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1979. 7. 21. 토새

 

본문 : 예베소서 6장 10절 -2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 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그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앙생활은 가면 갈수록 악의 세력과 마찰는 마찰은 범위가 넓어지고 또  세밀해지고 또 강해지기 때문에 날이 차차 밤이 닥치면 어두움이 짙어져 가는 거와  같이 그렇게 짙어져 갑니다. 사람들의 외부적인 마찰만 보고 이것만 상대하는  친근한 자기의 신앙의 대적이 차차 감소 되어 가는 것으로 여겨지고 신앙생활이  벌써 낙관시 되어지는 것은 그것은 자기가 싸울 그 위치에서 싸운 싸움을 잊어버린  증거입니다.

외부적인 환난이야 있든지 없든지 신앙생활은 갈수록 대적은 강해지고 커지고  많아지고 범위가 넓어집니다.

마치 빛이 작으면 마찰되는 면적이 적고 빛이 크면 클수록 빛을 대적하는 그  어두움의 양은 점점 커지고 많아지는 것입니다. 빛에 그 비취는 면적이 넓어지고 멀어지니까 넓어지니까 어두움을 상대하고 있는 면적이  넓어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고로 바울은 그는 차차 신앙생활이 연조가 높아져 감에 따라서 자기는 더 악한  사람이 됐고 더 죄인이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회개하는 일을 힘쓰지  아니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회개하는 일을 힘 썼기 때문에 자기의 자체가 차차  커지고 또 사명이 커지고 자기의 위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에는 그 시대적으로 차차 어려워지는 그런 것도 있지마는 그것은  곧 없앨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지역적으로나 어떤 그 단체적으로나 또 외부적인  자기의 환경적으로는 그 어려움이 이것이 차차 감소될 수도 있고 또 더 악화될  수도 이는 것입니다마다 자기의 개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보이지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은 자기 자체가 커지고 또 하나님이 그에게 요구하시고 명령하시는 것이 더  크고 세밀하고 많고 하기 때문에 점점 마찰이 많고 싸워야할 그런 종류와 면의  수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변화지 아니하는 그 환경 속에서 변하지 아니한 그 공간 속에서  날마다 변하여 가고 날마다 악의 마찰이 강하여져 가고 자기의 그 싸울 싸움이 더  많아지고 커지고 한 이것을 발견하고 이면에서 전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면에서 전투할 지라도 그에게 승리가 이전보다 승리가 많애 승리의 수가  많아지나 이전보다 패전한 수의 발견이 더 많아지지 않으면 깬 신앙이 아니고  스스로 선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서고 전투했다면 자기가 이전보다 패전한 그 수와 면이  많다는 것을 발견되는 그것이 기독자의 신앙 행위입니다.

그 이유는 자기가 자기로 커진 게 아니고 하나님과 가까와지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커지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빛이 이전보다 더 가까와지니 자체가 밝아지므로  이전에 발견치 못하던 그 면이 새로 발견되는 이것때문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생활은 자기의 처소와 자기의 환경이 자기의 시대가 외부적으로  변하지 아니할지라도 자기 그 견해에 점점 이것이 변하고 악하여져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체의 성화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환경이나 이런 것이 변해져서  그런 것만 아닌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환경에는 하나님이 아시는 대로의 알려고 하면 참 끝이 없을 만치  구비되어 있고 또 하나님과의 마찰되는 그 마찰이 내 마찰이 되면 우리에게는  무한한 마찰의 그 악의 세력이 구비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이는 세상은 완전히  저주 아래 있고 사망 아래서 악령의 그 다스림을 받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  실제가 이렇게 되어 있는 세상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외부적으로 변하여 가는 그 변동만을 자기가 상대를 해서  투쟁하는 것은 이것은 극히 외식입니다. 자기 자체가 계속적으로 성장되어  성화되어 나가면 조금도 외모는 변하지 아니하는 그런 외모 속에서도 날마다 새  투쟁이 나오고 또 새 의무와 책임이 자기에게 부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밖에 것이 변함으로서가 아니고 자기 자체가 변함으로서 입니다. 이거는 자기  자체 안에 무한하신 하나님으로 성화되는 그 연고로 인해서 점점 상대가 변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기독자는 외모가 조금도 변동되지 않는 그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를 계속 받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또 거기서 점점 구비하고 복잡하고 세밀한 그 전투를 그  자리에서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그 모든 선물인 은혜는 그것은  우리가 알고 알므로 받는 것도 있고3. 10. 화요일인정하므로 받는 것도 있지마는  그것을 실제로 내가 행하므로 받아지는 그것이 반은 됩니다. 자기가 알고 인정하는  이 믿음을 가지고 실상을 만드는 것도 있지마는 알고 인정하는 그것을 자기가  실행을 하므로 실상이 되어지는 그것도 거의 반이나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이렇게  믿음으로 알고 믿음으로 인정하고 믿음으로 행하고 이렇게 해서 온전한 믿음이 될  때에 비로소 생명있는 그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아는 것도 인정하는 것도 또 그 실행하는 것도 그것도  거기에 알맞는 그 실물 교재가 되고 실물 교재가 되고 또 실지로 조성의 재료가  되는 그 현실을 만나지 아니하면 안됩니다.

그러기에 이렇게 현실이 필요한데 그 현실을 외모적으로 그 현실이 변동 되는 그런  현실만을 자기의 구원의 재료요 구원의 처소요 또 구원의 시기로만 생각하면 이는  극히 외부적이어서 자기는 그 그런 기회를 별로이 많이 만나지 못하고 허송으로  지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기에 외식을 떠나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자기의 지식을 삼고  자기의 눈을 삼고 이 윤곽 안에서 성신의 감화 감동을 자기의 눈을 삼고 자기의  지식을 삼으면 바울이 말한 나가 젊을 때에는 죄인이라고 한 사람이 노령이  나(이)가 많이 되었을 때는 죄인 중에 괴수 죄인이라고 자기는 젊을 때에는 약한  자라고 나(이)가 많아져 갈 때에는 자기는 만삭되지 못하여 낳(놓)은 어린아이  울기도 옳게 울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옳게 움직이지 못하는 이런 약자라고 바울이  말한 것은 그런 자기의 그 외모와 또 자기기 이루어 논 달려온 이루어 논 이면을  보지 아니하고 자기가 이루지 못한 면만을 보는 바울로 또 외부보다도 그 이면에  하나님께 속한 자기와의 마찰되고 대적되는 그 종류가 더 많은 이면을 상대해서  그는 전투한 그 연고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패전한 면이 많아지고 또 자기로서 그 상대방에 대해서러 능가  못할만한 약점이 많아지는 자기가 현재와 과거로서는 과거로서는 자기의 미진한  점이 많은 것으로 살았고 또 자기 자체로서는 점점 그 약점을 발견하는 것으로  살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깊어져 갈수록 점점 발견되는 자기의 약점을 많아져  갔고 또 자기가 패전한 패전한 그 수는 많아져 갔기 때문에 자기는 괴수 죄인이라  삐뚤어진기 점점 많다 또 자기는 약하되 이제는 젊을 때는 나는 약자라 했는데  노령에 가 가지고 그가 기록한 것을 보면 나는 죄인 중에 아니 나는 만삭되지  못하여서 (놓)낳은 아이와 같은 그렇게 힘없는 자라 약자라 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고로 기독자는 자기의 변동되지 아니하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구원으로  변동되어 나가는 이 이면을 상대해서 사는 사람이 이것이 진실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는 변동되지 아니하는 그 현실 속에서 속에서도 이 세상에 하나님과  마찰되는 그 대적의 수를 다 거기에서 발견할 수 있고 또 만날 수 있고 또  거기에서 투쟁해서 승패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 기독자의 구원역사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자기의 외부의 변동되는 그 외부만을 상대해서 산다면 신앙생활은 갈수록  낙관할 수 있는 그런 평탄이 있을 수도 있고 또 가다가는 마찰되는 그 대적이  많아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자가 진실되이 하나님과 연결돼서  살때에는 자기의 신앙의 대상에는 점점 대적의 수는 많아지고 또 대적은 점점  강해지고 자기는 전심 전력을 기울이니까 옛날 보다는 아주 강하고 장성한  자이지마는 자기가 패전한 수는 많아지고 또 자기의 약점은 점점 많아져 가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가 외식하지 아니하고 진실되게 사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변하지 아니하는 그 현실에서 변하지 아니하는 현실에서 죽는  날까지 무한이라고 할 만치 변해져 가고 있는 변해져 가고 있는 이 변한 것을  상대하고 발견하고 이로 더불어 투쟁하는 이 투쟁이 있는 것이 무한한 말씀과  무한한 영감에 접해서 사는 것입니다.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빚졌다고 말하는 것도 그는 환경이 변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  보다도 자기 자체가 그리스도와 연합된 그 연합이 가까와진 그 가까와짐이 더 성장  돼 나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에 주의 얼굴이 힘있게 비치는 해와 같이  비추어졌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죽은 거와 같이 그렇게 꺼꾸러지게 된 그 이유는  주님이 자기가 볼 때에 주님이 이전에 보던 주님이 아니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그  주님이기 때문에 거서 두려워서 꺼꾸러졌습니다. 그럴 때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죽기 전에 너와 같이 있었던 내고 또 내가 너와 같이 있다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또 3일만에 부활해서 너와 같이 있던 내가 그다 다른 그가 아니라 조금도  변하지 아니고 그때와 같이 내다. 하시면서 위로하신 것은 그것은 사도 요한의 그  자체가 성화되는 그 성화에 면이 장성해서 그런 것이지 주님이 변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이 말씀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안에서 접하는 주님도 무한하신 분인데 우리가 접하여 있는 면이  극히 빈약합니다. 가면 갈수록 점점 주님이 내가 내 내 주관에 나타나시기를  우리가 죽는 데까지 어디까지 성화 됐어도 주님은 새로운 주님으로 새로운 면이  발견됩니다. 우리가 힘입어야 할 우리가 힘입어야 할 우리가 받을 것도 우리가  받을 것도 무한히 있는데 무한한 것 을 우리가 받습니다. 무한한 것을 받는 그  내가 받을 나에게 줄 대상도 무한하고 나는 극히 유한되어 있는 자기기 때문에  무한히 주님을 향해서 알면이 있고 또 새로운 관계를 맺을 면이 있고 또 새로운  주님으로 3. 11`. 수요일이렇게 모셔서 그 은혜 받을 그 면이 무한히 되어 있고 또  자기 밖에 이의 하나님께서 설비해 논 그 설비도 무한은 아니고 유한은  유한이지마는 인간으로서는 아무리 자기가 상대해도 다 상대를 못할 만치 심히  많은 그 종류가 숫자로 설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자는 외부가 변하지 아니하는 그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새로운  주님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상대로 이렇게 살 수 있는 기독자들이며 위로 하나님도  이렇게 날마다 새로 깨닫고 새로 관계를 맺을 무한의 관계를 맺을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또 무한히 싸워 무한히는 아니지마는 얼마든지 싸워서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자기의 환경이 되어이미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사이에서 자기는  하나님으로서도 얼마든지자라갈 수 있고 자기의 환경으로서도 얼마든지 전투해  나갈 수 있는 이 것이 기독자의 그 처지인 오묘한 비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양 사이에 끼어서 양 사이에 끼어서 기독자는 얼마든지 생명의  주님에게 받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또 기독자는 얼마든지  변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경험할 수 있고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고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고 얼마든지 전투할 수 있고 얼마든지 승패가 결좀된수 있습니다.

이 성질의 진실의 신앙을 바울이 해 나갔기 때문에 그는 그렇게 전심전력을 다해서  그는 전심전력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했지마는 점점 자기는 약해져서 처음에는 약한  어른이다가 나중에는 약한 아이다가 나중에는 만삭돼지 못해서 내놔서 피둥이만  피투성이만 피덩어리만 뭐 쭉 뻐드러져 가지고 있는 거와 같은 그런 약한 자기로  자기를 인식했습니다. 그는 자기는 삐뚤어진 점이 있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마지막에는 삐뚤어진 것중에는 제일 많이 삐뚤어진 그 삐뚤어짐을 가진 자가  자기라 그렇게 자기는 인식을 했습니다.

자기는 믿은 이후에는 모든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전부를 다 기울어 살았는데  이렇게 많이 줬는데 주지 못한 것과 자기가 부족해서 상대방에게 갈 것을 그대로  온전히 전하지 못한 상대방에게 주님에게 받은 것을 상대방에게 전달해 주지  못하고 제가 가루 맡아 놓고 주지 못한 이 불책 주지 못한 이 빚이 많은 자기로  발견된 것은 그것은 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 육체의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환경 속에서 산 것이 아니고 그는 그 보이는 면보다 보이지 않는 면을 상대해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이 지혜로 지식으로 이 윤곽 속에서 성신의  감화 감동으로 그는 자기의 주체를 삼아서 살았기 때문에 이런 사람으로 그는  살았으니 자기는 심히 급속히 장성하지마는 교만이 그 근방에 오지를 못했고  금속히 장성했지마는 그는 항상 갈급과 그 가난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그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는 외부의 가난을 자기 가난으로 삼지 않았고 심령 가난을 영감 가난을 자기  가난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는 가면 갈수록 죄인 됐고 가면 갈수록 약자 됐고 가면  갈수록 감당치 못할 빚진자가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아침에는 좀 어려운 말 같으나 요 삼각을 잘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는 쉬지 않는 쉬지 않는 변하는 환경속에 있다 그 하나도 모지람이  없는 우리의 마찰 우리의 대적 수많은 그 대적과 마찰을 마찰들의 구비되어 있는  이 환경속에 산다. 하는 이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그 형태는 형태는 변하지 아니한 그 형태 속에 쉬지 않고 변해가는  이것을 발견하는 것이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정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는  변하지 아니하는 그 형태인 현실 속에서 수 없는 변하는 그 현실을 접한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기독자의 오묘의 그 위치입니다. 또 자기는 변하지 아니하는 그  변하지 아니하는 이 형태 이 형태 속에 무한한 그 투쟁을 할 수 있는 것이  기독자의 위치입니다. 또 변하지 않은 그 형태에서 무한한 적을 발견하고 무한하  전투를 하고 무한한 승리를 하고 무한한 경험을 하고 무한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준비 되어 있는 것이 이것이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는 자기의 기독자는 기독자의 그현실에서 사는  그 현실 마찰이 자기에게 마찰된 이것을 이기다 보면 이 우주 안에 있는 마찰을 다  이긴 것이 된다. 자기의 현실에서 우주에 가득찬 그 모든 대적으로 더불어 다  싸우는 싸움이 된다. 자기 현실로 완전히 이기면 우주에 가득찬 대적을 이긴  승리가 된다. 하는 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변하지 아니하는 고정적인 그  형태 속에 고정적인 형태 속에 수 없는 대적이 가라나서고 발견되고 수 없는 그  종류대로의 하나도 빠짐없는 자기에게 해당되는 그 수많은 종류의 전투를 할 수  있고 종류의 승리를 할 수 가 있고 종류의 승패가 결좀된다. 이런 그 그 처소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다 하는 것을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변동이 없는 형태적으로 변동없는 요 자기의 환경 속에서 자기의  현실에서 수 없는 것을 수 없는 대적을 발견할 수 있고 수 없는그 전투를 할 수  있고 수없는 경험과 체험을 할 수 있고 수없는 연단을 받을 수가 있고 수없는  승패를 자기가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이 기독자의 이 처소인 것입니다. 요거  하나 기억해야 되고 또 하나는 자기는 변동 없는 그 형태 속 그 다른 사람이 ( 와  )볼 때에 조금도 변동이 없는 그 형태의 생활 속에서 생활 속에서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주님을 얼마든지 발견해서 무한하신 주님을 발견하여 발견한 것보다  발견 못한 면이 많고 화친을 맺은 거보다 화친을 맺지 못한 면이 많3. 12.

목요일고 이러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가면 주님과 나와의 가까와 지기는 이전에  비하면은 여러 억억만배도 더 가까워졌는데 이전에 와 비하면 주님과 나와  가까와진 면이 억억만배도 더 많이 가까워졌는데 실은 가까와 실은 가까와졌는데  자기가 볼 때에는 주님과 자기와의 이전에 먼 거리보다이제는 먼 거리가 더  멉니다. 더 커집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러기에 하늘나라는 오만이 생길 수 없는 것이고 갈급이 끝날 수 없는 것이고  거기에는 겸손이 끝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난이 떠날 수가없어 항상 가난하고  부족하고 불만스러워 마음에 갈급해서 항상 소망해 야 되고 항상 이루어 가지는  믿어야 되고 항상 사랑을 받아야 되고 사랑을 줘야 되는 이것으로 가득찬 것이  하늘나라입니다.

변함 없는 형태 속에서 자기는 얼마든지 주를 아는 지식이 새로워져야 되겠고  주님과의 미비된 것이 점점 발견되어야 하겠고 새로운 그 관계를노력해야만 하는  이것이 기독자의 자기가 있을 자기 처소입니다. 이 양사이에 하나가 있는데 그  하나 그것도 이제는 무한이라고 무한은 아니지마는 무한을 향하여 무한이라고 할  만치 자꾸 변해져 가는 게 있는데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뭐이요. 장열 목사님  그것은 무엇지요? 권 조사님? 예 맞았소. 자기입니다.

우리는 무한이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는 형태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는 그 형태  속에서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는 이 형편 속에 말이요 조금도  변하지 않은 형편 육안으로 볼때 다른 사람이 볼때에 조금도 변하지 않은 꼭 같은  처소 꼭 같은 처지 꼭 같은 형편 꼭 같은 환경 요 속에서 사는 그 외부가 변하지  않은 그 속에도 수 없는 수 없는 변하는 그 피조물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이  기독자의 처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변하지 않은 꼭 한 현실 속에 억억만도 더 되는 현실을  우리는 경험할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고 마찰할 수 있고 투쟁할 수 있고 승패가  결정이 된다 이기요.

그러기에 보이는 이 면 속에 보이지 않는 면에서 무한한 그 무한은 아니지마는  이제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자기는 그 자리에서 다 상대할 수 가 있다. 그  자리에서 상대할 수가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변하지 아니한 그 현실 속에서도  얼마든지 경험하고 얼마든지 체험하고 얼마든지 투쟁하고 얼마든지 승 승패하고  얼마든지 상대하고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말이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또 요거  하나 자기 밖에 있는 이거 또 자기 안에 내가 그 주님이신데 자기가 오늘까지에  발견한 주님이 아닌 새 주님이 나오고 새 주님이 나와서 이렇게 무한한  주님을자기가 무한히 새로 새로 발견하고 새로 접하고 새로 관계를 맺고 하는 이런  주님을 우리는 상대하고 있다.

그러기에 외모는 외모는 조금도 변하지 아니하는 이 자기 그 형편 속 에서 변하지  않은 형편. 그 나라에 살고 그 나라에 살고, 그 지방에 살고, 그 집에 살고, 그  직장에 살고, 그 가족이 살고 하는 요거 변동 없는 요 속에도 수 없이 다른 것들이  가득찬 이 모든 종류를 다 상대할 수 있다. 상대하게 된다.

수 없는 종류가 자기 변하지 않은 현실 속에 다 나열지고 구비되어 있다. 이러기  때문에 자기 현실을 바로 싸워 이겼으면 우주를 이겼다.모든 세계 있는 전부를 다  이겼다 하는 그런 말을 제가 많이 했습니다. 그 말을 벌써 수 십 년 전부터 많이  했습니다.

그러기에 자기에게 마찰된 자기에게 상대된 그 대적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그 전부가 다 연결되어 있다 하는 것을 말을 했습니다.그것은 자기  현실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인해서 얼마든지 새로운 대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을 가르쳐서 말합니다. 이것을 발견하고 이 환 경에서 살아야 됩니다. 이것을  발견하고 이 환경에서 사는 것이 우리가 깨어 있는 것이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 오늘 아침에 알아 들린 사람들 한번 손 한번 들어 봅시다. 자기는 변하지  않은 현실에 오정근씨는 뭐하로 들어 거 백지 자다가 뭘 갔다 알았다고 손을 들어  백지 변하지 아니하는 꼭 같은 형태인 자기 처소 처소 속에 자기와 대립되는 그 종류가  그 안에 다 들어 있다 그 안에 다 들어 있다. 이러기 때문에 이놈 이기면 저놈이  또 나오고 저놈 이기면 또 그놈이 나오고 자꾸 나와서 이제 수 없는 것이 변하지  아니한 그 자기의 처소 속에 그것이 다 들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보이는 자기 처소가 자기 형편이 변해짐을 따라서 요 변해지는데 이  변함에서 또 그와 싸우고 저와 싸우고 하면은 그 종류가 일생 동안 해봤자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이 변하지 아니해도 변하는 그 대적이 수가 심히 많다. 있는  종류대로 다 구비되어 있다 하는 것을 말을 했는데 이 말을 그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는지 안 알아 들었는지 모르겠어.

그러기에 그리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이거는 형태가  변해지는 것입니다. 수 없는 실물 교재가 자기 처소에 있습니다.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고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는 수 없는 것이 자기에게 다 구비되어 있습니다.

외부는 안 변해도 내부는 얼마든지 교체되고 얼마든지 자기는 갈아서 새것을 읽을  수 있고 새 것을 볼 수 있고 새 싸움을 할 수 있고 새 승리를 승패를 이룰 수가  있는 것이 기독자의 처소입니다. 이것이 이해가 됩니니까? 이것을 발견하면 모든 처소는 같습니다. 녜 같애. 그에게는 변하는 처소가 없어.

변동되는 처소가 없어. 왜 꿰뚫고 그 안에 막고 있기 때 3. 13. 금요일문에 그는  평생에 외부가 변해진다고 그이의 환경이 변해진 것 아니요 벌써 그것을 초월해  살았소. 그 꿰뚫고 살았소.

이러기 때문에 시대가 변해진다고 환경이 변해진다고 거기에 따라서 자기 처소가  변해진 것으로서 새로운 준비를 해야 되겠다, 새로운 투쟁을해야 되겠다, 새로운  여기서 모든 설비를 해야 되겠다 하는 것이 없다 그말이오. 이 말을 알아  들었는지?  자기는 변동 되지 않는 자기 고정된 처소에 수 없는 이 역사 세계에 있었던  종류대로의 수 없는 그 종류의 것이 것을 다 상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 없는 것이 자기에게 다 벌써 그것이 구비되 가지고 자기를 둘러  싸고 있소. 자기 처소에 둘러 싸고 있소. 이런 처소를 자기 처소인 것을 알고 이  처소를 자기 처소로 삼아서 삼아야 외식자기 아니고 영감의 사람이 되지 이 처소를  자기 처소로 삼지 아니하고 공간이 변해지고 종류가 변해지고 시간이 변해지고  형태가 변해지니까 변해지는 그 처소만이 자기에게 변동되는 처소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극히 외식입니다. 이것은 육체의 사람으로 살기 때문인 것입니다.

심히 수가 많은 악의 세력을 상대하고 있는 악의 세력이 구비되어 있는 우리의  처소라. 또 내적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 암만 알아도 알고 보니까 또 모르는 면이  있고 알고 보니까 또 모르는 면 있고 상대해 보고 나니까 또 처음으로 보는 면이  있고 이래서 사도 요한이는 그렇게 신앙에 성장된 사도 요한이지마는 밧모섬에 가  가지고서 주님을 새로운 주님을 발견할 때에 그는 죽은 자와 같이 됐습니다. 그  앞에 머리를 들지를 못한 자 됐습니다.

그것은 무슨 사도 요한이가 밧모섬에 갔다고 그런게 아니고 밧모섬에서도 내나  얼마 동안 오랫 동안 있었는데 주일을 만났을 때에 성령의 감동함을 가지고 알아  볼라고 돌이킬 때에 그가 그 주님이 발견 됐소. 그래서 놀래니까 주님  말씀하시기를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나는 변하지 안했다. 내가 그때 상대한 그  주님이요 나는 변하지 안했다 알파와 오매가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그 말은 무슨  말입니까? 그 말은 무슨 말이지요? 내가 변했다 그말이오. 나는 변하지 않았는데  네가 변했다. 어떻게 변했단 말입니까? 새로운 영감을 받으니까 눈이 밝아졌다  이기요.

네가 눈이 밝아져서러 이제 네 눈에 안 보이던기 보이니까 내가 깜짝 놀라 그렇게  내가 변한 거 아니라. 나는 내나 그때에 그 주님으로서 네가 모르고 먹장같이 나를  상대할 때도 나는 그때 그렇게 상대해 줬다.하는 것으로 위로 해 줬습니다.

이렇게 내 몸 밖에도 심히 죽는 날까지 발견해도 발견 못할 그것이 내몸 밖에  가득차 있고 내 안에 주님도 이렇게 무한하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이 두 사이에  이 두 사이에 끼여 있는 이 두 사이에 끼여 있는 자기는 주님으로 더불어 무한한  관계가 맺어져 가고 자기 몸 밖에 있는 것으로서의 무한한 관계가 맺어져 갈 수  있는 이것이 기독자라 그기요.

하나만 물어 봅시다. 요 서이 알고 어제 하나는 요 서이를 알았는지못 알아  들었는지, 알아 들었는지 못 알아 들었는지 요걸 한번 내가 시험해 물어 보겠는데,  그러면 이렇게 자기 안팎이 자꾸 변해집니다. 자기 안팎이 변해지는 것이 뭐  때문입니까? 뭐 때문에 변해집니까? 영웅 조사님 어디 있노? 김영웅 조사님 손  들어봐요. 왜 이렇게 변해지지 고칠 부분이 많기 때문에 변해진다. 왜 자꾸 이래.

녜 고 대답도 좀 맞은 같습니다. 고칠 부분이 많아지니 많아지니까 그렇다. 내가  묻는 말을 잘 못 물었소. 와 이렇게 이제 고정된 그 처소인데 그렇게 자꾸 자기 그  몸 밖에 있는 상대편 상대편이 이렇게 바꾸어질까 상대편이 바꾸어질까 자기 안에  있는 주님이 자꾸 이렇게 달라질까 자기 몸 밖에 것이 자꾸 왜 이렇게 달라지고 또  자기 몸 안에 있는 주님이 달라질까 왜 그렇게 자기가 양면을 상하를 상대할 때에  이렇게 달라집니까 와 달라집니까? 유 조사님. 녜 인제 고러면 다 알아 듣기는  알아 자기가 성장한 거기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이렇기에 다 같은 그 처소에서도 그 사람의 자체의 성화가 그 성화된 양에 따라서  모든 보는 것이나 상대하는 것이나 투쟁하는 것이나 그런 것이 달라집니다.

오늘 아침에는 요 세 가지를 굳게 잡고 우리가 이렇게 없으면 항상 외식입니다.

보이는 것만 상대해서 살면 이는 외식 생활입니다. 그러기에 보이는 것을 상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면을 말합니다. 그 상대방에게 대해서 말하는 것이 주의를 주는  것이나 경고를 주는 것이나 책망하는 것이 보이는 면만을 상대해서 말한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면을 상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본인이 기회가 안 되고 본인이 억울하다  애매하다 하는 그것은 그 본인이 극히 외식에서 머물고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가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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