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세례

 

1986. 12. 7. 주일오후

 

본문:갈라디아서 5장 24절∼26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이라,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말씀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입은 사람들과 택함을 입은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이용당하기 위해서 지음 받은 사람들과의 전인류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 말은 창세 전 영원 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들이 있으니 그 택함을 받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여게 그렇게 표시한 것입니다.

또 예수의 사람들이라 하는 이 말은 ‘예수님의 사활로 일곱 가지 대속을 받은 사람들은’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은 두 가지를 인해서 죽으셨는데 하나는 우리가 마귀의 유혹받아 하나님을 배반한 이 죄와 또 우리가 마귀의 유혹받아서 우리 자율대로 주장대로 우리의 중심과 위주대로 산 그 모든 불의의 죄와 하나님의 법칙을, 계약의 법칙을 어긴 이 죄와 이 세 가지 죄로 인해서 우리들은 죄값으로 사망의 권세 아래에 갇히게 됐고, 또 죄의 권세 아래에 갇히게 됐고, 마귀의 그 정권 권세 아래에 갇히게 된 우리들을 우리의 세 가지 종류의 범죄의 형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멸해졌고 또 죄가 멸해지니까 사망이 멸해졌고 죄와 사망이 멸해지니까 마귀는 우리를 놓아 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세 가지 해방과 자유를 얻은 우리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이 내 대신 이 세 가지 성질의 죄로 우리가 영원히 멸망받을 그 형을 예수님이 대신 그 형을 받으심으로 우리는 해방되어 자유를 얻었습니다. 사망에게 자유를 얻었고 죄에게 자유를 얻었고 마귀에게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대신 형을 받아, 저주의 형을 받아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는 이 세 가지에게서 해방과 자유를 내것 삼았고 예수님이 설정해 놓은 세 가지에서 해방과 세 가지 면으로 자유하는 이 세 가지 대속을 받아서 우리 것 삼은 나는 세 가지 대속으로 나를 값 주고 사신 주님의 것이 됐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예수의 사람이라고 말하고, 또 예수님이 한 가지 죽으심은 우리 대신 하나님이 지성 지공의 전지자의 입법을 다 이행자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완전자로 영생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다 행하셨습니다. 또 하나님과 원수된 이 화친을 위해서 주님이 대신 화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두 가지, 우리 대신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시고 우리 대신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한 화친을 이루시는데 그대로 예수님이 살아 계셨으면 예수님은 계속 우리 대신 하나님의 법을 행하시고 행하시는 그 행함은 우리의 것이 되고 대신 화친하시는 그 화친은 우리 것이 되고 예수님은 화친을 계속을 해야만 합니다.

이런데 악령은 예수님으로 더불어 전투할 때에 예수님을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지공법을 범하도록 이렇게 해서 범하면 예수님은 패전하고 저는 승리하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친한 것을 화친하지 못하도록 온갖 방편을 꾸며 가지고서 만일 예수님이 화친에 털끝만치라도 거리끼게 되면은 마귀는 승리하고 예수님은 패전해서 영원히 예수님까지도 마귀의 종이 되고 그의 권세 아래에 사로잡혀야 되는데, 이 두 가지 대속을 대신 행하시는 일을 하실 때에 악령이 하지 못하게 할려고 온갖 유혹을 했고 온갖 방해를 했고 온갖 고문과 고형을 하다가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그 고문과 고형을 할 때에도 ‘지금이라도 내려오라, 지금이라도 내려오면 우리가 너를 따르겠다.’ 이런 유혹을 했으나 예수님은 우리 대행, 율법을 대행하는 그 대행을, 대화친하는 그 화친을 악령이 방해해서 못 하게 할라고 온갖 고문과 고형을 할 때에 예수님은 그 고난에서 죽으셔도 이 율법을 지키는 것과 대신 화친하는 일을 양보하지 안하고 그대로 계속 지키시고 어떤 일에서라도 조금도 요동치 아니하시다가 마지막에 그 고문으로써 예수님이 운명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악령은 다시 예수님을, 대행하시는 일을 하지 못하게, 대화친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일은 끝나 버렸고 예수님은 대형과 대화친의 계속으로 끝나 버렸기 때문에 예수님은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가리켜서 요한복음에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향하여서 이 기념 생활을 할 때에 예수님이 나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어떻게 하셔서 어데까지 갔으며 어데까지 견뎠으며 어데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사랑하는 그 역사를 끊치지 안한 어데까지라는 그것을 우리가 생각을 해서 우리도 대속해 주신 그 대속을 그와같이 보존하고 기념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인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두 가지 죽으심으로 우리는 다섯 가지 대속을 받았습니다.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서 자유하는 이 자유의 대속을 받았고, 하나님의 이 지공법을 완전 이행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우리가 대속해서 받았고, 또 하나님으로 더불어 완전한 화친을 가져서 완전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결합이 생명이요 사망은 하나님으로 더불어 끊어지는 것이 사망인 것입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섯 가지 완전 대속을 우리가 받았고, 또 예수님이 이렇게 대속해 놨지마는 우리는 그 대속을 누리고 살 만한 아무런 것도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다시 예수님께서 신인양성일위로 죽은 가운데서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을 향하여 영원히 영감과 진리대로 사는 이 영생을 하셔 가지고서 그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것은 끝난 것이 아니고 계속 주님이 우리 때문에 신인양성일위로 창조주가 피조물 되어 가지고서 하나님을 향한 영감과 진리대로의 이 복종 생활을 영원히 계속합니다.

계속이 끝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거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계속입니다. 이렇게 부활로 두 가지 영감과 진리대로의 하나님을 향한 생활인 이 영생을 우리에게 주셔서 대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 사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일곱 가지 대속을 주신 이 대속은 우리의 것이 됐습니다. 그러면 이 대속은 죄에 대해서 완전하고, 사망에 대해서 완전하고, 마귀에게 대해서 완전하고, 하나님의 공심판에 대해서 완전하고, 또 하나님과의 친밀에 대해서 완전하고, 또 하나님을 향하여서 영감과 진리대로의 사는 생애가 완전한 이 완전 일곱 가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래서, 예수님의 이 사활로 대속하신 완전 대속 일곱 가지는 나의 것이요, 주님이 이 일곱 가지를 가지고 우리를 샀습니다. 완전 대속 이것은 우리의 것이요 우리는 이 대속을 받아 가진 우리들은 주님의 것이 된 것인 것입니다.

이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이 말은 영원 전 선택함을 입고 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입은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육체와 함께” 우리의 이 몸을 말합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이 말은 우리의 심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때에 우리가 같이 죽은 셈이 된다.

내 대신 주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으심은 내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정으로 살고 욕심으로 살고 전부 자기 중심 자기 위주의 자기 본위로 이렇게 살던 그 생활을 인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해서 멸망하게 되는 것을다시 말하면 옛사람입니다된 것을 예수님이 그 멸망으로 우리를 구출하기 위해서 죄는 우리가 정과 욕심 그 육체 하고 싶은 대로 해 가지고서 범죄한 그 죄값으로 우리가 범죄하고 우리가 망하여야 할 터인데 범죄는 우리가 하고 멸망은 당신이 대신 멸망함으로써 우리는 멸망하지 안하고 거게서 구출됐다. 이러니까 그 구출은 영원한 구출이기 때문에 구출됐으니 이제는 살아 있는 우리들은 주님의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이 내 대신 이것 가지고서 범죄한 그 값을 형을 받느라고 주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이 죽으심은 곧 내 정과 욕심과 육체가 그때에 같이 죽은 계산이 된다 그말이오. 죽은 계산이 된다. 죽은 계산이 된다.

죽은 계산이 되고, 계산이 되는데 내가 죽지 안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나는 완전히 일곱 가지 대속으로 값을 내고 샀고 나는 그 값에게 팔려서 내 영육은 주님의 것이 되고 주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은 내것 되고 완전히 이것은 바꾸게 됐다. 이래서 주님의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을 자기 것 삼은 자기는 주님의 것이 된 이것을 믿는 것이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은 어떤 신앙 생활이냐? 다시는 예수 믿기 전 옛날 정과 욕심과 육체대로 자기 중심 자기 위주대로 자기가 동하고 정하고 자기가 능동적으로 사는 이 생활은 완전히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 같이 죽은 계산이 되기 때문에 완전히 죽은 자가 되고, 그러면 자기 주관이라 하는 건 완전히 죽은 자가 되고, 자기 주관은 완전히 죽은 자가 되고 그럴 때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은 내것 되고, 이러기 때문에 완전히 죽은 자이니라 그말입니다. 완전히 죽은 자이니라.

“못박았느니라” 25절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이제는 주님의 대속은 내것 됐고 주님의 대속을 가진 나는 주님의 것 됐기 때문에 주님의 대속을 나는 어데든지 가졌을 때에 죄에도, 사망에도, 마귀에게도, 하나님의 공심판에게도,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우리는 예수님의 이 일곱 가지 사활의 대속을 가졌을 때에 하나님의 지성소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며칠 전에 그런 말씀 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 성전 휘장이 위로부터 갈라졌고, 또 무덤이 열렸고, 또 바위가 터졌고, 땅이 진동했고, 자던 성인들이 무덤이 갈라지고 일어났습니다. 일어났으나 나오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이제까지 구약 교회에서 성소와 지성소에 그 휘장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의 장벽이 막힌 것을 늘 일 년 일 차만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이 한 번만 그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그건데, 짐승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 것인데, 모형하고 예약한 것인데 늘 이래 가지고서 육체의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직접 대하지 못하고 늘 휘장을 가리워 놓고서 그저 짐승의 피를 힘입어 가지고서 대제사장이 대표로 일 년에 한 번씩만 들어갔었는데 이 휘장이 사람 손 대지 안하고 위로부터 아래까지 쫙 둘로서 짜개졌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육체의 이스라엘들이 그들이 놀래고, 깨달은 자들은 “세상 죄를 지고 갈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고 그때 세례 요한이 선지자로서 외쳤는데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었고 깨닫지 않는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메시야가 오리라고 망령을 부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내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고 온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대로 선지들의 모든 예언한 그 예언이, 예약한 예약이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완성을 이룬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교회는 예수님의 이 대속을 예약 예표한 것을 믿고 있다가 예수님이 이제 실제로 대속의 일을 완성했을 때에 그때에 휘장이 갈라진 것으로 그렇게 계시로 하나 표적으로 나타낸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완전히 죄의 담이 무너졌다, 또 사망이 깨어졌다, 땅위에는 새 운동이 일어났다, 땅이 진동한 것은 이제까지는 모두 다 이 육체의 운동 마귀 운동만 땅위에 가득 찼고 육체의 이스라엘들이 있지마는 한 예약 예표만 가지고 했지 늘 마귀의 지배 아래 있었는데 예수님이 사활하신 후에 땅위에는 딴 운동이 일어난 것을 말한 것입니다. 딴 운동은 이거는 영생하는 운동이 비로소 구약 성도들은 그때 소망하고 있다가 완성이 됐고 신약 성도들은 그때부터 이 생명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이라다가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무덤은 그때 열렸으나 무덤 열린 거게서 삼 일 동안 무덤이 열리고 거게서 일어섰으나 나오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삼 일이 될 때에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에 무덤에서 나와 가지고서 많은 성도들이 같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그때에 모든 이스라엘들에게 많이 보여 줬습니다. 그라다가 다시 그 무덤으로 도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로 소망하던 부활이 이제는 완전히 이루어졌다 하는 것을 말하고 새 생명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리켜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약 성도들은 예약적 예표적 중생을 했지 중생은 하지 못하고 있다가서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인생에게 중생이라 하는 것은 비로소 시발된 것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그 신학교에서, 구약 성도들은 중생했느냐? 중생 안 했습니다.

중생이 예약적 중생만 했지 중생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때에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너희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그라면 몇 날이 못 되어서 성령의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십이 사도와 문도들에게 말씀을 했는데 그때에 그분들은 중생했느냐? 그분들은 중생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중생됐습니다.

중생된 사람들에게 너희들이 성령 세례를 받아라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성령 세례는 중생 후에 받는 것인데 중생은 본인이 모르게 성신의 역사가 와 가지고서 그 죽은 영을 살리는 것이고 성신의 세례는 중생 받은 자들이 본인이 알게 영감의 역사를, 역사 영감을 받는 것을 가려켜서 성령의 세례라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라는 것은 주님의 대신 죽으시고 또 우리 대신 사신 사활의 대속을 똑똑히 알고 믿고 여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흠 없이 살게 하는 그 운동을 하는 그 역사가 성신 세례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이것은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제것 삼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죽으신 것은 제가 죽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는 죽은 자가 제 행동 하지 못하는 거와 마찬가지로 완전히 예수님의 것이 되는 그것이 예수의 사람들이다 그말입니다. 완전히 자기로 사는 것은 전연히 완전히 없어지고 예수님의 것으로 사는 것이 그것이 예수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하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못박았느니라” 그다음에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살면 그 말은 성령의 감동으로 살면오늘 아침에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우리 심령 속에는 두 인도자가 있다 하는 것을 강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제가 오층에서 들었습니다.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면 “성령으로 살면” 성령 인도를 받아 살면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생활을 하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성령으로 행한다 말은 성령은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전지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전지 전능의 하나님의 지체되어 살고 하나님에게 피동되어 살고 하나님으로 산다 그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모든 속성, 하나님의 지능, 하나님의 그 권위로 산다. 비록 피조물이지마는 성령의 인도로 살면 하나님이신 성령님에게 붙들려 가지고 살기 때문에 전능자가 흔드는 대로 흔들리기 때문에 전능자에게 피동된 자이기 때문에 피동된 그자의 움직임은 전능자의 움직임이다 하는 그말인 것입니다. 이 아주 무서운 말이고 아주 우리가 참 상상도 못할 계약입니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의 인도로 살면 “성령으로 행한다” 전지 전능자로 행하게 된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그 말씀은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하는 그말 아닙니다. 믿음은 능치 못할 것 없다 말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서 행하는 그 일은 전능의 행위기 때문에 그 행위는 모든 피조물이 다 달라들어서 방해해도 털끝만치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말입니다. 그건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피조물에게 피동받습니까? 그러기 때문에 믿음은, 성령에 피동받아 성령으로 살면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성령으로 행한다” 전지 전능의 완전자의 행함이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조그마치라도 제재나 피해나 가감을 받지 않는다 하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행할지니” 이것이 우리 생활입니다. 우리 생활은 내 육체와 정과 욕은 다 완전히 죽은 자로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리 생활이요, 이제 내 남은 영육은 “몸으로 산 제사를 드려라” 내 영육은 내 욕심은 하나도 없고 완전히 주님의 소욕대로 사는 것, 제물이라 하는 것은 제물이 척 되면 자기 생명은 죽어 버립니다. 죽어 버리고 그 제물은 제물 받는 자의 소욕대로 다 남은 것은 다 그대로 쓰여지고 마는 것이지 제 소욕이라는 거는 하나도 없는 것이 제물인 것입니다.

너희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말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주로 그 대속을 자기 대속으로 소망하고 믿는 사람은 자기 주관 자기로 인하여서 움직이는 움직임은 하나도 없고 완전히 주님으로 인하여 움직인다.

이러기 때문에 내가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도 당신 마음대로, 내 몸도 당신 몸대로, 내 영도 당신 뜻대로 당신이 내 영육을 완전히 주관해서 당신 것으로 내 안에서 사니까 당신이 주권 가졌지 나는 거게 대해서는 털끝만치도 관심이나 관계할 권리가 없다.

동시에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사활의 일곱 가지 대속은 내것이 완전히 되어졌다 하는 이것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요것은 우리가 행동하는 것이고, 그러면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하는 데 성령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신 성령님이 우리 속에 와야 성령으로 살 수 있는 것인데 성령은 우리 속에 못 옵니다. 왜 못 오느냐? 성령은 완전하신 빛이시요 완전이시요 거룩이시요 완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이 영은 중생돼서 살았지마는 심신이라 하는 것은 만물보다 거짓된 아주 더럽습니다. 아주 더럽기 때문에 우리 심신 속에 성령이 오시면 우리 심신은 당장 소멸되고 맙니다. 당장 소멸이 돼 버리고 맙니다.

출애굽기 19장 이하에 보면은 “시내산에 오를 때에 그들이 이 거룩하게 경계해 놓은 이 경계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라. 들어오면 당장 내가 돌격해서, 내가 돌격해서 그들이 몇 명이라도 막 전멸이 돼 버리고 만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이러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을 대하지 못합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 들어오시지를 못합니다. 들어오시는 조건은 다만 하나 있는 것이 뭐이냐? 예수님의 사활의 대속을 자기 것으로 삼아서, 사활의 대속을 자기 것을 삼을 때에 이는 완전자이기 때문에 하나님하고 동거 동행할 수가 있고, 그러면 자기는 주님의 것이 되고, 요것이 우리 생활하는 이 건설구원을 이루는 노력인 것입니다.

이래서, 이렇게 성령이 우리 안에 와서 나를 인도하실라고 하면 그 인도를 내가 받으면 전능의 행위인데 그 성령이 내 속에 오셔 가지고 인도하실 수 있도록 내 속에 오시면 전능자가 나를 주관하고, 전지자가 주관하고, 완전자가 주관하고, 완전한 그 아가페의 사랑이 나를 주관하고 하니까 이제 그 주님은 내 안에 살아서 주인공이 되고 나는 그 성전이 되고 그의 지체가 되고 그의 몸이 되어지면 이러면 주님은 주격이요 우리는 거기 피소유격이 돼 가지고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완전 구원인데 이럴 때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모든 것을 다 능히 통치할 수 있고 만물에게 충만케 할 수 있는 이런 실력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 가지고 우리를 주관하시면 이것으로서 완전 성공이요 승리인데 성령이 우리에게 들어오고 싶어서 해도 성령이 들어오시지를 못합니다.

“내가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노니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서 나는 너로 더불어 먹고 너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하는 그 말은 먹는다는 고거는 뭐이냐 하면은 그 행사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여게 양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고 이루는 것이 양식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러니까, 그러면 완전 행위가 된다 하는 그것을 가리켜 말했는데 문을 두드릴 때에 문을 열어라 하는 그 문 여는 것은 뭣이 어떤 것이 문을 여는 것인고 하니 문을 여는 것은 자기는 주의 것 되고 주님의 대속은 자기 것 되는 요것이 문을 여는 것입니다.

비로소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대속을 자기 것으로 삼을 때에 이제 일곱 가지 대속을 입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맘대로 출입할 수 있습니다. 맘대로 출입해도 그에게 도움이 되고 생명이 되고 영광이 되고 승리가 되지마는 대속을 입지 안한 자에게는 이 성령님이 오시면 소멸돼 버리고 맙니다.

이런고로 이제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그 정과 욕심을 함께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하신 이것이 우리가 지금 예수님의 대속을 벗지 안하고 입고 있을라고 애를 쓰는 것이고, 또 이것은 주님의 것이 됐는데 주님의 이 영육이 됐는데 그 영육을 내가 내 맘대로 쓸라고 하는 이런 일을 안 할라고 애를 쓰는 것이 우리의 노력인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러면 그 생활 하면은 뭐이 되느냐? 그 생활 하면은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 가지고서 성령이 우리를 총 생활을 지배하게 될 때에 그지배에 지배를 당하게 되면은 이는 전능한 성령으로 행한다. 성령으로 행한다. 전능자로 행한다. 전지자로 행한다, 완전자로 행한다. 그러니까 완전자로 행하니까 그 행함이 완전이 된다는 말입니다. 완전자로 행하니까 그 행위가 완전이 된다 말이오. 전능자로 행하기 때문에 전능이 된다 말이오. 전지자로 행하기 때문에 전지가 된다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이래서,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할지니” 이렇게 큰 소망이 우리에게 있는데 이 소망을 깨닫지 못하고 “헛된 영광을 구하여” 헛된 영광은 무슨 영광입니까?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하는 그 영광을 가리켜서 말합니다. 육의 영광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무슨 지위 영광, 권세 영광, 물질 영광, 명예 영광, 또 자기의 행락 영광, 모든 인간 실력 영광, 모든 이런 영광 저런 영광, 잘먹고 잘사는 거, 건강한 거, 뭐 미남도 얼굴이 영광이요 미인도 얼굴이 영광이요 모든 사람들이 노벨상을 주고 하는 그 노벨상 그것도 영광이요 모든 그것을 한 말로 말해서 육체의 영광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육체의 영광, 그것은 풀의 꽃과 같이 잠시 잠깐 후면은 말라 떨어지고 아름다움이 없어져 버립니다. “이 헛된 영광 이런 것을 구하여” 이런 데 소망을 둬 그말이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이런 데 소망을 둬, 우리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대속이 내것 되니까 하나님의 공심판에도 마귀에도 사망에도 아무데도 걸림 없이 자유하는 이 완전 영생 자유, 하나님하고 하나가 되는 이런 것이 되고, 하나님으로 살아 내가 아무것도 아닌 피조물이 창조주이신 성령, 하나님으로 사는 이 영광스러운 존귀함이 우리에게 소망이 있어서 하늘의 것과 땅의 것과 이제 것과 장래 것과 이 모든 것이 다 이렇게 된 자의 것이 되어지는 지극히 큰 소망인데, 이 소망을 잊어버리고 헛된 영광, 육체의 영광, 땅위의 것, 예수 믿는 자들이 땅위에 썩을 가치 없는 여기에 미혹받아 가지고서 이거 있으면 아주 그런 사람 보면 부러워하고 또 그런 사람은 자랑하고 활개를 뻗치고 이렇게 헛된 영광, 오늘이라도 세상 떠나면 없어지는 영광, 또 주님이 구름타고 오셔도 없어지는 영광,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영광스러운 참 평가적으로 가치적으로 암만 평가하고 비판해 봐도 그는 가치 있는, 가치 있어서 모든 만물이 이렇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이런 가치 있는 생활이 있는데 이것은 할라고 애쓰지 안하고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충격받고 ‘저 사람이 저래 됐다.’ 거게 충격받고, 거게 충격을 받는다 말이오. 다른 사람이 세상 영광 있는 것 보고 거게 충격받아 가지고 정신 못 차리고, 또 “투기하지 말지니라” 그것에 쓸데 없는 그런 데 샘을 가지고 그런 샘을 가지고서 지금 날뛰는 거, 쓸데 없는 것에게 충격받고 쓸데 없는 샘풀이를 해 가지고서 얄궂게 날뛰는 그런 추접한 행위를 하지 말라 그말입니다.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습니다.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영광과 존귀와 칭찬이 우리에게 얼마든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살 수 있는 영광스러운 것을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사활의 대속을 주신 것인데 이 사활의 대속은 버려 버리고 땅위에 있는 헛된 이런 걸 구해서 날뛰는 이런 일 하지 말라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선지자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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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43 성령감화가 오는 순서와 증거/ 베드로후서 1장 16절-19절/ 880210수야 선지자 2015.11.06
542 성령과 물과 피/ 야고보고 1장 13절-15절/ 811110화새 선지자 2015.11.06
541 성령과 악령 영접 법/ 창세기 2장 16절-17절/ 1988. 8. 10. 오전집회. 선지자 2015.11.06
540 성령과 악령을 영접하는 방법/ 로마서 8장 6절/ 880904주후 선지자 2015.11.06
539 성령받는 비결/ 사도행전 8장 1절-24절/ 860314금야 선지자 2015.11.06
538 성령세례-전도 방편/ 사도행전 1장 1절-9절/ 860611수야 선지자 2015.11.06
537 성령 안에서 기도/ 에베소서 6장 18절 상반절/ 880708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6
536 성령을 소멸하는 것/ 출애굽기 33장 1절-11절/ 850629토새 선지자 2015.11.06
535 성령의 권능/ 사도행전 1장 8절-9절/ 860615주전 선지자 2015.11.06
534 성령의 권능 받아 세 가지 사람/ 사도행전 6장 1절-8절/ 860608주후 선지자 2015.11.06
533 성령의 능력/ 고린도전서 2장 1절-5절/ 890711화새 선지자 2015.11.06
532 성령의 방언 역사/ 사도행전 8장 14절-23절/ 860315토새 선지자 2015.11.06
531 성령의 사람의 소원/ 요한일서 3장 1절-3절/ 800309주전 선지자 2015.11.06
530 성령의 사람의 소원/ 빌립보서 3장 11절/ 800406주후 선지자 2015.11.06
» 성령의 세례/ 갈라디아서 5장 24절-26절/ 861207주후 선지자 2015.11.06
528 성령이 충만해서 심방을/ 마태복음 24장 45절/ 80032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6
527 성령훼방죄/ 히브리서 6장 1절-2절/ 860527화새 선지자 2015.11.06
526 성령훼방죄/ 마태복음 12장 28절-37절/ 880105교역자회 선지자 2015.11.06
525 성막/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800427주후 선지자 2015.11.06
524 성수주일/ 이사야 58장 13절-14절/ 791221금새 선지자 201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