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악령을 영접하는 방법

 

1988. 9. 4. 주후.

 

본문: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여기에 '영의 생각은' 한 이 영은 사람의 영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을 가리켜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은 우리 몸은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라야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그 말은 심신으로 되어 있는  육의 생각이라 하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을 가리켜서 육신의 생각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우리 기독자들은 사람의 생각 곧 자기 생각으로 살 수도 있고 영의 생각  곧 성령의 생각 하나님의 생각으로 살 수도 있습니다. 우리 현실에서 사람의 생각  곧 자기 생각으로 살 수도 있고 영의 생각 곧 하나님의 생각으로도 살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살면 죽고 망하는 것이요 영 곧 하나님의 생각으로 살면  생명과 평안이 됩니다. 생명이 된다 말은 하나님과 연결되어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말하고 평안이라는 것은 모든 물질계나 영세에 모든 존재들과 접하는  그 모든 것이 다 행복되는 것을 가리켜서 말씀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영 구원은 얻어 가지고 있고 육의 구원도 법적으로는 얻어  가지고 있는데 요 현실에서 얻어 놓은 그 구원을 제가 믿지 안하고 포기하면 그  시간 산 것은 영원한 사망이 되고 현실에 온갖 지장과 방해와 대적이 있어도  주님이 대속해 주신 이 사죄, 칭의, 화친을 벗지 안하면 그는 영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현실 현실에서 자기의 금생과 내세의 영육의 행복과  영육의 멸망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시간 중에 현실이라는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사람의 전 생활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몸은 따라 움직이고 몸이 움직인 대로  모든 사물들은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마음이 잘못 움직이면 그 몸은 마음 따라  잘못 움직이게 되고 또 몸이 잘못 움직이면 그가 접촉한 일이나 물건이나 그  모든 것은 잘못되는 것입니다. 잘 못 되는 것은 죄를 말하고 잘되는 것은 의롭게  옳게 바르게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에게 있는 무슨 일이나 물건이나 그런 것을 단속하는  것보다 자기 몸의 행동을 단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몸의 행동을 아무리  잘할라고 단속하는 것보다도 자기 마음을 단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은  마치 도구와 같습니다. 우리 마음이 무슨 주체성이 있어 가지고 움직이는 것  아니고 마음의 주격은 영입니다. 영인데 그 마음을 성령이 주격할 수도 있고  악령이 주격으로 주장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세상  흥망성쇠가 다 마음의 움직임에서 좌우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을 단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은 독립성을 가지고 살 수 없는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은 악령의  지배를 받든지 성령의 지배를 받든지 둘 중에 하나의 지배를 받아야만 하는 항상  의속적의 존재고 자주성이나 독립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이렇게 독립성을 가지지 못하고 어데서든지 끌려서  살아야 되는 존재로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지을 때는 자기 주격인  영에게 끌려서 살도록 지었는데 배암이 와서 유혹한 이후로 사람의 마음들이 곧  자기 영, 곧 성령과 이렇게 하나되어 끌려 살 수도 있고 악령에게 끌려서 살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영은 중생됐기 때문에 중생된 영은 성령과 찰나도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이러기에 성경에 성령이 우리 영으로 더불어 항상 함께 움직인다고 로마서 8장에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자기 영과 하나되어 움직이는 것이 곧 성령과  하나되어 움직이는 것이요 성령과 함께 움직이지 않는 것이 자기 중생된 영과  함께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독립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성령과 하나가 안 될 때에는 반드시 악령과 하나되고 또 악령과 하나 안 됐을  때에는 성령과 하나이지 악령과 성령 어데에도 속하지 안하고 제 마음이 독립할  수는 절대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나는 뭐 성령의 인도도 받지 안하고 악령의 인도도 받지 안하고 내 맘대로 내  마음이 자주적으로 독립적으로 이렇게 하겠다는 그 사람은 벌써 마귀에게 끌려서  아무런 지척을 지각적으로 조금도 분별하지 못하는 완전히 마귀 것이 되어져  있으면서 하는 말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악령에게 끌리면 어찌 되며 성령에 끌리면 어찌 되느냐? 그  마음이 악령에게 끌려지면 끝없이 어두워지고 점점 삐뚤어집니다. 성령에게  끌리면 끝없이 밝아지고 바로 돼지고 옳게 되어지고 깨끗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마음이 성령과 하나되면 금생에서 만이 아니고 내세에도 또 더  밝아지고 더 깨끗해지고 더 지혜로워져서 하나님의 전지의 지혜와 꼭 같이  동하고 정할 수 있는 데까지 자라갈 수 있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또  악령으로 더불어 하나되면 그는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타면서도 제가 잘했다고  하고 옳다고 생각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은 그들이 유황불 구렁텅이에 가서  타면서도 하나님 원망하고 저희들이 돌이켜 회개할 줄을 모른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래서 홍포 입은 부자는 그는 아무래도 택한 자인 것이 많이 보인다 하는 그  말은 중생된 영의 충격을, 그 교훈을, 그 진리를 접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의  마음은 회개라 하는 그것을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데 홍포 입은 부자는 회개를  그가 원했다 그렇게 성경에 나타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성령을 영접해서 자기 마음을 성령이 주관하시면 자기 마음은  끝없이 한없이 옳고 바르고 깨끗하고 모든 것이 참돼집니다. 그러면 그 몸도  따라서 점점 옳은 행위 바른 행위 참된 행위로 점점 깨끗해지고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만일 그 마음을 악령이 주장하게 되면은 그 마음도 끝없이 점점  삐뚤어지고 꺼꾸로 돼집니다. 그러면 꺼꾸로 되어지면 얼마나 꺼꾸로 돼지느냐?  끝이 없이 정반대로 삐뚤어지게 되어지고 그라면 그 마음에게 피동되는 그  몸뚱이도 끝없이 탈선 그 모든 그 이탈 죄악의 행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시조 때도 그 해와와 아담이 하나님을 따라서 움직일 때에는 그들의  마음이 아주 밝고 옳고 명철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피조물의 이름을 누가  지었느냐 하면은 아담이 지었습니다. 아담이 지은 대로 피조물들의 이름은 영원히  그것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배암의 유혹을 받아서 배암을, 배암은 그때  마귀가 배암을 입고 왔기 때문에 겉은 배암이요 속은 악령입니다. 악령의 그  유혹을 해와의 마음과 아담의 마음에 용납된 후에는 그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질됐느냐? 마귀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 그들의 마음은 무한히 변질됐습니다.

얼마나 변질되었느냐?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는 먹으면 사망한다고 이렇게 말씀을  했는데 악령이 그들 마음에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그들의 마음이 정반대가  되어져서 천상 천하에 선악과 이것만 먹으면 내가 성공된다 그렇게 생각이  돼졌습니다.

 그러면, 영계나 물질계에 있어서 그 해와와 아담에게 제일 해독이 큰 것이  선악과였는데 그 선악과 먹으면 자자손손이 망하게 되는 것인데 해독 제일 많은  것이 선악과였는데 마귀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천상 천하에 선악과보다  저희들에게 더 유익되게 할 것이 없다고 정 꺼꾸로 판정이 되어져서 그 선악과를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도 안 먹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래서 거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로울만침도 해서 그렇게 그 탐욕이 생겨져  가지고서 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전에도 약간 말했지마는서도 오후에 이제 결론적으로 말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의 언행심사가 의가 되고 싶으냐 죄가 되고 싶으냐? 죄가 되고 싶다  말은 고 삐뚤어진 것이 죄입니다. 의는 바르고 음은 것이 의입니다. 그러면 제  언행심사가 바로 옳게 되기를 원하느냐 삐뚤어지기를 원하느냐? 삐뚤어진 댓가는  사망입니다. 옳고 바른 것의 댓가는 생명과 평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에 마귀가 들어오면 우리 마음은 뭐 얼마나 삐뚤어지느냐?  정반대의 백팔십도의 삐뚤어짐이 됩니다. 정반대가 됩니다. 이러니까 죽는 것은  사는 것으로 사는 것은 죽는 것으로, 망하는 것은 흥하는 것으로 흥하는 것은  망하는 것으로 정반대로 모든 것이 비판되고 평가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사람이  보면은 그는 순전히 백프로 망하는 길만 자꾸 취해서 자멸 자살을 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우리가 다 봅니다.

 이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은 성령의 인도를 하나도 받지 아니한 사람들은  세상에서 불택자의 생활들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하나도 받지 안한 사람들의 그  생애에는 그 생애에 전체에 털끝만한 것도 산 것은 없고 완전히 전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전멸이 되는데 전멸되는 행위를 할 때에는 다 그들은 옳다 바르다  참되다 이래야 내가 복되겠다 하는 그것을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해서 했는데  그것이 다 사망이 되고야 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기가 싫으면은 악령을 자기 마음에 용납지 말아서  악령이 자기 마음을 주장하지 못하도록 악령을 자기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멸망을 피하는 방법입니다. 또 자기가 생명과 평강 생명은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생명이요 평안이라 하는 것은 모든 피조물과 자기와 하나 되어서  함께 동하고 정하는 한편되는 이 화평을 가지는 것을 가리켜서 평안이라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으로 더불어 평안하고 피조물로 더불어 평안한 그 평안을  취 할라고 하면 자기 마음을 성령이 주관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육 금생 내세에 온갖 평강과 행복의 성공의 이 모든 존영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거기에 원인이 되어 있고 모든 멸망은 악령의 인도를 받는  그것이 원인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에 악령을 용납지 못하도록  자기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모든 멸망을 막는 일이 되고 성령을  자기 마음 가운데에 오시도록 영접하는 것이 모든 것에 성공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 마음 가운데 성령이 와서 계실 때에 이 성령을 쫓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그 방법이 있습니다. 또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악령을 쫓아내는  유일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지금 말할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악령을 쫓아내는 방법이 있고 성령을 쫓아내는 방법이 있고 악령을  자기 마음에 영접하는 방법이 있고 성령을 자기 마음에 영접하는 방법이 있는  요것을 지금 오후에 증거할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십 번 수백 번 읽었지마는서도 그것을 그저 무심하고 있고 또 그  심령이 어둡기 때문에 악령이 속에 들어 있을 때에는 성경을 보면 정 꺼꾸로  깨달아집니다. 이래서 악령은 성경을 틀렸다 하고 성령은 이 세상 인간 지식을  틀렸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인간 지식은 틀렸기 때문에 인간 지식에게는  복종하면 안 된다. 인간 지식은 이용을 해야 되지 사용을 해야 되지 그 인간  지식은 네가 이용할 이용물이지 그것에게 복종할 만한 네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는 받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합니다. 이러기 때문에 세상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을 반대하고 하나님의 지식은 세상 지식을 반대해서 정 반대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어떤 그 사건이 있을 때에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느냐 할 때에  성령의 생각으로 처리하면 하나님의 처리와 꼭 같은 처리 올바른 의로운 처리가  됩니다. 그 사건 있을 때에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처리하지 안하고 악령의 인도를  받아서 처리하면 세상 사람들은 잘됐다 하는데 하나님은 틀렸다 네가 망한다  이렇게 결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제는, 다 그만하면 알았으니까. 우리가 악령을 자기 마음에 영접하는  것은 멸망이요 성령을 영접하는 것은 생명과 평강이라 요것을 단단히 잡고 또  악령과 성령을 쫓아내는 방법은 어떠하냐? 쫓아내는 방법도 우리가 또 배워야  되겠습니다. 악령과 죄는 하나입니다. 악령과 죄는 하나입니다. 사람들이 악령은  싫어하지마는서도 죄는 예사롭게 생각하고 용납을 합니다. 악령이 들어오면,  악령이 처음에는 들어올래야 들어올 수가 없고 죄가 들어오면 죄를 따라서  악령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악령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방법은 뭐인가  하니 죄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방법입니다. 또 성령을 들어오도록 영접하는  방법은 뭐인고 하니 의를 자기가 자기 마음 가운데에 영접하면 그 의를 따라서  성령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를 내가 내 마음에 영접하나 의를 영접하나 하는 그 둘로써  악령 영접 성령 영접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죄를 영접하다니 무슨  소리인가? 그것은 자기 마음에 안된 생각, 혹 미움이나 혹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욕심이나, 혹 하나님 법을 어기는 생각이나, 하나님 법을 어긴 성질이나,  하나님을 어겨진 말이나, 하나님에 어겨진 것을 보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어겨진 손의 움직임이나, 발의 움직임이나, 하나님 법에 틀린 그 탐심이나  어쨌든지 하나님 법에 어겨진 손이나 눈이나 귀나 입이나 발이나 마음이나  생각이나 하나님 법에 위반된 것을 내가 용납할 때에 그것을 내가 영접할 때  그것을 내가 가졌을 때 즉시 그를 통해서 마귀는 들어옵니다.

 만일 그것을 버리지 아니하고 마귀를 쫓아낼라 하면은 마귀는 안 나갑니다.

하나님이 나가라고 해도 못 쫓아냅니다. 하나님이 나가라고 해도 마귀는 안  나갑니다. 왜? '하나님이여 내것이 여게 있고 이것이 내 집인데 뭣 때문에  하나님이 나가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나가라 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자신이 죄를 물리치기 전에 마귀를 쫓아내는 법이 없습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법은 삐뚤어진 거, 하나님 말씀에 삐뚤어진 걸 자기가 회개해서  이건 내가 잘못됐다, 이거 내가 회개한다, 물리친다, 그것을 내놓고 할 때에  마귀란 놈은 거게 견뎌 배길 도리가 없어서 저는 필연적으로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옳은 생각, 옳은 마음 옳은 뜻, 소원, 옳은 성질, 옳은 비판,  옳은 평가, 옳은 주장, 옳은 계획 옳은 모든 움직임, 말이나 눈이나 그 모든 것을  성경 말씀대로 옳은 그 의를 행할 때에 성령은 즉시 같이 들어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의와 성령은 동행하고 죄와 마귀는 동행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를 우리 마음에서 물리치면 마귀는 물러가고 의를 우리  마음에 용납하면 성령은 우리 마음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성령이 들어오시면  우리는 무한한 전지의 지혜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또 악령이 우리에게  들어오면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정반대인 완전 전적 사망이요 삐뚤어진 그것을  악령이 우리에게 가르쳐서 그것을 우리가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삐뚤어진 자는 큰 것에도 삐뚤어진다 하는 그 말은 우리는 그  사소한 잘못된 그것을 예사로 생각하는데 사소한 잘못된 고 조그만한 아주  먼지같은 잘못된 그것이 예사롭게 여기는 그게 들어옴으로 마귀 그놈이 들어와  가지고는 그 다음에 참 왕창 상상도 못할 큰 재를 저질러서 큰 삐뚤어짐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죄되는 것을 물리치는 것이  마귀를 물리치는 유일한 법칙이요 자기 마음에 의를 생각하는 것, 의롭게 의로운  것을 생각하는 것, 자기가 무슨 일도 말해도, 그 사람은 내게 대해서 미운 일을  많이 합니다. 그럴 때에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니까 내가 그 사람 미워하는 것이  정당법이지마는서도 하나님 법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할 때  '네가 나를 미워하니 나도 너를 미워한다' 할 때에 그때에 그로 인해서 마귀가  들어와서 자기 마음도 나중에 삐뚤어져 가지고서 사망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가 나를 원수같이 대적할 때에 나는 그때에 하나님 말씀대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그를 사랑함으로써 내가 잘못된 거 있으면 내가 고침으로  그로 하여금 오해 않도록 하고 또 내가 잘못했으면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고치고 잘못된 게 없으면 그 사람 위해서 기도하고 하나님에 보실 때에  옳은 생각을 가지면은 그때에 성령이 들어가서 그 사람을 점점 옳은 생각을  가지게 됐기 때문에 처음에는 억지로 원수를 사랑했는데 성령이 들어가고 나니까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랑이 더 커지고 커져서 억지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이거는  필연적으로 사랑해야 되겠다. 나중에 가서 그 원수를 자기의 목숨까지 다 주어서  사랑해서 그를 기어코라도 사망에서 구출하고야 내는 것이 그것이 성령의 역사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사람되어서 땅위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고로 오후에는, 혹은 뭐 지나가서 얘기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자꾸  얘기하니까 앉아서 다른 사람을 훼방했습니다. 훼방하는데 나는 훼방하지 안해도  그 사람 훼방할 때에 반대하면 그 사람이 섭섭해 그럴 터이니까 그 훼방하는데  부득이 동참하지 안할 수 없고 이러니까 훼방하는데 그저 '안 그렇다' 이래 하면  그만 하나님이 자기 속에 들어 오지마는서도 그 소리를 못하니까 그저  훼방하는데 그저 머리만 끄떡끄떡하고 슬그머니 참가를 했다 말이오. 참가했으면  벌써 삐뚤어진 것이 발을 들여놨습니다. 그러면 벌써 마귀는 발을 들여놓고  날뜁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꾸 죄는 죄를 내어서 자꾸 죄가 장성해지고 죄가 많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람을 접할 때에 그 사람이 의를 나에게 끼쳐서 그 사람을  접하고 보니까 나에게 죄가 물러가고 의가 들어오게 되면 점점 의인이 됩니다.

이제 의가 물러가고 죄가 들어오게 되면은 점점 마귀가 들어오게 됩니다. 마귀가  들어오면 우리는 백 프로 삐뚤어진 일만 하게 됩니다. 성령이 들어오면은 백프로  옳은 일만 하게 됩니다. 그 성령은 의와 동행하고 마귀는 죄와 동행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마귀를 영접지 안할라 하지마는서도 사소한 죄 그거야 용납해  봤자 뭐 그 말 한 마디 실수하는 거 생각 하나 또 뜻 하나 그런 거는 사소한  걸로 알지마는서도 죄는 사소한 죄나 뭉텅이 죄나 꼭 같습니다. 살인죄나, 혹 그래  성경에 말하기를 미워하는 거는 살인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사람 미워하는 죄나  살인이나 꼭 같습니다. 또 조그만한 시기하는 그런 것도 조그만해도 살짝  시기하는 그것이나 살인죄나 꼭 같습니다. 죄는 크고 작은 것이 없고 죄의 종류는  죄의 종류라 의의 종류는 의의 종류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죄의 종류를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고거 용납하면은 뒤에  마귀가 들어오고 난 다음에는 큰 죄악이 이제 건설되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욕심 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하는 것은 자기가 성령의 소욕으로 살지 안하고  자기 사욕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사욕 그거야 뭐 나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소욕 아니고 자기 욕심, 인간 욕심을 가지게 되면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욕심이 잉태, 성령의 소욕으로 살지 안하고 인간 자기 사사로의 욕심을 살게  되면은 귀신이 들어오게 되기 때문에 욕심이 속에 들어오면은 죄가 나온다, 죄를  이제 속에 생기게 된다. 죄가 생기게 되는데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 그것은  죄가 장성하다 말은 삐뚤어진 것이 많게 되면은 죽고 망하는 결과를 내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래서 오늘 오후에는, 그 죄는 큰 죄나 작은 죄 또 의는 큰 의나 작은 의  하나라는 것, 또 의와 성령과 하나 또 죄와 마귀와 하나, 죄가 들어오면은 우리  마음에 모든 견해와 비판과 평가가 정반대, 옳은 것에 정반대에 정삐뚤어진 것이  되어지고 성령이 오시면 차차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해 가지고서 모든 것을 옳고  바르게 한다 하는 요것을 기억하고, 자기 구원을 이루고 싶고 자기가 참  세상에서도 복을 받아서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나게 되고 민족 위에 뛰어나는,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는 그 사람이 되고자 하고 하늘나라도 영광의 구원이  되고자 하고 그 죽음 없는 영광의 승리의 세계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이 삐뚤어진 것에 조심해야 됩니다. 삐뚤어진 걸 조심. 죄가 뭐이냐?  삐뚤어진 것입니다. 죄라 말은 삐뚤어진 것이라 말이오. 죄의 그 근본 말은 이  활을 쏠 때에 과녁이 있는데 그 핵에 딱 들어맞히면 의가 되는데 거게 삐뚤어진  그것을 죄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바로 딱 들어맞히지  않은 것은 다 삐뚤어진 것이라 그것이 죄라는 것으로 그렇게 표현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의 언행심사에 삐뚤어진 것 용납지 않는 것이 마귀를  용납지 않는 것이오. 사람들은 뭐 예사롭게 앉았으면 그 쓸데없는 말을 가지고  자꾸 합니다. 이런 말 저런 말 해 가지고 자꾸 삐뚤어진 행위를 합니다.

 제가 한 십여 년 전에 한번 저 기도실에 가면서 이복순 집사님하고 같이 동행을  했습니다. 동행했는데 자기 구역 식구 그 OOO씨의 그 어머니를 중간에서  만났는데 그 구역장이니까 그 어머니에게 그 권면한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습니다.

내가 보니까 순전히 마귀 말입니다. 옳은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 내가 그분  지나가고 나서, 그분 앞에서는 내가 그 지도자를 그래 놓으면은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그렇게 안 해도 지나가고 난 다음에 '집사님 그분에게 지금 집사님이 한  말이 그 어떻게 생각이 됩니까? 내가 듣기에는 그 말이 전부 삐뚤어졌지 옳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말만 자꾸 한다고 사람이 지도가 됩니까? 그 삐뚤어짐이  됐기 때문에 그 사람이 아마 집사님의 말을 듣고서 그저 예예 해도 속으로는 다  비웃고 하나도 그이의 그 심령에는 담겨 있지를 안 할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말을 하고 그 말 내가 여러 제직회 때도 그 얘기를 했었습니다.

 그랬는데, 그분이 기도 생활을 시작하고 난 다음에는 제가 볼 때에 참 감당 못  할 만치 그이의 말이 어떨 때는 너무 차원이 높은 말을 해서 그 말을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울 만치 '그분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까 그 벌 말이 아닌가?'  했는데 나중에 지나가고 보면은 그 말이 참되다는 것을 이렇게 묵묵히  느껴왔는데 이번에 그 사경에 달할 때에 인간이 제일 고통이 죽음이 제일  고통스러운 겁니다. 죽음의 고통이, 꼼짝도 않고 죽음의 고통을 자기가 이기고  꺾고 그 죽음의 고통에서 자기가 자유했습니다. 뭐 죽음의 고통이 와도 자기가  웃고 싶으면 웃고 기뻐하고 싶으면 기뻐하고 또 사람에게 더불어 화친하고  싶으면 화친하고 사람에게 대해서 옳은 지도를 하고 싶으면 지도했지 그 죽음의  고통이 그를 지배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죽음에게 종되지를 안한  사람입니다. 죽음은 완전히 극복했습니다.

 이러니까, 그 모든 말하는 것이 그래 그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니까  '나의 이 기쁨이 부럽습니까?' '참 부럽습니다.' 하니까 '부러우면 됐습니다. 그러나  부럽기만 해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빼앗아 가지 못하는 기쁨인데  영원한 기쁨인데 이 기쁨은 주님이 주셔야 되는 것이니 이 기쁨은 평소에  만들어야 됩니다. 평소에 힘써 만들어야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이 감사와 기쁨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이 감사와  기쁨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그 죽음이 와도 뺏기지 말라 하니까 그렇츰 암병에는  제일 아픈 것입니다. 병중에 제일 아픈 것이 암병입니다. 그렇게 아파도 그  아픔에, 아픔의 고통 이거 죽음 아닙니까? 그 죽음에 기쁨이나 감사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전해 주는 거게 대해서  조금도 제재를 받지를 안했습니디.

 그렇게 아주 뼈만 남아서 기운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있을 리가 있습니까?  그래도 그 옳은 일에 대해서는 어데서 기운이 나오는지 할 말 다 하고 마지막에  그래 자기 할 일 다 하고 이제 다 됐다 하고서 이제 만족이라고 그렇게 말을  하고서 좀 있다가 세상 떴다 말을 들었습니다.

 이러니까, 이 모든 것이 우리가 태산 올라가는 거와 꼭 같습니다. 태산 올라가는  것이 아무리 그 사람이 건강해서 한 발자국에 십 메타를 뛰어올라간다 할지라도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도 제사 한 발자죽에 뛰어올라갈라 해 가지고는  헛일입니다. 그 사람은 한 자국에 그 태산을 올라가려 하는 사람은 십 메타 뗄  만한 용감스러운 사람이라도 태산을 못 올라갑니다. 제가 한 발자국에 못  올라갑니다. 그러나 이거 뭐 굼벵이같이 구분다 할지라도 자꾸 그저 조금씩  조금씩 자꾸 그렇게 계속해서 올라가는 대는 결국은 그 고고태산에 절정을  올라가고야 마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꼭 이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 생활은 힘쓰는 자가 얻는 것이지 힘 센 자가 천국은 얻는다  그런 말하지 안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절히 힘써야 됩니다. 부절히, 내가  명철하고자 하면은 악령을 내 마음에 용납지 안한 일을 부절히 계속해서 내 속에  삐뚤어진 죄되는 그런, 마음에 죄되는 것이나, 생각에 죄되는 것이나, 몸에 행동에  죄되는 것이나, 들음으로 죄되는 거, 눈으로 봄으로 죄되는 거, 입으로 말함으로  죄되는 거 접촉함으로 죄되는 거, 죄되는 것을 용납지 안하고 이것을 자꾸  우리에게서 물리치면은 마귀는 우리에게 용납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대로의  옳은 거 바른 것을, 볼 때도 바른 것을 보고 바로 보고, 들을 때도 바로 듣고,  말할 때도 바로 하고, 생각하는 것도 바른 생각 옳은 생각을 이래 할 때에는  성령이 내게 오시게 되면은 그때는 이제 내 모든 견해와 판단과 비판과 평가가  다 하나님처럼 옳기 때문에 하나님과 연결돼서 전지의 지혜를 우리가 가지게  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악령과 접하면 악령의 그 완전히 전적 악인 그 악령과 꼭 같이, 전적 악이라  말은 전적 삐뚤어졌다 말이오. 전적 삐뚤어진 악령으로 더불어 하나돼 가지고  그렇게 완전히 삐뚤어진 자가 됩니다. 중생된 사람이라도 악령과 동행하는 사람  일생 동안 죽을 때까지 삐뚤어진 생활 하다가 죽습니다.

 어떤 사람 어제 말 들으니까 죽을 때에 그 아파서, 아파서 얼마나 고통이  심합니까? 그래 놓으니까 뭐 혀를 깨물어서 뭐 피가 막 온 얼굴에 피투성이가  되고서 이래도 못견뎌서 이라는데 그것이 기쁘고 즐거워서 모든 사람이 보고서  '아, 저분 죽는 거 보니까 나도 어서 죽고 싶다. 어서 죽고서 주님의 나라 가고  싶다. 참 주님의 나라가 그렇츰 좋은 줄을 몰랐다.' 그 사람의 기뻐하는 거 보고  감사하는 거 보고 하늘나라를 생각하면서 좋아하는 걸 보고. 녜, 하늘나라는  그렇게 좋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는, 성령이 오면은 무한히 명철하고 현철하고 광명하고  의롭고 옳고 바르고 악령이 우리에 오면은 우리 마음은 한없이 더러워지고  추해지고 삐뚤어지고 거짓돼지고 가증스러워지는 것입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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