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1980. 5. 18. 주후

 

본문: 학개 1장 1절-2장 23절

 

 성경을 읽기 전에, 구약시대의 교회를 가리켜서 육체의 이스라엘이라 말합니다.

구약교회, 이스라엘의 역사가 구약 성경에 대략 기록돼 있습니다. 육체의  이스라엘을 보면 그들의 형편이 강하고 약하고 또 그 자손들이 잘나고 못난  거기에 이스라엘의 흥망이 달리지 안했습니다. 모든 형편이 좋든지 나쁘든지 또  그 자손들이 잘났든지 못났든지 상관없이 그들의 흥망의 원인은 하나님의 성전에  달렸습니다. 성전이 바로 되어 있으면 그 나라를 해할 생각만 가져도 모든  열국들이 해를 받았습니다.

 또 이스라엘의 이 성전이 더러워졌을 때에는 걷잡을 수가 없이, 마치 겨울이  오면 산천초목이 다 말라지는 것처럼 사방에서 집중 사격으로 이스라엘이 걷잡을  수 없이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성전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망합니다. 성전이 성전 구실을 해서 깨끗하면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에 아무 나라도 이스라엘을 엿보거나 노리거나  해하지를 못했습니다.

 오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의 교회인데 하나님의 성전을 구약  때에 어떤 모형으로, 어떤 요소들로 하나님께서 명령해서 지으셨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간추려서 오늘 신약 교회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의 갖출 인격과 사상과  정신과 지식과 행동에 있어서 모형적으로 만들어놓은 그것을 가지고 우리가  생각을 했습니다. 이 공부를 성막 공부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서 성막 공부를 왜정 초기 때에 성막 공부를 했고 해방 직후에 성막 공부를  하나님께서 시켜서 교회서 뜨문뜨문 이 성막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후에 이  성막 공부는, 다시 말하면 성전 공부요, 교회 공부인데 교회가 어떻게 되어야  된다는 대해서 별로 공부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 서부교회서는 벌써 성막  공부에 대해서 한달포 뜨문뜨문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오전에 증거한대로 모형적인 교회, 교회의 모형으로 되어있는 하나님의 성전은  어떻게 되어있는가에 대해서 열네 가지를 말씀했습니다. 네 가지 거룩을 가져야  되고 열 가지 요소적 역사가 있어야 된다 하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상 안에 있어야 하고 지식 안에 있어야 하고 성품과 행동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그것이 양적으로 많든지 적든지 부절히  노력해서 그 일에 힘써 나아가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해할 자가 없고 이것을  등한히 하고 이것이 잘못돼 있을 때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아무도 도와서 구원할  자가 없는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제 택한 이 학개서는 이스라엘이 성전을  더럽힌채 그대로 두고 저희들의 개인 생활에만 급급해서 날뜄지만 결국은  패망입니다.

 하나님이 너희들이 패망하는 이유가 너희가 알뜰히 안 해 그런 것 아니고  지능이 모자라 그런 것도 아니고 열심이 없어 그런 것도 아니요. 다만 하나님의  성전을 너희들이 뒤로 두고 다른 면으로 힘쓰기 때문에 너희들의 모든 생애가 다  절단난다는 것을 여기 밝히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 학개를 통해서  너희들이 이 원인으로 패망되는 것이니까 성전 건축에 착공을 해라. 착공하면  착공하는 그날부터 너희들이 모든 면으로 살펴봐라. 착공하기 전에는 어땠으며  착공한 이후에는 너희들 형편이 어떠한가 그것을 살펴보라 말씀했습니다. 과연  그들이 성전 기초를 시작할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그들에게 온 것을 온  백성들이 다 봤고 또 그후 성전을 더럽히기까지는 그 이스라엘이 심히 존귀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것을 여기 기록한 간단한 학개서입니다.

 제가 읽을 터이니까 여러분들이 이제 말한 그것이 여기 기록된 것을 성경을  가지고 한 번 상고하기를 부탁합니다.

 "다리오 왕 2년 6월 곧 그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여 이르노라" 여기 만군이라고 기록한  것은 진노할 때에 이런 이름을 발표했습니다. 싸우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말은 싸우시는 하나님이라. 그러니까 이럴 때는 노해서 아예  복종하면 둬두고 복종 안하면 아주 전멸시키겠다는 그런 진노를 가지고 나타날  때에 만군의 여호와라고 이랬습니다. 이럴 때에 이스라엘이 안 들었으면 그때  아주 전멸됐을 겁니다.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성전은 아직까지 지을 필요가 없다. 지금 안 지어도 된다.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목사는 자꾸 회개하고 예수 잘 믿으라 하지만 내게  있어서는 예수 잘 믿을 시기는 아직까지 멀었고 내가 사업이나 해서 돈이나 벌고  무슨 기반이나 닦고 무슨 출세나 해놓고 모든 준비나 마련하고 난다음에 차차  예수는 뒤에 잘 믿겠다 이렇게 하는 이거와 똑같은 겁니다.

 3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전이  황무하였거늘" 하나님의 전은 이렇게 황무해졌는데 "너희가 이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하나님의 전이 이렇게 더러워지고 허물어져 있는데 너희  집만 잘짓고 살면 그게 될 줄로 아느냐?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기독자의 인격은  참 억만진창같이 그 생활이나 모든 것이 다 세상 사람이나 다름없이 그렇게  허무하게 되어가지고 있으면서 어찌하든지 사업이나 출세에나 급급해가지고  날뛰는 그런 형편과 같은 형편인 것입니다.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좋은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5절에,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진노하신 하나님이  말하고 있다.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 볼지니라" 너희 네가 형편을  살펴봐라. 너희 형편이 어떤지 너희 형편을 가만히 살펴봐라.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너희들이 날뛰기는 날뛰지만 실상 너희 수입은 적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니까 생각보다 더 지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다 신앙의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그 간증이 '어떻게 그렇게 됐는고  모르겠다.' 농사짓는 사람은 '어찌어찌해서 그런지 그 참 곡식을 들여놓을 곳이  없다. 또 어찌어찌돼서 내가 이만치 높은 자리 올라왔는지 나도 모르겠다.' 전부  생각에 지나게 되어지는 것인데 자기 생각보다 자꾸 미치지 못합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농사 짓는데 뿌리니까,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를 많이 분주하게 해도 실은 결과에 수입이 없다 말이요. 분주하게  출세 입신 양명으로 날뛰어 쌓아도 끝에 와보니까 아무것도 없다 그말입니다.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그만 추수가 적을뿐 아니라 자기 입에 넣어놓은  것이야 그거야 얼마나 단단합니까? 먹어도 배부르지 못한다는 것은 네가 이거야  말로 내것이 다 됐다 싶어도 거기에 또 화가 붙습니다.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이것은 필연한 일인데도 이치밖에 자꾸 낭파가  옵니다. 이상하게도 초자연적인 해가 자기에게 닥쳐옵니다.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장사나 그런 것이  아니라 일하고 삯받는 거야 하루 6000원이면 6000원, 5000원이면 5000원,  7000원이면 7000원. 일해주고 딱 받는 거야 얼마나 여뭅니까? 이렇게 단단하게  여물게 받았지만 암만 받아봤자 전대 밑구멍 떨어지는 데 넣어도 다 흘려버리고  넣을 때뿐이지 남아있는 게 없는 것처럼 너희들이 모든 면으로 암만 수입해봤자  남아있는 것이 없다. 들어오는 것보다 남아있는 것이 많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7절에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이렇게 기독자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을 받지 못하고 항상 말려서 가련하게 삽니다. 기독자의 생활은 절대 그런  것 아닙니다. 기독자의 참생활은 생각보다 지나치게 하나님의 축복이란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 단계가 지나가면 이제 달라집니다. 기독자가 처음에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축복을 원하지만 장성해지면 세상 사람들이 아는 이런 축복을  원하지 안하고 세상 사람들이 모르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신령한  축복을 기다립니다.

 자신의 신앙이 더해지기를, 신덕이 더해지기를, 식구들에게 믿음이 더해지기를,  권능이 더해지기를, 하늘나라 표준으로 모든 일이 더 잘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보이는 것을 자기가 소망하지 안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기 때문에 그의 신앙 행위에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갚아줍니다. 이러니까 잘 믿어도 보이는 그면에 별희안한 축복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 사람을 다시 살펴보십시오. 처음에 잘 믿을 때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 생각과 경영보다 지나치게 잘된다.

 거기에서 지혜있는 사람은 아,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돌보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알고 난다음에는 신령한 것을 그 사람이  원하기 때문에 땅의 것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것은 하나님이 내게  적당하게 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여기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신령한  것으로 더해주십시오. 하니까 그 사람들을 다 살펴보십시오. 그 사람들이 다  영능의 사람들입니다. 신령한 권능의 사람들이오. 그 사람들이 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못할 만할 그런 신덕이 높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신령한 면들이 다 권위있게 성사를 하고 나갑니다.

 7절에, 이렇게 안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말합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너희 형편을 살펴봐라. 성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저거 욕심만 달성하려고 하는 너희 소위를, 너희 형편을  살펴봐라. 죽자껏 해봤자 너희에게는 비참과 고통뿐이지 너희 심령에도 평안  없고 육체도 다 허무해진다.

 8절에,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오늘 우리로 말하면 이 만당에 가서 기도하고 저  구석에 가서 기도하고 이틈에 성경보고 저틈에 성경보고 이 집회도 가고 저  사람도 접촉하고 이래가지고 모든 면으로 성전을 짓기 시작합니다. 차차차차 네  가지 구별을 하려고 합니다. '나는 구속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과 같지  않다.' 또 믿는 사람가운데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있는데, (김현찬씨!) 이거  안되면 망합니다. 암만해야 소용없습니다.

 '믿는 사람가운데도 이런 사람, 저런 사람있는데 나는 잘 믿는 저 사람  따라갈란다. 저 사람을 본받아 갈란다. 아, 하나님의 종들도 이런 종 저런  종들이 있는데 어떤 종의 가르침을 내가 더 받을란다. 또 한 자리 앉아서도 나는  누구보다 말씀을 조심해서 정성껏 받아야 다른 사람 따라가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 못 따라갑니다. 나는 좀 더 배워야겠고 더 깨달아야겠고 더  알아야겠다. 또 내가 성경 말씀대로 하면서도 말씀대로만 할 것이 아니라 영감을  내가 받아가지고 살아야겠다.' 이것이 네 가지 구별입니다. 이 마음을 먹고  시작해 보라는 것입니다.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성전을 짓기 시작해라. 이거 저거 한 가지 두 가지  네 가지 거룩과 열 가지 자기 속에서 자기 안에서 이 작용을 시작합니다. 당장  효력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안해 본 사람은 모르요. 당장입니다. 이렇게 성전을  수리해서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자기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제가 저 혼자 움직일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하나님이 계셔 역사하는 그  역사가 자기 언행심사로 나오도록 하려고 이렇게 하면 여러분들이 보일 것이요.

소위를 살펴봐라. 당장에 효력 있습니다. 자기 심령에서부터 복을 받소.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는 것은  이외에는 기쁠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자기 인격과 자기 행위,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고치려고 애를 쓰지 안하고 이렇게 저렇게 벌어다가 돈이나  하나님께 드리면 될줄로 알고 교역자에게 대접이나 잘하면 될줄로 알고,  암만해야 헛일입니다. 헛수고요. 그것은 참 출물꾼입니다. 소용없소.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보기에는 큰 수입이 있다고 했는데 실상 보니까 적습니다.

허다무실(虛多無實)이요. 소문보다 알맹이가 적습니다. 헛되이 많고 실상은 적다  그말이오.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이제 그것을 너희 집까지  가져왔으니 너희 것 안되겠느냐?  "가져 갔으나 불어버렸느니라" 바람을 부쳐서 날려 보냈느니라 되는 것 같으나  안 됩니다. 이 비밀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믿는 사람은 되는 것 같은데  안되고 안되는 것 같은데 됩니다. 되는 것 같은데 안 되요. 안 되는 것 같은데  되는 사람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들 위에 껍데기로 됐다하고  알맹이 없는 그런 짓 안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속에 알맹이가 되고난  다음에 겉어머리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은 세상이 달라들어도 멸하지  못합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믿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안되느냐?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하나님이 계실 하나님의 성전 마련은 하지 안하고 자기 속에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이 계실 수 있도록 자기 인격 안에, 자기 언행심사 안에, 자기  생활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주관하도록 하시는 이 일은 하지 안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가 인간과 세상 사람, 물질 이런 것만 상대해 가지고 날뛰기 때문에  믿는 사람의 끝이 비참합니다. 죄를 짓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벌받을 이런 것만  총총해 가지고 근근히 밥먹고 삽니다. 근근히 그날 그날 사요. 참 비참하고  불쌍합니다.

 내가 네 손으로 하는 일에 복을 주어서 들어가도 나가도 성에서도 들에서도  밭에도 모든 소생도 손으로 하는 모든 일도 복주시는 그 복이 성경이 거짓말되고  말았지 우리에게 무슨 효력이 있습니까? 그 효력을 받는 사람은 받습니다.!  못받는 자는 제 언행심사와 제 인격 속에 제 심중 속에 하나님이 계실 수 있도록  안하고 마귀만 들어와서 거처하도록 하니까 안 망할 수 어디 있습니까? 죽도록  해야 골만 빠집니다. 인간 잘난 거야 얼마 안되고 인간의 젊음도 얼마 안됩니다.

이럭 저럭하다가 일생을 날라가듯이 다 허사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너희 행실 때문에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우로의  혜택이 없다 그말입니다.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오게하고 또 한재를 산에 곡물에 새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 한재가 드니까 사람도  가물들고 전체가 다, 하나님께서 천연적인 재앙을 내리시니까, 자연적인 재앙을  내리시니까 인간이 어떻게 배기겠습니까?  아, 도랑에 올챙이가 아무리 억세다 해도 위에서 비 안오고 물만 없으면 제까짓  게 꼼짝 못하고 죽지 제가 어짤거라. 인간은 만물에게 대해서는 인간이  강합니다. 참 날라서 달에도 가고 별에도 가고 하는 것 보면 만물에게 대해서는  인간이 강합니다.마는 하나님께 대해서는 너무도 허무한 것입니다. 제가 만물에  대해서 강하고 세력이 있으니까 하나님께 대해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거기서 잘난  사람들이 다 그것 때문에 망합니다.

 12절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바 모든 백성이" 다 망하고 얼마남지 않았는데,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학개 선지가 이렇게 외칠 때 이 백성이 망할  시기가 다 지나갔는지 돌이켜 회개를 합니다. '아, 안됐다. 우리가 이제까지  암만 해봐도 안되는데 이제는 돌이켜서 하나님의 성전을 짓자'하고 돌이켜  회개를 합니다.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냈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봐, 마음을 돌이키니까 '아, 학개 선지의 말을  들어야겠다.' 이렇게 모두다 마음을 돌이키니까 당장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보내서 말합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너희들이 마음을 돌이키고 내게로 돌아왔으니까  "내가 함께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매" 여기 흥분이라고 말을 했는데 번역을 잘못한 것입니다. 감동시키매  하는 것인데 여기 흥분이라고 했는데 감동이라고 바로 그렇게 하지 안하고  흥분이라고 말한 것은 그때 그들이 감동이 충만한 것을 가리켜서 표시하기  위해서 흥분이라 했습니다. "흥분시키시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자꾸 옳은  마음을 가지기 시작하니까 자꾸 옳은 마음을 가지도록 협조해 주십니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이제는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때는 다리오 왕 2년 6월 24일이라" 6월 24일에  성전 짓기를 시작을 했습니다. "그 해 7월 곧 그달 21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하나님이 또 말씀합니다. "가라사대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서 말해라. 이 말을 전달해라.

 "너희 중에 남아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 없지 아니하냐?" 과거에는  세력있을 때 성전을 지으니까 잘 지었지만 이제 저희들이 지으려고 규모를  꾸미려고 하니 참 가난하고 다 죽고 남은 것 얼마 안 된 사람들이 하니까 성전  짓는 규모가 허무합니다. 그럴 것 아니겠습니까? 숫자가 적어니까. 그래도 좋다  그거요. 허무하지만 이전 것보다 더 영광을 크게 하고 축복을 더 주겠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잘난 사람이 하나님 잘 믿는 것도 좋아하시지만 못 믿는  병신 그것이 잘 믿어보려고 무식한 그것이 잘 믿어보려고 하는 그것은 하나님이  더 귀하게 여기십니다.

 4절에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이제 하나님이 과거에는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저것들이 패망하고 저것들이 코가 다 깨지든지 패역을  부리다가 망해야 되겠다 하고 진노하고 계셨지만 돌이키니까 그만 긍휼이  옵니다. 부애가 날 때는 자식이 나쁜 짓하면 듣지 안하니 부애가 나서 매도  때리고 야단도 지기지만 눈물 툭툭 흘리면서 잘못한 것을 진정 느낄 때는  아버지의 분은 그 매를 뿌질고 스스로 자기를 자책하고 그 자녀에게 대해서는  동정과 긍휼이 전적 기울여지는 것이 악할지라도 부모된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은  더욱더 그러합니다.

 여기 보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스룹바벨아." 총독입니다.

대표자요.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낙심하지 말고 정신차려라.

낙심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일어서라. 괜찮다.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이제는 동정을  자꾸합니다. 일어서라. 괜찮다. 지금이라도 된다. 힘만 쓰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금 동정으로 나갑니다. 이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낙망하지 말고 이제 성전 건축에 힘쓰라. 보잘  것 없는 성전이라도 너희들이 힘껏 성전 건축에 힘쓰라.

 네가 무식할지라도 이제까지 지은 죄가 많을지라도 저질러 놓은 것이 허무하고  기막힐지라도 이 시간부터 아, 이제는 네 가지 거룩과 열 가지 이 심령 작용을,  네 안에는 이 열 가지 작용과 이 네 가지 구별하는 이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수 있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실 수 있고 하나님이 내 안에서 주관하셔서  그분으로 인하여서 동하고 정할 수 있는 이 사람, 이 생활이 되어보겠다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반대로 달라집니다.

 냉정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견딜 수 없는 긍휼의 하나님이 되고 노여움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천대와  멸시와 우사와, 이렇게 천하게 보여지게 실컷 고생하게 하려던 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끼시고 아까워하시고 아끼시기를 당신의 전부를 다 기울여서 이 일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이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인데 함께하면 어떻다 말인가? "함께 하노라"  당신을 소개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애굽에서 나올 때 언약한 말을 한 번도 언약을 하나님이  지켜줄 수가 없어.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켜야 하나님이 언약을 지키시지.

(유제하씨! 옆에 쿡 찔러봐. 잠이 어떻게 들었던지 '유제하씨'해도 모르는구만.

저러면 주일날 와야 아무 소용이 없어.)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이제까지 언약을  못이뤘습니다. 언약을, 너희들이 이렇게 하면 내가 이렇게 해주겠다 했는데 암만  기다리고 기다리고 독촉했지만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한 번도 약속한대로  못해줬다 그거요.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약에는 너희들이 어떻게 하면  어떤 축복을 해준다고 했지만 이렇게 해야 축복을 받죠. 여기서도 축복받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어서 신기하다. 정말로 하나님 계신다.' 이  경험과 체험이 없으면 아직까지 그 사람 예수 바로 믿는 사람 아닙니다. 안 믿기  때문에 그런게 없습니다.

 '인간이 아닌 이거야 말로 하나님의 도우심이다. 하나님의 축복이다. 이 일이야  말로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런 신기한 꼴을 한 번 두 번 보는 게 아닙니다.

전생활이 이적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경험하고 체험한 사람마다 베드로처럼 그까짓 거 다 뚜드려 없애버리고 다  치워버리고 빈 손으로 하나님 한 분만 보고 신령한 축복을 바라면서 나서는  사람들이 다 세상적으로 신기한 하나님의 초자연의 능력을 체험해보고 경험해 본  사람들, 이러니까 이거 바랄 게 아니라 신령하고 더 좋은 거 얻어야겠다 하고  나선 사람들이 대개는 은사교권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안합니다. 다는 아니지만,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이렇게 패역을 해도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축복을 줄 수 없어 애터지는  하나님으로 계셨는데 이제 성전을 짓기 시작하니까 하나님이 활기가 납니다.

내가 너희에게 떠나지 아니하고 너와 같이 하니까 항상 근심, 걱정, 안타까움,  너희에게 대해서 분함 이것만 있었는데 너희들이 이제 성전짓기를 시작했으니  내가 너희들에게 돕는 하나님으로 축복의 하나님으로 나는 너희 대적으로 더불어  내가 싸울 것이고 너희 하는 일에 모자라는 일은 내가 인계맡아 책임져 가지고  할 터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이제는 가난도 두려워하지 말고 원수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지무능도 두려워하지 말고 이 일에만 힘쓰라.

 "두려워말지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조금 있으면  너희들이 성전을 차각 차각 짓기 시작하는데 이제 얼마간 지어지면 하는  말입니다. "조금 있으면", 뭐 이것은 예수 믿으면서 이거 체험 못한 사람은 예수  믿을 맛이 없을 것입니다. 참 우리가 마음을 달리 먹으면 마음 먹는 것을 얼마  지나면 다른 사람들이 압니다. '아, 그 사람 요새 달라졌어.' 그 사람이 속으로  달라진 것이 행동으로 나오고 달라진 걸 다른 사람들이 압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고 '아, 그 사람이 요새 보니까 생각도 다른 것 같고 포부도 다른 것 같고  사람이 좀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졌어. 사람과 행동이 달라졌어.'  여러분들의 눈에 세상 권세로, 돈으로, 지식으로, 무엇으로 달라진 것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성전 이면을 생각해서 참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셔야 되고 주관해야 되겠다 하는 이면으로 그 사람이 좀 달라졌다 여러분들  눈에 보이거들랑 그 사람을 나중에 살펴보십시오. 살펴봐야 됩니다. 살펴보면  벌써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이 시작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못봐 그렇지 벌써  내부적으로 정리가 되고 축복이 시작되고 있어. 이렇게 하나님은 빠른  하나님이십니다. 번개같이 지나가는 이 세월에 미련하게 우리가 회개하고  난다음에도 뚝뚝 아직까지 참고 그렇게 안 계십니다. 급합니다. 우리만 노력하면  즉시 당신이 하실 일을 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하늘과 땅과  바다 이 모든 것을 그를 위해서 움직이겠다는 것이요. 이분이 주인이요. 우리  주님이시오. 하늘이 누구의 것입니까, 땅이 누구의 것입니까? 바다가 누구의  것이며 육지가 누구의 것입니까? 누가 만들었습니까? 이때 쓰일라고  만드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비위에 거리끼는 자는 바다도 그를  공격합니다. 육지도 공격합니다. 하늘도 공격합니다. 땅도 공격합니다. 어디서  견뎌내겠습니까? 제까짓 게.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겠다.

움직이겠다. 이것을 너를 위해서 움직이겠다. 너를 위해서 네게 좋도록 네게  유리하도록 네게 편리하도록 네게 이용이 되도록 내가 이걸 움직이겠다. 불교의  신이 참람된 거짓말을 했지만 그런 말 한 자가 없습니다. 하늘도 땅도 내가  지었다 하는 신이 거짓말 신이지만 이 땅 위에 하나도 없습니다. 마귀도 그  소리를 못합니다.

 만일 이종교에서 그런 소리를 하면 그거는 종교도 아니고 아주 살인 강도보다  더 악한 놈입니다. 그 창설자가 악한 놈입니다. 그러니까 양심을 가지고  이종교를 창설한 자나 철학자나 그런 학자들은 우주 만물을 제가 만들었다 하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하늘도 내가  만들었고 땅도 내가 만들었고 세상도 내가 만들었고 땅도 내것이고 사람도  내것이라." 요한복음 1장에 말씀했습니다.

 2장 7절입니다.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가 당신의 것이라.

네가 성전 건축만 하면 모든 나라들이 네가 알든지 모르든지 결과적으로 너를  위해서 만국이 움직이도록 내가 하겠다 만국이 당신의 것 아닙니까? 만국의  임자가 당신이오. 우리가 부르는 예수님이 만국의 임자입니다.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만국의 보배를, 무슨 보배든지 보배를, 그 모든 것이  너 유리하도록, 육체의 이스라엘에게는 육체적으로 줬고 신령한 이스라엘에게도  처음 믿는 자에게는 이런 것이 나라도 그에게 혜택, 세계도 그에게 혜택. 크든지  작든지 모든 것이 그의 역량대로 그에게 유리하도록 일으키고 이것을 이제  경험해서 초월해 가지고 신령한 사람이 되면 모든 신령면에 이런 것들이 다 그를  위해서 움직이도록 합니다. 그러기에 성전된 사람의 해할 자는 영원히 없습니다.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전부 그를 위해서 존재하고 그를 위해서 움직이게  주인이 하십니다.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이렇게 성전을 만들어놓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케 하리라. 그 성전을 인해서 만국이 다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고  놀라고 이스라엘을 존대하고 이스라엘에게 다 머리를 숙여서, 이스라엘은 국토는  작지만 하나님이 함께 할 때는 만국이 전부 다 그리 몰려왔습니다. 그들이  뇌물을 받지 안했소. 그러나 만국의 통치가 그들의 지배를 받아서 다  통치했습니다. 다윗 때도 그리했고 솔로몬 때도 그리 했습니다. 만국이 다 그  나라 와가지고 물어서 '우리 이리 할까요 저리 할까요?' 그까짓 거 탈취하면  당장에 탈취하지만 안하고 그들에게 통치할 모든 모략이나 모든 지도를  예루살렘에서 했습니다. 역사를 아는 사람은 생각해 보면 더 잘 알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절에 "은도 내것이요 금도 내것이니라" 이 말은  모든 물질이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만들었어. 주님의 것이요. 이분이 우리  위해서 죽기까지 하셔서 대속하셨는데 만물을 너희들에게 주지 않겠느냐? 죽으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다시 살아나셔 가지고 아버지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시는데  무엇 때문에 헛된 것을 생각하고 헛된 경영과 욕심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라는 이  귀중한 일을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을 신약에서는 많이 탄식적으로 말씀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렇게 기독자는 참된 쾌락도 존귀도 평강도 부강도 거저 자신을  어떻게 하느냐 행위를 어떻게 하느냐? 거기에 있지. 뭐 과학이나 세상 무엇이나  그런 것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만 돼서 하나님이 자기 마음 안에  계시게 하고 자기 마음 안에 계셔서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각도 나오고 말도  나오고 소원도 나오고 경영도 나오고 움직임이 나오면 이것이 전지요. 땅의 것이  무슨 필요있습니까? 전지요, 전능이요.

 이것을 못하니까 이 보조하는 이런 것 저런 것 방편을 쓰서 쉽게 가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세상에 이런 학문도 저런 학문도 배우는 것이지 그것 배워  와가지고 그것 배우는 것 가지고 하나님을 아는 데에 도움이 되고 하나님을 믿는  데에 도움이 되고 하나님을 모시는데 도움이 되면 그것이 부스러기 유익이라도  유익이 있지만 그것 가지고 하나님 대용할 줄로 알고 그것 있으면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대행할 수 있는  줄로 아는 자마다 패망합니다. 만이면 만, 억만이면 억만 다 패망합니다. 그만한  생각을 가진 것만치 다 패망합니다. 이는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늙어  죽을 때에야 다 깨닫고 후회합니다.

 땅 위에 이것 저것이 하나님을 찾는데에 도움이 되고 아는데 도움이 되고  힘입는데 도움이 되고 이러기 위해서 이것 저것 하는 것이고 또 그런 것을  상고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것으로 망한 것처럼 자기에게도 그 이름을  배워서 자기 속에 그 이름과 같은 것을 뽑아버리기 위해서, 이 잡된 인간, 이  변질된 인간을, 변질된 지식을, 변질된 사상을, 변질된 욕심을, 변질된 인질을,  인품을, 이것을 뽑아버리려고 해서 하는 것이지 망할 것밖에 없는 세상 것을  우리가 가지고 생명에 속한 것을 우리가 마련하려고 하는 것이니까 영 생각이  거꾸로라 말이오.

 10절, "다리오 왕 2년 9월 2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지금 말씀합니다. 오늘도 신구약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해주는 것이 선지자이지만 또 하나님께서 지금도 시대를 따라서  하나님의 종들을, 종이 위대해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이 종으로 세웠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시기 시기마다 당신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11절,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사람이 옷자락을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거룩한 고기란 말은 거룩한  제물이란 말입니다.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하나 깨끗해진 그것을 이런  더러운 것, 저런 더러운 것에 대면 더러운 그것이 하나 깨끗해진 그것으로  인해서 깨끗해지겠느냐? 한 번 물어봐라. 이것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아무리 깨끗한 것이라도 그  깨끗한 것 하나를 더러운 것에 댄다 해도 더러운 것이 깨끗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13절에 "학개가 가로되 그러면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더러운 것이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더러워진 그것이  더럽지 안한 것들을 대면, 만지면 깨끗한 그것이 더러워지겠느냐? 어떻습니까?  깨끗한 것을 더러운 데 붙이면 더러운 그게 다 깨끗해지겠느냐? 더러운 것을  깨끗한 데 붙이면 더러운 하나를 인해서 많은 깨끗한 것이 더러워지겠느냐?  그러면 하나의 더러워진 것으로 인해서 더러운 것이 많이 깨끗해지겠느냐?  더러운 것 하나 가지고 많은 깨끗한 데 대면 그것이 깨끗한 게 그대로 있겠느냐  그대로 있겠느냐? 더러운 것과 깨끗해지는 것을 여기 두고서 말씀합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이 한 가지가 깨끗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일면이 깨끗하니까  모든 것이 깨끗해질 수 있겠느냐? '아니라' 대답이 옳습니다. 그 사람이 모든  면이 다 깨끗한데 한 면이 더럽습니다. 그러면 한 면 더러운 것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더러워집니까, 많은 면이 깨끗한데 한 면 더러운 것 그것 가지고  더러워집니까 안 더러워집니까? 어떻습니까? 더러워집니다. 깨끗해지는 것과  더러워지는 것이 다릅니다. 이것을 말합니다. 깨끗해지는 것은 하나 깨끗하다고  많은 것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니로되 더러워지는 것은 모든 면이 깨끗해도  하나만 더러우면 그 모든 것이 다 더러져버리고 맙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나이다"  14절에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그러하니라" 이러니까 하나 깨끗하면 모든 것이 다 일면만 잘 했으면 모든  면 다 잘 안해도 일면 잘한 것 가지고 다 잘된 줄로 알고 바라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하나 더러워졌다고 다른 것 뭐 더러워졌겠나? 그 하나 뭐  잘못됐다고 다른 게 상관이 있겠나? 다른 면은 괜찮겠지 하는 것이 이 백성이라.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틀려서 오늘까지 고생하고 안됐다는 말입니다.

 15절에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너희는 오늘부터, 오늘이 며칟날입니까?  10절에 9월 24입니다.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도 생각해보고 이후도 생각해 봐라.

오늘부터 이전을 생각해 봐라.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놓이지 않았을  때를 추억하라. 성전을 짓지 아니하고 허물어진 그대로 뒀을 때를 너희들이  생각하라. 이전 일을 생각해 봐라. "그때에는 20석 곡식더미에 이른즉 10석  뿐이었고 포도주 틀에 50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20그릇뿐이었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는 너희들의 생각에 반씩 줄었다 말입니다. 성전 건축하기  전에는 반씩 줄었어. 내가 너희 손으로 모든 지은 일에 그때는 어떻게 했느냐?  하나님께서 폭풍을 일으켰고 곰팡이를 피게 했고 우박을 내려서 쳤으나, 9월  24일 이전에는 그랬으나 "너희들이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때는  암만 매를 맞아도 돌이키지 안하고 자꾸 고집만 피우고 강퍅만 가지고 그러기  때문에 그 매가 그치지 안했다 말이오.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9월 24일 곧 여호와의 전지대를 쌓던  날부터" 9월 24일부터 성전지대를 기초를 놓고 시작을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으로 삽니다. 뭐 미군 그까짓 게 우리 구원 못합니다. 나는 절대 그걸  믿습니다. 누가 우리를 구원하겠습니까? 우리가 어디로 피하겠소? 소용  없습니다. 우리가 단체든지 개인이든지 하나님의 깨끗한 전이 될 때에는 "천인  만인이 내 옆에서 거꾸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는 가지 못한다." 했습니다.

 나는 이 남북이 통일되면 하나 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 것은 말씀에 "천인  만인이 내 옆에서 거꾸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오지 못하리라." 오만 대적의 그  모든 그 무기의 그 해들이 너희에게는 가까이 오지 못한다. 말씀했는데 이북에서  월남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대로 죽이면 구원도 안되고 그 둬야 되도 안하겠고  이러니까 좀 회개 마음가지는 것은, 그때라도 급할 때라도 회개를 하니까  이남으로 끌고 넘어왔는데 이남에 넘어와가지고 또 패역을 부리고 돈돈하고 있는  자는 참 비참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신앙을 지켜서 깨끗한 성전되어 있는 그 사람들은 우리가 살아서  볼란지 모르고 그들이 조금도 해하지 못하고 눈동자와같이 보호를 입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그 사자구덩이에 다니엘처럼, 불 속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가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그들을 보고 싶습니다. 왜정  말년에도 신사참배 때문에 그렇츰 물끓듯 끓고 거저 하나도 쥐잡듯이 잡아서  개인 개인 끌어다 했지만 그래도 그때에 평강으로 사는 사람은 평강으로  살았습니다. 신사참배도 안하고 자유롭게 어느 때보다도 잘 살고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잘 살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계시는 증거입니다.

 "보라 곧 9월 24일 여호와의 전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다 심어져 버렸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다 없어져  버렸어. 풍재가 있어서.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아무것도 안돼. 그때를 생각해 보라 했습니다. 네가 이 일을  생각하기 전에 성전 건축 회개를 속속들이 하기로 시작하기 이전에 네 형편이  어찌됐는가 보고 그 결심하고 작정하고 돌아선 이후부터 어떻게 됐는가 대조해  봐라. "그때는 없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어떤  복을? 하늘을 진동시키고 땅을 진동시키고 바다를 진동시키고 육지를 진동시키고  모든 열국들을 진동시키고 모든 천연도 자연도 모든 만물도 다 너를 위해서 집중  옹호하도록 내가 하겠다하는 이 일이 오늘부터 너희에게 있는가 없는가 봐라  했습니다.

 "그달 24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을 세력을 멸할 것이요" 이스라엘을 멸하기 위해서  몽둥이로 마련했던 것을 이스라엘이 회개를 하니까 몽둥이 그까짓 거 불사르지.

아들을 때려서 피를 냈던 몽둥이를, 채찍을 아들이 돌이키면 그 분을 때리고나서  돌이키는 분은 몽둥이로 갑니다. 자끈자끈 부지뤄서 불에 넣습니다.

 공산주의를 부술 자가 누굽니까? 여호와 하나님뿐입니다. 공산주의 세력을  깨뜨리고 공산주의에게 미혹받고 있는 내 민족이나 인류들을 구출할 자  누굽입니까? 여호와 하나님뿐이오. 빨갱이 사상을 빡빡 부숴놓을 권세가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께 밖에는 없습니다. 딴데 없어.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악한 자의 악한 사상이 깨어지면 그 사람들도 스스로 돌이켜  회개하고 택한 자는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고 불신자들은 다 일반적인 인간  정신대로 돌아와서 다 질서정연한 도덕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들을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계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인을 삼는다 말은 그 주인의 도장이 찍혀지면 그  일을 책임집니다. 도장간 데마다 그 주인을 책임을 져야돼요. 인을 삼는다 말은  스룹바벨 네가 하는 일을 전부 내가 책임지겠다. 하신 말씀입니다.

 이럴 수 있는 생명길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계약한 길이  있는데 이 길을 무시하고, 이 준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오.

하나님을 부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대적이 됩니다. 이 길밖에는 사는 길이  없습니다. 성전 마련합시다. 하나님의 요구대로의 사람, 하나님의 요구대로의  행위외에는 자기를 구원하는 길이 없고 자기 가정을 구원하는 길이 없습니다. 뭐  공산주의 그게 뭐이요. 하나님이 공산주의를 일으켰어. 왜? 우리 때문에 우리가  말 안들으니까 채찍으로 쓰려고 몽둥이로 쓰려고.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기도>  살 길을 다시 밝혀주신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 모인 성도들과 우리  국내에 있는 성도들과 세계에 있는 성도들이 주의 전을 수축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 해결의 이 한 방편에 집결되게 하시고 헛된 경영이나 수고를 하는 미혹에서  다 돌아서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하심과 성령님의  감화감동하심이 항상 저희들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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