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세례-전도 방편

 

1986. 6. 11. 수밤

 

본문:사도행전 1장 1절∼9절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리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성경이 말씀하신 것은 사람들이 경홀히 여기고 사람들의 말은 중하게 여기는 것이 옛날부터 늘 그러합니다. 그러기에 신앙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어느 시대나 일을 하실 때에 은밀히 하셨습니다. 다 그 시대에 사람들이 멸시하고 천대하고 업신여겼습니다. 왜? 눈에 보이는 웅장하고 기이하고 큰 운동들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선포하신 말씀을 준해서 자기의 모든 준비를 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은 다 멸시했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노아도, 에녹도 다 그랬습니다. 그들이 그 당시에 어떤 유명한 그런 운동이나 파문을 일으켰던 것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고요히 꼬박꼬박 따라서 준행했는데 그 당시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멸시했으나 노아는 홍수가 내려서 노아의 신앙을 높이 들었지 아브라함은 그런 일도 없었습니다. 뭐 아브라함은 하나의 초초한 서민 중에 하나지 그렇게 누가 위대하다고 하지를 안했습니다. 이삭도 그러했고, 야곱도 그러했고, 사무엘도 그때에 그 당시에, 실은 위대한 일 했지마는 세상은 알아 주지를 안했습니다.

엘라아도 만날 쫓겨다니고 그저 하나의 참 멸시와 천대받는 그런 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붙들고 역사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설교를 할라고 할 때에, 뭐 그런 바람들이 시대마다 많이 불었지마는 우리 총공회 진영에 그 태풍이 불어 와 가지고 전부 목사들이 다 날려가서 지금 정신을 못 차리고 다 날려갔기 때문에 제가 거게 대해서 이거 참 내가 이제까지 해 놓은 일이 이거 너무 허무하구나 그렇게 생각을 가졌으나 낙망은 하지 않습니다. 결단코 진리는 지는 법이 없고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습니다. 이래서 또 오늘 밤에 이 말씀을 증거합니다.

지금 전도의 바람이 불어 가지고 별별 방편을 쓰는데 그 방편은 우리가 성경대로의 방편을 하나님이 주시고 가르치셨지마는 성경대로의 방편을 우리가 쓰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다 일어나 가지고서 야단을 지기는 것입니다.

우리 총공회 산하에 있는 어느 교회를 막론하고 주일학교는 다 부흥이 됩니다. 뭐 어느 교회를 말할 것 없이 총공회에 속한 모든 교회의 주일학교는 그지방에 다른 교회와 비교해서 아주 탁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년반 전도는 대단히 침체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해서 그런가 우리가 살펴보면 간단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주일학교는 많은 반사들이 다 주일학생을 인도하는 벌써 견학을 많이 했고 또 힘을 얻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교회와 서부교회 반사들뿐만 아니라 모든 교인들과의 다른 점이 있습니다.

있는 것은 다른 교회 교인들은 그 주일학생을 보고 교회로 인도할라고 하는 그런, 마음에 그래야 된다고 알면서도 그런 마음이 그리 나지 안하고 또 열심이 나지 않습니다. 또 학생들 보고 야 교회 나오너라 이렇게 아이들을 붙들고 전도하는 그런 일이 서툴어서 서먹서먹해서 해야 될 줄 알면서도 그만 지내 보내고 지내 보내고 아이들 데리고 복음 전하는 그런 일을 다른 교회들은 잘 못 합니다.

그러나, 서부교회 교인들은 반사들뿐만 아니라 장년반들도 그만 주일날만 되면은 어떤 아이라도 붙들고 교회 가자 이래 가지고 뭐 달래기도 하고 또 타이르기도 하고 업고도 오고 뭐 인도하고 어째됐든간에 그만 주일학생을 대해서 전도하는 일이 벌써 길이 들어놔서 능숙합니다. 능숙하고, 또 해야 될 줄 알고 또 열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년반에 대해서는 전도를 안 해 봤기 때문에 전도할 용기를 내지도 못하고 또 그렇게 썸벅 전도하지도 못하고 이렇게 해서 장년반을 주일학교 학생들과 같이 이렇게 대해서 전도하는 그런 전도의 힘이 열리지 안했고 길이 열리지 안했고, 그런 시발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전에 종종 가끔 가다가 그리 하는 일 했지마는서도, 그러면 장년반은, 주일학교는 학생을 대하면 만만하게 전도하지마는 장년반은 만나면 이 사람은 양복을 잘 입었으니까 못 하고, 이 사람은 또 자기 용모가 바쁘게 날뛰니까 못 하고, 이 사람은 고관대작이니까 못 하고, 이 사람은 사장이니까 못 하고, 이 사람은 대문 잠궈 놓고 집 안에 들어 있으니까 못 하고 이래서 도무지 장년반에 대해서는 전도하는 것이 서먹서먹해서 전도하는 그런 용기를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전에 우리 교회에서 교역자들은 매일 오십 집씩 호별 방문을 하자. 또 교인들은 하루 전도지를 정해 놓고 자기는 형편에 따라서 오십 장이든지 백 장이든지 전도지를 전하자 이런 일을 해 가지고서 얼마 동안 그럴 때에는 누구든지 전도를 이래 썩썩하고 이랬지마는 요즘에는 그만 그 일을 게을리 해 가지고서 그 일을 잘 못 합니다.

이래서, 장년반은 우리 진영 교회들이 늘어나가지 안하고 주일학교는 자꾸 늘어나가는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단지 전도를 열심히 하고 안 하는 거기에 있습니다. 전도하는 그런 벌써 능숙한 그 기능을 가졌고, 또 장년반에 대해서는 전도하는 그런 용기를 갖지 못하고 있는 그것입니다. 그것은 그저 전도는 성경대로 열심히 전도하면 됩니다.

그래서, 저도 제가 한 두달 전인가 한 달반 전인가 제 수첩에다가, 아무래도 이거 우리가 전도를 안 하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안하니까 전도해야 되겠다 해서 전도하는 데는 어떻게 방식을 할까 이래서 금요일 날은 이미 전도하는 날로 정했으니까 그 날은 자기 맡은 식구를 간단하게 심방하고, 자기가 속으로 작정하기를 나는 백 명을, 지금 전도지 백 장을 전하겠다, 혹은 열 장을 전하겠다 그래 해 가지고 할 수 있으면 하루 종일 복음을 전하는 그런 일을 금요일 날은 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이 또 하나 들었고, 또, 하나는 한 사람이 아이 다섯 명, 어른 다섯 명 열 명씩을 딱 정해 놓고 기도하는 그 일을 또 하나 해야 되겠다 이래서 자기 가정에, 또 자기 이웃에, 또 자기 직장에 그저 어떤 사람이든지 중학교 이하는 다 아이로 치고, 또 고등학교로부터 장년반까지는 어른으로 쳐서 그렇게 열 명씩을 정해 놓고 그 사람을 매일 한 번씩이든지 두 번씩이든지 그를 회개하고 예수 믿도록 해 달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열 명을 두고 일 년이고 이태고 매일 빠짐없이 그렇게 기도를 해서 이 구원하는 일을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또 생각이 하나 나서 그런 방편을 하나 생각했었습니다.

또, 그러고 이제는 그저 가정에 방문하는 것도 좋지마는 그만 전도지를 박아 가지고 매일 하나가 그저 한 오십 장이고 백 장이고 이렇게 전하도록, 그러면 전하면 또 전한 사람이 또 전하고 전하면, 전하도록 그렇게 그만 해야 되겠다.

지난번에 백만 장을 박아 가지고서 이십만 장 남기고는 다 전해졌습니다. 그러면 그때 전할 때와같이 그렇게 계속하지 안하고 했었는데 그 전도를 계속해야 되겠다 그런 생각도 가지고 한 서너 가지로서 그 방편을 생각해 봤습니다.

요새 지금 다른 데에서 모두 열심히 하는데 그런 방편도 좋기는 좋습니다마는 나는 그런 방편을 쓸 생각은 가지지 않습니다. 가지지 않고 요 세 가지 방편으로 아무래도 전도를 열심히 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생각을 제게도 너무 게을 부리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감동시켜 주셔서 그것을 양산동 기도막에서 기도 중에서 작정을 하고 그랬는데 고 얼마 후에 제가 전도 방식으로 뭐 특별 전도 방식을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고 들은 지는 한 보름 됩니다.

그랬는데, 또 오늘 말 들으니까 ○○○동 ○○교회에서 그 방식을 한 번 했고, 또 ○○교회에서 그 방식을 한 번 했고, 또 어느 교회에서 부산에 또 그 방식을 한 번 했고, 부산에서 세 번 했고 네번째 이제 ○○○교회에서 그 방식을 하고 있다고.

어쨌든지 그분들은 열심히 전해 가지고 안 믿는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할라고 애를 쓰고, 또 그 날 나오면 목사님은 어쨌든지 나온 사람을 붙들어야 될 터이니까 나온 사람은 그 날 설교 듣고 예수 믿고 싶은 생각이 나도록 해야 될 터이니까 또 기도 많이 하고 설교 준비를 많이 하고, 이러니까 구원 운동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 생각을 가져 봤습니다.

물론 그런 방식도 좋지마는 우리가 성경대로 보는 성경 방식이 제일 좋은데 성경 방식은 사람들이 하기가 힘이 드니까 이 성경대로의 방식을 쓰지를 아니합니다.

쓰지 안하고 모두 무슨 이상하게 쉽게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동하고 또 그 감정을 충동해 가지고서 하는 그런 별스러운 식이라야 또 힘이 나고 재미도 나고 하기 때문에 그런 식은 힘을 써도 성경이 가르치신 이 성경 방식, 구약 때로부터 신약 때까지의 이 성경 방식은 사람들이 별로이 쓰지를 안하고 합니다.

그래서, 이 성경 방식을 하면 좋기는 좋지마는서도 이는 너무 어렵기 때문에 도리어 전도하는 일을 가로막는 일이 되기 때문에 이래 가지고는 전도가 안 된다 해서 저도 좀 오늘 오후에는 좀 얼떨떨 했습니다.

한 것은, 이 방식이 그러면 성경 방식 가지고는, 그러면 무슨 다른 좋은 방식이 있으면 무슨 그런 것이 좋은 방식이겠느냐 그렇게 한번 생각을 하고, 그러면 설교를 할 때에 어떻게 설교해야 되겠느냐 내가 그렇게 혼자 좀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면, 설교를 하면은 어떻게 설교를 해야 되며, 이 양성원 학생들도 모이고 이라니까 이 설교를 어떻게 할까? 그 방식을 가지고 설교를 할라고 하니까 내가 이제까지 해 보지도 안했고, 또 성경대로가 아니고 이라기 때문에 다시 생각을 가졌습니다.

가진 것은 왜정 말년 때에도 그 신사 참배 바람이 불 때 그때 큰 폭풍이 불었는데 모든 교회가 다 그게 옳다고 쫙 따라갔고, 벌써 한국에도 ○○○ 목사가 그때에 그 이상한 바람을 불어 가지고서 한국 교회가 한번 쭉 따라가서 한국 교회 생긴 이후로 제일 처음으로 많이 모인 것이 ○○○ 목사가 모으는 그 모임에 제일 많이 모였고, 그때 십만 명이라는 것은 뭐 요새 천만 명보다도 더 많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서 모두 다 고성능의 시대라서 영 다릅니다.

또, 그 후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와 가지고 집회할 때에 그 때에 여의도 광장에서 오십만 명이 모였는데 그 뒤에 말 들으니까 오백만 명이 그 이듬해인가 삼 년 만에는 오백만 명이 모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나라도 뭐 오백만 명이니, 아직 천만 명이라는 말은 못 들었는데. 집회에 오백만 명 모이고 그 후에 뭐 삼사백만 명 또 그래 모이는 그런 것 뭐 교회 요새, 교회에서 몇 천 명 몇 만 명 모인다는 그런 것은 아주 뭐 쉽습니다.

나는 부산에 교회가 그렇츰 큰 교회가 없다 말을 들었는데 가속도로 어떻게 해 가지고서 지금 모두 뭐 사오천, 사오천 명 교인들이 다 모인다고 이렇게 말을 들었습니다. 또 서울에는 모두 다 뭐 인제 몇만 명 모이는 교회가 많답니다.

그라고 ○○○ 중앙교회는 이십오만 명이 모인답니다.

이러니까 굉장히 모이는데, 이러니까 우리가 사람 모여서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마는서도 모든 교회들이 이렇게 사람 모으는 데만 중점을 두고서 무슨 방편을 쓸까 이래서 미국에서는 여러 가지 방편을 많이 썼는데 방편 하나는, 그거 한 지금 삼십 년 됐습니다. ‘아무 날 교회로 오라. 오면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걸 너희들이 볼 것이다. 죽어서 곽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 살아나오는 걸 볼 것이다. 곽 안에 들어 벌써 송장이 돼 가지고서 있는 그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볼 것이다.’ 이러니까 그때 뭐 교인들이 굉장히 전국에서 모아들었더랍니다.

모아들었는데 널을 이래 메고서 주욱, 가운데로 주욱 갔다 왔다 이라는데 나중에 널 뚜껑을 뚝 떼니까 사람이 벌떡 일어나 나오더랍니다.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그러기 전에 이리 왔다 갔다 하기 전에 보자 송장인가 사람이 살았는가 보자 하고서 중간에 떼어 봤더라면 그만 그게 폭로가 될 것인데 다 죽은 송장으로만 모두 인식하고 있었는데 살아 나오니까 깜짝 놀랬는데 그 사람은 죽지 안한 사람이요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것 가지고 모인 일이 있었고, 또 아무 날 아무 교회 오너라, 오면은 그날는 성령이 비둘기같이 온 교회 막 날아다니는 걸 너희들이 볼 것이다 그래 해 가지고 또 한번 또 많이 모였더랍니다. 그런 일이 미국에서는 일찍부터 있었는데 우리 한국에도 지금 그것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유행하고 있는데, 이러니까 우리 총공회에 있는 목사들도 전부 성경이 가르치는 본 방편은 다 버려 버렸습니다. 어쨌든지 창기로 배신은 했습니다. 성경이 가르친 이 본 방편은 버렸고 어쨌든지 변절, 절개는 팔았습니다. 여게서 이 방편으로 목회해야 되겠다 하고서 자기네들이 했는데 이 말만 듣고서 이 방편을 쓰지를 안했습니다. 쓰지 안하고 이제는 그 방편으로 다 돌아가서 이 성경이 가르치는 방편은 다 외면하고 돌아갔기 때문에 실은 그것이 신앙적인 간음으로서 벌써 한 번 간음은 했습니다. 음행은 한 것입니다.

왜? 이 방편을 가지고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이 방편 아니고 이 방편은 이거는 못 쓰겠다, 안 되겠다 하고서 했기 때문에 이 방편 성경 방편은 배반했기 때문에 내나 그게 내나 변절하는 것이고 음행한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그런 것을 보고 오늘 오후에는 생각에 ‘모두 이러니 참 이거 아닌 줄 알면서도,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 하면서, 변할 마음은 없지마는서도 용기가 좀 떨어졌었습니다.

용기가 좀 떨어져서 이거, 이러나 과거 세대를 이래 쭈욱 열거해서 생각할 때에 별일이 아니고 과거에 다 있던 일이고 그라기 때문에,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많은 미혹을 받아 가지고 거게서 연단받아 자라가고 깨어나는 게 아니냐 하고서 이제 결론을 짓고 오늘밤에 여러분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또 이 성경대로의 방편을 증거해야 되겠다 해서 증거합니다.

이러니까, 듣고 이 방편대로 쓸 사람은 쓰고 이 방편을 버릴 사람은 버리고 마음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이 방편은 영원히 가도 변함이 없는 방편이고, 또 하나님께서도 이 방편을 기뻐하시고, 또 하나님의 심판에 가서도 큰 소리할 수 있는 방편인데 이 방편은 어렵기 때문에 쓰지 않습니다.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로 말하면 ‘네가 부자가 될라거든 그저 먹기 싫은 음식만 먹고, 입기 싫은 옷만 입고, 하기 싫은 일만 부지런히 하고 이렇게 해라. 그라면 네가 큰 부자는 못 될지라도 다 생활에 어려움 없이 지낼 것이다.’ 하나 그것은, 그거는 뭐 영원히 가도 그대로 하면은 아무리 수만 명이 그 방편을 쓴다고 해도 수만 명 가운데에 한 사람도 실패는 하지 않습니다. 참 튼튼한 방편입니다.

그러나, 그 방편보다는 ‘네가 사기를 해야 된다, 협잡을 해야 된다 거짓말을 해야 된다, 네가 묘를 명산에 써야 된다, 또 집을 방위 좋은 데 지어야 된다, 집에다가 주토로 부를 써 가지고서 모든 재는 다 물러가고 축복이 오도록 그렇게 다 부를 써서 붙여야 된다.’ 하는 그런 데는 사람들이 많이 **습니다.

그런 것 모양으로 예수 믿는 데도 별별 일들이 지금 나오고 있는데 과거에 벌써 불파가 지나갔습니다. 지시파가 지나갔습니다. 또 방언파가 지나갔습니다.

신유파가 지나갔습니다.

신유는 기적 행하는 것이 신유가 아니고 전부 안수 해 가지고서 어짜든지 병 낫고 이란다고 해 가지고서 그 기도실마다 모아 놓고서 ‘내가 똑 손가락으로 이라면, 병이 요라면 저 안에 있는 병이 싹 빠져 나온다, 귀신이 싹 빠져 나온다.’ 그런 이제 전부 그런 식의 신유 운동은 그것이지 우리가 하는 대로 집회 모여 가지고 하나님 말씀만 가르치고 말씀을 믿으라고 말씀 도리를 가르칠 때에 그 말씀을 믿으니까 병이 낫는 그런 것은 사도 시대에 내나 하던 것이요, 예수님이 하던 그 방식이지 신유 운동 아닙니다. 그 착각하면 안 돼요.

그러다가 지금 인제 별별 운동이 나왔는데 이 성경에서 여러분들에게 말해 주는데 이 방식을 쓰고 싶은 사람은 쓰고 쓰기 싫은 사람은 마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이 전도 방편입니다.

우리가 성령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성령 세례는 여게 안 받은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성령 세례는 다 받았습니다. 성령 세례는 받았는데 이 성령 세례는 영이 받는 게 아니고 육이 받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한 번 받으면 되는 게 아니고 성령 세례는 죽는 날까지 계속 받아야 됩니다.

이래서, 히브리서 6장에 영원한 그 터를 말씀했는데, 거게 세례를 말했습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세째번이 세례입니다. 이 세례는 죽는 날까지 세례를 계속 받아 가지고서 죽기 전에 온전한, 온전한 완전함을 이루어야 됩니다.

온전함을 이루어야 되기 때문에 이 성령 세례 받는 것이 이것이 우리가 전도하는 방편이요, 가정을 구원하는 방편이요, 자기를 구원하는 방편입니다.

그러면, 성령 세례를 받을려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과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야 됩니다.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야 되는데 성령 세례는 어떤 것이 성령 세례냐 하면은 성령이 오시면 우리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은 살고, 죽고 사는 것이 세례입니다.

그러면, 이 세례는 현실마다 받아야 합니다. 이 시간에 죽일 자를 죽이고 이 시간에 살 자가 살아야 합니다. 이 시간에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옛사람은 이 시간에 죽이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이 시간 삽니다. 그러면 그 시간 성령으로 세례받았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받는다 말은 성령이 오시면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그 일을 해 주시기 위해서 성령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은, 이 세례는 한 번 받고 마느냐? 한 번 받고 마는 게 아닙니다.

세례는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서 찾아가는 것이라. 그러니까 만나서 하나님 딱 만날 때까지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이 세례는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이 오셔서 내가 성령 세례를 받아야, 성령의 도우심으로 옛사람은 이 현실에서 죽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요 생활을 성신의 도우심을 받아 가지고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성령 세례 받고, 요 다음 시간에 성령 세례 받고, 또 그다음 시간에 성령 세례 받고, 내가 세상을 떠날 때, 주님을 만날 때까지 성령 세례를 계속 받아서 완전한 데 나아가는 것, 완전한 데 나아간다는 것은 뭐이냐? 옛사람은 완전히 다 죽여 버리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으로 완전히 사는, 완전히 죽이고 완전히 사는 여게까지 나아가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되기 때문에 이 노력은 평생 노력해야 되는 노력입니다. 평생 해야 되는 노력입니다.

이런데, 이거는 평생 이 노력,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평생 가져야 되는데 이것을 이 주석에 이것은 ‘초보를 버리고’ `신앙의 초보를 버리고' 하는 이 버릴 초보라고 이렇게 모두 다 유명한 사람들이 해석을 해 놓으니까 내가 암만 이거 이 초보가 아니라 이 여섯 가지는 초보가 아니고 이거는 영원한 터다. 다시 터를 닦지 말라 했으니까 그 터를 영원히 사용하라 했기 때문에 이거는 영원한 터인데 이 터 위에서 지금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야 된다 이 말을 암만 해도 총공회 산하에 있는 목사들도 안 믿습니다. 양성원, 학생들도 안 믿고 지금 두성두성 한답니다. 안 믿을라면 안 믿고 믿을라면 믿고 자기네들 마음대로 하지요.

그러나, 이 여섯 가지는 이것이 영원한 터입니다.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요것도 영원히, 요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요 시작에서 다시 딴 시작하지 말고 여게서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도 죽는 날까지 신앙에서 신앙으로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세례도, 이제 죽고 사는 것도 완전한 데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안수도, 하나님의 축복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축복도 계속해서 완전한 데까지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또 죽은 자의 부활도,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것도 우리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도 항상 부활 준비요, 그저 죽은 자가 부활하는 그 부활의 권능을 얻기 위해서 죽는 날까지 힘을 써야 됩니다. 또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생각하고 이 심판 준비를 영원히 해야 됩니다.

이런데 이것이, 이것은 ‘초보를 버리고’ 그러면 이 터는 버리고, 이 터는 버리고 이제 완전한 데 나아가라 했는데 나는 이걸 터로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버려야 된다 하니까 내가 심판을 받아야 될란지 그가 심판을 받아야 될란지 어느 걸 할란지 나는 아무 박사 그 무슨 명예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이제까지 암만 가르쳐놔야 안 믿습니다. 안 믿고, 그러면, 암만 말해도 박사가 한번 말하면 그만 그리 다 따라가 버려. 그래도 나로서는 깨달음이 있기 때문에 증거합니다.

이러기에,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 세례 받는다 말은 성령의 도우심으로써 죽이고 살리는 이 은혜를 받아야 됩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죽이고 살리는 이 은혜를 우리가 받는 것이 그것이 자기 가족에게 구원하는 유일한 방편이요, 자기 동리에 전도하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입술로 암만 말해도 소용 없고, 옛사람이 죽고 피와 성령과 진리로 살아난 새사람이 점점 새사람으로 계속 살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사람을 죽이고 하면 이것 보고 예수 믿습니다. 이것이 뭐이냐 하면 땅 끝까지 이르러서 나를 증거하라 하는 예수님이 모형입니다. 예수님은 원형이고 우리는 모형입니다.

이래서, 여러분들이 어짜든지 성령 세례라는 요것을 단단히 기억하십시오. 성령 세례라 말은 성령님의 도우심을 입어서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요것이 성령 세례입니다. 세례는 죽이고 사는 요것이 성령 세례요, 이러기 때문에, 로마서 6장에 보면은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해서, 연합해서 옛사람은 죽이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해 가지고서 하나님을 향하여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라고, 그것이 세례라고 똑똑히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자기 구역을 부흥시킬라고, 여기 양성원 학생들이 많지마는서도 자기가 목회 나가 가지고 교회를 부흥을 시킬라고, 또 믿지 안하는 가족들을 회개시켜서 예수님을 믿도록 할라고, 안 믿는 친구, 안 믿는 동리, 안 믿는 이웃 사람들을 예수 믿도록 하는 데에는 ‘아무날 여러분을 초대하기를 원합니다.

아무날 하루만 와 주십시요.’ 그렇게 말하는 것도 좋지마는, 그렇게 하는 것도 좋지마는 어짜든지 성령 세례 받아야 됩니다.

성령 세례 받도록 애를 써서 성령 세례 받을라고 애쓰는 요 전도 방편, 요 구원 방편은 쓰지 안하고 허영만 가지고 그런 짓만 하는데 그저 듣든지 안 듣든지 나는 증거합니다. 여러분들이 안 믿는 가족을 회개를 시킨다든지 자기 구역을 부흥을 시킨다든지 자기 그 주일학교 반을 부흥을 시킨다든지 자기 목회하는 교회를 부흥시키든지 할라고 하면은 첫째는 자기가 성령 세례 받아야 되는 여기에 전력을 기울이십시오.

성령 세례를 받을라면은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성령 세례 받을라면 주의 준 게 뭐입니까? 주의를 뭐 줬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은 그 제자들이 그때 예루살렘에 있을 때인데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있는 곳입니까, 예수님 때문에 큰 박해를 당하고 있는 위험한 곳입니까, 어떻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그 큰 환난을 만나고 있는 예루살렘입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큰 환난을 만나고 있는 예루살렘입니까 뭐입니까? 둘 중에 어느 것입니까? 왜 이 말을 하느냐? 요것도 구별을 하라 그말이오. 예수님을 위해서라고 하면은 우리 주관 행위이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한다는 것이 예수님을 해치는 일도 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박해를 당하라 말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미 예수 믿는 그 일 때문에, 성경 말씀대로 내가 살므로 인해서 박해,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당한 것, 내가 성경대로 살라고 함으로 어려움당한 것, 주일 지킬라고 함으로 어려움당한 것, 또 내가 성경에 기록한 대로 할라고 하다가서 다니엘처럼, 사드락꿔A삭 a벳느고처럼 어려움당한 것, 예수님 때문에, 진리 때문에, 신앙 생활 때문에, 계명 때문에 어려움당한 고 자리를 떠나야 된다 했습니까 고 자를 떠나지 말라 했습니까? 고 자리를 떠나지 말라 했습니다. 고 자리 안 떠나면 성령 세례 받습니다. 알겠습니까? 다니엘도 고 자리 안 떠나고 성령 세례, 성령 세례 그 전에도 받았지마는서도 더 충만한 성령 세례 받았고, 사드락꿔A삭 a벳느고도 더 충만한 성령 세례를 받았어.

요것이 여러분들 요 진리인데 요거는 배우지 안하고 요거는 뭐 거짓부리로 집어던져 버리고 이상한 호기심에만 끌리고 있기 때문에 내 제자는 아니라, 사실.

내 제자는 아니요, 내 후배는 아니요, 나 따라오는 사람은 아니요, 나는 그렇게 예수 믿지 안했어.

이러기에, 나는 예수를 이래 믿었는데 암만 중얼중얼 따라와 봐야 그게 무슨 아무 성공을 못 해. 아무 승리는 못 하고 보니까 암만 해야 목회를 못 해요, 보니까. 못 하는데 이게 이름만 따라오고 있지 실은 신앙 사상이나 방편은 따라오지 안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리 돼.

여러분들, 성령 세례 받고, 성령 세례 받고, 또 고다음에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또 성령의 권능 얻고, 그라고 나면 뭐 합니까? 성령 세례 받고, 성령의 권능 얻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너희가 권능을 받고」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되리라」 했습니다. 요게 전도 방식입니다.

요거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결론적으로 전도 방식을 줬고 유언적으로 전도 방식을 줬습니다. 요 말씀하고 승천했습니다. 요 유언이오. 안 믿는 사람들도 유언이라 하면은 지켜야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을, 주님이 세상 떠날 때 제일 중요한 말씀으로서 요 말씀을 했습니다.

그러면 전도하는 데에는, 자기 구역을 부흥을 시키는 데에는, 자기 주일학생을 부흥을 시키는 데에는, 자기 교회를 부흥을 시키는 데에는 여게 가르친 대로 말하면 어떻게 한다고요? 성령 세례, 또 성령의 권능, 얻어 가지고 뭣 해요? ‘내 증인이 되라’ `내 증인이 되라'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이 증인 아니요?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이 증인 아닙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할 것입니까? 예수님을 어떻게 소개해야 됩니까? 증인이 되라고 말하는 것은 예수님을 그들에게 말로 전해 주고 생활로 전해 주고 행동으로 전해 주고 사람으로 전해 주고 하는 그것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내 증인이 되라’ 예수님의 증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증인인데, 그러면 성령의 권능이 오면은 예수님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이 성령은 예수님의 증인 노릇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성령의 권능입니다.

성령 세례 받는 것은, 성령 세례 받는 것은, 이 성령의 권능이 와 가지고서 세례 받도록 하는 것은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금 역사하시는 성령의 권능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증인된다’ 이 권능은 무슨 권능입니까? 권능은 제자들이 활동하는 권능입니다. 알겠습니까? 처음에는 자체가 변화되는 권능, 두번째는 제자들의 생활이 변화되는 권능, 활동 그 생활이 변화되는 권능입니다.

그러면, 자체가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고 이래 되면은 이제 예수님을 증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체가 변화되다니? 세례 받는 것.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의 죽으심에 옛사람은 연합해서 죽이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연합해 가지고서 새사람은 살고, 그러면 피와 성령과 진리로 중생된 새사람은 살고, 악령 악성 악습으로 된 사람은 죽이고, 성령 오시면 이것이 세례 받는 것이니까 이 일에 전력을 기울여야 됩니다.

허영으로서, 오늘 내가 거기 가라 해서 전부 거게 대한 그 서류들을 다 받아 봤는데 그저 당신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한번 와 주십시요 이랬는데, 그래 초대한다 하니까 뭐 오는 사람들은 아마 이 전도인갑다 해도 초대한다 했으니까 그날 무슨 큰 뭐 오차를 한 잔 줄 것인가 무슨 한번 잔치를 해 줄 것인가 뭐 별별 기대를 가지고서 오기는 올 것입니다.

그런 식도 좋지마는 그 식은, 부산에서 지금 네번째 쓴다 하는데, 네번째 쓴다고 하는데 나중에 그 식을 써 가지고서 효력이 있으면은 교회마다 쓸 터이니까 부산에 있는 교회가 몇 교회나 된다고 했소? 몇 교회? 아마 육칠백 교회 안 되나요? 예? 칠백 오십 교회? 예? 팔백 오십 교회? 팔백 오십 교회가 그 방편을 한 번씩만 써도 팔백 오십 번 쓸 것입니다.

팔백 오십 번 쓰면 안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저놈들 순 사기꾼이고 협잡꾼이고 전도도 더럽고 야비하게 뭐 그날 오라 했으면 뭐 저거가 초대한다 했으면 뭐 대접을 하든지, 그래 가지고 대접을 하는 그것도 문제일 것입니다.

팔백 오십 교회가 한번씩만 써도 그 방식은 팔백 오십 번 쓰면은 그 결과로 복음에 욕이 될란지 복음에 영광이 될란지 나는 지금 말하지 않겠습니다. 나중에 결과를 보면 알 것입니다.

그러나, 너희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가 주님 때문에 주님의 진리 때문에 어떤 어려운 입장이 있어도,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a벳느고와 같은 그런 어려운 입장이 있어도 네가 후퇴하지 말고 떠나지 말고, 후퇴하지 말고 거기서 진리를 지키고 있으라 하는 요 방식과, 거기서 진리 지키고 있으면 성령이 오셔 가지고서 너를 도울 터이니까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요 일에 전력을 기울여라 요 일과, 또, 그라고 난 다음에는 너희들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네 사욕에 네 주장 네 욕심 그런 것 다 포기하고 성령의 권능 받아서 네가 예수님화돼 가지고서 예수님 모양 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 네 생활이 예수님화돼 가지고 복음 전하는 이 일 해라.

그러면, 자기가 땅에 있는 욕심 다 버려 버리고,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은 아버지가 자기 권한에 두었기 때문에 너희들이 알 것도 아니다’ 이것도 말할 때에 거기에는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했는데 왜 엉뚱이같이 그렇게 떼다 붙여서 해석을 억해를 하는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소원이 없어. 로마의 식민지로서 있어 가지고서 경제 타격과 모든 타격이 있기 때문에 어짜든지 그 나라가 해방 되기를, 독립되기를 원하는 것이 온 백성이 고 하나만이 소원이였습니다. 고 하나만이 소원이었어.

메시야가 오시면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해서 다 독립 국가뿐 아니라 세계 강대국을 만든다 이라니까 그들은 그래 생각하고, 그들의 소원은 전 소원이 그것뿐이었소. 그러기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는 것은 저희들의 소원을 말한 거라.

우리 소원이 있는데 우리 소원이 이때는 지금 우리 소원이 이루어집니까 할 때에, 우리 소원이 지금 이때는 우리 소원이 이루어지겠습니까 하니까 너거 소원은 아버지가 뜻대로 하실 것이니까 너거는 알 바 아니다, 그 너거 소원에 대해서는 상관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고 다만 성령의 권능 받아 가지고서 내 증인 될 수 있도록, 내 증인 될 수 있도록만 너희들이 해라 이것만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의 권능이 오면은 증인이 될 수 있다니? 생활을 말하는 것인데,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해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났으니까 그걸 증거할랍니까? 그걸 증거할랍니까? 그러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가서 새로 나오겠습니까? 동정녀의 뱃속에서 나오겠습니까? 예수님이 탄생한 것을 그라면 여러분들이 예수님 탄생한 것을 그들에게 이렇게 탄생했다고서 보여 줄랍니까? 그거는 말로 증거할 수밖에 없어.

다만 예수님 증거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는가? 그분은 어떤 분이었는가? 예수님은 도성 인신하신 분이셨는데 그분은 나를 보내신 아버지로 인하여 산다고, 예수님은 보내신 아버지만 상대했습니다. 요거 잘 못 들으면 귀에 안 들어가.

아버지만 상대했어. 예수님은 땅위에 살 때에 뭐 아무것도 상대하지 안했습니다.

천상 천하에 아무것도 상대하지 안하고 아버지만 상대했습니다. 아버지만 상대했어.

이러니까,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거와같이 나도 너희들을 사랑하였으니 내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들이 내 계명을 지켜 내 사랑 안에 거하라.

그러면, 예수님은 원형이고 우리는 모형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만 상대하고 아버지 외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만 짝으로 삼았어. 아버지만 상대했어.

아버지만 짝으로서 아버지만 짝으로, 아버지만 항상 보고, 아버지만 항상 생각하고, 아버지만 바라보고, 아버지만 의지하고, 아버지만 바라봤지 아버지 외 아무것도 천상 천하에 아무것도 바라보지 안했어.

그러면, 우리는 뭘 어떻게 해야 되겠소?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봅니다. 아무것도 안 바라보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아무것도 안 바라보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또, 예수님은 그러면 당신은 어쨌습니까? 당신은 어쨌습니까? 당신은 아버지에게 완전히 맡겼습니다. 완전히 맡겼어. 당신 자체도 맡겼소, 당신의 생사도 맡겼소, 당신의 의식주도 맡겼소, 당신의 성패도 맡겼소.

예수님은 요렇게 아버지에게 맡겼기 때문에 우리는 요렇게 요 네 가지를 주님에게 맡겨야 됩니다. 성령의 권능입니다. 성령의 권능이 오면 이 맡깁니다.

우리가 이 맡기는 것이 권능이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상대하는 것이 이게 권능입니다. 딴 권능이 아니라, 주님만 상대하는 게 이게 권능이라. 딴 권능이 아니라.주님만 상대하고, 나와 내 생사와 내 의식주와 내 성공은 완전히 아버지에게 다 맡겨 버렸어.

이 모양으로 나는 이제 주님만 상대로 삼고 내 자체도, 내 생사도, 내 의식주도, 내 사업의 성공도 주님에게 다 맡기는 요 사람, 그러면 이 두 가지 안 했소? 하나는 뭐 했는가? 그라면 그래 맡기고 당신은 뭐 했는가? 그러면 아버지에게 다 맡겨 버렸으면 아버지만 상대하고 주님은 무슨 일 했는가?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 고 외에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행동은 아버지 시키시는 대로 하는 것 고것뿐이었습니다. 요게 성령의 권능이오.

그러면, 이렇게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성령 세례 받아라’ 그다음에 뭐입니까? ‘네 소원 다 치워 버리고 성령의 권능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내 증인이 되도록, 예수는 이렇다, 예수는 이렇다고 보여 줄 수 있는 이 사람 되라.’ 이 전도 방식이 부족합니까? 이 방식이 혹 이 년 가면, 이 년 가면 또 새 방식 만들어야 될까요, 이 년 유지될까요, 이 년 유지할 만합니까? 예? 이 방식이 이 년 유지할 만하요? 십 년 유지할 만하요? 백 년, 천 년, 만 년이라면 만 년 유지하면 모자라겠소, 억만 년이라도 유지될 수 있습니까, 어떻습니까? 억만 년이라도 이 방편은 천 년, 만 년 유지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 손들어 보십시오.

녜, 이렇습니다.

그러면, 그 방편 앞으로 팔백 오십 교회가 한 번씩만 쓰면은 이 부산 시민들은 뭐라고 말할까요? 부산 시민들이 교회를 어떻게 볼까요, 어떻게 생각할까요? 팔백 오십 교회가 예루살렘 떠나지 말고 성령 세례 받아라. 네 소원과 주장 포기하고 성령의 권능 받아서 예수님의 증인되라 하는 이 방편은 팔백 오십 교회가 다 쓰면 모자랄까요, 나중에 욕 얻어 먹겠습니까, 야비하다 하겠습니까, 사기꾼이라 하겠습니까, 협잡꾼이라 하겠습니까, 뭐라 하겠소? 왜 성경이 가르치는 원만한 방편을 왜 버리고 가느냐? 네가 정조를 파는 음행했다. 너는 전도에 음행했어. 복음 전도에 너는 음행했어. 그들은 말하지 안해요. 그들은 모르기 때문에 그리 하지마는서도 여게서 성경이 가르치는 완전한 방편을 배워 놓고 ‘이거는 못쓰니까’ 갔으니까 그거는 거게서 완전한 방편과 결합을 했기 때문에 정조를 판 창기와 같이 변절했지. 변절한 값이 있어.

여러분들, 똑똑히 알아요.

세례는 한 번만 받아요 죽는 날까지 계속 받아야 되요? 세례는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해석했으니 착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은 하루만 해요 죽는 날까지 해야 되요? 죽는 날까지 해야 돼요.

그러면 우리가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옛사람은 죽이고 새사람으로 사는 이 일이 하루에 끝납니까 죽는 날까지 계속해야 됩니까? 계속해야 돼요.

성령의 권능이 오면 나는 주님만 상대하고, 원형이신 주님이 그랬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너희들은 나로 인하여 살리라 했기 때문에. 주님과 다른 것은 주님은 아버지로 인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으로 인하여 살아야 된다 말이오. 이러기 때문에 주님은 아버지만 상대했지마는 우리는 주님만 상대해. 주님 한 분만 상대하는 이 일이, 무슨 하루만 하고 말 일인가요? 하루 하면 끝이 날 일인가요? 사람들이 못나도 따져보면 주님 외에 저는 이것 보고 살고 저것 보고 살고 제가 바라보고 상대하고 사는 것이 수십도 수백도 넘습니다. 주님 한 분 외에는 아무것도 몰라. ‘저 남자 저거는 돈밖에 몰라. 죽어도 살아도 자다가도 돈 하면 퍼뜩 일어나. 돈밖에 몰라.’ 하는 것 모양으로 주님 한 분밖에 모르는 요 사람이 되는 그 사람이 전도합니다.

보니까 저거는 죽음에도 ‘야, 죽는다.’ 죽는다 해도 죽음도 안 보이고 주님 한 분밖에 안 봐. 주님 한 분밖에. ‘너 죽는다. 어짤래?’ 하니까 ‘너 생명 어짤래?' `그거야 주님에게 맡겨 놨기 때문에 주님이 다 맡아 하셔’ 그때 그럴 때에 그 생명을 주님에게 맡겨 놓은 그것을 보고 천인 만인이 보면은 회개하고 다 전도를 받습니다.

제가 뭐 천 소리 만 소리 하고서 온갖 열변 웅변을 다 토해서 부흥사노릇을 했다 할지라도 주로 인해서 죽음이 왔을 때에 그때에 자기 생명을 주님에게 맡기지 못하고 제 수단 방법 가지고서 생명을 구출하려 하는 그자가 뭐 할 거라? 신사 참배가 왔을 때 생명을 제가 거머쥐고 날뛴 그자가 뭐 지금 낯이 뻔뻔스러워 그렇지 뭐 낯을 들고서 복음을 전할 거라? 회개하고 나는 죄인이라, 이거 다시 한번 하겠다 하고 회개하는 마음 가지고 할 수는 있지마는서, 회개하면 과거에 나는 이렇던 자들이라 하는 그걸 알고서 그것을 전감을 좀 생각하고 전해야지.

주님만 바라봐. 자체도 다 맡겼어, 생사도 다 맡겼어, 의식주도 다 맡겼어. 저거는 뭐 어짜는가? ‘나는 주님 시키시는 대로 하면 주님이 밥 먹여 줘.’ 이것이,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이 그분을 붙들고 일합니다! 인간들의 수단 방법으로 암만 주 모아 봤자 아버지가 모으는 것만 못할 거요! 양성원 학생들, 허영과 허욕으로 하면은 아예 여기 배워 봤자 소용 없어. 암만 배워도 그런 거는 여게 배우나 저게 배우나 한가지인데, 세상에 다른 데서 배울 수 없는 것 여기 배우고 다른 데서 할 수 없는 방편 취하는 그것 때문에 여기 오는 것이지 그리 안 하면 여기 배워 봤자 소용없어. 아무것도 볼 것 없어.

여러분들, 거게서 뭐 무슨 과학을 공부하고, 뭐 조직 신학을 공부하고, 뭐교회사 교리사를 공부하고, 뭐 성경 신학을 공부하고 암만 해 봐도 이제 앞으로 환난이나 핍박이나 어데서든지 승리 할 수 있는 요 생명법, 생명력 요것을 잡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요거 잡지 못하면 헛일이라.

‘다른 것 있다. 뭐 이 다른 것 있다, 이게 다른 것 있다.’ 백지 다른 데는 지금 현실에 막 잘 먹고 잘 사는 이것만 말하고 있는데 백지 환난 온다 자꾸 뭐 말한다 하는 다른 것 있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헛일입니다.

여러분들, 벌써 내가 들으니까 양성원에서도 학생들이고 뭐이고 막 수군거린대요.

수군거려서 이렇다고서. 내가 볼 때에 참 비참하고 가련합니다. 암만 배워 봤자 제 복음은 아니라. 이러니까 앞으로 환난 오면은 그게 다 뭐이 될 것인지? 다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그뭐, 환난에서 정금같이 솟아날 그런 인물이 있나 참 의문입니다.

예수님은 세 가지 했어. 우리도 세 가지 해야 돼. 그게 성신의 권능이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 예수님 보여 줄 수 있어.

어떻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만 바라봤다’ 예수님만 바라보는 사람 보여 주고, 예수님에게 모든 것 맡겨 놓고 사는 사람 보여 주고, 예수님 시키시는 대로만 복종하는 그게 제 생활이라. 다른 생활 아무것도 없어. 세 가지만이라.

이랄라면, 성령의 권능 받을라면 뭐 해야 돼요? 성령의 권능 받을라면 뭣 해야 돼요? 양성원 학생들 대답해 봐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의 권능 받을라면 뭐 해야 돼요? 저 ○ 조사님 한번 말해 봐. 네 소원은 아버지의 권한에 매였기 때문에 그런 것은 네게는 권리 없어. 아예 너는 상관하지 말고, 그거 상관하지 말아야 돼. 알겠습니까? 그래야 성령의 권능 받아요.

또, 성령 세례 받는 데는 어째야 돼요? 요 변동을 못 해. 요 변동 못 하게, 이 세상에 과학으로 딱 틀을 짜서 놓은 것 모양으로 꽉 짜여 있기 때문에 이래도 저래도 되는 것 아니라. 요 성경에 딱 판박이로 딱 해 놨기 때문에 변동을 못 해.

성령 세례는 요 방식 외에 다른 방식이 없어. 성령의 권능 받는 데는 이 방식 외에 다른 방식이 없어.

다 예수 바로 믿지 못하면 다 헛일입니다. 다 쭉덩이오.

기본구원은 교회 안 나와도 됩니다. 기본구원은 교회 안 나와도 돼요. 여러분들 벌써 나온 것만 해도 많아요. 예수를 구주로만 믿으면 돼요. 구주로만 믿으면 기본구원은 꼭 같아요. 사도 바울의 구원이나 아브라함 구원이나 우리 구원이나 꼭 같아요, 뭐. 기본구원은 꼭 같기 때문에 그거는 예배당에 한 번도 안 나와도 좋아요. 꼭 같아요.

예배당에 나와서 이라는 것은 하늘나라 가 가지고서 영광을 얻을라고, 권위를 얻을라고, 모든 만물들에게 환영을 받을라고, 인정을 받을라고, 실력을 갖출라고, 그 나라에서 영광 있고 부강스럽게 살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될라고, 모든 사람들이 사모하는 사람이 될라고 그거 할라고 예수 믿지 하늘나라 가기 위해 예수 믿는 줄 압니까? 예수를 끝까지 믿어야 하늘나라 간다고 그래 모두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거는 기본구원이기 때문에 힘쓸 필요가 없어. 다만 하늘나라의 백성과 백성의 차이점, 그 수치스러운 것을 벗을라고 예수 믿는 것입니다.
선지자선교회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2022.07.04-5596 김반석 2022.07.04
공지 백영희와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2.07.04
공지 순생 순교의 종 백영희 목사님 [1] 선지자 2021.02.22
공지 법전과 주해서 · 성경과 백영희목회설교록 김반석 2020.05.30
공지 백영희목사님의 ‘목회설교록’에 관한 교훈 모음집 선지자 2019.12.18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자료 1,2,3차 통계표 [3] 김반석 2015.12.20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1] 선지자 2015.10.19
공지 백영희목회설교록 출간 백영희목회연구소 선지자 2015.10.16
543 성령감화가 오는 순서와 증거/ 베드로후서 1장 16절-19절/ 880210수야 선지자 2015.11.06
542 성령과 물과 피/ 야고보고 1장 13절-15절/ 811110화새 선지자 2015.11.06
541 성령과 악령 영접 법/ 창세기 2장 16절-17절/ 1988. 8. 10. 오전집회. 선지자 2015.11.06
540 성령과 악령을 영접하는 방법/ 로마서 8장 6절/ 880904주후 선지자 2015.11.06
539 성령받는 비결/ 사도행전 8장 1절-24절/ 860314금야 선지자 2015.11.06
» 성령세례-전도 방편/ 사도행전 1장 1절-9절/ 860611수야 선지자 2015.11.06
537 성령 안에서 기도/ 에베소서 6장 18절 상반절/ 880708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6
536 성령을 소멸하는 것/ 출애굽기 33장 1절-11절/ 850629토새 선지자 2015.11.06
535 성령의 권능/ 사도행전 1장 8절-9절/ 860615주전 선지자 2015.11.06
534 성령의 권능 받아 세 가지 사람/ 사도행전 6장 1절-8절/ 860608주후 선지자 2015.11.06
533 성령의 능력/ 고린도전서 2장 1절-5절/ 890711화새 선지자 2015.11.06
532 성령의 방언 역사/ 사도행전 8장 14절-23절/ 860315토새 선지자 2015.11.06
531 성령의 사람의 소원/ 요한일서 3장 1절-3절/ 800309주전 선지자 2015.11.06
530 성령의 사람의 소원/ 빌립보서 3장 11절/ 800406주후 선지자 2015.11.06
529 성령의 세례/ 갈라디아서 5장 24절-26절/ 861207주후 선지자 2015.11.06
528 성령이 충만해서 심방을/ 마태복음 24장 45절/ 800321 지권찰회 선지자 2015.11.06
527 성령훼방죄/ 히브리서 6장 1절-2절/ 860527화새 선지자 2015.11.06
526 성령훼방죄/ 마태복음 12장 28절-37절/ 880105교역자회 선지자 2015.11.06
525 성막/ 고린도전서 3장 16절-17절/ 800427주후 선지자 2015.11.06
524 성수주일/ 이사야 58장 13절-14절/ 791221금새 선지자 201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