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1980. 4. 28. 월새

 

본문: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자기가 거처하는 처소인 자기의 집은 그 주인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더  증축해야 되면 증축도 하고 또 편리하게 보기 좋게 수리하려면 수리도 하고  주인의 형편과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그 집의 형편이 같습니다. 그 주인이  부강해지면 그 집도 부강해지는 것이고 또 그 주인이 쇠퇴해지면 그 집도  쇠퇴해집니다. 집을 보아서 그 주인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더군다나 여기 대해서 잘 볼 수 있습니다. 그 집을 보면 '아, 이  사람의 형편이 그렇게 큰 무슨 형편이 열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형편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또 '이 사람은 낱푼 푼은 잘 벌어서 낱돈이 넉넉하게 사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아마 남이 모르는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다. 큰돈도  말랐고 잔돈도 말랐다.' 그것을 그 집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당신이 기울이시기를 있는 부요, 존귀, 힘, 온갖 희생 다 기울여서  지은 놓은 집인데 이 집을 하나님이 허술하게 간직하시지를 아니하십니다.

 그러기에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멸하시리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성전, 당신이 거처하시는 그 집을 얼마나 귀중히 취급을 하며  엄격히 취급을 해서 하나님이 거처하시는 이 성전을 누구든지 많이 해하면  하나님께서 거기서 많은 멸망을 시키실 거고 적게 해하면 적게 멸망을 시켜 많이  해하든지 적게 해하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힌 그것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종류적으로 더럽힌 것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종류적으로나 그것은 다  하나님이 멸하시겠다. 그렇게 선포를 했습니다.

 "더럽히면 멸하신다." 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성전을 얼마나 당신이 잘  보관하고 계신다 하는 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성전을 조그마치라도 해치면  그를 멸하신다. 그러면 조그마치라도 해치는 것은 다 멸하시니까 얼마나 이  성전을 잘 보존하신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전인데 이 성전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이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이 성전을 해치는 자는, 이 성전을  상우는 자는 하는 말인데 누구든지 이 성전을 더럽히면, 그러면 다른 사람이 이  성전을 더럽힐 수도 있겠고 또 본인이 이 성전을 더럽힐 수도 있겠습니다.

본인이 성전을 더럽히든지 다른 사람이 이 성전을 더럽히든지, 더럽힌다는 말은  해친다는 말인데 어떤 것이 더럽히든지 더럽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멸해버립니다.

 이러니까 더럽힌 것은 더럽힌 그것이 멸망을 받았지 그 성전은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성전을 더럽히면 더럽히는 자에게 이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멸하시는 그런 역사를 하시고 또 더럽히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을  자기 집으로 이용을 하십니다. 자기 거처로 이용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성전을 당신의 거처로 이용하시는데 이 성전을 더럽힐 때는 이용하는 일은  중단하고 더럽히는 그것을 멸해버립니다.

 이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데 이 성전에 대해서 우리가 무슨 간수를  한다든지 그런 권세도 없고 이 성전을 수리할 힘도 없고 다만 이 성전을  더럽히는 자가 되지 않도록 만 노력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성전을  더럽히는데 가담하는 일만 안 하면 됩니다. 이 성전을 더럽히는 일에 가담하는  일만 안 하면 이 성전은 의례히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또 하나님이 쓰십니다.

다만 이 성전을 더럽힐 때 그것은 절단 납니다.

 우리가 어떤 걸 원하느냐 하면 지혜로서는 제일 지혜 있는 자 되기를, 제일  정확하고 고귀한 지혜를 원합니다. 고귀한 지혜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몸밖에 다른 데에서 내가 아주 지혜 있는 사람되기 위해서 동서남북을  다니면서 지혜를 구하는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우리 안에 가장 지혜로운  지혜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또 우리가 능력 있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이런 능력을, 저런 능력을, 실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데, 실력 있는 사람되기를 원해서 이런 방편 저런  방편으로 실력을 마련하고 있는데 실력을 우리의 몸밖에서 마련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안에 가장 큰 실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권세를 원합니다.

권세도 가장 큰 권세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영광이나 존귀나 그 이상이 없는  모두다 유일한 것, 너무 비교가 없는 둘도 없는 하나만 되는 유일한 모든 좋은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 알지 못하느뇨" 이 말은 인간들이  좋아하는 것, 인간들에게 필요한 것, 인간들이 필요로 느끼고 좋아하고 참  있어서 유익되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 중에는 제일 좋은 것이 우리 안에 다  있습니다. 뭐 이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있는데 다만 그것이 내 것으로 나타나지 못하는 것은, 전지가 내 전지로  나타나지 못하는 것은 전능이 내 전능으로 나타나지 못하는 것은 유일한 권위가  내 권위로 나타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성전이 안 됐을 때는 그런 것이 내게는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성전이 되지 안 했을 때는 나는 여전히 무지 무능한  죄인입니다. 천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성전으로 되어 있을 때에는 그때는 이  모든 것이 자기의 것입니다.

 영은 성전이 된 것인데 이 성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성전입니다. 이러기에  영은 성전으로 변함이 없기 때문에, 중생 된 영은 전지를 가진 영이요, 전능한  영이요, 이 영은 모든 권세와 영광과 존귀를 다 가진 영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영입니다. 그러나 이 영이 다 가졌지만 이것을 가지고는 있지만  쓰지 못하는 것은 그 다음에 가로막혀져 그렇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 안 되어 있고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몸으로는 나타내지 못합니다. 몸으로는 이 모든 것을 가진 이것을  몸으로는 나타내지 못하고 마음으로는 나타내지 못하고 마음은 이 모든 것을  가지지 못했고 몸은 이 모든 것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성전이 아니기  때문에 못 가졌습니다. 성전이면 가집니다.

 성전으로서 이것을 가진 것은 어떤 것이라도 이 성전을 해하면 해하려고 하는  그것이 깨어져버리지 성전이 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중생 된 영을 해할 자는  영원히 없습니다. 해하는 것은 크든지 작든지 그것이 다 절단 나버리지 중생 된  영은 추호도 해를 보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성전이 되었을 때는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몸도 성전 되었을 때는 아무것도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과 몸이 성전이 아닐 때는 여전히 일반인과 똑같습니다.

일반인과 같아서 그것은 얼마든지 해할 자도 있고 해를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성전이 됐을 때는 아무도 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전능의  자요, 전능한 마음이요 전능한 몸이요, 전능한 육입니다. 전지한 육입니다.

우주보다 귀한 육입니다. 그러나 성전이 아닐 때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는  일반 사람과 꼭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자기가 모든 좋은 것을 자기 밖에서 구하려고 하는 것이  어리석습니다. 모든 좋을 것을 자기 안에서 구하는 것이 지혜 있는 사람입니다.

또 자기 밖에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참된 기독자들은 다 가졌지만 그거는 다  자기가 가졌기 때문에 자기 가진 것은 자기가 가지지 자기 가진 것을 내가  빼앗으래야 빼앗지 못합니다. 각각 자기 안에 이 모든 완전이 다 내재해 있기  때문에 모든 좋은 것을 자기 안에서 구해야 됩니다. 자기밖에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못 뺏듭니다. 뺏들려 하면 제가 절단 납니다. 뺏드는  그것이 그 사람의 성전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에 해치면 하나님이, 전능자가  멸해버립니다.

 이러기 때문에 택자들은, 중생 된 자들은 모든 좋은 것을 자기 안에서 구해야  됩니다. 자기 안에 모든 좋은 것이, 제일 좋은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것을 자기가 이것을 받아 가지는 데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성전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이 되면 그는 전능의 존재요, 전지의 존재요, 완전의  존재요, 영원한 존재입니다. 그는 우주와 영계에 있는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성전이 변해지면 안 됩니다. 성전을 벗어버리면 안 됩니다. 성전을  벗어버리면 이제 성전이 아니게 되면 그는 일반인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자기가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 성전 되는 것이오.

전지의 지혜로 살고 싶으냐? 성전 되는 것이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데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성전 되는 권세를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러기에  우리가 지금 노력하는 것은 영은 성전이 됐고 지금 이 심신은 성전이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성전만 됐으면 이것은 하나님과 똑같은 자입니다. 성전만 되면  하나님과 똑같은 자입니다.

 같다 말은 하나님이라 말입니까? 하나님 아니라 말입니까? 오해하면 안 되는데  같다 말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닌데 하나님 같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같이 됩니다. 그러기에 산 돌같이 예수님의 인성은  완전한 성전이 됐습니다. 산 돌같이 완전한 성전 된 예수님의 인성같이 우리라는  사람도 하나님의 성전이 완전히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전이 되면 하나님의 모든 충만이 자기 것이기 때문에 전지한 지혜를  구하려면 어디서 구할 건가? 자체가 성전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성전 되면  전지의 지혜를 벌써 가졌습니다. 몸이 성전 됐으면 전능의, 전지의 지혜를 그  몸이 가졌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아니면 여전히 인간의 무지무능이 되고 맙니다.

 그러기에 어떤 강한 세력이 자기를 대항합니다. 강한 세력이 자기를 대항할 때  그 세력을 자기가 대항하려고 다른 준비가 필요 없습니다. 온갖 준비해봐야  소용없습니다. 그때는 자체가 성전 되는 그것뿐입니다. 자체가 성전이 되면  자기를 멸할 자는 피조물 중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이 성전을  해하지는 못하고 이 성전의 것이 되고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이 거처하는  성전의 것입니다. 성전의 것이 되고 성전을 위함이 됩니다.

 총 끝에서도 죽는 자리에서도 어떤 자리에서도 존귀한 자리에서도 어디서라도  성전이 되면 두 가지가 됩니다. 성전이 되면 해할 자가 하나도 없는, 모든 해를  완전히 방비하는 것이 됩니다. 또 한 가지는 성전이 되면 그의 모든 구비성과  온전성이 하나님 아닌데 하나님같이 되어져 버립니다.

 성전이 되면 두 가지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모든 해하는 것을 다 방비해서  해할 자가 하나도 없게 돼버립니다. 또 하나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 아니면서  하나님같이 됩니다. 영계와 우주의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돼 버립니다. 자기는  능치 못함이 없고 알지 못함이 없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같이 권세 가지게 되고  하나님같이 존귀해지고 하나님같이 영광스러워집니다.

 이래서 하나님은 머리요, 성전이 된 자는 하나님의 몸이라 했습니다. 머리의  영광은 몸의 영광이요, 몸의 영광은 머리의 영광입니다. 머리나 몸이나 한 권세,  한 지혜를 가지고 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머리와 몸의 한 사람의 영육  일체의 것이 아닙니까? 그러기 때문에 성전이 되면 두 가지가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연습시킵니다. 나를 해하려고 할 때 그 해를 방비하는 방편,  해하는 것을 방비하는 방편이 뭐이냐 내가 성전 되는 것입니다. 성전 되면  해하는 것이 방비될 뿐만 아니라 해하는 그거는 멸해집니다. 해를 못합니다. 해  받지 못합니다. 이게 좀 아주 어려운 말인데,  손양원 목사님이 6.25때 그분이 인민군들에게 죽임을 받았습니다. 죽임을  받았는데 그 죽임 받은 그것이 해를 받은 것인지 유익을 받은 것인지 인민군에게  위함을 받은 것인지 멸함을 받은 것인지 그것은 어디서 결정되느냐? 죽고 안  죽는데 결정되는 것 아닙니다. 다만 그것은 성전이 되고 안 되고에 결정됩니다.

성전이 됐으면 인민군, 6.25는, 그 전쟁은 전부가 손양원 목사님을 영원히 위한  것이 됐습니다. 그 당시도 위했고 영원히 위하는 것이 되고 추호도 해하지는  못합니다. 해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감나무 골에 가 가지고 마지막에 죽으셨는데 그때라도,  마지막에라도 성전이 아니었으면 성전이 아닌 것은 다 멸해졌습니다. 성전 아닌  마음도 멸해졌고 성전 아닌 몸도 멸해졌고 그 심신이 성전이었다면 그는 추호도  해하지는 못했고 그 모든 것은 영원히 그의 심신을 위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당시에 이 우주와 모든 존재들은 전체가 그를 위하는 것이 됐습니다.

그의 것이 됐습니다.

 이것이 믿기 어려운 것이오. 이것이 "이제 것이나 장래 것이나 사망이나  생명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모든 것이 너희 것이니라." 우리  것이라 했습니다. 어떻게 되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 되어 있습니다. 영은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 있습니다. 이 심신이 그리스도의 것이 되면 우주는 다 자기 것이오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모든 피조물 위에 하나님 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들은 영계와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을 제 것을 만들 수 있는 이런  큰 부요의 희망이 있는 자요. 또 하나님같이 모든 면이 완전하고 깨끗할 수 있는  이 자체에 큰 희망을 가지고 있는 자요, 또 활동적으로 모든 피조물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충만케 해 줄 수 있는 이 시은의 활동, 사업, 이 큰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 기독자들입니다. 어떻게 되면 되는가? 하나님의 성전 되면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 되면 이것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든 좋은 것을 찾는 방편이 성전 되는 것이 모든 좋은 것을  얻고 가지는 방편으로 모든 원수를 모든 해를 방어하는 방편으로 모든 것을  정복하고 승리하는 방편으로 삼은 것입니다. 성전 되는 거.

 믿음이라는 말은 성전 되는 방편을, 또 성전 되어 가지고 성전으로 행사하는 그  모든 방편을 총괄해서 믿음이라 그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어떤 다급한 때라도 위급한 때라도 우리가 급하게 그 모든 것을  해결하는 아주 속수로 써야 될 해결 방편은 성전입니다. 어떤 일을 닥쳐서도  그만 거기서 자기가 자기 몸밖에서 무엇을 단속하려고 하지말고 일단 성전부터  되어야 합니다. 성전만 되면 그만 그 다음부터는 해할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것을 구약에서는 살인 죄수가 성전 안에 뛰어들어가지 못할지라도 그만 가  가지고 제단만 거머쥐면 아무도 죽이지 못합니다. 사형수라도 나라에서 죽이려  해도 제단만 거머쥐었으면 그 사람을 사형하지 못합니다. 사형하려고 하면  사형하려는 그 세력이 깨어져 버립니다. 제단의 뿔만 거머쥐면 그만 사형을  못합니다. 이런 것은 하나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만  되면 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성전은 어떤 것이 성전인가? 성전은 하나님이 주인으로 계시는 이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 속에 주인으로 앉아 계시면 그 사람은  성전입니다. 그러면 성전은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이 성전인데 그러면  성전이 이것이 어떻게 해서 됐는가? 이 성전을 누가 건축했는가? 이 성전을  건축하신 이가 예수님이십니다.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이 이 성전을  지으셨습니다.

 "성전을 헐라. 헐면 사흘만에 다시 성전을 일으킬 것이다." 이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이 성전은 40여 년을 걸려서 지은 성전을 부수면 제가 사흘만에 짓겠다  참람된 소리라 그들이 또 정죄 했습니다. 그 말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전은  하나님이 내주 하시는 신인양성일위를 상징한 것이오, 모형한 것이오. 구약  성전은 신인양성일위이신 예수님을 모형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성전은 예수님이, 신인양성일위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의  성전이지 예수님이 오신 다음에는 예수님이 성전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후는 영원한 성전입니다. 다시 불변 없는 완전한  성전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피조물 속에 영원히 보좌를 차리시고 왕궁을  차리시고 영원히 사람 안에 계시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 위에 가는 영육으로 된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 사람을  당신의 집으로 그 사람 안에 있는 제일 높은 자리를 하나님의 보좌로 삼아  가지고 하나님이 계시게 됐습니다. 하나님이 피조물 안에 영원 완전히 거처를  삼으신 것이 예수님의 부활로 완전히 거처를 삼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사람은 완전히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성전 된 것이 당신만을 위해서 성전 된 것이 아니고 모든  택자들을 다 똘똘 뭉쳐서 다 가지시고 이 성전 건축을 했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부활로 택한 자들은 다 하나님의 성전이 되도록 돼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이 되도록 돼 가지고 있는데 이 성전이 되도록 다 하나님 앞에서 지공  지성, 지공 앞에서 일으켜 놓은 이 성전을 이제는 개인 개인으로 이 성전을  가지도록 이 성전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일차적으로 예수님에게 이  성전을 건축하신 그 건축자가 우리를 대표하는 모든 성전을 건축해 놓으시고 이  건축해 놓은 성전을 모든 자들에게 나누어주어서 모든 자들이 이제 이 성전이  되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제 이차 건축으로 이차 건축자로 오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일차 건축은 신인양성일위로서 모든 택자들을 대표해서 이 성전 건축을 하셨고  이차 건축으로 이 건축자가 오셔서 우리의 영육을 하나님의 성전 되게 하시려고  착공하신 것이 오순절 성신 강림입니다. 이래서 에베소 1장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 능력이 지극히 큰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그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대속의 완성을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에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는 이 능력이, 거기 보호라는 말은  책임졌다는 말입니다. 책임자라는 말입니다. 보증자라는 말입니다. 지극히 큰  능력의 보장을 받았다 지극히 큰 능력이 책임을 졌다. 무슨 책임? 성전 건축  책임. 이것을 가리켜서 구원 완성 책임이라고도 합니다. 이렇게 지극히 큰  능력이 우리를 성전 만드시려고 성전 되게 하시려고 와서 때가 되니 이차적으로  영을 중생 시킨 그것이 영을 성전 만든 것이오.

 그 다음에는 계속적으로 심신을 성전 만들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이 심신을 성전  만들기 위해서 이런 형편, 저런 사정, 온갖 현실을 우리에게 닥치게 합니다.

온갖 현실에서 그 현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만들고 그 현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 성전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성전을 통해서  나타나심을 만들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불 속에서 타지 안 한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만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나타낸 것입니까? 만들어진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불 가운데 던져서 죽인다 그러기 때문에 절해라' 할 때에 그가 절을  하지 않는 것은 성전 된 것을 나타낸 것입니까, 성전이 되어지는 것입니까?  자기가, '아, 불 속에 던지움을 받아도 절은 안 하겠습니다.' 하는 그것이  성전이 되어지는 것입니까, 성전 되어진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신령한 집을  건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전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불에 들어가도 불  냄새도 안 나고 상하지 않는 것은 성전 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거기는  하나님이 나타난 것이오. 주인이 나타난 것이오. 주인이 나타나서 주인이 불보다  크시기 때문에 그 집을 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불에 들어가서 타죽어도 우상에게 절할 수 없다고 해서 절하지 않는  그것은 자기 안에 주를 모시는 것입니다. 절을 하면 성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절을 하면 주님을 자기 안에 모시지 안 했습니다. 절을 했으면 귀신을 모셨지  주님을 모시지 않은 것인데 죽어도 절하지 않는 것은 주님을 자기가 모시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전을 만드는 것은 성신이 우리를 통해서 만드십니다.

 이러기에 에베소서에 "스스로 세워져 가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스스로" 우리가  건축해야 된다 그 말입니다. 자기가 한 것같이 되어지나 그것이 성신이 우리를  통해서 그 일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은 어떤 것이 성전인가? 하나님이 내주 하는 것이 성전인데  하나님이 내주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돼야 합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돼서 사죄의 이 순위를 통과해야 됩니다. 사죄의 순위를 통과하고 난  다음에는 칭의의 순위를 통과해야 합니다. 사죄와 칭의의 순위를 통과하면 이제  하나님과 결합할 수 있는 재료는 됐습니다. 자격은 됐습니다. 하나님과 결합하는  데에 결합할 수 있는 그 요소는 됐습니다.

 그러나 요소 됐다고 결합되는 것 아닌데 요소는 됐는데 그러고 난 다음에는  예수님께서 화목 제물로 대속 하신 이 예수님의 대속으로 하나님과 화목한 이  새생명, 하나님과 연결된 이 연결, 이것이 되어야 비로소 이것으로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사죄가 없으면 못 들어옵니다. 칭의가 없으면  못 들어옵니다. 하나님과 결합이 되어야 들어옵니다. 결합될 수 없는 자가 되면  못 들어옵니다. 하나님과 결합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영이 중생 되는 것은 예수님이 결합시켜 놓은 것이 우리 개별적으로 하나님과  자기와 결합되는 이 결합이 중생입니다. 중생으로 하나님이 우리 영 안에는  들어왔습니다. 이러기에 우리의 영이 중생 된 것은 영이 가진 육이 영원히 범죄  할 그 모든 범죄를, 범죄 한 거, 범죄 할 것.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 문제를  완전히 영에게 일시 부담시켜 영이 정죄 받고 난 다음에 영이 사죄를 받고 또  영이 가지고 있는 심신이 모든 하나님 앞에 의무와 책임이, 이행해야 될 이  의무와 책임 이것을 단번에 그 영에게 부담을 시키고,  이러니까 이 모든 것을 영은 다 해야 됩니다. 부담을 시키고 부담시킨 그것을  예수님이 대신 부담한 이 칭의를 받고, 단번 정죄에 단번 사죄에 단번 책임,  단번 칭의, 이러고 난 다음에 이제 하나님과 화합된 이 화평, 해 놓은 이 화평을  영이 입어서 하나님과 화평 되는 이것이 중생입니다.

 이러니까 중생 된 영은 다시는 죄 짓지 않습니다. 영은 죄 지을 수 없는 것이  영인데 영은 언제든지 주격 책임에서 죄 짓습니다. 선악과를 먹은 것도 그  심신이 먹었는데 심신의 주격이 영이기 때문에 주격이 그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 자체로서는 범죄할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런데 이 영이 이 순서를 거쳐 가지고 중생 됐기 때문에 중생 된 자의 그  심신이 범죄 하는 심신 범죄는 그 주격인 영의 범죄인데 중생 되고 난 다음에도  그 사람의 심신이 범죄 하는 데 영이 주격 책임에서 범죄한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그 영이 그 육신이 죄 지었을 때는 주격 책임에서 그 영이 죄 지은  것이 아닌가? 어찌 됩니까? 영이 죄 지은 것입니까? 안 지은 것입니까?  ○○○조사님, 왜 죄 지은 게 아니라? 자기 심신이 죄 지었으면 자기가 죄  지었지. 주격이 그 죄를 부담 안 하면 되는가? 부담해야지. 죄 지었지. 죄  지었는데 중생 된 영은 왜 죄 지었지 않는다 합니까? 네 말 표시는 잘 못하는데  알기는 아는 모양인데. 중생 되기 전에 그 모든 것을 당겨져 졌다 말이오. 졌기  때문에 한 번 지면 됐지. 두 번 질 필요가 없어. 두 번 질 그런 법이 없어.

 한 번 졌기 때문에 중생 되고 난 다음에 그 심신이 범죄하나 그것을 주격인  영이 그것을 책임을 질 수 없는 것은 벌써 중생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끌어다가 정죄를 다 했기 때문에 중생 되기 전에 벌써, 중생 된 후에 심신이  지은 죄를 당겨 다 부담을 한 것입니다. 그때에 한 번에 정죄를 다 받았다  그거요.

 '죄를 짓지도 안 한 죄를 어떻게 미리 당겨 정죄를 받아? 억지 해석이다.

억해다. 억설이다. 억지 해설이다.' 이렇게들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런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데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형한 것은  우리의 실질적인 죄를 다 부담하신 것인데 우리가 나기도 전에 우리 죄를 다  부담이 되어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자, 전능자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볼 때 아직까지 나타나지 안 했다. 보여지지 안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없습니다. 알파와 오메가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 모든 죄를 예수님께 다 부담시켜 가지고 예수님을 정죄하고  예수님이 거기서 형벌을 대신 했습니다. 대형했습니다. 대신 형벌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기도 전에도 예수님에게 다 끌어다 붙여 부담을 시켰는데  자기의 심신이 미래적으로 범죄할 것을 영에게 끌어다 붙여서 정죄할 수 없다  말입니까?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까? 이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중생 된 영이  범죄하지 않는다는 말을 이해가 안 되어서 자꾸 말합니다.

 그것은 안 믿는 사람들도 법을 공부한 사람들은 당장에 듣습니다. 아, 그게  법이지. 그게 당연하지. 그러기에 법을 공부하라는 것이오. 제가 말하는 것이  법과 사학을 공부하라는 것은 모든 학문의 전체를 다 낱낱이 파악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걸 인간의 지식을 내가 파악 안 하고 하는 말 아니오. 파악을  했기 때문에 모든 것보다 법을 공부하고 역사를 공부하는 게 낫다 말하는  것입니다.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지만 과학은 소경을 만든다는 것이 바로 파악했기  때문에 하는 말이오. 과학을 인간을 꼭 자기 육체로 보는 것이라야 되어지지  더군다나 고깃덩어리로 보는 것이라야 되어지지 심령으로 보는, 마음으로 보는  것은 희미합니다. 영으로 보는 것은 전혀 모릅니다. 그러기 때문에 과학자가 참  신자가 되는 것이 힘이 듭니다. 왜? 그것을 꿰뚫고 나가야 되기 때문에 꿰뚫지  못할 바위에 그 과학 지식이 있기 때문에 이놈은 꿰뚫고 나가야 되니까 꿰뚫고  나가는 힘이 과학자의 힘보다 셉니다.

 그래서 앞으로 성막 공부하면 여러분들이 알 건데 사죄의 순서를 거치고 칭의의  순서를 거치고 그 다음에 하나님과 결합인 이 생명에 도달을 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택한 자들은 성전이 됐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제 하나님이 내주  하시게 됐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는 항상 휘장이  가리어져 있었습니다.

 소의 피를 가지고 1년에 일차, 성소에서 지성소에 휘장을 열고 지성소, 법궤,  속죄소 앞에 가서 속죄의 제를 지내지만 여전히 휘장은 가리어집니다. 나오면 또  가리어집니다. 이럴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아직까지 그 길이 열리지 안 했다 그  말입니다. 이러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휘장이 위로부터  손대지 안하고 찢어졌습니다. 그 휘장이 아주 두껍게 강하게 짜놓은 휘장입니다.

이런데 갈라졌습니다.

 이런데 휘장 가운데 열어놓으신 생명 길이라. 히브리서에 말씀한대로 휘장  가운데로 열어놓으신 생명 길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말합니다. 이래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비로소 땅 위의 교회는 완성이 된 것입니다. 성전은 완성이  됐습니다. 이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다" 그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완전케 하러 왔다는 그 말입니다.

 이제 에덴동산에서 "여인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상운다. 이긴다." 하는 그것이  구약시대에 앞에 완성될 이 예수님의 완성을 바라보면서 있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완성이 됐습니다. 거기서 완성된 것으로 휘장이  갈라졌습니다. 부활하실 때에 이제는 사망을 이겼다는 증거로 자던 성도들이  무덤 가운데서 벌써 몇 천 년 무덤에서 그 성인들이 살아 나왔습니다. 살아 나와  가지고 같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갔다가 그러면 어디로 갔느냐?  다시 무덤으로 들어갔습니다. 무덤으로 다시 들어가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을 기다립니다.

 이러기에 성전만 되는데 성전이 뭐이냐? 내가 그리스도 말미암아 사죄 받은  사죄의 것으로, 칭의 받은 칭의의 것으로, 하나님과 결합된 것으로 사죄 칭의  새생명, 예수님의 대속을 받아 예수님의 대속의 것이 되면 이것이 성전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것이 되면 성전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것이 되면 해할 자 없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주인공입니다.

영은 예수님의 대속을 완전히 입어서 성전이 됐습니다. 사죄 받은 영으로 칭의  받은 영으로 결합의 새생명 받은 영으로 다시는 변동 없습니다. 이러나 우리의  심신은 아직까지 이 성전이 되어져 가고 있습니다. 사죄를 입어져 가고  있습니다. 칭의를 입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니까 입었다 벗었다 입었다 벗었다  자꾸 이 짓을 합니다. 중복적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사죄를 떠나지 안 하고 사죄 받은 자로 다시 말하면 죄 없는  자로, 칭의 받아 의로운 자로, 죄 없는 자로,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결합된  자로 되어 있을 때는 해할 자가 없습니다. 이는 전지의 것입니다. 전능의  것입니다. 하나님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그 행동으로 했을 때는 그 행동이  성전이 됐을 때는 그 행동은 영생합니다. 그 심신의 기능이 성전이 됐을 때는 그  기능은 영생합니다. 그 영육이라는 그 육 전체가 성전 됐으면 그는 영생입니다.

이것을 중복적으로 부분적으로 이루어가고 있기 때문에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가나니" 말했습니다.

 네, 다음에 계속하겠습니다.

 믿는 도리를 모르니까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을 전혀 판단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그걸 아니라 해도 안 듣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배워야 되고 이것을 바로  배워서 증거하면 세계에 마구 증거 할 수 있는, 세계가 어두워져 있습니다.

어두워져 있소. 세계의 각처에서도 깨달은 사람들은 있지만 깨달은 사람들은  파묻혀 가지고 유명하지를 못해. 거짓부리들이 유명하게 나타나 가지고 막  날뛰는 통에 깨달은 자들은 거기서 죽임이나 당하지 그게 나타나지 못하고 오랜  후에 나타나니 필요 있는 시대에는 다 지나가 버리고 뒤에 전부 회고적 영감으로  후회하는 영감 그것만 늘 받고 있는 것이 세상이라 그 말이오.

 한 5분 기도하고 권찰회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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