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금

 

1984. 10. 31. 수야

 

본문 : 마태복음 5장 13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다음 주일 유치반, 중간반 공과이기 때문에 오늘 저녁에 제가 이 말씀을  증거하게 됐습니다. 오늘 밤에 처음에는 ○○○목사님에게 오늘 밤설교를 부탁  했었는데 아마도 다음 공과가 되기 때문에 제가 증거해야 되겠다 해서 지금 제가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공과를 늦게 해 주어서 아마 나갈 때는 다 받기는 받을 것입니다. 공과를  나갈 때는 다 받아 가지고 가겠지마는 지금 공과를 받지 못해서 좀 미안하게  됐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데도 쓸데 없어 밖에 버려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다른 데는 '거름에도 쓸데 없다' 그런 '거름에도 쓸데 없다'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 비유입니다.

 '거름에도 쓸데 없다' 이 말씀은 택함을 입은 성도들을 이렇게 곡식으로  비유하고 택함을 입은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서 거름과 같이 토비와 같이 그렇게  이용될 사람들도 있지마는 택함을 입은 사람들이 변질되었을 때에는 다른 사람의  구원에 유익되게 이용당하는 그런 일도 되지 못하고 아무 쓸 데가 없기 때문에  사람에게 천대 받고 밟힐 뿐이라 그렇게 하신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이 맛 잃은  소금이 되면 아무 데도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유로 한 말씀과 같이 소금이 맛을 잃으면 소금 그것은 거름에도 못  쓰고 흙에도 못 쓰고 아무짝도 못 써서 그것은 밟히게 밖에는 못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소금은 간단하게 알기 쉽게 소금은 다른 그 물질과 다릅니다. 다른 것은 그  물질이 참 몇 가지 맛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금은 다만 짜운 맛 그 한  가지만 가지고 있는 것이 이것이 특색입니다. 짜운 맛 하나만 가지고 있습니다.

소금은 짜운 그걸로서 소용이 있지 다른 것으로서는 소금은 아무 데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소금은 짜기 때문에 그 간이 소용이 있는 것입니다.

 소금이 간이 없으면 그게 다 변질이요 변한 것이요. 또 소금은 간이 있다  할지라도 그 소금이 녹아져야 간이 나오지 녹아지지 안하면 간이 안 나오는 것이  소금입니다. 만일 소금 한 근을 달아서 물에 넣어서 그 한 근이 조그만한  양이라도 녹아서 적어겼으면 녹아져 없어진 것만치는 거기에서 간이 되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녹아진게 하나도 없다면 그 소금은 혀에 대어도 짜지  않습니다. 짤 때는 반드시 그만침 녹아져서 짜지 하나도 안 녹아진다면 그  소금은 그 짠 맛은 하나도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소금 덩어리 뭐 그런 거 혀에다 대면 뭉텅이는 그대로 있고 짜기는 짜다  그렇지마는 우리 눈이 육안이 희미해서 그렇지 그 자체가 녹아지지 안했다면  간은 하나도 안 나옵니다. 안 흐려지면 짠 맛은 하나도 없고 그 소금 뭉텅이라  할지라도 녹아지지 안하면 짠 맛은 하나도 안 나옵니다. 그것이 반쯤 녹아겼으면  그 소금 뭉텅이에 있는 간이 반쯤은 나왔습니다. 다 녹아졌으면 다 나온 셈이  되겠습니다.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 그 말은 무슨 말씀인고 하니 세상에게 대해서  소금이라. 세상에게 대해서 소금이라, 세상을 위한 소금이라, 세상에게 쓰여질  소금이라 하는 말입니다.

 우리를 소금으로 비유한 것은 소금은 짜운 맛과 그것이 자체가 녹아질 때에 그  간이 나와서 다른 것에게 전달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세 가지 짠 맛,  세상에는 모든 것을 차차 차차 그것이 변해져 가지고 변해져 가면서 썩어져서  아무짝도 못 쓸 그런 물질들이 있고, 이 소금이라는 것은 녹아지기만 하면 이  간이 이것이 방부제가 됩니다. 이래서 소금이 녹으면 그 녹은 간이 다른  음식에게 스며들어서 이 간이 들어간 것만치 그 식품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그  방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썩지 못하게 하는 방부 역할을 하고 있고 또 그  식물을 맛있게 만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 가지 예수님의 대속의 공로 삼 대  대속의 이 공로와 또 성신의 감화 감동인 영감과 또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이  진리, 소금이 짜운 맛 그 외에는 뭐 덤덤하거나 달거나 시거나 텁거나 그런 맛  하나도 없고 순전히 짜운 맛 그 한 가지 맛만 가지고 있는 것처럼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 이 세 가지 맛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 기독자인 것입니다.

 이 세가지로만 되어 있고 뭐 이 세상에는 수많은 그 맛들이 많이 있습니다.

수많은 이종교도 있고, 수많은 철학, 과학, 도덕. 예술 정치 뭐 각종의 문화 뭐  별별 것들이 많지마는 기독자는 그런 것은 섞여 있지 않고 순전히 주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 이 세가지 뭉텅이로 되어 있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이 세 가지외에는 다른 맛이 없는 것이 기독자입니다. 이 세가지 인간 맛만  가져 있는 것이 기독자인데 이 세 가지는 썩는 것을 썩지 못하게 방부하는 그런  죽음을 막는 죽음을 막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고, 또 참사람을 참사람의  가치가 있게, 참사람의 그 가치 있는 참사람의 맛이 있는 참사람이 되어지는  그런 능력을 품고 있는 것이 이 세 가지입니다. 사망을 방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영생하는 참사람이 되어지게 하는 이런 능력을 가진 것이 주의 피와 성령과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오셔 가지고 이 세가지로 모든 택한 자들을  다 살리는 죽음을 면하게 하고 살리는 역사 또 이는 참 한 사람이 우주보다 귀한  이런 참 인간 가치를 완전히 회복해서 하나님 다음으로 존귀한 이런 자를 만드신  것이 예수님게서도 이 세 가지 가지고 사람들을 살리고 구원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가지고 사람들을 살리고 구원하는데 이 세가지를 죽은  자에게 이 전해 주는 데에는 마치 소금이 소금 뭉텅이 소금 뭉치 안에 간이 있는  그 간을 다른 김치에든지 어떤 식물에든지 뭐 생선이든지 어데든지 이 뭉치  뭉텅이에 들어 있는 그 간이 그 소금 뭉텅이가 녹아지는 그 방편으로만 그 간이  다른 식물에 들어 가 가지고 그 식물을 썩지 않게 방부도 할 수 있고 또 그  식물을 맛있게 할 수 있는 거와 같이 주님도 이 세 가지 사망을 방어하는 이  능력과 또 참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영생하는 이 능력 이 세 가지를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데에는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이 희생 이것으로만  전달을 했지 다른 거 가지고는 전달을 못 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 큰 능력을 가지고 당신의 택한 모든  백성들을 구출할려고 오셔서 이 세 가지로 택한 자들을 구출하는 데에는 다만  사람들이 볼 때에 미련케 보이는 십자가의 죽으심 당신이 희생하는 이 희생하는  이 하나만 가지고서 이 세 가지로 인생을 구원하는 이 전달을 했지 이 세가지  외에는 전달되는 방편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 가지를 사람들에게 전해줘서 이 세 가지가 사람들에게 다  주어져야 사람이 영원한 사망을 벗어날 수가 있고 다 영생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가 있는데, 이 세 가지를 사람들에게 부여해 주는 데에는 당신이  희생 외에는 다른 방편으로서는 줄 수가 없어서 희생하는 방편을 취하셨으니 그  희생하는 방편은 강령적으로 말하면 모든 것을 내어 놓아서 가난해지신 것이요.

낮아지신 것이요 또 고난당하신 것이요 죽어진 거 그것뿐입니다. 당신의 모든  부요를 내어 놓으셨고 낮아지고 천해져서 하나님의 본체의 그 권세를 가지지  못하고 종의 형상을 입었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가난해지시고 낮아지시고 낮아졌다면 천해졌다 말입니다.

낮아지시고 또 고난 당하시고 죽으시고 하는 이 네 가지 희생으로만 이 생명이  되는 이 세 가지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달해 가지고 우리가 받아서 살게  됐습니다.

 됐는데,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라 그 말은 세상을 살릴 자들이라 그 말입니다.

너희들은 세상을 살려야 할 책임을 진 자들이다 그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리느냐? 다만 잡 맛이 아닌 소금 간 맛으로만 살릴 수 있다.

세상에 수많은 사상과 주의와 논리와 종교와 법칙이 있다 해도 그런 것은 다  사람을 죽였고 살리지는 못한다. 다만 네가 가진 것은 소금이 소금 그 간 하나만  가진 것처럼 너는 주님의 대속의 공로와 영감과 진리요 세 가지 뭉텅이가 네가  돼야 된다. 네 안에는 이 세 가지만 가득 차서 있어야 된다. 이 세 가지를 담아  놓은 소금 자루와 같이 너는 이 세 가지만 네 속에 가득차 있어야 한다.

 그러면, 이 세 가지만 가득 차 있으면 이 세 가지는 네가 이 세 가지로 살았고  네가 이 세 가지를 가지고 모든 죽은 자들을 살릴 수다. 이 세 가지로 죽은  자들을 살릴 수 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죽은 자들을 살리는 데에는 이 세 가지를 죽은 자들에게  전달하는 데에는 어떻게 전달을 해야 하느냐? 전달하는 편은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도 이 방편 외에 다른 방편을 쓰지 못한다. 그 방편이 무엇이냐? 곧  십자가의 희생이다. 녹아지는 것이다. 소금이 녹아짐으로서 그 간이 다른 것에게  전달되어서 방부제도 되고 좋은 그 맛을 일으키는 것처럼 네가 희생함으로 이 세  가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러면, 네가 이 세 가지로 희생해야 예수님의 이 대속으로 네가 희생 해야  영감으로 희생해야, 진리로 희생해야 이 세 가지 능력이 그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다시 살려서 멸망에서 구출할  수가 있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소금이 만일 맛을 잃으면 그 말은 이제 소금이 맛을 잃는다말은  변질된다는 말인데 맛을 잃는 것은 첫째로 기독자들이 주님의 대속과 영감과  진리 이것을 잊어버리면 이것을 어떤 세력에게든지 어떤 유혹에게든지 이 세  가지를 잊어버리면 너는 맛 잃은 소금이 되고. 또 이 세 가지를 가졌다 할지라도  녹아지지 아니하는 소금이면 이 세 가지를 가졌으나 안 가졌으나 꼭 같은  것이다.

 아무리 소금 뭉텅이가 쌀 가마니만한 소금 뭉텅이가 있다 할지라도 그 소금  뭉텅이는 조금도 녹아지지 아니하는 소금이라면. 혀에 대어도 짠 맛은 하나도 안  나온다. 만일 혀에 대어서 짜다고 하면 고만침 그 소금이 녹아진 양만침  녹아짐이 있었기 때문에 짜지 녹아짐이 하나도 없으면 혀를 대어도 하나도  짜지는 않다.

 그와 마찬가지로. 네가 이 세 가지가 네 속에 가득차 있다 할지라도 네가 이 세  가지로 희생하는 네가 사죄를 보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사죄를 전하기 위해서  칭의를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 화친되는 이 화친을 전달하기 위해서. 네가  받은 영감을 전달하기 위해서,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네가 희생하는 요거 한  방편으로서만 전달이 돼지지 요거 외에는 전달되는 방편이 없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잊어버린 자가 되든지 네가 희생하는 일을 잊어버림이  되든지 네가 희생활 기회에 희생할 것을 잊어버려서 희생을 하지 못하게 되든지  하지 않게 되든지 또 네가 희생을 할지라도 이 세 가지 간과 같은 이 세 가지로  희생하지 아니하면 눈이 녹는 거와 같이 눈 암만 녹아 봤자 방부도 안 되고 간도  되지 안하는 김치에 간도 되지 안하는 것처럼 네가 암만 희생을 해도 이 세  가지로 희생하지 안하면 너는 맛 잃은 소금과 같이 맛 잃은 기독자가 된다. 맛  잃은 기독자가 된다. 네가 이 세 가지가 네 속에 가득 차서 불이 붙는다  할지라도 이 세 가지로 희생을 안 하면 또 맛 잃은 기독자가 된다.

 기독자는 이 세 가지를 어떤 것에게라도 빼앗기지 안하고 잃지 안하고 요 세  가지를 잃지 안하고 주님이 나를 사죄해 주신 이 사죄를 빼앗기거나 버리거나  하지 안하고. 칭의도 하나님과 화친된 이 귀한 권세를 내가 빼앗기지도 잃지도  버리지도 안하고 요 세 가지 은혜가 네 속에 있어서 충만하고 네 속에 있어서 이  세 가지 능력이 네 안에 있어 녹아져서 치료할 수 있는 네가 희생함으로 필요가  되는 고런 기회. 고런 현실. 고런 입장. 고런 때 네가 희생해야 될 그때에 네가  희생하되 무슨 네가 도덕심을 가지고. 명예 영광심을 가지고. 무슨 세상에 어떤  것을 노리는 그런 야욕심을 가지고 네가 희생하면 소용이 없고, 이 세 가지를 세  가지로 희생되어서 이 세 가지가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서 상대방을 죽음에서  끌어낼 수 있도록 상대방을 살아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네가 이 세  가지로 사죄로 희생하고 네가 죄없이 하기 위해서 희생하고 하나님에게만  피동되기 위해서 희생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결합해서 하나님이 너를  주관하도록 하기 위해서 희생해서 네 희생을 하나님이 너를 주관하는 희생.

하나님에게 피동되는 희생. 성경 말씀에 위반됨이 없는 비뚤어짐이 없는 희생 그  희생을 형제를 위해서 할 때에 그때에 거기에서 이 세 가지 능력은 네가 희생한  것만치 반드시 거기에 배어 들어가고야 만다.

 소금이 녹아진 것만침 그 간은 김치에든지 뭐 밥에든지 어떤 음식에든지 소금이  녹아진 거만침은 녹아지니까 소금의 형체는 없지마는 소금의 간이라 하는 것은  녹아져 가지고서 그 모든데 다 힘이 들어 가지고서 전부 감염되고 말았다.

 이러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 너는 세상을 방부해야 세상이 썩는 세상을 썩지  않도록 세상을 방부하여야 할 책임을 가진 네고, 또 세상을 참으로 인생 가치를  회복시키고 인생의 그 하나님의 형상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서 영생하도록  하는 그 의무와 책임이 네게 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세상을 위하여 이용당할 소금이다, 세상은 너를  이용함으로 세상이 살고 너는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이용됨으로 세상이 구출  돼서 네 직분을 다 하는 것이니 그것은 다만 요 세 가지로 네가 희생하는  것인데, 세 가지를 기독자가 버리면 그 사람은 불신자로도 쓰지 못하고 아무  데도 쓰지 못한다. 세 가지를 버리면 하나님 앞에 버림당한 자가 되지 세상  마귀에게 적이 되어지지 그거는 아무 데도 쓰지 못하는 가장 비참한 자가 된다.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기독자가 '나는 예수님의 대속의 사죄를 받았으니 나는 사죄 받았기 때문에  어디서든지 나는 죄없이 살아야 된다. 나는 다시는 죄인될 수 없다.' 하는  요것을 네가 버리지 아니하고, '나는 내 주위 환경에 온 천하가 다 이끈다  할지라도 이제는 나는 성령에게만 피동되지 성령 외에 다른 데는 내가 피동될  수, 다른 데는 이끌릴 수 없다. 나는 성령님에게만 나는 인도를 받고 거기에만  피동된다.' 하는 요것을 네가 버리지 안하고 네가 죽어도 버리지 안하고 어떻게  해도 버리지 안하고 하나님이 네 안에 주인이 되어서 하나님이 너를 주장하고  너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 하나님이 너의 언행 심사를 주장하시고 아무도 네  언행 심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네 전부를 주장하게 하는 요것이 맛을  가진 소금이니 요 세 가지를 갖췄을 때에는 피조물이 너를 결단코 해하지 못하고  멸시하지 못하고 천하게 보지 못하고 해하지 못한다. 요것은 모든 피조물의  영원한 왕이다. 영원한 제사장이다. 영원한 이것들을 통치할 자들이다.

 기독자가 요 세 가지를 버리지 안했을 때에 아무 것도 해하지 못한다. 요 세  가지를 가지고 요 세 가지로 희생하여야 할고 기회를 놓치지 안하고 요 세  가지로만 희생할 때에 희생할 때에 희생한 것만침 요 세 가지는 능력으로 역사해  가지고서 죽음을 깨트렸고. 사망을 깨트렸고, 마귀의 일을 깨트렸고. 죄악을  깨트렸고 다 새생명으로 살리는 그 결과를 맺게 된다 하는 요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소금이 맛을 잃으면 다시 쓸데 없어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정 반대로 소금이 맛을 잃지 안하면 이 세 가지 이 능력을 가지고  이것을 빼앗기지 안하고 이것을 자기가 자기 안에 모시고 그 기회 기회마다  희생하여야 할 그 기회에 희생을 하면 너는 천상 천하의 모든 피조물 중에 너는  가장 쓸모있는 자가 된다. 쓸데 없을 자가 될 수 있는데 가장 필요 있게 쓸모  있는 자가 된다, 밖에 버리는 반대로 하나님의 보좌에 너는 영접해서 들이게  된다, 밖에가 아니라 하나님의 그 성전 안에 하나님의 보좌 안에 너는 영접함을  받게 된다. 사람에게 밟힘의 반대 모든 피조물에게 존대를 받아 너도 그리스도와  함께 주라 시인하여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는 그 존대함을 네가 받게 된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데, 세상에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는데 속한 자와 받는데 속한 자가 있다  그렇게 조브라운 생각 가지고서 그렇게 말을 합니다. 녜, 주는데 속한 것도 있고  받는데 속한 것도 있습니다. 주는 데 속한 것도 주다 보니까 앞으로 줄 것이  없어서 밑천이 끝나 버립니다. 또 받는 자도 주는 자가 없으니까 받는 것도  끝납니다. 또 주고 받은 것도 그것이 다 사망에 속한 것이 되기 때문에 그 받은  것도 다 죽이는 것이요 죽는 것이요 끝나 버리는 것이 끝나 버리고 마는  것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을 똑똑히 보고 말을 하면 온 세상은 주는  세상이 아니라 빼앗는 세상이다 요렇게 보는 것이 바로 정평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와 자녀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것은 그것도 빼앗는 것이  되겠느냐? 그것도 빼앗는 것이다. 왜 그러냐? 그것이 자기중심 자기 위주로서 다  주는 것이 적은 것을 주고 큰 것은 빼앗을라 하는 것이요 그것이 간단한 것을  주고 장구함으로서 제것을 차지할라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이종교나 모든 타락한  사람들의 전 생애는 다 빼앗는 것이요 주는 것은 아니다. 빼앗는 것이요 주는  것은 아니다.

 왜 주는 것이 아닌 빼앗는 것만 하게 되었느냐? 주는 것은 자본이 한정이 있기  때문에 끝이 나니까 주면 끝나기 때문에 주면 끝나기 때문에 주는 모든 것은  주는 방편을 통하여 받는 일을 하여 주는 것으로 자기를 든든케 하고 자기를  보수해서 좀 오래 동안 보장하게 하려는 것이지 줘 버리면 자기의 밑천이  없어지기 때문에 자기가 없어지기 때문에 주면 자기가 없는 무아로 돌아가,  자기가 없는 걸로 돌아가기 때문에 모든 주는 것은 자기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조그마치라도 장구하게 보존 하려는 유를 보존하려는 것이지 그것이 무가 되기  위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인생에게는 모든 것을 똑똑히 세밀히 알고 보면은 다 주는  방편은 하나도 없고 다 빼앗는 방편과 받는 방편과 취하는 방편뿐이다. 그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밑천이 없다. 끝이 난다.

 그러면, 기독자는 무슨 방편? 기독자는 소금같이 희생해서 주는 방편이다.

그러면 기독자는 어떻게 주는 방편을 할 수가 있겠느냐? 기독자는 주는 방편을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 속량함을 받은 자요, 또 이 세  가지로 희생해서 주는 것은 그것은 다 이것은 안간의 일이 아니다. 이거는  하나님의 일이다. 이 세 가지 주는 것은 이 세 가지 주는 이것이 곧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주는 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주고, 하나님의  능력을 주고. 하나님의 생명과 모든 보배로운 것을 사람들에게 주어서 사람들을  살게 하고 만물들을 살게 하는 이 일을 하기 때문에 이 일은 곧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주기 위해서 자기가 희생되는 이것을 가리켜서 나와 내 도를 위하여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전토나 희생된 자는 세상에서 여러 배 백 배를 얻는다고  말씀을 하신 그 게약대로 이렇게 벌써 하나님에게 속해서 하나님의 지체  노릇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몸 노릇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겉은 네가 사람이  하지마는 사람이 하지마는 속애는 하나님이 들어서 하나님이 이 세 가지 역사를  너를 통해서 나타내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고로 그 사람의 생명의 기간이 있을 때까지는 희생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아지게 된다. 그거는 창조주이시요 무한자이시요 대주재이신  그분과 연결되어서 그분이 하시는 일이요 그분에게 뿌리 박았기 때문에 그분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분은 끝이 없다. 네가 끝이 있으나 그분은 끝이 없는  그분에게 연결됐기 때문에 네가 하는 일은 끝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개별적으로 계산할 때에 네가 손해 보면 네가  잊어버렸으면 나와 내 도를 위해서 손해 봤으면 여러 배 혹 백 배를 네가 받게  된다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기독자가 천해지는 길은 요 세 가지를 버리면 천해집니다.

 요 세 가지가 그 속에 가득 차서 요 세 가지 담은 그릇이 되면 요 세 가지가  담겨 있는 그릇이 되면 그것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속에 진리가 그 속에 머물고 영감이 그 속에 머물고 또 하나님이 그 속에  계시고 이럴 때에 그 자는 존귀한 자다. 세상은 세상은 그이에게 다스림을 받을  수 있는 아주 고차원에 있다. 모든 피조물은 발등상이 되는 것이다. 너는 비록  피조물이지마는 그 안에 있는 세 가지 하나님의 그 요소로, 인해서 너는 존귀한  자가 된다. 그러나 네가 이렇게 가지고 녹아지지 일는 그 소금으로 녹는 성질이  변질 돼서 녹아지지 안하면 못 쓰는 소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네가 이 세 가지 지극히 존귀한 능력이 너희 안에 가득 찼으나  네가 희생할 수 있는 고런 기회를, 고런 현실을, 고런 입장을, 고런 시기를  고때에 네가 희생을 안 하면 너는 맛 잃은 소금이기 때문에 너는 천해진다.

 기독자는 요 세 가지가 자기 속에 없음으로 천해지는 것 요 세 가지가 속에  있어도 희생이 없음으로 희생하는 이 본질이 변질되었음으로서 천해지는 것, 또  희생을 한다 할지라도 요 세 가지가 요 세 가지로 희생해야 요 세 가지로  희생해야 요 세 가지가 녹아 가지고 요 세 가지가 소금이 녹아 가지고 소금 간이  녹음으로서 간이 저리 딴 데 배어 나가는 거 마찬가지로 요 세 가지로 희생해야  네가 이 희생을 통해서 요 세 가지가 그 사람에게 전달된다. 예수님의 대속이 그  사람에게 전달된다 성신의 감화의 역사가 전달된다. 진리가 전달된다.

 그러면, 그것이 가면은 이 세 가지가 가면 그 사람에게 대한 모든 사망의  역사가 다 제거돼서 사망의 것이 다 방부되게 된다. 방어되게 된다. 사망의 것이  다 방어되게 된다. 사망의 것만 방어될 뿐만 아니라 이제 살아나게 된다. 간이  된다. 그 사람이 간이 된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사죄의 것이 되고, 칭의의  것이 되고, 하나님과 화친의 것이 되고 영감의 것이 되고, 진리의 것이 그  사람이 이 세 가지로 변화돼 버리고 만다.

 소금이 녹았으니까 거기에 가 가지고 간이 배어 나오는 거 마찬가지로 네가 이  세 가지로 녹았으니까 이 세 가지로 희생했기 때문에 네 희생을 도와서 이 세  가지는 그에게 가 가지고서 배어서 그를 감염시킨다 베쪼가리에 물을 들이면  푸른 물들이면 푸른 베쪼가리 되는 거와 마찬가지로 이 네가 희생하는 이  희생하는 이 세 가지로 희생하는 이 희생을 통해서 이 세 가지로 그 사람이  사죄로 변화되고, 칭의로 변화되고, 그 화친으로 변화되고, 영감으로 변화되고.

진리의 것으로 변화돼 버린다. 그러면 이것이 기독자가 존귀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자가 어디서든지 소금이 맛을 잃으면 그는 천해전다.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 '내가 요 입장은 아주 어려운 입장이다. 보통 입장이  아니고 아주 어려운 입장이다. 요 입장은 참 어마어마한 어마어마한 권세를  뺏기는 입장이다. 요 입장은 아주 어마어마한 재벌을 뺏기는 입장이다. 요  입장은 어마어마한 명예 영광을 뺏기는 입장이다. 그 입장은 생명을 뺏기는  입장이다.' 요 소금이 맛을 잃지 안하고 요 세 가지로 네가 희생을 하려고  하면은 이 존귀한 것이 다 빼앗겨지게 된다 너는 그럴지라도 맛 잃은 소금이  되지 말아라. 네가 소금의 맛만 가지고 있거라.

 그러면, 악령이 너를 유혹시켜 가지고 내가 이 맛 잃은 소금이 안 되고 맛있는  소금에 비유하신 이 본질대로의 본분을 행하려고 하면은 나는 지금 어떤 희생과  어떤 절단이 난다. 그렇게 봐 줘도 마귀가 너한테 유혹하는 것이지 하나님의  변치 않는 말씀은 네가 맛 잃지 안한 소금이 되면 너는 이 모든 우주에 가장  너는 쓸모 있는 인간이 된다. 쓸데없는 자가 아니고 아주 하나님에게 대주재에게  쓸데 있는 자가 된다. 쓸모 있는 자가 된다. 밖에 버릴게 아니라 너는 당신의  보호자에 이렇게 모셔 앉히게 된다. 사람에게 밟힐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에게 존대케 되어진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가 버림당하는 것도, 천해지는 것도, 밟힘당하는 것도  요것이다. 기독자가 가장 실력 있는 필요 있는 존재가 되어지는 것도 대주재에게  환영을 받아서 아주 존귀히 대우함을 받는 것도 모든 피조물에게 이와 같이  주라고 영원토록 그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게 되는 그런 존대를 받는 것도 요  소금으로 비유한 요 소금의 직책을 하는 데서 있다 하는 것을 놓치면 안 됩니다.

 요거 단단히 기억하고, 기독자가 어떻게 되면 천해지고 어떻게 되면 존귀해  지느냐?

 하나님 말씀을 믿는 사람은 요 세 가지 소금의 맞을 자기와 관련 그 현실에서  녹아짐으로 자기가 자기가 희생됨으로, 자기가 욕을 얻어 먹음으로, 자기가  지위에서 떨어짐으로, 자기가 면직을 당함으로. 자기가 수치를 당함으로, 어째  희생하든지 희생함으로 요 세 가지를 이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주님의 대속을  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영감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를 그들에 전달하기 위해서 네가 어떤 희생이라도 하면 네가 절단나는  줄 알지마는 희생만 하면 너는 참 쓸모 있는 자 되고. 존귀한 자 되고, 영접  받는 자 되고, 만물에게 존대를 받는 자 되고, 너의 희생을 통해서 그들이 널  반대하는 너를 반대하고 핍박하는 그가 예수의 피의 사람 된다 그가 예수의 피에  젖어서 피로 변화 받고 예수님의 그 사죄로 변화 받고 칭의로 변화 받고,  하나님과 결합되는 화친으로 변화 받고. 영감으로 변화 받고 진리로 변화 받는  사람 되어진다.

 이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 약속권, 이 계약을 믿고 맛있는 소금 돼라. 맛  잃은 소금될까 두려워하라. 생명을 뺏기도 네가 소금의 맛과 그 본성을 뺏기지  말고 어디서든지 소금의 이 본질을 본성을 가지고 본질대로 행해라. 이것만이  너희의 그 재세의 생애 본분이다.

 그런데, 이것이 이 세상법으로 모순되다. 주고 주면 한정 있는 건데 하나  있는데 하나 줘 버리면 없어지는데, 하나 있는데 하나 줘 버리면 없어지는데  생명 하나 바쳐 버렸으면 없어지는데, 생명 하나 바쳐 버리면 없어지는데,  그러니까, 세상은 못 한다. 밑천이 없기 때문에, 밑천이 끝나기 때문에 못한다  그러나 너는 이 세 가지로 희생하면 세 가지로 희생하면 그것이 창조주의 하는  일이다. 창조주의 하는 일이다. 대주재의 하는 일이다. 전지전능자의 하는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네 생명이 끝나기까지는 거기에는 무진장으로 연결됐기  때문에 무진장의 하나님의 것이 연출된다. 연해서 나오는 연출된다.

 그러기 때문에, 네가 한번 죽었는데 이 셋을 전달하기 위해서 네가 전달할라면  죽어야 되고 안 죽으려면 전달 못 하게 될 때에 전달하기 위해서 너는 죽었는데,  죽었는데 또 살았다. 죽었는데 또 살았다.

 그러기 때문에, 평생 생명이 있는 그 한계 내에서 생명을 바친 죽는 생명이  죽는 녹는 생명이 죽는 녹는, 이 크게 녹는 크게 녹는 걸 녹고 나니까 또 살았고  녹고 나니까 또 살았고 녹고 나니까 또 살았고 이 셋을 전달하기 위해서 이  셋으로서 네가 희생하고 나니까 또 희생했는데 또 있고 희생했는데 또 있고  희생했는데 또 있고 아, 희생했는데 또 있다.

 씨와 양식을 준다. 그러면 씨와 양식을 주면 대가로 주느냐? 새자본으로 준다.

 그러기에, 다니엘은 죽었는데 또 살아서 총총리 또 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 하나님을 믿으라. 네 생명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 세 가지 증거를  위해서 네가 천 번 죽을 기회 있으면 천 번 죽으라. 생명의 끝 시간이 오기  전에는 절대로 네 생명은 끝나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다. 네가 이를 위해서 어떤  지위든지 권세든지 요 세 가지로서 기회를 닥칠 때에 놓지 말고 요 기회에 네가  희생을 함으로 요기 전달되도록 요 세 가지로 희생해라. 너는 희생했으니까 나는  그거 다 파괴하고 나는 이제 이 직장은 손 뗐다. 이제는 나는 면직 당한다. 면직  당했는데 그 이튿날 또 한다. 백 번 면직 당했는데 또 한다. 사표 냈는데 또  한다. 그게 하나님의 능력이다. 거기 약속이다. 그러기 때문에, 밑천이 끝이  없다.

 그런데 그대로 주느냐? 여러 배 백 배를 가산해서 준다. 가산해 주면 내가  자격이 있기 때문에 자꾸 새 씨의 양이 많아지고 양식이 양식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요 세 가지를 오늘 밤에 기억합시다.

 기독자가 어떻게 되어서 천해지는가? 기독자가 어떻게 되어서 존귀해 지는가?  요거 두 가지, 기독자는 죽었는데 왜 살며 희생했는데 왜 사는가? 그거는 밑천이  끝이 없어 자기 생명이 끝나야 끝이 나지 생명이 끝나기 전에는 끝이 나지  않습니다. 요거는 대주재가 내 안에서 일하고 대주재의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은 대주재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거는 자본이 한이 없는 창조주시다.

대주재시다.

 이러기 때문에, 요걸 믿고 요걸 믿고 이대로 해 보라. 할 때에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는구나. 정말로 하나님은 여호와시로구나.' 이럴 때에 모든 군왕들은  너희 양부가 되고 또 왕비들은 너의 유모가 되고 모두 다 네게 속한 자들을  어깨에 메고 돌아다니고 또 네 발에 티끌을 할고 이렇게 네가 생각도 못할 만침  하나님의 계약이지마는 믿을 수 없는 그 일이 실상으로 이루어졌을 때에 그때야  아, 하나님은 계약 대로의 이행하시는 하나님이로구나 하는 것을 네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요렇게 하면 당신이 어서 요렇게 해 가지고서 여호와  하나님인 것을 모든 사람이 알도록 하시기를 이렇게 원하지마는 이렇게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안 믿기 때문에 안 된다 그말이오.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날마다 죽는다' 하는 것은 그 뭐 자기 여기에서 요래 희생하면 거석한다. 자꾸  하지 말라 해도 또 그리하고 하고 해도 그래도 살아 있는 것은 요 믿음에서  입각해서 요 세 가지로 세 가지로 녹아지지 안하고 녹아져도 잡탱이로 녹아지면  저만 희생당하지 소용없습니다. 요 세 가지로 순전히 요 세 가지로 희생될 때는  지극히 큰 능력이 생명 끝나는 때까지는 변동이 없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여기에 탈선되고 이탈될 능력이 오지 않습니다.

 저도 이탈될 때에 능력이 안 오고 요 이탈되면 주님이 부르실 때까지 기력이  쇠하지 안하고 그렇게 계속하다가 가리라 하는 것을 믿습니다. 나는 옳게 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요 세 가지에 잡탱이 섞였었다 말이오. 요 세 가지에  잡탱이가 섞였어.

 하나님의 계약은 변치 않습니다. 변한 것은 우리에게 변했지 그분에게 변한  것은 없습니다. 그게 변하거든 내게 변한게 있는 줄 알고서 어서 빨리 고쳐서  그걸 다시 재수정하면 빨리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따라 합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어 사람에게 밟힐뿐이니라'  하나님 말씀은 짝 없는 말씀이 없습니다. 요 말씀 올 때에 맛을 잃지 안하면  어찌 되느냐 하는 그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요 말씀에는 짝이 뭐이냐?  맛을 잃지 안하면 쓸데없어 정반대로 가장 하나님에게 쓸모 있는 사람 되어서  밖에 버리는 반대 하나님의 그 안으로 영접해서, 밟힘이 되는 반대로 모든  피조물에게 존대함을 받는 이것을 여기에 계약에 선포했습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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