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1980. 4. 30. 수새

 

본문: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전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의 성령이 이 말은 하나님의  성령이 이 말은 하나님이신 성령이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하나님 하면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말씀하고 성령은 우리의 구속받은 구원을 완성하는 역사를  하는 그 직책을 하고 계실 때에 직책을 하고 계실 때에 그 하나님을 가르쳐서  성령이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성령이 그 말은 하나님의 도구처럼 쓰여지는 그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신 성령이 하는 말인데 하나님 너희들의 구속을 완성하기 위해서 너희들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라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밖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되 어떤 부분적으로 계시지 아니하시고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령님은 따로 떨어져 있고 성부 성자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고 성자 안에는 성부 성령이 함께 계시고 또 성령 안에도  성부 성자가 함께 계시고 성자 안에도 성부 성령이 함께 계십니다. 떨어지지를  않은 일체입니다.

 이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성전은 전 세계에 성전  한 개뿐이었습니다. 전 세계에 성전 하나뿐이지 성전이 둘이 아닙니다. 이렇게  구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 역사에 교회는 하나뿐입니다. 교회는  하나뿐인데 하나뿐인 이 교회 안에 있는 하나의 교회의 분자요 또 분자라면 그  교회에 부분 되는 게 아니고 그 하나가 또 교회의 전부입니다. 교회의 전부가 그  하나요 그 하나가 교회의 전부입니다.

 이것은 세상 것으로는 잘 모형하기가 어려운 것인데 그러기에 한 개인이 교회요  또 가정이 교회인데 그 가족 교회 안에는 그 가족들뿐이냐 가정교회 안에는 역사  의 교회가 그 안에 다 들어있습니다. 역사 의 교회 안에는 또 기독자의 개인개인  교회가 다 들어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그 말은 아 우리가  하나님의 처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생각 안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또 우리 뜻 안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말  안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움직임 안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우리의 지식  안에도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우리 자체와 우리의 움직인 그 전부 안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그것이 영생이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다 멸망 받습니다. 우리의 자체나  우리의 생활이나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지 아니하시면 그것은 벌써 멸망을 받은  것입니다. 다만 멸망 받은 것이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서 새로운 한 기회에  소망을 가지고 현실을 만납니다. 현실을 만나서 만난 현실이라는 그 기회를  만났을 때에는 그 기회에 하나님이 내주 하시는 그것은 영생이 되고 하나님이  거게 계시지 아니하시면 영멸 됩니다.

 우리 영 안에는 하나님이 이미 영원히 내주 하시는데 우리의 마음과 이  몸이라는 것은 이것이 한 개가 아닙니다. 이거는 굉장한 많은 수가 모여  가지고서 된 종합체입니다. 영은 단일 체지마는 심신은 종합체라서 이 심신을  억만으로도 쪼갤 수 있습니다. 이 몸도 억만으로도 쪼갤 수 있고 마음도  억만으로도 쪼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구원이 단번에 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은 부분적으로 하나  하나가 구원이 되어지는데 구원된다 말은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데 하나님을  모시게 되면 그 한 번 밖에는 그 부분이 한 번 밖에는 기회를 만나지 못하는데  그 한 번 기회 만나는 그것은 한 번 기회 만나는 데에 하나님을 모신 것으로 그  기회를 통과하느냐 하나님을 버린 것으로 통과하느냐 거게서 모신 것으로  통과하면 성전 됐고 버린 것으로 통과했으면 그것은 마귀의 집이 됐습니다.

이러기 때문에 고게서 멸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이미 성전이 되어 있다는 말인데 또  되어 있지 안 합니다. 되어있다는 말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속하셔서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영은 단번에 이것을 다 받았지마는 그  심신이라는 이 육은 이미 이것을 제것으로 받아 가지고 있지마는 법적으로만  받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계약적으로만 받아 가지고 있지 실질적으로 제가 안  받을라 합니다. 이 심신의 것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주실라 하는데  제가 자꾸 거부하니까 안 된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그 말은 법적으로 성전이 됐고 구속적으로 성전이  됐고 계약적으로 성전이 됐고 하나님 공심판 적으로 성전이 됐는데 이 성전 된  것을 부인한다 이거요.

 이러니까 성전이 되어 있는데 성전 된 것을 부인하고 자꾸 악령의 처소를  만듭니다. 악령의 처소. 이 요한계시 18장에 보면은 이제 거게 바벨론이라 하는  것은 세상을 말하는 동시에 개인을 말합니다. 귀신의 처소가 됐다. 하나님의  성전이 될 터인데 귀신의 처소가 됐다.

 또 아가서에 보면은 그 신부가 그 신랑이 출입하는 밀실이다 또 골방이다 다  그것은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게 이 인간 말을 쓴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과  진리로 나타내는 이 이치를 이것을 가르쳐서 특별계시라 하는데 이 특별계시를  이 세상에 나타나 있는 이 자연계시 이 세상에 나타나 있는 이 모든 하나님의  창조와 또 하나님의 섭리와 모든 인간들의 그 형형색색의 그 마음의 구조들 이런  것들을 합해서 자연계시라 하는데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 특별계시를 알려줄  수가 있습니다. 세상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도리를 알려줄 수가 없기  때문에 네가 아는 이거와 같다 그거 아는 데에도 이거와 같다 이거와 같다 자꾸  이렇게 부자간이 뭐인지 모르는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됐다는 것을 말해야 부자간이라는 말 모르는 사람 모릅니다. 영어로  암만해도 우리가 모르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이 자연 계시를  모르는 사람은 특별계시를 알 수가 없습니다. 또 특별 계시를 모르는 사람은  정말 자연 계시의 그 실상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전이 이미  되어 있다 말입니다. 되어 있는데 이걸 모른다 이거요 이걸 인정하지 아니하고  인정하면 무슨 죄가 들어서 힘 쓸 것 없고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는 것과  자기가 인정하고 그분으로 인하여 살면 되는데 그분으로 인하여 동하고 정하면  되는데 전능이 자기 안에 있으면서 어떤 일이라도 그분의 뜻에 맞은 것이라면  자기 안에 계시는 전지자의 뜻에 맞은 것이라면 자기 안에 계시는 전능자가 하실  터이니까 자기는 거게 반대하지 말고 그저 거게서 자기 힘있는 대로 협조할 수  있으면 협조하면 됩니다.

 이래서 루터는 이것을 자기가 발견하고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전적으로  하시는데 우리가 거부만 안 하면 된다 루터는 거부만 안 하면 된다 거부만 안  하면 하나님이 이 역사를 이루신다. 그렇게 말했고 요한 웨슬레는 그 거부를 안  할게 아니라 같이 협동을 하면 된다 이렇게 말했고 칼빈은 전적 하나님의 은혜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 그분들이 깨닫기는 깨달았는데 깨달은 각도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지 깨닫기는 깨달았습니다.

 그 하나만으로는 다 틀렸습니다. 칼빈이 말한 것도 해석을 붙여야 되니까  하나만 가지고 안되고 루터도 요한 웨슬레도 내나 하는 이거는 요한 웨슬레  주의인데 그것도 다 아닙니다. 그 셋이 합해서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를 거부하지 아니하고 전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인데 하나님이 홀로  하시는 그것을 사람을 통해서 하시기 때문에 인간 생각으로서는 제가 하는  것같이도 보여지고 또 제가 함께 협동하는 것같이도 그에게 보여진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 혼자 하신 것이다. 그것이 바른 깨달음인 것입니다. 칼빈은  그렇게 말했는데 전적 긍극적 은혜라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된다 이렇게 말한 그  뜻은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데 실은 인간을 통한 인간 움직임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요 또 인간이라는 그 인간을 없는 가운데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그래 전적 하나님 은혜라 전적 하나님의 은혜인데 하나님이 인간을  통해서 이루시는 인간을 없는 가운데서 인간을 만드시고 만드신 인간을 통해서  하시는 그 인간면을 루터가 봤기 때문에 그 인간이 거부 안 하면 된다 요한  웨슬레는 또 인간면을 봤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과 협동해야 그 합동이 돼야  이루어진다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제일 중요한 것은 뭐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이미 이것 성전인  것과 하는 것은 과거사입니다. 이미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으로  인해서 우리는 법적으로 성전이 되어져 가지고 있고 하나님 계약적으로 성전이  되어져 있고 하나님의 공심판적으로 성전이 되어져 있고 또 가치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져 있고 모든 그 면으로 하나님의 성전이 이미 되어져 있는데 성전  된 행사를 안 한다 이거요 이미 성전이 되어져 있는데 성전 되어진 것을 모르고  성전 된 행사를 안 합니다.

 이러니까 우리말로 성전이 되어져 간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전이 세워져 간다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 간다 성전이 되어있다 이 말이 모순되지 않습니까  모순되나 이것이 일치가 돼야 된다 이거요.

 그러면 성전이 되어져 있다 성전을 또 만들어 간다 그러면 두 말 중에 하나가  맞아야 되지 둘 다 맞을 수 어디 있겠느냐 둘 다 맞습니다. 성전이 이미 되어져  있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그러면 성전을 또 지금 만들어 가고 있다니 성전이  되어져 있는데 성전 되어져 있는 이것이 성전 노릇을 안 한다 이거요 성전이라는  인식을 가지지 안하고 성전으로 행사하지 아니하고 마귀 당으로 이렇게 마귀의  집으로 이렇게 행사하기 때문에 그것을 더럽힙니다.

 그러면 이미 되어있는 이것이 노릇을 안 한다 그 말이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어떤 지위에 그 사람을 벌써 도지사로 앉혀 놨는데 도지사인데 그 사람이  도지사인데 도지사 행사를 안 한다 그 말이요. 도지사 행사를 안 하니까 그건  처벌받을 것 아닙니까? 그 사람이 백만 부자의 맏아들인데, 맏아들인데 맏아들인  것을 인식을 못하고 맏아들의 의무도 책임도 쓰지 안하고 맏아들의 권위도 쓰지  안하고 이건 맏아들의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하니까 맏아들이라 하지마는 실상으로  맏아들 노릇을 못한다 이거요 네 성전을 세워져 간다 그 성전 노릇을 지금 해  가고 있다  그러면 현실이라는 그 현실을 통해서 아 요 면은 성전노릇 했다 성전 노릇을 한  것을 성전노릇 한 번 하면 다 됐소. 성전 노릇 한 번 한 것은 다 영생이라 그  성전노릇을 할 텐데 그것 성전 노릇 안하고서 그것이 실상은 마귀노릇을 마귀의  집 노릇을 마귀의 도구 노릇을 하니까 그것은 멸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아 시골 가서 보면 요새는 지금 좀 그런 말이 또  잦아졌습니다. 이것 세상이라는 것은 뭐 조석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한  십오 년 전 그때는 시골에 가면은 전부 이 정권 이 정권 때 그때는 가보면  모두가 다 장관집안 모두가 다 장관집안이요 모두가 다 국회의원 집안이요. 가면  아 우리 아저씨가 어떻고 그 아저씨가 누고 이래 물으면은 그 아무 것이가 우리  아저씨라고 생전 보지도 못하는 사람이 저거 장관이 모두 아저씨 저거 형님 또  저거 뭐 할아버지 뭐 뭐 전부 장관 국회의원 다 이래 돼 가지고 있소.

 그러면 그것도 효험이 납니다. 아, 저기야 아무 것이가 저거 그 아저씨라  하더라 그 뭐 촌수가 어찌 되노? 아주 그 뭐 가깝다고 이건 또 거짓말하면  가깝다고 또 이래 해 놓는다 말이요 이러면 그걸 당장 주먹으로 깨 뭉개고  싶지마는 저게 만일 어떻게 된다고 하면은 저거 아저씨가 달려들 모양이나 저게  큰일난다 싶어서 효력을 본다 그 말이요. 효력을 보니까 그걸 써요. 실은  동성동본이면 그만 그와 같이 대 붙입니다.

 또 옛날 이름은 항렬자가 나오기 때문에 동성동본이면 그만 항렬자 찾아 가지고  할아버지 그만 자기 그 아저씨 또 자기 형님 또 이렇게 그만 촌수를 쳐서  써먹는다 그 말이요.

 언제 한 번 여게 경주에서 경주 경찰서장이 어떤 그 여관에서 그와 가지고서  뭐인가 그때 이승만씨 양자 아들인데 자기가 아무 것이라 하니까 그만 서장이 와  가지고 막 커피를 드리고 이라면서 '귀하신 분이' 그만 그때에 귀하신 분이란  말이 어떻게 퍼져 놨는지 제가 차를 타고 오니까 '아, 귀하신 분 귀하신 분'  모두다 조롱거리처럼 모두다 귀하신 분이라고 여러분들이 귀하다고 나이 좀 많은  분들은 좀 들어 봤을 건데 그러면 그때에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이라고 하는 그  사람이 왔다고 하니까 모든 사람이 떨고 뭐 그 울산이 그 날 하루동안 큰 난리가  났었소.

 이렇게 아니면서 이 이름만 불러 가지고도 그렇게 세도를 부리는데 오늘 우리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을 믿으면 이것으로서 답니다. 네,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믿으면 이것으로 다요.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부러워하며  무엇을 모를 것이 있으며 제 사욕대로 사욕이라는 것은 악욕인데 악욕이  아니라면 악욕이 아니라면 모를 것이 어디 있으며 삐뚤어지게 할 것이 뭐 있으며  못할 게 어디 있습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자기 집안에 뭐 저거 동성 동본이 하나 있는 것도  야단을 지기고 거짓뿌리로 지금 대통령이 우리 아버지다 거짓뿌리로 대통령이  저거 아버지라 해도 세도를 부리고 그 밑에 모든 것이 떠는데 대주재이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창조주가 모든 걸 창조하신 창조주가 내 안에 계시고  모든 것의 주인이 내 안의 것이니까 내 안의 것이니까 모든 것이 내 것 되지  창조주가 내 안에 계시고 전지자가 내 안에 계시고 전능자가 내 안에 계시고  모든 걸 주권 하시는 주권자가 내 안에 계시고 계시는데 이분이 무슨 주먹덩이  같이 라도 무슨 형체를 가지고 우리에게 거칠게 계시면 우리에게 지장이 있고 또  우리가 알지마는 거칠게 계시지 아니하시고 무형의 존재로서 우리 안에 그  능력으로만 지혜로만 권위로만 지위로만 이렇게 계시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도  피해는 없고 불편한 것은 하나도 없고 이분이 내 안에 계셔 가지고서 나를 통해  역사 하니까 우리는 꼭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요것이 지금 목적이라 그 말이요.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 목적은 뭐인고 하니  하나님처럼 그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어 하나님과 꼭 같은 이런  자를 그 피조물로 만드는 그것이 목적인데 그게 뭐냐 하나님이 피조물 우리 안에  계셔서 당신의 모든 속성대로 우리 안에서 역사 하니까 그게 나오기를 우리를  통해서 나온다 이거요 우리를 통해서 역사 하니까 이것이 하나님처럼 온전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것이요 하나님의 성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자꾸 명상하고 자꾸 삭여야 됩니다. '아, 내 안에는 창조주가  계신다' 창조주 이분은 내 안에 계십니다. 내 안에 계시오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교회 안에 계신 전체 교회 안에 계신다는 것이요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내  개인 안에 계신다는 것이요. 우리 가정 안에 계신다는 것은 우리 가정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시니까 내 안에 계시니까 나보다 안에 계시지  않소 내 안에 계시니까 하나님은 내 안에 내라. 내 안에 내라 이러기 때문에  "이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가 사신다" 하는 그 말이 그  말이라 말이요.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시는 것을 모른다 이거요 "알지 못하느뇨?" 자꾸  모르고 부인합니다. 이미 계시는데 부인해요 부인하기 때문에 부인하니까 이것을  팔아먹는 것이요. 이것을 그 마귀에게 뺏기는 것이요 이것이 곧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라 그 말이요.

 더럽힌다는 이 말은 "더럽히면 멸하신다" 더럽힌다는 것은 내나 멸한다 그  말인데 멸한다는 말도 맞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있는 그것을 현실을  통과해서 성전 행사를 해야 할 터인데 성전 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니까  성전행사를 할 수 있는 기회에 성전 행사를 하지 안하고서 마귀의 당 행사를  했다 했습니다. 마귀의 지체 노릇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체노릇은 안하고  마귀의 지체노릇을 했습니다.

 이러니까 멸해집니다. 그것은 다른 이는 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지체된  것을 다른 이는 그것을 변동시킬 수가 없고 또 하나님의 성전 된 것을 다른 것은  마귀의 도구나 마귀의 집을 만들 수는 없지마는 우리 자신들에게는 자유를 줬다  말이요. 자유, 하나님의 형상 중에 제일 가치 있는 것이 자유입니다. 자유가  이것 무한한 자유는 아니지마는 유한한 자유를 주셨는데 유한한 자유 이것  가지고서 '하나님의 성전하기 싫다.' 거부했다 말이요. 문을 두드리면  두드리면서 '내가 들어가고자 한다 문을 열어라' 들어오면 된다 이거요. '그러면  너는 나로 더불어 먹고 나는 너로 더불어 먹는다' 먹는다는 말은 성경에 뜻을  이루는 것을 먹는다고 하지 아니했습니까? 그게 인격의 양식이라 그 말이요.

 이런데 문을 열어주지 아니하고 거부하니까 가지 안 했소. 거부하니까 가  버렸어 암만 문을 두드리는데 '내가 지금 옷을 벗고 있는데 발도 벗고 있는데  누워 자는데' 지금 자꾸 문밖에 두드리니까 귀찮다 그 말이요. 문을 안 열어  줬소 안 열어 주고 있다가 나중에 한참 정신차려 보니까 '아이구, 사랑하는 자가  찾아왔는데 내가 문을 안 열어 줬구나' 그때사 가서 문열어 보니까 벌써 간 곳이  없다 말이요. 가 버렸다 이거요 그 뭘 가르칩니까? 거게는 신랑과 신부가 내나  모형을 해 가지고 말씀했습니다.

 아가서에서 신랑이 주님이라 그 말이요. 하나님이 내 마음과 몸 안에  들어오시려고 이미 성전이 당신의 집에 들어오는 거라 당신의 집에  들어오시지마는 우리가 자유성이 있기 때문에 문 밖에서 두드리면서 들어올라  하니까 '아, 나는 지금 내 볼 일 보고 있는데 안 된다'고 거부를 해 버리고  나니까 가 버렸다 그 말입니다. 가버리고 난 다음에 후회가 돼서 가 봐 열어  보니까 벌써 가서 사랑하는 자가 간 곳이 없어 그래 찾아 헤메지 안 했소 그게  뭐이냐? 기회를 놓쳤다 그 말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남편처럼 이 인간으로 말하면 그 남편이라면 그 남편의 것은  아내의 것이 다 되지 아니했소. 모두 가난한 세상에서도 뭐 모든 것을 구비한 그  남자를 자기 남편 삼으려고 왜? 구비한 자를 자기 남편 삼으면 구비한 그게 다  자기 것이기 때문에 그것 가리지 않소. 아, 그 결혼하면 제것이라 그거요.

공연히 아무것도 없는 게 회사도 제것 직공도 제것 집도 제것 이걸 모두 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신랑으로 하나님이신 주님을 신랑으로 우리를 신부로 그  말한 것은 어떤 면을 가르치느냐? 다정한 면을 가르치는 것이고 그 고락이 같애  희로애락이 같애 하나님의 소유가 다 제 소유가 되고 되는 그 면을 인간  제도로서 나타내려면 이와 같다 하는 것인데 인간 제도는 하나의 형식 계시요  실상은 그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 그것은 실상이요 그것은 하나의 모형으로 나타내는 것이  하나 모형으로 나타내는 것이 이 부부라 그 말이요. 부부는 실상을 나타낸  그림자입니다.

 이러니까 하나님의 이 성전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셔서 자기  안에 자기로 자기가 자기 몸을 주장하고 마음을 주장하고 하는데 자기 안에  하나님이 계셔서 하나님이 자기를 주관하고 자기가 이제 하나님께 주관 받는  자기가 자기 마음을 주관하고 자기 몸을 주관하면 되는데 이게 말을 안 듣는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자꾸 모르는 노릇 하는 이 부인하고 거부하니까 자유성  가지고 거부하니까 기회는 한 번 뿐인데 그 기회에 하나님의 성전으로 하나님을  모신 자로 하나님이 주인공으로 이렇게 모시면 살아 버렸는데 주인으로 모시지  안하고 마귀를 주인으로 모시니까 죽었다 그 말이요. 한 행동이라도 어떤  행동이라도 그 행동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셨으면 그 행동은 삽니다. 그 행동을  하는 그 행동의 주인이 하나님이요 그 행동을 하나님이 주관하셨고 그 행동을  하나님이 책임졌으면 그 행동은 살았다 그 말이요. 이것 지금 살리는  운동입니다.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그러기에 우리의 현재라는 이 현재는 전체가 아 이미 살아 있는 것이 산  행동하는 것이요 살아있는 것이 산 것으로 단정을 지우는 것이요 법적으로 살아  있는 것이 이것이 실상으로 살아나는 것이요 살아나는 기회라고 해도 되고 또 그  산 것으로 단정을 짓는 것으로 해도라고 말해도 되고 산 것으로 나타나는 다는  말을 해도 되고 산 행동을 산 행사를 한다 그렇게 해도 다 같은 말입니다.

 이러면 여기서 산 행사한 이걸 가지고서 내가 하늘나라 가서 산 행사한다  여기서 일차 한 번 해보고 하늘나라 가서 하는 것이라 여기 안 하면 안 돼.

"하나님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이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이 그를 멸하시리라" 성전을 더럽힌다 하는 이 말은 멸한다 그  말인데 더럽힌다는 것은 그 자체를 변질해서 더러워지는 것도 있습니다. 떡이  쉬었으면 "아이구, 이거 더러워졌다" 이럴 수 있습니다. 자체는 괜찮은데 또  밖에 딴 것이 더러운 것이 묻어 가지고도 그럴 수도 있다 이거요   자체가 더러워지는 것은 어떤 것이 자체가 더러워지느냐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받은 우리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 받은 우리 자체가 사죄와 칭의와 새생명을  잊어버리는 이것이 자체가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체가 죄 없는 존재요  의로운 존재요 하나님과 결합된 존재인데 영은 그랬지마는 이 심신도 다 이리 돼  가지고 있는 것인데 이것이 그 자체가 죄 없는 자가 되지 아니할 때에는 요것이  자체가 변질됐다 말이요 요것이 더러워진 것이요. 자체가 사죄 받아 무죄한 자인  것을 무죄한 자인 것을 잊어버리고 무죄를 잊어버리고 무죄를 잊어 버렸으면  이게 자체가 더러워진 것이고 때가 묻어 더러워지는 것은 뭐이냐 하면은 자체는  죄 없는 자인 줄 알고 자체는 의로운 자은 것을 깨닫고 자체가 의로운 자로  무죄자로 자기가 하나님과 결합된 자체가 되어 있는데 되어있는 이것이 자기  밖에 있는 이 모든 세상과 이렇게 접할 때에 이것이 거기서 그것을 완전히  자체와 같이 자체화 시켜 버렸으면 때가 안 묻었는데 이 자체 이것이 됐지마는  이것이 그 환경이 세상으로 더불어 싸울 때에 이 무죄자로 통과를 못하고 의로운  자로 통과를 못하고 요게 하나님과 합일된 자로 통과를 못했으면 이거는  더러워졌다 말이요. 때가 묻어 더러워졌다 말이요 자체가 더러워진 것과 때가  묻어 더러워진 것이 요거 구별이 돼 나눕니다. 요 구분된다 그 말이요. 자기는  죄 없는 자로 죄 안 지으려고 의로운 자로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애를 썼는데  애를 썼는데 실상 그것이 덮어버려서 형상을 거의 제해 버렸다 말이요.

 그러면 이거 때가 묻어 버렸어 더러워지는 것이 이것이 자체가 변질되어서  더러워지는 것 있고 또 자체는 괜찮은데 요 환경으로 더불어 전투해서 패전해서  더러워진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체 더러워지는 요것은 완전히 영원한 사망을 받았고 자체가  더러워지지 안 했으나 때가 묻어 더러워졌으면 영광이 없다 이거요 상급이 없어.

 "멸하시리라" 멸한다는 말은 요 멸하는 것을 세 가지로 멸하십니다. 멸하시는  것이 아야 이 성전을 더럽히기 전에 멸하시는 것이 있고 성전을 더럽히기 전에  하나님이 멸하시는 것이 있고 성전을 더럽히기 전에 하나님이 멸하시는 것이  있고 성전을 더럽히는 그 일전에 멸하시는 것이 있고 그 사전에 더럽히는 그  일전에 멸하시는 게 되면 인간이 몰라. 사전 멸하시는 것은 성경에 뭐라고  가르쳤느냐 하면은 그 벌써 높은 산을 까뭉개서 평지를 만들고 밑에 깊은 골짝을  돋아서 다 대로를 만들었다 그 말은 이 성전에 거리끼는 것은 미리 하나님이  정리할 걸 정리했다 그 말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언재로 이 성전을 더럽힐 때에 멸하는 것이 있으니 그런 걸로 말하면 아, 그 뭐  하만이 같은 그런 사람은 이제 모르드개를 멸할라 하니까 그것을 미리 절단하면  내버렸다 말이요. 그는 하만이를 멸할라 하는 하만이의 성전을 멸할라 하는 그  동시에 모르드개의 성전을 멸할라 하는 동시에 멸하려고 하는 하만이가 절단이  났다 말이요 그 멸할라 하는 동시에 절단나는 것 있고 대개는 성전을 멸한 후에  절단을 냅니다. 멸한 후에 절단을 냅니다. 성전을 멸한 후에 절단 내는 것이  많고 동시에 절단 내는 것이 있고 사전에 절단 내는 것이 있는데 사전 절단을 그  멸망은 뭐 때문에 하느냐?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동시에 멸하는 것은 그것을 성전을 멸하려고 할 때에 이쪽에서 성전을 빼앗기지  아니 하려고 애를 쓴데 둘이 서로 격투가 벌어졌다 말이요 이것이 투쟁인데  전투인데 전투가 벌어졌는데 우리 힘있는데 까지 하고 그 힘 이상의 것은 이제  그만 해라 하나님이 중단시키고 멸하신다 그 말이요.

 성경에 모두 보면 다 모두 그래 가지고 있소 또 우리가 신앙생활 할라 할 때에  이것이 부딪히는데 그 부딪혀지는 그걸 서로 격투를 하다가 그것을 하나님께서  제거시켜서 하는 그게 뭐냐? "네가 죽도록 충성해라 열흘동안 시험받는다."  열흘동안 시험받는다 하는 그것을 자기 힘에 맞도록 역량에 맞도록 딱  시험시키고 난 다음에 그 이상은 다 이거는 제거해 버린다 그 말입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안 했으면 육체로는 이길 자가 없다" 그 말은 사전 정리를  해서 자기 힘으로 맞도록 한다 그 말이요. 감당치 못할 시험은 당치 않는다 다  그런 말씀이다 그런 말씀을 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왜 그건 없앴으면 괜찮을  터인데 그러는가 이것을 시험하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승리가 되든지 실패가  되든지 결정이 전쟁의 승패가 결정되고 난 다음에 멸한다 말이요 승리를 해도  멸하기 패전해도 멸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승리를 해도 그걸 제거해 버립니다.

노는 사람이 패전을 해도 제거해 버립니다. 믿는 사람이 패전하면을 그건 아주  제거해 버리고 승리를 했으면 또 그것을 살려 쓰게 돼서 둬 둡니다.

 이러니까 사전 멸하는 것이 있고 동시에 멸하는 것이 있고 사후에 멸하는 것이  있고 그것은 왜 성전 노릇을 하느냐 안 하느냐 이 성전 된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 한다 이것 증거  하는데 이 심신이 인정을 안 하면 안 돼. 인정 안하고 인정하는 그 시기는  현재라는 그 한 번 기회밖에 없는데 그 기회 인정한해 버리면 그만 기회 지나가  버린다 이거요   그러니까 우리는 저 지금 공산주의가 야단을 지깁니다. 그 야단을 지기고  하는데 공산주의가 야단을 지기는 데 그 누가 그랍니까? 그것에 대한 주권자가  누구입니까? 주권자가 하나님이 주권자가 아니십니까? 공산주의의 주인공이  누구요? 하나님이시오 그거다 하나님의 것이요. 그러면 왜 하요? 내 안에 계신  분이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분이 그걸 하는 것이요 뭐 하려고?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인식시키려고 알지 못하니까 이것을 알리려고  그러기에 요것이 성전으로 이 심신이 인정을 해서 성전 노릇을 하면 일차 성전  노릇하면 두 번 시키지 안 해요 일차 성전 노릇으로서 그게 영원히 성전  노릇합니다. 영원히 하나님의 수종 노릇합니다. 영원히 하나님 노릇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안에 계셔서 자기가 하나님 노릇 하는 것이지 자기가 하나님 노릇  하는 것이지 자기가 하나님 아니야 하나님 나가 버리면 자기는 내나 피조물이야  이것이 오묘하고 신비한 것입니다. 이걸 안 믿으면 그만이고 믿으면 되는 거라.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너희들이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우리가 하는 것은 이 심신들을 고기 덩어리를 말합니다.

 중생 된 영은 처음 열매가 된 우리들도 하는 그 우리는 영 뭉텅이입니다. 영  단체가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하는  우리 하는 그 말은 뭐이냐 하면은 심신으로 된 영육의 것이 하나님의 자녀인  이걸 모르기 때문에 지금 증거 한다 말이요 자꾸 인식을 시킨다 그 말이요.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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