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선지자선교회 1980년 5월 21일 수새

 

 본문 : 고린도전서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 안에는 거룩의 이 작용이  있어야 하고 또, 거룩의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거룩의 그 요소, 거룩의 존재,  거룩의 요소가 있어야 하고 거룩의 활동, 거룩의 작용이 있어야 합니다.

 네 가지 거룩을 말했습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보다 깨끗하다, 보다 깨끗하다,  보다 깨끗하다 하는 그것을 말할 때에 거룩이라. 구별을 해서 이것보다 이기  낫다, 이것보다 이기 곧다, 이것보다 더 이것이 바르다, 이것보다 이것이 더  공평되다, 이것보다 이것이 더 의롭다. 보다 라는 것이 거게 속해 가지고 옳은  것을 가르쳐서 거룩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거룩이라는 것은 온전한 것, 그  하나만 있을 때에는 거룩이라는 그 말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홀로  계시고 아무 것도 없을 때에는 하나님을 거룩한 하나님이라 그렇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 혼자만 자존하여 계시고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보다 어떻다는 것, 보다라는 것을 비교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고는 할지라도 거룩이라는 말은 못 붙이는데  하나님이 목적을 정하신 그때부터 하나님이 목적 정하신 것이 완전하고  영원하지마는 목적 정하신 그 목적보다 하나님은 거룩하다, 하나님 온갖 것을  예정하셨는데 그 예정된 그것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이 또 창조하시고  난 다음에 창조된 그것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하나님 외에 어떤 것이 있어  그보다 하나님이 뛰어났을 때에 그때에 거룩이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면이 꼭 같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거기는 거룩이라는 말 쓸 수가  없습니다. 같다 이라지 만일 그때에 조금이라도 나은 것이 있으면 그 거룩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요것보다는 요것이 거룩하다, 요것보다는 요기 깨끗하다,  요것보다는 요기 참되다, 요것보다는 요기 의롭다, 요것보다는 요기 바르다. 게  거룩이라는 말을 쓸 때는 그럴 때에 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만 있을 때에는 안되고 그 비교할만한 그런 것이 있을 때에 그런  것이고 또, 모든 것이 섞여 있을 때에 섞여 있을 때에 그때에 그것을 가려  가지고 요것보다는 요기 낫다, 요렇게 가릴 때에 그것을 거룩을 찾을라고 한다  그렇게 말할 수 있고 가렸을 때에 가려 가지고 자기 마음에 이제 요것이  완전이다, 요것이 요 이상은 될 수가 없다 그럴 때에는 그것을 거룩이라고  하겠고 만일 여러 개가 있었는데 있는데 그 중에는 나은 것이 있지마는 그  중에는 나은 것이 있지마는 이것도 이중에서는 이 가운데에서는 이것이 낫지마는  이것도 내가 아는 대로는 이것도 될 대로 다 돼 가지고 있단다 될 대로 바로  되어 가지고 있지 않다 하면 그것은 거룩이라고 하지를 못합니다. 거룩은 수많은  것 가운데에 거게 그 모두 틀린 것이지마는 옳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요것보다는 요기 낫고 자꾸 이래 가립니다. 가리다가서 여게는 온전한 기 없다  이럴 때에는 거기는 거룩이 없다 이리 됩니다. 자기가 가려서 아 요것이 참  요거는 온전하다, 요거는 깨끗하다, 요거는 됐다 그럴 때에는 그것을 갔다가서  그 거룩이라는 말은 붙일 수 있겠습니다. 붙일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기에 거룩이라는 말의 뜻은 이렇습니다. 게 네 가지에 우리는 거룩의  작용이 있어야 된다. 그러면 하나는 그 범위가 넓은데 제일 외부의 것은 모든  사람보다는 자기가 나아야 될 그런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  사람 중에는 자기는 누구보다도, 누구보다도 자기는 참되게 살아야 될 그 의무와  책임이 있고 본분이 있고 누구보다도 정직해야 되겠고 누구보다도 곧아야 되겠고  누구보다도 발라야 된다. 왜, 자기는 두 가지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를 누구보다도 자기가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러하고 또 다른 사람의  잘못은 암만 봐 봤자 껍데기로 보지 자기가 알맹이는 못 봅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가 보는 대로는 모든 사람의 그 악보다는 자기의 악이 더 크다.

 그러기에 잘못이 자기의 잘못을 보는 것과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볼 때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는 것은 아무래도 껍데기 나타난 것, 그것 밖에는 못 봅니다.

알맹이는 못 봅니다. 그러나, 자기의 잘못은 다른 사람이 모르는 속속들이 그  생각 가진 것까지 마음먹은 것까지 뜻까지 또 이제 과거의 모든 생활 여기 가서  한 것, 저기 가서 한 행동을 다른 사람은 모르지마는 서도 자기는 알고 있다  이기요.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자기가 자기를 볼 때는 자기가 아는 대로는 모든  사람보다 자기가 잘못된 것이 많다고 느껴지는 요것이 정상입니다. 요것이  양심을 바로 쓰고 바로 된 것입니다. 에, 사도 바울 같은 그런 이는  율법으로서는 흠이 없는 자라고 했지마는 그가 자기를 자꾸 깨달을 때에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 제일 큰 죄인이라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기를 다른 사람이 모르는 자기 자기가 깨달은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의 속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외부에 나타난 외모의 모든 잘못된 그것보다 자기만  알고 있는 자기 속에 자기의 잘못을 찾아보니까 그보다 큰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성신의 감화를 받은 사람입니다. 성신의 감화가 없는 사람은 사람 중에  나기가 제일 잘난 사람이고 의로운 사람이고 어떤 그 죄인을 대할 때에도 그  죄인보다는 내가 의롭다, 어떤 의인을 대할 때에도 그 의인보다는 제가 낫다  이것이 악령의 역사입니다. 악령의 역사고 성령의 역사는 정반대입니다. 아,  다른 사람의 잘못된 것을 볼 때에 가만히 자기를 살펴보고 게 그 사람은 속은  내가 어떻게 된지 모르지마는 외부에 나타난 잘못으로 말하면 이런, 이런 잘못이  있는데 나는 내가 나를 찾아 볼 때에 다른 사람은 모르지마는 내가 아는 대로는  내 속에는 그보다 더 잘못이 있다 요것을 깨닫는 것이 남의 눈의 티를 볼 때에  그 티로 인해서 자기를 연구해서 자기 속에는 들보가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그것이 성신의 감화입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아는 대로는 자기가 모른 사람보다 더 잘못이 많기 때문에  누구보다 앞서 잘 되야 되겠고 누구보다 앞서 바로 해야 되겠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면이 다른 사람보다 자기는 크기 대문에 그 큰 것도 그것도 양심을  쓰면 다른 사람이 은혜 받은 그것은 외부의 은혜뿐이고 다른 사람이 하나님 앞에  용서받은 것은 외부의 용서만 자기에게 보이지마는 자기에게 보이지마는 자기가  은혜 받고 용서받은 것은 아는 대로 이 면에 크다 이거요.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도 내가 아는 그 잘못과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보는  것과 그 비교를 하면 다른 사람이 나의 잘못을 알고 있는 것보다 내가 나의  잘못을 삐뚤어진 걸 틀린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더 많으니, 많으니 내가 이러니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 다른 사람도 우리가 보기에는 저렇게 조만침 밖에는  잘못이 없지마는 우리가 모르는 그 속에는 잘못이 더 많을 것이다 이런 그  판단을 가집니다. 그 판단을 가지면 그 판단이 그것이 성령의 감동의  판단입니다. 그것이 인간 인간적인 고기 판단입니까? 그게 마귀판단, 마귀  감화의 판단이요, 하나님의 성령의 감화의 판단이요. 어느 판단입니까? 고기  어떤 판단이겠소? 성신의 감동의 판단이겠소? 그것이 그만 일반인 일반인은 그  마귀가 역사하는 건데 마귀의 감화의 판단이겠습니까? 어떤 판단이겠습니까?  대답 한번 해 보십시오. 일반인의 마귀의 판단입니다.

 성신의 감화의 판단은 그렇지 않소. 성신의 감화의 판단은 진실한데 자기를  보고 그 사람도 그럴 것이라고 어떻게 추론하고 추측할 수 있습니까? 그런지 안  그런지 어떻게 알 것이요? 그것은 마귀가 그렇게 감화를 주는 것입니다. 또,  자기의 장점을 볼 때에 내가 다른 사람이 알기는 이만침 외모에는 이만한 장점이  있지마는 실은 파고 들어가 보면은 뭐 장점이라 하는 것이 내부는 허무하다 내가  볼 때에는 허무하다 이것이 마귀의 감화입니까? 성신의 감화입니까? 성신의  감화입니다.

 내가 이러니 저런 사람도 외부에는 의롭지마는 서도 속을 파고 들어가면은 실은  갔다가 자기가 아는 대로는 우리가 의롭다 하는 저보다 속은 허무할 것이다.

아마 저 사람도 나와 같이 저럴 것이다 그렇게 판단되는 것이 성신의 감화의  판단입니까? 악령의 감화의 판단입니까? 고기 악령의 감화의 판단입니다. 요걸  우리가 구별해야 됩니다. 악령의 감화의 판단 어떻게 제가 모른 걸 갔다가  남에게 대해서 추측이니 추론이니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모른 건 모르고  아는 것 아는 것이지 자기에게 대해서는 알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대한 이 면은 모른다 이기요.

 그러기 때문에 은혜를 받은 데는 모든 사람보다 자기 은혜 받은 것이 더 크게  여기지는 그것이 성령의 감화요 또, 잘못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의 모든 잘못보다  자기의 잘못이 크다는 것을 실지로 안다 이기요. 갔다가 그거는 어데 뭐 공연히  추측하는 기 아니라 자기가 실상 알기 때문에 자기에게 대해서는 알기 때문에  그러하고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내가 이런 것 보니까 다른 사람도 이럴 것이라  그렇게 그 추측하고 추론해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거는 정확성이  아니라 이기요. 갔다가서 게 이 두 가지 때문에 거룩이 생겨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이 네 가지 거룩을 가지라 그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네 가지  거룩을 가지라 하는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이 네 가지 면으로 이 네 가지  면으로 이 두 가지를 가졌을 때에 그때에 하나님이 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네 가지 면으로 첫째는 세상보다 성전이지요. 불신자보다 자기, 또 신자보다  자기, 또 은사교권에 있는 그 제사장, 은사교권에 있는 다른 모든 일반적인  성직자보다 자기,  또 성경말씀보다 영감 이 네 가지 이 거룩을 우리 속에 가져야 되고 이 역사가  있어야 하는데 그러면 네 가지 역사가 무엇 때문에 있게 되느냐? 아, 모든  사람보다 나는 하나님 은혜를 더 감사해야 되고 모든 사람보다 나는 더 깨끗하게  살아야 되고 모든 사람보다 나는 회개를 더 해야 되고 모든 사람보다 나는  충성을 더 해야 되고 모든 사람보다 나는 이제는 사람 노릇을 해야 된다. 왜,  모든 사람보다 왜 네가 그렇게 해야 되느냐? 너는 본래부터 인품이 특상이기  때문에 극상이기 때문에 모든 일반인이 아니고 너는 특수인이기 때문에 그러하고  너는 지위가 그러하고 종류가 그러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보다 너는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인간에게 대해서도 일에 대해서도 물건에 대해서도 더 힘써야 되고 더  애써야 되고 더 노력해야 되고 더 깨끗해야 되고 더 발라야 된다, 더 해야 된다  그 이유가 뭐 입니까? 그 이유가 자기는 특수하기 때문에 그러합니까? 한번  대답해 봐요. 요 가운데 요 요게 저 사람 말이요. 응. 에, 누지? 성이 뭐지? 에,  강이라. 응.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외모만 알지마는 자기에게 대해서는 내부까지  알기 때문에 자기가 이 죄인이기 때문에 자기가 더 죄인이기 때문에 그래야 되고  자기는 하나님 앞에 은혜를 누구보다 더 많이 받았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요 두 가지 때문에 자기는 모든 사람 가운데에 자기는 그 사람들보다 더  의로와야 되겠고 더 깨끗해야 되겠고 더 발라야 되겠고 더 힘써야 되겠습니다.

자기가 요것 잘못 들으면 몰라. 잘못 알면 안돼. 요 네 가지 면으로 거룩해야  되는데 네 가지 면으로 거룩한 것이 자기가 근본적으로 그 남보다 나아서 그런  기 아니라 남보다 못하기 대문에 그 두 가지 의무를 가져야 되겠다 그 말이요.

갔다가서 요것이 우리 속에 성신의 감화입니다. 요기 없을 때에는 벌써 그  사람은 마귀사람 된 것이요.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속에 역사할 수가 없어.

뭐 바울이 우리만 못해서 모든 사람 중에 제일 그 죄인이라고 마지막에 말년에  했습니까? 그 사람이 외식으로 거짓말한 것입니까? 아니요. 자기가 자기를 그  똑똑히 보고 사정없이 자기를 보고 비판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보이는  외모보다도 내부를 볼 때에 자기가 더 갔다가서 그 흉하기 때문에 그렇게 성신의  감화로 진실히 느껴서 바로 그대로 솔직하게 고한 것이 그것이라.

그 다음에는 둘째는 뭐 입니까? 모든 믿는 사람보다 자기는 이제는 앞장서야  되겠습니다. 왜, 자기가 모든 믿는 사람보다 제일 뒤에 뒤떨어졌기 때문에 제일  뒤떨어졌던 자이기 때문에 앞서야 되겠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제일 기쁘시게 해야겠습니다. 왜, 왜 기쁘시게 해야 되겠습니까? 왜 그렇겠소?  김명길씨. 게 제일 진노케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제일 그 노엽게 한  자이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는 갔다가 제일 기쁘게 해야 되겠다. 그라면 상이  있겠습니까? 고린도 전서 9장에 보면은 바울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은 착한 일을  하면은 상이 있지마는 자기는 착한 일을 하지 안 하면 화를 받게 된다 했습니다.

이제는 상 받을 기 아니라 벌 벌 면할 정도로 그러기 때문에 뭐 믿는 사람  쳐놓고 다른 사람도 다 교인으로써 다른 사람 다 다 그런데 내가 특별히 그럴 게  뭐 있겠느냐? 다른 사람은 그래도 나는 못 그라겠다, 다른 사람은 나는 못  그란다. 왜, 다른 사람은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게 적지마는 나는 노엽게 한  것이 많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적지마는 나는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누구보다도 많다. 다른 사람은 하나님이 용서하고 참아 기다려도 나만침  참아 기다리지 안 했을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내게 대해서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오래 기다리시고 오래 애를 태웠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하지 안  하면 다른 사람은 이렇게 하면 상을 받지마는 나는 이렇게 하지 안 하면 화를  면하지 못한다. 이것이 속에 있어야 성자입니다. 그게 영감이요, 성신이 속에서  작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자는 자기가 점점 죄인인 것을  깨닫고 죄인인 것을 인식하고 죄인으로 살 때에 죄를 짓지 안하고 죄지은 죄인  됐던 죄를 지었던 자로 죄지은 자로 살 때에 그때에 하나님은 같이 하시고 그와  동행할 수가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것 말하는 기 아니고 과거, 현재 지금 하고  있는 거게 대해서 잘못을 누구보다도 많이 잘못된 것, 삐뚤어진 것, 그 온전에  나가지 못한 그 점이 많은 것을 깨닫는 그 깨닫는 것이 인간 중에 제일 많이  깨달았으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성령은 제일 많이 같이 할 수 있다 그게요.

또, 셋째는 제사장 위치인데 거게는 은사위치라 그렇게 우리는 봐야 합니다.

다같이 반사지마는 서도 나는 반사 중에 누구보다도 나는 충성하지 안 했는데  환하게 깨닫고 왜 나는 하나님 앞에 빚진 기 더 많다. 또, 하나님 앞에 은혜  받은 기 더 많다 하나님을 손해보인 기 더 많았고 하나님 앞에 은혜 받은 기 더  많다. 어떤 반사보다도 내가 은혜 받은 기 갔다가서 더 많고 용서받은 기 더  많고 노엽게 한 것이 더 많다. 반사 중에 자기가 제일 죄인이요, 하나님 앞에 그  은혜를 제일 많이 받은 자인 것을 깨달아 그 반사 중에는 내가 제일 충성하지  않으면 나는 화를 받겠다. 뭐, 아무 반사 그런데 나도 그 반사만침 하면 되지 와  ? 그러면 성전이 아닙니다. 권찰로서도 어떤 권찰보다 그 권찰은 오늘 갔다가  비가 오는데 쉬도 나는 못 쉰다, 나는 쉬면 화가 있다. 집사로서 그 사람은  집사로서 그런 일해도 나는 그란 것을 할 수 없다. 왜? 나는 과거에 너무 주를  노엽게 했다. 내가 주님 앞에 너무 걱정을 시키고 주님 앞에 너무 내가 갔다가  애 타는 그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다.

 이러기 때문에 다른 집사는 내 몰라라 하는데 나는 내 몰라라 하지 못한다.

장로도 조사도 목사도 다른 사람은 이럴 때에 증거를 하면 이 증거를 하면은  감옥에 갇힐 것이라. 이 증거를 안 하지마는 서도 나는 이 증거 안 하면 안  된다. 나는 이 증거 안 하고 지나갈 수 없다. 왜? 나는 하나님 앞에 노여움이  너무 많다. 이것이 성전입니다. 이런 속에 하나님이 내주하고 계십니다. 자기가  말씀대로 행하면서 말씀대로 행하면 다른 사람은 이 말씀대로만 법도만 지켜서  이 진리를 지키면 되지마는 서도 나는 진리 지키는 것만으로도 안 된다. 다른  사람은 진리를 지키는 것으로서 그것으로서 하나님 앞에 벌을 받지 안 할지라도  나는 영감 없이 진리 지키면 나는 벌을 받을 자이다. 왜? 뭐 때문에 나는 두  가지 때문에 하나님을 노엽게 한 것이 너무 많고 하나님을 노엽게 한 것이 너무  많고 하나님의 은혜 받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는 안 된다. 이것이 지성소에  있는 구별입니다. 지성소의 구별, 지성의 구별 밖마당의 구별 또 성전 울타리  밖의 구별 이 네 가지에 거룩을 말했습니다.

 이 네 가지 거룩의 작용이 자기 속에 있을 때에 그 작용이 성령이 작용한  작용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셔 가지고 작용하신다면 이 네 가지 거룩의 작용이  자기에게 일어나는 그 때에 성령이 자기 안에 계시는 역사요, 이 작용을 자기가  강팍을 가지고서 가로막아서 이것을 방해할 때에 그때는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요, 주님을 자기 심신 안에 내주하시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입니다. 게 네  가지 거룩 이 역사가 우리 안에 있어야 우리가 이 것을 찾을라고 이런 사람이  될라고 애를 써. 이런 사람이 될라고 애를 쓰는 그것이 뭐이냐? 성령님을 자기  안에 계시도록 모실라고 애를 쓰는 것이요, 이 깨달음이 있어져 가지고 정말로  이 깨달음이 있어 가지고 자기에게는 이 느낌과 이 마음의 간절에 역사가 자기에  있을 때에 그때에 성령이 내주하셔 가지고서 역하시는 것입니다.

 게 믿는 사람들이 다 이 때문에 살기 때문에 남한테 할 말을 못해 그런 거  아니라 할만한 기 없어. 남한테 할 말을 못해 그런 기 아니라 그 입이 광주리  구멍 같아도 말을 할 수가 없어.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말 못하고 행동을 할라  해도 할 수가 없어. 행동을 그런 어떤 행동을 할라 해도 할 수가 없어. 왜? 이  네 가지 속에 작용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큰소리나 뻔뻔한 그런 것은 할  수가 없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 볼 때에 저 사람 참 예수 믿는 사람이라 그 입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잘 참는다, 다른 사람들은 좀 갔다가서 그래 사람아 그렇게 어디  참을 수 있나 믿는 사람이라 그렇게 참나? 이러니까 그걸 갔다가 내 입으로 다  말할 수 없으니까 그걸 말못하고 그저 암말도 안하고 있지마는 자기 속에는  자문자답이 있다 그 말이요. 정말로 내가 갔다가서 그 참 참을만한 갔다가 그런  일이 없는데 참는 자인가, 내가 그 사람한테 무슨 뻔뻔스럽게 큰소리 할 만한  사람인가 내가 나를 알고 있다. 그 사람 내가 그 사람한테 그걸 발표를 못해서  그렇지만 내가 그 사람한테 그런 소리를 할만한 실제에 갔다가서 의가 없다.

하나님이나 그런 소리할까? 다 같은 죄인으로서는 뭐라 할 수가 없다. 이것이  말은 안 해도 자기 속에서는 자문자답으로 자기 속에서는 그렇게 역사하는 그  작용 있는 것이 그때가 하나님이 자기 속에서 성화역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네 가지 거룩을 이루도록 우리가 자꾸 노력을 해야 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 자유로 돌아갑시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기 쉬운데 못 알아들으면 안돼요. 네 가지  면으로 거룩을 가져야 됩니다. 네 가지 면으로 거룩이라 말은 보다 모든  불신자보다 나는 신자보다 나는 은사 위치에 있는 다른 사람과 권찰 중에 모든  권찰보다 나는 모든 집사보다 나는 모든 반사보다 나는 모든 장로보다 나는 모든  전도사보다 나는 모든 목사보다 나는 모든 신앙의 아는 대로 모든 사람보다  자기의 아닌 것이 많기 때문에 모든 사람보다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  아는 대로 더 크고 더 많기 때문에 이 두 가지 때문에 자기는 보다를 가지지 안  할 수 없는 이것이 바로 보는 것입니다. 공연히 자기 이러니까 다른 사람도  그러리라 추측하는 그것은 건방진 것이요, 그것은 거짓된 것이요, 그 마귀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지 성령은 그렇게 시키지 않습니다. 내가 이러니까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 그거는 알지 못하는 것이 갔다가서 그러리라 저를 표본 삼아  가지고 내가 이러니 그러리라 어떻게 갔다가 그럴 수가 있습니까? 갔다가 다른  사람이 자기와 같습니까? 그 모르는 거지 나는 그 모르는 것으로 모르는 것으로  중단하고 아는데 까지는 알고 모르는데 까지는 모르는데 부터는 갔다가 거기서  더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것이 그게 정직이요 진실이라 그 말이요.

그러니까 누구보다 네 가지 거룩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 그것이 그 성신의  감동의 사람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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