은 뭐인가? 물질계에 있는 전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질계에, 그러면 하늘도 땅도 또 별도 인간도 나라도 민족도 돈도 이 물질의  것을 나타내고 있는 과학도 그런 거 다 재물입니다. 그것이 물질이라  그말입니다.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기지는 못한다. 왜? 하나님을 물질보다 귀하게  여기면 하나님 섬기는 것만 되고 물질 섬기는 것은 안 된다. 또 물질과 하나님과  비교와 비중이 될 때에 그때에 물질을 중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그 다음으로  여기는 그 사람은 유물주의자 물질주의자지 하나님 섬기는 건 아니다.

 둘은 섬길 수 없다는 그 말은 둘도 섬길 수 있고 셋도 섬길 수 있고 넷도 섬길  수 있는데 왜 둘을 섬기지 못한다는 이 말이 무슨 말했습니까? 둘을 섬길 수  없다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것도 섬기고 저것도 섬기고 둘을 섬길 수 있지  안해요? 또 셋도 섬길 수 있지 안해요? 셋도 좋아할 수 있지 안해요?  이런데. 여기에는 둘을 섬기지 못한다. 이를 사랑하고 저를 미워하든지 이를  귀히 여기고 저를 천히 여길 것이니라 이랬으니까 둘을 섬길 수 없다는 그 말은  무슨 말이지요? OOO 목사님. 예? 네, 모든 것보다 제일을 말합니다. 알겠습니다.

제일. 제일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제일로 섬기지 안하는 그것은 제이 제삼으로 섬기는 것은 제일이 들고 나서면  다 거기에 따르고 제이삼은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일로 섬기지 안하면 하나님은 아무 상관하지  않는다. 그는 음녀요 음행한 음녀로 보지 주님의 정절부인인 성결한 교회로는  인정치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가리켜서 간부라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사람은 뭐 이것도 섬기고 저것도 섬기고 ‘다 좋아한다’ 다 좋아할  수 있습니다. 다 좋아하지마는, 좋아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데 그 순서에  지위가 있습니다. 이래서 유다서에는 그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영원한 어두움에 던져 버린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지위라는 게 뭐입니까? 제일로 귀중히 섬길 거, 또 그 다음으로 귀중히 여길  것, 그 다음으로 귀중히 여길 것, 이래서 제일 제이 제삼 제사 평가적으로 제오  제육 이렇게 평가적으로 제일 평가에 두는 거 있고 제이 평가에 두는 거 있고 다  이렇게 순서가 있는데 그걸 가리켜서 지위를 지키라 이랬습니다.

 이 평가라 하는 말이나 비판이라는 말이나 다 그런 걸 두고 말합니다. 평가라,  그러면 사람을 금반지와 사람을 두고서 거기에 대해서 평가라하는 그 평가는  뭐이냐? 이 금반지는 사람만은 못하다. 사람과 비교할 때에 사람만은 못하다. 쇠  덩어리하고 비교할 때에 쇳덩어리보다는 이게 귀하다. 은덩어리하고 비교할  때에는 이 금덩어리가 은덩어리보다는 하다.

 모든 다른, 것과 비교해 가지고서 그것의 가치를 정하는 것을 가리켜서 평가라  그렇게 말합니다. 평가라는 말 한 마디만 들어도 그것이 아주 깨달음이 많고  우리에게 크게 도움이 됩니다.

 이래서, 무엇이든지 고거 하나만 가치를 삼지 안하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다  연결시켜 가지고서 이것은 그 위치의 수로 말하면 이거는 위치적으로 일호다,  이호다, 백호다, 천호다, 만호다, 얼마든지 그 호수가 다 정해 있는데 그런 것을  상관없이 고것만 두고 가치를 정하는 것은 틀리기 때문에 평가라 말은 이것과  저것과 모든 것과 비교해가지고서 비평해 가지고 가치를 정하는 것이 평가라, 또  비판이라 하는 것도 같은 말입니다.

 이래서, 외식이라 하는 것은 어떤 게 외식이냐? 외식은, 자존자 창조주 또  주재자 주권자 만왕의 왕 이분이 제일 큰 분이신데 이분이 우리를 구원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이분을 주로 삼지 안하고 이분을 제일로 삼지 아니하고 이분  외에 민족을, 국가를, 인류를, 문화를, 돈을, 어떤 것이라도 이것보다 더 크게  높이 석길 때에 그것을 가리켜서 기독교에서 못 쓸 주의들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민주주의니 하는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인데 기독교에서 쓰는 거와는  다릅니다. 민주주의라 말은 유물주의에 대항해서 민주주의라 인간주의라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래서, 기독교에서 유물주의, 또 정치주의, 도덕주의, 사회주의, 또 기독교  안일주의, 또 기독교 정실주의, 또 기독교 지방주의, 이 모두 말하는 것은  주님보다 그것을 낫고 앞세우는 것을 가리켜서 주님과 비교해 가지고서, 주님이  ‘보다 나를 사랑치 아니하면 안 된다. 네 부모와 형제와 자매보다도 나를  사랑치 아니하면 안 된다.’  또, 어떨 때는 말하기를 ‘네 부모와 형제와 자매를 미워하지 안하면’ 그러면  미워한다 말은 무슨 말이요? 미워한다 말은 무슨 말이지요? 주님과 비교할 때에  주님을 사랑하겠느냐 그걸 사랑하겠느냐? 주님을 사랑하면 그걸 미워하는 것이  되고 그걸 사랑하면 주님을 미워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와 형제와 자매와  처자를 미워하지 안하면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그 말은 그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치 아니하면, 그것들을 주님 다음으로 두지 안하면 주님 믿을 수 없고  신앙생활을 가질 수가 없다 하는 그 말입니다.

 이래서, 그라면 그것이 언제 그리 되는가? 반드시 우리 현실에서는 물질이냐 또  주님이냐? 뭐 물질이냐 사람이냐 물질이냐 사건이냐 그런 것 많지마는 여기  기독교에서 주의라 유물주의니 인본주의니 또 사회주의니 도덕주의니 하는 그런  것은 주님과만 비교해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만.

 주님과만 비교를 해 가지고서 주님보다 그것을 높이 하는 것을 가리켜서 그렇게  주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걸 주로 삼는다 말이오. 제일로 삼는다 그말이오.

 그러면, 기독교 유물주의 되기 쉽다는 말은 우리 현실에서 반드시 물질이냐  주님이냐 둘이 지금 비교가 돼 가지고서 어느 것을 귀중히 여길 것이냐 하는  그것이 우리에게 언제든지 봉착돼 나갑니다.

 그러기에, 물질이냐 주님이냐 할 때에 물질을 내가 손해 안 볼라 하면은 주님을  손해봐야 되겠고 물질을 잡을라 하면은 주님을 내놔야 되겠고 주님을 잡을라  하면은 물질을 내놔야 되는데 주님과 몇이 한 덩어리지요, 손가락으로? 주님과  몇 가지가 한 덩어리입니까? 주님과 몇 가지가 한 덩어리요? 또 가르쳐 놓으면  그것만 알지 ‘세 개 세 개씩, 세 개씩 새 줄이면 몇 개고? 계란 세 개씩 세  줄이면 몇 개고?’ 그라면 얼마입니까? OOO 권사님 얼마요? 아홉? 삼삼구  아홉이지. 그거는 삼삼구 아홉인데 그러면 알밤이 세 개씩 세 개 있으면  얼마입니까? 얼마요? 몇 개? 아홉 개 아니오? 이런데 ‘나는 그거는 모르는데요?  ‘안 배웠나?’ ‘나는 안 배웠습니다.’ ‘안 배웠어? 계란?’ ‘아, 나는  계란은 배웠지요.’ 계란 배웠으면 계란이나, 계란이 세 개씩 세 개면 아홉 개  될 것이고 공이 세 개씩 세 개면 아홉 개 될 것이고 사람이 셋씩 셋이면 아홉  사람 될 것이고 그거 그렇게 돼 나가야 되지 꼭 하나만 알면 그라면 어찌  됩니까? 자꾸 응용을 할 줄 알아야 돼요.

 주님은 몇 가지와 하나입니까? 이거라. 말하지 안했어요? 성령과 피와 물 이  셋은 하나라. 그러면 성령은 하나님이시오. 피는 곧 대속하신 주님이시오. 물은?  물은 진리요. 이 셋은 하나라. 이 셋이 하나 돼가지고 우리를 성화시킨다 해서  이 셋이 ‘증거하는 자는 이 셋이니 곧 하나이니라’ 말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진리와 비교되는 것은 곧 주님의 대속과 비교되는 것이요  하나님과 비교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진리와 비교되는 그것은 ‘진리냐 사람이냐?’ 진리와 비교되는 것은  그 사람이 물질과 진리, 자기 친척과 진리 요 둘인데 친척을 잡고 진리를  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진리를 버렸습니다. 진리는 버렸어도 주님은 버리지  안했습니다. 그 말 맞소? 그 말이 맞습니까? 진리는 버려도 주님은 버리지  안했다 그말이 맞소? 진리는 버려도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는 그 사람이 버리지  안했다. 조 학생, 너? 대답해봐. 진리는 버려도 예수님의 대속의 피공로는  버리지 안할 수 있을까요? 못 하지. 그러면 대답을 똑똑히 하지 못해. 맞았어.

 이러니까, 주님 버렸으면 진리 버렸고 또 성령 버렸고 또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를 버렸으면, 그게 주님 버린 건데. 대속의 공로를 버렸으면 진리 버렸고  하나님 버렸고, 하나 버리면 셋을 다 버린 것이 됩니다. 그 셋은 하나인 것을  언제든지 기억해야 돼요.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의 그 친척과 진리와 둘이 이와같이 지금 비교가 될  때에 둘 중에 하나만 취하지 둘을 다 취하지 못하게 될 때에 그때에 할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을 버리잠도 안 되고 진리버리잠도 안 되고, 주님을  버리잠도 안 된다 그말은 진리를 버리잠도 안 되고 예수님의 대속을 버리잠도 안  된다는 그말 아닙니까?  주님을 버리잠도 안 되고 자기의 친척을 버리잠도 안 되고 둘 중하나 밖에는 못  취하게 될 때에 자기 친척을 잡고 가면은 그 사람은 주님과 진리와 하나님을  버렸습니까 안 버렸습니까? 버렸습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무슨 주의자입니까,  기독교? 기독교 인본주의자가 됩니다. 기독교 인본주의자가 돼요.

 또, 그 사람이 자기가 참 따르고 있는 좋아하는 목사가 있는데 그 목사가 한  덩어리가 돼 가지고서 이래 있는데, 한 덩어리 돼 가지고 있는데 자기 어머니가  가 가지고서 가자 이라니까 이거 어머니를 배반 안 할라하면은 목사를 배반해야  되겠고 목사를 배반 안 할라면은 어머니를 배반해야 되고 그럴 때에 그 사람이  목사보다 어머니가 크면 어머니 따라 올 것이고 어머니보다 목사가 크면 목사를  따라갈 것입니다.

 이제 어머니를 따라왔습니다. 목사를 버리고 어머니를 따라왔습니다. 이라면 다  된 게 아니고 그러다가 나중에는 또 무슨 시험이 닥쳤느냐하면은 목사보다  어머니가 낫다고 어머니 따라왔는데 진리와 어머니와 둘이 딱 대립이 됐습니다.

이래서 진리 따라갈라면은 어머니 버려야 되겠고 어머니 따라갈라 하면은 진리  버려야 되겠고 고럴 때에 어머니를 따라갔으면 그 사람은 무슨 사람입니까?  인본주의.

 그럴 때에 진리를 따라갔으면 그 사람은 무슨 사람입니까? 신본주의인데 그  사람을 가리켜서 신앙주의라 그렇게 말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을  신앙주의라. 주님 따르는 사람을 신앙주의라 이랍니다.

 이러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에게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 눈을 밝게하는 데에  아주 중요합니다.

 이래서, 그러면 제가 지금 행동하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 예를 들어서 목사를  따라서 행동을 합니다. 목사를 따라 행동하는데 그러면 목사따라 행동하는 그  행동이 목사를 따르는 것이 진리를 따르는 것인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인지  예수님의 대속을 ‘따르는 것인지 사람을 땋는 것인지 어찌 압니까? 뭘로  압니까? 뭘로 아요? 뭘로 알지?   목사를 따르는 것인지 진리 따르는 것인지 성령, 성령은 하나님인데 성령  따르는 것인자 예수님의 피공로를 따르는 것인데 목사를 따르는 것인지 그것을뭘  보고 알 수가 있습니까? ‘나무를 모르면’ 뭐라 했소? ‘열매를 보아알 수  있느니라’ 그러면 진리 따르면 열매가 뭐인데? 열매가 뭐이지요? 옆태는 뭐라고  배웠어요? 행동 아니요? 행동이 열매요 사람이 열매입니다. 행동이 그 열매요  행동보다 더 마지막 열매는 사람입니다. 그 열매를 보아 알 수 있어  그런데 그 따르는데, 따르는데 그 모든 행동이 진리로 나타나면은 그 땋는 것이  뭐입니까? 목사 따랐으면 그게 인본주의입니까 신앙주의입니까, 신본주의입니까?  누구 따랐소. 주님 따른 게 돼.

 또 그러는데, 행동이, 행동과 자기라는 사람이 아주 진리가 아닌 비진리  비영감적인 행동과 사람이 돼 갑니다. 그러면 자기가 따르고 있는 그 목사는  무슨 목사지? 그 목사하고 진리하고 영감하고 하나님하고 대속하고 한덩어리가  돼 가지고 있소 안 있소? 안 돼 가지고 있는 증거라.

 이렇게 해서 눈을 밝아서 요리 심사하고 조리 심사하면 환하게 압니다. 이래  가지고 심사해서 천인 만인이 판정을 못 해도 고런 사람들은 딱 판정합니다.

 이러니까, 판정하니까 천인 만인과 대립이 되니까 천인 만인들이 다 욕을 하고  핍박하고 죽여 버리지마는 세월이 지나가면 알게 되기 때문에 선지자를 죽인  사람들이 뒤에 잘했다 합니까 뒤에서 후회를 합니까? 뒤에 후회해, 뒤에 후회해.

 왜 뒤에 후회합니까? 선지자를 죽인 사람들이 뒤에는 선지자의 무덤을 짓고  비석을 만들어 세우고 이렇게 하는데 왜 뒤에는 그들이 후회를 하고 알게  됩니까? 왜 그렇습니까? 왜 그렇지요? 결과를 보고. 결과가 나왔다 그말이오.

 미래가 현재되고 현재가 과거되니까 과거가 되고 보니까, 그 현재 될때는  이럴까 저럴까 몰랐지마는 과거가 되고 보면은 그것이 열매가 나타났기 때문에  안다 그거요.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도 심사할 때에 그 사람을 뭐인지 저건지 모르고  속단하고 속평하면 안 됩니다. 아는 사람들은 하지마는 그래 놓고 살며시 그런가  저런가 이래 의문으로 둬 두고 나서 조금 있다가 보니까 그 열매가 맺어지는데  결과가 맺어지는데 그게 아주 사람이고 삯군이요 절도요 강도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로구나.

 그러면, 하나님과 하나님은 성령이오 하나님과 진리와 예수님의 피와 한 덩어리  된 사람에게 따르다 보면은 그 결과에 맺어지는 것은 뭐이 맺어지겠습니까? 뭐이  맺어지지요, 저 O집사님? 네, 맺어지는 것이다 진리요 맺어지는 것이 영감이요  맺어지는 것이 예수님의 피공로요. 맺어지는 것이 그것이 죄요 인간이요 또  예수님의 대속과 반대되는 것이요.

 그러면, 내가 순종해서 이 세 가지를 점점 입는 것이 되어지느냐 내가 거기에  따르고 보니까 이 세 가지를 벗는 것이 되어지느냐 하면 안다 그거요. 환하게  아는데 어두워 놓으면 모릅니다.

 이래서, 오늘 아침에는 기독교 인본주의니 세상주의니 유물주의니 혈육주의니  정실주의니 기독교 무슨 주의 기독교 무슨 주의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주의 외에  것은 다 못쓸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주의 외에 기독교 무슨 주의라는 거 모든 거 있는 그것은  뭐와 비교해서 그것을 낫게 여기는 걸 가리켜서 그렇게 주의라고 해니까? 돈하고  비교해서 그렇습니까 사람하고 비교해 그렇습니까 뭣과 비교해 가지고서 보다  중히 여기는 것을 가리켜서 기독교 무슨 주의라 그렇게 말합니까? 네, 주님과  비교.

 요걸 오늘 아침에 지금 가르칠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비교. 다른 거와  비교하지 안하고 주님과 비교해서 주님보다 앞세우고 귀하게 여기면 고것은  기독교, 만일 목사를 주님보다 진리보다 예수님의 피공로보다 귀중히 여기면  고것은 무슨 주의입니까? OOO 권사님 인본주의?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를  붙여야 돼.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 인본주의. 고거 기독교 인본주의라.

 또, 자기가 이렇게 믿어 나가다가 자기 혈육의 천척이 있습니다.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과 진리와 비교될 때에 요라는 것이 진리는 진리인데 요라면  가족을 버리는 것이 되고 또 가족을 내가 안 버리고 이렇게 잡을라고 하면은  진리를 버리게 될 때에 고럴 때에 그 사람이 가족을 버리고 진리를 취하면 그  사람을 무슨 주의라 합니까? 저OOO? 신앙주의. 기독교 신앙주의.

 그랬는데, 고 둘이 비교되는데 그 눈물을 흘리면서도 참 기가 차지마는 진리  때문에 할 수 없어 진리를 잡고 그 사랑하는 처자와 가족을 버리고 진리를  지키면 그 사람은 기독교 신앙주의입니다. 신앙주의.

 이런데, 그럴 때에 참 눈물을 머금고 어쩔 수 없어서 진리를 버리고 이제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나 애인이나 할 수 없어 진리를 버리고 그리 따릅니다.

고거 뭐입니까? 예? 기독교 인본주의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은 이렇게 쪼갭니다. 벙벙하게 그런 게 아니라. 뭐 이것도  좋다 하고 저것도 좋은 게 아니라. 꼭 당신이,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는 이 말을 예사로 들을 게 아닙니다. 주님은 보다 제일로지 둘째로  삼으면 주님은 그는 창녀로 봅니다. 창녀. 창녀로 보고 당신은 아주 분히  여깁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보면은 뭐한다 했지요? 시기하기까지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시기. 시기죄가 둘째 죄인데 시기죄는 살해가 생기는 것입니다.

시기에는 죽음이 생깁니다. 시기죄가 무섭습니다. 이간죄보다도 시기죄가  독합니다. 시기죄가 몇째 죄요, 인간의 죄 중에 몇 호 죄가 시기죄입니까? 예,  네 이호 죄가 시기죄라, 이호 죄. 가인은 아벨을 그 시기죄로서 동생을 죽였어.

 이러기 때문에, 오늘 아침에는 기독교 무슨 주의 무슨 주의 하는 것은 이  주님과 비교해서 주님보다 앞세우는 그것은 그 주의가 된다 그겁니다.

 예수를 평생 믿고 장로 목사해도 마지막에 보면 ‘저 사랑은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하나 있다, 둘 있다, 셋 있다, 넷 있다, 뭐 열 있다, 백 있다.’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그러면. 신앙주의는 어떤 게 신앙주의냐? 모든 피조물 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고것이 기독교 신앙주의인데 내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하는 것은 요렇게  믿는 사람을 보겠느냐 그말입니다. 예수 믿는 이 믿는다는 사람 숫자가 없는 게  아니라 이렇게 따져나가서 예수를 믿기 때문에 이래 따지니까 까끌까끌하고  까다롭지마는 이거 참 웃으면 좋겠는데 거기에는, 웃으면 안 되겠고 거기에는 또  그저 화평하면 좋겠는데 거기에는 소금을 싹 찌트리면서 성을 안 내면 안  되겠고,  이러니까, 기독 신자는 옳은 신자는 자기가 일생 동안 살아도 그 사람을 무슨  사람인지 모릅니다. 이 면은 보니까 요 사람이다, 이건이다,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인 줄로 평가했는데 또 저 면 보니까 아주 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평생  같이 살아도 모르는 사람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조 사람은 기독교  신앙주의라’하는 것을 발견하고 나면 압니다. 그러면 이럴 때도 ‘조 사람은  요랄 거다’ 보니까 그라거든. ‘또 이런 얼에는 저럴 거다’ 보니까 그라거든.

‘저 사람은 여기에 대해서는 영 뭐 성을 내겠네’ 또 성 내거든. ‘요럴 때는  신앙주의로 말하면 그때는 손해가 암만 져도 양보할 거다, 보자.’ 양보하거든.

 기독교 신앙주의는 주님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기독교 신앙주의입니다. 주님  따라 움직이는 거. 그러면 주님 따라 움직이면 그 사람은 지혜가 얼마나 있는  사람입니까? OOO 장로님? 주님과 같은데 그러면? 전지자라 해야지요. 주님은  전지자거든. 전지자라. 신앙주의자는 전지자라. 신앙주의자는 전지자.

신앙주의자는 전능자. 신앙주의자는. 완전자, 이러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온전하라 이랬지.

 요셉이가 애굽 나라에서 전무후무한 그 정치를 했는데, 총리대신을 했는데 그  사람이 무슨 지능 가지고 했어요? 무슨 지능 가지고 했습니까? 정치학을 배웠소  외교학을 배웠소? 법학을 배웠소 뭣 배웠지? 뭣 배웠어? 그 사람은 뭣을  전공했지, 요셉이는? 요 알듯 알 듯 하구만. 좀 똑똑히 말해 봐. 신앙 공부했어.

주님에게 피동되는 요거 하나만 전공했어.

 이러니까, 애굽 나라에 가 가지고서 그 바로가 물을 때에 ‘이 뭐이냐 하니까  ‘아 가만있으십시오. 내가 순종하는 자 있는데 나를 지도하는 자가 있는데  그분이 나를 가르쳐 주시면 내가 옳고 바르게 가르쳐 줄 거고 그분이 안 가르쳐  주면 모릅니다.’ 그 한참 있더니마는 ‘이렇고 이렇고 이런 꿈입니다! ‘어찌  아노!’ ‘내가 성기는 주님이 가르쳐 주시니까 그거 나는 그런 줄 알지 뭐 나는  그런 줄 모르고 주님이 시키는 대로는 합니다’ 그게 신앙주의자라.

 기독교 신앙주의가 되는 것은 전지전능의 완전자요 참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인계 맡아 가지고서 물질계와 영계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때에 그 모든  것을 그리스도 대리자로서 왕노릇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이 실력을 갖추는  것인데 신앙주의가 그렇게 천한 줄 알고 돈에 팔고 지위에 팔고 직장에 팔고  가족에게 팔고,  신앙 팔고 가지는 가족 그 가족 망해요 홍해요? 망해요. 만이면 만다 망해요.

진리 팔고 진리 팔아 가지고 산 가족이 그거 안 망하겠소? 장로님 확실해요?  진리 팔아 가지고 산 가족 망하는 것 확실해요? 확실해요.

 진리 팔아 가지고서 직장 구한 그 직장 망해요 안 망해요? 망해요. 자, 진리  팔아 가지고서 가정 행복을 샀으면 그 가정 행복은 망해요 안 망해요? 망해요.

알고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알고는 실수야 있지요. 갑자기 실수는 하지마는  알고는 죄를 짓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걸음을 걸을라고 해서 내가 기특해서 말이지 좋아하는데 오늘  아침에 O 장로님에게 물은 거는 O 장로님이 지금 그 걸음을 걸을라고 애를 쓰고  걷고 있어요. 이런데 내가 한 번 다지는 것은 앞으로 가다가는 시험이 들어와요.

 아브라함이 그렇게 잘 믿었지마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는 그말은 뭐이냐  하면 진리 팔아 가지고, 주님의 령령 팔아 가지고서 이삭살릴래 주님 명령  순종하기 위해서 이삭을 불로 태워 죽일래? 요게 시험이라.

 그럴 때에 뭐 서슴지 아니하고 그만 기뻐 즐거워해서 주님에게 바쳐가지고는  손해 가는 일 없다 해서 아이 데리고 나무를 밤새도록 패가지고서, 그 나무  패는데 패가지고 가 가지고서 떡 가서 산 밑에 가가지고, 만일 하인들 데리고  가는 날이면 그라면 야단 지길 터이니까 하인들 밑에 있으라 하고 둘이 부자  이래 가면서 그래 이래 얘기 하면서 그 뭐 그 얘기는 다 기록이 안 됐어도  했겠지.

 지금 이래 묶으면서 ‘너를 하나님께서 번제로 드리라 하는데 어떻지?’ ‘예,  아이고 그렇습니까?’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그거요. 왜? 이제까지 신앙으로  생활하기를 주님 시키는 대로 순종해 봐 가지고서 손해 간 게 없거든. 한 닢푼치  가지고 순종하고 보니까 백 닢 푼치가 돼졌지 똥덩이를 가지고서 순종하고  보니까 금덩이가 돼졌지 순종해서손해 가는 게 없다 말이오. 이러니까 이삭도  좋아하고 아브라함도 좋아했지. 그게 시험이라.

 네가 뭣보다, 내게 순종하는 것보다 백세에 얻은 독자요 하나님의 약속도 있고  했으니까 더 귀하게 여기나 하나님이 고거 시험했어.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지?  어떤 하나님이지? 한 번 알아 봐요. 장로님 한 번 알아 봐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지? OOO 집사님한번 알아 봐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지? 시기의  하나님, 시기의 하나님.

 보자, 조게 독자 이삭을 저렇츰 사랑하는데 저게 나보다 더 사랑하나 덜  사랑하나 시기가 나 가지고, 시기가 나 가지고 이래 떡 이래 해보니까 뭐 서슴지  않고 이삭보다 주님 사랑하고 주님 사랑하는게 이삭도 사랑하는 건 줄 알고 딱  번제로 잡아 드릴라고서 묶어 가지고 제단 위에 나무 놓고 그 위에 놓고서 칼로  들어 때릴라고 이라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딱 중단시켜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것을 알았다. 이제야 이삭보다 나를 더 크게 좋아하는 걸 내가  알았다.’ 그라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에게 큰 축복이 와 가지고서 우리의 구주의  조상이 됐습니다. 알아야 돼요. 알고는 예수 안 믿을 자 없고 알고는 망령 부릴  자 없어.

 이 진리를 여기 서부교회 배우는 진리를 알고는 저거가 다른 데 갈라 해도 못  가요. 아는 척 해도 모르는 자들이라.

 여기 우리 진영 지금 몇몇 목사들 있어요. 있는데 그게 아직까지 몰라서 지금  엉뚱한 일 하고 있어. 모르고 말이오. 중우 벗고 돈 닷돈 찼다 말과 마찬가지로  다른 진리를 다 모르고 한 두 가지 배워 가지고 있으니까 고거면 다인 줄 알고  날뛰고 건방지게 날뛰고 있어.

 제가 알고 있어요. 고런 자들 지금 소장패로서 조금 은혜 있다 하면은 고게 난  척해서 망령을 부리고 있어. 망령을 부리는데 내가 이번에 교역자회때 그런  사람들 이름을 다 여기 불러 줄는지 몰라. 너도 망령자 너도 망령자 너도 망령자  망령자 회개해라.

 내가 본인들에게는 말했어. 본인들에게는. ‘너 지금 네가 교만해서 기독교  인본주의로 있는데 네가 지금 아는 게 다가 아니고 아직까지 너는 천 메타를  올라가야 될 그 산만당에 너는 찍해야 십 메타도 못 올라갔어. 못 올라가고 지금  남은 길이 더 많아. 그런데 몇 가지만 가면 다 된 줄 알고 그렇게 날뛰고  있어?’  이번에 OOO교회 저래 되는 데도 기독교, 기독교 인본주의, 기독교 정실주의,  기독교 유물주의, 기독교 사회주의, 기독교 정치주의, 기독교 안일주의, 기독교  이해주의 이런 것만 따져보면 환하게 다 알아.

 네가 누구를 따라가고 있느냐! 네가 무슨 주의냐! 무슨 주의냐! 환해! 무슨  주의냐, 네가? 네가 기독교 무슨 주의냐? 네가 뭣보다 뭐, 피와 성령과 진리보다  네가 앞세우는 게 뭐이냐? 네가 앞세우고 있나? 그보다, 그 열매를 보면 알 것  아니냐? 네 행동하고 있는 네 행동이 어찌되며 사람이 어찌되며 네 속이 어떠냐?  안팎이 어찌되는 걸 네가 알 수 있지 않느냐?   진리를 따르면서 악화되지 않다. 영감을 따르면서 악화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피를 따르면서 악화되지 않는다. 악화돼요? 악화될 수 있어요? 안 돼요. 안  돼요. 이런데 눈을 어둡게 만들거든. 어둡게 만들어. 어둡게 만들어 가지고서 이  세상에 인간들 말만 자꾸 말해 주고 이라니까 성경은 없어지고 고만 인간들 말이  제일입니다.

 이러니까 떡, 이 모르니까. 사람들이 코쟁이를 다 좋아해요. 요새 키큰 사람  좋아하는 것은 다 뭐이냐? 코쟁이 좋아하기 때문에 유행이라.

 옛날 중국 대국을 좋아했을 때에는 키 큰 것은 몹쓸 사람으로 알고 넓어야  좋아했어요. 뚱뚱해야 좋아했어요  옛날 중국 대국을 좋아했을 때에는 키 큰 것은 몹쓸 사람으로 알고 넓어야  좋아했어요. 뚱뚱해야 좋아했어요, 뚱뚱해야. 또 그때는 배가 불룩해야 다  좋아했소. 그거 뭐든지 사람을 볼 때에 배가 불룩하게 나왔으면. 그거 괜찮다.

또 그때 사람들은 모가지 여기 살이 말이오. 뒤꼭지가 떡 이래 가지고 있어야  좋아했어요. 지금 여기 살이 있으면 병신이라고 못쓰게 봐요. 요거 얍실얍실해야  좋아해요. 그거는 미국에 반해 가지고 지금 미국 사람에게 반해 가지고서 미국  형체를 지금 따라가느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만일 뭐 세계를, 난쟁이가 온 세계를 점령하고 있고 난쟁이 족속이  세계를 점령하고 있고 난쟁이 족속이 온 세계 인류 중에. 뛰어나 있으면은 모두  다가 키자 작아질라고 또 애를 쓸 것입니다. 그게 다 유행이라. 넓게 보면은  그게 다 환장이고 비정상이라, 비정상.

 크는 키를 못 크구로 하는 것도 그렇고 안 크는 키를 큰 키를 부러워  해가지고서 맞 뭐 히루(하이힐)라 하든가 뭐 신을 높으단 해 가지고 자빠지면  지금 쳐박힐 만한 그렇게 키우는 그것도 비정상 모두 비정상이라.

 오늘 아침에는 주의, 기독교 무슨 주의 고것을 배워서 여러분들의 눈을 띄우라  말이오.

 네, 이 앞으로 계속하겠습니다. 자꾸 요 사도행전 12장을 읽어봐요. 우리 가는  데에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 놨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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